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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중134)에 대한 제문 祭文翊中文 우리 두 사람은 처음에 얼굴로만 사귄 것이 10년이었고 마침내 마음으로 사귄 것이 10년이었으니, 취미는 날로 더욱 서로 부합하고 경계는 날로 더욱 서로 친밀하고 서로 따르는 것은 날로 더욱 서로 부지런하였는데, 사생과 유명으로 작별함이 갑자기 오늘에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오호라! 공은 법도 있는 가문에서 생장하여 평소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고 타고난 자질이 아름다워 잡아 지키는 것이 여유가 있어, 평탄함과 험준함이 일정하지 않아 겪은 세월이 점점 많아짐에 이르러서도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이 쇠하지 않고 취사가 더욱 정밀하여 그 모으고 머물렀던 것으로 만년의 절개를 보호하고 지켰던 것은 넉넉히 여유가 있었는데, 조물주가 좋지 못하여 좋은 일에 장난이 많았으니,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의림(義林)은 부모 잃은 여생에 형제가 드문 외로운 신세로 노년에 의지할 이는 오직 벗들 뿐이었는데, 나를 알고 나를 아끼는 공과 같은 사람이 또 나를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장 생각할 만한 것이 있으니, 공이 돌아가시기 전 5일에 내가 와서 문병하자 공이 손을 잡고 울면서 영결하면서 고아를 부탁하였고, 다음날 또 손수 편지를 써서 작별을 고하면서 다시 앞서의 부탁을 말하였네. 무릇 죽음에 임하여 고아를 부탁하는 것은 반드시 백수(白水)와 병산(屛山)135) 같은 사람이라야 감당할 수 있고, 멸렬하고 용렬함이 엎어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 같은 내가 어찌 능히 담당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목석이 아닌 이상 평생의 벗이 돌아가실 때 부탁한 것에 대해 힘은 비록 미치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어찌 갑자기 잊어버리겠는가. 영령이 지각이 있다면 이 어리석은 충심 알아주시게. 吾兩人。始以面交者爲十年。終以心交者爲十年。臭味日益相符。規警日益相密。從逐日益相勤。豈知死生幽明之別。遽在今日耶。嗚呼。公生長法家。擩染有素。稟賦美質。操守有餘。至於夷險不一。閱歷漸多。而好尙不替。取舍愈精。其所以蓄聚住停。爲保守晩節之計者。綽有餘地。造物不媚。好事多戱。痛哉痛哉。義林風樹餘生。終鮮煢煢。殘暮所賴。惟是朋友。誰知知我愛我如公者。又且棄我耶。最有所可念者。公歿前五日。余來問疾。公執手泣訣。託以遺孤。翌日又手書告別。復伸前託。夫臨歿遺孤之託。必白水屛山而後。可以當之。顧滅裂頹塌。如倒水不起者。安能擔負也。然我非木石。其於平生知舊臨歿之託。力雖未逮。心豈遽忘。靈其有知。諒此愚衷。 문익중(文翊中) 문봉환(文鳳煥, 1849∼1890)을 말한다. 자는 익중(翊中), 호는 오계(梧溪),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자세한 행적은 《일신재집》 권19 〈오계 문공 행장(梧溪文公行狀)〉에 보인다. 백수(白水)와 병산(屛山) 백수(白水) 유면지(劉勉之)와 병산(屛山) 유자휘(劉子翬)를 말한다. 주희의 아버지가 병이 위독했을 때 아들 희(熹)에게 유언으로 말하기를 "적계 호원중, 백수 유치중, 병산 유언충 세 사람은 학문에 연원이 있어 내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분들이니, 내가 죽거든 네가 가서 그분들을 스승으로 섬기어 오직 그분들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籍溪胡原仲、白水劉致中、屛山劉彦沖三人, 學有淵源, 吾所敬畏, 吾卽死, 汝往事之, 而惟其言之聽.]"라고 하였다. 《宋史 卷429 道學列傳 朱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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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인119)에서 비로 지체하며 족질 형일에게 지어 주다 滯雨新泰仁 贈族姪炯日 종일 내린 장맛비로 신태인에서 지체되니 盡日霖天滯泰仁꽃나무 아래120) 옛정이 더욱 친밀함을 느낀다오 舊情花樹覺尤親바둑은 비록 뜻을 부치나 끝내 놀이로 돌아가고 奕雖寓意終歸戱약은 재물 도모가 아니라 사람 구제를 요한다네 藥不營財要濟人사업은 자연히 원대하기를 기대해야 하고 事業自當期遠大세월121)은 단연코 촌음이라도 아껴야 한다오 居諸斷可惜毫分시를 지은 건 한가한 말을 하려 한 게 아니니 題詩匪作閒言語전전긍긍하며 이 몸을 함께 세우려 해야 하네 兢戰須同立此身 盡日霖天滯泰仁, 舊情花樹覺尤親.奕雖寓意終歸戱, 藥不營財要濟人.事業自當期遠大, 居諸斷可惜毫分.題詩匪作閒言語, 兢戰須同立此身. 신태인(新泰仁) 전라북도 정읍(井邑)에 속한 마을 이름이다. 꽃나무 아래 원문의 화수(花樹)는 친족 사람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모임이나 잔치인 화수회를 이르고, 또한 그러한 화수회를 갖는 것을 뜻한다. 당(唐)나라 위장(韋莊)이 꽃나무 아래에 친족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신 일이 있는데, 이에 대해 잠삼(岑參)이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라는 시를 지어 "그대의 집 형제를 당할 수 없으니, 열경과 어사와 상서랑이 즐비하구려. 조회에서 돌아와서는 늘 꽃나무 아래 모이니, 꽃이 옥 항아리에 떨어져 봄 술이 향기로워라.〔君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세월 원문의 거저(居諸'는 일거월저(日居月諸)의 줄인 말로, 세월이 흘러감을 이른다. 《시경》 〈패풍(邶風) 백주(柏舟)〉에 "해여 달이여, 어찌 뒤바뀌어 이지러지는가.[日居月諸, 胡迭而微?]"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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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공주에서 비로 지체하며 망제 여호122)를 애도하다 六月六日滯雨公州 悼亡弟汝昊 공산123)에서 비로 지체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 滯雨公山過一旬객창에서 갑자기 또 생일124)을 만나는구나 旅窓忽復遇弧辰평생토록 일찍이 많은 일을 겪었건만 平生亦是曾經事이날은 어찌하여 정신이 배로 피곤한가 此日胡爲倍瘁神망제의 생일은 천왕절과 서로 같고125) 亡弟生同天貺節대연의 감회는 회갑인에게 간절하누나126) 大淵感切甲周人아득히 먼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鄕關漠漠知何處남쪽 하늘 바라보며 눈물로 수건 적시네 遙望南天淚滿巾 滯雨公山過一旬, 旅窓忽復遇弧辰.平生亦是曾經事, 此日胡爲倍瘁神?亡弟生同天貺節, 大淵感切甲周人.鄕關漠漠知何處? 遙望南天淚滿巾. 여호(汝昊) 후창의 첫째 아우 김봉술(金鳳述, 1887~1946)로, 그의 자는 여호, 호는 송은(松隱)이다. 후창이 이날 지은 그에 대한 제문이 《후창집》 권22에 〈제중제여호문(祭仲弟汝昊文)〉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김봉술은 이 해 4월말에 별세하였다. 공산(公山) 공주(公州)의 별칭이다. 생일 원문의 호신(弧辰)은 남자의 생일을 가리킨다. 옛 풍습에 아들이 태어나면 세상에 큰 뜻을 펴도록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봉초(蓬草)로 화살을 만들어 천지 사방에 쏘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후창의 연보에 의하면, 후창은 1884년(고종21) 6월 6일 진시(辰時)에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창동리(滄東里)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禮記 內則》 망제(亡弟)의……같고 천왕절(天貺節)은 송(宋)나라 때 비롯된 절일(節日)로 음력 6월 6일을 가리키는데, 송나라 진종(眞宗)이 대중상부(大中祥符) 4년(1011)에 조서(詔書)를 내리면서 6월 6일은 하늘의 계시를 적은 책인 천서(天書)가 하늘로부터 재차 내려진 날이므로 천황절로 삼겠다고 하였다. 김봉술의 생일도 6월 6일로 후창의 생일과 같다. 대연(大淵)의……간절하누나 대연은 고갑자의 대연헌(大淵獻)으로, 지지(地支) 가운데 해(亥)에 해당한다. 김봉술은 정해년(丁亥年)인 1887년에 태어났고, 그의 회갑은 이 시를 쓴 다음해인 1947년이 된다. 회갑인(回甲人)은 이미 회갑을 맞은 후창 자신을 가리킨다. 김봉술이 회갑이 되기 1년 전에 별세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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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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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42년 김재명(金在明)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寅正月二十四日 在明 叔主 壬寅正月二十四日 金在明 叔主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2년(헌종 8) 정월 24일에 김재명이 숙부에게 보낸 서간. 1842년(헌종 8) 정월 24일에 김재명(金在明)이 숙부에게 보낸 서간이다. 김재명은 먼저 숙부의 안부를 물은 다음에 자신이 담병(痰病)으로 인해 여러 날 앓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동안 조정에서 있었던 고위 관리들의 인사(人事)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병조판서에는 사동(社洞)의 서(徐) 대감이 임명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그렇다고 종형제가 연이어 좋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도 난처한 일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한편 영백(領伯)에는 이(李) 대감이 제수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조판서에는 교동(校洞)의 김좌근(金左根) 대감이 내정되었다고 하였다. 완백(完伯)에는 서기순(徐箕淳) 대감이 내정되었는데, 그 사람됨이 매우 바르다고 말들을 하고 있지만, 그 정사가 어떨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영상(領相)은 일전에 다시 출사(出仕)하였지만 별도로 아뢴 일은 없다고 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편지를 쓴 김재명은 조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주서(鄭注書)는 연말에 홍원(洪原) 수령에 임명되어 정초(正初)에 임지로 내려갔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연말에 병상(並商) 편에 보낸 역서(曆書)를 잃어버렸다고 하였는데, 다시 찾았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태현(泰鉉)이의 혼사(婚事)와 관련하여 상대방 집안에서 연말에 사주(四柱)를 돌려보내 혼인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듣기에 참으로 민망한 일이라고 하였다. 또한 만갑(萬甲)이는 왜 소식이 없는지, 아직도 길을 떠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편지에는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근래 운기(運氣)가 전에 비해 더욱 심하여 사람들이 계속 죽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역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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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 홍공【채문】에게 답함 答鳳南洪公【埰問】 지난번에 답장을 받고서 감격스러운 마음 그지없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 삼가 한가롭게 지내시며 여가가 많으신 가운데 기거가 태평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산은 태곳적처럼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창창하네.[山靜似太古 日長如少年]"라는 구절은 당자서(唐子西)43)의 시이고, "일 없이 한가하게 앉았으니 하루가 이틀 같도다. 이처럼 70년을 산다면 문득 140년이 되리.[無事此靜坐 一日是兩日 若活七十年 便是百四十]"라는 구절은 소장공(蘇長公)44)의 말입니다. 이는 노년에 궁벽하고 적막한 가운데 문을 닫고 잡념을 떨쳐버리는 데 있어서 가장 요긴한 계책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종종 체념(體念)하여 뜻에 맞는 것이 있는지요. 의림(義林)은 범절(凡節)에 대해서는 아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힘쓰고자 하지 않음이 없지만 매양 우마(憂魔 근심)에 마음이 흔들려 끝내 공부를 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더 많고 한 치를 진보하였다가 한 자를 퇴보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자가 과연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돌아보건대 부끄럽고 슬픈 마음을 형언할 수 없었는데 답장을 받고는 매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영포(令抱 손자)가 어여쁘고 어린이의 예절이 있어 조석으로 문안드리는 예절을 펼 것이니, 이른바 "젊은이들은 할 일이 있다."45)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더욱 의로운 쪽으로 가르쳐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 주십시오. 向拜下復。感戢無已。歲色垂暮。伏惟燕養多暇。起居崇適山靜似太古。日長如少年。唐子西詩也。無事此靜坐。一日是兩日。若活七十年。便是百四十。蘇長公語也。此在老年窮寂杜門消遣之地。最爲親帖計。未知種種體念而與之有會否。義林凡節無足奉聞。案頭一着。非不欲黽勉。而每爲憂魔所撓奪。竟未免一曝而十寒。寸進而尺退。若是者。果安能有所成就也。自顧慙怛。無以自喩。而尊書乃反慰藉之若是耶。令抱婉戀幼儀。能執定省之節。所謂小子有造者此也。益盡義方之敎。以開其前程步趨也。 당자서(唐子西) 자서는 송나라 당경(唐庚, 1070~1120)의 자이다. 미주(眉州) 단릉(丹棱) 사람이다. 소장공(蘇長公) 장공은 송나라 소식(蘇軾)의 경칭이다. 소식은 소순(蘇洵)의 장자인 데다 그 문장이 백대(百代)의 으뜸이라고 할 만했기 때문에, 그를 일컬어 장공(長公)이라고 하고 그의 아우 소철(蘇轍)은 소공(少公)이라고 하였다. 젊은이들은……있다 《시경》 〈사제(思齊)〉에 "그러므로 성인(成人)들이 덕망을 지니고 젊은이들은 할 일이 있으니, 문왕께서 싫어함이 없이 명예로운 선비들을 길러 내셨도다.[肆成人有德 ,小子有造, 古之人無斁, 譽髦斯士.]"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앞으로 진보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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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적【종민】에게 답함 答宋士眞【淙珉】 한 해가 지나가니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떻겠는가. 한 통의 편지를 받아보고 놀라서 편지지를 어루만지며 반복해서 읽으니, 마음에 깊이 위안이 된다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이 좋다고 하니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인가. 더구나 이치를 익혀 깊숙이 나아가고 학문의 조예가 높고 넓어짐을 이 편지를 통해 추측할 수 있네. 이른바 "화순함이 안에 쌓여 있어야만 영채의 빛이 밖으로 드러난다."32)는 말은 이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다만 잘 모르겠네만 근래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일을 주로 하는가. 문사를 외우는 것은 우리 선비들의 계책이 아니며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선비들의 좋은 방도가 아니니, 최고의 진전(眞詮)과 으뜸의 법문은 문을 벗어나지 않아도 존재한다네.33)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남에게서 찾지 않으며 안에서 힘쓰고 밖에 힘쓰지 않았던 것이네. 그렇지 않다면, 살갗이 없다면 터럭이 장차 어디에 붙어 있으며34) 터가 있지 않으면 집을 장차 어디에 지을 것인가. 생각건대, 우리 벗은 이미 이런 것에 환하게 알아 처음 시작하는 기본을 세우는 것이 물 샐 틈이 없을 것이네. 어찌 반드시 눈과 귀가 먼 나를 힘쓰게 하여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을 찾거나 빌리려고 하는가.35) 더욱 부끄러울 뿐이네. 더구나 나는 어려서 학문을 하지 못하여 늙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 없는데, 서산에 지는 해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어찌 이 세상에 경중을 따져볼 만한 것이 있으며 어진 사우 사이에서 오르내릴 수 있겠는가. 다만 그대의 정성스런 질문함을 받았는데 잘못된 것에 대해 용서하지 말라는 그대의 말을 따르니, 혜량하여 너그러이 받아들이기를 바라네. 經歲經年。我思如何。一幅德音。得之若驚。摩挲繙閱。慰沃良深。仍審侍旁經履。一直佳裕。何等願聞之至。況溫理之邃密。造詣之崇廣。卽此來書而可以槪矣。所謂和順積中。英華發外者。非此耶。但未知近來所讀何書。所業何事。文詞記誦。非吾儒活計。聲利追逐。非吾儒長算。太上眞詮。一等法門。不出戶而存焉。此古人所以求諸已而不求諸人。務於內而不務於外者也。不然。皮之不存。毛將焉附。基之不有。室將安築。想吾友已瞭然於此。而所以造端立本者。無有滲漏矣。何必使之勉强盲聾。而索視借聽乃爾耶。旋庸愧愧。況如愚者。少而失學。老而無聞。奄奄晩景。如日下山。何足爲有無於斯世。而上下於賢士友之間哉。特荷垂訊之勤。敢效不恕之言。幸俯諒而恕存之也。 화순함이……드러난다 《예기》 〈악기(樂記)〉에 보이는 말이다. 문을……존재한다네 《대학장구》 전 9장에서 "군자는 집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나의 효(孝)를 신하가 본받으면 임금을 잘 섬기게 되고, 제(弟)를 본받으면 장관을 잘 섬기게 되고, 자(慈)를 본받으면 대중을 잘 부리게 된다.[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衆也]"라고 하였다. 살갗이……붙어 있으며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14년 기사에 "가죽이 없다면 터럭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皮之不存 毛將安傅〕"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는 학문의 토대를 강조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반드시……하는가 일신재 자신을 스승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 겸사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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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빈에 대한 제문 祭趙泰彬文 글을 짓고 술 마시는 벗은 얻기 쉬우나 강마(講磨) 하는 벗은 얻기 어려우며, 강마 하는 벗은 얻기 쉬우나 생사를 함께하는 벗은 얻기 어렵네. 군은 나에게 비록 나이가 조금 적고 교분을 맺은 것이 조금 늦지만, 글을 짓고 술을 마시는 놀이와 강마하는 모임에 함께 한 것은 거의 많은 해가 되었네. 시사(時事)가 한번 변하여 풍색(風色)을 헤아리기 어렵게 되어서는 함께 짝이 되어 자정(自靖)117)의 뜻으로 개연히 스스로 허여한 사람은 대개 몇 명 없는데, 군이 그 중 한 사람이네.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인정상 실로 당연한 것인데 경중과 취사의 분별이 평소 마음에 정해져 있지 않으면 어찌 능히 그럴 수 있었겠는가. 이에 군은 생사를 함께할 벗이 되는 것에 의심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네.강마 하는 벗은 열에 한 사람도 없고 생사를 함께 하는 벗은 백에 한 사람도 없는데, 군은 이미 나를 버리고 가버렸네. 노년에 서로 지키려던 뜻과 북풍(北風) 불 때 함께 돌아가자던 약속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구름처럼 공허해져 오유(烏有)의 고을118)로 돌아가 버려 백아(伯牙)가 홀로 노래하는 슬픔과 동리(東里)에 더불 이가 없다는 탄식119)이 아득한 천지에 어찌 끝이 있겠는가. 천지간에 외로운 몸 눈물이 쏟아지는 듯하네. 노쇠한 몸에 병이 들어 갑자기 달려가 문상하기 어려워 이렇게 제문을 지어 애통한 마음 깃들이네. 文酒之友易得。而講磨之友難得。講磨之友易得。而死生之友難得。君於我。雖年紀稍後。契遇差晩。而文酒之遊。講磨之會。爲幾多年矣。至於時事一變。風色叵測。則以同仇自靖之意。慨然自許者。槩無幾焉。而君其一也。好生惡死。人情固然。而輕重取舍之分。非有素定於內。則安能乃爾。於是而知君之爲死生之友無疑矣。講磨之友。十無一焉。死生之友。百無一焉。而君旣棄我而逝矣。老年相守之志。北風同歸之約。烟消雲空。歸於烏有。而伯牙獨唱之悲。東里無與之歎。悠悠天地。曷有已哉。俯仰煢煢。淸血如注。衰軀嬰病。遽難趨造。聊此緘辭。以寓一哀。 자정(自靖) 자신의 분의에 마땅하게 처신하여 스스로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書經 商書 微子》 오유(烏有)의 고을 허무하게 됨을 말한다. 한(漢)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에서 자허, 오유선생(烏有先生), 무시공(亡是公)이라는 가공의 세 인물을 설정하여 문답을 전개했는데, 자허는 '빈말'이라는 뜻이고 오유선생은 '무엇이 있느냐'는 뜻이고 무시공은 '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후세에 허무한 일을 말할 때 흔히 자허·오유라 하였다. 동리(東里)에……탄식 《장자》 〈서무귀(徐無鬼)〉에 "지금 나도 혜자가 죽은 뒤로 장석처럼 나를 알아주는 상대가 없어져서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졌다.[自夫子之死也, 吾無以爲質矣, 吾無與言之矣.]"라고 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동리와의 관계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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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홍120) 인환 에 대한 제문 祭曺元弘【仁煥】文 공은 영특하고 호걸스러운 자질로 가정에서 시례(詩禮)의 기풍을 익혀 문아(文雅)가 넉넉하고 시원하며 행의(行義)가 빛나고 아름다웠네. 사물의 이치와 세상의 일에 이르기까지 환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경륜과 지략은 무리에서 매우 뛰어나 성대하게 남쪽 지방의 명사가 되고 위대하게 이 세상의 통유(通儒)가 되었네. 다만 도가 시대와 어긋나 능히 시험해보지 못하고 산림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세상을 마쳤네.보잘것없는 내가 외람되이 벗이 되어 경계하며 절차탁마한 것이 지금 10년이 되었네. 갑오년의 변란121) 때 자정(自靖)의 마땅함으로 내게 고해 주었고, 병신년의 거사122) 때 의에 처하는 정미한 뜻을 나에게 고해 주었으니, 오호라!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네.모래와 자갈은 뒤에 남았고123) 앞의 바다는 넘실거리는데 키를 잃은 배가 장차 어디에 정박하겠는가? 천지간에 외로운 신세 마음이 타는 듯하네. 세월이 머물지 않아 묘소의 풀이 이미 묵었네. 병을 무릅쓰고 어려운 걸음으로 늦게야 비로소 와서 곡하니, 정은 친밀해도 예는 엉성하여 저버린 죄 매우 깊네. 公以英邁豪傑之姿。擩染乎家庭詩禮之風。文雅贍暢行義煒曄。至於物理世故。無不通曉。而經綸智略。絶出等夷。蔚然爲南服之名士。偉然爲斯世之通儒。但道與時違。莫克有試。而婆娑邱林。聊以卒歲。余以無狀。猥與爲友。規警切磋。十年于玆。甲午之變。告我以自靖之宜。丙申之擧。戒我以處義之精。嗚乎。言猶在耳。沙石在後。前洋瀰漫。失柁之船。將何所依泊耶。俯仰煢煢。心焉如燬。日月不留。墓草已宿。力疾艱步。晩始來哭。情密禮踈。辜負殊深。 조원홍(曺元弘) 조인환(曺仁煥, 1846∼?)을 말한다. 자는 원홍, 호는 병은(病隱),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갑오년의 변란 1894년(고종31) 6월 21일에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궁궐을 점령한 사건을 말하는데, 이를 통상 갑오변란(甲午變亂)이라고 한다. 병신년의 거사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1896년 2월 11일 친러 세력과 러시아 공사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사건을 말한다. 모래와……남았고 원문의 "사석재후(沙石在後)"를 풀이한 말이다. 진(晉)나라 왕탄지(王坦之)와 범계(范啓)가 서로 앞을 양보하면서 걸어가다가 뒤에 처지게 된 왕탄지가 "곡식을 까불며 바람에 날리면 겨와 쭉정이가 앞에 있게 마련이다.[簸之颺之, 糠粃在前.]"라고 한마디 하자, 범계가 "조리질을 하며 물에 흔들면 모래와 자갈이 뒤에 있게 마련이다.[淘之汰之, 沙礫在後.]"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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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언163)에 대한 제문 祭盧禹言文 군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군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대대로 내려온 유업은 전술한 이가 있는가? 평소의 오랜 뜻은 성취시킬 이가 있는가? 가문의 계획은 맡을 이가 있는가? 집안의 부탁은 맡길 이가 있는가? 이른 나이에 부모를 잃고 만년에 형제도 없이 객지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다가 또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고 단지 한 명의 어린 아들만 외로이 품속에 있으니, 정경을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네.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 여기에 이르게 하였는가!아름답고 화락한 위의와 강직하고 질박한 자질로 의를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여겨 선과 인을 쌓았으니, 마을에서 모두 감동하여 칭송하고 사우들이 추중하여 감복하였네. 나는 만년에 멀지 않은 곳에 이사하여 지내며 비록 떠돌며 곤궁하고 초췌함이 지극하였으나 생존해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대가 구휼해 준 덕분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마음으로나 말로나 어느 날인들 잊겠는가. 그런데 신세가 황량하여 한결같이 얽매여 군이 병들었을 때 살피지 못하였고 죽었을 때 영결하지 못했으니, 내가 군에게 저버리고 저버린 것이 많지 않은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오호라! 하늘이 능히 사람을 이기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더구나 지금 말세의 운수는 전도되어 헤아리기 어려운 날에야 어떠하겠는가. 선한 사람이 능히 복을 받지 못하고 어진 사람이 능히 장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실로 마땅하네. 그러나 하늘이 사람을 이기는 것은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이니, 지금 품속에 있는 고아가 석과(碩果)164)의 종자가 되어 장래에 번성하게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혼령은 눈을 감고 유감을 갖지 마소서. 君何至於斯耶。君何至於斯耶。世來遺業。其有述之者耶。平日宿志。其有就之者耶。門戶之計。其有任之者耶。家室之托。其有委之者耶。早而孤露。晩而終鮮。客地踽凉。又此奄忽。而只有一箇幼孩。孑然在懷。言念情景。令人傷神。天乎天乎。胡令至此。以休休愷悌之儀。侃侃質慤之姿。貴義輕財。積善累仁。閭里感誦。士友推服。余於晩暮。移寓不遠。雖流離困悴之極。而所以存活得過。誰謂非吾友賙恤之力也。心乎謂矣。何日忘之。而身事荒凉。一味絆縶。病焉而未得相省。歿焉而未得相訣。吾之負負於君者。不其多矣乎。痛哉痛哉。嗚呼。天之不能勝人久矣。況今叔季數運。顚倒難測之日乎。善之不能獲福。仁之不能享壽。固其宜也。然天之勝人。必有其日。則見今在懷之孤。安知不爲碩果之種而蕃衍於來許耶。靈其瞑目。勿使有遺憾耶。 노우언(盧禹言) 노창석(盧昌錫, 1861∼?)을 말한다. 자는 우언, 호는 월파(月坡),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석과(碩果) 《주역》 〈박괘(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이는 다섯 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인 상태에서 맨 위의 효 하나만 양(陽)인 것을 석과(碩果)로 비유한 것으로, 하나 남은 양의 기운이 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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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일165)에 대한 제문 祭裴政一文 자태가 단아하고 잡아 지키는 것이 삼가고 성실하여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여 일찍 아름다운 소문이 드러났네. 과거 공부를 사절하고 위기(爲己)의 학문으로 돌아와 깊이 잠심한 지 몇 년에 나아간 경지가 두서가 있었네. 한 번 병들어 3년 만에 결국 일어나지 못하였네. 오호라! 위로는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자식이 없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막혀 뜻을 가지고도 이루지 못하였으니, 아득한 천지에 이 한이 얼마나 지극한가.군과 계원(啓元)166)은 그 나이와 지업이 일찍이 성대하게 한 무리의 사람이 아닌 적이 없었는데, 군이 죽은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계원이 또 죽었으니, 군은 아는가, 모르는가? 아니면 혹 저승에서 상종하기를 이승에 있을 때와 같이 하고 있는가?의림(義林)은 미적거리며 세월만 보내다가 제때 배우지 못해 비록 비슷한 점이 없었지만 두 군의 뒤를 따라 구구하게 노년에 효과를 거둘 계획을 삼았는데, 그렇게 행한지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두 사람 모두를 잃었으니, 외로운 이 생애 누구와 통하며 누구와 함께할까?일신상의 일에 얽매여 달려가 곡하는 것도 오래도록 늦어져 성상에 세 번이나 바뀌어 종상(終祥)이 장차 다가오니, 인정과 도리로 헤아려봄에 저버린 죄 무겁네. 지금 이에 와서 임하여 삼가 박한 제수 갖추어 올리니 영령이여, 아시겠는가? 姿相端雅。持守謹慤。入孝出恭。夙著令聞。謝功令之業。返爲己之學。沈潛有年。造詣有緖。一病三年。竟告不起。嗚呼。上有雙親。下無一育。妙齡遽閼。齎志未就。悠悠天地。此恨何極。君與啓元。其年紀其志業。未嘗不是蔚然一隊人也。而君逝未幾月。啓元又逝矣。君其知之耶否耶。抑或相從於泉臺之下。如在世時耶。義林因循失學。雖無所似。而擬從兩君之後。以爲區區收桑之計。行未幾何。遽皆失之。煢煢此生。誰因誰與。身事有絆。久稽奔哭。星霜三遞。終祥將屆。揆以情理。辜負重矣。今玆來臨。謹具薄奠。靈其知否。 배정일(裴政一) 배흥묵(裴興默, 1857~?)을 말한다. 자는 정일,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정의림의 문인록에는 자가 정일(正一)로 되어 있다. 계원(啓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의 자이다. 호는 귀암(龜巖)·면수재(勉修齋),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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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매화 古梅 늙은 매화 찾아가노니 꽃은 피었는가 行尋古梅問著花바로 적막한 물가에 있었네 乃在寂寞水之涯줄기와 가지 오히려 서로 사귈 수 있는데 幹梢猶能相交義뿌리와 밑둥 일찍이 토사로 북돋아 주지 않았네 根柢曾不培土沙어젯밤에 내린 봄비는 노을처럼 가늘었건만 昨夜春雨細如霞홀연히 온갖 나무의 꽃들이 활짝 피었네 忽焉開盡萬樹葩향기 진동하니 어찌 바람을 보내 차단하리 香動怎遣風斷遮그림자 성기니 더욱더 달이 떠서 기쁘네 影疎更喜月來加아리따운 자태는 미인처럼 아름답고 娉婷姿態美人姱맑고 여윈 기상은 고사처럼 훌륭하네 淸瘦氣像高士佳수레 백 대에 실린 수많은 꽃 돌아보니 回看衆芳載百車모두 어지럽게 〈하리파인〉254)을 부르네 盡是紛紛下里巴하손255)은 오지 않고 임포256)는 멀리 있으니 何遜不來林逋遐그대를 사랑하는 이 오늘 다시 누구이겠는가 愛君今日復誰耶향기 머금고 천진 보존함은 모두 자신의 몫 含薰葆眞皆自家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지도 않네 不向世上別人誇 行尋古梅問著花? 乃在寂寞水之涯.幹梢猶能相交義, 根柢曾不培土沙.昨夜春雨細如霞, 忽焉開盡萬樹葩.香動怎遣風斷遮, 影疎更喜月來加.娉婷姿態美人姱, 淸瘦氣像高士佳.回看衆芳載百車, 盡是紛紛《下里巴》.何遜不來林逋遐, 愛君今日復誰耶?含薰葆眞皆自家, 不向世上別人誇. 하리파인(下里巴人) 전국 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민간 가곡으로, 수준이 낮은 평범한 음악을 말한다. '하리'는 시골, '파인'은 파촉인(巴蜀人)을 말한다. 하손(何遜) 472~519. 남조(南朝) 양(梁)나라 사람이다. 그는 건안왕(建安王)의 수조관(水曹官)으로 양주(楊州)에 있을 때 관청 뜰의 매화가 시흥(詩興)을 발동시켜 그 나무 아래서 시를 읊곤 하였다. 그후 낙양(洛陽)에 돌아갔다가 그 매가 그리워서 다시 양주로 발령해 주길 청하여 양주에 당도항니 매화가 한창 피었기기에 매화 나무 아래서 종일토록 서성거렸다고 한다. 《梁書 卷49 何遜列傳》 임포(林逋) 967~1028.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처자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사니, 당시 사람들이 매처학자(梅妻鶴子)하였다고 칭하였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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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석계에게 드리다 2수 病中呈石溪【二首】 공산207)에서 오랜 비로 행인 걸음 묶였더니 公山久雨滯行人돌아온 뒤 이로 인해 병든 사람이 되었다오 歸後因成病中人삼십 리208) 떨어진 공의 집209)에 아직 가지 못하니 一舍仙庄猶未進백일을 헛되이 보낸 박정한 사람이 가증스럽구나210) 可憎百日薄情人병이 깊어 장수할 사람211) 되기가 어려우니 病重難爲久視人명산 그 어디에 선인을 이장할 수 있으랴212) 名山何處葬先人그저 일찌감치 공의 높은 안목에 도움 받아 但祈及早憑高眼천추의 불효자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免作千秋不孝人 公山久雨滯行人, 歸後因成病中人.一舍仙庄猶未進, 可憎百日薄情人.病重難爲久視人, 名山何處葬先人?但祈及早憑高眼, 免作千秋不孝人. 공산(公山) 충청도 공주(公州)에 위치한 산 이름인데, 공주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삼십 리 원문의 사(舍)는 원래 머물러 유숙하는 것인데, 옛날 군대가 하루에 30리를 가서 유숙하였으므로 30리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공(公)의 집 원문의 선장(仙莊)은 상대방의 집을 높여 부른 것이다. 백일을……가증스럽구나 후창이 집으로 돌아온 뒤 병석에 눕게 되어 공의 집에 백일 동안 찾아가지 못하였기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장수(長壽)할 사람 원문의 '구시(久視)'는 오래도록 본다는 뜻으로, 장생불사(長生不死) 즉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음을 의미한다. 《도덕경(道德經)》 59장에 "나라를 소유한 모는 장구할 수 있으니 이는 뿌리를 깊이 하고, 꼭지를 단단히 하여 길이 살아 오래도록 보는 도라 한다.〔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蔕, 長生久視之道.〕"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명산……있으랴 후창은 26세가 되는 1909년에 부친인 김낙진(金洛進)의 상을 당하였으니, 이때는 선인(先人)의 이장(移葬)을 도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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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운【정섭】에게 답함 答尹子運【定燮】 헤어진 지가 여러 달이 지났는데 소식이 전혀 없으니 평소 거처하면서 마음이 서글펐다네. 뜻밖에 덕수가 와서 그대의 편지를 전해주니, 고마운 마음은 평소에 배가 되었다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온화하고 화열하며 건강도 좋다가 하니, 얼마나 마음에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네. 그대의 학과(學課)는 비록 근래 어떤 양상으로 절도를 지키며 행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깨닫지 못해 분하게 여기고 표현을 못하여 답답하게 여기며69) 뉘우치는 뜻이 지면에 넘치는 것을 보니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기에 더욱 마음이 놓이네. 나의 몸은 노쇠하고 마음은 병들어감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데 반드시 세상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니, 흘러가는 데로 맡겨둘 따름이네. 다만 오래 배운 학업은 성취하지 못하고 이전부터 품어온 뜻은 물거품이 되었는데, 교유하는 벗 사이에서 분연히 힘을 쏟아 마음을 둘 만한 곳이 없으니 이것이 대단히 한스럽네. 원컨대 자운은 이렇게 젊을 때 맹렬하게 정채를 쏟아 공부함이 어떻겠는가.질문 : 힘쓰는 것을 잊거나 조장하는 병을 구원하고자 한다면70) 아마도 '경(敬)' 한 글자가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답변 : 그럭저럭 한가롭게 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에 가까우며 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조장함에 가깝네. 공부의 핵심은 바로 이곳에 있으니, 경을 견지하여 점차로 익숙하게 된다면 절로 이런 폐단이 없게 되네. 分手數朔。音聞漠然。居常馳悵。謂外德受來。承惠墨。感豁倍常。仍審侍省怡愉。體事沖裕。何慰如之。盛課雖不詳其近日節度之果作何狀。而見憤悱悔悟之意。溢於紙面。可想其不悠悠浪過也。尤庸豁然。義林衰相病情。日甚一日。必非久於世者。任之而已。但舊業未就。宿心歸虛。而交遊之間。又無奮然用力可以寄意處。是爲悢悢耳。願子運趁此少壯時。猛着精彩如何。欲救勿忘勿助之病。恐以敬一字爲良劑。悠泛近於忘。急迫近於助。功夫要處。正在於此。持敬浸熟。自無此獘。 깨닫지……여기며 앞의 〈답황신여(答黃新汝)〉에 보인다. 힘쓰는……한다면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반드시 일삼아서 미리 기필치 말고서 마음으로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라.〔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勿助長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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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삼130)에 대한 제문 祭朴正三文 천태산(天台山) 아래 문산(文山)과 덕봉(德峯) 사이에 덕을 숨기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함께 서로 잘 아는 사람으로는 오직 우당(愚堂)과 덕헌(德軒)131) 및 공이 이런 사람이네. 이윽고 우당과 덕헌이 서로 이어서 세상을 떠나고 오직 공만 살아 있었네. 여러 옥과 이어진 구슬이 서로 비추며 서로 윤택하였던 것은 비록 옛날에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외로운 거문고 줄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을 아끼고 남은 향기가 아직 다하지 않은 것을 사랑한 것은 그 마음이 실로 무궁하였는데, 공이 조금 더 살지 못하고 또 다시 문득 가버릴 줄 어찌 알았으랴! 효우(孝友)132)하고 화락한 기풍과 온량(溫良)하고 근칙(謹勅)한 위의는 태허의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로 연기와 구름처럼 사라져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네.오호라! 덕봉(德峯) 아래에 살던 평소133)의 벗들을 지금은 모두 잃었고 오직 수석과 풍월만 남았으니, 나로 하여금 바라보고 상상함에 다하지 않는 슬픔이 있게 하네. 天台之下。文山德峯之間。多隱德之人。余與之相熟者。惟愚堂德軒及公是也。旣而愚堂德軒。相繼謝世。惟公在焉。其群玉聯珠。交映而互潤。雖不及曩時。而所以惜孤絃之未絶。愛餘芳之未歇者。其心固無窮已。豈知公不少延。而又復奄忽耶。孝及愷悌之風。溫良謹勅之儀。烟消雲散於太虛冥冥之中。而不可復見矣。嗚呼。年生知舊在於德峯下者。今皆失之。而惟有水石風月。令人有瞻想不盡之悲。 박정삼(朴正三) 박준원(朴準元, 1849∼1908)을 말한다. 자는 정삼(正三), 호는 덕와(德窩),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20 〈덕와 박공 유사장(德窩朴公遺事狀)〉에 보인다. 덕헌(德軒) 박준채(朴準彩, 1839∼?)의 호이다. 자는 우서(禹瑞),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효우(孝友) 저본에는 '효급(孝及)'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 수정하였다. 평소 저본에는 '연생(年生)'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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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유124)에 대한 제문 祭宋德裕文 홍양125)의 구족이고영남의 명가이네자상하고 화락하니그 사람 매우 아름답네중간에 온갖 어려움 겪어떠돌며 겨를이 없었네잠깐 금북에 유랑하다가만년에 천태산 남쪽에 집을 지었네형제가 서로 의지하며어려움 애써 헤쳐왔네모든 것들 대강 모았고옛 학문 더욱 힘썼네나는 누추한 사람이라늙어서야 직접 보았네이미 인척이 되었고또 이웃에 살게 되었네밤낮으로 서로 따르며창수하지 않은 날 없었네운치는 훈지126)가 합한 듯 하고기운은 교칠127) 같았네돌아보건대 외롭고 쓸쓸한 나는이것을 얻은 것이 족하였네스스로 생각건대 여생에길이 이 즐거움 보리라 여겼네누가 생각했으랴 하루 저녁에갑자기 이렇게 버리고 떠날 줄을마치 패가 낭을 잃은 것128) 같고마치 공이 거를 잃은 것129) 같네나의 말과 나의 생각누구와 통하며 누구와 지극히 논할까슬픈 바람 뼈에 서늘하고지는 달은 빛을 잃었네달려가 한 번 곡하니눈물이 뺨에 줄줄 흐르네제문으로 제사 드리니영령이여 흠향하소서 洪陽舊族。永南名家。慈詳愷悌。其人孔嘉。中嬰百艱。流離靡遑。薄遊錦北。晩築台陽。兄弟相依。拮据艱關。凡百粗集。舊學加勉。義也陋生。老而見親。旣荷結姻。又從接隣。日夕相隨。唱酬靡闕。韻合塤箎。氣若膠漆。顧惟踽凉。得此爲足。自擬餘日。永視此樂。誰謂一夕。遽爾見棄。如狽失狼。若蛩失蚷。我言我懷。誰因誰極。悲風凄骨。落月無色。奔走一號。涕泗交頤。操文致侑。靈其饗之。 송덕유(宋德裕) 송연식(宋演植, 1897∼?)을 말한다. 자는 덕유, 호는 계은(溪隱),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홍양(洪陽) 충청남도 홍성(洪城)의 옛 이름이다. 훈지(壎篪) 고대의 악기 이름으로, '훈'은 흙을 구어서 만든 나팔이고 '지'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인데, 이 두 악기를 합주할 경우 성음이 잘 조화되기 때문에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에 "백씨가 훈을 불면, 중씨가 지를 부네.[伯氏吹壎, 仲氏吹篪.]"라고 하였다. 교칠(膠漆)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같은 . 패(狽)가……것 패는 앞다리가 짧아 다닐 때 낭(狼)에 기대야 하기 때문에 낭을 잃으면 다닐 수 없다. 세상일이 어긋날 때를 낭패라고 한다. 여기서는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공(蛩)이……것 공은 공공(蛩蛩)이고 거는 거허(蚷虛)인데, 전설상의 두 짐승의 이름이다. 공공은 북해 가운데 있다는 말 비슷한 짐승이고 거허는 수말과 암나귀 사이에서 난 짐승인데, 늘 같이 따라 다닌다고 한다. 교분이 두터워 항상 같이 다니는 친한 관계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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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질 문경 형익 의 〈탄치화음〉에 차운하다 2수 次族姪文卿【炯翼】《嘆薙禍吟》【二首】 더위와 추위처럼 치세와 난세가 번갈아 오니 治亂相禪若暑寒이 세상 이치에 달관하면 또 무엇을 한탄하랴 達觀此世亦何歎의리를 헤아려 칼로 자르듯이 구할 뿐이요 但求裁義如刀截애타는 마음으로 불기운 일으키듯 하지 않네 不用薰心動火煓원나라 청나라와 견주면 오히려 조금 멀지만 視彼元淸猶稍闊용화산115)에 숨는 게 어찌 끝내 어려운 일이겠나 隱於龍華豈終難온전히 돌아가고자116) 웅어117)의 뜻을 두었다면 全歸如有熊魚志먼저 스스로 곤궁하게 살며 편안함은 잊어야겠지 先自居窮忘快安음기 가득한 세상에 홀로 양기 보존했으니 擧世窮陰獨保陽누가 함부로 병들어 쓸쓸하다고 기롱하겠나 何人妄譏病凉凉노재는 도를 행함이 끝내 구차하게 되었고118) 魯齋行道終爲苟동해는 형체 보전해 결국 장수할 수 있었네 東海全形竟得長불 속에 들어간 금과 동은 더욱 단련되고 入火金銅增鍛鍊겨울을 지난 소나무 잣나무는 뒤에 시드네 經冬松柏後凋黃그대는 하늘이 옥성119)하려는 뜻을 아는가 君知天意玉成否역경에 처함이 도리어 안락한 곳이 된다네 逆境還爲安樂鄕 治亂相禪若暑寒, 違觀此世亦何歎?但求裁義如刀截, 不用薰心動火煓.視彼元、淸猶稍闊, 隱於龍華豈終難?全歸如有熊魚志, 先自居窮忘快安.擧世窮陰獨保陽, 何人妄譏病凉凉?魯齋行道終爲苟, 東海全形竟得長.入火金銅增鍜鍊, 經冬松柏後凋黃.君知天意玉成否? 逆境還爲安樂鄕. 용화산(龍華山) 전라북도 익산(益山)의 북쪽에 있는 산이다. 온전히 돌아가고자 부모가 온전히 낳아 주신 몸에 손상을 끼치지 않고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고 죽는 것을 말한다. 증자(曾子)의 제자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부모가 온전히 낳아 주셨으니,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가야만 효도라 할 것이다.[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祭義》 웅어(熊魚) 취하고 버릴 바에 대해 판단할 줄 안다는 의미로, 주로 의리를 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생선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바이며 곰 발바닥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라는 말이 나온다. 노재(魯齋)는……되었고 노재는 허형(許衡, 1209~1281)의 호이다. 자는 중평(仲平),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성리학에 전념하여 북방에 성리학을 일으켰으나, 후대에 송나라를 저버리고 원나라에 출사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것을 말한다. 주자학자로서 원나라 초기, 주자학의 기초를 닦았는데, 원나라 세조가 그의 제자 왕재(王梓)ㆍ유계위(劉季偉)ㆍ한사영(韓思永) 등 12인을 불러 국자감(國子監)의 재장(齋長)으로 삼았다. 저서에 《독역사언(讀易私言)》ㆍ《노재심법(魯齋心法)》ㆍ《허노재집(許魯齋集)》이 있다. 옥성(玉成) 하늘이 온갖 시련을 주어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하였다. 《張子全書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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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 백남주에게 주다 贈白秀才南柱 세월을 단단히 붙잡아 촌음도 아끼니 緊把光陰惜寸分어린 나이 알찬 학업 누가 그대 같으랴 童年實業孰如君손가락 끝으로 돌구멍 끝내 뚫을 수 있으니 指端石竇終能透귀 밖에 속세의 소음을 들으려 하지 말게나 耳外塵喧不欲聞의리에 처해서는 물 먹은 진흙처럼 되지 말며368) 處義莫令泥帶水마음을 밝힘에는 구름을 헤친 달 같아야하리 明心要似月披雲백세를 감화시킨 이가 휴암369) 노인이시라 風乎百世休菴老선조에 스승 계시니 어찌 문왕을 기다리랴370) 師在家先豈待文 緊把光陰惜寸分, 童年實業孰如君.指端石竇終能透, 耳外塵喧不欲聞.處義莫令泥帶水, 明心要似月披雲.風乎百世休菴老, 師在家先豈待文. 물을 …… 말며 어물어물하지 말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라는 뜻이다. 원문의 '니대수(泥帶水)'는 '화니대수(和泥帶水)'의 뜻으로 선(善)ㆍ악(惡)ㆍ시(是)ㆍ비(非) 등이 뒤섞여 분명히 구별되지 않음을 말한다.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 1497~1579)의 호이며, 자는 사위(士偉)이다. 기묘사림의 일원으로 이율곡ㆍ성혼과 함께 성리학을 토론하였다. 파주의 파산서원(坡山書院)과 남평(南平)의 봉산서원(蓬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선조 …… 기다리랴 스승은 백인걸을 말한다. 백남주는 혼자서도 스스로 분발하는 선비라는 말이다. 맹자가 "문왕 같은 통치자가 나온 뒤에야 흥기하는 것은 일반 백성이니, 호걸스러운 선비로 말하면 문왕이 없더라도 홀로 흥기한다.[待文王而後興者, 凡民也. 若夫豪傑之士, 雖無文王獨興.]" 하였다. 《孟子 盡心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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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이구214)에게 부치다 4수 病中寄以求【四首】 오랜 객지에서 삼경215) 만남이 근년에 드물었는데 久旅三庚罕近年우사216)가 비를 뿌려 죄수처럼 나를 잡아 두는구나 雨師拘我若囚然일찍 돌아가 다시 그대를 찾아갈 수 있다면 早歸如得重尋子해가 저물도록 이내 충정을 남김없이 토로하리 吐盡衷情到暮天거상하여 삼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으니 居喪不出限三年부득이한 상황에서 나온 일은 미진함이 있었네 事出無何未盡然하루에 두 번 성묘하니 돌아가는 길에 日再省墳歸去路그대가 날 찾아옴이 어찌 하늘을 어기는 일이겠는가 子能過我豈違天큰 병 걸린 처지로 막 일흔 살을 맞이하니 大病初當七十年좋은 의원도 손 못 쓰고 바보처럼 앉아 있네 良醫束手坐呆然이런 몸을 가지고 어디로 갈 수 있으려나 此身把得投何處귀신이 될지 사람이 될지 하늘에 달려 있도다 作鬼成人在上天낙척하여 한 일 없이 고령에 이르렀는데도 落拓無爲到耋年첩첩의 파란이 일어 도리어 분잡하기 그지없네 波瀾疊疊却紛然바라노니 자식이 사후의 일을 잘 처리하여 冀子善裁身後事남과 내가 서로 편안해 절로 하늘에 합하기를 物我相安自合天 久旅三庚罕近年, 雨師拘我若囚然.早歸如得重尋子, 吐盡衷情到暮天.居喪不出限三年, 事出無何未盡然.日再省墳歸去路, 子能過我豈違天大病初當七十年, 良醫束手坐呆然.此身把得投何處? 作鬼成人在上天.落拓無爲到耋年, 波瀾疊疊却紛然.冀子善裁身後事, 物我相安自合天. 이구(以求) 최민열(崔敏烈)로, 이구는 그의 자이다.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후창집》 권11에 후창이 그에게 보낸 편지 몇 편이 실려 있다. 삼경(三庚) 1년 중 가장 더운 한여름의 세 번의 경일(庚日), 즉 삼복(三伏)을 이른다. 하지(夏至) 후 세 번째 경일을 초복(初伏), 네 번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立秋) 후 첫 번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 한다. 우사(雨師) 고대 전설상에 비를 관장하는 신(神)이다. 《주례》 〈대종백(大宗伯)〉에, "희생(犧牲)을 쌓아 놓은 섶 위에 올려놓고 태워서 사중(司中)ㆍ사명(司命)ㆍ풍사(飌師)ㆍ우사(雨師)에게 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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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244)에 오르다 上天台山 병이 낫자 흥이 일어 높은 산에 오르니 病蘇興發上高山칠 척의 몸이 천지 사방을 여유롭게 노니는구나 七尺優遊六合間머리가 하얗게 셌지만 마음만은 늙지 않았고 白髮惟能心不老맥추인지라 여름에도 서늘한 게 괴이하지 않네 麥秋無怪夏猶寒사람들은 모두 바쁘니 번잡하게 왔다가 분란하게 가고245) 熙來穰往人皆忙구름은 절로 한가하니246) 저녁에 걷혔다가 아침에 퍼지누나 暮卷朝舒雲自閑무엇보다도 내 생애에 바람 쐬고 시 읊는 곳이니 最是吾生風詠處봉황이 다시 천길 높이 나는 걸247) 자랑할 만 하여라 可詑千仞鳳翔還 病蘇興發上高山, 七尺優遊六合間.白髮惟能心不老, 麥秋無怪夏猶寒.熙來穰往人皆忙, 暮卷朝舒雲自閑.3)最是吾生風詠處, 可詑千仞鳳翔還. 천태산(天台山) 전라북도 정읍 이평면 창동리에 있는 산이다. 번잡하게……가고 원문의 희(煕)와 양(穰)은 사람들이 이익을 좇아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사기(史記)》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천하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는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해 오는 것이요, 천하 사람들이 분란하게 가는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해 가는 것이다.[天下煕煕, 皆爲利來; 天下壤壤, 皆爲利往.]"라고 하였다. 양(壤)과 양(穰)은 통용된다. 구름이 절로 한가하니 저본에는 '운자간(雲自間)'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간(間)을 한(閑)으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봉황이……걸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봉황이 천 길 높이 낢이여, 덕이 빛남을 보고 내려오도다.[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84 賈生列傳》 閑:底本에는 "間".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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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성·이영규·전용욱에게 답함 答黃 佾性·李永珪·田溶彧 한번 병이 들어 삼년이 되었으니 다스릴 힘도 없습니다. 문에는 참새그물을 칠 정도로 손님이 없고 집은 저승과 같습니다. 어디선가 한바탕 청풍이 불어와 편지를 날려 보냄으로써 저에게 한 줄기 서광을 비쳐주어 오늘은 인간세상의 사람이라 할 수 있으니, 이보다 큰 다행스러움은 없습니다. 보내신 편지에서〈지산선생연보〉 발간을 도모하여 시일이 좀 되었음을 말했는데, 이 일은 저 또한 6년 전에 행해(김노동)선생이 저를 손님으로 초청했을 때 교정하느라 힘을 좀 썼습니다. 행해선생이 오래도록 인쇄하려 했지만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에야 착수했다고 하니, 사림 모두의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행해선생의 소식을 이로 인해 아울러 들을 수 있었으니, 저에게는 큰 다행입니다. 편지 한 장을 동봉하여 올리니 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一病三年, 無力可治.門垂雀羅, 室若冥府.何來清風, 颺送華翰, 照我以一點曙光, 今日可謂陽界人, 幸莫大焉.承喩以謀刊《志山先生年譜》之役有日, 是役也, 鄙亦六年前, 因杏海請殯, 費校寫之力.杏海積營剞劂, 而未遑者, 今焉就緒, 又士林公共之幸也.杏海聲光, 因可獲聽, 在我尢幸.一紙胎呈, 傳致仰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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