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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중64)【인진】에게 보냄 與朴學中【麟鎭】 이번 심부름꾼이 와서 형의 병환이 근래 현저하게 줄어든 효과가 있다고 들었으니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나이가 이미 한평생의 반을 넘겼으니 건강하고 평안하더라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또다시 이처럼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음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아우도 일전에 감기로 2, 3일간 괴로웠으며 남은 증상이 아직도 시원스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경립(景立)의 인후통(咽喉痛)은 잘못한 일 없이 생긴 병이니 장차 오래지 않아 평상을 회복할 것입니다. 옛날에 회재 선생(晦齋先生)65)이 이 병에 걸려서 소리를 내어 책을 읽지 못하고 단지 눈으로 읽고 사색하셨지만 끝내 대유(大儒)가 되었습니다. 경립만 이렇게 할 수 없다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모름지기 금기(禁忌)를 통렬하게 끊고 간간이 약이 되는 음식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묘방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송규(宋圭)는 집을 그리워하는 얼굴빛을 하지 않는 때가 없지만, 이것은 그 또래 아이들의 상정(常情)입니다. 대체로 이 아이는 자질은 매우 순수하지만 용맹스러운 기개가 부족합니다. 몸가짐을 삼가고 스스로 조심하는 선비가 되는 것은 염려가 없겠으나 큰일을 하는 자리에 나아가자면 각별히 진작(振作)하고 확충한 다음에야 도달할 수 있겠습니다. 끝내 스스로 힘쓰는 방도를 갖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此使之來。承聞兄愼節。比有顯減之效。爲慰爲慰。吾輩年紀。已過半生。雖康健無故。會合無幾。况疾病沈淹。又復如是乎。弟於日前。亦以感崇叫苦數三日。餘症尙不見快耳。景立喉痛。是無妄之疾。行當非久復常。昔晦齋先生有此病。不能出聲讀書。但看閱思索。而終成大儒。孰謂景立獨不能辨此乎。須痛絶禁忌。間以藥餌調和爲妙。宋圭每不無思家之色。此是兒曹常情。大抵此兒。姿質極其淳慈。而猛氣不足其爲謹勅之士。則無慮矣。而進就大有爲之地。別有振作開拓然後。可以到之。未知終當有以自勵耶。 박학중 학중(學中)은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의 자(字)이다. 박인진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호는 우인(愚忍), 즉이재(則以齋)이다. 회재 선생(晦齋先生)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을 말한다. 이언적의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우찬성 등을 지냈으며 옥산서원(玉山書院)에 모셔져 있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퇴계 이황에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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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중에게 보냄 與朴學仲 두 차례 나아가 안부를 살폈으나 짧은 사이에 물러나서 온밤을 병고에 시달리는 회포를 위로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인정과 도리에 매우 온당치 않았더라도 형편에 구애를 받으니 어찌하겠습니까? 매우 부끄럽고 서글펐습니다. 다만 노형(老兄)의 병화(病禍)를 보건대 짧은 시간에 생긴 극질(劇疾)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하루 아침저녁 사이로 성급하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우선 모름지기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운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다음에야 마음의 화(火)가 가라앉고 울적한 기분이 풀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병을 다스리는 첫 번째 약방(藥方)입니다. 지난번에 형의 뜻을 보았더니 온통 빨리 치료하려고만 하면서 감내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지니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인정으로 볼 때 참으로 응당 이와 같겠지만 상처가 크면 시일이 오래 걸립니다. 어찌 이렇게 위중한 병증(病症)을 만나서 아주 짧은 시간에 나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치는 없습니다. 설령 있더라도 근본 원인을 다스리지 못하면 도리어 나중에 치료하기 어려운 증상으로 바뀝니다. 남조(南朝) 범운(范雲)의 일66)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서둘러 급하게 치료하고자 한다면 무익할 뿐만 아니라 또 해가 됩니다. 또 슬하에서 병시중을 드는 사람이 그 뜻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바라건대 형께서는 생각을 편하게 갖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생사(生死)는 천옹(天翁)에게 맡기고 영췌(榮悴)는 조옹(造翁)에게 맡긴 채 이따금 입맛을 돋우는 초목(草木)의 반찬과 조제한 약물(藥物)로 기운을 보완하는 일을 빠트리지 마십시오. 며칠이나 몇 달을 기한으로 삼는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늘이 화락한 군자를 돕는 이치가 어긋나지 않으니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또 자제들의 정성과 효심으로 어찌 하늘이 감동하여 쇠약한 양기가 회복되는 날이 없겠습니까. 兩度進省。霎然告退。未得慰一夕病苦之懷。此於情理。雖極未穩。而其於勢有所拘何。深用歉悵第觀老兄病祟。非一時劇疾之比。恐難以一朝一夕。遽責其效。先須安定其心。平易其氣然後。心火得以降下。氣鬱得以舒散。此是治病第一藥也。向見兄意。切欲急速救治。而有不能堪耐鎭定之狀。此在人情。固應如此。然創巨則爲日久矣。豈有遭此重症而頃刻可愈者乎。此是所無之理。設或有之。根據未化。轉成他日難醫之症。獨不見南朝范雲之事。欲速副急。非徒無益。而又害之。且膝下侍病之人。何以當其意乎。願兄平心坦懷。付死生於天翁。委榮悴於造翁。時以草木之滋。刀圭之劑。珍補無闕。限以幾日幾月。可收其功也。况天佑愷悌。其理不忒。且諸郞誠孝。豈無感天回陽之日乎。 남조(南朝) 범운(范雲)의 일 옛날 남조(南朝)의 범운(范雲)이 진무제(陳武帝)의 속관(屬官)으로 있었는데 상한병에 걸려 왕이 주는 영예를 받지 못할까 염려하여 서문백(徐文伯)을 청하여 땀을 빨리 내줄 것을 간청하였다. 문백이 말하기를 "지금 당장 낫게 하기는 아주 쉽지만 다만 2년 후에 죽을 것이 염려스럽다."라고 하였다. 범운이 "아침에 좋은 말을 듣고 저녁에 죽어도 좋은데 어찌 2년 후의 일을 가지고 두려워하겠는가"고 말하자 문백은 곧 방을 덥힌 다음 복숭아잎을 펴고 범운을 그 위에 눕혔다. 얼마쯤 있다가 땀이 푹 난 다음 온분(溫粉)을 몸에 뿌려 주니 다음날 병이 나았다. 범운이 매우 기뻐하였다. 문백이 기뻐할 것이 아니라고 하더니 과연 2년 만에 범운이 죽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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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일【영만】에게 보냄 與趙和一【泳萬】 동문(同門)이 수십 년이 지난 뒤 흰머리의 늙은이가 되고서야 비로소 얼굴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일이 어긋나는 것이 온통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유람은 한 세상에서 덕이 융성한 분들과 동문의 옛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방장산(方丈山 지리산)의 명구 승지(名區勝地)에서 한가롭고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었으니, 오직 이 일만이 이른바 "동우(東隅)에 잃고 상유(桑楡)에 수습하는"68) 것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감격스럽고 위로가 됩니다. 가을 기운이 점점 스산해지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시는 안부는 더욱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아우는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도록 남은 피로가 사람을 괴롭히지만, 노쇠한 지경의 허약한 몸이니 당연한 형세일 따름입니다. 근래 영남의 상황은 어떠한지요? 외진 곳이라 들리는 소식이 없으니 늘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 일의 실마리를 찾자면 당장은 미리 헤아리지 못하지만, 동문 가운데 노성(老成)하고 기력(氣力)을 지녀 의지할 만하기로 노형(老兄)을 능가하는 이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모름지기 자세히 살피고 꼼꼼하게 따져서 일의 체모를 잃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총계 정사(叢桂精舍)의 속운(續韻)69)은 지난번 어지러운 여정(旅程) 중에 다급하게 엮은 것이라서 매우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윤색(潤色)을 했으나 역시 예전의 기량(伎倆)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적어 올리니 지난번 것을 대체해 주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同門數十年。至於老白首。而乃始面焉。人事差池。一至於是耶。然曩日之遊。俱得一世長德。同門舊要。從容敘暢於方丈名勝之區。所謂失之東隅。收之桑楡者。惟此一事可以當之。感感慰慰。未審秋氣漸肅。侍傍節宣。體事增重。遠溯不任。弟歸巢有日餘憊惱人。衰境孱質。勢固然耳。嶺中爻象。近來云何。僻居無聞。每切悶鬱。此事究緖。故未豫料而同門老成。有氣力可倚仗。無過於老兄。幸須詳審周察。無失事體。如何。叢桂精舍續韻。向於旅撓中。悤悤構作太不成語。今加潤色。亦不免前日伎倆。玆以書上用以替舊。如何。 동우(東隅)에……수습하는 후한(後漢) 때의 장수인 풍이(馮異)가 적미(赤眉)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가 처음 싸움에서 대패하고, 얼마 뒤에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적미의 군대를 격파하였는데, 황제가 친히 글을 내려 위로하기를 "처음에는 회계에서 깃을 접었으나 나중에는 민지에서 떨쳐 비상하니, '동우에 잃었다 상유에 수습하였다.'라고 할만하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黽池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榆】"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동우(東隅)'는 동쪽 모퉁이로 해가 뜨는 곳인데 젊은 시절을 가리키고, '상유(桑楡)'는 뽕나무와 느릅나무로 해가 지는 곳을 가리키며 만년을 비유한다. 《後漢書 卷47 馮異列傳》 총계 정사(叢桂精舍)의 속운(續韻) 《일신재집(日新齋集)》 권1에 실려 있는 〈제조우화일총계정사(題趙友和一叢桂精舍)〉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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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오72)【달삼】에게 보냄 與安行五【達三】 강가의 이별이 매우 총망(悤忙)하였고 천 리 멀리 산과 바다로 헤어진 것이 한자리에 모였던 친분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역시 마음과 뜻이 자연스럽게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다행스러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날 강가에서 길을 떠나고부터 궁벽한 바닷가에 눈바람이 몰아쳤는데 한 조각 조그만 배로 조천(朝天 제주시 조천리(朝天里))까지 무사히 당도하셨습니까? 소식이 아득하니 잠시도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는 곳이 서로 멀리 떨어져 학문과 덕행을 닦는 도리는 끊임없이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물러나 스스로 학문을 닦아 헛된 명성으로 결말이 나지 않는다면 의지하고 서로를 보면서 감동하는 것이 어찌 적다고 하겠습니까? 좌하(座下)께서는 남쪽 지역의 시골 모퉁이에서 몸을 일으켜 천 리 멀리 북쪽으로 유학을 오셨으니 뜻이 장대하다고 이를 만하고 성의가 독실하다고 이를 만합니다. 어찌 언언(言偃)73)과 진량(陳良)74)만 옛 시대에서 미명(美名)을 독차지하겠습니까. 바라건대 힘써 노력하여 우리 선생께서 권애(眷愛)하신 뜻에 부응하고 이 영주(瀛州 제주도)의 시골 모퉁이가 문교(文敎)에 밝고 도리에 앞장서는 고을로 이름을 드날리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이우(李友) 경운(慶雲)은 비록 평소 교분은 없지만 우러러 흠앙한 지 오래입니다. 그와 더불어 책상을 나란히 하고 마주 앉아 토론한다면 날로 서로에게 좋은 점을 본받는 유익함이 있을 것입니다. 영윤(令允)은 자질이 매우 아름다우니 세속인들이 자제를 가르치는 방도로 가르치지 마시고 한결같이 《소학(小學)》의 예에 따라 날로 북돋아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江上一別。非不悤劇。而山海千里。使不失一席雅分者。亦聲氣自然之應也。何幸如之。自江上那日啓程。而風雪窮海。一片孤帆。好抵朝天耶。信息杳然。是庸耿耿。吾儕所居落落。其於切磋之道。縱未源源。惟當退而自修。不爲虛聲所歸。則其所以依藉觀感。豈淺淺哉。惟座下崛起南隅。千里北學。其志可謂壯。而其誠可謂篤矣。言偃陳良。豈專美於古也。願克加勉旃。以副我先生眷愛之意。而使此瀛州一隅。擅爲文明倡道之鄕。如何。李友慶雲。雖無雅分。傾仰則久矣。與之連丌對討。日有相觀之益耶。令允才質甚佳勿以世俗所以敎其子弟者。敎之。而一依小學例。日加栽培。如何。 안행오(安行五) 행오는 안달삼(安達三, 1837~1886)의 자이다. 안달삼의 호는 소백(小柏)이며 제주도 조천(朝天) 출신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다. 언언(言偃) 공문십철(孔門十哲) 가운데 정사에 능했던 제자이다. 자(字)는 자유(子游)이고 오(吳)나라 사람이다. 노(魯)나라 무성(武城)의 원으로 있으면서, 담대멸명(澹臺滅明)이 어진 사람임을 알고 등용하였다. 진량(陳良) 전국 시대 비속(鄙俗)한 남초(南楚) 지역 사람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진량은 초(楚)나라 사람인데 주공(周公)과 공자의 도를 사모하여 북쪽으로 가서 중국에서 공부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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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회재에게 답함 기사년(1929) 答朴晦哉 己巳 기망(旣望 16일 날)에 호남을 행차했을 때의 편지는 진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으니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척연한 감동이 있게 하였습니다. 만일 진실로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이 극진할 때가 곧 실학(實學)이 됩니다. 그러니 하필 독서한 연후에 학문이 된다고 구구하게 춘하(春夏) 완급(緩急)의 사이를 따지겠습니까? 또 진실로 독서를 근심한다면 비록 9개월 동안 근심하고 하루를 독서하더라도 곧 패연(沛然)히 뚫릴 것입니다. 그대는 "최간이(崔簡易)가54) 7년 동안 독서를 하지 못해 늘 걱정하다가 흉중에 근심덩어리 하나가 맺혔는데, 후에 책을 읽어서 그 응어리가 풀어지는 날에 문장을 성취했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이를 두고 담론하는 자들은 "독서가 여전히 이르고 근심이 크지 못했다면 천하의 문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나 또한 생각하기를 "엄벙덤벙 날만 허비한다는 그대의 근심이 진실로 참된 것이라면 하추(夏秋)를 기다려 독서하더라도 여전히 빠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털끝만치라도 참된 것이 아니라면 그대 편지에 가득 찬 구구한 말들이 한바탕 말만 희롱하고 겉치레만 꾸며서, 자신을 속이고 남을 기만하는 것으로 귀결될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근심할만한 것이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豈望湖行時書, 認出心眞, 眞令人戚然有動.苟能眞有是心, 卽此心到時, 便爲實學.何必讀書然後爲學而區區計較春夏緩急之間哉? 且眞以讀書爲憂, 雖使九月憂之, 一日讀之, 便可沛然.豈不聞崔簡易? 七年不讀書, 常以不讀書爲憂, 胸中結成憂塊一顆, 後到讀書解塊之日而成文章乎.談者猶以爲讀書尙早, 塊之未大, 不能成天下文章.由此言之, 吾亦謂高明因循費日之憂.苟眞也, 待夏秋而讀, 猶爲太早, 如有一毫未眞, 吾恐滿幅縷縷.逃歸一場弄話飾幅自欺欺人之科矣, 此眞可憂者也, 如何如何? 최간이(崔簡易) 최립(崔岦, 1539~1612)으로 간이는 호이다. 율곡의 문인으로 시(詩)와 문(文)에 모두 조예가 깊어 명나라 문인들의 칭찬을 받았다. 차천로(車天輅)의 시(詩), 한호(韓濩)의 글씨와 최립(崔笠)의 문(文)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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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을유년(1945) 與季弟汝安 乙酉 춘우(春雨) 김장(金丈)의 향사(鄕祠)는 왜변(倭變) 때 절의를 세운 현인을 위해 왜구가 물러간 뒤에 세웠으니 대저 누가 "불가하다."고 하겠느냐! 얼핏 듣건대, 너는 "내가 요청에 응하여 간 것을 일찍이 계양(繼陽)101)에 불참한 뜻과 어긋난다."고 하였다니 이는 잘못 생각한 것이다. 무릇 중(中)은 일정한 체(體)가 없고 때에 따라 있는 것이다.102) 저쪽은 나라가 없을 때이니 요행히 그 금법도 없다는 혐의가 있고, 이쪽은 나라가 이미 광복된 때이니 예전 금법의 유무를 추론할 필요가 없다. 비록 그렇지만 계화(繼華)103)에 불참한 것은 어찌 다만 때로써 그만두었겠는가. 그 스승을 모함하는 무리와 함께 일하는 것은 전혀 안 될 일이기에 발을 들여놓기가 더욱 어려웠다. 이는 너 또한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냐. 春雨金丈鄕祠, 爲立節倭變之賢, 設於倭讎退逐之後, 夫誰曰"不可."? 似聞汝以余應請而往, 爲戾曾不參繼陽之義, 其未之思也.夫中無定體, 隨時而在.彼則在無國之時, 而有幸其無禁之嫌, 此則在邦國旣復之時, 而舊禁有無, 不必追論也.雖然, 繼華之不參, 豈但以時已哉? 其與陷師者輩同事, 爲不可之大者, 而尤難涉跡.此非汝亦所已知者耶? 계양(繼陽)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계화도(繼華島)에 들어가서 후학을 양성한 강당 이름이다. 여기서 계양은 간재의 향사를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무릇……것이다 《중용장구》 제2장의 시중(時中)에 대한 주희(朱熹)의 해설에 나오는 말이다. 계화(繼華) 간재가 계화도에 들어가서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여기서 계화는 간재의 향사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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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김명중 건식에게 드림 을축년(1925) 與族弟明仲 建植 乙丑 금일의 화(禍)로써 풀릴 수 없는 지경에 걸린 자들이 우리 김씨 중에 많습니다. 듣자하니 음성의 적들이 가장 원수로 삼는 사람이 옹김(甕金), 창김(滄金), 석김(石金)55)이라고 들었는데 마땅히 그러할 것입니다. 대개 오진영을 성토하는 일을 선창해 일으킨 자가 우리 김씨이고, 성토하는 붓을 잡은 이가 우리 김씨이며, 성토하는 글을 인포(印布)한 자도 우리 김씨입니다. 종국에 음성 무리들의 세 가지 패악한 문장을 반박해 깨뜨린 것도 우리 김씨입니다. 그러니 저들의 원독(怨毒)에 쌓인 배가 어찌 잠시라도 우리를 잊겠습니까? 또 선사께서 20년간 뜻과 절개를 지키고 만세토록 영면하신 곳도 바로 우리 김씨의 고장입니다. 호남의 큰 집안 중 선사의 문인이 많은 것이 또한 우리 김씨만한 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림을 연합하고 정론을 주장하여 저들의 간사한 모의와 패악한 행동을 타파할 이도 우리 김씨입니다. 그러니 우리 김씨를 탄압할 때에 저들은 방자하여 거리낄 행동이 없게 될 것입니다. 도적이 주인을 미워하는 것은 자고로 그러한 것이니, 나를 원수 잡듯이 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마음에 즐겨하는 것이 참으로 그럴만합니다. 일문(一門)에 화가 모인 것이 심히 헤아릴 수 없지만 다만 의로움의 여부만 보고 화(禍)의 다소는 묻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만약 사문을 없애려 한다면 그만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우리 김씨 중 많은 사람들이 만난 처지가 천추에 반드시 공정한 의론이 있을 것이니 다시 무엇을 한스러워하겠습니까? 今日之禍, 罹於不可解者多吾金人.聞陰最所讐者, 甕金滄金石金, 宜乎其然也.蓋討震之役, 倡起者吾金也, 秉筆者吾金也, 印布者吾金也, 終而駁破陰黨三悖文者, 亦吾金也.彼其怨毒之腹, 豈肯須臾忘哉? 且先師卄載獻靖, 萬世考終, 乃吾金之鄕也.在湖南巨室, 先師門人之多, 又莫如吾金.則足以聯合士林, 主張正論, 打破彼之奸謀悖擧者, 吾金也.壓得吾金, 則可以恣行無憚也.盜憎主人, 自古而然, 執我仇仇, 抵死甘心者, 亶其然乎.一門萃禍, 雖甚罔測, 然但觀義之當否, 不問禍之多少.天苟喪斯文則已, 否者, 吾金多人之所遭, 千秋必有公議矣, 復何恨乎? 옹김(甕金), 창김(滄金), 석김(石金) 옹정, 창동, 석동의 김씨로 추측하나 확인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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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질영노 형린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族姪靈魯 炯麟 乙丑 돌의 정세(精細)한 것은 수영(琇瑩)이59) 되고, 거친 것은 성과 담장을 쌓는 곳으로 귀결됩니다. 곤룡포와 면류관의 화사함은 그 비단의 정세(精細)한 것이요, 갈락(褐絡)의 추함은 곧 포(布)의 거친 것입니다. 사물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가히 사람이 되어 정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용모를 움직임에 정세하지 않으면 포악하고 태만한 기운을 멀리할 수 없고, 독서가 정세하지 않으면 어떤 일의 목적이나 의도의 귀결점을 알 수 없습니다. 궁리(窮理)가 정세하지 않으면 최고 경지의 도착점을 볼 수 없고, 마음을 다스림에 정세하지 않으면 은미한 사특함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매사에 정세하지 않으면 때에 맞는 도(道)를 얻을 수 없습니다. 무릇 대소(大小), 표리(表裏), 원근(遠近), 시종(始終)이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마땅히 정세해야지 거칠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이와 같습니다. 아! 돌과 포백은 완성된 자질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오직 사람만이 거친 것을 정미하게 변화시킬 수 있고, 성긴 것을 섬세하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오직 힘을 쓰는 것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石之精細者爲琇瑩, 而麤疎者, 歸城垣之築.袞冕之華, 其帛之精細, 而褐絡之惡, 乃布之麤踈者也.物猶然也, 可以人而不精細乎? 動容而不精細, 無以遼暴慢之氣, 讀書而不精細, 無以識旨趣之歸.窮理而不精細, 無以見極致之到, 治心而不精細, 無以去纖隱之慝.處事而不精細, 無以得時中之道.凡小大表裡遠近始終, 罔不皆然.人之宜精不可麤也, 有如是矣.噫! 石與布帛, 見成之質, 不可得而燮也, 唯人則可以燮麤爲精.燮踈爲細, 只在用力之如何爾, 豈非幸哉? 수영(琇瑩) 아름다운 돌이다.《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문채 나는 군자여! 귀막이가 수영이며, 피변에 꿰맨 것이 별과 같도다.〔有匪君子 充耳琇瑩 會弁如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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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거 연풍에게 답함 무진년(1928) 答張文居 然豊 戊辰 침심(沈深)하고 진밀(縝密)한 것은 곧 학자의 아름다운 자질이지만, 광대(廣大)하고 고명(高明)한 것은 곧 군자의 아량입니다.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로 공부하는데 있어서 급한 일이요. 우유자적(優游自適)60)은 실로 도를 얻는 진전(眞詮 참된 도리)입니다. 또 밤낮으로 우근척려(憂勤惕慮)61) 하는 것은 자신을 닦는 정법(定法)이며,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할까"62)하는 것 또한 사물에 대응하는 중요한 도입니다. 그러니 학문을 진전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것이 오로지 많이 읽고 고심하며 탐색하는데 달려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모름지기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은 원래 고요함을 익혀 마음을 밝히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몸과 행동을 삼가는 소성(小成)에 안주할 것을 말하지 말고, 모름지기 높은 견해와 고원한 식견에 귀결되는 요체를 알아야 합니다. 沈深縝密, 雖學者之美質, 廣大高明, 乃君子之雅量.如恐不及, 固下功之急務, 優遊自適, 實得道之眞詮.日夕憂勤惕慮, 是謂修己之定法.天下何思何慮, 亦爲應物之要道.勿謂進學益智專繫劇讀窮索.須知澄淸本源, 元在習靜明心.勿謂安小成於飾身謹行, 須知要其歸於高見遠識. 우유자적(優游自適) 편안하고 한가롭게 마음대로 즐김. 우근척려(憂勤惕慮) 근심하고 부지런하며 두려워하고 염려함. 천하에……염려할까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하만사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랴. 천하만사는 귀결은 같은데 길이 다를 뿐이다.[天下何思何慮? 天下同歸而殊塗.]"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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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복에게 보냄 기묘년(1939) 寄炯復 己卯 듣건대, 네가 근래 모모 유림의 연원도(淵源圖) 작업에 참여하였다던데 사실이냐? 역사를 기록하는 어려움은 옛날부터 그러하였다. 그 밝은 안목을 구비하기가 어렵기도하고 또 믿을 만한 자취를 고찰하기가 어렵다. 이에 허실(虛實)을 변별하지 못함에 이르기 쉬워 끝내 성취한 바가 세교(世敎)에 공로가 없고 그저 신령과 사람에게 죄를 얻게 된다. 이는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도 말하자면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지금 세상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가짐이 어디에 있겠느냐. 애초 그 허와 실을 묻지 않고 그 공과 죄를 어떻게 논하겠느냐. 네가 비록 지식이 없다 해도 마땅히 혹 이 정도는 알 것인데 어찌하여 발을 싸매고132) 달려가서 남의 불미스런 일을 돕는 것이냐. 당장 그만 두어라. 聞汝近參某某儒林淵源圖之役, 果然否? 作史之難, 從古而然.以其旣難具得明眼, 又難考得信蹟.易致虛實莫辨, 究竟所就, 無爲功於世敎, 而徒得罪於神人也.此以持公心做事業者, 言之猶然, 而況今世之爲此等事者, 其設心何在? 初不問其虛實, 又何論其功罪? 汝雖無識, 宜或知此, 胡爲乎裹足奔走, 助成人不美事乎? 千萬已之. 발을 싸매고 '발을 싸맨다[裹足]'라는 것은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생기거나 군살이 박혔을 때에 옷을 찢어 발을 감싸고 달려간다는 뜻이다. 《회남자》에 "옛날에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묵자가 듣고서 딱하게 여겨 노나라에서 달려갔다. 열흘 밤낮을 달려 발이 누에고치처럼 부르텄는데도 쉬지 않고, 옷을 찢어 발을 싸매고 달려갔다. 영에 이르러 초나라 왕에게 유세하였다.[昔者楚欲攻宋, 墨子聞而悼之, 自魯趨而十日十夜, 足重繭而不休息, 裂衣裳裹足. 至於郢, 見楚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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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명 【을사년(1905)】 勇銘 【乙巳】 사도(斯道)의 공부에 진취 얻자면, 斯學進就,그 기틀은 용기에 있으니 其機在勇,옛 사람을 보면 그 누구도 相古之人,이것을 중히 않은 이 없네. 疇敢不重.스스로 힘써 쉼 없이 가다듬은 自强不息,건괘의 상(象)에 게시된 말205) 乾象攸揭,의리를 보고도 실행하지 않음 見義不爲,공자님 말씀 이를 경계하였네. 魯論是戒.안연은 뜻을 크게 품어 顔氏志大,순임금과 내가 똑 같은 사람이었고 舜人予人,자로는 좋은 말을 따라 행하며 仲由行給,듣고도 실행이 못 따를까 걱정하였네. 惟恐有聞.선행을 보면 이내 감복하고 有善則服,잘못을 고치는데 아낌이 없어, 改過勿吝,내달리는 바람처럼 빨랐고 如風斯速,날으는 번개처럼 날쌔었네. 如雷斯迅.사나운 군졸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며 悍卒輕死,적을 맞이하여 격전하듯 하고 -사욕을 이기고 예법을 회복하고- 遇敵鏖戰【克己復禮】튼튼한 말이 힘을 다 쏟으며 健馬致力,무거운 짐을 지고 내닫는 듯이 -인(仁)을 자신의 임무로 삼기를-任重前進【仁爲己任】진실로 능히 이렇게 한다면 苟能如玆,용기에 거의 어긋나지 않으리. 庶幾不畔. 斯學進就, 其機在勇, 相古之人, 疇敢不重。 自强不息, 乾象攸揭, 見義不爲, 魯論是戒。 顔氏志大, 舜人予人, 仲由行給, 惟恐有聞。 有善則服, 改過勿吝, 如風斯速, 如雷斯迅。 悍卒輕死, 遇敵鏖戰【克己復禮】, 健馬致力, 任重前進【仁爲己任】, 苟能如玆, 庶幾不畔。 건괘……말 《주역》〈건괘상(乾卦象)〉에 "하늘의 운행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보아 쉬지 않고 스스로 힘쓴다.[自彊不息]"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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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太極旗 만국의 국기마다 제각기 이름 있으니 萬國國旗各有號우리나라는 일찍이 태극기로 제정하였네 我邦曾建太極旗태극 위엔 더 이상 존귀한 것 없으니 太極之上更無尊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이름이로세 美號無以加於斯경술년에 한번 풍우가 몰아친 뒤로는8) 一自庚戌風雨後거의 태극기 이름까지 아울러 알지 못했네 幾與其名幷不知오직 주변이 평이한9) 일장기라 하는 것이 但見周夷日章號삼천리 땅에 두루 꽂혀 있음을 볼 뿐이었으니 三千里內遍揷籬눈으로 어찌 차마 똑바로 응시할 수 있으랴 有目何忍正面視손으로 찢어버리지 못함을 한스러워했다오 有手恨未破裂之그 뒤로 삼십육 년 세월 동안에 伊來三十六年間겨우 우리 집만 남들 따라 하지 않았네 僅不吾家隨衆爲더디게도 오늘 아침에야 옛 물건을 회복하니 遲遲今朝復舊物집집마다 대폭의 기가 긴 장대에 걸려 있구나 大幅高竿家家扉바람결에 펄럭이는 기세가 호쾌하니 風頭颺颺勢豪壯흰색 바탕의 현황10)이 광채를 더한다오 白質玄黃增光輝바라노니 나라의 존귀함이 태극과 같아 願言國尊同太極만세토록 천추토록 영원히 한결같기를 萬世千秋如一時 萬國國旗各有號, 我邦曾建太極旗.太極之上更無尊, 美號無以加於斯.一自庚戌風雨後, 幾與其名幷不知.但見周夷日章號, 三千里內遍揷籬.有目何忍正面視? 有手恨未破裂之.伊來三十六年間, 僅不吾家隨衆爲.遲遲今朝復舊物, 大幅高竿家家扉.風頭颺颺勢豪壯, 白質玄黃增光輝.願言國尊同太極, 萬世千秋如一時. 경술년에……뒤로는 경술년인 1910년에 일제의 침략으로 한일합병조약에 따라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두고 말한 것이다. 경술국치는 한일합병, 국권 피탈, 일제 강점, 일제 병탄 따위로도 불린다. 주변이 평이한 일장기(日章旗)에서 정중앙에 그려 놓은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원인 일장(日章) 주변에 아무 것도 없이 평이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현황(玄黃) 본디 천지(天地)를 뜻하는 말로, 태극기에서 모서리에 그려진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가리킨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는데, 태극 문양의 파랑색은 음(陰)을, 빨강색은 양(陽)을 상징하는 것으로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고, 네 모서리의 건괘는 하늘을, 곤괘는 땅을, 감괘(坎卦)는 물을, 이괘(離卦)는 불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극을 중심으로 한 통일의 조화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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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453)의 기일에 밤새도록 회포가 있어 先師諱辰達夜有懷 옛날의 성인과 현자를 보면 相古聖若賢예법을 제정하여 인문454)을 널리 폈으니 制禮宣人文크고 작은 예 및 상례와 변례에 大小與常變하나하나 정밀한 의리를 두었다오 一一精義存면례455)는 신중하게 거행할 일이니 緬襄愼重事어쩔 수 없이 뒷말을 해야겠네 不得己後言의절은 처음 장례와 같아야 하니 儀節同初葬터럭만큼도 어긋나서는 안 된다오 未可錯毫分어찌하여 묘소를 이장하는 일을 如何玄阡緬허술하여 보잘것없게 한단 말인가 草草不足觀천오백 명의 문도들 가운데 千五百門徒그 누가 선사의 가르침을 들었던가 誰歟得與聞다만 이 한 가지 일을 미루어보면 但推此一事예를 빠뜨림을 어찌 논할 것 있으랴 闕禮更何論비록 장례 제례의 절목이라 해도 縱云葬祭節그 책임은 본손에게 있다네 其責在本孫대종사456)에 관계되는 일이니 事係大宗師어찌 혹 이와 같이 하리오 豈容若是焉청컨대 그대는 나의 말을 듣고 請君聞我言시속에 구애된다고 하지 마소 莫謂時拘然저들의 학정이 날로 가혹해지니 彼虐日以酷오래지 않아 스스로 멸망하리라 匪久自亡殘어찌 잠깐 동안을 기다리지 않겠는가 盍俟少須臾예가 볼만하여 세인들을 용동시키리 禮觀動世人하물며 예전에 썼던 광중에는 矧聞舊壙內본디 흉해를 범함이 없다고 함에랴 自無凶害干진실로 부득이한 이유를 따져보면 苟究不得己어찌 후회하는 뜻이 넘치지 않겠는가 寧無悔意新밤새도록 나 홀로 잠 못 이루니 永夜獨不寐이내 회포를 누구와 함께 펴리오 我懷誰與宣 相古聖若賢, 制禮宣人文.大小與常變, 一一精義存.緬襄愼重事, 不得己後言.儀節同初葬, 未可錯毫分.如何玄阡緬, 草草不足觀.千五百門徒, 誰歟得與聞?但推此一事, 闕禮更何論?縱云葬祭節, 其責在本孫.事係大宗師, 豈容若是焉?請君聞我言, 莫謂時拘然.彼虐日以酷, 匪久自亡殘.盍俟少須臾? 禮觀動世人.矧聞舊壙內, 自無凶害干?苟究不得己, 寧無悔意新?永夜獨不寐, 我懷誰與宣. 선사(先師) 선사는 돌아가신 스승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는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지칭한다. 간재는 1922년 7월 4일에 졸하였다. 인문(人文) 예악 교화(禮樂敎化)를 이른다. 《주역》 〈비괘(賁卦) 단(彖)〉에 "천문을 관찰하여 때의 변천을 살피고,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하여 이룬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라고 하였다. 면례(緬禮) 무덤을 옮겨 다시 장례(葬禮)를 지내는 일로, 곧 이장(移葬)을 말한다. 간재의 연보를 살펴보면, 1922년 9월 13일에 처음에는 익산(益山) 현동(玄洞)의 선영(先塋)에 장사 지냈다가 1945년 3월에 익산 장항리(獐項里)로 이장(移葬)하였다. 대종사(大宗師) 가장 높은 스승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유학의 대종장(大宗匠)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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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장에게 올림 上勉庵崔丈 세월은 빨리 흘러 해가 바뀌었습니다. 삼가 애체(哀體)는 어떻게 견디며 지내십니까. 의림(義林)이 일찍 문하에서 배우고 싶은 바람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다 이루지 못한 지 30여 년이 되었으니, 오활한 뜻과 노년이 된 나이가 마침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벽계(檗溪) 선생께서 만년에 걷잡을 수 없는 변고를 만났지만 미리 헤아리고 깊이 근심하며 사악함을 물리치고 정도를 지키려는 계책이 분명하고 확고하였으니, 노사(蘆沙) 선생과 더불어 조목이 같고 맥락이 같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선생께서 지은 《아언(雅言)》 몇 편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태극의 주재(主宰)와 명덕(明德)의 본연의 묘리를 밝혀 일종의 주기론(主氣論)을 물리친 것은 그 말이 또 노사 선생과 마치 한입에서 나온 듯하였으니, 참으로 천하의 도는 한 가지뿐임을 알겠습니다. 천지 사방에서 누가 표준으로 삼지 않겠습니까. 아, 천고의 종지(宗旨)를 밝히고 일세의 대방(大防)을 보존한 것은 두 선생님의 공이니, 어찌 보탬이 작다고 하겠습니까. 가령 두 선생님이 오늘날 살아 계셨더라면 어찌 백성들과 세도를 위한 계책이 될 만한 모종의 큰 의론(議論)을 세우지 않았겠습니까. 미련한 여생은 우러러 물어볼 곳이 아득히 없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저도 모르게 통탄스럽습니다. 문장(文丈)께서는 벽계 선생 문하의 적통으로서 후학을 인도하여 우뚝이 사방에서 추앙을 받으니, 두 선생님이 비록 돌아가셨지만 오늘날 시의(時義)를 조치한 것은 또한 비슷함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평소 배알하려는 마음은 구구하게 안부나 묻는 예를 펴기 위해서가 아니고, 일신과 집안의 큰 계책과 관련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만 가난과 병이 날로 심해지고 농사가 거듭 흉년이 들어 예사롭게 움직이는 것도 자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조금 한가해져 편달해 주실 만한 틈이 있다면 마땅히 한번 문하에 나아가 간절한 마음을 다 펴겠습니다. 日月流駛。燧穀一改。伏惟哀體。何以堪居。羲林早有掃門之願。而因循未就。今三十有餘年矣。志意之迃緩。年力之遲暮。乃至於此耶。檗溪先生晩遭履霜之變。而其豫計深憂闢邪衛正之策。光明磊落。與蘆沙先生同條而共貰。及其沒。而得所著雅言數篇而讀之。所以明太極主宰明德本然之妙。斥夫一種主氣之論者。其言又與蘆沙先生若出一口。信知天下之道一而已。天上天下。南海北海。何所不準。嗚呼明千古之宗旨。存一世之大防者。兩先生之功。豈少補云哉。若使兩先生在於今日。則豈無一副大議論可以爲生民世道計者耶.蠢蠢餘生。漫無所仰。念之及此.不覺號痛。文丈以檗門嫡傳。指引後學。屹然爲四方之所宗仰。則兩先生雖不在世。而所以措置得今日之時義者。亦不可謂無似之者矣。平日拜謁之願。非爲區區寒暄之禮。而有關於身家大計者。非止一二。但貧病日甚。年事荐險。尋常運動。未由自力。將來若有小小暇隙。可給鞭策。則當一登龍門。畢暴情懇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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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범【기홍】에게 답함 答張禹範【基洪】 어느덧 이별 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은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네. 뜻밖에 편지를 받게 되니 기쁜 마음은 마치 차가운 골짜기에 햇빛이 비치는 것 같네. 부모님의 병환은 일반적인 증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니, 나는 우러러 축원하네. 나는 여름에 과연 참담한 일을 당하였네. 평생 운명이 구름과 우레의 강과 산 속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데,134) 늙어 곧 죽을 때가 되어 오히려 더욱 심하게 되었네. 실낱 같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한밤중에 일어나 생각하면 땀이 나서 등을 적신다.'는 말에서 절실하게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와 같이 영특한 자질로 뉘우치고 반성함이 이와 같다면 어찌 발전하지 않을 이치가 있겠는가. 더구나 현재의 분란은 짐작하기 어려움이 날로 심해지니 이 어찌 우리들이 한가롭게 지내거나 게으름을 피울 때인가. 궁구하고 탐색하여 의리를 밝히고, 보존하고 함양하여 심지(心志)를 견고를 하여 앞날의 계책으로 삼는 것이 바로 지금 당장의 급한 일이네. 보내준 편지에서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는 것으로 자정(自靖)의 의리를 삼는다고 한 것은 또한 이런 의도인가. 나이가 젊고 힘이 굳세니 부지런히 힘쓰시게나. 오미(五味)는 오행의 맛이니, 목(木)의 맛은 시고 화(火)의 맛은 쓰며 금(金)의 맛은 맵고 수(水)의 맛은 짜고 가색(稼穡)의 맛은 다네. 무릇 사물은 막 형질을 갖추기 시작하면 소리와 색과 맛과 냄새가 갖춰지네. 소리와 냄새는 양이고, 색과 맛은 음이네. 그 소이연의 까닭에 대해서는 모두 일일이 연구하는 것이 옳네. 於焉一別。己隔半載。憧憧懷想。與日俱積。謂外承惠訊。私情欣豁。若寒谷見陽。堂上所愼。認是例證。涼生想必復常。區區仰祝。義夏間果見慘色矣。平生命道。坐在雲雷水山之中。至於老將死。猶復甚焉。残縷餘喘。無以爲況。奈何奈何。中夜與思。汗發沾背之云。可見警省之切。以若穎悟之姿。警省如此。安有不進之理。況時紛叵測。日甚一日。是豈吾儕宴閒偷惰之日乎。窮索而明其義理。存養而堅其心志。以爲前頭之計。此是目不急事。來喩杜門讀書爲自靖之義者。亦非此意耶。年冨力強。勉之勉之。五味卽五行之味。木之味酸。火之味苦。金之味辛。水之味醎。稼穡之味甘。凡物纔有形質。則聲色臭味具焉。聲與臭陽也。色與味陰也。若其所以然之故。則皆當一一究覈可也。 구름과……같은데 《주역》 〈둔괘〉의 운뢰둔(雲雷屯)과 〈건괘〉의 수산건(水山蹇)에서 온 말로 어렵고 힘든 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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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정164)에 올라 민단암165)의 시에 차운하다 上龍頭亭次閔丹巖韻 영락한 벼슬 못한 선비들이 용두정에 모여 布衣零落會龍頭급제166)하여 옛날 노닐었던 것 추억하며 말하네 追說龍頭昔日遊저물어가는 삼월이라 안개 낀 경치 애처로워라 煙景堪憐三月暮아름다운 온갖 인연은 상전벽해되었으니 어이하리 滄桑其柰萬緣休쌓인 회포는 정녕 교산167)과 함께 높아지고 積懷定與蛟山屹깊은 한은 요수168)에 띄워 보내기가 어렵네 深恨難將蓼水流만년에 친구 얻어 한 말 술을 마시자 晩得故人斟斗酒티끌 씻기니 옥경169)의 누대보다 훨씬 나은듯 滌塵勝似玉京樓 布衣零落會龍頭, 追說龍頭昔日遊.煙景堪憐三月暮, 滄桑其柰萬緣休?積懷定與蛟山屹, 深恨難將蓼水流.晩得故人斟斗酒, 滌塵勝似玉京樓. 용두정(龍頭亭)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에 있는 정자이다. 민단암(閔丹巖) 단암은 민진원(閔鎭遠, 1664~1736)의 호이다. 본관은 영흥(驪興), 자는 성유(聖猷), 다른 호는 세심(洗心)ㆍ민기(閔機),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숙종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우참찬 민진후(閔鎭厚)의 동생이며, 송시열의 문인이다. 저서에 《단암주의(丹巖奏議)》·《연행록(燕行錄)》·《단암만록(丹巖漫錄)》·《민문충공주의(閔文忠公奏議)》 등이 있다. 급제(及第) 원문의 '용두(龍頭)'는 용의 머리란 뜻으로, 과거에 장원급제하거나 장원급제한 사람에 대한 별칭으로 쓰인다. 교산(蛟山) 교룡산(蛟龍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북 남원시에 있는 산이다. 요수(蓼水)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과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 사이를 흐르는 하천을 말한다. 옥경(玉京) 백옥경(白玉京)의 준말로, 천제(天帝) 혹은 신선이 상주하는 곳이다. 하늘나라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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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의 편액 뒤에 제하다 題晦山扁額後 회암 스승 뒤에 회산175)이 태어났으니 晦菴師後晦山生천년토록 존경하는 마음 아니 들랴 莫是千秋景仰情안씨176)는 순임금을 바람이 어쩌면 그리도 간절한가 顔氏希虞一何切장경도 인상여를 사모함이 일찍이 가볍지 않았네177) 長卿慕藺不曾輕무언가 하려면 굳이 표방을 싫어할 필요 없고 有爲未必嫌標榜의리 생각하며 오직 이름 지음을 돌아봐야 하네 思義惟當顧命名영서연설178)을 풀이해서 말하지 마오 休道郢書燕說解회산옹의 마음 본래 절로 고명한 것을 翁心本自向高明 晦菴師後晦山生, 莫是千秋景仰情?顔氏希虞一何切? 長卿慕藺不曾輕.有爲未必嫌標傍, 思義惟當顧命名.休道郢書燕說解, 翁心本自向高明. 회산(晦山) 이택환(李宅煥, 1854~1924)의 호이다. 안씨(顔氏)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를 이른다. 장경(長卿)은……않았네 장경은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인데, 전국 시대 조(趙)나라 인상여를 사모하여 스스로 '상여'라고 개명하였다. 장경은 경제(景帝) 때에 〈자허부(子虛賦)〉를 지어 명성을 떨쳤다. 그의 사부(辭賦)는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며, 한(漢)ㆍ위(魏)ㆍ육조(六朝) 문인의 모범이 되었다. 인상여는 진(秦)나라가 조나라의 진귀한 구슬인 화씨벽(和氏璧)을 15개 성과 바꾸자는 거짓말로 빼앗으려 하였는데, 인상여가 구슬을 들고서 기둥을 흘겨보며 "억지로 빼앗으려 하면 기둥에 대고 구슬을 머리로 내리쳐 함께 부서지겠다."라고 하여 구슬을 온전히 되가져 올 수 있었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영서연설(郢書燕說) 글의 본뜻을 곡해하고 천착하여 억지로 끌어다 붙인다는 뜻이다. 초나라 영 지방 사람이 연나라 정승에게 외교문서를 보내려고 하였다. 밤에 외교문서를 쓰는데 불이 어둡기에 촛불을 들고 있는 자에게 "촛불을 들라."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외교문서 안에 '거촉(擧燭)'이란 두 글자를 써넣고 말았다. 그런데 국서를 받은 연나라 정승은 이 외교문서를 읽으며 설명하기를 "거촉은 밝음을 숭상한 것이니, 밝음을 숭상하는 자는 어진 이를 천거하여 맡길 것입니다."라고 왕에게 아뢰었다고 한다. 《韓非子 外儲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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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해 노동 에게 지어 주다 2수 贈金杏海【魯東○二首】 금학산 속에 은거하는 모습을 보니 金鶴山中見隱淪퇴폐한 풍속 함께하여 광진을 뒤섞지 않는구나127) 不同頹俗混光塵비바람 겨우 가릴 담장이 둘러 있는 세 칸의 집이요 環堵風雨三間屋세상을 덮을 만한 재기가 넘쳐나는 칠 척의 몸일세 蓋世才豪七尺身훗날 냇물 건너는 노128)가 될 줄 정녕 알겠으니 定識他年川作楫지금 빈천한 분수로 철석같이 믿을 것 없다오 未須此日鐵成貧영달하면 겸선하고 궁하면 독선함은 추여의 법이니129) 達兼窮獨鄒輿法늘그막까지 집안에서 선조의 뜻을 잘 계승하였도다130) 至老家中善繼人원래 이 학문은 오직 공정함이 필요하니 元來此學只須公공 자가 행해질 때 온갖 길이 통하게 된다오131) 公字行時百途通중도를 잃은 한마디 말은 폐단을 일으키거니와 片語失中能起弊뒷날을 염려하는 많은 생각은 몽매하다고 하지 마소 多心慮後莫云蒙기미 따라 신묘하게 응함은 도를 따르는 것이요 隨機妙應惟從道대중과 함께 화로 돌아감은 공을 세우는 것일세 與衆歸和是立功감히 구구하게 사사로운 뜻을 쓴 것이 아니니 非敢區區容己意하늘의 해가 미미한 충심을 비추는 것과 같다오 有如天日照微衷 金鶴山中見隱淪, 不同頹俗混光塵.環堵風雨三間屋, 蓋世才豪七尺身.定識他年川作楫, 未須此日鐵成貧.達兼窮獨鄒輿法, 至老家中善繼人.元來此學只須公, 公字行時百途通.片語失中能起弊, 多心慮後莫云蒙.隨機妙應惟從道, 與衆歸和是立功.非敢區區容己意, 有如天日照微衷. 광진(光塵)을 뒤섞지 않는구나 원문의 혼광진(混光塵)은 화광동진(和光同塵)과 같은 말로, 《노자(老子)》 제4장 및 제56장에 "그 빛을 누그러뜨리고 티끌과 뒤섞인다.[和其光, 同其塵.]"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는데, 자신의 재주와 현명함을 감추고 세속에 따른다는 의미이다. 냇물 건너는 노 세상을 구제하는 재상과 대신을 비유한다. 상(商)나라 고종(高宗)이 현상(賢相) 부열(傅說)에게 이르기를 "내가 만일 큰 냇물을 건너려거든 그대를 사용하여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일 해가 큰 가뭄이 들거든 그대를 사용하여 장맛비로 삼을 것이다.[若濟巨川, 用汝, 作舟楫; 若歲大旱, 用汝, 作霖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商書 說命上》 영달하면……법이니 추여(鄒輿)는 추(鄒)나라 사람으로 자가 자여(子輿)인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원문의 달겸궁독(達兼窮獨)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곤궁하면 그 몸을 홀로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겸하여 선하게 하는 것이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선조의 뜻을 잘 계승하였도다 원문의 선계인(善繼人)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9장에 "무릇 효란 선조의 뜻을 잘 계승하고, 선조의 일을 잘 전술하는 것이다.[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공(公) 자가……된다오 《근사록(近思錄)》 권2 〈위학(爲學)〉에 "인의 도는 요컨대 단지 하나의 '공(公)' 자로 말할 수 있으니, 공은 단지 인의 이치일 뿐이다.[仁之道, 要之只消道一公字, 公只是仁之理.]"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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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여함49)【철환】에게 보냄 與安汝涵【澈煥】 지난번 수레가 돌아갈 적에 고생하지 않았습니까. 소식이 막혀 애가 탔습니다. 대저 우리 두 사람은 같은 세상 같은 고을에 살며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교분이 있었고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으니, 그 분의는 실로 남다릅니다. 더구나 나라에서 어진 이를 벗하는 의리로 볼 때 실로 달려가기에도 겨를이 없어야 하는데 그럭저럭 혼탁하게 사느라 한번 찾아가지 못한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지금 또 화고(禍故)를 겪은 남은 목숨은 외진 곳에서 칩거하고 있으니, 어찌 세간의 많은 일을 염려하겠습니까. 무너지고 찢어지는 마음은 죽음만 기다릴 따름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은혜로이 돌보아 주시어 위로하고 아껴주심이 두루 지극하였습니다. 아, 평소 알아주신 정이 참으로 무궁함을 알겠으나 천한 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슬프고 부끄러운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생각건대, 노형께서는 사문(斯文)의 구족(舊族)으로서 문학적 재능을 이른 나이에 발휘하여 양초(梁楚)50)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지 지금 여러 해 되었습니다. 선업(先業)을 실추하지 않기를 도모하고 숙망(宿望)이 적지 않은 것을 생각하여 조금씩 더 진보하여 끝내 크게 밝힌다면 교유하는 말석에서 영광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덕문(德門)에서 대대로 계승하는 것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頃者駕旋無撓。信息間阻。有庸耿耿。夫吾兩人。倂一世同一鄕。論交從父祖。見知自孩嬰。則其分固不在於入後矣。況居邦友仁之義。固當趨走之不暇。而因循淟涊。罔克一遂者。積有餘年矣。今又禍故餘喘。廢蟄窮荒。安有一念於世間多少事耶。崩霣摧裂。只竢溘然。謂外辱賜惠顧。慰愛周至。嗚呼。平素記知之情。儘覺無窮。而爲賤生者。堪可承當耶。悲愧亡量。惟老兄以斯文舊族。文學才華。早年發颺藉藉于梁楚之間者。今幾年矣。圖先業之不墜。念宿望之不細。加一簣進一步。而終至大闡。則不惟從遊之末。與有榮焉。德門之所以世世繼述者。不亦美矣乎。 안여함(安汝涵) 양재원(梁在源)으로 자는 자함(子涵)이다. 양초(梁楚) 《사기》〈계포열전(季布列傳)〉에 "조구(曹丘)가 와서 계포에게 읍하면서 말하기를 '초인(楚人)의 속담에 황금 100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한 번 승낙을 얻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족하(足下)께서 어찌 양초 사이에서 이 명성을 얻었습니까?' 하였다."라고 한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안철환(安澈煥)의 고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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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칙에게 보냄 與崔元則 지난겨울에 장아(蔣雅) 편에 보낸 편지는 받아 보셨습니까?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또 이미 반년이 지났습니다. 덕성을 함양하는 체후는 만중하시며, 댁내 제절(諸節)은 만복하시며, 영남의 벗들은 험난한 세상에 모두 무사히 지내십니까? 눈앞에 보이는 형세가 사람으로 하여금 걱정이 앞서게 하니, 천리에서 서로 그리워함에 어찌 마음이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은 나이와 기력이 이미 노쇠하였으니 구구하게 강론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남았겠습니까. 모름지기 연배가 비슷한 사람끼리 중간에 편안한 곳을 정해 해마다 한번 모일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는 대곡(大谷) 옹의 뜻이었는데 이루지 못한 것이니, 형께서 도모해 주십시오. 아, 얼음이 얼고 밤이 긴 때 온 세상이 혼란스러우니, 《비풍(匪風)》→〈비풍(匪風)〉의 시5)를 읊조리고 괄낭(括囊)의 경계6)를 생각하여 친한 벗과 강론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혼란하여 강론할 수 없다는 뜻인 듯합니다.) 노형(老兄)께서는 고요히 거처하며 홀로 생각하시는 중에 또한 어떤 감개를 일으키십니까. 《시경(詩經)》에 이른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서 널 낳으신 부모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라고 한 이 한 구절의 말이 우리들이 귀결처입니다. 봄 사이 송사(松沙)의 편지를 받고 한 달에 두 번 강회를 열었는데 100여 인이 모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흉년에 가난한 유자(儒者)가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닌데 이 형이 어떻게 이것을 마련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듣건대, 이달 10일에 선비들이 선생의 묘소에서 석존제(釋奠祭)를 지내고 향음주례를 묘소 아래에서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前冬蔣雅便書。趁入照徹否。荏苒光陰。又已半年。未審養德衛重。諸節百福。嶺中知舊。險世經過。一一無事否。滿目風色。令人作惡。千里相向。安得不馳情。吾輩年力已邁。區區講聚之樂。能有幾何。須與年輩若而人。取中間穩便處。爲逐年一聚之計。如何。此是大谷翁之意而未就者。願兄圖之也。嗚乎。堅氷長夜。渾區滔滔。咏匪風之詩。念括囊之戒思欲與親知講之而不可得也。未知老兄靜居獨念。亦作如何感慨。詩所謂夙興夜寐。母忝爾所生。此一語是吾人歸宿處也。春間得松沙書。知一月兩次會講爲百餘人。此非荒年窮儒可堪之事。而未知此兄何以辨此耶。且聞今十日。多士釋奠于先生墓。因行鄕飮酒禮于墓下云耳。 비풍(匪風)의 시 《시경》〈회풍(檜風)〉의 편명이다. 주(周)나라 왕실이 점점 쇠약해짐을 현인(賢人)이 개탄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조선의 국력이 약해 일본에 유린당한 것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괄낭(括囊)의 경계 자신의 재지(才智)를 감추고 침묵을 지켜야 하는 암울한 시대의 경계를 말한다. 괄낭은 주머니의 끈을 졸라맨다는 뜻으로, 곧 말을 조심한다는 의미이다. 《주역》 〈곤괘(坤卦) 육사(六四)〉의 "주머니 끈을 묶듯이 하면 허물도 없고 칭찬도 없을 것이다.[括囊无咎无譽]"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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