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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황병헌(黃秉憲)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黃秉憲 暗行御史 暗行御史[着押] 3顆(마패지름 9.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24 1874년 7월에 전라도 남원 왕지전방에 사는 황병헌·소진영 등 유림 17인이 암행어사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의 생명을 연장시킨 이종도의 부인 청주 한씨와 이종익의 부인 광주 이씨의 열행에 대해 임금께 보고하여 정려해 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4년(고종 11) 7월에 전라도 남원 왕지전방(王之田坊)에 사는 황병헌·소진영(蘇震永) 등 유림 17인이 암행어사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의 생명을 연장시킨 이종도(李鍾道)의 부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와 이종익(李鍾益)의 부인 광주 이씨(廣州李氏)의 열행(烈行)에 대해 임금께 보고하여 정려(旌閭)해 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삼강(三綱)은 충·효·열(忠孝烈)로써 확립되고 오륜(五倫)은 충·효·열로써 펴지게 되므로 선(善)을 정표(旌表)하고 풍도를 세우는 것은 조정의 성대한 은전이고, 숨은 아름다움을 천양(闡揚)하는 것은 사림의 공의(公議)이다. 왕지전방의 광석촌(廣石村)에 사는 선비 이현범(李玹凡)은 효령대군의 후예로, 맏아들 종도(鍾道)는 청주 한씨 계륜(啓倫)의 딸과 혼인하였고, 셋째 아들 종익(鍾益)은 광주 이씨(廣州李氏) 상순(尙珣)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집안의 운세가 불행하여 1869년(기사)에 종도가 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되자 그의 부인인 청주 한씨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나온 피를 종도의 입에 넣어주어 며칠 동안 생명을 연장시켰다. 남편이 죽자 한씨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시부모가 '어린애가 아직 살아있다'고 울부짖으며 애걸하여 죽지 않고 간신히 목숨을 보전하였다. 셋째 아들 종익도 지난 해인 1873년에 병에 걸려 죽게 되자 부인 이씨도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주어 열흘 동안 목숨을 연장하였으니 한 집안에서 두 열녀가 나오는 경우는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다. 소진영 등은 모두 떳떳한 천성이 있기에 이 일을 듣고 모두 공경하고 감탄하였으며, 보는 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이에 선을 드러내고 악을 벌하는 암행어사에게 '자랑할 만한 이 두 열녀의 행실을 임금께 아뢰어 정포(旌褒)의 은전을 입어 묻혀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암행어사는 7월 23일에 '더욱이 공의(公議)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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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原王之田坊化生等謹齋沐再拜上書于繡衣閤下伏以忠孝烈三者三綱以之而立五倫以之而敘故旌善樹風 朝家之盛典闡幽揚美士林之公議也本坊廣石村居士人李玹凡卽 璿源洪緖孝寧后裔世世行家也玹凡之長子鍾道娶於淸州韓氏啓倫之女三子鍾益娶廣州李氏尙珣之女矣家運不幸去己巳年長子鍾道得病至於殞絶之境則其妻韓氏斷指出血以延數▣(日)之命而矢死從之故其舅姑以乳兒尙在號泣懇乞僅保不死是白遣其三子鍾益又去年嬰疾至於殞絶則其妻李氏亦爲斷指出血以延旬日之命是乎則一門雙烈罕覩稀聞之事也民等皆有秉彝之性聞之莫不欽歎見者爲之流涕故玆敢齊聲仰籲爲白去乎伏願繡衣閤下位在於揚善罰惡之政是乎時所若是可矝二烈之行 上達 天陛使蒙旌褒之恩典無至湮沒之地千萬伏祝之至行下向敎是事繡衣閤下 處分暗行御史[署押]甲戌七月 日後 蘇震永 沈濟 張極楸 金應遠 蘇河永 張潤邦 朴圭憲 韓用五 黃秉憲 許鏞 梁京澤 朴廷旭 吳幸圭 尹漢錫 趙性祺 崔完實 魯順弼 等〈題辭〉益竢公議宜當事卄三日[馬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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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閔子之孝稱於魯論董生之行著於韓文而稽古亘今苟有宲孝篤行則褒其人闡其行苟是一大盛典也側聞貴郡富安面寓居士人鄭溵弼系出東萊即弘文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公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也而淸宦名閥行義文質襲世傳家斯人也自在孩提天賦雍容仁孝根天德善過人事其父母也冬日燃突一夜五起可肩於孝己之誠夏日扇枕每時三省追慕於曾賢及其長也以孝移行棲息山水之間杜門蔵蹤不求名譽晝以耕宵以索用天之道因地之利克奉先代之香火訓子睦族之節修身齊家之方自悟自警不失規度平日心性勤儉節約畏人如虎年將七旬終無與人私闘未見公門食貪樂道知足知分守口如甁防意如城見善如佩蘭蕙即就而從之聞惡如負芒刺永却遠之大矣㦲以若十室行義之人一鄕修善之士尙今泯沒切非士林之分議故玆以發通惟願 僉章甫齊聲同應即爲稟 官俾告棠軒 春曺特蒙 啓褒之典幸甚右敬通于古阜鄕校 丙子十二月日 [印]武城書院道會所發文 進士李以鉍 進士崔峻翊 進士宋曦玉 幼學金龍祖 李東旭 高錫相 林烱洙 朴蓍東 鄭海斗 金堯晙 趙炳鎬 安學律 南鑽 柳秉善 金相浩 邊大容 黃基煥 盧東鉉 蘇敬述 尹相鎭 洪秉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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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子夏曰賢賢易色事父母能竭其力雖曰不學矣吾必謂之學矣今此貴郡富安面士人鄭溵弼云歟其人系出東萊卽藝文館應敎諱 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 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 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 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通訓大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忠孝家風簮纓世德東 朝華閥南土望族也斯人粤自齠齡家勢極艱全無朝夕糊口之責身兼傭賃以供父母之養傷㦲貧也仲由之負米孝及竭力不讀詩■(盡)〔書〕禮敬長老能知有序賢比易色是可謂不學而能學之士矣其親沉病累年百方藥餌一心調治晝宵侍側甞糞察候以驗重歇乃至丁憂也泣血哀慕之痛吊者悅服遽經襄禮搆廬墓側日以三省夜以五起事死如生誠之所格物性應爲感發故一雙白嶌數叢黃菊三時來賀四節發英苟非根天之孝至於物性之感歟年將七旬每日巡山山磎成路至於諱日前三日行素治齋復如袒䄆〖括〗之日沒身不忘父母之達孝矣且修身之方戒子之訓齊家之節接賓之禮少無違越安分守拙棲息於山水之林下不求名譽賁然德行及於一省公議故不可含默玆以發文惟願 僉章甫使此純篤之宲蹟俾聞楓陛特蒙擢用之恩千萬幸甚右敬通于古阜儒林 丁丑四月二十一日 [印]光州褒忠書院齋會所發文 李喆相 奇昌衍 朴彰壽 高錫相 金貞鉉 李龍求 崔奎烈 宋祉源 朴命煥 吳應善 尹學鎭 白弘洙 高時旭 丁永坤 金在文 申正模 安永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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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남원향중(南原鄕中)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南原鄕中 古阜鄕校 1顆(墨印, 6.5×5.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77년 1월 남원향중 선비 18인이 고부향교에 아직 포장이 내려지지 않은 정은필의 효행에 대해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포의 은전을 입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1877년(고종 14) 1월 남원향중 선비 18인이 고부향교(古阜鄕校)에 아직 포장(褒獎)이 내려지지 않은 정은필(鄭溵弼)의 효행에 대해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포(旌褒)의 은전을 입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서두에 『시경』의 "효자의 효행은 다함이 없다. 길이 너의 동류에게 주라"는 한 구절을 인용한 뒤, '어버이에게 효도한 뒤에 임금을 섬기면 충성을 다하고, 어른을 섬기면 공경을 다하여 육덕(六德)과 육행(六行)이 효(孝)라는 한 글자에서 드러나는 것'이라는 등의 효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진실로 타고난 효성과 은둔한 행실이 있다면 어찌 조정에서 권장하는 성대한 은전과 사림이 천거하는 공의(公議)가 없을 수 있겠는냐'고 반문하였다. 이어서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계보가 동래에서 나온즉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 사호(賜號)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병조판서 걸(傑)의 11대손으로, 충효의 고가(古家)이고, 명망높은 집안'이라는 것을 들었다고 하였다. 이이서, '어버이가 병든 지 몇 달 동안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구하여 온마음으로 치료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자 피눈물을 흘려 얼굴이 검은 빛이 되었으며, 모든 장례 절차를 예로써 하여 살아 있는 사람을 섬기듯'이 했던 정은필의 효행 실적을 열거하고, '이 때문에 유림의 공의와 영읍(營邑)의 뎨김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 정려(旌閭)가 내려지지 않아 자손이 억울할 뿐만 아니라 유림에게도 실망이 되었다'고 언급한 뒤, '여러 집사들이 다시 공의를 더하여 정문(旌門)을 내려 포상하는 은전을 입도록 해 주신다면 천만다행'이라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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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이희하(李羲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羲夏 1顆(9.5×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15 1889년 1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학생 이희하를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경연참판관으로 추증한 4품이상고신 1889년(고종 26) 1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학생 이희하를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경연참판관으로 추증한 4품이상고신이다. 연호의 좌방(左傍)에 '조봉대부 동몽관 겸 가선 호조참의○○의 조고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다'라는 추증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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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鄕多士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恭惟我聖朝承周宋文名之治 搜賢於道德之門 尙孔朱彰德之敎 造士於性理之學 程式薦進之路 恐有野遺勤勉揚善之方 開示言路 則徛歟盛矣我聖朝出治之具也 凡冠儒服儒者 敢不揚善以承其至旨哉 大抵本州士人鄭義林 天賦高明 係出光山 故判書公永思堂諱演之十一世孫也 年未冠多稽聖賢之規範 實踐仁義之閫域 其學素有源矣 負笈於石塘鄭先生之門 七書孝經戴經諸賢之書 博通問難 先生無不稱賞 執贄於蘆沙奇先生之門 冠婚喪祭曲禮威儀之篇識發蘊奧 皆致精微 絶意毁譽 名利之場 潛心於格致誠正之工 存養省察 不爲物累 所移造詣成德 惟以扶敎自任 故全齋任先生 世安堂金先生 勉齋崔先生 屢有書問敬愛之蔚然 爲南服儒林之矜式 道內文章俊異之士 從遊而莫之先也 可知其師門之首弟也 境內受業漸就之士尊慕 而粹然成德 則亦可謂斯文之導率也 以若良知蘊德之士泯沒無聞於世 則豈不爲聖朝之欠典乎 豈無士論之抑鬱乎 孔子曰 賢者爲國之器用 朱子曰 薦賢爲政之先務 何幸城主閤下承流宣化 下車玆土 禮周公之愛士好吳公之薦誼當 此歲貢賢良之際 撫實行報營司以彰有德 則勵風俗扶世敎 以爲何如哉 民等居同一鄕 欽嘆其才行 故玆敢齊聲仰達 伏俟轉 報營司 特蒙廷楊 則斯文幸甚 世敎幸甚 伏惟藻鑑丁亥十月 日 化民 金鍾常 李致鎬 朴其繪 梁基煥 李贄鎬 文極煥 梁會一 魯錫采 金時豊 吳在鴻 閔致魯 朴海鴻 梁益煥 金鍾浩 尹滋郁 閔泳達 梁相輔 李振燁 文泳祚 安檃 具桂勳 鄭在勳 文弼休 安澈煥 朴麟鎭 洪珽謀 鄭在淑 閔啓浩 金致錫 李之茂 宋錘 金鍾植 文鳳煥 鄭瑛錫 梁時煥 等(題辭)觀此狀內 此時如此文學 非但一邑之衆論 卽當修報是矣 論報之節 待其朝飭(背面)然後 隨學隨擧 已有國例 隨其抄入時 當報營門二十六日使[着押][綾州牧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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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 장찬(張欑)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欑 同福縣監 官[着押] 1顆(6.8×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3년 윤 2월에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사는 장찬이 동복현감에게 내북면 웅곡에 있는 부모의 산소 수호지에 풍헌 송영국이 외조모를 투장하였으니 기한을 정해 파 옮길 것을 청원한 소지 1803년(순조 3) 윤 2월에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사는 장찬(張欑)이 동복현감에게 내북면(內北面) 웅곡(熊谷)에 있는 부모의 산소 수호지(守護地)에 풍헌(風憲) 송영국(宋榮國)이 외조모를 투장(偸葬)하였으니 기한을 정해 파 옮길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찬의 조부모와 부묘의 산소가 내북면 웅곡에 있었으나 쇠잔한 양반이었던 그는 수 년동안 겨우 용호(龍虎) 안 수 십보 땅만 수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다촌(上多村)에 사는 풍헌 송영국이란 자가 자신의 권력을 믿고서 장찬의 산지기를 위협하여 급박함을 고하지 못하게 하고, 장찬의 부모 산소 10보(步) 땅에 거리낌없이 자신의 외조모를 투장하였다. 송영국은 지금 관의 풍헌을 맡고 있으므로 법문을 알고 있음에도 잔반(殘班)인 장찬을 업신 여기고 투총한 것이다. 이에 장찬은 '바로 적간(摘奸)하여 기한을 정해 투총(偸塚)을 파 옮길 것'을 청원하였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윤 2월 13일 장교(將校)에게 '산의 도형(圖形)을 적간하여 올 것' 등을 명한 판결문을 내렸다. 적간(摘奸)은 간사하고 부정한 일의 여부를 조사해서 밝힌다는 뜻으로, 이 글에서는 직접 현장에 나가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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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堂居化民張欑右謹言憤迫事段民之祖父母與父母山在於內北面熊谷是如乎以 勢殘班僅護龍虎內數十步之地者積有年矣不意今者上多村居時任風憲宋榮國爲名者恃其權力威脅民之山直漢使不得告急於矣民是遣肆然暗埋其外祖母於民之親山十餘步之地是如乎雖以常漢猶能保局內一斧之地况以班民遭此山変之莫大者乎同榮國方以 官下任役之人應知法文而侮此殘班敢爲偸埋者究其心曲果如何哉玆敢掩泣號籲於明政執法之下參商敎是後即爲摘奸刻期掘移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 癸亥閏二月 日〈題辭〉摘奸圖形以來事十三■■(風憲)告何鎭律將校[官印]官[署押]○ 관련자료1795년 장찬(張欑)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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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선(高光善) 간찰(簡札)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善 李柄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112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을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낸 간찰 초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이 이병성(李柄聖)에게 보낸 간찰 초(抄)이다. 지난번 보내준 서신은 아름드리 보옥과 한 자나 되는 거북을 얻은 것 같아서 지금까지 어루만지다보면 어느덧 낡은 서탁이 화려해지는 것 같다고 기쁨을 표현하였고, 근래 생활이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인사하였다. 상대방의 조카가 지금 묘령의 나이이고 앞으로 진취할 가망이 많을 텐데 자신이 병중에 있어서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언제라도 한번 만나서 회포를 풀고 싶지만 각자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느라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고, 자신이 지은 시를 보내니 웃으며 받아달라고 하였다. 조카 이야기는 아마도 자신에게 공부하러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고광선은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 또는 복헌(復軒)이며 본관은 장택(長澤)이다.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의 문인이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출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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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允洪 柄聖曩書如得尺蔡拱璧 至今摩娑 自不覺弊丌頓侈也 仍審棣體益衛 旣溯且仰 令咸以此妙齡 多有所進就底望可愛 但恐以此病昏 恐負所以來之意 奈何 第俟一者奉攄 而各在貧病 亦不能 或可從速惠然耶 拙句搆去詩云乎哉 笑領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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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目惶恐伏地問安爲白乎㫆氣體候一向萬安爲白乎喩伏慕區區無任下誠之至伏白今春文氏五先生祠宇竣役以今月二十二日腏享祭官薦望是乎所望帖伏呈緣由詮次告課爲臥乎事丁卯三月初三日長淵祠典設生 李▣豊[着名]和順郡松石面草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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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조덕승(曺悳承)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曺悳承 1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조덕승(曺悳承) 등이 기우만(奇宇萬)의 문집 간행을 알리는 내용의 통문 1927년 3월에 조덕승(曺悳承), 양회갑(梁會甲) 등이 보낸 간찰이다. 양회갑을 필두로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문집을 간행해야 하는 필요성과 간행을 위해 결정된 사항을 알리는 내용이다. 선생의 도가 선생이 남긴 글에 있으므로 이를 간행하는 일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과 지난번에 편집했던 것은 정밀함이 부족하고 누락된 것이 많아서 그 상태로는 간행할 수 없거니와 다시 시일을 끌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결정된 사항은 첫째 글을 4월부터 8월 말까지 빨리 보내달라는 것, 둘째 이전에 베껴둔 것은 잘못될 우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본고(本稿)와 대조할 것, 셋째 통문이 도착하는 당일에 주변 사우(士友)들에게 보여줘서 혹시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할 것, 넷째 편집소(編輯所)는 장성 진원면 진원리 담대헌(澹對軒)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담대헌은 기우만의 조부인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이 장성 월송리(月松里)에 지은 정사로, 많은 문인들과 거처하며 강론했던 곳이고, 기우만이 이곳에서 《노사집》을 간행한 곳이기도 하다. 기우만은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 호는 송사(松沙)이다. 전남 화순(和順)에서 태어났으며, 의병과 독립운동을 하였다. 양회갑의 《정재집(正齋集)》 〈사상록(沙上錄)〉과 가장(家狀) 등에 《송사집(松沙集)》 간행과 관련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문집 간행은 1930년에 착수되어 1931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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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장한익(張漢翊)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漢翊 谷城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22 1795년에 전라도 곡성현 삼기면 농소막에 사는 호주 장한익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하여 제출한 호구단자 1795년(정조 19)에 전라도 곡성현(谷城縣) 삼기면(三歧面) 농소막(農所幕)에 사는 호주(戶主) 장한익(張漢翊)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하여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장한익의 직역은 유학이고, 나이는 53세 을사생(乙巳生)이며, 본관은 흥덕(興德)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동지중추부사 효지(孝智), 할아버지 학생 치언(致彦), 증조 통정대부 운구(雲衢), 외조(外祖) 통덕랑 허세신(許世臣) 본관은 김해이다. 장한익의 아내 김씨(金氏)는 나이 39세 기미생이고 본적은 김해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성창(聲昌), 할아버지 학생 만혁(萬赫), 증조 학생 여기(汝器), 외조 학생 서필항(徐必恒) 본관은 이천(利川)이다. 소유하고 있는 앙역비(仰役婢)는 연단(連丹)이고, 나이 54세 갑진생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수영개(水营介)이고 아버지는 지부(之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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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之田坊化民等謹再拜上言于城主閤下伏以旌善而樹風國家之盛典是白乎旀闡幽而揚美士林之公議是白乎等以民等齊聲仰籲於 城主閤下爲白去乎伏願 城主閤下一以光盛典一以振頽俗焉爲白齊本▣▣(坊廣)石村居李玹凡有子三人而長子鍾道娶於淸州韓氏啓倫之女是白遣其三子鍾益娶廣州李氏尙珣之女是▣▣李玹凡家運不幸去己巳年分長子鍾道數月委痛至於▣▣▣(殞絶之)境是乎其妻韓氏斷指出血以續數日之命是白遣何不幸今年其三子鍾益數月嬰疾亦至殞命是乎▣▣▣(其妻)李氏亦爲斷指以續一旬之命是乎則一門二烈歷古罕聞之事是如乎一鄕莫不驚歎四方爲之爲之流涕是乎則伏願 城主閤下如是二烈無至湮沒之地千萬祈祝之至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使[署押]癸酉十▣月 日後 蘇震永 沈濟 張極楸 金應遠 蘇河永 張潤邦 朴圭憲 韓用五 黃秉幰 許鏞 梁京澤 朴廷旭 吳幸圭 尹漢錫 崔完實 趙性祺 魯順弼 等〈題辭〉從有報營之道向事卄四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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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안석원(安錫元)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安錫元 暗行御史 暗行御史[着押] 3顆(마패지름 9.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24 1878년 2월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안석원·이기충 등 유생 50인이 암행어사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의 생명을 연장시킨 이종도의 부인 청주 한씨와 이종익의 부인 광주 이씨의 뛰어난 열행을 임금께 보고하여 정려의 포상을 내려 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8년(고종 15) 2월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안석원·이기충(李基忠) 등 유생 50인이 암행어사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의 생명을 연장시킨 이종도(李鍾道)의 부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와 이종익(李鍾益)의 부인 광주 이씨(廣州李氏)의 뛰어난 열행(烈行)을 임금께 보고하여 정려의 포상을 내려 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효열(孝烈) 두 글자는 우주에 동표(棟標)이자 인륜에 벼리이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정려하여 포상하는 은전이 있었고, 사림들은 밝히고 드러내는 도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중 하나도 행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효열을 모두 겸비한 경우라면 더욱 정포하고 드러내야 한다. 남원읍 왕지전(王之田)에 사는 선비 이현범(李玹凡)은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4세손이자 서원군(瑞原君)의 13세손이며, 고림군(高林君)의 12세손, 칠산군(柒山君)의 11세손, 호은공(壺隱公)의 10세손으로, 대대로 효행과 우애로 칭송되는 집안임을 온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현범의 맏아들 종도(鍾道, 족보 이름은 會{各+日})는 청주 한씨 계륜(啓倫)의 딸과 혼인하였고, 셋째 아들 종익(鍾益)은 광주 이씨(廣州李氏) 상순(尙珣)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 두 부인은 모두 효부이자 열녀로, 혼인 전에는 부모를 봉양하는 데 한번도 법도를 어김이 없었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뜻을 유순하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였으며, 혼인한 뒤로는 친정부모에게 했던 대로 시부모를 봉양하였다. 1869년(기사) 즈음에 맏아들 종도가 우연히 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그의 부인인 청주 한씨가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줄 것을 하늘에 빌고, 남편의 똥을 맛보면서 차도를 시험하여 모두를 감탄시켰다. 남편이 죽음에 이르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나온 피를 종도의 입에 넣어주어 5일 동안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런데 또 셋째 아들 종익이 위중한 병에 걸려 몇 달 동안 앓게 되자 그의 부인 광주 이씨가 약을 마련하는 정성과 음식을 바치는 절도가 한씨의 지성과 똑같았다. 종익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광주 이씨도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주어 열흘 동안 회생시켰다. 이렇듯 한 집안에서 두 열녀가 나오는 경우는 예로부터 보기 드문 일로, 예사로운 일도 숨겨서는 안되는 것인데 이런 뛰어난 열행(烈行)은 더욱 드러내야 할 일이다. 안석원 등은 모두 떳떳한 본성이 있기에 이 일을 듣고 공경하고 감탄하였으며, 보는 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이에 암행어사에게 '한 집에서의 두 열녀의 뛰어난 행실을 긍휼히 여겨 임금께 보고하여 정포(㫌褒)하는 은전을 입어서 묻혀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암행어사는 2월 28일에 '한 집안에서의 두 열녀의 실행을 들으니 매우 가상하다. 포양(褒揚)하는 은전은 더욱더 공의(公議)를 채집해야 할 일'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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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學生李羲夏贈嘉大夫戶曹參判兼經筵參䝺官者光緖十五年正月 日[印]朝奉大夫童蒙官兼嘉善戶曹參議 祖考依法典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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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義林 謹再拜 仰復于尊執事座下伻來 伏承尊函 謹審尊體百福 何慰如之 顧惟孱劣 何等無狀 而猥蒙尊門大度 俯賜連楣之諾 其爲光紫 闔室感祝 涓吉之示 審愼之地 固應如是然禮不云乎 吉事用近日 凶事用遠日 古者筮日不用陰陽拘忌之說 而但取近日而用之 盖人事難測 而吉凶不可以倂行故也 此在平時猶然 况今鄙故方急朝不慮 夕則豈以拘忌不經之說 而期待於三四朔之遠哉 其間若或有他則 兩家不幸爲何如耶 此非所以審愼之道也 大抵拘忌之說 本不足盡信 若欲一一拘忌 則天下無可用之日 奈何奈何 拘忌者術家之說也 用近日者聖經之文也 如不得兩全 則屈術說而伸聖經 豈不可可乎 玆自鄙中擇一日仰呈 須依此行之 千萬伏望耳餘祝體候葆重 以來多福 留不備達 伏惟照鑑 答上丙午九月初八日 生 鄭義林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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幾乎忘面 而淂相握亦非 先師之賜乎不久日而繼垂訊 實吾 兄之盛德也 惟此以去不負先師之意 獨不於在舊業乎 吾輩離索後 兄之終始有必於此事者 可掩之不得 而顧推讓與愚陋無聞者 無乃反辭 而免責也耶 然自泰頹後技曲分裂 不啻倍蓰 差毫繆千正 在此時自己進修不徒鑽紙 上說知舊講論 亦不但從唇上來然後 可以有同轍而歸一之日矣 兄非不昭陵 而弟欲不失此義 故贅疣以呈旋切可偎 更問比寒折膠經履在旅靜謐 仰祈仰祈 餘非面莫究 不備 惟 亮納壬子復月卄八日 弟 任泰柱 拜謝(皮封)裵斯文【致黙氏】 做案 回納【大谷】勿溪謝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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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呈裴斯文 士遠兄 省座右木必有根而生枝 水必有源而進海 人何無根源 而有生進之理乎 竊惟兄家修譜叙倫拒三歲 而利成又▣▣表烈傳百世而芳流 令人欽仰靈芝之根 醴泉之源 已有自於 達城君密直公興威衛公三賢也 而設壇拜禮 如吾鄙陋 幸得參末 或不無先後之失也以公祭論之 則無參降之節 而有四拜禮之當然當然 而當此初設 以慰安爲主 則有參降爲可 而再拜則失禮 笏記未飭 節次相違 將爲未安 切切修飭 以免日後失誤之嘆 如何如何 在傍各郡 貴族 無欠損否 爲之貢慮耳 餘留不具丙辰二月晦日 弟 朴采東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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