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5746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불망실196)에 제하다. 마땅히 갑신년(1944) 조에 있어야 한다. 題不忘室【當在甲申年條中】 구렁에 버려짐과 머리 잃음을 잊지 않는다고197) 不忘在壑與喪元공자와 맹자198)께서 분명한 격언을 남기셨다오 鄒魯分明有法言천사라도 거들떠보지 않음은 의가 아니기 때문이요199) 千駟寧觀非義地만인이라도 내 가서 대적함은200) 지강의 경지201)에 들어서라네 萬人吾往至剛門서책은 고기처럼 좋아해야 하니202) 세 시렁에 가득 채우고 書宜嗜豢盈三架소나무는 양식으로 삼을 만하니203) 후원에 빼곡히 심는다오 松可爲粮滿後園불망 두 자로 편액한 걸 그대는 비웃지 마소 二字扁楣君莫笑옛사람을 상론할204) 후생이 절로 있을 터이니 尙論自有後生存 不忘在壑與喪元, 鄒魯分明有法言.千駟寧觀非義地, 萬人吾往至剛門書宜嗜豢盈三架, 松可爲粮滿後園.二字扁楣君莫笑, 尙論自有後生存. 불망실(不忘室) 후창 소유의 토실(土室) 이름이다. 후창은 갑신년인 1944년에 〈불망실기(不忘室記)〉를 지었는데, 그 기문에 당시 일본의 폭정과 수탈이 극에 달해 의리상 욕을 받을 수 없기에 토실에 몸을 숨겨 처음에는 솔잎과 마를 채취하여 연명하다가 마지막에는 구렁에 들어가 죽겠다고 하였다. 《後滄集 卷21 不忘室記》 구렁에……않는다고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맹자가 "옛날에 제 경공(齊景公)이 사냥할 때 우인(虞人)을 정(旌)으로 불렀으나 우인이 오지 않자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공자(孔子)께서는 '지사(志士)는 자신의 시신이 도랑에 버려질 수도 있음을 잊지 않고, 용사(勇士)는 죽음을 당해 머리가 잘릴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칭찬하셨으니,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취하셨는가? 합당한 부름이 아니면 가지 않은 것을 취하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원문의 추(鄒)와 노(魯)는 모두 춘추 시대의 국명(國名)으로,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났으므로 공자와 맹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우인(虞人)을 칭찬하는 공자의 말을 맹자가 인용하였으므로 두 사람을 모두 언급한 것이다. 천사(千駟)라도……때문이요 천사는 4천 필의 말을 이른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맹자가 이윤(伊尹)의 마음가짐을 설명하면서 "의롭지 못하거나 도에 합당하지 않으면 천하를 그에게 녹봉으로 주어도 돌아보지 않고, 4천 필의 말을 매어 놓는다 하더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다.[非其義也, 非其道也, 祿之以天下, 不顧也, 繫馬千駟, 不視也.]"라고 하였는데, 이를 차용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만인(萬人)이라도……대적함은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지 못하면 비록 미천한 사람이라도 내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지강(至剛)의 경지 원문의 강문(剛門)은 지극히 굳센 경지를 비유한 말로,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면서,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함으로써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이 기가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된다.[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고기처럼 좋아해야 하니 원문의 환(豢)은 추환(芻豢)의 줄임말로, 초식(草食) 가축과 잡식(雜食) 가축을 뜻하는데, 맛있는 고기 음식을 비유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의리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고기가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소나무는……만하니 후창의 〈불망실기(不忘室記)〉에 토실(土室)에 몸을 숨겨 처음에는 솔잎과 마를 채취하여 연명한다고 하였는데, 이 솔잎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後滄集 卷21》 상론(尙論)할 옛사람의 일을 평론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천하의 훌륭한 선비라야 천하의 훌륭한 선비를 벗할 수 있다.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여 또다시 위로 올라가서 옛사람을 논한다.[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병중에 만당형장190)을 생각하며 3수 病中憶晩棠兄丈【三首】 이년이 지나도록 당형을 보지 못했는데 不見棠兄再過冬나의 상태로 당형을 미루어 알 수 있다네 以吾狀態可推公얼마나 머리가 센지는 다소 다를 터이고 淺深鶴髮差分異전후로 형제 잃은 슬픔191)은 일체 똑같으리라 先後鴒悲一體同용악에 힘써 달려갔으나 미치지 못하였고 龍岳專趨曾未及웅진에 들러 찾아뵀으나 또 허사가 되었다오 熊津歷拜又成空갑자기 몸져누워 장차 벙어리가 되려 하니 忽然臥病將成啞서로 만난들 어찌 속마음을 다 말할 수 있으랴 相對何能說盡衷사십 년 동안 기나긴 한겨울로 괴로웠는데 四十年間困大冬봄이 오자 비로소 조화옹을 보는구나 春來始見化翁公원수를 섬멸함은 예전 만남 뒤에 일찌감치 있었고 殲讐早在前逢後술을 따라 준 건 다 같이 축하한 일보다 오히려 늦었다오 酌酒猶遲一賀同서인에 대한 근심이 비록 눈에 가득하지만 憂在西人雖溢目태극기는 높이 걸려 이미 창공에 펄럭이누나 旗高太極已翻空세속에 매인 몸인지라 무궁한 설이 있으니 世途身分無窮說행여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소회를 토로하리라 倘有其時一吐衷추억하건대 유조192)의 해가 든 봄과 겨울에 憶曾柔兆歲春冬양부193)의 시론을 우리 당형에게 들었다오 兩部詩論受我公활수에 오르는 건194) 기약하지 못하거니와 活水登臨不期會천태에서 풍영하는 건195) 그 언제나 함께하랴 天台風詠幾時同궁한 길에 낙척하니 일평생의 한이요 窮途落拓平生恨늘그막에 처량하니 만사가 부질없어라 暮境凄涼萬事空당시에 기대한 뜻이 진중하였는데 珍重當年期待意지금 유복 차림이 진심 아닌 게 부끄럽구나 至今儒服愧非衷 不見棠兄再過冬, 以吾狀態可推公.淺深鶴髮差分異, 先後鴒悲一體同.龍岳專趨曾未及, 熊津歷拜又成空忽然臥病將成啞, 相對何能說盡衷?四十年間困大冬, 春來始見化翁公.殲讐早在前逢後, 酌酒猶遲一賀同.憂在西人雖溢目, 旗高太極已翻空.世途身分無窮說, 倘有其時一吐衷.憶曾柔兆歲春冬, 兩部詩論受我公.活水登臨不期會, 天台風詠幾時同?窮途落拓平生恨, 暮境凄涼萬事空.珍重當年期待意, 至今儒服愧非衷. 만당형장(晩棠兄丈) 김희현(金熺鉉, 1872~1951)으로, 만당은 그의 호이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정오(定五)이다. 후창의 외종형(外從兄)이다. 후창이 일찍이 그를 위해 〈만당시고서(晩棠詩稿序)〉를 썼다. 《後滄集 卷20 晩棠詩稿序》 형제 잃은 슬픔 원문의 영비(鴒悲)를 번역한 것이다. 영(鴒)은 척령(鶺鴒)의 준말로 할미새를 뜻하는데, 흔히 형제 또는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할미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급난을 당하였도다. 매양 좋은 벗이 있으나, 길이 탄식할 뿐이니라.[脊令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유조(柔兆) 고갑자(古甲子)로 천간(天干) 가운데 병(丙)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병술년(1946)을 가리키는 듯하다. 양부(兩部) 양부고취(兩部鼓吹)와 같은 말로,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는 부대(部隊)와 서서 음악을 연주하는 부대가 함께 연주하는 매우 기세가 성대한 음악을 뜻한다. 여기서는 음악 용어를 시의 이론에 대입하여 말한 듯하다. 활수(活水)에 오르는 건 활수는 문맥으로 볼 때 높은 정자나 누대의 이름을 가리키는 듯한데, 자세하지 않다. 활수라는 말은 남송(南宋) 때 주희(朱熹)의 〈관서유감이수(觀書有感)〉 시에 "묻노니 너는 어찌 이렇게 맑을 수가 있느뇨, 근원에서 흐르는 물이 내려오기 때문이겠지.[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한 시구에서 유래하였다. 《晦庵集 卷2》 천태(天台)에서 풍영(風詠)하는 건 천태는 정읍 이평면 창동리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을 가리킨다. 풍영은 바람을 쐬며 시를 읊조린다는 뜻으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즐기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의사 윤봉길222)행 尹義士奉吉行 윤봉길이여 진정한 의사로다 尹奉吉眞義士당시 빼어난 기운 타고난 건223) 우연이 아니로세 岳降當年匪偶爾한 때의 행적은 천년토록 길이 빛나고 一時之蹟光千祀칠 척의 장신은 온 천하224)를 구제하였네 七尺之身濟九有약관의 나이에 일찍부터 명성을 떨치려 했으니 弱齡早欲立大名충과 효가 지극하다고 사우들에게 알려졌다오 忠孝二字聞師友붓을 잡으면 스스로 면려하는 시를 막힘없이 썼으니 筆下滾滾自勖詩지금까지도 사람의 기운을 분발하게 한다오 至今令人氣蚴蟉보잘것없고 누추한225) 시목동에서 佌佌蓛蓛柹木洞산풍의 간고226)로써 부모를 봉양하였네 山風之幹養父母효를 옮겨 충을 하려 했지만227) 나라 없음을 어이하랴 移孝爲忠柰無國우리나라가 협소하여 대바구니 속에 있는 것 같았네 東土窄窄如在簍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려가 새 정부에 찾아가니228) 出門西走新政府백범 노인229)을 처음 만나면서 마치 구면처럼 여겼다네 初面如舊白凡叟한 조각 간담을 서로 활짝 터놓으면서 一片肝膽相照地영구의 쉽고 어려운 일을 각자 취하였네230) 嬰臼難易各自取중국과 우리나라의 형세는 순치보거231)와 같으니 唇齒輔車中東勢고금의 논의가 과연 다름이 없겠는가 古今之論無異否팔월 상해에서 일왕을 위한 잔치가 있었는데232) 八月上海島酋宴대륙을 삼킬 듯이 기세가 몹시 등등하였다네 垂呑大陸勢甚阜계엄 상태가 서릿발 같이 삼엄하여 戒嚴肅肅如霜雪나는 새도 감히 그 뒤를 지나가지 못했는데 飛鳥莫敢掠其後편한 걸음으로 무인지경을 가는 듯이 했으니 平步躡去如無人온갖 신령이 오르내리며 좌우를 호위하였다오 百靈閃閃擁左右품속에 숨긴 한 덩이의 물건은 무엇인가 懷中一塊是何物삽시간에 천둥 벼락 치는 굉음이 울렸네 頃刻雷霆生擊掊한 사람의 순국에 열 명 대장을 모두 죽게 하고 一斃斃盡十大將가련하게도 나머지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오 可憐餘物作炙灸스스로 성명을 외치고서 춤추고 환호하며 自唱姓名舞且呼대한독립만세를 오래도록 부르짖었도다 大韓獨立萬歲久어찌 자신이 쓸 총포가 하나도 없으랴마는 那無一礮自家用웅어에 대한 구분233)이 진작부터 명백하였다네 熊魚之分早判剖윤봉길이여 윤봉길이여 尹奉吉尹奉吉의사라는 칭호가 만인의 입에서 앞다퉈 나왔도다 義士爭稱萬人口진심으로 은혜를 베푸니 민국을 찬란히 빛내고 中心載恩華民國덕을 좋아하는 자들이 함께 도우니 유럽까지 아울렀네 好德同贊幷巴歐그 큰 공로가 귀결된 바를 살펴보건대 淸看大功歸宿處조국의 온 지역을 한 비로 깨끗이 청소함일세 祖國之周掃一帚조국을 다시 얻었으니 어찌 충이 아니겠는가 復得祖國豈非忠이름 날려 부모를 드러냈으니234) 효 역시 성대하도다 掦名顯親孝亦厚예산은 높고 덕산은 무거우니 禮山高兮德山重예산과 덕산은 충효의 고을이로세235) 禮德之山忠孝部윤봉길이여 진정한 의사로다 尹奉吉眞義士몸은 떠났어도 의는 남아 있어 길이 불후하리라 身去義存長不朽 尹奉吉眞義士! 岳降當年匪偶爾.一時之蹟光千祀, 七尺之身濟九有.弱齡早欲立大名, 忠孝二字聞師友.筆下滾滾自勖詩, 至今令人氣蚴蟉.佌佌蓛蓛柹木洞, 山風之幹養父母.移孝爲忠柰無國? 東土窄窄如在簍.出門西走新政府, 初面如舊白凡叟.一片肝膽相照地, 嬰臼難易各自取.唇齒輔車中東勢, 古今之論無異否?八月上海島酋宴, 垂呑大陸勢甚阜.戒嚴肅肅如霜雪, 飛鳥莫敢掠其後.平步躡去如無人, 百靈閃閃擁左右.懷中一塊是何物? 頃刻雷霆生擊掊.一斃斃盡十大將, 可憐餘物作炙灸.自唱姓名舞且呼, 大韓獨立萬歲久.那無一礮自家用? 熊魚之分早判剖.尹奉吉尹奉吉! 義士爭稱萬人口.中心載恩華民國, 好德同贊幷巴歐.淸看大功歸宿處, 祖國之周掃一帚.復得祖國豈非忠? 掦名顯親孝亦厚.禮山高兮德山重, 禮德之山忠孝部.尹奉吉眞義士! 身去義存長不朽.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파평(坡平), 본명은 우의(禹儀), 호는 매헌(梅軒)이다. 충청남도 예산(禮山) 출신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璜)이며, 어머니는 경주 김씨로 김원상(金元祥)이다. 1932년 4월 29일에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일왕(日王)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장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감행하였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일본으로 호송되어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그해 12월 19일에 총살형을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개석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고 격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빼어난 기운 타고난 건 원문의 강악(降嶽)은 산악의 신령한 기운을 받아 훌륭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숭고(崧高)〉에 "높디높은 산악이, 우뚝 하늘에 닿았도다. 산악에서 신령한 기운을 내려, 보후(甫侯)와 신백(申伯)을 내셨도다.[崧高維嶽, 駿極于天. 維嶽降神, 生甫及申.]"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온 천하 원문의 구유(九有)는 구주(九州)와 같은 말로, 천하 또는 중국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보잘것없고 누추한 원문의 차차(佌佌)는 작은 모양이고, 속속(蔌蔌)은 가난하고 누추한 모양을 형용한 말로, 《시경》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보잘것없는 소인들은 저 집을 소유하며, 누추한 자들은 곡식을 소유한다.[佌佌彼有屋, 蔌蔌方有穀.]"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산풍(山風)의 간고(幹蠱) 산풍은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고괘(蠱卦)를 가리킨다. 간고는 《주역》 〈고괘(蠱卦)〉에 "초육(初六)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无咎.]"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여 아버지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업을 완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집안일을 주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효(孝)를……했지만 원문의 이효위충(移孝爲忠)은 《효경(孝經)》 〈광양명(廣揚名)〉에 "군자가 어버이를 효도로 섬기기 때문에 충성을 임금에게 미루어 옮길 수 있다.[君子之事親孝, 故忠可移於君.]"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문을……찾아가니 새 정부는 당시 상해(上海)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가리킨다. 윤봉길은 23세가 되는 1930년 3월에 만주(滿洲)로 망명하였고, 1931년 8월에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갔다가 그해 겨울에 임시정부의 김구(金九)를 찾아가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칠 각오임을 호소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을 두고 말한 것이다. 백범(白凡) 노인 김구(金九, 1876~1949)로, 백범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아명은 창암(昌巖), 본명은 창수(昌洙), 호는 백범ㆍ연하(蓮下)이다. 삼일 운동 후 중국 상해(上海)의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고, 1928년에 이시영(李始榮)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였고, 1931년에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조직하여 1932년 1월의 이봉창(李奉昌)의 의거와 4월의 윤봉길(尹奉吉) 의거 등을 지휘하였다. 영구(嬰臼)의……취하였네 영구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 대신 조삭(趙朔)의 친구 정영(程嬰)과 문객인 공손저구(公孫杵臼)를 가리킨다. 진나라 경공(景公) 3년에 대부(大夫) 도안가(屠岸賈)가 조삭의 일족(一族)을 멸족시키자, 공손저구가 정영과 함께 조삭이 남긴 고아(孤兒)를 세울 일을 논의한 끝에, 정영에게는 조삭의 진짜 고아를 보호하게 하고, 공손저구 자신은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리고 거짓 조삭의 아이라고 위장하여 산중에 숨어 있으면서 정영에게 자신을 도안가에게 밀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공손저구 자신은 가짜 아이와 함께 도안가에게 잡혀 살해당하고, 조삭의 진짜 고아는 정영에 의해 무난히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경공 15년에 한궐(韓厥)의 주선으로 조삭의 고아인 조무(趙武)를 조씨(趙氏)의 후계자로 삼아 예전의 지위와 땅을 회복하게 하고 동시에 조삭의 원수를 갚게 하였다. 정영은 이후 조무(趙武)가 관례식을 올리던 날에 조삭과 공산저구에게 일을 성공함을 보고하기 위해 황천으로 가야 한다고 하며 조무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자살하였다. '쉽고 어려운 일'이란 공손저구가 정영과 처음 논의할 때 죽는 일은 쉽고 조삭의 고아를 세우는 일은 어렵다고 하면서, 정영에게는 고아를 세우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고 공손저구 자신은 죽는 쉬운 일을 하여 먼저 죽겠다고 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윤봉길은 공손저구의 쉬운 일을, 김구는 정영의 어려운 일을 각자 취해 행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史記 卷43 趙世家》 순치보거(脣齒輔車) 순치는 입술과 이를 말하고, 보거는 광대뼈와 잇몸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피차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여 서로 의지하는 사물을 비유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5년 조에 "광대뼈와 잇몸이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게 된다.[輔車相依, 脣亡齒寒.]"라고 하였다. 팔월……있었는데 1932년 4월 29일에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日王)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행사를 두고 말한 것이다. 원문의 팔월(八月)은 사월(四月)이 되어야 하는데, 후창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웅어(熊魚)에 대한 구분 곰 발바닥 음식과 물고기 음식 가운데 택일하라면 물고기보다는 곰발바닥을 택한다는 말로, 생사(生死)의 선택에 있어 구차히 살기보다 떳떳하게 의리(義理)를 따라 죽는 것을 택하는 비유로 쓰인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어물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어물을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름……드러냈으니 《효경》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몸과 사체와 털과 살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예산……고을이로세 윤봉길이 예산군(禮山郡) 덕산면(德山面) 시량리((柿梁里)에서 태어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世皆如李太漢之父子則 官令莫售 國法安在如此化外不可以尋常凡類治之不啻以屢度截嚴 營題以初十日再納侤於 城主嚴明之下斷當掘移之意眼同別差奉 分付出去矣渠之父子與其弟一齊避身而差使亦莫知所向故不勝憤迫玆敢更陳 洞燭敎是後使太漢之奴子押將差不日督掘以懲右漢之化外不測之習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酉十二月 日泰仁官[着押][題辭]李太漢之所▣雖萬萬可痛以奴代(背面)掘此是法外不可許施偸塚掘漑覓主之例事卽爲掘漑向事十一日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제야에 원재 어른의 시에 차운함 除夜次遠丈韻 세밑에 객창 아래 멍하니 앉아서는 歲暮羇牕坐嗒然책상 위의 옛사람 책을 어루만진다 摩挲案上古人篇한밤중 여기저기 산엔 눈 남아있고 亂山殘雪三更夜만리 하늘 밝은 은하수엔 별 성그네 明漢疎星萬里天솥 안에 금단 생기기만 부질없이 기다리며 空待金丹生鼎裏머리끝에 흰 서리 내릴까 겁나는구나 怕將霜白撲頭邊누가 나를 일으켜 진경을 찾게 할까 誰歟起我尋眞境고상한 풍격 갖추신 어진 원로 계시니 爲有高風遠老賢 歲暮羇牕坐嗒然,摩挲案上古人篇.亂山殘雪三更夜,明漢疎星萬里天.空待金丹生鼎裏,怕將霜白撲頭邊.誰歟起我尋眞境,爲有高風遠老賢.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남산재에 자정이 왔기에 南山齋子貞見訪 눈 내린 달밤 조각 배로 서로 찾다보니 一棹相尋雪月天산음에서의 옛일이 다시 금년에도 있구나 山陰故事又今年희미한 등잔 외로운 마을 밖에서 깜빡이고 殘燈點點孤村外푸른 하늘 외기러기 나는 곳까지 아득하네 碧落迢迢獨鴈邊오랜 바위 비 오는 산장에서 택수212)를 생각하고 石老雨庄懷澤叟티끌 사라진 두악에서 영주의 신선산인가 물었지 塵晴斗岳問瀛仙나아가고 숨는 도처엔 불필요한 물건 없어 行藏到處無長物두 소매에 이는 맑은 바람 시원함을 깨닫네 雙袖淸風覺爽然 一棹相尋雪月天,山陰故事又今年.殘燈點點孤村外,碧落迢迢獨鴈邊.石老雨庄懷澤叟,塵晴斗岳問瀛仙.行藏到處無長物,雙袖淸風覺爽然. 택수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그가 팽택령(彭澤令)으로 있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남산재에서 여러분과 송별함 別南山齋諸君 한 해 마지막에 남산에서 객들 읊조리며 돌아가는데 歲暮南山客賦歸바닷가 하늘은 고요하고 기러기 소리마저 드물구나 海天寥廓鴈聲稀파도가 옛 나루터를 울리니 한스러움 아득하고 波鳴古渡悠悠恨바람이 긴 길에 불어오니 옷이 살랑거린다 風送長程拂拂衣너무 쉽게 늙어 알려진 것 없는 내가 부끄럽고 愧我無聞偏易老굳건히 날 듯 뛰어나게 걷는 그대들 두렵구나 畏君逸步健如飛봉래산 영주산 지척에 명승지가 많이 있으니 蓬瀛咫尺多名勝내년 봄에 바람 쐬고 읊는 기약 어기지나 마시오 風咏來春且莫違 歲暮南山客賦歸,海天寥廓鴈聲稀.波鳴古渡悠悠恨,風送長程拂拂衣.愧我無聞偏易老,畏君逸步健如飛.蓬瀛咫尺多名勝,風咏來春且莫違.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이대용(李大容) 등의 명단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李大淳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보성의 이대용 등의 주소와 성명을 미리 기재하고 여기에 번지수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문서 보성의 이대용 등의 주소와 성명을 미리 기재하고 여기에 번지수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문서이다. 주소와 성명을 기재하고 성명 아래에 날인하였는데, 번지수 첨기와 수정 부분들이 있다. 끝에는 주소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기록이 있다. 수록된 인원수는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 274번지의 이대용(李大容)을 비롯하여 모두 16명이다. 별지가 붙어있는데, 여기에도 주소의 번지와 씨명을 참고해서 각 기입처에 일일이 기입하라는 내용이다.

상세정보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연반리 등 소재 소유토지의 토지대장 고문서-증빙류-토지대장 李大容 李大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연반리 등 소재 소유토지의 지번과 지가, 세액(稅額) 등을 적어놓은 일종의 토지대장 연반리 등 소재 소유토지의 지번과 지가, 세액(稅額) 등을 적어놓은 일종의 토지대장이다. 토지 소재지는 연반리(蓮盤里)와 방송리(芳松里), 당월리(堂月里) 등이며, 각 지번을 적고 그 아래에 지가와 세액을 적어놓았다. 끝에는 지가와 세액의 합계를 기재하였다. 첫 줄 하단에 이대용(李大容)이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데, 아마도 토지소유자인 것으로 보인다. 별지가 붙어있는데, 토지 표시가 상세하지 않은 것과 등기에 관한 당부 내용을 담고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23년 이봉인(李鳳寅)의 부동산등기 신청 위임장 고문서-명문문기류-위임장 大正拾貳年壹月日 李鳳寅 大正拾貳年壹月日 李鳳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1월에 이봉인(李鳳寅)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 1923년 1월에 이봉인(李鳳寅)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이다. 내용은 위임사항과 날짜, 각 위임자의 주소와 성명, 등기원인, 등기목적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피위임자는 곡성군 곡성면 읍내리에 사는 이봉인이며, 단서조항이 있는데 대리인의 선임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위임자는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에 사는 이교재(李敎在)를 비롯하여 모두 14명이다. 등기목적은 소유권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21년 조수환(曺壽煥)의 부동산등기 신청 위임장 고문서-명문문기류-위임장 大正拾貳年壹月日 趙壽煥 大正拾貳年壹月日 趙壽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1월에 조수환(曺壽煥)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 1921년 1월에 조수환(曺壽煥)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이다. 내용은 위임사항과 날짜, 등기원인, 등기목적, 각 위임자의 주소와 성명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피위임자는 곡성군 곡성면 읍내리에 사는 조수환이다. 위임자의 대표는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에 사는 이대용(李大容)이며, 그 외에 모두 13명이다. 등기목적은 소유권이다. 피봉이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머리를 깎지 않는 이유에 대한 피인의 질문에 의답함 擬答彼人不薙髪理由之問 머리카락은 부모가 남겨주고 스승이 가르쳐주고 성인이 법으로 삼는 것으로서 몸의 문장(文章)입니다. 머리카락을 없애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는 것이고, 부모를 무시하는 것은 스승을 무시하는 것이고, 스승을 무시하는 것은 성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스승을 무시하고 성인을 무시하여 몸의 문장을 없앤다면, 이것은 죽은 사람과 무슨 구별이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과 똑같다면, 나의 머리카락을 잘라 죽은 상태가 되는 것보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을 지키며 변치 않으니,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를 빼앗지 않는 것도 오늘날 세상에서 공인하는 것인데, 어찌 굳이 우리 유자들에 대해서 의심을 한단 말입니까? 髪者, 親之遺, 師之敎, 聖之法, 而爲身之章者也.無髪是無親, 無親是無師, 無師是無聖也.無親無師無聖, 而去身之章, 是庸有別於死人矣乎? 同是死人, 則無戴吾髪而死, 得以無愧於吾心之爲愈.故守而不移者, 此其由也.不奪人之信敎, 亦今世之公認, 何必至於吾而疑之?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홍위헌에게 답함 무인년(1938) 答洪韋軒 戊寅 당신 아버지의 비석 세우는 일에 보낸 원조금이 이처럼 적은데, 성대한 마음이라 말해주시고 감사하다고 말해주시니, 부끄러워 감히 말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편지에서 남방에 70여질의 문집을 보냈는데 한 사람도 힘을 보탠 자가 없다는 것은 무슨 곡절입니까? 아니 70여 집이 모두 가난하여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모두가 인색하여 그런 것입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의리와 이익의 관계에 투철하지 못한 소치이고, 또한 이로써 오늘날 학자들을 살필 수 있으니, 한탄스럽고 한탄스럽습니다. 敬碑助金, 若是薄者, 謂之盛念, 謂之感謝, 愧不敢言.但所喩南方七十餘帙, 無一助力者, 則是何委歟? 豈七十餘家, 皆窶者歟? 吝者歟? 有不可知, 然大都是透不得義利關之致, 而亦可以觀今世學者矣, 可歎可歎.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상량문 上樑文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밀양 박씨 영모재 상량문 密陽朴氏永慕齋上樑文 먼 조상을 추모하여 그 생각 보존하니이에 전대에 지었던 것 보겠네뜻을 잘 계승하여 그 일 전술하니이에 오늘의 긍당이 있게 되었네이것이 자손이 우러러 사모하는 방법이요생도들이 학업을 익힐 장소를 얻게 되었네생각건대 밀양 박씨는 대대로 벼슬한 집안으로능주 서쪽 토구의 고을을 지켰네당부114) 같은 것은의리를 보관한 것 길이 받들고모 수 모 언덕에선영의 나무 그늘 대대로 보호하네한 구역 기둥과 글방은실로 진군의 정자115)이고백년의 구림은이 어찌 계씨의 침문이겠는가상로 내릴 때 처창한 생각116) 깃들이고조석으로 바라보며 절하는 정성 펼치네동상과 서실에서친척의 정 즐거워 하고봄가을 예서와 경서로자제들의 학업 점검하네이에 지은 지 오래되어서는기울고 넘어지는 근심 없지 않네담장은 다시 높아진 위태로움 보겠고서까래는 너무 지나치게 꺾임이 있네낙양의 정자117)는비록 족히 말할 것 없지만안영의 실려118)는절로 전수받은 것이 있네창업하고 보호하여자손들로 하여금 이을 수 있게 하고집을 지음에 법을 이루었으니선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네여러 의론이 일제히 같아공사를 바야흐로 일으키네일은 크고 힘은 부족하니옛날 그대로 따르려 하고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이 썩으니형세가 장차 다시 새롭게 하는데 이르네이에 깎고 세워계사119)와 당실의 위치 정하고저기에 도끼질 하고 톱질하여동량과 두공의 재목 실어오네목수들은 능히 그 책임 다하고마을 사람들은 즐거이 그 일에 달려가네혼중120)의 익진121)이이괘(離卦)의 문명한 상서에 응하고그림자 측량하니 갑경122)의 방향이라사방의 풍기가 모이는 줄 알겠네그런대로 합하고 아름다우니위나라 형의 선거와 같고123)높고 화려하니장노의 미송을 생각하네124)오직 명예를 길이 마칠 것을 헤아리니장차 며칠 되지 않아 이루어지네긴 들보를 들어 올림에짧은 노래 짓네어영차125)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126)문산의 맑은 기운 성대하네강루127)가 지척이라 추로128)를 바라보니성교가 넘쳐흘러 상서로운 기운 통하네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지니붓같이 높은 봉우리 삼태성처럼 나열하였네만 리의 무민129) 가까이 바라보이니밤마다 달빛은 가을 연못에 비치네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지니한 쌍의 벽학이 하늘에 들리도록 우네누가 장차 철곽으로 오랑캐 방어하여우리 의복을 오랑캐 복식으로 바뀌지 않게 할까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지니지석의 맑은 강 쉼 없이 흐르네하늘 끝에서 북두성에 기대 서울 바라보니바라건대 질병 없이 천수를 누리기를어영차 들보 위쪽으로 던지니위에는 덕산이 있어 첩첩의 산 열렸네즐비하게 늘어선 네 척의 봉분에천추토록 향기로운 제향 쇠하지 말라어영차 들보 아래쪽으로 던지니아래엔 후손들 결사를 많이 맺었네구물의 청전130) 여기에서 볼 것이니대대로 이어서 성대하게 유아한 이 많겠네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는천지는 고문의 운수 되돌리고산천은 원기의 빼어남 내려주어자식은 효도하고 신하는 충성하여가문의 기업 영원히 전하고집집마다 현송하여대대로 사림의 법도 있게 하소서 追遠而存其思。聿覩前世之創。善繼志而述其事。玆有今日之肯堂。是子孫瞻慕之方。得生徒肄業之所。惟密陽簪纓之族。守綾西菟裘之鄕。若堂若斧。永奉衣履之藏。某水某邱。世護松梓之蔭。一區阿塾。實是甄君之亭。百年邱林。此豈季氏之寢。寓霜露悽愴之思。伸朝夕瞻拜之誠。東廂西室。悅親戚之情。春禮秋書。課子弟之學。玆當經歷之久。不無傾圮之憂。垣墉見復上之隉。榱桷有大過之橈。洛陽亭館。雖不足言。晏嬰室廬。自有所受。創業垂護。使子孫可繼。作室底法。念先考攸休。僉議齊同。功役方作。事巨力綿。非不欲於因舊。歲久物敗。勢將至於改新。鑿斯築斯。定階所堂室之位。斧彼鋸彼。輸棟樑欂櫨之材。梓匠能勝其任。閭里樂赴其役。昏中軫翼。應三离文明之祥。景測甲庚。知四方風氣之聚。始有富有。同衛荊之善居。輪焉煥焉。念張老之美頌。惟永終是度。將不日而成。聊擧修樑。爲述短唱。兒郞偉抛樑東。文山淑氣鬱蔥蔥。降婁咫尺瞻鄒魯。聲敎洋洋瑞彩通。兒郞偉抛樑南。高峰如筆列台三。嫠閩萬里膽望近。夜夜月廻秋水潭。兒郞偉抛樑西。一雙碧鶴聞天啼。誰將鐵郭防洋竺。毋我衣裳易介蹄。兒郞偉抛樑北。砥石江淸流不息。倚斗望京天一方。庶無疾病壽千億。兒郞偉抱樑上。上有德山開疊嶂。累累成行四尺封。千秋不替苾芬餉。兒郞偉抛樑下。下有雲仍多結社。舊物靑氈監在玆。承承濟濟多儒雅。伏願上樑之後。天地回古文之運。山川降元氣之英。子孝臣忠。永傳門戶之基業。家絃戶誦。世有士林之典章。 당부(堂斧) 분묘(墳墓)를 말한다. 《예기》 〈단궁(檀弓)〉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옛날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건대, 봉분하는 것을 마치 마루처럼 쌓아 올린 것이 있고……도끼날처럼 위가 좁게 쌓아 올린 것도 있었으니, 나는 도끼처럼 하는 것을 따르겠다.' 하셨다.[昔者, 夫子言之曰:吾見封之若堂者矣,……見若斧者矣, 從若斧者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진군(甄君)의 정자 송(宋)나라 때 서주(徐州)의 부호였던 진씨(甄氏) 집안이 진군(甄君)의 대(代)에 이르러 빈한해졌다. 그래서 부모 형제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다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여러 영구(靈柩)를 함께 장사지내고 무덤 가에 조상을 추모한다는 뜻을 담은 사정(思亭)을 지었다. 이에 당시 문장가인 진사도(陳師道)가 그 내력과 조상을 사모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사정기(思亭記)〉를 지었다. 《古文眞寶後集 卷10 思亭記》 상로(霜露)……생각 《예기》 〈제의(祭義)〉에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서글퍼지는 마음이 있으니,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낙양(洛陽)의 정자 《주자서절요》 권5 〈답진동보(答陳同甫)〉에 "거센 바람이 불어 정자가 넘어졌는데, 마치 하늘이 때맞추어 일으킨 것 같습니다. 저 낙양의 정자야 심히 부러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大風吹倒亭子, 却似天公會事發. 彼洛陽亭館, 又何足深羡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안영(晏嬰)의 실려(室廬) 안영이 나무로 만든 한 칸의 방에 거처했다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17년에 "제(齊)나라 안환자(晏桓子)가 죽으니, 그의 아들 안영이 거친 상복을 입고 나무로 지은 한 칸의 방에서 거처하였다."라고 하였다. 계사(階戺) 섬돌 양 옆에 비스듬히 놓인 돌인데 당전(堂前)의 의미로 쓰인다. 혼중(昏中) 혼지중성(昏之中星)의 준말로, 28수(宿) 중 초저녁 하늘 중앙의 남방(南方)에 보이는 별을 말하는데, 이 별을 관찰하여 사시(四時)를 확정할 수 있다. 익진(翼軫) 이십팔수 가운데 익수(翼宿)와 진수(軫宿)로, 남방의 별이다. 갑경(甲庚) 길흉이라는 뜻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길하다는 의미이다. 《성호사설》 제1권 〈천지문(天地門)〉의 선후갑경(先後甲庚)에서 "갑의 앞과 경의 뒤는 길하고 경의 앞과 갑의 뒤는 나쁘다는 것이다. 이 갑과 경의 앞뒤라는 것은 음양학설상 삼합(三合)의 설과 일치된다."라고 하였다. 그런대로……같고 공자가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을 평가하기를 "그는 집에 거처하기를 잘하였다. 처음 소유하게 되자, '그런대로 모여졌다.' 하였고, 조금 더 장만하게 되자, '그런대로 충분히 갖추었다.' 하였고, 부유하게 되자, '그런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하였다.[善居室, 始有曰, 苟合矣; 少有曰, 苟完矣; 富有曰, 苟美矣.]"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論語 子路》 높고……생각하네 《예기》 〈단궁 하(檀弓下)〉에 "진(晉)나라 헌문자(憲文子)가 저택을 완성하자 대부들이 가서 축하하였는데, 이때 장로(張老)가 말하기를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아름답도다.[美哉輪焉, 美哉奐焉!]' 하였다." 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윤(輪)은 높고 큼을 말한 것이고, 환(奐)은 많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영차 원문의 '아랑위(兒郞偉)'는 '어영차'의 의성어로, 상량을 어영차 올린다는 뜻이다. 또는 젊은 사람을 뜻하는 아랑(兒郞)의 복수형으로, 상량문에서 도목수(都木手)가 장인(匠人)들을 부를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라는 설이 있다.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옛날에 집을 지을 때 길일을 택하여 상량식을 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떡이나 기타 잡물(雜物)을 싸 가지고 와서 축하하면서 이것을 장인(匠人)들에게 먹인다. 그러면 장인의 우두머리가 떡을 대들보의 상하 사방으로 던지면서 상량문을 읽고 축원을 한다. 《文體明辯附錄 卷13 上梁文》 강루(降婁) 성차(星次)의 이름으로, 규성(奎星)과 누성(婁星) 두 별이 위치한 자리를 말한다. 춘분(春分) 무렵 초저녁에 나타난다. 추로(鄒魯) 추(鄒)와 노(魯)는 모두 춘추 시대의 국명(國名)으로,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예교(禮敎)와 학문을 숭상하는 지방을 일컫게 되었다. 무민(婺閩) 무원(婺源)과 민중(閩中)의 병칭으로, 무원은 주자의 선대 고향이고 민중은 주자의 출생지인데, 곧 주자를 가리킨다. 저본의 '嫠'는 '婺'의 오자로 보고 수정하였다. 청전(靑氈) 푸른 모포라는 뜻으로, 선대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이나 가문의 전통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 靑氈, 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王羲之列傳 王獻之》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田士狷 丁卯 음당(陰黨)이 선사의 원고를 고친 죄를 문식(文飾)하여 말하기를 "선사의 오묘한 도와 정밀한 의리는 문자로 다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만약 우리 몇 사람이 선사께서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전수한 것으로 개수하고 보완하지 않으면 원고를 완성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호라! 선사의 80년 동안 진리를 쌓은 공부를 문사가 당신의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고 여겨서 반드시 저들의 개수와 보완을 기다린 후에 완성된다는 것입니까? 더욱 지극히 통절합니다. 陰黨文飾其改稿之罪曰, 先師之妙道精義, 有非以文字蓋者, 若非吾輩幾人以口傳心授者, 改補之, 稿不得完云.鳴呼.曾謂先師八十年眞積之工, 辭不足達其意, 必待渠輩改補而後得完乎.尢極痛絶.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田士狷 丁卯 올해도 남은 날이 많지 않습니다. 하늘의 세월은 날마다 줄어들고, 세상의 어두움은 날로 심해지며, 머리털의 상설(霜雪)은 날로 더해지고, 눈앞의 죽음은 날로 핍박해 옵니다. 매번 송구봉(宋龜峰)의 '흉중의 계책은 끝내 무용하니 천하에 남아가 다신 살지 못하리라'는 시구를 낭송하면 비장하고 격렬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그대의 회포도 똑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새해에 만남은 정히 어느 곳일는지요. 바람을 맞으며 서글플 뿐입니다. 此歲又無多月矣.天之歲月日減一日, 世之黑暗日甚一日, 鬂邊霜雪日添一日, 眼前溝壑日迫一日.每誦宋龜峰胷中大計終無用.天下男兒不復生之句.未嘗不悲壯激烈.想高懷之亦一樣也.新歲常着, 定在何地.臨風冲悵.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방옥범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房玉範 丁卯 옛 사람들은 방소(方所)없이 널리 배워 일정한 스승이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섬기며, 돌아가시면 심상(心喪) 3년을 입는다.67)'라는 말을 보면 군부(君父)와 똑같이 존숭했으니 타인을 재차 스승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후세 사람들은 유현(儒賢)들에게 두루 배사(拜師)할 때마다 사제 관계를 정하는데,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가 죽은 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이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에게서 학업을 마쳤는데도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이는 본받을 만합니다. 더구나 선사의 가르침에, 앞서 이미 한 스승을 함께 섬겼으면 지금 더 이상 사제 관계를 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니 그 도리가 더욱 정밀합니다. 古人雖博學無方而無常師, 若其服勤至死, 心喪三年, 與君父同尊之, 師宜不再稱於人也. 後世之歷拜儒賢, 輒定師生者, 未知其得當也. 近齋沒後, 梅山卒業于老洲而不稱師弟, 此可法也. 而況先師之訓, 乃謂前旣同事一師則不宜今復爲師生也, 其義尤精矣. 죽을……입는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서 인용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홍화명 【송기창을 격려함. 을축년(1925)】 弘和銘 【勖宋基滄 乙丑】 툭터진 하늘 땅의 너른 도량 키우고 恢恢然宏天地之弘量,훈훈한 봄 바람의 따뜻한 기운 지닐지니, 熙熙然存春風之和氣.온화한 기운은 복 쌓을 기반이고 氣和者積福之基,넓은 도량은 덕을 기를 그릇이네. 量弘者蓄德之器,덕 기르고 복 쌓음은 군자의 아름다움이니, 維德維福, 維君子休.그대 부디 힘써 넓고 따뜻함을 이루시라. 懋矣哉, 弘和之致也. 恢恢然宏天地之弘量, 熙熙然存春風之和氣。 氣和者積福之基, 量弘者蓄德之器, 維德維福, 維君子休。 懋矣哉, 弘和之致也。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노사 선생께 올림 上蘆沙先生 세전(歲前)에 천곡(泉谷) 편에 다시 편지 1통을 올렸는데 자취가 몹시 구차하고 소홀하였기에 황공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인편이 돌아올 적에 나무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답서까지 보내 주시고, 또 누누이 가르쳐 준 말씀은 매우 간절하였습니다. 절하고 받고서 엄숙하게 읽고는 진정으로 감읍하였습니다. 대저 스승과 제자 사이는 실로 은혜와 의리가 두루 극진한 관계입니다. 여기에서 그 정을 다하지 않음이 있다면 비록 대중을 널리 사랑하고 두루 베푸는 행위가 있더라도 패덕(悖德)7)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형편없는 소자는 어버이 봉양을 부지런히 하는 일과 전수받고 강학하는 방도에 있어서 일찍이 조금이라도 남과 비슷한 점이 있지 않았으니 소자가 지극한 은혜를 저버린 것이 큽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손을 저어 물리치지 않고 자식처럼 아우처럼 아껴주고 가르쳐 주시니 실로 천지와 같은 도량은 포용하지 않는 사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송구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실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후에 아무런 소식이 없는 가운데 해가 또 바뀌었습니다. 삼가 선생님께서 한가하고 편안히 쉬는 도체(道體)는 새해를 맞아 더욱 건강하십니까? 소자는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하며 한 해를 무사히 보냈으니, 사사로운 분수에 있어서 매우 다행입니다. 소자의 나이는 또 고인이 덕을 세운 나이가 되었지만 성취한 것을 따져보면 도리어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둔8) 아래 수준에서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니, 어찌 백배로 공부하여 고인이 진취(進就)한 경지에 이르겠습니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어느새 개연히 망연자실합니다. 대저 소자의 오늘날 공부는 중단되기는 쉽고 계속하기는 어려우며, 개인적인 근심은 많고 실심(實心)은 부족합니다. 만약 이 한 관문을 통과한다면 발전할 가망이 있을 듯하지만 주저하고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끝내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지난겨울부터 차츰 독서와 궁리의 공부를 줄이고 매양 더욱 함양하여 근본을 세우는 계책으로 삼고 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답장을 덧붙임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요사이 특별한 활계(活計)를 하고 있음을 들었네. 본래 가장 좋은 법문(法門)은 "잊어버리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말라.[勿忘勿助]"라는 것과 "솔개는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뛰어오른다.[鳶飛魚躍]"라는 것이니, 여기에 재미를 붙여 힘쓰고 힘쓰는 것이 정히 좋네. 한 장의 종이에 어리석은 말을 대략 적어서 인편을 기다린 지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부쳐 보내네.[문] '정주(定主)' 2자는 사람의 안배를 기다리는 듯하다.[답] 일찍이 생각건대, 《도설(圖說)》의 이 뜻은 《중용》에 이미 있으니, "진실로 지극한 덕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응결(凝結)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네. 정하고 주로 하는 것은 바로 덕을 닦고 도를 응결시키는 일이네. 만약 도리가 천연적으로 있는 것이라 하여 마침내 인력이 개입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재성(財成)과 보상(輔相)9)은 모두 헛말일 것이네.[문] "형이상하(形而上下)"의 "상하(上下)"는 전후(前後)의 뜻으로 간주한다.[답] '상하(上下)' 2자는 《논어(論語)》에 이미 있으니, "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한다."라고 하였네. 대개 도는 기(器) 가운데 있으니, 그 경계는 본래 말하기 어려우므로 성인이 '상하'라는 글자를 빌려서 형용하였지만 그 실상은 참으로 상하가 있는 것이 아니네. 상하도 오히려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한번 전환하여 전후로 여긴다면 도와 기가 이미 분리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학상달(下學上達)도 뒤에서 배워 앞으로 통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는가. "형이상하를 가지고 말하면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라고 한 주자의 이 한 조목은 과연 전후를 가지고 상하로 간주한 듯하지만, 정자와 주자의 평소 의론은 아마도 이와 같지 않은 듯하네. 머물러 두고 생각해야지 갑자기 한 가지 설만 고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는가.[문] 마음은 크고 넓게 가지며 엄숙하게 가지는 것은 둘 다 보존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기상(氣像)에서 체인(體認)하여 얻어야 한다.[답] 이곳은 다만 손진인(孫眞人 손사막(孫思邈))의 "담력(膽力)은 크고자 하고 마음은 작고자 해야 한다.[膽欲大心欲小]"라는 한 구절을 가지고 보면 절로 참되고 정확해지네. 기상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파악하지 못한 듯하네.[문] 칠정(七情) 외에는 정이 없다.[답] 마음이 발한 것 중에 기력(氣力)이 있어 계교(計較)할 수 없는 것이 대략 이 일곱 가지가 있네. 가령 한만(閒漫)하게 발동한다면 어찌 일찍이 일곱 가지에 그치겠는가. 또 칠정도 그 실제는 좋아하고 미워하는 두 가지 정이네.[문] 「기선악도(幾善惡圖)」[답] 조치도(趙致道)의 도(圖)를 말하는가? 사람의 평상적인 정으로 말하면 기(幾)가 처음 동했을 적에는 혹 쉽게 선악으로 이름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조씨의 뜻에 혹시 이런 점이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통서(通書)》의 본지가 아니네. 다만 하나의 '기(幾)' 자에 이르러 잠시도 멈추지 말고 선과 악을 나누어 쪼갤 뿐이네.[문] 마음을 수렴하고 관섭(管攝)한다.……[답] 생리가 두루 흐르고 지각이 날로 열린다는 설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듯하니 매우 좋네. 다만 인(仁)이 사덕(四德)의 으뜸이 되는 것은 어찌 반드시 이로 인해 이름한 것이겠는가. 歲前泉谷便。轉上一書。跡渉苟簡。繼而惶恐。及其便回。不惟不罪。而加以下賜復書。又其教語。縷縷懇惻。拜受莊讀。衷情感泣。夫師弟之間。固恩義兼盡之地也。於此有不盡其情。則雖有其泛愛博施之行。亦不免於悖德之歸況小子無狀。其於服勤就養之節。傳習講受之道。不曾有一毫髣髴於人者。則小子之所以辜負至恩者。重矣。然而先生不之揮斥。愛之敎之。如子如弟。固知天地之量。無物不包。而其感陳愧恧。實不知所以爲心也。信後寥然。歲又改次。伏未審先生燕申道體。迓新增康。小子奉老親。無事經歲。私分萬幸。犬馬之齒。且當古人立德之年。而究厥所造。反在十五志學之下。悠悠歳月。其安能百倍其功。以追古人進就之階級㢤。思之不覺慨然自失。大抵小子今日之功。易間斷而難接續。多私慮而少實心。若得過此一關。似有向進之望而進退上下之間。竟未過此闗去。奈何奈何。自去冬來。稍減讀書窮索之功。而毎加涵餋以爲立本之計。未知得否。更乞下敎伏望。答附畧曰聞比來做別様活計。自是太上法門。勿忘勿助。鳶飛魚躍。正好此處得滋味。勉之勉之。一紙瞽説起草。俟便已久。故茲付去。定主兩字。渉於竢人排定。竊嘗謂圖說此意。中庸已有之曰。苟不至德。至道不凝焉。定之主之。卽修德凝道之事。若以道理之天然自有。而遂欲不犯人力。則財成輔相。皆虛語矣。形而上下之上下。作前後意看。上下二字。論語已有之曰。下學而上達。盖道在器中。其界至。本自難言。故聖人借上下字。形容之。其實非眞有上下也。上下猶非眞有。況一轉而爲前後。則道器不旣離矣乎。下學上達亦可看作後學而前達乎。以形而上下言。豈無先後。朱子此一條。果似以前後看上下。程朱平日之論。恐不如此。留作商量。勿遽執一說如何。弘廣矝莊。難於併行。須於氣象上體認。此處。但以孫眞人膽欲大心欲小一句看之。便自眞的。氣象之云。恐沒把捉七情外無情心之所發。有氣力無計較者。大約有此七者。若閒漫發動。何嘗止於七耶。又七情。其實好惡兩情。幾善惡圖趙致道圖耶。以人之常情言之。幾之始動。或有未易以善惡名者。趙氏之意。或有此耶。然而此非通書本旨。但當於幾一字內。不留頃刻劈破善惡耳。收斂管攝云云生理周流知覺日開之說。似是自身経歴中出。甚善。但仁爲四德之長。豈必因此而名耶。 패덕(悖德) 《효경(孝經)》 성치장(聖治章)에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을 패덕이라 한다.[不愛其親而愛他人謂之悖德]" 하였으니, 덕의(德義)에 어그러진 것을 패덕이라 한다. 열다섯……둔 《논어》〈위정〉에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스스로 섰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라고 하였다. 재성(財成)과 보상(輔相) 가득 차서 넘치는 것을 억제하고 모자라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충한다는 것으로, 《주역》〈태괘 상(泰卦象)〉에 나오는 말이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