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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亨仲【鐘宅】 二妙入門。可知爲先生弟子。問之果令胤與及門秀士。惠札又出望外。其喜可量。仰審榴夏省侍無損。區區叶祝。屢空之歎。奉老人事。安得不然。然尊旣讀書。何不以顔子不改其樂。夫子所訓此重彼輕之說。反以自寬耶。此外無別樣方法。未知如何。駿風眩爲苦。已數朔矣。山菴便是養病房。精力澌盡。空誤往來朋友。自愧又自憐也。示中世變之日深一日。足見憂時之無不到也。扶持鞏固之責。以自勉者勉人。甚仰甚仰。僬僥之力。能任千斤者。未之前聞。惟願高明把作大擔負如何。松沙翁去月初。以霍亂泄痢。屢阽危境。在外子姪。急走招入。而旋卽聞稍可。餘崇尙未快復。日前難窩胤哀。請文進去。後期而還耳。月前得木直老子數宵談論。心中覺快活。未知那間與之相見否。方營凰山墓碣。望晦間將向藍浦云矣。年前所託契。果作何狀。從後示破爲好。此處則雖云始設。而一直零星。亦可以觀世變矣。奈何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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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빈존댁(賓存宅)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경제-회계/금융-수기 甲辰年 賓有宅 金彩相 甲辰年 賓有宅 金彩相 전라북도 부안군 2.7*2.2(타원형)흑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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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1872, 고종9) 7월 16일은 바로 우리 태조께서 개국한 회갑이기에 감회가 있어 짓다 壬申七月十六日。郎我太祖開國回甲也。有感而作。 사백 년 전에 왕조를 개창하여 (四百年前開社稷)삼천리 강토를 통일하였네 (三千里內統車書)나라를 길이 보존할 신단을 올리고자 하니 (欲將壽國神丹進)북두성 아득하여 감회가 끝이 없네 (北斗蒼蒼感有餘) 四百年前開社稷。三千里內統車書。欲將壽國神丹進。北斗蒼蒼感有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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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전재67)【헌회】의 중구일 집구시에 화운하여 올리다 和上任全齋【憲晦】九日集句詩 상로장68)에 도착하여 중구일을 만나니 (行到上蘆逢九日)뜰 앞의 황국은 빗속에 피었네 (庭前黃菊雨中開)선생은 용산에서의 술자리를 잇고자 하여 (先生爲續龍山飲)채소와 과일을 쟁반에 담고 술을 잔에 가득 채웠네 (菜果登盤酒滿杯) 行到上蘆逢九日。庭前黃菊雨中開。先生爲續龍山飲。菜果登盤酒滿盃。 임전재(任全齋) 임헌회(任憲晦, 1811~1876)이다.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전재(全齋)·고산(鼓山)·희양(希陽)이다. 송치규(宋穉圭)의 문인으로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계승하여 전우(田愚)에게 전수하였다. 저서로는 『전재집(全齋集)』이 있다. 상로장(上蘆場) 임헌회(任憲晦)가 거주한 충청남도 전의현(全義縣) 동면(東面)에 있는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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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에서 돌아오는 길에 박경립, 홍사증, 민자경 세 사람에게 주다 嶺南歸路。贈朴景立洪士拯閔子敬三君 학문은 잠심하지 않으면 터전이 없고 (學非潛處無田地)사람은 원유하지 않으면 견문이 적네 (人不遠遊少見聞)그대들 지금 이미 원유하였으니 (諸君今已遠遊去)또 시서를 가지고 고요히 사립문을 닫게 (且把詩書靜閉門) 學非潛處無田地。人不遠遊少見聞。諸君今已遠遊去。且把詩書靜閉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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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헌124)에서 유숙하며 감회가 있어 짓다 宿澹對軒有感 십 년 전 춘풍 속에 앉아 있었는데125) (一十年前坐了春)이 생애에는 더 이상 참모습 찾을 곳이 없네 (此生無處更尋眞)갓과 옷만 강석 사이에 남아 있으니 (只留冠服席間在)방에 들어가 바라봄에 감개가 새롭네 (入室瞻言感慨新) 一十年前坐了春。此生無處更尋眞。只留冠服席間在。入室瞻言感慨新。 담대헌(澹對軒) 기정진(奇正鎭)이 장성 하리 월송(月松)으로 이사하여 지은 정사로, 문인들과 함께 강학하던 곳이다. 십……있었는데 스승의 온화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주광정(周光庭)이 정호(程顥)를 여남(汝南)에서 만나고 돌아와 "내가 춘풍 속에 한 달 동안 앉아 있었다.[光庭在春風中坐了一箇月.]" 하였다. 『近思錄 卷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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剛反詩 伊昔㽔賓節。羸豕入我場。金枕繫不得。躑躅其漸長。嚴霜變白露。敗折薰葭蒼。重會馴致氷。龍野血玄黃。乾坤黑如漆。白日寒無光。群小沛得志。雀躍而鴟張。賢人退在野。塞兌深閉藏。氷欞衾薄薄。雪塌枕凉凉。漫漫夜如年。抱膝心悲傷。美人不可見。迢迢在西方。烹魚漑釜鬵。洌泉浸苞稂。寒月穿幽扃。照我瑤琴傍。蹶坐彈一曲。指涉不成章。柱凍絃凝絶。下落于丈强。商頌發金石。驚動蟋蟀床。一唱一歎息。慷慨多激昻。吟罷成夢寐。彷彿覿羲皇。詔曰倥侗子。胡爲太顚狂。天道常無親。作善降百祥。汝讀今古書。眜盛衰存亡。物極必有返。無勞氷炭腸。晨起仰面瞻。碩果在艮崗。倏忽子之半。卦氣復一陽。至哉生生德。萠動地中央。溫泉噓井底。弱線增針鋩。仁理看桃杏。良心驗虎狼。聖人貴蒙養。主靜卽大防。閉關息商旅。此法自先王。愼勿冀速成。且莫學開張。淵深流彌廣。根培枝必昌。充之保四海。放于溢八荒。德鄰知不孤。群龍次第翔。臨泰大壯夬。出入同安康。至人怕處盛。到此尤兢惶。國脈遞治忽。人事招慶殃。只在一念間。覆舟起濫觴。堯桀連咫尺。舜跖在尋常。賢哉顔氏子。不遠復其剛。洪爐點雪消。淸氷纖芥彰。孤軍遇强賊。廝殺百萬僵。簞瓢如芻豢。陋巷春生香。得聖爲依歸。優遊洙泗鄕。嗟余生苦晩。未入夫子墻。徒竊儒者稱。悔吝多得喪。中身親有道。錦北經十霜。至論抽關鍵。微言鍼膏肓。庶以皮膚學。薰炙芝蘭芳。亹亹說不盡。戱到樹上薑。吾道多離合。一朝成參商。歲暮魚雁斷。南北永相望。便作失相瞽。出門空倀倀。屛山三字符。耳邊尙??。參前又倚衡。作詩志不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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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재기 澗松齋記 간송재(澗松齋)는 고(故) 참판 문공(參判文公) 휘 광신(光信)이 공부했던 장소이다. 공은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웠는데, 어버이가 돌아가시자 장사지내고 그 아래에 여막(廬幕)을 지어 전의(奠儀)을 받들다가 삼년상이 끝나자 이어서 여막이 있던 터에 재실을 짓고 간송(澗松)이라 명명하였으니, 대체로 세한(歲寒)의 뜻을 담은 것이다. 동생 동지공(同知公) 휘 명신(明信)과 함께 책상을 마주하고 걸상을 나란히 한 채 아침저녁으로 우러러 사모하고, 밤낮으로 모여 강습함으로써 경학(經學)의 조예가 심오해지고 의로운 행실이 드러나는 데 이르렀다.아, 효자(孝子)와 인인(仁人)의 일과 행실 하나하나가 모두 후세의 법이 될 수 있는데, 공이 세상을 떠나자 자손들이 지키고 보전하여 이곳에서 우의를 맺고, 이곳에서 학업을 익혔다. 6세손 정신(廷臣)과 7세손 방필(邦弼)이 중수하고, 9세손 태식(台植)이 이어서 수리하였으니, 선대의 유업을 계승하려는 생각과 친족을 단합하는 규범이 세월이 오래되고 세대가 멀어질수록 차례대로 이어져 쇠퇴하지 않았던 것은 당일의 창업에 계승시킬 만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바라건대, 문씨(文氏)가 이를 계승하여 더욱 힘쓴다면 참판 공의 유풍은 장차 백세(百世)토록 실추되지 않을 것이다. 齋故參判文公諱光信藏修之所。公事親至孝。親沒而葬。廬於其下。以奉奠儀。服闋而因齋於廬址。以澗松名焉。蓋寓歲寒之志也。與弟同知公諱明信。對床聯榻。朝夕瞻慕。夙夜講聚。以至經業邃密。而行義闡著。嗚乎。孝子仁人之一擧一措。皆可以爲後世法。公沒而子孫保守之。講誼於斯。肄業於斯。六世孫廷臣七世孫邦弼重修之。九世孫台植繼葺之。其肯構之思。合族之規。愈久愈遠而循循不替者。其非當日之創業有以可繼耶。願文氏繼此而益加勉焉。則參判公之風。將不墜於百世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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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 홍씨 묘표 令人洪氏墓表 홍 영인(洪令人)은 고(故) 동화거사(東窩居士) 홍경주(洪敬周)의 따님이다. 대부(大父)는 서영(瑞榮)이고, 증대부(曾大父)는 내해(來海)인데, 일송(一松) 선생 휘 치(治)의 12대손이다. 모친은 제주 양씨(濟州梁氏)로, 양호영(梁浩永)의 따님이다. 순묘(純廟) 경진년(1820, 순조20) 9월 9일에 태어났다.18세에 오공 응조(吳公應祚)에게 출가하였다. 시집에 들어와 당(堂)에서 절하는데 경의를 표하는 몸가짐이 매우 훌륭하여 바라보는 친지들이 모두 현숙한 부인을 얻은 것을 하례하였다. 말하고 웃는 것이 데면데면하지 않고, 행동거지에 일정함이 있었으며, 규범(閨範)을 새로 고쳐 정돈하고 집안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자손을 가르치고 기르며 비복(婢僕)을 거두어 다독이는 데에 모두 확실하게 일정한 규정이 있었다. 성품도 영특하고 사리에 밝았다. 이 때문에 이웃 부녀 가운데 의심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와서 질정하였으니, 사람들이 여자 가운데 장자(長者)라고 일컬었다.임오년(1882, 고종19) 3월 28일에 졸하였다. 장사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부군의 묘소 좌측에으로 이장하였다. 오씨(吳氏)는 관향이 보성(寶城)으로, 대대로 이름난 사람이 있었다. 영인(令人)은 3남 1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재홍(在鴻), 재봉(在鳳), 재순(在淳)이고, 딸은 정재우(鄭在禹)에게 출가하였다.아, 영인(令人)은 나의 선비(先妣)보다 한살이 적다. 이웃에 살아 왕래하며 주고받은 것이 매우 많았다. 내 나이가 노년에 이르렀으니, 어느덧 모두 천고의 일이 되었고 양가의 후손 또한 모두 이미 늙었다. 옛일을 추억하니 통한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재홍(在鴻)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묘도에 새길 글을 청하였다. 洪令人。故東窩居士諱敬周女也。大父瑞榮。曾大父來海。一松先生諱治十二代孫。妣濟州梁氏浩永女。以純廟庚辰九月九日生。十八適吳公諱應祚。入門拜堂。禮儀孔嘉。親戚觀者。無不賀其得賢婦。言笑不泛。動止有常。修整閨範。綜理家務。敎養子孫。收恤婢僕。無不的有成規性又穎慧。長於曉事。是以隣里婦女有疑難。必來取質焉。人稱女中長者。壬午三月二十八日卒。葬後未幾。移窆乾位之左。吳氏籍寶城。世有聞人。令人育三男一女。在鴻在鳳在淳。鄭在禹也。鳴呼。令人少我先妣一歲。而比舍接隣。往來贈遺。極其殷勤。西日莫係。遽皆千古。而兩家遺孤。亦皆己老矣。撫念疇昔。痛恨曷已。在鴻以余相知最熟。請志墓道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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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견에게 써 주다 書贈金叔見 나는 평소에 문원(文苑)에서 사람을 두루 겪어본 일이 많았다. 간혹 아름답고 훌륭한 자질이 또래보다 탁월하고 머지않아 능력을 펼치고 성취를 이룰 듯하여 안으로는 부모가 마음을 기탁하고 밖으로는 붕우(朋友)가 기대하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일이 지나면 점차 시들해져 결국에는 평범한 사람과 더불어 똑같은 전철을 밟는데 지나지 않았다. 손가락을 꼽아 일일이 헤아려보면 수많은 사람이 모두 그러하였다. 내가 일찍이 혀를 차고 탄식하면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는가를 생각하였다. 이것은 자질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다. 단지 뜻이 정성스럽고 독실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김군 숙견(金君叔見) 또한 나이가 젊은 걸출한 인재가 아니라고 이를 수 없다. 사람들이 마음을 기탁하고 기대를 하는 것이 바야흐로 가볍지 않다. 다만 군(君)이 세운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할 뿐이다. 만약 뜻을 세웠다면 앞길이 1만 리이니 얼마나 나아갈지 헤아릴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앞사람의 전철(前轍)을 다시 밟게 될 것이다. 숙견은 이쪽일지 저쪽일지 모르겠다. 이와 같은 것이 병통임을 알았다면 또한 어찌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몸에 지닌 신묘한 비방(祕方)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힘쓰거라! 余平日在文字場。閱歷人多矣。間有良才美質。出於等夷而奮張樹立。若將有日。內而父母寄意焉。外而朋友屬望焉。及其久也。漸次銷歇。終至與尋常人。同歸一轍。屈指擧數。滔滔皆然。余嘗咄咄怪歎。以爲何故而至於斯耶。非才之罪也。非父母之過也。只是志不誠篤之致也。金君叔見。亦不可謂非少年翹楚也。人之所以寄意屬望者。方此不輕。但未知君所立之志爲如何耳。志苟立矣。則前程萬里。其進有不可量。不然。恐不免復蹈前車之覆轍。未知叔見於彼乎於此乎。旣知如此是病。則亦豈不知不如此是樂乎。肘下神方。不外於此。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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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천【병용】에게 답함 答全性天【炳鎔】 이전 겨울에 편지 한 통을 녹동으로 보냈는데 잘 전달되었는지140)의 여부는 알 수가 없네. 해를 넘긴 뒤에 비로소 그 편지를 받아보았는가. 뜻밖에 또 이렇게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대단히 평안하다고 하니 새해의 좋은 소식이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너무나도 마음에 위안이 된다네. 나의 노쇠함은 날로 심해지는데, 더구나 한 살이 더 먹었음에랴. 관에 들어갈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데,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스럽네. 바야흐로 지금 세상은 도도히 흐르는 물살과 같아서 딱히 돌아갈 곳이 없고 다만 평호 사이에 글 읽는 소리가 넘치니, 매번 바람을 향하여 마음을 내달리면서 함께 마주하며 지내고 싶지마는 그렇게 할 수가 없네. 원컨대 우리 벗은 안목을 높이고 맹렬하게 노력하여 만 리의 앞길에 마침내 큰 공을 세우길 바라네. 현재 세상의 상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네. 가난하고 곤궁한 선비가 통문을 돌리고 소장을 올린다고 과연 이미 기울어진 형세를 되돌릴 수 있는가. 깊이 슬퍼하며 탄식만 이네. 前冬一書付去鹿洞。而其喬沈與未。未可知也。乃於隔歲而後。始得關聽耶。謂外又此承書。仍審侍省節宣。茂膺多祉。新年好消息。此外何有。慰浹萬萬。義林衰狀日甚。況又添年乎。想就木之日。從此不遠。而惟以無聞而歸爲可恨耳。方今大字滔滔。無可適歸。而惟平湖之間。誦聲洋溢。每向風馳神。思欲與之周旋而不能已也。願吾友高着眼目。猛着脚跟。使前程萬里。終有所大樹立也。時象無可言。寒士窮儒通文疏章。果足以挽回已倒之勢耶痛歎。 잘 전달되었는지 진(晉) 나라 은선(殷羨)은 자가 홍교(洪喬)이다. 그가 예장군(豫章郡)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즈음에 사람들이 100여 통의 편지를 주면서 경성에 전달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석두(石頭)까지 와서 모조리 물속에 던져 놓고는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고 떠오를 놈은 떠올라라. 내가 우편 배달부 노릇을 할 수는 없다.〔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能作致書郵〕"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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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원【형섭】에게 답함 答尹士元【亨燮】 근래 학문에 종사하면서 과연 긴요하고 착실하게 힘을 써서 줄곧 발전하는가. 주자는 "우리들은 현재에 처하여 다만 깊고 궁벽한 곳에서 풀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뿌리를 먹더라도 다만 학문 한 가지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라 하였는데, 잘 모르겠네만 일찍이 이 말을 보았는가. 이는 현재에 딱 들어맞는 말이니, 대단히 노력하여 끝내 원대함에 이르도록 하게나. 日間居業。果能喫緊踏實。一味向上否。朱子曰。吾輩在今日。只可於深僻處。草衣木食。惟學問一事。可以盡心。未知曾見此語否。此是今日着題語。千萬勉力。卒究遠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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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孔道卿【學源】 卡友便惠狀。感荷何喩。仰審經體淸謐。駿善三年病席。老而不死。良覺支離。來諭所以稱道醜差者。有過實際。恐非君子一言之知。後勿復乃爾。以樽酒簋貳。爲相須之義諦如何。泗山祠設享。久仰尊聖衛道之爲可尙。而迄未能一者參謁。罪安可逃。伏惟祀享之定以三九上丁。允合禮儀。而諱辰誕辰之後來定式。雖綠衍聖公所敎。而誕辰之祭。禮無明文。諱辰之祭。自有宗孫諸孫。不敢疉祭也。雖非淺見之所敢質言。而三九之享。猶爲寡過耶。更詢于知禮者而處之如何。田說云云。鄙人雖未見其本文。而或有傳聞之入耳。然異端邪說之惑信於世。何代無之。惟當吾輩之篤信師說。不爲詖淫之所撓奪。則彼蝶蝀於一時者。自可見晛。昔宋有甫田鄭氏者。譏孟子以生周之世。不以尊周爲義。而今日說梁惠。明日說齊宣。以行王道。特儀秦之雄耳。其凌侮聖賢。無所不至。而程朱諸先生。終無一言排斥。意謂其無足費辭責之耳。今日事。何以異此。幸有以見敎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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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교관169) 夢覺關 천군이 의장에게 명하여170) (天君命意匠)방당171)을 경영하게 하였네 (經始方塘間)감독하여 일을 마치는 날에 (董役成功日)또 사람과 귀신의 관문172)을 보리라 (又瞻人鬼關) 天君命意匠。經始方塘間。董役成功日。又瞻人鬼關。 몽교관(夢覺關) 꿈을 꾸느냐 잠을 깨느냐의 관문이라는 말로, 치지(致知) 공부를 뜻한다. 주희(朱熹)는 "격물은 몽교관이니, 격물을 제대로 하면 꿈에서 깰 것이고, 격물을 제대로 못하면 꿈을 꾸는 것일 뿐이다.[格物是夢覺關, 格得來是覺, 格不得只是夢.]" 하였다. 『朱子語類 卷15 大學2』 천군(天君)이 의장(意匠)에게 명하여 천군은 마음을 이르고, 의장은 두보(杜甫)의 시에 "경영하는 가운데 의장이 참담하다[意匠慘淡經營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에서는 마음과 생각으로 구상한다는 뜻이다. 방당(方塘)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희(朱熹)가 「관서유감(觀書有感)」에서 "반 이랑의 네모난 연못 한 거울처럼 열렸는데,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네. 묻노니 어이하여 그처럼 해맑은 것인가, 근원에 활수가 솟아 나오기 때문이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읊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朱子大全 卷2』 사람과 귀신의 관문 군자와 소인으로 나뉘는 갈림길로, 성의(誠意) 공부를 말한다. 『심경부주(心經附註)』「성의장(誠意章)」에 "뜻을 참되게 하는 공부야말로 사람이 되느냐 귀신이 되느냐 하는 관문이 된다.[誠意是人鬼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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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암의 운에 화운하다 和寒守庵韻 높은 곳에 있는 정자 추위를 감당하지 못하니 (亭在高高不勝寒)두봉의 형세는 용이 서린 듯하네 (斗峯形勢等龍盤)그대는 어떤 사람과 함께 손잡고 가는가 (惠爾何人携手去)아, 나는 편안하게 몸을 기댈 곳이 없네 (嗟吾無處寄身安)뱁새가 숲에 깃듦에 한 나뭇가지면 족하고 (鷦棲林薄一枝足)기러기가 구름을 탐에 만 리를 넉넉히 가네 (鴻擧雲街萬里寬)한없이 긴 밤에 산문이 닫혔으니 (漫漫長夜山門閉)함께 남은 경전을 펴 세모에 보네 (共抱殘經歲暮看) 亭在高高不勝寒。斗峯形勢等龍盤。惠爾何人携手去。嗟吾無處寄身安。鷦棲林薄一枝足。鴻擧雲街萬里寬。漫漫長夜山門閉。共抱殘經歲暮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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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에 올라 점필재 김 선생의 판상 운에 차운하다 登廣寒樓次佔畢齋金先生板上韻 다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대에 올랐으니 (再上湖南第一樓)당년의 검은 머리 이미 백발이 되었네 (當年黑髮已衰頭)만고토록 보내고 맞이해도 강산은 여전하고 (送迎萬古江山在)몇 사람 지나가자 운무가 걷히네 (經過幾人雲霧收)교룡성212) 밖에 동쪽으로 돌아가는 나그네 (蛟龍城外東歸客)오작교 가에서 한참 동안 노니네 (烏鵲橋邊半餉遊)출발에 앞서 서글퍼 술을 가져오라 하여 취하니 (臨發悵然呼酒醉)덧없는 세상사 아득한 가운데 다시 무엇을 구하랴 (悠悠浮世復何求) 再上湖南第一樓。當年黑髮已衰頭。送迎萬古江山在。經過幾人雲霧收。蛟龍城外東歸客。烏鵲橋邊半餉遊。臨發悵然呼酒醉。悠悠浮世復何求。 교룡성(蛟龍城)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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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비213) 전각을 들르다 過雲峯碑殿 세상의 변화 속에 이미 몇 번의 경신년을 보냈나 (滄桑已閱幾庚申)성대한 덕과 위대한 업적이 후인에게 남아 있네 (盛德偉勳在後人)황산은 늙지 않고 마애는 예스러우니 (荒山不老磨崖古)배알하는 서생 더욱 감개무량하네 (瞻過書生感慨新) 滄桑已閱幾庚申。盛德偉勳在後人。荒山不老磨崖古。瞻過書生感慨新。 운봉비(雲峯碑) 1380년 경신년(庚申年)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왜장(倭將) 아기발도(阿只拔都)를 물리치고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전라북도 남원 운봉현(雲峯縣) 동쪽 16리 황산에 세운 비석이다. 『東園集 卷3 荒山大捷之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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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進士金公遺墟碑 詩曰維桑與梓。必恭敬止。桑梓植物之微者耳。以先人所植。尙且必加恭敬。況其祖先藏修游息。于以考終之地乎。況其肇基垂緖。使可爲後世之繼者乎。此而不敬。是曰棄基。此近世人家遺墟之役所由興也。若南原治北德古坊金巖之理。故成均進士金海金公諱有銓之謫居遺址也。子孫居守之。殆數百年所。日咸聚而言曰。府君我南下始基之祖。其貞心苦節。可風百世。而孱承識蔑勢舛。無得以闡發。星移物換。聲躅俱泯。且今日迫滄桑。事變無窮。及今無片石以表之。異時子孫。誰知先德之庄而不敢慢也。遂乃集巨貲代豊珉。將樹之里閭之右。得出入瞻式。庶幾有所奉藉而典守之益無怠也。石旣具。後孫炳泰煥星造余方丈峽中。徵所以刻曰。吾祖世遠。狀行又無及時述。生卒亦無傳。他可知已。惟譜註所錄有可據者有曰。兄弟二人。俱登上庠。光廟丁丑謫居南原。文章道學。夙著于世。而落拓窮巷。養鷹秣馬。不求名利。服道袍。日嘯詠以卒歲。此寥寥數語而已。幸有以演繹而發揮之也。余拙訥且衰病。烏足以當是任。顧有所感慨于中者。其可辭已。噫丙丁之間。是何世也。公旣抱文華。又通名庠籍。苟降其志而求之。必躋躐亨衢。翠蓋朱輪之侈。鍾鼎綺紈之樂。不是儻來。而炳幾割戀。毅然自持。皭然不汚。見逐於千里之外。而無少憾。有時瞻望寧越。其激鬱噴咤。輪囷掩抑。悽乎其榛苓之思。而發於吟哦之間者。心融跡泯。世不得以知焉。自非尙志之高。見義之明。其能脫然遐翹。淪落草萊。不見知而不悔哉。於乎嚌一臠而識全鼎。矚片羽而認五采。譜錄雖簡。就此求公之大全。可彷想矣。何其偉哉。公之世出自駕洛。而首露王爲鼻祖。至仇衡王讓國于新羅。三傳而諱庾信。以大角干統合三韓。封興武王。寔其中祖。自後名卿碩輔。譜不絶書。高大父曰覵左正言。曾大父曰孝荇戶曹參判。大父曰震明進士。父曰永哲生員。外大父天安全汝性也。德古坊狸谷面酉之阡。其萬年永宅也。今其遺裔式蕃。充溢鄕坊。而有淳儉敦睦之風。公之物土卜吉藏。用畜祉以基後承於無窮者。蓋可驗已。遂爲之銘曰。世遠響況。有難一二。丁丑謫居。蓋其實事。春爛長安。風凄寧越。左則刀鉅。右則朱紱。是時見逐。豈無由乎。烈烈六臣。心同跡殊。彼哉如雲。落拓邱林。睠言金巖。土肥泉甘。我巾我服。嘯詠虞唐。九陌之熱。我衿之涼。群車之鶩。我趾之徒。遺後以安。鹿門羹稌。剩馥不歇。高景百世。地不忍荒。井不忍廢。後昆之職。用此昭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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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州宋氏七孝碑 洪州之宋。自麗大姓。至侍中諱桂。麗季罔僕。忠毅炳烺。國朝孝友廉白。文章才華。相繼而作。燦然於朝乘子集之閑。而縣監二樂堂駿。海狂先生齊民。最著也。宋氏以其先德之未蒙褒者。六世七孝。而今闡揚無路。恐恐於愈久愈泯。將斲之貞珉以圖久遠。冡孫泰應抱狀謁文於琦。琦衰且病矣。敢以辭。辭益摯而請益懇。則敬按之。七孝之首曰處士世一字某。二樂堂五世孫。自幼知愛養父母。旨味不進不口。早喪父。哀毁幾滅性。母患痢。飯非再蒸。羹非鮒魚。不下咽也。公躬親執役。而不委諸人。府伯聞而嘉之。自官日繼鮒給粥爲例也。性端潔寡欲。早廢擧業。惟懋實行。分外榮枯。泊如也。鄕人將錄公于邑誌。公聞之曰。七十童子吾誰欺。欺天乎。痛止之。其二曰晩齋錫福字某。處士之子。年未成童。已通經史。父病嘗矢祈斗。事母如事父。斫指以延數朔縷。臨喪哭擗如禮。啜粥面墨。人未嘗見其齒。日展墓或値雨雪。里人爲掃其路。其誠孝之感人如此。其三曰幽竹齋奎浹字某。晩齋之子。克肖世德。律已有禮。敎人有則。不第爲一家一鄕之矜式也。其四曰在鉉字君若。竹齋之子。承襲家庭。善養其親。侍疾再度斷指。能回旣絶之命。聞覿咸嘆。其五曰啓燦字德行。其六曰啓昌字德汝。皆在鉉之子。兄弟騈美。互相愛敬。其供養之節。不敎而自知。不勉而彌篤。父病良醫技窮。則啓燦嘗糞以驗苦歇。啓昌祝天願代。灌以指血。竟得回甦。人謂至誠感神。其七曰梧捿翰黙字進佑。梧軒文基之子。孝于親。灌血以延命。居廬以盡禮。鄕里欲褒將之。公力止之。人以南州行家稱。於乎。子孝職耳。凡厥有性。各修其職。若無甚難。而古與今。不數數見何也。蓋物我相形。知有其身。而不知其自出。所以亡其本。而枝從而亡者多矣。古者以千里一士爲難得。況五世六世之久而六孝七孝之萃于一門者耶。宋氏之門。眞可謂孝友淵藪矣乎。論者以未及蒙褒爲慊。然在當時樹風之政固然。於孝子實行。何損之有。且傳世久遠。何必待鳥頭赤脚屹於閭里而後可哉。竊願東西行過者。眡是刻而摩挲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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