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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헌 익유 과 이별함 別洪韋軒【翼裕】 옛 겸와노인 떠올리니 憶昔謙窩老늠름한 세한의 소나무 같아라 凜凜歲寒松천리 우뚝한 교남의 길에서 千里嶠南路외람되이 창동리를 찾아오셨네 枉過滄之東삼가 생각건대 우리 선친은 恭惟我先子강직한 고인의 풍모 있었다네 侃侃古人風한 번 만남에 지기를 허락하자 一見許知己마음과 취미는 또 어찌나 같은지 氣味一何同교유 뜻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고 珍重定交意천년 마칠 것을 함께 기약했지 共期千載終이러한 분과 그날 맺은 것을 斯翁當日契추억하니 한스러움 끝없어라 追念恨無窮화산의 흰 눈 속에서 華山白雪裏악수하며 그대 만났지 握手與君逢두 집안 모두 부모님 여의어서132) 兩家蓼莪通말할 때마다 가슴에 눈물 흘리네 言之淚沾胸오직 시와 예의 가르침 있어 惟有詩禮訓집 안에 가득하였네 洋溢家庭中돌아가 각자 힘을 써서 歸去各努力다만 그 덕이 숭상해지길 구하네 但求厥德崇부모의 신령은 어둡지 않을 것이니 親靈應不昧구천에선 그때마다 기쁜 모습 보이리라 九原動喜容아득히 먼 관서와 호서에서의 이별이여 落落關湖別한마디 말에 온갖 생각 들도다 一言意萬重 憶昔謙窩老,凜凜歲寒松.千里嶠南路,枉過滄之東.恭惟我先子,侃侃古人風.一見許知己,氣味一何同!珍重定交意,共期千載終.斯翁當日契,追念恨無窮.華山白雪裏,握手與君逢.兩家蓼莪通,言之淚沾胸.惟有詩禮訓,洋溢家庭中.歸去各努力,但求厥德崇.親靈應不昧,九原動喜容.落落關湖別,一言意萬重. 부모님 여의어서 원문 '육아(蓼莪)'는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인데, 이 시의 내용이, 효자가 자기 어버이를 끝내 잘 봉양하지 못한 것을 상심하여 부른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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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보에게 보냄 정축년(1925) 與文聖甫 丁丑 〈순전(舜典)〉에 사람의 범죄를 논함에 생재(眚灾)와 호종(怙終)의 구분이 있었습니다.123) 생재란 알지 못하고 과오로 범한 것이고, 호종(怙終)은 알고도 일부러 범한 것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재판관이 사람의 죄를 판단하여 내보내거나 집어넣을 때에 법에 근거하지 않고 죄를 판단하는 경우에도 생재와 호종을 구분의 있습니다. 유죄임을 알지 못하고 잘못 내보내거나 혹은 무죄임을 알지 못하고 잘못 집어넣는 것은 생재입니다. 반면에 유죄임을 알고서도 고의로 내보내거나 혹 무죄임을 알고서 고의로 집어넣는 것은 호종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간행을 인가한 뜻으로 선사를 무함하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깊어지고 있는데, 알지 못하고 잘못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좌하가 이미 선사는 분명히 인의(認意)가 없었다고 말했으니, 또한 그가 선사를 무함한 것을 깊이 죄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변론하여 성토하지 않고, 또한 극히 존중하였으니, 좌하는 알지 못하고 잘못 내보낸 것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아니면 알고서 고의로 내보낸 것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스스로 알고 있는 밝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舜典》論人之犯罪,有眚灾、怙終之分.眚灾者, 不知而誤犯; 怙終者,知之而故犯也.僕謂士師之出入人罪不以法而以至於罪者,亦有眚灾、怙終之分.不知其有罪而誤出,或不知其無罪而誤入者,眚灾也; 知其有罪而故出,或知其無罪而故入者,怙終也.今人之誣師以認意,愈往愈深,則非不知而誤犯者.座下旣謂先師分明無認意,則亦深罪其誣師矣.然而不辨討之,又極尊之,未知謂座下不知而誤出可乎? 知之而故犯可乎? 願聞自知之明鑑. 순전(舜典)에……있었습니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생재(과오와 불행으로 지은 죄)란 풀어 놓아주고, 호종(믿고 끝까지 재범하는 자)이란 죽이는 형벌을 하였다.[眚灾肆赦, 怙終賊刑]"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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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에게 드림 경진년(1940) 與崔汝重 庚辰 그대의 선조 만육(晩六)선생이 우산(牛山)을 팔았다는 설이 수백 년간 유전되면서 충절에 누가 됨이 많았습니다. 오직 그대가 처음으로 변명(辨明)한 의론을 발명하여 제종(諸宗)이 하나로 돌아가 각각 문자를 두게 되었고, 사우(士友)들에게 돌이켜 청하여 돕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후에 의혹이 제거되고 사라져서 마치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으니 비로소 선생의 대의가 드러났습니다. 그대는 진실로 훌륭한 후손이라 이를 만하니 선생의 신령께서 어찌 "나에게 후손이 있도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아! 간옹(艮翁)선사의 인의인교(認意認敎)에 대한 설은 후래에 누가 나라 안 사림(士林)들을 모아 한마디 말로 변명(辨明)하여 그대가 우산의 문건에 대한 것처럼 할 수 있을까요? 비록 그러하나 일이 기왕에 그런 사실이 없었으니 훗날 이치가 끝내 밝혀질 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나는 그대 선조의 우산에 대한 설이 깨끗하게 드러난 것으로, 우리 선사의 인의인교(認意認敎)에 대한 설도 훤하게 밝혀질 날이 있을 것임을 압니다. 다만 사람이 통하고 막힘을 만나는 것은, 산자나 죽은 자를 막론하고 각각 길고 짧은 시운이 있고, 하늘이 중론(衆論)을 결정하는 것은 고금을 살펴보건대 또한 빠르고 늦은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 선조의 높은 절개가 어찌 그리 오래도록 허물이 되다가 오늘날에야 비로소 밝게 드러났겠습니까? 아! 우리 선사의 일이 훤히 드러날 날이 조만간 가까이 있을 것인가? 먼 훗날에 있을 것인가? 허전한 마음에 한 숨 한번 짓습니다. 尊先祖晩六先生買牛山之說, 流傳數百年, 有累忠節者多矣.惟高明始發辨明之論, 諸宗歸一, 各置文字, 轉請士友而助之.今而後疑祛惑破, 若披雲覩靑, 先生之大義始著.若高明者眞可謂肖孫, 而先生之靈, 豈不曰余有後乎? 嗟呼! 我艮翁先生認意認敎之說, 後來何人能合國中士林, 而一辭辨之, 如高明之於牛山券也.雖然, 事旣無實於前, 則理終有明於後, 在所必然.吾以今尊先牛山說之破露, 亦知先師認敎說之掃淸有日也.但人之遭通塞, 無論存亡, 自有久近之運, 天之定衆論, 歷觀古今, 亦有早晩之時.不然以尊先先生高節, 何其久見累而今始白哉? 嗟呼! 我先師白脫之日, 在近而早耶, 久而晩耶, 爲之曠然一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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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사유지 첨회소에 보냄 與柳川祠遺址僉會所 가만히 생각할 때, 유천사(柳川祠)는 사현(四賢 ,네 분의 현자)을 타향(妥享)한 곳입니다. 사현을 타향한 것은 그들이 도로써 사람을 착하게 하여 공로가 후학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우(祠宇)는 통칭하면 또한 서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서원은 학자가 책을 읽는 곳입니다. 선현에게 도가 있으면 존중하고, 존중하면 제향을 하지만 서원은 오로지 타향을 위해 개설한 것은 아닙니다. 서원이 비록 조정의 명령으로 훼철되었다 하더라도 강학까지 금지하지는 않았으니, 어찌 제향을 폐지했다는 이유로 강학까지 폐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서원도 훼철을 면하지 못했으나, 사현의 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서원에 남은 재산도 역시 본래 적지 않습니다. 회비를 절약하여 몇 년 동안 경영한 뒤에 옛터에 강당을 건축하고 사현의 도를 암송하며 본받으면 그 존중함과 사모함이 또한 서원에서 제향 할 때와 같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겨를이 없어 하지 못했던 것은 이미 흠결이거니와 오늘날의 급선무는 아마도 그만두지 못할 것입니다. 잘 모르겠으나,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竊以柳川祠, 四賢妥享之所也.妥享四賢, 以其以道淑人, 功在後學也.夫祠宇, 通稱之則亦可謂書院.書院, 學者讀書之所, 而爲先賢之有道, 斯尊之; 斯尊之, 斯享之, 院非專爲妥享設也.院雖以朝令見撤, 非幷與講學而禁之, 則豈可以廢享而幷廢講學乎? 是院亦不免撤, 然四賢之道, 未墜於地, 院之遺財, 亦自不少.節縮會費, 幾年經紀, 築講堂於舊址, 誦法四賢之道, 則其爲尊慕也, 亦猶夫院享時矣.前所未遑, 已是欠事, 今日急務, 恐不可已, 未知僉意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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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 전장에게 답함 答鋉心田丈 戊寅 무인년(1938)저번 편지에서 변론한 것에 대해 혹 함재(涵齋)와 제가 비석에 관한 일을 금지하지 못하는 것은 시대의 추세를 따르는 논의에 통하지 못해서인가 의심하신 것은 맞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그래도 그 내용을 깊이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당초에 비석에 관한 설들이 분분했던 것은, 우리 종중이 크게 다툰 뒤에 비석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 당일에 함재 집안의 주장은 모금에 대한 여론을 수습하는 것이었는데 기필코 빗돌을 갈아 다듬고자 한 이후에 다툼이 그쳤습니다.【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청할 때 창암과 함재 두 어른이 스승이신 간옹 앞에서 정했습니다.】저는 함재 어른 집안과 절친했기 때문에 함께 미움을 받았습니다.【저는 비석을 세우고 비각을 세운 이후에 처음 보았습니다.】그렇지 않다면 어찌 비석을 세우고 20여 년이 지나 간옹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비로소 그 단초가 발생할 리가 있겠습니까? 내용이 이와 같으니, 함재와 제가 금지하는 것이 죽도록 투쟁하여 힘이 다한 이후에나 가능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운 나이에도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른의 말씀과 같으니, 어찌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마땅히 만나기도 하고 편지도 보내 이치를 근거하고 말을 바르게 하여 그저 선조를 폄하하고 스승을 존중한 비정한 사람이란 비난만 얻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또한 다시 어찌하겠습니까? 종중에 관한 내용은 바깥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드러내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런 곡절은 우리 동문으로 있는 사람이 끝내 몰라서는 안 되는 점이 있고 또 어른은 문정공의 외손이니, 다른 사람과 자별하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우러러 고합니다. 비밀리에 보고 묵묵히 이해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向書中所辨, 或疑涵齋與生, 不能禁止碑事, 以不通時色之論者, 得之矣.然猶未深悉其內容也.當初碑說紛紜, 因鄙宗中大競爭後, 以爲碑.是當日, 涵齋家所主, 收拾巴金餘論, 而期欲磨之而後已.【立碑請文時, 鬯涵兩丈定師艮翁前】 生則爲涵丈家所親切.故幷與惡之也.【生於立碑建閣後始見】 不然, 豈有立碑二十餘年, 艮翁下世之後, 始發其端之理乎? 內容如是, 涵齋與生禁止, 非所可說抵死爭闘, 力盡而後可矣.然垂死學者, 誠如尊喩者, 何能有爲? 只當以面以書, 據理正言, 至得貶祖尊師非情之斥, 而不悔焉而已, 亦復奈何? 宗中內容, 不欲向外人道.故尙不佈白.然念此曲折, 在吾同門, 終有不可不知者, 且丈是文貞公外孫, 則與他自別, 故敢此仰告, 秘覽默會, 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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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근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吳學根 ○乙亥 삼가 들으니 어른께서 편찬한 《호남지(湖南誌)》에 저의 이름이 〈학행편(學行篇)〉에 수록되어 이미 인쇄되었는데 당초에 최익구(崔益求) 어른이 단자를 갖추어 넣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저의 종족 연두(煉斗)가 어른으로부터 직접 듣고 전해준 것인데, 이 사람은 믿을만하고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응당 잘못 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학행〉이라는 제목이 얼마나 중대한데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그 사이에 끼어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최씨 어른의 뜻이 무슨 의도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처럼 형편없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감히 함부로 이 '학행'이라는 명칭에 이름을 넣어 저의 마음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이에 저의 아들을 특별히 보내어 사실대로 아뢰니 이전에 인쇄된 저의 이름이 실려 있는 조목을 즉시 도려내어 보냄으로써 저의 분수를 편안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맹자는 "자신의 악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14)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와 크게 관계되는 바입니다. 아울러 저의 심정을 살펴주시고 답장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窃聞丈所編《湖南誌》中, 生之姓名入於〈學行〉篇, 已經印出. 而當初崔丈益求氏具單請入云. 鄙宗煉斗親聞於丈而傳之者也, 此人信實, 應非誤傳. 大抵〈學行〉題目何等重大, 而生以何人厠入其間乎? 崔丈之意, 未知出於何意, 而以生無狀決不敢冒當此名, 欺吾靈臺而取人笑囮矣.茲以專遣家兒, 具實仰稟, 切乞前印生之姓名載錄條, 即爲割送, 俾安賤分. 孟子曰 : "無羞惡之心, 非人也." 此係生之羞惡有無之大關. 并望下諒, 更懇回示. 자신의……아니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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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첨좌에게 답함 答丁氏僉座 저는 매우 못났으니 언급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찌 여러분들께서 먼저 훌륭한 편지를 보내고 여러분들의 선조 유헌선생(丁熿)의 전집을 보내실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감격스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여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선생께서는 충성이 완벽하고 의리가 정밀했으니, 마땅히 하서 김선생(金麟厚)과 더불어 을사사화 때 절개를 온전히 한 사람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저의 평소 견해가 이와 같습니다. 맹자가 "그 시를 외고 그 책을 읽었는데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114)라고 했으니, 심지어 이미 그 사람을 아는데 그 시를 외고 그 책을 읽지 못한다면 더욱 마땅히 어떠하겠습니까? 이제 여러분들의 은혜로 인하여 이런 것을 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또 생각하건대, 선생이 선생이 된 이유는 《춘추》라는 위대한 경전을 따랐기 때문이니 전집 중에서 첫 번째 의리도 이것일 따름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춘추》의 의리는 말할 수 있는 곳이 없고 유학자라 이름 한 자들도 또한 대부분 모르니 진실로 개탄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이 책이 발간‧배포되어 사람들이 읽는 것을 보니 거듭 세교(世交)를 위해 다행입니다. 제가 비록 못났지만 감히 경건히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澤述無似爲甚, 靡所齒數.豈意僉座先施巍牘, 惠以尊先祖游軒先生全集? 感與悚幷, 罔知攸謝.竊念先生忠盡義精, 當與河西金先生, 同爲乙巳完節, 區區平日所見如此.孟子曰: "誦其詩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至於既知其人, 而不得誦其詩讀其書, 則尢當如何哉? 今因僉執事之惠, 得免於是者, 爲可幸也.又念先生之所以爲先生, 以用《春秋》大經》, 而全集中第一義蓋是已.見今之世,《春秋》之義, 無地可講, 而以儒爲名者, 亦多昧然, 誠用慨歎.乃於此時, 得見是書之刊布, 人得而讀之, 重爲世敎幸也.顧雖無似, 敢不虔圖? 期不負惠也. 그 시를……되겠는가 《맹자(孟子)》 〈만장(萬章)〉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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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 수성에게 답함 경오년(1930) 答金振玉 秀聲 庚午 대저 뜻이란 백행(百行)의 근원이요, 만선(萬善)의 기초입니다. 어찌 일찍이 근원 없이 흐름을 구하고, 기초 없이 집을 축조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천루한 내가 지난번 정성스럽게 알려준 것과 그대가 이번 편지에서 누누이 말한 것이 모두 이 때문입니다. 열명(說命 《서경》의 편명)에 이르길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오직 어렵다."라고 하였고, 주자서에서도 "만약 이같이 하는 것이 병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와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미 뜻이 정성스럽지 못함이 병통임을 알고서도 다시 옛 자취를 답습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면, 이는 나아갈 수 있는데도 스스로 선을 긋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나귀처럼 앞발자취만 즐겨 밟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앞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함께 원대한 경지에 나아가고자 하나 어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나와 그대가 깊이 반성해야 할 바입니다. 夫志者百行之源本, 萬善之基礎.曷嘗見無源而求流, 無基而築室者乎? 淺陋向告之懇懇, 高明今書之縷縷, 蓋以此也.〈說明〉曰非知之艱, 行之惟艱, 朱書曰若知如此是病, 不如此是藥.旣知志不誠之爲病, 而不免復蹈舊轍, 是能進而自畫, 甘作磨驢之踏, 舊跡也.雖欲偕進於遠大如前書之云, 豈可得乎? 此正吾與賢者之分外猛省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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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돗자리의 명 【임오년(1942, 대한민국24)】 細莞席銘 【壬午】 아, 이 자리 아버님이 짜셨지, 嗟玆席, 先人織;가늘어 곱고 배어 촘촘한 모습, 細而精, 緻而密;삼십 년 전의 일 마치 어제 같네. 歷三紀, 完如昨.아버님이 새기신 글자 차마 읽지 못하니, 父沒書, 不忍讀;어이하여 그러나, 손때 묻은 자국 때문이네. 胡爲然? 有手澤.이 물건 어찌 감히 곱게 아껴 是物乎, 豈不亦;마주 받드는 보옥처럼 간직하지 않으랴. 寶藏之, 愈拱璧.제사 때라야 꺼내 깔뿐 於祭也藉用,다른 일에는 감히 못 쓰리라. 或外不敢保.영력(永曆) 임오년 12월 15일, 아들 김택술 삼가 새김. 嗟! 玆席先人織細而精緻, 而密歷三紀, 完如昨父沒書不忍讀胡爲然有手澤是物乎? 豈不亦寶藏之愈拱璧於祭也? 藉用或外不敢保? 永曆壬午臘十五日, 敬爲銘, 子澤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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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밤에 간재 선생을 모시고 완남의 여관에 머물렀는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어 씀 除夕 陪艮齋先生 留完南旅舍 懷鄕有作 섣달그믐 밤 차가운 창가에 객의 마음 끝없으니 寒牕除夕客懷長여기부터 백 리 길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 생각 때문 百里迢迢隔故鄕선묘에서 차례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未參先廟點茶席고당에서 축수 잔을 올리지 못하네 不及高堂獻壽觴벗들 그리움에 꿈속에서나 만날까 노심초사하고 親朋有思應勞夢많은 제자 초대하여 얼마나 멀리 바라보았나 羣弟相招幾遠望다만 스승님 모시고 동문들과 가는 해 지키면서 秖賴陪師同守歲귀한 말씀 기쁘게 들었더니 시름 말끔히 사라지네 喜聽旨訣罷愁腸 寒牕除夕客懷長,百里迢迢隔故鄕.未參先廟點茶席,不及高堂獻壽觴.親朋有思應勞夢,羣弟相招幾遠望.秖賴陪師同守歲,喜聽旨訣罷愁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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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정45)을 찾아가 過皇華亭 황화정 밭두둑가에 석양이 질 때 皇華亭畔夕陽時행인의 옛시절 슬픈 마음 일어나는구나 惹出行人感舊悲만리 조선과 명나라의 예전 의로움이 萬里朝明前日義지금 한 이끼 낀 비석에서 확인할 수 있네 至今證看一苔碑 皇華亭畔夕陽時,惹出行人感舊悲.萬里朝明前日義,至今證看一苔碑. 황화정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던 정자이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 땅이 아니라 전라도 여산읍 소속이었다. 이곳에서 전라도 관찰사가 임무를 교대하던 곳으로 우암 송시열이 지은 〈황화정기(皇華亭記)〉 현판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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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과 태아의 시를 보고 차운하여 부치다 見汝重和泰兒韻 因次寄之 〈양춘곡〉516)에 굳이 〈파인곡〉517)으로 화답하랴 陽春何苦和巴吟주옥같은 편지 어지러운 눈이 들이치듯 날아왔네 瓊翰飛颺亂雪侵본래 고상한 기풍은 후진이 가상히 여겼고 自是高風嘉後進예로부터 좋은 일은 우리 사림에서 보았지 從來好事見吾林공교히 어긋나 기러기 발자국 남았다518) 한탄치 말게 巧違莫嘆鴻留爪중부는 응당 학이 그늘에 있는 것과 같으니519) 中孚應如鶴在陰돌봐준 정에 고마워하는 마음 끝내 변치 않으리니 總荷眷情終不替푸르고 푸른 맑은 땅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네 蒼蒼淨土古猶今 《陽春》何苦和《巴吟》, 瓊翰飛颺亂雪侵.自是高風嘉後進, 從來好事見吾林.巧違莫嘆鴻留瓜, 中孚應如鶴在陰.總荷眷情終不替, 蒼蒼淨土古猶今. 양춘곡(陽春曲)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가곡 이름으로, 곡조가 매우 고상하여 화답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는 데서, 전하여 뛰어난 시가에 비유된다. 파인곡(巴人曲) 하리파인곡(下里巴人曲)을 말한 것이다. 《문선(文選)》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에, "어떤 나그네가 영중(郢中)에서 노래하는데 처음에 하리파인곡을 부르니, 화답하는 자 수천 명에 달했다." 하였다. 여기는 자기의 글을 낮추어 말한 것이다. 기러기 발자국 남았다 일이 지난 뒤에 남은 흔적을 비유하는 말로, 덧없음을 뜻한다. 소식(蘇軾)의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에 "인생이 가는 곳마다 그 무엇과 같을꼬, 응당 눈 위에 발자국 남긴 기러기 같으리. 눈 녹은 물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겼지만,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다시 동서를 알리오.〔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3》 중부(中孚)는……같으니 《주역》 〈중부(中孚) 구이(九二)〉에 나오는 말이다. 중부는 《주역》의 괘명(卦名)으로, 손괘(巽卦)와 태괘(兌卦)가 합하여 가운데 두 효(爻)가 음효(陰爻)이므로 부신(孚信)의 상(象)이 있다고 한다. 이 효에 "우는 학이 음지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鳴鶴在陰, 其子和之.]"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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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족제 이의용(李宜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 二月 初八日 李宜容 李冕容 丙寅 二月 初八日 李宜容 李冕容 경기도 부천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2월 8일에 족제 이의용이 종답의 방축 비용 30원을 부쳐달라는 부탁을 하고자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6년 2월 8일에 족제 이의용이 종답의 방축 비용 30원을 부쳐달라는 부탁을 하고자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족제 자신은 옛날처럼 크게 놀랄 일 없이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물왕리의 제종도 평안한데 소재의 종답(宗畓)이 작년의 홍수로 무너진 곳이 적지 않다고 하면서 그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동안 수차에 걸쳐 방비했어도 아직 완전한 축대를 쌓지 못했다. 이곳의 종인들은 빈한하지 않은 듯하지만 방축에 드는 비용이 백척간두이니 이 형세를 어찌 할 수 없다. 이를 헤아려서 비용조로 30원을 송부해주면 경계와 두둑을 잘 쌓아서 완답(完畓)이 될 것이니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자는 부천군 소래면 무지동에 사는 이의용이며, 수신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면용이다. 피봉에는 편지를 전하기에 매우 급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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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 규영의 자사 【갑인년(1914)】 李禹錫【圭榮】字辭 【甲寅】 옛날의 사씨(姒氏) 성인 하우(夏禹)는 稽古娰聖,그 덕이 높고 컸으니 巍巍厥德,홍수를 다스린 후 洚水底平,검은 규홀 바치며 업적 아뢰었고, 玄圭吿績,그 공효 하민에 끼쳐 功施下民,만 대에 은택이 내렸네. 萬世蒙澤.이제 이규영(李圭榮)은 維李圭榮,우뚝한 관을 쓰니 旣弁而突,나는 선왕 하우를 들어 我稱先王,우석(禹錫)이라 자를 주네. 欽之禹錫.오늘날 하늘이 앙화를 내려 今天下禍,홍수가 이토록 혹심하니 洪流是酷,섬나라 짐승은 때리며 깨물고 島獸搏噬,요괴와 이류가 가득히 들끓는데 妖異充斥,쫓아내고 물리치는데 驅之闢之,어찌 방법이 없겠는가? 豈其無法.내 몸을 돌이켜 보아 盍反吾身,이 마음 쓰는 법을 다스릴지니 治厥心術,어떻게 하여 다스릴까 何以治之,역시 저 정일(精一)이네. 亦粤精一.기(氣)의 욕망 함부로 넘쳐나면 氣慾橫流,언덕 삼키는 홍수 막을 길 없으니 懷襄莫遏,오로지 반성하고 극복하여 惟省惟克,진학과 치지 두 바퀴 함께 이루소. 交致輪翼.《중용》을 선택하여 擇彼中庸,부디 그 가운데를 잡을지니, 我其允執,많은 공로와 큰 업적은 豊功偉業,모두 여기서 나온다네. 皆從此出.성인 도학의 미묘한 가르침 聖學妙諦,이것이 궁극의 지도리이니 是爲樞極,말하건대 그대 우석 曰汝禹錫,부디 더욱 힘쓰시라. 尙其加勖. 稽古娰聖, 巍巍厥德, 洚水底平, 玄圭吿績。 功施下民, 萬世蒙澤。 維李圭榮, 旣弁而突, 我稱先王, 欽之禹錫。 今天下禍, 洪流是酷。 島獸搏噬, 妖異充斥, 驅之闢之, 豈其無法。 盍反吾身, 治厥心術, 何以治之, 亦粤精一。 氣慾橫流, 懷襄莫遏, 惟省惟克, 交致輪翼。 擇彼中庸, 我其允執, 豊功偉業, 皆從此出。 聖學妙諦, 是爲樞極, 曰汝禹錫, 尙其加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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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무인년(1938) 與季弟汝安 戊寅 이렇게 단발(斷髮) 풍조가 한창 성행하여 필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구나. 몇 년 전부터 늘 산에 들어가 생을 마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지금은 비록 늦었지만 또한 실행할 수 있다.변산(邊山)은 후미진 곳인데다 또 화도(華島)가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거의 선사(先師)의 유풍을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면려하여 실추시키는 데 이르지 않을 게다. 다만 오히려 거리가 가까운 것이 꺼림칙한데 종족과 친구들이 끊임없이 묻고 듣는 것이 편치 않구나. 오직 첩첩 지리산이 가장 좋지만 또 너무 낯설구나. 두 산 중 어디가 좋을지 모르겠다. 만약 지리산이 괜찮으면 올 겨울에 우선 풍곡재(風谷齋)99)에서 머무르며 조짐을 살피려한다. 모름지기 세세히 상량해보고 그 방편을 헤아려 알려주어라. 단발 풍조는 이곳 군(郡)이 심하고, 이곳 면(面)은 더욱 심하단다. 형관(炯觀)이는 일을 마친 후 잠시 목동(木洞)과 내기(內基)100) 등지에 머물며 형세를 살피어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見此薙風方盛, 必不但已.前此幾年, 常欲入山終身而未果.今雖晩矣, 亦可行也.邊山旣是一隅, 且與華島相望.正宜想先師遺風而策勵身心, 庶不至頹墮.但尙嫌淺近, 而宗族知舊問聞不絶, 亦不穩便.惟萬疊智異之山最好, 而又太生疏.未知二山何者爲得.如以智異爲優, 則欲於今冬, 先住風谷齋以爲之兆耳.須細入思議, 量其方便而示之也.此風此郡爲甚, 此面又爲尤.觀兒令了役後, 姑留木洞內基等地, 觀勢歸家如何? 풍곡재(風谷齋) 풍곡재는 재간당(在澗堂) 김화(金澕)의 재실로 남원 운봉 근처에 위치한다. 김택술의 「두류산유록(頭流山遊錄)」에 따르면 김택술은 1934년 3월 19일~4월 7일에 지리산을 유람하였으며 3월 27일 풍곡재를 방문하였다. 목동(木洞)과 내기(內基) 지리산 아래 남원에서 운봉(雲峯) 넘어가는 고개 여원치(女院峙) 아래 있는 마을이다. 김택술의 「두류산유록(頭流山遊錄)」에 따르면, 김택술이 풍곡재를 방문하면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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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순 인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李敬循仁矩 ○丙寅 선사가 훈계하여 인가받는 것을 금한 것은 가장 중요한 의리이니, 문인이 선사의 훈계를 지키는 것은 또한 원고를 발간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과연 원고를 발간하는 것과 유훈을 지키는 것을 병행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는 방도를 얻었습니까? 아니면 형세에 구속되고 공을 이루고자 해서 훈계를 지키지 못할 바가 있습니까? 저는 단지 훈계를 지키다가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인데, 오히려 또한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도 혐의로 삼지 않으니 집사의 일을 알 수가 있었으며, 전에 '내가 차라리 알지 못할지언정 인가한 원고를 읽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으니 집사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감히 지나치게 염려하겠습니까?다만 호대(浩大)한 일은 진실로 은밀히 도모하기 어렵고, 끝나가는 일은 또한 갑자기 중지하기 어려우니, 끝내 선사를 훈계를 저버리는 것은 일의 기미와 정세로 볼 때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집사를 위하여 삼가 염려하고 감히 의론하는 말석에 참여하여 들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先師之垂訓禁認,義之最重者,門人之守師訓,又有重於刊稿者.未知果得刊稿守訓并行不悖之道乎? 抑勢之所拘,功之求成,訓有所不得守乎? 鄙但知守訓至死靡悔者,而猶且不嫌議及,則可以知執事之事矣; 前承"吾寧無識,不讀認稿"之語,則可以知執事之心矣.吾何敢過慮? 但浩大之事,誠難密圖,垂畢之役,又難遽輟,終不免犯訓,則事機情勢之未保必無者.此區區所以爲執事奉慮而不敢參聽於議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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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에게 드림 갑신년(1944) 與崔汝重 甲申 지난번 이별 후에 현금 20원을 태아(泰兒 후창의 아들)에게 두고 간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생일 이바지로 보태라' 한 뜻이라면 나는 세상 사람들의 그날 오락에 대해 심히 비웃을 뿐 아니라 미워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그대도 잘 알 것입니다. '궁한 살림에 반찬값이라도 보태라'라고 한 뜻이라면 거친 보리밥과 맑은 된장국이 나의 일상 분수이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물며 생일이 가까워오는데 반찬값을 주는 것은 이름만 다르지 실제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우리 벗은 재물을 통용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한 의리를 지녔으니 비록 이보다 더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찌 꼭 사양하겠습니까만 다만 이 선물에 대해서는 받고서 불안한 마음이 있어서 태아로 하여금 곧 돌려드리려 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주자(朱子)같은 대 현인께서도 생일날 아침에 진동보(陳同甫)가 보낸 좋은 과일과 옷감의 선물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후학인 내가 옛 현자인 주자에 대해서 다른 것은 하나도 미치지 못하면서 유독 이것만 지나치다면 왜곡된 정(情)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동보가 주자를 친애하는 것보다 더 깊지 않습니까? 이러한 점이 끝내 불공스럽게 물리치지 않은 까닭입니다. 우선 생일을 지나 이 돈을 써서 늙은이를 늙은이로 대우한 그대의 은혜를 잘 마치겠습니다. 向別後, 置二十圓金于泰兒而去何也? 謂資晬辰之供也, 則鄙於世人之此日娛樂, 不惟笑之甚而疾之, 賢所知也.謂助窮饌需也, 則麥飯之麤, 土醬之淡, 是其常分, 毋庸爲也.矧此近晬而助饌, 豈非名殊而實同乎? 噫! 吾友之賢, 義可以通財矣, 雖大於此者, 何必辭之, 但於此餽, 受之不安, 卽令泰兒還呈矣.旋復思之, 以朱子之大賢, 於其生朝, 猶不却陳同甫香果裘材之遺, 後學之於昔賢.他不一及而獨此過之, 似近矯情, 且况賢之愛我深於陳之親朱乎, 此所以不敢終爲不恭.且當過晬用之, 以卒老老之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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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 전장에게 보냄 與鍊心田丈 戊寅 무인년(1938)이전 편지에 대해 답장이 없는 것은, 혐의를 피하기 위해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는 없으실 듯합니다. 초삼일에 저의 종중 대회에서 제가 말하기를, "당초에 비석 앞면을 고쳐 새기는 것은 원래 망령된 잘못이다. 지금은 다만 옛 상태로 복원하는 한 가지 일만이 상책인데, 하물며 감히 기문까지 모두 갈아서 제거하고자 함에 있어서랴?" 하였습니다. 【여름에 종중에 보낸 편지의 내용 또한 이와 같습니다.】 상리에 사는 친구 경종(卿宗)이 이 말을 듣고 저에게 일러 말하기를, "후창이 결의에 참여하지 않고 그 일을 찬성하지 않은 것을 이제야 비로소 그런 줄을 분명하게 알아 의혹이 깨졌다." 했습니다. 경종의 말로 헤아려볼 때, 이 사람이 오래도록 부북(扶北)의 사우와 종족들에게 의심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호라, 평일의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여 이런 구설을 초래하였으니, 다른 사람의 불찰을 허물할 겨를이 없이 스스로 한스러워할 뿐입니다. 前書無答, 似避嫌而然, 恐不必爾也.初三日鄙宗中大會, 澤述言, "當初碑面改刻, 元是妄錯." 今只有復舊一事爲上策, 而况敢欲幷與磨去記文乎? 【夏間致宗中書意亦如此】 上里佑卿宗, 聞此言謂澤述曰: "後滄之不參決議不可其事, 今始明知其然而破惑矣.蓋度以佑言, 可知此漢久見疑於扶北士友宗族間也.鳴呼, 平日言行, 不足取信於人, 致此多口, 不暇尤人之不察, 而自恨也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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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田士狷 丙寅 갑자(甲子) 동짓달 20일에 존부장께서 옹정(甕井)15)에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무리 가운데서 말씀하여 이르기를, "홍희(洪憙)는 어디로부터 현동(玄洞)16)의 통문을 얻어 볼 수 있었습니까?"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씀하시기를, "삼가 통문을 공경히 읽어보았습니다" 라고 운운하시고, "김택술 군의 이름도 통문에 들어있었습니다"라고 하였으며, 아마도 여러 해 동안 많은 세월을 스승 간재를 따랐으니 반드시 터득한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옛 도리를 능히 지키지 못해 이 벗 김택술에게 부끄러움이 있다"라고 존부장은 말씀하셨습니다. 혹자가 말하기를, 제가 홍희를 만나기를 이 앞부터였더라면, 나는 이미 홍희에게 천대를 받으니 어찌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겸연쩍게 부끄러워한다는 말이 있겠으며, 이 뒤부터였더라면, 천하에 어찌 내 자신은 선사의 훈계를 지키고 선사를 무함(誣陷)했던 자를 토벌하며, 선사를 위하여 죽음을 허여한 주체가 되었다고 나라 사람들의 이목에 알려져 있는데, 도리어 저 관부의 사령인 오진영에게 구차히 아부하는 김택술이 될 수 있겠습니까? 甲子至月念, 聞尊府丈到甕井言於衆中曰.洪憙從何而得見玄洞通文.致書于余曰敬讀通文云云, 金澤述君名參通文, 想其積年從師, 必有所得.吾則不能守舊, 有愧此友云云.或說弟之見洪, 前乎此云耶, 則我己爲洪之所賤, 何以有此想慕歉愧語, 後乎此云耶.則天下安有身爲守訓討誣爲師許死之大骨子于國人耳目, 而反營營彼府使令之金澤述乎. 옹정(甕井) 남원군 기지면 옹정 지역으로 항아리처럼 생긴 우물이 있어 '독우물' 또는 '옹정'이라 하였다. 현동(玄洞) 전남 익산시 삼기면 기산면리로 현산(玄山)에는 간재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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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백 병일에게 드림 갑자년(1924) 與林敬伯 秉一 甲子 지난번 댁에 갔을 때 집안이 깨끗하고 책들이 가득 찬 가운데 옥 같은 사람이 고문(古文)을 낭송하는데 금석 악기 소리 같았습니다. '땅이 신령해야 인걸이 나온다.'라는 말이 진실로 마땅한 듯 했습니다. 어진 선조들이 계셔서 즐거움의 흥취를 깊이 알지 못했다면 어찌 규모와 배치가 그처럼 성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가정에 어진 부조(父祖)가 계시고 아름다운 산수를 차지하여 좋은 서적들을 다 읽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말하는 삼대 소원과 세간의 완전한 복을 그대는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그대 가문에서는 어진 자식을 얻었고 우리 당(黨)은 그대 같은 빼어난 선비가 있으니 그 복을 또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 이처럼 두텁고, 친척들이 나를 우러르며, 사람들의 나에 대한 믿음이 이같이 깊고 무거우니, 만일 인도(人道)를 다하고 천직(天職)에 힘써 달효(達孝)를 이루지 못한다면 내 복을 누리지 못한 것일 뿐 아니라 세도(世道)의 복마저 손상시키는 것이니 어찌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뜻이겠습니까? 원컨대 그대는 힘쓰십시오. 이 도가 상해서 혼란한 날을 맞아 훌륭한 재주와 뛰어난 기량을 가진 사람을 오랜 친분이 있는 자식에게서 보게 되니 기쁨을 이기지 못해 이처럼 속마음을 내어 보입니다. 부디 헤아려 정을 받아주기 바랍니다. 頃入仙室, 境落淸爽, 緗帙充棟, 中有玉人, 朗誦古文, 聲出金石.雖地靈人傑之相得, 固其宜也.非有賢父祖深知樂要之趣, 安得經營舖置之此盛哉? 家有賢父祖, 占得佳山水, 觀盡好書籍, 人所稱三大願者, 世間完福, 高明旣兼有之矣.在尊門而得高明之賢子, 在吾黨而有高明之秀士, 其福又何可量? 天之所付我者, 若是之厚, 親之望我, 人之恃我, 又此深重, 如不能盡人道致天職成達孝, 豈惟不享己福, 并與世道之福而損之, 豈上天畀付之意? 願高明勉之.當此道喪混亂之日, 見英材碩器於舊要之子, 喜不自勝, 敢此衷告.庶或見諒領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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