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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경방에게 답함 答從弟敬方 지난번 헤어져 돌아온 뒤에 편지를 두 번이나 받았으니 연달아 읽어보며 위안이 되었네. 더욱이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줄곧 좋다고 함에랴. 종형(나)는 거처를 떠나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며 사방에 친척이 없는데, 질병으로 인한 근심과 고통이 이따금 서로 기인하여 일어나니, 다만 매우 슬프고 처량하네. 옛날 우리 아우와 함께 거처할 때는 아침저녁으로 충고해주어 그 효과가 적지 않았는데, 지금은 귀는 있지만 나의 허물을 듣지 못하네. 더구나 마음과 힘이 노쇠하여 쉽게 무너져 풀어져버리고 진작하여 분발하기는 어려움에랴. 오호라! 우리 종제는 조금도 기운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또한 이처럼 기상이 장대하네. 비록 그러나 인생 사업의 최종 결정은 전적으로 만년의 행적에 달렸으니, 다만 더욱 주의하고 노력하여 '그 허물을 적게 한다.[欲寡其過]'166)는 네 글자로 평소 목표를 삼는 것이 어떻겠는가. 차분히 살펴보니, 우리 아우는 근래 어진 벗들을 종유하면서 오래 배운 학업을 익혀서 집안의 기대에 매우 부응하여 내 앞 항렬이 성취하지 못한 기대에 위안을 주는 것이 크네. 다만 가문 안의 화목하는 도리에는 응당 다시 강구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수하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는 행동으로 말미암았지만 그 책임은 그대와 나에게 돌아오지 않겠는가. 《시경》에서 "형과 아우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 서로 어긋남이 없네."167)라고 하였는데, 무릇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만나더라도 급격히 격노하지 말고 모름지기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로 차근차근 알아듣게 깨우쳐서 뉘우치게 만드는 것이 어떻겠는가. 頃也分歸後。承手書者再。續續披慰。矧審侍履凡百。一直沖茂乎。從兄離寓孤索。四無親戚。而疾病憂苦。種種相仍每自顧影。只切悲悵。昔與吾弟同處時。晨夕警責。其力不少。今則有耳。而不聞吾過。況衰老心力。易頹弛而難振厲者耶。嗚乎。吾從行零星無幾。而又且落落若是。雖然。人生事業。究竟結案。專在晩節。惟加意增勉。以欲寡其過四字。爲日用家計如何。竊覵吾弟近年追逐賢友。溫理舊業。甚副家戶之計。而慰我先行未就之志願者。大矣。但於門內雍睦之道。似當更有講究處。此是手下人不愼之擧。而其責則不歸於君與我乎。詩曰兄及弟矣。式相好矣。無相猶矣。凡遇不如意底事。勿遽生激怒。而須以溫言順說。諄諄開喻。期於回悟如何。 그 허물을 적게 한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大夫) 거백옥이 공자에게 사자(使者)을 보냈을 때에 공자가 "선생께서는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물으니, 사자가 "선생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지만, 아직 잘하지는 못합니다.[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형과……없네 《시경》 〈사간(斯干)〉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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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원【노정】에게 답함 答朴允元【魯貞】 한 통의 편지가 뜻밖에 이르니, 어찌 다만 귀한 공청이나 수벽134)에 그치겠는가. 편지를 받고서 부모를 모시면서 철마다 건강이 좋다고 하니 더욱 걱정하던 마음에 위로가 되네. 다만 잘 모르겠네만, 근래 그대의 학과(學課)는 어떻게 절도 있게 잘 해나가 날로 달로 발전하는 효과가 있는가. 나는 이전 편지를 보낼 때와 완전히 같다네. 대저 공부는 다만 치지(致知)와 거경(居敬)에 달려 있는데 치지하지 않으면 거경할 수 없고 거경하지 않으면 치지할 수 없으니, 수레의 두 바퀴나 새의 양 날개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이 되어야 성취할 수 있네. 윤원은 또한 이를 응당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되니, 반드시 평소하는 일에서 한가하게 출입하거나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등은 완전히 통렬하게 끊어버리고 문을 닫고 휘장을 내린 뒤에 침잠하여 연구하고, 어진 사우 및 나보나 나은 자를 종유하여 잘잘못을 분별하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구범이 말하기를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배로 삼아야 한다."135)라고 했는데, 그 주에서 "인(仁)은 사랑함이다."라고 하였으니, 사랑한다[愛]고 말하지 않고 인하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인(仁)자는 뜻이 상대적으로 깊고 애(愛)자는 뜻이 상대적으로 얕기 때문이네.질문 :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며, 상(喪)은 형식적으로 잘 다스려지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136)라고 하였는데, 예를 말하면 상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거늘 특별히 그 상을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예는 길례로서 말하였으며, 상은 흉례로서 말하였기 때문이네. 一書出於望外。奚啻空靑水碧之爲貴也。承審侍旁節宣。體事衛重。尤叶懸情。但未知近來盛課。作何如節度。而有日邁月征之效否。義林一如向奉時而已。大抵功夫。只在致知居敬。非致知無以居敬。非居敬無以致知。如車之兩輪。鳥之兩翼。相須交資。乃可有爲。想允元亦應諒之。必於日用事物上。如閑出入閑說話。一切痛斷。杜門下帷。沈潛硏究。從賢士友及勝已者。以辨其得失。如何。舅犯曰。仁親以爲寶。註曰仁愛也。不曰愛而言仁。何也。仁字義較深。愛字義較淺。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言禮則喪亦在其中。特言其喪何也。禮以吉禮言之。喪以凶禮言也。 공청이나 수벽 한약 재료의 하나. 구범이……한다 《대학장구》 전 10장에 보인다. "구범이 말하기를 '도망 온 사람은 보배로 여길 것이 없고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배로 여긴다.' 하였다.[舅犯曰:亡人無以爲寶, 仁親以爲寶.]" 예는……한다 《논어》 〈팔일(八佾)〉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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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에게 보냄. 寄憲孫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반드시 귀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으며 반드시 부유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모름지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귀함과 부유함은 천명이 있으니, 구한다고 반드시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타인에게서 구할 것도 없고 밖에서 찾을 것도 아니며 다만 나의 본성을 따르고 나의 행실을 닦기만 하면 되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하며 집에 거처함에 효도하고 우애하며 게으르지 않고 방탕하지 않으며 죄를 짓지 않고 허물을 만들지 않아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자신의 집을 지킨다면 이것이 이른바 좋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평소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항상 겸손과 공손으로 자처하고 진심을 다하여 신의로 상대하며, 절대로 업신여기는 생각과 분노하는 낯빛으로 마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에 온당하지 않은 것이 있거든 마땅히 자신을 책망하고 구차하게 남을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책망하는데 힘쓰면 원망이 더욱 쌓이고 자신을 책망하는데 힘쓰면 덕이 날로 나아가니, 그 득실의 거리가 과연 어떠하겠느냐. 맹자는 말하기를 "지극히 성실하고서 감동시키지 않은 자는 있지 않으니, 성실하지 못하면 능히 남을 감동시킬 자가 있지 않다."199)라고 하였다. 대저 자신의 성실이 지극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고서 다만 타인이 감동하지 않음을 책망한다면 자신의 몸을 굽혔는데 그림자가 곧지 않음을 미워하는 것 또는 그 근원을 더럽히고서 흘러가는 물줄기가 맑지 못함을 탓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붕우 관계는 진심을 다하여 신의가 서로 통한다면 말을 내면 사람이 믿게 되며, 친척 간에 은혜와 사랑이 서로 무젖으면 말을 내면 사람이 감응하게 된다. 이는 바뀌지 않는 이치이니,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해라. 집에 거처할 때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뜨락을 청소하고 집안일을 맡아 하는 여가에 조금이라도 남은 힘이 있거든 곧 성현의 책을 잡고 읊조리면서 연구하여 의리로 하여금 항상 내 마음에 무젖게 한다면 평소 일을 행할 때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는 것이 있을 것이다. 점술과 방술의 책은 불경스럽고 고아하지 않으니 선비가 숭상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바둑과 잡스런 놀이 등은 뜻을 빼앗고 일을 방해함에 가장 심한 것이니, 깊이 생각해 보아라. 나 자신을 생각해보건대, 헐떡이는 실낱같은 숨은 조만간 끊어질 것이니 세상만사를 둘러보아도 다시 기대할 것이 없는데, 다만 바라는 것은 이것 하나뿐이다. 마음과 뼈에 새기고 한가로운 이야기라 여기지 말라. 人生斯世。不必要作貴人。不必要作富人。要作好人。是第一事。況貴與富有命焉。求之不可必得。至若做好人則無求於人。無慕乎外。只是順我性分。修我行實而已。何難之有哉。持身謹勅。居家孝友。無怠無荒。無罪無過。以保其身。以守其家。此非所謂好人耶。平日接人爲一大事。常以謙恭自牧。忠信相與。切不可以侵侮之意。忿戾之色。加之也。事有不可。當責己而勿苟責於人也。務責人則怨益積。務責己則德益進。其得失相去。果何如哉。孟子曰。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不誠。未有能動者也。大抵不知已誠之不至。而但貴人之不感動。何異於曲其身而惡影之不直。濁其源而責流之不淸乎。朋友之際。忠信相孚。則言出而人信之。親戚之間。恩愛相浹。則言出而人感之。此是不易之理。千萬勉之。居家夙興夜寐。灑掃庭除。幹蠱之餘。少有餘力。輒把聖賢書。諷詠硏究。使義理常常浸灌吾心則於日用行事。自然有所補助者矣。至於占訊方技之書。不經不雅。非儒者所尙。況碁奕雜戲。其爲喪志妨務。最爲甚焉。千萬戒之。自惟喘喘一縷。朝夕待盡。環顧萬事。無復所望。而所望惟此而已。銘心刻骨。勿視以閑說話也。 지극히……있지 않다 《맹자》 〈이루상(離婁上)〉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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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의서【재봉】에게 보내는 별지 與吳儀瑞別紙【在鳳】 뜻밖의 불길한 변고로 댁의 종조(從祖) 어른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고(訃告)를 받들자니 놀랍고 서글픔을 멈출 수 없을 뿐입니다. 하물며 천 리 밖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정경(情景)을 생각하니 가슴이 막힙니다. 운상(運喪)하는 절차는 어떻게 치르셨습니까? 극인(棘人)의 슬픔은 어떻게 억누르고 계십니까? 대체로 이것은 의례(疑禮)이고 변례(變禮)입니다. 하물며 이 사람의 좁은 견해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상례를 잘 치르는 일을 노형(老兄)께서 이미 하문하셨으니 또 어찌 소견을 말하지 않겠습니까. 대체로 성복(成服)88)은 시신을 수습하여 염을 하고 입관(入棺)을 하고 빈소(殯所)를 마련한 다음의 일입니다. 시신이 객지에 있어 아직 수습하여 염하고 입관하고 빈소를 차리지 못하였다면 효자의 심정으로 볼 때 어찌 먼저 성복을 하겠습니까. 하물며 분상(奔喪)하는 도리는 한시가 급하니 또 어찌 편안히 성복을 기다리겠습니까. 아우가 생각은 이렇습니다. 부고를 들은 초기에는 피발(被髮 머리를 풀어 헤침)을 하고 곡을 하여 애통함을 모두 드러내며, 노정(路程)에 오르면 속발(束髮 머리를 묶음)을 하고 사각건(四脚巾)을 착용하며 소복(素服)을 입고 승대(繩帶)를 두릅니다. 그리고 시신이 있는 장소에 이르면 다시 피발을 하고 습렴(襲斂)의 절차를 진행한 연후에 성복을 하고 돌아와 상례를 치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집에 머무는 사람은 부고를 듣고 피발을 한 뒤 다시 속발을 하며 허위(虛位)를 마련하여 조석전(朝夕奠)과 조석곡(朝夕哭)을 거행하고, 시구(尸柩)가 집에 당도하면 다시 초상(初喪) 때처럼 피발을 하고 3일이 된 뒤에 성복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각건의 제도에 대해서는 《상례비요(喪禮備要)》에 실려 있으니 고람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신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성복을 한 다음에는 길을 갈 때는 수질(首絰)과 요질(腰絰), 그리고 상관(喪冠)과 최복(衰服 상복(喪服))을 착용해야 합니다. 집에서 변고를 당하는 것도 가장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천 리 먼 곳에서 당하는 경우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생각하니 경악을 금치 못하여 저도 모르게 심담(心膽)이 땅으로 떨어집니다. 정으로 보나 예로 보나 효자께서 여정을 떠나는 때 곧바로 달려가 위로를 드려야 하지만, 마침 구애되는 일이 있어 몸이 빠져나올 계책이 없습니다. 이것이 어찌 인정이고 도리이겠습니까. 부끄럽고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천 번 만 번 자세히 살피시고 유감(遺憾)이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不意凶變。令從祖丈棄世。承計驚怛。不能已已。況離鄕千里。奄然至此。其情景念之胸塞。運喪之節。何以經紀。棘人攀擗。何以支抑大抵此是疑禮也變禮也。況此謏見。何足言之。但愼終之地。老兄旣爲下問。則又豈不以所見言之乎。夫成服者。收斂尸身。入棺成殯然後事也。尸在客土姑未有收斂棺殯之節。則在孝子之情。豈可先爲成服乎。況奔喪之道。一時爲急。又豈晏然俟成服耶。弟意則聞訃之初。被髮哭盡哀。登程則束髮着四脚巾。衣素服。帶繩帶。到尸側。又被髮行襲斂之節然後。成服返喪。似乎宜矣。若在家之人。則聞訃被髮然后。更爲束髮。設虛位。行朝夕奠。朝夕哭。尸柩到家更爲被髮如初喪時至。三日而后成服。如何。四脚巾制度。在於備要。考之如何。到尸側。旣爲成服則行道之時。當着首腰絰。及冠與衰服耳。在家遭故。猶爲第一難事。況於千里遠程之外耶。念之驚愕。不覺心膽墜地。以情以禮。卽當匍匐赴慰於孝子發程之時。而事適有碍。抽身無計。此何情道耶。萬萬愧悚。只祝千萬慎審。母之遺憾如何。 성복(成服) 사망한 지 4일째 되는 날에 상복(喪服) 짓기를 끝내고 상복으로 갈아입는 절차, 성복한 뒤에는 죽을 먹기 시작하며 조석곡(朝夕哭)과 무시곡(無時哭)만을 하고 대곡(代哭)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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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에 감회가 일어 早秋感懷 어젯밤 분 가을바람에 청신한 기운이 일고 金風昨夜動新淸사람이 한가하니 백발 나는 것을 재촉하네 催盡人閑白髮生만물은 점차 모두 결실 이루어짐을 볼 텐데 萬物漸看皆遂實이 몸의 덕과 사업은 어느 때나 이뤄질런고 此身德業幾時成누가 혼탁한 세상을 촌교273)로 맑게 할 수 있을까 誰將世濁寸膠淸벗겨지고 떨어져 시골집엔 더욱 궁색함이 생기네 剝落田廬更窘生극기하여 몸을 이룸은 오직 나에게 달렸거늘274) 克己成身惟在我어이해 유유범범275)하게 지금까지 이룬 것 없는가 胡然悠泛迄無成평상시에 기호와 욕심을 맑게 하지 못했으니 尋常嗜慾未能淸과실이 곳곳마다 생기는 것도 괴이할 게 없네 無怪過差逐處生설령 지식이 없다 해도 이제는 이미 늙어버려276) 借曰未知今已老자신을 돌아보니 절로 서글퍼 병이 되려 하네 撫躬自悼病將成청천백일처럼 마음을 맑게 하려고 靑天白日要心淸더욱 연빙277)으로 한평생을 보냈네 更向淵氷寄一生경과 성으로 화후278)를 삼지 않았으니 不用敬誠爲火侯노년에 금단279)은 끝내 이루지 못하리 金丹歲暮竟無成 金風昨夜動新淸, 催盡人閑白髮生.萬物漸看皆遂實, 此身德業幾時成?誰將世濁寸膠淸? 剝落田廬更窘生.克己成身惟在我, 胡然悠泛迄無成?尋常嗜慾未能淸, 無怪過差逐處生.借曰未知今己老, 撫躬自悼病將成.靑天白日要心淸, 更向淵氷寄一生.不用敬誠爲火侯, 金丹歲暮竟無成. 촌교(寸膠) 조그마한 아교라는 뜻이다. 아교는 물을 맑게 하는 갖풀이라고 한다. 《포박자(抱朴子)》〈가둔(家遯)〉에 조그마한 아교로는 탁한 황하를 맑게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인용하여 주자가 〈수남헌(酬南軒)〉 시에서 "어찌 알랴 조그마한 아교가, 천 길의 혼탁함을 구할 줄을.〔豈知一寸膠, 救此千丈渾?〕"라고 하였다. 극기(克己)……달렸고 극기는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 것을 말한다.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는 것이 인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면 천하가 인을 허여할 것이다.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하였다. 《論語集註 顔淵》 유유범범(悠悠泛泛) 일을 다잡아 하지 않는 모양을 말한다. 설령……늙었으니 《시경》 〈억〉 제10장에 나오는 말이다. 연빙(淵氷)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매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민(小旻)〉의 "전전긍긍하여 심연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화후(火侯) 도가(道家)의 용어로서 단약(丹藥)을 소련(燒煉)하는 일을 이른 것이다. 참동계의 주에, "옛날부터 《단서(丹書)》가 있어 화후(火侯)의 공용(功用)을 나타냈는데, 이것을 《화기(火記)》라 이른다." 하였다. 금단(金丹) 도가(道家)의 방사(方士)들이 금석(金石)을 정련하여 만든 단약(丹藥)으로, 이것을 복용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하는바, 《포박자(抱朴子)》 내편(内篇) 권1 〈금단(金丹)〉에 "금단의 본성은 오래 달굴수록 그 변화가 더욱더 신묘하다. 황금이 불 속에 들어가면 백 번을 정련해도 녹아 없어지지 않으며, 땅에 묻으면 이 세상이 다할 때까지 썩지 않는다.[金丹之為物, 燒之愈久, 變化愈妙. 黃金入火, 百鍊不消, 埋之畢天不朽.]"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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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강극재에게 지어 준 나의 〈농아〉 시542)에 염재가 차운하여 보내주었기에 주필로 화답하다 念齋次余年前贈姜克齋啞聾詩寄送, 走筆和之 극재가 귀머거리 된 뒤에 후창이 벙어리 되니 克齋爲聾後滄啞두 사람이 서로 가엾게 여겨 농아 노래 불렀다오 兩人相憐歌啞聾모르겠어라 염재는 무슨 일로 不識念齋何事者화답하며 장난삼아 공손룡543)을 만드는가 和歌戱作公孫龍순박한 풍속이 사라진 지 몇 천 년이런가 淳風已死幾千載옛사람은 아득히 멀어 만날 수 없구나 古人遙遙不可逢그대는 세속을 진작시킬 드높은 뜻이 있으니 君有千丈聳俗志홀로 우뚝이 선 모습이 태산과 같아라 屹屹獨立若岱宗교묘한 변론은 예로부터 사람의 거짓으로 귀결되고 巧辯從古歸人僞전일한 정신은 그 유래가 하늘의 총명에서 나온다오 專精由來出天聰허승의 귀 어두운 건 원래 문제될 게 없었고544) 許丞重聽元無傷금인의 입을 봉한 건 무려 세 겹으로 하였네545) 金人緘口三爲重이것은 내 마음을 실제로 수양하는 곳이니 此在吾心實修地어찌 질병에 의탁하여 용모를 가장하겠는가 豈至托病假粧容나는 섭생하는 방법에 능하지 못하니 而余不善攝生術두문불출한 지 삼 년 만에 중풍에 걸렸다오 杜門三載病於風남을 흉내 내는 것은 도리어 허물이 되지 않으랴 效嚬無乃反作尤잘못을 고치려다가 오히려 나쁘게 됨은 따를 수 없도다 矯枉過直不可從나는야 마음속에 아무 것도 없고자 하니 我欲心中無一事공평한 저울과 텅 빈 거울이 필요할 뿐이네 但要衡平與鑑空세상 습속에서 신병이 말끔히 완쾌되는 날에 世習身痾掃盡日즐거운 마음으로 화락하게 금종을 연주하리라 樂意融融鼓琴鍾 克齋爲聾後滄啞, 兩人相憐歌啞聾.不識念齋何事者, 和歌戱作公孫龍?淳風己死幾千載? 古人遙遙不可逢.君有千丈聳俗志, 屹屹獨立若岱宗.巧辯從古歸人僞.專精由來出天聰.許丞重聽元無傷, 金人緘口三爲重.此在吾心實修地, 豈至托病假粧容?而余不善攝生術, 杜門三載病於風效嚬無乃反作尤? 矯枉過直不可從.我欲心中無一事, 但要衡平與鑑空.世習身痾掃盡日, 樂意融融鼓琴鍾. 농아(聾啞) 시 앞에 실린 〈농아의 노래. 극재 강우에게 주다[啞而聾歌 贈克齋姜友]〉라는 시를 가리킨다. 《後滄集 卷31》 공손룡(公孫龍)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변설가로, 명가(名家)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과 견백동이(堅白同異)의 궤변으로 알려져 있다. 허승(許丞)의……없었고 허승은 허씨(許氏) 성을 가진 현승(縣丞)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순리(循吏)인 황패(黃霸)가 영천 태수(潁川太守)로 있을 때, 독우(督郵)가 허승이 늙고 병들어 귀가 어둡다는 이유로 쫓아내려 하자, 황패가 "허승은 청렴한 관리이다. 비록 늙었지만 아직도 절하고 일어나 손님을 맞이하고 보낼 수 있으니, 귀가 어두운 게 무슨 문제가 되었는가.[許丞廉吏, 雖老尙能拜起送迎, 正頗重聽何傷?]"라고 한 고사가 있는데, 이를 원용하였다. 금인(金人)의……하였네 금인은 쇠나 구리 등으로 만든 사람의 상(像)이다. 공자(孔子)가 주(周)나라에 갔다가 태조 후직(后稷)의 사당에 들어갔더니 오른쪽에 금인(金人)이 서 있는데, 입은 세 겹으로 봉해져 있고, 등에는 "옛날에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孔子家語 卷3 觀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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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도명【위석】에게 답함 答宗人道明【暐錫】 6월 7일의 편지가 8월 보름 즈음에 도착하여 비로소 보게 되었다고 하니, 어느 곳에서 지체되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답장이 늦은 허물에 마음이 매우 편치 않습니다. 가을도 저물어 가는데 부모를 모시면서 기쁘고 즐거우며 기거하는데 건강한지 그리움과 걱정이 항상 간절합니다. 보내준 편지 가득 자세하고 길게 썼는데 대단히 꼼꼼하고 치밀하니, 다만 문사 저술의 공이 근래 더욱 발전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곧추 세워 발전하려는 의지를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놓이면서 기쁘니, 우리 가문을 위하여 축하를 합니다. 오호라! 우리 가문이 쇠락이 오래되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면서 항상 깊은 탄식을 일으키는데, 잘 모르겠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씨 과일의 소식170)이 혹시 이에 있는 것입니까. 대단히 노력하여 가정의 기대에 부응하며 가문을 흥기시킬 계책을 세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게으름[懶]'에 대해 말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일반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입니다. 그러나 이는 뜻이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뜻이란 장수이며 기(氣)란 병사입니다. 뜻이 가는 곳에 기가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뜻이 이미 섰다면 또한 경(敬)으로 유지하고 학문으로 밝혀서 날로 달로 매진하여 조금도 멈추지 않는다면 이른바 '게으름[懶]' 한 글자는 햇볕에 눈 녹듯 사라질 것입니다. 주자의 시에서 "어려운 과정을 한번 힘들게 지나치면, 문득 척추가 한번 더 견고해지네."171)라고 하였으니, 이 말을 마땅히 유념해야 합니다. 六月七日書。至八月望間。始得見之。未知何處沈滯。而稽謝之咎。極爲未安。秋令載暮。侍省歡慶。起居百福。瞻溯每摯。示喩滿幅覶縷。極其縝密。不惟文辭著述之功。近益長長。而立心向上之意。藹然可觀。區區慰悅。竊自以爲吾門賀也。嗚乎。吾門之落莫久矣。瞻顧四方。每切喟然未知至於今日。而碩果消息。其或在是歟。千萬勉力。以塞家庭之望。以立門戶之策如何。一懶字云云。此固衆人通患。然此是志不立之故也志者帥也氣者卒徒也志之所至氣安得不從乎。志旣立矣。則又且敬以持之。學以明之。日月征邁。無容間斷。則所謂懶一字者。不啻若見睍矣。朱子詩曰捱得一番難境界。便添脊骨一番堅。此言當留念也。 씨과일의 소식 앞의〈답칠송순강회(答七松旬講會)〉에 보인다. 어려운……견고해지네 주자의 〈임중(任重)〉이란 시에 보이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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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견10)【국정】에게 답함 答安舜見【國禎】 며칠 전 귀성(貴星 상대방의 심부름꾼)이 왔을 때 바쁘다 보니 답장을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요사이 날이 맑고 따뜻한데 상중(喪中)의 체후는 편안하시며, 일마다 성찰하고 이르는 곳마다 스스로 살피고 궁구하는 일로 눈앞에 닥친 응수(酬應)와 일상의 공부가 서로 배치되는 일은 없으십니까. 학자(學者)의 병통은 바로 이치와 일을 각각 둘로 구분하는 데 있으니, 이것은 자신을 채찍질하여 자신과 아주 가깝게 할 수 없는 병통입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존심양성(存心養性)을 하지 못한다면 단지 말일 뿐이다."11)라고 하였으니, 이 말을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아우는 평소 남보다 모자란 자질에 꾸물대다가 때를 놓치는 일이 더해져 나이는 많아지고 기력은 쇠퇴한 채 온갖 일에 바빴습니다. 시인(詩人)이 말한 "내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 것을."12)라는 것이 시로 내 마음을 먼저 포착한 말입니다. 강생(姜生)의 문목(問目)에서 주해(註解) 운운한 조목의 말은 주서(朱書)에 보이는지요? 아우는 참으로 전날의 제 주장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곧 "참되고 고요하다는 것은 이(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미발(未發)은 심(心)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라고 다시 바로잡았습니다. 지금 형의 말씀을 보니 더욱 의혹이 사라져 크게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입니다. 혼백 운운한 것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음양(陰陽)은 서로 그 속에 내재하여 본래 칼로 자르듯 음이 되고 양이 되는 이치가 없습니다. 혼(魂)은 양의 영(靈)이고 백(魄)은 음의 영이며, 혼은 발용(發用)을 위주로 하고 백은 수장(收藏)을 위주로 합니다. 이것은 큰 구분입니다. 그러나 수장처(收藏處)에 발용함이 있고 발용처에 수장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서로 내재하는 것입니다. 입이 맛을 알고 코가 냄새를 아는 것은 본래 백(魄)이지만 혼(魂)도 그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거울의 바탕이 본래 밝고 물의 표면이 본래 맑은 것은 백이지만 광채가 밝게 드러나고 사물을 만나면 반드시 비추는 것은 혼인 것과 같습니다. 어찌 칼로 자른 듯이 혼이 되고 백이 되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다시 세세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日者貴星之來。緣忙稽謝。卽日晴暄。孝候支迪。隨事省察。隨處體究。有以見眼前酬應與日用工夫。不相背馳否。學者之病。正在於理事各成兩截處。此是不能鞭辟切近之病。程子曰。若不能存養。只是說詁。此言當深念也。弟素以不逮之質。加以因循失時。年力衰替。百故鞅掌。詩人所謂知我如此。不如無生。實是先獲我心者也。姜生問目一條語註解云云見於朱書耶弟固知前日鄙說之有未盡處。旋復改之曰。眞而靜是理上說。未發是心上說。今見俯示。尢覺釋然。其感幸大矣。魂魄云云。夫陰陽互藏其宅。本無截然爲陰爲陽之理。魂者陽之靈。魄者陰之靈。魂主發用。魄主收藏此則大分也。然收藏處有發用。發用處有收藏。此則互藏也。口之知味。鼻之知臭。固魄也。而魂亦在其中。如鑑之地本明。水之面本淸者。魄也。而其光彩著見。遇物必照者。是魂也。豈有截然爲魂爲魄之理也。更望細思。 안순견 순견(舜見)은 안국정(安國禎, 1854∼1898)의 자이다.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송하(松下)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집(松沙集)》 권38에 〈송하거사안공묘갈명(松下居士安公墓碣銘)〉이 실려 있다. 만약……뿐이다 정호(程顥)의 말로,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에 보이며,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存養)〉에도 채록되었다. 내가……것을 《시경(詩經)》 〈초지화(苕之華)〉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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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성에게 써 주다 書贈金子惺 주부자(朱夫子)가 말하기를, "학자에게는 인순(因循)111)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112)라고 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학자가 띠에 적어놓고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사항이다. 좋은 일이 지나가고 궂은일이 다가와도 여전히 뜻이 없는 자는 진실로 말할 가치가 없다. 간혹 뜻을 지녔지만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모두 인순(因循)이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아, 내가 약관(弱冠)이었던 시절에 향리의 노 선생들로부터 옛사람의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대해 듣고 일찍이 조금이라도 스스로 힘을 다하여 노력하려는 뜻을 지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었지만 거칠고 서툴며 번거로움을 싫어하여 경전(經典) 한 권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이치를 궁구하였지만 진지하게 힘을 쏟지 않아 한 가지도 쇄락(灑落)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리고 경(敬)을 위주로 하였지만 조장(助長)과 망각(忘却)113)이 서로 번갈아 일어나고 세상을 살아가는 몸가짐은 허물이 날로 쌓여갔다. 기대하며 기다리기도 하고 골몰했건만 모두 가버리기도 하여 어제 후회한 일은 오늘 고치기 어려웠고 지난해에 의심스럽던 사항은 올해에도 명백히 밝히지 못하였다. 이윽고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아 귀밑의 검은 머리는 이미 희끗희끗해졌다.아, 이것이 어찌 애초의 생각이었겠는가. 천지 간에 형체를 부여받아 사람이 되었건만 끝내 물고기나 금수(禽獸)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천 번을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고 만 번을 후회한들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않느니만 못하였다."114)라는 말을 되새길 때마다 저절로 삶이 애처로울 뿐이다.기축년(1889, 고종26) 겨울에 김군 자성(金君子惺)이 벽산 서사(碧山書舍)에서 나와 종유(從遊)하였는데 서로를 대한 지 두세 달이 지나자 나에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항상 살펴야 하는 말 한마디를 청하였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배고프고 목마른 자에게 먹고 마실 것을 구하고 귀머거리나 장님에게 눈과 귀를 빌리는 이치가 있겠는가. 내 마음을 되돌아보면 그대를 성장하게 할 수 있는 약간의 지식도 없고 오직 일찍이 인순(因循)으로 스스로 잘못되었던 경험만 있을 뿐이다. 사양하지 못하여 이것으로 거울과 전철의 경계로 삼으니 괜찮겠는가?"라고 하였다. 朱夫子曰。學者最怕因循。此誠學者書紳而服膺處也。熙往穰來。悠悠無志者。固不足道。其或有志而同歸泯然者。此皆因循爲崇也。嗚呼。余在弱冠時。從鄕里諸老先生。聞知古人爲己之學。而未嘗無一分自效之意。讀書而鹵莽厭苦。未有一經記熟。窮理而含糊不力。未有一事脫落。主敬而助忘相禪。行己而愆尤日積。或期擬而等待。或汨沒而俱往。昨日所悔。今日難改。前年所疑今年未瑩。旣而靈曜纖阿。不我延待。而鬢畔黎黑。已屬星星矣。嗚呼。此豈初料哉。上穹下際。賦形爲人。而竟未免鱗介飛走之歸。千悔無及。萬悔何益。每誦知我如此不如無生之語。而自哀其生而已也。己丑冬。金君子惺從余於碧山書舍。相對兩三月。請余一言爲日用顧諟之方。余曰。求飮食於飢渴。借視聽於聾盲。有是理哉。回視胸中。無一如半解可以相長者。而惟有曾經已試底因循自誤的而已。旣不得辭。則以此爲鑑車之戒。可乎。 인순(因循) 낡은 인습을 버리지 못하고 따르는 것을 이른다. 학자에게는……일이다 《주자어류》 권113 〈훈문인(訓門人)〉에 보인다. 조장(助長)과 망각(忘却)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힘쓰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고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이럴……못하였다 《시경》 소아(小雅) 〈소지화(苕之華)〉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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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선사193)의 비석을 보고 觀眞鑑禪師碑 유학엔 큰 근본과 공인된 도리가 있고 儒有大本與達道허무적멸194)은 불가에서 중히 여기네 虛無寂滅佛所寶동정과 체용은 본래 절로 다른데 動靜體用本自殊뒤섞여 분별이 없어 이미 분명하지 않네 混而無分已糊塗공자는 열고 석가는 다함195)이란 무슨 말인가 孔發釋窮是何言유학 끌어와 불교로 들어갔다 불교를 도리어 높였네 援儒入佛佛反尊고운이 어찌 유학자의 아들이 아니겠는가마는 孤雲豈非儒家子명성과 실상이 서로 같지 않음이 아니겠는가 無乃名實不相似퇴계196) 이후로 연재197)와 간재198)에 이르렀으니 退溪以後逮淵艮진실로 유래가 있는 천추의 의론이라네 良由以來千秋論 儒有大本與達道, 虛無寂滅佛所寶.動靜體用本自殊, 混而無分已糊塗.孔發釋窮是何言? 援儒入佛佛反尊.孤雲豈非儒家子? 無乃名實不相似?退溪以後逮淵、艮, 良由以來千秋論. 진감선사(眞鑑禪師)의 비(碑) 국보 제47호 하동 쌍계사에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인 진감선사의 탑비이다. 진감선사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로,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숭려가 되었으며,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부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허무적멸(虛無寂滅) 허무는 도(道)의 본체는 허무하다는 노자(老子)의 사상이고, 적멸은 생사를 초월한 열반(涅槃)의 세계로 불교의 사상이다. 공자가……다함 《고운집》 권2 〈진감 화상 비명(眞鑑和尙碑銘)〉에 "심약의 말 중에 '공자는 단초를 열었고 석가는 극치를 다했다.'라는 말이 있다. 그는 대체(大體)를 안 자라고 이를 만하니, 이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지극한 도에 대해서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교가 심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말하면 현묘하고 현묘해서 어떤 이름으로도 이름 지을 수가 없고 어떤 설명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비록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뜻이나 앉아서 잊는 경지를 체득했다고 할지라도, 끝내는 바람이나 그림자를 붙잡아 매기기 어려운 것처럼 표현하기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沈約有云, 孔發其端, 釋窮其致. 眞可謂識其大者, 始可與言至道矣. 至若佛語心法, 玄之又玄, 名不可名, 說無可說. 雖云得月指或坐忘, 終類係風影難行捕.〕"라는 말이 나온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호이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호(景浩), 다른 호는 지산(芝山)ㆍ퇴도(退陶),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주자학을 심화 발전시켜 이후 도학의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저서에 《퇴계집》이 있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호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화옥(華玉), 다른 호는 동방일사(東方一士),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9세손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처형할 것을 주장하는 한편, 그 반대 운동을 계속하다가 국권이 강탈된 것에 대한 통분으로 자결하였다. 저서에 《연재집》이 있다.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호이다.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자명(子明), 다른 호는 구산(臼山)ㆍ추담(秋潭)이다. 임헌회의 문인이며, 후창 김택술의 스승이다. 만년에 전라도 계화도(繼華島)에서 후진을 많이 길러 냈다. 도학의 연구와 도통의 계승을 중시하였고, 도학의 중흥이 국권 회복의 길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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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여의 자에 대한 설 魏雲汝字說 용은 만약 구름을 일으키지 못하면 용이 아니다. 굳이 우리에 가두어 기르면 개나 양과 같고, 새장에 가두면 매와 같다. 그러나 구름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하늘로 오르기도 하고 땅으로 내려오기도 하여 신령스러운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구름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용의 덕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깊은 연못 아래에 숨어 있고 천 길 깊은 곳에 틀어박혀 있어도 갈수록 더욱 깊이 잠기고 갈수록 더욱 고요하여, 보통의 물고기가 그러하듯 서로 어울려 출입을 하고 무리를 이루어 오고 간 적이 없으니 하루 이틀 쌓인 것이 아니다. 가장 깊이 잠겨있는[至潛] 것은 반드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至著] 쓰임이 있고 지극히 고요한[至靜] 것은 반드시 지극히 움직이는[至動] 오묘함이 있으니 용의 덕은 이로써 이루어지고 덕이 이루어지면 구름이 뒤따른다.나의 벗 위군 계룡(魏君啓龍)이 이미 '용(龍)' 자로 이름을 정하였으니 용이 되는 방법을 찾아서 자(字)를 지어야 마땅하건만, 도리어 이와 반대로 결국 궁극에는 저절로 이르는 '운(雲)'을 자로 삼았는가. 아, 용이 되어 구름을 기약하는 것은 학문을 하여 신(神)을 궁구하고 조화를 아는 것[窮神知化]142)을 기약하는 것과 같다. 궁신지화(窮神知化)가 비록 성대하게 길러서 저절로 이르는 것143)이라고 하더라도 표준과 지향은 그치지 않는 데 있다. 《주역》에 이르기를, "용과 뱀이 숨는 것은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함이다."라고 하고, "의(義)를 정밀히 연구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치용(致用)을 위함이다."144)라고 하였다. 운여(雲汝)는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여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기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천하가 문명(文明)이 이루어지는 날 혹 뛰어오르거나 밭에 있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145) 龍而不雲非龍也。必牢而畜之如犬羊。籠而縶之如鷹隼。惟其能雲。是以或升或降。靈變不測。然此非雲之力。乃龍之德有以致之也。藏於九淵之下。縶於千仞之深。潛而愈潛。靜而愈靜。未嘗唯唯而出入。洋洋而往來。如凡魚之爲者。非一日二日之積矣。至潛者必有至著之用。至靜者。必有至動之妙。而龍之德。得以成焉。德成而雲從之矣。余友魏君啓龍。旣命名以龍。則當求其所以爲龍者以表德焉。乃反以在外之雲究竟自至者而爲之耶。噫龍而期於雲。猶學而期於窮神知化也。窮神知化。雖云養盛自至。而所以爲標準向望。則在所不已。易曰。龍蛇之縶。以存身也。精義入神。以致用。願雲汝顧名思義。勉勉不措。則安知無或躍在田。天下文明之日也。 신(神)을……아는 것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자벌레가 몸을 굽혀 움츠리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해서이고, 용과 뱀이 땅속에 숨는 것은 몸을 보전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의(義)를 정밀히 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감은 장차 극진하게 쓰기 위해서이고, 쓰는 것을 이롭게 하여 몸을 편안히 함은 덕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 단계를 지나서 더 나아가면 혹 헤아릴 수 없으니, 신(神)을 궁구하여 조화를 아는 것이 덕의 성대함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궁신지화가……이르는 것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신화(神化)〉에 나오는 말이다. 의(義)를……위함이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보이는 말이다. 천하가……알겠는가 《주역》 건괘(乾卦) 구이(九二)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음이니, 대인을 만나 보는 것이 이롭다." 하였는데, 그 문언전(文言傳)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문명하다는 것이다.[見龍在田 天下文明]" 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다. '혹 뛰어오른다'라는 말은 건괘 구사(九四)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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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 형중 권하 에게 주다 贈金生亨仲【權夏】 천하의 일에 대해서 뜻을 세웠으나 이루지 못한 자들이 오히려 많다. 하물며 뜻이 없건만 성취하는 바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일상의 예사로운 것들, 예컨대 물을 긷고 땔나무를 하는 일165), 꽃을 보고 버들을 꺾는 일166) 등 모두 그러하다. 하물며 평소에 자기 자신과 집안을 위한 커다란 공부, 커다란 사업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뜻이 확립되지 않으면 한때의 선심(善心)이나 호의(好意)는 기름으로 그린 그림, 얼음으로 새긴 조각에 지나지 않고, 여러 경전(經典)의 격언(格言)이나 핵심적인 가르침은 문구(文具)나 책을 쌓아놓기만 한 책방에 지나지 않는다. "학문은 가장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167)는 선유(先儒)의 말이 이것이다.김군 형중보(金君亨仲甫)가 나에게 일찍이 말 한마디를 청하였으나, 그 뜻이 매우 가상하였지만 군(君)은 입지(立志)의 첫 번째 착수처에 대해서 이미 깨닫고 체득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러 경전의 말씀 하나하나에 대해서 반드시 문구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고 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어찌 지리멸렬하다 늙어버려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겠는가. 아니면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듯한 마음으로 다식(多識)하면서도 과문(寡聞)한 사람에게 묻고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자에게 묻는 것이 고인(古人)과 같아서인가?168) 후의(厚意)를 저버리기 어려워 삼가 '입지(立志)' 2자를 경계로 올린다. 이미 알고 있는 소릉(昭陵)이라고 소홀히 하지 말고 더욱 힘쓰기를 바랄 뿐이다. 天下事。有志而未就者尙多。況無其志而能有所就乎。尋常日用。如運水搬柴看花折柳。無不皆然。況平生身家大功夫大事業乎志。苟不立則一時之善心好意。不過爲脂畵氷鏤群經之格言要誨。不過爲文具書肆。先儒所謂學莫先於立志者。此也。金君亨仲甫向余曾有一言之請。其意非不可尙。但未知君於立志一着。已有所理會而體當者耶。然則於群經言言。必不看作文具而其所求所須。無所不備。何侍乎滅裂老昏者之一言乎。抑以其如恐不及之意。或有出於問。寡問不能如古人耶。厚意難孤謹以立志二字奉規焉。勿以已見之昭陵而略之。更加勉旃是所望也耳。 물을……하는 일 물 긷고 땔나무 하는 일상적인 일이 곧 신통(神通)이며 묘용(妙用)이라는 주장은 당나라 때의 사람으로 선종(禪宗)에 통달한 방온(龐薀)의 게송(偈頌)에 나오는 말이다. 꽃을……꺾는 일 주희의 〈답여자약서(答呂子約書)〉에 "불서(佛書)에 능(能)과 소능(所能)에 관한 설이 있는데 능은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고 소능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도(道)는 소능에 해당하고 학(學)은 능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지금 아이들이 대구(對句)를 지을 때 '꽃을 보고 버들을 꺾는다[看花折柳]' 하는데, 여기서 보고 꺾는 행위는 능이고 꽃과 버들은 소능이다.[佛書, 有能與所能之說, 能謂人所做作, 所能謂人所做作底事. 如道則所能之謂, 學卽所謂能也. 如今小兒屬對, 看花折柳, 看與折字是能, 花與柳是所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학문은……한다 이이(李珥)가 《성학집요(聖學輯要)》 〈수기 제2상(修己第二上)⋅입지장 제2(立志章第二)〉에서 한 말이다. 다식(多識)하면서도……같아서인가 《논어》 〈태백(太白)〉에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자에게까지 물어보고, 박학다식하면서도 천학 과문한 자에게까지 물어보고, 있어도 없는 듯하고, 찼어도 빈 듯하고, 누가 덤벼들어도 따지지 않는 이런 태도를 옛날에 우리 벗이 지니고 있었다."라는 증자(曾子)가 안연(顏淵)을 평한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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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사에 머물며 김군식에게 써 주다 留新安社。書贈金君式。 고(故) 대곡옹(大谷翁)46)은 우리 사문의 고족(高足 뛰어난 제자)으로, 그의 학술과 행실은 한 시대의 으뜸이 되고 후학의 모범이 될 수 있었는데, 사문(斯文)이 복이 없어 중도에 갑자기 삶이 멈추어 오래도록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기며 슬퍼하였다.임인년(1902) 봄에 내가 사문(師門)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47)로 강성(江城 경남 산청의 옛 지명)의 신안사(新安社)에 갔었는데, 당시에 산석옹(山石翁)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한 소년이 그를 만나보게 하고 말하기를, "이 분은 대곡옹 집안사람으로, 자(字)가 군식(君式)입니다."라고 하였는데, 그의 부친과 여러 종친들이 대곡옹의 유고(遺稿)를 간행할 것을 도모하여 한창 글을 거두어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보내 여기에 오게 된 것이었다.아, 대곡을 보지 못한 지 이십 년 만에 비로소 그 집안사람을 보게 되었으니, 슬프면서도 위안이 되는 마음이 어찌 원빈(元賓)48)을 만나는 것과 같을 뿐이겠는가. 더욱이 그의 문장을 모아 책으로 간행하여 대곡으로 하여금 백세토록 썩어 없어지지 않게 하였으니, 종친을 돈독히 하는 의리와 어진 이를 숭상하는 정성은 참으로 세상에 좋은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군식을 삼가 살펴보건대, 함께 지내는 여러 날 동안 몸가짐이 한결같아 지초(芝草)의 뿌리와 예천(醴泉)의 원천임을 또한 속일 수 없었고, 분연히 뜻을 세워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 대곡의 도로 하여금 문정(門庭) 사이에서 실추되지 않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김씨(金氏) 한 가문만의 복일뿐이겠는가. 생각건대, 존대인 어른이 오늘날 애를 태우며 마음을 쓰고, 피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것이 이러한 뜻이 아니라고 기필하지는 못할 것이다. 故大谷翁我師門高足。其學術行義。足以爲一世之冠冕。來學之標範。斯文無祿。中途遽閼。而爲有識之怊悵久矣。歲壬寅春。余以師門刊事。到江城之新安社。時山石翁在座。一少年使見之曰。此卽大谷翁門內人。字君式也。其大人丈與諸宗。謀刊大谷翁遺稿。而方收聚文字。故送此人來此也。嗚呼。不見大谷二十年。乃見其門內人。其悲慰之情。豈惟如見元賓而已。況收其文刊其書。使大谷不朽於百歲。其惇宗之義。尙賢之誠。信不可謂世無好人也。竊覸君式。相處累日。操守有常。芝醴根源。又不可誣矣。奮然立志。循循不舍。使大谷之道。不墜於門庭之間。此豈惟爲金氏一門之福也耶。尊大人丈今日所以若心血力者。想未必非此意云爾。 대곡옹(大谷翁) 19세기 유학자인 김석구(金錫龜, 1835~1885)로, 대곡은 그의 호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인으로, 일신(日新) 정의림(鄭義林),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奎)와 더불어 노문 삼자(三子)라 일컬어졌다. 임인년(1902)……일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 등과 함께 경남 산청의 신안정사(新安精舍)에서 스승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집을 목판으로 삼간(三刊)한 일을 말한다. 원빈(元賓) 원빈(元賓)은 당나라 때의 문장가인 이관(李觀)의 자로, 한유(韓愈, 768~824)의 절친한 친구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에 한유와 함께 문장 공부를 하면서 서로 우열을 다툰다는 명성이 있었는데 29세에 요절하였다. 한유는 이관이 죽은 뒤에 이사석(李師錫)에게 답한 편지에서 "원빈을 생각하지만 보지 못하여 원빈이 사귀던 사람을 보면 곧 원빈을 보는 듯하다.[思元賓而不見, 見元賓之所與者, 卽如元賓焉.]"라고 말하였다. 《韓昌黎集 卷3 答李秀才書》 여기에서는 대곡 김석구를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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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29년 임피유생(臨陂儒生) 채홍운(蔡弘運)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己丑十月 日 蔡弘運 御史道 己丑十月 日 蔡弘運 暗行御史 전라북도 군산시 暗行御史[署押] 3개(적색, 원형) 임피 김정우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829년 10월에 임피현(臨陂縣)의 유생 채홍운(蔡弘運) 등 34명이 암행어사(暗行御史)에게 올린 상서(上書). 1829년 10월에 임피현(臨陂縣)의 유생 채홍운(蔡弘運) 등 34명이 암행어사(暗行御史)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이들은 이 상서에서 임피 출신의 유생 고(故) 김정우(金鼎祐)와 그 아들 김덕강(金德鋼), 손자 김지황(金之璜)의 뛰어난 효행을 열거하면서,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친 보기 드문 효행을 조정에 알려 정려의 특전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기축년으로 되어 있는데, 『승정원일기』 고종 5년 4월 9일 기사에 각도에서 올린 정려 요청 건을 조정에서 논의하는 내용 가운데 마침 임피의 김정우와 관련된 기록이 실려 있어서 작성연대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때에는 임피에 사는 고 학생 김정우와 그의 아들 김덕강과 그의 손자 김지황과 증손 김기회(金驥會), 김태회(金駾會) 등 4대의 여섯 효자에 대하여 정려해 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3대의 정려를 요청한 기축년은 고종 5년보다 앞선 기축년, 즉 1829년(순조 29)으로 추정된다. 김정우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이 들었을 때에는 6월에 오리가 저절로 품안으로 날아들었는가 하면, 9월에 앵두나무에 열매가 맺어 병중의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과 열매를 드릴 수 있었다. 또한 부모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약과 함께 드렸으며, 대변을 맞보면서 부모의 증세를 관찰하였다. 마을사람들이 그 효행에 감복하여 향리와 감영을 거쳐 조정에 정려를 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아직껏 정려를 받지 못하였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김효자라고 불렀다. 김정우의 아들 김덕강도 어려서부터 보기 드문 효자이자 형제간에 우애가 깊은 인물로 향리에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나이 60세와 70세 때 각각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했을 때에도 예를 다하며 장사를 치렀으며, 10여 리(里)나 멀리 떨어진 부모의 산소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다니면서 호곡(號哭)을 하였다. 김덕강의 아들 김지황도 효행이 깊어 초봄인데도 부친의 숙환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부친에게 대접하였다. 부친의 병세가 심해지자 대변을 맞보면서 증세를 관찰하였고,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부친에게 마시게 하여 연명하도록 하였다. 모친이 병들었을 때에도 약을 대접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임피의 유생들은 이처럼 뛰어난 효행을 반드시 조정에 알려 정려의 혜택을 받게 해달라고 암행어사에게 탄원을 올렸다. 이에 대하여 암행어사는 한 집안에서 세 명의 효자가 나온 것은 척박한 풍속에 모범이 되는 일로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지만, 임금에게 이를 아뢰는 일은 신중히 해야 하는 일이니 마땅히 잘 헤아려서 처리하겠다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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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세고》 서문 鄭氏世稿序 무릇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이 몸은 선조가 남겨준 기(氣)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씨를 뿌리고 계속해서 태어나고 태어났기에 그 소속감이 가장 친근하고, 그 은혜가 가장 절실하다. 그러나 세대가 번갈아 바뀌고, 옛날과 오늘날이 매우 동떨어지면서 그 용모와 기상을 볼 수 없고, 그 음성과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그 움직임과 행위를 알 수 없게 되니, 이처럼 기운이 같고 친근함이 절실했던 사이가 소원해지고 서먹해져서 또 이와 같이 되는 것인가. 추억하고 상상하여 비슷하게나마 마치 조상이 계시는 듯이 여긴다는 뜻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유언(遺言)과 유서(遺書) 뿐일 것이다.우리 선세(先世)는 평소 문학(文學)과 벼슬로 조선 중기에 저명하였으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극도로 쇠락해졌다. 이리저리 떠돌며 외롭고 고달파서 자신을 보존하는 데에 겨를이 없으니, 반남(潘南)의 옛터는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파묻혔고, 가야(伽倻)의 선롱(先壟 조상의 무덤)은 소슬하게 구슬픈 바람만 불고 있다. 아, 남쪽 월(越) 땅의 새와 북쪽 오랑캐 땅의 말들도 오히려 애틋하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이 있는데, 하물며 이런 지경에 이른 사람이야 하늘에 닿는 슬픔과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어떠하겠는가.용모와 음성은 형세상 본디 막연해지겠지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문고(文稿)마저도 또한 흩어지고 사라져서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젊은 시절부터 샅샅이 찾아서 짧은 말이나 글을 만나게 되면 금가루처럼 아끼고 거두어 모아두었다가 이를 합쳐 책으로 만들어 《정씨세고(鄭氏世稿)》라 명명하였다. 그사이에 간혹 삭제해야 한다고 말할 만한 것이 없지 않겠지만, 삭제하여 근거로 삼을 바를 독단적으로 없애는 것보다는 어찌 보존하여 살펴볼 바가 있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선조의 세대로부터 세월이 오래 지났을 뿐만 아니고, 선조의 고향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졌을 뿐만이 아니지만, 선조의 기상과 말이 이 책에 갖추어져 있으니, 말을 완미(玩味)하고 그림을 살펴보면 마치 직접 음성과 용모를 받드는 것처럼 황홀하여 백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 우리 선조의 자손들이 이 책을 보고서 슬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사람의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대대로 전할 덕을 세워 내려주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느끼고, 가문의 운이 쇠락한 지 오래되었음을 슬퍼한다면, 몸을 삼가고 학문에 힘쓰며,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종족을 보존하여 선조의 일을 계승하여 완성시킬 바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니, 아마 이것을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을 것이다. 夫人之有此身。孰非祖先之遺氣哉。種下種子。接續生生。其屬爲最親。其恩爲最切。然世代迭遷。今古懸隔。其面貌氣象。不可得以見矣。聲音笑語。不可得以聞矣。動靜作爲。不可得以知矣。以若一氣親切之地。而其疎且闊。又如此耶。若其追惟想象。以寓彷彿如在之意。則其惟遺言遺書乎。我先世。素以文學仕宦。著名中葉。而零替至今日而極矣。流離孤苦。不遑自存。潘南遺墟。荒草蕪沒。伽倻先壟。悲風蕭瑟。嗚呼。越鳥胡馬。猶有懷本戀戀之情。況人生到此。而其窮天之感。切骨之痛。爲何如哉。面貌聲音。勢固漠然。而至於世傳文稿。亦且散逸無有存者矣。余自早歲。到底搜覓。遇片言隻字。愛如金屑而收拾之。合以成編。名之曰鄭氏世稿。其間或不無存削之可言。然與其削之而專無所據。曷若存之而俾有所稽耶。去先祖之世。不啻久矣。去先祖之鄕。不啻遠矣。而先祖之氣象言辭。具在於是。玩辭考畵。怳若親承音容。而不知百世之爲曠也。嗚呼。爲吾祖子孫者。覽是書而無悲感之心。則其可謂人情乎。感世德創垂之艱。悲家運零替之久。謹身力學。宜家保族。圖所以繼述成立之地。蓋將有不能已焉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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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세철 형덕 에게 지어 주다 ○기축년(1949) 贈張君世澈【炯德○己丑】 군의 재주와 학업을 옥처럼 갈고 닦아 擬君器業玉磨成명성을 백세에 떨치게 하려 한다오 可使聲譽百世鳴종국에 공자와 안연의 즐거움282)을 알고자 한다면 究境欲知孔顔樂처음에 사마광과 유안세의 성실함을 먼저 써야 한다네283) 入頭先用馬劉誠일월을 우러러보니 단심이 밝게 비추고 仰瞻日月丹心照천지에 홀로 우뚝 서니 호연지기가 솟아나네 獨立乾坤浩氣生문 밖의 봉산284)은 온통 짙푸른 빛깔인데 門外蓬山蒼一色서로 바라보며 글로 쓰지 않는 맹세를 맺으리라285) 相看應結不書盟 擬君器業玉磨成, 可使聲譽百世鳴.究境欲知孔顔樂, 入頭先用馬劉誠.仰瞻日月丹心照, 獨立乾坤浩氣生.門外蓬山蒼一色, 相看應結不書盟. 공자(孔子)와 안연(顔淵)의 즐거움 가난한 생활을 편안하게 여기고 도를 추구하는 즐거움을 말한다. 공자가 일찍이 제자 안연을 칭찬하기를 "어질다, 안회(顔回)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마을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 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賢哉, 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사마광(司馬光)과 유안세(劉安世)의 성실함 송(宋)나라의 유안세가 일찍이 스승 사마광에게 마음을 다하고 몸을 행하는 요점 중에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을 묻자, 사마광은 "성실함일 것이다.[其誠乎.]"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유안세가 "이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사마광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自不妄語始.]"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봉산(蓬山)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는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서로……맺으리라 봉래산과 맹세를 맺는다는 것은 장차 속세를 떠나 봉래산에 은거할 것을 맹세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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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근심하다 憂學 시청은 늘 외물과 사귀는 걸 근심해야 하고287) 視聽常憂物物交마음은 띠풀이 길을 막을까 두려워해야 한다오288) 心官却怕塞蹊茅치지는 밝게 비추는 등롱불과 같아야 하고 致知要似燈籠照처의는 거문고 기러기발에 아교를 칠하지 말아야 하네289) 處義休將瑟柱膠소로는 자기 분수에 편안함을 추구할 뿐이었고290) 邵老只求安己分자운은 남의 조롱을 해명하느라 일이 많았다네291) 子雲多事解人嘲가을 오자 금단292)을 바라는 마음이 점점 절실해지니 秋來轉切金丹望언제나 공이 이루어져 상제의 가르침에 감격할거나 何日功成感帝敎 視聽常憂物物交, 心官却怕塞蹊茅.致知要似燈籠照, 處義休將瑟柱膠.邵老只求安己分, 子雲多事解人嘲.秋來轉切金丹望, 何日功成感帝敎? 시청(視聽)은……하고 송(宋)나라 정이(程頤)의 사물잠(四勿箴) 가운데 〈시잠(視箴)〉에 "외물의 가림이 눈앞에서 사귀면, 마음은 그리로 옮겨간다.[蔽交於前, 其中則遷.]"라고 하고, 〈청잠(聽箴)〉에 "지각이 외물에 유혹되고 외물과 동화하여, 마침내 그 바름을 잃게 된다.[知誘物化, 遂亡其正.]"라고 하였는데, 이를 원용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마음은……한다오 맹자(孟子)가 고자(高子)에게 "산속의 오솔길이 잠깐 사용하면 길을 이루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 길을 막나니, 지금 띠풀이 그대의 마음을 꽉 막고 있구나.[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塞之矣. 今茅塞子之心矣.]"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의리(義理)의 마음이 사욕에 의하여 꽉 막힌 것을 뜻한다. 《孟子 盡心下》 거문고……하네 조(趙)나라의 명신 인상여(藺相如)가 조괄(趙括)에 대해 "왕께서 명망이 있다는 이유로 조괄을 쓰는 것은 기러기발에 아교를 칠해 놓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한갓 그의 아비가 지은 책만 읽어서 임기응변할 줄을 모릅니다.[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 不知合變也.]"라고 말한 고사를 가지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즉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소로(邵老)는……뿐이었고 소로는 송(宋)나라의 학자인 소옹(邵雍)으로, 그의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와(安樂窩), 시호는 강절(康節)이다. 그의 〈어느 곳이 선향인가[何處是仙鄕]〉 시에 "만일 분수를 편안히 여길 수 있다면, 모두가 유별난 생각보다 나을 것일세.[若能安得分, 都勝別思量.]"라고 하였다. 《擊壤集 卷13》 자운(子雲)은……많았다네 자운은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양웅(揚雄)의 자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사부(辭賦)를 잘 지었으며, 빈천하면서도 부귀영달에 급급하지 않았다. 《주역》을 모방하여 《태현경(太玄經)》을 짓고 《논어》를 본떠 《법언(法言)》을 지었는데 글이 아주 심오하였다. 양웅이 애제(哀帝) 때 승진할 생각은 하지 않고 《태현경》을 지으면서 담박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혹자가 그에게 도가 아직 깊지 못해서 곤궁한 게 아니냐고 조롱하자, 그가 〈해조부(解嘲賦)〉를 지어 혹자의 조롱을 해명한 고사가 있다. 《漢書 卷87 揚雄傳》 금단(金丹) 고대에 방술사들이 연금(煉金)하여 만들었다는 단약(丹藥)으로, 이 약을 먹으면 장생불로(長生不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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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자의 설로 재차 장세철에게 지어 주다 欽字再贈張世澈 성문의 흠자는 당요로부터 비롯되었으니293) 聖門欽字自唐堯한 번 공부에 착수하면 만악이 사라진다오 一著工夫萬惡消여기에 학문을 힘쓰면 시종을 이룰 수 있고 勉學於斯成始末이로써 경전을 궁구하면 강목을 꿰뚫을 수 있네 窮經以是貫綱條맑은 마음은 네모난 연못의 물과 같고294) 澄心有若方塘水전일한 뜻은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처럼 해야 하네295) 專意須如獨木橋추자의 우산장296)을 그대는 한번 읽어보게나 鄒子牛山君試讀허명한 기상이 새벽에 보존되어 있다오297) 虛明氣像在平朝 聖門欽字自唐堯, 一著工夫萬惡消.勉學於斯成始末, 窮經以是貫綱條.澄心有若方塘水, 專意須如獨木橋.鄒子牛山君試讀, 虛明氣像在平朝. 성문(聖門)의……비롯되었으니 《서경》 〈요전(堯典)〉에서 요(堯) 임금의 덕을 칭송하면서 "공경하고 밝고 문채 나고 생각함이 편안하고 편안하다.[欽明文思安安]"라고 하였는데,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맑은……같고 원문의 방당(方塘)은 사람의 마음 곧 방촌(方寸)을 비유한 것이다. 남송(南宋) 주희(朱熹)의 〈관서유감이수(觀書有感二首)〉 시에 "반 이랑 네모난 연못에 한 거울이 열리어, 하늘 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누나. 묻노니 너는 어찌 이렇게 맑을 수가 있느뇨, 근원에서 흐르는 물이 내려오기 때문이겠지.[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하였다. 《晦庵集 卷2》 전일한……하네 외나무다리는 위태로운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뜻을 전일하게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9 복주(福州) 대안선사(大安禪師) 조에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독목교 위를 지날 때 또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해야 한다.[如人負重擔, 從獨木橋上過, 亦不敎失脚.]"라고 하였다. 추자(鄒子)의 우산장(牛山章) 추자는 추(鄒) 땅 사람인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우산장은 《맹자》 〈고자 상(告子上)〉의 장명이다. 이 우산장에는 사람의 양심(良心)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말하였는데, 양심을 기르자면 우산(牛山)에서 자라고 있는 초목의 야기(夜氣)를 잘 보전시켜 주는 것과 같이해야 한다고 하였다. 허명(虛名)한……있다오 허명한 기상은 맹자(孟子)가 말한 야기(夜氣)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태어나는 인의(仁義)의 선한 양심을 이른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의 이른바 '우산장(牛山章)'에 "밤에 자라나는 바와 새벽의 맑은 기운에 그 좋아하고 미워함이 남들과 서로 가까운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낮에 하는 소행이 이것을 짓눌러 없애니, 짓눌러 없애기를 반복하면 야기가 족히 보존될 수 없고, 야기가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게 된다.[其日夜之所息、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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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기회일에게 답함 答奇會一 종이 한 장의 조령(詔令)으로 억만 명의 백성이 다시 살아나는 날이 되었으니 옛날에 이르던 "광패한 장수와 억센 병졸들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는 일"을 오늘 다시 보았습니다. 노형(老兄)께서 먼 골짜기의 벗이 괴롭고 울적한 상황을 염려하여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만 팔도 각처에서 의(義)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건만 오직 이 호남만 공허합니다. 시세(時勢)와 역량이 같지 않기 때문일까요? 안위(安危)의 향배가 일찍이 이번 거조(擧措)에 달려 있으니, 이를 격려하고 징계하는 것이 중흥의 기본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노형께서 이러한 때 소장(疏章)을 올려 한 도의 여망에 부응할 수 있었으니 또한 천하에 할 말이 있게 되었습니다. 근래 사대부들이 안락함에 빠져서 구차스럽게 눈앞의 계책만 바라고 천년이 지나도록 전에 없던 변고에 길들여진 것은 모두 개화(開化)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세워야 하는 계책은 두발(頭髮)과 의복이 옛 제도를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삭(正朔), 명호(名號), 관작(官爵), 격식(格式)이 하나하나 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자(夫子)께 말씀하신 정명(正名)의 뜻입니다. 이에 밝게 조서(詔書)를 내려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고 죽음만 있고 삶은 없다는 뜻을 유시(諭示)하고 팔도에 널리 고하여 만백성의 눈과 귀를 일깨워 순역(順逆), 사정(邪正), 취사(取舍), 향배(向背)의 분별을 알게 하고, 위망(威望)을 지니고 책략을 갖춘 충정(忠正)한 자를 택하여 각 도의 방백(方伯) 및 병사를 모집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또 열읍(列邑)에서도 각각 1인을 택하여 군비(軍備)를 크게 일으켜 날마다 훈련하고 연변(沿邊)의 지형을 잘 살펴서 모든 요해처(要害處)에 방수(防守)와 요격(邀擊)의 계책을 세우는 것은, 오늘날 결코 그만둘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노형의 상소가 이미 발단이 되었으니 또 이러한 뜻으로 두 번 상소하고 세 번 상소하는 것 또한 어찌하여 하지 못하겠습니까? 이미 올린 상소가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스스로 책망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스스로 생각건대 보잘것없는 제가 지위를 벗어나고 말에 분수가 없어 죄송스럽습니다. 그저 노형과 어울려 친하게 지낸다는 것만 믿고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늘어놓았습니다. 보시고 태워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一紙溫綸。是億萬生靈再造之日。古所謂狂將悍卒。無不感泣者。又見於今日矣。老兄爲念遐峽友朋苦鬱之狀。不留晷刻。而示且喜報。感謝萬萬。但八路諸處。義聲崢嶸。而惟此湖南。及寥寥焉。是其時勢事力有不同者耶。安危向背。未嘗不在今番一擧措之間。激勵懲創。安知不爲中興基本也。老兄此時進章。可以塞一路之望。而亦足有辭於天下也。近來士大夫。狃於宴安。苟冀目前之計。而馴致一千年無前之變者。皆是開化之爲也。今者之計。不但頭髮衣服之復古。如正朔名號。官爵格式。一一反正。此夫子所謂正名之義也。於是明降詔旨。諭以不共戴天。有死無生之意。洞告八域。以醒萬民之耳目。俾知順逆邪正取舍向背之分。擇忠正有威望有謀畧者。以充諸路方伯及召募之任。又自列邑。各擇一人大作武備。日日練習。審察沿邊地形。凡於要害處。爲據守邀擊之計。此在今日而爲決不可已者也。然則老兄之疏。旣爲發端。又以此意再疏三疏。亦何不可之有哉。恐不可以已進之疏。爲過時而自咎於心也。自惟無狀。出位而言高。罪也罪也。只信和愛。敢布狂瞽。幸覽而火之。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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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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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은곡 배공【상섭】에게 보냄 與隱谷裴公【相涉】 천만뜻밖으로 덕문(德門)이 불행하여 갑자기 둘째 영랑(令郞)의 상사(喪事)를 당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말이고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난초가 불타고 보옥이 깨지는 일이 세상에 간혹 있기는 하지만, 어찌 우리 존장(尊丈)께서 만년에 이런 일을 겪으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자애(慈愛)가 매우 지극하고 교회(敎誨)가 참으로 독실하여 우리의 기대가 일찍부터 훗날 존장께서 문호를 세우는 계책에 달려 있었건만, 갑자기 중간에 멈추게 되었으니 참혹한 슬픔을 어찌 견디고 어찌 억누르겠습니까. 사람을 저도 모르게 넋이 나가고 뼈가 으스러지게 만듭니다. 의림(義林)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신세가 낚시에 걸린 물고기와 같아서 병이 들었을 때는 의원(醫員)을 찾고 약을 수소문하지도 못하였고 세상을 떠났을 때도 반함(飯含)60)하는 것을 보거나 상여를 끄는 예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인정(人情)이겠습니까. 부끄럽게도 유명(幽明)을 저버렸으니 비통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오늘 계원(啓元)61)의 편지를 받았는데, 대체로 병중에 있으면서 작별을 고하는 글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이 가슴 아프고 슬퍼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의 병이 매우 위태롭지는 않은 듯하였건만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예전에 종유하던 이들을 생각하니 정일(正一)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계원이 또 이와 같습니다. 위를 우러러보고 아래를 굽어보아도 심사(心事)가 잊히지 않으니 마음을 둘 방도를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세상의 온갖 일이 모두 이렇습니다. 앞에 놓인 운명은 넘지 못하는 쇠 문턱이라 인력으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백어(伯魚)62)도 일찍 죽었고 수지(受之)63)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자(孔子), 주자(朱子) 같은 성현(聖賢)조차도 일찍이 이런 일을 당하였으니 명(命)을 어찌하겠습니까? 운(運)을 어찌하겠습니까? 부디 이치에 따라 상황을 넘기며 자신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千萬料外。德門不幸。第二郞遽至大故。此何言此何事。蘭焚玉碎。世或有之。而豈謂吾丈晩年遭此耶。伏惟慈愛深至。敎誨誠篤。所以期望未嘗不在於他目門戶之計。而遽爾中閼。悲慘之酷。何以支抑。令人不覺銷魂而鑠骨。義林年來身世。如魚掛鉤。病未有尋醫問藥之節。死未有視含執紼之禮。此豈人情耶。愧負幽明。萬萬悲慘。今日得啓元書。蓋病中告訣文也。辭意悲愴。不覺出涕。其病若不十分危殆。豈至若是也。念昔從遊。正一已逝。啓元又如此。俯仰耿耿。不知所以置心。雖然人間萬事皆是。前程鐵限。非人力所可移易。伯魚早卒。受之先死。以孔朱聖賢。猶嘗遭此。命也奈何。運也奈何。伏乞遣理自寬。 반함(飯含) 습(襲)을 하기 전 시신을 목욕시킨 뒤 진주, 생쌀, 조개 등을 죽은 이의 입에 넣어 아름답게 장식하는 의절이다. 반(飯)은 신분에 따라 잘게 부순 옥(玉)을 쌀과 섞은 함옥(含玉), 수수, 기장 등으로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고, 함(含)은 옥, 조개 등으로 양쪽 어금니 부분과 입 중앙에 놓는 것이다. 반함은 죽은 이에게 음식을 봉양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비어 있는 입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써 죽은 이를 존귀하게 대한다는 뜻에서 하는 것이다. 계원(啓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의 자이다.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구암(龜巖)이다.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하락이수(河洛理數)와 천문(天文)의 물상을 확연하게 융회하였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의 요체를 깨닫고, 심성과 이기의 묘리를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백어(伯魚) 공자(孔子)의 아들이다. 수지(受之) 수지는 주희(朱熹)의 장남 주숙(朱塾)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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