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남원향중(南原鄕中)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南原鄕中 古阜鄕校 1顆(墨印, 6.5×5.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77년 1월 남원향중 선비 18인이 고부향교에 아직 포장이 내려지지 않은 정은필의 효행에 대해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포의 은전을 입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1877년(고종 14) 1월 남원향중 선비 18인이 고부향교(古阜鄕校)에 아직 포장(褒獎)이 내려지지 않은 정은필(鄭溵弼)의 효행에 대해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포(旌褒)의 은전을 입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서두에 『시경』의 "효자의 효행은 다함이 없다. 길이 너의 동류에게 주라"는 한 구절을 인용한 뒤, '어버이에게 효도한 뒤에 임금을 섬기면 충성을 다하고, 어른을 섬기면 공경을 다하여 육덕(六德)과 육행(六行)이 효(孝)라는 한 글자에서 드러나는 것'이라는 등의 효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진실로 타고난 효성과 은둔한 행실이 있다면 어찌 조정에서 권장하는 성대한 은전과 사림이 천거하는 공의(公議)가 없을 수 있겠는냐'고 반문하였다. 이어서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계보가 동래에서 나온즉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 사호(賜號)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병조판서 걸(傑)의 11대손으로, 충효의 고가(古家)이고, 명망높은 집안'이라는 것을 들었다고 하였다. 이이서, '어버이가 병든 지 몇 달 동안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구하여 온마음으로 치료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자 피눈물을 흘려 얼굴이 검은 빛이 되었으며, 모든 장례 절차를 예로써 하여 살아 있는 사람을 섬기듯'이 했던 정은필의 효행 실적을 열거하고, '이 때문에 유림의 공의와 영읍(營邑)의 뎨김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 정려(旌閭)가 내려지지 않아 자손이 억울할 뿐만 아니라 유림에게도 실망이 되었다'고 언급한 뒤, '여러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문(旌門)을 내려 포상하는 은전을 입도록 해 주신다면 천만다행'이라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