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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암 김 어른에 대한 제문 祭重庵金丈文 천하에 인간이 살아온 지가 오래 되었으니,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혼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스려짐에 진실로 성인이 위에 있어 그 도를 행함이 있었고, 그 혼란해 짐에 또한 성인이 아래에 있어 그 도를 호위함이 있었습니다. 만약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않고 넘어지는데도 부축하지 않아 그 절로 되는대로 맡겨두고 그 가는대로 놓아두었다면 인류가 멸망한 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등급이 점점 낮아져 치우치고 방탕한 말들이 더욱 성하여 온 천하가 날마다 긴 밤으로 달려가, 산악이 꺾이고 상하며 해와 별이 어두워지고 잠겨 깨끗함을 조금 보존한 한 모퉁이의 우리나라까지도 또한 장차 면하지 못하게 될 지경입니다.오직 선생께서는 화양(華陽)23)을 사숙하였고 벽문(蘗門)24)의 적전으로 천고를 안아 짊어지고 한 시대를 담당하였습니다. 후덕(厚德) 대도(大道)와 위론(偉論) 직절(直節)은 산같이 높고 바다가 품은 듯,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여 도깨비나 짐승 같은 이들로 하여금 비록 방자함을 지극히 하더라도 능히 유자의 복장을 한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을 되돌리게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호전(胡銓)25)의 상소와 진동(陳東)26)의 일은 과연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소청(疏廳)에 편지를 보내 격려하고27) 해도(海島)로 귀양 갔으니,28) 또 이는 어떤 일입니까? 천지의 정대한 기운과 국가의 강상(綱常)의 책임은 벽계(蘗溪)의 문정(門庭)에서 다 나오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강토(講討)하고 찬조(贊助)한 바의 힘은 또 누군들 선생에게 있지 않다고 하겠습니까.오호라! 긴 밤이 끝나지 않았는데 큰 횃불이 문득 꺼지고, 여러 음(陰)이 바야흐로 성한데 미약한 양(陽)이 갑자기 막혀, 시상(時象)과 풍색(風色)이 나날이 더욱 심한데도 이것을 강화시키고 저것을 어렵게 만들어 유지하고 보호할 사람이 없으니, 인륜과 세도가 또 장차 어느 곳에 도달할지 모르겠습니다.아! 오직 소자는 일찍 높은 의리를 강론하였으나 아직 덕에 나아가기를 미루고 있으니, 광풍제월(光風霽月)29)의 기상을 비록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남쪽 바닷가와 북쪽 모서리에 떨어져 있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멀리서 향하여 바라보고 절하며 단지 천만 무강한 장수를 누려 사문과 세도를 위한 계획을 축원하였는데, 어찌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아 부고가 갑자기 들릴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슬프도다! 우리들 누구를 통하며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산도 슬퍼하고 물도 시름하니, 만고에 아득합니다. 天下之生久矣。不得不一治一亂。然其治也。固有聖人在上而行。其道。其亂也。亦有聖人在下而衛其道。若危而不持。顛而不扶。任其自爲。聽其所之。則人之類滅己久矣。世級浸降。詖滛愈熾。寰宇率濱。日趍長夜。山岳摧剝。日星晦沈。至於一隅靑邱稍保乾凈者。亦將不免。惟先生以華陽私淑。蘖門嫡傳。抱負千古。擔當一世。厚德大道。偉論眞節。如山高而海涵。冰清而玉潔。使魑魅魍魉羽毛鱗介之屬。雖極恣睢。而不能。迴冠儒服儒之視聽久矣。胡銓之疏陳東之舉。果是何人。疏廳之書。海島之行。又是何事。天地正大之氣。國家綱常之責。不可謂不盡出於蘖溪門庭之間。而所以講討贊助之力。又孰謂不在於先生耶。嗚呼。長夜未艾。而巨燭旋滅。群陰方盛。而微陽遽閼。時象風色。日甚一日。而無強此艱彼維持調護之人。未知人倫世道。又將稅泊於何地耶。嗟惟小生。夙講高義。尚稽就德。光風霽月。雖切寤寐之思。而南涯北角。其奈事力之未逮。遙向瞻拜。只祝千萬無彊之壽。爲斯文世道計也。豈意天不憗遺。凶音遽聞耶。哀我人斯。誰因誰極。山哀浦思。萬古悠悠。 화양(華陽) 화양동으로 우암(尤菴)이 강학했던 곳인데, 여기서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를 말한다.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우재(尤齋),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생원시를 거쳐 산림(山林)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이조 판서와 죄의정 등의 벼슬을 지냈다. 저서로는 《송자대전(宋子大全)》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이항로의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초명은 광로(光老)이다. 1808년(순조8) 한성부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로는 과거를 포기한 채 향리에서 강학을 하여 최익현,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등을 길렀다. 동부승지, 공조 참판 등을 지냈다. 호남의 기정진(奇正鎭), 영남의 이진상(李震相)과 함께 조선 말기 주리철학의 3대가로 꼽힌다. 존왕양이(尊王壤夷)의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강조함으로써,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저서로는 《화서집》,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호전(胡銓) 1102∼1180. 송(宋)나라 고종(高宗) 때의 직신(直臣)이다. 상소하여 왕륜(王倫), 진회(秦檜), 손근(孫近) 세 사람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다가 축출되었다. 《宋史 卷374 胡銓列傳》 진동(陳東) 송(宋)나라의 태학생으로 자는 소양(少陽)이다. 태학생의 신분으로 흠종(欽宗) 때에는 간신인 채경(蔡京) 등을 논박하였고, 고종(高宗)이 강남으로 천도(遷都)한 후에는 명재상인 이강(李綱)을 등용하고 황잠선(黃潛善) 등을 파면할 것을 청원하는 상소를 수십 번 올렸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참형을 당하였다. 《宋史 卷455 陳東列傳》 청(疏廳)에……격려하고 1881년 김평묵이 63세 때에 영남 유생 이만손 등 1만 3천여 명이 대궐에 이르러 조정의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때 중암은 유중교와 같이 연명하여 소청(疏廳)에 글을 보내 격려하였다. 해도(海島)로 귀양 갔으니 1881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한 일로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던 일을 말한다. 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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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 어른에 대한 제문 祭勉庵崔丈文 갓과 신발이 도치되는 것은 옛날에도 간혹 있었지만 화(禍)는 송나라가 망한 것보다 참혹함이 없고, 금수의 자취30)가 횡행하는 것은 세상에 간혹 있었지만 변고는 오늘의 혼란함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이미 비상한 화와 비상한 변고가 있으니, 반드시 비상한 현인이 나와 부지하여 강상(綱常)의 한 맥으로 하여금 천하 만세토록 실추시키지 않도록 함이 있으니, 송나라 문산 선생(文山先生)31)과 지금의 면암 선생勉庵先生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선생은 벽문(蘗門)32)의 고제로 중옹(重翁)과 종유하여 연원과 문로가 가장 확실하여 말과 마음으로 전수하여 함양한 것이 두텁고 힘입은 것이 깊었으니, 온축함에 덕행이 되고 행함에 사업이 된 것이 순수하여 한결같이 정대하고 광명한 영역에서 나왔습니다. 일용의 전례(典禮)로부터 고금의 사변(事變)에 이르고, 상고의 전훈(典訓)으로부터 근세 유자의 의론에 이르기까지 망라하여 깊이 체득하고 해박하게 관통하였는데 그 원위(原委)와 곡절(曲折), 향배(向背)와 취사(取舍)는 모두 스승의 설을 독실하게 믿어 지켜서 전하여 유가의 한 가닥 정맥을 보존한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 선생이 조정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되는 것을 보고 걱정과 울분이 강개(慷慨)하여 전후의 40년 동안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한 것은 곧은 말이 아님이 없어 비록 정확(鼎鑊)33)이 앞에 있고 영해(嶺海)34)가 뒤에 있더라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비록 쓰이지는 못했지만 천한 사람이 보는 것을 용동시키고 한 시대의 마음과 눈을 일깨울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한가한 숲속에 물러나자 문하에 찾아와 학업을 청하는 이들이 온 나라에서 몰려들었는데, 타일러 부축하고 가르쳐 이끌어줌에 순순하게 하여 게을리 하지 않아 후생과 후손들로 하여금 방향이 있음을 알게 한 것은 선생이 부지해준 덕분이니, 어찌 오늘의 일에만 알맞을 뿐이겠습니까. 유운(遺韻)과 여열(餘烈)이 드러나 책에 있고 전하여 사람에게 있으니, 천년을 지나고 만세를 지나더라도 태산과 그 높음을 다툴 수 있을 것이고, 해와 별과 그 광채를 다툴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 통재라! 선생이 이 세상을 버리시니, 이 세상은 끝내 오랑캐 지역이 될 것인가? 선생이 이 사람들을 버리시니, 이 사람들은 끝내 금수 같은 부류가 될 것인가? 하늘이 이미 선생을 낳아 강상이 실추되지 않도록 하였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강상의 도가 이에 다시 천하에 크게 밝아질 것인가? 하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기의 운수는 기필할 수 없으니, 모르겠으나 선생의 영령이 원기를 되돌려 조진(朝眞)35)하여 귀신을 합하고 조화를 도와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만회하고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의림(義林)은 기구하게 남은 목숨이 천리에 떨어져 있어 비록 책상을 지고 문하에 찾아가 배운 날은 없지만 편지를 올려 가르침을 청한 것은 끊임없이 이어져 쇠하지 않았으니, 지금 30여 년이 됩니다. 재작년에 이르러서는 질병과 상사가 이어지고 거듭하여 1년 사이에 거의 없었던 날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까이로는 같은 도내에서 달려가 위로 드리지 못하였고, 멀리로는 절역(絕域)의 밖에 달려가 안부도 드리지 못하였으며, 크게 두렵고 크게 놀라운 일이 종종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편안히 집에 있으면서 알지도 못하였으니, 저버린 죄가 여기에 이르러 속죄할 수 없습니다. 제 사가의 전후 상장(喪葬)은 올해에 비로소 끝났으니, 이로부터 거의 한가한 날이 있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였는데, 문득 몸에 병이 심하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남을 시켜 제문을 가지고 가 감히 저의 무궁한 슬픔을 고하게 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冠屨倒置。古或有之。而禍莫慘於有宋之亡。蹄迹交横。世或有之。而變莫甚於今日之亂。旣有非常之禍。非常之變。則必有非常之賢。出而扶持之。使綱常一脉。不墜於天下萬世。宋之文山先生。今之勉庵先生。卽非其人耶。先生以蘖門高弟。重翁遊從。淵源門路。最爲端的。口傳心授。涵厚資深。蘊之爲德行。行之爲事業者粹然一出於正大光明之域。自日用典禮。至古今事變。自上古典訓。至近儒議論。包羅浸淹. 該貫愽通。而其原委曲折。向背取舍。皆篤信師說。守而傳之。以存儒門一條正脉者。先生賜也。先生立朝。曾未幾日矣。見時事日非。憂憤慷慨。前後四十年。知無不言。言無不讜。雖鼎鑊在前。嶺海在後。而莫之顧也。其言雖不見用。而有以聳褐夫之觀瞻。醒一世之心目者。先生賜也。其退閑林樊也。及門請業。傾國坌集。誘掖提絜。諄諄不倦。使後生來裔。知有方向者。先生扶持之力。豈適今日事而已哉。遺韻餘烈。著之在書。傳之在人。經千秋閱萬世。而可以與泰岳爭其高矣。可以與日星爭其光矣。嗚呼痛哉。先生棄斯世。斯世其終爲夷狄之域耶。先生棄斯人。斯人其終爲禽獸之類耶。天旣降先生。使綱常不墜。則或者因此而綱常之道。乃復大明於天下耶。天心未可知。氣運未可必。未知先生之靈。返元朝眞。合鬼神贊造化。有以挽回轉移於㝠㝠之中也耶。痛矣痛矣。義林崎嶇殘生。隔在千里。雖未有負笈踵門之日。而納書請敎。源源不賛。今三十有餘年耳。至再昨歲。疾病喪禍。連綿荐疊。一年之內。殆無間日。是以近焉。而不得奔勞於同省之內。遠焉而不得趍候於絕域之外。大震懼大驚動。種種至此。而恬然在家而不知。辜負至此。無以可贖。私家前後喪葬。臨歳始畢。自謂從此而庶有間日。旋以身憂沈苦莫振。竟不免因人操文。敢告區區無窮之悲。 금수의 자취 오랑캐가 마음대로 설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청나라나 일본 등의 외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송(宋)나라 구규(丘葵, 1244∼1333)의 시에 "거북 규범, 말 그림 같은 상서가 모두 안 보이니, 짐승과 새 발자국만 참으로 분분하네.[龜範馬圖俱寂寂, 獸蹄鳥跡正紛紛.]"라고 하였다. 《釣磯詩集》 문산 선생(文山先生) 남송(南宋)의 충신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을 말한다. 문산은 그의 호이다. 그는 송 이종(宋理宗) 때 우승상(右丞相)으로 화의(和議)하러 원(元)의 궁중에 갔다가 포로가 되었으나 밤에 도망쳐서 온주(溫州)로 돌아왔다. 익왕(益王)이 즉위하여 그를 좌승상(左丞相)에 임명하고 강서(江西)의 도독(都督)으로 삼았으나 또 원군에게 패전하였다. 위왕(衛王)이 즉위하여서는 신국공(信國公)의 봉(封)을 받고 조양(潮陽)에 주둔하였다가 원장(元將) 장홍범(張弘範)에게 패전하여 포로가 되어 연경에 3년 동안 억류(抑留)되었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신의 충절(忠節)을 나타내고 죽었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정확(鼎鑊) 형벌의 도구로 사람을 삶아 죽이는 가마솥이다. 영해(嶺海) 중국 오령(五嶺)의 남쪽이나 근해(近海)의 변지(邊地)로, 험난한 땅 혹은 궁벽한 귀양지를 가리킨다. 조진(朝眞) 도교에서 진인(眞人)을 알현하는 것, 혹은 불가(佛家)의 좌선(坐禪)처럼 도가의 방식대로 수련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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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남 최원칙에 대한 제문 祭溪南崔元則文 오호라! 공은 말세에 우뚝하게 태어나 천품이 도에 가까웠고 문로가 이미 발라 능히 함양함에 방도가 있었습니다. 단후(端厚)하고 장묵(莊黙)하여 위대하게 산립(山立)36)의 기상이 있었고, 온량(溫良)하고 화락[愷弟]하여 성대하게 봄기운이 불어오는 기운이 있었습니다. 바라봄에 공경할 만하니 도가 있는 기상이 되는 줄 알겠고, 나아감에 사랑할 만하니 덕 있는 군자가 되는 줄 알겠습니다. 나이가 더욱 들수록 덕은 더욱 성대하고, 몸이 더욱 막힐수록 도는 더욱 형통하여 사문의 일맥을 우주가 회양(懷襄)37)하는 가운데서 실추되지 않도록 함이 있었으니, 공은 여기에 대해서는 아마 유감이 없어 생순사안(生順死安)38) 처를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 통재라! 사촌(沙村)39)에서 입설(立雪)40)하고 진구(珍邱)에서 스승을 모셨으니, 옛적 어느 날이었던가? 산이 무너졌으니 누구를 우러를까? 벗들을 떠나 쓸쓸히 홀로 지낸지 몇 년이 되자, 옛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을 탄식하고 동지들이 더욱 멀어짐을 개탄하여, 이에 수시로 강론하며 모일 계획을 하였는데, 영남의 신안사(新安社)·뇌룡정(雷龍亭)과 호남의 담대헌(澹對軒)·영귀정(詠歸亭), 방장산·쌍계사·화엄사 등이 모두 그런 곳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선 세상이 혼란하다고 정지하였으니, 어찌 혼란이 끝날 기약이 없고 공이 이미 먼저 갈 줄 알았겠습니까. 우리들이 백수(白首)의 여생에 간관(間關)41)으로 서로 따르며 구구한 세한(歲寒)의 계획42)으로 삼았던 것이 지금은 모두 선천(先天)의 뜬구름이 되었습니다. 뒤에 남은 모래와 자갈 같은 사람43)은 누구를 통하며 누구44)를 의지하겠습니까. 더구나 회양(懷襄)의 경색이 나날이 더욱 심하여 눈으로 차마 볼 수 없고 귀로 차마 들을 수 없음에랴! 단지 덜컥 죽어 공과 함께 팔뚝 잡고 나란히 유람하기를 살았을 때와 같이하려고 하니, 조만간 공은 기다리시라. 嗚呼。公挺生叔世。天資近道。門路旣正。克養有方。端厚莊黙。偉然有山立之象。溫良愷弟。藹然有春噓之氣。望之可敬。知其爲有道氣象。卽之可愛。知其爲有德君子。年彌衰而德彌盛。身益否而道益亨。使斯文一脉。有以不墜於宇宙懷襄之中者。公其於此。庶乎無憾。而可以爲生順死安處矣。嗚呼痛哉。沙村立雪。珍邱侍瑟。昔何日矣。山頽安仰。離索有年。歎舊業之未卒。慨同志之愈遠。乃爲隨時講聚之計。嶺之新安雷龍。湖之澹對詠歸。方丈雙溪華巖。皆非其地耶。行之未幾。姑以世亂停止。豈知亂無了期而公已先逝耶。吾輩以白首殘年。間關相從。以爲區區歲寒之計者。今皆爲先天浮雲矣。沙石在後。誰因雖依。況懷襄景色。日甚一日。目不忍見。耳不忍聞。只欲溘然歸化。與公把臂倂遊。如在世時。早晚公其待之。 산립(山立) 주희(朱熹)의 〈정명도화상찬(程明道畫像贊)〉에 "양기가 만물을 기르듯 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쟁쟁하였네.[揚休山立, 玉色金聲.]"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회양(懷襄) 회산양릉(懷山襄陵)의 준말로, 재앙이 매우 큼을 뜻한다.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넘실거리는 홍수가 널리 해를 끼쳐 거세게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는다.[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襄陵.]"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생순사안(生順死安) 도에 입각하여 살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논어》 〈이인(里仁)〉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말에 대해서 주희(朱熹)가 "도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니, 참으로 이것을 얻어 듣는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하고 죽어서는 편안하여 다시 남은 한이 없을 것이다.[道者事物當然之理, 苟得聞之, 則生順死安, 無復遺恨矣.]"라고 주석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천리(天理)에 따라 일을 행하고, 죽을 때에는 마음 편히 부끄러움이 없다.[存吾順事, 沒吾寧也.]"라고 사용하였다. 사촌(沙村)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마을이다. 입설(立雪) 정문입설(程門立雪)의 준말이다. 송나라 유작(游酢)과 양시(楊時)가 처음 정이(程頤)를 찾아갔을 때 마침 정이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므로 두 사람은 인기척을 내지 않고 서서 기다렸는데,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문밖에 내린 눈이 한 자가량이나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정문입설'이라는 유명한 고사로,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宋史 卷428 楊時列傳》 간관(間關) 《시경》 〈소아(小雅) 차할(車舝)〉에 "덜커덩 수레 걸쇠여, 예쁜 막내딸을 생각하여 가도다.[間關車之舝兮, 思變季女浙逝兮.]"라는 말이 나오는데, 수레에 걸쇠를 설치하는 소리이다. 세한(歲寒)의 계획 세한은 해가 저물어 가는 한겨울의 매운 추위를 이르는 말인데, 노년의 지조를 비유한다. 《논어》 〈자한(子罕)〉의 "해가 저물어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뒤에……사람 원문의 "사석재후(沙石在後)"를 풀이한 말이다. 진(晉)나라 왕탄지(王坦之)와 범계(范啓)가 서로 앞을 양보하면서 걸어가다가 뒤에 처지게 된 왕탄지가 "곡식을 까불며 바람에 날리면 겨와 쭉정이가 앞에 있게 마련이다.[簸之颺之, 糠粃在前.]"라고 한마디 하자, 범계가 "조리질을 하며 물에 흔들면 모래와 자갈이 뒤에 있게 마련이다.[淘之汰之, 沙礫在後.]"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排調》 누구 저본에는 '雖'로 되어 있으나 '誰'의 오류로 보고 수정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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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30) 유 어른【중교】께 올림 上省齋柳丈【重敎】 연전에 두 통의 편지를 보낸 것은 실로 오랫동안 앙망해 오던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매번 전해지지 못할까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함평(咸平)의 인편을 통해 뜻밖에 은혜로운 편지를 보내 종이 가득 온갖 말을 나열해 주시니, 그 순순하고 측달한 말씀은 비록 10년 동안 강석 사이에서 부지런히 배우며 정성을 다한 자라도 어찌 이보다 더 하겠습니까. 아, 덕이 성대하고 예가 공손한 문장(文丈)께서 멀리 있는 사람을 잊지 않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 지극한 뜻을 알았습니다. 돌아보면 이렇게 무능하고 어둡고 용렬한 사람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삼가 사양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소생은 젊어서 노사(蘆沙 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는데 학업을 마치기 전에 갑자기 스승님이 돌아가시는 슬픔을 만났습니다. 저는 삼가 생각건대, '천하가 도도하게 흐르니, 이 몸을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화서(華西) 문하의 두세 군자일 따름이다.'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신일신과 집안은 채무로 나락으로 떨어져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느라 거처할 겨를이 없는 지 십수 년 되었습니다. 비록 문하에 찾아가 인사드리지는 못했지만 기대하고 기다리며 어찌 하루라도 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위엄이 매우 엄절하고 예수(禮數)가 본디 있으니, 어찌 감히 스스로 총애를 믿고 갑자기 번거롭게 해 드리는 죄를 짓겠습니까. 이것이 이전 편지에서 아뢰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감히 소략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윽고 편지를 주고받을 길이 열려 묻고 가르치는 교분을 이미 맺었으니 구구한 마음에 위로되고 흡족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보내온 편지에 "학문을 논하자면 주리(主理)를 큰 종지(宗旨)로 삼고, 시의(時義)를 논하자면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을 제일의로 삼는다."라고 하였고, 또 "우리 유자의 학문은 실로 나아감에 바름을 얻는 것을 급선무로 여기고 바름을 얻은 뒤에는 또 반드시 덕을 증진하고 학업을 닦는 절도가 두루 다하여 치우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천고에 폐할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고 오늘날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진정한 처방전이니, 감히 명심하여 좌우명으로 삼아 아침저녁으로 돌아보고 살피는 방도로 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리(主理)" 2자는 소생이 일찍이 노사 선생의 문하에서 들었고, 나중에 또 벽계(檗溪) 선생의 편지에서 보았습니다. 아, 이(理)는 실로 기(氣)의 주재이니, 어찌 사람이 주재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세상에 주기(主氣)의 폐단이 지극합니다. 태극을 논하면 대기(帶氣)라고 하고, 오상(五常)을 논하면 인기(因氣)라고 하며, 명덕(明德)을 논하면 형이하(形而下)라고 하며, 중화(中和)를 논하면 화(和)를 기로 삼고, 비은(費隱)을 논하면 비(費)를 기로 삼습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에 이르러서는 무릇 용(用)에 발하여 행(行)에서 베풀어지는 것이 조금이라도 조리가 있고 조금이라도 신묘하면 모두 기라고 하면서 마침내 이(理)를 미련하고 흐릿한 것으로 삼아 기식(氣息)이 없는 한 덩어리 죽은 물체로 여기니, 이것이 과연 강충(降衷), 병이(秉彛), 서질(敍秩), 명토(命討)의 의리입니까. 두 선생이 고심하여 매우 힘써서 사문(斯文)과 세도를 위해 계책을 세운 것이 실로 굳건하여 어그러지지 않고 질정해도 의심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벽계(檗溪)의 문하에 다행히 여러 노련하고 덕이 훌륭한 분들이 있어 또 이어서 밝게 서술하였고, 영호남의 선비들이 또 왕왕 믿고 따르는 자가 있어 두 선생의 논의가 세상에 유행하게 되었습니다.연간에 삼가 문장(文丈)의 말씀을 들으니 심(心)은 기(氣)이지 이(理)가 아니며, 물(物)이지 칙(則)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설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문장께서 사문(師門)의 종지(宗旨)를 받아 힘써 주리론(主理論)을 주장하시지만 그 논의가 만약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그 사이에 달리 의의가 있는 것입니까? 대략 비루한 견해를 아뢰어 가부의 명을 듣겠습니다. 대저 이와 기는 통틀어 말한다면 기는 다만 이 가운데의 일이니 나란히 하거나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나누어 말한다면 형상(形上) 형하(形下)가 이것입니다. 그러나 주자(朱子)가 이 형상 형하의 뜻을 논하여 말하기를 "형의 유무를 가지고 말하면 물과 이가 서로 단절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형체가 없는 것이 이가 되는 것을 알고 형체가 있는 것은 처음에 도가 아님이 없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단절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심이라는 물건은 지극히 허령하여 당체(當體)에 있어서는 실로 기의 정상(精爽)31)이 되고 기타 질실(質實)한 골자(骨子)는 어찌 일찍이 이 이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선각(先覺)이 어떤 때는 이로 말하였다가 어떤 때는 기로 말한 것이 실로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 어찌 유독 그 기가 되는 것만 인정하고 이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까. 게다가 일찍이 문장(文丈)께서 완이(莞爾) 어른과 저의 스승님께서 문인과 문답한 몇 조항의 말을 논한 것을 구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사람을 경계하여 깨우친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가만히 노사(蘆沙)의 뜻을 살펴보면 흡사 선과 불선이 함께 태극에 근본하는 듯하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스승님의 뜻이 전혀 아닙니다. 스승님의 말씀 가운데 "'선악은 모두 천리(天理)이다.'라고 한 것은 두 가지가 나란히 하여 각자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천하에는 본래 악이 없다는 것인데 이른바 악이란 것은 바로 선의 얼자(孼子)이니, 얼자는 일찍이 자기의 혈통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악 또한 천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32)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천하에는 두 가지 종자가 있을 수 없으니, 악이라 할지라도 또한 선에 뿌리를 두고 생겨난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원두(原頭)로부터 말한다면 이(理)는 본래 기를 낳고 유행(流行)으로부터 말한다면 기는 혹 이를 해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평소에 늘 하신 말씀입니다. 「답김경범문목(答金景範問目)」에 "우매한 자를 위해서 한 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선한 것은 이(理)에 근본하고 불선한 것은 기에서 만들어진다고 한 것이다.……"라고 한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저 평상적으로 말한다면 불선은 기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괜찮지만,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불선 또한 이(理)에서 생겨납니다. 이를테면 정자(程子)가 이른바 "악 또한 성(性)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대저 어찌 정자의 말을 가지고 선악이 태극에서 함께 근본하였다고 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다면 그래도 성악설을 주장하지는 않을 텐데 어찌 스승님께서 이러한 말을 하였겠습니까. 또 완이(莞爾) 어른의 문목을 보니 "일(一)은 이(理)가 관통함이요, 만(萬)은 형(形)이 다른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어찌 만 가지로 나뉘는 이(理)가 있은 이후에 만 가지 다름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설은 저의 생각에 선명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일(一)이라는 것은 만 가지가 모인 것이고, 만(萬)이라는 것은 일이 나누어진 것이니, 어찌 일을 이(理)로 삼고 만을 형(形)으로 삼겠습니까. 만(萬)은 일(一)이 나누어진 것이니 만 가지로 나뉘는 이치가 이미 일(一)에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본래 만 가지로 나뉘는 이(理)가 없어서 때에 임하여 배정해서 만 가지 다름에 응하겠습니까. 문장(文丈)의 답서를 보니, 한마디 말도 옳지 않다고 한 것이 없었습니다. 한 부(副)의 강토(講討)가 이미 답서 외에 있는 것입니까? 바라건대, 재량하여 가르쳐 주시어 몽매한 이를 깨우쳐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다시 바라건대 도를 위해 더욱 보중하십시오. 年者再度奉書。固出於積仰之私。而程途遙夐。每疑其不免浮沈。月前咸平便。不謂辱賜惠幅。滿紙臚列極其諄惻。雖十年席間服勤致情者。何以加此。於以見文丈德盛禮恭。不忘遐遠。不遺細微之至意也。顧此悾悾昧劣。何以當之。切欲解使去已而不可得也。生少師蘆沙先生。未及卒業。而遽遭山樑之痛。區區竊念寰宇滔滔。可以爲此身依歸之地者。惟是華西門庭數三君子而已。然而身家債業。墜在於水山雲雷之中。流離瑣尾。不遑其居。以來十數年矣。雖未能抱刺踵門。而期擬等待者。何嘗一日而忘也。然等威切嚴。禮數自在。則豈敢自恃隻愛。而遽犯煩瀆之罪乎。此前書所以不能不達。而亦不敢不略也。旣而一往一復。書路已開有問有敎。契分已定。區區慰洽。不容名喩。下喩有曰。論學問則以主理爲大宗旨。論時義則以斥羊爲第一義。又曰吾儒之學。固以趨向之得正爲急先務。而及其待正。則又必以進修節度之周盡無偏爲貴。此是千古不刊之典要。今日對證之眞劑。敢不書紳銘座。爲日夕顧諟之方也。然主理二字。生嘗聞之於蘆沙先生之門矣。後又得見於檗溪先生之書矣。嗚呼。理固氣之主。何待乎人之主之也。世之主氣之獘極矣。論太極則謂之帶氣。論五常則謂之因氣。論明德則謂之形而下。論中和則和爲氣。論費隱則費爲氣。以至三綱五倫。凡發於用施於行者。才有條理。才涉神妙。皆謂之氣。遂以理爲冥頑儱侗。没氣息底一塊死物。此果降衷秉彛敍秩命討之義耶。二先生所以苦心極力。爲斯文世道計者。實可以建不悖而質無疑矣。檗溪之門。幸有諸老長德。又從而紹述之。嶺湖士子。又有往往信從者。庶幾二先生之論。見行於世矣。年間伏聞文丈之言。以爲心氣也。非理也。物也。非則也。未知此說果爾否。文丈受師門宗旨。力主主理之論。而其論若果如此。則抑別有意義於其間耶。略陳鄙見以聽可否之命。夫理與氣。統言之。則氣只是理中事。非比倂對峙之物也。分言之。則形上形下是也。然朱子論此上下之義曰。若以無形有形言之。則便是物與理相間斷了。若知無形之爲理。而不知有形之未始非道。則不其幾於間斷乎。心之爲物。至虛至靈。在當體。固爲氣之精爽。而其他骨子實頭處則何嘗不是理耶。此先覺所以或以理言或以氣言者。固不一二矣。今何獨與其爲氣而不與其爲理也。且曾得文丈與莞爾丈論鄙師門與門人問答數條語。讀之。其警發人。甚多。但其中有曰。竊觀蘆沙之意。恰似善不善同根於太極。此則甚非先師之意也。先師之言曰。善惡皆天理云者。不是兩端倂立。各自出來。正以天下本無惡。而所謂惡者。乃善之孼子。孼子未嘗非已之血脈。故惡亦不可不謂之天理也。又曰。天下不容有兩種子。雖慝亦根於淑而生者也。又曰。自原頭言。則理本生氣。自流行言。則氣或害理。此其平日雅素之言也。至若答金景範問目有曰。爲昧者言。不得不曰。善者根於理。不善者作於氣云云。夫平說則謂不善作於氣可也。極言之則不善亦生於理。如程子所謂惡。亦不可不謂之性也。夫豈以程子之言謂善惡同根於太極乎。稍有知識者。猶不爲性惡之說。豈先師而有是言乎。又見莞爾丈問目有曰。一者理之通萬者。形之異。又曰。豈有萬分之理而後。可以酬應萬殊乎。此說。於鄙意多未塋。一者萬之總。萬者一之分。豈以一爲理而以萬爲形乎。萬爲一之分。則萬分之理。已具於一矣。豈本無萬分之理。而臨時排定。以應萬殊乎。見文丈答書。無一言以爲不然者。未知一副講討。已在於答書之外耶。望乞俯賜裁敎。以開蒙蔀。如何。天氣漸寒。更乞爲道增重。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로,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이다. 한말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하였고, 심설(心說)에 대한 학술 논쟁을 전개하는 등 학문에 전념하였다. 정상(精爽)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마음은 기의 정상이다.[心者, 氣之精爽也.]"라고 하였는데, 정상은 일종의 신명(神明)과 같다. 마음은 이 신명이 있어서 지각운용(知覺運用)의 묘(妙)를 발현하게 된다. 선악은……없다 이 내용은 《노사집(蘆沙集)》「담김경범(答金景範)」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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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2) 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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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十二月初七日 前手標右手標事亡夫生時得用錢未報条二十兩每朔五分例限明年九月晦內並本利備報之意如是成標爲去乎日後若有異言則以此憑考事標主自筆喪人朴在文 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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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殘空紛冱自切駕舟之懷只固間隔未能遂意適有獻勺敢請賁惠伏冀無孤素望爲此謹控庚臘望日弟田鎰健孫斗宣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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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生員主前疏上제상ᄒᆞ옵고목화三十斤이슈가ᄒᆞ온목화온바니목화즉반ᄂᆡ길할차로둔목화거로달은ᄉᆞᄅᆞᆷ의게방매할쳐지오나화지가호품이기로통긔ᄒᆞ오니직지몸소나려와졔셔보시고가져가기되갑신즉금잇셔야할테오니ᄇᆡ가금일발션할테기로양고ᄒᆞ오니졔ᄇᆡᆨᄉᆞᄒᆞ고ᄂᆡ려오소셔甲寅十二月卄七日姨侄斗燁拜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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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惟辰下靜體動止候連護康旺伏慰且溯不任下忱 記下等公私悶惱私悶何煩就悚白今番道 啓臚列時尊宅請 褒事伏不勝感頌之地以此等事每當如此之時則本廳禮目錢參拾兩乃是應酬之例故玆以委告此回 下施俾得公用之地切仰切仰而 啓草與件記昭詳謄上覽則可想念幷 下諒處之若何餘不備謹拜候庚午正月初二日 記下 白樂弼等首拜就其中今番尊宅之居首參榜尤切感頌而已扶安金 生員 宅下執事入納完啓書廳?上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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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禮言卽便承拜惠䟽從謹審春㬉孝候連爲万支慰賀區區實愜拱祝記下姑依前羕而已耳就來錢貳百兩依到而此阮?(段)去晦爲限今未結末中間見督將何堪過期於不日上送如何如何一首黃鷄緊感緊感弘斌兄常時不平云万万悶鬱/悶鬱/耳餘姑留不備謝疏禮庚午二月一日 記下 李度聲拜拜(皮封)扶堂邨 孝廬回納完西謹謝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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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谷扁額後題吾宗族中特有孝烈世襲家庭者卽士人洛坤之家余愛其香德而以蘭谷二字扁其楣夫蘭者生於幽谷不爲無人而不芳今乃獨茂與衆草爲伍孔夫子感嘆之辭也生於幽谷竟歲無人採含薰祇自知朱夫子嘆美之詩也公之祖考學生公孝感神明鳥降靈餌晨夕上墓雙膝穿階祖妣孺人崔氏孝烈卓異再嚼血指一家雙行道剡登 聞與公同時 命閭又其從祖母孺人朴氏廬於姑墓殉於夫忌杲洌虎感登聞命閭此三孝烈旣爲闡揚且其先考學生公文辭夙就三中初試又孝行特異朔望省掃且今日公亦追先範而今七十七歲雖風雪中期於朔望不懈且是老境難行之事也孰謂靈芝之無本源哉觀此則其平日所守之規修德之香不待言而知矣今其蘭谷之號不亦宜乎若其遯世不見知而不悔人不知而不慍是可謂不爲無人而不芳者也不求人知不患莫己知亦可謂含薰自知者也余以是每喜讚歎因爲之記矣歲在丙子三月下澣扶寧金益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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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 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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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에게 보냄 寄憲孫 네가 특별히 방종하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습관이 없고 집안을 잘 이끌고 애비의 뜻을 잇는 일194)에 마음을 두는 것을 항상 보게 되니, 이 때문에 내가 만년에 신세가 조금 안정되고 집안은 조금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내가 너에게 위안을 받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느냐. 사방의 친구들도 또한 이따금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다. 다만 너는 평소 용모와 안색의 사이에 온화한 기운이 적기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고 일에 대응할 때 온당하지 못한 단서가 없지 않으니, 이것이 너의 단점이다. 이미 그 단점을 알았으니, 어찌 온 힘을 다해 맹렬하게 살피지 않으랴. 《시경》에서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이여, 오직 덕의 기반이네."195)라 하였으니, 대저 온화함이란 천지가 사물을 많은 마음이요, 우리 사람이 마음에 지녀야할 기초이다. 천하의 물건은 양을 향하고 음을 등지며 온화함을 좋아하고 썰렁함을 싫어하지 않음이 없는데, 더구나 사람 마음의 향배는 어찌 이에서 벗어남이 있겠느냐. 지금부터 마음과 뼈에 새겨서 냉정하고 차가운 낯빛을 얼굴에 드러내지 말고 절박한 말은 입에서 내지 말며, 틈틈이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여 학문을 배양하며 또한 나의 허물을 말해 주고 나의 부족한 점을 충고해 주는 많은 도움을 줄 정직한 벗과 교유한다면, 이것이 네 한 몸의 복이며 한 집안의 경사가 될 것이니,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하라. 옛날 여동래는 젊어서 많이 격노하였다. 하루는 《논어》의 "자신에게 책망을 두터이 하고 남에게 책망을 가볍게 한다."는 구절을 읽고 나서는 죽을 때까지 격노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기질을 변화하는 방법이다.196) 너 또한 동래 선생처럼 기질을 변화해야 한다. 每見汝別無放逸浮浪之習。而留心於克家幹蠱之業。此我於晩年。身勢稍爲安帖。家容稍爲安集也。吾之所以慰望於汝者。其心爲何如。而四方知舊亦不無種種稱道者矣。但汝平日容色之間。少溫和之氣。是以接人應物。或不無未穩之端。此汝之所短也。旣知所短。豈不十分猛省乎。詩曰。溫溫恭人。惟德之基。夫溫溫者。天地生物之心。而吾人存心之基也。天下之物。莫不向陽而背陰。好溫而惡寒。況人情向背。豈有外於此乎。自今以往。銘心刻骨。冷涼之色。勿形於顔。迫切之言。勿出於口。間間讀書玩理以培養之。又從直友强輔。能言吾過。能攻吾闕者。與之遊逐。此汝一身之福。一家之慶也。千萬勉勉。昔呂東萊。少多暴怒。一日讀論語躬自厚而薄責於人之語。終身不暴怒。此是變化氣質法。汝亦變化質氣。如東萊先生也。 애비의 뜻을 잇는 일 원문의 '간고(幹蠱)'는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여 아버지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업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고괘(蠱卦) 초육(初六)〉에 "초육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되리라.〔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无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온화하고……기반이네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동래는……방법이다 여조겸이 젊었을 때에 기질이 거칠고 포악하여 밥상이 맘에 들지 않으면 기물을 부수곤 하였다. 뒷날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한가할 때에 《논어》를 읽었는데, 〈위령공(衛靈公)〉의 "자신의 잘못은 혹독하게 꾸짖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이해해 주도록 노력하면 다른 사람의 원망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크게 깨달아 그 뒤로는 갑자기 성내는 버릇을 고치게 되었다. 《心經 卷1 損大象懲忿窒慾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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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酉十一月二十五日到付全州儒生▣…▣▣▣▣(宋鎭澤)右謹言痛迫情▣…▣泰仁縣居李太漢偸塚▣…▣屢度鳴寃是乎則伏想 洞察是在果頃日良中本官圖形報狀 題敎內宋民之前後文軸若是昭然李▣▣(民之)生臆可知卽爲督掘事 行下敎是故卽往到付是乎則本官家發差跟捉是乎所凶彼李哥百般謀避一向頑拒 營題之下寧容若是前後文軸玆敢帖呈伏乞更加 洞察自官督掘之意 嚴明題下俾雪寃恨之地千萬泣祝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癸酉十一月 日巡使[着押][題辭]依前題督掘事初一日山在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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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 및 제군들과 작별하며 4수 別玄狂及諸君【四首】 해가 저물어 새봄으로 바뀌는 걸 보니 歲行將見換新春인간사 때에 따라 감회가 새로워라 人事隨時覺感新내 집에 세 봉우리 목가산544)을 보지 말게 毋我三峯看木假그대들 백번 단련해 금단 얻었다 인정하네 許君百鍊得金眞석별할 때에 몹시 서글퍼하기보다는 與其惜別生怊悵마음을 알고 몸을 잊는 게 어떻겠는가 何似知心忘骸身부지런히 공부해 천성을 회복하길 기다렸는데 好待返天勤勉學얼마 뒤에 바닷가에서 전쟁이 일어나누나 俄聞海上起兵塵외진 곳이라 평소에 찾아오는 이 없으나 僻地無人見過尋때로 젊은 선비들545) 숲처럼 모여든다네 有時衿佩會如林뒤에 시든 솔잎은 겨울을 지낸 모습이고 後凋松葉經冬色백 번 꺾인 계곡물은 바다 속에 이른다네 百折溪流到海心증언546)이 선한 일인지는 진즉 알았으나 久識贈言爲善物화답은 적은데 고상한 시구라 깜짝 놀랐네 忽驚寡和是高吟눈 오는 날에 송별하니 남은 인연 중한데 雪天送別餘緣重땅 밑에는 봄이 와서 벌써 시월547)이라네 地底陽春已剝陰요사이 쇠잔한 병증이 한사코 찾아드는데 邇來衰病苦侵尋유독 나이 들어 백발이 가득함을 느낀다네 偏感年華雪滿林누각은 푸른 봉우리를 묶어 땅에서 솟은 듯 樓括峯靑超地面달은 어두운 밤기운 몰아 하늘 한복판에 이르네 月驅夜黑到天心〈아양곡〉548)을 지금 세상엔 연주하기 어려운데 峨洋今世難爲奏〈양보음〉549)을 어떤 사람이 홀로 읊겠는가 梁甫何人獨自吟이 모임의 슬픔과 기쁨도 묵은 자취 되었으나 此會悲歡陳跡又우군이 먼저 이미 산음의 모임을 기록했었네550) 右軍先已記山陰어느 해에 군자가 띠 풀의 뿌리 뽑으려는지551) 何年君子拔茹茅책 속에서 아득히 정신으로 교분을 나눈다네 卷上遙遙神有交심법을 누가 물속의 달에게 전할 수 있으랴 心法誰能傳水月세풍은 아교로 황하를 맑게 하는 것처럼 어렵지552) 世風難得試河膠중년 들어 귀밑털이 희어짐을 탄식하지 말게 休歎雪鬢過中歲최후에 있는 남은 인연을 반드시 기다리리라 定待餘緣在末梢어찌 꼭 창려처럼 감개함이 많아서 那必昌黎多感慨불평스런 문자를 차가운 교외로 보내랴553) 不平文字送寒郊 歲行將見換新春, 人事隨時覺感新.毋我三峯看木假, 許君百鍊得金眞.與其惜別生怊悵, 何似知心忘骸身?好待返天勤勉學, 俄聞海上起兵塵.僻地無人見過尋, 有時衿佩會如林.後凋松葉經冬色, 百折溪流到海心.久識贈言爲善物, 忽驚寡和是高吟.雪天送別餘緣重, 地底陽春已剝陰.邇來衰病苦侵尋, 偏感年華雪滿林.樓括峯靑超地面, 月驅夜黑到天心.《峨洋》今世難爲奏, 《梁甫》何人獨自吟?此會悲歡陳跡又, 右軍先已記山陰.何年君子拔茹茅? 卷上遙遙神有交.心法誰能傳水月? 世風難得試河膠.休歎雪鬢過中歲, 定待餘緣在末梢.那必昌黎多感慨, 不平文字送寒郊? 세 봉우리 목가산(木假山) 산의 아름다움과 좋은 기운을 예찬하였다. 소순(蘇洵)의 〈목가산기(木假山記)〉에 "내 집에 세 봉우리의 목가산이 있는데 내가 매양 생각해보니 운수가 그 사이에 있는 듯하다.〔予家, 有三峰, 予每思之, 則疑其有數存乎其間.〕"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젊은 선비들 원문의 '금패(衿佩)'는 푸른 옷깃과 푸른 패옥(佩玉)을 말한 것으로 푸른 복장(服裝)을 한 청년 학도를 가리킨다. 《시경》 〈정풍(鄭風) 자금(子衿)〉에 "푸르디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길이 생각하는 내 마음이로다. 비록 나는 가지 못하나, 그대는 왜 소식을 계속 전하지 않는고. 푸르디푸른 그대의 패옥이여, 길이 생각하는 내 마음이로다. 비록 나는 가지 못하나, 그대는 어이하여 오지 않는고.[靑靑子衿, 悠悠我心. 縱我不往, 子寧不嗣音? 靑靑子佩, 悠悠我思. 縱我不往, 子寧不來?]"라는 말이 나온다. 증언(贈言) 고대에 지인들과 이별할 때 서로에게 좋은 말[言]을 주었다. 뒤에 증시(贈詩)나 증서(贈序) 등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사기》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노자(老子)가 공자(孔子)를 전송하면서 "부귀한 자는 사람을 보낼 때 재물을 주고, 어진 사람은 사람을 보낼 때 말을 준다고 나는 들었다.〔吾聞富貴者送人以財, 仁人者送人以言.〕"라고 한 고사에서 온 것이다. 시월(十月) 원문의 '박음(剝陰)'은 음(陰)이 양(陽)을 다 갉아먹었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음이 꽉 찬 상태인 순음(純陰)으로 이루어진 곤괘(坤卦)에 해당하는 음력 10월을 의미한다. 아양곡(峨洋曲) 거문고 연주곡의 이름으로,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을 말한다.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자 종자기(鍾子期)가 "높고 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자 "넓고 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 양보음(梁甫吟) 악부가사(樂府歌辭)의 이름으로, 예부터 전해 온 만가(挽歌)이다.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일찍이 지어 노래한 가사가 특히 유명한데, 그 내용은 곧 제 경공(齊景公) 때 안영(晏嬰)이 천하무적의 용력(勇力)을 지닌 공손접(公孫接),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 세 용사(勇士)에게 기계(奇計)를 써서 그들에게 복숭아 두 개를 주어 서로 다투게 하여 끝내 모두 자살하도록 만들었던 일을 몹시 안타깝게 여겨 노래한 것이다. 《삼국지(三國志)》 권35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 의하면 "제갈량은 몸소 농사를 지으면서 〈양보음〉 읊기를 좋아했다.[亮躬耕壟畝, 好爲梁父吟.]"라고 하였다. 우군(右軍)이……기록했었네 우군은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키며, 산음은 중국 절강성 회계현에 있는 지명이다. 영화(永和) 9년 삼짇날 왕희지(王羲之)가 당시의 명사(名士) 40여 명과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모임을 갖고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풍류를 즐겼던 일을 〈난정기(蘭亭記)〉라는 글로 기록해 놓은 것을 말한다.《古文眞寶 後集 卷1》 띠 풀의……뽑으려는지 뜻을 같이하는 현인들이 때를 만나 한꺼번에 나온다는 의미이다. 《주역》 〈태괘(泰卦) 초구(初九)〉에 "엉켜있는 띠 풀의 뿌리를 뽑는 것과 같아 동류들과 함께 감이니, 길하다.[拔茅茹, 以其彙征, 吉.]"라는 말이 보인다. 아교(阿膠)로……어렵지 아교(阿膠)는 검은 당나귀 가죽을 진하게 고아서 굳힌 약품으로, 여기에는 흐린 물을 맑게 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인데, 작은 양의 아교로는 많은 물을 맑게 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신(庾信)의 〈애강남부(哀江南賦)〉에 "아교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게 할 수 없다.[阿膠不能止黃河之濁]"라고 하였다. 창려(昌黎)처럼……보내랴 창려는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호이다.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사람이 불우하게 지내야 좋은 시문을 짓는다는 뜻을 말하면서 "만물은 평정함을 얻지 못하면 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라고 하였다. 《韓昌黎文集 卷19 送孟東野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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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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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오사익에게 보냄 병인년(1926) 與吳士益 丙寅 김태형(金台亨)에게 들으니, 음성 사람이 선사의 손자를 고소하여 가둔 뒤에 애시(哀侍)4)께서 여러 자질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이후로는 다시는 석농(石農)의 호를 들어 부르지 말라."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고명한 제공(諸公)이 선사를 무함했을 때에 배척하지 않다가 선사의 손자가 갇히는 것을 기다렸다 비로소 폄하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러나 이미 깨달았으니 또한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선사의 원고를 바꾸고 첨삭을 하였으니, 이처럼 지극히 무엄한 것을 본다면 제공은 의당 호를 없애는 정도로 폄척할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聞諸金台亨,陰人訴押師孫之後,哀侍與群從語曰: "今而從不當復舉石農之號而呼之." 以若諸公高明,不於誣先師而斥之,始待押師孫而貶之,何也? 然既已覺悟,亦云幸矣.今又改換添削師稿之罪,如是無嚴之極,諸公見之,應不但去號之貶而已也. 애시(哀侍) 서간문에서 흔히 쓰는 말로, 거상(居喪) 중에 있으면서 홀아버지나 홀어머니를 모시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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