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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일을 위로하다 慰允一 선경169)은 예로부터 하늘의 이치임을 믿을 만하니 善慶從來信上天그대 집안의 복록이 어찌 성대하지 않으리오 君家福祿盍繁延나이 사십170)은 비록 자식을 늦게 보는 때라 해도 强年縱道遲兒子남은 음덕은 어찌 선조를 의뢰하지 않으랴 餘蔭那無籍祖先이미 향산이 백련171)을 여는 걸 보았는데172) 已見香山開白蓮하물며 희무173)가 주의 국운을 이었다고 들음에랴 況聞姬武續周緣한 마디 말로 위로함은 아부하는 게 아니니 一言慰祝非阿好이치로 증험해보면 명백히 그러한 것일세 以理證之明自然 善慶從來信上天, 君家福祿盍繁延强年縱道遲兒子, 餘蔭那無籍祖先己見香山開白蓮2), 況聞姬武續周緣?一言慰祝非阿好, 以理證之明自然. 선경(善慶) 선행(善行)을 쌓아 많은 복록(福祿)이 생김을 뜻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나이 사십 원문의 강년(强年)은 강사(強仕)와 비슷한 말로, 나이 40세를 이른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나이 사십을 강이라고 하니, 이때에 벼슬길에 나선다.[四十曰强而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백련(白蓮) 저본에는 '백운(白運)'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운(運)을 련(蓮)으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이미……보았는데 향산(香山)은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자호한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를 가리킨다. 백련(白蓮)은 자연 속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단체를 결성하여 어울리는 결사(結社) 가운데 대표적인 백련사(白蓮社)를 이른다. 백련사는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에 있는 동림사(東林寺)의 고승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당대의 명유(名儒)인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을 할 목적으로 결성된 결사이다. 백거이와 관계된 결사는 백거이가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향산(香山)의 승려 여만(如滿)과 함께 결성했던 향화사(香火社)가 있다. 여기서는 백거이의 향화사를 백련사로 대신하여 말한 것이다. 희무(姬武) 주(周)나라 무왕(武王)을 가리키는 말로, 희(姬)는 주나라의 성이다. 무왕은 주나라를 창업한 초대 황제로서, 이름은 발(發)이다. 서백(西伯)인 부친 문왕(文王)을 계승하여 상(商)나라를 멸한 후 아우 주공(周公)의 보좌를 받아 봉건적인 통치제도를 수립하였다. 蓮:底本에는 "運".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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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리의 족숙 낙찬 을 삼가 애도하다 敬悼立石里族叔【洛瓚】 지금 세속엔 거짓이 불어나고 있는데 僞滋今世俗공만은 홀로 천진함을 보전하였다오 公獨保淳眞네 아들을 두었으니 남은 경사182)를 알 수 있고 四子知餘慶팔순을 넘었으니 인자에게 보답함183)을 볼 수 있네 八旬見報仁인간 세상의 묵은 빚을 모두 다 갚고는 人間方了債천상 세계로 갑자기 구름 타고 올라갔다네 天上遽乘雲아아 이제는 끝이로다 성재의 모임184)에서 已矣星齋會더 이상 모시고 정담을 나눌 수가 없구나 更無陪話辰 僞滋今世俗, 公獨保淳眞.四子知餘慶, 八旬見報仁.人間方了債, 天上遽乘雲.己矣星齋會, 更無陪話辰. 남은 경사 선행을 쌓아 많은 경사가 생김을 뜻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인자(仁者)에게 보답함 《논어》 〈옹야(雍也)〉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동하고 어진 자는 고요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장수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라고 하였는데, 이를 차용하여 그가 팔순을 넘도록 산 것은 하늘이 그가 평소 어질었기 때문에 장수하게 하는 것으로 보답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성재(星齋)의 모임 성재는 취성재(聚星齋)를 가리킨다. 취성재는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남동쪽에 있는 부안 김씨(扶安金氏)인 군사공(君事公) 김광서(金光敍) 묘소의 재실(齋室)이다. 1819년(순조19)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1826년(순조2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곳에서 부안 김씨의 종회(宗會)를 열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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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길을 가며 春日途中 옥중의 죄수처럼 처자식에 매였다고 누가 말하나 獄囚誰道繫妻孥시흥에 문을 나서 멋진 경치를 묘사하네 詩興出門佳景摹백성들이 은택에 젖으나 한나라418) 때와 다르고 黎首恩沾時異漢녹색 털 같은 풀이 가느니 노419)의 땅이 아니네 綠毛草細地非瀘평평한 호수에 낚싯대로 처음 낚시 드리워보고 平湖竿試初垂釣작은 채마밭에 부지런히 호미질하고 박을 딸 준비하네 小圃鋤勤備斷瓠산 남쪽에 은거하는 은자를 만나러 가니 爲訪山南幽隱去날으는 학이 임포에게 알리는 걸 보리라420) 應看飛鶴報林逋 獄囚誰道繫妻孥, 詩興出門佳景摹.黎首恩沾時異漢, 綠毛草細地非瀘.平湖竿試初垂釣, 小圃鋤勤備斷瓠.爲訪山南幽隱去, 應看飛鶴報林逋. 한나라 조선(朝鮮)을 비유한 것이다. 노(瀘) 불모지를 비유한 것이다. 참고로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5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으로 깊이 들어간다.[五月渡瀘, 深入不毛.]"라는 말이 나온다. 날으는……보리라 학(鶴)이 내가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은자에게 알릴 것이라는 뜻이다. '임포(林逋)'는 은자를 비유한다. 임포는 북송 때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城市)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행서와 시에 능하였다. 장가를 들지 않고 처자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즐기니, 당시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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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대부 석당 선생에게 올림 上族大父石塘先生 문안드린 이후로 편지를 보낼 길이 없어 북쪽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저의 마음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깊어 가는 가을에 한가로이 수양하시는 기체는 한결같이 만강하시며, 가족들은 두루 평안하십니까? 연세가 많고 덕이 높아 사문(斯文)이 기댈 곳이 있으니, 이 어찌 한갓 우리 가문의 다행이겠습니까. 실로 사림과 나라의 복입니다. 보잘것없는 이의 흠모하는 마음은 장수하시기를 항상 간절히 축원합니다. 족손의 가친과 세 형제, 기로(耆老)가 모두 생존하여 하늘이 일락(一樂)22)을 누리게 하였으니 감격스러운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우리 가문은 100여 년 전부터 명성을 떨치지 못하고 날로 영락(零落)하니, 후손이 된 자는 마땅히 몇 배로 노력하여 가업을 계승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소자는 세월만 보내며 머뭇거리니 오히려 보통의 아몽(阿蒙)23)이 됨을 면하지 못하기에 이 때문에 두려울 따름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도학을 앞장서 밝히시어 사방의 학자들이 모두 종사(宗師)로 삼았습니다. 더구나 소자의 입장에서야 의지할 곳으로 여기는 마음이 어찌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더하지 않겠습니까마는, 부모님은 늙고 힘은 미약하여 먼 길을 가서 찾아뵙는 것은 기필할 수 없는 점이 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예전에 선생님께서 소자에게 타이르시기를 "기 선생(奇先生)이 근래 그대의 도내에 있는데, 너는 어찌 배우지 않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소자가 이미 공경히 대답하였지만 아직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마땅히 가까운 시일 내에 나아가 배워 선생님의 타이름에 부응하는 것이 또한 어찌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拜違以來。便信無階。北望馳悵。曷任下情。伏未審秋深燕養氣體。一享萬康。眷節均宜。年高德邵。斯文有主。此豈徒吾門之幸。實士林邦國之福。區區顒若。常切榠欞無疆之祝。族孫家親三昆季耆老俱存。天餉一樂。情感無量。吾門自百餘年。聲猷不競。日就零替。爲人後承者。當倍蓰勉力。以圖所以紹述之策。而小子悠悠前却。尙不免爲尋常阿蒙之歸。用是瞿瞿耳。伏惟先生倡明道學。四方學者。無不宗師。況在小子而視爲依歸者。豈不倍蓰餘人。而親老力綿。千里源源。有不可必。奈何。昔者先生戒小子曰。奇先生近在汝省內。汝何不從學也。小子旣敬諾。而尙未遂矣。第當從近負笈以副先生之戒。亦豈非先生敎之耶。 일락(一樂) 맹자는 군자가 인생에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 세 가지를 말하면서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그 첫 번째 즐거움이다.[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아몽(阿蒙) 학식이 없고 진보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국 시대 오(吳)나라 여몽(呂蒙)이 군무(軍務)에만 종사하다 손권(孫權)의 권유로 열심히 독서하여 노사숙유(老士宿儒)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의 학식을 쌓았는데, 노숙(魯肅)이 도독(都督)으로 와서 여몽과 담론해 보고는 "이미 예전의 오나라의 아몽(阿蒙)이 아니구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三國志 吳書 呂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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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오공69)에 대한 제문 祭松庵吳公文 공은 어버이를 섬김에 종시(終始)의 효성이 있었고 집안을 일으킴에 이룩한 사업이 있었으며, 몸가짐에 근칙(謹勅)하다는 명예가 있었고 고을에서는 화락한 풍모가 있었습니다. 자식의 혼사를 다 시켜 자손들이 줄을 이루고, 선을 닮도록 하여70) 아들이 계술하는 것이 다함이 없습니다. 걱정 없이 강녕의 복에 응하고 욕됨이 없이 예순의 장수 누렸습니다. 인생의 사업 끝냈다 하겠고, 세상의 책임 마쳤다 하겠습니다. 이것이 유연히 떠나고 호연히 돌아가 근심하며 죽음을 슬퍼하는 뜻이 기미에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이니, 공은 사생의 설을 알고 종시(終始)의 의가 있었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향당(鄉黨)에서는 기구(耆舊)의 명망을 잃게 되었고, 글방에서는 위의를 갖춘 현인이 사라졌고, 붕우 간에는 따를 만한 유익한 벗이 없어졌으니, 뒤에 죽을 사람의 비통함은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영원히 돌아갈 날이 정해져 저승과 이승이 장차 막힐 것이라, 제문을 지어 대신 제사 드리며 슬픈 마음 깃들이니, 어둡지 않은 존령이여 보시고 흠향하소서. 公事親而有終始之孝。起家而有成立之業。持身而有謹勅之譽。處鄕而有愷悌之風。昏嫁畢而孫枝成行。式穀似而子述不匱。無憂而膺康寧之福。無辱而享耆久之壽。人生之業。可謂終矣。世間之債。可謂了矣。此所以悠然而逝。浩然而歸。無慽慽怛化之意。見於幾微。公可謂知死生之說。而有終始之義者也。但鄉黨失耆舊之望。庠塾無風儀之賢。朋友乏從逐之益。後死者之悲痛。有不可已者。大歸有日。幽明將隔。緘辭替侑。以寓一哀。尊靈不昧。庶幾鑑饗 송암(松庵) 오공(吴公) 오수화(吴壽華, 1835∼1895)를 말한다. 자는 태중(泰仲), 호는 송암,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18 〈송암 오공 행장(松庵吳公行狀)〉에 보인다. 선을 닮도록 하여 자식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언덕 가운데의 콩을 서민들이 거두어 가는 것처럼, 명령의 새끼를 과라가 업어 데리고 가서 키우니, 네 자식도 잘 가르쳐서 선을 닮게 하거라.[中原有菽, 庶民采之, 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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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에 회포를 적다 至日書懷 오늘 아침 해가 남쪽에 이르니59) 今朝日南至천시가 이로부터 새로워지고 天時從此新전란 먼지가 맑게 걷힌 때를 만나니 適玆兵塵晴나라의 명운도 새롭게 되는구나 邦命亦維新어이하여 창상자60)는 如何滄上子덕업이 날로 새로워지지 못하는가 德業未日新중년61)의 나이에 덕을 이룬다고 하는데 中身云成德하물며 삼광62)을 순히 따라 새해를 맞이함에랴 順三況歲新이것으로 생애를 마칠 것을 생각하니 言念以此終그저 통탄함만 새로 더함을 느끼겠네 但覺痛恨新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으니 忽然有所悟한 점의 생기가 새롭기도 하여라 一點生意新어찌 위 무공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盍思衛武公구십에도 오히려 스스로 새롭게 했다오63) 九十猶自新천고의 훌륭한 녹죽편64)이여 千古綠竹篇찬란히 빛나는 중광65)이 새롭구나 燁燁重光新애오라지 스스로 위로하고 면려하노니 聊以自慰勉일어나 새로운 새벽빛을 맞이한다오 起迎曙色新 今朝日南至, 天時從此新.適玆兵塵晴, 邦命亦維新.如何滄上子, 德業未日新?中身云成德, 順三況歲新!言念以此終, 但覺痛恨新.忽然有所悟, 一點生意新.盍思衛武公? 九十猶自新.千古綠竹篇, 燁燁重光新.聊以自慰勉, 起迎曙色新. 해가 남쪽에 이르니 원문의 남지(南至)는 동지(冬至)의 별칭이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5년에 "태양이 남쪽에 이르렀다.[日南至]"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의 주(注)에 "동짓날에는 태양이 남쪽 끝에 있게 된다.[冬至之日, 日南極.]"라고 하였다. 창상자(滄上子) 후창이 자기 자신을 일컫는 것이다. 중년(中年) 원문의 중신(中身)은 중년으로 40세에서 50세까지를 말한다. 《서경》 〈무일(無逸)〉에 "문왕이 천명을 받은 것이 중신이었는데, 나라를 누린 것이 50년이었다.[文王受命惟中身, 厥享國五十年.]"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중신은 중년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삼광(三光) 해와 달과 별을 이른다. 어찌……했다오 춘추 시대 위 무공(衛武公)은 95세의 고령임에도 나라에 경계하기를 "경(卿) 이하로부터 사장(師長)과 사(士)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조정에 있는 자들이면 내가 늙었다고 하여 나를 버리지 말고, 반드시 조정에서 삼가고 공손히 하여 서로 나를 경계하라."라고 하였고, 또 〈억시(抑詩)〉와 〈빈지초연(賓之初筵)〉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 고사를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詩經集傳 衛風 淇澳》 녹죽편(綠竹篇) 《시경》에 수록된 〈기욱(淇澳)〉편을 가리킨다. 이는 위 무공(衛武公)의 성대한 덕을 찬미한 시이다. 녹죽은 그 시에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네. 아름답게 문채 나는 군자여, 자르고 다듬은 듯하며, 쪼고 간 듯하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중광(重光) 임금의 성대한 덕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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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말이 어눌해지다 偶然言語鈍弱 폐경186)이 쇠약하고 또 풍증까지 있으니 肺經衰弱又兼風말이 분명치 못해 반벙어리와 같구나 語不分明半啞同예양의 심정은 이 일과 상관없거니와187) 豫讓心情非本事주리188) 상태와 같은 이 늙은이는 누구인가 侏離狀態是何翁노망 난 건 남들 얼굴을 보기가 부끄럽기는 해도 癡呆縱愧瞻人面어눌한 건 성인 되는 일을 배우는 데 무방하다오 訥訒無妨學聖功요수에 의심하지 않는다189)는 옛 가르침이 밝게 있으니 夭壽不疑明古訓하늘이 내리는 처분만을 그저 기다릴 뿐이라네 處分只可俟蒼穹 肺經衰弱又兼風, 語不分明半啞同.豫讓心情非本事, 侏離狀態是何翁?癡呆縱愧瞻人面, 訥訒無妨學聖功.夭壽不疑明古訓, 處分只可俟蒼穹. 폐경(肺經) 십이 경맥의 하나로, 대장에 속하고 폐에 이어진다. 예양(豫讓)의……상관없거니와 예양은 전국(戰國) 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지백(智伯)을 섬겨 총애를 받았는데, 조양자(趙襄子)가 지백을 죽이자,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병 환자처럼 변신하였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었으며, 시장에서 걸식하며 거지행세를 하면서까지 조양자를 암살하고자 하였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자결하였다. 여기서는 예양이 숯을 삼켜 일부러 벙어리가 된 고사를 두고 말한 것이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豫讓》 주리(侏離) 방언(方言)으로,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언어나 문자를 이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 요수(夭壽)에 의심하지 않는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아 몸을 닦으며 천명을 기다림은 명을 세우는 것이다.[夭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貳)는 의(疑)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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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김경술(金暻述)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申二月 日 金暻述 城主 壬申二月 日 金暻述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2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72년(고종 9) 2월에 김경술(金暻述)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2년(고종 9) 2월에 태인(泰仁)에 사는 김경술(金暻述)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김경술은 빈한(貧寒)하여 전주(全州)에 사는 사인(士人) 송진택(宋鎭澤)의 친산(親山)을 수호하였다. 1월 27일, 송총(宋塚)의 섬돌 아래 인적(人跡)이 있어 가보니 투장(偸葬)을 하던 역군(役軍)들은 달아나고 김우서(金禹瑞)만 있었다. 하관(下棺)만 한 상태이므로 관만 꺼내면 되지만 김우서 혼자는 어렵다고 하여 우선 용서하고 다음 날 스스로 관을 꺼내도록 하였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김우서는 관에 무고(誣告)하였고 관정에 대령하게 되었을 즈음에 사화(私和)를 청하며 장례에 들어간 돈 5냥을 요구하였다. 김우서에게 잘못한 것도 없이 억지로 사화를 하고, 그가 요구한 장례비 5냥도 빚까지 얻어 지급하였다. 그런데 또 김우서가 관에 김경술을 무고하여 족쇄를 차고 무릎까지 꿇리더니 돈을 더 주면 사화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김경술은 백골을 핑계로 돈을 토색하는 김우서를 엄히 조사하여 처분해 달라고 관에 탄원하였다. 태인현감은 김우서의 무소(誣訴)는 알고 있으니 다시 조사할 것이 없고 밖으로 방송(放送)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고 수호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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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형 백언7)【시림】에게 보냄 與族兄伯彦【時林】 성묘하고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가 마침 내렸는데 편안하게 돌아가셨습니까. 우리들이 서로 교유한 지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금년에 만나도 다만 지난해의 공부 수준에서 진보가 없고 오늘 만나도 다만 전일에 했던 말을 반복하는 정도이니, 분발하여 힘쓰는 뜻은 도리어 이전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 대저 사람이 뜻을 세우는 초기에는 대체로 왕성한 기세가 일어 진보할 가망이 있을 듯하지만 오래되면 의지가 약해지고 마음이 해이해져 끝내 떨치지 못하고 마니, 이는 일반 사람들의 공통된 근심입니다. 우리들의 공부가 이 정도에서 그치고 말 뿐이라면 당일 서로 기약한 뜻에 부응하지 못한 것일 뿐만이 아니니, 천하의 도리가 또 어찌 진보하지도 않고 퇴보하지도 않는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산중에서 문을 닫은 채 외롭게 홀로 거처하느라 강습하지 않고 경계하는 것도 없으며, 보고 느끼는 것이 적고 다짐한 마음이 해이해져 허송세월을 보내며 진보는 없고 퇴보만 있으니 어찌합니까. 안으로는 부형을 속이고 밖으로는 사우를 속여 부형과 사우의 바람을 끝내 저버리게 하였으니, 이는 소생의 크나큰 죄입니다. 벗과 사우 가운데 만일 매우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들 가련하게 여겨 구제하기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족형께서는 가장 가까이에 살고 깊이 알고 있으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금부터 왕래할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구구하게 허여하는 습속을 절대 본받지 말고 모름지기 맹렬하게 충고하고 통렬하게 꾸짖어, 두려운 마음으로 성찰하여 뜻이 어지럽고 마음이 해이해져 명성을 떨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근심이 없게 해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사상의 행차가 보름 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그때 만나자는 약속 아직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省楸返程。驟雨時至。未審駕旋安穩否。吾輩相從。不爲不久矣。今年相逢。只是去年工夫。今日相逢。只是前日說話。而其奮勵勉作之意。則反有不及於前。夫人於立志之初。多爲銳氣所使。似有進及之望。而及其久也。則意爛心解。終於不振者。此常情通患也。吾輩工業。止於此而已。則不惟不能副當日相期之意。而天下道理。又豈有不進不退者哉。弟杜門峽庄。孑然獨居。講習廢而規警絶。觀感疎而繩約弛。日邁月征。未見其進。而只見其退。奈何。內欺父兄外欺師友。而使父兄師友之望。竟歸差池。則此生罪戾。大矣。知舊士友。苟有相愛之深者。孰不爲之矜然。而思有以救之。况族兄居之最近。服之最深者乎。自今而有往復。切勿效世人區區推與之習。須猛告痛責。使之畏懼修省。俾無意爛心解終於不振之患。幸甚。沙行。望後爲料否。伊時聯鞭之約。倘記念耶。 백언(栢彦) 정시림(鄭時林, 1839∼1912)으로, 자는 백언(伯彦), 호는 월파(月波)이다. 보성 출생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며, 정의림의 사촌 형이다. 문집으로 《월파집(月波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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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33) 최 어른【익현】에게 올림 上勉菴崔丈【益鉉】 의림(義林)이 약관의 나이에 호중(湖中)을 유람하여 삼가 화서(華西) 선생이 경기(京畿)에서 창도(倡道)하자 원근의 학자가 흡연(翕然)히 따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 마땅히 물러나 더욱 힘써서 학문에 조금이라도 진보가 있은 뒤에 선생의 문하에서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몇 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한 데서 나왔으니, 개인적으로 놀라고 탄식하며 '나의 학문이 비록 진보하더라도 장차 어디에서 질정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뒤에 신미년(1871, 고종8)에 다시 호중을 유람하다가 삼가 문장(文丈)께서 선생의 고제자로 물러나 전원에서 직접 농사지어 부모님을 봉양하며 자신이 즐기던 바를 미루어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에 사사로이 삼가 기뻐하고 다행으로 여기며 '선생이 비록 돌아가셨지만 선생의 도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남아 있으니, 내 장차 문장께 나아가 절하고 선생의 남은 의론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윽고 문장께서 나와 세도를 위한 계책을 세우셔서 훌륭한 말씀과 곧은 절개가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 있으니, 어질다는 명성이 사람들의 귀에 들어간 것이 또 어찌 구구한 제가 나아가 질정한 뒤에 있겠습니까. 상대가 어질다는 명성이 이미 자자하므로 제가 배우러 간 뒤에 그 명성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인 듯합니다.) 천 리에 큰 물결이 쳐도 동요됨이 없이 머물러 있은 지 몇 년 되었으니, 북두에 의지하고 달빛 아래 거닐고 싶은 생각을 무엇으로 위로하겠습니까. 의림은 궁벽한 고을의 미천한 종적입니다. 어버이는 늙고 집은 가난하여 구차하게 살아남아 생활하니, 10일 간의 여가를 내어 담장 밖에 나아가 오래된 소원을 이루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남쪽으로 영주(瀛洲)를 바라보며 슬픈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안생 진환(安生進煥)이 가는 편에 감히 이렇게 대신 정성을 펴니, 번거롭게 해 드려 너무나 송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더 아끼고 보중하여 나라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시기 바랍니다. 義林弱冠而遊湖中。伏聞華西先生倡道畿中。遠近學者。翕然從之。自以爲吾當退而加勉。使學有少進而後。有以從事於先生之門也。未幾年。易簀凶音。出於夢外私心驚歎。以爲吾學雖進。將何取正乎。後辛未之年。再遊湖中。伏聞文丈。以先生高弟。退歸田里。躬耕養親。推其所樂。以淑後徒。於是私竊喜幸。以爲先生雖殁。先生之道。猶在於人。則吾且晉拜文丈。得聞先生餘論也。旣而文丈出而爲世道之計。偉韻直節。膾炙萬口。其仁聲之入人也。又豈在於區區就正之下哉。鯨波千里。無撓利稅。而淹留有年。倚斗步月之思。何以自慰耶。義林窮鄕賤蹤也。親老家貧。苟存生活。願得一旬之力。進身棘外。以償宿昔之願。而不可得。南望瀛洲。不勝悵然。玆因安生進煥去。敢此替伸情悃。跡涉煩越。旋切悚仄。伏乞加愛保重。以副家國之望。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1906)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 경기도 포천 출신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격몽요결》,《대학장구》,《논어집주》 등을 통해 성리학의 기본을 습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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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숙365)을 그리며 懷希淑 언제나 흥을 타고366) 노를 저어 가볼까 一棹何時乘興行봉산에는 밤마다 달만 공연히 밝겠구나 蓬山夜夜月空明꿈속의 혼은 삼분의 고통 견디기 힘들고 夢魂叵耐三分苦시의 격조는 응당 배나 맑음을 알겠네 詩格應知一倍淸요즘 세상 자제들은 모두 태도 속된데 今世芝蘭皆俗態뿌리가 같은 친족은 가장 정이 많다네 同根花樹最多情그대의 성가는 천금처럼 귀중하니 之君聲價千金重원컨대 참공부로 옥을 이루어 부응하게367) 願副眞工用玉成 一棹何時乘興行, 蓬山夜夜月空明.夢魂叵耐三分苦, 詩格應知一倍淸.今世芝蘭皆俗態, 同根花樹最多情.之君聲價千金重, 願副眞工用玊成. 희숙(希淑) 후창의 족제(族弟)인 김현술(金賢述)이다. 흥을 타고[乘興] 흥이 나서 그리운 이를 찾아간다는 뜻이다. 산음(山陰)에 살던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겨울날 밤에 눈이 펑펑 내리자, 흥에 겨운 나머지 멀리 섬계(剡溪)에 살고 있는 친구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 밤새 배를 저어 그의 집 문 앞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정작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발길을 돌려 되돌아왔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내 본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온 것이다.[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라고 한 고사에서 원용한 것이다. 《世說新語 任誕》 옥을 이루어 부응하게 원문의 '옥성(玉成)'은 역경을 통해 인격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가난하고 천함과 근심 걱정은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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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촌 황 처사71) 기현에 대한 제문 祭明村黃處士【紀顯】文 오호라! 선생은천품이 우뚝하고기상이 시원하였네풍상을 다 겪고돌아와 과축72)을 정하였네풍월은 끝이 없고송국은 늘 봄 같았네광채를 거두어 숨기고정신을 모았네보배로운 덕은 더욱 살찌고아름다운 명성 가만히 드러났네후손들 가르침에옛 법도 따랐네옛날 을묘년(1855, 철종6)에소자가 책상 지고 배우러 갔었네가르쳐 인도해 주심이 간절하였고교화를 받은 것 흡족하였네한 번 집으로 돌아오고 부터는온갖 일이 침범하였네멀리서 바라본 것이세월이 오래 되었네누가 알았으랴 역책73)이오늘에 있을 줄을상생74)에 달려가 곡하며슬픈 마음 적어 영결을 고합니다 嗚呼。先生天姿挺邁。氣尙磊落。游歷風霜。歸占薖軸。風月無邊。松菊長春。潛光斂輝。聚精會神。寶德加腴。令聞闇章。敎授來裔。依倣古程。音在乙卯。小子負笈。提撕懇到。董蒸浹洽。一自告歸。百故侵尋。涯角相望。歲月已深。誰知易簀出於今日。奔哭象生。綴哀告訣。 명촌(明村) 황 처사(黃處士) 황기현(黃紀顯)을 말한다. 정의림이 10세에 《소학》을 배웠던 스승이다. 과축(薖軸) 현인이 은거하는 곳을 말한다.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에 "고반이 언덕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고반이 높은 언덕에 있으니, 석인이 한가로이 서성이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考槃在陸, 碩人之軸.]"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역책(易簀) 스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증자(曾子)가 임종할 때 일찍이 계손(季孫)에게 받은 대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자신은 대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깔 수 없다며 다른 자리로 바꾸게 한 다음 운명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상생(象生) 궤연을 말하는데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진열하여 살아있을 때를 그대로 본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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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오 오장 택호(宅鎬) 에 대한 만사 挽竹塢吳丈【宅鎬】 사람들이 오랑캐 풍속을 미워한다고 하는데 人言惡夷俗대부분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네 擧非出心肝여섯 아들이 모두 두발을 보전하고 있으니 六子皆全髮공만 홀로 이 세상에서 진실하게 살았다오 公獨此世間이것을 가지고 세 귀퉁이를 반증해보면97) 以是三隅反마음속에 간직한 바를 헤아릴 수 있다네 庶可量所存아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而余何狀人공에게 친애의 정을 받았는가 得爲公所親옛날에 공의 집98)에 방문했을 때 昔嘗造軒屛닭고기와 기장밥99)이 소반 위에 그득하였네 鷄黍盈盂盤오늘 아침에 길이 난 것을 보고 훌륭하게 여기며100) 今朝佳成路흐르는 눈물로 옷깃을 온통 적셨다오 涕淚滿衣巾청산은 이를 데 없이 무정하나니 靑山最無情순후한 덕기를 전부 묻어 버렸구나 埋盡德氣淳 人言惡夷俗, 擧非出心肝.六子皆全髮, 公獨此世間.以是三隅反, 庶可量所存.而余何狀人, 得爲公所親?昔嘗造軒屛, 鷄黍盈盂盤.今朝佳成路, 涕淚滿衣巾.靑山最無情, 埋盡德氣淳. 세 귀퉁이를 반증해보면 원문의 삼우반(三隅反)은 한 가지를 알면 이를 미루어 그와 유사한 것을 유추하여 안다는 뜻으로, 《논어》 〈술이(述而)〉에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 보였는데도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못하면 더 이상 일러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공의 집 원문의 헌병(軒屛)은 마루의 난간과 방 안에 둘러친 병풍이라는 뜻으로, 어른의 가까운 곁을 이르는 말이다. 닭고기와 기장밥 원문의 계서(鷄黍)는 살계위서(殺鷄爲黍)의 준말로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논어》 〈미자(微子)〉에, 어떤 노인이 공자(孔子)의 문인 자로(子路)를 자기 집에 묵게 하여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길이……여기며 미상이다. 다만 원문의 성로(成路)의 용례를 가지고 따져보면, 효자가 어버이 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지내면서 어버이의 묘소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묘하러 왕래하기 때문에 묘소 아래에 '길이 난다.[成路]'는 용례가 다소 보인다. 이를 근거로 여기서는 공을 안장할 선영(先塋)에 올라와보니, 공의 어버이의 묘소 아래에 길이 난 것을 보고 공의 효성을 훌륭하게 여겼다고 한 것은 아닐까 추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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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 소식을 듣고 개탄하다 聞時耗慨然 빈자든 부자든 둘 다 복극85)이 나뉘게 되니 貧富雙將福極分은사의 홍범86)이 이미 밝게 드러나 있다오 殷師洪範己昭然만약 공산 제도가 천하의 공리라고 한다면 若云共産爲公理성현이 외려 참된 도를 모른 것으로 귀결되리라 賢聖還歸昧道眞조철의 균전법을 맹성께서 말씀하셨는데87) 助徹均田孟聖云지금이야말로 백성에게 시행할 만한 때일세 卽今定可施諸民어찌하여 주장함이 자본주의로 돌아가 如何所主歸資本또다시 탐부에게 제멋대로 병탄하게 하는가 更使貪夫恣幷呑 貧富雙將福極分, 殷師洪範己昭然.若云共産爲公理, 賢聖還歸昧道眞.助徹均田孟聖云, 卽今定可施諸民.如何所主歸資本, 更使貪夫恣幷呑? 복극(福極)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아홉 번째 조목인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을 가리킨다. 《서경》 〈홍범(洪範)〉에 "다음 아홉 번째는 향함을 오복으로써 하고 위엄을 보임을 육극으로써 하는 것입니다.[次九曰嚮用五福, 威用六極.]"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이르고, 육극은 흉(凶)함, 단절(短折), 질병(疾病), 우환(憂患), 가난〔貧〕, 악함〔惡〕, 나약함〔弱〕을 가리킨다. 은사(殷師)의 홍범(洪範) 은사는 은(殷)나라 태사(太師)였던 기자(箕子)를 가리킨다. 은나라가 망할 때에 기자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하였고, 무왕은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해주어 신하로 삼지 않았다고 한다. 홍범은 바로 홍범구주를 가리키는데,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칙으로, 오행(五行),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徵), 복극(福極)이다. 홍범은 본디 하우씨(夏禹氏)가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에게서 얻은 것인데, 이것이 대대로 전해져 기자가 무왕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조철(助徹)의……말씀하셨는데 맹성(孟聖)은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균전법(均田法)은 백성들에게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 주는 토지 제도로, 여기서는 정전법(井田法)을 가리킨다. 조철(助徹)은 은(殷)나라의 조세(租稅) 징수법인 조법(助法)과 주(周)나라의 조세 징수법인 철법(徹法)을 이른다. 조법은 정전법에 의거하여 여덟 집에 각각 70묘(畝)의 땅을 나누어 주고, 중앙의 공전(公田) 100묘를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을 관청에 바치게 한 것이다. 철법은 정전법에 따라 토지를 구획하여 여덟 가(家)에 각각 100묘의 사전(私田)을 지급하고 중앙의 공전 100묘는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을 조세로 바치게 한 것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서 맹자가 "하후씨(夏后氏)는 50묘에 공법(貢法)을 썼고, 은나라 사람은 70묘에 조법을 썼고, 주나라 사람은 100묘에 철법을 썼으니, 그 실제는 모두 10분의 1이다. 철은 통한다는 뜻이요, 조는 돕는다는 뜻이다.[夏后氏五十而貢, 殷人七十而助, 周人百畝而徹, 其實皆什一也. 徹者徹也, 助者藉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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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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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김익용(金益容) 난곡기(蘭谷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丙子三月下澣 金益容 丙子三月下澣 1876 金益容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이 종족 김낙곤의 집 처마에 난곡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기문.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金益容)이 종족 김낙곤(金洛坤)의 집 처마에 난곡(蘭谷)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기문(記文)이다. 김익용은 이 기문에서 김낙곤의 집안이 누대에 걸쳐 여러 효자와 열부를 배출하였다고 칭찬하면서, 이는 마치 심산유곡에 홀로 있어도 향기를 품고 있는 난(蘭)의 모습을 닮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김낙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최씨(崔氏), 종조모(從祖母) 박씨(朴氏) 등이 그 효행과 열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아 3효열(孝烈)로 이름이 높다고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김낙곤의 아버지는 세 번이나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며, 효행 또한 뛰어나 죽을 때까지 선친에 대한 성묘(省墓)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낙곤의 형 김낙진(金洛晉)도 선친을 본받아 문사(文士)로서의 길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효행도 뛰어났으며, 김낙곤도 77세의 나이였지만 한 겨울에도 삭망(朔望)에 성묘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김익용은 김낙곤에게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원숙한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기문에는 작성연대가 병자년으로만 되어 있지만, 김낙곤이 1911년과 1917년에 부안에 있는 논을 각각 팔면서 작성한 명문들을 통해서 병자년을 1876년으로 추정하였다. (1911년 김낙곤(金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7년 김낙곤(金洛坤)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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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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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76년 김익용(金益容) 난곡편액후제(蘭谷扁額後題)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丙子三月下澣 金益容 丙子三月下澣 1876 金益容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이 종족 김낙곤의 집 처마에 난곡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후제.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金益容)이 종족 김낙곤(金洛坤)의 집 처마에 난곡(蘭谷)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후제(後題)이다. 글의 내용은 같은 시기에 그가 지은 난곡기(1876년 김익용(金益容) 난곡기(蘭谷記) 참조)와 거의 동일하다. 뒷 부분만 조금 다를 뿐이다. 김익용은 이 글에서 김낙곤의 집안이 누대에 걸쳐 여러 효자와 열부를 배출하였다고 칭찬하면서, 이는 마치 심산유곡에 홀로 있어도 향기를 품고 있는 난(蘭)의 모습을 닮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김낙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최씨(崔氏), 종조모(從祖母) 박씨(朴氏) 등이 그 효행과 열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아 3효열(孝烈)로 이름이 높다고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김낙곤의 아버지는 세 번이나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며, 효행 또한 뛰어나 죽을 때까지 선친에 대한 성묘(省墓)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낙곤의 형 김낙진(金洛晉)도 선친을 본받아 문사(文士)로서의 길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효행도 뛰어났으며, 김낙곤도 77세의 나이였지만 한 겨울에도 삭망(朔望)에 성묘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한 세상에 숨어 살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 김낙곤의 모습이,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 해도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는 꽃과 닮았다면서 찬탄하고 있다. 이 후제는 작성연대가 병자년으로만 되어 있지만, 김낙곤이 1911년과 1917년에 부안에 있는 논을 각각 팔면서 작성한 명문들을 통해서 병자년을 1876년으로 추정하였다. (1911년 김낙곤(金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7년 김낙곤(金洛坤)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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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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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양자선【청묵】에게 답함 答梁子善【淸黙】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매 사방의 식물들이 녹음이 짙어 가니,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에 더욱 깊어지네. 인편을 통해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 나의 고마운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이 좋음을 알게 되니, 더욱 듣고 싶었던 바이네. 편지지 가득 길고 자세하게 쓴 내용은 명리(名理)의 핵심이 아님이 없으니, 그대 공부가 크게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네.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는다는 것은 내포한 의미가 대단히 넓다네. 마음을 다스린다고 말한다면 뜻을 견지하는 것도 참으로 그 안에 있으며, 몸을 닦는다고 말하면 기운을 함양함도 또한 그 안에 들어 있네. 지금 "몸을 닦아서 기운을 함양함에 이르고, 뜻을 견지하여 마음을 다스림에 이른다."고 한다면 아마도 온당하지 않을 것이네. 또한 "생각이 바르지 않을까 두렵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보이지 않음에도 경계하고 들리지 않음에도 두려워한다50)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일이 없을 때 게으르고 방만한 자가 어찌 생각이 처음 발동할 때 그 기미를 살펴서 검속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존양(存養)하는 공부가 학문의 본령이 되는 까닭이네. 존양과 궁격(窮格), 성찰과 극치(克治), 그 무엇이 하학상달(下學上達)을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사단과 칠정에 대해 논한 것은 옳네. 대저 사단은 기(氣)가 없지는 않지만 주장하여 말한 것은 리(理)이네. 칠정은 리가 없지는 않지만 주장하여 말한 것은 기이네. 주자의 말은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만약 사단이 리에서 발하고 칠정이 기에서 발하는 것을 가지고 사단과 칠정이 자리를 바꾸고 리와 기가 서로 발한다고 이른다면 대단히 옳지 않네. 선유가 '아마도 옳지 않은 듯하다.'고 한 것은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말을 타는 것에 대한 비유는 또한 훌륭하네. 어린 나이의 초학이 이런 정도로 말을 한다는 것에서 재성(才性)의 아름다움과 지향의 올바름에 실로 경탄이 이네. 餞春屬夏。時物蔥倩。懷人一念。於玆尤至。便頭惠幅。出於料外。區區慰沃。曷以勝喩。仍審侍旁學履。連爲佳迪。尤協願聞。滿紙娓娓。無非名理肯綮。可見盛課之長長。治心修身。所包甚廣。言治心則持志固在其中。言修身則養氣亦在其中。今曰修身以至養氣。持志以至治心者。恐涉未穩。又曰恐思慮之不正云云。此戒愼不覩恐懼不聞之意耶。不然。怠惰放倒於無事之時者。安能省檢於思慮幾微之始也。此存養之功。所以爲學問之本領也。存養窮格。省察克治。夫孰非下學上達之謂耶。四端七情。所論是。大抵四端非無氣。而所主而言者。理也。七情非無理。而所主而言者。氣也。朱子之言。其非此意耶。若以四端發於理。七情發於氣。謂四七異位。理氣互發。則大不是先儒之言。恐不可者。其非此意耶。乘馬之喩亦好。妙年初學。能自說得到此。其才性之美。志尙之正。實可欽歎。 보이지……두려워한다 《중용장구》 제 1 장에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보이지 않아도 조심하는 것이요, 들리지 않아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숨어 있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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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형신에게 답함 答魏亨信 가뭄과 장마가 서로 자리를 내주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니, 이러한 때가 되면 그리워하는 마음이 평소보다 배나 된다네. 한 통의 귀한 편지가 바람을 따라 이르니 마음에 위안과 고마움이 이는데 마치 침상을 나란히 하거나 책상을 마주한 것 같으니 90리가 먼 곳인지 잘 모르겠네. 더구나 부모를 모시면서 기쁜 일이 많고 건강도 좋다고 하니, 더욱 멀리서 바라는 마음에 부합하네. 편지지 가득 길고 자세하게 쓴 것에서 깨닫지 못해 분하게 여기고 표현을 못하여 답답하게 여겨30) 격앙하는 뜻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되었네. 이것은 학문이 앞으로 나아갈 노맥(路脈)이니, 서로 헤어진 뒤로 우리 벗의 공부가 반드시 허투루 하지 않음을 알겠네. 편지에서 '헛되이 인생을 보내 초목과 함께 썩어간다.'라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이 일게 하네. 또한 '심지(心地)를 진실되게 하고 각고의 공부를 한다.'라는 말과 '솥을 깨뜨리며 막사를 태우고 삼일의 식량을 지닌다.'31)는 등의 말에서 학문하는 입지(立志)의 참된 법과 요결이 이에 지나는 것이 없음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네. 早寮相禪。金火交遞。此際懷想。有倍平昔。而一角珍函。颺風而至。慰沃感豁。怳然若聯床對榻。不知三舍之爲闊也矧審省侍歡慶。體度茂謐。尤協遠祝。滿幅縷縷。可見憤悱激昂之意。出於至誠。此是進步路脈。吾友別後功夫。必不草草也。所謂虛住百年。草木同腐。令人感歎。又謂眞實心地。刻苦功夫。及破釜燒廬。持三日粮等語。尤覺痛切。爲學立志。眞詮要訣無過於此。 깨닫지……여겨 분비(憤悱)의 분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통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고, 비는 입으로 말을 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입으로 말해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거니와,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이로써 세 귀퉁이를 유추해서 알지 못하면 다시 더 말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솥을……지닌다 원래 살아 돌아올 기약을 하지 않고 결사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와 싸우러 가면서 하수(河水)를 건넌 뒤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양식을 지니고서 사졸에게 반드시 죽을 것임을 보여 주었던 것[沈船破釜甑, 燒廬舍, 持三日糧, 以示士卒必死]에서 유래한다. 《史記 項羽本紀》 여기서는 죽을 각오로 공부에 매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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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경에게 답함 答文【濟敬】 난초 같은 흉금과 지초 같은 얼굴은 잊히지 않고 내 눈 속에 있네. 뜻밖에 또한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사람이 사랑스럽고 글씨도 사랑스러워 한 자나 되는 거북이나 한 아름의 구슬에 비할 것이 아니니, 고마운 마음을 어찌 견디겠는가. 인하여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하고, 그 남은 힘으로 책을 읽어서 날로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니, 더욱 걱정하던 마음에 위로가 되네. 당기(堂記)의 체제가 우아하지 않아 쓰기에 합당하지 않으니, 보고 나서 쓸데없는 작품이라 치부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학문의 방법은 참으로 한 가지가 아니지만 최초에 제일 먼저 할 것은 뜻을 세움에 있네. 학자가 뜻을 지니는 것은 집에 들보가 있고 농부가 밭이 있는 것과 같으니, 눈앞의 자잘한 일이라도 뜻이 서지 않고서 성취한 자가 없네. 더구나 막중하고 막대한 하늘이나 성인과 같은 공적을 세우는 일임에랴. 온전히 그럭저럭 지내며 뜻이 없는 자는 많고 뜻이 있는 자는 적으니, 값을 매길 수 없는 밝은 구슬을 연못에 던져버리고서 쓸모없는 물건처럼 여긴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우리 벗은 젊은 나이에 매우 뛰어난데, 만 리 앞길에 월로 갈지 초로 갈지는 바야흐로 지금 수레를 출발하는 처음에 달렸으니, 모름지기 맹렬하게 안목을 붙이고 견고하게 발을 내딛어 커다란 책임을 짊어지며 큰 사업을 성취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는 일찍 이런 뜻이 없지 않았지만 견고하게 유지하지 못하여 드디어 마침내 쇠락하고 시들어져서 슬피 탄식함118)으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 일은 또한 어진 후배들에게 복철(覆轍)의 경계가 될 것이네. 그대의 편지에서 때때로 가슴에 새길 가르침을 주라고 하였는데, 나는 절대로 그러한 사람이 못되네. 비록 한 때 위로가 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찌 실상과 판이하며 정도에 지나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나를 돌아봐주는 두터움에 감동하여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지만, 나 또한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니 자신도 모르게 매우 부끄럽네. 蘭襟芝宇。耿耿在阿睹中。謂襮又承惠幅。可愛人可愛字。非尺蔡拱壁之比。感戢曷勝。仍詢重省康寧。餘力咿唔。日造優境。尤符懸情。堂記體裁不雅。不合入用。覽付散墨如何學文之道。固非一端。而其最初第一着。在於立志而已。學者之有志。如屋之有脊樑。農之有田地。眼前小小事。未有志不立而能有所就者。況莫重莫大希天希聖之功哉。渾區悠悠。無志者多。有志者少。使無價明珠。淪棄在淵。而視同笆離之物。豈不可哀也哉。惟吾友妙齡騰異。前程萬里適越適秦。方在今日發軔之初。須猛着眼目。牢着脚跟以任大擔負。以做大事業。如何如何。義也早不無此志。而持之不固。遂成枯落悲歎之歸。此一事。亦加以爲賢輩前車之鑑耶。若來喩所謂時惠鑴誨之云。萬萬非其人。雖一時慰藉之言。而豈浮實過當至如是耶。感傾眷之厚。覼縷到此。此亦不逮之言。不覺愧愧。 쇠락하고……탄식함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자식들을 경계하여 지은 글에 "나이가 시절과 함께 더해지고 의지가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려서 마침내 쇠락하고 시들어지게 되면 궁벽한 오두막에서 슬피 탄식한들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年與時馳, 意與歲去, 遂成枯落, 悲歎窮廬, 將復何及?]"라고 하였다. 《小學 嘉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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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 김공113) 한섭에 대한 제문 祭吾南金公【漢燮】文 남쪽 고을에서 우뚝 태어나사문을 창도하여 밝혔네널리 배움에 일정한 방소가 없어세 선생의 문하에서 따라 섬겼네취사는 바름을 얻었고조예는 어긋나지 않았네산림에서 한가로이 지내니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았네운수가 양구114)를 만나사설이 크게 일어났네일대가 물 끓듯 하여피가 천 리에 흘렀네호남의 의사들한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네베옷에 콩잎 먹으면서도분기하여 몸을 돌아보지 않았네고을의 뜰에 급히 달려가니적들이 모이고 병사들은 흩어졌네죽음 보기를 돌아가는 듯이 여겨조용하고 어지럽지 않았네누가 상용115)이라 하겠는가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네사림들 사기가 더해지니풍운이 우뚝하였네수양산 곁에묘소를 만들었네재필116)로 특별히 기록하여만고에 꽃다운 향기 전하네내 병으로 문상가지 못하니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네남을 통해 글을 지어애통한 마음 깃들이네 挺生南服。倡明斯文。博學無方。從事三門。取舍得正。造詣不差。婆娑邱林。世莫我知。運値陽九。邪說大起。鼎沸一路。血流千里。全湖義士。嗟無一人。布衣藿食。舊不顧身。赴急縣庭。賊聚兵散。視死如歸。從容不亂。孰謂傷勇。不負所學。士林增氣。風韻卓犖。首陽之側。衣履是藏。載筆特書。萬古流芳。我病未奔。心焉如摧。因人緘辭。以寓一哀。 오남(吾南) 김공(金公) 김한섭(金漢燮)을 말한다. 자는 치용(致容), 호는 오남,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이항로가 죽은 뒤에 다시 임헌회(林憲晦)와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 되었다. 장흥과 금릉 대명동에 서당을 열고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변을 당해 사망했다. 저서로는 《오남집》이 있다. 양구(陽九) 하늘의 재액(災厄)이 몰아닥치는 불운한 시대를 말한다. 도가(道家)에서는 천액(天厄)을 양구(陽九)라 하고, 지액(地厄)을 백륙(百六)이라 한다. 상용(傷勇)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얼핏 보면 죽을 만하고, 자세히 보면 죽지 말아야 할 경우에 죽으면 용맹을 상한다.[可以死, 可以無死, 死傷勇.]"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재필(載筆) 문구(文具)를 휴대하여 왕의 뒤를 따르는 것으로, 사관이 역사를 기록함을 이른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사관은 붓을 가지고 가고, 사는 말을 가지고 간다.[史載筆, 士載言.]" 하였는데,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왕이 만약 출행하면 사관이 서구를 잡고서 따른다.[王若行,往 則史載書具而從之也.]"라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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