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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파 오공에 대한 제문 祭竹坡吳公文 오호라! 공이 이 세상을 버린 지 세월이 이미 2년이 지나 묘소의 풀이 이미 묵었으니, 예로는 비록 곡하지 않아도 되지만 궤연이 아직 철거되지 않았으니, 정을 말할 수 없겠는가.나는 공과 나이는 같은 연배가 아니고 사는 곳은 또 차이가 나지만 그 취미가 같고 교분이 친밀함은 교칠(膠漆)94)과 같네. 만년에 식구들을 데리고 살면서 오봉산(五峯山)의 풍월을 마주하여 사시로 강마하였고, 영정(詠亭)95)에 함께 모임에 의관이 정연하였고, 나란히 경상 우도를 찾아다니며 자못 유람하며 감상하는 흥취를 다하였고, 천태산(天台山)96)으로 행차하여 이별의 회포를 펼쳤네.오호라! 운명이 아름답지 못하니 서설(棲屑)97)의 외로움을 염려하고 나이가 노년이 되어가니 신관(神觀)이 움츠러드는 것이 걱정이니, 누가 알았으랴 한 번의 병으로 천고에 문득 막힐 줄을!재작년 봄에 영남의 벗 최숙민(崔琡民)98)·정재규(鄭載圭)99)·권기덕(權基德)100) 등 여러 사람이 이 고을을 지나면서 인하여 나와 함께 들어가 궤전(几前)에서 곡하였으니, 고인이 이른바 "그 사람을 생각하여 그 곳에 이르니, 그 곳은 있지만 그 사람은 없네."라는 것101)이 정히 이 때의 정경과 합하여 여러 벗들이 슬픔이 넘쳐나 실성하지 않음이 없었네. 공의 영령은 또한 천리에서 좋은 벗들이 온 것을 알아 이 때문에 더욱 감격하여 슬퍼하시겠는가?오호라! 이 몸은 천지가 맡긴 기여서 영췌(榮悴)와 개락(開落)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아 순응하여 받아들일 뿐 나의 의사와 상관이 없으니, 일체의 모든 일을 따질 것이 없네. 또 저승에 대한 말은 참인가, 망령된 것인가? 망령된 것이라면 내 장차 끊임없이 만물의 떠도는 기운과 함께 태허(太虛)의 망망(茫茫)한 가운데 동화되어 털끝만큼도 얽매임이 없을 것이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참이라면 공의 집안의 선친께서 이미 응당 여기에 계실 것이니, 슬하에 나아가 모시면서 당시에 다하지 못하였던 한을 갚을 수 있을 것이네. 나의 선친과 그대의 선친께서는 이승에서 좋은 벗이었으니 저승에서도 또한 마땅히 서로 따를 것인데, 나 또한 늙어 세상의 빚을 갚고 저승에서 선친을 따라 모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두 집안의 부자와 두 세대의 좋은 벗이 저승에서 장차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고서 천만년의 무궁한 유람을 할 것이니, 어찌 오늘 유명 간에 잠시 막히게 된 것을 한으로 여기겠는가. 嗚呼。公之棄斯世也。日月已再期矣。墓草已宿。禮雖不哭。几筵未撤。情可無言。吾於公齒非輩行。居又參差。而其臭味之孚。契義之密。如膠如漆。晩年挈寓相對。五峯風月。四時講磨。共聚詠亭。衣冠秩秩。聯筇嶠右。頗盡游賞之趣。枉駕天台。爲敍別離之懷。嗚呼。命道不媚。念棲屑之煢煢。年齡垂暮。憂神觀之蹙蹙。誰知一疾不起千古奄隔哉。昨昨春。嶺友崔琡民鄭載圭權基德諸人。行過此邑。因與我入哭几前。古人所謂思其人至其處。其處在其人亡者。正合此時情景。諸友無不哀溢失聲。公之靈。亦知千里好友之來。而爲之一倍感愴耶。嗚呼。此身是天地之委氣也。榮悴開落。有不在我。順而受之。無容我焉。則一切萬事勿論可也。且冥府之說。眞耶妄耶。妄耶則吾將與萬物遊氣。混混同化於太虛茫茫之中。無纖毫係累。豈不快哉。眞耶則公家先君。已應在此。趨侍膝下。可以酬當日未逮之恨矣。鄙先君與尊先君。陽界好友。在陰界亦應相從。吾亦老矣。致還世債。下從先君將有其日。二家父子。兩世好友。將倂臂携手於泉臺之間。以爲萬萬年無窮之遊。豈以今日幽明小小阻隔爲恨哉。 교칠(膠漆)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영정(詠亭) 영귀정(詠歸亭)으로, 정의림(鄭義林)이 강학을 위해 1893년 12월에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會松里)에 건립한 건물이다. 여기에 아홉 성인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다. 천태산(天台山):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리에 있는 산이다. 서설(棲屑) 일정한 거처 없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두보의 시 〈영회(詠懷)〉에 "지친 몸 구차히 계책 생각하지만, 그저 분망할 뿐 베풀 곳이 없어라.[疲苶苟懷策, 棲屑無所施.]"라고 하였다. 최숙민(崔琡民) 1837∼1905. 자는 원칙, 호는 계남·존와(存窩),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정재규(鄭載圭) 1843∼1911. 자는 영오(英五)·후윤(厚允), 호는 노백헌(老柏軒)·애산(艾山)·물계(勿溪),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노백헌집》이 있다. 권기덕(權基德) 1856∼1898. 자는 자후(子厚), 호는 삼산(三山),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저서로는 《삼산유고(三山遺稿)》가 있다. 고인이……것 《자치통감강목》 권10 〈한 장제 건초(漢章帝建初)〉에 "황제가 동평에 이르러 헌왕을 추념해서 그의 여러 아들에게 이르기를 '이분을 사모하여 이 지방에 왔으나 살던 곳만 남아 있고 이분은 안 계시다.' 하고는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다.[帝至東平, 追念獻王, 謂其諸子曰思其人, 至其鄉, 其處在, 其人亡, 因泣下沾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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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兒 天幸爲男子。陰陽秀五行。及時不好學。草木同歸亡。父母兮生鞠。一生不再生。逸遊送歲月。禽獸老前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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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102)에 대한 제문 祭文啓元文 태허(太虛)의 광대한 기가 오르내리며 변화하고 움직여 일찍이 그친 적이 없는데, 맑고 탁하며, 순수하고 섞이며, 길고 짧으며, 통하고 막히는 구분이 생긴다. 이 기를 타고난 사람이 지혜롭고 어리석으며, 어질고 어질지 못하며, 장수하고 요절하며, 궁하고 영달하는 것이 가지런하지 않음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하·은·주 삼대(三代) 이후로 대박(大檏)이 날로 흩어져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반드시 장수하고 영달하는 것은 아니며, 어리석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반드시 요절하고 궁한 것은 아니어서 종종 총명하고 걸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뜻을 가지고도 펼치지 못하고 중도에 요절하니, 기수(氣數)가 떳떳한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군은 먼 시골에서 우뚝 일어나 천품이 총명하고 일찍 스승의 문하에서 배워 문로가 이미 발랐다. 천인(天人)과 성명(性命)의 깊은 뜻과 신심(身心)과 성경(誠敬)의 오묘함으로부터 음양의 소장(消長)과 사물의 상수(象數)에 이르기까지 궁구하지 않음이 없어 차례로 펼치고 넓혀서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는 실상103)이 있었는데, 어찌 바야흐로 자라는 나무가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갑자기 풍상에 꺾이게 될 줄 알았으랴!의림(義林)은 화를 당한 끝에 가난과 병이 날로 심해져 다시는 사방으로 행차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여 계원(啓元)과 아침저녁으로 상종하여 다소의 구경(究竟)104)의 효과를 거두어 선친[先人]과 선사(先師)께서 남기신 만분의 일의 뜻이나마 저버리지 않으려 하였는데,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렇게 하시는지요? 능운(凌雲)105) 한 편은 단지 어루만지며 애석해 하는 마음만 간절하고 양춘(陽春)106)의 고상한 곡조는 독창(獨唱)의 음인 줄 누가 알겠는가?군이 병이 위독할 때 나를 불러 영결하기를 "지업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문득 죽게 되었으니, 오직 오장(吾丈)께서는 더욱 면려하여 우리 두 사람이 상종한 뜻으로 하여금 길이 후세에 말할 것이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오호라! 기가 빼앗기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여 호흡이 가물가물하였는데도 오히려 또 나를 선으로 면려하였으니, 내가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감동할 줄 모르겠는가. 다만 계원의 뜻을 보건대, 처창(悽愴)하고 불평한 기색이 조금 있었으니, 소년의 씩씩한 기상으로 갑자기 이런 지경을 만남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은 만고에 함께 그러한 것이니, 수명의 많고 적음과 세상 빚을 갚고 못 갚는 것은 다만 그 사이의 소소하게 빠르고 늦는 일일뿐이다. 고금에 어찌 일찍이 일을 마쳤던 사람이 있었던가? 오직 눈을 감는 날이 바로 일을 마치는 때이네. 공자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고, 또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적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말해 보건대, 알려짐이 없이 장수하는 것은 알려짐이 있고 요절하는 것만 못하다. 만약 그 사이에 또 장수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공자의 제자 안연[子淵]과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더구나 물아가 일체이고 고금이 한 순간이니, 한 순간 가운데 그 궁달[窮榮]과 요수(夭壽)를 논하는 것은 또한 구구하지 않겠는가. 대자연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은 입술이 합하듯 차이가 없어 줄지어 왔다가 양양하게 떠나니, 나는 계원의 영령이 반드시 어두운 저승에서 슬퍼하지 않을 것이 있음을 알겠네. 太虛坱圠之氣。升降推盪。未嘗止息。而淸濁粹駁脩短通塞之分生焉。人之稟是氣者。所以有知愚賢不肖壽夭窮榮之不齊也。然三代以降。大樸日散。賢知者。未必壽而榮。愚不肖者。未必夭而窮。往往有聰明魁偉之才。齎志未申。中道夭折。氣數之反常。一至於此耶。君崛起遐隅。天資穎悟。早從師門。門路已正。自天人性命之蘊。身心誠敬之妙。以至陰陽消長。事物象數。無不深究。次第展拓。有闇然日章之實。豈知方長之木。秀而不實。遽爲風霜所摧折哉。義林禍故之餘。貧病日甚。其不得復爲四方之行決矣。擬與啓元晨夕相從。以收多少究竟之效。庶不負先人先師萬一之遺意。天乎胡忍爲此。凌雲一篇。只切撫惜之心。陽春高調。誰知獨唱之音。君之病劇也。速余相訣曰。志業未就。中途奄逝。惟吾丈益加勉勵。使吾兩人相從之意。永有辭於來後也。嗚乎。氣奪神禠。呼吸奄奄。而猶且勉人以善。我非木石。寧不知感。但見啓元之意。微有悽愴不平之色。以少年壯氣。遽遭此境安得不然也。然有生有死。萬古同然。壽限之多不多。世債之了未了。特其間少少早晩事耳。古往今來。何嘗有了事底人惟其瞑目日乃是了事時孔子曰朝聞道。夕死可也。又曰。老而不死賊也。由此言之。無聞而壽。不如有聞而夭。若其間又欲壽考。則此是子淵伯魚所不得之事也。況物我一體。古今一息。一息之中。論其窮榮脩短。不亦區區乎。大化爲徒。脗然無間。于于而來。洋洋而去。吾知啓元之靈。必有不戚戚於冥冥之中者矣。 문계원(文啓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를 말한다. 자는 계원, 호는 귀암(龜巖)·면수재(勉修齋),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은은하되……실상 《중용장구》 제33장에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 하였으니, 이는 문채가 너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선명하되 날로 없어진다.[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구경(究竟) 불가(佛家)의 용어로, 최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 혹은 최고의 원리(原理)를 말한다. 능운(凌雲) 능운필(凌雲筆)로, 필력이 굳세어서 속태(俗態)를 벗어난 글씨나 문학 작품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희위육절구(戲爲六絶句)〉에 "유신의 문장은 노련하고 완성되어, 구름 뚫는 굳건한 붓 종횡으로 치달리네.[庾信文章老更成, 凌雲健筆意縱橫.]"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1》 양춘(陽春)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로, 상대방의 시를 칭찬할 때 쓰는 용어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곡(下里巴人曲)을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다음으로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다음으로 양춘백설가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어,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고 한다. 《文選 卷23 對楚王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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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현136)에 대한 제문 祭洪文玄文 공은 순후(淳厚)하고 성각(誠慤)한 자질과 침정(沈靜)하고 안상(安詳)한 자태로 가정의 학문을 계승하고 사우의 가르침에 종유하여 효우의 행실과 화락할 기풍이 집에 있어서도 반드시 달(達)하고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달하여 젊어서는 근칙(勤勅)한 선사(善士)가 되고 늙어서는 숙석(宿碩)의 위유(偉儒)가 되었네. 오직 조물주가 좋아하지 않고 운명이 떨쳐지지 못하여 전후의 60년 동안 지내온 사업은 단지 궁벽한 산에 하나의 초당뿐이었으니, 양빈(楊貧)137)과 한궁(韓窮),138) 교한(郊寒)과 도수(島瘦)139)가 처음부터 한 사람의 몸에 모이지 않음이 없었네. 그러나 비색함이 형통한 것140)은 무리 짓지 않았기 때문이고 발꿈치가 꾸며짐141)은 수레를 타지 않기 때문이니, 백발의 한 서생이 세상에서 능히 형통하지 못할 형통함을 가지고 남들이 능히 꾸미지 못할 꾸밈을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의림(義林)은 일찍이 그대 중부 봉남옹(鳳南翁)142)과 생사를 함께하는 막역한 교분을 맺었네. 이윽고 옹이 이미 나를 버렸고 그 집안에는 서업을 이어서 전술할 사람은 오직 공이 있었네. 더구나 부조가 대대로 교분을 맺어 어릴 때부터 알아 성기(聲氣)를 함께하여 서로 익숙하고 친밀함은 누가 공보다 앞설 사람이 있겠는가. 풍상에 흔들려 떨어져 어려움 속에 서로 지키던 뜻이 실로 끊임없이 왕래하며 의지할 곳이 있었는데, 어찌 하나의 병이 낫지 않아 마침내 그대가 먼저 감이 이와 같은가. 백아의 거문고 줄이 이미 끊어졌고, 영질(郢質)이 이미 없어지니,143) 금오(金鰲)의 수석과 침정(枕亭)144)의 풍월에 단지 여생의 다하지 않는 슬픔만 있을 뿐이네. 외롭고 쓸쓸하니, 누가 나의 슬픔을 알리오? 公以淳厚誠慤之質。沈靜安詳之姿。承襲家庭之學。游從師友之敎。孝友之行。愷悌之風。在家必達。在邦必達。少而爲勤勅之善士。老而爲宿碩之偉儒。惟是造物不媚。命道不揚。前後六十年經歷事業。只是窮山一草堂而已。楊貧韓窮。郊寒島瘦。未始不萃於一人之身。然否之亨。以其不群也。趾之賁。以其不乘也。誰知白髮一書生。有世所不能亨之亨。有人所不能賁之賁耶。義林早與尊仲父鳳南翁。爲死生莫逆之契。旣而翁已棄我。而其門庭之內。紹述緖餘。惟公在焉。況父祖世交。童穉舊知。同聲同氣。相熟相密。孰有先於公者乎。風霜搖落。艱關相守之意。實有源源毗倚之地。何其一疾不退。而竟爾先着若是耶。牙琴已斷矣。郢質已亡矣。金鰲水石。枕亭風月。只有餘生不盡之悲而已。踽踽凉凉。孰知我悲。 홍문현(洪文玄) 홍우석(洪祐錫, 1843∼?)을 말한다. 자는 문현, 호는 우재(愚齋),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양빈(楊貧) 한(漢)나라 때 양웅(揚雄)의 가난을 말한다. 양웅은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축빈부(逐貧賦)〉를 지은 바 있다. 한궁(韓窮)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궁함을 말한다. 한유가 궁하여 〈송궁문(送窮文)〉을 지었다. 교한(郊寒)과 도수(島瘦) 맹교(孟郊, 751∼814)의 청한과 가도(賈島)779∼843)의 수척함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맹교의 시격은 청한하고, 가도의 시격은 수척하다.[郊寒島瘦]"라고 평가하였는데, 이들은 빈한하고 불우한 삶의 풍경을 시에 그대로 담아내었다. 비색함이 형통한 것 《주역》 〈비괘(否卦) 육이(六二)〉에 "대인비형(大人否亨)은 소인(小人)의 무리에게 어지럽혀지지 않는 것이다.[大人否亨, 不亂群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발꿈치가 꾸며짐 《주역》 〈비괘(賁卦) 초구(初九)〉에 "발을 꾸밈이니,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賁其趾, 舍車而徒.]"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봉남옹(鳳南翁) 홍채주(洪埰周, 1834∼1887)를 말한다.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 본관은 풍산이다. 저서로는 《봉남집》이 있다. 영질(郢質)이 이미 없어지니 옛적에 영(郢)에 도끼질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의 코끝에다 백토(白土)를 조금 붙여두고 도끼질로 그 백토를 다 깎아내어도 코는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코를 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그의 기술을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코를 대주었다. 그 뒤에 그 사람이 죽고 나자 도끼를 던지며, "이제는 나의 바탕이 죽었으니, 어디에 기술을 쓰랴."라고 하였다.《莊子 徐无鬼》 침정(枕亭) 침수정(枕漱亭)을 말한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보리에 있다. 팔우(八愚) 홍경고(洪景古, 1645∼1699)가 17세기 말에 건립하였고, 그의 6세손인 홍채주가 1885년에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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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삼145)에 대한 제문 祭尹亨三文 죽마고우로 백수의 노년까지 상종한 이로는 형 입장에서는 오직 나이고 내 입장에서는 오직 형일 뿐입니다. 전후로 60여 년 동안 한묵(翰墨)의 마당, 문주(文酒)의 자리나 길흉사, 행지(行止)의 의리에 같이 하지 않은 일이 없고 같이 하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그 승화(乘化)146)하는 한 가지 일에도 마땅히 더불어 함께해야 할 것인데 형이 이에 먼저 가기를 이와 같이 급하게 하시는가! 오호 통재라!형의 선공 삼형제와 저의 선친 삼형제는 연세가 모두 80, 70세에 창백한 얼굴 흰머리로 밤낮으로 마주하기를 마치 수양(睢陽)의 오로(五老)147)와 향산(香山)의 구로(九老)148)와 같았으니, 이것은 태평한 시절에 장수 하였던 좋은 기수(氣數)였네. 형과 나는 함께 아롱진 적삼과 색동옷을 입고 달려가 그 곁에서 응대하였네. 이윽고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붙잡을 수 없고 남극성이 빛을 잃자 두 집안의 남은 사람은 모두 부모 잃은 외로운 사람이 되어 서로 덮어주기를 가문 밭의 새싹과 같이 하고 서로 구제해 주기를 수레바퀴에 고인 물속의 물고기 같이 하면서 여생의 계획으로 삼았네. 더구나 이렇게 북풍 불고 눈 내리는 것이 질펀하여 끝날 기약이 없는데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와 손잡고 조만간 함께 돌아가려 하였는데,149) 유명(幽明)으로 작별함이 갑자기 목전에 있어 인생 만사가 모두 허무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나는 올 초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 갔다가 저물녘에 나의 사촌 집에 들어갔는데, 형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나를 데리고 가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가 출발하려 할 때 또 만류하여 이틀 밤을 묵었으니, 어쩌면 형이 돌아가실 날이 장차 임박한 줄 알고서 굳이 머물게 하여 얼굴을 보고서 영결할 계획을 하였던 것인가? 만약 이와 같을 줄 알았다면 아우가 어찌 하루의 시일을 아까워하여 평생의 벗과 영원히 끝나는 작별을 하지 않았겠는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천 권의 책을 쌓아 두고 천 리에 스승을 따라 몸을 닦고 의를 행한 것이 수십 년 이었으니, 그 빼어난 운치는 남에게 추앙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기러기는 아득한 하늘위로 날아가고 매미는 더럽고 탁한 가운데서 허물을 벗어버리듯 하여 원성(元城)의 좋은 명(命)150)과 원우(元祐)의 완인(完人)151)이 되는 것이니, 형은 여기에 대해 또한 유감이 없을 것이네. 구봉(九峯)의 수석과 묵계(墨溪)의 풍월은 백대의 뒤에도 정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니,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어찌 눌와(訥窩) 처사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슬픈 마음 적어 제문을 지어 이렇게 영결을 고하니 영령이여 아실런지요? 以竹馬舊交。而老白首相從。在兄惟我。在我惟兄而已。前後六十餘年。翰墨之場。文酒之席。吉凶之故。行止之義。無事不同。無處不同。則其於乘化一事。亦當與之同之。而兄乃先着若是遽遽耶。嗚呼痛哉。尊先公三昆季。鄙先人三昆季。年皆八十七十。蒼顔白髮。日夕相對。如睢陽之五。香山之九。此是昇平壽域好氣數。兄與我俱以斑衫彩衣。趨走唯喏於其側。旣而西日莫係。南極無光。而兩家餘生。俱俱風樹孤露人。互相芘覆如旱田之苗。互相喣濡如涸轍之鱗。以爲殘生餘日之計。況此北風雨雪。漫無了期。而惠好携手。早晩同歸。豈知幽明去留。遽在目前。而人生萬事。都歸烏有耶。余於歲初。省掃親塋。暮入鄙從家。兄聞之。尋來携去。達夜敍話。其發也。又挽之信宿。豈兄知大限將迫而固留之。爲面訣計耶。若知如此。弟豈悋一日之費。不與平生知舊。爲千古終天之別乎。痛哉痛哉。貯書千卷。從師千里。修身行義數十年。其偉韻逸趣。有以見慕於人者。爲何如耶。鴻飛於冥漠之上。蟬蛻於穢濁之中。而爲元城之好命。元祐之完人者。兄其於此。亦可以無憾矣。九峯水石。墨溪風月。百歲之下。精采可想。人之過之者。豈不曰訥窩處士杖屨之所乎。綴哀緘辭。玆以告訣。靈其知否。 윤형삼(尹亨三):윤자현(尹滋鉉, 1844∼1909)을 말한다. 자는 형삼, 호는 눌와(訥窩),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문인으로, 정의림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눌와유집(訥窩遺集)》이 있다. 승화(乘化) 자연의 조화에 따라 죽는다는 뜻이다. 수양(睢陽)의 오로(五老) 수양(睢陽)은 남경(南京)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丘縣) 남쪽의 지명이다. 재상에서 물러난 두연(杜衍)이 80세 때인 송 인종(宋仁宗) 가우(嘉祐) 1년인 1056년 가을에 수양에서 왕환(王渙), 필세장(畢世長), 주관(朱貫), 풍평(馮平)과 오로회(五老會)를 결성하여 시와 술로 서로 즐겼다. 《澠水燕談錄 高逸》 향산(香山)의 구로(九老) 당(唐)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치사한 뒤, 향산에 기거하면서 향산거사(香山居士)라 자칭하고, 호고(胡杲)·길교(吉皎)·정거(鄭據)·유진(劉眞)·노정(盧貞)·장혼(張渾)·이원상(李元爽)·여만(如滿) 등과 함께 모임을 결성하고 향산구로회라고 일컬었다. 《百香山詩集 卷40 香山九老圖幷書》 북풍……하였는데 《시경》 〈패풍(邶風) 북풍(北風)〉에 "북풍이 차갑게 부는 데다 함박눈도 펑펑 내리도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잡고 함께 떠나가리라.[北風其涼, 雨雪其雱. 惠而好我, 攜手同行.]" 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원성(元城)의 좋은 명(命) 원성은 송(宋)나라 유안세(劉安世)의 봉호이다. 그는 사마광(司馬光)의 제자로서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는데 논사(論事)에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 정강(靖康) 1년에 금군(金軍)이 쳐들어와 경사(京師)를 함락시키고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북으로 잡혀가는 변이 일어났는데, 유안세는 그보다 1년 앞인 선화(宣和 휘종의 연호) 7년에 죽어서 정강의 변을 당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宋史 卷345 劉安世列傳》 원우(元祐)의 완인(完人) 원우는 송(宋)나라 철종(哲宗) 때의 연호이고, 완인은 난세(亂世)에도 실절(失節)하지 않고 횡사(橫死)하지 않아서 신명(身命)과 절의(節義)를 지킨 사람을 말한다. 본래는 송 철종(宋哲宗) 원우 연간에 보문각 대제(寶文閣待制)를 지낸 유안세(劉安世)를 가리킨다. 그가 조정에서 쫓겨나 여러 유배지를 거쳐 매주(梅州)에 이배(移配)되었을 때 장돈(章惇), 채변(蔡卞) 등이 하수인을 시켜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면하고 뒤에 풀려났다. 그 후 집에 있는 동안 그의 명망이 더욱 높아지자 당시 한창 권력을 행사하던 양사성(梁師成)이 사자(使者)를 시켜 편지를 보내서 크게 등용하겠다는 뜻으로 달래고 또 자손의 장래를 위하는 계책도 세우도록 권하였다. 유안세가 웃으면서 사절하기를 "내가 만일 자손의 계책을 위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원우의 완인이 되어 지하에 가서 스승 사마광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吾若爲子孫計, 不至是矣. 吾欲爲元祐全人, 見司馬光于地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宋史 劉安世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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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154)에 대한 제문 祭李光彬文 공은 풍골(風骨)과 기격(氣格)의 준수하고 시원함은 실로 속세의 인물이 아니고, 강방(剛方)하고 정직(正直)한 행실과 청결(淸潔)하고 견개(狷介)한 지조는 또 한 무리 군자의 유(儒)가 되기에 족하네. 중년 이후로 종유하여 강론하면서 돌이켜 요약하고 근원을 궁구하여 마음은 날로 열려 시원해지고 행보는 날로 펼쳐지고 넓어져 장차 사문의 희망을 맡기고 후학의 터전이 될 것이 실로 적지 않았네. 이와 같은 선파(璿派)155)의 귀족(貴族)으로 먼 시골에 떠돌며 지내게 되었으니, 그 문벌은 자자한 집안이라 할 수 있고 그 기량은 세상에 쓰일 만 한데도 천진에 맡기고 분수를 미루어 억지로 영위하고 추구하는 것이 없이 손수 농사짓고 몸소 물고기 잡으며 서당을 열고 결사를 맺어 때로 예악을 펼치는 자리에서 시를 읊조리고 산수에 임하여서는 연하(煙霞)의 밖에 마음을 씻어 내었으니, 그 뛰어나고 빼어난 운치와 의표, 맑고 훌륭한 행실과 자취는 실로 보통 사람과 함께 두고 말하지 못할 것이 있네.의림(義林)은 떠돌며 외롭고 괴로워 의지할 곳은 오직 벗들뿐이었는데, 근년 이래 영귀정(詠歸亭)에서 종유하던 동년의 노인들로 문익중(文翊中)156)·박학중(朴學中)157)·김문현(金文見)158)·김보현(金普見)·안순견(安舜見)159)·윤흥서(尹興瑞)160) 등 여러 사람들이 서로 이어서 돌아가시고, 오직 우리 간재(澗齋)만이 우뚝 홀로 살아있어 마치 새벽으로 향하는 별과 같고 가을을 지난 국화 같았네. 적을수록 더욱 귀하고 외로울수록 더욱 친하여 조금 남은 생애 구구하게 의지할 계획으로 삼아 마치 보거(輔車)161)가 서로 기다리고 공거(蛩蚷)가 서로 의지하는 것162) 같이 하려고 하였는데,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고 귀신은 가만히 도와주지 않아 나이 50에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호 통재라!학문의 진전은 아직 힘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고, 강론하며 모이는 규약은 아직 실마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있고, 심성(心性)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분변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이 다하지 못한 빚을 가지고 장차 누구에게 설파하겠는가? 또한 묵묵하게 머금고 참아 다만 저승에서 후일의 기약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양호(楊湖)와 음강(陰江), 예성산(禮星山)과 속금산(束金山)은 우리들이 옛날 글을 짓고 술을 마시던 장소가 아니던가. 연운(煙雲)과 수석(水石)은 의연하게 어제와 같은데 함께 유람하며 감상하던 이는 유독 한 사람도 없으니, 인생이 실로 이와 같단 말인가! 눈길 닿고 다니는 곳마다 마음이 상하지 않음이 없네. 거문고 부서지고 줄은 끊어져 만사가 이미 끝났네. 산천이 슬퍼하고 그리하니, 천고에 아득하네. 公風骨氣格。雋茂軒暢。固非俗下人物。而剛方正直之行。淸潔狷介之操。又足以爲一隊君子之儒。中年以來。游從講聚。反約窮源。胸次日以開爽。地步日以展拓。將以寄斯文之望而爲後學之地者。實有不淺。以若璿派貴族。而流落遐荒。其門地可藉矣。其才器可需矣。而任眞推分。無營無求。手把犁鋤。身服漁樵。開塾結社。時以諷詠乎絃俎之場。登山臨水。間以淘暢於煙霞之表。其偉韻遐標。淸裁逸躅。實有非常調人所可同年而語者矣。義林流離孤苦。所賴惟友。比年以來。詠亭游從。年輩耆舊。如文翊中朴學中金文見金普見安舜見尹興瑞諸人。相繼殞逝。惟有我澗齋。屹然獨存。如向晨之星。如經秋之菊。愈少而愈貴。愈孤而愈親。以爲多少餘日區區毗倚之計。如輔車之相須。蛩蚷之相資。誰知天不憖遺。鬼不陰護。而行年五十。遽爾告終耶。嗚呼痛哉。學問進就。尙有未盡力者矣。講聚規約。尙有未盡緖者矣。心性論議。尙有未盡辨者矣。持此未盡之債。其將向誰而說破耶。抑默默含忍。直待泉臺後日之期耶。楊湖陰江禮星束金。其非吾輩疇昔文酒之場耶。烟雲水石。依然如昨。而所與遊賞者。獨無一人焉。人生固如是耶。觸目經行。無非傷心。琴破絃斷。萬事己已。山哀浦思。千古悠悠。 이광빈(李光彬):이기백(李琪白, 1854∼?)이다. 자는 광빈, 호는 간재(澗齋),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선파(璿派) 전주 이씨(全州李氏) 왕실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宗派)를 이른다. 문익중(文翊中) 문봉환(文鳳煥, 1849∼1890)을 말한다. 박학중(朴學中)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을 말한다. 김문현(金文見) 김규원(金奎源, 1852∼?)을 말한다. 자는 문현, 호는 근재(謹齋),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안순견(安舜見) 안국정(安國禎, 1854∼1898)을 말한다. 윤흥서(尹興瑞) 윤자선(尹滋宣, 1852∼?)을 말한다. 자는 흥서, 호는 남계(藍溪),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보거(輔車) 서로 긴밀히 의지하는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공거(蛩蚷)가……것 공은 공공(蛩蛩)이고 거는 거허(蚷虛)인데, 전설상의 두 짐승의 이름이다. 늘 같이 따라 다닌다고 하여 교분이 두터운 친한 관계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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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三從大父草堂舊墓 溪潤苔圍石。山深樹擁烟。偶逢竪蕘語。尙紀紫芝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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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學孫霜降韻 千林經楚劍。萬木鍊秦兵。獨有庭前菊。黃花保晩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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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 전장에게 보냄 與鋉心田丈 戊寅 무인년(1938)어른이 근래에 저의 선조 문정공 비석의 전면을 고쳐 새기는 일로 연명서(聯名書)를 우리 종중에 보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또한 여러 사람의 논의가 저 역시 그 일에 찬성하여 크게 죄를 논한다고 들었는데, 또한 정말로 그렇습니까? 제가 비석을 논한 것으로 여러 번 종중과 다투어 변론하여 선조를 폄하하고 스승을 높였다는 비난을 받기에 이른 것은 이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일은 갑자기 나온 일이라 처음부터 회의하는 날과 착수하는 시간을 알지 못했고, 아울러 와서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으니, 무슨 방법으로 그 일을 찬성했겠습니까? 생각해보면, 평생 남의 입에 오르는 일이 잦았으니, 이번 일로 해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른과는 집안끼리 교분을 맺어 온 처지로 애매하게 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우러러 고합니다. 살펴보심이 어떠하겠습니까? 似聞丈近以鄙先祖文貞公碑前面改刻事, 有聯名書於鄙宗中, 果然否? 又聞僉議謂生亦可其事, 大加論罪云, 亦信然否? 生之以碑論, 累與宗中爭辨, 至被貶祖尊師之斥者, 旣人所共知矣.至於今事, 事出倉卒, 初不知會議之日, 著手之時, 幷無有來問者, 何由而可其事乎? 念此生平多口數也, 不欲以此區區自明, 但於丈通家之地, 有不容昧然者.故茲仰告, 諒存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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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장 한두에게 보냄 무진년(1928) 與金君章 漢斗 戊辰 선비로서 배우는 자는 구하는 것이 있어서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얻는 것이 없다고 해서 그만두어서도 안 됩니다. 구하는 것이 있어서 공부하는 자는 시장의 장사치이고, 소득이 없다고 해서 그만두는 것은 수렵하는 사내일 뿐입니다. 어찌 선비의 학문이 시장 장사치나 사냥꾼과 같아서 되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또 모름지기 구하지 않는 중에 구해지는 것이 있으니, 인(仁)이 그것입니다. 또 얻으려고 하지 않는 중에 얻어지는 것이 있으니, 도(道)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구함은 구할수록 더욱 욕심이 되지 않으며, 이러한 얻음은 얻을수록 더욱 탐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컨대 하루아침에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반드시 종신토록 그만두지 않아야 얻는 것이 있습니다. 이 점을 또한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士之學者, 不以其有所求而作.故不以其無所得而輟也.有所求而作者市竪也, 無所得而輟者獵夫也, 焉有士之學之同乎市獵哉? 雖然又須知不求之中有求者存, 仁是也.無得之中有得者存, 道是也.是求也愈求而愈不爲慾也, 是得也愈得而愈不爲貪.然要之非一朝之可求, 而必終身不輟有得.此又不可不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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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천명 【김재현 선비를 위해 지음. 무인년(1938)】 香泉銘 【爲金斯文在鉉作 戊寅】 난초는 향 뿜고 산에는 샘 솟네, 蘭有香, 山出泉,향천(香泉)은 누구인가 숨어사는 김 선비라네. 香泉誰, 金隱居,누가 이름 붙였는가, 구산(臼山) 스승님이시네. 誰錫之, 師臼山은은히 속으로 기르며 남에게 구하지 않으니, 闇然修, 無求人,근본을 힘써 닦아 학문에 원천이 깊네. 務其本, 學有源,샘물 이제 흘러나가고 난초향 풍겨퍼지니, 泉始達, 蘭自薰,사물을 견준 설명이 진실에 딱 맞네. 取譬物, 稱得眞,나날이 문채 빛나 향기로운 이름 전해지니 日有章, 馨名傳,도랑들 채우고 나아가 큰 바다에 이르네. 盈科進, 流觀瀾,노년의 덕은 더욱 아름다우니 彌邵德, 在老年,나의 새김에 힘써 인(仁)을 보태시리. 我銘勖, 輔之仁. 蘭有香, 山出泉, 香泉誰, 金隱居, 誰錫之, 師臼山, 闇然修, 無求人, 務其本, 學有源, 泉始達。 蘭自薰, 取譬物, 稱得眞, 日有章, 馨名傳, 盈科進, 流觀瀾, 彌邵德, 在老年, 我銘勖, 輔之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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臘月晦日。送族人晉一歸金谷。 昔我年七歲。受史東谷門。始一終于七。深厚擊蒙恩。如木枝有幹。如水委有源。嗟余才識薄。至今日就昏。幸逢切磋友。子眞東谷孫。年才弱冠餘。從事賢聖言。論孟立其根。詩書達其原。去年四月尾。從我墨坊村。三冬永錫菴。今歲居處爰。吾宗久寂寞。光復於君存。天日在朔易。歲色亦云飜。梅稍雪已盡。柳枝日欲暄。送君歸拜親。采服趨庭園。知有前期在。三陽方燠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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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에서 음력 7월 보름에86) 江村白踵 좋은 날이라 강촌에서 발을 씻으며 노니는데 佳節江村白踵遊벼꽃은 비로소 싹을 틔워 들길에 그윽하구나 稻花初發野程幽부서진 오이 쌓아둔 상자엔 맑은 서리 떨어지고 破瓜堆篋淸霜落술 걸러 가득 찬 동이엔 채웠더니 녹의87) 떠오르네 瀝酒盈樽綠蟻浮가깝고 먼 곳의 기쁜 소리 두레 북88)에 전해지고 遠近歡聲傳社鼓길고 짧은 가락 아이의 흥얼거리는 소리에 들려온다 短長雜曲聽兒謳재미란 게 전원에 있다는 걸 응당 알겠으니 應知滋味田間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 선비인 게 부끄럽네 竟日無爲愧士流 佳節江村白踵遊,稻花初發野程幽.破瓜堆篋淸霜落,瀝酒盈樽綠蟻浮.遠近歡聲傳社鼓,短長雜曲聽兒謳.應知滋味田間在,竟日無爲愧士流. 7월 보름에 원문 '백종(白踵)'은 승가에서 이날 모두 발을 씻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녹의 술의 별명(別名)이다. 두레 북 25집이 1사(社)가 되는데, 공동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모이는 것을 사(社)라 한다. 사고(社鼓)는 바로 농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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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읊음 偶吟 예로부터 지금까지 몇이나 빼어났던가 古往今來幾俊英앞에는 공자와 맹자가 뒤에는 주자와 정자가 前乎孔孟後朱程높고 훌륭한 일로 하늘의 덕 참여했고 高巍事業參天德괴로운 정성과 언사로 도와 정을 보전했지 苦血言辭衛道情거짓 목록 간악한 이름은 여전하기만 하니 僞目奸名曾不損제나라 경과 노나라 재상이 어찌 영화로운가 齊卿魯宰豈爲榮누가 우뚝 서서 선현의 학맥을 받잡아 有誰卓立承遺緖만만세세 오래도록 태평시대 열겠는가 萬世長令開太平 古往今來幾俊英,前乎孔孟後朱程.高巍事業參天德,苦血言辭衛道情.僞目奸名曾不損,齊卿魯宰豈爲榮.有誰卓立承遺緖,萬世長令開太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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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 망해사에 올라 태안에 있다. 登安興望海寺【在泰安】 해질녁 옛 진루에 올랐더니 落日登臨古鎭樓풍경이 누에 가득 아득하구나 風烟滿目正悠悠수많은 돛단배 줄지은 섬 아득해서 경계 없고 亂帆列嶼遙無際푸른 바다 드높은 하늘 모두 물가에 접해 있네 碧海長天共接洲황량한 절의 탑감은 오랜 세월 겪은지 알겠고 荒寺塔龕知閱劫피폐한 성의 초목은 가을이라 슬프구나 廢城草樹感逢秋관산의 융마 어느 때 그치려는가 關山戎馬何時已두보의 천 년 시름이 이에 있었으니47) 杜老千年一樣愁 落日登臨古鎭樓,風烟滿目正悠悠.亂帆列嶼遙無際,碧海長天共接洲.荒寺塔龕知閱劫,廢城草樹感逢秋.關山戎馬何時已?杜老千年一樣愁. 관산의……있었으니 당나라 시인 두보(712~770)가 지은 〈등악양루(登岳陽樓)〉에 "지난날 동정호에 대해 듣다가,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네. 오나라와 촉나라 동남으로 나뉘고,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동정호에 떠 있네. 친한 친구는 소식 하나 없고, 늙고 병든 나 외로운 배에 남아있네. 관산의 북쪽 중원 땅엔 아직도 전쟁이라, 난간에 기대서니 눈물이 흐르네.〔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라고 한 것을 말한다. 《杜少陵集 卷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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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가의 언덕 澗陸 칼을 어루만지다 오늘날을 아파하고 撫劒傷今日등불 끌어다 옛사람 책을 읽네 引燈讀古書우연히 계곡의 언덕을 사랑하게 되어 偶然愛澗陸석인의 거처로 잘못 견주는 건 아닌지 錯比碩人居 撫劒傷今日,引燈讀古書.偶然愛澗陸,錯比碩人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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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秋雨 한 번의 가을비에 앞산은 어둑해지고 一番秋雨暗前山순식간 물소리는 도전에서도 들린다 頃刻水聲聽稻田삽질하다 먼 들에서 돌아오라 다퉈 부르고 村鍤爭呼歸遠野낚시하다 감히 큰 냇가에 놓지 못하네 漁竿不敢下長川포도가 처마 어지럽게 움직이니 성글다 빽빽해지고 葡簷亂動疎還密연잎은 가볍게 흔들리며 흩어졌다 다시 이어지네 荷葉輕搖散復連서루에서 기쁨 다하지 않는 가장 좋은 일은 最可書樓歡未極고인들이 젖을까 두려워서 가던 길을 멈추는 것 故人怕濕住征鞭 一番秋雨暗前山,頃刻水聲聽稻田.村鍤爭呼歸遠野,漁竿不敢下長川.葡簷亂動疎還密,荷葉輕搖散復連.最可書樓歡未極,故人怕濕住征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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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김 어른 복한161) 의 입춘에 축원하는 시에 차운하여 무오년(1918) 가을 次志山金丈【福漢】春祝韻【戊午秋】 천리를 북돋고 키우시는 그 솜씨 아름다워 栽培天理掌紋然선청을 이으신 지도 어느덧 삼백 년이 되었네 繼述仙淸三百年지금처럼 충성심과 효심이 그대와 자손에게 있어 忠孝如今翁又子자손 대대로162) 번성하니 보기 참 좋아라 好看麟趾寔繁延 栽培天理掌紋然,繼述仙淸三百年.忠孝如今翁又子,好看麟趾寔繁延. 복한 김복한(金福漢1860~1924)의 자는 원오(元吾), 호는 지산(志山)이다. 문충공 김상용(金尙容)의 12대 종손이며, 문정공 김상헌(金尙憲)이 그의 친동생이다. 이들의 절의정신과 척화정신은 후손인 김복한의 의병 정신으로 계승되었다고 한다. 자손 대대로 원문 '인지(麟止)'는 《시경(詩經)》 편명으로, 후비의 덕에 감화된 어진 자손을 기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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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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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위관 김 어른 상덕 께서 보내주신 시에 차운하여 2수 次韋觀金丈【商悳】見贈韻【二首】 한성에는 북녘 눈에 한겨울 깊어지고 漢城朔雪大冬深열 길 뻗은 오랜 측백나무 아득하기만 古柏蒼蒼挺十尋끊어진 바다 갇힌 몸에도 충정 바친 뜻 絶海窮囚靖獻意소식을 듣는다면 백 세 후에도 마음이 아프리라 聞風百世也傷心대인의 품은 포부 모두 숭고하고 깊어 大人蘊抱儘崇深거의 열 길이나 되는 산천과 같다네 烏峀鰲江幾十尋예경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가르침이라 㝡是禮經眞實敎천년 전 횡거께서도 같은 마음이었네163) 橫渠千載一條心 漢城朔雪大冬深,古柏蒼蒼挺十尋.絶海窮囚靖獻意,聞風百世也傷心.大人蘊抱儘崇深,烏峀鰲江幾十尋.㝡是禮經眞實敎,橫渠千載一條心. 천년……마음이었네 횡거(橫渠)는 송나라 장재(張載)의 호이며, 그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 늘 예경에 근거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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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새벽 닭울음 소리를 듣고 聞曉鷄 북두성 돌아가고 종소린 새벽 기운 맑아지길 재촉하고 斗轉鍾催曉氣淸한 번 울림에 깨어나니 다시는 잠들기가 어렵구나 一聲攪罷夢難成길게 울렸다 잠시 끊어졌다 남은 소리 이어지고 長呼俄斷餘音續호방한 힘 비로소 일어나니 두 날개 가볍도다 豪力初生兩翩輕푸른 등불은 경전 공부하는 선비 뜻 얼마나 분발시켰나 幾奮靑燈經士志외로운 베개는 나그네의 마음 매우 슬프게 하는구나 偏傷孤枕旅人情지금 세상 하늘 밝아지는 게 더뎌 매우 한탄스러우니 堪歎今世遲天曙너와 더불어 공이 같으니 누가 무슨 명성이 있으리오 與爾同功孰有名 斗轉鍾催曉氣淸,一聲攪罷夢難成.長呼俄斷餘音續,豪力初生兩翩輕.幾奮靑燈經士志,偏傷孤枕旅人情.堪歎今世遲天曙,與爾同功孰有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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