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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禮言 不意凶變先父君奄棄榮養承訃驚怛不能已已伏惟孝心純至思慕號絶何可堪居日月流邁遽踰旬朔奄當襄禮哀痛柰何罔極奈何未審自罹苶毒孝候何似伏乞强加餰粥俯從禮制情弟以身病末由晉慰其於憂念?任謹奉疏伏惟 且適當此時家楮乏絶而輓章未得題送未安之說筆難盡記休咎焉餘不備謹疏下察謹拜疏上己巳正月念三情弟李德述疏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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頓首昨年枉唁至今哀慰居然獻發伏惟新正兄候茂納百福區區不任攢賀心制人居諸迅邁奄過終祥且當送舊迎新之節益切痛隕之懷而已泊於許多憂患不得見湖南榜眼聞 兄發解云在弟切姻沈契之誼憂反大於喜未知老那亦同此心否不知者以試官之不憎公爲言而弟則以爲修人事後待天命盖試官殊所極天道若文好筆多有醜拙則何可望天數耶今番則兄須極力善觀收之桑楡如何此處有賣文賣筆者且有場中塾手者又重之泮吏卽弟之主人也弟亦當爲兄指導 兄以量宜處之也餘在奉姑留只此不宣狀式庚子元月七日 心制人 鍍 狀上(皮封)礪山 場巖 龍洞謹候狀宋 生員 宅入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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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이 예전 지은 시에 차운하다 2수 次百拙舊作【二首】 상전벽해 속의 변고 몇 년이나 지났나 滄桑變劫幾經秋산하를 보기 싫어 누대에 오르지 않았네 厭見河山不上樓조부 자식 손자의 몸은 수치 씻기 어렵고 祖子孫身難洗恥신라 고려 대한 시대에는 뿌리 깊은 근심 있네 羅麗韓代有根愁삼천리 초토에는 백성들 남아 있지 않고 三千焦土無黎首재앙으로 인한 곤경에 백발이 되려 하네 百六難關欲白頭박상에 이르지 않았다면 어찌 회복이 있으랴290) 未到剝床焉有復우렛소리 나는 곳291)에서 훌륭한 공 거두리라 雷聲發處妙功收상장의 옥사292)는 옛날 어느 때이던가 上章屋社昔何時저들이 정한 처음 계획은 멸종시키는 것이었지 彼定初籌滅種期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오히려 명맥을 이어왔지만 三紀猶能寬命脈결국에는 양식과 숟가락 빼앗아도 괴이할 것 없네 畢場無怪奪粮匙동포가 어찌 차마 응견293)이 되었나 同胞胡忍爲鷹犬살점이 잘려 나가 상해를 입었으니 가련하구나 割肉堪憐作瘇痍하늘이 벌줄 날 만을 기다리노니 待到天公行罰日그들의 죄악이 가득 찼음을 그들도 알리라 貫盈渠罪亦渠知 滄桑變劫幾經秋, 厭見河山不上樓.祖子孫身難洗恥, 羅麗韓代有根愁.三千焦土無黎首, 百六難關欲白頭.未到剝床焉有復? 雷聲發處妙功收.上章屋社昔何時? 彼定初籌滅種期.三紀猶能寬命脈, 畢場無怪奪粮匙.同胞胡忍爲鷹犬, 割肉堪憐作瘇痍.待到天公行罰日, 貫盈渠罪亦渠知. 박상(剝床)에……있으랴 재앙의 때가 왔으므로 순환의 원리에 따라 다시 회복되리라는 말이다. 박상은 〈박괘(剝卦) 육사(六四)〉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름이니, 흉하다.[剝床以膚, 凶.]"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재앙이 아주 가까워짐을 말한 것이다. 박괘(剝卦)는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다하는 괘인데, 다시 복괘(復卦)로 순환된다. 우렛소리 나는 곳 복괘(復卦)를 말한다. 《주역》 〈복괘(復卦)〉상전(象傳)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이를 보고서 동지에 관문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자가 다니지 못하고, 임금은 사방을 살피지 않는다.[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장(上章)의 옥사(屋社) 상장은 고대의 간지로 경(庚)이고, 옥사는 멸망한 나라의 사직을 뜻한다. 여기서는 경술년(1910) 일본에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긴 일을 가리킨다. 응견(鷹犬) 사냥하는 매와 개로, 남의 앞잡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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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실248)의 식물을 읊다. 10절 詠不忘室植物 十絶 뒤늦게 시드는 나무 없지 않지만 匪乏後凋樹너와 함께 이웃이 되었구나 與之接爲隣어찌 손때 묻은 것만 하겠는가마는 豈如經手澤심신을 하나로 합할 수 있어 좋구나 好作一心身-소나무[松]-이것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니249) 無此令人俗옛 현인은 이미 먼저 내 마음 알았네 古賢獲已先창 앞에서 날마다 마주하고 있으니 窓前日相對어찌 평안하다는 소식 기다릴 것 있으랴 何待平安傳-대나무[竹]-푸른 수염 늙은이250)와 백중간이니 伯仲蒼髥老깨끗한 향기가 엇비슷하도다 潔香反覆勝대와 함께 삼익우(三益友)이니251) 益三竹與幷벗의 덕이 크게 차이 나지 않네 友德不逕庭-삼나무[杉]-예로부터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니 從古爲人愛응당 칠절252)에 뛰어났기 때문이리라 應緣擅七絶나는 하나도 능한 것 없으니 一能於我無이 나무만 못함이 부끄럽구나 堪愧不如物-감나무[柹]-마음속에 생각하는 이는 누구인가 所懷伊何人천추의 도이 늙은이253)라네 千秋陶李翁유허가 마을 골짝에 전해 오니 遺墟傳里谷억지로라도 누추한 거처에서 함께 하고 싶네 强欲陋居同-밤나무[栗]-과일이 떨어졌다 말하지 말라 莫說果爲下신선 세계가 일찍이 여기에 있었다오 仙源曾在斯어떻게 하면 땅에 가득 심어서 安能種滿地곧 무릉254)처럼 되길 기약할까 便與武陵期-복숭아[桃]-붉고 둥근 모습 사랑스러우니 紫圓形可愛달고 신 맛이 되려 신선하네 甛酢味還新오릉중자255)를 비웃지 말라 莫笑於陵子지금 시대에 또한 짝할 이 드무니 今時亦罕倫-오얏[李]-궐리에 있는 선니의 행단(杏壇)256)을 尼壇在闕里어떻게 본받을 수 있겠는가마는 胡爾效嚬爲이 나무 진실로 싫지 않으니 此固未爲嫌성신을 오히려 기약할 수 있다네 聖神尙可期-살구나무[杏]-꽃이 화사하여 《시경》에 실렸으니 韡韡登周詩천륜으로 만세를 밝혔다네257) 天倫明萬世아 지금 형제들은 嗟哉今弟兄이 나무 대하매 어찌 부끄러움 없으랴 對此寧無愧-아가위나무[棣]-호상258)에는 사람 자취 멀고 湖上人蹤遠도산259)에는 시의 운치 끊겼네 陶山詩韻絶나는 황량하고 적막한 동산에서 而余荒寂園인물이 없음을 함께 탄식하네 俱歎病人物-매화[梅]- 匪乏後凋樹, 與之接爲隣.豈如經手澤? 好作一心身.【松】無此令人俗, 古賢獲已先.窓前日相對, 何待平安傳?【竹】伯仲蒼髥老, 潔香反覆勝.益三竹與幷, 友德不逕庭.【杉】從古爲人愛, 應緣擅七絶.一能於我無, 堪愧不如物.【柹】所懷伊何人? 千秋陶李翁.遺墟傳里谷, 强欲陋居同.【栗】莫說果爲下, 仙源曾在斯.安能種滿地, 便與武陵期?【桃】紫圓形可愛, 甛酢味還新.莫笑於陵子, 今時亦罕倫.【李】尼壇在闕里, 胡爾效嚬爲?此固未爲嫌, 聖神尙可期.【杏】韡韡登周詩, 天倫明萬世.嗟哉今弟兄, 對此寧無愧?【棣】湖上人蹤遠, 陶山詩韻絶.而余荒寂園, 俱歎病人物.【梅】 불망실(不忘室) 김택술이 1944년에 지은 토실(土室) 이름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지사는 자신의 시신이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아니하고, 용사는 자신의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한 구절을 차용하였는데, 난세(亂世)에 출처(出處)와 거취(去就)를 절도에 맞게 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後滄集 卷21 不忘室記》 이것……하니 소식(蘇軾)의 〈어잠승녹균헌(於潛僧綠筠軒)〉에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수척하게 하지만, 대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라고 한 구절에서 온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9》 푸른 수염 늙은이 소나무의 별칭이다. 창염수(蒼髥叟)라고도 한다. 대와 함께 삼익우(三益友)이니 소식(蘇軾)의 〈유무창한계서산사(遊武昌寒溪西山寺)〉에 "풍천은 양부악이요, 송죽은 삼익우라네.[風泉兩部樂, 松竹三益友.]"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소나무와 삼나무를 동일시하여 말하였다. 참고로 주희(朱熹)는 부친의 이름인 '송(宋)'을 휘하여 '삼(杉)'으로 표기하였다. 삼익우는 세 가지 유익한 벗을 말한다. 칠절(七絶) 감의 일곱 가지 좋은 점으로, 첫째 수명이 긴 것, 둘째 잎이 풍성하여 그늘이 짙은 것, 셋째 새의 둥우리가 없는 것, 넷째 좀이나 벌레가 없는 것, 다섯째 단풍이 들었을 때의 아름다운 잎, 여섯째 먹음직스러운 고운 열매, 일곱째 낙엽(落葉)이 매우 비대(肥大)하여 글씨를 쓸 수 있는 점이다. 《本草 卷30 果部 柿》 도이(陶李) 늙은이 도암(陶菴) 이재(李縡)를 말하는 듯하다. 무릉(武陵)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킨다. 오릉중자(於陵仲子)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오릉에 살았던 진중자(陳仲子)로, 아주 청렴결백하였다. 형이 많은 녹봉을 받는 것을 의롭지 않다고 여겨, 초(楚) 나라의 오릉에 가서 은거하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당시 그는 3일 동안이나 굶주려 우물가로 기어가서 굼벵이가 반 넘게 파먹은 오얏[李]을 삼키고 나서야 귀에 소리가 들리고 눈이 보였다고 한다. 그에 대해 맹자는 "나는 제나라 인물 중에서 중자(仲子)를 으뜸으로 꼽는다. 하지만 중자를 어찌 청렴하다 할 수 있는가. 중자가 견지하는 지조를 유감없이 지키자면 물만 먹고 사는 지렁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於齊國之士, 吾必以仲子爲巨擘焉. 雖然, 仲子惡能廉? 充仲子之操, 則蚓而後可者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궐리(闕里)에……행단(杏壇) 궐리는 공자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다. 선니(宣尼)는 공자를 말하고, 행단(杏壇)은 공자가 제자들과 강학(講學)하던 곳으로, 단을 쌓고 그 둘레에 살구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행단이라고 하였다. 꽃이……밝혔다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아가위의 꽃이여, 꽃받침이 화사하지 않는가.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만 한 이가 없느니라.[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한 구절을 원용한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하는 말이다. 호상(湖上)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 살았던 안동(安東) 소호리(蘇湖里)를 가리키는 듯하다. 도산(陶山)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만년에 강학했던 도산서원(陶山書院)을 가리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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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의 '탄식이 있어' 시에 차운하다 次尤菴有歎詩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한스러워할 필요 없지만 不須歲月恨如流봄과 가을 헛되이 보내 스스로 후회되네 自悔枉過春與秋앎은 진실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지혜를 얻겠는가 識未眞時焉得智행동은 실천하지 못했으니 문득 수심 생기누나 行違實處輒生愁삼강의 체용은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에게 전수하였고282) 三綱體用曾傳孔일경의 시종은 부옹(涪翁)이 회암(晦庵)에게 열어주었네283) 一敬初終晦闡涪노년에 공을 이루는 것은 비록 늦었지만 楡暮收功雖晩矣부지런히 하면 일거284)의 무리는 면할 수 있으리 孜孜庶免逸居儔 不須歲月恨如流, 自悔枉過春與秋.識未眞時焉得智? 行違實處輒生愁.三綱體用曾傳孔, 一敬初終晦闡涪.楡暮收功雖晩矣, 孜孜庶免逸居儔. 삼강(三綱)의……전수하였고 삼강은 증자가 지은 《대학》의 세 가지 강령인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체(體)와 용(用)으로 구분하면 명명덕은 체이고 신민은 용이며 지어지선은 전체 대용(全體大用)이다. 증자는 공자의 도통(道統)을 전해 받았다. 일경(一敬)의……열어주었네 부옹(涪翁)은 부주(涪州)에 유배된 일이 있었던 이천(伊川) 정이(程頤)의 별칭이다. 이천이 부주로 귀양 가면서 강을 건너는데 풍랑이 심하여 배가 거의 전복되려 하니,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부르짖으며 울었으나, 이천만은 유독 옷깃을 단정히 하고 편안히 앉아서 평상시와 같았다. 언덕에 정박하자 초부(樵夫)가 묻기를, "배가 위태로울 때에 그대만이 유독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으니, 사(舍)해서 이와 같은 것인가, 달(達)해서 이와 같은 것인가?" 하였다. 이천이 대답하기를, "마음에 성경(誠敬)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자, 늙은이가 "마음에 성경을 지닌 것도 진실로 좋은 일이나 무심(無心)함만 못하다." 하였다. 《伊洛淵源錄 卷4》 이천의 사상을 이어 받은 회암(晦庵) 주희(朱熹)는 "경은 성학의 시종을 이루는 것이다.[敬者, 聖學之所以成始成終者也.]"라고 하여 경의 일관성을 말하였다. 《朱子語類 卷12》 일거(逸居) 일거무교(逸居無敎)와 같은 말로,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이 편안히 지내기만 해서 인간의 도리를 포기하고 금수(禽獸)와 가깝게 되는 것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면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으면 금수와 가깝게 되고 말 것이다.[人之有道也, 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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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옹전〉 뒤에 쓰다 書晩悔翁傳後 지난 계유년(1873, 고종10)에 호부 시랑(戶部侍郞) 면암 선생(勉庵先生) 최공(崔公)이 언사(言事)로 죄를 얻어 장차 제주도[耽羅]로 귀양 가게 되었다. 사림들은 길에 나와 전송하고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은 거리에서 모여 구경하였으며 심지어 주막이나 시장 점포의 백정이나 술파는 아낙도 이마에 손을 얹고 바라보지 않음이 없어 노참(路站)은 시장처럼 북적였고 술상은 비가 내리는 듯 침울하여, 물리쳐도 떠나지 않고 금지해도 중지하지 않았으니, 지나가는 천리 길에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 나루터에 도착하자 전송하는 사람들은 돌아가고 모였던 사람들은 흩어져 감히 함께 배를 타는 사람이 없었고, 가시울타리 속에 갇혀 있어 또 달려가 안부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대개 제주도는 푸른 바다 만 리 가운데 있어 악어 같은 물결과 고래 같은 파도가 거세고 험하여 조금이라도 역풍이 불면 목숨을 보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배를 저어 왕래한 것은 예로부터 매우 드물었다.오직 고 만회 처사(晩悔處士) 최승현(崔勝鉉) 공은 선생과 일면식의 친분도 없는데 힘을 팔아 양식을 모아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선생이 제주도에서 풀려나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흑산도(黑山島)로 귀양 갔는데, 흑산도는 제주도에 비하여 더욱 험하고 멀었지만 공이 또 갔다. 옛날 채명원(蔡明遠)은 안 노공(顔魯公)이 조정에 있었던 날에 안부를 물은 적이 없었지만 강회(江淮)에서 굶주릴 때 쌀을 운반하여 대접하였고,45) 장의보(張毅甫)는 문문산(文文山)이 재상이 되었을 때 나아가지 않았으나 연옥(燕獄)에 구금되었을 때 몸을 맡겨 따랐으니,46) 지금 공의 일은 이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것은 모두 고금의 영렬한 대장부이니, 풍치를 상상함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일어난다. 탁계순(卓契順)이 해남(海南)으로 한 번의 행차를 한 것47)도 오히려 족히 백세토록 불후하였으니, 더구나 공이 힘썼던 것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고 그 마음을 먹고 의에 나아간 것은 또 탁계순이 견줄 것이 아닐 것이다.공은 우리 고을 사람이다. 이 때 나는 묵계(墨溪)의 집에서 어버이 병을 시중들고 있어 선생이 도내를 지난다고 들었으나 문을 나가 전송하지 못하였고, 같은 고을에 있으면서 또 선생을 본 사람을 만나려고 하였으나 능히 보지 못하였으니, 푸른 바다를 건넜던 사람과 비교하면 어찌 다만 황곡(黃鵠)과 양충(壤虫)48)의 차이일 뿐이겠는가. 그 뒤에 공이 나를 한 번 방문하였고 내가 공을 한 번 방문하였지만 모두 만나지 못하였는데 공은 이미 돌아가셨다. 풍의(風義)를 뒤미처 생각하니 단지 슬픔과 후회만 간절하네.신묘년(1891, 고종28) 봄에 공의 아들 영호(永皓) 씨가 천태 우사(天台寓舍)로 나를 방문하여 집안에 보관하던 글을 소매에서 꺼내어 보여주고 인하여 한마디 말을 청하였다. 나는 매몰된 천한 자취로 실로 감히 받들어 응할 수 없지만 다만 평소 향하여 우러르던 처지에 이미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유향(遺響)을 의탁할 수 있을 것인가.아! 인간에게 도리가 있는데 어진 이를 좋아하는 것이 그 본령이 되니, 진실로 이 마음이 없다면 백 가지 행실 만 가지 선을 어디에 붙이겠는가. 공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단지 바다를 건넜던 한 가지 절개에서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평생 의를 행하였던 상세함 같은 것은 면암 선생이 이미 기록하였으니,49) 족히 천고에 불후할 공안(公案)이 될 것이다. 往在癸酉。戶部侍郞勉庵先生崔公。言事得罪。將貶謫于耽羅也。士林出送於道。婦孺聚觀於巷。以至店幕市肆屠夫沽媼。無不加額瞻望。路站如市。酒盤如雨。揮之而不去。禁之而不止。所經千里。接屬無間。及到津頭。送者返。聚者散。無敢與之同舟者。在棘中。又寂然奔訊之人。蓋耽羅在滄溟萬里之中。鰐浪鯨波。瀰漫洶涌。少有逆風。性命難保。是以舟楫往來。自古絶罕。惟故晩悔處士崔公勝鉉。與先生無一面之分。而賣力聚粮。冒危凌險而赴之。先生自耽羅解歸。未幾。又謫于黑山。黑山視耽羅。尤爲險遠。而公又往焉。昔蔡明遠無問於顔魯公立朝之日。而在淮飢餓。運米而餉之。張毅甫不就於文文山作相之時。而被燕獄拘幽。委身而隨之。今公之事。不其類此乎。此皆古今烈烈大丈夫。想像風致。不覺興歎。卓契順辦海南一番之行。而猶足不朽於百世。況公之所辦。非止一番。而其設心就義。又非契順比耶。公吾鄕人也。是時余侍親疾于墨溪村舍。聞先生過省內。而未得出門相送。在同鄕。又欲見見先生之人而不能得。視諸越涉滄溟者。奚但黃鵠壤虫之分耶。其後公一過余。余一過公。皆未遇而公已千古矣。追念風義。只切悲悔。歲辛卯春。公胤子永皓甫。訪余於天台寓舍。袖示家藏文字。因請一言。余以埋沒賤迹。固不敢承膺。但平日向仰之地。旣違顔範。則或可因此而托遺響於冥冥耶。噫。人之有道。好賢爲其本領。苟無此心。百行萬善。何所附着也。欲知公者。只於涉海一節。可以槪矣。若其平生行義之詳。勉庵先生已記之。足可爲千古不朽之公案。 채명원(蔡明遠)은……대접하였고 채명원은 파양(鄱陽)의 교위(校尉)고, 안 노공(顔魯公)은 노군공(魯郡公)에 봉(封)해진 당(唐)나라 안진경(顔眞卿, 709~784)을 말한다. 이 사실은 안진경이 51세 때에 채명원에게 보답의 의미로 써 준 글씨 〈채명원파양첩(蔡明遠鄱陽帖)〉에 보인다. 《顔魯公集 年譜》 장의보(張毅甫)는……따랐으니 문문산(文文山)은 남송(南宋)의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을 말한다. 장의보가 문천상의 해골을 업고 길주(吉州)로 돌아가서 장례를 치렀던 것을 말한다. 탁계순(卓契順)이……것 소식(蘇軾)이 유배를 당했을 때 찾아 주었던 일을 말한다. 《동파전집(東坡全集)》 권23 〈차운정혜흠장로견기(次韻定慧欽長老見寄)〉의 서(序)에 "소주(蘇州) 정혜사 장로 수흠이 그 문도 탁계순을 혜주(惠州)로 보내 나의 안부를 물었다."라고 하였다. 황곡(黃鵠)과 양충(壤蟲) 남만 못한 데 대한 탄식을 말한다. 전국(戰國) 시대의 연(燕)나라 사람 노오(魯敖)가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천하에 자기보다 많은 곳을 유람한 자가 없다고 자부하였는데, 북쪽의 몽궐산(蒙闕山)에 올라 한 도사(道士)를 만나서 천상천하(天上天下)를 다 돌아다녔다는 말을 듣고는 "이 도사는 한 번의 날갯짓에 천 리를 나는 황곡(黃鵠)과 같고, 나는 땅을 기어가는 작은 벌레[壤蟲]와 같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淮南子 道應訓》 면암 선생이 이미 기록하였으니 《면암집(勉菴集)》권40〈최만회옹전(崔晩悔翁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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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53)의 《암간우록》 뒤에 쓰다 題黃景涵巖間偶錄後 하나의 태극인데 나누어 말하면 건순(健順)이고, 또 나누어 말하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단지 이 네 가지는 또 무한한 조리를 함축하고 있으니, 모름지기 기(氣)나 물(物)을 말하지 않아도 이(理)의 체단(體段)은 본래 이와 같다. 그러나 선각자들이 이(理)는 같고 기(氣)는 다른 곳을 말함에 한결같지 않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무릇 이른바 이(理)가 같다는 것은 구분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곳이 곧 원형이정이고 이곳이 곧 원형이정이니, 성색 모상(聲色貌象)과 운운 직직(云云職職)54)이 하나라도 이 네 가지의 밖을 벗어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理)가 같다는 것이다. 물에 비유하자면, 씻고 빨며, 삶고 마심에 그 용도는 같지 않지만 그것이 물이라는 것은 동일한 것과 같다. 물은 실로 동일한데 씻고 빨고 삶고 마실 수 있는 구분은 이미 물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이른바 일(一)이라는 것은 어찌 일찍이 구분이 없는 일(一)이겠는가.그대의 의론은 대체로 모두 좋으나 다만 다섯 째 단락에서 소는 밭 갈고[耕] 말은 달리며[馳] 솔개는 날고[飛]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는[躍] 다름을 말하면서 "이미 형기(形氣)가 같지 않음이 있으면 갖춘 바의 이(理) 또한 다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어찌 형기(形氣)에 떨어진 뒤에서 분수(分殊)를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견해가 이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억양의 사이에 말투가 그러했기 때문일 뿐이네.여덟째 단락에 또 '기질성지기(氣質性之氣)'의 기(氣)를 '기질(氣質)'이라고만 말할 때의 기(氣) 자와 같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 말 또한 의아스럽네. 기질은 단지 기질이니, 어찌 일찍이 두 단계의 기질이 있었던가. 이 말은 선사(先師)55)께서 발명하신 것이 상세하니, 바라건대 취하여 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또 입론(立論)은 이치를 발명하는 것일 뿐이니, 세상을 나무라는 불평한 뜻을 그 사이에 두어서는 불가하니, 바라건대 헤아려 주시겠는가? 一太極矣。而分以言之。則健順。又分以言之。則元亨利貞。只此四者。又且涵蓄無限條理在。不須說氣說物。而理之體段。本自如此。然而先覺說理同氣異處不一。其故何耶。夫所謂理同者。非無分之謂也。那底便是箇元亨利貞。這底便是箇元亨利貞。聲色貌象。云云職職。無一出乎此四者之外。此所謂理同也。比如水。漑之濯之。烹之飮之。其用不同。而其爲水則一也。水固一也。而可漑可濯可烹可飮之分。已悉具於水。則所謂一者。何嘗是無分之一耶。賢論大槪皆好。但於五段。言耕馳飛躍之異。而曰旣有形氣之不同。則所具之理亦異。此語豈不是求分殊於隨形氣之後者耶。然非是見不到。只爲抑揚之間。語勢然耳。八段又以氣質性之氣氣。與單言氣質字不同。此言亦可訝。氣質只是氣質。何嘗有兩段氣質耶。此言先師發明詳悉。幸取看之如何。且立論貴乎發明理致而已。不可有譏世不平之意於其間。惟諒之否。 황경함(黃景涵)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을 말한다. 자는 경함, 호는 은구재(隱求齋)·중헌(重軒),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기운동에서 태어났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중헌집》이 있다. 운운직직(云云職職) 운운과 직직은 모두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다. 《노자》에 "무릇 만물은 무성하다가도 각각 그 뿌리에 복귀한다.[夫物芸芸, 各復歸其根.]"라고 하였고, 《장자》 〈지락(至樂)〉에 "만물이 번성하나, 모두 무위로부터 자라는 것이다.[萬物職職, 皆從無爲殖.]"라고 하였다. 저본의 '운운(云云)'은 '운운(芸芸)'의 오류로 보인다. 선사(先師) 정의림의 스승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말한다. 초명은 금사(金賜),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서경덕ㆍ이황ㆍ이이ㆍ임성주ㆍ이진상과 함께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로 꼽힌다. 저서로는 《노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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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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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당명 養性堂銘 하늘이 주고 사람이 받았으니이루어진 본성을 잘 보존해야 하네56)태극은 전체이고만물은 한 근원이네천연적으로 절로 있어순함이 있고 억지로함이 없네닦음을 기다리지 않으니어찌 기르기를 일삼으랴그러나 기질은그 부곽57)이네마음을 놓아버리면 없어지고정이 성하면 뚫리게 되네가까운 곳으로부터 들으면어느 곳인들 이르지 못하랴까닭에 성인께서기르는 도를 두었네그 도는 무엇인가경이 진전이네장중 정숙하여상제를 대하는 듯하네사서와 오경이그물이 벼릿줄에 걸려 있는 것 같네58)백 가지 행실 만 가지 선이마치 집에 들보가 있는 것 같네여기에 종사하여혹시라도 폐하거나 옮기지 말아야 하네탕임금은 날로 오른다 하였고59)문왕은 계속하여 밝힌다 하였네60)덕산의 기슭에집이 날개를 펼친 듯하네편액을 양성이라 하니그 뜻이 깊고도 깊네내 명을 지어그저 소식 전하네인하여 절차탁마하여날로달로 매진하세 天與人受。成性存存。大極全體。萬物一源。天然自有。有順無强。無待於修。何事於養。然而氣質。是其郛郭。心放則亡。情熾則鑿。聽其自爾。何所不到。所以聖人。有養之道。其道維何。敬爲眞詮。齊莊整肅。對越在天。四書五經。若網在綱。百行萬善。如屋有樑。從事於斯。毋或廢移。湯云日躋。文曰緝熙。德山之趾。有室翼然。顔揭養性。其義淵淵。我作銘詩。聊以寄聲。因仍切磋。日邁月往。 이루어진……하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나오는 말이다. 부곽(郛郭) 외성을 말하는데, 울타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소옹(邵雍)의 《격양집(擊壤集)》 〈자서(自序)〉에 "심은 성의 부곽이니, 심이 상하면 성도 따라서 상한다.[心者性之郛郭也, 心傷則性亦從之矣.]"라고 하였다. 그물이……같네 옛날 성현의 말씀이 하나하나 가닥이 잡히며 마음속으로 명료하게 이해된다는 말이다. 《서경》 〈반경 상(盤庚上)〉에 "그물은 벼릿줄이 걸려 있어야 가닥이 잡혀 헝클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若網在綱, 有條而不紊.]"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탕(湯)임금은……하였고 《시경》 〈상송(商頌) 장발(長發)〉에 "탕왕의 탄생이 늦지 않으시며 성경의 덕이 날로 오르시네.[湯降不遲, 聖敬日躋.]"라고 한 것을 말한다. 문왕(文王)은……하였네 《시경》 〈대아(大雅) 문왕지십(文王之什)〉에 "거룩하신 문왕이여, 아, 경을 계속하여 밝히셨도다.[穆穆文王, 於緝熙敬止.]"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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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순61) 자명 吳景純字銘 천지의 덕은지극히 정성스러워 쉼이 없네사람이 그 마음을 얻어이 사는 이치 바르네기품에 구속되고 외물에 가려사욕이 만 가지로 생기네왕도와 패도 한 길이고사람과 귀신 서로 관련 있네슬퍼하고 두려워하여몸을 돌이켜 반성하길 생각하네분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아동정에 경으로 해야 하네안팎의 빈주가 되어한 치를 얻고 한 자를 얻네여유롭게 쌓고 쌓아차례로 깎아내네털끝만큼이라도 남기지 않아야심덕이 이에 순수하네순수하여 또한 그치지 않은 것이문왕이 문왕 된 까닭이네62)오씨의 아들관례를 함에 특출나네순으로 자를 삼고덕으로 의를 제어하네오직 덕과 순은그 뜻이 매우 드러나네부지런히 힘쓰고 따라우리 문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네 天地之德。至誠無息。人得其心。之生也直。氣拘物蔽。私欲萬端。王覇一途。人鬼交關。惻硏瞿然。反身思省。懲忿窒慾。動靜以敬。賓主內外。得寸得尺。優遊積累。次第刊落。毫芒不留。心德乃純。純亦不已。文王爲文。吳氏之子。冠而騰異。純以表德。德以制義。維德維純。其意孔彰。勉勉循循。師我文王。 오경순(吳景純) 오재덕(吳在德, 1874~?)을 말한다. 자는 경순, 호는 제월(齊月),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순수하여……까닭이네 《중용장구》 제26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은 아, 깊고도 멀어 잠깐의 그침도 없다네.'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하늘이 되는 까닭을 말한 것이며, '아, 어찌 밝게 드러나지 않으랴. 문왕의 덕, 그 순수함이여.' 하였으니, 이는 문왕이 '문'이란 시호를 받은 이유가 순수하면서 잠시도 그치지 않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詩云維天之命, 於穆不已, 蓋曰天之所以爲天也; 於乎不顯? 文王之德之純, 蓋曰文王之所以爲文也, 純亦不已.]"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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阻餘拜承惠詢旣感且賀謹從審歲色如紗仕候萬重閤節均泰仰祝且溯弟惄候恒在靡寧中近又室人吟病不起一方公擾繞身以若衰弱之質兼在數憂殆難支吾悶人悶人耳就示事謹悉而出勤卽時詳考民籍如未處理使卽手續矣以此下諒亦爲轉告于杆城長如何如何以民籍事務取扱者言之昨年以來辛善慶爲始交迭爲三四回而申告提出爲三個年云如無申告書之何等不備点而尙未處理則甚可痛歎處也其決未決第爲考籍計料耳餘心擾不備謝禮舊臘十二日弟辛圭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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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응상(金膺相)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 1855 金膺相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작성하여 부안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855년(철종 6)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膺相)이 작성하여 부안현(扶安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80세였으며 아내와는 사별하고 큰아들 양묵(養黙, 51세)과 큰며느리 개령심씨(開寧尋氏, 46세), 이들의 두 아들부부 기욱(基煜, 22세)과 기욱의 처 고령신씨(高靈申氏, 25세), 기찬(基燦, 17세)과 기찬의 처 연안김씨(延安金氏, 19세), 그리고 둘째아들 천묵(天黙, 41세) 둘째며느리 전의이씨(全義李氏, 40세), 세째아들 원묵(元黙, 32세) 세째며느리 월송황씨(越松黃氏, 23세), 그리고 셋째아들 원묵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 기혁(基爀, 11세) 등 아들 및 며느리 손자들과 함께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문서의 상단부 기록이 없어 작성년대를 알 수가 없지만 김응상의 현존 호구단자 가운데 작성연대가 기재된 것들이 있어서 그 기록들을 통해 나이를 비교하여 이 문서의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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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下面遯溪里戶籍單子苐 統苐三戶幼學金應相年四十七丙申 本扶寜父學生 命河祖學生 道明曾祖學生 德濂外祖學生柳壽期本高興妻梁氏歲二十八籍南原父學生 應澤祖學生 履元曾祖學生 斌信外祖學生朴啓東本密陽率子童蒙貴黙年十八乙丑外祖林命燁本沃溝賤口秩小娘一所生奴有辰年五十三逃己卯戶口相凖者[周挾無改印]行縣監 [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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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下面遯溪里戶籍單子第 統第二戶幼學金應相年四十四丙申 本扶▣(寧)▣…父學生 命河祖學生 道明曾祖學生 德濂外祖學生柳壽期本高興妻梁氏歲二十五乙卯籍南原父學生 應澤祖學生 履元曾祖學生 斌信外祖學生朴啓東本密陽子日甲年十五乙丑行縣監[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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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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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今日相浩之來奉覽 名牒如對 淸儀喜先於慰慰先於感而悵想不已夫何愼節連月支難雖因便探問未得一番晉慰情禮未安憧憧在心今聞調候漸至復常云自當快覩健康何慮何憂悲劇而喜否往則泰來天時人事當然底理也萬望益加調將自慰自重如何大病之後最要善攝而寬心養眞爲良劑也望勿毫忽爲希爲希弟狀老衰之物身世勞碌只切吁歎也已耳餘都留不備候禮陰四月旬一日弟辛圭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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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者惠復慰感慰感謹詢漢落仕候更若何仰溸區區弟狀家故未霽愁悶難堪耳就悚示意謹審而面長區長之間理勢固然矣然以弟思之則弟之於兄易地則似不然也區長許雖當於議其結果在於郡不在於面則事後必有對彼發明之言且吳區長所作農土雖非此土本無不足之歎況是弟之山直所耕者新舊作名替之權能在於兄之掌握者乎如非吾兩間不敢以此等無難之句語冒瀆於明鑑之下矣更加之思期圖惠施千万切仰切仰如係弟之小作關係則不當如是縷縷矣下諒回示焉餘如此不備謹候禮卽弟辛圭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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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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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으로 나가서 出門 문 나가면 장애가 있다 누가 말했는가 誰云出有礙하늘과 땅은 본래 넓고 크거늘 天地自廣大세상이 어둡고 깜깜하다 누가 말했는가 誰云世昏黑해와 달은 오히려 밝게 빛나거늘 日月尙昭晳세상과 사람을 한탄하지 말게나 莫歎世與人마음이 구애되고 혼미할까 걱정일 뿐 只恐心礙昏하늘처럼 넓고 해처럼 밝은데 廣明如天日인간 세상에서 무얼 걱정하겠는가 人世何足恤 誰云出有礙? 天地自廣大.誰云世昏黑? 日月尙昭晳.莫歎世與人, 只恐心礙昏.廣明如天日, 人世何足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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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에 이르러 족형 매산 어른 양식 에게 드리다 到木洞呈族兄晦山丈【亮植】 산속에 자취를 감춘 지 칠십 년이라 晦跡山中七十年어지러운 권세와 이끗 다 아득하기만 하네 紛紛勢利總茫然창가에 임한 절벽의 계곡엔 늘 빗소리가 들리고 臨牕絶澗常聽雨난간에 방울져 떨어진 이내는 반쯤 안개 되네 滴檻輕嵐半作煙세상에 새와 짐승들이 사니 백발만 더 늘어나고 世入翔走添白髮책상에 경서와 사서 남아 있어 청전173)을 중시했네 案留經史尙靑氈같은 뿌리에 음성과 기운까지 같으니 더욱 기쁘고 同根更喜同聲氣선장174)에서 이틀 밤 머무니 인연 빌리기가 좋구나 信宿仙庄好借緣 晦跡山中七十年, 紛紛勢利總茫然.臨牕絶澗常聽雨, 滴檻輕嵐半作煙.世入翔走添白髮, 案留經史尙靑氈.同根更喜同聲氣, 信宿仙庄好借緣. 청전(靑氈) 푸른 모포라는 뜻으로, 선대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이나 가문의 전통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두 훔쳐 가려 하자, 그가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라.[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王羲之列傳 王獻之》 선장(仙庄) 상대방의 집을 높여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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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가득한 늙은 전나무 滿山老檜 빽빽한 늙은 전나무 백만 명의 사람 같고 老檜森森百萬身서로 얽힌 마른 가지는 새로 창칼이 되네 槁枝交錯劒戈新가을바람 부는 밤에 철갑 기병으로 변하여 化成鐵騎西風夜관산으로 몰아내 한바탕 티끌 쓸어버리길 驅出關山一掃塵 老檜森森百萬身, 槁枝交錯劒戈新.化成鐵騎西風夜, 驅出關山一掃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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