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 사의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族弟士毅 丙寅 어제 대암(坮巖)에서 돌아오니 정겨운 편지가 책상에 놓여있었습니다. 바삐 편지를 열어 읽어보니 그 기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반도 읽기 전에 나도 모르게 망연자실하였습니다.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 가눌 수 없었으니, 그 까닭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우리 아우의 언론과 사상이 전일과 문득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우는 오당(吾黨) 중에서 평소 강의(剛毅)하다고 칭찬받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어찌하여 굳건한 소나무와 오래된 잣나무와 같은 그대가 세찬 눈바람에 압박되어 꺾이고 좌절되려하십니까! 혀 차는 소리로 괴이한 일이라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윽고 천천히 생각해보니 이는 아마도 우리 아우가 때를 만나 마땅함을 제제하여 평상시와 변화시에 처할 의리의 취지를 지극히 하려고 한 것일 것입니다.그대가 먼저 이미 생각해서 얻고, 틈 없는 사이인 나에게 토로하고, 자신이 몸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닌즉, 그 갈피를 못 잡는 마음은 대개 과도한 우려였습니다. 또 밤에 능히 편안히 누울 수 있었습니다.비록 그렇지만 또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음은 몸의 주인으로 생각은 마음에서 나오고, 말은 또 마음의 소리인지라 그 마음에서 발생해서 그 일을 해치게 된다."144)라고 맹자께서 이미 말씀하셨고, 성인이 이 말을 바꾸지 못한다고 말씀했는데, 내가 어찌 감히 마음이 풀리겠습니까? 청컨대 그대의 편지에서 거론한 바를 근거해서 대략 논하겠습니다. 대저 하늘의 호오(好惡)는 진실로 나의 뜻한 바가 아니요, 또한 저들의 뜻한 바도 아닙니다. 대개 하늘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할 따름입니다. 나와 저들의 선악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늘이 우리에게 재난을 내리고 저들을 형통하게 한다고 하여, 하늘이 우리의 악을 싫어하고 저들의 선을 좋아한 것을 의심하여 끝내 의리에 안주할 바를 궁구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뜻을 버리고 저들을 따른다면, 이것은 그릇된 것입니다.대저 기수(氣數)145)의 어긋남은 하늘이 홍수나 큰 가뭄같이 원래 자가(自家)의 일에 속한 것도 오직 하늘도 어찌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인사의 득실에 있어서야 어찌하겠습니까! 이로써 아우는 '의를 따라 함께 하는 것은 진실로 군자가 되고, 세상과 함께 변하여 옮겨가는 것146)'은 결코 떳떳한 훈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또 시대와 형세를 아는 것을 정자(程子)는 "역을 배우는 방법"이라고 일렀지만, 또 말하기를 "시세가 비록 변하더라도 내 어찌 감히 현재의 왕의 제도를 변화시키거나 어기겠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공자는 반고(反古)147)를 훈계하여 선왕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았습니다. 효성스러운 우리 아우의 오늘날 시대를 알고 옛 도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되겠느냐는 훈계를 생각해 보니, 공자와 정자의 취지를 놓친 게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에 이르러서는 선성인 공자와 선현인 정자의 학문을 생각하고 힘써서, 세도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기약하는 것이 이 일입니다. 만약 유자가 졸렬한 법도를 고수하는 것을 깊이 애석하게 여긴다면, 나는 아우가 말하는 '졸렬한 법도를 지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 졸렬한 법도라는 것이 천하의 왕 노릇하는 도리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관중(管仲)의 기량이 작은 것 같다148)고 한다면, 그것은 옳거니와, 혹 제멋대로 걷고 시속을 쫓는 일을 못하는 것을 가리켜 졸렬하다고 한다면, 이는 천하를 이끌어서 금수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의 고견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겠습니까?우리 아우가 한번 소회를 토로하여 그 씩씩한 마음을 한번 통쾌히 한 것인데, 나는 한번 그대의 의론을 듣고 가히 우려하여 질병이 되었으니, 인정이 같지 않고 어찌 상반되는지요? 이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깊이 생각하고 멀리 보고서 끝내 한마디 말149)로써 실수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昨自坮巖歸, 情翰留案.忙手披讀, 其喜何旣.然讀之未半, 不覺惘然如有所矣.恍然惚然, 無以爲懷, 其故何哉.以吾弟言論思想, 忽異於前日也.吾弟非吾黨中素剛毅稱者乎.胡爲乎貞松古柏,爲虐雪獰風之壓迫而欲摧折也.咄咄怪歎, 夜不能寐, 旣而徐思之, 此殆吾弟欲因時制宜, 以極常變義理之趣.旣得之於思, 試一吐於無間, 非謂身親如何也, 則其惘然恍惚者.蓋過慮也.於是又夜能安寢.雖然又反思之,心身之主也,思出於心, 言又心聲也, 發於其心, 害於其事, 孟子旣云, 聖人不易斯言, 則吾何敢釋然如也.請就來喩所擧而略論之.夫天之好惡, 固非吾之所志, 亦非彼之所志.蓋好善而惡惡而已.吾與彼之善惡,果未知安在.然若以天之厄吾而通彼, 疑天之惡吾惡而好彼善, 遂不究義理之攸安, 而舍吾從彼則左矣.夫氣數之舛差, 天於洪水太旱之元屬自家事者, 尙且柰何不下, 况於人事之得失乎.是知義之與比, 固爲君子, 而與世推移, 決非經訓也.且知時識勢, 程子謂學易之方, 而又謂時勢雖變, 某安敢變違時王之制.孔聖戒以反古, 而非先王之德行, 不敢行.又以爲孝吾弟今日識時反古之訓, 無乃失孔程之旨乎.至於吾所當爲者, 思勉先聖賢之學, 期補世程之萬一是也.若以儒者膠守拙規爲深惜. 則不省其拙規者指何也.若謂不知有王天下之道, 如管仲之器小則可矣, 或指不能闊步趨時而爲拙, 則此率天下而爲獸也, 高見豈至此乎.吾弟則一吐所懷, 壯心爲之一快, 而吾則一聞高論, 過憂爲成一疾, 人情不同, 何若是相反, 是必有其故也.幸惟深思遠覽, 無終爲一言之失如何. 《맹자》〈공손추 상(公孫丑上)〉 에 "마음속에서 생각을 일으켜 급기야는 정사에 해를 끼치고 만다.〔發於其心 害於其政〕"라고 하였다. 기수(氣數) 길흉ㆍ화복의 운수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희공(僖公) 15년조에 "귀갑(龜甲)으로 점을 치는 것은 사물을 상징하는 것이고, 서초(筮草)로 점을 치는 것은 기수(氣數)를 대표하는 것이다. 사정이 발생한 뒤에 현상이 있게 되고, 현상이 있으면 사정이 더 발생하고, 사정이 더 발생한 뒤에 기수가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의를 따라……옮겨 가는 것 본문의 '義之與比'는《논어》〈이인(里仁)〉에 "군자는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하여 무조건 찬성하는 것도 없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없어서 오직 의로운 것을 따를 뿐이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라고 하였다. 또한 '與世推移'는 《사기(史記)》권84 굴원열전(屈原列傳)의 어부사(漁父辭)에, "성인은 사물에 막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따라 미루어 옮겨가나니, 온 세상 사람이 혼탁하거든 어찌 그 흐름을 따라서 그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고?〔夫聖人者, 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擧世混濁, 何不隨其流已揚其波.〕"라고 하였다. 반고(反古) 《중용》 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으면서 자기 생각대로 행하기를 좋아하고, 천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고,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이런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닥칠 것이다.' 〔子曰: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烖及其身者也.〕"라고 하였다. 옛 도리에 반하지 말라고 경계함을 이른다. 관중의……같다 《논어》 〈팔일(八佾)〉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管仲)은 그릇이 작구나.' 이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관중은 검소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삼귀대를 지었으며 가신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子曰:'管仲之器, 小哉!' 或曰:'管仲儉乎?' 曰:'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라고 하였다. 한 마디 말 《논어》 〈자로(子路)〉에 "정공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을 수 있다 하니, 그러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은 이와 같이 기필할 수는 없거니와 사람들 말에 「나는 임금된 것은 즐거울 것이 없고, 오직 내가 말을 하면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曰 一言而喪邦, 有諸, 孔子對曰, 言不可以若是其幾也, 人之言曰, 予無樂乎爲君, 唯其言而莫予違也.〕"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