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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께 올림 上蘆沙先生 깊어 가는 겨울에 한가하고 편안히 쉬는 도체(道體)는 시절에 맞추어 만강(萬康)하신지요. 지난번 한사(漢師 서울)에서 강상(江上)에 도착하여 삼가 우리 선생님께서 음식을 드시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평소와 다름이 없는 것을 보고서 사사로운 정리에 기쁘고 다행스러웠습니다. 물러나 속으로 말하기를 "오늘 사문(師門)에 절하고 내일은 부모님을 뵐 텐데 부모님의 기후 또한 강녕하시다면 멀리 원유한 나머지에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행차가 광주(光州)에 도착하여 어버이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 무렵 집에 도착하니, 부친의 건강이 이미 회복되었습니다. 소자가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부모님과 선생님뿐인데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모두 이처럼 경사스럽고 다행스러운 것을 보니, 저 푸른 하늘에 백번 절하며 감사하고 송축하는 마음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두문불출한 채 스스로 책을 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근은 종종 외물에 얽매이는 근심이 있었기에 돌아보고 망연자실하였으니, 열흘이나 한 달의 공부로는 문제를 해결하고 병통을 다스려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급급하게 덕을 닦고 반성하여 이 평생의 대사를 혹 우리 선생님께서 건강하실 때 성취할 가망이 있게 한다면 선생님께서 교육한 의리와 소자가 가슴에 새기고 전수받은 은혜에 거의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평소의 일은 걸핏하면 이리저리 얽매여 학문에 힘쓰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철에 따라 부모님의 봉양을 위해 문득 돌아가야 하니, 어찌 여유롭게 탐구하며 교화에 젖어서 이 쌓인 기습(氣習)의 병통을 변화시키겠습니까. 아, 성인의 시대는 멀어지고 말씀은 사라져 세상의 조류와 함께 도도하게 흘러가 버리니, 온 천하에 우리 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더구나 세상의 추이는 단서가 많고 선비들의 의론은 여러 갈래여서 나누어진 가운데 또 나누어져 지금에 이르러 극도에 달했습니다. 그러니 그 형세상 어쩔 수 없이 심력을 크게 가지고 출입하여 바로잡은 연후에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자와 같은 후생이 누구를 따라서 취사할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아마도 끝내 그 책임을 사양하지 못하실 듯합니다. 다만 배움을 청하는 반열에 저를 일깨워 도와줄 사람이 없지만 미묘한 진리를 열어서 마음에 보존하여 서로 전수하는 규범으로 삼고자 하기에, 소자는 그 사이에서 감개함이 없을 수 없어서 부지런히 하여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몇 조목의 설은 별지에 적습니다."성인이 중ㆍ정ㆍ인ㆍ의로써 정하되 정을 주로 한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라는 대목에서 정(定)과 주(主) 두 자를 가지고 살펴보면 도리(道理)는 사람의 배정(排定)을 기다리는 뜻이 있는 듯합니다. 대저 인의(仁義)와 동정(動靜)은 실로 천연적인 것이라 절로 인력으로 범하지 못하는 도리가 있습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이것을 밝힐 따름이니 어찌 정하고 주로 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주자가 말하기를 "이 한 구절은 바로 성인이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修道之謂敎]'라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정(定)"과 "주(主)" 2자는 바로 수도(修道)를 이른 것입니까? 지난번 선생님과 강론하는 자리에서 소자가 '형이상하(形而上下)'의 '상하(上下)'를 가지고 전후(前後)의 뜻으로 간주하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도는 사람과 만물이 화생(化生)하기 전에 있고,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 이하 여러 성인은 모두 이 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니, 이는 이단의 사설(邪說)과 둔사(遁辭) 가운데 심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우리 선생님께서 세도(世道)를 위해 분명하게 밝히고 지극히 힘쓴 곳입니다. 소자가 받아 읽고서는 저도 모르게 송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매한 저의 소견으로는 끝내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대저 소자의 뜻은 형상(形上)과 형하(形下)를 분명하게 선후(先後)로 삼지 않는 것은 마치 오늘은 형이상자(形而上者)가 있는데 내일은 형이하자(形而下者)가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한 물건을 가지고 그 소종래(所從來)를 궁구하되, 모름지기 이 이치가 먼저 있었다고 말한다면 이 물건이 형상을 갖추기 전에 먼저 이 물건의 이치가 있는 것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소자가 형이상하(形而上下)의 글자를 전후로 간주한 까닭입니다. 만약 곧장 상하(上下)의 글자로 간주한다면 한 물건의 상하 사이에 이(理)와 기(氣)로 구분하는 것이니 너무 엉성한 듯합니다. 주자(朱子)가 "형이상하로 말하면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自形而上下言 豈無先後]"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의 '선후' 자가 어찌 소자가 말하는 '전후(前後)'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권상리(權上里)에게 답한 편지에 "이(理)는 기(氣)에 섞이지 않고, 이가 먼저이고 기가 뒤이다."라는 설을 누누이 권면하고 경계하셨는데 소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처럼 반대로 말씀하시니 무슨 뜻이 있는 것입니까.마음은 크고 넓게 가지려고 하면 해이해지기 쉽고, 엄숙하게 가지려고 하면 좁아지기가 쉽습니다. 대저 의도적으로 한다면 크고 넓은 것과 엄숙하게 가지는 양쪽의 뜻을 실로 둘 다 보존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기상(氣像)에서 체인(體認)하여 얻는 것이 어떻습니까?희로(喜怒) 등 칠정(七情)5)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정이 없습니다. 내가 남을 응대하는 일과 같은 것은 별도로 기뻐하고 노여워하며 슬퍼하고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니, 어떤 정에 속하는 것입니까? 비록 기뻐하고 노여워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고 그렇지 않은지의 분별이 있으니, 마땅히 이것으로써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것을 분별하여 보아야 합니까?삼가 살피건대, 「기선악도(幾善惡圖)」6)는 '성(誠)' 자 아래에 '기(幾)' 자가 있고, '기' 자 아래에 선기(善幾)와 악기(惡幾)의 권(圈)이 있습니다. 대저 발하자마자 곧 선과 악이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한 '기(幾)' 자를 특별히 세운 뒤에 선기와 악기의 권(圈)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기(幾)의 제1층은 선과 악이 없고, 제2층에 이르러 마침내 선악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혹 두 기(幾) 자는 다만 한 기의 뜻을 풀이한 것입니까? 모름지기 마음을 수렴하고 관섭(管攝)하여 한 몸의 생리를 두루 흘러 통하게 한다면 지각(知覺)도 날로 열리니, 이른바 체와 용을 모두 들되 인(仁)이 사덕(四德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으뜸이 된다는 것도 이 뜻입니까?답장을 덧붙임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편지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곳이 있으니, 말해 보겠네. 그대는 타고난 자품이 화락하고 식견이 뛰어나기에 내심 아끼는 것이 실로 적지 않았네. 하지만 언제나 내가 말을 하면 받아들이기만 하고 따지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이 점이 늘 의아하고 답답하였네. 내 말이 어떻게 매번 도리에 맞을 수가 있겠는가. 설령 도리에 맞을지라도 어떻게 매번 서로 부합하겠는가. 그 사이에 말하지 않고 숨긴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 편지를 보고 나서 지난날 의심이 활짝 안개가 걷힌 듯하였으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있을 때에는 모름지기 이 편지를 본보기로 삼아 조금이라도 온당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꺼리지 말고 끝까지 논박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구구한 나의 바람일세. 별지의 여러 조항은 자잘하게 대답할 만한 것이 없지 않지만 큰 기쁨이 여기에 있기에 다른 데에 미칠 겨를이 없네. 게다가 오전에 붕우에게 답서 한 통을 쓰느라 매우 어지러우니, 후일 인편을 기다려 주게나.【답목(答目)은 아래에 있다.】 冬令垂深。禾審燕印道體對時萬康。向自漢師到江上。伏見我先生飮饍酬應之節。不異平常。私心喜幸。退語于心曰。今日拜師門。明日拜親庭。而親而親庭氣候。亦且康適。則千里遠遊之餘。爲幸莫大矣。行到光州。聞有親癠之急。侵晨而發。比暮抵家。則親候己復常。小子依歸之地。惟親惟師。而親師之間。俱見慶幸如此。百拜彼蒼。感頌無任。返巢以後。杜門掃却。自爲看書之筞。然心地病根。種種有惹絆之患。回顧茫然。難以旬月工夫可能捄治而去之也。汲汲修省。使此平生大事。或有所成就之望於我先生康寧之日。則先生敎育之義。小子服受之恩。庶乎無憾矣。但平日事。動輒纒繞。不惟學問之不力。而隨序供候。旋卽告歸。其安能優遊薰蒸變此氣習之積病㢤。嗚乎聖遠言湮。同流滔滔。舉天之下知有吾道者。誰歟。況世趍多端。士論不一。分之又分。至於今日而極矣。則其勢。不得不有大心力人出而正之然後。可也。不然。小子後生。安知適從而取舍耶。恐先生終不得以辭其責也。但摳衣之列。無起予相長之人。而闡微發奧。以爲存心相傳之䂓。小子不能無慨然於其間而孜孜不能者也。數條說。錄在別紙。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静。以定主兩字觀之。道理似有俟人排定之意。夫仁義動靜。固天然。自有不犯人力底道理也。學問者。所以明此而已。何待於定之主之㢤。朱子曰此一節。是聖人修道之謂敎處。定主兩字。卽修道之謂歟。向於函筵。小子以形而上下之上下。看作前後之義。先生曰。然則道在人物化生之前。而羲農以下羣聖人。皆未與於斯道。此異端邪遁之尤者。此亦我先生。爲世道明辨極力處也。小子受讀。不覺悚然。然愚迷之見。終未回曉。大抵小子之意。不以形上形下爲判然先後。如今日有形而上者。明日有形而下者也。卽一物而究其所從來。須說先有此理。則此物成形之前。先有此物之理者。不其然乎。此小子所以形而上下字。作前後看矣。若直以上下字看之。則一物上下之間。分理分氣。似乎太闊矣。朱子曰。自形而上下言。豈無先後。此先後字。豈非小子所謂前後者歟。先生答權上里書。以理不雜氣。理先氣後之說。累累䂓戒。而於小子之問。如是反之。未知有何義也。心欲弘廣則易解㪚。欲莊矝則易挾隘。大抵着意爲之。則弘廣與莊矝兩段意。固難倂存。須於氣象上體認得之。何如。喜怒等七情外。更無他情。若吾之所以應於人者。別非可喜可怒可哀可懼之事。則當屬於何情耶。雖非可喜可怒。而猶有然不然之分。則當以此而分其喜怒看耶。?按幾善惡圖。誠字下有幾字。幾字下有善幾惡幾之圈。夫纔發便有善有惡。何必特立一幾字而后。又有善幾惡幾之圈耶。然則幾之第一層。無善無惡。而至於第二層。而乃有善惡耶。抑或二幾字。只是註解一幾之義者歟。須收斂管攝。使一身生理。周流通徹。則知覺亦日開。所謂體用兼舉。而仁爲四德之長者。亦此義歟。答附畧曰。書中有開眼處。請言之左右天姿樂易。見識超詣。心乎愛矣。實不淺尠。而每瞽說之下。見其領受。不見其詰難。此一節心常訝欝。吾之言安能每每當理。設或當理。安能每相符合。無乃其間有未發之隱情乎。見此書而後。宿昔所疑。霍然霧除。豈非䙡事。繼今而往復。須以此書爲法。少有未安。勿憚到底掊擊。是區區之望也。別紙諸條。非無可小小仰復者。所大喜在此。不暇他及。且午前。作答書一幅於朋友。眩甚容竢後便。【答目在下】 칠정(七情) 《예기》〈예운(禮運)〉에 "무엇을 인정이라 하는가? 희로애구애오욕이니, 7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이다.[何謂人情? 喜怒哀懼愛惡欲, 七者弗學而能.]"라고 하였다. 기선악도(幾善惡圖)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통서(統書)》에 나온다. 그 책에 "성무위(誠無爲) 기선악(幾善惡)"이라고 하였는데, 성(誠)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고 기(幾)는 선악(善惡)이 갈리는 분기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도식(圖式)이 《심경(心經)》 2권 2장에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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阻久悵切恪詢經夏侍候錦護萬旺溯仰區區之至査末依劣私幸私幸就令季別後懸念不能已已玆以六足起送卽爲命送勿孤此望企仰企仰餘不備狀禮癸未四月念四日 査末鄭泳燮 拜拜(皮封)外舅主前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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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禮千萬夢想外尊先大人喪事夫復何言伏惟此時仰尊體事萬支伏溯區區不任記下京鄕路左末由趨慰此果相孚之誼耶仰嘆仰嘆且身數不幸今月五日之內卽見兩慽豈有如許厄運如許貌樣耶只自無言多小事詳在於 允友書中耳心甚擾不能施長餘姑不備疏上己巳八月二十二日 記下 安榏 疏上(皮封)金碩士大孝哀前省禮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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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袂已久尤庸悵歎未審春雨新晴侍候連衛萬安仰慰溸區區無任之至査弟姑保私幸俯讀就者婚事禮幣不得已有之也故玆以仰煩依數來十七之下擲如何 貴堂侄亦爲偕送專恃耳餘萬從近奉對姑不宣丁卯二月十五日 査弟 朴萬彦 拜禮幣貳拾伍兩(皮封)謹拜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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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言久阻悵耿之際先施惠函慰荷萬千可知不遐之情也謹詢老炎尙劇仕體萬旺閤覃均謐仰溸且祝客年弄璋之慶仰賀仰賀罪弟頑命苟支而扶餘安候頻頻承珍新寓凡百萬不成樣可悶可悶第貴邊農形似未免歉而此近亦可謂大無到處皆然樣將奈何咄嘆之餘略此不備謝疏七月七日罪弟金敎彬謝疏再昨日過行先舍伯回甲茶禮悲感之懷益深如新已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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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성재88)를 세운 지 두 번째 주갑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시 병소서 ○병술년(1946) 聚星齋再度周甲紀念詩【幷小序○丙戌】 부안(扶安)의 석동산(席洞山)에 있는 우리 선조(先祖) 군사공(郡事公)89) 묘소 아래에 예전에는 덕성암(德星菴)이 있었다가 화재를 만나 소실되어 취성재(聚星齋)를 중건하였다. 전후로 지은 이름은 모두 석천(石川) 임 선생(林先生)90)의 '김씨 집안에 덕성이 모였네.[金門聚德星]'91)라는 시구(詩句)의 뜻을 취한 것이다. 취성재를 상량(上樑)한 때가 인릉(仁陵)92) 병술년(1826, 순조26) 2월에 있어 121년이 지났다. 지금 두 번째 주갑(周甲)을 맞이하여 비록 성대한 모임을 가져 잔치를 베풀지 못한다 해도 어찌 기념하고 싶은 감회야 없을 수 있겠는가. 이에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여러 종족(宗族)과 함께 시를 읊어 재실의 고사(故事)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유조엄무(柔兆閹茂)93) 중춘(仲春) 초하루에 군사공(郡事公)의 17세손 택술(澤述)은 삼가 쓴다.재실을 지은 해의 육갑이 거듭 돌아오니 六甲重周築室年덕성의 상서로운 빛이 갑절로 찬란하구나 德星瑞彩倍煌然시운이 중흥으로 돌아온 청구의 날이요 運回興復靑邱日절서가 온화함에 속하는 이월의 하늘일세 序屬溫和二月天진씨 정자94)만 어찌 꼭 예로부터 명성이 최고라 하리오 豈必甄亭名擅古위씨 모임95)만 굳이 전대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것 없다오 不須韋會美專前끝없는 서쪽 바다에 봉산96)이 우뚝 솟았으니 西溟無盡蓬山屹이 재실을 잘 보호하여 세상에 길이 전하리라 護得楣樑永世傳 扶安之席洞山我先祖郡事公墓下, 舊有德星菴, 而遭回祿, 重建聚星齋, 前後命名, 皆取林石川先生"金門聚德星"之詩義也.聚星抛樑之時, 在仁陵丙戌二月, 而爲百二十一年矣.今當再度周甲也, 雖不能盛會宴飮, 烏得無紀念之感哉? 玆庸構成一韻, 願與諸宗族聯賦, 以備齋中故事云爾.柔兆閹茂仲春初吉, 郡事公十七世孫澤述謹識.六甲重周築室年, 德星瑞彩倍煌然.運回興復靑邱日, 序屬溫和二月天.豈必甄亭名擅古, 不須韋會美專前.西溟無盡蓬山屹, 護得楣樑永世傳. 취성재(聚星齋)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남동쪽에 있는 부안 김씨(扶安金氏)인 군사공(君事公) 김광서(金光敍) 묘소의 재실(齋室)이다. 1819년(순조19)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1826년(순조2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군사공(郡事公) 후창의 17대조가 되는 김광서(金光敍)를 가리킨다. 그는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예로, 고려 말에 지고부군사공(知古阜郡事公)을 지냈다. 임 선생(林先生) 임억령(林億齡, 1496~1568)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수(大樹)호는 석천(石川)이다. 박상(朴祥)의 문인이다. 1545년(명종 즉위년) 금산 군수 때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소윤(小尹)인 동생 백령(百齡)이 대윤(大尹)의 선배들을 내몰자 자책을 느껴 벼슬을 사직하고 해남에 은거하였다. 문집에 《석천시집(石川詩集)》이 있다. 김씨……모였네 임억령이 일찍이 부안 김씨가 살고 있는 옹정리(瓮井里)를 찾아가 〈만가(挽歌)〉라는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 시에 "옹정 마을엔 군자가 많고, 김씨 집안엔 덕성이 모였네.[瓮井多君子, 金家聚德星.]"라는 시구에서 보인다. 다만 임억령의 문집에 실린 시에는 김문(金門)의 문(門)이 가(家)로 되어 있다. 《石川詩集 卷3 挽歌》 인릉(仁陵)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의 능호(陵號)이다. 유조엄무(柔兆閹茂) 병술년(1946)을 가리킨다. 유조는 고갑자(古甲子)로 천간(天干) 가운데 병(丙)에 해당하고, '엄무'는 고갑자로 지지(地支) 가운데 술(戌)에 해당한다. 진씨(甄氏) 정자(亭子) 송(宋)나라 때 서주(徐州) 사람인 진씨(甄氏)가 부모의 장례를 지낸 뒤 그 곁에 사정(思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돌아가신 부모를 사모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진사도(陳師道)의 〈사정기(思亭記)〉에 보인다. 여기서는 후창의 부안 김씨(扶安金氏) 집안에서 선조 김광서(金光敍)를 추모하고 제향하기 위해 지은 취성재에 비겨 말한 것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思亭記》 위씨(韋氏) 모임 당(唐)나라 때 명문가였던 위씨(韋氏)들이 종회법(宗會法)을 만들고 화수회(花樹會)를 결성하여 원근의 친족들이 자주 꽃나무 아래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친목을 다진 고사가 있다. 이로 인해 종친회를 화수회라고 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잠삼(岑參)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 시에 "그대의 집 형제들을 당할 수 없나니, 열경과 어사와 상서랑이 즐비하구나. 조회에서 돌아와 꽃나무 아래 늘 모이니, 옥 항아리에 꽃이 떨어져 봄 술이 향기롭네.[君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199 韋員外家花樹歌》 봉산(蓬山)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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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석이 김염재가 부쳐준 시를 보여주기에 차운하여 지어 주다 申元石示以金念齋所寄詩 次韻以贈 어린 나이에 물고기보다 학문을 더 좋아하니109) 童年嗜學甚於魚멀리서 쇠한 늙은이를 찾아와 고서를 읽는구나 遠訪衰翁讀古書아아 이내 몸은 너에게 모범되기 어려우니 嗟我難能模範汝단지 성현을 스승 삼아 편안히 거할지어다 直師賢聖作安居학량110)의 은혜로 궁한 물고기 신세111)를 구제해주니 學粮惠澤救窮魚김씨 집안의 높은 풍도는 특별히 기록할 만하네 金氏高風可特書세상에 이러한 훌륭한 일을 보기 드무니 罕見世間如許事독실하게 힘쓰고 편안히 지낼 겨를 없어야 하리 正宜慥慥不遑居풍협112) 잡고 생선 없다고 한탄하지 않나니 不將馮鋏嘆無魚본래부터 시렁 위에 천편의 책이 있다오 自有千篇架上書객을 대접할 때 좋아하는 바를 알아야 하니 待客要須知所好주인이 어찌 꼭 가난한 생활을 부끄러워하랴 主人何必愧貧居천리 밖 두류산에서 안어113)가 소식 전해오니 千里頭流來鴈魚바로 한 통의 진중한 염재의 편지일세 一封珍重念齋書어진 스승을 기대하니 어찌 저버릴 수 있으랴 賢師期待何能負훗날에 응당 오하에 사는 사람은 아니리라114) 他日應非吳下居홀연히 물고기가 변하여 용 되기115) 어렵나니 難得成龍忽變魚여유 있게 다섯 수레 책116)을 읽어야 한다오 優遊須讀五車書천추의 맹성117)께서 밝은 가르침을 남기셨으니 千秋孟聖留明訣조예가 깊으면 그 거처함을 편안히 할 수 있다고118) 深造可能安厥居 童年嗜學甚於魚, 遠訪衰翁讀古書.嗟我難能模範汝, 直師賢聖作安居.學粮惠澤救窮魚, 金氏高風可特書.罕見世間如許事, 正宜慥慥不遑居.不將馮鋏嘆無魚, 自有千篇架上書.待客要須知所好, 主人何必愧貧居?千里頭流來鴈魚, 一封珍重念齋書.賢師期待何能負? 他日應非吳下居.難得成龍忽變魚, 優遊須讀五車書.千秋孟聖留明訣, 深造可能安厥居. 물고기보다……좋아하니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리를 택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인데,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다. 학량(學粮) 학업을 하는 데 필요한 양식 또는 학사(學舍)의 운영 자금을 이른다. 궁한 물고기 신세 학철부어(涸轍鮒魚)의 고사에 나오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얕은 물속에서 말라 헐떡이는 붕어와 같은 신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곤경에 처해 다급한 사람을 비유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수레바퀴에 고인 물속에서 다 죽어 가는 물고기가 약간의 물만 주면 살겠다고 애원을 하면서, 만약 시기를 놓치면 건어물 가게에서나 자기를 찾게 될 것이라고 탄식했다는 고사가 있다. 풍협(馮鋏)……않나니 풍협(馮鋏)은 풍환(馮驩)의 칼이라는 뜻이다. 전국 시대에 풍환이 일찍이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의 문객(門客)이 되었는데, 맹상군이 후하게 대우하지 않고 좌우로부터 천시를 받자, 풍환이 불만을 품고 손으로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긴 칼아, 돌아가야겠다. 먹자 해도 생선이 없구나. 긴 칼아, 돌아가야겠다. 밖에 나가려도 수레가 없구나.[長鋏歸來乎! 食無魚; 長鋏歸來乎! 出無車.]"라고 하니, 맹상군이 좌우에게 명하여 풍환의 요구를 들어주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안어(鴈魚) 기러기와 물고기가 서신을 대신 전한다는 데서, 일반적으로 편지를 뜻한다. 물고기는, 《문선(文選)》의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먼 곳에서 손님이 와 두 마리 잉어를 주었는데, 아이를 시켜 요리했더니 배 속에서 비단 편지가 나왔네.[客從遠方来, 遺我䨇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고, 기러기는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에 흉노에 억류된 소무의 소식이 적힌 비단이 한 소제(昭帝)가 잡은 기러기발에 묶여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오하(吳下)에……아니리라 사람의 식견과 학문이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진보함을 비유한 말이다. 오(吳)나라 여몽(呂蒙)이 처음에 무식하였는데, 손권(孫權)이 그를 군정(軍政)에 참여시키면서 독서할 것을 권하자, 그 후로 여몽이 열심히 공부하여 학식이 높아졌다. 뒤에 노숙(魯肅)이 여몽과 담론하다가 학식이 몰라보게 진보한 것에 탄복하면서 "나는 그대가 무사(武事)만 아는 줄로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건대 학식이 깊고 넓으니 더 이상 오하(吳下)의 아몽(阿蒙)이 아니다.〔吾謂大弟但有武略耳 至于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라고 칭찬하니, 여몽이 "선비는 사흘만 헤어져 있어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법이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對〕"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54 吳書 呂蒙傳》 오하(吳下)는 소주(蘇州)를, 아몽(阿蒙)은 여몽을 가리킨 말이다. 물고기가……되기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의 폭포수는 세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강해(江海)의 큰 물고기 수천 마리가 그 밑에 모였다가 그 폭포를 뛰어오르는 놈은 변하여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이 고사는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다섯 수레 책 원문의 오거서(五車書)는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로 많은 서책이라는 말로 수많은 서책이나 박식함을 뜻하는데,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혜시의 학문은 다방면이어서 그 서책이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이다.[惠施多方, 其書五車.]"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맹성(孟聖)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조예가……있다고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씀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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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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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제천의 임간송134) 호철 을 방문하다 ○9수 公州濟川訪林澗松【浩喆○九首】 독락정135)에서 구산옹136)을 함께 모신 지가 獨樂亭中陪臼山어느덧 사십 칠년 세월이 흘렀구나 忽焉四十七年間어찌 생각했으랴 봄바람 속에 함께 앉았던 이들이 豈料同坐春風伴오늘 아침엔 둘 다 늙은 얼굴로 서로 마주할 줄을 相對今朝兩老顔용사의 액137)을 고하매 갑자기 태산이 무너지니138) 龍蛇告厄遽頹山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양쪽 다 비통하였네 私痛公悲徹兩間현재 무함하는 무리들이 어지러이 날뛰니 脚下紛紛誣衊輩훗날 저승에서 뵐 때 무슨 면목으로 대하리오 他年歸拜作何顔근심의 끝이 우뚝한 남산과 가지런할 뿐만 아니니139) 憂端不啻屹南山목숨 바쳐 스승께 보답함이 우리가 어찌 다르리오 致死報師吾豈間평생 밝게 분변하는 뜻이 한결같고 지성스러우니 斷斷生平明辨志위로 아래로 부끄러울 게 없어140) 당당히 고개 든다오 無慙俯仰正擡顔천리 흐르는 시냇물이 깊은 산중에서 나오고 澗流千里出深山축축 늘어진 소나무가 눈 속에 우뚝 서 있네 落落蒼松立雪間지조와 절개가 원래 저와 같이 드높으니 志節元來高似許마침내 부헌이라 쓴 재실 편액을 본다오 孚軒終見作齋顔구산옹이 부헌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141) 嘉錫孚軒自臼山초당의 현판 사이에서 광채가 나는구나 草堂生色揭楣間교화가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치는 날을 기다려야142) 待看化及豚魚日비로소 사문에 부응하여 공안143)을 기약할 수 있다오 始副師門期孔顔장대한 뜻이 처음엔 아홉 길 산144)을 기필했는데 壯志初期九仞山은근한 가르침을 또한 함장145) 사이에서 받았다오 叮嚀亦受丈函間지금 와서 결국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今來竟作如何狀후창이란 두 자가 너무도 낯부끄럽게 하는구나146) 二字後滄堪愧顔돌아가는 길에 아스라한 상당산147)을 바라보니 歸路迢迢上黨山석별의 정이 아득히 운수148) 사이로 들어가누나 別懷杳入樹雲間집이 멀어서 생각만 할 뿐이라고149) 하지 마소 莫言室遠相思地만년의 절조를 서로 닦아 다시 만나야 하니 晩節交修更接顔백발에 푸른 눈으로150) 서로 만난 옛 사림의 벗이니 白髮靑眸舊士林일찍이 근심이 많았건만 아직도 시름 속에 있구나 曾經憂慮尙欽欽백육 만나151) 도를 잃으니 자신을 해친 듯하였고 道喪百六如戕己삼천리 강토를 회복하니 마음이 다소 위로된다오 疆復三千稍慰心목석 사이에 은거하며 맑아지기를 기다릴 만하니 且可待淸居木石시속과 섞여 살며 금란의 교분152)을 말한 필요 없다오 未須混俗說蘭金서풍은 날마다 수시로 성대하게 불어오는데 西風日競無時定어찌하면 제민153)들이 바른 복식으로 돌아오려나 安得齊民返正襟사문에 아무아무 자들이 수풀처럼 많지만 斯文某某積如林사람에게 흠모의 정을 생기게 하기 어렵구나 難得令人起景欽책방과 같고 자잘한 말을 하면서도154) 부끄러움이 없었고 書肆說鈴曾沒恥높은 관 넓은 띠를 착용하면서155) 도리어 마음을 속이누나 峨冠博帶反欺心아우와 형이 어찌 차마 창칼을 수선하면서156) 弟兄何忍修戈戟의리와 이욕을 모두 잊은 채 쇠와 금을 분변하랴 義利都忘辨鐵金다만 자신이 외려 그 속에 있을까 염려스러우니 但恐自家還在裡은나라 거울157)을 가지고 내 옷깃을 여며야 하리라 可將殷鑑整吾襟 獨樂亭中陪臼山, 忽焉四十七年間.豈料同坐春風伴, 相對今朝兩老顔?龍蛇告厄遽頹山, 私痛公悲徹兩間.脚下紛紛誣衊輩, 他年歸拜作何顔?憂端不啻屹南山, 致死報師吾豈間?斷斷生平明辨志, 無慙俯仰正擡顔.澗流千里出深山, 落落蒼松立雪間.志節元來高似許, 孚軒終見作齋顔.嘉錫孚軒自臼山, 草堂生色揭楣間.待看化及豚魚日, 始副師門期孔顔.壯志初期九仞山, 叮嚀亦受丈函間.今來竟作如何狀, 二字後滄堪愧顔.歸路迢迢上黨山, 別懷杳入樹雲間.莫言室遠相思地, 晩節交修更接顔.白髮靑眸舊士林, 曾經憂慮尙欽欽.道喪百六如戕己, 疆復三千稍慰心.且可待淸居木石, 未須混俗說蘭金.西風日競無時定, 安得齊民返正襟?斯文某某積如林, 難得令人起景欽.書肆說鈴曾沒恥, 峨冠博帶反欺心.弟兄何忍修戈戟, 義利都忘辨鐵金?但恐自家還在裡, 可將殷鑑整吾襟. 임간송(林澗松) 임호철(林浩喆)로,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경선(敬善), 호는 간송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後滄集答 卷6 答林敬善》 독락정(獨樂亭) 공주(公州)의 동쪽 30리쯤 되는 삼기촌(三岐村)에 있는 정자이다. 임호철의 선조인 임목(林穆, 1371∼1448)이 정자를 건립하고, 송대(宋代)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원명(園名)인 독락(獨樂)을 본떠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금강팔경(錦江八景)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질 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7 忠淸道 公州牧》 구산옹(臼山翁) 간재(艮齋) 전우(田愚)로, 구산은 그의 호 가운데 하나이다. 용사(龍蛇)의 액(厄) 사람이 죽는 액운이 든 해를 말하는데, 흔히 현인의 죽음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병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서 지내는데, 하루는 꿈에 공자가 나타나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올해는 용의 해이고 내년은 뱀의 해이다.[起起, 今年歲在辰, 來年歲在巳.]"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 참술(讖術)로 맞추어 보고 자신의 목숨이 다할 줄 알았더니, 실제로 그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後漢書 卷65 鄭玄列傳》 태산(泰山)이 무너지니 공자(孔子)가 어느 날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대들보가 쓰러지겠구나. 철인이 시들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병이 나서 7일 만에 별세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태산이 무너졌다는 것은 선사(先師)의 죽음에 대한 비유로 쓴 말로,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전우(田愚)의 죽음을 가리킨다. 근심의……아니니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자경부봉선현영회(自京赴奉先縣詠懷)〉 시에 "근심의 끝이 종남산과 가지런하여, 끝없는 근심을 걷을 수가 없어라.〔憂端齊終南, 鴻洞不可掇.〕"라고 한 것을 원용한 표현이다. 《杜少陸詩集 卷4》 위로……없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 원문의 가석(嘉錫)은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뜻으로,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황고께서 나의 초년 시절을 관찰하여 헤아리사, 비로소 내게 아름다운 이름을 내리셨으니, 나의 이름을 정칙이라 하시고, 나의 자를 영균이라 하시었네.[皇覽揆余于初度兮, 肇錫余以嘉名. 名余曰正則兮, 字余曰靈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교화가……기다려야 원문의 화급돈어(化及豚魚)는 《주역》 〈중부괘(中孚卦)〉의 단사(彖辭)에 "돼지와 물고기가 길함은 미더움이 돼지와 물고기에 미친 것이다.[豚魚吉, 信及豚魚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말이다. 미더움이 돈어에 미친다는 것은, 성인(聖人)의 덕화가 매우 우둔하고 미천한 동물에까지 미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부헌(孚軒)'이란 명칭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공안(孔顔) 공자(孔子)와 안자(顔子)를 합칭한 말이다. 아홉 길 산 원문의 구인산(九仞山)은 《서경》 〈여오(旅獒)〉에 "작은 행실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큰 덕에 끝내 누를 끼칠 것이니, 이는 마치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데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여 그 공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야 공이 이루어진다는 경계이다. 함장(函丈) 스승의 자리 또는 강학(講學)하는 자리를 뜻한다. 본디 옛날에 스승의 자리와 제자의 자리에 1장(丈)의 사이를 둔 데서 나온 말로, 전하여 스승의 경칭(敬稱)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간재 전우를 가리킨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만일 음식 대접을 위한 객이 아니고 강문(講問)하러 온 객이거든 자리를 펼 때 자리와 자리의 사이를 한 길 정도가 되게 한다.[若非飮食之客, 則布席, 席間函丈.]"라고 하였다. 후창(後滄)이란……하는구나 김택술의 '후창'이란 호는 스승인 간재가 지어준 것이다. 일찍이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자신의 호를 '후율(後栗)'이라고 지었는데, 간재가 이 일을 본떠 남송(南宋)의 호가 창주(滄洲)인 주희(朱熹)를 계승하라는 의미로 '후창'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후창이 자신을 돌아보니 스승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後滄集 卷6 答洪韋軒》 상당산(上黨山)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있는 산 이름이다. 상당은 청주의 별칭이다. 운수(雲樹) 멀리 떨어진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춘일회이백(春日懷李白)〉에 "위수 북쪽에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에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언제나 한 동이 술을 마시며, 다시 함께 자세히 글을 논해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 집이……뿐이라고 일시(逸詩)에 "당체의 꽃이여, 바람에 펄럭이도다.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리오마는, 집이 멀어서이다.[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라고 하였는데, 孔子가 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지, 어찌 멀어서이겠는가.[未之思爾, 夫何遠之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푸른 눈으로 원문의 청모(靑眸)는 청안(靑眼)과 같은 말로, 반가워하는 눈길이라는 뜻이다. 진(晉)나라 때의 명사(名士)인 완적(阮籍)은 세속(世俗)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지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을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으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백육 만나(百六) 백육은 106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액운(厄運)을 말한다. 4500년이 1원(元)이고 1원 중에 5번의 양액(陽厄)과 4번의 음액(陰厄)이 있어 106년마다 액운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漢書 律歷志上》 금란(金蘭)의 교분 원문의 남금(蘭金)은 돈독한 우의(友誼)를 비유한 말로,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니 그 단단함이 쇠를 끊을 만하도다. 마음이 서로 같은 말은 그 향내가 난초와 같도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제민(齊民) 일반 백성을 뜻하는 말로, 서민(庶民), 평민(平民) 등과 같은 말이다. 책방과……하면서도 원문의 서사(書肆)는 책방의 뜻으로, 책의 요점은 파악하지 못한 채 많이 읽는 것만 욕심낸다면 그저 책을 많이 쌓아둔 책방에 불과하게 된다는 뜻이다. 설령(說鈴)은 긴요하지 않은 자질구레한 말을 이른다. 후한(後漢)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오자(吾子)〉에 "책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긴요하지 않는 것은 책방일 뿐이고, 말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보이지 않으면 자질구레한 말이다.〔好書而不要諸仲尼, 書肆也, 好說而不見諸仲尼, 說鈴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북송의 정이(程頤)가 일찍이 문인 윤돈(尹焞)에게 이르기를 "공이 학문하는 방도를 알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굳이 많이 볼 필요가 없고 요점을 알아야 하니, 많이 보기만 하고 요점을 알지 못한다면 책방일 뿐이다.[公要知爲學, 須是讀書. 書不必多看, 要知其約, 多看而不知其約, 書肆耳.]"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3》 높은……착용하면서도 원문의 아관박대(峨冠博帶)는 높은 관과 헐렁한 띠로, 사대부의 정장 혹은 조복(朝服)을 의미한다. 창칼을 수선하면서 원문의 수과극(修戈戟)은 《시경》 〈진풍(秦風) 무의(無衣)〉에 "어찌 옷이 없어서, 그대와 솜옷을 함께 입으리오. 왕명으로 군대를 일으키거든, 우리의 창칼을 수선하여, 그대와 한 짝이 되리라.[豈曰無衣, 與子同袍? 王于興師, 修我戈矛, 與子同仇.]"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돈독한 우의(友誼)가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은(殷)나라 거울 원문의 은감(殷鑑)은 《시경》 〈대아(大雅) 탕(蕩)〉에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아서, 하후의 세대에 있느니라.[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대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날의 경계로 삼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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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일158)의 별장에 이르다 到吳允一庄 한여름에 반천 리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가니 炎天來訪半千程그 누가 알리오 이 늙은이의 사랑하는 마음을 誰識老夫相愛情선조 묘비에 정성을 다하니 아름다운 행적 전하고 誠竭祖碑傳懿蹟시골 마을에 덕이 미더우니 어리석은 백성 교화하네 德孚鄕里化蚩氓책 속에 실로 몸 편케 하는 방법이 있거니와 書中儘有安身術세상에 어찌 실상에 부합하는 명성이 없으랴 世上那無副實名그대처럼 근본 서는 건 참으로 쉽지 않나니 本立如君諒匪易이로부터 대도가 자연히 생겨나리라159) 從玆大道自然生상당산성160) 서쪽의 작천 주변에 上黨城西鵲川邊풍광 좋은 골짝 한 구역이 있구나 一區洞壑好風煙기암의 수석은 이름난 승경을 전하고 機巖水石傳名勝목령의 산세는 온전한 기운을 보이네 木嶺岡巒見氣全인정 넘치는 마을엔 옛 풍속이 남아 있고 誼洽一村餘舊俗풍성하게 여문 오곡은 좋은 밭에 무성하여라 年登五穀有良田이곳에 다시 안풍자161)가 있어 斯間復得安豐子평생 주경야독하며 천명을 즐기누나 耕讀生平自樂天서원162)에 먼 길손이 창동에서 찾아온 건 西原遠客自滄東학풍이 좋은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오 爲有之君好學風시례는 용은 뒤에 여전히 남아 있고163) 詩禮猶餘龍隱後발자취는 목산에서 벗어나지 않았도다 鞋筇不出鶩山中마음은 섬돌 앞 잣나무와 같아 길이 푸름을 보고 心如砌柏長看翠몸은 정원 속 꽃과 짝하여 홀로 붉음을 보전하누나 身伴庭花獨保紅이별과 만남은 무상하니 어찌 말할 것이 있으랴 離合無常何足道일생토록 마음에 두는 바가 같아야 할 뿐이라네 一生須要所存同 炎天來訪半千程, 誰識老夫相愛情?誠竭祖碑傳懿蹟, 德孚鄕里化蚩氓.書中儘有安身術, 世上那無副實名?本立如君諒匪易, 從玆大道自然生.上黨城西鵲川邊, 一區洞壑好風煙.機巖水石傳名勝, 木嶺岡巒見氣全.誼洽一村餘舊俗, 年登五穀有良田.斯間復得安豐子, 耕讀生平自樂天.西原遠客自滄東, 爲有之君好學風.詩禮猶餘龍隱後, 鞋筇不出鶩山中.心如砌柏長看翠, 身伴庭花獨保紅.離合無常何足道? 一生須要所存同. 오윤일(吳允一) 오원홍(吳源弘)으로, 윤일은 그의 자이다. 그 밖의 사항은 미상이다. 《後滄集 卷4 答吳允一》 그대처럼……생겨나리라 《논어》 〈학이(學而)〉에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공경은 아마도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상당산성(上黨山城)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있는 산성 이름이다. 상당은 청주의 별칭이다. 안풍자(安豐子) 당(唐)나라 때 안풍(安豐)에 은거하였던 동소남(董邵南)을 이른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를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을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의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여기서는 오원홍을 안풍자에 비겨 말한 것이다. 《小學 善行》 서원(西原) 청주(淸州)의 별칭이다. 시례(詩禮)는……있고 오원홍이 이곳에 은거한 뒤에도 가학(家學)을 잘 계승하고 전수함을 말한다. 시례는 가정교육 또는 가학을 뜻한다. 공자(孔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듣고서 물러나와 시와 예를 배웠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論語 季氏》 용은(龍隱)은 지명 등의 고유명사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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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宋鎭澤…▣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定山直守護數十年矣去五月良中李泰▣(壽)▣偸葬于民之慈母山單白虎已掘處故緣由仰訴于前 城主則▣(題)音內農務方劇潦水又漲則雖是情勢旣迫訟理且直姑俟移秧更擧則斷當捉囚督掘向事行下故姑待移秧更欲擧狀之際右民泰壽自知其罪渠自來到於民之家以十月晦內掘去之意累累懇乞故不得已捧手標待限矣十月已過尙不掘去世豈有如許奸慝之民乎不勝憤寃前呈所誌〖志〗與手標帖連仰籲於 明政之下細細垂察上項李泰壽捉囚督掘以保遠居孤弱之民先壟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辛未十一月 日泰仁官[着押][題辭]彼隻率來對卞向事初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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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民之親山在於治下南村面盤龍村前麓而守護局內者數十年矣不意今者遽遭偸葬於內白虎至近之地而此是曾往偸塚已掘處也搜探葬者則淳昌居名不知尹哥漢民居在他邑道里稍遠凶彼尹漢瞰其山主之遠居孤弱肆然有此偸葬者也若此乃已則遠地有山者安得禁護乎又況此地則已往偸塚起訟掘去處也旣有決案之蹟則與他尋常處偸葬有異也玆以仰籲所謂尹漢發差捉致杖囚督掘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辛未十一月 日泰仁官[着押][題辭]今不督掘待明春更呈事十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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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憤迫情由段民之慈母墳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守護累十年矣中間有勢者蔑視民之孤弱敢爲偸葬於民之慈母山靑龍麓白虎麓者間或有之然而義理爭訟之下渠輩皆屈於法理已爲掘去者昭在於前 官時也不意去年夏良中該面下鍮村居李正壽爲名人乘夜偸葬於民之慈母山白虎麓逼近之地置標下朴平仲已掘處世豈有如許倚勢蔑法之氓乎民豈不欲趂時呈卞矣間以身病沈吟難抽今玆前呈文蹟帖連仰籲於 明政之下細細 垂察後上項李正壽發差捉致儼囚督掘以保遠居孤弱之民先壟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酉十月 日泰仁官[着押][題辭]査問次李正水捉來事▣▣告宋弼尙主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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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啓者先祖位土와林野을共同登記하난事로業經大宗會인바其時各門中에서負擔하신金額을互相觀望하고送交零星하와登記手續上에困難이多大하온中始祖太師公林野登記만爲先印刷謄本하야送付하오며各處登記난次第送達하게사오니以此 照亮하신후 貴門中負擔金을斯速辦送하시와以完竣事之地를千務萬望함再右登記난趂其時謄本付送이오나經濟困難은京鄕이大同이기于今遵循矣러니今則秋收가在邇하고經濟도回復됨으로如是仰通하온니 簽宗氏난尤加另念하시와無至再告케하심을切企이외다始祖降生一千三十二年壬申九月 日京城府長沙洞一一七ノ一番地坡平尹氏大宗約所[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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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月惠函迨切慰荷緣於忽擾尙稽修謝甚歎甚歎謹詢肇夏仕體萬旺閤覃均迪仰溸且祝弟日月流邁已經吉祀罔涯益復如新而大朞時惠送祭需良感良感第舍季自年前沒産於京生計沒策寄食數三學生崔玉煥君亦留在竟不淸帳食費而亦不告還去尙不上送事涉孟浪故玆仰煩須卽言及于崔君處使之卽爲付送如何舍季事勢若不困難則豈可論及食費等事於崔君家現今形便萬不成說思不獲已如是者也猶切愧歎愧歎貴邊農形果何如耶願聞耳餘姑不備謹.四月十八日弟金敎彬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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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到付▣(全)▣…▣▣▣(宋鎭澤)右謹言議▣…▣習▣…▣仁居李太漢之甚者乎生之慈母墳山▣…▣盤龍洞案山而守護數十▣…去己巳良中▣…▣爲名人忽有偸葬▣…▣母塚階下往卞于泰仁依 官題掘去矣▣▣夢外泰仁李太漢爲名人乘夜▣…掘處世皆如▣…▣無據則法無可施訟不可息不勝情惋往卞于泰仁 官圖尺明査之下同李太漢{犭+凶}猾難逃致之落科然▣…玆敢前後本狀與圖形題旨帖連仰籲細細洞察后 嚴明發官于泰仁刻期督掘之地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癸酉十月 日兼史[着押][題辭]旣爲落科指日督掘事十二日山在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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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벗들과 두승산423)에 오르다 同諸益上斗升山 산은 절로 푸른데 사람은 백발이 되어 山自蒼蒼人白頭납극424) 다섯 번 신으니 세월도 흘러갔네 五穿蠟屐歲華流중간에 오랜 세월 지나 뽕밭이 바다 되니 中經浩劫桑田海우선 맘껏 노닐고자 중들의 누각을 빌렸네 且借遨遊釋子樓옛날에 한 말 한 되의 술을 누가 마셨는가 昔日斗升誰酌酒삼신산이 지척이니 배를 번거롭게 찾지 않네 三神咫尺不煩舟하늘가에 저녁 구름이 다시 만나듯이 暮雲天際還相合만남과 이별 부질없이 근심할 것 없네 聚散無將作謾愁 山自蒼蒼人白頭, 五穿蠟屐歲華流.中經浩劫桑田海, 且借遨遊釋子樓.昔日斗升誰酌酒? 三神咫尺不煩舟.暮雲天際還相合, 聚散無將作謾愁. 두승산(斗升山) 전라도 고부군(古阜郡)에 있는 산이다. 납극(蠟屐) 밀랍을 발라서 반질반질하게 한 나막신을 이르는데, 남조 송(宋)나라 때 사령운(謝靈運)이 산에 오를 적에는 반드시 나막신을 신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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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에 가뭄을 걱정하며 暮春憫旱 농사를 점칠 땐 먼저 맥우425)를 보는데 歲事占看雨麥先어찌하여 봄철 내내 큰 가뭄이 드는가 如何亢旱一春全전답의 이앙 조금 늦어져 껍질 더디 터지고 田秧差晩遲開甲길가 풀도 자라기 어려워 절로 털방석 되네 路草難長自成氈구름 무지개 보며 비 내려주길 얼마나 생각했는데 幾望雲霓思惠霈또 들으니 책력에도 흉년에 속한다 하네 又聞星曆屬災年겸하여 약육강식이 만연한 이 시대에 兼玆弱肉强呑日백성들을 보니 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드네 同病蒼生亦可憐 歲事占看雨麥先, 如何亢旱一春全?田秧差晩遲開甲, 路草難長自成氈.幾望雲霓思惠霈, 又聞星曆屬災年.兼玆弱肉强呑日, 同病蒼生亦可憐. 맥우(麥雨) 보리가 익을 때 내리는 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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