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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봉여【동익】에게 답함 答奇鳳汝【東翼】 형의 편지는 뜻밖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다른 곳에 우거(寓居)하여 편지를 조금 늦게 받았고 이어서 먼 길을 가야 하는 일이 있어 지금까지 답장을 올리는 것이 늦어졌으니 부끄러움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무더운 여름이 깊어 가는데 안부가 편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형을 향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합니다. 아우가 오랜 세월 어려움을 겪은 것을 뒤미쳐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문을 걸어 닫고 칩거하자니 이따금 무익하기만 한 끝없이 이는 회포를 가누지 못할 뿐입니다. 아, "물고기 삶는 가마솥에 물을 부으려네."111) "집 없는 장초(萇楚) 처지를 즐긴다."112)는 구절을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읊조리려니 아득한 옛날이 멀다는 것을 모르겠습니다. 회포가 산처럼 쌓여 바람에 임하여 서글퍼하면서 그저 옛사람이 말한 "언제나 한 동이 술을 놓고 다시 더불어 글을 자세히 논할까."113)라는 구절을 읊어 형에게 답장을 보냅니다. 兄書可謂出於意外。而亦不可謂不出於意中也。但身寓他所。奉書差晩。繼而有春糧之行。一紙謝復。尙爾稽緩。愧可道耶。未審夏令屆深。體度崇適。馳溯不任。弟經艱閱劫不必追提。而杜門頹蟄。時不勝悠悠無益之懷耳。嗚乎漑釜鬵之烹魚。樂萇楚之無家。沈吟反復。不知千古之爲遠也。積懷如山。臨風悵然。只誦古人所謂何時一樽酒。重與細論文之句。而煩爲兄謝焉。 물고기……부으려네 《시경(詩經)》 〈회풍(檜風) 비풍(匪風)〉에 "그 누가 물고기를 쪄 먹을 건가. 가마솥에 물을 부으려네."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망해 가는 주(周) 나라를 일으키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를 돕겠다는 말이다. 집……즐긴다 《시경》 〈습유장초(隰有萇楚)〉에 "진펄에 보리수나무가 있으니, 야들야들한 그 가지로다. 어리고 곱고 반들거리니 너의 집 없음을 즐거워하노라."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흉년과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이 차라리 장초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집도 없는 것이 부럽다는 뜻이다. 언제나………논할까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 "내가 있는 위수(渭水) 북쪽엔 봄날의 나무, 그대 있는 장강(長江) 동쪽엔 저녁의 구름. 어느 때나 한 동이 술로 서로 만나서, 다시 한번 글을 함께 자세히 논해 볼까.【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시구에 보인다. 《杜少陵詩集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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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彩相八高祖眞祖興台之祖 重華 眞祖之外祖 全州崔仁弼祖母密陽朴氏之祖 壽程 祖母之外祖 全州李震芳外祖考咸陽趙渭彬之祖 鳳信 外祖考之外祖 全州李益華外祖母密陽朴氏之祖 承宗 外祖母之外祖 全州柳萬發金炳憲八高祖眞祖俊起之祖 義敏 眞祖之外祖 密陽朴枝發祖母咸陽趙氏之祖 守喆 祖母之外祖 密陽朴▣▣外祖考海州崔德東之祖 萬己 外祖考之外祖 仁同張洪鎭外祖母光山金氏之祖 春成 外祖母之外祖 金海金尙文金洛震八高祖眞祖彩相之祖 興台 眞祖之外祖 咸陽趙渭彬祖母海州崔氏之祖 成鶴 祖母之外祖 光山金善才外祖考古阜李源達之祖 善白 外祖考之外祖 淸州韓基旭外祖母耽津安氏之祖 彦孝 外祖母之外祖 南陽洪應河金冕述八高祖眞祖炳憲之祖 俊起 眞祖之外祖 海州崔德東祖母古阜李氏之祖 之榮 祖母之外祖 耽津安利濟外祖考全州崔順弼之祖 孟述 外祖考之外祖 密陽朴元根外祖母江陵劉氏之祖 昌漢 外祖母之外祖 全州李鎭基金鏡述八高祖眞祖炳憲之祖 俊起 眞祖之外祖 海州崔德東祖母古阜李氏之祖 之榮 祖母之外祖 耽津安利濟外祖考金堤趙熳斗之祖 命德 外祖考之外祖 朔寧崔性奎外祖母金海金氏之祖載權 外祖母之外祖 海州吳貴載金 述八高祖眞祖炳憲之祖 俊起 眞祖之外祖 海州崔德東祖母古阜李氏之祖 之榮 祖母之外祖 耽津安利濟外祖考金海金自孝之祖 顯輔 外祖考之外祖 全州李花燁外祖母密陽朴氏之祖 昌祚 外祖母之外祖 達城徐振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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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2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무인생으로, 안장일은 9월 초7일이다. 상주가 4명이지만 갑인(甲寅), 정사(丁巳), 경신(庚申), 을축(乙丑) 등 생년간지만 적혀 있어 망자와의 관계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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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肆拾玖年甲辰十月十四日金俊起前明文右明文事段貧寒所致以祖上傳來陳荒䖏西十作簡字所耕西过南北長三十尺東西光三十五尺應用山次右人前捧価錢陸兩爲遣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若有子孫族屬中雜談之獘是去㝳持此文記告官卞正事旧陳田主金斗應骨里[着名]證 洪夏讃[着名]茟執 朴仁鳳[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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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쓰다 偶題 십 년 동안 산당에서 글로써 모였는데 十載山堂會以文지기가 무리 중 뛰어난 이 보기 드무네 罕看志氣迥超群주희와 장식은 홀로 호굉과 이동을 빛냈으나444) 朱張獨自光胡李후파와 이한은 외려 퇴지와 자운에게 보답했네445) 芭漢猶能報退雲품성은 예나 이제나 종류가 다르지 않은데 稟性不殊今古種스승으로서 되레 나와 남을 기를 줄 몰랐네 爲師還昧己人耘모두 위에 있으면서 정치 교화가 없어서이니 總緣在上無治敎언제쯤 순후한 풍속에 온 세상이 훈훈해질까 何日醇風一世醺 十載山堂會以文, 罕看志氣逈超群.朱、張獨自光胡、李, 芭、漢猶能報退、雲.稟性不殊今古種, 爲師還昧已人耘.總緣在上無治敎, 何日醇風一世醺? 주희(朱熹)와……빛냈으나 주희의 스승은 이동(李侗)이고, 장식(張栻)의 스승은 호굉(胡宏)이다. 후파(侯芭)와……보답했네 후파의 스승은 양웅(揚雄)인데 스승의 삼년상을 치렀고, 이한(李漢)은 한퇴지(韓退之)의 제자이자 사위로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의 서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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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348) 流頭 좋은 절기 유두에 백성들 삶 즐기니 流頭佳節樂民生아직 신라의 옛 풍속을 볼 수 있네 尙見新羅舊俗情선명하고 깨끗한 의상에 강물 푸르고 鮮潔衣裳江水綠인연 머문 잔치 자리에 달빛 밝구나 留緣樽俎月輝明이 날 시절 차례는 천년토록 같은데 千年此日同時序삼한의 성시는 몇 번이나 바뀌었나 幾度三韓易市城풍물을 보며 서생은 느낀 바 무엇인가 覽物書生何所感삼복더위349) 뜨거워도 살쩍엔 서리 내렸네 庚炎雖熱鬢霜橫 流頭佳節樂民生, 尙見新羅舊俗情.鮮潔衣裳江水綠, 留緣樽俎月輝明.千年此日同時序, 幾度三韓易市城.覽物書生何所感, 庚炎雖熱鬢霜橫. 유두(流頭) 음력 6월 15일이다.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명절로, 이날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맑은 시냇가나 폭포로 가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 뒤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더위를 물리친다고 한다. 삼복더위 원문은 '경염(庚炎)'은 불꽃 같은 삼복(三伏) 더위를 이른다. 삼복 중 초복과 중복은 각각 하지(夏至) 후 세 번째와 네 번째 경일(庚日)이고 말복은 입추(立秋) 후 첫 번째 경일이기 때문에 복날을 일컬을 때 '庚' 자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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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를 보고 觀大水 연이어 사흘을 비가 내리니 連天三日雨어찌 이리도 많은 비가 오나 洪水一何多홀연 보니 푸른 바다 이루어 忽見成滄海문득 큰 강물 터졌나 놀라네 飜驚決大河온통 쓰러져 일년 양식 끝났고 蕩殘終歲食떠내려가 잠긴 인가가 몇인가 漂沒幾人家누가 다시 기이한 경관 다투랴 誰復爭奇觀응당 참담해 노래하지 못하리 還應慘不歌 連天三日雨, 洪水一何多.忽見成滄海, 飜驚決大河.蕩殘終歲食, 漂沒幾人家.誰復爭奇觀, 還應慘不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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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대첩비179)를 읽고 갑술년(1943) 讀荒山大捷碑【甲戌】 그대는 황산대첩비를 보지 못했는가 君不見荒山大捷碑귀부와 이수180)는 열 자 높이나 되네 龜趺螭首高十尺옛날 고려의 정사가 쇠퇴해졌을 때 在昔麗氏政衰日섬 오랑캐 빈틈을 타고 쳐들어와 창궐했네 島夷乘虛來猖獗함양을 불태우고 인월역에 주둔하여 火咸陽屯引月驛181)말을 먹이고 북상하니 형세 막을 수 없었네 穀馬北上勢莫遏이때 태조가 원수가 되어서 于時太祖爲元帥부절 받고 남으로 가니 군율이 엄중했네 受節南征嚴師律깃발은 구름처럼 하늘을 가리고 旗幟似雲蔽半天창칼은 눈처럼 밝은 대낮에 빛났네 劒戟如雪耀白日아지발도182)는 무엇 하는 놈인가 阿只拔都何爲者동으로 몸을 만들고 쇠로 얼굴을 만들어 銅作其身鐵作額기운을 토하니 안개 되어 천지가 깜깜하고 吐氣成霧天地黑한번 외치며 소리지르니 사람들 뒷걸음쳤네 擧聲一呼人辟易원수의 이름난 무예는 신이 주신 바라 元帥名武神所授화살 한 발로 투구 쏘니 투구가 기울어졌네 一矢射鍪鍪欹側그가 투구를 바로잡으려다 그 목구멍이 드러나니 仰整其鍪見其喉부장수가 연이어 쏘니 목구멍이 바로 끊어졌네183) 副帥連射喉卽絶그 우두머리를 죽이자 여세는 파죽지세라 旣殲厥魁餘破竹큰 파도가 일지 않고 남쪽 지방이 진정되었네 鯨波不揚靖南服높은 명망이 날로 성대해져 마침내 즉위하니 威望日盛終御極황산에서 한번 승리함이 근본이 되었네 荒山一捷爲根植내가 오백여 년 뒤에 찾아와 我來五百餘年後비석의 표면 어루만지며 세 번 탄식했네 摩挲碑面三歎息이곳 사람들은 어제 있었던 일처럼 말하고 土人如說昨日事지금도 붉은 피가 여전히 돌에 뿌려져 있네 至今赤血尙濺石당시에 위엄과 무력 참으로 이와 같았는데 當時威武固如此후대에 운수의 기세가 어찌 그리 쇠락해졌는가 後代運氣何衰索화산 무너지지 않아 꽃이 물에 떨어져 흐르고 花山不崩花水流성명이 사라지지 않아 돌벽을 빛나게 하네 姓諱不泐輝石壁신령한 행적이 어찌 길이 빛나지 않으랴 靈蹟那無長赫赫어찌 차마 산하를 남의 물건이 되게 하랴 胡忍山河他人物또한 하늘이 하는 것은 어찌할 방법 없기에 抑亦天爲莫能由하늘에 묻고 싶으나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네 我欲問天天漠漠 君不見荒山大捷碑? 龜趺螭首高十尺.在昔麗氏政衰日, 島夷乘虛來猖獗.火咸陽屯引月驛1), 穀馬北上勢莫遏.于時太祖爲元帥, 受節南征嚴師律.旗幟似雲蔽半天, 劒戟如雪耀白日.阿只拔都何爲者? 銅作其身鐵作額.吐氣成霧天地黑, 擧聲一呼人辟易.元師名武神所授, 一矢射鍪鍪欹側.仰整其鍪見其喉, 副師連射喉卽絶.旣殲厥魁餘破竹, 鯨波不揚靖南服.威望日盛終御極, 荒山一捷爲根植.我來五百餘年後, 摩挲碑面三歎息.土人如說昨日事, 至今赤血尙濺石.當時威武固如此, 後代運氣何衰索?花山不崩花水流, 姓諱不泐輝石壁.靈蹟那無長赫赫? 胡忍山河他人物?抑亦天爲莫能由, 我欲問天天漠漠.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1380년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왜장(倭將) 아기발도(阿只拔都)를 물리치고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은 전북 남원 운봉현(雲峯縣) 동쪽 16리 황산에 있었으며, 비문은 김귀영(金貴榮)이 지었다.《東園集 卷3 荒山大捷之碑》 귀부(龜趺)와 이수(螭首) 귀부는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이며, 이수는 용(龍)의 문양으로 장식한 비석의 머리 부분을 말한다. 驛 底本에는 없음. 일반적인 용례를 살펴 보충. 아지발도(阿只拔都) 14세기 당시 고려에 침입한 왜구를 지휘했던 장수이다. 화살……끊어졌네 아지발도가 얼굴까지 갑옷을 둘러서 활을 쏠 만한 틈이 없었는데, 이성계가 "내가 그의 투구의 꼭지를 쏘아 투구가 떨어지거든 네가 곧 쏘아라."라고 이지란(李之蘭)에게 말을 하였다. 이성계가 투구 꼭지를 맞혀 투구 끈이 끊어져 기울어지자 아지발도가 급히 바로 썼지만, 이성계가 다시 쏜 화살에 투구가 떨어지고 뒤이어 이지란이 쏘아 죽였다. 이지란은 여진족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였으며, 태조 이성계의 결의형제로 가장 신임받는 장수가 되어 조선의 개국에 큰 공을 세웠다. 驛 底本에는 없음. 일반적인 용례를 살펴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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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를 심다 種瓜 산밭을 개간하려 키 작은 숲을 제거하고 墾得山田剔短林봄날에 오이 심으니 마침 갰다가 흐리네 種瓜春日適晴陰정자에서 삼공의 붓을 구하지 않았으니 不求亭上三公筆길가에 늙은 장수의 마음이 우스워라 自笑道傍老將心나중에 수확할 때 좋은 열매 거두려면 後獲要看收實美지금 일은 뿌리를 깊게 북돋는 데 달려 있네 現功全在壅根深유월이라 신선의 흥취에 가장 알맞기에 最宜六月仙人趣미리 속된 마음 씻으려 한번 읊조려보네 豫滌塵衿爲一吟 墾得山田剔短林, 種瓜春日適晴陰.不求亭上三公筆, 自笑道傍老將心.後獲要看收實美, 現功全在壅根深.最宜六月仙人趣, 豫滌塵衿爲一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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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장의 자에 대한 설 朴善長字說 박생 인동(朴生仁東)이 선장(善長)을 자(字)로 삼았으니, 대체로 《주역》에서 말한 "군자는 인(仁)의 도리를 체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어른이 될 수 있다."139)라는 뜻을 취하였다. 무릇 인(仁)은 천지가 사물을 낳는 마음이고 사람이 얻어서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인은 체(體)의 크기가 천지와 합하고 용(用)의 오묘함은 만물에 두루 미친다. 그 가깝고 절실함은 밥을 먹고 숨을 쉬는 사이라도 어길 수 없고 그 중대함은 목숨으로도 바꾸지 못한다.편맹(編氓 평민)의 미천한 신분으로도 천하의 양귀(良貴)140)를 얻고 사면(四面)이 벽 뿐인 누추한 처지로도 천하의 넓은 거처141)에 처하며 필부(匹夫)의 비루한 처지로도 천하의 중임(重任)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것이 '장인(長人)'의 뜻이고 어느 지위에 있든 태연자약함이 있는 것이다. 인(仁)을 체득하는 공부에 대해서 말하자면 《소학(小學)》이 그 논밭이고 《대학(大學)》이 그 규모이고 《논어(論語)》, 《맹자(孟子)》가 그 궤적이고 《시경(詩經)》, 《서경(書經)》과 예악(禮樂)이 그 절도(節度)이다.바라건대 선장(善長)은 경적(經籍)에 힘을 기울여 학문을 쌓고 정밀한 연구와 깊은 사색으로 사람이 살면서 당연히 가야 하는 3백, 3천의 길이 환히 앞에 놓이도록 하고 또 하나하나 실천하고 함께 지키고 번갈아 양성하여 사욕이 행하지 않고 천리(天理)가 두루 흘러 퍼지게 하라. 그렇게 한다면 인을 체득하여 다른 사람의 어른이 되는[體仁長人] 《주역》의 뜻을 깨달아 천명(天命)을 저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가만히 보자니 풍골(風骨)이 준수하고 성기(聲氣)가 뛰어나 막힘이 없으니 더욱 자애(自愛)한다면 어찌 먼 곳에 도달하는 그릇이 되지 않겠는가. 분발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떨쳐 일어나 독실히 뜻을 넓게 펼치기를 기대한다. 朴生仁東表德以善長。蓋取大易所謂君子體仁。足以長人之義也。夫仁是天地生物之心。而人得以爲心者也。其體之大。合乎天地。其用之妙。周乎萬物。其親且切。不以食息而違之。其重且大。不以軀命而易之。以編氓之賤。得天下之良貴。以環堵之陋。處天下之廣居。以匹夫之卑。擔天下之重任。此其長人之義。不擇地而有自如者矣。至若體之之功。則小學其田地也。大學其規模也。論語孟子其樣轍也。詩書禮樂其節度也。願善長劬經績學。硏精覃思。使三百三千人生當行之路。曉然在前。又能一一實踐。夾持交養。以至私欲不行。天理周流。則可以得夫體仁長人之義。而有不負於命者矣。竊見風骨峻茂。聲氣英暢。若加自愛。安知不爲遠到之器也。發勵振作。篤實展拓。是所望也。 군자는……있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나오는 말이다. 양귀(良貴)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인의예지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양귀(良貴)이다."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넓은 거처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의 "천하의 넓은 거처에 머물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길로 다닌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주희의 주석에서 "넓은 거처는 인(仁)이고, 바른 자리는 예(禮)이고, 큰길은 의(義)이다.[廣居, 仁也; 正位, 禮也; 大道, 義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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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정 별동연의 벗들에게 詠歸亭別同硏諸友 조금 나아가다 지리멸렬(支離滅裂)해지고 끝내는 고루해져 머리가 하얗게 된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있으니 여전히 당(堂) 아래 문밖을 서성이는 사람일 뿐이다. 보잘것없는 내가 재숙(齋塾 글방)에 발자취를 붙였던 것이 어찌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었겠는가. 생각지 않았건만 제군(諸君)이 일부러 찾아와서 나를 따르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밤낮으로 함께 모였으니 내가 느끼는 감상(感賞)이 참으로 한량이 없었다. 그러나 제군이 나를 본받고 따랐던 이유가 무슨 일이었던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물며 지금은 한 해가 다 저물어 행장을 꾸려 떠나려 하건만 또 이렇게 한마디 말을 청함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성사(聖師 공자(孔子))의 격언(格言)이 전적(典籍)에 실려있으니 진실로 나귀를 타고서 나귀를 찾듯이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중복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기질이 치우친 곳, 공력(功力)이 다다른 곳을 가지고 보자면 한두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날 제군의 공력은 그저 어렴풋한 그림자나 메아리만 보았을 뿐 절실하게 담당한 부분이 없고 확실하게 근거한 부분이 없다. 비유하자면 참외 한 개를 구해서 이것이 먹을 만한 음식이라는 것만 알 뿐이지 여전히 쪼개고 씹어서 입안 가득한 자미(滋味)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정부(定夫), 백연(伯淵), 평중(平仲)은 말수가 적고 태도가 신중한 점은 훌륭하지만 활달한 기상이 모자란다. 자인(子仁), 경백(慶伯), 경순(景純)은 자못 영특하기는 하나 돈독함이 부족하다. 인보(仁夫), 보경(甫卿)은 순박하고 듬직하기는 하나 간혹 유유히 시간을 허비하는 데 가깝고, 경원(景元), 사앙(士仰)은 근실하고 영민하지만 또한 고집스럽고 편협한 면이 없지 않다. 형숙(亨叔), 사옥(士玉), 공실(公實)은 순직(順直)하고 진실하기는 하나 정신과 기백이 부족하다. 내원(乃源), 사온(士蘊)은 즐겁고 화평하기는 하나 자세함이나 치밀함이 없다. 사경(士敬), 양로(陽路), 자온(子蘊)은 모두 꼼꼼하고 신중함이 아낄 만하지만, 또한 경솔하고 늑장을 부리는 병통이 없다고 할 수 없다.학문이 이른 곳과 병통이 있는 곳을 알아서 바로잡고 성찰하여 허물을 줄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현철(賢哲)이 되는 것을 누가 불가능하다고 하겠는가. 지금은 제군이 처음으로 학문의 길로 나서는 때이니 만 리 앞길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물며 지금은 세상이 혼란스러워 사람에게 매우 좋지 못한 때이니 바로 학문을 연마하고 의지를 굳게 다져야 하는 시기이다. 만약 머뭇거리면서 노력하지 않아 몸가짐에 법도가 없고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면, 이것이 어찌 오늘을 서로 함께 하는 뜻이겠는가.내가 비록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제군의 스승이 되기에 모자라지만 제군의 뒤에서 장래에 어떠한 성취를 이루는지 보기를 바랄 뿐이다.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立志]이 우선이다. 그러나 경중(輕重)과 취사(取捨)의 분별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슨 뜻을 세우겠는가. 학문은 주경(主敬)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조사존망(操舍存亡)136)의 기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슨 경(敬)을 지키겠는가. 학문은 역행(力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정(邪正)과 선악(善惡)의 분별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힘써 행하겠는가. 이것이 격물(格物), 치지(致知)가 《대학》의 시조리(始條理)가 되는 까닭이다.이제 돌아가서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137)에 의거하여 오늘 하나의 이치를 궁구하고 내일 하나의 이치를 궁구하여 궁구한 것이 점점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보존되고 이치가 분명해져 모든 행동이 장차 거침이 없고 여유로울 것이다. 제군은 모두 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넉넉하다. 다만 사색(思索)에 대해서는 아직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부질없이 말이 여기에 미쳤다. 혹시 자기의 결점은 헤아리지 못하면서 하는 말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다. 走少而滅裂終於固陋。白首倀倀。猶是堂下門外人耳。區區所以寄跡於齋塾之間者。豈好爲人師之意哉。不意諸君專來相從。喫苦耐辛。昕宵聚對。其爲感賞。固無涯量。而但諸君所以傚則於我者何事。愧愧萬萬。況此歲聿載暮。治裝將行。而又有此一言之請乎。聖師格言。載在方策。固不必騎驢覓驢。爲此疊床。而但隨其人氣質之所偏。功力之所至而觀之。則亦不無一二之可言。夫諸君今日之功。只是見得箇依俙影響。而無親切擔當處。無的實依據處。比如得一箇甘瓜。但識得此爲可食之物。而尙未能劈破來咀嚼來。以識其津津滋味也。定夫伯淵平仲。多簡黙而少開爽。子仁慶伯景純。頗穎悟而欠敦篤。仁夫甫卿。朴茂而或近於悠放。景元士仰。勤敏而亦不無固滯。亨叔士玉公實。醇實而少精神氣魄。乃源士蘊。樂易而無開詳縝密。士敬陽路子蘊。皆端詳可愛。而其粗率其怠緩。亦不可謂無是病矣。苟能知其學之所至。病之所在。而矯捄之省察之。損其過而補不足。則爲賢爲哲。誰曰不可。此是諸君最初發軔之日。前程萬里。曷可量哉。況今歲寒風色。甚不宜人。正是琢磨淬礪硬着脊樑之日也。若因循不力。持身無章。是非邪正。謾無所守。則豈今日相與之意哉。吾雖無狀。不足爲諸君之師。而願從諸君之後。第觀其將來成就之何如也。學問以立志爲先。然全不識輕重取舍之分。則立箇甚志。學問以主敬爲本。然全不識操舍存亡之幾。則主箇甚敬。學問以力行爲重。然全不識邪正善惡之別。則力行箇甚。此格物致知所以爲大學之始條理也。今歸且依呂氏童蒙訓。今日格一理。明日格一理。格得漸多。自然心存理明。凡所踐履。皆將沛然有餘矣。諸君皆謹勅有餘。而但於思索一路。尙未知方。故謾及之。儻勿以不恕之言而忽之。則幸矣。 조사존망(操舍存亡)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인용된 "붙잡으면 있다가도 놓아 버리면 없어지고,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이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 송나라 여본중(呂本中)이 편찬한 책으로 정론(正論)과 격언(格言)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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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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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41년 김재상(金載相)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丑十二月 日 金載相 兼城主 辛丑十二月 日 1841 金載相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6.5*6.5(정방형) 적색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1년(헌종 7) 12월에 부안현 일도면 당북하리에 사는 김재상이 부안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 1841년(헌종 7) 12월에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당북하리(堂北下里)에 사는 김재상(金載相)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산송 소지(山訟所志)이다. 김재상은 일도면 중방리(中方里)의 서쪽 기슭에 친산(親山)이 있어서 여러 해 동안 관리해 왔다. 그런데 바로 이 달 초순에 누군가가 밤을 틈타 그 친산의 섬돌 바로 아래 쪽에 몰래 무덤을 쓰고는 소나무와 향목을 마구 베어버렸다. 김재상은 밤낮으로 투장자를 물색하였지만 그 종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그는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판다면 투장자가 제발로 나타날 것이라면서 이를 허락해달라고 관에 소지를 올려 탄원하였다. 관에서는 투총자를 수색한 뒤에 수령이 관아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소를 올리라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신축년으로만 적혀 있으나, 다행히도 김재상이 여러 차례 시장(柴場)을 사면서 받은 명문(明文)들이 전하고 있어서 이를 토대로 위의 신축년을 1841년으로 추정하였다. (1815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1831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1834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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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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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安一道面堂後里化民金洛晉右謹言切憤至寃情由段近來偸葬之習罔念法意徒恃勢力不顧山脉不顧步數不顧已掘之地專以偸奪他人之地爲主豈不憤寃乎民之先山在於本面中方里西麓而五代以下世世繼葬之地眞所謂韓氏之河陽也數百年守護無一雜塚矣不意數昨夜不知何許人乘夜偸葬於民之先山主脉已掘之地已掘之地乃二掘處也偸葬者自知理掘隱身姑避延拖圖計耳掘漑偸塚則渠必自現故瀝血仰龥於 孝理之下 洞燭敎是後自官法掘一以雪幽明之寃一以懲偸奪已掘之習使此殘民以保先隴無至呼寃之地千萬泣祝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乙酉二月 日官[署押](題辭)塚主眼捉來待向事十六日 狀[官印][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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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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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64년 김병헌(金炳憲)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甲子十一月 日 金炳憲 城主 甲子十一月 日 金炳憲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署押] 1개 7.0*7.0(정방형) 적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4년(고종 1)에 부안현 일도면 당북리에 사는 김병헌이 자신의 선산에 몰래 쓴 무덤을 즉각 파내게 해달라면서 부안현감에게 올린 소지. 1864년(고종 1)에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당북리(堂北里)에 사는 김병헌(金炳憲)이 자신의 선산에 몰래 쓴 무덤을 즉각 파내게 해달라면서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김병헌은 이 소지에서 일도면 중방리(中方里) 서쪽 기슭에 있는 자신의 선산은 고조부 때부터 대대로 계속 무덤을 쓴 곳이라고 말하고, 그동안 이곳에 아무도 함부로 무덤을 쓰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며칠 전날 밤에 누군가가 밤에 몰래 이곳에 있는 조부의 산소 오른쪽 바로 근처에 투장을 하고 달아났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밤낮으로 수색했지만 투총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니 특별히 나장(羅將)을 파견하여 즉각 무덤을 파내어 자신들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무덤을 몰래 쓰는 나쁜 관습을 없애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관에서는 투총자를 잡아와서 대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갑자년으로만 적혀 있으나, 다행히도 김낙진이 동치(同治) 9년, 즉 1870년(고종 7)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명문이 전하고 있어서, 위의 갑자년을 1864년으로 추정하였다.(1870년 김병헌(金炳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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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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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一道面堂北下里化民金載相右謹言切迫情由段民之親山在於中方里西麓禁養守護者積有年所而元無一點他塚矣去辛丑十二月不知何許人乘夜偸葬於民之親山階砌下不盈尺之地而播松與香木無難斫伐世豈有如許無 法之人乎罔夜搜探終無形迹故玆敢仰訴於明庭之下爲去乎自 官掘移以雪幽冥之寃千萬祝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壬寅二月 日官(署押)(題辭)被捉偸葬漢率來對卞事狀 初四日到辛東稷[官印][官印][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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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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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산에 올라 김 장군의 옛터를 바라보며 登瑞石山 望金將軍故墟 장군은 서석산의 정기를 모아 태어났는데 將軍鍾出瑞石精장군이 낳고 자랐던 마을 아직도 있구나 將軍生長尙有村장군의 충성과 용기 세상에 대적할 이 없어 將軍忠勇世無敵왜놈들 잡아 한 입에 삼키길 기약했네 期取島奴一口呑큰 공로를 아뢰기도 전에 몸이 먼저 죽으니 大功未奏身先死호서의 역적357) 초사358)를 어찌 차마 말하리 湖西賊招那忍言장성을 파괴했으니 또한 무슨 마음이런가 壞破長城抑何心이 일을 주장한 사람 본래 있다지 主張此事自有人만약 장군이 그 당시에 등용되었더라면 如今將軍當日用굳이 고생하며 화친을 일삼지 않았으리라 必不辛苦事和親하늘 때문인가 사람 때문인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니 天耶人耶事至此천고에 뜻있는 선비들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千古志士淚沾巾지금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삼백 년인데 今去將軍三百載한 치 땅도 다시는 우리나라 소유가 아니네 寸土無復有我韓난리의 형세가 매우 위중하여 쉽지 않더라도 亂極勢重縱未易계책과 용맹이 뛰어나면 어찌 끝내 어려우리 計神勇絶豈終難장군이 구천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염원하니 思切將軍起九原능히 나라를 회복하고 생민을 편안케 하리라 庶能復國奠生民오늘 이 높은 곳에 오른 뜻을 그 누가 알랴마는 誰知今日登高意오로지 장군의 충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네 端爲將軍吊忠魂곡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노랫소리 길어지고 欲哭不可歌聲長해질녘에 끝없이 홀로 마음 아파하노라 落日無限獨傷神 將軍鍾出瑞石精, 將軍生長尙有村.將軍忠勇世無敵, 期取島奴一口呑.大功未奏身先死, 湖西賊招那忍言?壞破長城抑何心? 主張此事自有人.如今將軍當日用, 必不辛苦事和親.天耶人耶? 事至此, 千古志士淚沾巾.今去將軍三百載, 寸土無復有我韓.亂極勢重縱未易, 計神勇絶豈終難?思切將軍起九原, 庶能復國奠生民.誰知今日登高意? 端爲將軍吊忠魂.欲哭不可歌聲長, 落日無限獨傷神. 호서(湖西)의 역적(逆賊) 충청도 홍산(鴻山)의 이몽학(李夢鶴, ?~1596)을 가리킨다. 이몽학은 종실(宗室)의 후예로서 모속관(募粟官) 한현(韓絢) 등과 함께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鴻山)에서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목사 홍가신(洪可臣) 등에 의해 진압되자, 부하 김경창(金慶昌)에게 살해당했다. 초사(招辭) 공초(供招)의 말이다. 공초는 조선 시대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로, 공사(供辭)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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