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동의 여러 사람들게 보냄 병인년(1926) 與龍洞諸人 丙寅 용동본의 간행이 음흉한 무함이 자행(恣行)하고 진주본 간인이 한창 벌어지는 시기에 있으니 인가(認可)할 때의 무함(誣陷)을 먼저 토론하지 않고 급급하게 원고를 간역하니 선사의 원고를 온전히 지킨다는 명분도 이미 잃었고, 앞뒤의 의리도 음흉한 사람이 그 사이에 동참하는 것을 비호(庇護)하였다는 점을 면치 못합니다. 그 본(本)이 정순(正順)하다고 할 수 없지만, '헌정(獻靖)86)의 남은 글'이라고 한 것은 세상에 충분히 할 말이 있습니다.근래에 사문(斯文) 송연구(宋淵求)씨에게서 인가를 청하여 허락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선사의 뒷일이 곳곳마다 스스로 욕을 당하니 참으로 애통합니다. 가르침을 어기고 선사를 욕되이 한 죄를 작년 겨울에 진주본을 성토한 글에서 이미 다하였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오직 인가받아 간행하는 본 중에 실린 저희들 집안의 편지, 묘지(墓誌), 행장(行狀) 등 모든 글들은, 묵묵히 입 다문 채 내버려두어 가르침을 어기고 선사를 욕되이 한 죄에 함께 귀결될 수 없기에 이에 연명(聯名)으로 알리니, 속히 하나하나 빼서 간행본 속에 넣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貴刊之設, 在陰誣肆行、晉印方張之日, 不先討認誣, 而汲汲稿役, 已失衛師, 先後之義, 且又不免護陰人之同參其間, 其本不可謂正順也, 然惟其所謂獻靖遺書云者, 足以有辭於國中矣. 近於宋斯文淵求氏, 聞乞認得許之報, 噫先師後事在在自辱, 良可痛也. 其背訓累師之爲罪, 昨冬討晉章已盡, 復何言哉? 惟是認刊中所載鄙等家書牘誌狀一切文字, 不可含默任他同歸背累之罪, 故玆以聯告 亟爲一一拔出, 勿入刊中, 幸甚. 헌정 헌정은 옛 임금을 위해 자기 의리를 고수한다는 말로, 《서경(書經)》 〈미자(微子)〉에 미자가 기자(箕子)와 비간(比干)에게 충고를 한 말에 기자가 "스스로 의리에 편안하여 사람마다 스스로 자신의 뜻을 선왕에게 바칠 것이니,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가 은둔하겠다.[自靖, 人自獻于先王, 我不顧行遯.]"라고 답한 말에서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