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구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金聖九 乙丑 누누이 가르쳐주신 말씀은 갈수록 더욱 정성스럽습니다. 제가 치우친 데에 나아가 온전함을 버리고 작은 것에 안주하여 원대한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을 몹시 걱정하여 격려와 인도가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대체로 친애함이 깊기 때문에 말이 간절하고, 헤아림이 원대하기 때문에 말이 자상합니다. 참으로 덕으로써 하고 고식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친애함이고, 자기가 서고자 함에 다른 사람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함에 다른 사람도 통달하게 하는 것26)은 인자의 마음입니다. 은혜가 더욱 두터우니, 저의 비루함을 생각하면 어떻게 고명에게 이런 은혜를 입는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권면과 경계하는 일에 속하니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다. 가상하다는 뜻을 많이 보내고 함께 거처하고 싶다는 소원을 보여주시며, 또 더 나아가 도가 호남에 있다는 칭찬을 하기까지 한 것에 대해서는 또한 적이 군자를 위해 천 번의 고려에 한 번의 실수가 있고 한 마디 말에 지혜롭지 못하게 됨을 애석히 여기면서, 부끄러워 땀이 나고 두려워 위축됨이 더욱 심해집니다. 비록 그렇지만 상중(喪中)인 그대의 마음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치우치고 막혀있는 것을 걱정하여 바로잡아 구할 때에는 휴암(休庵 백인걸)과 지촌(芝村 이희조)을 인용하여 덕이 구비되지 않음을 병통으로 여기었고, 분발에 감개하여 장려하고 칭찬할 때에는 노성한 사람이 사라짐을 개탄하고 장구한 훗날을 부탁하셨으니, 누르고 높이거나 열고 닫음이 가르침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비록 노둔하지만 감히 마음을 경건히 하여 덕에 복종하고 정을 다하여 서로 권면하여 몸을 마치지 않겠습니까. 다만 40세가 되었는데도 이름이 나지 않는 자는 이미 전진할 희망이 없고27), 또한 이택(麗澤)28)의 자질도 갖추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한스럽습니다. 이로 인하여 적이 또 생각건대, 우리 대한(大韓)의 말기에 온 나라가 공공연히 칭송하며 흠잡는 말이 없으면서 우뚝하게 영광(靈光)29)으로 여긴 것은 선영감(先令監)의 절의와 간재 선생의 도학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지 않아서 두 어른이 서로 이어 돌아가시니 삼천대천세계가 텅 빈 것 같습니다. 서구와 아세아의 풍조가 소리치며 흔들어대지만, 이는 오히려 외환에 속합니다. 한 무리의 괴귀(怪鬼)한 무리가 선비들 사이에서 일어나 야유하거 떠들면서 존엄을 더럽히고 백성을 미혹시켜 기상이 처참하여 한심스럽게 짝이 없으니 어찌 하겠습니까? 그대는 가정의 의리에 푹 젖고 간옹의 덕을 보고 느꼈습니다. 바른 의론을 세우고 큰 붓을 잡아서, 중천에 떠있는 태양과 산을 부수는 벼락처럼 사설(邪說)을 확 쓸어버려 온갖 괴이한 것들이 속히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대뿐입니다. 대개 하늘은 한 세상의 빼어난 사람을 내어서 한 세상의 일을 감당하게 함에 다른 시대에서 빌려오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날 훌륭한 덕을 지닌 분들이 다 세상을 떠나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대의 문벌과 식견과 의리로 사도의 책임을 맡지 않는다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스스로 작다 하지 말고 크고 씩씩한 힘과 정밀하고 심도 있는 공부를 더욱 힘쓰기 바랍니다. 작은 것을 축적하여 봉황의 울음과 범의 포효로 드러낸다면 온갖 사악한 것이 숨을 죽이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시원하게 바라볼 것이니, 안으로는 선대의 뜻을 잇고 밖으로는 선현의 자취를 따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선영감이 살아계실 때 항상 저를 깊이 아끼셨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당일에 어떻게 밝은 견식을 크게 속였는지 모르겠지만, 추념해보면 송구스러워 땀이 줄줄 흐릅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이라도 힘써 수행한다면 혹 선영감의 안목을 손상시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본령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는데 육체가 먼저 망가졌으니 스스로 송구스럽고 민망할 뿐입니다."유자의 의론은 차라리 고상하고 준엄하게 하다가 잘못이 있을지언정 한결같이 평범함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하였는데, 또한 요긴한 말씀입니다. 단지 폐단을 구하는데 이렇게 해야 할 뿐만은 아닙니다. 무릇 중등 수준 이하의 자질을 지닌 사람은 으레 중도(中道)에 미치지 못하는 우려가 많습니다. 때문에 선사(先師)가 일찍이 말하기를 "공자와 정명도(鄭明道)는 배우기 쉽지 않으니, 우선 맹자와 정이천(程伊川)을 배우는 것이 더 낫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이런 뜻입니다. 그렇다면 입론을 고상하고 준엄하게 하는 것은 차라리 잘못하는 것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때에 따라 중도에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어떻습니까?"기절(氣節)은 있지만 학문이 없는 자는 오히려 하나의 절개를 지키는 선비가 될 수 있으나, 기절은 없고 학문만 있는 경우는 위학(僞學)이다.' 남당(南塘 한원진)의 이 말은 천지와 귀신에게 질정해도 의심이 없는 것으로서 이 통문(通文)에 인용한 "절의는 있고 도학이 없는 자는 있지만 도학이 있고 절의가 없는 자는 없다'는 말과 서로 표리가 됩니다. 이런 말들은 모두 마땅히 가슴에 잘 새겨 종신토록 경서의 가르침과 똑같이 여겨야 할 것입니다."심이 성을 근본으로 삼는다.[心本性]"는 것은 심은 마땅히 성에 근본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보내온 편지에 심(心) 자 뒤에 요(要) 자가 빠졌다고 말한 것은 또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빠졌다 하더라도 또한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성사(性師)'는 《맹자집주》에서 나왔으니 처음부터 의심할 것이 없지만, 다만 '심제(心弟)' 두 글자는 새로 만든 말이기 때문에 의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이 이미 스승이 될 수 있다면 스승으로 삼는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심이 아니겠습니까? 심이 이미 성을 스승으로 삼았다면 제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심통성정(心統性情)'에서 '통(統)' 자를 단지 겸통(兼統)의 뜻으로만 이해하고 '통솔[統帥]'의 뜻으로 보지 않으면 '성사심제(性師心弟)'라는 말과는 아마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주재하겠습니까? 일신(一身)을 가지고 말씀해보겠습니다. 천군(天君 심)은 백체(百體)에 상대해서 말한 것이지만, 궁극적 근원으로서 지극히 존귀하여 상대가 없는 성은 군주 휘하의 물건을 삼아서는 안 됩니다.병암(炳庵 김준영)에 대해 "덕이 후중하고 지조가 견고하며, 학문이 깊고 식견이 바르다."30)라고 선사께서 평한 것은 갖추 다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의리(義利)와 사정(邪正)의 구분에 준엄하였습니다. 봄바람 같은 온화한 기운 속의 늠연한 가을 서리 같은 의리는 범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이것은 제가 심복한 바입니다. 만약 이 어른이 살아계신다면 어찌 우리 문하에 오늘과 같은 재앙이 있겠습니까. 다만 원고 전체가 아직 발간되지 않아 도를 논한 문장을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와 주고받은 몇 차례의 편지를 기록하여 조만감 틈나는 대로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縷縷敎辭, 愈往而愈摯, 惻惻然憫其就偏而遺全, 安小而忽遠, 激厲誘掖, 靡極不至.蓋其愛之也深, 故言之也切; 慮之也遠, 故說之也詳.信乎其以德而不姑息, 君子之愛也; 己立而立人, 己逹而逹人, 仁者之心也.惠斯厚矣, 自惟卑陋, 何以得於高明? 然此屬勸勉戒勵之事, 猶不異也.至於致多少嘉尚, 而示同處之願, 又進而加道南之賛, 則又竊爲君子惜千慮之失、一言之不知, 而赧汗瑟縮之滋甚矣.雖然, 哀執之心, 吾其不知? 憂其倚滞而匡救之也, 則引休庵、芝村而病其德之不備; 欲其感奮而獎詡之也, 則慨老成之淪亡而託千載之約, 抑揚開翕無非敎也.賤子雖駑, 敢不虔心服德, 盡情交勗而終身也? 但四十無聞者, 既無前進之望, 又不足備麗澤之資, 是可恨也.因竊又念我韓之末, 舉國之所公誦而無間巋然視爲靈光者, 非先令監之節義、艮齋先生之道學乎? 天不吊世, 二翁相繼云亡, 三千大界, 虛空如也.歐風亞潮, 驅號震蕩, 猶屬外憂, 乃有何許一隊鬼恠, 起自章縫之內, 捓揄啾喧, 褻瀆尊嚴, 迷惑羣生, 氣象愁慘, 凛然寒心? 哀執淪浹家庭之義, 觀感艮翁之德, 立正論秉大筆, 廓掃邪說, 若太陽中天, 雷霆破山, 百恠千妖奔走閃遁者, 即其人焉.蓋天生一世人, 了當一世事, 不借於異代.顧今長德之盡逝, 無如之何矣, 則以哀執之人地、文識、行義, 不任斯道之責, 而誰恃哉? 願勿以年少而自小, 益加大壯之力、精深之功, 積之於蠶牛之餘, 而發之爲鳳鳴虎嘯, 羣邪屏息, 萬目快觀, 內有以繼述先志, 外有以追韻前修, 如何? 喩及先令監在世, 常惓惓於澤述, 未知此漢當日何以厚誣明鑑, 追切悚汗.然若及今勉修, 則或可以不傷先見, 而本領未立, 鼎器先敗, 竊自悚憫."儒者議論, 寧失高峻, 不可一依平溫"之喩, 亦要言也.非惟捄獘之爲然, 凡中人以下之質, 例多不及之慮, 故先師嘗謂"孔子、明道不可易學, 不如且學孟子、伊川", 亦此意也.然則立論高峻, 非可以寧失論, 乃所以因時而就中也, 如何?"有氣節而無學問者, 猶可爲一節之士; 無氣節而有學問者, 是僞學." 南塘此言, 建質無疑, 而與此中通文所引"有節義而無道學者有矣, 未有有道學而無節義者", 相爲表裹.此等言皆當佩服, 終身視同經訓也."心本性", 謂心當本乎性, 來喩"心"字下闕"要"字者, 亦是.然闕亦何傷? "性師"出《孟子集註》, 初無可疑, 但"心弟"二字, 語創故疑之.然性既得爲師, 則其師之者誰也? 其非心乎? 心既師性, 則非弟而何? "心統性情", "統"字只作兼統之意, 不以統帥看, 則與"性帥心弟"之言, 恐無逕庭, 如何主宰? 就一身而言, 天君對百體而言, 至於極本竆源至尊無對之性, 不宜作君主麾下物也.炳庵之"厚德堅操, 邃學正識", 先師之評盡之, 而最是嚴於義利邪正之分.春風和氣之中, 凛然秋霜之義, 有不可犯者, 此賤子之所心服.使此丈而在者, 豈有吾門今日之禍乎? 顧其全稿未刊, 論道文字, 不可得以詳, 只將與賤子往復幾度錄上, 續當有得隨呈耳. 자기가……것 공자가 "인자는 자신이 서고자 함에 타인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함에 타인도 통달하게 한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40세가……없고 공자가 "후생이 두려울 만하니, 앞으로 오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못하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마흔 살이나 쉰 살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짐이 없으면 이는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하였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이택(麗澤) 벗끼리 서로 도와 학문을 닦고 힘쓰는 것이다. 《주역(周易)》 〈태괘(兌卦)〉 상전(象傳)에 "두 개의 택(澤)이 나란히 있는 것이 태괘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학문을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 朋友講習〕" 하였다. 영광(靈光) 세상에 얻기 어려운 훌륭한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한다. 덕이……바르다 《간재집 후편(艮齋集後編)》 권1 〈답노인오(答盧仁吾) 계축(癸丑)〉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