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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 학헌【시풍】에 대한 만사 挽金公鶴軒【時豊】 화표주의 학은 어찌 아득한가 (華鶴何迢迢)대인은 은거할 곳을 정했네 (碩人卜薖軸)가문은 효우를 전하여 돈독하였고 (家傳孝友敦)대대로 시서를 배워 익혔네 (世襲詩書讀)농사짓는 것으로 사업을 삼았고 (事業付犂鋤)시내와 대를 둘러 집을 지었네 (經綸排水竹)풍류는 벗들이 칭찬하였고 (風流諸友稱)의를 행한 것 향리에서 탄복하였네 (行義鄕隣服)내 젊었을 때부터 (自我少年時)가장 잘 알고 지냈네 (相知也最熟)추우나 더우나 매번 안부를 물었고 (寒暄每訊存)시와 술로 자주 교유하였네 (文酒頻追逐)어찌 하늘에 사랑을 받지 못하여 (何事不媚天)갑자기 불행한 소식 고하는가 (遽然告不淑)바람 앞의 등불은 정히 가련하니 (風燈正可憐)천리마가 틈을 지나듯249) 이 어찌 빠른가 (隙驥此何速)밤을 지키는 개가 어찌 새벽을 지키랴 (犬夜熟能晨)이 몸 백번 바치더라도 죽음을 대신할 수 없네250) (百身難可贖)끝내 옥과 같은 사람이 (終令如玉人)백운 골짜기에 높이 누웠네 (高卧白雲谷)아, 내 몸에 병이 들어 (嗟我病縻身)소식 듣고 기어서라도 가보지 못하였네 (聞之未匍匐)유명간에 저버린 것이 많으니 (幽明辜負多)홀로 앉아 눈물을 삼키며 곡하네 (獨坐呑聲哭)천고의 떠나고 머무르는 정 (千古去留情)말을 토해 내어 만사를 쓰노라 (吐辭書尺牘)절하고 궤연에 아뢰니 (拜之達几筵)이 마음의 슬픔을 헤아리시기를 (相諒此心曲) 華鶴何迢迢。碩人卜過軸。家傳孝友敦。世襲詩書讀。事業付犂鋤。經綸排水竹。風流諸友稱。行義鄕隣服。自我少年時。相知也最熟。寒暄每訊存。文酒頻追逐。何事不媚天。遽然告不淑。風燈正可憐。隙驥此何速。大夜熟能晨。百身難可贖。終令如玉人。高卧白雲谷。嗟我病縻身。聞之未匍匐。幽明辜負多。獨坐呑聲哭。千古去留情。吐辭書尺牘。拜之達几筵。相諒此心曲。 천리마가 틈을 지나듯 『장자(莊子)』「도척(盜跖)」에 "홀연히 천리마가 틈을 지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忽然無異騏驥之馳過隙也]" 하였다. 백……없네 훌륭한 인물의 죽음에 대한 매우 애통해하는 심정을 이른다. 『시경』「소아(小雅) 황조(黃鳥)」에 "저 푸른 하늘이여, 우리 훌륭한 사람을 죽이도다. 만약 대신하여 죽을 수만 있다면 사람마다 그 몸을 백 번이라도 바치리라.[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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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일【경식】에게 답함 答文士一【敬植】 연초에 성산(星山)으로 길을 나섰는데, 매우 급한 일이 있었네. 그래서 곧바로 가는 길을 취하였다가 즉시 돌아왔기에 그대의 집에 들르지 못하였네. 그런대 뜻밖에 인편을 통해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니 고마우면서 위안이 됨이 어떠하겠는가. 인하여 부모님을 모시면서 그대 건강이 한결같이 좋은 것을 알게 되니, 실로 내가 듣고 싶었던 것에 부합하네. 의림은 늙고 병든 지 오래되어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데, 보잘 것 없는 오랜 학업은 텅 비어서 하늘의 뜬 구름과 같으니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랴! 보내준 편지의 길고 자세히 말한 것에서 그대의 뜻이 게으르지 않음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매우 감탄하네. 별지의 예설에 대해 삼가 나의 생각을 조목에 따라 답하였는데 그것을 귀숙처로 삼지 말고 더욱 더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답변28) : 복제 중에 지친의 상은 기년(期年)으로 끊는데,29) 《의례》 〈상복도〉에서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고 한 것은 누이[姉妹]에 대해 말한 것으로 누이도 또한 지친이기에 특별히 지친 기년을 입는 뜻을 말한 것이네. 혼인은 남에게 시집 간 것을 이른 것이니, 시집간 누이는 대공복을 입는다고 한 것은 출가한 자는 한 등급 내려서 입는 뜻을 특별히 말한 것이네. 열아홉 번째 안팎의 질문 조목에 대해서는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歲初星山之行。緣有悤故。取直道徑歸。未得委造仙扃。謂外便頭得承惠存。感沃慰豁。何又如之。仍審侍省候節。一衛崇祉。實副願聞。義林衰病浸淹。有難支吾。而區區舊業。曠然若先天浮雲。歎恨何爲。示喩縷縷。足見尊意之不懈。感服多矣。別幅禮說。謹以鄙意。隨條仰答。勿爲歸宿。更加玩索。如何。服制。至親以期斷。喪服圖不杖期云者。姊妹亦至親也。故特言其至親服朞之義也.嫁是適人之謂也。嫁大功云者。特言其出嫁者。降一等之義也。十九內外。不須言。 답변 편지의 본문 내용을 보면 질문하는 조목을 보냈다고 하였는데, 그 질문은 생략하고 답변만 기록한 것이다。이 책에는 이러한 형식의 글이 많이 보인다. 지친의……끊는데 《예기》 〈삼년문(三年問)〉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부모를 위한 본복(本服)은 기년에 해당하지만 가륭(加隆)을 해서 삼년복을 입는 것이다. 부모뿐만 아니라 집안의 지친의 복은 원래 기년복을 입는데, 상황에 따라 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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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길【운형】에게 답함 答金士吉【潤亨】 편지를 받은 뒤 여러 날이 지났는데, 잘 모르겠네만 부모를 모시고 공부하는 가운데 근황은 어떠한가? 사길은 자질이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우며 재능이 밝게 뜨여 오당(吾黨)의 젊은이 가운데 두려운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네. 지난 번 신안사(新安社)에서 계남(溪南)과 애산(艾山)30) 등 여러 어른과 이런 자네에 대해 말이 미쳤는데, 다만 두 아이31)가 장난을 쳐서 비록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저들이 비록 기운을 빼앗더라도 봄날의 꽃샘추위나 가을날의 늦더위처럼 오래 가지 않을 것이네. 다만 바라건대 더욱 더 마음을 굳게 하고 생각을 정하여 양명정대(陽明正大)한 기운으로 하여금 나날이 채워 자라게 한다면, 저 하찮은 여증(餘證)은 다만 눈이 햇빛에 녹는 것처럼 사라질 것일세. 나를 따르며 친밀하게 지내는 한 무리의 젊은이 가운데 우리 그대 같은 이에 대해 나는 부탁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성(性)이란 만물의 한 가지 근원이니, 어찌 일찍이 '가깝다' '가깝지 않다'고 말할 것이 있겠는가. "서로 가깝다."32)고 한 것은 이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네. 그러나 이른바 '기질지성'이란 것도 또한 다른 곳에 있는 또 다른 한 성이 아니네. 전적으로 이(理)를 가리켜 말한다면 본연지성(本然之性)이요, 기를 겸하여 말한다면 기질지성이네. 이(理)는 기의 주재자요, 기는 이(理)의 바탕이 되니, 어찌 일찍이 선후(先後)를 말할 수 있는가. 이 때문에 근원에 나아가 그 물줄기를 보는 것이 있으며 흐르는 물에 나아가 근원을 가리키는 것이 있으니, 각각 가리키는 것을 따라 선후를 말하는 것도 또한 어찌 해로움이 되겠는가. 書后有日。未審侍旁學履。近節何如。士吉天姿謹慤。才性開爽。在吾黨少年。未始非可畏人也。向於新安社。與溪艾諸丈語及矣。但二竪作戱。雖若可憾。而彼已奪氣如春寒秋熱之不能久。惟益加堅心定慮。使陽明正大之氣。日日充長。則彼小小餘證。不啻見晛矣。從遊親密。一隊少年。如吾友者不能無區區寄托之意如何。性者萬物之一原。何黨有近不近之可言。其言相近者。是指氣質之性而言。然所謂氣質之性。亦非別有一性在別處也。單指理言之。則本然之性也。兼指氣言之。則氣質之性也。理是氣之主。氣是理之質。何嘗有先後之可言。是以有卽源而見流者。有溯流而指源者。各隨所指而說先後。亦何妨耶。 계남(溪南)과 애산(艾山) 계남은 최숙민(崔琡民, 1837~1905)의 호이고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호이다. 최숙민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칙(元則)으로, 기정진의 문인으로 진주(晋州)에 거주하였다. 정재규의 본관은 초계, 자는 영오(英五), 후윤(厚允)으로, 〈납량사의기의변(納凉私議記疑辨)〉·〈외필변변(猥筆辨辨)〉 등을 지어 전우(田愚)의 기정진에 대한 반박을 변론하여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두 아이 원문의 '이수(二竪)'는 병마(病魔)의 별칭이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꿈에 병마가 두 아이[二竪]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황(膏肓) 사이에 숨는 바람에 끝내 병을 고칠 수 없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春秋左傳 成公10年》 서로 가깝다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관에 따라 서로 멀어지는 것이다.[性相近也 習相遠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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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행24) 【건신】에게 답함 答李汝行【建信】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묻는 것도 벗들 사이에 좋은 일인데, 더구나 의심스럽고 답답한 심정이 편지 가득하여 보통 안부를 묻는 것과 견줄 것이 아님에야 어떠하겠는가? 근래 독서하여 얻은 힘을 여기에서 징험할 수 있겠네.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니, 이것이 어떠한 좋은 시절인가? 나가서는 일을 주관하고 들어와서는 독서하되 엄격히 과정을 세워 조금도 쉬거나 폐하지 말기를 부디 바라고 바라네. 육행(六行)25)으로 말하면 우(友)가 효(孝) 아래에 있고, 팔형(八刑)26)으로 말하면 제(悌)가 인(婣) 아래에 있네. 대개 형벌을 만든 뜻은 비자(卑者)를 위해 그 존자(尊者)를 형벌주지 않으니, 아버지가 비록 부자(不慈)하더라도 부자의 형벌이 없고, 형이 비록 불우(不友)하더라도 불우의 형벌이 없네. 그러므로 단지 부제(不悌)의 형벌을 목인(睦婣) 아래에 말하였으니, 대개 동성과 이성의 존장을 통틀어 말한 것이네. 이 뜻은 집주(集註) 속에도 있으니, 살펴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書幅相問。朋友好事。矧有疑鬱滿紙。非尋常寒暄之比耶。近日讀書之力。從可驗矣。父母俱存。兄弟無故。此何等好時節耶。出而幹務。入而讀書。嚴立課程。勿少休廢。千萬望望。人於幼穉。有忌太溫。故至二十而衣裘帛。以六行言。則友在孝下。以八刑言。則悌在婣下。蓋造刑之意。不爲卑者以刑其尊者。父雖不慈。而無不慈之刑。兄雖不友。而無不友之刑。故只言不悌之刑於睦婣之下。蓋統同異姓尊長而言者也。此意在集註中。諒之如何。 이여행(李汝行) 이건신(李建信, 1880~?)을 말한다. 자는 여행,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육행(六行) 《주례》〈지관사도(地官司徒)〉의 효(孝), 우(友), 목(睦), 인(婣), 임(任), 휼(恤)을 말한다. 팔형(八刑) 《주례》〈지관사도(地官司徒)〉의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인(不婣), 부제(不弟), 불임(不任), 불휼(不恤), 조언(造言), 난민(亂民)의 형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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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준에게 답함 答鄭士遵 한 폭의 소중한 편지는 참으로 뜻밖이었네. 공청(空靑)과 수벽(水碧)94)이라도 어찌 그 귀함을 비유하겠는가. 편지를 펼쳐서 읊조리니, 괴롭고 답답한 마음이 활짝 열려 눈 녹듯 사라지니, 마치 한문95)에 날아올라 맑은 바람을 맞는 듯하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매우 좋다고 하니 더욱 머리를 조아려 축원하는 마음에 흡족하네. 편지 내용 가운데 '경전의 스승이 사람 스승만 못하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그렇다네. 그러나 옛 사람이 이르지 않았는가. "제자가 물은 곳을 가지고 지금 자신의 질문으로 삼아보며, 성인이 답한 곳을 가지고 지금 귀로 들은 것으로 삼는다.……"96)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어찌 경전 스승이 사람 스승만 못하겠는가. 더구나 정신과 마음으로 깨우치는 것은 직접 말로 고하여 가르치는 것보다 낫지 않음이 없으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一幅珍函。眞望外也。空靑水碧。何足以喩其貴也。披玩諷詠。足令苦鬱之懷。豁然消釋。如羾寒門而灈淸風也。仍審侍省節宣。凡百安宜。尢愜頂祝。示中經師不如人師之說。是固然矣。然古人不云乎。將弟子問處。便作今日已問。將聖人答處。便作今日耳聞云云。苟能如此。則經師何嘗不如人師乎。况神會心得。未必不勝於口誥而命之爲也。如何如何。 공청과 수벽 한약의 약재이다. 한문(寒門)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한문의 경계를 넘어 더 멀리 달린다.〔逴絶垠乎寒門〕"라는 구절이 있는데, 왕일(王逸)의 주(註)에, "한문은 북극의 문이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공중지(鞏仲至)가 시를 보내 준 데 답한 편지에, "이 더운 여름에 시원하기가 한문(寒門)에 날아올라 맑은 바람에 씻은 듯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인용한 말이다. 제자가……삼는다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류(致知類)〉에 "《논어》를 읽는 자가 다만 제자들이 질문한 것을 자신이 질문한 것으로 여기고, 성인이 대답한 것을 바로 오늘 귀로 듣는 것으로 여긴다면 자연히 터득함이 있을 것이니, 만약 《논어》와 《맹자》 가운데에서 깊이 구하고 완미하여 함양해 간다면 비상한 기질을 이루게 될 것이다.[讀論語者 但將弟子問處 便作己問 將聖人答處 便作今日耳聞 自然有得 若能於論孟中 深求玩味 將來涵養 成甚生氣質]"라는 정이(程頤)의 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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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여【승현】에게 답함 答黃新汝【承顯】 쓸쓸하고 적막한 가운데 늙고 병들어 있는데 벗의 편지가 오니 또한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버금가네. 그 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인하여 조부모, 부모를 기쁘게 모시는 가운데 신이 위로하여 건강함을 알게 되니, 더욱 우러르는 마음에 위안이 되네. 집안이 깊고 넓어서 주관해야 할 일이 매우 많으니, 전력으로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네. 자제가 할 일을 하지 않고 한갓 종이 위의 말에 얽매인다면 과연 어찌 학문이라 하겠는가. 보내준 편지를 읽어보니 회한하고 분비(憤悱)69)하는 뜻이 지면에 넘쳐나네. 참으로 이런 마음을 보존하여 평소에 행한다면 어버이를 섬기고 책을 읽는 것을 둘 다 함께 실행할 수 있으며 두 가지가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일세. 가장 훌륭한 사업은 이것보다 뛰어날 수 없으니 힘쓰고 또 힘써야 하네. 나는 근래 설사병을 앓아 한 달이 다되도록 차도가 없으니 너무나 괴롭다네. 경함(景涵)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에게 보낼 답서 두 편을 써놨는데, 인편이 없어서 아직까지 오랫동안 부치지 못하였네. 지금 함께 보내니 그가 돌아오면 전달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말을 공교롭게 하고 낯빛을 아름답게 한다.'는 말에 대해 《집주》에서 주자는 "성인의 말은 박절하지 않으니 전적으로 '드물다[鮮]'고 하면 절대로 없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의 말은 이미 박절하지 않은데, 주자의 말은 어찌 그리 박절합니까. 매우 아쉽습니다.답변 : 본문을 해석한 것이니, 그 말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네.질문 : 〈미자편〉의 첫머리에서 옛사람의 출처를 보인 연후에 성인의 출처를 보인 것70)은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이는 여러 주장을 모아서 절충(折衷)했기 때문이네. 衰病涔寂中。則故人書墨。亦足爲追從對晤之亞也。感感何喩。仍審重侍供歡。神勞多福。尤庸慰仰。家戶深闊。幹務多端。其不得專力讀書。固亦宜矣。不修子弟之職。而徒鎖紙上語。果何學也。及讀來喩。其悔悟憤悱之意。溢於紙面。苟能存此心而行於日用之間。則事親讀書。可以交修倂進。而有以相資矣。太上事業。無出此右。勉之勉之。義林近患痢症。彌月不退。苦事苦事。景涵尙不還家否。此有答書二片。而無便未付久矣。今倂以去。待其還。爲之傳致如何。巧言令色。集註朱子曰。聖人辭不迫切。專言鮮。則絶無可知。孔子之言。旣不迫切矣。朱子之言何其迫切痛缺。解釋本文。其言不得不爾。徵子篇。首以見古人出處然後。以見聖人之出處何。此集衆說折其衷之義。 분비(憤悱) 분비의 분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통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고, 비는 입으로 말을 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입으로 말해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거니와,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이로써 세 귀퉁이를 유추해서 알지 못하면 다시 더 말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미자편의……보인 것 〈미자〉 첫 부분에서 은나라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과 유하혜(柳下惠)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공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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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암【익현】어른의 신안사 간행소에서 감회가 있다는 시에 차운하여 드리다 次呈勉庵崔丈【益鉉】新安刊所有感詩 바라봄에 산두178)와 같아 우리 동방을 지키니 (望如山斗鎭吾東)부녀자나 천한 사람이나 앙모하는 마음 같네 (婦孺輿儓慕仰同)탐욕스러운 무리179)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니 (封豕長蛇眞可畏)집안에서 다투는 것 이것이 무슨 풍조인가 (鬩墻闘室此何風)풀뿌리에 붙은 반딧불180)은 빛이 되기 어렵고 (草根螢爝難爲照)불길 앞 한 잔 물181)은 공이 되지 못함 부끄럽네 (杯水車薪愧不功)오직 선생만이 지휘하여 넓히는 힘이 있어 (惟有先生揮廓力)은연중에 하나의 의견으로 모아졌네 (脗然歸合一家中) 望如山斗鎭吾東。婦孺輿儓慕仰同。封豕長蛇眞可畏。鬩墻闘室此何風。草根螢爝難爲照。盃水車薪愧不功。惟有先生揮廓力。脗然歸合一家中。 산두(山斗)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준말로, 세상 사람들이 흠앙(欽仰)하는 훌륭한 사람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최익현(崔益鉉)을 비유한 말이다. 탐욕스러운 무리 여기서는 왜적을 비유한다. 『춘추좌씨전』 정공(定公) 4년 조에 "오나라는 큰 돼지와 뱀이라서 끊임없이 상국을 침범하고 있다.[吳爲封豕長蛇, 以荐食上國.]"라고 하였다. 풀뿌리에 붙은 반딧불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글에 "반딧불과 촛불은 하찮은 빛이지만, 해와 달에 광휘를 더하리이다.[螢燭末光, 增輝日月.]"라고 하였다. 『曹子建集 卷8 求自試表』 불길……물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오늘날 인을 실천하는 자는 한 잔의 물로 한 수레 가득한 땔나무의 불을 끄려고 하는 꼴이다.[今之爲仁者, 猶以一杯水救一車薪之火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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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부안김씨(扶安金氏) 응산보청(鷹山譜廳)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丁卯九月 日 扶安金氏 鷹山譜廳 扶安金氏 羅州宗中 丁卯九月 日 1867 鷹山譜廳 扶安金氏 羅州宗中 전라북도 부안군 7.0*5.5(장방형) 흑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7년(고종 4) 9월에 부안김씨 응산보청에서 나주 종중에 보낸 통문. 1867년(고종 4) 9월에 부안김씨(扶安金氏) 응산보청(鷹山譜廳) 에서 나주 종중(羅州宗中)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모든 계파를 망라한 대동보를 만들기 위하여 각 종중에 수단(收單)과 전래(傳來) 문첩(文牒) 등 관련 문서를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대동보를 편찬하려는 노력은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고 각파에서 파보(派譜)만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종의(宗議)에서 회동한 뒤에 지난 무술년과 계해년에 교정 작업을 하였으나 일이 있어서 중지되었고, 그 뒤에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자료들이 망실되었다. 그러나 각 종파들이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남남처럼 된 형편이어서 소목(昭穆)을 밝혀 매해마다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백세일실(百世一室)의 문중을 되살릴 필요성도 그만큼 절실해졌다. 그리하여 작년 가을에 종중에서 발의하여 보청(譜廳)을 설치하고 수단(收單)을 하고 오는 3월 그믐까지는 족보를 편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문서는 나주의 종중에 이러한 내용을 다시 알려 관련 자료를 속히 보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통문의 작성연대는 정묘년으로만 기재되어 있으나, 통문에 서명한 도유사 김홍제(金弘濟)의 호구단자(戶口單子)들이 호남권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에 탑재되어 있어서 이를 토대로 위 정묘년을 1867년으로 추정하였다. 호구단자에 따르면 김홍제는 1822년생으로 부안현 상동면 상리에 거주하였는데, 1867년부터 1885년까지 그가 작성한 6건의 호구단자들이 현존하고 있다.(1867년 김홍제(金弘濟) 호구단자(戶口單子)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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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 성명【시귀】에 대한 만사 挽金公聖名【時龜】 능주는 경치가 좋은 고을이니 (紅綾山水邑)남쪽에 높은 하봉이 있네 (南有霞峯高)운림엔 푸른빛 감돌고 (雲林擁蒼翠)천석은 주위를 둘렀네 (泉石圍周遭)십여 호의 마을에 (籬落十餘戶)김씨가 은거한 곳 남아 있네 (金氏菟裘存)화목함은 향리에 드러났고 (惇睦著鄕里)시례는 자손에게 전하였네 (詩禮傳子孫)공이 온 것 그 어느 해였나 (公來昔何年)선업을 잘 계승하였네 (克肖先業美)풍도는 고인과 같고 (風度古人如)예악은 선배와 같았네 (禮樂先進似)효우는 집안에 넉넉하였고 (孝友洽于室)충신은 사람을 탄복시켰네 (忠信服於人)직접 농사지어 삼생199)으로 봉양하였고 (躬耕養三牲)술을 마련하여 사방 이웃을 모았네 (得酒會四隣)오직 천공만 알았으니 (惟有天翁知)복록은 은택이 많았네 (福祿多嘉惠)처자와 천수를 누렸고 (合琴共百齡)벗들은 한 기예를 지켰네 (群蘭守一藝)상복을 입고 함께 골목에 모이니 (緦服共巷聚)비난하는 말 들리지 않네 (未聞齗齘言)평생 온화한 기운을 간직하며 (平生和氣裏)소요한 즐거움 잊을 수 없네 (逍遙樂未諼)우리 집안과 주진200)같은 우의는 (鄙家朱陳誼)계속해서 어긋난 적이 없었네 (源源不曾虧)선군께서 살아 계실 적에 (先君在世日)노쇠한 나이에 친구가 드물었는데 (癃耋罕舊知)공이 찾아와 외롭고 적막함을 위로하여 (公尋慰孤寂)밤새 재미있게 담소를 나누셨네 (達夜語津津)작별하려다 도리어 오래 머물렀고 (欲别還留久)가자마자 자주 왔었네 (纔去復來頻)선군이 별세한 뒤에 (先君棄世後)공의 병이 선친과 같았네 (公病如先君)소자가 안부를 살피는 일 (小子省候節)다만 공처럼 부지런하지 못했네 (但末如公勤)쇠락하여 겨를이 없었지만 (沈没無暇隙)정녕코 하루인들 잊었겠나 (期擬何日忘)누가 알았으랴 기다리지 않고 (誰知不相待)갑자기 제향201)으로 가실 줄을 (遽爾歸帝鄕)이로부터 향린에는 (自此鄉隣間)선친의 벗 더 이상 있지 않네 (先友更無有)귀를 잡고 정성스럽게 가르쳐 주는 것 (提耳諄諄誨)아, 어느 곳에서 받을 수 있으랴 (嗚乎何處受)밤 누대 위에서 아득히 생각하니 (緬想夜臺上)옛 유람 선친과 함께 하리라 (舊遊共先親)소자가 저승에서 선친을 모실 때 (小子歸侍日)수일 안으로 응당 찾아가리라 (行應不多辰) 紅綾山水邑。南有霞峯高。雲林擁蒼翠。泉石圍周遭。籬落十餘萬。金氏菟裘存。惇睦著鄕里。詩禮傳子孫。公來昔何年。克肖先業美。風度古人如。禮樂先進似。孝友洽于室。忠信服於人。躬耕養三牲。得酒會四隣。惟有天翁知。福祿多嘉惠。合琴共百齡。群蘭守一藝。緦服共巷聚。未聞齗齘言。平生和氣裏。逍遙樂未諼。鄙家朱陳誼。源源不曾虧。先君在世日。癃耋罕舊知。公尋慰孤寂。達夜語津津。欲别還留久。纔去復來頻。先君棄世後。公病如先君。小子省候節。但末如公勤。沈没無暇隙。期擬何日忘。誰知不相待。遽爾歸帝鄕。自此鄉隣間。先友更無有。提耳諄諄誨。嗚乎何處受。緬想夜臺上。舊遊共先親。小子歸侍日。行應不多辰。 삼생(三牲) 소·양·돼지 세 가지 고기를 갖추어 봉양하는 것이다. 주진(朱陳)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 「주진촌(朱陳村)」에 나오는 옛 마을의 이름으로, 한마을에 주씨(朱氏)와 진씨(陳氏) 두 성씨만 살면서 대대로 서로 혼인하여 세의(世誼)가 있었다고 한다. 제향(帝鄕)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나라로, 『장자(莊子)』「천지(天地)」에 "저 흰 구름을 타고 제향에 이른다.[乘彼白雲, 至於帝鄕]"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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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형기】에게 답함 答金光淑【炯基】 뜻밖에 편지를 받아 봉투를 열어 살펴보고서, 슬픈 생각과 회한의 말이 편폭에 가득 흘러넘쳐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흐르게 만드네. 오호라! 조상의 뜻을 만분의 일이라도 계승하는 것은 글을 배우고 자신을 신칙하는 한 가지 일이 아닌가. 예서(禮書)를 읽는 여가에 이에 열심히 한다면 해야 할 일을 잘못했다고 이를 수 없을 것이네. 천박하고 비루한 나는 상유(桑楡)110)의 석양을 날리며 뉘엿뉘엿 산에서 떨어지는 해와 같은데, 노쇠하고 병든 모습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우니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죽은 귀신이 될 것이 분명하네. 불가의 시에 "이 몸 만약 이번 생애에 제도(濟度)하지 못한다면, 다시 장차 언제나 이 몸을 제도할까."라고 하였는데, 매번 이 시구를 외울 때면 끝없이 일어나는 회한을 견딜 수가 없네. 그렇다면 상중에 있는 그대의 엎어진 수레의 경계가 나에게 있지 않은가. 듣건대 '서당을 깨끗이 쓸고 휘장을 내려111) 틈틈이 어린 학동을 가르친다.'고 하니, 마음에 깊이 위안이 되네. 나는 그대가 상중112)에 있으면서 이따금 집안의 어려운 일을 겪는다고 들으니, 찾아가서 위로하고 싶지만 끝내 그러지 못하니 매우 부끄럽네. 料外惠疏。披玩以還。其悲霣之意。悔恨之語。滚滚盈幅。令人不覺釀涕涔涔。嗚呼。所以繼述其萬一之志者。非學問飭躬一件事乎。讀禮之暇。汲汲於此。不可謂非其任也。如淺陋者。桑榆殘景。苒苒如下山之日。而衰相病情。有難支吾。其爲無聞之鬼也。決矣釋氏詩曰。此身若不今生道。更將何時道此身。每誦及此語。而竊不自勝悠悠無窮之恨也。然則哀侍今日之車鑑。其不在於此乎。聞掃塾下帷。間課蒙率云。爲之慰仰不已。義林聞左右在憂苦中。而遭種種家故。思欲進慰未遂。愧負多矣 상유(桑楡) 해가 질 때 햇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꼭대기에 비치므로, 인생의 말년을 뜻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3에 "해가 서산으로 떨어질 때 햇빛이 나무의 꼭대기에 비치는 것을 상유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휘장을 내려 한(漢)나라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경제(景帝) 때에 박사가 되어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학문에 열중하여 "휘장을 내리고 강송하며 3년간을 뜰을 엿보지 않았다.〔下帷講誦, 三年不窺園.〕" 하였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상중 '우고(憂苦)'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어머니가 죽었을 경우에 쓰는 말이다. 《沙溪全書 卷32 喪禮備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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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 文仁涵字銘 문생 재갑이관례를 이미 마쳤네인함으로 자를 지으니그 뜻이 무엇인가원이 만물을 퍼뜨리고형이 갖가지 형상을 유행시키네형통했다가 회복하지 못하면사물이 어찌 이룸이 있겠는가까닭에 이와 정이대화를 보합하네77)석과는 먹히지 않고78)신령한 뿌리는 또한 감추네바야흐로 아직 토해내지 않았을 땐껍질이 단단하고 둥그네생생하는 이치 내면에 포함하고 있어태극이 이에 온전하네만 가지 변화의 기축이고백 가지 이치의 창고이네해치지도 말고 잃지도 말아이것을 보호하고 길러야 하네그 뜻이 매우 정밀하니가슴에 새겨 싫어하지 말라우레가 치고 비가 조화로우면장차 껍질이 터지는 것 보리라79) 文生載甲。冠已三加。字以仁涵。其義何居。元播群彙。亨流品形。通而不復。物豈有成。所以利貞。保合大和。碩果不食。靈根亦晦。方其未吐。甲包團圓。生理內函。太極斯全。萬化機軸。百理庫藏。勿害勿喪。是保是養。其義甚精。銘佩無斁。雷解雨和。將見甲柝。 까닭에……보합하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건도가 변하여 화함에 각각 성명을 바루니, 대화를 보합하여 이에 이롭고 정하다.[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 乃利貞.]"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석과는 먹히지 않고 《주역》 〈박괘(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는데, 이는 양효(陽爻) 하나가 다섯 개의 음효(陰爻) 위에 있으면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 결코 끊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레가……보리라 《주역》 〈해괘(解卦) 단(彖)〉에 "천지가 풀려서 우레가 치고 비가 오고, 우레가 치고 비가 오니 온갖 과목과 초목의 껍질이 모두 터지니, 해의 때가 크도다.[天地解而雷雨作, 雷雨作而百果草木, 皆甲坼, 解之時大矣哉!]"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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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원72) 자명 李希遠字銘 상하 사방을우라 하고지난 옛날 오늘의 지금을주라 하네오직 성인은 하늘을 바라그 덕을 넓게 운용하고오직 현인은 성인을 바라73)이 법칙을 넓고 굳세게 하네이씨의 아들나이가 바야흐로 14세이니길일을 택하고74) 길일을 받아75)관례를 마쳤네몸을 바로하기를 넓음으로 하고덕을 드러내기를 멂으로 하네넓어야 무거운 것을 감당하고굳세어야 멀리까지 도달하네천 근의 짐이 등에 있고만 리의 길이 앞에 있네날로 달로 매진하여혹시라도 허물이 없도록 하라 上下四方。是之謂宇。古往今來。是之謂宙。惟聖希天。廣運其德。惟賢希聖。弘毅是則。李氏之子。年方二七。差穀涓吉。三加告畢。正體以弘。表德以遠。弘以任重。毅以致遠。千斤在背。萬里在前。日邁月征。無或有愆。 이희원(李希遠) 이홍신(李弘信, 1895~?)을 말한다. 자는 희원,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오직……바라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지학(志學)〉에 "성인은 하늘을 본받기를 바라고, 현인은 성인을 본받기를 바라고, 선비는 현인을 본받기를 바란다.[聖希天, 賢希聖, 士希賢.]"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길일을 택하고 원문의 '차(差)'는 '선택'의 뜻이고, '곡(穀)'은 '선(善)'의 의미이다. 길일을 받아 원문의 '연길(涓吉)'을 풀이한 말이다. 길한 날을 받는다는 뜻으로, 납폐와 사주단자를 받은 신부 측에서 혼례식 날짜를 받아서 신랑 측에 '연길장(涓吉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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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80) 자명 任宇卿字銘 상하 사방을우주라 하네크기로는 밖이 없고멀기로는 다함이 없네군자는 이것을 본받아더불어 체를 함께하네요임금의 성덕은 광대하게 운행 되고81)증자의 현철은 넓고 굳세었네82)되와 말 부와 곡83)을종정과 강해처럼넓은 도량으로 포용하고합하는 것 가려서 수용하네경계가 어긋나면일곱 군데로 배어들고 여덟 군데로 새게 되네울타리를 가르고 부수어물과 나를 공평하게 하네확연히 크게 공평하면천지가 문안에 있네아, 우경이여이 자를 볼지어다 上下四方。是之謂宇。大則無外。遠則不禦。君子是則。與之同體。堯聖廣運。曾賢弘毅。升斗釜斛。鍾鼎江海。以量而容。擇合而受。畦畛逕庭。七滲八漏。剖破藩籬。蕩平物我。廓然大公。八荒在闥。嗟乎宇卿。視此表德。 임우경(任宇卿) 임태주(任泰柱, 1881~1944)를 말한다. 자는 우경, 호는 성재(誠齋),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성재집》이 있다. 요임금의……되고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익(益)이 제순(帝舜)에게 "요제(堯帝)의 덕이 광대하게 운행되어 거룩하고 신묘하며 무와 문의 덕을 모두 구비하자, 황천이 돌아보고 명하여 사해를 다 소유하고 천하의 군주가 되게 하였습니다.[帝德廣運, 乃聖乃神, 乃武乃文, 皇天眷命, 奄有四海, 爲天下君.]"라고 제요(帝堯)를 찬미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증자의……굳세었네 《논어》 〈태백(泰伯)〉에 증자가 말하기를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는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을 자기의 임무로 여기니 무겁지 않겠으며, 죽은 뒤에야 그만두니 멀지 않은가.[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부(釜)와 곡(斛) 부는 6말 4되, 곡은 10말이 들어가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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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경84) 자명 梁而敬字銘 상제가 충을 내려주니이것을 명덕이라 하네하늘이 만물을 주관하여이 인극을 세우네기품에 구속되고 외물에 가리니치우침이 없을 수 없네그대로 따르기만 하고 반성하지 않으면서로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네학문하는 도는먼저 그 덕을 밝히는 것이네덕에 들어가는 방법은경을 위주로 하여 곧게 하는 것이네경으로 덕을 모으고덕으로 도를 응집시키네이 관건을 열면분명히 단서가 있네양씨의 아들나이가 이미 17세이네아름다운 아이에게순서대로 관례를 하였네그 이름 회덕이니이경으로 자를 짓네그 뜻이 서로 기다림이마치 체에 용이 있는 것과 같네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엄숙히 하여연못에 임하듯 얼음을 밟는 듯하네마음이 어둡고 게으르지 않으면이치가 절로 흘러 통하네이름을 돌아보고 의를 생각하여마치 어깨에 짐을 진 듯이 하네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85)밝은 명이 이에 온전할 것이네오호라 이경이여성인의 시작이니어찌 힘써 노력하지 않겠는가앞길이 만 리이네 上帝降衷。是曰明德。參天宰物。立此人極。氣拘物蔽。不能無偏。因循不省。相去愈遠。爲學之道。先明厥德。入德之方。主敬以直。敬以聚德。德以凝道。啓此關鍵。的有端緖。梁氏之子。年已十七。婉變丱角。三加有秩。其名會德。字以而敬。其義相須。如體有用。正冠尊膽。臨淵履氷。心不昏怠。理自流通。顧名思義。如擔在肩。日乾夕惕。明命斯全。嗚乎。而敬。成人之始。豈不勉力。前程萬里。 양이경(梁而敬):양회덕(梁會德, 1874~?)을 말한다. 자는 이경, 호는 용강(龍岡)이다. 종일토록……두려워하면 《주역》 〈건괘(乾卦) 구삼(九三)〉에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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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기일에 밤을 세울 때 진후산의 '향래일판향 경위증남풍' 시42)를 사용하여 분운해서 절구 시 10수를 짓다 先師諱辰 達夜時 用陳後山向來一瓣香敬爲曾南豐之詩 分韻得十絶 예로부터 사람은 세 분의 은혜로 살아가니 從古人生三섬기는 도리를 똑같이 해야 하네43) 事之道非兩구산44)에는 명철하신 스승 계시니 臼山有哲師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셨네 爲我正趨向지와 행은 여전히 형편없는데 知行尙鹵莽치아와 두발은 대뜸 쇠해졌네 齒髮遽衰頹초심 저버려 참으로 부끄러우니 愧煞負初心이제는 변변찮은 사람이 되었네 至今作底來근심스레 앉으니 생각이 끝없는데 悄坐思何極망연하여 뭔가 잃은 듯하네 茫然如有失내 나이 이제 59세요 吾年五十九스승 돌아가신 지 21년이네 樑折卄加一스승의 정령을 거의 첨앙할 수 있으니 精靈庶可瞻북쪽 향해 숲 골짜기로 흘러가누나 北指流林磵따라가고 싶지만 끝내 무엇으로 말미암을까 欲往竟何由멀리서 공경히 향불 사를 뿐이네 遠呈心裏瓣고개 들어 사해를 바라보고 擧頭望四海묵묵히 헤아린다오 黙爾有商量실컷 먹으며 어찌 더러움 달게 여기랴 飽飫寧甘穢야위어도 끝까지 향기 간직하리라 槁枯終抱香학문은 묻노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學問問何如마음을 전함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傳心爲究竟마음공부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心功復何如시종 경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네 終始在於敬존덕성(尊德性)의 비결이 분명한데 分明尊性訣그 일맥을 누가 붙들어 유지할거나 一眽孰扶持노유(老儒)께서 당시에 흘렸던 눈물 禪宿當年淚지극히 공정하고 작위함 있지 않았네 至公非有爲화도45)에는 꽃이 다시 피고 華島花重發월암에는 달이 절로 맑네 月菴月自澄스승께 가르침을 받았던 곳 坐春立雪處또렷하게 예전 일이 기억나네 歷歷記前曾오늘 밤은 어떤 밤인가 今夕是何夕해마다 오는 7월 3일이네 年年七月三나그네 회포에 마음까지 좋지 않은데 旅懷兼作惡가을 기운이 또 강남 같구나 秋氣又江南이내 생애 무슨 일 할거나 此生何所事부처에 보은하여 충성하려네 報佛願言忠곧장 죽음에 이른 뒤에는 直到斃而後운명의 후박과 상관 없다네 不關命嗇豊 從古人生三, 事之道非兩.臼山有哲師, 爲我正趨向.知行尙鹵莽, 齒髮遽衰頹.愧煞負初心, 至今作底來.悄坐思何極? 茫然如有失.吾年五十九, 樑折卄加一.精靈庶可瞻, 北指流林磵.欲往竟何由? 遠呈心裏瓣.擧頭望四海, 黙爾有商量.飽飫寧甘穢? 槁枯終抱香.學問問何如? 傳心爲究竟.心功復何如? 終始在於敬.分明尊性訣, 一眽孰扶持.禪宿當年淚, 至公非有爲.華島花重發, 月菴月自澄.坐春立雪處, 歷歷記前曾.今夕是何夕? 年年七月三.旅懷兼作惡, 秋氣又江南.此生何所事? 報佛願言忠.直到斃而後, 不關命嗇豊. 진후산(陳後山)의……시 진후산은 송(宋)나라 진사도(陳師道)로, 이 시는 〈연국 문충공 집에서 육일당의 도서를 보고 짓다〔觀兗國文忠公家六一堂圖書〕〉라는 제목의 시이다. 거기에 "지난날 한 줌 향을, 공경히 증남풍을 위해 살랐네.[向來一瓣香, 敬爲曾南豐.]"라고 하였다. 《後山集 卷1》 증남풍은 진사도의 스승 증공(曾鞏)을 이른다. 예로부터……하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도리를 말한다. 《국어(國語)》 〈진어(晉語)〉에 "사람은 세 분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니, 섬기기를 똑같이 해야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산(臼山) 어디인지는 모르나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강학했던 곳으로, 전우의 또 다른 호이기도 하다. 화도(華島) 전라북도 부안의 계화도(繼華島)로, 전우(田愚)가 만년에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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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보112) 【용동】에게 답함 答朴寬甫【容束】 매번 생각건대 우리 관보(寬甫)는 의용(儀容)은 단정하고 순수하며 재성(才性)은 열리고 시원하여 선을 즐기고 의를 좋아하며 경전에 힘쓰고 학문을 쌓았지만, 부족한 점은 단지 격려하여 진작하는 뜻일 뿐이었네. 이것은 전체에 있어서는 한 가지 선이 미비한데 불과하지만 진덕수업(進德修業)의 요체와 귀결을 논하자면, 어찌 다만 큰 수레에 예(輗)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軏)이 없는 것113)일 뿐이겠는가? 보잘것없는 벗의 마음은 일찍이 이것을 염려하여 갖가지에 대해 어리석은 견해를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네. 경문(景文)이 와서 그대 편지를 받았으니, 뉘우쳐 깨닫고 근심하여 분발하는 뜻이 언사(言辭)에 넘쳐나는 것이 끊임없이 이어졌네. 오호라! 이 같이 좋은 자질에 또 이러한 좋은 의사를 가지고 있으니, 이로부터 진취(進就)하는 것이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전지(田地)가 이미 마련되었으니 농사짓고 수확하는 것을 바랄 수 있고, 근원이 이미 확립 되었으니 지류는 통달할 수 있네. 다시 바라건대 지금부터 이후로 이 뜻을 굳게 지켜 조금이라도 해이한 때가 없게 하여, 음식과 기거 등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이 일일이 이 뜻에서 나오도록 하시게. 문목은 조목대로 답하지만 어찌 오류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바라건대 다시 깨우쳐 주시게.[문]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천하에 성을 말함은 고일 뿐이다.〔天下之言性也 則故而已矣]"라고 한 것은 성(性)을 형용할 수 없어 단지 이미 그러한 사적을 들어서 말한 것이니, 성선(性善)을 말함에 반드시 요순을 일컬었다114)는 뜻과 같은 것입니까?[답] 실로 그러하네.[문] "진심(盡心)"의 '심(心)' 자는 온전히 이(理)의 심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기(理氣)의 심을 가리키는 것입니까?[답] 이 심 자는 이(理)의 양(量)이네. 每念我寬甫儀容端粹。才性開爽。樂善嗜義。劬經績學。而所少者。只是激厲振發底意耳。此在全體。不過爲一善之未備。而論其進修要歸。則奚但大車之無輗。小車之無軌而已哉。區區知舊之心。曾不無以此爲慮。而種種效愚者也。景文來。得承心晝。其悔悟憂憤之溢於言辭。娓娓而不止。嗚乎。以若好資質。又有此好意思。從此進就。豈有涯量。田地旣辨。耕獲可望。根源旣立。枝流可達。更願自今以往。堅守此志。勿使少有解散時節。至於飮食起居凡百云爲。一一自此志中流出也。問目逐條奉答。安知無差謬也。幸再諭之。天下之言性也。則故而已云者。性不得形言。而只擧已然之事迹而言。如道性善。必稱堯舜之意耶。固然。盡心之心字。是全指理之心耶。理氣之心耶。此心字。是理之量。 박관보(朴寬甫) 박용동(朴容東, 1860~?)을 말한다. 자는 관보,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큰 수레에……것 《논어》 〈위정(爲政)〉에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다면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대거에 예가 없거나 소거에 월이 없으면, 어떻게 굴러갈 수가 있겠는가.〔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대거는 짐수레, 소거는 병거(兵車)나 사냥하는 수레를 말한다. 예(輗)는 수레 앞에 뻗친 두 개의 채장〔轅〕 끝에 가로로 붙인 나무인데, 이것을 소의 멍에에 묶어서 끌게 하는 것이고, 월(軏)은 원(轅)의 끝에서 위로 구부러진 것으로, 가로 댄 나무〔橫木〕에 걸어서 말의 목에 얹어 끌게 하는 것이다. 성선(性善)을……일컬었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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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오기 石梧記 용한당(容閒堂) 주인은 나의 죽마고우이다. 하루는 그의 족대부 석오당(石梧堂)의 당기(堂記)를 보여 주었는데, 기문을 지은 사람은 금오 산인(金鰲山人) 홍공(洪公)139)이었다.오호라! 내가 석오당에 올라 이른바 석오라는 것을 본 지 오래 되었다. 일찍이 기억하건대, 그 한 구역의 돌이 평평하게 깔려 방정하였는데 넓이는 십여 명을 용납할 만하였고, 한 그루 오동나무는 둥글기가 수레의 일산 같았고 드리운 그늘은 또 족히 그 돌을 덮을 만하였다. 주인옹은 여기에서 노닐며 읊조리고 여기에서 머물며 지냈는데, 그 그윽한 경치는 형언할 수 없었다.몇 해 전에 듣건대 주인옹이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다고 하였는데, 내가 생각하기를 옹의 흥치로 지금 비록 이 돌과 오동나무를 소유할 수 없지만 새로 우거하는 문 앞에 반드시 어떤 물건이든 다시 돌과 오동나무 같은 것을 두었으리라 여겼다. 지금 당의 기문을 보건대, 바로 다시 석오(石梧)로 자처하였으니, 어찌 옹은 사물에 국한되는 것이 이와 같은가? 아!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로 통달한 것이다.무릇 사물을 완호하면 국한되고 이치를 따르면 통달하니, 돌과 오동나무는 하나의 사물이지만 돌과 오동나무가 될 수 있는 이치는 실로 하나의 사물이 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능히 지절(志節)에 힘쓰고 힘써 확고하여 꺾이지 않는다면 누가 내 마음이 돌이 아니라 하겠으며, 진실로 능히 취사(取舍)를 분별하여 그 큰 것을 확립하면 누가 그 오가(梧檟)를 버리라140)고 하겠는가. 선을 가려서 굳게 지키는 도는 그 대강이 절실하여 은연히 보통의 명물(名物)에 함축시키는 것이다. 이에 옹이 돌과 오동나무를 위한 것은 사물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안 지가 오래 되었으니, 어찌 한 구역 돌과 한 그루 나무가 있고 없는 것에 얽매이겠는가. 이것이 집을 떠나 임시로 지내는 곳에 돌과 오동나무를 가까이 하지 않지만 옹이 돌과 오동나무를 위하는 것은 실로 여전한 이유이니, 전날 경물의 사이에 서로 기약한 것은 그 알았던 것이 또한 너무 천박하지 않은가.의림(義林)은 비루한 사람이라 본래 족히 따질 만한 것이 없으니, 원컨대 석오옹(石梧翁)의 뒤를 따라 이 의리를 강론하여 밝히고, 또 금오 산인과 용한당 주인과 함께하여 노년의 계획으로 삼기를 바란다. 容閒堂主人。余竹馬友。一日示其族大父石梧堂堂記。記之者。金鰲山人洪公也。嗚乎。余升石梧堂。見所謂石梧者久矣。曾記其一區石。平鋪方正。廣可容十數人。一株梧。團如車盖。所吐之陰。又足以庇其石。主人翁游詠於斯。盤旋於斯。其窈窕景致。不可名狀。數歲前。聞翁移寓他所。余謂以翁之興致。今雖不得有此石梧。而新寓門前。必有何物復有如石梧者。今見堂記。乃復以石梧自居。何翁之局於物如是耶。噫。非局也。乃所以通也。夫玩物則局。循理則通。石梧一物也。而其可以爲石梧之理。固非一物之所獨得。苟能勉勵志節。確然不拔。則孰謂我心匪石。苟能辨别取舍。立乎其大。則孰謂舍其梧檟。擇善固執之道。其梗槩切實。隱然含蓄於尋常名物之地。於是乎知翁之爲石梧。不在於物而在於己久矣。豈繫乎一區右一株木之有無哉。此所以離室僑居。不與石梧相近。而翁之爲石梧。固自若也。前日之相期於景物之間者。其爲知不亦淺乎。義林鄙生也。本不足爲有無。願從石梧翁之後。講明此義。又與金鰲山人容閒主人共之。以爲桑榆之計。 금오 산인(金鰲山人) 홍공(洪公) 홍경고(洪景古, 1645~1699)를 말한다. 호는 팔우(八愚),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오가(梧檟)를 버리라 맹자가 "지금 장사가 오동나무와 개오동나무를 버리고 가시나무를 기른다면 천한 원예사가 되는 것이다.[今有場師舍其梧檟, 養其樲棘, 則爲賤場師焉.]"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인데, 이는 곧 사람이 중대한 자기의 심지(心志)는 기를 줄 모르고 사소한 구복(口腹)이나 채우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孟子 告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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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헌기 瑞軒記 남쪽 지방에 헤아릴 만한 명산이 하나가 아니지만 그 체덕(體德)을 말한다면 모두 서석산(瑞石山)만 못하다. 봉우리는 기울지 않았고 돌은 거칠지 않으며 초목으로는 가시나무가 없고 벌레로는 독충이 없다. 정령(精靈)이 내린 바에 현인이 배출되고 지맥(枝脈)이 뻗은 곳에 명구(名區)가 서로 바라보인다. 아마도 천지가 열리던 초기에 일종의 정숙(禎淑)한 기운이 모여들어 응결된 것이 있을 것이다. 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백 여리를 달려 화순[爾陵]의 경계에 이르러 연화봉(蓮花峰)이 되었다. 나의 벗 사문(斯文) 김성중(金誠仲)이 연화봉 끝자락에 한 채의 정사를 지었는데 서석산과 정확히 마주하고 있다.무릇 군자는 산에 대해서 적취(積聚)한 형상을 보고 그 덕(德)을 기르고, 후중(厚重)한 형상을 보고 그 인(仁)을 돈독히 한다. 더구나 늘어선 봉우리와 여러 산들과 견줄 것이 아니고 마치 거인장자(巨人長者)가 높은 갓을 쓰고 넓은 띠를 두른 채 엄연히 창문과 궤석의 앞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아서, 출입하고 기거하며 휴식하고 한가로이 지냄에 비록 잠시라도 떨어지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이 헌(軒)이 '서(瑞)'가 된 까닭이다.오호라! 헌이 이미 상서로우니, 사람이 유독 상서롭게 되지 않겠는가. 감히 침을 뱉지 못하는 것이 청성(靑城)의 산과 같고145) 감히 거만하지 못하는 것이 남간(南澗)의 돌146)과 같아 담담하게 마주하고 묵묵히 계합하며, 가만히 수양하고 고요히 함양하여 낮은 곳으로부터 높이 올라가고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루어 명망과 실상이 높고 무거우며 기풍과 운치가 높고 가파른데 이른다면 한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장차 경성(景星)과 경운(慶雲)147) 같이 우러르고 상서로운 봉황과 기린 같이 사모할 것이니, 그 사람 가운데 상서로움이 되는 것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서헌(瑞軒)의 주인이 된 것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南方名山可數者非一。而言其體德。則皆莫若瑞石焉。峯不偏側。石不麤厲。草無荊棘。虫無虺蝎。精靈攸降。賢人輩出。枝脈攸及。名區相望。蓋開闢之初。一種禎淑之氣。有以鍾聚融結者也。山之一支。南走百餘里。至爾陵界爲蓮花峰。余友金斯文誠仲。就峯之趾。築一區精舍。與瑞石的對。夫君子之於山。觀積聚之象以育其德。觀厚重之象以敦其仁。況非列峯群巒之比。而如巨人長者。峩冠博帶。儼然峙立於窓牖几席之前。出入起居。遊息燕閑。雖欲頃刻離之而不可得。此軒之所以爲瑞也。嗚乎。軒旣㙐矣。人獨不爲瑞矣乎。不敢唾如靑城之山。不敢慢如南澗之石。澹對黙契。潛修靜養。自卑而高。積小而大。以至望實隆重。風韻崢嶸。則一世之人。必將仰之如景星慶雲。慕之如祥鳳瑞麟。其爲人中之瑞。果何如哉。庶無負爲瑞軒主人也。 감히……같고 당(唐)나라 두보(杜甫, 712~770)의 시 〈장인산(丈人山)〉에 "청성에서 나그네살이 하게 되면서, 청성 땅에는 침을 뱉지 못하였네.[自爲靑城客, 不唾靑城地.]"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杜詩詳註 卷10》 감히……돌 주자의 시 〈운곡26영(雲谷二十六詠)〉가운데〈북간(北澗)〉에 "흙 끊어지고 시내 또한 나누어지니, 북쪽 아래에 어두운 시내 이루어졌네. 빼어난 돌이 아름다운 이름 얻었으니, 가슴에 새겨 내 감히 거만하랴.[土斷川亦分, 北下成陰澗. 秀石得佳名, 服膺吾敢慢?]"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이 시의 주석에 "시내에 인의석이 있다.[澗有仁義石]"라고 하였다. 남간(南澗)은 북간의 착오로 보인다. 경성(景星)과 경운(慶雲) 고대에 태평 시대에 나타난다고 인식했던 상서로운 현상들이다. 경성은 대성(大星), 덕성(德星)이라고도 하고, 경운은 오색의 채운(彩雲)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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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포기 錦圃記 염계(濂溪)는 용릉(舂陵)에 있는 것이 아닌데 주자(周子)가 호로 삼았고,193) 자양(紫陽)은 건양현(建陽縣)이 아닌데 주자(朱子)가 제호(題號)로 삼았으니,194) 대개 그 근본을 잊지 않고 부터 나온 바를 즐거워한 것이다.나의 벗 최 사문(崔斯文) 치화(致和) 씨는 그의 10대조 승지공(承旨公)부터 처음 강진(康津)의 금천(錦川)에 살았고 증조 때 이르러 강진의 성전(城田)에 우거하였는데, 치화는 지금 또 행정(杏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장수유식(藏修遊息)195)하는 곳을 금포서실(錦圃書室)이라 이름을 붙였으니, 생각건대 몸과 집이 떨어져 그 거처가 일정하지 못해도 부터 나온 바를 잊지 않는 것이니, 염계·자양의 경우와 같다고 말하지 않겠는가.오호라! 월(越) 땅의 새와 호(胡) 땅의 말도 오히려 남쪽 가지에 깃들고 북풍에 의지할 생각이 있는데,196) 더구나 사람은 만물의 영장인데 그 근본을 생각하고 선조를 사모함이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스승이나 어른의 행차가 방문 했던 어떤 물과 언덕도 오히려 장차 기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이와 같은데 더구나 선조의 지행(志行)과 도모[謨猷]가 가정에 전해지는 것은 어찌 혹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이런 뜻을 가지고 본령을 삼은 연후에야 자신의 몸을 스스로 아낄 줄 알아 포기하는데 이르지 않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아낄 줄 알면 힘써 배우고 독실하게 행하여 집안에 마땅하고 종족을 보존하는 것은 모두 차례대로 되어갈 일이다. 나는 치화가 잘 계승하고 전술하여 앞으로 그 집안을 창성하게 날이 있을 것임을 알겠으니, 힘쓸지어다! 濂溪非春陵而周子號焉。紫陽非建陽而朱子題焉。蓋不忘其本而樂其所自生也。余友崔斯文致和甫。自其十世祖承旨公。始居康津之錦川。至曾祖寓同縣之城田。而致和則今且見居于杏亭矣。然於其修息之所。題以錦圃書室。維身家流離。不恒厥居。而不忘其所自生。得非如濂溪紫陽之謂耶。嗚乎。越鳥胡馬。猶有巢南倚北之思。況人爲萬物之靈。而其於懷本慕先。謂何如耶。杖屨所過。某水某邱。猶且記存如是。況祖先之志行謨猷。貽傳於家庭者。豈容晷刻可忘耶。人有此意。爲之本領。然後知自愛其身。而不至於暴棄。知自愛其身。則力學篤行。宜家保族。皆其次第事。吾知致和之善繼善述。昌大其門。將有日矣。勉之哉。 염계(濂溪)는……삼았고 염계는 중국 호남성(湖南省) 도현(道縣) 여산(廬山) 기슭에 있는 물 이름이다. 용릉(舂陵)은 호남성 영원현(寧遠縣)에 있는 지명인데, 주돈이(周敦頤)의 출신지이다. 출신지를 호로 삼지 않고 염계를 호로 삼은 것을 말한다. 자양(紫陽)은……삼았으니 자양은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의 자양산을 말한다. 주희의 아버지 주송(朱松)이 여기에서 독서하였는데, 후에 주희가 청사(廳事) 이름을 자양서실(紫陽書室)이라고 하여 부친을 잊지 않는 뜻을 나타낸 것을 말한다. 건양현은 복건성에 있는데, 주희가 운곡(雲谷)에 회암초당(晦庵草堂)을 짓고 살았다. 장수유식(藏修遊息) 늘 학문에 전념함을 뜻한다. 《예기》 〈학기편(學記篇)〉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 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월(越) 땅의……있는데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에 "호 땅의 말은 북풍에 몸을 의지하고, 월 땅의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짓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심정을 말한다. 《文選 卷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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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고 2수 觀海【二首】 큰 바다가 서쪽으로 연주 청주와 접했는데 大溟西接兗靑濱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진정 장관임을 알았네 壯觀今朝始得眞천하의 팔십일분은 모두 물이요 八十一分都是水백만 천만의 백성들 얼마나 많은 사람인가 百千萬衆幾多人산가지 쌓여 해옥에 가득한들25) 누가 육지를 볼까 積籌盈屋誰看陸삼신산에서 약을 찾으니26) 내가 진나라를 비웃네 求藥三山我笑秦작은 나루터인양 두 바다를 건넜다 들었으니 聞涉二洋如小渡지금 세상에 새로운 전쟁을 더욱 탄식하네 更歎今世戰爭新만 리의 넓은 바다라 물가를 묻지 않으니 萬里滄溟不問濱물이 되기 어렵다27)는 말 진짜임을 알겠네 難爲水說覺爲眞배들이 왔다 가듯이 어수선한 일이 많고 舟來舟去紛多事조수가 밀려왔다 밀려가듯 늙어서 다 죽지 潮落潮生老盡人도를 잃을까 걱정한 선니는 뗏목 띄우려 했고28) 宣尼欲浮憂喪道진나라 높이길 부끄러워한 중련은 바다에 빠지려 했네29) 仲連願蹈恥尊秦바다를 보니 흉금이 탁 트인다고 누가 말했던가 誰云觀海胸懷豁안개 낀 물결이 눈에 가득하니 감개가 새롭도다 滿目煙波感慨新 大溟西接兗、靑濱, 壯觀今朝始得眞.八十一分都是水, 百千萬衆幾多人?積籌盈屋誰看陸? 求樂三山我笑秦.聞涉二洋如小渡, 更歎今世戰爭新.萬里滄溟不問濱, 難爲水說覺爲眞.舟來舟去紛多事, 潮落潮生老盡人.宣尼欲浮憂喪道, 仲連願蹈恥尊秦.誰云觀海胸懷豁? 滿目煙波感慨新. 산가지가……가득한들 장수를 축원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해옥(海屋)은 신선이 사는 해상의 집을 말한다. 노인 세 사람이 만나서 나이를 물어보니,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바닷물이 말라서 뽕나무밭이 될 때면 내가 산가지 하나를 내려놓는데, 그동안 내가 헤아린 산가지가 열 칸의 내 집에 벌써 가득 찼다.〔海水變桑田時 吾輒下一籌 邇來吾籌已滿十間屋〕"라고 했다는 해옥첨주(海屋添籌)의 이야기이다. 소식(蘇軾)의 《동파지림(東坡志林)》 〈삼로어(三老語)〉에 나온다. 삼신산(三神山)에서 약을 찾으니 진 시황(秦始皇) 28년에 제(齊)나라 사람 서불(徐巿) 등이 글을 올려 바닷속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에 가서 재계하고 동남동녀와 함께 신선을 찾으라고 권하자, 진 시황은 서불에게 어린 남녀 수천 명을 딸려서 삼신산을 찾아 불사약을 구해 오게 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물이 되기 어렵다 큰 바다를 보고 나면 그때부터는 어지간한 물은 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맹자》〈진심 상(盡心上)〉에 "바다를 구경한 자에게 웬만한 물은 물이 되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공부한 자에게 웬만한 말은 말이 되기 어려운 법이다.〔觀於海者, 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 하였다. 선니(宣尼)는……했고 선니는 공자의 별칭으로, 한 평제(漢平帝) 원시(元始) 원년에 공자를 추시(追諡)하여 포성선니공(褒成宣尼公)이라고 하였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공자가 천하의 어지러움을 탄식하며,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에 뜨리라.〔道不行, 乘桴浮于海.〕" 하였다. 중련(仲連)은……했네 전국 시대 제(齊)나라 노중련(魯仲連)의 고사이다. 전국(戰國) 시대 때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할 때, 위(魏)나라의 신원연(新垣衍)이 진나라가 군대를 철수하는 조건으로 진나라를 황제로 높이자고 제의하자, 당시 조나라에 와 있던 제(齊)나라 노중련이 분개하며 말하기를, "불의한 진나라가 황제가 되어 천하에 정사를 펴게 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東海)에 빠져 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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