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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憤迫情由段民之慈母墳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守護累十年矣中間有勢者蔑視民之孤弱敢爲偸葬於民之慈母山靑龍麓白虎麓者間或有之然而義理爭訟之下渠輩皆屈於法理已爲掘去者昭在於前 官時也不意去年夏良中該面下鍮村居李正壽爲名人乘夜偸葬於民之慈母山白虎麓逼近之地置標下朴平仲已掘處世豈有如許倚勢蔑法之氓乎民豈不欲趂時呈卞矣間以身病沈吟難抽今玆前呈文蹟帖連仰籲於 明政之下細細 垂察後上項李正壽發差捉致儼囚督掘以保遠居孤弱之民先壟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酉十月 日泰仁官[着押][題辭]査問次李正水捉來事▣▣告宋弼尙主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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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啓者先祖位土와林野을共同登記하난事로業經大宗會인바其時各門中에서負擔하신金額을互相觀望하고送交零星하와登記手續上에困難이多大하온中始祖太師公林野登記만爲先印刷謄本하야送付하오며各處登記난次第送達하게사오니以此 照亮하신후 貴門中負擔金을斯速辦送하시와以完竣事之地를千務萬望함再右登記난趂其時謄本付送이오나經濟困難은京鄕이大同이기于今遵循矣러니今則秋收가在邇하고經濟도回復됨으로如是仰通하온니 簽宗氏난尤加另念하시와無至再告케하심을切企이외다始祖降生一千三十二年壬申九月 日京城府長沙洞一一七ノ一番地坡平尹氏大宗約所[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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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月惠函迨切慰荷緣於忽擾尙稽修謝甚歎甚歎謹詢肇夏仕體萬旺閤覃均迪仰溸且祝弟日月流邁已經吉祀罔涯益復如新而大朞時惠送祭需良感良感第舍季自年前沒産於京生計沒策寄食數三學生崔玉煥君亦留在竟不淸帳食費而亦不告還去尙不上送事涉孟浪故玆仰煩須卽言及于崔君處使之卽爲付送如何舍季事勢若不困難則豈可論及食費等事於崔君家現今形便萬不成說思不獲已如是者也猶切愧歎愧歎貴邊農形果何如耶願聞耳餘姑不備謹.四月十八日弟金敎彬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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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到付▣(全)▣…▣▣▣(宋鎭澤)右謹言議▣…▣習▣…▣仁居李太漢之甚者乎生之慈母墳山▣…▣盤龍洞案山而守護數十▣…去己巳良中▣…▣爲名人忽有偸葬▣…▣母塚階下往卞于泰仁依 官題掘去矣▣▣夢外泰仁李太漢爲名人乘夜▣…掘處世皆如▣…▣無據則法無可施訟不可息不勝情惋往卞于泰仁 官圖尺明査之下同李太漢{犭+凶}猾難逃致之落科然▣…玆敢前後本狀與圖形題旨帖連仰籲細細洞察后 嚴明發官于泰仁刻期督掘之地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癸酉十月 日兼史[着押][題辭]旣爲落科指日督掘事十二日山在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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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벗들과 두승산423)에 오르다 同諸益上斗升山 산은 절로 푸른데 사람은 백발이 되어 山自蒼蒼人白頭납극424) 다섯 번 신으니 세월도 흘러갔네 五穿蠟屐歲華流중간에 오랜 세월 지나 뽕밭이 바다 되니 中經浩劫桑田海우선 맘껏 노닐고자 중들의 누각을 빌렸네 且借遨遊釋子樓옛날에 한 말 한 되의 술을 누가 마셨는가 昔日斗升誰酌酒삼신산이 지척이니 배를 번거롭게 찾지 않네 三神咫尺不煩舟하늘가에 저녁 구름이 다시 만나듯이 暮雲天際還相合만남과 이별 부질없이 근심할 것 없네 聚散無將作謾愁 山自蒼蒼人白頭, 五穿蠟屐歲華流.中經浩劫桑田海, 且借遨遊釋子樓.昔日斗升誰酌酒? 三神咫尺不煩舟.暮雲天際還相合, 聚散無將作謾愁. 두승산(斗升山) 전라도 고부군(古阜郡)에 있는 산이다. 납극(蠟屐) 밀랍을 발라서 반질반질하게 한 나막신을 이르는데, 남조 송(宋)나라 때 사령운(謝靈運)이 산에 오를 적에는 반드시 나막신을 신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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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에 가뭄을 걱정하며 暮春憫旱 농사를 점칠 땐 먼저 맥우425)를 보는데 歲事占看雨麥先어찌하여 봄철 내내 큰 가뭄이 드는가 如何亢旱一春全전답의 이앙 조금 늦어져 껍질 더디 터지고 田秧差晩遲開甲길가 풀도 자라기 어려워 절로 털방석 되네 路草難長自成氈구름 무지개 보며 비 내려주길 얼마나 생각했는데 幾望雲霓思惠霈또 들으니 책력에도 흉년에 속한다 하네 又聞星曆屬災年겸하여 약육강식이 만연한 이 시대에 兼玆弱肉强呑日백성들을 보니 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드네 同病蒼生亦可憐 歲事占看雨麥先, 如何亢旱一春全?田秧差晩遲開甲, 路草難長自成氈.幾望雲霓思惠霈, 又聞星曆屬災年.兼玆弱肉强呑日, 同病蒼生亦可憐. 맥우(麥雨) 보리가 익을 때 내리는 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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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실196)에 제하다. 마땅히 갑신년(1944) 조에 있어야 한다. 題不忘室【當在甲申年條中】 구렁에 버려짐과 머리 잃음을 잊지 않는다고197) 不忘在壑與喪元공자와 맹자198)께서 분명한 격언을 남기셨다오 鄒魯分明有法言천사라도 거들떠보지 않음은 의가 아니기 때문이요199) 千駟寧觀非義地만인이라도 내 가서 대적함은200) 지강의 경지201)에 들어서라네 萬人吾往至剛門서책은 고기처럼 좋아해야 하니202) 세 시렁에 가득 채우고 書宜嗜豢盈三架소나무는 양식으로 삼을 만하니203) 후원에 빼곡히 심는다오 松可爲粮滿後園불망 두 자로 편액한 걸 그대는 비웃지 마소 二字扁楣君莫笑옛사람을 상론할204) 후생이 절로 있을 터이니 尙論自有後生存 不忘在壑與喪元, 鄒魯分明有法言.千駟寧觀非義地, 萬人吾往至剛門書宜嗜豢盈三架, 松可爲粮滿後園.二字扁楣君莫笑, 尙論自有後生存. 불망실(不忘室) 후창 소유의 토실(土室) 이름이다. 후창은 갑신년인 1944년에 〈불망실기(不忘室記)〉를 지었는데, 그 기문에 당시 일본의 폭정과 수탈이 극에 달해 의리상 욕을 받을 수 없기에 토실에 몸을 숨겨 처음에는 솔잎과 마를 채취하여 연명하다가 마지막에는 구렁에 들어가 죽겠다고 하였다. 《後滄集 卷21 不忘室記》 구렁에……않는다고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맹자가 "옛날에 제 경공(齊景公)이 사냥할 때 우인(虞人)을 정(旌)으로 불렀으나 우인이 오지 않자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공자(孔子)께서는 '지사(志士)는 자신의 시신이 도랑에 버려질 수도 있음을 잊지 않고, 용사(勇士)는 죽음을 당해 머리가 잘릴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칭찬하셨으니,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취하셨는가? 합당한 부름이 아니면 가지 않은 것을 취하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원문의 추(鄒)와 노(魯)는 모두 춘추 시대의 국명(國名)으로,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났으므로 공자와 맹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우인(虞人)을 칭찬하는 공자의 말을 맹자가 인용하였으므로 두 사람을 모두 언급한 것이다. 천사(千駟)라도……때문이요 천사는 4천 필의 말을 이른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맹자가 이윤(伊尹)의 마음가짐을 설명하면서 "의롭지 못하거나 도에 합당하지 않으면 천하를 그에게 녹봉으로 주어도 돌아보지 않고, 4천 필의 말을 매어 놓는다 하더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다.[非其義也, 非其道也, 祿之以天下, 不顧也, 繫馬千駟, 不視也.]"라고 하였는데, 이를 차용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만인(萬人)이라도……대적함은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지 못하면 비록 미천한 사람이라도 내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지강(至剛)의 경지 원문의 강문(剛門)은 지극히 굳센 경지를 비유한 말로,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면서,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함으로써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이 기가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된다.[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고기처럼 좋아해야 하니 원문의 환(豢)은 추환(芻豢)의 줄임말로, 초식(草食) 가축과 잡식(雜食) 가축을 뜻하는데, 맛있는 고기 음식을 비유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의리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고기가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소나무는……만하니 후창의 〈불망실기(不忘室記)〉에 토실(土室)에 몸을 숨겨 처음에는 솔잎과 마를 채취하여 연명한다고 하였는데, 이 솔잎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後滄集 卷21》 상론(尙論)할 옛사람의 일을 평론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천하의 훌륭한 선비라야 천하의 훌륭한 선비를 벗할 수 있다.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여 또다시 위로 올라가서 옛사람을 논한다.[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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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만당형장190)을 생각하며 3수 病中憶晩棠兄丈【三首】 이년이 지나도록 당형을 보지 못했는데 不見棠兄再過冬나의 상태로 당형을 미루어 알 수 있다네 以吾狀態可推公얼마나 머리가 센지는 다소 다를 터이고 淺深鶴髮差分異전후로 형제 잃은 슬픔191)은 일체 똑같으리라 先後鴒悲一體同용악에 힘써 달려갔으나 미치지 못하였고 龍岳專趨曾未及웅진에 들러 찾아뵀으나 또 허사가 되었다오 熊津歷拜又成空갑자기 몸져누워 장차 벙어리가 되려 하니 忽然臥病將成啞서로 만난들 어찌 속마음을 다 말할 수 있으랴 相對何能說盡衷사십 년 동안 기나긴 한겨울로 괴로웠는데 四十年間困大冬봄이 오자 비로소 조화옹을 보는구나 春來始見化翁公원수를 섬멸함은 예전 만남 뒤에 일찌감치 있었고 殲讐早在前逢後술을 따라 준 건 다 같이 축하한 일보다 오히려 늦었다오 酌酒猶遲一賀同서인에 대한 근심이 비록 눈에 가득하지만 憂在西人雖溢目태극기는 높이 걸려 이미 창공에 펄럭이누나 旗高太極已翻空세속에 매인 몸인지라 무궁한 설이 있으니 世途身分無窮說행여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소회를 토로하리라 倘有其時一吐衷추억하건대 유조192)의 해가 든 봄과 겨울에 憶曾柔兆歲春冬양부193)의 시론을 우리 당형에게 들었다오 兩部詩論受我公활수에 오르는 건194) 기약하지 못하거니와 活水登臨不期會천태에서 풍영하는 건195) 그 언제나 함께하랴 天台風詠幾時同궁한 길에 낙척하니 일평생의 한이요 窮途落拓平生恨늘그막에 처량하니 만사가 부질없어라 暮境凄涼萬事空당시에 기대한 뜻이 진중하였는데 珍重當年期待意지금 유복 차림이 진심 아닌 게 부끄럽구나 至今儒服愧非衷 不見棠兄再過冬, 以吾狀態可推公.淺深鶴髮差分異, 先後鴒悲一體同.龍岳專趨曾未及, 熊津歷拜又成空忽然臥病將成啞, 相對何能說盡衷?四十年間困大冬, 春來始見化翁公.殲讐早在前逢後, 酌酒猶遲一賀同.憂在西人雖溢目, 旗高太極已翻空.世途身分無窮說, 倘有其時一吐衷.憶曾柔兆歲春冬, 兩部詩論受我公.活水登臨不期會, 天台風詠幾時同?窮途落拓平生恨, 暮境凄涼萬事空.珍重當年期待意, 至今儒服愧非衷. 만당형장(晩棠兄丈) 김희현(金熺鉉, 1872~1951)으로, 만당은 그의 호이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정오(定五)이다. 후창의 외종형(外從兄)이다. 후창이 일찍이 그를 위해 〈만당시고서(晩棠詩稿序)〉를 썼다. 《後滄集 卷20 晩棠詩稿序》 형제 잃은 슬픔 원문의 영비(鴒悲)를 번역한 것이다. 영(鴒)은 척령(鶺鴒)의 준말로 할미새를 뜻하는데, 흔히 형제 또는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할미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급난을 당하였도다. 매양 좋은 벗이 있으나, 길이 탄식할 뿐이니라.[脊令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유조(柔兆) 고갑자(古甲子)로 천간(天干) 가운데 병(丙)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병술년(1946)을 가리키는 듯하다. 양부(兩部) 양부고취(兩部鼓吹)와 같은 말로,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는 부대(部隊)와 서서 음악을 연주하는 부대가 함께 연주하는 매우 기세가 성대한 음악을 뜻한다. 여기서는 음악 용어를 시의 이론에 대입하여 말한 듯하다. 활수(活水)에 오르는 건 활수는 문맥으로 볼 때 높은 정자나 누대의 이름을 가리키는 듯한데, 자세하지 않다. 활수라는 말은 남송(南宋) 때 주희(朱熹)의 〈관서유감이수(觀書有感)〉 시에 "묻노니 너는 어찌 이렇게 맑을 수가 있느뇨, 근원에서 흐르는 물이 내려오기 때문이겠지.[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한 시구에서 유래하였다. 《晦庵集 卷2》 천태(天台)에서 풍영(風詠)하는 건 천태는 정읍 이평면 창동리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을 가리킨다. 풍영은 바람을 쐬며 시를 읊조린다는 뜻으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즐기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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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윤봉길222)행 尹義士奉吉行 윤봉길이여 진정한 의사로다 尹奉吉眞義士당시 빼어난 기운 타고난 건223) 우연이 아니로세 岳降當年匪偶爾한 때의 행적은 천년토록 길이 빛나고 一時之蹟光千祀칠 척의 장신은 온 천하224)를 구제하였네 七尺之身濟九有약관의 나이에 일찍부터 명성을 떨치려 했으니 弱齡早欲立大名충과 효가 지극하다고 사우들에게 알려졌다오 忠孝二字聞師友붓을 잡으면 스스로 면려하는 시를 막힘없이 썼으니 筆下滾滾自勖詩지금까지도 사람의 기운을 분발하게 한다오 至今令人氣蚴蟉보잘것없고 누추한225) 시목동에서 佌佌蓛蓛柹木洞산풍의 간고226)로써 부모를 봉양하였네 山風之幹養父母효를 옮겨 충을 하려 했지만227) 나라 없음을 어이하랴 移孝爲忠柰無國우리나라가 협소하여 대바구니 속에 있는 것 같았네 東土窄窄如在簍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려가 새 정부에 찾아가니228) 出門西走新政府백범 노인229)을 처음 만나면서 마치 구면처럼 여겼다네 初面如舊白凡叟한 조각 간담을 서로 활짝 터놓으면서 一片肝膽相照地영구의 쉽고 어려운 일을 각자 취하였네230) 嬰臼難易各自取중국과 우리나라의 형세는 순치보거231)와 같으니 唇齒輔車中東勢고금의 논의가 과연 다름이 없겠는가 古今之論無異否팔월 상해에서 일왕을 위한 잔치가 있었는데232) 八月上海島酋宴대륙을 삼킬 듯이 기세가 몹시 등등하였다네 垂呑大陸勢甚阜계엄 상태가 서릿발 같이 삼엄하여 戒嚴肅肅如霜雪나는 새도 감히 그 뒤를 지나가지 못했는데 飛鳥莫敢掠其後편한 걸음으로 무인지경을 가는 듯이 했으니 平步躡去如無人온갖 신령이 오르내리며 좌우를 호위하였다오 百靈閃閃擁左右품속에 숨긴 한 덩이의 물건은 무엇인가 懷中一塊是何物삽시간에 천둥 벼락 치는 굉음이 울렸네 頃刻雷霆生擊掊한 사람의 순국에 열 명 대장을 모두 죽게 하고 一斃斃盡十大將가련하게도 나머지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오 可憐餘物作炙灸스스로 성명을 외치고서 춤추고 환호하며 自唱姓名舞且呼대한독립만세를 오래도록 부르짖었도다 大韓獨立萬歲久어찌 자신이 쓸 총포가 하나도 없으랴마는 那無一礮自家用웅어에 대한 구분233)이 진작부터 명백하였다네 熊魚之分早判剖윤봉길이여 윤봉길이여 尹奉吉尹奉吉의사라는 칭호가 만인의 입에서 앞다퉈 나왔도다 義士爭稱萬人口진심으로 은혜를 베푸니 민국을 찬란히 빛내고 中心載恩華民國덕을 좋아하는 자들이 함께 도우니 유럽까지 아울렀네 好德同贊幷巴歐그 큰 공로가 귀결된 바를 살펴보건대 淸看大功歸宿處조국의 온 지역을 한 비로 깨끗이 청소함일세 祖國之周掃一帚조국을 다시 얻었으니 어찌 충이 아니겠는가 復得祖國豈非忠이름 날려 부모를 드러냈으니234) 효 역시 성대하도다 掦名顯親孝亦厚예산은 높고 덕산은 무거우니 禮山高兮德山重예산과 덕산은 충효의 고을이로세235) 禮德之山忠孝部윤봉길이여 진정한 의사로다 尹奉吉眞義士몸은 떠났어도 의는 남아 있어 길이 불후하리라 身去義存長不朽 尹奉吉眞義士! 岳降當年匪偶爾.一時之蹟光千祀, 七尺之身濟九有.弱齡早欲立大名, 忠孝二字聞師友.筆下滾滾自勖詩, 至今令人氣蚴蟉.佌佌蓛蓛柹木洞, 山風之幹養父母.移孝爲忠柰無國? 東土窄窄如在簍.出門西走新政府, 初面如舊白凡叟.一片肝膽相照地, 嬰臼難易各自取.唇齒輔車中東勢, 古今之論無異否?八月上海島酋宴, 垂呑大陸勢甚阜.戒嚴肅肅如霜雪, 飛鳥莫敢掠其後.平步躡去如無人, 百靈閃閃擁左右.懷中一塊是何物? 頃刻雷霆生擊掊.一斃斃盡十大將, 可憐餘物作炙灸.自唱姓名舞且呼, 大韓獨立萬歲久.那無一礮自家用? 熊魚之分早判剖.尹奉吉尹奉吉! 義士爭稱萬人口.中心載恩華民國, 好德同贊幷巴歐.淸看大功歸宿處, 祖國之周掃一帚.復得祖國豈非忠? 掦名顯親孝亦厚.禮山高兮德山重, 禮德之山忠孝部.尹奉吉眞義士! 身去義存長不朽.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파평(坡平), 본명은 우의(禹儀), 호는 매헌(梅軒)이다. 충청남도 예산(禮山) 출신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璜)이며, 어머니는 경주 김씨로 김원상(金元祥)이다. 1932년 4월 29일에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일왕(日王)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장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감행하였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일본으로 호송되어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그해 12월 19일에 총살형을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개석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고 격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빼어난 기운 타고난 건 원문의 강악(降嶽)은 산악의 신령한 기운을 받아 훌륭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숭고(崧高)〉에 "높디높은 산악이, 우뚝 하늘에 닿았도다. 산악에서 신령한 기운을 내려, 보후(甫侯)와 신백(申伯)을 내셨도다.[崧高維嶽, 駿極于天. 維嶽降神, 生甫及申.]"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온 천하 원문의 구유(九有)는 구주(九州)와 같은 말로, 천하 또는 중국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보잘것없고 누추한 원문의 차차(佌佌)는 작은 모양이고, 속속(蔌蔌)은 가난하고 누추한 모양을 형용한 말로, 《시경》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보잘것없는 소인들은 저 집을 소유하며, 누추한 자들은 곡식을 소유한다.[佌佌彼有屋, 蔌蔌方有穀.]"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산풍(山風)의 간고(幹蠱) 산풍은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고괘(蠱卦)를 가리킨다. 간고는 《주역》 〈고괘(蠱卦)〉에 "초육(初六)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无咎.]"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여 아버지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업을 완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집안일을 주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효(孝)를……했지만 원문의 이효위충(移孝爲忠)은 《효경(孝經)》 〈광양명(廣揚名)〉에 "군자가 어버이를 효도로 섬기기 때문에 충성을 임금에게 미루어 옮길 수 있다.[君子之事親孝, 故忠可移於君.]"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문을……찾아가니 새 정부는 당시 상해(上海)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가리킨다. 윤봉길은 23세가 되는 1930년 3월에 만주(滿洲)로 망명하였고, 1931년 8월에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갔다가 그해 겨울에 임시정부의 김구(金九)를 찾아가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칠 각오임을 호소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을 두고 말한 것이다. 백범(白凡) 노인 김구(金九, 1876~1949)로, 백범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아명은 창암(昌巖), 본명은 창수(昌洙), 호는 백범ㆍ연하(蓮下)이다. 삼일 운동 후 중국 상해(上海)의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고, 1928년에 이시영(李始榮)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였고, 1931년에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조직하여 1932년 1월의 이봉창(李奉昌)의 의거와 4월의 윤봉길(尹奉吉) 의거 등을 지휘하였다. 영구(嬰臼)의……취하였네 영구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 대신 조삭(趙朔)의 친구 정영(程嬰)과 문객인 공손저구(公孫杵臼)를 가리킨다. 진나라 경공(景公) 3년에 대부(大夫) 도안가(屠岸賈)가 조삭의 일족(一族)을 멸족시키자, 공손저구가 정영과 함께 조삭이 남긴 고아(孤兒)를 세울 일을 논의한 끝에, 정영에게는 조삭의 진짜 고아를 보호하게 하고, 공손저구 자신은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리고 거짓 조삭의 아이라고 위장하여 산중에 숨어 있으면서 정영에게 자신을 도안가에게 밀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공손저구 자신은 가짜 아이와 함께 도안가에게 잡혀 살해당하고, 조삭의 진짜 고아는 정영에 의해 무난히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경공 15년에 한궐(韓厥)의 주선으로 조삭의 고아인 조무(趙武)를 조씨(趙氏)의 후계자로 삼아 예전의 지위와 땅을 회복하게 하고 동시에 조삭의 원수를 갚게 하였다. 정영은 이후 조무(趙武)가 관례식을 올리던 날에 조삭과 공산저구에게 일을 성공함을 보고하기 위해 황천으로 가야 한다고 하며 조무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자살하였다. '쉽고 어려운 일'이란 공손저구가 정영과 처음 논의할 때 죽는 일은 쉽고 조삭의 고아를 세우는 일은 어렵다고 하면서, 정영에게는 고아를 세우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고 공손저구 자신은 죽는 쉬운 일을 하여 먼저 죽겠다고 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윤봉길은 공손저구의 쉬운 일을, 김구는 정영의 어려운 일을 각자 취해 행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史記 卷43 趙世家》 순치보거(脣齒輔車) 순치는 입술과 이를 말하고, 보거는 광대뼈와 잇몸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피차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여 서로 의지하는 사물을 비유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5년 조에 "광대뼈와 잇몸이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게 된다.[輔車相依, 脣亡齒寒.]"라고 하였다. 팔월……있었는데 1932년 4월 29일에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日王)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행사를 두고 말한 것이다. 원문의 팔월(八月)은 사월(四月)이 되어야 하는데, 후창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웅어(熊魚)에 대한 구분 곰 발바닥 음식과 물고기 음식 가운데 택일하라면 물고기보다는 곰발바닥을 택한다는 말로, 생사(生死)의 선택에 있어 구차히 살기보다 떳떳하게 의리(義理)를 따라 죽는 것을 택하는 비유로 쓰인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어물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어물을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름……드러냈으니 《효경》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몸과 사체와 털과 살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예산……고을이로세 윤봉길이 예산군(禮山郡) 덕산면(德山面) 시량리((柿梁里)에서 태어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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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世皆如李太漢之父子則 官令莫售 國法安在如此化外不可以尋常凡類治之不啻以屢度截嚴 營題以初十日再納侤於 城主嚴明之下斷當掘移之意眼同別差奉 分付出去矣渠之父子與其弟一齊避身而差使亦莫知所向故不勝憤迫玆敢更陳 洞燭敎是後使太漢之奴子押將差不日督掘以懲右漢之化外不測之習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酉十二月 日泰仁官[着押][題辭]李太漢之所▣雖萬萬可痛以奴代(背面)掘此是法外不可許施偸塚掘漑覓主之例事卽爲掘漑向事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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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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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에 원재 어른의 시에 차운함 除夜次遠丈韻 세밑에 객창 아래 멍하니 앉아서는 歲暮羇牕坐嗒然책상 위의 옛사람 책을 어루만진다 摩挲案上古人篇한밤중 여기저기 산엔 눈 남아있고 亂山殘雪三更夜만리 하늘 밝은 은하수엔 별 성그네 明漢疎星萬里天솥 안에 금단 생기기만 부질없이 기다리며 空待金丹生鼎裏머리끝에 흰 서리 내릴까 겁나는구나 怕將霜白撲頭邊누가 나를 일으켜 진경을 찾게 할까 誰歟起我尋眞境고상한 풍격 갖추신 어진 원로 계시니 爲有高風遠老賢 歲暮羇牕坐嗒然,摩挲案上古人篇.亂山殘雪三更夜,明漢疎星萬里天.空待金丹生鼎裏,怕將霜白撲頭邊.誰歟起我尋眞境,爲有高風遠老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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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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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재에 자정이 왔기에 南山齋子貞見訪 눈 내린 달밤 조각 배로 서로 찾다보니 一棹相尋雪月天산음에서의 옛일이 다시 금년에도 있구나 山陰故事又今年희미한 등잔 외로운 마을 밖에서 깜빡이고 殘燈點點孤村外푸른 하늘 외기러기 나는 곳까지 아득하네 碧落迢迢獨鴈邊오랜 바위 비 오는 산장에서 택수212)를 생각하고 石老雨庄懷澤叟티끌 사라진 두악에서 영주의 신선산인가 물었지 塵晴斗岳問瀛仙나아가고 숨는 도처엔 불필요한 물건 없어 行藏到處無長物두 소매에 이는 맑은 바람 시원함을 깨닫네 雙袖淸風覺爽然 一棹相尋雪月天,山陰故事又今年.殘燈點點孤村外,碧落迢迢獨鴈邊.石老雨庄懷澤叟,塵晴斗岳問瀛仙.行藏到處無長物,雙袖淸風覺爽然. 택수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그가 팽택령(彭澤令)으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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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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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재에서 여러분과 송별함 別南山齋諸君 한 해 마지막에 남산에서 객들 읊조리며 돌아가는데 歲暮南山客賦歸바닷가 하늘은 고요하고 기러기 소리마저 드물구나 海天寥廓鴈聲稀파도가 옛 나루터를 울리니 한스러움 아득하고 波鳴古渡悠悠恨바람이 긴 길에 불어오니 옷이 살랑거린다 風送長程拂拂衣너무 쉽게 늙어 알려진 것 없는 내가 부끄럽고 愧我無聞偏易老굳건히 날 듯 뛰어나게 걷는 그대들 두렵구나 畏君逸步健如飛봉래산 영주산 지척에 명승지가 많이 있으니 蓬瀛咫尺多名勝내년 봄에 바람 쐬고 읊는 기약 어기지나 마시오 風咏來春且莫違 歲暮南山客賦歸,海天寥廓鴈聲稀.波鳴古渡悠悠恨,風送長程拂拂衣.愧我無聞偏易老,畏君逸步健如飛.蓬瀛咫尺多名勝,風咏來春且莫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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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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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이대용(李大容) 등의 명단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李大淳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보성의 이대용 등의 주소와 성명을 미리 기재하고 여기에 번지수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문서 보성의 이대용 등의 주소와 성명을 미리 기재하고 여기에 번지수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문서이다. 주소와 성명을 기재하고 성명 아래에 날인하였는데, 번지수 첨기와 수정 부분들이 있다. 끝에는 주소와 명의 정정 및 날인을 요청하는 기록이 있다. 수록된 인원수는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 274번지의 이대용(李大容)을 비롯하여 모두 16명이다. 별지가 붙어있는데, 여기에도 주소의 번지와 씨명을 참고해서 각 기입처에 일일이 기입하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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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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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연반리 등 소재 소유토지의 토지대장 고문서-증빙류-토지대장 李大容 李大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연반리 등 소재 소유토지의 지번과 지가, 세액(稅額) 등을 적어놓은 일종의 토지대장 연반리 등 소재 소유토지의 지번과 지가, 세액(稅額) 등을 적어놓은 일종의 토지대장이다. 토지 소재지는 연반리(蓮盤里)와 방송리(芳松里), 당월리(堂月里) 등이며, 각 지번을 적고 그 아래에 지가와 세액을 적어놓았다. 끝에는 지가와 세액의 합계를 기재하였다. 첫 줄 하단에 이대용(李大容)이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데, 아마도 토지소유자인 것으로 보인다. 별지가 붙어있는데, 토지 표시가 상세하지 않은 것과 등기에 관한 당부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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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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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23년 이봉인(李鳳寅)의 부동산등기 신청 위임장 고문서-명문문기류-위임장 大正拾貳年壹月日 李鳳寅 大正拾貳年壹月日 李鳳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1월에 이봉인(李鳳寅)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 1923년 1월에 이봉인(李鳳寅)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이다. 내용은 위임사항과 날짜, 각 위임자의 주소와 성명, 등기원인, 등기목적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피위임자는 곡성군 곡성면 읍내리에 사는 이봉인이며, 단서조항이 있는데 대리인의 선임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위임자는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에 사는 이교재(李敎在)를 비롯하여 모두 14명이다. 등기목적은 소유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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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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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21년 조수환(曺壽煥)의 부동산등기 신청 위임장 고문서-명문문기류-위임장 大正拾貳年壹月日 趙壽煥 大正拾貳年壹月日 趙壽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1월에 조수환(曺壽煥)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 1921년 1월에 조수환(曺壽煥)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이다. 내용은 위임사항과 날짜, 등기원인, 등기목적, 각 위임자의 주소와 성명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피위임자는 곡성군 곡성면 읍내리에 사는 조수환이다. 위임자의 대표는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에 사는 이대용(李大容)이며, 그 외에 모두 13명이다. 등기목적은 소유권이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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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지 않는 이유에 대한 피인의 질문에 의답함 擬答彼人不薙髪理由之問 머리카락은 부모가 남겨주고 스승이 가르쳐주고 성인이 법으로 삼는 것으로서 몸의 문장(文章)입니다. 머리카락을 없애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는 것이고, 부모를 무시하는 것은 스승을 무시하는 것이고, 스승을 무시하는 것은 성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스승을 무시하고 성인을 무시하여 몸의 문장을 없앤다면, 이것은 죽은 사람과 무슨 구별이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과 똑같다면, 나의 머리카락을 잘라 죽은 상태가 되는 것보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을 지키며 변치 않으니,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를 빼앗지 않는 것도 오늘날 세상에서 공인하는 것인데, 어찌 굳이 우리 유자들에 대해서 의심을 한단 말입니까? 髪者, 親之遺, 師之敎, 聖之法, 而爲身之章者也.無髪是無親, 無親是無師, 無師是無聖也.無親無師無聖, 而去身之章, 是庸有別於死人矣乎? 同是死人, 則無戴吾髪而死, 得以無愧於吾心之爲愈.故守而不移者, 此其由也.不奪人之信敎, 亦今世之公認, 何必至於吾而疑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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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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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헌에게 답함 무인년(1938) 答洪韋軒 戊寅 당신 아버지의 비석 세우는 일에 보낸 원조금이 이처럼 적은데, 성대한 마음이라 말해주시고 감사하다고 말해주시니, 부끄러워 감히 말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편지에서 남방에 70여질의 문집을 보냈는데 한 사람도 힘을 보탠 자가 없다는 것은 무슨 곡절입니까? 아니 70여 집이 모두 가난하여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모두가 인색하여 그런 것입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의리와 이익의 관계에 투철하지 못한 소치이고, 또한 이로써 오늘날 학자들을 살필 수 있으니, 한탄스럽고 한탄스럽습니다. 敬碑助金, 若是薄者, 謂之盛念, 謂之感謝, 愧不敢言.但所喩南方七十餘帙, 無一助力者, 則是何委歟? 豈七十餘家, 皆窶者歟? 吝者歟? 有不可知, 然大都是透不得義利關之致, 而亦可以觀今世學者矣, 可歎可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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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상량문 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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