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惜別 石屛尋舊約。搴菊復看梅。雲襲三更枕。泉分一注盃。金篦從此別。碨磊向誰開。仙客吾何擬。淸塵夢百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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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실【정현】에게 답함 答朴元實【鼎鉉】 올해가 되기 전에 이미 심부름꾼을 통해 편지를 받았는데, 새해 초에 또 그대의 아우를 보내 이처럼 위문하시니, 그대의 정성스런 마음을 알겠으니 감사한 마음 헤아릴 수 없습니다. 편지를 받고 삼가 할머님과 어머님께서 건강하고 평안하며, 네 형제는 명성이 뛰어난 줄 삼가 알겠으니, 새해의 좋은 소식에 기뻐서 축하하는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오직 바라건대, 노력하고 더욱 힘써 하늘이 나에게 매우 후하게 베풀어준 뜻에 보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눈앞의 모든 일을 근근이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말년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구구한 내가 일생을 마칠만한 계책으로는 터럭만큼도 마음을 둘 곳이 없으니 매양 생각할 때마다 혀만 찰뿐입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이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주 방문해서 마치 더불어 말할 것이 있는 듯이 하니, 내가 비록 감히 굳건하게 사양하지 못했으나, 그대들에게는 어찌 헛되이 다리 힘을 소비하고 수고로우나 공효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멍하니 자책하며 어떻게 사례할지 모르겠습니다. 주자(朱子)는 "천하의 일은 평소 한가하게 지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이 한 몸은 하늘이 낳아주고 땅이 길러주어서 아주 많은 도리를 부담하고 있으니, 이 도리를 다할 수 있어야 개개의 사람이 될 수 있고 하늘을 떠받치고 땅을 밟을 수 있어서 이 삶을 저버리지 않는다. 만약 이 도리를 다할 수 없으면, 단지 부질없이 살고 부질없이 죽으며 부질없이 형체를 갖추고 부질없이 세상 사람의 밥을 먹는 것이며, 도리를 보고 알기를 모두 많은 하찮은 물건으로 여기고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였으며, 또 "주경(主敬)이란 것은 존심(存心)의 핵심이고 치지(致知)라는 것은 진학(進學)의 일이니, 이 두 가지를 서로 드러내어 밝히면 아는 것이 날로 더욱 분명해지고, 지키는 것이 더욱 견고해져, 예전에 익숙해진 잘못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날로 고쳐지고 달로 변화될 것이다."라고 하는 등의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공허함은 한 마디 말로써 도울 수 없기 때문에 주자의 학설 두세 조목을 신중하게 외워서 알려주니, 부디 마음에 새겨서 반복해 읽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歲內旣專伻矣。歲初又送令弟。若是致問。仰認勤意。感佩沒量。謹審雙幃康寧。四棣芳茁。新年好消息。何等欣賀也。惟願努力加勉。以答天翁餉我至厚之意。如何。義林眼前凡百。姑且捱過。而惟是年力垂暮。區區所以爲究竟之計者。無絲毫可意處。每念咄咄而已。賢輩不諒此狀。種種垂訪。有若可與語者在。我雖不敢牢辭。在賢輩。豈不是枉費脚力。勞而無功乎。撫然自咎。不知爲謝也。朱子曰。天下事。非燕閒暇豫之可得。又曰。此身是天造地設底。擔負許多道理。盡得這道理。方成箇人。方可拄天踏地。方不負此生。若不盡得此理。只是空生空死。空具形體。空喫了世間人飯。見得道理透。許多閒物事。都沒要緊。要做甚麽。又曰。主敬者。存心之要。致知者。進學之功。二者交相發焉。則知日益明。守日益固。而舊習之非。自將日改月化於冥冥之中矣云云。未知曾見此語否胸中空疎。無一言可以相助。故謹誦朱子說二三條以告之。幸留意而反復焉。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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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선【희원】에게 답함 答朴子善【熙元】 천태(天台)가 어떤 벽지인데, 금과 옥 같은 형제가 영광스럽게도 나란히 말을 달려서 왕림해 주셔서, 매우 고마워서 그 풍모를 잊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는데, 백아(白雅)가 찾아와서 그대의 편지를 소매 속에서 꺼내주었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부모님을 모시며 기뻐하고, 형제간에 화목해서, 평화로운 기운이 상서로움을 불어와 온갖 복이 넘쳐나는 것을 알았으니,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며 축하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여력이 있을 때 복습하고 정리함에 날마다 일정한 과정을 두었습니까? 보내온 편지에서 "복잡한 세상의 일에 속박되었다."라고 말한 것은 진실로 사람들 마다 공통적으로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한 몸에도 많은 일이 있는데, 하물며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자제들을 돌봄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게다가 가문이 매우 깊고 넓으니, 일상에서 마땅히 해야 할 업무가 어찌 보통의 사람과 비교하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의 일을 끊어버리고 우뚝하게 혼자 앉아서 공부하기만을 바란다면 이것이 어찌 학문이겠습니까? 주자(朱子)의 「답진부중서(答陳膚仲書)」에서 "집안일이 번잡해서 학문에 방해가 된다는 것으로 근심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공부하는 현실일 뿐입니다. 다만 모든 일에 도리를 살펴서 이해하고 쉽게 지나치지 않게 해야 하고, 또 그 속에서 평소의 병폐를 살펴보고 힘껏 제거해야 합니다. 학문을 하는 방도에서 무엇을 여기에 더하겠습니까. 만약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고 물리치고 싶다는 생각이 생겨나면, 일과 이치가 도리어 두 개로 나누어져 버리니, 독서해도 역시 쓸 데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내가 평소에 매우 사랑하면서도 체득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지금 그대를 위해 한번 외워봅니다. 부디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일상에서 경계할 말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天台是何等僻隅。而金昆玉季。賁然聯鞭。軫賜儼顧感感。風義令人不忘。料外白雅見過。袖致光函。因審侍省怡愉。塤箎湛樂。和氣致祥。百福津津。翹首瞻賀。不任傾倒。餘力溫理。日有課程否。來喩所謂纏縛於世故叢中云者。固人人通患。然人有一箇身。便有許多事。況上省下率。門戶深闊。日用應務。豈尋常人比哉。若欲廢人事絶家務。而兀然獨坐者。此何學耶。朱子答陳膚仲書有曰。承以家務叢委。妨於學問爲憂。此固無可奈何。然只此便是用功實地。但每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更於其間。看得平日病痛。痛加剪除。爲學之道。何以加此。若起脫去之心。生排遣之念。則事與理。却成兩截。讀書亦無用處矣。此語。愚所尋常酷愛而不得者。今爲左右一誦之。幸加三復。以爲平日之箴。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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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9 卷之二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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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유재 시를 차운하다 재의 주인은 김일재이다. 次承裕齋韻【齋主金日載】 건축 전에도 승유의 마음359) 간직하더니 承裕心存建築前재를 지은 뒤에도 정성 쏟는 걸 다시 보네 齋成更見用誠專선군의 뜻을 이어 사람들이 효를 허여하고 繼先君志人歸孝한 가문의 공을 메어 그대 홀로 애썼구나360) 擔一門功子獨賢봉유도는 다정하게 재의 문에 들어오고 入戶多情蓬有島석류천은 쉬지 않고 뜰을 둘러 흐르네 繞庭不息石流川이 큰 은혜 생각하여 폐하지 않고 전하리니 念玆嘉錫傳無替청컨대 집안에 옥수361)가 이어지는 걸 보시라 請看家中玉樹連 承裕心存建築前, 齋成更見用誠專.繼先君志人歸孝, 擔一門功子獨賢.入戶多情蓬有島, 繞庭不息石流川.念玆嘉錫傳無替, 請看家中玉樹連. 승유의 마음[承裕] '승선유후(承先裕後)'를 말하는 것으로, 선조를 계승하고 후손에게 넉넉한 업적을 남겨주는 것을 말한다. 홀로 애썼구나 원문의 '독현(獨賢)'은 혼자서만 고생한다는 뜻으로, 흔히 훌륭한 재주를 지닌 자가 홀로 어려운 일을 담당하여 고생하는 것을 이른다. 《시경》 〈북산(北山)〉에 "대부의 일 처리 공평하지 못한지라 나만 홀로 어질다하여 일을 하게 하네.[大夫不均, 我從事獨賢]"라고 하였다. 옥수(玉樹) 훌륭한 남의 자제에 대한 경칭이다. 진(晉)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말하기를 "비유하자면 지란과 옥수가 섬돌 앞 뜰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게 하겠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고 자신의 소망을 밝힌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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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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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에 무인년(1938) 五月五日【戊寅】 때마침 오월 오일이라 時當五月五부들 푸르고 앵두가 처음 익었네 蒲綠櫻初熟사람들은 모두 명절을 기뻐하는데 人皆喜佳節누굴 위해 나는 미간을 찌푸리나 爲誰余頞蹙예전에 삼려대부가 충간했다가 在昔三閭忠참소 때문에 추방을 당했는데 以讒見斥逐조국의 멸망을 통한으로 여겨 痛恨宗國亡이날 물고기 뱃속에 장사했네1) 此日葬魚腹〈이소〉와 〈구가〉2)에서는 離騷與九歌글자마다 한 움큼 눈물 뿌렸는데 字字淚盈掬굴원을 경모하는 회옹을 만나 敬慕遇晦翁주해를 지어 읽게 되었네3) 至作註解讀아, 나는 간재 선생의 문인으로 嗟余于艮門삼려대부와 몹시 닮았으니 三閭相似酷스승을 무함하고 원고를 고친 것은 誣師與改稿그 죄가 형벌을 받아 마땅하네 厥罪宜法伏기강이 하나같이 무너졌으나 綱紀一以墮누가 감히 조금이라도 범하랴 誰敢毫髮觸내가 제 힘을 헤아리지 못한 채 余不自量力분변하고 토론하여 두 눈 밝혔으나 辨討明雙目죄는 도리어 공훈이 되었고 罪反爲勳勞바름은 결국 사특함으로 돌아갔네 正乃歸邪曲비유하자면 초나라 조정에서 譬彼鄢郢朝충신과 간신의 상하가 바뀐 것 같고 忠佞到首足게다가 거기에 호응하는 자들은 亦復同聲者권세를 좇아 기회주의자가 되었네 趨勢爲蝙蝠천여 명이나 되는 수많은 무리에서 林林千餘徒혈혈단신 나 혼자뿐이었으니 孑孑惟余獨그동안에 당한 일신의 재앙은 其間一身禍말하자니 오싹 소름이 생기네 言之寒生粟천추에 스승의 도가 없어졌으니 千秋師道亡생각하면 마음이 쓰디쓰네 念之心荼毒옛사람이 먼저 터득하지 않았던가 古人先獲否한번 죽더라도 원하는 걸 하겠다고 一死寧所欲다만 두려운 건 중도에 지나치면 但恐過中處훗날 의론이 심해진다는 점이네 不無後論篤삶과 죽음은 규모가 다르지만 生死殊規模맑음과 깨어있음은 궤폭이 같으니 淸醒一軌輻명백히 분변한 수많은 서적이 多少明辨書깊은 산골에 보관되어 있네 藏在深山谷유유하게 백세가 지나고 나면 悠悠來百世나를 알아줄 사람은 누구일까 知我復有孰시절을 느끼고 고금을 슬퍼하며 感時傷今古시 짓고서 공연히 세 번 반복하네 詩成謾三復 時當五月五, 蒲綠櫻初熟.人皆喜佳節, 爲誰余頞蹙?在昔三閭忠, 以讒見斥逐.痛恨宗國亡, 此日葬魚腹.《離騷》與《九歌》, 字字淚盈掬.敬慕遇晦翁, 至作註解讀.嗟余于艮門, 三閭相似酷.誣師與改稿, 厥罪宜法伏.綱紀一以墮, 誰敢毫髮觸?余不自量力, 辨討明雙目.罪反爲勳勞, 正乃歸邪曲.譬彼鄢郢朝, 忠佞到首足.亦復同聲者, 趨勢爲蝙蝠.林林千餘徒, 孑孑惟余獨.其間一身禍, 言之寒生粟.千秋師道亡, 念之心荼毒.古人先獲否? 一死寧所欲.但恐過中處, 不無後論篤.生死殊規模, 淸醒一軌輻.多少明辨書, 藏在深山谷.悠悠來百世, 知我復有孰?感時傷今古, 詩成謾三復. 삼려대부(三閭大夫)가……장사(葬事)했네 전국 시대 초(楚)나라 충신 굴원(屈原, 기원전 343~기원전 277)이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三閭大夫)가 되었으나 뒤에 상관대부(上官大夫)의 참언에 의해 면직되었다가 다시 간신의 참소로 호남성의 상수(湘水)로 추방당했다. 그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10년간 방랑 생활을 하였는데, 진(秦)나라에 의해 조국인 초나라가 멸망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해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별세하였다. 이소(離騷)와 구가(九歌) 춘추(春秋)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의 편명(篇名)이다. 모두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뜻을 담고 있다. 굴원(屈原)을……되었네 주희(朱熹)가 《초사(楚辭)》를 주해하여 《초사집주(楚辭集註)》를 엮은 것을 말한다. 그는 〈초사집주서(楚辭集註序)〉에서 "굴원의 사람됨은 그 뜻과 행동이 비록 중용(中庸)을 벗어나 모범을 삼을 수는 없으나 모두가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여, 그 충성을 칭송하였다. '회옹(晦翁)'은 주희의 만년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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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절의 〈수미음〉에 차운하다 11수 次康節《首尾吟》【十一首】 강절의 시에 화락한 흥취가 많고 내 시에 우려하고 탄식하는 뜻이 많은 것은 참으로 소양(所養)의 깊이와 자득(自得)의 유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절이 태평하여 아무 일도 없는 날을 만나고 내가 나라가 망하고 도가 없어진 때를 당한 것도 때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후세에 논하는 자가 혹 성정(性情)의 바른 데로 똑같이 돌아간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무인년(1938) 5월 모일에 짓다.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세상을 걱정한 때라네 詩是後滄憂世時운수가 다시 오지 않아 이제 끝이 났으니 運不復來今已矣짐승과 함께 살기 어려우니 나는 어디로 갈까 獸難同處我何之비록 해는 여전히 길이 비춰준다고 하지만 縱云白日猶長照한스럽게도 광풍이 끊임없이 불어오네 可恨狂風不盡吹한 선비가 누구와 함께 하늘에 간쟁할까 一士爭天誰與此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도를 걱정한 때라네 詩是後滄憂道時명분 이치는 분분히 언쟁으로 돌아가고 名理紛紛歸口舌선비4)들은 하나하나 기만에 익숙하네 縫章箇箇慣誣欺어찌 학계가 이렇게 어지러울 줄 짐작했으랴 豈料學界斯乖亂순박한 풍속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이 없네 無路淳風可反移오늘날 참된 선비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니 切願眞儒生此日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학문을 걱정한 때라네 詩是後滄憂學時타고난 자질은 원래 중간 이하인데도 賦質元來中下也공부할 때에 백 배 천 배를 하지 않네 用功又不百千之마음 터놓고 잡초 제거할 계책이 없고 開胸無計去茅塞욕심에 빠져 항상 물가에 임하듯 위태롭네 陷慾常危臨水湄노년에 힘써 두려워할5) 것은 이것뿐이니 乾惕餘年惟此已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분수에 편안한 때라네 詩是後滄安分時세도의 흥망은 하늘의 명에 달려있으나 世道廢興天有命심신의 치란은 스스로 기미를 보아야 하네 身心治亂自觀機구렁텅이6)가 앞에 있음을 잊지 않았거니 不忘溝壑前頭在참된 미치광이 남겨둔 걸 훗날에 알리라 留與眞狂異日知사물에 각기 부여한 걸 내 어찌 참견하랴 物各付之我何預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가소로워한 때라네 詩是後滄堪笑時염자는 계강자 곳간 늘려주는 걸 당연시 했고7) 冉子宜其增季廩소진은 망녕되이 아내가 베틀에서 내려오길 바랐네8) 蘇秦妄欲妻下機사람은 권세와 이익 좇아 혼백이 혼미해지고 人趨勢利迷魂魄귀신은 금전을 따라 지휘를 들어주네 鬼逐金錢聽指揮지금이나 예나 유유하게 이와 같으니 今古悠悠如此已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고립되었을 때라네 詩是後滄孤立時벗들의 평소 지식은 이미 그만두었고 已息交朋平日識심사를 하늘이 알아주기만 바라네 但求心事上天知《역상》9)의 두려울 것 없음을 살펴보려고 欲觀易象無攸懼먼저 《대학》의 자신 속이지 않음에 힘쓰네 先務曾經毋自欺오직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이르니 惟有淸風明月到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노쇠해졌을 때라네 詩是後滄衰老時갖가지 질병이 항상 증세를 더해가니 百般疾病恒添祟일체 영위하는 것에 기심10)을 없앴네 一切營爲幷息機이 몸을 수양하며 죽기를 기다릴 뿐이니 修得此身惟待死앞길이 공연히 기로에 임하지 않게 하리 免敎前路枉臨岐지난날을 추억하면 한바탕 꿈과 같으니 追憶經過如一夢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깊이 들어갔을 때라네 詩是後滄深入時천지가 뒤집혀 의관과 신발이 바뀌었고 天地飜傾易冠屨윤리 강상이 뒤섞여 헝클어진 삼실 같네 倫綱紛錯亂麻絲당시에 동해에서 머리털을 보존했을 뿐이니 當年東海惟存髮어느 곳 도원에서 옷을 바꾸지 않을까 何處桃源不改衣바로 지금은 당연히 이것 밖에 없으니 目下當然無此外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이치를 연구할 때라네 詩是後滄硏理時인물의 근원에는 오직 성만 있으니 人物源頭惟性在공부의 전체는 모두 마음이 한다네 工夫全體總心爲성경이 철저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고 敬誠到底方收效격치가 정밀해야 비로소 의심을 없애네 格致精來始去疑실행을 잘하고 못하냐에 달렸을 뿐이니 只在行之能否爾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분명하게 분변한 때라네 詩是後滄明辨時성은 중인, 마음은 임금이라는 건 무슨 말인가 性衆心君是何說중화인과 오랑캐 짐승은 정히 의심할 것 없네 華人夷獸定無疑거짓과 진실은 천추의 눈 가리지 못하고 假眞難掩千秋眼승패는 한 판의 바둑과 동일하지 않네 勝敗非同一局棋심문과 신사11)가 모두 이것을 위해서니 審問愼思都爲此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요체를 알아낸 때라네 詩是後滄知要時기절이 사람 놀래키는 것이 큰 것 아니고 氣節驚人非大者문장이 세상에 빛나는 것도 사소한 일이네 文章耀世亦些兒어찌 정일의 심법12)을 지니는 것만 하랴만 豈如精一持心法절로 영화가 있어 얼굴에 윤기가 돈다네13) 自有英華睟面眉이에 이르러야만 할 일을 마쳤다고 하니 到此方爲能事畢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 康節詩多和樂之趣, 余詩多憂歎之意, 是固所養淺深自得有無之異.然康節遇太平無事之日, 余當國亡道喪之際, 亦時然也.後之論者, 或可視以同歸情性之正也歟! 戊寅榴夏日.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憂世時.運不復來今已矣, 獸難同處我何之?縱云白日猶長照, 可恨狂風不盡吹.一士爭天誰與此?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憂道時.名理紛紛歸口舌, 縫章箇箇慣誣欺.豈料學界斯乖亂? 無路淳風可反移.切願眞儒生此日,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憂學時.賦質元來中下也, 用功又不百千之.開胸無計去茅塞, 陷慾常危臨水湄.乾惕餘年惟此已,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安分時.世道廢興天有命, 身心治亂自觀機.不忘溝壑前頭在, 留與眞狂異日知.物各付之我何預?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堪笑時.冉子宜其增季廩, 蘇秦妄欲妻下機.人趨勢利迷魂魄, 鬼逐金錢聽指揮.今古悠悠如此已,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孤立時.已息交朋平日識, 但求心事上天知.欲觀《易象》無攸懼, 先務曾經毋自欺.惟有淸風明月到,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衰老時.百般疾病恒添祟, 一切營爲幷息機.修得此身惟待死, 免敎前路枉臨岐.追憶經過如一夢,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深入時.天地飜傾易冠屨, 倫綱紛錯亂麻絲.當年東海惟存髮, 何處桃源不改衣?目下當然無此外,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硏理時.人物源頭惟性在, 工夫全體總心爲.敬誠到底方收效, 格致精來始去疑.只在行之能否爾,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明辨時.性衆心君是何說? 華人夷獸定無疑.假眞難掩千秋眼, 勝敗非同一局棋.審問愼思都爲此,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知要時.氣節驚人非大者, 文章耀世亦些兒.豈如精一持心法? 自有英華睟面眉.到此方爲能事畢, 後滄非是愛吟詩. 선비 원문의 '봉장(縫章)'은 봉액(縫掖)과 장보(章甫)로서 선비의 의관(衣冠)을 말한다. 봉액은 의복의 한 종류이고 장보는 관(冠)의 한 종류이다. 공자가 어린 시절 노(魯)나라에 살 때는 봉액을 입고, 자란 뒤에 송(宋)나라에 살 때는 장보를 썼다. 《禮記 儒行》 힘써 두려워할 원문의 '건척(乾惕)'으로, 항상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조심하며 자기 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삼(九三)〉에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 저녁에도 삼가고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無咎.〕" 하였다. 구렁텅이 원문의 '구학(溝壑)'으로 산골짜기나 계곡을 말하는데, 떠돌다가 객사한 장소나 곤궁한 처지를 뜻한다. 염자(冉子)는……했고 공자의 제자 염구(冉求)가 권력자인 계강자(季康子)의 가신이 된 뒤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그의 재산을 늘려 주자, 공자가 크게 노하여 제자들에게 "그는 더 이상 우리 무리가 아니니, 자네들은 북을 울려 성토하며 그를 공격해도 좋다.〔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可也.〕"라고 말하였다. 《論語 先進》 소진(蘇秦)은……바랐네 전국 시대 소진이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꾀죄죄한 행색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베틀에서 내려와서 그를 예로써 맞아주지도 않더니, 뒤에 육국(六國)의 재상이 되어 돌아오자 아내를 비롯한 온 집안사람이 소진을 환영하였다고 한다. 《戰國策 秦策上》 역상(易象) 《주역》을 설명한 단사(彖辭)와 효사(爻辭)인데, 주 문왕(周文王)과 주공(周公)이 각각 지었다고 전한다. 기심(機心) 자기의 사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묘하게 꾀하는 마음을 말한다. 심문(審問)과 신사(愼思) 자세히 따져서 묻는 것과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인데, 《중용장구》 제20장에서 군자가 성(誠)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박학(博學)ㆍ심문ㆍ신사ㆍ명변(明辨)ㆍ독행(篤行)의 다섯 가지를 들었다. 정일(精一)의 심법(心法) 인심(人心)은 사욕에 빠지기 쉽고 도심(道心)은 밝아지기 어려우므로 정(精)으로 도심을 보존하여 기르고, 일(一)로 인심을 성찰하는 수양법이다.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제위(帝位)를 선양하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살피고 전일하게 지켜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다. 《書經 大禹謨》 얼굴에 윤기가 돈다네 군자의 내면에 축적된 것들이 넘쳐서 몸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하여, 그 드러나는 빛이 얼굴에 윤택하게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게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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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산에게 부쳐 보내고 화답을 구하다 寄鄭敬山求和 해와 달14)은 분분하게 번갈아 날고 달리는데 烏兔紛紛迭走飛걸핏하면 해를 넘기도록 서신을 보내지 못했네 音書動輒隔年違강가에서 읊조리는 나는 몰골이 어찌 수척하나 我吟江上形何槁산중에 은둔한 그대는 몸이 절로 살이 쪘네 子遯山中體自肥한번 죽고 곰 발바닥 택한 맹자15) 들어보았고 一死取熊聞孟聖오래 살다가 학으로 변한 정위16)는 가소롭네 久生化鶴笑丁威서로 닦는 걸 늘그막에도 저버린 적 없었으니 交修晩節無相負이것 이외에는 더이상 바랄 것이 아니네 此外非曾更有希 烏兔紛紛迭走飛, 音書動輒隔年違.我吟江上形何槁? 子遯山中體自肥.一死取熊聞孟聖, 久生化鶴笑丁威.交修晩節無相負, 此外非曾更有希. 해와 달 원문의 '오토(烏兔)'는 일월(日月)의 별칭이다. 신화에 해 속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있고 달 속에는 옥토끼가 있다고 하여 해와 달을 가리켜 오토라고 한다. 좌태충(左太冲)의 〈오도부(吳都賦)〉에 "하늘에 올라 해와 달 속의 까마귀와 토끼를 잡고, 날짐승과 길짐승의 소굴을 모두 뒤진다.〔籠烏兔於日月, 窮飛走之棲宿.〕"라는 구절이 있다. 《文選 第5卷》 한번……맹자(孟子) 맹자가 삶을 버리고 의리를 택하였다는 말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하였다. 오래……정위(丁威) 정위는 한(漢)나라 때 요동 사람 정 영위(丁令威)의 약칭이다. 그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백학(白鶴)으로 변화하여 고향에 돌아가서 성문(城門)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는데, 한 소년이 활을 가지고 그를 쏘려 하자, 그 학이 날아올라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 영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 성곽은 예전 같은데 사람은 그때 사람 아니어라, 어이해 신선 안 배우고 무덤만 즐비한고."라고 하였다. 《搜神後記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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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당 황공8) 정려중수기 兩蹇堂黃公旌閭重修記 아, 이곳은 고(故) 선묘조(宣廟朝 선조(宣祖)) 명신(名臣) 양건당(兩蹇堂) 황공(黃公)의 충효(忠孝)를 기리는 정려문(旌閭門)이다. 공은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럽고, 임금을 섬김에 충성을 다하여 처음에는 효건(孝蹇)으로, 뒤에는 충건(忠蹇)으로서 끝내 대방성(帶方城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되는 날에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킬 수 있었으니, 지극한 행실과 큰 절개, 곧은 충정과 위대한 공열은 천하에 강상(綱常 삼강오륜)을 부지하고, 백세토록 나약하거나 완악한 사람을 흥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 사적(事蹟)의 대략적인 내용은 야사(野史)와 국승(國乘 나라의 역사)에 분명하게 실려 있고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니, 여기에서 굳이 중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정종(正宗 정조(正祖)) 을묘년(1795)에 정려문을 세우라는 임금의 명으로 7세손 진규(鎭奎)가 여러 종친과 함께 처음 건립하였고, 97년 뒤 금상(今上 고종(高宗)) 갑오년(1894)에 추증(追贈)의 은전을 받들었으며, 이로 인하여 현판을 고쳐 써서 게시하는 것과 단청을 새롭게 칠하는 꾸밈은 9세손 간(柬)이 주관하였다. 14년 뒤 정미년(1907)에 세월이 오래되어 목재가 썩게 됨에 따라 무너지는 우환이 있을까 염려하여 다시 고쳐 건립하여 완전히 새롭게 하였으니, 10세손 경현(慶炫)과 12세손 열주(悅周)가 여러 종친들에게 제창(提唱)하여 중수한 것이다.아,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해져 온 천하가 닫히고 막혔으니, 공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혼백도 이 일을 살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날의 중건이 애당초 세상의 교화를 돕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嗚乎。此故宣廟朝名臣兩蹇堂黃公忠孝褒旌之閭也.公事親至孝。事君盡忠。始以孝蹇。後以忠蹇。卒能殞身立。慬於帶方城陷之日。至行大節。貞忠偉烈。足以扶綱常於天下。起懦頑於百世。若其事蹟梗槩。野史國乘。昭載備錄。此不必架疊焉。至正宗乙卯。棹楔成。命七世孫鎭奎與諸宗創始之。後九十七年。今上甲午。承贈貤之典。因以改題揭板及新丹雘之飾。蓋九世孫柬尸之也。後十四年丁未。以歲久材朽。慮有頽圮之患。將改建而一新之。蓋十世孫慶炫十二世孫悅周。倡諸宗而經營之也。嗚乎。世衰道微。九野閉塞。未知公之忠魂義魄。其亦有以鑑此耶。今日之重建。未始非裨補世敎之一助云爾。 양건당 황공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의병으로 활동했던 황대중(黃大中, 1551~1597)으로, 양건당(兩蹇堂)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정숙(正叔)이며, 전라남도 강진(康津) 출신이다. 어머니가 병환 중일 때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 약재로 사용하면서 한쪽 다리를 절게 되어 효건(孝蹇)이라는 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장사(壯士)로 뽑혀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겨우 빠져나온 그는 이순신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 해상 전투 중 총탄을 맞아 나머지 한쪽 다리마저 절게 되자 이순신으로부터 "효건(孝蹇)이 이제 충건(忠蹇)이다."라는 찬탄을 받으며 효건과 충건, 즉 양건당으로 불려졌다. 정유재란 때 병사(兵使) 이복남(李福男)과 더불어 남원성을 사수하다가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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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모선록》 서문 曺氏慕先錄序 스스로 생각건대, 서계(書契)147) 이후로 예전의 말과 지나간 행적들을 모두 갖추어 기록하지 않음이 없게 되면서 서적을 겹겹이 쌓아 놓으며 그 많음을 싫어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읊고 외우면서 그 익숙함을 싫어하지 않았으니, 대체로 현인을 사모하는 마음은 타고난 본성에서 나와 그치지 않음이 이와 같다.아, 옛날의 현인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러하였는데, 하물며 선조(先祖)에게 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칭송하며 기술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공류(公劉)의 풍화(風化)에 대한 기술148)이 자기의 집에서 나오고, 공백(龔伯)의 술동이나 대접에 새겨진 명(銘)149)이 다른 사람에게는 있지 않다면 작게는 보존하여 한 집안의 계책과 교훈으로 삼고, 크게는 전하여 한 시대의 모범과 법식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효자와 어진 사람의 마음이다.나의 벗 조군 석준(曺君錫俊)이 선대의 사실을 기록한 책 한 권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서문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조씨(曺氏)는 충의(忠義)의 큰 절개와 효우(孝友)의 지극한 행실로 혹 나라에서 빛나기도 하고, 혹 고을에서 드러나기도 한 것이 전후로 수백 년이 되었지만, 유고(遺稿)가 흩어져 없어지고, 남아있는 것이 얼마 없어 자손들이 세월이 오래 지날수록 더욱 사라지게 될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유실된 것들을 수습하여 세고(世稿)를 편집해 만들고서 길이 전할 계책으로 삼았다.아, 자손들이 이 책을 읽으면 근본을 사모하고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과 선조의 뜻을 계승하고 사업을 이어 나갈 생각이 어찌 성대하게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로 인하여 더욱 힘써서 자신을 맑게 하여 안으로는 가족을 보호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하며, 밖으로는 세상을 일깨우고 세속에 모범이 된다면, 이 책이 어찌 한 가문의 건연(巾衍 서적을 넣어두는 상자) 속에서 전해지는 것에 그칠 뿐이겠는가. 自惟書契以來。凡前言往行。無不備錄。連編累牘而不厭其多。朝吟暮誦而不厭其熟。蓋慕賢之心。出於秉彛而有不可已者如此。嗚呼。在先賢猶然。況在先祖而有可以爲法焉。則所欲稱述者。其心爲何如哉。公劉風化之述。出於其家。龔伯尊敦之銘。不在他人。小則存以爲一家之謨訓。大則傳以爲一世之矜式。此孝子仁人之心也。余友曺君錫俊。持其先世事實一冊。請余弁之。竊惟曺氏以忠義大節。孝友至行。或光于王國。或著于鄕里者。前後數百年矣。遺稿散逸。存者無幾。子孫懼其愈久而愈泯。收拾遺漏。編成世稿。以爲不朽計。嗚呼。爲子孫而讀此書。其懷本追遠之情。繼志述事之意。豈不油然而生乎。因此加勉以淑其身。內而保族宜家。外而牖世範俗。則此書豈止爲一門巾衍之傳而已哉。 서계(書契) 상고 시대에 나무에 새겨 썼다는 최초의 문자를 말하는 것으로, 문자를 비유하는 말이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에는 노끈을 묶어 뜻을 전하여 다스렸는데, 후세에 성인이 서계로 바꾸었다.[上古結繩而治, 後世聖人易之以書契.]"라는 글이 보인다. 공류(公劉)의……기술 공류는 후직(后稷)의 증손으로, 하(夏) 나라의 박해를 피해 빈(豳)으로 이주한 뒤에 후직의 유업을 닦아 농사에 힘쓰며 백성을 교화함으로써 훗날 주(周)나라가 일어날 발판을 마련하였는데, 주나라가 창업된 뒤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할 때에 공류의 풍화(風化)를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 편에 기록하여 조카 성왕(成王)을 경계하였다. 여기에서는 세속의 교화에 공헌한 선조의 기록을 비유하는 말인 듯하다. 공백(龔伯)의……명(銘) 원문의 "공백준대지명(龔伯尊敦之銘)"을 국역한 것으로, 선조가 사용하던 그릇이나 물건에 새겨 놓은 글을 비유하는 말인 듯하다. 참고로 원문의 "공백준대(龔伯尊敦)"는 《시경》 〈대아(大雅) 강한(江漢)〉의 주에 "옛 기물에 이르기를. '?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감히 아름다운 천자의 명을 대양(對揚)하여 짐의 황고(皇考)인 공백(龔伯)의 술동이와 대접을 받드노니, ?은 미수(眉壽)를 누려 만수무강하게 하소서' 하였다.[古器物銘云 : '?拜稽首, 敢對揚天子休命, 用作朕皇考龔伯尊敦, ?其眉壽, 萬年無疆.']"라는 글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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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정기 詠歸亭記 지난 정해년(1887) 가을에 나는 여러 벗들의 뒤를 따라 서석산(瑞石山 무등산)에서 바람을 쐬고 영강(映江)에서 목욕하고서 읊조리며 부춘(富春)의 들녘으로 돌아왔다.1) 이로 인하여 규약을 만들어서 봄가을에 모여 강습하는 일을 행하였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고, 의례가 번다했기 때문에 큰 마을에 소속시켜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고, 한가로운 들녘을 택해 베풀어 행하였는데, 이를 설행한 지 조금 오래되면서 모이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되자, 촌마을의 재력으로는 계속 이어가기 어렵고, 들녘의 장소는 대부분 햇볕에 노출되어 이를 병통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신묘년(1891) 9월 용리(龍里)의 모임에서 집을 짓자는 의론이 제기되어 임진년(1892) 봄에 칠송(七松) 마을에 터를 잡고 가을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겨울 12월에 낙성하였는데, 방과 대청, 문, 행랑 등이 반듯하고 치밀한데다 크고 넓어서 거처할 만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빈한한 선비들의 쇠잔한 힘으로 고생스럽게 부지런히 힘써 모아서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성취를 보게 된 것인데, 그 뜻이 장차 무엇을 위해서인가? 고요한 곳을 찾아 한가로움을 즐기기 위한 계책을 위해서인가?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시며 노는 것을 돕기 위해서인가? 글을 지어 벼슬을 구하는 장소로 삼기 위해서인가?아,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 된 도리를 구할진댄 학문이 아니면 불가하고, 학문을 하는 방도를 구할진댄 사우(師友)들이 아니면 불가하니, 사우들을 가까이하고 학문을 말미암는 것도 또한 그 장소가 없으면 안 된다. 상ㆍ서ㆍ학ㆍ교(庠序學敎)2)가 본래 인륜을 밝히고 교육을 확립시키는 곳이었지만, 삼대(三代)3) 이후로 인도하고 통솔하는 것이 예스럽지 못하였고, 또 저자와 성곽 안에서는 분주하게 다투거나 열기로 떠들썩한 뜻이 많았고, 고요하고 한가로운 정취가 적었으니, 이것이 서원(書院)이 창설된 이유이다. 그러나 서원의 규례가 또 옛날과 같지 않게 되었으니, 오늘날의 선비들이 서로 교제하며 학업을 닦는 곳으로 이곳보다 훌륭한 곳이 아마도 없을 듯하다.이 정자에서 노니는 자들은 《소학》으로 기본을 세우고 《대학》으로 규모를 정하여, 집에 들어가서는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에게 공경하며, 나가서는 스승을 높이고 벗들을 가까이하며, 충신(忠信)으로 마음을 세우고 단정함과 장중함으로 몸을 지키며, 강습과 토론으로 이를 밝히고 바로잡음과 경계로 이를 독려하며, 배움을 싫어하지 않고 지킴을 고치지 않아서 날로 원대한 것을 궁구한다면 아래로는 가정의 법을 세우고 마을의 풍속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위로는 세도(世道)를 힘쓰게 사람들을 격려하고 나라의 영광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대 학교의 유제(遺制)이고, 또한 오늘날 이 건물을 짓기 시작했던 뜻이다. 往在丁亥秋。余從諸友後。風乎瑞石。浴乎映江。詠而歸於富春之野。因以創設規約。爲春秋講聚之擧。始以人衆儀繁。屬鉅村輪會。擇閒野設行。行之稍久。會者愈夥。村力難繼。野處多暴。人莫不病之。辛卯九月龍里之會經室之議起。壬辰春卜地于七松之里。秋設役。越明年冬十二月落之。其房室廳堂。牑戶序廂。端密宏敝。可以爰居爰處。然是擧也。以冷士殘力。辛勤拮据。積歲積年。乃始見就者。其意將欲何爲耶。爲尋寂耽閒之計耶。爲燕飮玩戱之資耶。爲作文干進之所耶。嗚乎。士生斯世。欲求爲人之道非學問不可。學問之道。非師友不可。所以親師友而道問學者。亦不可以無其所。庠序學校。固明倫立敎之地。而三代以降。導率不古。且在朝市城郭之中。多奔競熱閙之意。少寂寞寬閒之趣。此書院所由起也。然書院之規。又不如古。則今日之士所從遊業。恐無以多乎此矣。遊此室者。以小學立基本。以大學定規模。入則愛親敬兄。出則隆師親友。立心以忠信。持身以端莊。講討以明之。規警以督之。不厭不改。日究遠大。則下可以立家範正鄕俗。上可以勵世道補國光。此是三代學校之遺制。而亦今日經始之意云爾。 지난……돌아왔다 《논어》 〈선진(先進)〉에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자신의 포부를 말하라는 물음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동자 예닐곱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대답하자, 공자 이를 허여했던 고사를 인용하여 산천 유람을 표현하였다. 상ㆍ서ㆍ학ㆍ교(庠序學敎) 중국 고대의 교육기관으로, 《맹자》 〈등문공 상〉에서 "'상'은 봉양한다는 뜻이요, '교'는 가르친다는 뜻이요, '서'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뜻이다. 하나라는 '교', 은나라는 '서', 주나라는 '상'이라고 불렀으며 '학'은 삼대가 이름을 함께하였다.[庠者, 養也; 校者, 敎也; 序者, 射也.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 學則三代共之.]"라고 하였다. 삼대(三代) 중국 고대 성인이 세운 하(夏)ㆍ은(殷)ㆍ주(周) 세 왕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요순 시대와 함께 '훌륭한 다스림이 행해졌던 시대'라는 의미로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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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휴당 선생 최공4) 정려중수기 日休堂先生崔公旌閭重修記 옛적 임진왜란의 변고에 절개와 의리를 지키다 죽은 이가 앞뒤로 서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우뚝하고 꿋꿋했던 기상이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태양처럼 천하에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백세(百世)에 회자(膾炙)되는 분으로는 삼장사(三壯士)5)처럼 더욱 성대한 이가 없었으니, 일휴당(日休堂) 최공(崔公 최경회(崔慶會))가 바로 삼장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후대 사람들이 공을 위해 능주(綾州)에는 정려문(旌閭門)을 세웠고, 진주(晉州)에서는 제사를 지냈으니, 대개 능주는 공이 살았던 고향이고, 진주는 순절한 지역으로, 잊지 않고 추모하는 마음을 부치는 데에 차이가 있지 않았다.임진년 가을에 진주의 선비들이 사우(祠宇)를 중수할 것을 도모하여 사문(斯文) 성복윤(成福閏)과 전주일(全柱一), 하용진(河龍辰)에게 부탁하여 호남으로 가서 의론을 수렴하게 하였는데, 이 일로 인하여 능주를 지나가다 정려문이 무너지고 피폐해진 모습을 보고 개탄하며 말하기를, "이번 발걸음은 본래 사우를 위해 계획한 것이지만, 지금 정려문이 이와 같으니, 어찌 사우만 중수하고 정려문은 중수하지 않겠는가."하고서 마침내 가던 길을 멈추고서 전대를 열어 목재를 모으고 장인을 모집하더니 며칠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새롭게 하였다.아, 선생이 삼강오륜을 일으켜 세우고 명교(名敎)6)를 창도(唱導)하여 권면한 것은 그 공이 천지와 더불어 존망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니, 한 지역의 정려문만으로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물을 일으켜 마음을 부치는 데에 그 장소가 없을 수 없으니, 오늘날의 역사(役事)를 어찌 그만둘 수 있었겠는가. 후대 사람들이 진실로 사문(斯文)7)의 동지(同志)들과 함께 이어서 이를 수리하여 그 때를 놓치지 않는다면 이 정려문도 선생과 함께 영원히 전해질 것이니, 삼가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 昔在龍蛇之變。伏節死義。前後相望。而其磊磊落落。如靑天白日。輝映於天下。膾炙於百世。未有如三壯士之爲尤盛也。日休堂崔公卽三壯士之一。後人爲之棹楔於綾。俎豆於晉。蓋綾是杖屨之鄕。而晉是殉節之地也。所以寓追慕不忘之心者。靡有間焉。壬辰秋。晉之士謀修祠宇。屬斯文成福閠全柱一河龍辰來湖南收議。因過綾。見旌閭頹敝。慨然曰。此行本爲祠宇計。而今旌閭如此。豈重修祠宇而不修旌閭乎。遂停鞭開橐。聚材募工。不幾日而一新之。嗚乎。先生所以扶植綱常。倡勵名敎者。其功可以與天壤俱敝。非一區棹楔能輕重。然興物寓情。不可無所。則今日之役。亦豈可已者耶。後之人。苟與斯文同志。繼以修之。無失其時。則此屋亦將與先生不朽。竊有望焉。 일휴당 선생 최공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최경회(崔慶會, 1532~1593)로, 일휴당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선우(善遇)이며, 전라남도 능주(綾州) 출신이다. 양응정(梁應鼎)ㆍ기대승(奇大升)에게 수학하였으며, 선조 즉위년인 1567년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중(喪中)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晉州城) 전투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패전하여 남강(南江)에 투신하였다.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와 능주의 포충사(褒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삼장사(三壯士)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이 함락될 때 최경회와 함께 투신 자결했던 김천일(金千鎰, 1537~1593)과 고종후(高從厚, 1554~1593) 세 사람을 가리킨다. 명교(名敎) 인륜의 명분을 밝히는 가르침을 말하는 것으로, 유교(儒敎)를 달리 일컫는 말이다. 사문(斯文) 유학(儒學)을 가리키는 말이다.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문왕(文王)이 이미 별세하였으니, 문(文)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장차 '사문'을 없애려 하였다면 내가 사문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집주(集註)에 "문은 도(道)가 표면에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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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를 읽다가 '거문고와 책을 스스로 즐기다'305)는 말에 감회가 있어 讀《歸去來辭》, 感琴書自娛之語 멀리 심양306)에 살던 처사의 마음을 생각해보니 緬想潯陽處士心거문고와 책만 안고 운림307)에서 즐거워했다오 琴書獨抱樂雲林책 속의 진미를 탐닉함만 추구할 뿐이었고 只求卷裡耽眞味인세의 묘음에 맞추는 걸 원치 않았다네 不願人間和妙音장단의 곡조는 물고기가 나와 들었을 터이고308) 長短曲應聽水族글 읽는 소리는 산새 울음과 뒤섞였을 것일세 咿唔聲或雜山禽스스로 즐긴 그 깊은 뜻을 그 누가 알리오 自娛深意誰能識부질없이 거문고와 책을 가지고 찾아보노라 謾向絃篇上面尋 緬想潯陽處士心, 琴書獨抱樂雲林.只求卷裡耽眞味, 不願人間和妙音.長短曲應聽水族, 咿唔聲或雜山禽.自娛深意誰能識? 謾向絃篇上面尋. 거문고와……즐기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친척들과의 정담을 즐거워하고,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면서 시름을 달랜다.[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라고 한 데서 보인다. 《古文眞寶 後集 卷1》 심양(潯陽) 도연명의 고향으로, 그는 팽택 영(彭澤令)의 벼슬을 버리고 심양의 율리(栗里)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운림(雲林) 구름 낀 숲이라는 뜻으로, 은거하는 장소를 비유한다. 당나라 왕유(王維)의 시 〈도원행(桃源行)〉에 "당시에 산 속 깊이 들어간 것만 기억하노니, 맑은 시내 건너 몇 차례나 운림 속을 찾아갔나.[當時只記入山深, 靑溪幾度到雲林.]"라고 하였다. 장단(長短)의…… 터이고 도연명이 거문고를 연주하면 물고기가 물속에서 나와 들었을 것이라는 뜻으로,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호파가 거문고를 연주하자 물속 물고기가 나와서 들었고,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하자 여섯 마리 말이 고개를 치켜들고 들었다.[瓠巴鼓瑟而流魚出聽, 伯牙鼓琴而六馬仰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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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으로 읊다 卽事 병든 몸이 경물을 보자 감회가 앞서는데 病夫覽物感懷先대화성이 서쪽으로 흐르니298) 또 일년이 지났네 大火西流又一年늙은 나무엔 가을 매미 울어대니 어찌 그리 쓸쓸한가 老樹殘蟬何蕭索푸른 갈대엔 흰 이슬 맺혀 있으니 더욱 처량하여라 蒼葭白露轉凄然영허299)가 윤달을 만드니 명협300)은 푸른빛이 더해지고 盈虛作閏蓂添碧보름에 밤을 맞이하니 밝은 달은 참으로 둥글도다 三五當宵月正圓맑은 창가에 고요히 앉으매 속된 일이 없으니 靜坐淸窓無俗事문득 입으로 화식을 먹지 못함을 의심하노라301) 却疑口不食人煙 病夫覽物感懷先, 大火西流又一年.老樹殘蟬何蕭索? 蒼葭白露轉凄然.盈虛作閏蓂添碧, 三五當宵月正圓.靜坐淸窓無俗事, 却疑口不食人煙. 대화성이 서쪽으로 흐르니 음력 7월이 되었음을 말한다.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7월에 대화성이 서쪽으로 흐르거든, 9월에는 옷을 만들어 준다.[七月流火, 九月授衣.]"라고 하였다. 영허(盈虛) 기영(氣盈)과 삭허(朔虛)를 이르는 말로,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의 '기삼백(朞三百)'에 대한 주석에서 "해가 하늘과 만날 적에는 5일과 940분의 235일이 더 많은데 이것을 기영이라 하고, 달이 해와 만날 적에는 5일과 940분의 592일이 적은데 이것을 삭허라 한다. 기영과 삭허를 합쳐서 윤달이 생긴다."라고 하였다. 명협(蓂莢) 요(堯) 임금 때 섬돌 사이에 났던 상서로운 풀로, 매월 1일부터 15일까지 하루에 한 잎씩 나다가 16일부터는 하루에 한 잎씩 떨어져 그믐이 되면 다 졌으며, 작은달에는 마지막 한 잎이 시들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인하여 달력을 만들었다고 한다. 문득……의심하노라 자신이 화식(火食)을 하지 않는 신선인가 의심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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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십삼일 밤 달을 읊다 詠新春十三夜月 강 하늘 아득하여 바라봐도 끝없고 江天渺渺望無窮밝은 달은 높다랗게 하늘에 떳구나 皓月迢迢上碧空얼음으로 둥근 바퀴 만들었나 어찌 저리 맑은가 氷作圓輪何潔淨옥으로 전체를 이루었나 정말 영롱하구나 玉成全體正玲瓏달빛이 서재 촛불에 더해지니 서생은 깨이고 光添芸燭醒書客달그림자 매화 가지에 들어오니 화공이 고뇌하네 影入梅梢惱畵工십오일 밤에 풍년을 점치기엔 아직 이르니 尙早占豊三五夜시골 노인은 등한하여 함께 하지 않는다네 等閒野老不曾同 江天渺渺望無窮, 皓月迢迢上碧空.氷作圓輪何潔淨, 王成全體正玲瓏.光添芸燭醒書客, 影入梅梢惱畵工.尙早占豊三五夜, 等閒野老不曾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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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하에게 주다 贈趙澈夏 객을 맞아 서재에서 기쁘게 주렴 걷으니 迎客書樓喜捲簾푸른 강의 흰 돌들이 길에 촘촘하구나 滄江白石路纖纖정성스레 찾아온 그대의 뜻 알겠으니 慇懃相問知君意얼음 추위를 열흘이나 가하지 말게나226) 莫把氷寒十日添 迎客書樓喜捲簾, 滄江白石路纖纖.慇懃相問知君意, 莫把氷寒十日添. 얼음 …… 말게나 학문을 꾸준히 하라는 뜻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비록 천하에 쉽게 자라는 물건이 있더라도 하루 동안 햇볕을 쬐어 주고 열흘 동안 춥게 한다면 제대로 자랄 수 있는 것이 없다.[雖有天下易生之物也, 一日暴之, 十日寒之, 未有能生者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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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378)에게 주어 면려하다 贈勉觀兒 너를 가르친 지 여러 해 되어 기대가 큰데 敎汝多年期待深외부의 사사로움이 침범할까 항상 두렵구나 外私常恐或來侵가까이 네 아비를 스승 삼기에 부족하더라도 近師乃父雖無足위로 가문의 명성 이으면 마음 세울 수 있으리 上述家聲可立心세상에 자랑하는 조충379)의 기예 부끄러워하고 衒世堪羞雕蟲技사람을 놀래키는 노룡380)의 울음소리 내야하리 驚人應作老龍吟그 원천은 바로 성실과 근면에 있나니 源頭正在誠勤上콸콸 터지는 강하를 누가 또 막겠느냐 沛決江河孰復禁 敎汝多年期待深, 外私常恐或來侵.近師乃父雖無足, 上述家聲可立心.衒世堪羞雕蟲技, 驚人應作老龍吟.源頭正在誠勤上, 沛決江河孰復禁. 관아 김택술의 삼남인 형관(炯觀)을 말한다. 자는 극부(克孚), 호는 건암(健菴)ㆍ기산(麒山)이며, 기린정사(麒麟精舍)를 세우고 남고(南皐)서원ㆍ동죽(東竹)서원ㆍ고부문묘(古阜文廟)의 장의(掌議)를 하였다. 조충(雕蟲) 조충전각(雕蟲篆刻)의 준말이다. 벌레 모양이나 전서(篆書)를 새기는 것처럼,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문장을 꾸미기나 하는 작은 재주라는 뜻이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오자(吾子)〉에 "부라는 것은 동자 시절에나 했던 조충전각과 같은 일로서, 장부가 되어서는 하지 않았다.[賦者, 童子雕蟲篆刻, 壯夫不爲也.]"라는 말이 나온다. 노룡(老龍) 문단의 대가를 비유한 말이다. 송대(宋代) 용도각(龍圖閣)의 대제(待制)를 소룡(小龍), 직학사(直學士)를 대룡(大龍), 학사(學士)를 노룡(老龍)이라 했던 데에서 온 말이다. 《泊宅編 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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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다시 짓다 是夜更賦 보리술 두 병에다 과자 안주를 놓고서 麥酒雙甁菓子肴달빛 난간에 둘러 앉아 모두 깊이 사귀네 月欄團坐總深交이슬이 젖어 풀 벌레 소리가 새로 더하고 露滋草蛩新添響밤이 깊어 숲 새들은 이미 둥지에 깃들었네 夜久林禽已定巢옛 학문은 도리어 젊은이에게 의지해야하니 舊學還宜資少輩처음 마음은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하네 初心莫使負終梢시를 줌은 성병495)이나 다투려는 게 아니니 贈詩不是爭聲病한수를 도교에게 묻는 게 무슨 상관이랴496) 寒瘦何關問島郊 麥酒雙甁菓子肴, 月欄團坐總深交.露滋草蛩新添響, 夜久林禽己定巢.舊學還宜資少輩, 初心莫使負終梢.贈詩不是爭聲病, 寒瘦何關問島郊. 성병(聲病) 시부(詩賦)를 지을 때 평자(平字)와 측자(仄字)를 규칙에 따라 골라 써서 성조(聲調)를 맞추는 병폐인데, 여기서는 시 짓는 솜씨의 의미로 쓰였다. 한수를 …… 상관이랴 시의 형식적인 면을 따지지 말고 내용을 잘 살피라는 뜻이다. 원문의 '한수(寒瘦)'는 시풍이 청한하고 파리함을 말한 것이고, '도교(島郊)'는 가도(賈島)와 맹교(孟郊)를 가리킨다. 소식(蘇軾)이 일찍이 당인(唐人)의 시풍(詩風)에 대하여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평론하기를 "원진의 시는 경박하고, 백거이의 시는 비속하며, 맹교의 시는 청한하고, 가도의 시는 파리하다.[元輕白俗, 郊寒島瘦.]"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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