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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명에게 답함 경오년(1930) 答楊克明 庚午 그리워하던 차에 받은 편지 한통은 백붕(百朋)도 어찌 이보다 값지다고 하겠습니까? 다만 "물음이 있었는데 답이 없으니 아마도 저를 버리셨네요?"라는 말에 대해서는 제가 저버린 것이 부끄럽고 무거워 천금 또한 가볍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옛 상자를 열어보니 과연 봄에 온 편지가 있었습니다. 서신 가운데 나를 일깨우는 말이 있어서 곧바로 답장을 썼을 터인데, 지금 무슨 말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답장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망망하여 답장의 유무를 뚜렷이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타고난 자질이 혼약하여 50이 되기도 전에 정신이 막히고 혼미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가련히 여겨 용서해주시고 노여워 마십시오. 비록 그러하나 나의 어두움은 자질의 병이지 몸의 병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땅히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데, 다스리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대가 말씀하신 병은 자세히 헤아려보니 곧 몸이 받은 절실한 병폐로 다스리지 않으면 낫지 않고, 약을 쓰지 않으면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스림은 심히 어려운 것이 아니고 다만 급히 도모하는 것의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통쾌하게 보고 통쾌한 말을 들어서 제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대가 나에게 오(吳)객, 태자(太子)의 고사44)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어찌 〈7계(七啓)〉45)의 수단이 있겠습니까? 그만두지 않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일찍이 금강산을 노닐었는데 비로봉(毗盧峯)에 올라서 창해를 굽어보니 마치 작은 연못 같았고, 저 열도(列島)에 웅거해서 각자 주인 노릇하는 이들은 작고도 작아보였습니다. 구룡폭포를 보니 천장길이의 흰 비단에 만곡(萬斛)의 진주인 양, 멀리서 바라보니 눈을 놀라게 하였고 가까이서 바라보니 정신이 혼미하여, 진실로 천하의 장관이었고 평생의 통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최칠칠(崔七七 최북)46)의 광우(狂愚)함을 비웃었으나 또한 그 절속(絶俗)함을 찬탄하였습니다. 또 정양사(正陽寺)에 오르니 만이천봉이 모두 반쯤 얼굴을 노출하여 운하가 걷히고 펼쳐지는 가운데 출몰하였습니다. 아침저녁의 변화가 황홀하여 기이한 형상을 형용하기 어려웠는데, 우암 송시열의 "산과 구름이 함께 흰색이라, 구름인가 산인가 구분하기 어렵더니. 구름은 돌아가고 산만 우뚝하니, 일만이천 봉우리로다."라는 시가 거의 잘 비유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산을 떠나 멀리서 전체를 조망하니 하얗기는 한겨울의 눈을 뒤집어쓴 것 같았고, 뾰족하기는 연꽃이 물위에 솟은 것 같아서 깨끗하고 맑고 상쾌하여 반점의 티끌도 보이지 않아 사람의 심신(心神)을 깨끗하게 씻어줌이 무릇 인간세상의 슬픔과 번뇌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시에 씻어 내렸습니다. 고질병이 든 자가 금강산을 맞이한다면 그 고질병이 반드시 떠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라 오객(吳客)이 광릉의 파도를 가지고 비유를 설파한 것과는 다르니 그대도 그럴 뜻이 없는지요? 발과 눈이 이르는 것을 갑자기 실행하기 어렵다면 먼저 마음으로 그 청쾌한 기상을 상상하여 그대의 가슴 사이로 흘려보낸다면, 아마도 신기(神氣)가 평안해짐을 느낄 것이니 무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견해는 어떤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懸念頭一書, 百朋何足多也.但有問無答遐棄等語, 愧負之重, 又千金反輕也.發視舊筴, 果有殷春書.而語多警發, 想必隨卽修謝, 而今不記將何語奉答, 則亦無有乎爾否.追想茫茫, 莫辨有無, 生稟昏弱, 未五十而精魄之遁已若此, 可哀恕而勿怒也.雖然賤子之昏, 質病非身病也.只當自治, 治亦未易.細審所示美愼, 乃肌膚所受切近災者, 不治不瘳, 不藥不治, 治亦不甚難, 只在亟圖之如何爾.見快事聞快語以祛之, 亦或一道.高明之求我以吳太子故事者, 以此也.然僕安有七啓手段耶? 無已則有一焉.僕曩遊金剛山矣, 上毘盧之峰, 俯視滄海, 小若曲沼, 彼雄據列島而各伯者, 又小之小者也.觀九龍之瀑, 千丈白練, 萬斛眞珠, 遠望駭眼, 迫視眩精, 眞天下壯觀, 生平快事.笑崔七七之狂愚, 而亦歎其絶俗.登正陽之寺, 萬二千峰幷露半面, 而出沒於雲霞卷舒中.朝暮變幻, 奇形莫狀, 宋尤菴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峰之詩, 差可謂善喩也.離山而遠, 通看全體, 則晧晧若大冬之封雪也, 尖尖若芙蓉之出水也, 潔淨明爽, 不見半點埃氛, 令人心神灑落.凡世間諸相可悲可惱者, 幷不覺一時消下.使有沈痾者當之, 其祛體也必矣.此又皆實事, 而非如吳客廣陵濤之設諭者, 高明其無意乎.足目之到, 如難猝辦, 先須心到, 想其淸快氣像, 而流注於胸隔間, 則庶覺神氣平怡, 不爲無益矣.未知雅見以爲如何? 오(吳)객, 태자(太子)의 고사 한(漢) 나라 매승(枚乘)이 오객(吳客)과 초 태자(楚太子)의 문답 형식으로 지은 '칠발 팔수(七發八首)'에 광릉(廣陵) 곡강(曲江)에 이는 파도의 장관을 멋지게 묘사한 내용이 나온다. 《文選》 7계(七啓) 문체의 하나로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지은 글이다. 이러한 문체로 칠발(七發), 칠격(七激) 등의 명문이 있다. 자연의 장관을 멋지게 묘사하여 이를 통해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최칠칠(崔七七) 최북(崔北)이다. 칠칠은 최북이 자신의 이름 '북(北)'자를 파자한 것이다. 술과 유람을 매우 좋아하여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서 술에 취해 "천하의 명인(名人) 최북은 마땅히 천하의 명산(名山)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하면서 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던 일화가 전한다. 《金陵集 卷13 崔七七傳, 韓國文集叢刊 272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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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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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14년 이면용(李冕容) 망단자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甲寅十月日 雙峯刊所 李冕容 甲寅十月日 雙峯刊所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4년 10월에 이면용(李冕容)을 학포선생문집교정자로(學圃先生文集校正者)로 삼는다는 망단자 1914년 10월에 이면용(李冕容)을 학포선생문집교정자로(學圃先生文集校正者)로 삼는다는 망단자이다. 발신자는 쌍봉간소(雙峯刊所)이며, 수신자는 이면용이다. 『학포선생문집』은 학포 정훤(鄭喧, 1588~1647)의 시와 글 등을 모아놓은 문집이다. 1814년(순조 14)에 12대손 즙(楫)이 처음 간행했고, 1924년 후손 재경(在慶)이 능주(綾州)에서 중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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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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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3년 허성환(許聖煥)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五月二十六日 許性煥 李敎成 癸酉五月二十六日 許性煥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87_001 1933년 5월 26일에 허성환이 이교성에게 유동의 상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알려주는 간찰 1933년 5월 26일에 허성환(許聖煥)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유동(柳童)의 상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알려주는 간찰이다. 잘 돌아갔는지와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그때 수룡동으로 갔다고 하였다. 유동(柳童)은 골격이 건장하고, 얼굴이 검은색에 가까우나 다른 흠은 없고, 다만 눈빛이 드러나서 온화한 기운이 부족한 듯하나, 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당신이 만약 나의 육안을 불신하면, 다시 안목 있는 사람에게 보내서 상세히 보게 하여 만에 하나 나중의 근심할 여지를 없게 할 것을 제안하고, 하루 이틀 뒤에 가서 뵙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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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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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6년 유인 이씨(孺人李氏) 정부인(貞夫人)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孺人 李氏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孺人 李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유인 이씨를 정부인에 봉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유인 이씨를 정부인에 봉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씨는 이기두의 처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의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이렇게 남편이 관직을 취득할 경우에 처는 남편의 관직에 준하는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유인은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가 사용하는 호칭이다. 이때의 봉작이 정부인이다. 정부인은 외명부(外命婦) 중 문무관의 적처에게 내리는 정・종 2품의 위호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날짜 왼쪽에는 봉작의 근거를 기재하였는데, 남편인 이기두의 관품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이며 그의 처는 법전에 의거하여 남편의 직을 따른다는 것이다. 법전은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외명부조에서 봉작(封爵)은 남편의 관직을 따른다는 법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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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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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장문거에게 답함 기사년(1929) 答張文居 己巳 편지에서 "기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에서 가히 스스로를 닦는 절실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 선생을 인용해 말한 것에서 반드시 스승삼고 본받을 바를 알았을 터인데, 다시 나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요? 대개 동래(東萊) 선생의 기질은 그 병폐가 치우치고 조급함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궁자후박책인(躳自厚薄責人)"63)이라는 한마디 말을 얻어 번연히 고치고 깨달았는데, 그것이 마치 베틀을 돌리는 것처럼 민첩하고 손을 뒤집는 것처럼 쉬웠습니다. 그러니 그대 또한 자신의 기질 병폐가 어디에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또 고서(古書) 가운데 어떤 말이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세요. 성심으로 그것을 구한다면 반드시 들어맞지 않는 이치가 없을 것입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바둑판을 맞이한 자는 미혹되고, 곁에서 보는 자는 맑다는 그 이치가 없지는 않으니, 그대가 타인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그대를 보건대 진밀(縝密)하고, 견실(堅實)하고, 응정(凝靜 의젓함)하고, 간묵(簡默)하여 진실로 물에 두어도 새지 않고 산처럼 움직임이 없을듯합니다. 그러니 학문에 나아가는 아름다운 자질인데 여기에 무엇을 더하겠습니까? 다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라는 의미에서 질책하자면 그대에게 편체(偏滯), 혼침(昏沈)의64) 병폐가 있는듯합니다. 그리하여 대수(大受)65), 부유(富有)66)에 방해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그대에게 맞는 약재를 구해주자면 《주역》 경문의 관이거지(寬以居之)67), 《논어》의 불가불홍(不可不弘)68), 《중용》의 고명(高明)69), 《맹자》의 대용(大勇)70)이 해당될 것입니다. 그대가 시험 삼아 세월의 공부를 더하여 힘써 나아간다면 동래선생의 한번 변하여 효과를 거둔 것과, 빠르고 느림은 같지 않더라도 평생 터득한 전체의 대용은 동래선생이 거둔 효과에 그치지 않을 것이니, 어찌 더욱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所需變化氣質之法, 可見自修之切實.而其引呂東萊先生而爲說者, 是必知所以師法矣, 乃復求於鄙說何也? 蓋東萊之氣質, 病在偏乖粗急.故得躳自厚薄責人一語幡然改悟, 若轉機之捷, 反手之易.賢亦試思, 我之氣質, 病在何處.古書中何語可藥吾病.心誠求之, 必無不中之理也.雖然當局者迷, 傍觀則淸, 不無其理, 賢所以求之於人者, 無乃以此也歟? 以吾觀於賢者, 縝密堅實, 凝靜簡黙.眞置水不漏, 如山不動.進學美質, 何以加此? 但責備以論, 則似有偏滯昏沈之病.而恐妨於大受富有.若求其對證之劑, 則大易之寬以居之, 論語之不可不弘, 中庸之高明, 孟子之大勇, 其可以當之乎.賢者試可歲月之功, 而力進之, 則其與東萊之一燮奏效者, 遲速雖不同, 其生平全體大用之所得, 又非如東萊已奏之效而止也, 豈不更快哉? 궁자후박책인(躳自厚薄責人)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몸소 자책하기를 후하게 하고 남을 책하기를 적게 한다면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躳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라고 한 공자의 말이 있다. 편체(偏滯), 혼침(昏沈) 편체는 치우치고 침체되는 것이며, 혼침은 정신을 놓아서 혼미해지는 것이다. 대수(大受)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작은 일에 알 수는 없으나 큰 것을 받을 만하고, 소인은 큰 것을 받을 수는 없으나 작은 일에 알 수는 있다.〔君子, 不可小知而可大受也;小人, 不可大受而可小知也.〕"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부유(富有)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을 대업(大業)이라고 이르고,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성덕(盛德)이라고 이른다.[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라는 말이 있다. 관이거지(寬以居之) 《주역》 〈건괘(乾卦)〉에 "군자는 배워서 지식을 모으고 물어서 분별하며, 너그러움으로써 거하고 인으로 실행한다.〔君子學以聚之 問以辨之 寬以居之 仁以行之〕"라고 하였다. 불가불홍(不可不弘)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선비는 그릇이 크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라고 하였다. 고명(高明) 《중용장구》 제27장에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을 도 삼으니, 광대함을 지극히 하고 정미함을 다하며, 고명을 극진히 하고 중용을 따른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라고 하였다. 대용(大勇) 《맹자》 〈공손추 상〉에 "내 일찍이 대용(大勇)을 부자(夫子)에게 들었다.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지 못하면 비록 갈관박(褐寬博)이라도 내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吾嘗聞大勇於夫子矣.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고 한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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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기 【계축년(1913)】 樵隱記 【癸丑】 선비는 세상에 태어나 공자와 맹자의 도를 배우고 요순과 같은 임금의 조정에 서서 위로는 임금에게 인(仁)과 의(義)를 진달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이로움과 은택을 베푸니, 이것이 선비의 상도(常道)이지만 혹 천하의 변란을 만나 도를 행할 수 없으면 이내 이름과 자취를 감추고 홀로 자신을 선하게 한다. 그러므로 《주역》에 이르기를, "천지가 닫히면 현인이 은둔한다."9)라고 하였다. 그러한즉 은둔은 현인이 즐겨 하는 바가 아니고, 또한 군자가 그만둘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옛날에 은둔했던 사람 중에는 어염(魚鹽)과 저자 가운데에서 은둔한 자가 있었고, 밭두둑이나 담장을 쌓는 곳 사이에서 은둔한 자도 있었으니10), 이는 모두 그 처한 바에 따라 은둔하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영주산(瀛洲山)에서 남쪽으로 20리 되는 모의촌(慕義村) 내에서 광산 김공(光山金公)이 몸을 닦고 의를 행한 지 어언 50년이 되었는데, 근래에 오랑캐와 짐승 같은 자가 가득하고 위아래가 전도된 것을 보고서 더욱 자취를 숨긴 채 문을 닫아걸고 세상과 단절하였으며, 이내 거처하는 집에 '초은(樵隱)'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니, 거처한 바가 산에 의지하고 있음을 취한 것으로, 나에게 사실을 기록해 줄 것을 청하였다.내가 삼가 생각하건대, 선비가 참으로 세속을 끊을 생각을 품었다면 비록 도시나 시장에 거처한다 하더라도 은둔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고, 만일 외물을 사모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비록 구름 속에 눕거나 노을 속에 깃든다 하더라도 다만 헛된 이름만 훔칠 수 있을 따름이니, 이로 말한다면 은거의 실제는 겉으로 내세우는 데에 있지 않고, 그 마음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하겠다.내가 알기에 초은공은 산에 올라 나물을 캐고 열매를 주워 모아 동생(董生)처럼 맛있는 음식을 부모에게 바치고11),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삶으며 요부(堯夫)12)에게 주역의 이치를 물어서 이미 효성스럽게 봉양하는 방법을 다하였고, 또 신묘하게 꼭 들어맞는 흥취를 얻었다. 때때로 또 붉은 벼랑과 차가운 시냇물 사이에서 우유자적하여 계수나무 부여잡고 가을바람에 읊조리며 고금의 득실을 비웃고,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청상곡13)을 연주하면서 이생의 영욕을 잊어버리고 초연히 세속 밖에서 스스로를 즐기느라 늙음이 장차 다가오는지도 몰랐으니, 비록 소산(小山)14)과 같은 자가 일어나 산중에서 머물기 어렵고 세모에 무료하다는 말로 부른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역(大易) 주역(周易)》의 이른바 현인의 은둔이라는 것에 합치되는 것이니, 그 '초은'이라는 이름과 어찌 그 실상이 부합하지 않겠는가. 士生乎世, 學孔、孟之道, 立堯、舜之朝, 上陳仁義於君, 下加利澤於民, 是其常也, 而厥或値天下變亂, 道不可行, 則乃韜名晦迹, 獨善其身焉.故《易》曰: "天地閉, 賢人隱." 然則隱非賢人之所樂爲, 而亦非君子之所得已也.是以古之隱者, 有於魚鹽市肆之中者, 有於耕稼版築之間者, 此皆莫不因其所處而隱也.瀛洲山南二十里慕義村中, 有光山 金公, 修身行義, 五十年于玆.近見夷獸充斥, 冠屨倒置, 益復韜晦, 杜門謝世, 乃以樵隱扁其居室, 取其所處之依乎山也.請余以記實.余竊以爲士苟抱絶俗之想, 雖城居市處, 不害其爲隱; 苟不免於外慕, 雖雲臥霞棲, 適足以竊虛名.由是言之, 隱居之實, 不在乎標榜, 在乎其心之如何爾.吾知樵隱公, 登山採拾, 供董生之甘旨, 柝薪烹魚, 問易理於堯夫, 旣盡孝養之方, 又得妙契之趣, 而時復優遊自適於丹崖寒流之間, 攀桂樹而咏秋風, 笑古今之得失; 撫枯桐而發淸商, 忘此生之榮辱, 翛然自樂於物表, 不知老之將至.雖有以山中難留歲暮無聊之說招之, 如小山者作, 不足以動其心.則此正合《大易》所謂賢人之隱也.其於樵隱之名, 豈不副其實也哉? 천지가 …… 은둔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천지가 변화하면 초목이 무성하고 천지가 닫히면 현인이 은둔한다.〔天地變化, 草木蕃, 天地閉, 賢人隱.〕" 라는 내용이 보인다. 옛날에 …… 있었으니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순(舜)은 밭두둑 사이에서 발신하였고, 부열은 담장 쌓는 곳에서 등용되었고, 교격은 어물과 소금을 파는 가운데에서 등용되었고, 관이오는 사관(士官)에 갇혔다가 등용되었고, 손숙오는 바닷가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舜發於畎畆之中, 傅說擧於版築之間, 膠鬲擧於魚鹽之中, 管夷吾擧於士, 孫叔敖擧於海, 百里奚擧於市.〕"라는 내용이 보인다. 동생(董生)처럼 …… 바치고 당나라 때 안풍(安豐)에 은거하였던 동소남(董邵南)을 말한다. 진사과에 낙방한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주경야독하면서 효성을 다해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처자식이 근심이 없게 하자, 그의 벗 한유가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아! 동생이여. 아침이면 나가 밭 갈고, 밤이면 돌아와 옛사람의 책을 읽도다. 종일토록 쉬지 못하였으니, 혹은 산에서 나무하며, 혹은 물에서 고기 잡네. 부엌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당(堂)에 올라 안부를 물으니, 부모는 근심스러워하지 않고, 처자식은 원망하지 않도다.〔嗟哉董生, 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息, 或山而樵, 或水而漁. 入廚具甘旨, 上堂問起居. 父母不慼慼, 妻子不咨咨.〕"라고 칭찬하였다. 《小學 善行》 요부(堯夫) 송(宋)나라의 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의 자로, 이정지(李挺之)에게서 도가(道家)의 학문을 배우고 상수학(象數學)을 정립하여 역학(易學)의 대가가 된 인물이다. 저서로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등이 있다. 청상곡(淸商曲) 궁ㆍ상ㆍ각ㆍ치ㆍ우(宮商角徵羽)의 오음(五音) 가운데 가을에 속하는 상음(商音)의 맑고 구슬픈 노래를 말한다. 소산(小山) 소산은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문객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회남왕에게 초사류(楚辭類)의 사부(辭賦)를 많이 지어 바쳐 자신들을 불러준 은혜에 보답하였다. 그중 굴원(屈原)에 가탁하여 산속은 군자가 거처할 곳이 못 되므로 속히 나오라는 내용의 〈초은사(招隱士)〉라는 작품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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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후당기 【기미년(1919)】 寒後堂記 【己未】 평상시에 법도를 잃지 않는 것은 쉽고, 변란을 만나 지조를 바꾸지 않는 것은 어려우니,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을 모두 잃은 자는 반드시 소인이고,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을 모두 얻은 자는 반드시 군자인(君子人)이다. 이 때문에 쉬운 것을 얻고 어려운 것을 잃은 자는 있지만, 어려운 것을 얻고 쉬운 것을 잃은 자는 없다.고금을 두루 살펴보건대, 시골의 훌륭한 선비와 나라의 대인이 평소에 전철을 잘 따라서 세상에 이름이 성대하게 알려진 경우를 어찌 한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추위와 굶주림이 뼈에 사무치고 재앙이 피부에 임박하며, 혹 이단의 학설이 치성하여 천하를 바꿈에 미쳐서는 기가 꺾이고 현혹되어 그 지켜 왔던 것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자는 드무니, 어찌 참으로 어렵지 않겠는가.대저 여름철의 기후가 한창 기세를 부릴 때에는 온갖 수목의 잎이 무성하여 온통 청록색 일색이 완상할 만하더니 조금 있다가 매서운 서리가 거듭 내리고 북풍이 성난 듯 세차게 불어대면 지난날 청록색 일색으로 완상할 만하던 것들이 쓸쓸하게 더 이상 생기가 없어지고, 단지 소나무 가지와 잣나무 잎만이 한 겨울에도 창창하게 우뚝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군자가 변란을 만나 변하지 않는 것이 대체로 이와 비슷하니, 뜻이 깊구나!  우리 부자께서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시들지 않는다고 탄식함이여. 뜻이 있구나! 정의 이공(精毅李公)이 한후당(寒後堂)이라 명명함이여.아, 공 또한 어찌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겠는가. 물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에 글 읽는 소리가 맑게 울렸고, 사방 이웃이 곡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어도 집사람이 꾸어 오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으니, 우뚝하도다! 가난함을 편안하게 여기는 굳센 마음이여. 삿되고 편벽된 말이 세상에 가득하고 온갖 갈림길이 사람을 현혹함에도 칠순의 나이에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나아가 질정할 곳을 두고서 남아 있는 수명이 부족한 줄 잊어버리는 데에 이르렀으니, 확고하도다! 도를 믿는 독실한 마음이여.다만 지금 천지가 막혀 우리의 도에 닥친 재앙이 헤아릴 수 없는 점이 있으니, 공이 이미 잘하는 것을 인하여 훗날까지 미루어 적용할 수 있다면 곰 발바닥처럼 두꺼울지 생선처럼 얇을지, 기러기 털처럼 가벼울지 태산처럼 무거울지는 반드시 미리 계산하고 앞서 정한 바가 있을 것이다.15) 참으로 그렇게 된다면 어찌 다만 당(堂)에 명명한 것이 뜻에 걸맞을 뿐이겠는가. 바로 사람 중의 소나무와 잣나무라 일컬어도 거의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내가 장차 푸른 가지 부여잡으며 기풍 아래로 달려가고, 푸른 솔잎을 어루만지며 남은 그늘에 의탁하여 배회하고 서성거리며 한 해를 마칠 것이니, 바라건대 평범한 나무라고 해서 멀리하지 않는다면 더불어 영광스러움이 크겠다. 處常而不失度易; 遇變而不易操難.難易俱失者, 必小人也; 難易俱得者, 必君子人也.是故得於易而失其難者有矣夫, 未有得其難而失乎易者也.歷觀今古, 鄕黨善士、邦國大人, 能循塗轍於平日, 蔚然聞達乎世者, 何限? 及乎凍餒切骨, 禍災剝膚, 厥或異說熾而易天下, 能不隕穫驚惑, 以喪其守者鮮焉, 豈不誠難矣乎? 夫夏令方殷, 萬木敷葉, 羣靑衆綠, 一色可玩, 少焉霜威疊降, 朔風怒號, 向之靑綠一色可玩者, 索然無復生意, 只見松柯柏葉, 蒼蒼特挺於大冬中.君子之遇變, 不變蓋似之.旨哉! 吾夫子歲寒後凋之歎也; 有志哉! 精毅 李公 寒後堂之命名也.噫, 公亦豈易得哉? 歠水讀書, 書聲淸越, 四隣積粟如山, 絶不許家人借貸, 卓乎其安貧之固.邪詖盈世, 百岐眩人, 七耋負笈, 就正有所, 至忘年數之不足, 確乎其信道之篤.第今天地閑塞, 吾道之禍, 有不可測者, 公能因其所已能, 而推用於異日, 則熊厚魚薄, 毛輕山重, 必有所宿算而前定者矣.誠有然者, 奚但命堂之稱志而已哉? 直謂人中之松柏, 殆無愧矣.吾將攀翠柯而趨下風, 撫蒼髥而庇餘蔭, 盤桓徜徉而卒歲也.幸無以凡木而遠之, 則與有榮也大矣. 공이 …… 것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의 "생선 요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곰 발바닥 요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생선을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리를 택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는 구절과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의 "사람은 언젠가 한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더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 더 가볍다.〔人固有一死, 或重於泰山, 或輕於鴻毛.〕"라는 구절의 내용을 인용하여 후한당의 주인인 이공이 죽는 날까지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절개와 의리를 지킬 것을 예상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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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기 【기미년(1919)】 懶齋記 【己未】 방과 마루, 문과 창, 대야와 사발 등에 명(銘)을 두는 일은 고금의 사람이 잠시도 폐지한 적이 없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뜻을 여기에 담지 않은 것이 없기에 나는 나재공(懶齋公)의 편호(扁號)에 대해서 그가 법문(法門)을 깨고 어긴 것을 내심 괴이하게 여겼다가 그 재명(齋銘)을 읽고 난 뒤에 이름을 명한 것이 화둔 선생(華遯先生 전우(田愚))에게서 나왔고, 그 뜻이 매우 깊고 간절하여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청컨대 그 말과 뜻을 부연하여 진술해도 되겠는가?무릇 천하의 일이란, 민첩함과 노둔함은 각기 그 유를 따르고, 장점과 단점은 똑같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으니, 비록 조물주의 신묘함으로도 비오는 날씨와 갠 날씨를 둘 다 갖출 수 없고, 해와 달의 밝음으로도 낮과 밤을 함께 비출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게으른 것이 있는 뒤에 부지런한 것이 있으니, 부지런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은 반드시 게으르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악에 게으른 자가 반드시 선에 부지런한 자이고, 영리에 부지런한 자가 바로 의리에 게으른 자임을 알겠다.현재 공은 독으로 창을 내고 가시덤불로 대문을 만들어 살면서도 넓은 저택처럼 여기고, 여기저기 꿰맨 옷을 몸에 걸치면서도 생계를 꾸려 나가는 재주가 서툰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게으른 것이 이와 같았으니, 의당 부지런한 것은 삼천 삼백(三千三百)16)을 강론하고 일도양단에 힘쓰는 것이었다. 이 재실에 거처하면서 스승의 뜻을 좇음이여, 나는 그가 허물을 면했음을 알겠다.내가 또 생각하건대, '게으름[懶]'이라는 글자는 '심(心)'방에 '힘입을 뢰[賴]'자로 이루어졌으며, 마음은 의리의 본심이 있고 또한 이욕의 사심이 있으니, 진실로 본심을 힘입는다면 이는 또한 악에 게으른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힘입는 것이 사심에 있다면 두렵게 여길 만한 것이 의리에 게으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또 순(舜) 임금과 도척(盜跖)이 되는 기관(機關)이니, 더욱 삼가지 않을 수 없고, 인간 세상을 경계시키고 반성하게 할 수 있는 점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공에게 고하고 편액 뒤에 끌어다 이어 써서 이 재실에 오르는 자에게 질정하도록 권고하였다. 室堂、戶牖、盤盂之有銘, 今古人未之或廢, 而莫不勤勵之意是寓.余於懶齋公之扁號, 竊怪其用打乖法門, 及讀其齋銘, 然後知命名出自華遯先生, 而其意之深切, 有匪夷所度者矣, 請敷其說而衍其義可乎? 凡天下之事, 敏鈍各以其類, 長短均有得失, 雖以造化之神也, 而未得雙備於雨暘, 日月之明也, 而不能通照於晝夜, 而況於人乎? 是故有所懶而後有所勤, 無所不勤者, 必無所不懶者也. 吾知其懶於惡者, 必勤乎善者也; 營利勤者, 乃義之懶者也.方公甕蓽而爲廣廈, 身百結而不恥生理之疏.懶也若是, 宜其所勤者, 三千三百之是講, 而一刀兩段之是務也.居是齋而遵師旨乎, 知其免矣.夫抑余又念懶之爲字, 從心從賴, 心有義理之本心, 亦有利欲之私心, 苟本心之是賴, 斯不亦懶於惡者乎? 如所賴在於私心, 可畏者非懶於義乎? 此又舜、跖之機關, 尤不可不愼, 而有足以警省人世者.旣以告之於公, 牽連書之扁後, 諗質于登斯齋者. 삼천 삼백(三千三百) 크고 작은 예절을 말하는 것으로, 《예기(禮記)》 〈예기(禮器)〉에서는 "경례가 삼백 가지이고, 곡례가 삼천 가지인데, 그 근본은 하나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其致一也.〕"라고 하였고, 《중용장구》 제27장에서는 "넉넉히 크도다. 예의가 삼백 가지이고, 위의가 삼천 가지이다.〔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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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린 편지 병진년(1916) 上艮齋先生 丙辰 저 택술(澤述)은 죄악이 너무 커서 거듭 부모상을 당했으니 무릇 사우(師友)들 사이에서 물리치고 용납하지 않음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선생께서는 거듭 조문하는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 말씀이 간곡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니 어느 날인들 감히 잊겠습니까? 여막(廬幕)에 칩거하면서 사문(師門)에 발길을 끊은 것은 감히 상례(喪禮)를 행하느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단지 상화(喪禍)로 인하여 부모를 여의고 남은 생이 실로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을 보기가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날씨가 점점 뜨거워지는 시절에 선생님의 근력은 도(道)를 호위하며 만강하십니까? 저는 지금 이후로 문득 부모 잃은 외로운 사람이 되어 사일(事一)의 정성63)은 오직 선생께만 올릴 수 있으니 섬길 날이 부족함을 애석해하는 간절히 마음이 어찌 단지 부모님만을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오호라! 사람이면 누군들 부친을 잃지 않겠는가마는 누가 저만큼 원통하겠습니까? 또한 사람이면 누군들 세상을 떠나지 않겠는가마는 누가 저의 모친만큼 박절하겠습니까? 모친께서 효로써 시어머니를 봉양한 일은 참으로 친족들과 마을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 대강은 이미 선친(先親)의 행장에 대략 기술하였으니 다 살펴보시기도 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모친은 평생 동안 엄한 시어머니의 뜻에 한결같이 순종하고 백발이 될 때까지 음식 봉양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하루도 자식들의 봉양을 앉아 누리신 적이 없으셨다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또 갑자기 뒤따라 돌아가셨습니다. 비록 모친께서는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살아서는 인간세상에서 마음을 다하고 죽어서도 지하에서 끝까지 봉양을 하시겠지만, 저의 애통하고 절박한 심정에 있어서는 하늘에 닿고 땅에 사무친들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이 생의 이 한을 호소할 곳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이렇게까지 외람되이 말씀드렸는데 곧이어 몹시 죄송스러운 마음이 깊어졌습니다.제가 여묘살이를 하는 것은 감히 구차하게 어려운 일을 행하여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선친이 세상에 살아계실 때 늘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선친의 상례(喪禮)를 행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평생의 한이다. 모친이 오래 사시고 돌아가신 뒤에 묘 아래에 여묘살이하면서 주자(朱子)의 한천(寒泉)의 규범64)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불행히도 정성을 품은 채 먼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승중(承重)하는 날에 마땅히 선친이 미처 이루지 못한 뜻을 계승해야 하는데 더구나 소자가 거듭 망극한 변고(모친상)를 당했으니, 조금이나마 어버이께 보답하는 길은 오직 집상(執喪)이라는 한 절목에 있을 뿐입니다. 예경(禮經)에서 말한 (상중(喪中)의) 네 가지 경계할 일 가운데 치아를 드러내 웃지 않는 일이 가장 쉽지 않은데, 사람 만나는 것을 줄이지 않으면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에 이렇게 예방하여 범하지 않으려는 계책을 세웠으니 두 분의 묘가 같은 언덕에 있기 때문입니다.요경(腰經)을 풀고 꼬는 일은 진실로 영구(靈柩)가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의 구분에 달려 있으니 장사가 끝난 뒤에는 마땅히 그 끝을 꼬아야 합니다.《가례편람》에는 졸곡(卒哭)한 뒤에 꼬아야 한다는 문장이 기록되어 있으니 마땅히 따라야 하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보내온 편지의 말이 맞다."삼년복(三年服)을 입고 있는데 다시 조모(祖母)의 기년복(期年服)을 입는 자는 조모의 제사를 지낼 때 기년복을 입어야 하는데, 기년복을 벗은 뒤엔 평량자(平凉子)65)와 포직령(布直領)66)을 착용하고 지냅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보내온 편지의 말이 맞다."《가례》에 궤전(饋奠)과 고증(告贈) 등을 할 때에는 재배(再拜)하고 곡하여 슬픔을 다하거나 곡하여 슬픔을 다 하고 재배한다고 했으니, 이것들이 모두 각각 정밀한 뜻이 있습니까? 성묘하는 경우에는 절과 곡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합니까?○ 선생이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가례》의 글은 그 뜻이 성묘하는 데 있는 듯하니 절을 먼저 해야 한다. 왕부(王裒)가 성묘할 때 역시 절하고서 무릎을 꿇었다67)고 하니, 이것이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겠다."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은 "연제(練祭) 때 요질(腰絰)은 하얀 칡베를 구하기 어려우면 숙마(熟麻)로 대신한다."라고 하였고, 이소산(李素山 이응진(李應辰))은 "요질을 마(麻)로 만들 때는 두 가닥을 서로 합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견해로는 숙마(熟麻)로 이미 칡베를 대신했다면 또한 마땅히 세 겹으로 꼬는 제도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비록 숙마를 사용하더라도 역시 세 겹으로 꼬아야 한다."칡으로 만든 대를 세 겹으로 꼬는 것에 대하여 선현들은 길제(吉祭)를 향하여 조금씩 꾸미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자의 요질(腰絰)이든 부인의 수질(首絰)이든 그 예가 같습니다. 부인의 수질의 경우 역시 칡베를 쓰면서도 세 겹으로 꼬는 제도를 쓰지 않는 정밀한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알 수 없다."담제(禫祭)68) 때의 곡(哭)에 대하여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는 평상시의 곡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고,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는 평상시의 곡하는 식과 상중(喪中)의 곡하는 식 둘 다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견해로는 담제뿐만 아니라 비록 기일(期日)일지라도 또한 상중의 곡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애통(哀痛)한 마음의 지극한 소리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법이니 어찌 가릴 겨를이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맞다."출가(出嫁)한 여자가 조모와 모친의 상을 함께 당하여 궤연(几筵)69)에 와서 곡할 때 지극한 정의 애통함은 모친이 중하지만 존비의 구분은 조모가 우선이니, 이때 누구를 먼저 하고 누구를 뒤에 해야 합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모친의 상을 먼저 해야 한다."부친이 먼저 돌아가시고 모친상을 당했을 때 대상(大祥)70) 전에 선대(先代)의 신주(神主)를 뒤미쳐 만들어 놓고 제주(題主)하여 봉안하는 것은 길제(吉祭)71)까지 기다려야만 합니까? 이것은 개제(改題)72)와 체천(遞遷)73)이 아닌지라 자기의 속칭(屬稱)74)으로 제주해야 하니, 대상 전이라도 행할 수 있습니까? 만약 길제를 기다린다면 모친상의 대상 이후에 신주를 부위(祔位)할 곳이 없으니 이것이 매우 불편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비록 대상 이전이라도 행하지 않을 수 없다."저의 선친(先親)의 생일은 2월이고, 선비(先妣)의 생일은 9월입니다. 선친의 생일에 사대(四代)의 시제(時祭)75)를 행하고 선비의 생일에 예제(禰祭)76)를 행하고자 하는데, 이는 정(情)이 지나쳐 윗사람을 끌어오는 혐의77)가 없지는 않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윗사람을 끌어오는 혐의는 없다."부친이 먼저 돌아가시고 모친상 중에 선대(先代)의 신주를 뒤미쳐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이미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만 부제(祔祭)78)를 뒤미쳐 행할 때 세 번 술잔을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중에 선조를 제사 지내며 세 번 술잔을 올리는 것이 비록 편치 않은 점이 있더라도 선조의 신주에 부제를 지내는 데 중점이 있으니 혐의할 것이 없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상중에 선대의 신주를 뒤미쳐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부제를 지내며 세 번 술잔 올리는 것을 혐의로 여겨서는 안 될 듯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현들의 정론(定論)이 없으므로 감히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요약하자면 길제까지 기다리는 것도 괜찮다."《가례》에는 오직 조문을 받고 폐백을 줄[受吊贈幣] 때에만 이마를 조아린다고 기록하였으니 이 밖에는 어떤 일이 있든 궤연에 절을 하고 이마를 조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증(贈)하는 것은 큰 절차이니 이마를 조아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문을 받는 것은 손님께 절하는 것이니 손님이 어찌 궤연보다 높아서 궤연에서 행하지 않는 중한 예를 행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반드시 정밀한 뜻이 있을 것이니 듣고 싶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조문을 받을 때 이마를 조아리는 것은 손님이 궤연보다 높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조문을 왔기 때문에 스스로 애통한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궤연에서 이마를 조아리지 않는 것은 늘 모시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군모(君母)79)의 뒤를 이은 자는 군모가 죽으면 군모의 친족을 위하여 상복을 입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예기》 〈상복소기(喪服小記)〉의 문장입니다. 그러나 서자(庶子)가 이미 적자의 지위를 이어받았다면 군모는 바로 친모(親母)이고 낳아준 부모는 서모(庶母)이니 어찌 친모가 죽었는데 그 친족을 위해 상복을 입지 않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치로 말한다면 분명히 이와 같은데 이것은《예기》의〈상복소기(喪服小記)〉의 본문으로 주소(註疏)에 비할 것이 아니니, 또한 쉽게 논파(論破)하기 어렵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시남(市南 유계(兪棨))도〈상복소기(喪服小記)〉의 이 설을 따랐다. 그러나 〈상복소기(喪服小記)〉의 문장은 끝내 의심스러운 점이 있기 때문에 매옹(梅翁)이 〈조완진(趙完鎭)에게 답한 편지〉에서 시남의 이 설을 정론(定論)이 아닌 것으로 여겼다." 凙述罪重惡極, 荐遭大禍. 凡在師友之閒, 宜其擯絶不容, 而先生再施唁狀, 辭意懇惻, 感勒骨髓, 何日敢忘? 蟄伏廬次, 絶蹤師門者, 非敢爲執禮而然. 衹緣喪禍, 餘生實愧, 擧頭見人也. 伏不審榴炎漸熾, 先生筋力衛道萬康? 小子今而後, 遽作弧露之人, 事一之誠, 惟在於先生, 則愛日之切, 豈獨爲親地也? 鳴呼! 人孰不喪親, 孰若小子之冤? 抑人孰不違世, 孰若先慈之迫切? 先慈之孝養皇姑, 實族戚鄕黨之無異辭者也. 其槩曾已略述於先人狀, 想或鑑悉於尊覽. 而但恨先慈平生一順嚴姑之志, 甘毳之役白首未懈, 未嘗一日坐享諸子之奉, 姑歿之後, 又遽從而歸, 雖先慈誠孝極至, 生旣盡心於人世, 沒又終養於地下, 然其在小子慟迫之情, 窮天極地, 而豈有盡哉? 此生此恨, 無處控訴, 不覺猥逹至此, 旋切罪悚之至.小子之廬墓, 非敢行苟難而異人也. 特以先人在世時, 常語小子曰: "吾幼未執禮於先考之喪, 是爲終身恨. 母氏百歲後, 廬于墓下, 用遵朱子寒泉之規." 不幸齎誠而先歸. 今在小子承重之日, 宜繼先人未遂之志, 而况小子重遭罔極之變, 則報親之萬一, 惟在執喪一節. 禮經四戒中, 不啓齒一事, 最爲不易, 而非罕接人事, 難乎免矣. 故乃爲此豫防不犯之計, 蓋以兩位墓, 在同岡故也.腰經散絞, 誠在尸柩見不見之分, 則報葬後當絞之. 而《便覽》旣著卒哭後絞之之文, 則當從之乎?○ 先生答書曰: "來示得之."持三年服, 而又有祖母期服者, 參祖母祭奠, 當服期服, 而期服除後, 以平凉子布直領參之耶?○ 先生答書曰: "來示得之."《家禮》饋奠․告贈等時, 或再拜哭盡哀, 或哭盡哀再拜, 此皆各有精義耶? 至於上墓, 則拜哭當何先何後?○ 先生答書曰: "《家禮》立文, 似有義在上墓, 當先拜. 王裒上墓, 亦拜跪云云, 此可爲一據耶!"遂菴曰練時, 腰絰葛白難辦, 熟麻代之, 李素山謂腰絰治麻兩股相合. 然淺見熟麻旣是代葛者, 則亦當用三重之制.○ 先生答書曰: "雖用熟麻, 亦當三重."葛帶三重, 先賢以爲向吉彌飾之意. 男子腰絰, 婦人首絰, 其例一也. 婦人首絰, 亦用葛而其不用三重之制者, 精義何居?○ 先生答書曰: "未詳."禫時哭, 近齋謂當以常時哭, 老洲則常時哭․喪中哭, 兩可之. 然淺見非惟禫時, 雖忌日亦當用喪中哭, 哀痛之至聲, 出自然, 何暇擇之?○ 先生答書曰: "是."出嫁女, 遭祖母與母偕喪, 來哭几筵時, 至情哀痛, 母爲重, 尊卑之分, 祖母爲先, 當何先何後?○ 先生答書曰: "當先母喪."父先亡母喪, 大祥前, 追造先世神主, 而題主奉安, 當待吉祭耶? 此非改題遞遷, 當以自己屬稱題主, 大祥前亦可行之耶? 若待吉祭, 則母喪祥後, 神主無所祔處, 此甚難便.○ 先生答書曰: "雖大祥前, 不得不行."小子先考生日在二月, 先妣生日在九月, 欲以先考生日, 行四代時祭, 先妣生日, 行禰祭, 不無情勝援尊之嫌耶?○ 先生答書曰: "無援尊之嫌."父先亡母喪中, 追立先世神主, 曾已聞命矣. 但追行祔祭時, 不得不三獻, 喪中祭先三獻, 雖所未安, 重在祔先主, 無所嫌耶?○ 先生答書曰: "喪中追造先主, 似不可以祔祭三獻爲嫌. 然此無先賢定論, 不敢質言. 要之, 待吉祭亦可."《家禮》惟受吊贈幣, 特著稽顙, 外此, 凡有事几筵拜, 不稽顙, 可知也. 贈是大節, 稽顙固也. 受吊是拜賓, 賓豈尊於几筵, 而行几筵所不行之重禮耶? 此必有精義, 願聞焉.○ 先生答書曰: "受吊稽顙, 非賓尊於几筵而然, 蓋因其來吊而自致其哀也. 几筵之不稽顙, 以其常侍故歟!"爲君母後者, 君母卒, 則不爲君母之黨服, 此〈喪服小記〉文. 然庶子旣已承嫡, 則君母卽親母也, 所生母卽庶母也, 焉有以親母卒, 而不服其黨之理乎? 以理言之, 則分明如是, 而此係〈小記〉本文 非注疏之比, 則亦難容易辨破也.○ 先生答書曰: "市南亦從〈小記〉此說. 然〈小記〉文, 終是有疑, 故梅翁〈答趙完鎭書〉, 以市南此說, 爲未定論." 사일(事一)의 정성 부모ㆍ스승ㆍ임금을 한결같이 섬기는 정성으로, 부모를 잃고 임금도 없어 스승만 남았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대부 난공자(欒共子)가 말하기를, "백성은 부모ㆍ스승ㆍ임금 밑에서 사는지라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국어(國語)》 〈진어(晉語)〉 주자(朱子)의 한천(寒泉)의 규범 주희는 40세 무렵에 모친인 축 부인(祝夫人)의 상을 당하여 장사를 치른 뒤에 무덤 가까이에 정사(精舍)를 세우고 그 이름을 한천정사(寒泉精舍)라 하고는 이곳에 머물면서 《가례(嘉禮)》를 편찬한 일이 있다. 평량자(平凉子) 패랭이. 즉 댓개비로 엮어 만든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상제가 쓰던 갓이다. 유사어로 평량립(平凉笠)이 있다. 포직령(布直領) 상복의 일종이다. 왕부(王裒)가……꿇었다 진(晉)나라의 왕부(王裒)는 부친 왕의(王儀)가 죄 없이 사마소(司馬昭)에게 죽음을 당하자, 은거하면서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아침과 저녁으로 묘소에 가서 절하고 무릎 꿇은 채 측백나무를 부여잡고 슬피 울부짖었다고 한다. 《진서(晉書)》 권88 〈효우열전(孝友列傳)〉 담제(禫祭) 3년의 상기(喪期)가 끝난 뒤 상주가 평상으로 되돌아감을 고하는 제례의식이다. 일반적으로 부모상일 경우 대상(大祥) 후 3개월째, 즉 상 후 27개월이 되는 달의 정일(丁日) 또는 해일(亥日)에 지낸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지내는 담제는 상 후 15개월 만에 지내는데, 즉 소상(小祥) 후 2개월째가 된다. 궤연(几筵) 죽은 사람의 혼백이나 신주를 놓는 의자나 상과 그에 딸린 물건들 또는 그것들을 갖추어 차려 놓는 곳으로 영실(靈室)을 말한다. 대상(大祥) '대상'은 부모의 상(喪) 및 삼년상 등을 치를 때 그 대상이 죽은 후 만 2년 만에 탈상을 하며 지내는 제사이다. 길제(吉祭) '길제'는 상례(喪禮)의 단계를 뜻한다. 우제(虞祭)를 지낸 뒤, 졸곡(卒哭)을 하며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 단계부터 지내는 제사를 '길제'라고 부른다. 상(喪)은 흉사(凶事)에 해당하는데, 그 이전까지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흉제(凶祭) 또는 상제(喪祭)라고 부르며, 이 단계부터는 평상시처럼 길(吉)한 때로 접어들기 때문에 '길제'라고 부른다.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편에는 "是月也, 以虞易奠, 卒哭曰成事. 是日也, 以吉祭易喪祭."라는 기록이 있다. 또 삼년상을 마치게 되면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안치하고 길례(吉禮)에 따라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러한 제사를 '길제'라고 부른다. 또한 평상시 정규적으로 지내는 제사를 '길제'라고도 부른다. 개제(改題) 신주의 글자를 고쳐 쓰는 것을 개제주(改題主)라고 한다. 모든 상례 절차를 마치고 돌아간 이의 신주를 사당에 모실 때, 5대조가 넘어가는 조상의 신주는 묻고, 신주의 글자를 고쳐 쓰는데 이를 개제주(改題主)라고 한다. 이 때에 개제주고사를 지낸다. 체천(遞遷) 제사를 맡아 지낼 자손이 끊긴 조상의 신주를 4대 이내의 자손 가운데 항렬이 가장 높은 사람이 대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자기집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속칭(屬稱) 선조에 대한 호칭을 뜻하는 말로, 속은 고조(高祖)ㆍ증조(曾祖)ㆍ조(祖)ㆍ고(考) 따위를 말하고, 칭은 벼슬이나 호ㆍ항렬로서, 처사(處士), 수재(秀才), 몇째 낭(郞), 몇째 공(公) 따위를 말한다. 《이정문집(二程文集)》 권11 〈작주식(作主式)〉 시제(時祭) 한식 또는 10월에 5대조 이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관행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한식 또는 10월에 정기적으로 묘제를 지낸다고 하여 시사(時祀) 혹은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이는 5대 이상의 조상을 모시는 묘제(墓祭)를 가리키며, 4대친(四代親)에 대한 묘제를 사산제(私山祭)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래서 묘사(墓祀), 묘전제사(墓前祭祀)라고 하며,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신다고 하여 세일제(歲一祭), 세일사(歲一祀)라고도 한다. 예제(禰祭) 9월 중의 어느 날을 택일하여 부모에게 올리는 제사. '예(禰)'는 부묘(父廟)를 뜻하며, 한편으로는 '가깝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실제의 관행에서는 이행되지 않고, 예서에만 나타나는 제례의 한 종류이다. 윗사람을……혐의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남자가 조부에게 부제할 때에는 조모를 함께 제사하지만, 여자가 조모에게 부제할 때에는 함께 제사하지 않는다.〔男子附於王父則配 女子附於王母則不配〕"라고 하였고, 그것에 대한 주(注)에 "높은 사람에게 일이 있으면 낮은 사람에게까지 미치지만, 낮은 사람에게 일이 있으면 감히 높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다.〔有事於尊者 可以及卑 有事於卑者 不敢援尊也〕"라고 하였다. 이것에 의거하면, 선고(先考)의 제사 때에는 선비(先妣)를 함께 제사할 수 있지만, 선비의 제사 때에는 선고를 함께 제사할 수 없는 것이다. 부제(祔祭) '부(祔)'는 조상의 사당에 새 신주를 모시는 것이다. 또한, 부제는 "사당에 모신 조상에게 마땅히 다른 사당으로 옮길 것을 고하고, 새로 죽은 자에게는 이 사당에 들인다"고 하는 뜻이다. 졸곡 다음 부제를 지내고 새로운 신주를 다시 정침(正寢) 혹은 궤연(几筵)으로 되돌려 보낸 뒤, 삼년상이 끝나면 최종적으로 사당에 봉안한다. 군모(君母) 부친의 嫡妻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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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무오년(1918) 上艮齋先生 戊午 일전에 올린 〈노화동이고(蘆華同異考)〉는 간간이 보셨는지요? 대체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 두 어른이 이처럼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데 두 문하의 문인들이 반드시 억지로 모아다 같게 하려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이후로 도체(道體)는 형체(形體)가 없고 작위(作爲)가 없으며 리(理)는 정의(情意)와 조작(造作)이 없다는 취지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밝혀져 학문(學問)하는 사람들의 다반사로 하는 상담(常談) 같이 되었습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은 일상적인 것은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남쪽(기정진)에서는 리(理)에는 조종(操縱)과 적막(適莫)84)이 있다는 의론이 나왔고, 북쪽(이항로)에서는 태극(太極), 성정(性情), 공효(功效)의 설이 나와 당시 세상의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의 이목을 자극시켰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그쪽으로 휩쓸려 기뻐 따르면서 두 어른이 성학이 전해오지 않던 비밀을 터득하여 남현(南賢 기정진)과 북현(北賢 이항로)이 천 리나 떨어져 있어도 그 논조(論調)가 똑같다고 하면서 두 어른의 명덕(明德), 심성(心性) 등에 관한 설이 연(燕)나라와 월(越)나라의 거리만큼 서로 어긋나 있음을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두 어른의 평소의 의론을 총괄하여 논해 보면, 노사의 이른바 리와 태극이라는 것은 외려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잃지는 않았지만 리가 기의 주재가 된다고 보는 것이 너무 심하여 〈외필(猥筆)〉85)의 실수를 빚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화서의 이른바 리와 태극이라는 것은 실로 심(心)이고 기(氣)이지 다시는 본래면목이 아닙니다. 대개 노사의 재주는 화서보다 뛰어나지만 공부는 화서에 미치지 못하고 화서의 의론은 노사보다 자세하지만 그 견해는 노사에 미치지 못합니다. 노사가 호도(糊塗)함은 얕아서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가 적고 화서가 호도함은 깊어서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가 크니 높고 낮음(高下), 크고 작음(大小), 얕고 깊음(淺深) 사이에서 또 두 어른을 알 수 있습니다. 망령된 의론이 이에 이르니 참으로 세인(世人)들에게 꺼려지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선생님 앞에 드러내 고하여 질정(質正)받지 않을 수 없으니 부디 헤아려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日前所上〈蘆華同異攷〉, 間垂下覧否? 大抵二丈之相異, 有如此者, 而兩門門徒, 必欲牽合而同之者, 何也? 是必有其故也. 栗尤以降, 道體無形無爲, 理無情意造作之旨, 大明於我東. 有同學問家茶飯常談. 夫人之情, 常則厭之, 而思其新者矣. 迨是時也, 南有理有操縱適莫之論, 北有太極性情功效之說, 以砭起一世思新之耳目. 於是衆皆靡然喜而從之, 以爲二丈得聖學不傳之秘, 而南賢北賢, 相距千里, 其揆一也, 而不及細察其明德心性等說, 燕越相左也. 雖然, 總括二丈平生議論而論之, 蘆沙之所謂理與太極者, 却不失本來面目, 但看得理爲氣主太重, 而至有〈猥筆〉之失. 華西之所謂理與太極者, 實心也氣也, 而非復本來面目矣. 蓋蘆沙之才, 過於華西, 而用功不及華西, 華西之論, 詳於蘆沙, 而其見不及蘆沙. 蘆沙之惑淺, 而害之被人者小, 華西之惑深, 而害之被人者大, 高下大小淺深之間, 又可以知二丈矣. 妄論及此, 固知爲世所諱. 然先生之前, 不容不暴白取正, 幸賜裁敎. 적막(適莫) 적(適)은 어느 사물에 열중하는 것을 말하고 막(莫)은 그 반대로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논어(論語)》〈이인(里仁)〉에 다음과 같은 말이 수록되어 있다. "군자는 반드시 하려고 하는 것도 없고, 반드시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없다. 오로지 합리적인 것만을 따를 뿐이다〔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외필(猥筆) 율곡의 이기론(理氣論)을 비판한 기정진의 글로,《노사집(蘆沙集)》卷16〈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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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무오년(1918) 上艮齋先生 戊午 리(理)는 무위(無爲)의 물(物)이고 기(氣)는 유위(有爲)의 물이니, 유위와 무위의 사이에서 하나는 취산(聚散)이 있고 하나는 취산이 없음86)을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대개 리기(理氣)를 하나의 물(物)이라고 하는 것은 리와 기 두 가지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 묘함 때문이지만 그 본색(本色)과 능소(能所)87)의 구분은 끝내 뒤섞을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논하면, 문청(文淸 설선(薛瑄)이 이른바 '기는 취산이 있지만 리는 취산이 없다[氣有聚散 理無聚散]'라고 한 것88)은 본색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리기가 서로 떨어지는 병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암(整菴 나흠순(羅欽順))이 이른바 '기의 모임은 바로 모임의 리이고, 기의 흩어짐은 바로 흩어짐의 리이다[氣之聚便是聚之理 氣之散便是散之理]'라고 한 것89)은 도리어 도(道)와 기(器)의 분별에 있어 뒤섞이고 흐리멍텅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만약 기가 모일 수 있고 흩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모이고 흩어지는 소이(所以)로서의 리가 있기 때문에 기의 취산이 곧 리의 취산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근원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곧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태극(太極)의 동정(動靜)과 회옹(晦翁 주희(朱熹))의 리(理)는 동정(動靜)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주장을 세운다면 아마도 이치를 해치지는 않을 듯한데, 삼가 헤아려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理者無爲之物, 氣者有爲之物也, 有爲無爲之閒, 聚散之一有一無, 可知已矣. 蓋理氣一物云者, 以其二者不相離之妙也, 其本色能所之分, 終有不可得而混之者也. 以此論之, 文淸所謂'氣有聚散, 理無聚散'者, 是從本色上說, 而不爲理氣相離之病. 整菴所謂'氣之聚便是聚之理, 氣之散便是散之理'者, 反不免混淪儱侗於道器之辨也. 若曰氣之能聚能散者, 以其有所以聚, 所以散之理也, 故曰氣之聚散, 便是理之聚散, 則此乃從源頭上說, 而卽濂溪之太極動靜, 晦翁之理有動靜之意也. 如此立言, 則恐不害理, 伏惟裁敎. 하나는……없음 취산이 있는 것은 기(氣)이고 취산이 없는 것은 리(理)라는 말이다. 《회암집(晦菴集)》 권45 〈답요자회서(答廖子晦書)〉에서, 주희가 생사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며 이(理)와 기(氣)의 차이를 논한 대목에 "성은 단지 리일 뿐이니,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모이면 태어났다가 흩어지면 죽는 것은 기일 뿐이니, 이른바 정신과 혼백에 아는 것이 있고 느끼는 것이 있는 것은 모두 기의 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이면 있게 되고 흩어지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리의 경우는 당초 모이고 흩어지는 데에 따라서 있게 되고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性只是理 不可以聚散言, 其聚而生, 散而死者, 氣而已矣. 所謂精神魂魄有知有覺者, 皆氣之所爲也. 故聚則有, 散則無, 若理則初不爲聚散而有無也〕"라고 하였고, 나흠순(羅欽順)의 《곤지기(困知記)》 권하(卷下)에서, "설문청(薛文淸)의 《독서록(讀書錄)》에 '리기는 틈이 없으므로 기(器) 역시 도(道)이고 도 역시 기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이 합당하지만, 기는 취산이 있고 리는 취산이 없다는 설을 반복하여 증명한 일로 말하자면 나는 의심이 없을 수 없다. 무릇 하나는 취산이 있고 하나는 취산이 없으면 매우 틈이 있는 것이니 어찌 기 역시 도이고 도 역시 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문청(文淸)이 리기에 대하여 또한 시종 두 물(物)로 인식하였으므로 그 말이 때때로 막힘이 있음을 면치 못한 것이다.〔錄中有云理氣無縫隙故曰器亦道道亦器, 其言當矣. 至於反復證明, 氣有聚散, 理無聚散之說, 愚則不能無疑. 夫一有一無, 其爲罅縫也大矣. 安得謂之器亦道道亦器耶? 蓋文清之於理氣, 亦始終認為二物, 故其言未免時有窒礙也〕"라고 하였다. 능(能)과 소(所) 能과 所의 관계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원래 能은 주체를 의미하고, 所는 객체를 의미한다. 理氣論에서는 能과 所를 구별하여 말하기 어렵지만, 심성론에서는 心과 性을 能과 所로 구별할 수 있다. 즉 心은 性理를 알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能이고, 性理는 心에 인식당하기 때문에 所인 것이다. 心은 氣에 속하기 때문에 氣 역시 能이고, 理는 性이기 때문에 역시 所인 것이다. 문청(文淸)이……것 설선(薛瑄)은 그의 《독서록(讀書錄)》에서 리를 달에 비유하고 기를 물에 비유하며, 리를 햇빛[日光]에 비유하고 기를 나는 새[飛鳥]에 비유하며, 리를 온열량한(温熱凉寒)하는 소이(所以)에 비유하고 기를 온열량한(温熱凉寒)에 비유하는 것을 통해 기는 취산이 있지만 리는 취산이 없음을 증명하였다. 정암(整菴)……것 《곤지기(困知記)》 〈권하(卷下)〉에서 기는 취산이 있고 리는 취산이 없다는 설선(薛瑄)의 설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나흠순(羅欽順) 주장한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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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리는 《어류》 문목 무오년(1918) 上艮齋先生語類問目 戊午 근래 한가할 때 《주자어류(朱子語類)》한 부만 몰입해 보았습니다. 정당(精當)한 의론과 지극한 교훈이 사람의 마음과 눈을 경계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당시 선생의 정신(精神)과 풍채(風彩)까지 드러나 있어 자양(紫陽)과 운곡(雲谷)90) 사이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과 방불하여 천 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을 쉽게 감발(感發)시킴은 손수 지으신 《주자전서》에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습니다. 다만 《어류》가 당시의 방언(方言)에서 나온 것이기에 껄끄럽고 난삽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91)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혹 정밀한 의리가 관계되지 않은 경우에는 거의 대의(大意)를 묵회(默會)하면 되거니와, 강론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의리로써 문견이 좁은 이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어찌 감히 의심을 쌓아두고 묻지 않으면서 종신토록 번뇌를 품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의심나는 대로 기록하고서 연속하여 선생님의 비평을 구하고자 하니 노년에 응답하시는 것이 매우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선생님은 《주자어류》에 대해 세인(世人)들이 이른바 마치 자기 말 외우듯 한다는 분이니 그 가운데 어렵고 쉬운 부분들에 대해 필시 오래도록 연구한 바가 있으실 터라 대가(大家)의 정신을 소비하는 데 이르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경솔하게 외람되이 편지를 올리오니 비평하신 답장은 시기에 구애받지 말고 보내주시면 됩니다.서자융(徐子融)이 "부자(附子)는 뜨겁고 대황(大黃)은 차가운 것은 기질지성(氣質之性)입니까?"라고 묻자, 진재경(陳才卿)은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하였다. 선생께서 "자융은 지각(知覺)이 성(性)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기질지성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당본(唐本) 권4의 5판, 〈보광록(輔廣錄)〉】두 약물(부자와 대황)의 차고 뜨거운 성질은 원기(元氣)가 처음 온 데서 비롯된 것이지 미악(美惡)과 편전(偏全)을 구분한 것이 아니니 어찌 성으로 여기지 않는 기질지성[氣質不性之性]92)으로 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자는 이것에 대하여 기질지성으로 여기지 않고 본연지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곧장 이를 가지고 천하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성[一性]인 성93)으로 여긴다면 또 어찌 차갑고 뜨거운 성질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명확히 분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부자는 뜨겁고 대황은 차가운 것은 천지의 본연(本然)의 리이니 성으로 여기지 않는[弗性] 기질지성으로 여겨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약물은 써서 질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이롭게 하니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은 인(仁)이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의(義)이다. 그러하니 인의가 어찌 천하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성인 성이 아니겠는가? 차갑고 뜨거운 성질의 차이는 양건(陽健)과 음순(陰順)을 예로 들어보면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그것들은 원래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稟受)한 적이 없고 오로지 사람만이 그 온전함을 얻었다."【출전은 앞과 같다.】이 단락은 사람과 생물의 성이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가 있다[人物性偏全]고 주장하는 호론(湖論)의 증거가 될 듯합니다. 그러나 아래 문장에서 인용한 '생물에는 사람에 가까운 성이 있고 사람에게는 생물에 가까운 성이 있다'는 여씨(呂氏)의 말을 가지고 살펴보면,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은 대체로 생물은 오상(五常)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리를 품수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사람만이 그 온전함을 얻었다'고 한 것은 대체로 사람만이 오상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리를 홀로 얻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만약 사람과 생물이 본연지성을 품부할 때의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를 말한다면 치우친 것은 원래부터 치우친 것이고 온전한 것은 원래부터 온전한 것일 테니 어찌 사람에 가깝고 사물에 가까운 뒤섞인 성의 모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원래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다'는 이 말은 아래 문장에서 '생물에는 사람에 가까운 성이 있고 사람에게는 생물에 가까운 성이 있다'는 말을 가지고 살펴보면 운용(運用)하는 곳에 나아가 그 온전히 할 수 없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 분명하다. 《통서해(通書解)》에서 '성대로 한다는 것은 성인이 홀로 하늘에서 얻은 것이다[性焉者聖人獨得於天]'94)라고 말하였으니, 중인(衆人)은 일찍이 이 성대로 한다는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보내온 편지는 대체로 옳다."물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고 어떤 생물의 성은 어떠하며 어떤 사물의 성은 뜨겁고 어떤 사물의 성은 차갑다고 늘상 말하는데 이것은 기질과 품수받은 리(理)를 겸하여 말한 것입니까?" 말씀하셨다. "그렇다."【권4의 20판, 〈심한록(沈僩錄)〉】'부자는 뜨겁고 대황은 차갑다'는 것은 바로 5판 〈보광록(輔廣錄)〉에서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인데 지금 여기서 물성(物性)의 뜨겁고 차가움은 기질과 품수받은 리(理)를 겸하여 말한 것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다시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간주한 듯하면서도 품수받은 리(理)라고 말한 것은 또 본성(本性)을 이르는 듯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고 한 경우는 분명히 기질지성이고 함께 대비하여 거론하였으니 기질지성으로 간주하고 본연지성으로 간주하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품수받은 리는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보광록(輔廣錄)〉과 〈심한록(沈僩錄)〉 둘 가운데 과연 어디를 따라야 합니까? 게다가 의심컨대,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는 말은 완급(緩急), 강유(剛柔), 미악(美惡) 같은 온갖 것들이고 물성이 뜨겁고 차가움은 원래 이러하고 미악(美惡)을 구분하는 데 미치지 않은 것인데 하나의 예로 동일하게 여기니 혹은 적절한 분류가 아닌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선생이 일찍이 '천지가 건순(健順)한 것은 사람의 기질【성(性) 자를 붙여 보아야 한다】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 조목에서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고 말한 것은 어떤 사람의 성은 효성스럽고 어떤 사람의 성은 충후하다는 것으로, 이는 기질과 품수받은 리를 겸하여 함께 말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통할 수 있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리(理)는 심(心) 속에 있는데 심은 리를 가두어 두지 못하고 일에 따라서 발현한다. 흡사 저 상자와 비슷하니 책상자[經函]를 제거하고 안에서 등불을 밝히면[點燈] 사면팔방이 모두 이처럼 광명함이 찬란하다.[光明燦爛]"【권5의 4판, 〈보광록(輔廣錄)〉】무릇 주자의 설 중에 리에 대해 광명(光明)을 말한 곳 가운데 다른 곳들은 모두 말할 만한 점이 있지만 이 단락에서는 경함(經函)으로 심을 비유하고 점등(點燈)으로 리를 비유하여 광명으로 리(理)를 곧장 말한 듯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아야 통달하여 막힘이 없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선생이 일찍이 명덕(明德)을 논하여 '도리(道理)는 심 속에 있으면서 광명함이 비추어 관통하여 조금도 밝지 않음이 없다[道理在心裹光明照徹 無一毫不明]'고 하셨다.【인용은 여기에서 그침】 도리는 지극히 고요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는 것이니 어떻게 광명함이 있겠는가? 다만 심의 측면에 나아가 지적하였기 때문에 또한 이러한 설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단락에서는 먼저 심과 리가 하나임을 말하고 이어서 리가 심 속에 있음을 다시 말하고 광명함이 찬란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으니, 아마 막힘이 없는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수많은 도리가 밝디밝은 것은 성(性)에 속한다."【권5의 13판】성분(性分)에 대해 밝디밝음을 말하는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만약 만리(萬理)가 찬란하게 구비되었다는 뜻으로 본다면 문제가 없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부분들을 만약 융통성 있게 보지 않으면 밝디밝고 신령스러운 것을 인식해 성(性)과 태극(太極)으로 여기는 이단의 학문으로 쉽게 빠져들까 두렵다. 이 단락의 문장의 의의(意義)는 명료하지 않다."물었다. "명덕(明德)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입니까?" 대답하셨다. "그렇다.[便是]"【권14의 12판, 〈유경중록(游敬仲錄)〉】성이 만약 정말로 명덕 전체(全體)의 본색(本色)이라면 단지 '그렇다[便是]'고만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바로 그렇다[卽是]'라고 해야 합니다. 이는 성이 단지 명덕 중에 갖추어져 있는 것일 뿐이고 전체의 본색이 아니기 때문에 곧바로 '바로 그렇다[卽是]'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그렇다[便是]'라고만 말한 것입니다. 뒤의 권16의 1판(板) 〈황순록(黃㽦錄)〉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는 것이다[便是天之所命謂性者]' 및 4판 〈양도부록(楊道夫錄)〉에 '명덕이다[便是明德]'라고 한 것이 이 예와 동일하게 보아야 할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보내온 편지의 내용처럼 보아야 할 듯하다.""이 도리(道理)는 심 속에 있으면서 광명(光明)함이 비추어 관통한다"【출전은 앞과 같다.】도리가 심 속에 있기 때문에 심도 아울러서 '광명함이 비추어 관통한다'고 말한 것이지, (도리와 심을) 분리하여 단지 도리에서만 광명함을 말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미 앞에 보인다. 옛날에 약재(約齊 송병화(宋炳華))가 시(詩)를 지어 '심이 광명한 곳에 리가 광명하다.[心光明處理光明]'라고 하였는데, 이와 같이 말하면 좋다.""광명(光明)한 성은 본래 그대로 있다."【권15의 25판, 〈여대아록(余大雅錄)〉】이 단락의 문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심(心)의 본체(本體)를 밝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가지고 설명하고 다시 명덕(明德)이 성(性)이라는 말은 없는데, 이 심의 본체가 바로 명덕입니다. 그렇다면 광명한 성의 '성' 자는 성리(性理)의 성으로 풀이하지 않고 단지 체(體) 자의 뜻으로만 풀이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그러한 듯하지만 단정지어 말하지는 못하겠다.""이 도리는 광명(光明)하여 어둡지 않다. 이 리는 담연(湛然)하게 맑고 밝다."【권16의 2판, 〈심한록(沈僩錄)〉】광명과 담연은 심에 들어맞는 말인데 지금 이 말들을 가지고 리(理)를 말하면 참으로 의심할 만할 듯합니다. 그러나 이 두 구의 윗글에 이미 '이 심을 길이 보존한다[長存此心]'는 한 구가 있으니 이 리는 바로 심에 갖추어진 리입니다. 그러므로 광명과 담연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단지 리 하나만 말한다면 응당 이러한 글자들을 써서는 안 됩니다.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위와 같다.""이 물사(物事)95)가 곧 기(氣)이다."【권16의 13판, 〈임기손록(林夔孫錄)〉】선생께서 일찍이 문제를 제기하여 이 물사(物事)를 혹은 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이라고도 하고 혹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氣)라고도 하고 혹은 허령(虛靈)한 심(心)이라고도 하는데 의당 자세하게 궁구하고 따져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삼가 제가 이 단락의 어맥(語脈)을 자세히 살펴보건대, 이 물사는 바로 밝은 명령[明命]을 가리키니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은 곧 사람의 밝은 덕[人之明德]이고 하늘이 명령하고 사람이 얻은 것은 바로 허령(虛靈)하고 신명(神明)한 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물사가 곧 기이다'라고 말한 것이니 이렇게 본다면 전체 문단의 어맥은 절마다 모두 통하게 됩니다. 만약 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으로 본다면 성은 곧 리이니[性卽理] 어찌 다시 허다한 도리를 이 속에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음양오행의 기로 본다면 불가(佛家)가 이해하는 것과 노자(老子)가 파악하는 것은 정말로 모두 자신의 심신에서 찾지 않고 멀리 천지의 음양오행에서 구한단 말입니까? 이와 같이 본다면 절마다 구애되어 아마 끝내 통하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각기 성명을 바룬다[各正性命]'는 구절 이하96)는 의문이 시원하게 풀리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어쩌면 성명(性命)은 심(心)이 갖추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섞어서 말해도 서로 구애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 말씀하셨다[又曰]' 이하에서 주장하는 관점이 앞 문단과 달라서입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 물사를 곧바로 성으로 인식하였다면 불가와 노자가 어찌 일찍이 이렇게까지 볼 수 있었겠는가? 옛날에 영남(嶺南)의 유원중(柳遠重)ㆍ송호곤(宋鎬坤)ㆍ송호완(宋鎬完)ㆍ송재락(宋在洛) 등의 여러 사람이 스스로 이 구절을 잘못 보고 문득 논쟁하면서 서로 헐뜯었는데 나는 기(氣)를 밝히는 학문의 언론(言論)과 기상(氣象)이 서생(書生)과 전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두려울 만하다. 지금 그대가 보내온 편지가 타당한 듯하지만 이러한 무리들과 맞부딪쳐서 한 바탕 이상한 짓을 당하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또 말씀하셨다[又曰]' 이하에 대해서는 나 또한 명료하지 않다. 다만 아래 문단의 내용으로 살펴보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은 모두 하늘의 밝은 명령이니 선생의 뜻은 결코 유씨(柳氏)나 송씨(宋氏) 등 여러 사람의 견해가 아니다.""아는 것이 미진하면 스스로 속임을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권16의 1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스스로 속이는 것은 반절은 알고 반절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출전은 앞과 같다, 〈양도부록(楊道夫錄)〉】"스스로 속이지 않으려면 반드시 아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출전은 앞과 같다, 증조도록〈(曾祖道錄)〉】'스스로 속인다(自欺)'는 말을 《대학장구》를 근거로 해석하면, 이미 안 이후에 실제적인 힘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른바 '속인다'는 것은 '실제적이지 않다'는 뜻으로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령되게도 스스로 속이는 것은 앎의 과실이 아니고, 의지의 죄이며, 무심(無心)의 과실이 아니라 유심(有心)의 사사로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주자어류》의 문단을 보니, 결국은 앎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이렇게 된다면 '스스로 속인다'는 것은 격물치지가 정밀하지 않은 것이지 힘을 쓰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구구한 의심을 다할 수 없지만, 이것뿐 만이 아닙니다. 이를 《대학혹문》에 고증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대학장구》에서 '선을 실천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되 마음의 발하는 바가 진실하지 못함이 있다'는 것을 정론으로 삼는다면, 《어류》와 《혹문》의 내용은 억지로 서로 합치하게 하지 않아도 합치하게 됩니다. 장하주(章下註)의 '심체(心體)의 밝음이 미진(未盡)한 바가 있다'고 운운한 데에 이르러서는, 성의(誠意)가 별도의 단독적인 전(傳)로 성립되어(別立單傳) 치지(致知)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 사람들이 위의 장(上章)을 이어서 통괄적으로 고증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설(原說)을 미루어나가면, 아는 것이 미진하면 뜻이 성실하지 않게 되어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불성(不誠)의 큰 관건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말하면, 아마도 앎이 미진하다는 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실제적 병통이라고 여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병통으로 말하면 하문에 이미 밝혔으니, '불근호차(不謹乎此)'97)라는 한 구절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극히 옳고 옳다. 《주자어류》와 《대학혹문》의 설명은 별도로 하나의 의리로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 단락의 뒷문장은 의리가 있지만 또한 조금 작위적인 말이 있으니 이 구절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논어집주(論語集註)》의 도체(道體)는 무위하다는 말98)과 서로 걸리는 듯하다."물었다.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에서 어디에 속합니까?" 말씀하셨다.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권17의 5판, 〈호영록(胡泳錄)〉】하늘의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사람의 건순오상(健順五常)은 그 이치가 하나입니다. 하늘에 있는 오행(五行) 가운데 목(木)과 화(火)는 양에 속하고 금(金)과 수(水)는 음에 속하니, 오행은 하나의 음양(陰陽)입니다. 이를 가지고 예시하면, 사람에 있는 오상(五常) 가운데 인(仁)과 예(禮)는 건(健)에 속해야 하고 의(義)와 지(智)는 순(順)에 속해야 하니, 오상도 하나의 건순(健順)입니다. 그런데 지금 건순의 사성(四性)에의 분속(分屬)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단지 사성(四性)의 음양(陰陽)에의 분속(分屬)으로만 답하고 건순 2자를 빠뜨린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음양을 말하면 건순은 그 안에 있다. 그러므로 다시 자세히 논하지 않았을 것이다.""사람과 생물은 모두 건순오상(健順五常)의 성(性)을 품수(稟受)하였다. 그리고 이를테면 개가 사람을 물 수 있는 것은 곧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사람을 물지 않는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다. 또 이를테면 초목이 곧고 딱딱한 것은 강한 성질을 품수한 것이고 연하고 약한 것은 저 순한 성질을 품수한 것이다."【출전은 앞과 같다, 〈심한록(沈僩錄)〉】건순(健順)과 오상(五常)은 바로 본연지성(本然之性)인데 지금 이 개[狗子]와 초목(草木) 두 조목에서 운운한 것은 오히려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말한 듯합니다. 만약 '인(人)' 자를 가지고 '구자(狗子)'나 '초목(草木)' 자와 바꾸고서, 사람이 강하고 사나워 남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자애롭고 착해서 사람을 해칠 수 없는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라고 말하고 또 사람이 곧고 딱딱한 것은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연하고 약한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본연지성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 문단은 아마도 기록이 잘못된 듯하다. 또 앞 문장에 양(陽)의 기(氣)와 음(陰)의 기라는 두 '기(氣)' 자는 뒷구의 오행(五行)의 리(理)로 추론해 본다면99) 리(理)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천지의 중(中)은 미발(未發)의 중(中)이고 천연적으로 본래 존재하는 중(中)은 시중(時中)이다."【권18의 22판, 〈증조도록(曾祖道錄)〉100)】상단(上段)의 〈심한록(沈僩錄)〉에서는 "천지의 중(中)은 단지 하늘이 내린 것으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지 사람이 받은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101)고 하였지만 이 단락에서는 오히려 "천지의 중(中)은 미발(未發)의 중(中)이다."라고 하였으니, 미발의 중이 어찌 사람에게 있는 대본(大本)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상단에서는 하늘이 내린 것과 사람이 받은 것을 가지고 상대하여 들어서 나누어 말하였고 이 단락에서는 미발(未發)의 시중(時中)102)을 가지고 대비하여 들고 나누어 말했으니 주장하는 관점이 이미 다르므로 가르키는 바도 조금 다릅니다. 이와 같이 보면 되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논한 내용이 맞다.""《중용(中庸)》에서는 오로지 지(智)만 말하였다.[中庸專言智]"103)【권19의 1판, 〈탕영록(湯泳錄)〉】지(智)․인(仁)․용(勇)은 《중용》의 대지(大旨)인데 오로지 지(智)만 말하였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도를 밝히는 책이기 때문에 지(智)로 말한 것입니까?물었다.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그만둔 것은 인(仁)이 되지 않는데104) 관중에게는 오히려 인(仁)이라 일컬은 것은105) 어떠합니까?" 말씀하셨다.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그만둔 것은 독자적으로 한 것이고 관중은 출사하여 필경 인(仁)하다고 할 만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권20의 22판, 〈정남승록(鄭南升錄)〉】공자(孔子)의 본뜻과 주자의 《논어집주》에 근거하면, 자문(子文)이 인하기까지는 않았던 것은 그가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관중(管仲)을 인하다고 인정한 것은 그가 천하를 한 번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은 인정해 주고 한 사람의 인은 부정한 것은 그 가리키는 바가 각각 달랐으니 애초에 독자적으로 하여 훌륭한 일을 못했다고 자문(子文)을 폄하한 것이 아니고 출사하여 훌륭한 일을 하였다고 관중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자어류》에서 이와 같이 말했으니 후학들이 만약 이 설을 주장한다면 아마도 자수(自修)를 경시하고 공리(功利)를 중시하는 폐단에 이를 듯합니다.물었다. "비록 어떤 이가 그를 배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할 것입니다."106) 말씀하셨다. "필경 일찍이 배운 것이겠는가? 아직 배우지 않은 것이겠는가?" 물었다. "선생께서 이른바 그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힘쓴 것이 지극해서일 것입니다.[非其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말씀하셨다. "옳게 보았다."【권21 18판, 정남승록(鄭南升錄)】자하(子夏)의 말은 폐단이 있음을 면치 못한다.[不免有弊] 하지만 오늘날 이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경우, 만약 그가 학문한 것이 아니고 또 타고난 자질이 높은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若不是他學問來, 又不是天資高, 安能如此]【19판, 〈임기손록(林夔孫錄)〉】자하의 본래 말은 도리어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다는 뜻인데 오재로(吳才老 오역(吳棫))는 그 폐단이 학문을 그만두는 데 이른다[至於廢學]고 하였다.【앞과 같은 판, 〈황간록(黃榦錄)〉】자하의 이런 말은 교왕과직(矯枉過直)한 것이다.107)【앞과 같은 판, 〈섭하손록(葉賀孫錄)〉】'불면유폐(不免有弊)', '지어폐학(至於廢學)', '교왕과직(矯枉過直)' 등의 설에 근거하면,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하겠다[吾必謂之學]'에서의 '학(學)' 자는 단지 명륜(明倫 인륜을 밝힘)으로만 본 것이고 이 사람은 정말로 아직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만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 '약불시학문래 안능여차(若不是學問來 安能如此)' 등의 설에 근거하면, 다시 이 '학(學)' 자는 학문(學問)으로 본 것이고 이 사람은 이미 일찍이 학문을 한 사람입니다.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또 곧장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라는 한 구절로 단안(斷案)을 삼은 경우로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일찍이 병암(炳菴 김준영(金駿榮))이 《논어집주》의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라는 말을 주장하여 '이미 일찍이 학문을 한 사람'으로 보고서 자하(子夏)의 말이 폐단이 없다고 하여 오씨(吳氏)가 자하의 본뜻을 잘못 이해하였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는데 이 설은 매우 이치가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이 본다면, 자하의 말은 너무 골자가 없어 근본을 중시하고 말단을 억제하는 데 힘이 되기에 부족하니, 이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물었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에 대하여 이천(伊川 정이(程頤))은 성(誠)이라고 하였는데 옳습니까?" 말씀하셨다. "성(誠)은 생각에서 나오고 시인(詩人)의 생각은 모두 정성(情性)이다. 정성(情性)은 본래 바름[正]에서 나오니 어찌 거짓으로 할 수 있겠는가? 생각은 바로 정성(情性)이고 사특함이 없음은 바름[正]이다. 이로써 본다면 《시경》 삼백 편은 모두 정성(情性)의 바름에서 나온 것이다."【권23의 12판, 〈황탁록(黄卓錄)〉】《논어집주》와 《주자어류》의 여러 단락에서 모두 '사무사(思無邪)'는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성(情性)의 바름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단락에서만 시인의 정(情)이 거짓으로 한 게 아니라는 것으로 '사무사(思無邪)'를 해당시키고 《시경》 삼백 편은 모두 정성(情性)의 바름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테면 음녀(淫女)와 탕자(蕩子)의 노래 같은 것이 어찌 거짓으로 한 게 아니고 곧바로 정(情)을 쏟아내었다는 이유로 바름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발한 정(情)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을 따지지도 않고 그저 그 정(情)이 거짓으로 한 게 아니라는 이유로 성(誠)이라고 한다면, 이천(伊川)의 본뜻이 아닙니다. 이 단락은 아마도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어야 할 듯합니다."'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는 것은 굳이 시인의 생각과 시를 읽는 사람의 생각이라고 말할 것이 없다. 무릇 사람은 모두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한다."【13판, 〈만인걸록(萬人傑錄)〉】이 단락에서는 사람들이 '사무사(思無邪)'를 단지 시를 짓고 시를 읽는 사람의 일로만 보고 뭇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일로 보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므로 이를 말하여 그 폐단을 바로잡았습니다. 만약 '사무사(思無邪)'는 천하 만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단지 자기 자신의 정성(情性)에 나아가 그 바름을 찾아 얻어야 할 뿐이지 굳이 부질없이 이 시인의 생각과 시를 읽는 사람의 생각을 말하여 무익한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물었다. "맑음[淸], 조화로움[和], 자임[任]108) 역시 단지 그릇[器]일 뿐입니까?" 말씀하셨다. "이것은 한편으로 치우쳐[偏] 성취(成就)한 것이지만 도리어 그릇은 아니다."【권24의 13판, 〈황간록(黃榦錄)〉】이미 '치우쳤다[偏]'고 말하고 다시 '그릇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상판(上板)의 〈주명작록(周明作錄)〉과 하판(下板)의 〈임일지록(林一之錄)〉에 근거하면, 이 단락에서 그릇이 아니라고 운운한 것은 정론(定論)이 아닌 듯합니다.'충신(忠信)이 주(周)이다'109)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충신이 주(周)인 것은 단지《좌전》의 '두루 자문한다[周爰咨詢]'의 주(周)를 가리켜 충신이라고 한 데110)서 연유했을 뿐이니, 후세 사람들이 마침내 이를 가져다 함부로 풀이하는 것은 가장 이치가 없다."【권24의 17판, 〈임각록(林恪錄)〉】'충신(忠信)이 주(周)이다'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충신하므로 두루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면전에서나 등뒤에서 성실하지 않으면 두루 하는 것이 아니다."【앞과 같은 판, 〈임일지록(林一之錄)〉】'공평하게 대하다[周]'와 '편당을 짓다[比]'는 것은 단지 공(公)과 사(私)라는 두 글자로 대비하여 설파한 후에야 딱 들어맞아 바꾸지 못한다. 충신(忠信)은 공(公) 자의 뜻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임각록(林恪錄)〉에서 '이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충신(忠信)하지 않으면 하는 일이 다 실질이 없을 것이니 비록 공평하게 하여 두루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임일지록(林一之錄)〉에서 도리어 '성실하지 않으면 두루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두 기록은 같이 놓아도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물었다. "인을 이롭게 여기는[利仁]111) 자는 본래 이미 발한 곳에서 살피기는 합니다만 다시 미발(未發)의 때에 삼가지는 않습니까?" 말씀하셨다. "미발의 때에는 본래 공부를 붙일 곳이 없다. 미발의 때에는 요순에서 보통 사람까지 모두 똑같다."【권26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요순(堯舜)의 자연스러운 미발(未發)과 보통 사람의 우연한 미발은 본래 공부를 붙일 곳이 없는데 인을 이롭게 여기는[利仁] 자 이하의 미발은 위로는 자연스러움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우연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고요할 때 본래 치중(致中)이라는 일단의 공부가 있으니 그런 뒤에 체(體)가 세워지고 용(用)이 행해지게 됩니다. 지금 미발의 때에는 공부를 붙일 곳이 없다고 뭉뚱그려 말하면 (중이라는) 대본(大本)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학문의 방법이 혹 거의 치우쳐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선생(朱先生)의 가르침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후학(後學)의 망녕된 의심이 그러할 뿐입니다."'자기로써 한다[以己]'와 '자기를 미룬다[推己]'112)는 말의 분변(分辨)"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자기로써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자기를 미룬다'는 것은 꺾어 돌리는 뜻이 있으니 이를테면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해준다는 것과 같다."【권27의 21판, 〈서우록(徐㝢錄)〉】'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울 통달하게 해준다'는 것은 《논어집주》및 아래 〈진순록(陳淳錄)〉과 〈황의강록(黃義剛錄)〉 둘을 가지고 살펴보면 바로 '자기로써 하는[以己]' 일인데 여기서 '자기를 미루는[推己]' 일로 본 것은 아마도 의당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물었다. "비록 전체(全體)는 아직 인(仁)이 아닐지라도 만일 한 가지 일에서 이치에 맞고 또 사심(私心)이 없을 수 있다면 또한 한 가지 일의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인(仁) 자를 말하기만 하면 곧 전체(全體)로 말한 것이다. 만약 한 가지 일에서 인(仁)을 다할 수 있다면 곧 그의 전체가 인(仁)하게 된다. 만약 전체에 흠결이 있으면 이 한 가지 일에서도 틀림없이 인을 다할 수 없으니 인(仁) 자를 말하기만 하면 수많은 일을 다 포함하여 모두 다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게 된다."【권28의 10판, 〈심한록(沈僩錄)〉】이미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을 인으로 여긴다면 전체(全體)가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은 본래 전체의 인이거니와 한 가지 일이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도 한 가지 일의 인이 되는 데 문제가 없는데, 선생께서 금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전체를 상정한 이후에 인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면, 안자(顔子 안회(顔回))가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은 것도 석 달의 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까? 안자가 진실로 전체에 흠결이 없는 자는 아니지만 한 가지 일에서 반드시 인을 다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3권 19판 〈정가학록(鄭可學錄)〉의 경우에는 "한 가지 일이 인에 있어 순수하므로 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一事純於仁 可謂之仁]113) 은(殷)나라에 세 인자가 있었는데 이들 역시 그 전체를 보지 못하였고 단지 거취(去就)의 문제에서 천리(天理)에 순수하였으므로 공자께서 인정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이 말이 의당 바꿀 수 없는 의론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호문정공(胡文定公 호안국(胡安國))의 춘추설(春秋說)에 '출공(出公) 첩(輒)이 자리에서 떠나 아버지를 따르면 위(衛)나라 신하들은 첩을 도와 아버지 괴외를 막아야 한다.'114)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권34의 27판, 〈여도록(呂燾錄)〉】《주자대전(朱子大全)》 〈범백숭에게 답한 편지(答范伯崇書)〉에서 "첩(輒)이 만약 아버지를 피할 마음이 있었다면 위나라 신하들은 마땅히 그의 아버지 괴외(蒯聵)를 막고서 첩을 도와야 한다."라고 하여 이 조목과 같지 않습니다. 대체로 첩이 진실로 아버지를 피할 마음이 있었다면 위나라 신하들은 마땅히 다른 공자(公子)를 세우고서 괴외를 막아야 하니, 바로 첩이 아버지를 따르는 마음과 일에 처하는 의리를 이루어주는 방법이 진실로 이러합니다. 게다가 비록 첩을 도와 그의 아버지 괴외를 막고자 하였더라도 첩이 어찌 자기를 돕고 아버지를 막는 일에 기꺼이 편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반드시 도망간 뒤에 그만두었을 것이니 이것이 또 사세(事勢)로 보아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의당 《주자어류》의 이 조목을 정론(定論)으로 삼아야 할 듯합니다."태왕(太王)은 상(商)나라의 정치가 날로 쇠하는 것을 보고 상나라가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상나라를 치려는 뜻을 두었으니 또한 지극히 공정한 마음이다."【권35의 3판, 〈이장조록(李壯祖錄)〉】주(紂) 임금이 백성을 학대할 때 그를 치려는 마음을 둔 경우라면 지극히 공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왕은 이미 주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을 만나지 않았으니 주자가 지극히 공정하다고 말한 것은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나의 재주를 다하니 선생님의 도가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는[不思而得]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고, '비록 (공자를)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雖欲從之, 末由也已]'는 것은 힘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는[不勉而中]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115)【권36의 21판, 〈황순록(黃㽦錄)〉】'여유소립탁이(如有所立卓爾)'는 본 것이 더욱 친근해진 경지이고 '수욕종지말유야이(雖欲從之末由也已)'는 (성인의 경지까지) 아직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니,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는 경지, 힘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의당 모두 (성인의 경지까지) 아직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수준에 있는 것일 듯합니다."자로(子路)와 염구(冉求) 및 공서화(公西華)가 하고자 한 일들은 증점(曾點)이라면 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들이다."116)【권40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증점의 소견을 끝까지 미루어 가면, 세 사람(자로, 염구, 공서화)이 말한 일들은 우선 말할 것도 없고 요순(堯舜)의 사업도 해낼 수 있습니다. 다만 증점의 평소 간이하고 우활한 성품과 방탄(放誕)한 행동으로 어찌 제후국의 군정(軍政)을 다스리거나 한 나라의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거나 나라의 큰 예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자도 참으로 "증점으로 하여금 세 사람의 일을 하게 한다면, 꼭 해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극기복례는 그 틈이 머리카락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사심이 없어야 인(仁)이라고 할 수 있다."【권41의 1판, 〈양도부록(楊道夫錄)〉】극기하면 예는 스스로 회복되니, 극기 이외에 별도로 복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앞과 같은 판, 〈섭하손록(葉賀孫錄)〉】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하면, 이곳에서 정밀하고 세밀한 공부를 착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를 회복해야만 仁이 되는 것이다. 성인은 극기가 곧 仁이라고 말하지 않고, 극기복례가 仁이라고 말씀하셨다.【3판, 〈김거위록(金去僞錄)〉】자기를 극복한 이후에 반드시 예에 돌아가고, 그런 연후에 仁을 한다. 만약에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하면서 한 가지 일도 하는 것이 없다면, 극복한 이후에 반드시 공허함에 떨어진다.【5판, 〈반시거록(潘時擧錄)〉】'극기하면 곧 복례한다'는 것은 극기를 하고서 복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두 개로 끊어진 공부도 아니다.【8판, 〈진식록(陳植錄)〉】주선생(주희)은 한 사람인데, 두 개 설의 다름이 이와 같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어느 설을 따라야 합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에게는 단지 천리와 인욕 두 길만이 있으니, 천리가 아니면 인욕이고, 천리에 속하지 않으면서 또 인욕에 속하지 않은 때는 없습니다. 진실로 자기의 사심을 극복해 가면 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강을 말한 것이고, 자세하게 논하면, 사람은 사욕을 스스로 제거할 수 있지만 이치에 맞게 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좌의 방법을 통하여 마음을 밝게 하려고 하지만, 도체의 공심(公心)을 보존하지 못하여 사물에 응대함에 있어 간혹 마땅함을 잃는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하물며 예는 천리의 절문(節文)으로, 절문은 지나침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매우 합당한 것입니다. 매우 타당한 데에 합치하기 때문에 지극히 어려운 仁이라는 이름을 감당할 수 있고, 하루의 잠깐 사이에 천하의 큼을 얻어서 인(仁)에 돌아가는 것으로 말하자면 어찌 한번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여 곧 절로 매우 타당한 데에 합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논어집주》에서 "사욕을 이기고 禮에 돌아간다"에서 아래 이(而)라는 한 글자를 살펴보면 극기복례에서 공부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물었다. "(공자께서) '나는 그 나라를 동방의 주(周)나라로 만들 것이다.[吾其爲東周乎]'117)라고 하셨는데 만약 성인(聖人 공자)으로 하여금 그 뜻을 행할 수 있게 하면 단지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의 동방에서만 하는 것입니까?" 말씀하셨다. "역시 다만 거기에서만 할 수 있다." 다시 물었다. "주나라는 어떻게 합니까?" 말씀하셨다. "이 점은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때에 임하여 일의 형세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향응(響應)하여 모이는 곳이 있다면 또한 저절로 성인을 통하지 않을 것이니, 만약 주나라 왕조로 하여금 그 예물(禮物)을 갖추어 (새로 일어나는) 왕가(王家)의 손님이 되게 한다면, 어찌 난왕(赧王)이 주나라의 읍을 스스로 헌납하여 멸망한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권47의 3판, 〈심한록(沈僩錄)〉】'나는 동방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라는 말은 아마도 단지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의 도를 동방의 노나라에 행하겠다고 말한 것일 뿐 애초에 천명(天命)을 받아 주나라를 대신하겠다는 뜻은 없는 듯합니다.《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는 단지 '동방에 주나라의 도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라고만 말했으니 또한 이와 같은 뜻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주자어류》에서 '주나라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물음에 '단지 그 일의 형세를 봐야 한다'고 답한 것은 모두 성인(聖人)의 심사(心事)의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미리 말해서는 안 됨을 말한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주자께서 무슨 까닭으로 질문에 따라 대답하면서 난왕의 멸망을 운운하기까지 한 것입니까? 삼가 저는 변변찮은 의심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물었다.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는 일로, 여기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灑掃應對, 是其然, 必有所以然.]'118)라고 하였는데, 소이연(所以然)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말씀하셨다. "만약 진실한 뜻[誠意]이 없다면 어떻게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겠는가?"【권49의 11판, 〈감절록(甘節錄)〉】성의(誠意)를 소이연으로 삼고 있으니, 만일 기록을 잘못한 게 아니라면 주자의 한때의 설입니다."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에도 절도에 맞음과 절도에 맞지 않음[中節不中節]이 있다. 이를테면 측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고 수오하지 않아야 하는데 수오하는 것이 바로 절도에 맞지 않는 것이다.[若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 便是不中節]"【권53의 9판, 〈진순록(陳淳錄)〉】"측은하게 여겨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수오해야 하는데 수오하지 않고, 사양해야 하는데 사양하지 않으며, 그른 것을 옳다고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은 모두 그 본심을 잃어버린 것이다."【16판, 〈보광록(輔廣錄)〉】측은하게 여겨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수오해야 하는데 수오하지 않는 것이 이미 본심을 잃어버린 것이라면, 측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고 수오하지 않아야 하는데 수오하는 것 또한 본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본심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불인(不仁)이고 불의(不義)일 따름입니다. 측은하게 여겨야 해서 측은하게 여길 때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고, 수오해야 해서 수오할 때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는 데 이르른 뒤에야 비로소 절도에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말한다면, 제때 제자리에 맞게 발하면서 지나침과 부족함이 있는 측은과 수오는 사단(四端)이 되는 데 문제가 없거니와 제때 제자리에 맞지 않게 발하는 측은과 수오는 아마도 사단으로 논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진순록(陳淳錄)〉에서 이른바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에도 절도에 맞음과 절도에 맞지 않음이 있다.'는 말은 참으로 의당 정론이 되어야 하거니와 '약불(若不)' 이하 20자는 토론해야 할 점이 있는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어떠하신지요?"사단(四端)은 바르고 바르지 못함이 있다. 이를테면 모질고 사납고 어리석고 강퍅함[暴戾愚狠]은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고 모호하여 분명하지 않음[含糊不分曉]은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불손(不遜)한 행위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다. 하루 사이에 한 번 바르고 한번 반(反)하는 것이 언제나 사단의 발함 아닌 것이 없다."【16판, 〈이방자록(李方子錄)〉】폭려(暴戾)와 우한(愚狠), 불손(不遜)과 모호함[含糊]은 바로 불인(不仁), 불의(不義), 무례(無禮), 부지(不智)이니 애초에 사단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사단의 발함이라고 한 것은 측은이 반대로 폭려가 되고 수오가 받대로 우한이 되며 사양이 반대로 불손이 되고 시비가 반대로 모호함이 되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는 바로 이른바 '선은 본래 성이지만 악 역시 성이라고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善固性也, 惡亦不可不謂之性也]'119)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주자가 이 말을 한 것은 대체로 학자들로 하여금 하루 사이에 생각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을 잘 살펴서 반드시 저 바르지 않은 것을 다스려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려고 한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문제가 없겠습니까?"사단(四端)은 리(理)의 발함이고 칠정(七情)은 기(氣)의 발함이다." 물었다. "보건대 이를테면 기쁨․성냄․사랑함․미워함․바람[喜怒愛惡欲] 같은 것은 도리어 인의에 가까운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참으로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20판, 〈보광록(輔廣錄)〉】이미 칠정은 기의 발함이라 하고서 다시 칠정을 인의(仁義)로 여긴다면, 칠정 또한 리의 발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칠정을 리의 발함이라고도 해도 된다면 사단을 일러 기의 발함이라고 하는 것도 의당 가능합니다. 대체로 이는 사단이 선(善)만 있는 쪽이기 때문에 리의 발함에 소속시키고 칠정은 선악(善惡)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기의 발함에 소속시킨 데 불과하지, 사단과 칠정이 리에서 발하고 기에서 발하는 것이 각자 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의 이동(異同)이 비롯되어 나온 곳인데, 모르겠습니다만 정밀하고 자상하신 퇴계(退溪 이황)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두 선생이 이 단락에 대해 일찍이 어떻게 보셨습니까?"자로(子路)는 말 모는 것을 법대로 해서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고, 관중(管仲)은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잡았을 뿐이다.120)" 【권55의 9판, 〈여도록(呂燾錄)〉】공자(孔子)가 이미 자로의 재주가 천승(千乘)의 제후국의 군정(軍政)을 다스릴 수 있다고 칭찬하였고121) 자로도 일찍이 "천승의 제후국이 대국(大國)의 사이에 속박을 받아 전쟁이 가해지고 인하여 기근이 들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직접 말하였습니다.122) 3년만 다스려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관중이 40년이나 되는 오랫동안 제나라를 도왔던 것처럼 했다면 그 공렬(功烈)이 어찌 관중의 아래였겠습니까? 이 뜻은 김인산(金仁山 김이상(金履祥))이 이미 말하고 우리 선생님이 일찍이 주자가 양씨(楊氏)의 설123)을《맹자집주(孟子集註)》에 기록한 것을 놓고 타당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자어록》을 살펴보건대, 《맹자집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자가 직접 말씀한 것도 이러하니, 양씨의 설이 바로 주자의 말입니다. 더욱 감히 단정지어 말하지 못할 점이 있을 듯합니다."'원칙을 고집하면서 권도가 없는[執中無權]'124) 권(權)은 비교적 가벼운 것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잡아 구원해 주는[嫂溺援之以手]'125) 권은 비교적 중한 것이니 권에도 깊고 얕은 차이가 있다."【권56의 8판, 〈심한록(沈僩錄)〉】일에는 본래 대소(大小)가 있지만 똑같이 권도(權道)를 행하여 중(中)을 얻으니 중이라는 것은 리(理)가 딱 맞는 곳입니다. 큰일에도 딱 맞는 곳이 있고 작은 일에도 딱 맞는 곳이 있는데 딱 맞는 곳이라는 점은 똑같습니다. 일의 대소를 가지고 권의 경중(輕重)을 나누어서는 안 될 듯한데 주자의 설이 이러하니 의심스럽습니다.물었다. "'동네 이웃에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비록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鄕隣有鬪者, 雖閉戶, 可也]'126) 만약 동네 이웃의 싸움에 친척이나 형제가 그 가운데 있다면 어찌 똑같이 간주하여 말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셨다. "형제가 있다면 참으로 마땅히 말려야 하지만 일은 또한 반드시 대소(大小)를 헤아려야 한다. 만약 단지 작은 일로 치고박는 싸움이면 말리더라도 무방하지만 만약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면 또한 단지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을 따름이다." 【권57의 17판, 〈심한록(沈僩錄)〉】한방에 같이 있는 사람 중에 싸우는 자가 있으면 맹자(孟子)가 "머리를 풀어 흩뜨리고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린다."라고 했으니 형제가 어찌 한방에 같이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만, 어찌하여 이런 문답(問答)을 하게 된 것입니까? 게다가 형제가 바야흐로 전쟁과 재난에 빠져있는데 내가 도리어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어찌 의리를 크게 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곳들은 아마도 기록을 잘못한 듯합니다.물었다. "요순(堯舜)의 왕위 선양(禪讓)은 비록 성대한 덕이지만 부득이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말씀하셨다. "그렇다."【권50의 8판, 〈무명록(無名錄)〉】하늘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낳아서 진실로 백성의 임금과 스승을 삼고자 합니다. 고금(古今)에 천하를 소유한 사람이 현자(賢者)에게 전하지 않고 자식에게 전한 것은 하늘의 뜻을 체행(體行)하는 방도가 아닙니다. 요순이 왕위를 선양한 것은 참으로 공공(公共)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하늘이 현자에게 주게 하면 현자에게 주고 자식에게 주게 하면 자식에게 준다.[天與賢則與賢, 與子則與子.]"127)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득이해서'라고 한 것은 그 의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데도 주자가 옳게 여겼으니 의심스럽습니다."개와 소 및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은 일찍이 같지 아니함이 없었는데, 오로지 사람만이 리의 온전함을 얻었고, 사물은 단지 치우친 한 쪽만을 얻었을 뿐이다. 이제 개와 소에서 仁義의 온전함을 얻으려고 하여도 이른바 '성즉리'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이 리의 온전함을 얻었고, 사물은 이 리의 치우친 한쪽만을 얻었음을 볼 수 있다. 고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것을 성이라고 하였을 뿐 리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반면 맹자는 '리로써 사람과 생물의 차이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권59의 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사람이 만물과 다른 까닭은 사람은 정기(正氣)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도리를 모두 얻어 갖출 수 있다. 사물의 경우는 기가 혼탁하면 리 또한 혼탁해진다."【앞과 같은 판, 〈여도록(呂燾錄)〉】"사물도 이 성을 갖추고 있지만, 단지 기의 품수가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이 성도 기에 따라서 전환한다."【3판, 〈황의강록(黃義剛錄)〉】'타고난 것을 성이라 한다'는 장은 호론(湖論)의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이 나온 곳입니다. 《주자어류》의 제반 내용은 그 설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이것으로써 '성이 다르다'는 이론을 삼았습니다. 고자는 사람과 생물의 태어남은 대체로 같다고 생각하여 '성이 동일하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기를 성으로 인식한 것으로, 도를 크게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분별하여 "이른바 성이라고 하는 것은 지각운동하는 기가 아니고, 인의예지의 리입니다. 지각운동의 기는 사람과 생물이 비록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의예지의 리를 어찌 사물이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사람과 생물이 지각운동은 비록 동일하게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바르고(正) 통하며(通) 치우치고(偏) 막힘(塞)의 차이가 있는 것은 정히 동일한 흰색일지라도 깃털과 눈의 흰색은 경중(輕重)이 이미 차이가 나고, 눈과 옥의 흰색은 허실(虛實)이 또한 다른 것과 같습니다. 치우치고 막혔기 때문에 사물은 인의예지의 리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없고, 바르게 통하기 때문에 사람은 인의예지의 리를 온전하게 할 수 있으니, 온전함과 온전하지 않음의 사이에 성이 같지 않음이 판가름 납니다. 사람과 생물은 태어난 이후 기질의 발용처에서 말한 다름이지 사람과 생물이 태어나면서 본성을 품수 받을 때에 이미 다름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고자가 단지 기의 발용이 서로 같지 않음을 보고서 사람과 생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주장을 하였다면, 맹자는 이것에 대하여 반드시 '성이 같다'는 주장으로써 변론할 것입니다. (맹자는) "기에는 통함과 막힘이 있고, 리에 비록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리의 지선(至善)함은 기에 의하여 구속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늘이 부여한 본성은 사람과 생물의 한 근원이니 처음부터 기 때문에 다름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섭하손록(葉賀孫錄)〉의 "사물은 이 리의 치우침을 얻었다"는 것과 〈황의강록(黃義剛錄)〉에서 "사물은 이 성(性)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다만 품수 받은 것이 치우쳤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설들은 다만 《맹자집주》의 '인의예지의 본성을 받음이 어찌 동물이 얻어 온전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한 구절을 정론으로 삼고서 융통성 있게 이해한다면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 문사(文辭)만을 근거로 삼아 사물은 치우친 것을 얻었기 때문에 품수 받은 것도 치우쳤다고 생각한다면, 《맹자집주》에서는 마땅히 "어찌 동물이 온전히 얻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해야지, "어찌 동물이 얻어서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물은 기의 치우침을 얻었기 때문에 이 성을 발현함에 있어서도 치우침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가 치우쳐 발한 것을 근거로 억지로 이름을 지어서 "사물은 리의 치우침과 성의 치우침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율옹(이이)이 말한 "기가 치우치면 리 또한 치우치지만, 치우친 것은 리가 아니고 기이다"라는 이 한마디는 이미 팔자타개(八字打開)한 것입니다. 호론가(湖論家)가 비록 이것을 인용하여 성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해도 가능하겠습니까? 게다가 이른바 개와 소에서 인의의 온전함을 얻으려고 해도 얻을 수 없고, 기가 혼탁하기 때문에 리 또한 혼탁하다는 것, 이 성은 기에 따라서 전환한다는 등의 말은 분명 기품의 용처에서 말한 것입니까? 《맹자》의 본문과 《주자어류》의 여러 문단의 뜻을 이렇게 보아도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도록(呂燾錄)〉 중에 사람이 사물과 다른 것은 수많은 도리를 모두 얻어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구(具) 자를 어찌 전(全) 자로 쓰지 않았습니까? 이점은 오히려 의심이 갑니다.○ 개와 소 및 사람의 성은 이미 기(氣)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주자대전》 및 《주자어류》11판의 〈주모록(周謨錄)〉에서 다시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질지성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편전지성(偏全之性)과 불성지성(不性之性)이 이것이다. 편전지성은 선(善) 한 쪽을 주로 하여 말한 것이고, 불성지성은 선악(善惡)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여기서 말한 기질지성은 아마도 단지 편전지성으로 볼 수는 있어도 불성지성으로 보아서는 안 될 듯하다.○ 이 성의 차이에 대해 맹자는 단지 개와 소 및 사람 세 가지를 들었을 뿐이고 주자는 다시 단지 사람과 생물이라는 두 층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미루어 확장하면 사람과 사람, 생물과 생물에 대해 사람마다 생물마다 개체마다 층층마다 모두 똑같이 보아야 한다. 모르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는가?"심(心)과 성(性)은 단지 한가지일 뿐이고 지(知)와 진(盡)이 같지 않으니 이른바 지(知)는 곧 심이다."128) 물었다. "지(知)는 심의 신명(神明)이니 사단(四端) 중의 이른바 지(智)와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이 지(知) 자가 뜻이 더 크다.[知字義又大] 그러나 공자(孔子)는 인(仁)과 지(智)를 많이 말씀하셨다. 이를테면 원형리정(元亨利貞)에서 원(元)이 곧 인(仁)이고 정(貞)이 곧 지(智)이다. 사단(四端)에서 인(仁)과 지(智)가 가장 큰데[仁智最大] 정(貞)이 없으면 원(元)은 일어날 곳이 없으니 지(智)가 없으면 어떻게 인(仁)이 될 수 있겠는가? 《주역》에서 '처음과 끝을 크게 밝힌다[大明終始]'129)라고 했는데,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것이다. 지(智)가 크게 되는 까닭은 지(知)가 있기 때문이다.[智之所以爲大者, 以其有知也.]"【권60의 2판, 〈보광록(輔廣錄)〉】이 단락의 위아래 문장에서 '지(知)' 자와 '대(大)' 자의 차이에 대해 우리 선생님께서 일찍이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삼가 제가 생각해 보니, 위의 네 '지(知)' 자는 심(心)의 지각(知覺)의 지(知)이니 기(氣)에 속합니다. 아래의 '유지(有知)'의 지(知)는 성(性)의 분별하는 지(知)이니 리에 속합니다. '지(知) 자가 뜻이 크다[知字義大]'의 대(大)는 뭇 이치를 묘하게 운용하여 만물을 주재하기[妙衆理應萬事] 때문이니 분별하는 지(知)가 단지 성(性)의 일단(一端)이 되는 데 그치는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최대(最大)'와 '위대(爲大)'의 두 대(大) 자는 그것이 형(亨)과 리(利)보다 큼을 말합니다. 선생님의 견해에 어긋나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지(知)와 진(盡)이 같지 않다는 말은 아마도 마음을 다해서 힘써 행한다는 것으로, 뒤의 〈섭하손록(葉賀孫錄)〉 이하 여러 기록의 뜻과 같은 듯하다. 그러나 만약 단지 진심(盡心)과 지성(知性) 한 단락만 있을 뿐이라면 의당 이처럼 말할 수 있겠지만, 아래 문장에 이미 다시 존심(存心)과 양성(養性) 한 단락이 있으니 지(知) 하나 행(行) 하나를 주재하는 바는 자유자재하다. 이것이 《주자어류》의 '마음을 다하여 힘써 행한다'는 설이 끝내 《맹자집주》에서 버려지게 된 까닭이다.물었다. "'명(命) 아닌 것이 없다[莫非命也]'130)는 이 한 구는 기품(氣稟)의 명(命)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니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天命謂性]'의 명(命)과 같습니까?" 말씀하셨다. "맹자의 뜻으로는 기품을 말하지는 않았으니 이 구는 단지 '사람과 생물이 살아감에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모두 하늘이 명한 것임을 말했을 뿐이다."【7판, 〈심한록(沈僩錄)〉】성(性)과 화복(禍福)은 모두 명이니 하늘로부터 사람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性)이 사람마다 똑같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품수한 것은 리(理)인데 리는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화복(禍福)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품수한 것은 기수(氣數)인데 기는 만 가지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길흉화복의 명에 대해 (맹자가) 기품을 말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아래 12판의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는 "의(義)가 아닌 일로 죽은 것은 본래 스스로 취한 것이니 이 또한 미리 정해진 것으로, 대체로 품수한 악기(惡氣)가 이를 초래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기품을 말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이 의당 정론(定論)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기화(氣化)에 연유하여 도(道)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由氣化有道之名]'131) 이를테면 하늘의 도, 땅의 도, 사람의 도, 부자지간의 도, 군신간의 도, 성을 따름을 이르는 도[率性之謂道]' 같은 것이 이것이다."【10판, 〈임기손록(林夔孫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率性之謂道]'고 하였는데 성(性)은 단지 리(理)일 뿐으로, 성을 따라야만 이 도를 볼 수 있으니 이는 사물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테면 군신과 부자의 도 같은 경우는 군신과 부자가 있어야만 이 도리를 볼 수 있다."【앞과 같은 판, 〈반식록(潘植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率性之謂道]'는 말이 이 한 구와 관계된다."【앞과 같은 판, 〈임사록(林賜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천도(天道)의 유행(流行)을 말하는 듯합니다. 바로 《주역》에서 이른바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게 함을 일러 도라고 한다'132)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를 잇는 선[繼善]'의 일을 말하고 '도를 이루는 성[成性]'의 일은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도를 이루는 성조차 언급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성을 따르는 도[率性之道]'를 말하면 혹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심(心)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있는 전체(全體)이고, 성(性)은 천리의 전체이다."【12판, 〈진순록(陳淳錄)〉】삼가 제가 생각하기에, 성은 천리가 사람에게 있는 전체이고 심은 일신(一身)을 주재하면서 천리를 갖추고 있는 전체라고 하면 더욱 온당하고 주밀할 듯한데 어떠하십니까?"하늘의 측면에서 말하면 모두 바른 명[皆是正命]이다."【앞과 같은 판, 〈임각록(林恪錄)〉】아래 문장의 '하늘에 있는 명이 도리어 저절로 어긋남이 있다' 및 하판(下板)의 섭하손록(葉賀孫錄)에서 '하늘이 스스로 그 바른 명[正命]을 잃었다'는 말에 근거하면, '모두 바른 명이다[皆是正命]'라는 주장은 아마도 정설(定說)이 되지 못할 듯합니다."'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133)에서 '성(性)' 자는 기품(氣稟)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권61의 4판, 〈동백우록(童伯羽錄)〉】"이 '성(性)' 자는 물욕(物欲)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5판, 〈여도록(呂燾錄)〉】이 '성(性)' 자는 바로 기품(氣稟)과 물욕(物欲)을 주가 되는 것이니 마땅히 "바로 기욕(氣欲)을 가리켜서 말하였다."라고 해야 하는데 반드시 아래에 '겸(兼)' 자를 쓴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대체로 이 성이 비록 기욕(氣欲)이 주가 될지라도 이미 성이라고 했다면 성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은 그것이 리(理)가 되기 때문이므로 자연의 리가 이와 같이 기에 붙은 것을 가리켜 그 명칭을 정한 것입니다. 그 기욕(氣欲)의 활동을 가리켜 '겸한다'고 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리(理)가 성(性)이 되는 명칭은 바꿀 수 없음을 가리킨 것이니 바로 이를테면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비록 도의(道義)가 주가 되지만 기(氣)라는 명목은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주가 되는 도의를 취하여 명명하지 않고 반드시 짝하고 있는 기를 가리켜서 명칭을 정한 것입니다. 《논어집주》의 "여기에서 말한 성은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134)라고 한 것도 이 예와 같은 경우로 보아야 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떠하십니까?"'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에서 이 '명(命)' 자는 도리어 리(理)와 기(氣)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6판, 〈동수록(董銖錄)〉】빈천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은 기수(氣數)의 명(命)을 편히 따라서이고 부귀한 사람도 제한이 있는 것은 의리(義理)의 명(命)을 편히 따라서입니다. 이 '명(命)' 자를 리(理)와 기(氣)를 합한 것으로 보는 것은 완비(完備)된 주장입니다. 앞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에서 리의 측면에서 말하고 뒤의 7판 〈황의강록(黃義剛錄)〉에서 리를 가리켜 말한 것은 아마도 모두 미비함이 있는 듯합니다."'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다[操則存舍則亡]'135)라고 하는데 마음이 어찌 보존과 잃음이 있겠는가? 이것은 바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경계짓는 구별이다. 인심은 이 몸에 지각(知覺)이 있고 기욕(嗜慾)이 있는 것이니 이를테면 이른바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한다[我欲仁]'136),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른다[從心所欲]'137),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은) 성의 욕구[性之欲也]'138)라는 말 같은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한결같이 그 아들을 모질게 대하면 자식도 반드시 사나워져서 그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르게 되니 이것이 인심이 위태로운 까닭이다."【권62의 9~10판, 〈여대아록(余大雅錄)〉】천하에는 인심(人心)이 없는 상지(上知)가 없고 또 그 마음을 잃어버린 성인(聖人)도 없으니 잡고 놓으며 보존하고 잃는다[操舍存亡]는 말로 인심과 도심을 말한 것은 분명히 아직 확정하지 않은 설입니다.○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명(性命)에 근원하는 것이니 원래 인심이 아니거니와 사나워져서 그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것 또한 어찌 인심의 위태로움에 그치겠는가? 아마도 모두 잘못된 기록인 듯하다."지(知)․인(仁)․용(勇)처럼139) 허다한 학문하는 도리(道理)이다."【11판, 〈심한록(沈僩錄)〉】여기서 도리(道理)는 아마도 방법이라는 뜻으로, '대학지도(大學之道)'의 '도(道)' 자와 같고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의 '도(道)' 자와 같지 않을 듯합니다."소의 성질은 순하고 말의 성질은 굳세니 바로 굳세고 순한[健順]의 성(性)이고, 범과 이리의 인(仁)과 개미의 의(義)는 바로 오상(五常)의 성이다. 하지만 단지 품수한 것이 적어서 사람이 온전하게 품수한 것과 같지 않을 뿐이다."【12판, 〈증조도록(曾祖道錄)〉】이 단락은 생물이 온전하게 오상(五常)을 품수하지 못한 것을 말하여 주자(朱子)가 평소 말한 사람과 생물의 성(性)이 같다는 주장과 같지 않은 듯한데 어째서입니까?물었다. "목(木)의 신(神)은 인(仁)이 되고 화(火)의 신은 예(禮)가 됩니다." 말씀하셨다. "'신(神)' 자는 '의사(意思)'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앞과 같은 판, 〈심한록(沈僩錄)〉】인의예지(仁義禮智)는 리(理)이니 목(木)의 리는 인(仁)이고, 화(火)의 리는 예(禮)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신(神)을 인(仁)과 예(禮)로 여긴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의사(意思)'라고 말한 것도 정의(情意)가 없는 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이천(伊川 정이(程頤))의 뜻에 근거하면, 사람과 생물의 본성(本性)은 같지만 (성을) 품부함에 이르러서는 다르다. 대체로 본성은 리(理)이지만 본래 품부받은 성(性)은 기(氣)이다. 성(性)은 본래 자연한 것인데 태어날 때 품부받음에 이르러 기가 없으면 타고 갈 수가 없으므로 반드시 이 성을 기 위에 둔 뒤에 태어날 수 있다. 이미 태어남에 이르러서는 생물은 저대로 생물의 성을 품수하고 사람은 저대로 사람의 기를 품수한다."【14판, 〈정가학록(鄭可學錄)〉】이 단락에서 논한 것은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말한 듯하지만 이천은 이미 '성을 따르는 도[率性之道]'를 가지고 사람과 생물을 통괄하여 말했으니 어찌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따를 만한 것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본연지성(本然之性)으로 본다면 '사람과 생물의 성은 같지만 (성을) 품수함이 다르다'와 '생물은 생물의 성을 품수하고 사람은 사람의 기를 품수한다'는 등의 설이 또 통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은 사람이 온전하게 받고 생물이 치우치게 받는다."【15판, 〈양지록(楊至錄)〉】이것은 또한 아마도 앞의 12판 〈여도록(呂燾錄)〉의 뜻과 같은 듯합니다."보지 않고 듣지 않는[不睹不聞]140) 때에는 본래 마음을 잡아 지켜야[持守] 하지만 살피지 않아서도 안 되고, 홀로 있는 자리를 조심할[謹獨]141) 때에는 본래 잘 살펴야[致察] 하지만 마음을 잡아 지키지 않아서도 안 된다."【23판, 〈보광록(輔廣錄)〉】보지 않고 듣지 않는 때에는 형체도 조짐도 없으니 무슨 일을 살필 수 있겠습니까? 잘못된 기록이 아니라면 이는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입니다."이천(伊川)이 '(미발(未發)의) 중(中)일 때 귀로 듣는 것이 없고 눈으로 보는 것이 없지만 듣고 보는 리(理)가 있어야 비로소 된다.'142)라고 하셨다."【32판, 〈진순록(陳淳錄)〉】여기서 듣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마음을 둔 들음과 봄이 없다고 말한 것이지 자연스러운 들음과 봄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앞 29판의 〈진순록(陳淳錄)〉143)에서 주자(朱子)가 본래 "고요할 때 귀와 눈도 반드시 자연스러운 들음과 봄이 있다."라고 하셨고 《중용혹문(中庸或問)》에서도 "미발(未發)의 때 귀와 눈은 의당 또한 정명(精明)하여 어지럽힐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이발(已發)과 미발(未發)은 굳이 크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 다만 이미 함양(涵養)하고 또 성찰(省察)하여 언제나 함양하고 성찰할 뿐이다."【34판 〈황순록(黃㽦錄)〉. 뒤에 같은 제자의 기록에도 이 설이 있다.】"미발 때에는 본래 존양(存養)해야 하지만 이발 때에도 존양해야 한다. 미발 때에는 본래 성찰(省察)해야 하지만 이발 때에도 성찰해야 한다."【35판, 〈오필대록(吳必大錄)〉】함양과 존양은 본래 미발과 이발에 통괄하여 말할 수 있지만 성찰은 미발과 이발에 통괄하여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도 아마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의론인 듯합니다."존양(存養)은 고요할 때의 공부이다. 고요할 때는 중(中)이니 지나침이나 모자람[過不及]이 없고, 치우치거나 기울어진 것도 없어서이다."【38판, 〈증조도록(曾祖道錄)〉】지나침이나 모자람은 움직일 때[動時]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요할 때[靜時]도 말해야 하니 주자가 이 단락에서 이미 분명하게 게시하셨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중용기의(中庸記疑)〉144)에서 이른바 "보통 사람의 고요함은 모자람[不及]이고 선사(禪師) 허발(許渤)의 고요함은 지나침[過]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참으로 실제의 명확한 의론인데 만약 이 단락을 인용하여 증거로 삼는다면 더욱 완비될 것입니다.물었다. "귀신(鬼神)의 덕(德)145)은 어떻습니까?" 말씀하셨다. "이것은 귀신의 실제로 그러한 리(理)를 말한 것이다."【권63의 22판, 〈왕역행록(王力行錄)〉】삼가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이는 곧바로 리(理)를 가지고 덕(德)을 풀이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을 말하여 귀신의 덕을 논한 것은 귀신의 실제로 그러한 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떻겠습니까?"'체물(體物)'은 물(物)로 체(體)를 삼음을 말한다. 이 물이 있으면, 이 성(誠)이 있다."【앞과 같은 판, 〈정단몽록(程端蒙錄)〉】'물(物)로 체(體)를 삼는다'는 말은 《중용장구(中庸章句)》의 '물의 체가 된다'는 말과 어세(語勢)가 주객(主客)이 딱 상반됩니다. 《중용장구》에서 말한 '물의 체가 된다'는 것은 음양(陰陽)의 두 기(氣)를 가리켜 말한 것이지 실리(實理)를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단락은 아마도 잘못된 기록인 듯합니다."'천하의 대본(大本)을 세운다'는 것은 고요하지만 한 순간도 중도(中道)에 맞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화육(化育)을 안다면 천리(天理)의 유행을 안다."【권64의 1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중용장구》 32장의 대본(大本)은 성(性)의 전체(全體)를 말한 것이니 1장의 고요함의 측면에서만 말한 대본(大本)과 같지 않기에 여기에서 '고요하지만 한 순간도 중도에 맞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 역시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 되어야 합니다.곡(曲)은 기품(氣稟)의 치우침[偏]이다.【앞과 같은 판, 〈황승경록(黃升卿錄)〉】《중용장구》에서는 곡(曲)을 선(善)한 단서의 발현의 치우침[偏]이라고 풀이하였으니 발현의 치우침은 발현의 한 단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병폐를 띠고 있다는 뜻이 아니니 곡(曲)을 기품(氣稟)으로 여긴 것은 논의가 있어야 할 듯합니다. 대체로 치우침[偏]이라는 것은 온전함[全]의 반대이니 체(體)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은 그 지성(至誠)이고 그 다음은 치우친 것을 지극히 하여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뒤의 13판 〈요겸록(廖謙錄)〉에서 '곡(曲)은 일을 따라 힘을 쓰는 것으로 일마다 그 극치까지 미루어 다한다[曲是逐事上著力 事事上推致其極]'고 한 풀이가 이미 매우 명백합니다. 그리고 14판 〈심한록(沈僩錄)〉에서는 주자가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품수한 후박(厚薄)으로 곡(曲)을 풀이했던 것을 놓고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이 말했던가'라고 하셨고 15판 〈정가학록(鄭可學錄)〉에서는 정자(程子)의 '치우침이 넘치는 곳에서 발현한다[偏勝處發]'는 설을 타당하지 않다고 여겼으니, 여기에서 더욱 알 수 있습니다.'명(明)과 동(動)'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한갓 밝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밝음이 쓸 데가 없고 한갓 행하기만 하고 밝지 않다면 행함이 지향하는 바가 없게 된다."【16판, 〈동백우록(童伯羽錄)〉】동(動)을 행(行)으로 보는 것 또한 《중용장구》의 본뜻이 아닙니다."성(誠)은 자연스럽게 이루는 도리이다." 또 말씀하셨다.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것은 이를테면 저 초목(草木)이 수많은 뿌리와 그루, 가지와 잎, 줄기가 있는 까닭은 곧 그것이 실제로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수많은 뿌리와 그루, 가지와 잎, 줄기가 있게 된 것이니 이것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당신에게 본래부터 실제로 있는 것이다."【16판, 〈심한록(沈僩錄)〉】"대체로 이 실리(實理)가 있으니 이 하늘이 있고 이 실리가 있으니 이 땅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실리가 없다면 곧 이 하늘이 없고 이 땅도 없다. 만물이 모두 이와 같으므로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고 하였으니 이는 본래 스스로 이 사물을 이룬다는 것이다."【17판, 〈섭하손록(葉賀孫錄)〉】"'성(誠)은 사물의 시작과 끝이다[誠者物之終始]'라는 말은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한 구를 해석한 것이다."【앞과 같음】《주자어류》의 여러 기록에는 모두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말을 리(理)를 주로 한 말로 여겼으니, 심(心)으로 말한 《중용장구》와는 같지 않다."내가 예전에 성(誠)을 말한 것은 병폐가 있다. 대체로 성(誠)과 도(道)는 모두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는 데 머문다.146) 만약 구설(舊說)대로라면 성과 도는 두 물(物)이 된다."【17판, 〈황의강록(黃義剛錄)〉】성(誠)과 도(道)가 두 물(物)이라는 구설(舊說)은 심(心)으로 성(誠)을 말하고 리(理)로 도(道)를 말한 《중용장구》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대개 성과 도가 비록 심과 리의 구분이 있지만 실심(實心)은 도를 행하는 근본이 되고, 도리는 반드시 실심을 기다린 뒤에 행해집니다. 그래서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과 도가 어찌 일찍이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는 데 머물지 않은 적이 있어 기어코 병폐로 보고자 하겠습니까?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는 매양 이 문단에 근거하여 정론(定論)을 삼고서 《중용장구》를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주자가 구설에 병폐가 있다고 말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병폐가 있다고 말하셨지만 끝까지 《중용장구》를 고치지 않으셨으니 주자가 도로 구설을 주장했음을 또한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 뜻은 우리 선생님의 〈중용기의(中庸記疑)〉에서 이미 자세히 변론하였는데, 아마도 정확한 의론인 듯합니다."'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也]' 뒷문장에 '성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는 이 두 구는 앞의 한 구를 풀이하였다. 실제로 이 리(理)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있고 실제로 이 리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다."【앞과 같은 판, 〈임기손록(林夔孫錄)〉】이 역시 리(理)를 주로 하여 말하였으니 앞의 〈심한록(沈僩錄)〉, 〈섭하손록(葉賀孫錄)〉과 같습니다.물었다.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不誠無物]'는 것은 아마도 인심(人心)이 이 리(理)를 실(實)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말한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아니다. 뒷문장에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君子誠之爲貴]'고 말한 것은 사람이 마땅히 이 리를 실하게 해야 함을 바야흐로 말한 것이다. 만약 '실리(實理)가 사물의 끝과 시작이 된다고 한다면, 이 리가 없으면 이 사물도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이 리를 실하게 해야 한다."【20판, 〈동수록(董銖錄)〉】'성하지 않음[不誠]'을 이 리(理)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중용장구》와 다릅니다. 대개 '무(無)' 자와 '불(不)' 자는 자연스러움과 작위(作爲)의 구분이 있으니 일괄적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앞 판의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 "'불(不)' 자는 누가 그것을 못한다는 말인가? 반드시 어떤 사람이 있어 그것을 못해야 비로소 된다."147)라고 하신 데에 이미 매우 분명합니다."근본은 예의(禮儀) 삼백(三百)이고, 말단은 위의(威儀) 삼천(三千)이니, 삼백은 대덕돈화(大德敦化)이고 삼천은 즉 소덕천류(小德川流)이다."148)【28판, 〈오수창록(吳壽昌錄)〉】《주자어류》 앞뒤의 여러 기록 및 《중용장구》에 근거하면 삼백(三百)과 삼천(三千)은 마땅히 말단이 되고 소덕이 되어야 하니 이는 아마도 잘못된 기록인 듯합니다.물었다.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지(智)와 총명예지(聰明睿知)는 두 종류라고 생각됩니다. 예지(禮智)는 자연스러운 성으로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고 예지(叡智)는 성인의 총명한 덕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말씀하셨다. "단지 이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34판, 〈황의강록(黃義剛錄)〉】예지(禮智)의 지(智)는 사람마다 똑같이 품수한 것이고 예지(睿知)의 지(知)는 성인이 홀로 타고난 것이니 어찌 하나의 사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였으므로 그 심(心)과 리(理)가 혼연히 일치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의 사물이라고 말한 것일 뿐인 듯합니다. 近日閒中, 專看《語類》一部, 非惟格論至訓, 警人心目, 幷與當日先生之精神風彩而呈露, 宛若親承謦欬於紫陽․雲谷之閒, 而不知千載之爲遠, 其感發易入, 殆不遜《全書》之出於手筆者也. 顧其出於當時之方言者, 詰屈䵝澀, 有難曉通. 然此則容有非精義攸繫, 庶可默會大意, 至若肯綮之不容不講, 而未逹於窽啓者, 安敢蓄疑不問, 抱終身之氷炭哉? 茲欲隨疑隨錄, 連續求批, 固知耄年酬答, 極涉難安. 但先生之於《語類》, 世所稱如誦己言者, 就中若難若易, 必有所宿究, 而不至大家費神者. 故敢率爾冒進, 至於批送之早晚, 非所拘也.徐子融問: "附子熱, 大黃寒, 是氣質之性." 陳才卿謂 : "本然之性." 先生曰: "子融認知覺爲性故, 以此, 爲氣質之性.【唐本 四之五板. 廣錄】二物寒熱之性, 是元氣初來地底, 不是區分美惡偏全, 則烏可貶作氣質不性之性? 故朱子, 於此不以爲氣質性, 而做本然性. 然若直以爲通天下一性之性, 則又安得有寒熱之相殊也? 願賜明剖○ 先生答書曰: "附子熱, 大黃寒, 是天地本然之理, 非可以弗性而反之者也. 二物用以療疾, 而利人, 利人仁也, 療疾義也, 仁義豈非通天下一性之性乎? 其寒熱之相殊, 以陽健陰順例之, 無可疑矣."他元不曾稟得此道理, 惟人則得其全 上同此段似爲湖邊人物性偏全之證. 然以下文引呂氏物有近人之性人有近物之性之語觀之, 不曾禀得此道理, 蓋謂物未禀能全五常之理, 惟人得其全, 蓋謂人獨得能全五常之理也. 此若謂人物本然性禀賦偏全之異, 則偏者元自是偏, 全者元自是全, 何得有近人近物之駁雜哉?○ 先生答書曰: "元不曾禀得此道理, 此以下文物有近人之性人有近物之性觀之, 分明是就發用處, 指其不能全者言.《通書解》言性焉者聖人獨得於天, 則衆人不曾稟得此性焉之道理, 可推而知也. 來示槩得之."問: "人有常言, 某人性如何, 某物性如何, 某物性熱, 某物性冷, 此是兼氣質與所稟之理而言否?" 曰: "然."【四之二十板僩錄】附子熟, 大黃寒, 卽五板廣錄, 所謂本然性者, 而今謂物性熱冷, 兼氣質與所禀之理而言, 則又似看做氣質性, 而其云所禀之理者, 又若本性之謂. 然至於某人性如何, 明是氣質性, 而幷擧對言, 則其看做氣質性, 而不做本然性也, 明矣. 然則所禀之理, 果何所指也? 廣僩二錄, 果何所適從? 且疑人性如何, 是緩急剛柔美惡萬般者也, 物性熱冷, 是元來如此, 不及區分美惡者也, 一例比同, 或非其類.○ 先生答書曰: "先生嘗云'天地健順, 如人氣質【帶著性字看】', 此條之言某人性如何者, 以某人性孝, 某人性忠厚, 此是兼氣質與所稟之理而言. 如此看, 則似可通, 未知如何."理在心中, 心包蓄不住, 隨事而發. 恰似那藏相似, 除了經函, 裹靣點燈, 四方八面皆如此光明燦爛.【五之四板廣錄】凡朱子說中, 言光明於理處, 他皆有可說者, 此段則以經函喩心, 點燈喩理, 似直以光明言理者. 然不審如何看, 可以活絡無礙耶?○ 先生答書曰: "先生嘗論明德云 '道理在心裹光明照徹, 無一毫不明【此止】.' 道理是沖漠無眹底, 如何有光明? 但就心上指點, 故亦可爲此說. 今此段首言心與理一, 繼而又言理在心中, 終之以光明燦爛, 恐無礙, 如何?"許多道理, 昭昭然者屬性【五之十三板】言昭昭於性分, 可疑. 然若以萬理燦然備具之意看, 則無害否?○ 先生答書曰: "此等若不活化看, 恐易流於異學之認昭昭靈底, 以爲性與太極矣. 此段文意義未瑩."問: "明德便是仁義禮智之性否?" 曰: "便是"【十四之十二板敬仲錄】性若果是明德之全體本色, 則不但曰便是, 而必當曰卽是. 蓋以性只是明德中所具者, 而非全體本色, 故不直曰卽是, 而但曰便是. 下十六之一板㽦錄便是天之所命謂性者, 及四板道夫錄性便是明德, 似當同此例看.○ 先生答書曰: "恐當如來示."這个道理, 在心裏光明照徹【同上】以其道理之在心裏也, 故和心而曰光明照徹, 恐非單言光照於道理也.○ 先生答書曰: "已見上. 昔年約齊有詩云'心光明處理光明', 說如是則善矣."光明之性 依舊自在【十五之二十五板大雅錄】詳此段問答, 以此心之體不可不明說下來, 更無明德是性之語, 此心之體, 卽明德也. 然則光明之性性字, 不作性理之性, 而只作體字義看, 如何?○ 先生答書曰: "似然, 而不能質言."這道理光明不昧, 此理湛然淸明【十六之二板僩錄】光明湛然, 心上著題語, 今以之語理, 誠若可疑. 然此兩句上文, 旣有長存此心一句, 則此理乃具於心之理也, 故可以言光明湛然. 若單言理, 則應不下此等字矣. 未知如何.○ 先生答書曰: "同上."這箇物事, 卽是氣【十六之十三板夔孫錄】先生曾有設問這个物事, 或云天命之性, 或云二五之氣, 或云虛靈之心, 宜子細究核. 竊詳此段語脈, 這个物事, 正指明命也, 天之明命, 卽人之明德也, 天之所命, 人之所得者, 乃虛靈神明之心也. 故曰'這个物事卽是氣.' 如此看, 則全段語脈, 節節皆通. 如作天命之性, 則性卽理也, 安容復有許多道理, 藏在這裏? 如作二五之氣, 則佛氏之所理會, 老子之所把住, 果皆不就自身上討得 而遠求諸天地之陰陽五行耶? 如此看, 則節節見礙, 恐終不通. 但各正性命以下, 有難渙釋者, 豈以性命心之所具者故混淪說去, 不相礙乎? 抑又曰以下立言地頭, 稍與上段異否?○ 先生答書曰: "這箇物事, 直認做性, 則佛老何曾見得到此? 昔年嶺南柳遠重ㆍ宋鎬坤ㆍ宋鎬完ㆍ宋在洛諸人, 自錯看了此句, 便爭相詬, 余爲明氣之學, 言論氣象, 絶不類書生, 甚可怕也. 今來示似得之, 但恐撞著此輩人, 喫得一場怪擧也. 又曰以下, 愚亦未瑩. 但以下段觀之, 會說話行動人心道心皆是天之明命, 則先生之意, 決非如柳宋諸人之見也."知之有未盡, 必至於自欺.【十六之十二板賀孫錄】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上同道夫錄】所以不自欺, 須是見得分曉.【上同祖道錄】自欺, 據《大學章句》, 是旣知之後, 不實用其力者. 所謂欺者, 不實之意, 欺已明之知也. 故妄竊以爲自欺者非知之過, 乃意之罪, 非無心之失, 乃有心之私矣. 今觀《語類》諸段, 終是重知一邊, 如此, 則自欺云者, 乃格致未精, 非用力不實也. 不勝區區之疑, 非惟此也. 考之或問, 亦然. 然若以章句知爲善而去惡, 而心之所發有未實, 爲定論, 則《語類》ㆍ《或問》, 不相强合也. 至於章下註心體之明, 有所未盡云云, 正以誠意之別立單傳, 而不連致知. 恐人不承上章而通考之. 故推原說, 知有未盡, 則意不可得以誠而自欺, 乃不誠之大關. 故自然連帶說去, 恐非以知未盡說自欺之實病也. 若其實病, 則下文已明. 而不謹乎此一句, 可以當之矣, 如此看如何?○ 先生答書曰: "極是極是.《語類》《或問》別作一義看如何? 此段下文有義, 亦略有作爲語, 此句當如何看? 與《論語註》'道體無爲'之云, 似相礙.問: "健順在四端何屬,"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十七之五板胡泳錄】天之陰陽五行, 人之健順五常, 其理一也. 在天之五行, 木火屬陽, 金水屬陰, 五行一陰陽也. 以此例之, 在人之五常, 仁禮當屬健, 義智當屬順, 而五常一健順也. 今於健順四性分屬之問, 只以四性陰陽之分屬答之, 而遺却健順二字何義?○ 先生答書曰: "說陰陽, 則健順在其中. 故不復細論歟."人物皆禀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禀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禀得那順底性. 又如草木直底硬底是禀得剛底, 軟底弱底是禀得那順底.【上同僩錄】健順五常定是本然, 今此狗子草木1)二欵云云, 却似說氣質性. 如以人字換却狗子草木字, 而曰人之剛悍會害人底是禀得那健底性, 慈善不會害人底是禀得那順底性, 又曰人之直硬底是禀得那健底, 軟弱底是禀得那順底, 果可以本然性看否?○ 先生答書曰: "此段恐記錄失眞. 又上文陽之氣陰之氣二氣字, 以下句五行之理推之, 無乃當作理歟."天地之中是未發之中, 天然自有之中是時中.【十八之二十二板祖道錄】上段僩錄言"天地之中, 只可以天所降言, 不可以人所受言." 此段却言"天地之中是未發之中." 未發之中, 豈非在人之大本乎? 然上段以天人之所降所受對擧而分言, 此段以未發之時中對擧而分言, 立言地頭旣異, 故所指亦差殊. 如此看, 可乎?○ 先生答書曰: "所論是."《中庸》專言智.【十九之一板泳錄】知仁勇,《中庸》之大旨而其曰專言智者, 何也? 以明道之書故, 以智言歟?問: "三仕三已不爲仁, 管仲又却稱仁是如何," 曰: "三仕三已是獨自底, 管仲出來, 畢竟是做得仁之功."【二十之二十二板南升錄】據孔子本意․朱子《集註》, 子文之未仁, 以其不能當理無私也, 管仲之許仁, 以其能一匡天下也. 一許一否所指各異, 初非以獨自無爲貶子文, 出做有爲褒管仲也, 而《語類》之云如此, 後學若主此說, 則恐至於輕自修重事功之弊也.問: "雖或以爲未學, 我必以爲已學." 曰: "畢竟是曾學未學?" 曰: "先生所謂非其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曰: "看得是."【二十一之十八板南升錄】子夏之言, 不免有弊. 然今有這樣人, 若不是他學問來, 又不是天資高, 安能如此.【十九板夔孫錄】子夏本言, 却作不須學底意思, 吳才老謂其弊至於廢學.【同板榦錄】子夏此說話得矯枉過直.【同板賀孫錄】據不免有弊, 至於廢學, 矯枉過直等說, 其以吾必謂之學學字, 只作明倫看, 而斯人也, 果是未曾學問之人也. 但據必其務學之至, 若不是學問來, 安能如此等說, 則又以此學字作學問看, 而斯人也, 已曾學問者也. 至於《論語集註》, 又直以必其務學之至之一句爲斷案, 則尤較然矣. 曾見炳菴主集註必其務學之至語, 作已曾學問人看, 而以子夏之言爲無弊, 至謂吳氏錯認子夏本意, 此說甚有理. 但如此, 則子夏之言太無骨子, 不足爲力於重本抑末之地. 是又如何?問: "思無邪, 伊川說作誠是否?" 曰: "誠是在思上發出, 詩人之思, 皆情性也. 情性本出於正, 豈有假僞得來底? 思便是情性, 無邪便是正. 以此觀之, 三百篇皆出於情性之正."【二十三之十二板卓錄】《論語集註》《語類》諸段, 皆謂'思無邪'是使讀詩者得其情性之正. 惟此段, 獨以詩人之情不假僞者當之, 而謂三百篇皆出於情性之正. 如淫女蕩子之詩, 安得以其不假僞而直寫情, 謂之出於正耶? 且不問所發之正與不正, 但以其情不假僞, 謂之誠, 非伊川本意. 此段恐當爲未定論.思無邪, 不必說詩人之思及讀詩者之思, 大凡人皆當思無邪.【十三板傑錄】此段, 恐人以思無邪, 但作作詩讀詩者事, 而不作衆人所共由之事, 故言此以救其弊. 如曰思無邪是天下萬人所當做底事, 只要就自己情性上, 求得其正, 不必徒說是詩人之思及讀詩者之思, 以爭無益之辨也.問: "淸和任, 也只是器否?" 曰: "這是成就得偏, 却不是器."【二十四之十三板榦錄】旣曰偏而又云不是器者, 可疑. 然據上板明作錄下板一之錄, 則此段不是器云云 似非定論.問: "忠信爲周." 曰: "忠信爲周, 只縁《左傳》周爰咨詢, 指作忠信, 後人遂將來妄解, 最無道理."【二十四之十七板恪錄】問: "忠信2)爲周." 曰: "忠信所以周也. 若面前背後, 不誠實, 則不周矣."【同板一之錄】'周比', 只以公私二字, 兩下說破然後, 恰恰襯點, 移易不得. 忠信覺不合公字之義, 故恪錄云: "無道理." 然人不忠信, 則事皆無實, 雖欲公而爲周, 得乎? 故一之錄, 却云"不誠實則不周." 如此看, 則二錄可幷行而不相悖歟.問: "利仁固是審於旣發, 莫更著謹於未發否?" 曰: "若未發時自著不得工夫, 未發之時, 自堯舜至於塗人, 一也."【二十六之四板賀孫錄】堯舜之自然未發, 塗人之偶然未發, 固自著不得工夫, 自利仁以下之未發, 上之不及自然, 下之不可謂偶然. 必其靜時, 自有致中一段工夫, 然後有以體立而用行. 今槩曰未發時著不得工夫, 則大本無由得立, 而學問之道, 或幾乎偏而不全. 然朱先生之訓, 而豈有是耶? 後學妄疑則然爾.問: "以己推己之辨." 曰: "以己是自然流出. 推己便有折轉意, 如己欲立而立人, 己欲逹而逹人."【二十七之二十一板㝢錄】己立立人, 己逹逹人, 以《論語集註》及下淳義剛二錄觀之, 定是以己之事, 而此作推己事者, 恐當爲未定論.問: "雖全體未是仁, 苟於一事上, 能當理而無私心, 亦可謂一事之仁否?" 曰: "不然. 纔說箇仁字, 便以全體言. 若一事上能盡仁, 便是他全體是仁了. 若全體有虧, 這一事上, 必不能盡仁, 纔說箇仁字, 便包盡許多事, 無不當理無私了.【二十八之十板僩錄】旣以當理無私爲仁, 則全體之當理無私, 固是全體之仁, 一事之當理無私, 亦不害爲一事之仁, 先生之禁之, 何也? 必待全體而後, 得仁之名, 則顏子之三月不違仁, 亦不可謂三月之仁歟? 顏子固非全體無虧者, 謂之一事上, 必不能盡仁, 則恐不然, 未知若何? 至於卅三卷十九板可學錄, 則曰"一事純於仁, 可謂之仁. 殷有三仁, 亦未見其全體, 只是於去就之際, 純乎天理. 故夫子許之." 恐此當爲不易之論.胡文定春秋說云: "輒去而從父, 則衛之臣子輔輒以拒蒯聵.", 是錯了.【卅四之卄七板燾錄】《大全》〈答范伯崇書〉, 曰: "輒若有避父之心, 則衛之臣子, 當拒蒯聵而輔輒, 與此條不同. 蓋輒誠有避父之心, 則衛之臣子, 當立他公子, 而拒蒯聵, 乃所以遂輒順父之心, 處事之義, 固如是矣. 且雖欲輔輒而拒蒯聵, 輒豈肯安於輔己而拒父乎? 必將逃去而後已, 此又勢之所不行也. 然則恐當以《語類》此條爲定論.太王見商政日衰, 知其不久. 是以有剪商之意, 亦至公之心也.【卅五之三板壯祖錄】至如紂之虐民而有剪之之心, 則可謂至公. 太王旣不當紂之時, 則其謂至公者, 不無疑.'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便是未到不思而得處, '雖欲從之, 末由也已', 便是未到不勉而中處.【卅六之卄一板㽦錄】'如有所立卓爾', 是所見益親處, '雖欲從之末由也已', 是未逹一間處, 未能不思而得, 不勉而中, 恐當俱在未逹一間中.若子路ㆍ冉求ㆍ公西華之所爲, 曾點爲之有餘.【四十之四板賀孫錄】充曾點之所見, 三子且休說, 堯舜事業亦可爲之. 但以其平日簡迂之性, 放誕之行, 安能治千乘之賦, 足一邦國之民, 贊邦國大禮乎? 朱子固亦曰: "使曾點做三子事, 未必做得."克己復禮, 閒不容髪無私便是仁.【四十一之一板道夫錄】克己則禮自復, 非克己之外 別有夫禮.【同板賀孫錄】克去己私了, 致這裏恰好著精細底工夫. 故必又復禮方是仁. 聖人却不只說克己爲仁, 須說克己復禮爲仁.【三板去僞錄】克去己後必復於禮, 然後爲仁. 若克去己私, 便無一事, 則克之後須落空去了.【五板時擧錄】克己便是復禮, 不是克己了方待復禮, 不是做兩截工夫.【八板植錄】朱先生一人, 而二說之不同若是, 學者何所適從? 竊以爲人只有天理人欲兩途, 不是天理便是人欲, 無不屬天理, 又不屬人欲底時節. 固可曰'克去己私, 便是復禮.' 然此是大綱說也, 若細論之, 則人自有除私欲, 而不能當理底時節. 如明心靜坐, 而不能保守道體公心, 應事而或失其宜者是也. 況禮者, 天理之節文, 節文者, 無過不及, 而十分恰當者也. 惟其合於十分恰當也, 故可以當至難之仁名, 至於以一日之暫, 而得天下之大, 而歸仁焉. 豈容一克己而便自合十分恰當乎? 故《集註》曰: "勝私欲而復於禮," 觀於下一而字, 可以知用工於克復之閒矣.問: "'吾其爲東周乎!', 使聖人得行其志, 只是就齊魯東方做起否?" 曰: "也只得就這裏做." 又問: "其如周何?" 曰: "這般處難說, 只看挨到臨時事勢如何. 若使天命人心有箇響合處, 也自不由聖人了, 使周家修其禮物, 作賓于王家, 豈不賢於赧王之自獻其邑, 以滅亡乎?"【四十七之三板僩錄】'吾其爲東周', 恐但謂行文武周公之道於東魯. 初未有受命代周之意也.《集註》只言'興周道於東方', 意亦如此. 如此看而止, 則都無事矣.《語類》'其如周何'之問, '只看事勢'之答, 似皆不當豫言於聖人心事之外者, 未知朱子何故隨問隨答, 至於赧王滅亡云云乎? 竊不勝區區之疑.問: "'灑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所以然者, 是如何?" 曰: "若無誠意, 如何灑掃應對?"【四十九之十一板節錄】以誠意爲所以然, 如非記誤, 則是一時說.惻隱羞惡, 也有中節不中節. 若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 便是不中節.【五十三之九板淳錄】當惻隱而不惻隱, 當羞惡而不羞惡, 當辭遜而不辭遜, 是其所非, 非其所是者, 是皆失其本心.【十六板廣錄】當惻隱而不惻隱, 當羞惡而不羞惡者, 旣是失其本心, 則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者, 亦是失其本心. 失其本心者, 直是不仁不義已矣. 至於當惻隱而惻隱之時, 有過與不及, 當羞惡而羞惡之時, 有過與不及者, 然後乃可謂之不中節也. 由此言之, 發當其地而有過不及之惻隱羞惡, 不害爲四端也, 發非其地之惻隱羞惡, 恐不當以四端論也. 然則淳錄所謂'惻隱羞惡, 也有中節不中節'者, 固當爲定論, 其若不以下二十字, 恐有合商量者, 未知如何?四端有正不正, 如暴戾愚狠, 便是發錯了惻隱羞惡之心, 含糊不分曉, 便是發錯了是非之心. 如一種不遜, 便是發錯了辭遜之心. 日間一正一反, 無往而非四端之發.【十六板方子錄】暴戾愚狠, 不遜含糊, 正是不仁不義無禮不智者, 初非可以四端之正不正論者, 而猶謂之四端之發者, 以其惻隱之反爲暴戾, 羞惡之反爲愚狠, 辭讓之反爲不遜, 是非之反爲含糊故耳. 正如所謂'善固性也, 惡亦不可不謂之性也'. 朱子之爲此言也, 蓋欲使學者, 審察於日間念慮之正與不正, 必治其不正者, 而反之正焉爾. 如此看, 無害否?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 問: "看得來, 如喜怒愛惡欲, 却似近仁義." 曰: "固有相似處."【二十板廣錄】旣云七情是氣之發, 又以七情爲仁義, 則七情亦可曰理之發. 謂七情理發而可, 則謂四端而曰氣發 宜亦可也. 蓋此不過以四端善一邊, 故屬於理之發, 七情兼善惡, 故屬於氣之發, 非謂四端七情之發於理發於氣, 各自不同也. 此乃我東四七說異同之所自出處, 未知以退農二先生之精詳, 於此段, 曾如何看會也?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五十五之九板燾錄】孔子旣稱子路之才, 可治千乘之賦, 子路又嘗自言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閒,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3), 且知方也. 三年爲之, 猶且如此, 況四十年之久, 如管仲之於齊國, 則其功烈, 豈下於管仲哉? 斯義也, 金仁山已言之, 而我先生嘗以朱子之載楊氏說於《孟子集註》, 爲未安者也. 今考《語類》, 非惟孟註爲然, 朱子之所自言者, 亦如是, 則楊氏之說, 卽朱子之言也, 恐又有不敢質言者.執中無權之權稍輕, 嫂溺援之以手之權較重, 亦有淺深也.【五十六之八板僩錄】事固有大小, 均之爲權而得中也, 中者, 理之恰好處. 大事也有恰好處, 小事也有恰好處, 其恰好處則一也, 似不可以事之大小, 分權之輕重, 而朱子說如此, 可疑.問: "'鄕隣有鬪者, 雖閉戶, 可也.' 若鄕隣之鬪, 有親戚兄弟在其中, 豈可一例不救?" 曰: "有兄弟固當救, 然事也須量大小. 若只是小小敺鬪, 救之亦無妨, 若是有兵戈殺人之事, 也只得閉戶不管而已."【五十七之十七板僩錄】同室有鬪, 孟子固曰"被髮纓冠而救之." 兄弟豈非同室之人乎? 胡爲而有此問答也? 且兄弟方在兵戈禍難之中, 而我乃閉戶不管, 豈不大害義理? 此等處恐是記錄之誤.問: "堯舜揖遜, 雖是盛德, 亦不得已否?" 曰: "然."【五十之八板無名錄】天生聰明睿知, 固欲以作民君師也. 古今有天下者, 不傳賢而傳子, 非所以體天意. 堯舜之揖遜, 實公共當然之事. 故孟子曰"天與賢則與賢, 與子則與子." 此謂之不得已者, 未知其義何居, 而朱子然之, 可疑.犬牛人得於天者, 未嘗不同, 惟人得是理之全, 至於物, 止得其偏. 今欲去犬牛身上, 全討仁義, 便不得所以謂性卽理. 便見得惟人, 得是理之全, 物得是理之偏. 告子止把生爲性, 更不說及理. 孟子却以理言所以見人物之辨. 【五十九之二板賀孫錄】人之所以異於物者, 以其得正氣. 故具得許多道理, 如物則氣昏而理亦昏了.【同板燾錄】物也有這性, 只是稟得來偏了, 這性便也隨氣轉了.【三板 義剛錄】生之謂性一章, 是湖論人物性異之所自出處. 凡此《語類》諸段, 若可謂其說之證左者. 然孟子之爲此性異之論也, 蓋以告子以人物之生槩同者, 遂謂之同一性也, 則是認氣爲性, 而害道大矣. 故辨之曰"所謂性者, 非知覺運動之氣也, 乃仁義禮智之理也. 知覺運動之氣, 人與物雖若不異也, 仁義禮智之理, 豈物之所能全哉?" 其意蓋曰'人物之知覺運動, 雖同一生也, 而其正通偏塞之不同, 正如同一白也, 而羽雪之白, 輕重旣差, 雪玉之白, 虛實亦殊, 偏且塞也.' 故物不能全, 仁義禮智之理. 正且通也, 故人則全仁義禮智之理. 全與不全之閒, 性之不同判焉. 此就人物有生之後, 氣質發用處而謂之異也, 非謂人物有生之初, 本性稟受時, 已自不同也. 如使告子, 只見氣之發用不同, 而爲人物性異之說, 則孟子又必立性同之論而辨之. 曰: "氣之有通塞, 理雖有偏全, 理之至善, 非氣之所囿." 天命之性, 人物一源, 初未嘗因氣而有異矣. 然則賀孫錄物得是理之偏, 義剛錄物也有這性, 只是稟得來偏了. 諸說只以《集註》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一句, 看定而活絡之, 則無礙矣. 苟以辭而已, 而眞以爲物得其偏, 禀得來偏, 則《集註》當曰"豈物之所全得", 而不當曰"豈物之所得而全矣." 正以物得氣之偏者, 而其發得此性者亦偏. 故現據理之偏發者, 強名之曰: "物得理偏性偏也." 栗翁所謂氣之偏, 則理亦偏, 所偏非理也, 氣也一語, 已是八字打開. 湖家雖欲引以爲性異之證, 得乎? 況其所謂犬牛身上, 全討仁義不得, 及氣昏而理亦昏, 這性隨氣轉了等語, 分明就氣稟用處言者乎? 未知《孟子》本文《語類》諸段之義, 如此看, 則無害耶? 但燾錄中人之異於物者, 具得許多道理, 具字胡不作全字? 此却可疑.○ 犬牛人性, 旣是因氣而異者, 故《大全》及十一板謨錄, 又以爲氣質性. 然氣質性有兩股, 偏全之性, 不性之性是已. 偏全之性, 主善一邊而言, 不性之性, 兼善惡而言. 此所謂氣質性, 恐只可作偏全之性, 不可作不性之性也.○ 此性之異, 孟子只擧犬牛人三箇, 朱子又只分人物二層. 然推而廣之, 則人之與人, 物之與物, 人人物物箇箇層層, 皆當一樣看, 未知如何?心與性, 只一般, 知與盡不同. 所謂知便是心了. 問: "知是心之神明, 似與四端所謂智不同." 曰: "此知字義又大. 然孔子多說仁智, 如元亨利貞, 元便是仁, 貞便是智. 四端仁智最大, 無貞則元無起處. 無智則如何是仁?《易》曰: '大明終始', 有終便有始. 智之所以爲大者, 以其有知也."【六十之二板廣錄】此段上下文知字與大字, 同不同, 我先生曾有設問. 竊意上四知字, 心之知覺之知, 屬乎氣也. 下'有知'之知, 性之分別之知, 屬乎理也. '知字義大'之大, 以其妙衆理應萬事, 非但如分別之知之止爲性之一端也. '最大''爲大'二大字, 謂其大於亨利也, 未知不戾於尊見否.○ 知與盡不同之云, 恐是以盡心做力行, 如下賀孫以下諸錄之意. 然若使只有盡心知性一段而已, 則宜可如此說, 下文旣復有存心養性一段, 則一知一行之所主自在. 此所以《語類》盡心力行之說, 終爲集註之所棄也.問: "'莫非命也'此一句是總說氣稟之命, 與'天命謂性'之命同否?" 曰: "以孟子之意, 未說到氣稟, 此句只是說人物之生, 吉凶禍福, 皆天所命." 【七板僩錄】性與禍福均是命, 自天而禀於人. 然性者, 人人之所同, 何也? 天之所命, 人之所禀者, 是理也, 理則一本故也. 禍福者, 人人之所異, 何也? 天之所命, 人之所禀者, 是氣數也, 氣則萬殊故也. 今以吉凶禍福之命, 未說到氣稟者, 可疑. 下十二板人傑錄曰: "以非義而死者, 固所自取, 是亦前定, 蓋其所稟之惡氣, 有以致之也." 此則又是說氣禀, 恐此當爲定論.'由氣化有道之名'. 如天道․地道․人道․父子之道․君臣之道․率性之謂道, 是也.【十板夔孫錄】'由氣化有道之名'. 如率性之謂道, 性只是理, 率性方見得是道, 這說著事物上. 且如君臣父子之道, 有君臣父子方見得這箇道理.【同板植錄】'由氣化有道之名', 率性之謂道, 管此一句.【同板賜錄】'由氣化有道之名', 恐是言天道之流行. 正《易》所謂'一陰一陽之謂道'也. 此是說繼善之事, 不及說成性之事. 成性且不及說, 況說率性之道, 無或太早乎?心者天理在人之全體, 性者天理之全體.【十二板淳錄】竊以爲性者天理在人之全體, 心者主人身而具天理之全體, 則似益穩備如何?在天言之, 皆是正命.【同板恪錄】據下文在天之命却自有差, 及下板賀孫錄天自失其正命之語, 皆是正命之論, 恐未爲定說.'性也有命焉', 性字兼氣稟而言.【六十一之四板伯羽錄】此性字, 兼物欲而言.【五板燾錄】此性字, 正是氣稟物欲爲主者, 當曰"卽指氣欲而言", 而必下兼字, 何也? 蓋此性雖是氣欲爲主, 而旣謂之性, 則性之得名, 以其爲理也, 故指其自然之理附氣如此者, 而定其名. 指其氣欲之用事者, 而謂之兼, 何也? 指理爲性之名, 不可易也, 正如浩然之氣, 雖是道義爲主, 而氣之名目不可易也, 故不直取爲主之道義而名之, 必指其爲配之氣, 而定其名也.《論語集註》"此所謂性, 兼氣質而言", 亦當同此例看, 未知如何?'性也有命焉', 此命字却合理與氣而言.【六板銖錄】貧賤者之不能如願, 安於氣數之命, 富貴者之亦有限制, 安於理義之命. 此命字之合理氣看, 說得完備. 上四板賀孫錄之就理上說, 下七板義剛錄之指理而言者, 恐皆有未備.'操則存舍則亡', 心安有存亡? 此正人心道心交界之辨. 人心是此身有知覺有嗜欲者, 如所謂'我欲仁''從心所欲''性之欲也'. 苟父一虐其子, 則子必狠然以悖其父, 此人心4)之所以危也.【六十二之九板十板大雅錄】天下無無人心之上知, 又無亡其心之聖人, 則以操舍存亡, 語人道心, 明是未定說.○ 我欲仁之心, 是原於性命者, 則元非人心, 狠然以悖其父, 亦豈止於人心之危? 恐俱屬記誤.知仁勇, 許多爲學底道理.【十一板僩錄】此道理, 恐是方法之意, 與大學之道之道字同, 與率性之謂道之道字不同.牛之性順, 馬之性健, 卽健順之性, 虎狼之仁, 螻蟻之義, 卽五常之性. 但只稟得來少, 不似人稟得來全.【十二板燾錄】此段似是說物不得全稟五常, 與朱子平日人物性同之論不同, 何也?問: "木之神爲仁, 火之神爲禮." 曰: "神字猶云意思也." 【同板僩錄】仁義禮智理也, 當曰木之理仁, 火之理禮, 而今以神爲仁禮者, 可疑. 且其云意思者, 亦恐非可言於理之無情意者.據伊川之意, 人與物之本性同, 及至稟賦異. 蓋本性理也, 而本賦之性, 則氣也. 性本自然, 及至生賦, 無氣則乘載不去, 故必頓此性於氣上, 而後可以生. 及至已生, 則物自稟物之性, 人自稟人之氣. 【十四板可學錄】此段所論, 似是說氣質之性, 然伊川旣以率性之道, 通人物而言, 則安得以氣質性爲可率者耶? 若做本然性看, 則'人與物之性同禀異', 及'物禀物性人禀人氣'等說, 又不通. 未知當如何看?天命之性, 人受其全, 物受其偏. 【十五板至錄】此亦恐與上十二板燾錄之意同.不睹不聞時, 固當持守, 然不可不察, 謹獨時, 固當致察, 然不可不持守.【二十三板廣錄】不睹不聞之時, 無形無眹, 何事可察? 若非記誤, 是未定之論.伊川謂當中時, 耳無聞目無見, 然聞見之理在始得.【三十二板淳錄】此無聞無見, 謂無有心之聞見, 非謂無自然之聞見也. 上二十九板淳錄, 朱子固曰"靜時, 耳目亦必有自然之聞見," 中庸或問又曰"未發時. 耳目當亦精明而不可亂."已發未發, 不必太泥. 只是旣涵養, 又省察, 無時不涵養省察. 【卅四板○營錄. 下同人錄亦有此說】未發時, 固要存養, 已發時, 亦要存養. 未發時, 固要省察, 已發時, 亦要省察.【卅五板必大錄】涵養存養, 固可通言於未發已發, 省察則不可通言於已發未發. 此恐亦爲未定論.存養是靜工夫. 靜時是中, 以其無過不及, 無所偏倚也. 【卅八板祖道錄】過不及, 不但言於動時, 亦當言於靜時, 朱子於此段, 已明揭矣. 我先生〈中庸記疑〉所謂衆人之靜是不及, 禪子許渤之靜是過者, 誠實際篤論, 若引此段爲正據, 則尤爲完備.問: "鬼神之德, 如何?" 曰: "此言鬼神實然之理."【六十三之卄二板力行錄】竊詳此非直以理訓德也. 但言此, 論鬼神之德者, 所以著鬼神實然之理也. 如此看如何?'體物', 言以物爲體. 有是物, 有是誠.【同板端蒙錄】'以物爲體'與《中庸章句》'爲物之體', 語勢賓主正相反.《章句》所謂'爲物之體'者, 指二氣而言, 亦非指實理也. 此段恐誤錄.立天下之大本, 是靜而無一息之不中. 知化育則知天理之流行. 【六十四之十二板賀孫錄】三十二章大本, 是所性之全體, 則與首章靜一邊之大本不同, 而此云靜而無一息之不中, 亦當爲未定說.曲是氣稟之偏【同板升卿錄】《中庸章句》, 訓曲以善端發見之偏, 發見之偏, 猶云發見之一端也. 是非帶病之意, 則以曲爲氣稟者, 恐有商量. 蓋偏者全之對也, 能全體者, 其至誠也, 其次則致其偏而就其全也. 下十三板謙5)錄, 曲是逐事上著力事事上推致其極之訓, 旣甚明白. 且十四板僩錄, 以或問所稟厚薄之訓, 爲何故如此說? 十五板可學錄, 以程子偏勝處發之說, 爲未安, 則尤可見矣.問: '明動' 曰: "徒明不行, 則明無所用, 徒行不明, 則行無所向."【十六板伯羽錄】以動做行, 亦非章句本旨.誠者, 是箇自然成就底道理. 又曰: "'誠者自成', 如這箇草樹所以有許多根株枝葉條幹者, 便是他實有. 所以有許多根株枝葉條幹, 這箇便是自成, 是你自實有底."【十六板僩錄】蓋有是實理, 則有是天, 有是實理, 則有是地. 如無是實理, 則便沒這天, 也沒這地, 凡物都是如此. 故云'誠者自成', 蓋本來自成此物.【十七板賀孫錄】'誠者物之終始', 是解'誠者自成'一句.【上同】諸錄皆以'誠者自成', 爲主理言, 與章句以心言者, 不同.某舊說誠有病. 蓋誠與道皆泊在'誠之爲貴'上. 若如舊說, 則誠與道成兩物也.【十七板義剛錄】誠道兩物之舊說, 似指以心言誠, 以理言道之章句也. 蓋誠與道, 雖有心理之分, 然實心爲行道之本, 而道理必待實心而後行. 故曰'誠之爲貴.' 如是看則誠與道, 亦何嘗不泊在誠之爲貴, 而必欲做病看也? 三山齋每據此段爲定論, 而不從章句, 蓋以其云舊說有病也. 雖云有病, 而終不改定章句, 則其還主舊說, 亦可知已. 斯義也, 我先生〈中庸記疑〉已詳辨, 恐爲確論.'誠者自成也'下文云: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此二句便解上一6)句. 實有是理, 故有是人, 實有是理, 故有是事.'【同板虁遜錄】此亦主理言, 與上僩賀孫二錄同問: "不誠無物, 恐是就人心之實此理而言." 曰: "非也. 下文言'君子誠之爲貴', 方說人當實乎此理. 若曰: '實理爲物之始終, 無是理, 則無是物, 故君子必當實乎此理也.'"【二十板銖錄】不誠作無是理看, 與《章句》不同. 蓋無字與不字, 有自然有爲之分, 不可一槩論. 上板人傑錄: "不字, 是誰不他? 須是有箇人不他方得." 已大煞分明.本所謂禮儀三百, 末所謂威儀三千, 三百旣大德敦化, 三千卽小德川流.【卄八板壽昌錄】據上下諸錄及《中庸章句》, 三百三千當爲末爲小德, 此恐記誤.問: "仁義禮智之智與聰明睿知, 想是兩樣, 禮智是自然之性, 所以辨是非者, 睿智是說聖人聰明之德, 無所不能者." 曰: "便只是這一箇物事."【卅四板義剛錄】禮智之智, 人人所同禀者, 睿知之知, 聖人所獨得者, 烏得爲一箇物事? 此恐在聖人分上言, 故指其心理渾然一致處, 而謂之一箇物事耳. 자양(紫陽)과 운곡(雲谷) 모두 주자가 서원을 세우고 한가로이 지내며 강학하던 곳이다. 다만……있습니다 고문(古文)을 읽었던 당대 사람들에게 어류체의 문장이 더 어렵게 느껴졌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성으로……기질지성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형체가 있게 된 뒤에 기질지성이 있으니, 이를 잘 돌이키면 천지지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形而後, 有氣質之性, 善反之, 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2 〈위학(爲學)〉 하나밖에……성 주자가 〈답서자융[答徐子融]〉에서 "또 말라죽은 사물에는 기질지성만 있고 본연지성은 없다고 하는데 이 말은 더욱 웃음을 자아냅니다. 만약 과연 이 말대로라면 사물에는 단지 하나의 성만 있고 사람에게는 도리어 두 개의 성이 있다는 것이니 이 말은 너무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기질지성은 단지 이 성이 기질 가운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기질에 따라서 자체로 하나의 성이 되는데 바로 주자(周子)가 이른바 '각각 그 하나의 성을 가진다'고 한 것이라는 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원래 본연지성이 없다고 한다면 이 기질지성이 또 어디에서 왔겠습니까?〔又謂枯槁之物只有氣質之性而無本然之性, 此語尤可笑. 若果如此, 則是物只有一性, 而人却有兩性矣, 此語非常醜差. 蓋由不知氣質之性只是此性墮在氣質之中, 故隨氣質而自爲一性, 正周子所謂各一其性者. 向使元無本然之性, 則此氣質之性又從何處得來耶?〕"라고 한 일성(一性)을 가리킨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8 〈답서자융(答徐子融)〉 성대로……것이다 《통서해(通書解)》에는 주돈이(周敦頤)가 '性焉安焉之謂聖'이라고 한 데 대해 주자(朱子)의 해(解)에 '性者獨得於天'이라고 되어 있다. 물사(物事)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각기……이하 뒤의 '또 말씀하셨다 이하[又曰]'와 같은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에 대해 설명한 단락이 끝나고 주자가 다시 말하는 내용인바, "각기 성명을 바루어 대화를 보합한다는 말은 성인이 건괘에서 이 두 구를 말씀하셨으니 가장 좋다. 사람이 사람이 되는 까닭과 사물이 사물이 되는 까닭은 모두 그 성명을 바루어서이고 보합은 그 화기를 얻어서이다. 성명은 곧 당초에 즉시 분부받은 것이고 보합은 곧 그 가죽으로 꾸려 싼 것이 안에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칼로 그 배를 가르면 이 사물이 곧 흩어져 바로 죽게 된다.〔各正性命, 保合太和, 聖人於乾卦發此兩句, 最好. 人之所以爲人, 物之所以爲物, 都是正箇性命. 保合得箇和氣 性命便是當初合下分付底. 保合便是有箇皮殼包裹在裏. 如人以刀破其腹, 此箇物事便散, 卻便死〕"라고 한 부분과 바로 이어지는 제14조에서 "지금 사람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다'라는 것도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而今人會說話行動, 凡百皆是天之明命. 人心惟危, 道心惟微, 也是天之明命〕"라고 한 것이다. 불근호차(不謹乎此) 《대학집주(大學集注)》 〈성의장(誠意章)〉에 나오는 구절로, 심체(心體)의 밝음이 미진(未盡)한 바가 있으면 그 발(發)하는 바가 반드시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구차하게 스스로 속임이 있는 것이다. '此'는 발하는 바를 삼가는 것을 말한다. 논어집주의……말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28장에서 "공자는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요,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라 했고, 이 문장에 대한 주자의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는 "사람 밖에 도가 없고, 도 밖에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지각이 있고 도체는 행위함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도를 크게 할 수 있고, 도는 사람을 크게 할 수 없다〔人外無道, 道外無人. 然人心有覺, 而道體無爲, 故人能大其道, 道不能大其人也〕"라 했다. 앞 문장에……본다면 주자가 바로 앞에서 "건은 양의 기를 품수한 것이고 순은 음의 기를 품수한 것이며 오상은 오행의 리를 품수한 것이다.[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증조도록(曾祖道錄) 이 부분은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8 제86조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이굉조록(李閎祖錄)으로 되어 있다. 천지의……된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8 제82조에 "이를테면 강충(降衷)의 충(衷)이 똑같이 이 리(理)이다. 그렇지만 이 자는 단지 하늘이 내린 것에 적용하여 말할 수 있을 뿐이고 사람이 받은 것에 적용하여 말해서는 안 된다.〔如降衷之衷同是此理. 然此字但可施於天之所降而言, 不可施於人之所受而言也〕"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미발(未發)의 시중(時中) 문맥으로 볼 때 '미발(未發)의 중과 시중(時中)'이 되어야 할 듯하다. 중용에서는……말하였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9 제5조에는 "《논어(論語)》에서는 단지 인(仁)만 말하고, 《중용(中庸)》에서는 단지 지(智)만 말하였다.〔論語只說仁, 中庸只說智〕"라고 하였다. 세……않는데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자장이 물었다. '영윤인 자문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었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 그만두면서도 서운해 하는 기색이 없으면서 옛날에 자기가 하던 영윤의 정사를 새로 부임한 영윤에게 잘 알려주었는데,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진실하다.' 말하였다. '仁이 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잘 모르겠지만 어찌 仁이 될 수 있겠는가?'〔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관중에게는……것은 《논어(論語)》 〈헌문(憲問)〉, "자로가 말하였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규를) 따라서 죽었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환공은 아홉 차례나 제후를 규합하였는데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관중의 힘이니 仁이라고 할 수 있다. 仁이라고 할 수 있다.'〔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비록……것입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1 제95조에 "'현현역색(賢賢易色)'장. 학문하는 방법은 인륜상에서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 지금 이미 이와 같이 한다면 어떤 이가 비록 그를 배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할 것입니다.〔賢賢易色章. 爲學之道, 只要就人倫上做得是當. 今旣能如此, 雖或以爲未學, 我必以爲已學〕"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자하의……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1 제99조에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이르겠다.' 자하의 이 말은 과격하니, 교왕과직한 것이다.〔吾必謂之學矣, 子夏此話說得激, 有矯枉過直意思〕"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교왕과직(矯枉過直)은 구부러진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하는 것으로서 곧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어 오히려 나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맑음……자임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 가운데 맑은 분이고, 이윤은 성인 가운데 도를 자임한 분이고, 유하혜는 성인 가운데 조화로운 분이고, 공자는 성인 가운데 때에 맞게 하신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 伊尹聖之任者也, 柳下惠聖之和者也, 孔子聖之時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백이, 유하혜, 이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충(忠)과……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의 '주이불비(周而不比)'장의 해석에 대한 문답이다. 좌전의……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4년조에서는 "군주께서 사신인 나에게 반드시 두루 자문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君敎使臣, 曰, 必諮於周〕"라 했고, 이에 대한 두예의 주에서는 "충신(忠信)한 사람에게 자문하여 자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충신(忠信)이 주(周)이다.〔當諮于忠信, 以補己不及, 忠信爲周〕"라 했다. 인을……것 《논어(論語)》 〈이인(里仁)〉의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仁者安仁, 知者利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자기로써……미룬다 《논어집주(論語集註)》 〈이인(里仁)〉 15장의 주석에 정호(程顥)가 말하기를 "자기로써 외물에 미쳐 가는 것은 인이고,〔以己及物仁也〕자기를 미루어 외물에 미쳐 가는 것은 서이다.〔推己及物恕也〕"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한……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33에는 '此一事純於仁, 故可謂之仁.'로 되어 있다. 출공(出公)……한다 당시에 위(衛) 나라 임금은 출공(出公) 첩(輒)인데, 그보다 먼저 그의 아버지 괴외(蒯聵)가 태자 때에 그의 아버지 영공(靈公)에게 죄를 얻어 망명하고, 영공이 죽은 뒤에 출공이 유명(遺命)으로 즉위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괴외가 국내로 들어오므로 출공이 이를 막았다. 나의……것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서 안자(顔子)가 공자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도를 깊이 감탄하여 말한 장을 논한 것이다. 참고로 '불사이득(不思而得)', '불면이중(不勉而中)'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나오는 말이다. 자로(子路)와……일들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선진(先進)〉에서 네 사람이 공자 앞에서 각자의 포부를 말하는 대목에 대해 논한 것이다. 나는……것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의 "나를 제대로 써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방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물……것이다 정이(程頤)가 한 말로,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 〈입관어록(入關語錄)〉에 보인다. 선은……된다 정호(程顥)가 한 말로,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보인다. 자로는……뿐이다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 "어떤 사람이 증서에게 그대와 자로를 비교하면 누가 더 훌륭한지 묻자 자로는 우리 선자인 증자도 두려워한 분이라고 추존하였고, 관중과 비교하면 누가 더 훌륭한지 묻자 패도를 행한 관중을 자신과 비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或問乎曾西曰: 吾子與子路孰賢? 曾西蹴然曰: 吾先子之所畏也. 曰: 然則吾子與管仲孰賢? 曾西艴然不悅曰: 爾何曾比予於管仲〕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주에 양씨(楊氏)가 자로와 관중을 말 모는 사람에 비교하자 "자로는 자신이 말 모는 것을 법대로 해서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요, 관중은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잡았을 뿐이다〔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칭찬하였고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는 유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정을 다스리게 할 수 있거니와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하겠다〔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에서 나온 말이다. 자로(子路)도……말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서 "자로가 경솔히 대답하며, 천승의 제후국이 대국의 사이에서 속박을 받아 전란이 가해지고 따라서 기근이 들어도 제가 다스릴 경우, 3년에 이르면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에서 나온 말이다. 양씨(楊氏)의 설 《맹자집주(孟子集註)》 〈공손추 상(公孫丑上)〉 9장에 주자가 양씨의 설을 수록하였는바, 양씨는 자로가 관중이 천하를 한 번 규합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하면서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이 조목을 말하였다. 따라서 이 조목의 주자 말씀은 양씨의 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원칙을……없는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자막(子莫)은 이 중간을 잡았으니, 중간을 잡는 것이 도에 가까우나 중간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는 것은 한쪽을 잡는 것과 같다.〔子莫執中.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에서 나온 말이다. 형수가……주는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서 "순우곤이 '남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는 것이 예입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예이다.'라 대답하였다. '형수가 우물에 빠지면 손으로써 구원하여야 합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길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구원하지 않는다면, 이는 승냥이이니, 남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음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으면 손으로써 구원함은 권도(權道)이다.'라 했다.〔淳于髡曰, '男女授受不親, 禮與?' 孟子曰, '禮也.' 曰, '嫂溺, 則援之以手乎?' 曰, '嫂溺不援, 是豺狼也. 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 援之以手者, 權也.'〕"에서 나온 말이다. 동네……된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서 "향리(鄕里)와 이웃에 싸우는 자가 있으면 머리를 풀어 흩뜨리고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린다면 혹(惑)한 것이니, 비록 문을 닫더라도 가한 것이다.〔鄕鄰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 則惑也, 雖閉戶可也〕"에서 나온 말이다. 맹자가……준다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에서 "만장(萬章)이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되 우왕(禹王)에 이르러 덕이 쇠하여, 현자(賢者)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길,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늘이 현자(賢者)에게 주게 하면 현자(賢者)에게 주고, 하늘이 자식에게 주게 하면 자식에게 주는 것이다. 옛적에 순(舜)이 우(禹)를 하늘에 천거한 지 17년만에 순(舜)이 붕어 하시거늘, 3년상을 마치고 우(禹)가 순(舜)의 아들을 피하여 양성(陽城)으로 가 계셨는데, 천하의 백성들이 따라오기를 요(堯)가 붕어한 뒤에 요(堯)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순(舜)을 따르듯이 하였다. 우(禹)가 익(益)을 하늘에 천거한 지 7년만에 우(禹)가 붕어 하시거늘, 3년상을 마치고 익(益)이 우(禹)의 아들을 피하여 기산(箕山)의 북쪽으로 가 있었는데, 조회하고 옥사를 송사 하는 자들이 익(益)에게 가지 않고, 계(啓)에게 가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며, 덕(德)을 구가(謳歌)하는 자들이 익(益)을 구가(謳歌)하지 않고, 계(啓)를 구가(謳歌)하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아들이라 하였다.'〔萬章問曰, '人有言, 至於禹而德衰, 不傳於賢, 而傳於子. 有諸?' 孟子曰, '否, 不然也, 天與賢, 則與賢, 天與子, 則與子. 昔者, 舜薦禹於天, 十有七年, 舜崩, 三年之喪畢, 禹避舜之子於陽城, 天下之民從之, 若堯崩之後不從堯之子而從舜也. 禹薦益於天, 七年, 禹崩, 三年之喪畢, 益避禹之子於箕山之陰. 朝覲訟獄者不之益而之啓, 曰, 吾君之子也. 謳歌者不謳歌益而謳歌啓, 曰, 吾君之子也.'〕"에서 나온 말이다. 심(心)과……심이다 이 조목은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을 알아서이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라고 한 말을 논한 것이다. 처음과……밝힌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시작과 끝을 크게 밝히면 육위가 때로 이루어지나니, 때로 여섯 용을 타고서 하늘을 날아다닌다.〔大明終始, 六位時成, 時乘六龍, 以御天〕" 《주역본의(周易本義)》에서는 "시작은 곧 원이요 끝은 정을 말한 것이다. 마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고 정하지 않으면 원이 될 수 없다. 이는 성인이 건도의 끝과 시작을 크게 밝히면 괘의 육위가 각기 때에 맞게 이루어져서 여섯 양을 타고 천도를 행함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니, 이는 곧 성인의 원, 형이다.〔始卽元也, 終謂貞也. 不終則无始, 不貞則无以爲元也. 此言聖人 大明乾道之終始, 則見卦之六位, 各以時成, 而乘此六陽, 以行天道, 是乃聖人之元亨也〕"라고 하였다. 명(命)……없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맹자는 '명(命) 아님이 없으나 그 정명(正命)을 순히 받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정명(正命)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에 서지 않는다. 그 도(道)를 다하고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요, 질곡(桎梏)으로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 아니다.〔孟子曰, 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不立乎巖牆之下. 盡其道而死者, 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에서 나온 말이다. 기화(氣化)에……되었다 이 조목은 장재(張載)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태허에 연유하여 천이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고 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라는 말을 논한 것이다. 주역에서……한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게 함을 일러 도라고 하니, 도를 잇는 것은 선이고 도를 이루는 것은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라고 하였다. 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 《맹자(孟子)》 〈진심 하(盡心下)〉에 "입이 맛에 있어서, 눈이 색깔에 있어서, 귀가 음악에 있어서, 코가 냄새에 있어서, 사지가 안일에 있어서는 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는지라 군자는 이것을 성이라 이르지 않는다.〔口之於味也 目之於色也 耳之於聲也 鼻之於臭也 四肢之於安佚也 性也 有命焉 君子不謂性也〕"라고 하였다. 여기에서……것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공자(孔子)가 "성품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習慣)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性相近也, 習相遠也〕"라고 한 데 대한 주자의 주석이다. 잡으면……잃는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공자가 말하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서, 나가고 들어옴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다' 하였다.〔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내가……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공자가 말했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인이 당장 이른다.〔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마음이……따른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대로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사물에……욕구 《예기(禮記)》 〈악기(樂記)〉, "사람이 태어나면서 고요한 것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고,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이 본성의 욕구이다〔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 지(智)․인(仁)․용(勇)처럼 《주자어류(朱子語類)》에는 '知仁勇' 앞에 '如'자가 있다. 보지……않는 《중용장구(中庸章句)》 1장(章)에 "군자는 보지 않는 바에서도 계신하며 듣지 않는 바에서도 공구한다.〔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하였는데, 눈으로 아직 사물을 보지 않고 귀로 아직 소리를 듣지 않는 것으로, 마음이 미발(未發)한 상태이다. 홀로……조심할 앞의 《중용장구(中庸章句)》 1장(章)의 '부도불문(不睹不聞)' 바로 뒤에 "은미한 것보다 더 확연히 드러날 수가 없는지라,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있는 자리를 조심한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이천(伊川)이……된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8에 보인다. 29판의 〈진순록(陳淳錄)〉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2의 제116조목을 가리킨다. 〈중용기의(中庸記疑)〉 《간재집(艮齋集)後篇》 권20에 수록되어 있다. 귀신(鬼神)의 덕(德)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6장에 "귀신의 덕이 성대하도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지만, 물의 체를 이루어 결코 빠뜨릴 수 없다.〔鬼神之爲德, 其盛矣. 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體物而不可遺〕"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성(誠)과……머문다 이 부분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5장에서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도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성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라고 한 말을 논한 것이다.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된다 바로 앞 조목인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4 제96조목에 나오는 주자의 말이다. 근본은……이다 《중용(中庸)》 30장에 "공자는 멀리 요순의 도리를 받들어 전술하고, 가깝게는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받들어 지킨다. 위로는 천시에 따라 자연스럽게 운행하고, 아래로는 물과 땅의 생성 원리에 합치한다. 이는 마치 천지가 실어 주지 않음이 없고, 덮어 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마치 사계절이 서로 바뀌어 운행하고 해와 달이 서로 빛을 교체하여 밝히는 것과 같다. 만물은 함께 생육하지만 서로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으며, 도리는 병행하지만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작은 덕성은 끊임없이 흐르는 냇물과 같고, 큰 덕성은 화육을 돈후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천지의 도리가 위대한 근본 원인이다.〔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 辟如天地之無不持載, 無不覆幬. 辟如四時之錯行, 如日月之代明, 萬物並育而不相害, 道並行而不相悖. 小德川流, 大德敦化. 此天地之所以爲大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木 원문은 '本'인데 문맥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忠信 원문은 '忠'인데《주자어류》권24를 참고하여 보충하였다. 勇 원문은 '用'인데《논어집주》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人心 원문은 '人'인데,《주자어류》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謙 원문은 '兼信'인데,《주자어류》를 참고하여 수정하였다. 一 원문은 '二'인데,《주자어류》를 참고하여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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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 後滄先生文集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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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庚申 경신년(1920)추성(鄒聖, 맹자)의 큰 공을 기록한 한 편3)의 선생의 작품이 지령(知令)에게 의혹을 받았기에 일전에 질문을 드렸는데 그만 다급히 서두르다가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돌아와 보니 마침 지령에게서 편지가 왔기에 그에 대해 답장을 하면서 저의 좁은 소견으로 헤아려 본 것을 대략 기술하여 보냈습니다. 다만 선생의 이 작품을 지난해에 한번 훑어보았기 때문에 까마득하여 문맥을 기억하지 못하니 어쩌면 좋겠습니까.다만 《맹자》의 '풍년 든 해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게으르다.[富歲子弟多賴]'는 장(章)4)의 '성인은 먼저 우리 마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깨쳤다.'는 한 구절을 들어 마음이 착하다[心善]는 제목을 달아서 맹자의 공이 다만 성이 선하다는 가르침에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이 착하다고 논한 것에도 있다는 선생의 의도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거칠고 소략하여 맹자의 본지와 선생의 의도를 잃어버렸습니다. 얼마 지나 우연히 《맹자》의 그 장5)을 꺼내어 반복해서 읽어보니, 다섯 번째 절(節) 대문의 "그 본성이 사람과 다르다."는 구와 세 번 째 절(節)의 《집주》에 "그 본성이 선한 것은 같지 않음이 없다."6)는 말 등은 분명 성이 선한 것을 주로 말하였으니, 지령(知令)이 심선(心善)이라 한 선생의 의도를 의심할 만합니다.다만 사람마다 입은 좋아하는 바가 똑같고 귀는 좋은 소리를 듣는 바가 똑같으며 눈은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는 바가 똑같고 마음도 똑같다는 것을 열거한 뒤에 이어서 또 "성인은 먼저 우리 마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깨쳤다."라 하였으니, 어찌 내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같음을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이 이미 성인과 같다면 어찌 심선(心善)을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대문과 《집주》에 심선(心善)이라는 두 글자가 없다는 이유로 다만 성선(性善)은 말할 수 있고 심선(心善)은 금하여 말할 수 없단 말입니까.제가 이 장의 본지(本旨)를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의 마음이 의리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인성이 모두 선하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이는 마치 사단(四端)을 보고서 사성(四性)이 있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성이 선한 것은 체(體)가 되어 마음에 갖춰져 있고, 마음이 선한 것은 용(用)이 되어서 성을 발현하니, 하나는 체가 되고 하나는 용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둘 다 선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성은 형상도 없고 작위도 없기[無形無爲] 때문에 사람이 만사(萬事)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모두 마음[心]에 달려 있습니다. 학자가 만약 성이 선할 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선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마음을 중하게 여겨서 물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이 때문에 심선(心善)의 학설이 후대에 큰 공이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대개 맹자가 성선을 논한 것은 하늘에 떠 있는 해와 같아서 그 큰 공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이 장에 이르러 심선(心善)이라 말한 것도 또한 큰 공이 되는데, 이에 대해 말하는 자가 없기에 이처럼 말하였으니 참으로 그것을 드러내어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생의 의도가 어찌 이에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제가 지산(志山)에게 준 편지에서 맹자의 본지를 살피지 못하고 성선과 심선이란 두 가지로 개괄하여 설명하였으니, 자못 빈주(賓主)의 구분을 잃었습니다. 언설의 거칠고 소략함이 참으로 이전에 염려했던 것과 같게 되었으니, 이것이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맹자가 심선(心善)을 말한 큰 공을 지령(志令)이 의심하였는데, 다만 얕은 나의 견해에 근거하여 말을 한다면 의리는 진실로 리로서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은 리가 아니다. 리는 선한 것인데 심 또한 그렇다면, 어찌 선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이 심은 물욕에 한 번 빠지면 때때로 리를 가리켜 불선하다고 생각하고, 리가 아닌 것을 선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리는 '순선(純善)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심은 다만 '본래 선하다.[本善]'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순(純)과 본(本)의 차이에 따라 리와 기를 분별한다. 성과 심을 합하여 말할 때는 성선(性善)이 주인이 되고, 심선(心善)은 손님이 된다. 만약 각각 따로 나누어 두 개의 선함을 논한다면, 빈주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정자(程子)의 편지에서 심선을 말했고, 《대학》 전7장7)과《대학혹문》,8) 《주자대전》 〈답정정사서(答程正思書)〉9)에서 모두 심의 바름[正]을 분명하게 말하였다. 불가에서는 심선을 말하면서 본말을 구분하지 않고 이를 뭉뚱그려 지선(至善)이라고 말하니 다만 이는 성은 제쳐두고 마음만을 믿는 것이다. 육씨(육구연)가 양경중(楊敬仲)을 대했을 때 '나는 단지 이 마음을 믿는다.'라 하였는데, 이것이야말로 큰 잘못이다." 尊稿記鄒聖大功一篇, 爲志令所疑, 向既提稟而卒卒未及承誨而歸.歸則適自志令有書, 因其修謝, 畧寫揣測于管見者送去.但尊稿此記, 年前一覽, 而茫不記語脈, 如何? 只據孟子富歲子弟多賴章'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一段, 爲心善之題目, 以明孟子之功, 不但在性善之訓, 而亦在心善之論之意.然恐其鹵莽踈綻, 有失孟子之旨先生之意.俄者, 偶出孟子本章, 反覆之, 則第五節大文, "其性與人殊"之句, 第三節《集註》"其性之善無不同也"之語, 果皆主性善說, 而有如志令之所疑者.但其歴舉口之同嗜, 耳之同聽, 目之同美, 心之同然, 而繼之又曰, "聖人先得我心之所同", 則豈非我心同於聖人心之謂乎? 心即與聖人同, 則豈非心善之謂乎? 烏可以大文與《集註》無心善二字, 只得言性善而禁不言心善乎? 竊詳此章本旨, 蓋以人心之無不悅理義, 以證人性之皆善, 如見四端而知有其四性也.性之善爲體而具乎心, 心之善爲用而發乎性, 一體一用, 究非二善也? 蓋性者無形無爲, 人之酬酢萬變, 皆在於心.學者若知不但性之爲善而心之亦善, 則豈敢不自重其心, 而不欲陷溺於物欲乎? 此之謂心善之說大有功於後世也.夫孟子之論性善, 如日中天, 其爲大功, 固不須言.至於此章, 心善說之, 亦爲大功, 無有道之者.故此記云云, 正欲表而出之也.先生之意, 豈不在此乎? 但小子與志山書, 有不察於孟子本旨, 槩以性善心善兩下說去, 殊失賓主之分.其爲鹵疎, 果有如向之所虞者, 是可悔也.○ 先生答書曰 : "孟子言心善大功, 志令疑之, 但據淺見言之, 理義固是理也, 其人人之同以爲然者.却是心, 不是理也.夫理是善底, 而心以爲然, 亦豈非善底? 但此心一經陷溺之後, 又往往指理爲不善, 非理爲善, 故理可曰'純善', 心但可曰'本善'.只純與本之間, 理與氣之分也.性心之合言時, 性之善固爲主, 心之善固爲賓.若各論二者之善, 又不須分賓主.程書言心善,《大學》傳七章,《或問》《大全》〈答程正思書〉, 皆明言心之正.若乃釋氏之言心善, 不分本末, 槩謂之至善, 惟此心之是信.陸氏之對楊敬仲言, '某只是信箇心,' 此却大誤也. 추성의……한 편 《간재집(艮齋集)전편》 권15 잡저의 〈기추성대공(記鄒聖大功)〉을 가리킨다. 풍년……장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7장을 말한다. 맹자는 "풍년에는 자제들이 의뢰함이 많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포악함이 많으니, 하늘이 재주를 내림이 이와 같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모맥을 파종하고 씨앗을 덮되 그 땅이 똑같으며 심는 시기가 똑같으면, 발연히 싹이 나와서 일지의 때에 이르러 모두 익으니, 비록 똑같이 않음이 있지만 이것은 땅에 비옥함과 척박함의 차이가 있으며, 우로의 배양과 사람이 경작하는 일에 똑같지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류인 것은 대부분 서로 같으니, 어찌 홀로 사람에 이르러서만 의심하겠는가? 성인도 나와 동류이다. 그러므로 용자는 발을 알지 못하고 신을 만들더라도 내가 그 삼태기를 만들지 않을 줄은 안다고 하였으니, 신이 서로 비슷함은 천하의 발이 같기 때문이다. 입이 맛에 있어서 즐김을 똑같이 함이 있으니, 역아는 먼저 우리 입이 즐기는 것을 안 자이다. 가령 입이 맛에 있어서 그 성이 남과 다름이 마치 개와 말이 우리와 동류가 아닌 것처럼 다르다면, 천하가 어찌 맛을 즐기기를 모두 역아가 조리한 맛을 따르듯이 하겠는가? 맛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역아가 되기를 기약하니, 이것은 천하의 입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귀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소리에 있어서는 천하가 사광이 되기를 기약하니, 이것은 천하의 귀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눈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자도에 있어서 천하가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자도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눈이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입이 맛에 있어서 똑같이 즐김이 있고, 귀가 소리에 있어서 똑같이 들음이 있으며, 눈이 색에 있어서 똑같이 아름답게 여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음에 이르러서만 홀로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이 없겠는가? 마음에 똑같이 옮게 여기는 것은 어떤 것인가? 리이며 의이다. 성인은 우리 마음이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을 먼저 아셨다. 그러므로 리와 의가 우리 마음에 기쁨은 추환이 우리 입에 좋은 것과 같다.〔孟子曰, "富歲, 子弟多賴, 凶歲, 子弟多暴, 非天之降才爾殊也, 其所以陷溺其心者然也. 今夫麰麥, 播種而耰之, 其地同, 樹之時又同, 浡然而生, 至於日至之時, 皆熟矣. 雖有不同, 則地有肥磽, 雨露之養·人事之不齊也. 故凡同類者, 擧相似也, 何獨至於人而疑之? 聖人, 與我同類者. 故龍子曰, '不知足而爲屨, 我知其不爲簣也.' 屨之相似, 天下之足同也. 口之於味, 有同耆也, 易牙先得我口之所耆者也. 如使口之於味也, 其性與人殊, 若犬馬之與我不同類也, 則天下何耆皆從易牙之於味也. 至於味, 天下期於易牙, 是天下之口相似也. 惟耳亦然. 至於聲, 天下期於師曠, 是天下之耳相似也. 惟目亦然. 至於子都, 天下莫不知其姣也. 不知子都之姣者, 無目者也. 故曰, 口之於味也, 有同耆焉, 耳之於聲也, 有同聽焉, 目之於色也, 有同美焉. 至於心, 獨無所同然乎? 心之所同然者何也? 謂理也, 義也. 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耳. 故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 했다. 《맹자(孟子)》의 그 장 앞에 거론한 장을 뜻한다. 그……없다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의 "성인도 나와 동류이다.〔聖人, 與我同類者.〕"에 대해 《집주》에서는 "성인 또한 사람이니, 그 성의 선함이 같지 않음이 없다.〔聖人亦人耳, 其性之善, 無不同也.〕"를 가리킨다. 《대학(大學)》 전7장 《대학(大學)》 전7장에서는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룸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분치(忿懥)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공구(恐懼)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우환(憂患)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일러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룸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라 했다. 《대학혹문(大學或問)》 혹자가 "사람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본래 이로써 사물에 응하는 것인데, 이 장의 전문에서는 기쁨·성냄·근심·두려운 바가 있으면 곧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이라는 것은 분명 고목처럼 다시 살아날 수 없고 꺼진 재처럼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된 뒤에야 그 바름을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까?〔或問: "人之有心, 本以應物, 而此章之傳以爲有所喜怒憂懼, 便爲不得其正, 然則其爲心也. 必如槁木之不復生, 死灰之不復然, 乃爲得其正耶?〕"라 하자 주자는 "사람의 마음이 거울이 비어 있는 것과 같고 저울대가 평평한 것과 같이 맑고 허명(虛明)하여 몸의 주인이 되는 것은 참으로 진체(眞體)의 본연이지만, 희로우구(喜怒憂懼)가 감촉에 따라 응하고 미추(美醜)와 부앙(俯仰)이 사물에 따라 형체를 부여받는 것은 또한 그 작용에 있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응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 본체가 거울이 비어 있고 저울대가 평평한 것처럼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정(靜)한 상태이기에 비록 귀신이라도 그때를 엿보지 못함이 있다. 그리고 사물에 감응할 때에 감응하는 것이 또 모두 절도에 맞으면 거울이 비어 있고 저울대가 평평한 것과 같은 작용이 막힘없이 유행하여 광명정대(光明正大)하다. 이것이 바로 천하의 공통된 도가 된 이유이니 또한 어찌 바름을 얻지 못함이 있겠는가? 다만 사물이 왔을 때에 제대로 살피지 못함이 있으면 응함에 있어 혹 잘못이 없을 수 없다. 또 함께 가지 않을 수 없다면 희로우구가 반드시 마음속에서 동하게 되어, 이 마음의 작용이 비로소 바름을 얻지 못함이 있게 된다.〔人之一心, 湛然虛明, 如鑑之空, 如衡之平, 以爲一身之主者, 固其眞體之本然, 而喜怒憂懼, 隨感而應, 姸蚩俯仰, 因物賦形者, 亦其用之所不能無者也. 故其未感之時, 至虛至靜, 所謂鑑空衡平之體, 雖鬼神有不得窺其際者, 固無得失之可議; 及其感物之際, 而所應者, 又皆中節, 則其鑑空衡平之用, 流行不滯, 正大光明, 是乃所以爲天下之達道, 亦何不得其正之法哉? 唯其事物之來, 有所不察, 應之旣或不能無失, 且又不能不與俱往, 則其喜怒憂懼, 必有動乎中者, 而此心之用, 始有不得其正者耳.〕"라 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답정정사서(答程正思書)〉 정사가가 "마음에 대해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때가 없고 그 향하는 바를 알 수 없다(出入無時, 莫知其鄕處.)"라 하자 주자는 "마음을 논한 것은 이것은 마음의 본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진실로 이와 같다면 이 본체 외에 별도로 하나의 부차적으로 일을 하는 정해지지 않은 마음이 있어서, 공자와 맹자가 사람들에게 그 본체를 버리고 이것이 지시하는 것에 나아가 공부를 하도록 한 것이 되는데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이것은 해석의 잘못이 아니라 본원처를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함영·존양의 바탕이 없으므로 이와 같게 되 것이니,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但論心處以爲此非心之本體, 若果如此, 則是本體之外別有一副走作不定之心, 而孔孟敎人却舍其本體而就此指示, 令做工夫, 何耶? 此等處非解釋之誤, 乃是本原處見得未明, 無箇涵泳存養田地, 所以如此, 更願察之也.〕"라 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답정정사(答程正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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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오사익에게 답함 신사년 (1941) 答吳士益 辛巳 신도비에 대한 의론에 있어 아의(雅意)을 삼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송나라는 우리나라와 다른 듯하다."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 국법에 비에 대한 규식이 있어야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규식을 보지 못했다면 송나라 주자를 따르는 것에 무슨 불가한 점이 있겠습니까? 또 우리나라에는 3품에 대해서도 신도비를 세운 경우가 있음은 형도 그렇다고 말했는데, 그의 고집에 구애되어 다시 분명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여 의심하면서 확정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책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국법을 말해보면, 태조 때에는 《원전(元典)》과 《속전(續典)》이 있고, 세종 때에는 《경제육전經濟六典》이 있으며, 세조 때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있고, 성종 때에는 《속록(續錄)》이 있고, 중종 때에는 《후속록(後續錄)》에 있고, 숙종 때에는 《집록통고(集錄通考)》가 있고, 영조 때에는 《속대전(續大典)》이 있었으며, 정조 때에는 이를 합하여 《대전통편(大典通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대전통편》을 살펴보아도 비(碑)와 갈(碣)에 대한 규식이 없기 때문에. 그도 또한 2품 이상만 신도비를 허락한다는 문장이 열성(列聖)의 어느 조종에서 정한 법전에 있다는 것으로 이전에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저 내가 통탄하는 것은 진실로 그가 국법을 보지 않고 감히 선사의 원고를 고쳤다는 것에 있으며, 형이 우려하는 것은 사체가 중대한 신도비에 관직의 품계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른바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것이 진실로 이와 같습니까? 저의 소견은, 뜻과 이치로 강구하여 논해보면 그 덕행과 사업에 기록할 만한 것이 많은 자만이 신도비를 세울 수 있고 관직 품계의 고하는 관여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체의 중대함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저기에 있지 않은데, 무엇 때문에 인작(人爵)을 영예롭게 여기면서도 천작(天爵)이 존귀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입니까? 예를 들어 안자(顔子)나 증자(曾子)의 묘소에 그들이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도비를 세우지 못하겠습니까? 옛날 일을 놔두고 지금의 일을 논해보면, 우리 선사의 덕행과 사업으로 2품이 아니기 때문에 신도비를 세울 수 없겠습니까? 비록 그렇더라도 국법에 정해진 규식이 있다면 시왕(時王)의 제도를 따라야 하겠지만, 만약 없다면 또한 무슨 구애될 것이 있겠습니까? 碑論謹悉雅意,然宋朝與我朝似異之云,有我朝國典碑式然後可言耳.旣不見定典,則從宋朝之朱子,有何不可乎? 且我朝之有三品大碑,兄亦云然,而拘於彼之固執,意其更有明據,而訝惑不定者,何也? 蓋我朝國典成書,太祖時有《元》、《續》二典,世宗時有《經濟六典》,世祖時有《經國大典》,成宗時有《續錄》,中宗時有《後續錄》,肅宗時有《集錄通考》,英宗時有《續大典》,正宗時合而爲《大典通編》.考之《通編》而無碑碣表式,故彼亦不能以二品以上乃許大碑之文在於列聖何朝所定之典對告於前日者,此也.大抵吾之所痛,亶在於彼之不見國典而敢改師稿; 兄之所憂,乃在於體重大碑之不限官品,所謂人心不同者固如是乎? 淺見以爲以意理究論之,有德行事業多可紀者,乃得爲大碑,官品高下不當與焉.其體重在此不在彼,何以故人爵之榮,不知天爵之尊也?如顔、曾之墓,以其不仕,不立大碑可乎? 舍古論今,則如吾先師之德業,以非其二品而不得大碑可乎? 雖然有國典定式,則從時王之制可矣; 而若無有焉,則又何所拘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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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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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기영회운(耆英會韻)이라는 시제의 시문(詩文) 고문서-시문류-시 李冕容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기영회운(耆英會韻)이라는 시제의 시문 2수 기영회운(耆英會韻)이라는 시제의 2수이다. 이면용(李冕容)과 양우(梁瑀)가 각각 지은 7언시이다. 각 시는 수정된 부분이 있다. 기영회는 70세 이상 노인이 모인 경로회이다. 문서의 상태가 손상된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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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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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장부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李鐺 李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현황을 기록한 장부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현황을 기록한 장부이다. 가지번(假地番)과 면적으로 구분하여 다섯 곳의 현황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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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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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6년 이기두(李箕斗) 통정대부(通政大夫)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李箕斗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李箕斗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통정대부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통정대부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을 취득하였다. 그 직후에 또 임명된 관품이 통정대부이다. 통정대부는 문관의 품계로서 종3품의 상계(上階)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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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윤기섭(尹璂燮) 간찰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之二月五日 尹璂燮 壬之二月五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36_001 1902년 2월 5일에 사제 윤기섭이 가천의 사돈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생활을 대략 알려준 간찰 1902년 2월 5일에 사제(査弟) 윤기섭(尹璂燮)이 가천(可川)의 사돈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생활을 대략 알려준 답장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2월에 아드님이 직접 편지를 가지고 와서 위로가 되었다고 하고, 형제분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는 다행히 편안하신데, 맏형이 아프셔서 여러 지방의 약이 되는 음식을 부수적으로 먹고 있다. 일간 나아가 뵈올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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