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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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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一. 李敎先 金錢借用證書 壹通也一. 李敎英 金錢借用證書 壹通也一. 李鍾南 保管證 壹通也一. 李道淳 禾租保管證 壹通也一. 李相根 禾租保管證 壹通也一. 李相麟 禾租保管證 壹通也一. 李順福 禾租保管證 壹通也一. 李馨淳 借用金證書에 畓三斗落擔保物 差入件 壹通也右上證憑書類八通은 本人의 名義로 債權者을 ?立하엿시나 右證書內 錢租全部가 參判公墓所에 係한 大門中財産인즉 右證憑書類 與取扱權을 谷城有司 李相馝으게 樹立한 事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右記主 李龍淳 (印)谷城有司 李相馝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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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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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保管證一. 金貳圓也右金員은 正正保管인 바 此證携到卽時에 出給할 事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右保管主 李鍾南 (印) 右立會人 李大淳 (印)李龍淳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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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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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열재 소장에게 답함 答悅齋蘇丈 丁丑 정축년(1937)일전에 나아가 찾아뵌 것은 2년의 계획 끝에 나온 것인데, 마침 밖으로 외출을 하셔서 가르침을 받들지 못하였으므로 매우 서운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드님을 만났는데, 대접이 정성스럽고 응대가 명쾌하여 사람 마음을 대단히 흔쾌하게 하였으니, 참으로 어른과 닮은 사람을 보았다고 말할 만하여 이로써 위로를 삼았습니다. 이전에 얼핏 아드님께서 변형57)을 면하지 못했다는 소문을 듣고, 가정의 엄격한 교훈으로 이에는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늘날 젊은 사람 중에는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비록 믿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와전임을 통렬히 변론하지는 못했는데, 오늘 이후에야 전통을 지닌 오래된 집안의 의방(義方)이 자연 다른 바가 있다는 것을 더욱 알았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뜻이 고상한 것도 쉽게 얻을 수 없으니, 더욱 위로가 되었습니다.돌아와서 얼마 안 되어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만남이 어긋나서 매우 슬프고 한스러워 하셨다는 것을 자세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자세한 동정을 물으시고 아울러 더욱 편안히 왕래하라는 뜻을 보여주셨으니, 아, 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젊은 사람이 미처 겨를을 내지 못했는데 높으신 분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격하는 마음은 비록 깊으나 송구한 마음 또한 지극합니다.시생은 몸에는 누더기 옷을 입고 밖으로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지경58)이니, 이러한 때에 이러한 모습은 족히 받들어 아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이 몸과 네 명의 아들, 세 명의 동생, 한 명의 조카인 아홉 식구가 옛 의관을 현재도 보존하여 바꾸지 않고 있으니, 나라 안을 두루 돌아보더라도 아마 우리와 짝할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이러한 모양 또한 특이한 일이니, 이것이 영광이 될지 욕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또 논자들이 어떻게 보느냐를 막론하고 다만 앞으로는 잘 끝맺기가 어려운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가만히 생각건대, 우리 어른은 올해 나이가 팔순에 다가섰습니다. 사람은 말년에 큰일을 하기 마련이고 또한 세상의 혼란함이 이러할 때에는 젊은이가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생과 우리 어른은 살아서는 의리를 함께 하고 죽어서는 함께 열전에 오르는 처지59)라고 말할 만한데, 한 번 만나서 문후를 하고는 걸핏하면 몇 년이 지나니, 지난날을 통해서 장래를 추론하건대 앞날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소의 문자 의리를 모두 강론하여 정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 어찌 영원한 후세에 다소의 유감이 없겠습니까? 삼가 우리 어른께서도 때때로 생각이 이것에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날 나아가 은혜를 받은 것도 사실은 이것에 있었는데 이미 이루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하교(下教)하신 대로 가을 사이에 정산에서 찾아뵈었어야 했으나 이 또한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찾아뵐 계획을 도모할 뿐입니다.지난번에 아드님이 근래에 그린 존영(尊影)을 보여 주었는데, 아주 비슷한 것을 보니 단지 칠푼[七分]60)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초상을 정립한 모습으로도 단좌한 모습으로도 그리지 않고,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그린 것은 아마도 온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중세에 중국 사람들은 앉을 때 반드시 의자를 사용하였으니, 이미 의자에 앉은 이상 어쩔 수 없이 걸터앉게 됩니다. 그러나 주자가 의자를 사용하는 송나라 때에 살면서도 그 초상은 오히려 의자도 쓰지 않고 걸터앉지도 않았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본디 의자를 사용하지 않아서 의자의 사용이 근래의 사람들에게나 있는 데이겠습니까. 의자에 앉는 것은 우리나라 풍속에 없는 것이고, 걸터앉는 것은 또한 유자들이 잠시 동안도 불안해하던 것입니다. 이제 엄정한 유자의 복장으로 의자에 걸터앉은 초상을 후세에 전한다면 어찌 사실과 어긋나서 누를 끼침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영정 끝에 그린 사람을 기록한 것이 성명으로 하지 않고 별호로 했으니, 이것이 어찌 젊은 사람이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겠습니까? 일찍이 선사의 영정에 채용신(蔡龍臣)이 석지(石芝)라는 호를 사용한 것을 보고 늘 마음에 흔쾌하지 않았는데, 이제 또 이것을 보니, 아마도 또한 한 때 화가의 풍습인가 봅니다. 제 견해로는 마땅히 모두 고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日前造拜, 出於兩年經營, 而適值駕外, 未承誨喩, 殊甚缺然.然得見賢哥, 待遇款洽, 酬酢明爽, 大快人意, 眞可謂見其所似者, 以是爲慰.前此似聞賢哥不免變形, 想以庭訓之嚴, 不至於此.然在今日年少, 亦容有之, 故心雖不信, 亦不能痛辨其訛.今而後益知故家義方, 自有所異.弱冠志尙, 亦不易得, 尤以爲慰.歸後來幾, 獲拜下狀, 審悉具道交違悵恨之極, 問訊此間動靜之詳, 並示駕益往還之安, 噫, 非愛我之深, 烏能致此? 然少者未遑, 尊者先施, 感雖深矣, 悚亦至矣.侍生, 鶉結於身, 虎食於外, 此時此狀, 無足奉稟者.惟是身及四子三弟一姪九箇, 舊冠現保無變, 環顧域中, 想少其儔.此世此樣, 亦是異事, 未知此爲自榮耶自辱耶.且無論論之者如何, 秪以前頭克終之難爲憂耳.竊念吾丈今年迫八旬, 夫人之晩年, 大有事在, 且世亂如許, 少者之死亡, 亦無日矣.侍生之於吾丈, 可謂生同義死同傳之地, 而一番靣候, 動輒數歲, 因往推來, 前頭可知.多少文字義理之未盡講定者, 其何以不有多少遺憾於無竆也乎? 伏想吾丈, 亦時一念, 至於此也.前日之進惠, 實在此, 而旣不得遂, 則當依下敎, 以秋間拜會凈山, 又不能.然則不容不更圖進謁計耳.頃得賢哥出示近寫尊影, 見其酷似, 不但七分而已.但像不以正立, 不以端坐, 以踞坐椅上者, 恐未穩.中古中國人, 坐必用椅, 旣坐椅, 則不得不踞然.朱子當有宋用椅之時, 而其像猶不椅不踞.况於我國之本不用椅, 而椅之用, 乃在近時人乎.蓋坐椅, 國俗之所無, 踞坐, 又儒者之所斯須不安者.今以儼然儒服, 踞坐椅上, 傳之後世, 豈不爲爽實而貽累乎? 且幀末之記寫者, 不以姓名而以別號者, 是豈少者敬長之道乎? 曾於先師影幀, 見蔡龍臣用石芝之號, 尋常不快於心, 今又見此, 豈亦一世畵家之風習歟? 淺見恐當并行改正, 未知如何. 변형(變形) 단발령에 의해서 상투를 잘린 모양을 '변형'이라고 한 듯하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지경 원문의 '호식(虎食)'은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나오는 말로, 노나라의 단표(單豹)라는 사람이 은거하여 깨끗하게 살면서 속세의 이끗을 다투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힌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안으로 정신만 수양하고 밖으로 몸의 단련을 소홀히 한 것을 말한다. 살아서는……처지 송나라 때 명신인 범진(范鎭)은 사마광(司馬光)과 우의가 두터웠는데, 사마광에게 "그대와는 살아서 뜻을 함께하고 죽어서 전을 함께할 것이다.〔與子生同志死同傳〕"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치의집전(緇衣集傳)》 권3 〈일류장(壹類章)〉 중국의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에서는 성향이 같은 인물을 한 열전(列傳)에 모아 엮기 때문에 한 말로, 이 말은 뜻을 같이 하였다는 의미이다. 칠푼[七分] 초상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음을 말한다. 정이(程頤)가 《역전(易傳)》을 짓고서 문인들에게 주며 "단지 7분만 말한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스스로 살피고 궁구해야 한다.〔只說得七分 學者更須自體究〕"라고 하였는데, 문인인 장역(張繹)이 그에 대한 제문을 지으면서 그의 말을 인용하여 "선생의 말씀으로 문자에 드러난 것은 7분의 마음이 있고, 단청으로 그려진 것은 7분의 용모가 있다.〔先生有言見於文字者 有七分之心 繪於丹靑者 有七分之儀〕"라고 하였다. 《二程全書 附錄 祭文》 글이나 그림으로는 그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7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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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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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족숙(族叔) 가암(可庵) 김낙필(金洛弼) 노인에게 올림 정사년(1917) 上老可庵叔洛 ○丁巳 천시(天時)는 인력으로 머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예제(禮制)는 선왕이 정한 것입니다. 입었던 삼베옷이 칡베옷으로 바뀌고 깔고 앉았던 거적이 흙으로 바람을 막은 방으로 바뀌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개탄하면서 다만 처음 상을 당했을 때처럼 아픈 마음이 절실할 뿐입니다. 이러한 때에 편지를 받았는데, 지극히 정성스럽게 위문해 주셔서 감격하고 또 눈물을 흘렸으니, 완연히 얼굴을 뵙고 속마음을 호소한 것 같았습니다.화양(華陽)을 왕복하는 천리 길을 아무 탈 없이 편안하셨다 하니, 소식을 듣고 매우 위로가 되고 다행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두 분 황제의 영령에 술잔을 올리며 쇠망한 나라가 이미 아득해졌음을 통탄하고,61) 대로(大老 송시열)의 묘소에 절을 올리며 통서가 계승되지 않음을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두루 주밀하게 주선하는 것을 바라보시던 끝에 감회가 슬프고 생각이 유유하여 응당 동지로 말할 만한 사람이 있으셨을 터인데, 문하에서 듣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조카의 여묘살이는 선친의 뜻을 잇기 위한 것이라 억지로 힘써 미봉이나 하는 것이 과도하게 칭찬을 입으니 이미 너무도 부끄러워 땀이 흐르는데, 문조(門租 문중 재산)를 내어 여묘살이의 식량을 지급해 주시기까지 하시니 더욱 뜻밖이라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종족 중에 어려움을 당한 자가 허다한데 유독 조카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은 반드시 예를 집행함에 있어 근사한 명분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있어 염치를 무릅쓰고 받는다면 정당히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이 부끄럽고, 끝까지 사양한다면 이미 어른의 뜻에서 나와 여러 사람들의 논의로 정해진 것인 만큼 집안 자제의 도리 상 감히 공손치 못한 거절62)을 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이에 거듭 반복해서 생각한 끝에 한 가지 방안을 얻었습니다. 족숙께서 이 일을 주장하신 것은 아마도 조카인 저를 사적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다만 이것으로 격려할 거리를 삼아서 능하지 못한 것을 더욱 힘써 그 끝을 신중히 마치도록 하려는 것이고, 또한 집안의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본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실로 온 집안의 족속들을 가르치는 공적인 일입니다. 제가 비록 못났으나 감히 지극한 뜻을 받들어 부응할 것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보내주신 식량과 돈을 이미 삼가 절하고 받았습니다. 다만 마땅히 이 몸을 더욱 공경히 하여 혹시라도 어긋남이 없게 함으로써 보답하지 않는 보답63)을 삼겠습니다. 天時, 非人力所留, 禮制, 是先王所定.麻變而爲葛, 苫變而爲垔, 撫膺慨然, 只切如新之痛際, 承下狀, 問訊周摯, 以感以泣, 宛若拜顏訴懷也.華陽之駕往返千里, 無擾利稅, 聞甚慰幸.竊想, 酹二帝之靈, 痛風泉之旣邈, 拜大老之墓, 憂統緒之無繼.觀瞻周旋之餘, 悵然者懷, 悠然者思, 應有可以語同志者, 恨未獲聽於門下也.姪之廬墓, 爲繼先志, 而勉強彌縫者, 過蒙獎贊, 已極報汗, 至於出門租給廬粮, 尤料外, 而不敢當者.凡宗族間遭艱者許多, 而獨施於姪者, 必以其近似乎執禮也.於此而冒受, 則愧非其人, 欲固辭, 則旣已出自尊意, 而定于僉議, 門子弟道, 有不敢爲不恭之卻者.反覆思惟, 乃得一說, 叔主此擧也, 蓋非私愛於姪, 特以此爲獎勵之資, 使益勉未能, 克愼其終, 且令門內後輩, 得以少有效法, 此實敎誨闔族之公也.顧雖無狀, 敢不思所以奉副至意乎? 故下送粮錢, 謹已拜領.第當益衹厥身, 罔或違戾, 以爲不報之報也. 두 분……통탄하고 두 분 황제는, 화양의 만동묘에 명나라 의종과 신종의 시위를 배향했으므로 의종 황제와 신종 황제를 가리킨다. 풍천(風泉)은 《시경(詩經)》의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을 가리키는데, 모두 제후국의 사람들이 주(周) 나라를 생각하여 지은 시이다. 여기서는 망한 명나라를 가리킨다. 공손치 못한 거절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존귀한 분이 물건을 줄 경우 '그분이 이 물건을 취한 것이 의일까 불의일까?' 생각하여 의에 맞은 뒤에 받는다면, 이것을 공손치 못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거절하지 않는 것이다.〔尊者賜之 曰其所取之者 義乎不義乎 而後受之 以是爲不恭 故弗卻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보답하지 않는 보답 원문의 '불보지보(不報爲報)'는 《능엄경(楞嚴經)》의 "이 심신을 가지고 세상의 중생을 받드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한다.〔將此心身 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라는 구절의 주석에 "성과를 얻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것을 보답으로 삼으니, 이것이 보답하지 않는 보답이다.〔得聖果度衆生, 無與於報佛, 而以此爲報, 此不報之報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대개는 벼슬하여 헌신하는 것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나 비방을 받고 일을 그르쳐 임금에게 심려를 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벼슬에서 물러나 소란을 야기하지 않는 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직접적인 보답이 아닌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됨으로써 보답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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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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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숙 창암(鬯庵)【낙규(洛奎)】, 함재(涵齋)【낙두(洛斗)】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鬯庵【洛奎】涵齋【洛斗】族叔 乙丑 오늘 아침은 해가 새롭고 달이 새롭고 일자가 새로운 때입니다. 천도가 이미 새로우니, 인사가 어찌 유독 그렇지 않겠습니까? 음기가 다해서 이미 물러났으니 일음(一陰)의 무함64)이 장차 사그라짐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삼양이 비로소 돌아왔으니65) 육양(六陽)의 덕이 크게 빛남을 흔연히 볼 것입니다. 천도와 인사가 서로 관련된 것이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또한 사람이 마음을 경건히 하고 하늘을 받들며 음기를 억누르고 양기를 부지하며 바름을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쳐서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하며 세도를 돕고 사람의 떳떳한 본성을 세우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 "천지의 도를 마름질하여 이룬다." 하였고,66) 전(傳)에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다." 하였으니,67) 어찌 감히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오호라! 근래에 사문(師門)의 일은 비록 불행이라 하겠지만 또한 다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밝고 밝은 우리 육양옹(六陽翁 간재 전우)의 더할 수 없는 가을 햇살 같은 밝음이 한 음인(陰人 오진영)의 어둡게 퇴색시키는 것을 심하게 입어서 인가를 지시했다는 무함으로 온 나라에 의심과 비방을 가득 차게 하였으니, 그 어떤 불행이 이보다 심하겠습니까? 이에 우리 함재 족숙이 계셔서 처음에는 편지를 보내 인가받는 것을 배척하고, 마지막에는 의리에 의거하여 무함을 성토하여 글자마다 혈성이 서리고 구절마다 충심이 깃들인 "결단코 나 자신을 욕보이는 것이다."라고 하신 유서68)로 하여금 천하와 후세에 널리 알려지게 하여 선사의 마음을 중천의 해와 달보다 밝아지게 하였으니, 그 다행함은 또한 무엇이 이것보다 크겠습니까? 도적놈을 몰아내다가 도리어 적반하장을 당하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 무리가 간사한 문서와 감춰둔 적반하장의 무함으로 더럽히고 멸시하다가 할 수 없으면 다시 사문을 핍박한다는 말로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킴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저들의 정상은 몸속의 폐와 간을 보는 듯 훤합니다. 설사 정말로 핍박한 죄가 있었더라도 마땅히 그 당시에 따져 물었어야지 무함을 성토한 뒤에 발설하여 자신의 유감을 풀어서는 옳지 않습니다. 하물며 완전히 날조한 허위로 결론이 났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허물을 대놓고 간함도 없고 은미하게 간함도 없습니다.69) 그러므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질문하고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토로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이 계집종을 호되게 꾸짖어 말투가 매우 사나웠는데, 정암(靜庵 조광조)이 나아가 말하기를, "군자는 말투를 성찰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니, 한훤당이 손을 맞잡고 칭찬했습니다.70) 계화도(繼華島)에 있었을 때 창암 족숙의 '말이 공손해야 한다'고 고한 것과 선사의 '참으로 옳다'는 가르침은 한훤당과 정암이 이미 행한 일과 더불어 세대는 다르지만 일이 부절처럼 부합될 만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마침내 이 일로 죄를 삼았으니, 저들이 허물을 샅샅이 찾기에 온 힘을 들였어도 얻은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저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이쪽 문자가 간혹 저의 졸렬한 솜씨에서 나온 것이 심히 저들의 눈엣가시가 되어서 마침내 거짓으로 스승의 명을 바꾸어 묘표를 고쳤다는 죄목과 거상(居喪)에 예의가 없었다는 죄안을 당했습니다. 옛날 사람들 중에는 스승을 위하여 죽음에 이른 자도 있으니, 오늘날 저들의 독설을 만난 것이 무슨 신경 쓸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오진영이 아무 턱도 없이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모함에 빠뜨리고 이전의 말을 한결같이 뒤집으니, 인성을 갖추지 못한 자인가 의심스럽니다. 제가 만약에 거짓으로 스승의 명을 바꾸어 묘표를 고친 자라면 오진영이 무엇 때문에 전후로 논의를 달리 했던 것을 스스로 송구스러워 하여 돌려 전해준 뒤에 편지를 보내 사과를 했겠으며, 만약에 거상하면서 예의가 없었던 자라면 오진영이 무엇 때문에 고려 말세의 풍속에서 포은(圃隱 정몽주)의 고상한 행실이 다행스럽게도 봉장(奉狀)을 만났던 것으로 여묘(廬墓)하는 날에 칭찬을 했겠습니까? 아주 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선사께서는 해처럼 빛나고 옥처럼 깨끗하건만 인가를 받을 뜻이 있으셨다느니 인가를 지시하셨다느니 하는 무함을 입으셨으며, 손수 쓰신 마음이 드러난 유서가 못을 끊고 쇠를 자른 듯 분명하건만 가짜 유서라는 배척을 당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선사에 대해서도 저들이 오히려 꺼리지 않는데, 하물며 나머지 사람들이겠습니까? 선사의 무함을 아직도 확실히 씻어내지 못했으니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이 있겠습니까? 다만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을 믿고 스스로 나의 의리를 다하기를 구할 뿐이니,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선사께서는 사천년 도학가에 최후의 한사람입니다. 도학가 최후의 한사람으로서 만약에 일제의 인가를 받아 문집을 발간하려는 뜻이 있었다면 이것은 천하의 큰 불의이니, 큰 불의로써 스승을 무함하는 것은 천하의 큰 죄입니다. 지금 오진영이 자칭 수제자라 하면서 사천년 도학가에 최후의 한사람인 선사를 천하의 큰 불의로 무함하니, 그 스스로 빠진 큰 죄는 진실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의 수제자라는 호칭 때문에 그 무함을 믿는다면, 이것은 세도의 큰 해악입니다. 오늘날 해야 할 일은 천하의 큰 불의로 만든 무함을 변론하고 천하의 용납하지 못할 큰 죄를 성토하여 이로써 사천년 도학가에 최후의 한 사람인 선사의 심사를 밝히고, 이로써 세도의 큰 해악을 제거하는 것이니, 진실로 천하 만세의 큰일입니다. 오도(吾道)가 보존되느냐 망하느냐와 생민(生民)이 사람이 되느냐 짐승이 되느냐가 모두 이 일에 달려 있으니, 한 집안이나 한 나라의 흥패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다른 일은 놓아두고 이 일에 전심하여 천하의 큰 공을 세우십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今朝, 歲新月新日新也.天道旣新, 人事奚獨不然? 竆陰已退, 一陰誣之將熄, 可見矣.三陽載回, 六陽德之孔昭, 欣覩矣.天道人事之相關, 雖然如此, 亦在人虔心奉天, 抑陰扶陽, 守正斥邪, 以明天理正人心, 補世道立民彝也.故易曰: "裁成天地之道" 傳曰: "可以贊天地之化育" 曷敢不勗哉?鳴呼, 近日師門之事, 雖曰不幸, 亦可云幸矣.皜皜我六陽翁之秋陽不可尙者, 厚被一陰人之䵝昧, 以認誣漲疑, 謗於四海, 其不幸孰甚焉? 乃有吾涵齋族叔, 始投書而斥認, 終據義而討誣, 使字血句忠, 決是自辱之遺書, 揚布於天下後世, 明先師之心於中天日月, 其爲幸也, 又孰大焉? 夫驅逐竊盜, 而反被荷杖, 從古然矣.故彼輩, 乃以作奸文書, 埋伏杖手之誣, 汙衊而不可得, 則有以挨逼師門之說, 眩人耳目到此, 而彼輩之情狀, 如見肺肝.使實有挨逼之罪, 當於當日問之, 不宜發之於討誣之後, 以逞其憾, 而况全歸於構虛哉.蓋師生之間, 無犯無隱.故有疑必質, 有懷必吐.昔寒暄堂盛責婢子, 辭氣頗厲.靜庵進曰: "君子辭氣, 不可不省察也", 寒暄握手稱之.華島日, 鬯庵叔主言遜之告, 先師誠是之敎, 可與寒靜已事, 異世同符, 彼輩乃以此爲罪, 可見其疲於吹覔而無得也.至於澤述, 以此邊文字之或出於拙手, 深爲彼輩之眼釘, 竟遭幻命改表之目, 居喪無禮之案.古之人有爲師而至死者, 今之逢彼毒噬, 何足介意, 但震之白地揑陷, 一反前言, 疑若不具人性者也.我若幻師命改表者, 震也何以以前後貳論自悚, 而致書謝之於還傳之後也? 若居喪而無禮者, 震也何以以麗氏末俗圃老高行之幸覯奉狀, 贊之於廬墓之日也? 絶可怪也.先師之日光玉潔也, 而被認意敎之誣, 手筆心畫之斬釘截鐵, 而遭僞遺書之斥, 况如吾輩者乎.先師乎而彼猶不憚, 况於餘人乎? 先師之誣, 且未昭雪, 遑恤於自身乎? 只信不愧吾心, 只求自盡吾義而已, 未知如何.先師, 四千年道學家最後一人也.以道學家最後一人, 如有戴認刊稿之意, 是天下之大不義也, 誣其師以大不義, 天下之大罪也.今震泳以所稱高足者, 誣四千年最後一人之先師, 以天下之大不義, 彼其自陷大罪, 固在罔赦, 如有人以其高足之稱, 而信其誣, 則是世道之大害也.今日之役, 辨天下大不義之誣, 討天下所不容之大罪, 以明四千年最後一人之心事, 以除世道之大害, 誠天下萬世之大事也.吾道之存亡, 生民之人獸, 皆係於此, 非一家一國興廢之比也.伏願舍置他務, 專心此事, 以立天下之大功, 如何. 일음(一陰)의 무함 일음은 음성의 오진영을 비유한 말로 이 구절은 인사를 말한 것이다. 앞 구절의 '음기가 다해서 물러났다'는 것은 천도를 말한 것으로 순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상징하는 곤괘(坤卦)의 내괘 3효가 음효에서 양효로 하나씩 바뀌어 새해 정월에는 모두 양효가 되기 때문에 음기가 물러났다고 말한 것이다. 삼양이 비로소 돌아왔으니 정월을 상징하는 태괘(泰卦)의 내괘 3효가 모두 양효가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천도를 말한 것이다. 뒤 구절에 나오는 육양은 순양(純陽)의 달인 4월에 6효가 모두 양효가 된 것을 말하는데, 이 구절은 인사를 말한 것으로 육양은 간재 전우를 비유한 것이다. 주역에……하였고 이 말은 《주역(周易)》 〈태괘(泰卦)〉에 나오는 말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것이 태괘이다. 제왕은 이로써 천지의 도를 지나침 없이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모자람 없이 도와서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한다.〔天地交泰 后以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하였다. 전(傳)에……하였으니 전은 《중용(中庸)》을 가리킨다. 이 말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2장에 나온다. 결코……유서 이 유서는 간재의 신해년 유서를 말하는데, 이 유서에서 "만약 저 일인(日人)에게 청원하여 문집을 간행하고 배포할 계획을 삼는 자는 결단코 나 자신을 욕보이는 것이다.〔若請願於彼以爲刊布之計者 決是自辱〕"라고 한 것을 말한다. 허물을……없습니다 《소학(小學)》 〈명륜(明倫)〉에 나오는 말로, 스승을 섬길 때 안색을 범하여 직간함도 없고 은미하게 간함도 없으니, 스승과 제자 사이는 의문이 있는 곳이나 논란할 것이 생기면 곧바로 말하여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칭찬했습니다 《정암집(整庵集)》 〈연보(年譜)〉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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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부친의 악요당 원시에 차운함 병오년(1955) ○이하 같음 謹次家君樂要堂原韻 【丙午○下同】 악요당이라 명명한 우리 부친의 거처에 命堂樂要我親居부친의 비석이 찬란히 빛나고 있도다 臼老銘章正煥如후손에게 가르침은 효제로써 전하였고 裕後經綸傳孝悌보셨던 책들의 취미는 시종 통하였네 閱篇趣味貫終初비녀와 갓끈은 분수가 아니라 힘쓰지 않으셨고 簪纓未可營非分금과 비단은 굳이 쌓아 남게 하지도 않으셨네 金帛何須積有餘경계한 말21)과 중요한 말씀22) 아울러 소중히 간직하여 懷簡書紳兼至重평생토록 마음에 새겨 힘쓰리라 一生佩服勖存諸 命堂樂要我親居,臼老銘章正煥如.裕後經綸傳孝悌,閱篇趣味貫終初.簪纓未可營非分,金帛何須積有餘?懷簡書紳兼至重,一生佩服勖存諸. 경계한 말 《시경》〈소아(小雅) 출거(出車)〉에,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으리오마는, 이 간서(簡書)가 두려워라.〔豈不懷歸 畏此簡書〕" 하였는데, 비록 돌아가 쉬고 싶어도 임금의 계명(戒命) 간서가 두려워서 열심히 업무에 종사한다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선조가 경계한 유지를 잘 받들어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힘쓰겠다는 뜻이다 중요한 말씀 원문 '서신(書紳)'은 중요한 말을 잊지 않도록 허리에 맨 띠에 적어 두는 것으로, 공자가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에 관해 말하자 자장(子張)이 이를 띠에 적었던 데서 유래한다. 《論語 衛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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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연재 선생49)의 대상에 슬픔에 젖어 宋淵齋先生大祥時感歎 나라와 도를 위해 순의하셨으니 于道于邦殉義幷고금 천년에 선생을 우러러본다네 古今千載見先生팔방의 많은 선비 태산과 북두처럼 바라보니 八方多士瞻山斗수십대에 걸친 유가에 맹주가 되셨다네 十代斯文作主盟붉은 휘장 쳤을 때50) 남쪽으로 가던 날 모신 적 있고 絳帳曾陪南駕日검은 옷 입었을 때51) 북쪽으로 가려는 정성 늘 간절했지 緇衣每切北趨誠지금은 영연 거둬 달려와 곡하는 이 없는데 迨玆靈撤無奔哭어찌 전쟁이 길목마다 가득한가 其柰干戈滿路橫 于道于邦殉義幷,古今千載見先生.八方多士瞻山斗,十代斯文作主盟.絳帳曾陪南駕日,緇衣每切北趨誠.迨玆靈撤無奔哭,其柰干戈滿路橫. 송 연재 선생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을 말한다. 연재는 그의 호이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받아 좨주(祭酒)에 기용된 뒤 서연관(書筵官)·경연관(經筵官)·대사헌을 지냈다. 붉은……때 스승으로 강의하던 때를 뜻한다. 원문 '강장(絳帳)'은 후한의 마융(馬融)이 생도들을 가르칠 때 항상 고당(高堂)에 앉아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웠던 데에서 유래하여, 사문(師門) 강석(講席)의 경칭(敬稱)으로도 쓰인다. 《後漢書 卷60上 馬融列傳》 검은……때 조정의 관리가 되었을 때를 말한다. 원문 '치의(緇衣)'는 원래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편명(篇名)으로, 나라의 관리가 되어서 직책을 잘 수행해 백성들이 그를 사랑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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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들어갈 때 최경존과 김종현이 부쳐준 시를 얻어 이를 차운하여 다시 올림 入海得崔敬存金鍾賢寄詩次韻却呈 천하에 환란이 생겨 해마저 아득하고 宇內喪亂日蒼茫은자는 걱정 쌓여 미칠 듯하네 幽人積念發癡狂이미 중국 여러 나라 봤으니 후손에게 경계가 되고 旣見諸夏化裔戒다시 사악한 소리 들었으니 우관들 어지러울테지 更聞淫哇亂羽官하나의 작은 배로 나풀나풀 가는 대로 맡기려는데 一棹翩然任所之어찌 감히 망령되이 뗏목에 오를 때인지 의심하리오 何敢妄擬乘桴時먼 동해를 가리키며 서로 따르리라 맹세하였으니 遙指東海誓相從【명나라 유학자 서부원이 그러한 것이다.】 【明儒徐孚遠】외로운 섬 달밤에 쓸모없는 몸100) 눈물 흘리네 孤島月夜淚龍鍾조물주는 난세에도 끝내 태평한 시대 만들 것이니 天造草昧終必平훗날 누가 다시 백성에게 복을 내리오 異日誰復福蒼生우리들은 늙었기에 볼 수 없지만 而我老矣無及見바라건대 여러분들은 노정을 신중하게 하시오 願言諸子愼行程【주자께서 《대학》은 노정에 대한 기록이라 했다.】 【朱子謂大學爲行程曆】 宇內喪亂日蒼茫,幽人積念發癡狂.旣見諸夏化裔戒,更聞淫哇亂羽官.一棹翩然任所之,何敢妄擬乘桴時?遙指東海誓相從,【明儒徐孚遠】孤島月夜淚龍鍾.天造草昧終必平,異日誰復福蒼生.而我老矣無及見,願言諸子愼行程.【朱子謂大學爲行程曆】 쓸모없는 몸 원문 '용종(龍鐘)'은 대나무 이름이라고도 하고, 사람이 늙어서 대나무 가지와 잎이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과 같은 모습을 형용한 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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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소장에게 올림 上悅齋蘇丈 삼가 생각건대, 문집은 작자가 직접 교정하고 인쇄하여 발행해야지 자손과 문인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진실로 부모와 스승의 문집을 전하는 데에 뜻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에도 재앙을 두려워하여 부모와 스승의 문장을 고치는 자가 있었는데, 전하지 못하여도 그래도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장을 고쳐서 부모와 스승을 무함한 자는 다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재앙을 두려워하여 고친 것은 비록 죄 줄만 하나 그 마음은 오히려 측은하지만, 사욕을 채우고 능력을 과시하여 고치기를 오늘날 음성의 오진영이 선사의 문집에 했던 것처럼 한 경우는, 그 죄가 더욱 커서 죽음으로도 용서되지 못할 것입니다.무릇 이런 일들은 비록 경중을 따질 것도 없이 똑같이 믿을 수 없어서 용납할 수 없으니, 스스로 교정하여 간행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며, 또한 우리 자손과 문인은 반드시 이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생각이 미쳤던 곳이 생각이 미치지 못한 곳이고 방비가 미쳤던 곳이 방비가 미치지 못한 곳이라는 것이니, 이것이 근래에 제가 터득한 한 가지 견해입니다. 존장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竊念文字, 當作者自校自印而行之, 不可恃子孫門人.世固多無意於傳父師之文者.古亦有畏禍而改父師之文者, 不能傳, 猶可說也.改文而誣父師者, 更不可說也.畏禍而改, 雖可罪, 而情猶戚矣.濟私衒能而改, 如今陰吳之於先師集, 則罪尤大而不容誅矣.凡此雖有輕重甚否, 均之爲不可恃而不容, 不自校印, 則實有如此者, 亦不可謂我之子孫門人, 必不如是也.此所謂思慮到所, 思慮不到處, 防備到所, 防備不到處者, 是爲近日淺見之一得.未知尊意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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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경에게 보냄 경진년(1940) 與林子敬 庚辰 양자를 들인 뒤에 자식을 낳으면 양자를 파견(罷遣)하여 본가로 돌려보내는 것을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그렇게 여겼는데, 홍손우(洪遜愚)의 문집 중에 이런 내용이 있는 것을 얻어 근거로 삼아 선사에게 논하여 질정했더니 선사께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천리와 인정의 극치로 궁구해보면 자신하는 마음을 일찍이 그만 둔 적이 없었습니다. 저번에 예설을 논하다가 우연히 이 문제를 언급하게 되었는데 존자의 견해도 이와 같아서 또한 하나 얻은 것을 스스로 다행이라 여길 수 있었습니다.《역》에 대한 해석은, 《정자전》에서는 의리로, 《주자본의》에서는 점서로 해석했는데, 논자들은 《본의》를 《역》의 본뜻을 얻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대상(大象)과 문언(文言)에서는 이미 의리로 설명했으니, 《정전》 또한 억지로 해석을 했다고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왕의 괘사(卦辭)와 주공의 효사(爻辭)를 읽어보면 끝내 점서를 위주로 한 것이 맞습니다. 본의에서 의리를 위주로 한 것은 미루어 설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다만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일에 대처할 때에는 먼저 의리로 재단하여 선택하고 의심이 있은 연후에 점서에 물을 수 있습니다. 당초에 대상과 문언의 뜻이 아마도 여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우는 자가 《역》에 대하여 먼저 《정전》으로 읽어야만 착수하여 힘을 얻는 곳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立後後生子, 罷遣所後子, 歸本宗, 淺見自少已然, 而及得洪遜愚集中有此說, 據以爲論質於先師, 先師不許.然究之以天理人情之極致, 則自信之心, 未嘗已也.向論禮說, 偶及於此, 尊見亦與之同, 又可以自幸一得矣.觧《易》, 《程子傳》, 以義理, 《朱子本義》, 以占筮.論者以《本義》爲得《易》之本義, 然自孔子之大象文言, 已以義理說, 則《程傳》亦不可以強觧疑之.然讀文王卦辭周公爻辭, 則畢竟主占筮者, 爲得.本義而主義理者, 不過爲推說矣.但在學者, 處事之時, 先以義理裁擇, 而有疑, 然後可問於占篋也.當初大象文言之意, 其在斯歟.然則學者之於《易》, 先以《程傳》讀之, 乃可有下手得力處, 未知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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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오 동선에게 답함 정축년(1937) 答孫昌午 東宣 丁丑 만추(晩秋) 이래로 가슴과 배에 병이 들어 문을 닫고 시름하니 전혀 이승에 살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인가 따스한 바람이 편지를 날려 보내와 온 집안의 병환이 모두 쾌차한 경사가 있었고, 또 삼여(三餘)의 여가에 은반(殷盤)과 주고(周誥)의97) 학업을 온전히 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놀라 일어나 기쁘게 들으니 귀가 상쾌하고 마음이 열려서 병이 몸에서 떠나는 것 같음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마음에 "금일에야 비로소 좋은 상황이 있다고 이를만하구나"라고 했습니다. 아! 나의 마음이 어찌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가요? 종이 위에 가로 쓴 글자와 치간(齒間)의 격음이98) 천하에 가득차서 공맹(孔孟)을 송독하고 본받아야 할 연소자들이 새 풍조에 눈을 뜨고 달려가서 남아있는 자들이 없는데, 오직 우리 창오(昌午 수신인)가 갈수록 공부를 더함에 전진하고 물러남이 없으며, 모든 취한 자들 가운데 홀로 깨어 뭇 잡초 가운데 외롭게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박괘(剝卦) 상구(上九)의99) 석과(碩果)가 되고자 하고, 7일의 우레처럼 분발하기를 기약하니 이런 세상에서 이러한 사람은 비록 평소에 알지 못하는 자일지라도 오히려 마음으로 좋아하기를 그치지 못하거늘, 오래도록 집안끼리 우호를 나누고 또 2년 동안 교학 상장한 내 제자에게서 보게 되니 어찌 기쁘고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바라는 것은 참됨을 쌓고 힘쓰기를 오래하여 능히 그 마침을 이루어서, 기쁘고 통쾌하여 하루 만에 나의 병을 낫게 한 이 일이 영세토록 전해지는 미담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천만 다행스러움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自晩秋以來, 見病胸腹, 閉戶呻囈, 絶無陽界氣味.何來惠風颺送華翰, 有以知堂癠閤患, 并奏妄五之慶, 殷盤周誥, 穩做三餘之業, 驚起喜聽, 耳爽心豁, 有若病之祛體.自語於心曰: 今日可謂有佳况. 嗟呼! 吾之此心, 胡爲而至此? 紙上蠻行, 齒間鵙音, 盈滿天下, 年少之誦法孔孟者, 發蒙振落於新風, 而無有存者.惟吾昌午, 去益加功, 有進無退, 獨醒於皆醉之中, 孤芳於衆蕪之間.擬作上九之果, 期奮七日之雷, 此世此人, 雖在素昧平生之地, 猶當心好之不已, 乃於累世講好兩歲相長之人見之, 如之何不喜快哉? 惟願其眞積力久, 克成厥終, 使我一日之喜快祛病, 作永世相傳之美談.不勝千萬之幸. 은반(殷盤), 주고(周誥) 《서경》 의 편명이다. 종이위에……격음이 영어와 외국어 등을 가리킨다. 박괘(剝卦) 상구(上九) 《주역》 〈박괘(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는데, 이는 다섯 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인 상태에서 맨 위의 효 하나만 양(陽)인 것을 말한다. 또한 박괘(剝卦)가 궁극에 이르면 하나의 양효(陽爻)가 제일 아래에서부터 회복되어 점점 자라나는 형세의 복괘(復卦)로 됨을 비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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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오에게 답함 무인년(1938) 答孫昌午 戊寅 편지를 받고 편안함을 알았고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미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 학문에 힘쓰면서 도움을 구한다는 뜻을 보니 매우 착하고 착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이 틀에만 의지해 평상적인 공부만 해서는 안 되니, 그대는 저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에 깃들어 있던 때를 듣지 못했는가요?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겨울에 얼음 캐고 여름에 불을 때면서 자신은 몸소 경작하고 부인은 스스로 길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취교훈(生聚敎訓)100)하여 부강한 나라를 이루고 나서 끝내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원수를 갚았습니다. 또 전단이 즉묵(卽墨)에 있던 때를 듣지 못했는가요? 자신은 판삽(版鍤)101)을 지고 사졸들과 함께 고생하였고 처첩들은 군대 행렬에 편입시켜서 죽을 마음만 있었지 살아가는 낙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또한 연(燕)나라를 이기고 나라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형세가 월(越)나라, 제(齊)나라의 고약(孤弱)함에 미치지 못하지만 바깥 유혹의 침범과 옛 습속의 이기기 어려움이 오나라, 연나라의 강적보다 더욱 심합니다. 그런대도 죽을힘을 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으니… (이하 빠짐) 奉書審安, 旣慰懸戀.又以見勉學求助之意, 甚善甚善.然定如此依樣子, 作平常工夫不得, 子不聞夫句踐之棲會稭乎? 臥薪嘗膽, 冬氷夏火, 身自耕作, 夫人自織.生聚敎訓, 以致富强, 卒能滅吳, 而報仇.又不聞田單之在卽墨乎? 身操版鍤, 與士卒同苦, 妻妾編於行伍, 有死之心, 無生之樂.是以亦能克燕而復國.今也資質不逮越齊之孤弱也, 外誘之侵軼舊習之難, 克甚於吳燕之强敵.乃欲以下盡死之力不切… (以下缺) 생취교훈(生聚敎訓) 《춘추좌전》 〈애공(哀公) 원년(元年)〉조에 월(越) 나라가 "10년 동안 인구를 늘리고 물자를 비축하며, 10년 동안 백성을 잘 가르치면〔十年生聚 而十年敎訓〕" 끝내 부국강병을 도모하여 원수를 갚을 수 있음을 '생취교훈(生聚敎訓)'이라 한다. 판삽(版鍤) 판(版)은 흙을 양쪽에서 끼고 쌓는 데 쓰는 판대기. 삽(鍤)은 흙을 파는 데 쓰는 가래 따위로 모두 담이나 성을 쌓는 데 쓰는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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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김상현에게 보냄 정사년(1917) 與金姪庠鉉 丁巳 이별 후 줄곧 소식이 막혀서 내 마음이 답답하였습니다. 정성(定省)의 여가에 날마다 경적(經籍)을 가까이하며 이른바 도(道)를 추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무릇 도에는 성인의 도가 있고 이단의 도가 있습니다. 그 행실이 인륜에 힘을 다하고 그 지식은 사리에 마음을 다하여 덕을 떳떳이 하고 천명에 부응하여 복록이 절로 이르고 은미한 기미를 알아서 재앙이 절로 멀어지게 하며 평탄하고 곧아서 실족(失足)과 복철(覆轍 실패한 자취)의 근심이 없는 것이 곧 성인의 도이고 내가 말하는 도입니다. 은미하고 괴이한 것을 찾아서 좋아하며 현묘(玄妙)한 것을 탐색하여 지혜로 삼고, 술수를 써서 요행을 바라며 귀신을 말하고 거짓을 구사하여 울퉁불퉁 유심(幽深)하여 구덩이와 함정에 추락하는 환란이 있는 것이 곧 이단의 도로 내가 말하는 도가 아닙니다. 이제 천하에 유술(儒術)이 어두워지고 잡교가 횡행하여 그 음벽(淫僻)함으로 윤리를 진멸시키는 가르침이 금수의 지역에서 나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서 시작하여 천하의 풍속을 바꾸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혹은 스스로 하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종교라 일컫기도 하지만 그 자취를 논해보면 형체를 훼손하고 세력에 붙어서 복록과 요행만을 구하는 것이고, 혹은 주문을 외우고 부적을 불사르며 스스로 눈이 열려서 도를 보았다고 하지만 그 귀결점을 궁구해보면 어리석은 백성들을 무혹시키고 재물만을 편취(騙取 속여서 빼앗음)합니다. 이들은 단지 사람을 미혹시키는 기괴한 자들로 이단이 진리를 어지럽히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와 같은 행위를 믿어서 도라고 여긴다면 어찌 구덩이와 함정에 빠지는 환란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그 몸을 보존하고 제사를 지키는 것조차도 거의 요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이르길 "이제 이교의 무리들이 모두 득의양양하니 감히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유자(儒者)들은 오히려 머리를 움츠리고 숨을 죽여 사망할 날이 거의 멀지않게 되었다. 시세를 헤아려보건대 장차 누가 화를 당하고 누가 복을 받게 될 것인가?"라고 말하는데 이는 정말 무식한 논쟁입니다. 군자가 화복을 논하는 것은 한때의 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백세의 영구함으로 결정짓는 것입니다. 성현의 학문을 높이고 정도를 지켜서 화를 얻는다면, 이는 비록 일시적인 만남일 뿐이고 윤리 강상이 나에게 의지해 세워지는 것이니 위대하고 열렬한 공적이 무궁하게 전해집니다. 그러니 이는 곧 백세의 복입니다. 이교를 믿고 사술을 행하여 복을 얻게 된다면, 그 복을 비록 한때에 만날지라도 세교가 나로 말미암아 그르치게 되는 것이니 그 더러운 명성이 미래에 흐르게 되어 백세의 재앙이 될 것입니다. 이 점을 또한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 대장부가 천지간에 태어나 백년이 바람에 날리는 꽃과 같아서 이 몸은 다시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번 통곡할만한데도 다행히 총명한 이목을 가지고 순수한 성품과 영명한 마음을 부여받았으니, 이 몸을 정도(正道)에 의지해 명성이 먼 훗날에 전해지는 것을 쉽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은 또 어느 정도의 환희이겠습니까? 만약 일찍 취사를 결정하여 정도(正道)를 보위하고 이단을 물리치는 대업을 세우지 못한다면 일생을 참으로 헛되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도(正道)와 이단(異端)은 천길 백길이 눈앞에서 교차하는지라 연소한 초학자가 쉽게 분별하여 간파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환란입니다. 그대는 자질이 아름답고 성정이 고요하며, 뜻이 견고하고 재주가 민첩하니 가히 이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만 소견이 너무 단정하고 뚜렷하지 못해 혹 세상 추이에 어두울까 두려워 그 때문에 우려를 합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병이 들기 전에 약을 주는 것이니 부디 뜻을 더하여 세세히 살피도록 하십시오. 別後一向阻信, 余心於邑.未知定省之暇, 日親經籍以求所謂道者否.夫道有聖人之道, 異端之道.其行也盡力乎人倫, 其知也究心乎事理, 經德配命, 福祿自臻, 識微見幾, 禍辱自遠, 坦易自直, 無失足覆轍之虞者, 是聖人之道.而吾所謂道也.索隱好怪以爲行, 窮玄探妙以爲知, 任數用術, 希覬僥倖, 談鬼說神, 騁逞邪詐, 崎嶇幽深, 有墮坑落穽之患者, 是異端之道.而非吾所謂道也.今天下儒術晦盲, 雜敎恣縱, 其淫僻殄倫之敎, 出自禽獸之域者尙矣.乃有作俑於我人而思以易天下者: 或自謂敬天修敎之宗敎, 而論其迹, 則毁形附勢以邀福幸, 或誦呪焚符, 自謂開眼見道, 而究其歸, 則誣惑蚩氓, 騙取財帛, 是直鬼怪之述人.不啻異端之亂眞也, 以若所爲, 信以爲道, 則豈惟坑穽之患而已? 其得保軀而守祀者, 殆亦幸矣.或者謂今異敎輩, 皆得意棹臂, 莫敢誰何.儒者則縮首屛息, 死亡無日.料時度勢, 將誰禍誰福? 此無識之論也.君子之論禍福, 不以一時之暫, 而定於百世之久.尊聖學守正道而得禍, 禍雖遭於一時, 倫綱賴我而立, 偉烈傳之無窮, 是百世之福也.信異敎行邪術而獲福, 福雖値於一時, 世敎由我而敗, 穢聲流諸來許, 是百世之禍也.此又不可不知也.噫! 男子生天地間, 百年若飃花, 此身不再來.便可一痛哭, 而幸以聰明之耳目, 賦純粹之性, 靈明之心, 其於依此身於正道, 傳諸悠遠, 易以爲力, 此又何等歡喜? 若不早快於取舍, 而建衛正闢奧之大業, 則眞是枉度一生.然正道異端, 千塗百轍, 交差眼前, 年少初學, 美易辨破, 此則通患.汝質美而性靜, 志堅而才敏, 可與共爲此事者.第恐所見未甚端的, 而或昧於趨向, 而用是爲慮.發此病前之藥, 幸加意而細繹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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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숙 창암·함재에게 올림 을축년(1925) 12월 上鬯涵齋族叔 乙丑十二月 듣자니 검사의 말이 다만 통문을 만들고 통문을 인쇄한 것에 대해서만 묻고 그 나머지는 묻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마땅히 우두머리가 되고 홍(弘)이 다음이 되니, 많은 사람들의 재앙을 줄일 수 있고 간편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홍은 나이가 젊고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니, 장차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옛날에는 한 집안에서 먼저 죽기를 다투어 오늘까지도 빛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의 의리는 마음속에 저울 같은 정확한 기준을 두어서 노(魯)나라의 공포(孔褒)71)만이 아름다운 명성을 독차지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부형의 어려움을 구하는 것이 비록 자제의 도라 하지만, 그러나 당사자는 단지 '합의를 허락하면 선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고소를 되돌리면 스스로 욕보이는 것'이라는 말이 의리인 줄만 알아서 나머지는 따지지도 말아야 하니, 이것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입니다.검사국에 투서하는 자가 몇 사람 있으면, 이것은 비록 요점은 아니더라도 또한 그들로 하여금 감히 가볍게 판단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충심에서 나온 이후에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이 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사자에 이르러서는 더욱 다른 사람에게 권하여 재앙을 나눈다는 혐의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聞檢言, 只問製通印通者, 其餘勿問.然則姪當爲首, 弘次之, 可以省得許多人禍網, 好是簡便.然弘是青春具慶, 其將奈何? 古有一門爭死, 至今輝映者.伏想, 今日義諦, 應有定衡于中, 不使魯孔褒專美也.蓋救父兄之難, 雖曰子弟之道, 然當事者, 但知許和無師, 反訴自辱之義, 而不問其他, 是爲目下當行者也.投書于檢者有幾人, 此雖非要点, 亦可使不敢輕斷.然出於中心, 然後可爲, 非他人所能勸.至於當事者, 尤不可勸人以取分禍之嫌也. 공포(孔褒) 노나라 사람으로 장검(張儉)과 친분이 있었다. 장검이 중상시(中常侍) 후람(侯覽)의 미움을 받아 체포령이 내리자 도망하여 평소에 친하던 공포를 찾아갔는데, 이 때 마침 공포는 없고 동생 공융이 맞아들였다가 나중에 탄로나 잡혀갔다. 그러자 동생은 자기가 받아들였으니 자기 죄라 하고, 형은 자기를 찾아왔으니 또 자기 죄라 하고, 어머니는 또 집안일은 어른의 책임이니 어른인 자신의 죄라고 하면서 서로 죽기를 주장하다가 결국 공포가 죄를 받았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권70 〈공융열전(孔融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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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숙 창암에게 올림 정묘년(1927) 4월 上鬯庵族叔 丁卯四月 어제 용동(龍洞)의 분간(分刊)에 대해 광주(光州)의 통첩(通牒)이 와서 보았는데, 유영선(柳永善)의 이름이 그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용동과 진주가 서로 합친 것입니까? 당초에 용동이 간행을 진주와 달리 한 것은 이익을 다투어 설치했기 때문이라서 선사께서 손수 편정한 고본(稿本)을 따른다고 말한 것도 거짓이었을 뿐이니, 잠시 떨어졌다 잠시 합친 것은 본색이 저절로 드러난 것으로 괴상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별지에서 인용한 한기(韓琦)와 범중엄(范仲淹)이 대전(大殿)에 올라가서는 서로 다투고 대전을 내려와서는 서로 즐거워했다는 일72)은 사례가 같지 않아서 대단히 어긋나고 망령스러우니, 변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기와 범중엄이 대전에 올라가서는 서로 다퉜다고 하는 것은 모두가 나라를 위한 것이나 다만 견해가 같지 않아서이니, 바로 공자가 조정에 있을 때에는 말을 분명하게 하신 뜻73)입니다. 그들이 대전을 내려온 이상 어찌 견해가 달라 말을 분명하게 했다는 이유로 서로 즐거워하지 않을 이치가 있겠습니까? 만약에 당시에 조정에 같이 있었던 사람 중에 감히 송나라의 선황제가 오랑캐에게 항복할 뜻이 있었다고 무함하는 자가 있었다면, 한기와 범중엄은 반드시 법에 의거하여 죄를 바로잡기를 청한 이후에 그만두었을 것이니, 어찌 다투고 즐거워하는 것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우리들이 음성의 오진영과 처음부터 인가를 지시하셨다는 무함이 관련되지 않고 다만 문집을 간행하는 일을 목판으로 할 것인지 활자로 할 것인지와 호남에서 할 것인지 영남에서 할 것인지를 다투었을 뿐이라면, 한기와 범중엄의 고사를 인용할 만합니다. 지금 음성의 오진영이 선사께서 인가를 지시한 일이 있다고 무함한 것은 바로 신하가 임금이 오랑캐에게 항복할 뜻이 있었다고 무함하는 것과 똑같은 죄입니다. 우리들이 이미 그 죄를 성토하여 바로 잡았는데 다시 그들과 서로 즐거워한다면 어찌 스승을 무함한 자와 똑같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승을 무함한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는 것이 유영선 무리의 완고한 견해이니, 나머지 귀신 소굴 속에서 술에 취하고 잠든 사람들이야 또한 꾸짖을 것도 못 됩니다. 고매하신 회봉(晦峰) 어른에 이르러서는 가까운 근처에 살아서 의리를 익숙히 들었는데도 오히려 높다랗게 통수(通首)라는 지위를 차지하여 자기도 모르게 함부로 말하고 의리를 어그러뜨리는 죄과에 빠졌으니, 대단히 한탄스럽고 애석합니다. 우리들은 이 어른에 대해서 모두 같은 마을에서 대대로 맺은 정의가 있으니, 다른 동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족숙께서는 또한 동갑으로 허물이 없으시니, 부디 편지 한 장을 보내 구원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昨見龍洞分刊, 光州通牒來到, 柳永善名, 參其中, 無乃龍晉之相合乎? 當初龍刊之貳晉, 爲爭利而設.其云遵手本者, 假之而已, 則宜其乍離乍合, 本色之自現也, 無足恠者.但其別紙所引, 韓范上殿相爭, 下殿相歡之事, 類例不倫, 極爲乖妄, 不容不辨.蓋韓范之上殿相爭, 均之爲爲國而只是所見不同, 正孔子在朝便便之意也.其下殿也, 豈有因異見便便之故, 而不相歡之理乎? 若使當時同朝者, 敢有誣宋之先帝有降虜之意者, 韓范必請據法正罪而後已, 豈容曰爭曰歡之可論哉?吾儕與陰震, 初無認誣之關, 而只爭稿事之或板或活若湖若嶺而已, 則可引韓范之故事也.今陰震之誣先師有認敎, 正臣子誣君降意之同罪也.吾儕旣已討正其罪, 復與之相歡, 則豈非同爲誣師者乎? 以誣師爲細故, 柳輩之見固也, 其餘人鬼窟裡醉寐者, 又不足責.至於晦峰高丈, 居在此近, 習聞義理, 而猶巍然居通首, 不覺陷於妄言乖義之科, 則甚可歎惜也.吾儕於此丈, 均有鄕井世契之誼, 非凡他同門比.叔主又同庚無間, 幸爲一書而救授之, 如何. 한기(韓琦)와……일 《춘추좌전(春秋左傳)》 成公 2年 송나라 재상 위공(魏公) 한기(韓琦)는 "범희문(范希文)과 부언국(富彦國)이 함께 앞에서 정사를 논할 때에는 곧장 서로 다투다가도 각기 헤어져서 궁전만 떠나오면 마치 다툰 적이 없는 것처럼 서로 화기(和氣)를 잃지 않으니, 이는 마치 '수레를 밀어 주는 사람〔推車子〕'과 같아서 그 마음은 항시 수레를 가게 하는 데에 있을 뿐이요, 자신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권1 희문은 범중엄(范仲淹)의 자이며 언국은 부필(富弼)의 자이다. 조정에……뜻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공자가 종묘와 조정에 있을 때에는 말을 분명하게 하셨다.〔孔子在宗廟朝廷 便便言〕"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주희가 "종묘는 예법을 지키는 곳이고 조정은 정사를 행하는 곳이므로, 분명히 구별하여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반드시 상세하게 묻고 명확하게 말한 것이다.〔宗廟 禮法之所在 朝廷 政事之所出 言不可以不明辨 故必詳問而極言之〕"라고 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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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이장유흥에게 답함 경신년(1920) 與誠菴李丈裕興 ○庚申 삼가 생각건대, 병옹(炳翁 병암 김준영)은 순수하고 소박한 자질로 여러 해 동안 독실한 공부를 하였으니 우뚝하여 그 덕이 높고 깊숙하여 그 학문이 깊습니다. 광명정대하고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 심사(心事)와 겸손하고 충일하며 엄중하고 삼가는 기상(氣像)으로, 사람을 사랑하기를 봄비가 벼의 싹을 적셔주듯이 하고 의리로 재단하기를 가을 서리가 풀을 떨구듯 하시는 데다 세상에 맞서 격렬하지도 않고 물들어 더렵혀지지도 않으며 자신을 높이 내세우지도 않고 낮추지도 않으시면서 중정(中正)과 확실(確實)을 절충하시니, 이것이 평생 논리를 세우고 자신을 처신해온 표준이었습니다. 제가 선생을 보건대, 자못 인의가 몸에 갖추어진 군자입니다.이와 같은 포부를 지니고 임하(林下)에서 늙어죽어 위로는 임금과 재상의 알아줌을 얻지 못하였고, 아래로는 사문의 맹주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덕을 아는 자가 드물어 훌륭한 명성이 드러나지 못했으니, 어찌 개탄하고 애석함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옛날에 부지런히 도를 구했던 뜻과 정성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베풀었던 선과 비통해 하며 세상을 근심했던 마음이 환히 유고 안에 실려 있으니, 만약 유고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선생의 마음이 죽지 않을 것이고, 유고가 공적으로 전해진다면 선생의 은택이 세상에 미칠 것입니다. 원고를 간행하는 일이 어찌 동문으로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선생에 대해서 평소에 기꺼이 감복하여 진실로 사문의 아성(亞聖)으로 생각했고 선생이 가르침을 베풀 적에도 또한 선생을 이렇게 일컬었으니, 이 어른의 이러한 은혜를 죽도록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유고를 간행하는 공역에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감히 수고로움을 꺼려서 사양하고 피하겠습니까? 이것이 명을 들으면 즉시 행하여 한 팔뚝의 힘이라도 도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모두 굽어 살펴주기를 바랍니다. 竊念, 炳翁以純粹樸茂之資, 用積累篤實之工, 卓乎其崇德, 淵乎其邃學, 光明磊落之心事, 謙沖儼恪之氣像, 愛人也, 春雨之潤苗, 裁義也, 秋霜之隕草.乃若不激不汙, 匪抗匪卑, 而折哀乎中正確實, 是其生平立論行己之準的也.以余觀乎先生, 殆乎其仁義具體之君子也.以若抱負, 老死林下, 上之不得爲君相之知, 下之不得主斯文之盟.知德者鮮, 令名不彰, 曷勝慨惜? 惟昔孜孜求道之志, 惓惓及人之善, 惻惻憂世之心, 班班載在遺稿中, 苟遺稿不泯, 則先生之心不死, 遺稿公傳, 則先生之澤被世.刊稿之役, 豈非同門後死之責歟? 澤述之於先生, 平日悅服, 誠居師門之亞, 而先生之施敎也, 亦稱此焉.此翁此恩, 沒世可忘? 苟可以爲功於稿役者, 豈敢憚勞而辭避也? 此所以聞命卽行, 庸助一臂之力也.綂希俯諒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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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락의 매화를 보고 느낀 바 있어 임자년(1912) ○이하 동일하다. 見庭梅有感【壬子○下同】 선군께선 매화 심고 난간에 글을 쓰셨지만 先君種此傍書欄손때가 지금 아직 사라지지 않았네 手澤而今尙未殘농염함은 봄 늦게 피어도 방해될 게 없는데 濃艶無妨春晩見옅고 성글게 핀 꽃을 어찌 굳이 눈 속에서 보는가 淡疎何必雪中看숨어 사는 이는 예로부터 교유의 정 두텁고 幽人從古交情密시인은 원래부터 시품을 쏟아내기 어려운 법 騷客元來品寫難홀로 맑은 향기 완상한 지 삼 년 지났으나 獨賞淸香三載後처연한 슬픈 마음에 편안치는 않구나 悽然心事不能安 先君種此傍書欄,手澤而今尙未殘.濃艶無妨春晩見,淡疎何必雪中看?幽人從古交情密,騷客元來品寫難.獨賞淸香三載後,悽然心事不能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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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밤에 벗들과 만나 읊음 十月望夜遇友人吟 서리 맑고 잎 떨어지며 달 밝은 때 霜淸木脫月明時우뚝 호탕한 담소에 밤 깊어감 더디구나 磊落豪談趁夜遲가을 지나 맑은 강은 바닥까지 보이고 秋後澄江全徹底눈 내린 후 늦게 핀 국화 가지 꺾이지 않았네 雪餘晩菊不摧枝가난을 지키며 안연의 물175) 마시길 바라고 固窮願飮顔賢水세상을 걱정에 두보의 술잔176) 기울이네 憂世聊傾杜老巵천 년 전에 자유로웠던 소식의 흥을177) 放達千秋蘇子興한가로움이 몸을 맡겨 남들에게 알리리라 等閒付與別人知 霜淸木脫月明時,磊落豪談趁夜遲.秋後澄江全徹底,雪餘晩菊不摧枝.固窮願飮顔賢水,憂世聊傾杜老巵.放達千秋蘇子興,等閒付與別人知. 가난을……물이요 안빈낙도를 일삼는 안회(顔回)의 삶을 말한다. 세상을……잔이며 우국충정의 심정으로 술잔을 기울였던 두보(杜甫)를 말한다. 천……흥을 방달불기(放達不羈)로 세상을 보냈던 소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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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손 어른 종순 에 대한 만시 挽一山孫丈【鍾純】 효도와 근신의 가풍이 초산에서 으뜸인 이가 孝謹家風冠楚山한나라 시대 석씨178)라는 것에 나는 이견 없노라 漢朝石氏我無間예문에 비를 뿌리니 짙푸른 빛 남아있고 芸門雨化遺藍碧돌아가신 후 자손들 깃처럼 눈물 흘리네 翰死雲仍落羽斑책상 위엔 몇 권의 책만이 예전 그대로 있고 案上殘篇依舊在술동이 앞엔 밝은 달이 몇 년 동안 있구나 樽前明月幾年間무슨 일 때문에 한 번 곡할 겨를이 없어 未遑一哭緣何事먼저 교분을 저버렸으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愧負先交但厚顔 孝謹家風冠楚山,漢朝石氏我無間.芸門雨化遺藍碧,翰死雲仍落羽斑.案上殘篇依舊在,樽前明月幾年間.未遑一哭緣何事?愧負先交但厚顔. 석씨 석씨 집안은 석분(石奮)의 집안을 말하는데, 석분은 여러모로 살펴 두루 깊이 삼갔고 그 네 아들인 석건(石建), 석갑(石甲), 석을(石乙), 석경(石慶)도 효도하며 조심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석경은 태복(太僕)으로 있을 때 한 무제(漢武帝)가 수레 끄는 말이 몇 필이냐고 묻자 채찍으로 세어 보고 난 다음 여섯 필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하니, 근신한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史記 卷103 萬石張叔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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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두승산에 올라 翌日上斗升山 아홉 떨기 부용꽃 바닷가에 피어 있고 九朶芙蓉聳海頭천년의 자라 등에는 영류 땅 자리했네 千年鰲背地靈流고요한 약암에는 저녁구름 묵고 藥庵寂寂暮雲宿아득한 신선 발자취에 외로운 달이 머무네 仙跡蒼蒼孤月留노승은 삼계217)의 꿈을 응당 볼 것이고 老釋應觀三界夢한 점 티끌도 백층의 누각엔 오르지 못하겠지 點塵不上百層樓뜬구름 같은 인생사 대개는 여유가 없어 浮生大抵無間隙다시 이 산에 오른 지도 어느덧 사십 년이라 再到玆山四十秋 九朶芙蓉聳海頭,千年鰲背地靈流.藥庵寂寂暮雲宿,仙跡蒼蒼孤月留.老釋應觀三界夢,點塵不上百層樓.浮生大抵無間隙,再到玆山四十秋. 삼계 중생이 사는 세계를 세 가지로 분류한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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