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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잠 【경오년(1930)】 愼口箴 【庚午】 나이 마흔에 미움 받으면 四十見惡,옛 성인이 버려 내쳤네 先聖所棄.어찌하여 미움 받는가 見惡以何,언행에 허물이 많아서네. 言行尤悔.뉘우칠 행동은 오래 아프고 悔固可疚,잘못된 말은 부끄러움을 더하네. 尤益見愧.옥에 흠은 지워 없애기 어렵고 圭玷難磨,나쁜 말은 달리는 말보다 빠르며, 駟馳曷及?하물며 이 중요한 기관에는 矧玆樞機,앙화와 재난이 함께 모인다네. 禍難交集.이제 장차 중년인데 今將中身,아직도 입조심이 안 되니, 尙不愼口,그 결말에 생각이 미치면 念及其終,가슴 아리고 머리 지끈거리네. 痛心疾首.병마개처럼 입을 지키라 守口如甁,회옹 주희의 잠언223)이고, 晦翁規箴,입 없는 박처럼 無口之匏,이정승은 침묵하였네.224) 李相默沈.나 이제 이를 본받아 我其法此,어제를 거울삼아 내일을 경계하니 懲前毖後,조심하고 조심하여 愼旃愼旃,큰 허물을 면하리라. 庶免大咎. 四十見惡, 先聖所棄。 見惡以何, 言行尤悔。 悔固可疚, 尤益見愧。 圭玷難磨, 駟馳曷及? 矧玆樞機, 禍難交集。 今將中身, 尙不愼口, 念及其終, 痛心疾首。 守口如甁, 晦翁規箴, 無口之匏, 李相默沈。 我其法此, 懲前毖後, 愼旃愼旃, 庶免大咎。 회옹 주희(晦翁朱熹)의 잠언 주희는 〈경재잠(敬齋箴)〉에서 "입 지키기를 병마개처럼하고, 의욕 막기를 성벽처럼 하라[守口如甁, 防意如城。]"라고 하였다.《晦庵集 卷85》 입 없는……침묵하였네 북송의 명재상 이항(李沆, 947~1004)이 매우 과묵하여 사람들이 '입 없는 박[無口匏]'이라 하였다. 《宋史·李沆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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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학서 전 병자년(1936) 趙學瑞傳【丙子】 조학서(趙學瑞)의 이름은 순식(順植)으로 그 형은 일찍 죽고 아들 하나를 남겼다. 학서는 형수를 섬기고 아버지를 여읜 조카를 무육(撫育)하였다. 가정의 크고 작은 일은 돈 한 푼이나 한 척의 비단이라도 반드시 형수에게 명을 받은 뒤에 사용하였으며, 그 아내는 형님 모시기를 시모 모시듯 하여 아주 작은 것도 마음대로 쓰지 않았다. 형수는 성질이 사나워 모시기 어려웠는데, 학서와 아내는 더욱 공손하였다.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쉬면서 손발이 부릅뜨도록 다만 조카를 교육함에 정성을 쏟았으며 조카가 다 커도 오히려 집안일을 꾸려가지 않게 하였으니 20년을 하루같이 그렇게 하였다. 분가를 생각하지 않고 홀로 집안을 꾸리다가 40살이 된 이후에 비로소 살림을 나눴는데, 또한 종가에서 재물을 받지 않았기에 생활이 곤란하였지만 얼굴에 그러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다음과 같이 논한다. "학서는 종자(宗子)만 생각하였지 자신은 생각하지 않았으니, 어째서 그런가. 종자는 부조(父祖)의 적통이니, 종자를 높이는 것은 결국 부조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자는 뿌리이며 나는 가지이다. 뿌리를 북돋으면 가지가 무성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학서는 이런 이치를 잘 알았구나. 나는 그 후손이 번창할 것을 확신한다. 아! 지금 사람은 지자(支子)가 종자를 업신여기고 서자가 적자를 해치니, 이는 스스로 그 뿌리를 손상시켜서 그 망함을 재촉하는 것이다. 아! 슬플 따름이다. 趙學瑞, 名順植, 其兄早亡, 有一子.學瑞奉丘嫂撫孤姪, 家政巨細, 以至一錢尺帛, 必稟命於嫂, 其妻事姒如姑, 毫不敢自由.嫂更亢厲難事, 學瑞偕其妻滋益恭.早作暮息, 胼胝手足, 惟敎育其姪是誠, 以至長大, 猶不使幹蠱, 二十年如一日.不思分家而自營, 年四十後始各産, 亦無資於宗家, 以是生艱而無幾微色.論曰: "學瑞知有宗子而不知有身者, 何也.宗子者, 父祖之嫡傳, 尊宗子, 所以尊父祖也.故宗子根也, 吾身支也.根培則支達, 理也.學瑞其深知此理者歟.吾知其後必昌.噫, 今之人之以支凌宗, 以庶賊嫡者, 是自戕其根而促其亡, 可哀也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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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族弟希淑 乙丑 지난번에 박노학(朴魯學)을 만나서 묻기를 "정재(靜齋)가 고소를 면한 것은 오진영에게 화평을 청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나 또한 화평을 청하면 고소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오진영을 성토하는 여러 사람이 모두 오진영에게 화평을 청하면 모두 고소당하는 화가 없겠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오진영과 화평하면 고소를 면할 수 있고 오진영을 성토하면 고소를 면치 못하니, 금일의 고소는 과연 오진영이 한 것이지 강대걸이 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오진영이 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사람은 서진영(徐鎭英)과 동실(同室)의 사람이면서 오진영을 변호하는 자인데도 그 말이 오히려 이와 같으니, 이는 이창환(李昌煥)의 '금번 일은 석농(石農)이 면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똑같이 오진영의 허물을 엄호하지 못한 데서 나왔다.내가 박노학에게 말하기를 "금일의 고소에 대해서 그대가 이미 '오진영이 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즉, 그렇다면 내가 한번 전언(轉言)해서 묻겠습니다. 이제 유학자로 자칭하는 자들이 한인(韓人)을 일본관청에 고소한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이런 사람은 인간도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런 사람이 이미 인간도 아니면, 오진영이 동문인(同門人)을 원수의 처지인 일본관청에 고소해서 기어코 모함하여 죽이고자 하는 것은 마땅히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런데도 그대는 여전히 '오사문(吳斯文)'이라고 칭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이 없었다. 昨見朴魯學問, 靜齋之得免告訴, 非以乞和於吳乎? 朴曰然.吾亦乞和則得免告訴乎? 曰然.討吳諸人, 俱皆乞和, 則都無訴禍乎? 曰然.吾曰和吳則得免, 討吳則不得免.今日告訴, 果吳之爲也, 非姜也.朴曰不得不謂吳事也, 此人徐鎭英一室而護吳者, 其言猶如此, 此與李昌煥今番事石農免不得之言, 同出於掩護不得也.吾謂朴曰, 今日告訴, 子旣云不得不謂吳事, 則我有一轉問.今有以儒自名者, 訴韓人于日官則如何? 曰此非人也, 此旣非人, 則吳之訴同門人于所讐之地, 期欲構殺者, 當以何物名之? 子猶稱以吳斯文可乎? 朴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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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崔以求 乙亥 일전에 나의 이름이 〈도지학행편(道誌學行篇)〉 초단(草單)4) 가운데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진실로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대 또한 반드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에게서 확실히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심장이 뛰고 불안합니다. 예전에 《잠헌보감(簪獻寶鑑)》이 간행될 때에 선사의 위치와 덕망으로도 오히려 벼슬아치도 아니고 훌륭한 선비도 아니니 마땅히 그 안에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나 택술과 박중당(朴中堂)에게 명하여 가서 공평(公坪) 박모에게 부탁해 기어코 넣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물며 나처럼 학문도 없고 덕행도 없어서 천만부당한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결단코 실질 없는 명성을 무릅쓰고 하늘을 속이는 죄안을 얻어서 세상에 넘치는 비웃음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대는 급히 간행소로 가서 만약 나의 이름이 있거든 초고에서 빼버리는 것이 참으로 옳을 것입니다. 내 아이들이 비록 불초하지만 나는 이것으로 제 아비를 높이고 또 숨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우려할만한 것은 다수의 친척들입니다. 그러니 본군의 서책 이외에 부안군의 서책도 아울러 검토해주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向聞賤名入於〈道誌學行篇〉草單中之說.吾固知其不可信.賢亦云必無是事, 故不以爲意矣.今再聞有人的見之說, 則心動而不安矣.昔年《簪獻寶鑑》之刊也, 以先師之位德, 猶自謂非簪非獻, 不宜在其中, 命澤述及朴中堂往囑公坪朴某, 期令勿入.况如賤子之無學無行萬萬不當者乎? 決不敢冒當無實之名, 得欺天之罪案, 而取溢世之笑囮也.賢其亟往刊所, 如有賤名, 拔去草單, 至可至可.兒輩雖不肖, 吾信其不以此尊其父而又諱之.萬有一可慮者, 多數之宗族也.本郡券以外, 扶安卷兼閱如何. 초단(草單) 아직 정서되기 이전의 것을 초단이라 하고, 정서하여 도장을 누르고 수결을 받으면 이를 정단(正單)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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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끝났기에 읊음 春後吟 천태산112) 절경 유람했던 일 떠올렸더니 回憶天台絶勝遊봄을 보낸 남은 흥취가 풍류로 이어진다 送春餘興續風流버들가지는 베를 짠 듯 푸르름이 산에 펼쳐졌고 柳條如織靑舖山부들 잎은 칼날을 뽑은 듯 초록이 물가에 꽂혀있네 蒲葉抽刀綠揷洲다만 취했다 깼다 할 수 있는 날 삼만 일 뿐인데 只可醉醒三萬日치세와 혼란은 변화하여 천 년 동안 계속 되었네 無常治亂一千秋좋은 시절의 행락을 서로 저버리지 마소서 芳辰行樂莫相負어찌해서 세월은 조금도 머물러주지 않는가 其柰年華不少留 回憶天台絶勝遊,送春餘興續風流.柳條如織靑舖山,蒲葉抽刀綠揷洲.只可醉醒三萬日,無常治亂一千秋.芳辰行樂莫相負,其柰年華不少留. 천태산 절강성(浙江省) 천태현(天台縣)에 있는 산이다. 도교에서 남악(南嶽)으로 삼고,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발원지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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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답에서 田間 농가의 은거지113)가 바로 우리 집이니 田家薖軸是吾家어린 대나무와 새로 핀 매화에 하나의 비낀 길 稚竹新梅一逕斜꿈에선들 어찌 명예와 잇속에 이른 적이 있었던가 夢想何曾到名利고황114)에도 거리낄 게 없어 놀과 안개에 푹 빠졌었지 膏肓無妨病烟霞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 조용히 듣고 靜聽絶澗淙淙水평야에 한없이 펴진 모래톱을 굽어보네 俯看平野歷歷沙듣자니 바다는 바람과 비의 심한 것도 받는다 하는데 聞道海徼風雨惡도도한 하늘 물결에 누가 그치게 할지 모르겠구나 不知誰息滔天波 田家薖軸是吾家,稚竹新梅一逕斜.夢想何曾到名利?膏肓無妨病烟霞.靜聽絶澗淙淙水,俯看平野歷歷沙.聞道海徼風雨惡,不知誰息滔天波. 은거지 원문 '과축(薖軸)'은 은자(隱者)가 한가로이 소요하며 지내는 것을 말한다. 《詩經 衛風 考槃》 고황 뱃속 깊은 곳에 있는 장기(臟器)로, 병마가 그곳으로 들어가면 치료할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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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선생의 묘를 찾아뵙고 임술년(1922) ○이하 동일하다. 拜尤菴先生墓【壬戌○下同】 만세토록 종왕양이와 공필189)을 생각하여 萬世尊攘思孔筆평생 마음의 법을 주자로 말미암았지 一生心法自朱門오늘날 천하는 비린내 나는 풍우로 가득하니 腥風羶雨今天下어찌 선생께서 구천에서 일어날 수 있으랴 安得先生起九原아름다운 물 밝은 산은 이 가운데 모여들고 麗水明山萃此中가성190)의 형세 어찌 그리도 무성한지 佳城氣勢何葱葱응봉 가득 비췻빛에 푸른 시내 활발하니 鷹峯長翠靑川活풍류와 운치가 천년 만년 무궁하도다 風韻千秋也不窮 萬世尊攘思孔筆,一生心法自朱門.腥風羶雨今天下,安得先生起九原.麗水明山萃此中,佳城氣勢何葱葱?鷹峯長翠靑川活,風韻千秋也不窮. 공필 원문 '공필(孔筆)'은 《춘추》를 지어 역사상의 인물들을 포폄(褒貶)해서 대의명분을 밝게 세운 공자의 사필(史筆)을 말한다. 가성 무덤을 성에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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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동 유람 遊華陽洞 화양동의 승경은 예로부터 소식 들어 華陽勝槩昔聞之이날 이곳에 오르니 오랜 숙원 이루었구나 此日登臨償夙期푸른 나무 붉은 꽃이 비단처럼 피었고 樹綠花紅開錦繡맑은 연못 하얀 바위 유리처럼 비춘다 潭淸石白映琉璃산 깊어 마치 선령이 있는 것 같고 山深如有仙靈在경치 빼어나 어찌 세속인들 알까 境絶何能俗子知우리들 경치만 보고 즐길 뿐만 아니라 非直吾生耽玩賞뛰어난 발차취 찾아 새 시에 부치리라 也搜奇蹟付新詩 華陽勝槩昔聞之,此日登臨償夙期.樹綠花紅開錦繡,潭淸石白映琉璃.山深如有仙靈在,境絶何能俗子知?非直吾生耽玩賞,也搜奇蹟付新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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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창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宋基滄 丁卯 그대는 이갈이 하던 동자시절에 신학문을 버리고 머리를 기르며 성현을 공부하겠다던 분이 아니셨던가요? 또 성동(成童 15세) 시절에는 먼저 유자(儒者)의 옷을 입어서 여러 유생들의 본보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만으로도 이미 어려운 일이거늘, 눈 쌓인 한겨울에 울부짖으며 먹지 않고 홀로 백리를 걸어 스승의 환난에 달려와 함께 죽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런 사람을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인재가 사라진 시절에 하늘이 이 사람을 낸 것은 뜻이 있어서이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영주산(瀛洲山) 아래 우덕리(優德里) 송씨 가문에서 위인이 나왔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크게 어긋나 그대처럼 청고하고 독실한 자질로 갑자기 스스로 암흑의 땅에 빠지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바야흐로 긴 밤 책을 송독할 때는 금 쟁반에 옥 젓가락 소리가 들렸고, 종이를 펴서 문사를 토해낼 때는 바람이 세차게 일고 물이 용솟음치는 형세여서 장차 천하의 문장을 들어 홀로 독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수개월동안 먼지더미에 경전을 묶어 보관하고, 여름 내내 파리 떼 나는 소굴에서 썩은 나무와 썩은 담장이 되어버렸는가요? 참으로 사람은 지혜롭기가 쉽지 않고, 사람을 안다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내가 여러 제자들과 교학 상장할 때에 그대를 믿을 만하다고 여겨 이름을 기창(基滄)이라 하였고, 자(字)를 이경(以敬)이라 한 것은 대개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와 같이 되었으니, 이는 또한 운기(運氣)이지 인력(人力)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분수가 박복한 소치일 터이니, 마음의 근심이 은하수처럼 유장합니다. 《시경》에 이르길 "사람들의 생각이 많은 것은 각각 까닭이 있다."77) 라고 했는데, 이제 그대가 이 학문을 버리고 다른 학문을 도모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요? 그대가 부랑한 것을 쫓고 잡란한 것을 일삼는다 해도 결코 최악의 지경까지 이르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염려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대가 신학문을 한다고 해도 풍부(馮婦)가 천고의 웃음거리가 되었다78)는 사실은 잘 알 것입니다. 만일 또 그대가 학업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다스린다고 하면 어버이의 바람은 학업에 있지 결코 집안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일찍이 그대의 시를 보았는데 "어느 때에 통쾌하게 삼백주(三百州)가 회복되는 것을 볼까?"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풍진 세상에 발을 내딛어 크게 바라는 바를 추구하고자 하는데, 그에 앞서 "초당의 봄잠을 충족하는 것이 아닌가?"79)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비록 천지를 뒤흔드는 공업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학문의 본지가 있은 연후에 볼만한 것이 있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태공(太公)이 목야(牧野)를 청명하게 한 것도 "경의(敬義)를 따르면 길하다.80)"라는 서책에 근본했고,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천하삼분 계책도 "영정(寧靜) 담박(澹泊)"의 훈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 주자(朱子)는 "진정한 영웅은 전전긍긍하는 신중한 자세에서 만들어진다."라고 한 것도 미더운 말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는 재략(才略)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말했으니, 그대와 나의 경우는 본래 품수 받은 자질이 다만 경전에 힘쓰고 심신을 선하게 하여 윤리강상(倫理綱常)을 부축하고 도학(道學)을 밝힐 수 있는 것뿐입니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만약 이 학문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면 세도(世道)에 공이 있는 것이 흔천동지(掀天動地)의 공업에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그대가 어찌 모르는가요? 아! 그대의 뜻이 과연 여기(학문)에 있는 것인가? 저기(공업)에 있는 것인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삼년 동안 스승과 제자의 우의에 절실한 아픔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폐간에서 나오는 말을 개진하는 것이니, 그대가 번연히 길을 바꾸어 더욱 용감히 나아간다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편지를 다시 돌려보내십시오. 나는 천금의 옥벽을 헤진 빗자루와 동일하게 보는 처지에 던져버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장차 편지를 안고 스스로 슬퍼하면서 그대를 강호에서 잊을 것입니다. 汝在齠齔, 非棄新學而長髮讀聖賢書者乎? 又在成童, 非先著儒服爲諸生效法者乎? 此已是難事, 而隆冬積雪, 號泣不食, 隻行百里, 赴師難而誓同死者, 何處更覯? 吾以爲當此人材寥寥乏日天生此人, 其或有意乎? 又以爲瀛洲山下優德里, 宋氏之門, 有偉人者出乎, 孰料其事有大謬? 以若淸高篤實之姿, 遽自陷於窣窣沓沓之地, 方其永夜誦讀, 金盤玉筯之聲, 展紙吐辭, 風迅水湧之勢也.若將擧天下之文而獨擅之, 胡爲乎累月塵堆, 束閣經傳, 長夏蠅窩, 朽木糞土之爲乎? 人固未易知, 知人亦未易也.念吾相從諸子, 以汝爲可侍, 名以基滄, 字以以敬, 蓋有深意存也.今乃若此, 是亦運氣而非人力歟, 抑亦賤子分薄之致歟.心之憂矣, 河漢其長.詩云人之善懷, 亦各有行, 今汝之舍此而他圖者, 志果安在? 使汝欲遂浮浪事雜亂, 吾知其汙不至此, 不須慮也.使汝欲更理新學, 馮婦之偉千古所笑, 汝所知也.欲輟業而幹蠱, 則親之所欲, 在此而不在彼也.吾嘗見汝詩, 有何時快復三百州之句矣.無乃出脚風塵, 求所大欲, 先足此草堂春睡也乎.蓋雖掀天揭地事業, 必有學問爲之本地, 然後有可觀者.故太公之牧野淸明, 本於敬義吉從之書, 孔明之三分籌策, 本於寧靜澹泊之戒.朱子所謂眞正大英, 雄自戰兢臨履做來者, 其信矣.夫雖然, 此以才略可爲者言, 若汝與我者, 合下稟質, 只可劬經傳淑身心, 扶倫綱明道學而已.雖然若能於此, 透關出場, 其有功世道, 曾不下掀揭事業.此箇義諦, 汝豈未知? 噫! 汝之志, 果在此乎在彼乎? 吾不得以知之.但三年師生之誼, 有切痛痒之關, 陳此瀝肝之言, 如得幡然改轍, 一倍勇進則幸矣.不然此紙還以見歸.吾不欲以千之璧, 投諸視同弊箒之地.將抱此自傷, 而伊人則可忘江湖也. 사람들의……있다 《시경》 〈재치(載馳)〉에 "여자가 그리움 많은 것은 또한 각기 도리가 있거늘.〔女子善懷, 亦各有行.〕"에서 나온 말이다. 정현(鄭玄)과 주자(朱子)가 '선(善)'을 '다(多)'로 풀이하였다. 풍부(馮婦)가……되었다 "진(晉)나라 풍부(馮婦)가 호랑이를 잘 잡았는데, 마침내 좋은 선비가 되었다. 그러나 호랑이를 보자 팔을 걷어붙이고 수레에서 내리며 절제할 바를 알지 못했다. 《맹자》 〈진심(盡心)〉 초당의……아닌가 제갈량이 일찍이 융중(隆中)에 은거하고 있을 때 읊은 시에 "초당에 봄잠이 넉넉하니, 창밖의 해는 더디기만 하구나. 큰 꿈을 누가 먼저 깰까? 평소 내 스스로 아노라.[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에서 의미를 취했다. 경의(敬義)를……길하다 "군자는 경으로써 안의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의 일을 바르게 하니, 이렇게 경과 의가 확립되어서 그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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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룡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朴南龍 癸酉 요즘 젊은이들이 신풍조에 취해서 관상(冠裳 유학자의 의상)을 훼손하는 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찍이 유학을 업으로 삼아 여전히 옛 법식에 있는 자들조차 모두 전일의 스승과 어른을 잊고 지내는 것이 강호의 물고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오직 그대만큼은 학문을 그만두고 돌아간 지 한 해가 지났는데도 멀리서 편지를 부쳐 나의 생사를 물어주니, 적조(積阻 오랫동안 격조)함을 위로해주는 기쁨일 뿐 아니라 그대가 이 학문에 종사하여 잊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편지에서 "가난으로 인해 높은 누각에 서책을 묶어두었다."라는 말은 무엇 때문입니까? 아마도 뜻이 견고하지 못하고 힘씀이 부지런하지 못해서 약간의 세풍에 구속됨을 면치 못한 것이 아닌가요? 시험 삼아 옛날의 현인, 군자를 보건데 누가 빈궁(貧窮) 가운데로부터 성취를 이루지 않았던가요? 안자(顔子)는 늘 궁핍했지만 덕행이 가장 높았고, 증자(曾子)는 밭의 김을 매었지만 끝내 성인의 학문을 계승했습니다. 계로(季路 자로)는 짐을 이고 지고 날랐지만 백세의 사표가 되었고, 호미질을 하면서도 경전을 차고 다녔던 예관(倪寬)은 한(漢)나라의 경상이 되었고, 주경야독하였던 동소남(董邵南)은94) 이름을 드날렸습니다. 또 세간의 부호 자제들을 보십시오. 누가 즐겨 머리를 숙이고 학문을 구하는 자가 있던가요? 마음으로는 주색을 연연해하고 서책을 도외시하면서 다툼으로 남을 능멸하고 도박으로 어버이를 저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안히 거처하면 금수에 가까워짐을 순임금 때부터 근심하였고, 완악함과 사치로 종족을 전복시킨다고 유공(柳公 유형원?)은 경계를 두었습니다. 이는 가난이 도리어 바탕이 되어 학문을 이루고 부(富)는 학문에 방해됨이 이와 같은 바, 그대는 어찌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는 것입니까? 더욱 힘쓰십시오. 近日年少, 醉新風而毁冠裳者, 不須言, 其嘗業文而尙在舊式者, 擧忘前日師長, 若江湖之魚.惟左右輟歸經年, 乃能寄遠書問死生, 非但喜積阻之慰, 因此而知左右之於此學.有事而不忘矣, 乃有緣於傷哉束書高閣之喩何也? 無乃知尙未堅, 力尙未勤, 不免些爲世風所囿耶? 試觀古之賢人君子, 孰不從貧窮中做成? 顔子屢空, 德行最崇, 曾氏芸田, 卒繼聖傳.季路負戴, 師表百世, 鉏禾帶經, 兒爲漢卿, 暮讀朝■, 董生顯名.又觀世間當豪子弟.孰肯屈首而向學者? 心戀酒色, ■視簡冊, 鬪狼陵人, 博賭遺親.逸居近獸, 憂自舜后, 頑奢覆宗, 戒存柳公.是則貧之反資而成學, 富之適足以妨學, 有如此者, 左右何不以此自慰而益孜孜也. 동소남(董召南) 당나라 때 안풍(安豐) 사람으로 은사(隱士)인데 한유(韓愈)가 〈동생행(董生行)〉이라는 노래를 지어 동소남이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처자식을 사랑하는 내용을 읊었다. 《小學 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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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칠 기석에게 답함 무인년(1933) 答姜齊七 璣錫 戊寅 중양일(重陽日)에 보낸 편지를 받고 "예전의 질병이 나은 후에 얼굴에 종기가 생겼고, 종기가 그치자 다시 설사의 괴로움이 심하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대의 금년 신운이 곤액하십니다. 비록 그렇지만 질병이 닥치는 것은 성현도 면치 못한 바였으니 하물며 뭇사람들이겠습니까? 끝내 우려할 것이 없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다행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그것으로 위로하고 굳이 뒤늦게 문제 삼을 일은 없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현재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그대로서는 공자께서 말씀하신 "부모는 오직 질병만을 근심하신다."95)라는 훈계를 마땅히 두렵게 생각하여 음식, 희로애락, 과로 등 모든 질병을 초래할 수 있는 것들을 더욱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질병이 나로 말미암아 생겨나 어버이께 근심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오로지 힘써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말하자면 배우는 자는 마땅히 질병이 오면 두려워하고 반성하여 "하늘이 나에게 병을 가한 것은 내 평상시의 처신에 착하지 못한 죄를 다스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깊이 후회하고 질책하여 타일 수신(修身)의 자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 두 가지로 안팎을 번갈아 닦아 나아가야지 성현 또한 질병을 면치 못한다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누그려 뜨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는 무엇을 하던지 공부처가 아님이 없는 것입니다. 섭생하여 쇠약한 몸을 좋아지게 단련하는 여가에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는지 모르겠군요. 奉重陽日書, 知昔疾療後, 有面腫, 腫已又苦於痢甚矣.高明今年身運之厄也.雖然疾病之來, 聖賢所不免, 况衆人乎? 終而無慮, 則斯已幸矣.當者與傍觀, 只當以此慰之, 不必追提.但有一焉, 現在侍下者, 當惕念孔子父母唯憂之訓, 其於居處飮食喜怒逸勞, 凡可以致疾者, 一倍戒愼.勿使疾自我作以貽親憂者, 是所可勉.又進而言之, 則學者當於疾病時, 恐懼省念曰, 天之加我以病者, 是治我平日行已未善之罪也, 深自悔訟以爲他日改修之姿.不可少有慍怒慝尤之心者, 尤所當勉.以此二者, 內外交修, 不宜槩以聖賢亦不免疾病之語自寬, 則是乃撫適而非下工處也.未知調將之暇, 亦嘗念及於此否. 부모는……하신다. "맹무백(孟武伯)이 효(孝)를 물으니, 공자께서 '[父母唯其疾之憂]'라고 대답하였다." 《논어》〈위정(爲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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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 최씨 전 병자년(1936) 孺人崔氏傳【丙子】 유인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부안 김상락(金相樂)의 아내이다. 30살에 남편을 여의고 아들 딸 한 명씩을 두었는데 살림이 곤궁하여 살아가기 힘들었다. 비록 남편의 두 형이 몸소 구휼하여 주고 또한 개가할 생각을 방해하지 않았지만, 유인은 정조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삯바느질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꾸려갔다. 아들이 학질을 앓아 거의 죽게 되었는데도 약을 마련할 방도가 없자 울면서 "이 아들이 죽으면 우리 남편은 영원히 죽게 된다."라 하고는, 손가락을 찢어 피를 흘려 넣으며 국에 타서 마시게 하니 이윽고 조금씩 소생하였다.온갖 고생을 다 형용할 수 없으니, 부귀한 집에서 자라나 평소 좋은 옷 입고 맛난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굶주리고 추위에 시달림을 타인은 감당하기 어려운데 유인은 다만 줄곧 참고 견디었다. 딸이 장성하여 시집가게 되자 사위를 따라 김제(金堤) 야촌(野村)에 거주하면서 자못 편안하게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사위가 또다시 곤궁하게 되자 아들을 이끌고 고부(古阜) 현암리(玄巖里)로 이사하였다.아들이 장성하여 아내를 두었으나 곤궁함은 이전과 같아서 만년에 창동(滄東)의 옛 집으로 돌아왔으나 또한 편안한 날이 없어서 의식을 마련하느라 분주하여 늙도록 쉬지 못하였다. 갑술년(1934년) 10월 21일 길을 가다다 타지에서 죽으니 관가에서 묻어주었는데, 한 달이 지나서야 아들과 조카가 비로소 알게 되어 선영의 곁에 반장(反葬)하였다.오호라! 천도는 선한 이를 복 주고 악한 이에게 재앙을 주니 유인은 만 번 죽어도 다행함이 없을 상황에 처하여 한 조각 빙설 같은 절개를 잡았으니, 정자의 '주려 죽은 것은 대단히 하찮은 일이요 절개를 잃은 것은 대단히 크다.'184)는 뜻을 들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 정절과 그 선행이 이보다 큼이 없을 것인데 평생 고생스럽게 살아 옷을 너덜너덜 기워 입고 배가 푹 꺼져 도로에서 넘어져 죽게 됨에 이르렀으니, 하늘이 재앙을 내림이 어찌하여 이처럼 가혹한가. 삼가 고인의 말에 의혹이 없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유인에게는 남편의 재종질이 되는데 맨 손으로 사는 처치라 살아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죽어도 아무 쓸모없이 슬퍼하니 또한 부끄러울 따름이다. 孺人全州崔氏, 扶安金相樂妻, 年三十夫亡, 有一子一女, 窮無以生, 雖有夫之二兄, 躬不恤未及, 且有不妨改適意, 孺人矢心守貞, 傭針線僅活.子病長瘧幾危, 無以爲藥, 泣曰: "此子亡, 吾夫永死矣." 裂指出血, 和羹飮之, 因漸甦復.凡百辛酸, 不可俱狀.生長富豪, 素善衣食, 而猝困飢寒, 人所不堪, 只得一直忍耐已.而女長嫁人, 從婿居金堤野村, 頗得安過, 壻又窮敗, 則挈子移居古阜玄巖里.子壯有室, 然困復如前, 晩年還于滄東舊居, 亦無有寧日, 奔走衣食, 老不休息.甲戌十月二十一日, 旅死路中, 自官瘞之, 越一月子姪始知, 而返葬先塋之側.嗚呼, 天道福善禍滛, 孺人處萬死無幸之地, 執一片氷雪之節, 其非與聞於程先生'餓死極小失節極大'之義者乎.其貞其善也, 莫斯爲大, 而一生困苦, 鶉結枵腹, 以至顚死道路, 天之降禍, 又何若是酷哉.竊不能無惑於古人之言也.余於孺人爲夫之再從姪也, 而赤手爲生, 生不能少爲之地, 死爲此無益之悲, 亦可愧也已. 주려……크다 《소학》 〈가언(嘉言)〉에서 어떤 사람이 정자(程子)에게 외로운 과부가 빈궁하여 의탁할 곳이 없으면 재가해도 되느냐고 묻자 정자가 대답하기를 "다만 후대에 추위에 떨며 굶주려 주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있다. 그러나 굶주려 죽는 것은 대단히 하찮은 일이요, 절개를 잃은 것은 대단히 크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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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호 찬흥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趙正豪 燦興 丁卯 맹자는 "사람의 즐거움에 어진 부형이 계시는 것이다."라고 했고, 여형공(呂滎公)은71) "집안에 어진 부형이 없으니 성취한자가 드물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정호의 아버지는 몸소 농사를 지으며 그대를 놓아 유학케 해주니 그 어진 아버지 됨이 누가 그보다 더하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옛날의 호걸이 반드시 다 어진 아버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중궁(仲弓)의 경우 지극히 천악(賤惡)한 아버지였음에도 오히려 십철(十哲)의 으뜸으로 손꼽혔으니,72) 다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이 때문에 말합니다. '어진 아버지가 없이 자신의 몸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할 말이 있겠지만, 어진 아버지가 계신데도 그 몸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그 죄가 막심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을까요? 반드시 도를 밝히고 덕을 세워서 부모가 남기신 몸을 착하게 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나게 한 연후에 내 일을 마쳤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정호는 의당 깊이 생각하고 마음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孟子曰人樂有賢父兄, 呂滎公曰內無賢父兄, 而有成者少矣.今正豪之嚴君, 躬幹稼穡, 而縱正豪遊學, 其爲賢父, 孰加於此? 雖然古之豪傑, 未必皆有賢父.如仲弓則至有賤惡之父, 而尙得爲十哲之首科, 其他更何論? 余故曰無賢父而不成其身者, 尙可說, 有賢父而不成其身者, 其罪莫甚焉, 然則如之何其可也? 必也明道立德, 用淑遺體, 揚名後世以顯父母, 然後吾事已了.正豪乎宜深思而盡心焉. 여형공(呂滎公) 여희철(呂希哲)로 그의 부모가 모든 일은 반드시 예법을 따르도록 엄격하게 가르쳤다. 중궁(仲弓)……꼽혔으니 공자가 문하의 제자들을 두고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고, 언어에는 재아, 자공이고, 정사에는 염유, 계로이고, 문학에는 자유, 자하이다.[德行, 顔淵ㆍ閔子騫ㆍ冉伯牛ㆍ仲弓, 言語, 宰我ㆍ子貢, 政事, 冉有ㆍ季路, 文學, 子游ㆍ子夏.]"라고 했는데, 이를 공문사과(孔門四科)라 하고, 열거한 열 명의 제자를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한다. 《논어》 〈선진(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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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에게 보냄 병인년(1926) 寄炯泰 丙寅 이번 국상(國喪)136)의 애통함은 앞 시대의 큰 근심에 비할 게 아니다. 이 황제 이후 더 이상 우리의 임금이 없기 때문이다. 무릇 국상이 나면 선비와 서민의 처와 아들까지 또한 모두 상복을 입는 것이 국법이다. 게다가 지금은 나라가 이미 망하고 임금도 없어져 이천만 동포가 너무나 애통하고 망극하여, 눈물을 비처럼 흘리고 우레처럼 울부짖으며 남녀학교의 어린 학생들과 노예ㆍ백정ㆍ배우ㆍ기생에 이르기까지 하루아침에 흰옷을 입지 않은 이가 없음에랴! 너는 비록 관례는 안했지만 성동(成童 15세)은 이미 지났으니 시시덕거리거나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또 연한 검정색 댕기137)를 써서 슬픔을 표현하도록 하여라. 너의 모친은 순수한 흰 명주를 사용하고 네 형수와 누이는 비록 흰 것을 쓸 수 없다면 연한 옥색은 반드시 해야 한다. 今番國恤之痛, 非比前世大慽.以此帝後, 更無吾君故也.凡有國哀, 士庶之妻與子, 亦皆有服 國典也.況今國旣破君又亡, 二千萬衆, 至痛罔極, 揮淚成雨, 號哭如雷, 至於男女學校幼年生徒 皁隷屠賤, 倡優淫妓, 莫不一朝縞素者乎! 汝雖未冠, 成童已過, 不宜嬉笑恣放.又用淺黑唐岐 以表哀情.汝慈則純用縞素, 汝嫂汝妹, 雖不能用素, 淺玉色, 則決不可已也. 이번 국상(國喪) 순종황제의 국상을 말한다. 1926년 음 3월 14일(양 4월 25일) 오전 6시 15분 창덕궁 대조전에서 5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댕기 원문 '당기(唐岐)'는 댕기를 뜻하는 말로 보인다. 댕기는 한자어로 '당지(唐只)'이나 '당기(唐岐)'는 머리를 땋을 때의 '갈래[岐]'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 댕기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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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관에게 보냄 계유년(1933) 寄炯觀 癸酉 단봉(丹鳳)145)은 비록 굶주려도 결국 모든 새들의 으뜸이다. 아름다운 옥이 팔리지 않는다고 어찌 세상에 드문 보배가 손상되겠느냐. 선비가 출중히 뛰어나 도덕을 마음에 품고서 의롭지 못한 부귀를 더럽게 보는 것이 이와 흡사하다. 매양 늘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맑아져 한 점 티끌이 없다. 선비가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 이로써 뜻을 삼은 뒤에야 거의 더럽고 낮은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너도 함께 알아 두어라. 丹鳳雖飢, 竟爲百鳥之長.美玉不售, 何害稀世之珍? 士之出類拔萃, 懷藏道德, 汚視不義之富貴者, 似之.每一想此, 不覺胸次淸淨, 無一點塵也.士居濁世, 以此爲志, 然後, 庶不歸汚下之地, 爾共識之. 단봉(丹鳳) 목과 날개가 붉은 봉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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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에서의 목욕 浴楚江 백 자 되는 초강은 맑고도 또 깊어 百尺楚江淸且深숨어 지내는 사람은 속된 마음 씻어 기쁘네 幽人端喜滌塵襟남쪽 나라에서 관등절219)에 다시 만나 重逢南國觀燈節녹음 우거진 명정에서 몇 번이나 자리했던가 幾處名亭綠樹陰활발한 천기에 물고기 뛰노는 걸 보고 活潑天機看魚躍청량한 한낮의 꿈에 갈매기 마음 이해하네 淸凉一夢見鷗心바라건대 그대여 어부의 길에 들지 마소 請君莫作漁郞路어찌 무릉도원 함께 찾아가기 쉽게 두었으랴 怎遣桃源易與尋 百尺楚江淸且深,幽人端喜滌塵襟.重逢南國觀燈節,幾處名亭綠樹陰.活潑天機看魚躍,淸凉一夢見鷗心.請君莫作漁郞路,怎遣桃源易與尋. 관등절 불교에서 석가의 탄일(誕日)인 음력 4월 8일에 온갖 등을 켜서 기념하는 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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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집》을 읽고 讀尤菴集 빼어난 기상이 삼백 년간에 모여들어 英氣鍾三百歲間우뚝 북두성과 높은 산처럼 되었지 巍然北斗又高山퇴계 문하에 단비 내려 청출어람 하셨으나220) 溪門時雨靑藍出귤도에서 바람과 서리로 흰머리 생기셨지221) 橘島風霜白髮斑민낙을 평상시 자나깨나 생각하셨고222) 閩洛平生寤且寐춘추의리 유업으로 기록하고 정리하셨네 春秋遺業筆兼刪어찌하면 구천에서 선생께서 일어나셔서 九原安得先生起음사한 무리 말끔히 씻어내어 양이 회복될까 掃盡陰邪陽復還 英氣鍾三百歲間,巍然北斗又高山.溪門時雨靑藍出,橘島風霜白髮斑.閩洛平生寤且寐,春秋遺業筆兼刪.九原安得先生起,掃盡陰邪陽復還. 퇴계……하셨으나 퇴계의 학문을 이어 더 나아갔음을 칭송한 말이다. 원문 '계문(溪門)'은 퇴계의 문도를 말한다. 귤도에서……생기셨지 원문 '귤도'는 제주도를 말하는데, 우암이 1689년 제주도에 유배되어 갖은 고생을 한 것을 이른다. 민낙을……생각하셨고 성리학에 힘썼음을 의미한다. 원문 '민낙(閩洛)'은 이락관민(伊洛關閩)으로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관중(關中)과 민중(閩中)이다. 이수에는 명도(明道) 정호(程顥), 낙수에는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강학하였고 관중에는 횡거(橫渠) 장재(張載), 민중에는 회암(晦庵) 주희(朱熹)가 강학하였다. 여기서는 정주학(程朱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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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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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이교천(李敎川) 금전차용증서 고문서-증빙류-차용증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敎川 李相馝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敎川 李相馝 李敎川 (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5년 2월 21일에 이교천(李敎川)이 이상필(李相馝)에게 발급한 금전차용증서 1915년 2월 21일에 이교천(李敎川)이 이상필(李相馝)에게 발급한 금전차용증서이다. 내용은 차용금과 이자율, 상환기간, 상환방식 등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여 발급하였다. 채권자는 이교천이며, 차용인은 이상필이다. 차용금은 6원60전이다. 이자율은 월 3할이다. 먼저 이 금전을 차용하는 사실이 확실함을 다짐하고 상환기한을 1915년 10월 15일로 약정하였다. 이러한 약정에 의심을 서로 걸지 않고 기한 내에 이자와 함께 지체 없이 갚기로 하면서 이 금전차용증서 한 장을 작성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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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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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문중 재산 취급권 사실증명서 고문서-증빙류-증서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龍淳 李相馝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龍淳 李相馝 李龍淳 (印) 등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5년 2월 21일에 문중 재산의 증빙서류와 취급권을 이상필에게 세운다는 사실의 증명서 1915년 2월 21일에 문중 재산의 증빙서류와 취급권을 이상필에게 세운다는 사실의 증명서이다. 먼저 증빙서류 일체를 열거하고 이 서류의 성격을 언급한 다음에 증빙서류와 취급권의 소유 대상자를 지정하였다. 증빙서류는 모두 8종인데, 이교선(李敎先)과 이교영(李敎英)의 금전차용증서 각 1통, 이종남(李鍾南)의 보관증 1통, 이도순(李道淳)·이상근(李相根)·이상린(李相麟)·이순복(李順福)의 화조보관증 각 1통, 이형순(李馨淳)의 차용금증서에 답삼두락담보물 차입건 1통 등이다. 이 증빙서류는 차용인 각자의 명의로 채권자에게 작성해준 것이지만, 증서 내의 전조(錢租) 전부는 참판공 묘소와 관계된 문중의 재산이다. 이 증빙서류와 취급권은 곡성유사 이상필을 지정하여 부여한다고 하였다. 이 문서의 기주(記主)는 이용순이며, 수신자는 곡성유사 이상필이다. 증빙서류의 통수 기록 위에는 이용순의 도장을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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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박진호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朴甥珍浩 乙亥 보내온 편지에서 "검과 창을 지닌 자는 호랑이가 오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총포를 안고 있는 자는 도적이 오는 것을 근심하지 않으며, 금옥(金玉)을 쌓아놓은 자는 흉년을 근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절(氣節, 기개와 절개)을 지닌 자가 유독 세상의 환란을 근심하겠는가?"라고 했는데, 이는 진실로 정확한 논변입니다. 우리 온재(韞哉)104)의 최근 소견이 이와 같이 매우 고명한데 이르렀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무릇 검포금옥(劒砲金玉)은 모름지기 스스로 구하여 모으고 스스로 지니고 쌓아서 타인이 대신 구하고 대신 지닐 이치가 없는 것인데, 기절만 유독 스스로 양성하여 스스로 지니지 않고 타인에게 의지하여 구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늙고 졸렬한 나에게 의지하여 가르침을 베풀어주길 기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논하면서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했고, 또 의를 모으는 방도를 논하면서 "반드시 일을 두어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기절(氣節)은 즉 호연지기입니다. 만약 기절을 양성하고자 한다면 맹자의 이 교훈을 버리고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요? 이 교훈을 주석한 뜻은 그대도 일찍이 송독하고 완색(玩索)한 것이니 내가 모름지기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최근 연소한 자들의 공통된 병폐를 논하자면 거의 모두 그것을 잊고 일삼음을 두지 않는데 있으니 어찌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대 또한 요즘 연소자들 중 한사람이니 그러한 병폐가 없다고 어떻게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인을 행함이 나로 말미암지 남으로 말미암겠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일 모름지기 스스로 일을 두어서 스스로 잊지 말며, 스스로 의를 모아서 스스로 기절(氣節)을 양성하기에 이르러야지, 털끝만큼이라도 남에게서 빌려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불꽃처럼 범할 수 없는 뜻으로 한줌의 흙을 쌓아 높은 산을 완성하는 공을 이룬 연후에 가히 양성을 말할 수 있으니, 이것이 아니면 결단코 성취할 수 있는 이치가 없습니다. 설사 있다고 하면 그것은 호연한 기절(氣節)이 아니라 곧 자질(資質)의 작용으로 간혹 일시에 습취(襲取)된 것이니, 어찌 오래도록 꺾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또 마땅히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來喩謂持劒戈者, 不患虎至, 抱銃砲者, 不患盜來, 積金玉者, 不患歲凶.然則有氣節者, 獨患世亂乎? 比誠確論.不謂吾韞哉近日所見, 懇至高明有如是矣.夫劒砲金玉, 須自求聚自持積, 無他人替求替持之理? 則氣節獨有不自養成自有之, 而仰求他人之理哉? 而乃依之於老拙, 而冀其有賜者何哉? 孟子論浩然之氣曰, 是集義所生者, 又論集義之方曰: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氣節者卽浩氣也.如欲養成氣節, 舍孟子此訓而奚求哉? 此訓之註釋義意, 汝所嘗誦讀而玩索者, 吾不須說.但論近日年少通病, 則擧皆是忘之而至於不有事者, 其何能有成哉? 汝亦近日年少中一人, 安保其無此病也? 孔子曰爲仁由己而由人乎哉? 今須自有事, 自勿忘, 自集義以至於自養成氣節, 雖欲一毫借人分力, 正不可得也.要之以烈火不可犯之志, 下拳土積成高之功, 然後乃可言養成, 非此決無有成之理.藉曰有之, 非浩氣之氣節, 乃資質之作用, 或一時之襲取者, 安得久而不挫乎? 此又所當辨者也. 온재(韞哉) 박진호(朴珍浩) 이름의 '진(珍)'자로 인해 그의 字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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