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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불암1)에서 노사 기 선생2)을 뵙다 觀佛菴拜蘆沙奇先生 하늘가가 시야에 가까우니 (天涯眼下近)인간세상 안개 속에 희미하네 (人境霧中迷)한가히 노닐다 문득 밤이 되니 (優遊轉到夜)가을 달이 흉금을 비추네 (秋月上襟懷) 天涯眼下近。人境霧中迷。優遊轉到夜。秋月上襟懷。 관불암(觀佛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이 젊어서 글을 읽었던 암자이다. 전라남도 장성군과 고창군 경계에 취서산(鷲棲山)이 있는데, 이 산에 있는 암자이다. 기정진이 민재남(閔在南)에게 답한 편지에 보면, 1868(고종5) 8월에 이곳으로 들어 왔는데 시야가 트여서 답답한 마음을 씻어 내기 좋은 곳이라고 하였다. 『노사집』 권5, 답민겸오(答閔謙吾).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이다.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이다. 유일로 천거되어 조정의 여러 벼슬에 제수되었지만 사양하였다. 성리학에 대한 깊은 궁리와 사색을 통해 이일분수(理一分殊)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을 수립하였다. 저서로는 『노사집(蘆沙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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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조사식(趙寫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丑三月初二夜 趙寫植 大舅主 己丑三月初二夜 趙寫植 大舅主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기축년 3월 초이틀 밤에 조사식이 장인에게 보낸 서간 기축년(己丑年) 3월 초이틀 밤에 조사식(趙寫植)이 장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사식은 이 편지에서 장인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부친은 얼마 전에 성묘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흉년에 먼길을 떠나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 안있으면 관직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는데 제대로 준비를 못해서 모든 게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또한 어떻게 해서든지 말미를 내어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이 서간에서 조사식은 자신을 외생(外甥)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흔히 생질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외구(外舅), 즉 장인에 대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곧 사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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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계안(稧案)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사회-조직/운영-계문서 壬戌十一月日 壬戌十一月日 1862 扶安金氏家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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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98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戊戌年十二月 戊戌年十二月 1898 扶安金氏家 地主 小作人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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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박경립에게 답함 答朴景立 준규(準奎)가 와서 내일 초지(艸枝)로 간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길은 얼고 날은 추우니 백 리 길을 오가기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라 크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군자는 한 가지 일을 겪으면 한 가지 지혜가 늘어나게 됩니다. 하물며 도(道) 있는 군자의 문하에 찾아가 직접 만나고서도 멍하니 얻은 바가 없어서 만나지 않은 때와 비슷하다면 쓸데없이 다리 힘만 써버리게 되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이 역시 마땅히 스스로 성찰해야 할 지점입니다.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종유(從遊)한 날이 오래지 않은 것이 아니며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벗을 만나고 대하는 것에 이르러서도 사방에서 이처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으니 만약 실제적인 효과에 나아가는 바가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스스로 해명하겠습니까? 모름지기 이 뜻을 십분 걱정하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準奎來。得聞以明日作艸枝之行。氷程寒天。百里往返。甚不易事。令人貢悶。然君子經一事。長一智。況親見君子有道之門。而蒙然無所得。與不見時相似。則不幾於徒費脚力乎。此亦所當自省處也。吾兩人相從之日。不爲不久。尊庭期望之心。不爲不至。至於朋友之見待。四方之指目如此。而若無進就實效。則其將何以自解乎。須體此意。十分惕勵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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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생생결(生生訣) 고문서-시문류-문 교육/문화-문학/저술-문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000161로 수정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표제가 생생결이라고 적힌 감결류 문기. 표제가 생생결(生生訣)이라고 적힌 감결류(鑑訣類) 문기(文記)로, 본문에는 일(一)부터 일련번호를 매겨놓고, 그 번호마다 이에 해당하는 상황을 비상한 은유의 내용으로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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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정해생 관상조감평(觀相藻鑑評)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000162로 추가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정해년에 작성된 관상조감평. 정해생(丁亥生)에 작성된 관상조감평(觀相藻鑑評)이다. 감결류(鑑訣類)의 문기(文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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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추수기(秋收記) 일편(一片)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己巳正月二十三日 己巳正月二十三日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기사년 정월에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추수기 일편. 기사년(己巳年) 정월 23일에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추수기(秋收記)의 한 조각으로, 도조건(賭租件)이라는 제목 아래 고을별로 소작인들의 도조가 적혀 있다. 이 쪽지에는 3명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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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에서 출발하기 앞서 감회가 있어 짓다 洛城臨發有感 삼십 일 동안 장안성에서 쌀을 구하였으니210) (三旬索米長安城)매일 봉래산의 오색구름을 바라보네 (每望蓬萊五色雲)맛있는 미나리 캐었지만 바칠 길이 없으니 (采采美芹無路進)석양녘에 서글피 남문을 나서네 (夕陽悟悵出南門) 三旬索米長安城。每望蓬萊五色雲。采采美芹無路進。夕陽悟悵出南門。 장안성에서 쌀을 구하였으니 서울에서 벼슬을 구한다는 뜻이다. 한(漢)나라 때 동방삭(東方朔)이 금마문(金馬門)에 있으면서 천자(天子)를 만나 "……신의 말이 쓸 만하면 특이한 예(禮)로 대우해 주고 쓸 만하지 않으면 파기해 주시어, 부질없이 장안(長安)에서 쌀을 찾게 하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漢書 卷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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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형 월파123)와 정애산, 안순견과 모여서 술을 마시다 與族兄月波及鄭艾山安舜見會酌 누대 앞에 초승달 날이 막 갤 즈음에 뜨니 (樓前新月趁初晴)가을 기운 바야흐로 높아 밤빛이 맑네 (秋氣方高夜色淸)월파와 애산 노옹이 와서 서탑을 함께 하니 (波老艾翁來倂榻)평생 무엇이 지금의 마음과 같으랴 (平生孰若此時情) 樓前新月趁初晴。秋氣方高夜色清。波老艾翁來倂榻。平生孰若此時情。 월파(月波) 정시림(鄭時林, 1839~1912)의 호이다. 기정진의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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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기록하다 記夢 박장과 안장은 모두 나의 스승이니 (朴安二丈皆吾傅)모두 선친과 함께 계해년(1863, 철종14)에 태어나셨네 (俱與先人癸亥生)전날 밤 꿈속에서 세 분을 모셨으니 (前宵一夢陪三位)쇠잔한 몸이라 슬프고 아픈 마음 배로 간절하네 (倍切殘身痛苦情) 朴安二丈皆吾傅。俱與先人癸亥生。前宵一夢陪三位。倍切殘身痛苦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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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경방과 영평168)에 들르다 與從弟敬方過永平 저물녘 구름이 영평에서 일어나니 (暮雲起永平)한 쌍의 기러기 능성으로 향하네 (雙雁向綾城)해마다 성묘하는 길에서 (年年省掃路)백 년의 명성 적막함을 탄식하네 (嗟寂百年聲) 幕雲起永平。雙鴈向綾城。年年省掃路。嗟寂百年聲。 영평(永平) 전라남도 나주 남평현의 고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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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에 도착하다 到潘南 고향 산 가을 풀은 담장과 사립문을 덮었으니 (古山秋草埋墻扉)지나는 길에 서성이며 두 눈에 눈물이 흐르네 (行過彷徨雙淚揮)의연히 남아있는 옛 물건은 천석뿐이니 (依然舊物惟泉石)몇 번이나 일찍이 지팡이 짚고 돌아다녔나 (幾度曾徑杖屨回) 古山秋草埋墻扉。行過彷徨雙淚揮。依然舊物惟泉石。幾度曾徑杖屨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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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에서 돌아오던 날 등 적삼269)을 잃어버렸기에 사람을 보내 찾아오게 하고 시를 지어 사익에게 부치다 自壽洞歸日 忘却藤衫 遣人覓來 賦寄士益 옛날 운산에서 이별할 때는 古昔雲山別벽라의270)에 눈물이 흥건하였는데 碧蘿衣上淚自淫오늘 영산에서 이별할 때는 今日瀛山別어찌하여 백등 적삼을 잃어버렸는가 胡然忘却白藤衫운산의 이별은 서로 출처가 달라 雲山之別異出處친함 가운데 소원함 생겨 슬픔 금치 못하겠더니 親中有疏悲不禁영산의 이별은 아주 친하여 瀛山之別親無間결국 둘 다 형체 잊는 데271) 이르렀지 乃至乎兩忘形형체 잊는 것이야 그래도 가능하지만 形且忘猶可能등삼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도 어찌 가능하랴 衫欲不忘豈可能형체는 잊었지만 어찌 뜻을 기름이 없겠는가272) 形雖忘豈無養등삼은 잃어버렸지만 또한 찾을 수 있네 衫雖遺亦宜推아 지금 잃어버린 등삼과 옛날 눈물 젖은 옷 噫今之遺衫古淚衣일은 비록 다르지만 지극한 뜻은 똑같다오 事則雖殊至意同歸 古昔雲山別, 碧蘿衣上淚自淫.今日瀛山別, 胡然忘却白藤衫?雲山之別異出處, 親中有疏悲不禁.瀛山之別親無間, 乃至乎兩忘形.形且忘猶可能, 衫欲不忘豈可能?形雖忘豈無養? 衫雖遺亦宜推.噫今之遺衫古淚衣, 事則雖殊至意同歸. 등(藤) 적삼 껍질을 제거한 등나무 줄기로 만든 적삼을 말한다. 벽라의(碧蘿衣) 푸른 송라(松蘿) 덩굴로 만든 옷으로, 은사(隱士)들이 입는 옷을 말한다. 형체 잊는 데 외형에 얽매이지 않고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한 절친한 친구 사이를 말한다. 형체는……없겠는가 《장자(莊子)》 〈양왕(讓王)〉에 "뜻을 기르는 자는 형체를 잊고, 형체를 기르는 자는 이욕을 잊으며, 도를 터득한 자는 마음을 잊는다.[養志者忘形, 養形者忘利, 致道者忘心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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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사람의 입추 시276)에 차운하다 2수 次唐人立秋詩【二首】 세월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 居諸不暫息문득 다시 초가을이 되었네 忽復遇秋初더위 기세 꺾인 줄 이미 알았고 已覺炎威薄나무 그림자 성긴 걸 점차 보겠네 漸看樹影疏교외에서 맞이하는 옛 의례277)는 상상만 하지만 郊迎儀想舊가래나무 이는 풍속278)은 남아 있으리 楸戴俗應餘내 나이는 회갑이 되었고 賤齒甲周匝천시는 반년이 지났구나 天時年半除세상 소란해 백성들 새처럼 달아나고 世騷民竄鳥날이 가물어 연못에는 물고기 없네 日旱澤無魚온갖 감정 이는 가을바람 속에 百感西風裏송옥처럼 시를 읊는다오279) 賦詩宋玉如가을 기운이 오늘 아침 불어오니 秋氣今朝立은자는 비로소 사물에 느낌 이네 幽人感物初못의 연꽃은 활짝 피고 渠荷花歷亂뜰의 나뭇잎은 무성하네 庭樹葉扶疏세찬 바람이 분 뒤라 농사는 망쳤고 農病大風後극심한 가뭄 뒤라 백성들 고생하네 民勞亢旱餘사시는 분분하게 계절이 바뀌고 四時紛代謝만사는 성하기도 쇠하기도 하네 萬事互乘除국면의 판세는 방휼의 형세280)라 局勢相蚌鷸백성들 모두 어육이 되었어라 生靈盡肉魚수많은 뜻이 있는 선비들 幾多有志士앞으로 마음이 어떠할까 從此意何如 居諸不暫息, 忽復遇秋初.已覺炎威薄, 漸看樹影疏.郊迎儀想舊, 楸戴俗應餘.賤齒甲周匝, 天時年半除.世騷民竄鳥, 日旱澤無魚.百感西風裏, 賦詩宋玉如.秋氣今朝立, 幽人感物初.渠荷花歷亂, 庭樹葉扶疏.農病大風後, 民勞亢旱餘.四時紛代謝, 萬事互乘除.局勢相蚌鷸, 生靈盡肉魚.幾多有志士, 從此意何如? 당(唐)나라……시 사공서(司空曙)의 〈입추일(立秋日)〉을 가리킨다. 《全唐詩 卷292》 교외에서……의례 《예기(禮記)》〈월령(月令)〉에 "입추(立秋)에 천자가 친히 삼공(三公)ㆍ구경(九卿)ㆍ제후(諸侯)ㆍ대부(大夫)를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하였다. 가래나무 이는 풍속 《몽화록(夢華錄)》에 "경사에서는 입추에 남녀가 모두 가래나무 잎을 따서 머리에 이고 와서 파는 사람이 저자에 가득하였다.[京師立秋, 男女皆翦楸葉, 戴之賣者盈市.]"라고 하였다. 《淵鑑類函 卷15 立秋二》 온갖……읊는다오 전국 시대 초(楚)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구변(九辯)〉 첫머리에 "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쓸쓸하게 초목은 바람에 흔들려 땅에 지고 쇠한 모습으로 바뀌었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구절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楚辭 卷6》 방휼(蚌鷸)의 형세 큰 조개가 껍데기를 벌리고 있을 제 지나가던 황새가 쪼아 먹으려다가 조개껍데기가 닫히는 바람에 도리어 주둥이를 물리어 서로 마주 버티다가 어부에게 모두 잡혔다는 것으로, 둘이 서로 다투다가 함께 패하여 제삼자에게 이득을 취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다. 《戰國策 燕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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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범회50)의 《이택회첩》 뒤에 쓰다 書權範晦麗澤會帖後 두 연못이 서로 걸려 상호간에 적셔주고, 끊임없이 이어져 다하지 않아 붕우 간에 상관(相觀)51)하고, 상호간에 규계하고 경계하여 순순하게 진보가 있으니, 이것이 성인께서 특별히 이 뜻을 《주역》에 드러내어 만세에 벗을 취하는 자의 경계로 삼은 까닭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남에게 미칠 수 있는 선이 없고 남의 입장에서 나에게 미칠 수 있는 선이 없다면 이것은 마른 연못이다. 마른 연못이 서로 걸려 있다면 말할 만한 어떤 유익함이 있겠는가. 반드시 모름지기 먼저 그 우물을 파되 구인(九仞)의 수고로움52)을 꺼리지 않아 샘물이 솟아남에 이른다면 이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날로 더욱 깊게 고여 멀리로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고 넓게는 만물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원컨대 이택회(麗澤會)의 제군들은 힘쓸지어다! 兩澤相麗。互相滋潤。源源不竭。朋友相觀。互相規警。循循有進。此聖人所以特著此義於大易。以爲萬世取友者之戒也。然在我無善可以及人。在人無善可以及我。則是渴澤也。以渴澤相麗。有何資益之可言哉。必須先掘其井。不憚九仞之勞。以至於及其泉焉。則所以因仍相資者。日益渟滀。遠可以達海。廣可以澤物。願麗澤諸君勉乎哉。 권범회(權範晦) 권춘식(權春植, 1879~?)을 말한다. 자는 범회,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상관(相觀) 친구 간에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본받는 것을 말한다. 《예기》 〈학기(學記)〉에 "대학의 교육 방법은 좋지 않은 생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예라고 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르치는 것을 시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르치는 것을 손이라 하고,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것을 마라고 한다.[大學之法, 禁於未發之謂豫, 當其可之謂時, 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인(九仞)의 수고로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함이 있는 자는 비유하면 우물을 파는 것과 같으니, 우물을 아홉 길을 팠더라도 샘물에 미치지 못하면 오히려 우물을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有爲者辟若掘井, 掘井九軔而不及泉, 猶爲棄井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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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변정세계서〉 뒤에 쓰다 書密陽朴氏辨正世系序後 무릇 윤상(倫常)은 지극히 무겁고 세리(勢利)는 지극히 가볍다. 사해(四海)의 귀함을 들어 천륜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고, 한 가지 일의 그릇된 것을 행하여 천하를 얻더라도 하지 않으니, 사람이 사람 되고 금수와 다른 까닭이 바로 이곳에 있다. 시대가 내려오고 풍속이 떨어져 윤리가 밝지 못하고 인욕이 멋대로 행해져 이익을 사모하여 선조를 잊고 세력을 좆아 어버이를 배신하는 자가 흘러넘치니, 이루 탄식을 감당하겠는가.밀양 박씨(密陽朴氏) 일파가 능주(綾州)에 살면서 잠영(簪纓)과 시례(詩禮)로 호남에 알려진 것이 오래되었다. 다만 그 중엽의 명휘(名諱)가 영체(零替)되고 실전(失傳)되었는데 중간에 다른 계보를 인용하여 그 결함을 보충하였다. 대개 그 가문의 한 사람이 세계의 중요함을 강구하지 않고 갑자기 중간에 끊어진 것을 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나의 벗 사문(斯文) 박인진(朴麟鎭)38)은 독행(篤行)의 선비이다. 이것으로 항상 분탄(憤歎)하게 생각하였는데, 하루는 선계는 지극히 엄하여 옮기거나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서술(序述)하여 글을 지어 종족과 향당에 두루 고하여 빨리 되돌렸다. 무릇 효자가 어버이 명에 대해 실로 소홀하거나 어기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불의를 당하여서는 애써 간하고 힘껏 다투어 회초리를 맞아 피가 흐르더라도 그만 두지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대개 이치를 따르는 것은 어버이를 따른 것이고 하늘을 공경하는 것은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일은 선대 항렬의 당일 본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빨리 바른 데로 돌려야 하니, 어찌 자손이 뜻을 계승하는 효가 아니겠는가.내가 보건대, 사람들의 집안에 종종 이러한 일이 있지만 편안히 일상으로 여기고 뻔뻔하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실로 족히 말할 것이 없다. 혹 그 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눌러 참고는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자도 또한 있을 것이다. 오직 사문 박인진은 안으로 마음을 속이지 않고 밖으로 남을 속이지 않아 붕우들과 강론하고 종족과 도모하여 천리의 바름에 합할 것을 생각하여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간 사람이니, 가위 명백(明白) 탄이(坦夷)하고 뇌락(磊落) 정대(正大)하다고 하겠다.오호라! 이것은 백성이 살아가는 떳떳한 윤리 가운데 제일의 의체(義諦)이다. 나는 원컨대 표시하여 드러내어 한 시대를 밝게 깨우쳐 천부(淺夫)와 소인(宵人)들로 하여금 모두 알 수 있게 한다면 말속의 병폐가 거의 나음이 있을 것이다.나는 서로 아는 처지에서 찬탄(贊歎)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분수에 넘는 것을 잊어버리고 위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夫倫常至重。勢利至輕。擧四海之貴而易天倫不得。行一事之非而得天下不爲。人之所以爲人而異於禽獸者。正在此處。世降俗下。倫理不明。人欲橫流。慕利而忘先。趨勢而背親者。滔滔焉。可勝歎哉。密陽朴氏一派。居於綾州。以簪纓詩禮。聞於湖省者久矣。但其中葉名諱。零替失傳。而間引他系。以補其缺。蓋其門內一人。未講世系之重。而遽以中絶爲欠故也。余友朴斯文麟鎭。篤行士也。以此常懷憤歎。一日以其先系至嚴不可移易之意。序述爲文。遍告于宗族鄕黨而亟反之。夫孝子之於親命。固不可毫忽違逆。然當不義則苦諫力爭。至於被撻流血而不已。其故何哉。蓋順理所以順親也。敬天所以敬親也。況此事非出於先行當日之本心。則亟爲反正。豈非子孫繼志之孝乎。余見人家種種有此。而恬以爲常。靦不知愧者。固不足道。或有知其非義。而畏難隱忍。不敢下手者。亦有矣。惟斯文。內不欺心。外不誣人。講之於朋友。謀之於宗族。思所以合乎天理之正。而卽乎人心之安者。可謂明白坦夷。磊落正大矣。嗚乎。此是民生彛倫第一義諦也。吾願表以出之。曉喩一世。使淺夫宵人。皆得以知之。則末俗之膏肓。庶其有瘳乎。忝在相知。不勝贊歎之私。忘其僭越。而爲之說如是云爾。 사문(斯文) 박인진(朴麟鎭) 1846∼1895. 자는 학중(學中), 호는 우인당(愚忍堂),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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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와 박공 가장〉 뒤에 적다 題悔窩朴公家狀後 고인의 말에 이르기를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사우가 없으면서 능히 성취함이 있는 자는 적다."라고 하였는데,42) 지금 회와(悔窩) 박공(朴公)의 유장(遺狀)을 읽고 가만히 부합하는 점이 있음을 알았다. 공의 조카 인진(麟鎭)이 일찍 고아가 되어 집안일을 맡게 되자, 공이 집안일 때문에 학문에 방해가 있을까 염려하여 경계하기를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금수에 가까운데, 더구나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책임이 너의 몸에 있으니, 그 중요함이 어찌 다만 집안일과 견주겠느냐?"라고 하고, 이에 대소가의 일을 몸소 스스로 주관하여 관리하고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오로지 힘써 어진 사우들과 종유하게 하였다. 여러 해가 쌓여 그 학업을 성취하여 마침내 사문(斯文)의 순유(醇儒)와 오당(吾黨)의 위인(偉人)이 되었다. 그러나 회와공의 훈도한 힘이 아니었다면 그 수립한 것이 어찌 능히 이럴 수 있었겠는가. 이 한 가지 일에서 공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나는 그의 조카와 더불어 종유하며 강마한 지 10여 년 동안에 책상 아래에서 공에게 인사 드릴 수 있었던 것이 또한 자못 자주 있었다. 가만히 보건대 공의 형체와 모습이 풍후(豊厚)하고 의용(儀容)이 장중(莊重)하여 남과 더불어 말하거나 웃는 것이 적었고, 일에 임하여 표시 나게 드러내는 것이 적었으니, 아름답게 옛 선진의 기풍이 있었다.오호라! 공과 조카가 차례로 돌아가신 지 장차 지금 20년이 되어가니, 모시고 따르던 나는 외롭고 쓸쓸하여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다만 그 아들 규진(奎鎭)43)과 종손(從孫) 준기(準基)44)가 경전에 힘쓰고 몸을 신칙하여 바야흐로 진보가 끝이 없을 것이라, 또한 공께서 가르친 방법이 돌아가신 뒤에도 실추되지 않음을 볼 수 있으니, 아, 공경할 만하다. 삼가 가장 뒤에 기록하여 내가 뒤미처 생각하는 만분의 일의 정을 깃들인다. 古人有言曰。內無賢父兄。外無嚴師友。而能有成者少矣。今讀悔窩朴公遺狀。竊有槪焉。公從子麟鎭。早孤當室。公慮其以家務而妨於學問。戒之曰。人而不學。近於禽獸。況父母之望。門戶之責。在於汝躬者。其重豈特家務之比哉。於是大少家務。躬自幹理。使之安心專力。遊從賢士友。積歲積年。以就其業。卒爲斯文之醇儒。吾黨之偉人。然非悔窩公訓迪之力。其所樹立。安能乃爾。於此一事而可以見公之爲公也。余與其從子。遊從講磨十餘年。得以拜公於床下者。亦頗頻頻矣。竊見公體相豊厚。儀容莊重。與人寡言笑。臨事少表襮。偉然有古先進之風。嗚乎。公與從子次第就幽。將二十稔于玆。陪從餘生。踽凉奚依。但其遺胤奎鎭從孫準基。劬經勅躬。方進未已。亦可以見公之敎法。不墜於身後。吁可敬也。謹識狀後。以寓區區追想萬一之情云爾。 고인의……하였는데 《소학》 〈선행(善行)〉에 나오는 여희철(呂希哲, 1039~1116)의 말이다. 아들 규진(奎鎭):박규진(朴奎鎭, 1858~1934)을 말한다. 자는 대규(大圭),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종손(從孫) 준기(準基) 박준기(朴準基, 1864~1940)를 말한다. 자는 경립景立), 호는 겸산(謙山),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저서로는 《겸산유고(謙山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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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化民宋鎭澤右謹言民之慈母墳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定山直守護數十餘年矣中間有勢者蔑視民之孤弱敢爲偸塚於民之慈母山靑龍麓白虎麓者間或有之然而義理▣…之下渠輩皆屈於義理以爲掘去者昭在於 前官時也不意去四月良中不知何許漢乘夜偸葬於民之慈母山白虎麓已掘處下故民其間追月逐日至于今搜探尙未覓塚主則惟彼偸塚圍掘蕀圍然後塚主自然出現而乃已也緣由圍掘蕀圍仰訴 參商敎是後特年他官孤孑之民毋至日後不告 官圍掘之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丙寅七月 日山在官[着押][題辭]廣覓塚主如法處斷宜當事十七日告柴敏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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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情由段民之親山在於 治下南村盤龍村前麓而古阜居朴哥偸葬於只尺之地故日前呈訴至承 嚴題朴塚則渠自掘去是遣其下一塚則曠探本主更呈計料後考次立旨成給事 處分伏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己巳十二月 日官[着押][題辭]朴塚已掘去殊可幸也又一塚則期▣其主使卽掘去宜當向事卄七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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