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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로 종원 군이 찾아와서 林君貞老【鍾元】見訪 선비가 서로 만나 온 좌석이 차갑지만 韋布相逢一座寒마음이야 어찌 식은 재로 스러지겠는가 寸心豈與冷灰殘누가 알몸으로 인(仁) 속에 설 수 있으랴421) 孰能赤骨仁中立사람이 청모422)로 서(恕)에서 볼 수 있으리 人可靑眸恕上看쇠한 세상에선 깊은 걱정 땅에 묻으면 그만이나 衰世幽憂埋土已궁한 처지에선 멋진 모임 별 따기처럼 어렵다네 窮途勝會摘星難시를 지어 가져다주니 매우 고맙네만 覓詩持贈多珍重한담을 끌어와 비교하면 매우 편치 않으리 不把閑談較苦安 韋布相逢一座寒, 寸心豈與冷灰殘?孰能赤骨仁中立? 人可靑眸恕上看.衰世幽憂埋土已, 窮途勝會摘星難.覓詩持贈多珍重, 不把閑談較苦安. 알몸으로……있으랴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9 〈논어 안연계로시장(顔淵季路侍章)〉에 "성인은 인에 편안하니 몸에 닿은 제일 안쪽의 한삼까지 모두 벗어 버린 채 맨몸으로 서 있는 것과 같다.[聖人則如那裏面貼肉底汗衫, 都脫得赤骨立了.]"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 말로, 타고난 본성을 그대로 가졌음을 의미한다. 청모(靑眸) 푸른 눈동자라는 뜻으로, 반가운 눈빛을 의미한다. 진(晉)나라 완적(阮籍)이 고사(高士)를 만나면 청안(靑眼)으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냈고, 예속(禮俗)을 따지는 선비를 만나면 백안(白眼)으로 대하여 경멸하는 뜻을 보였던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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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백 병일 군을 애도하다 悼林君敬伯【秉一】 지금 뛰어난 후배로 當今後來秀먼저 그대를 손꼽아 셈하니 屈指先數君좋은 자질은 하늘에서 받았고 美質稟自天문장은 더욱 출중하였지 文翰更出群시비는 어찌 그리 분명한가 是非何昭晳한마음으로 사문을 호위하였고 一心衛師門이와 같은 좋은 재주와 뜻으로 以若好材志아군을 과시하리라561) 기대하였네 庶見張吾軍지난겨울에 와서 내게 말하기를 客冬來謂余돌아가면 더욱 노력하겠다 했으니 歸當加勉旃이 뜻이 자못 진실하여 此意頗眞實쇠하고 혼미한 나를 일으켜 세웠지 感君起頹昏이어서 또 봄철 강회에 달려가 繼又赴春講두승산 정상에서 바람을 쐬었고 風乎斗嶽顚책을 빌려 머물며 끊임없이 공부하니 借書留源源서로 도우며 바야흐로 이웃이 되었네 相長方有隣어디선가 나쁜 소식이 들려와 何來消息惡그 부음에 꿈인지 진짜인지 의심하니 對訃疑夢眞문하엔 아름다운 보배 나무가 꺾이고 門摧佳寶樹선비들은 진귀한 사람을 잃게 되었네 士失一席珍꽃은 폈으나 열매를 맺지 못했으니562) 旣秀不見實이러한 이치는 결국 무슨 까닭인가 此理竟何因눈물을 섞어 시를 지어서 부치고 和淚題寄此다시 한퇴지처럼 하늘에 물으려 하네563) 更欲賦問天 當今後來秀, 屈指先數君.美質稟自天, 文翰更出群.是非何昭晳? 一心衛師門.以若好材志, 庶見張吾軍.客冬來謂余, 歸當加勉旃.此意頗眞實, 感君起頹昏.繼又赴春講, 風乎斗嶽顚.借書留源源, 相長方有隣.何來消息惡, 對訃疑夢眞.門摧佳寶樹, 士失一席珍.旣秀不見實, 此理竟何因?和淚題寄此, 更欲賦問天. 아군을 과시하리라 자기편의 성세(聲勢)를 떨친다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임병일이 훌륭한 자질을 타고 났고 학문에 독실하므로 장차 우리 당의 성세를 크게 떨치리라고 기대하였다는 뜻으로 쓰였다. 원래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환공(桓公) 6년 기사에 보이는 말인데, 한유(韓愈)의 〈취증장비서(醉贈張祕書)〉에 "아매는 글자를 알지 못하지만 팔분서는 제법 쓸 줄을 알기에, 시 지어서 그에게 쓰도록 하면 아군을 과시하기에 넉넉하다네.〔阿買不識字, 頗知書八分, 詩成使之寫, 亦足張吾軍.〕"라는 말이 나온다. 꽃은……못했으니 뛰어난 재주를 지녔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죽은 경우를 뜻한다. 《논어》 〈자한(子罕)〉에 "싹만 트고 꽃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은 폈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구나.[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한퇴지(韓退之)처럼……하네 동야(東野)는 당(唐) 나라 때의 시인인 맹교(孟郊)의 자인데, 그는 연달아 세 아들을 낳았으나 낳을 때마다 수일 만에 잃었으므로, 한유(韓愈)가 그를 위로하는 뜻에서 지은 《孟東野失子》에 "하늘에게 묻기를 인간을 주관하되 후박을 왜 안 고르게 하는가 하니 하늘이 이르되 하늘과 땅과 사람은 본래부터 상관이 없다 하였네.[問天主下人, 薄厚胡不均? 天曰天地人, 由來不相關.]"라고 하였다.《韓昌黎集 卷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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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복용(李福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酉陰十一月三日 李福容 李敎燮 辛酉陰十一月三日 李福容 李敎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27_001 1921년 음력 11월 3일에 족종 이복용이 이교섭에게 안산군 물항동 소재 산소의 교선 왕림, 종제 선용의 작고, 승현의 불운에 대한 탄식, 대조(垈租)의 처리 등에 관한 일로 보낸 간찰 1921년 음력 11월 3일에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에 사는 족종(族從) 이복용(李福容)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에 사는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안산군(安山郡) 물항동(勿項洞) 소재 산소에 교선(敎先)이 1차로 왕림하였는데 믿지 않고서 갔다. 자신의 종제인 선용(善容)이 지난 3월 불행하게도 작고(作故)하여 슬픈 감정을 이길 수 없었는데, 지난 10월 다시 승현(繩絃)을 만나 집안의 운이 불행하여 스스로 탄식하니 어쩌겠는가? 산 아래 텃세(垈租)를 2년 거두어들이는 것은 우선 다 보전하고 아경(雅慶)이가 저축하거나 저장하여 두거나 함부로 빌리든 간에 결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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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천상규에게 답함 임오년(1942) 答蘇芝泉尚奎 ○壬午 편지에서 말씀하신 뜻은 잘 알았습니다. 선척(先戚)의 도리와 장유(長幼)의 분수로 헤아려 보면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의 부친과 조부 이상 여러 대가 장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극한 원통함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 다른 사람의 회갑과 회근(回巹)15)의 잔치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축하하는 시와 문장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을 운용하여 구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30년 동안 항상 줄곧 이런 법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일은 치우치고 고루하게 되며 감정은 두루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여기니, 스스로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중도를 얻었는지의 여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후에 스승의 원고를 읽었는데, 병인양요(丙寅洋擾, 1866)로 부친의 수연(晬宴)을 마련하지 못하고, 이어서 부친이 세상을 떠나 미처 효도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신 뒤로는 돌아가실 때까지 슬픔을 간직하고서 절대로 다른 사람의 수연에 대해 시나 서문을 짓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런 후에 비로소 스승께서 먼저 저와 같은 마음을 터득하셨음을 알고는 저의 견해가 스승의 태도와 암암리에 부합함을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이제 와서 또한 감히 계율을 깨고 명에 부응할 수 없으니 혹시라도 가련하게 여겨 주시고 심하게 책망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示意謹悉. 揆以先戚之誼․長少之分, 敢不惟命? 但念父祖以上累世無壽, 至冤貫心, 凡於人家周甲回?之宴, 非惟足自不能進步, 至於祝詩賀章, 心自不能運思. 故孤露後三十年來, 純用一切法. 然猶自以事涉偏固, 情闕周偏, 不自知此果得中與否.後讀師稿, 有以丙寅洋亂不得爲大人設晬宴, 而因哭風樹, 終身含恤, 絕不作人晬壽詩序之語. 然後始知先師之先獲我心, 而自幸淺見之亦與暗合也. 今亦未敢破戒副命, 或可哀矜而不深罪否? 회근(回巹) 회근례(回巹禮)로 혼인을 한지 6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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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일 立春日 따뜻한 동풍에 하늘에선 비 내려 㬉起東風雨太虛입춘의 기후가 늦은 봄과 같구나 立春天氣暮春如도부를 벽에 붙이는 건 전해오는 풍속이니 桃符貼壁傳遺俗태사가 임금께 올린 옛 글52)을 생각하네 太史呈君憶古書시골 노인은 자주 농사 풍년을 점쳐보고 野老頻占禾穀稔경서 읽는 서생은 또 백발 성글어질까 걱정하네 經生却怕鬢毛疏아이들이 다투어 기도하는 것을 도리어 막으니 還禁兒輩爭祈祝선을 쌓아야 결국 남은 경사가 있음을 알아서지53) 善積終知慶有餘 暖起東風雨太虛, 立春天氣暮春如.桃符貼壁傳遺俗, 太史呈君憶古書.野老頻占禾穀稔, 經生却怕鬢毛疏.還禁兒輩爭祈祝, 善積終知慶有餘. 태사가……글 덕을 베풀고 영(令)을 선포하여 경사를 행하고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다. 《예기》 〈월령(月令)〉에 "이 달에 입춘이 든다. 입춘 사흘 전에 태사가 천자를 알현하고 '아무 날이 입춘이니, 하늘의 성대한 덕이 목에 있습니다.'라고 아뢰면 천자가 곧 재계를 한다. 입춘날에 천자가 친히 삼공과 구경과 제후와 대부를 거느리고 동교에서 봄을 맞는다. ……재상을 명하여 덕을 펴고 법령을 온화하게 하며, 경축을 행하고 혜택을 베푼다.[是月也, 以立春. 先立春三日, 太史謁之天子曰, 某日立春. 盛德在木, 天子乃齊. 立春之日, 天子親帥三公九卿諸侯大夫, 以迎春於東郊.……命相布德和令, 行慶施惠.]"라고 하였다. 선을……알아서지 선대에 선을 행하여 덕을 쌓으면 그 후손이 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나머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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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跋 나의 벗 일신재(日新齋) 정공(鄭公)은 일찍 노사(蘆沙)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장려해 주는 은혜를 입었다. 그리하여 다른 제자들이 듣지 못한 것을 들을 수 있었기에 성명(性命)의 오묘한 이치와 이기(理氣)의 미묘한 이치에 이르기까지 질의하고 문답하지 않음이 없어 환하게 마음에 얻은 것이 있었다. 이를 정성스럽게 가슴에 새겨 저버리지 않아 넉넉하게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확립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생에게 들은 것으로 생도를 가르치니 생도들이 날로 늘어나 하분(河汾)1)과 호소(湖蘇)2)의 풍습이 있었다. 대개 그 조행이 순수하고 독실함과 논변이 정밀하고 확실함에 대해서 문하에 이른 선비들이 모두 참된 마음으로 기뻐하고 복종하여 종신토록 잊지 않았다. 이미 그 유문(遺文)을 간행하여 유포하였고, 지금 또 동문 제자(諸子)의 성명을 모아 1책으로 만들었으니, 강직하고 화락하게 나란히 시립하여 서로 칙려(勅勵)하는 듯하다. 스승이 이끌어 준 뜻을 저버리지 않고 신학문과 이단의 사설에 빠지지 않았으니, 이 문인록(門人錄)이 세교(世敎)에 관계되는 것이 어찌 작다고 하겠는가.대저 사제 간에 서로 의지하는 의리가 크니, 그 도를 선하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스승을 높여야 한다. 여지껏 그 스승을 높이지 않고 그 도를 선하게 한 자는 없었다. 제현들의 이 일은 또한 스승을 높이고 도를 선하게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 사문 준기(朴斯文準基)가 실로 이 일을 주관하여 그 족인(族人) 병해(炳海)를 시켜 나에게 한마디 말을 책 뒤에 써 주기를 부탁하게 하였다. 내가 "문인록에 어찌 발문을 쓰겠는가."라고 하니, 병해가 말하기를 "송사(松沙) 기 선생(奇先生)이 찬술한 행장이 늦게 나와서 원집(原集)에 부록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이 문인록에 함께 실으려고 하니, 원하건대 기록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내가 일신재에 대해서 동문수학한 우의(友誼)가 있기에 끝내 사양하지 못하였다.정묘년(1927) 9월 일 금성(錦城) 오준선(吳駿善)이 쓰다. 吾友日新鄭公。早登蘆沙老先生門。蒙被奬詡。得聞他弟子所不得聞者。以至性命之蘊奧。理氣之微妙。無不講質而答問。犁然有得於心。眷眷服膺而勿失。優入於道成德立之地。以所得於先生者。訓誨生徒。生徒日進。有河汾胡蘇之風焉。蓋其操履純篤。辨論精確。及門之士。皆心悅誠服。至於沒世而不忘。旣刊布其遺文。今又聚會同門諸子姓名。備載一冊。有若誾侃列侍。互相勅勵。不負師門遵迪之意。不爲新學邪說所移。是錄之有關於世敎者。曷可小哉。夫師資相須之義大矣。欲善其道。必隆其師。未有不隆其師而能善其道者也。諸賢此擧。亦可謂隆師善道者非耶。朴斯文準基。實主是役。使其族人炳海。屬余一言題其後。余謂門人錄安用序跋爲哉。炳海曰。松沙奇先生所撰行狀晩出。未及原集附錄。今將竝載是錄。願有以記之也。余於日新。有同門之誼。不得終辭。丁卯菊秋日。錦城吳駿善書。 하분(河汾) 수(隋)나라 왕통(王通)이 문제(文帝)에게 태평십이책(太平十二策)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황하와 분수[河汾] 사이로 돌아와 1000여 명의 제자를 가르친 고사가 있다. 《文中子世家》 호소(湖蘇) 호주(湖州)와 소주(蘇州)이다. 송(宋)나라 때 호원(胡瑗)이 일찍이 호주와 소주의 교수(敎授)가 되어 조약(條約)을 엄격히 정해서 제생(諸生)을 교도(敎導)하되, 경서(經書)의 뜻에 따라 학문을 닦고 행실을 힘써 숭상하게 한 것을 가리킨다. 《小學 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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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열에게 작별하며 주다 4수 贈別丁金烈【四首】 멀리 떨어진54) 푸른 산속 집을 거듭 찾아가니 重尋七舍碧山居젊은이의 높은 기품 그 누가 그대와 같을까 年少高標復孰如백발로 남에게 미칠 선이 없음이 부끄러우니 白首愧無及人善어찌 그대 위해 띠에 쓸 가르침55)을 준비했으리오 何能爲子備紳書그대와 날마다 함께 기거함이 기뻤는데 喜君日日接興居이내 이별의 한이 생기니 어찌한단 말인가 別恨旋生其柰如단지 마음속에 간직한 뜻 같기를 바랄 뿐이니 只要所存歸一致무상하게 만나고 헤어짐을 굳이 쓸 것 없다오 無常聚散不須書지행을 함께 진전시키고 경에 거해야 하니 知行幷進敬爲居학문의 요결은 종전부터 늘 똑같았다오 學訣從前一轍如처음으로 공부에 착수할 곳을 찾고자 한다면 欲尋下工端始處사서와 육경 책을 익숙히 보아야 한다네 熟觀四子六經書인을 행함은 내게 달려 있고56) 편안한 집57)에 있어야 하니 爲仁由己作安居시작만 있고 끝은 없음보다 부끄러운 게 없다네 有始無終恥莫如간곡하게 권면하여 서로 힘쓰는 날에 勸戒丁寧交勖日석 잔의 이별주로 맹서의 뜻을 정하노라 三盃離酒定盟書 重尋七舍碧山居, 年少高標復孰如?白首愧無及人善, 何能爲子備紳書.喜君日日接興居, 別恨旋生其柰如?只要所存歸一致, 無常聚散不須書.知行幷進敬爲居, 學訣從前一轍如.欲尋下工端始處, 熟觀四子六經書.爲仁由己作安居, 有始無終恥莫如.勸戒丁寧交勖日, 三盃離酒定盟書. 멀리 떨어진 원문의 칠사(七舍)는 210리의 거리를 이른다. 사(舍)는 원래 머물러 유숙하는 것인데, 옛날 군대가 하루에 30리를 가서 유숙하였으므로 30리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띠에 쓸 가르침 원문의 신서(紳書)는 중요한 말을 잊지 않도록 허리에 맨 띠에 적어 두는 것을 말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자장(子張)이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듣고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큰 띠에 써서 기록하였다[書諸紳]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인(仁)을……있고 《논어》 〈안연(顔淵)〉에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사욕을 이기고서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그 인을 허여할 것이다. 인을 행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어찌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편안한 집 인(仁)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고 바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슬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不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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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에게 답함 答任宇卿 지척의 거리에서 서로 가로막혀 있으니, 더욱 마음이 아프네. 그러나 그대는 병이 들고 나는 얽매어 있으니 형세가 참으로 그렇게 되었네. 다만 그대 병이 조금 나아 이전 배운 것을 깊이 연구하여 의심난 조목이 편지에 가득하니, 학문을 즐기는 독실함이 이와 같기에 대단히 기쁘네. 그러나 오랫동안 병을 앓은 뒤에 마땅히 한가롭게 노닐면서 성정(性情)을 함양하여야 하며, 모름지기 정신을 힘들게 하면서 괴롭게 궁리하여 조섭을 해쳐서는 안 되네. 이미 사색한 것이 있다면 또한 평소 대하는 사물에 나아가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切問近思] 공부를 행하며, 반드시 성명(性命)의 허원(虛遠)한 것을 더듬어 상상할 필요는 없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한 여러 조목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으로 대략 답을 할 것이니, 만일 온당하지 않다고 여기면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성(性)은 곧 기(氣)이며, 기는 곧 성이다[性卽氣, 氣卽性]"4)라는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이(理)와 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은 곳이네. 그러나 '이는[是]'이라고 하지 않고 '곧[卽]'이라고 하였으니, 또한 섞이지 않는다는 뜻도 볼 수 있네.이(理)에 선과 악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기품에 맑음과 탁함, 순수함과 잡박함이 있음으로서 말한 것이네. 악도 또한 성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마음의 발용에 과와 불급이 있음으로서 말한 것이네. 이처럼 말이 절로 같지 않네.천하의 사물이 동(動)할 때 이(理)가 타고 기가 발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기가 동하여 이가 따르고 이가 동하여 기를 끼고 있는 때가 있겠는가. 면재(勉齋) 황간(黃幹)의 이 말은 본래 의심스럽네.천하에 성(性)이 없는 사물이 없으니 즉 또한 인(仁)이 없는 물건이 없네. 그러나 또한 사람의 인으로 사물에게 인을 책임 지워서는 안 되네.'의도가 없다.'는 말에서의 '의(意)'는 사사로운 의이네. 만약 의(意)자를 모두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대학》에서 어찌 '뜻을 끊어버린다.'고 하지 않고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고 하였겠는가. 咫尺阻閡。尤庸悵然。然君病我縶。勢固然矣。但美痾稍間溫理舊業。疑難滿紙。其嗜學之篤如此。慰悅萬萬。然久愆之餘。正宜優閒遊泳以養情性。不須勞神苦索以害攝理也。旣有思索。且從日用事物上。下切問近思之功。不必摸想於性命虛遠之地。如何如何。諸條謹以鄙意略略塡去。如有未穩。更以回示也。性卽氣。氣卽性。此固理氣不離處。然不曰是而曰卽。亦可見其有不雜底義。理有善惡。以人之氣稟淸濁粹駁而言。惡亦不可不謂之性。以心之發用有過不及而言。言自不同。天下之動。無非理乘氣發。安有氣動理隨理動氣挾時節耶。勉齋此說。本涉可疑。天下無無性之物。則亦無無仁之物。然亦不可以人之仁。去責那仁。無意之意。是私意也。若以意字都作不好看。則大學何不曰絶意而曰誠意耶。 성(性)은……성(性)이다 《근사록》에 보이는 정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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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할 일이 있어 有歎 세상의 환란이 참으로 이루어져 어쩔 수 없으니 世禍眞成無可柰윤리와 강상이 실추되고 끊겨 의관이 뒤집혔네 倫綱墮絶倒冠裳몸을 빌린 오랑캐들이 사납게 굴게 되었고 假形夷虜能爲虐열을 나게 하는 돈은 점점 미치게 만드네 發熱金錢轉作狂매복이 오시에 숨은 일 너무 늦었고217) 已晩梅眞隱吳市굴원이 남쪽 고을로 추방당한 일 절로 마땅하네218) 自應屈醒放南鄕우레가 칠 일 늦었다219) 그대 한탄하지 말고 雷遲七日君休歎마음속에 양기를 잘 보존하게나 且就心中善保陽 世禍眞成無可柰, 倫綱墮絶倒冠裳.假形夷虜能爲虐, 發熱金錢轉作狂.已晩梅眞隱吳市, 自應屈醒放南鄕.雷遲七日君休歎, 且就心中善保陽. 매복(梅福)이……늦었고 매복은 전한(前漢)의 은사(隱士)이다. 오시는 오(吳) 지방의 시가(市街)로,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에 있었던 시장의 거리이다. 매복은 경학(經學)에 뛰어나 군(郡)의 문학(文學)이 되고 남창 현위(南昌縣尉)를 지냈으나, 왕망(王莽)이 정권을 전횡하자 처자를 버리고 구강(九江)으로 가서 은둔하였다. 뒤에 이름을 바꾸고 오나라 시장의 문지기로 있었다고 하며,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도 한다. 《漢書 梅福傳》 굴원(屈原)이……마땅하네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모두 탁한데 나 홀로 맑고, 사람들 모두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우레가……늦었다 5월에 양기(陽氣)가 처음 소멸되기 시작하는 구괘(姤卦)가 되었다가, 순음(純陰)인 10월을 지나 11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양기가 처음 회복되는 지뢰복(地雷復)의 괘(卦)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구괘로부터 복괘까지 걸리는 기간이 7개월이 되는 셈인데, 이것을 《주역》 복괘 단사(彖辭)에서는 "그 도를 반복해서 이레 만에 되돌아오니, 이것이 하늘의 운행이다.[反復其道, 七日來復, 天行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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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아66)가 몽사67)의 스승이 된 것을 기뻐하며 喜復兒爲蒙士師 기뻐한 건 본디 몽사의 스승에 있는 게 아니니 可喜本非蒙士師네가 이 일을 해낸다면 얼마나 기특하겠는가 汝能此事一何奇남의 모범이 되려면 먼저 자신을 따르게 할지니 作人模範先從己글이나 익히게 한들 끝내 누구를 이롭게 하리오 溫故文書竟益誰잘못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았기에 탕왕을 성군이라 했고68) 過不吝時湯謂聖분수를 편안히 여길 수 있었기에 소옹을 지혜롭다 했다네69) 分當安處邵稱知만약 온갖 고생을 감내할 수 있다면 如令煞喫辛酸得틀림없이 앞으로 쾌활한 경지에 이르리라 快活前頭在不疑 可喜本非蒙士師, 汝能此事一何奇?作人模範先從己, 溫故文書竟益誰?過不吝時湯謂聖, 分當安處邵稱知.如令煞喫辛酸得, 快活前頭在不疑. 복아(復兒) 후창의 첫째 아들인 김형복(金炯復)을 가리킨다. 몽사(蒙士) 어린 학도를 이른다. 잘못……했고 《서경》 〈상서(商書)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상(商)나라 탕왕(湯王)의 덕을 칭송하며 "사람을 등용하는 데 자신으로 생각하고,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게 하지 않으시어 능히 너그럽고 능히 인자하여 그 덕이 밝게 드러나 만백성에게 믿음을 받으셨습니다.[用人惟己, 改過不吝, 克寬克仁, 彰信兆民.]"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분수를……했다네 소옹(邵雍)은 송나라의 학자로,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와(安樂窩), 시호는 강절(康節)이다. 《주역》의 이치에 정통하고 상수학(象數學)에 능하였다. 그의 〈어느 곳이 선향인가[何處是仙鄕]〉 에 "만일 분수를 편안히 여길 수 있다면, 모두가 유별난 생각보다 나을 것일세.[若能安得分, 都勝別思量.]"라고 하였다. 《擊壤集 卷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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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헌에게 보냄 신미년(1931) 與李愼軒 辛未 근래에 존자께서 걸음하여 그사이 고창의 유영선을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정말입니까? 그가 스스로 와서 거절을 못했거나 길에서 만나 말을 한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어찌하여 친히 몸을 굽혀 찾아가기까지 하신단 말입니까? 음성(陰城)의 오진영을 성토하는 일을 어른이 참으로 제창했고 "신헌이 또 일어남에 천백 명을 창도했다."는 말이 오진영의 편지가 아닙니까? 어른은 참으로 저쪽에서 뼈 속까지 호남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만약 말하기를, "뼈가 이미 단단하지 않으니 살은 장차 스스로 떨어져나갈 것이다." 한다면 저들이 이미 잘못 안 것이고 어른도 듣기 싫은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마음으로 그 자취를 본다면 혹 그렇기도 할 것입니다. 당여를 먼저 다스리자는 성토문은 어른이 함께 지은 것이고, 음성 오진영의 골수 몇 사람을 제외하고 다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른이 평소에 한 말입니다. 유영선이 비록 최원(崔愿), 김세기(金世基), 정운한(鄭雲翰), 박제철(朴濟喆)과 같지 않고 권순명과 김용승과는 틈이 있다고 하나 그러나 그는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큰소리로 말했으며, 오진영과 함께 스승의 원고를 고친 진주본 간행에 시종 일을 주선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사람이 음성 오진영의 골수 몇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는 자입니까? 삼가 어른께서 이것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하지 못하신 듯합니다. 나는 유영선에게 오래된 원망도 없으며 어른에게 감히 하자를 찾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일이 대의(大義)와 관련되는데, 어른은 의리를 제창한 사람이고 유영선은 또한 저쪽의 명인이라 피차가 서로 함께할 즈음에 단지 어른 한 사람만 관계될 뿐만이 아닌 만큼 감히 경솔히 할 수 없는 점이 있다고 여겨서입니다. 比聞尊駕間訪敞柳, 信然否? 彼自來而不拒, 遇諸塗而與言, 猶可也, 何至於親屈耶? 夫討陰之役, 丈實倡之, 愼又起, 倡千百人, 非震書乎? 丈, 固彼邊所認爲骨湖者.彼若曰: "骨已不硬, 肉將自脫", 則彼旣誤認, 丈又惡聞.然昧心見迹, 似或然矣.先治黨與之討文, 尊所共製也.骨陰幾人外, 不當盡絶, 尊所雅言也.柳雖與愿世翰喆不同, 又與權金有間, 然其謂震非誣師, 則衆中大言, 而與震終始周旋於改稿之晉印矣.未知此人不入骨陰幾人中者耶? 竊恐丈於此不及細思也.吾於柳非有舊怨, 於丈非敢索瑕, 特以事關大義, 而丈是倡義者, 柳亦彼邊名人, 彼此相與之際, 非但關尊一身, 而有不敢率爾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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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황장에게 올림 上小心黃丈 戊辰 무진년(1928)지난겨울에 답해주신 편지를 얼굴을 씻고 세 번 거듭 읽음에 더욱더 정당한 의리와 명확한 의론에 감복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을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치는 책임을 보잘 것 없는 저에게 책임을 지우기까지 하신 것은 바로 맹자가 세 성인을 계승한 공과 같은 것이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사람마다 나서서 말할 수 있는〔人人能言〕' 대열에 참여해 있게 하고자 하신다면 감히 많이 사양하여 덕으로 사랑해주신 은혜를 저버리지는 않겠습니다.선사의 행장과 연보는 일찍이 임경소(林敬所) 어른을 믿고 있었으니, 일문(一門)이 부탁하는 뜻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스스로 맡은 바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어른이 불행히도 먼저 돌아가셨고, 지금 또한 변고가 생긴 이후로 노성한 분 가운데 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이러한 시기에 이러한 일은 오직 우리 어른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빠를 시일 내에 생각하고 의논하여 곧바로 초안하여 큰일을 마치기를 기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근래에 호남의 유림이 공자의 가르침이 사라졌다고 애통해 하면서 유교부식회(儒敎扶植會)를 세우고 시생에게 함께 일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이미 사라진 나머지에서 반이나마 구제하고자 하는 것은, 그 뜻이 이미 지극하고 마음도 서글픕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하는 일은 성공할 만한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저 일인(日人)에게 해악을 받음을 면치 못할 우려가 있으니, 도를 붙들어 지키는 방도가 도리어 먼저 도를 굽히는 꼴입니다. 그러므로 사양하고 참여하지 않았습니다만, 감히 이렇게 우러러 질정합니다. 부디 밝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客冬下覆, 盥讀三復, 益服正當之義, 明確之論, 而至以閑闢之任, 責之無似者, 則此正孟子所承三聖之功者, 何敢當何敢當? 但欲參在人人能言之列, 則不敢多讓, 以負德愛之惠也.先師行狀年譜, 曾侍敬所林丈, 非惟一門之屬意, 亦其所自任者, 而此丈不幸先沒, 今且變出之後, 老成中, 無人可爲, 此日此役, 惟吾丈可以當之.幸早入思議, 隨得起草, 期卒大事之地, 如何?近日湖中儒林, 痛孔敎之亡, 立儒敎扶植會, 要侍生同事.其欲捄一半分於已亡之餘者, 意旣至矣, 情亦戚矣.然今日吾輩作事, 非惟無可成之望, 且有不免見累於彼人之慮, 則其所以扶道者, 乃先枉其道也.故辭謝不參, 而敢此仰質, 幸明敎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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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씨의 사계정사158)에서 일재159)ㆍ남명160)ㆍ월사161)의 시에 차운하다 房氏沙溪精舍次一齋南冥月沙韻 오백 년 내려온 가업이 우리나라에선 드문데 半千世業罕吾東문헌은 정사에서 징험하기에 충분하였네 文獻足徵精舍中현판 위엔 일찍이 선현들의 필적 많이 있고 板上曾多先輩筆창문 앞엔 벌써 열 아름의 소나무가 되었네 牕前已老十圍松종정162)에 새기던 그때 뜬구름은 엷었고 鼎鍾當日浮雲薄강학하여 서로 전하니 다듬은 옥처럼 영롱했네 講學相傳琢玉瓏시험 삼아 보니 사계에 끊임없이 물 흐르듯 試看沙溪流不盡덕 있는 가문에 끼친 음덕 또한 끝이 없어라 德門遺蔭也無窮 半千世業罕吾東, 文獻足徵精舍中.板上曾多先輩筆, 牕前已老十圍松.鼎鍾當日浮雲薄, 講學相傳琢玉瓏.試看沙溪流不盡, 德門遺蔭也無窮. 사계정사(沙溪精舍) 원래 방원진(房元震)의 조부로 호가 사계인 방응현(房應賢, 1524~1589)의 정사인데, 병화로 소실된 것을 방원진이 다시 수축하였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7에 〈사계정사기(沙溪精舍記)〉가 실려 있다.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으로, 일재는 그의 호이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항지(恒之),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노진(盧禛)ㆍ김인후(金麟厚)ㆍ유희춘(柳希春)ㆍ기대승(奇大升)과 함께 '호남 5현'이라 일컬어졌다. 저서에 《일재집(一齋集)》이 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호이다. 자는 건중(楗仲), 다른 호는 산해(山海)ㆍ방장노자(方丈老子)ㆍ방장산인(方丈山人), 본관은 창녕(昌寧),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에 《남명집》ㆍ《남명학기유편(南冥學記類編)》ㆍ《신명사도(神明舍圖)》 등이 있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호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590년(선조33)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 중기 4대문장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서에 《월사집》이 있다. 정종(鼎鍾) 동(銅)으로 주조한 솥과 종의 합칭으로, 옛날에는 공훈을 표하는 문자를 대부분 이 종과 솥의 겉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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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 초하루에 현광과 함께 읊다 仲秋初吉 同玄狂吟 산재에 가랑비 내려 흥이 조금 좋은데 小雨山齋興稍佳안중에는 가을 색이 정히 끝이 없구나 眼中秋色正無涯곡식이 머지않아 마당에 돌아오고191) 嘉禾不日將歸圃시든 잎은 바람 없어도 절로 섬돌에 지네 病葉無風自墜階세상에 머물며 함께 우거할지 뉘 알았으리 住世誰知同寄寓시를 지어서 마땅히 회포를 토로해야지 寫詩端合吐情懷옛적의 현달한 이들을 그대 응당 알리라 古來賢達君應識사천필의 말192)도 헌신짝처럼 여겼다네 千駟還如一弊鞋 小雨山齋興稍佳, 眼中秋色正無涯.嘉禾不日將歸圃, 病葉無風自墜階.住世誰知同寄寓, 寫詩端合吐情懷.古來賢達君應識, 千駟還如一弊鞋. 곡식이……돌아오고 곡식을 수확하여 타작하기 위해 마당에 가져오는 것이다.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구월에는 채마밭에다 타작마당을 닦고, 시월에는 온갖 곡식을 거둬들인다.[九月築場圃, 十月納禾稼.]"는 말이 나온다. '가화(嘉禾)'는 본래 옛날 사람들이 길조로 여겼던 특이한 형태의 벼인데 여기서는 곡식을 말한다. 《尙書注疏 微子之命》 사천필의 말 원문의 '천사(千駟)'는 매우 부귀한 것을 말한다. 사(駟)는 말 네 필을 말하므로 천사는 사천 마리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이윤(伊尹)은 "말 사천 마리가 묶여 있어도 돌아보지 않는다.[繫馬千駟, 弗視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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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께 올림 上蘆沙先生 삼가 생각건대, 봄추위에 기체(氣體)가 강녕하시며, 작은사랑의 병환은 근래 회복되었으며, 우거하시는 나머지에 온갖 일은 괴로움을 끼치는 데 이르지 않았겠지요? 삼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소생은 겨울 초에 사상(沙上)에서 돌아왔는데, 양친께서 연달아 건강이 좋지 못하였다가 세모가 되어서 겨우 위급한 상황을 넘겼습니다. 이어서 신고(身故)로 또 달포 정도 괴로움을 겪었으니, 이른바 글공부하는 일은 묶어서 시렁 위에 올려놓은 채 겨울을 넘길 따름입니다. 접때 선생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을 때 김석귀(金錫龜), 정재규(鄭載圭)가 전후로 때마침 이르러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은 나머지에 서로 강마(講磨)하여 천년 뒤에 수사(洙泗)의 위의(威儀)21)를 보는 듯하였습니다. 소생처럼 혼미하고 어리석은 이도 비록 눈으로 보고서 마음으로 느끼는 유익함이 없지 않았지만 또 어떻게 하면 강마한 것을 깨달아 밝히는 바가 있어서 이 모임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종전에 힘쓰지 못하였다는 탄식이 여기에서 배로 간절하였고,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도 이로부터 더 보태졌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해를 넘기면서 예전처럼 그대로 답습하며 그 뜻이 희미하게 사라졌습니다. 또 이러한 모임이 또 어느 때 있을지 모르니, 구구한 소생의 마음에 어찌 서운함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선생님께서 이사하여 해가 바뀐 때 몸을 빼 문후하지 못하니, 죄송합니다. 삼가 절서에 따라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답장을 덧붙임해가 바뀌어 그리워하는 마음 간절하던 차에 방금 편지를 보았네. 매우 자세히 적었기에 귀중함이 어찌 보배로운 구슬에 견주겠는가. 다만 책을 보는 한 가지 일은 자못 근심스러운 일로 방해를 받았으니, 세월이 자못 애석할 따름이네. 병든 사람의 노쇠함은 금년 들어 다시 더할 것이 없네. 기력은 기어서 계단을 내려갈 정도이고 정신은 거의 숙맥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이네.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아 이러한 업보를 받는 것이라 부끄럽고 부끄럽네. 여러 가지 사연은 붓을 들 마음이 없어 우선 그만두고, 예만 갖출 따름이네. 이만 줄이고 삼가 사례하네. 伏惟春寒。氣體康寧。小舍廊患節。近見天和。僑寓之餘。凡百不至貽惱否。伏慕不任。小生冬初自沙上還。兩庭連有欠和之節。至於歲未。纔免危津。繼以身故。又經旬月之苦。所謂佔畢之業。束閣過冬而已。曩於侍敎之日。錫龜載圭前後適至。坐春立雪之餘。互相講磨。使千載之下。如見洙泗之儀。昏愚如小生。雖不無觀感之益。而又安能有所發明以不負此會哉。從前不力之歎。倍切於此。而追後圖勉之心。又自此而不能無有加矣。然歸家踰年因循如古。而落落分散。又未知此會之復在何時。則區區下情。曷勝悵然。當此杖屨移寓歲次翻易之際。而未得抽身承候。罪悚。伏乞循序康衛。答附歲翻。懷人切矣。卽見手字極覼縷。寶重奚啻拱璧。第佔畢一事。頗爲憂故所魔。歲月殊可惜。病人衰敗。至于今年。無以復加矣。氣力則匍匐而下階。精神幾乎菽麥不以辨。少不勤學。其果報如此。可愧可愧。諸般說。無心戀筆墨。只得且休。備禮而已。不宣謹謝。 수사(洙泗)의 위의(威儀) 수사는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인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이다. 이곳이 공자의 고향에 가깝고 또 그 사이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의 학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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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백낙필(白樂弼) 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午正月初二日 白樂弼等 金生員宅 庚午正月初二日 白樂弼 金生員宅 전라북도 전주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고종 7) 정월 초2일에 백낙필 등이 부안에 사는 김생원댁에게 보낸 서간. 1870년(고종 7) 정월 초2일에 완영(完營)의 백낙필(白樂弼) 등이 부안(扶安)에 사는 김생원댁(金生員宅)에게 보낸 서간이다. 완영은 곧 전라감영(全羅監營)으로, 이 서간을 쓴 백낙필은 감영의 아전이었다. 그는 김생원댁에 보낸 서간에서 당시 부안김씨 집안의 현안인 정려(旌閭) 문제가 도계(道啓)에 들어가 있다고 알리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당시 부안김씨 집안은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받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낙필 등은 정려 요청건을 조정에 올려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청(本廳)에 예목전(禮目錢) 30냥을 바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돈은 공적인 용도로 사용된다고 강조하면서 답장을 할 때 돈을 보내 달라고 하였다. 예목전은 통상 '禮木錢'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뇌물로 볼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이 문서에 적혀 있는 것처럼 관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서간을 쓴 백낙필은 대원군의 지지기반으로 포섭된 전국 각처의 아전 중에 들어갈 만큼 전라감영에서는 상당히 영향력 있는 아전들 중 한 사람이었다. 백낙준은 또 전라감사가 올릴 도계의 내용을 베껴서 보내 주는 친절도 베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문서는 고종 연간에 정려가 급격히 증대되고 있는 현실의 속내를 잘 보여주는 문서로 추정된다. 백낙준은 또 부안김씨 집안의 자제가 과거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여 방목(榜目)에 성명이 실려 있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는데, 그 시험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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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재 박 선생21)에 대한 제문 祭無邪齋朴先生文 선생은 호걸의 자질로 학문의 공을 거두었습니다. 깊은 연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하였고, 잡아 지키는 것이 굳고 안정되었으며, 정밀하고 은미한 것을 깊이 연구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 해박하였습니다. 학문은 온전하고 덕은 확립되어 시원스럽고 화락하였으며, 천고를 통찰하고 한 시대를 아울렀습니다. 성 동쪽에 집을 지어 유유자적하게 지내면서 광채와 자취 숨기고 감추어 죽을 때까지 스스로 즐겼습니다. 어찌하여 한 번의 운수가 만년에 더욱 기구하여 상사가 거듭하고 식구들이 흩어졌습니다. 백리의 광산(光山)에 거처를 옮겼는데, 거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꺾였습니다.22) 오호라! 하늘이 선생을 내신 것은 무슨 뜻이며 쫓아서 곤액을 준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소자의 거처가 가장 가깝고 감복함이 가장 깊어 들어가서는 궤석에서 모시고 나가서는 장구를 모신지 십여 년이 됩니다. 순순하게 기대하고 면려함에 간곡하지 않음이 없었지만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어 그 만분에 하나의 뜻도 부응함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의지하여 우러름에 뒤따르려 해도 미칠 수 없습니다. 단지 용산(龍山)의 수석만 여전히 옛날과 같아 저로 하여금 첨모(瞻慕)함에 다하지 못하는 한이 있게 할 뿐입니다. 눈물을 닦고 슬픈 마음 엮어 감히 이렇게 영결을 고합니다. 先生以豪傑之姿。收學問之功。臨深履薄。持守堅定。硏精鑽微抱負該洽。學全德立。淸通和樂。洞視千古。範圍一世。卜築城東。寄我翱翔。潛光歛跡。卒歳自娛。云何一運。晩而愈奇。死喪相仍。室家分離。光山百里。杖屨移臨。居未幾何。山樑遽折。嗚乎。天之生先生何意。而從而厄之。又何意耶。小子居最近而服最湥。入侍几席。出陪杖屨。爲十餘年矣。諄諄期勉。非不懇至。而因循等待。未有以副其萬一之意。今焉依仰。追從莫及。只有龍山水石。依然如古。而令人有瞻慕不盡之恨而已。抆淚綴哀。敢此告訣。 무사재(無邪齋) 박 선생(朴先生) 박영주(朴永柱, 1803∼1874)를 말한다. 자는 유석(類碩), 호는 무사재·관수재(觀水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의 문인이다. 정의림(鄭義林)·이지호(李贄鎬)·최인우(崔仁宇)·공병주(孔炳柱)·조병호(趙秉浩)·구교완(具敎完)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저서로 《무사재집》이 있다. 산이……꺾였습니다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공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철인이 죽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과연 7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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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일당 김공52)에 대한 제문 祭愛日堂金公文 성인과 세상이 멀어지고 말씀이 인몰되니풍속이 경박하고 상하였네추향에 실마리가 많으니배워서 익숙한 것을 떳떳함으로 삼네군자가 있지 않으면누가 그 참됨을 깨우치랴처음 동류에서 뛰어난 이오직 공이 그 사람이네지기가 원대하며타고난 것이 높고 밝았네학문으로 겸비하여 이룬 것이더욱 크고 넓었네사문의 은미하고 깊은 뜻공이 실로 참여하여 들었네우리들 강론하며 모임에공이 실로 창도하였네쌍계사에 봄바람 불고취정에서 밤에 달 뜰 때창수가 정다웠고위의가 정연하였네공이 이미 병들었다 하였고나도 돌아와 또 쉬게 되었네날마다 원기를 회복하길 바라며옛 날의 교유 이으려 하였네누가 알았으랴 영원한 작별이갑자기 이에 있을 줄을거문고 부셔지고 줄이 끊어짐53)은만고에 같은 슬픔이네사론이 분열되니거두어 쇄신할 기약이 없네또 한 분의 현인을 잃었으니여생을 어찌하리오내 사는 곳 막히고 멀어오래도록 달려가 문상하는 것 미루었네세월이 한해가 지났으니유풍 여운이 날로 멀어지네구운 닭과 술54) 올리니상생55)은 여전하네큰 소리로 길게 울부짖으니눈물이 샘처럼 쏟아지네 世遠言湮。風澆俗傷。趍向多端。習熟爲常。不有君子。孰覺其眞。出類發軔。惟公其人。志熟磊落。禀賦高明。濟以學問。益大益宏。師門微蘊。公實聞焉。吾儕講聚。公實倡焉。雙寺春風。翠亭夜月。唱酬款款。威儀秩秩。公旣告病。我歸且休。日望天和。擬續舊遊。誰知永別。遽爾在兹。琴破弦斷。萬古同悲。士論分裂。收刷無期。又失一賢。餘生何其。我居阻遠。久稽奔問。星霜一周。風韻日遠。灸雞漬綿。象生依然。大聲長號。淚隕如泉 애일당(愛日堂) 김공(金公) 김치희(金致煕, 1828∼?)를 말한다. 자는 장여(章汝), 호는 애일당,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낙안(樂安)에 거주하였다. 거문고……끊어짐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이른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絶絃]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列子 卷5 湯問》 구운 닭과 술 원문의 '적계지면(炙鷄漬綿)'을 풀이한 말인데, 친구 간에 조상(弔喪)하거나 묘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서치(徐穉)는 자가 유자(孺子)로 남주(南州)의 고사(高士)라 일컬어졌다. 그는 먼 곳으로 문상(問喪)하러 갈 때 솜을 술에 적셔 햇볕에 말린 다음 그것으로 구운 닭을 싸서 휴대하기 간편하도록 만들어 가지고 가서 솜을 물에 적셔 술을 만들고 닭을 앞에 놓아 제수를 올린 뒤 떠났다 한다. 《後漢書 卷35 徐穉列傳》 상생(象生) 궤연을 말하는데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진열하여 살아있을 때를 그대로 본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권49 〈시향천신부(時享薦新附)〉에 "사당에 신주를 보관하여 사시제를 지내고, 침전(寢殿)에는 의관과 궤장 등 살아생전에 쓰던 기물을 두고서 그곳에 새로운 음식물을 올린다.[廟以藏主, 以四時祭, 寢有衣冠几杖象生之具, 以薦新物.]"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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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아70)가 독서하는 것을 기뻐하며 喜謙兒讀書 푸른 등불은 깜박이는데 밤이 얼마나 되었는고71) 靑燈耿耿夜何其큰 소리로 글 읽는 겸아도 참으로 기특하구나 大讀阿謙亦一奇일찍 공부에 힘쓸 뜻을 잃으니 어리석은 너를 어쩌겠는가 早失勤工柰癡汝뒤늦게나마 뜻을 분발하면 호걸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晩能奮志匪豪誰노천학사는 진정한 사표라 하겠고72) 老泉學士眞師表동백산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었다네73) 桐栢山人卽己知이로부터 우리 집안에 남은 운수가 있을 터이니 從此吾家餘運在그저 더욱 힘쓰고 망설이거나 의심하지 말거라 只要加勉莫遲疑 靑燈耿耿夜何其? 大讀阿謙亦一奇.早失勤工柰癡汝? 晩能奮志匪豪誰?老泉學士眞師表, 桐栢山人卽己知.從此吾家餘運在, 只要加勉莫遲疑. 겸아(謙兒) 후창의 넷째 아들인 김형겸(金炯謙)을 가리킨다. 밤이 얼마나 되었는고 원문의 야하기(夜何其)는 《시경》 가운데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정사(政事)를 보는 수고를 찬미한 〈정료(庭燎)〉 시에 "밤이 얼마나 되었는고. 한밤중도 아니 되었으나, 정료가 환히 빛나도다.[夜如何其? 夜未央, 庭燎之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노천학사(老泉學士)는……하겠고 노천은 송(宋)나라의 문인이자 학자인 소순(蘇洵, 1009~1066)으로, 자는 명윤(明允)이고, 노천은 그의 호이다.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 독서를 좋아하지 않다가 늦은 나이에 어느 날 갑자기 발분하여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독서에 전념하여 육경(六經)에서 제자백가(諸子百家)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달하고 마침내 대문장가가 되었다. 동백산인(桐栢山人)은……있었다네 동백산인은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의 은사(隱士)인 동소남(董召南)을 가리킨다. 동소남은 동백산(桐柏山)에 은거하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를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을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이렇게 훌륭한 동소남을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한유의 〈동생행(董生行)〉에 "아, 동생이여! 부모께 효도하고 처자식 사랑함을 남들은 알지 못하고, 오직 천옹만이 알아, 수시로 상서를 내고 길조를 내려주도다.[嗟哉董生! 孝且慈人不識, 唯有天翁知, 生祥下瑞無時期.]"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는 동소남의 훌륭함을 알아주고 세상에 크게 드러낸 한유를 가리킨다. 《小學 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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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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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여안74)에게 부치다 寄汝安 흐르는 물처럼 세월이 빨리도 흐르니75) 居諸奔迅若流水올해 제석도 이십 일만 남아 있을 뿐일세 今年除夕餘二旬아 내가 어느새 칠순의 나이가 되었으니 嗟我遽當七耋年몸은 고목 같고 귀밑은 흰 털이 분분하구나 身如槁木鬢雪紛아 그대는 가난하여76) 세상사에 얽매이니 嗟君食貧絆世故몹시 바쁘고 분잡하여 한가한 겨를이 없구나 倥傯紛沓無暇辰동서로 삼십 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東西相距三十里함께 수세77)한 지 십년이나 되었네그려 與同守歲積十年늙어 가매 약한 마음이 쉬이 감상에 젖으니 老來弱腸易感傷매양 울적함을 품고 밤새도록 시름한다오 每抱鬱陶悄達晨생각을 하지 않아서이지 어찌 멀어서이겠는가78) 未之思也夫何遠고통의 바다에도 때맞춰 조수가 밀려든다네 苦海亦有信潮臻장차 관 속에 들어갈 형을 가련히 여길지니 須憐阿兄將就木번연히 마음 돌려 지난 일을 뉘우치고 있다오 幡然回心悔前塵바라노니 눈 내린 밝은 달밤 창동 집에서 願言雪月滄東屋그대와 묵은해 보내고 새해를 맞고 싶어라 與君送舊又迎新 居諸奔迅若流水, 今年除夕餘二旬.嗟我遽當七耋年, 身如槁木鬢雪紛.嗟君食貧絆世故, 倥傯紛沓無暇辰.東西相距三十里, 與同守歲積十年.老來弱腸易感傷, 每抱鬱陶悄達晨.未之思也夫何遠? 苦海亦有信潮臻.須憐阿兄將就木, 幡然回心悔前塵.願言雪月滄東屋, 與君送舊又迎新. 여안(汝安) 후창의 셋째 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로, 자는 여안, 호는 연강(蓮岡) 또는 척재(拓齋)이다. 또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문집으로 《척재집(拓齋集)》이 있다. 세월이 빨리도 흐르니 원문의 거저(居諸'는 일거월저(日居月諸)의 줄인 말로, 세월이 흘러감을 이른다. 《시경》 〈패풍(邶風) 백주(柏舟)〉에 "해여 달이여, 어찌 뒤바뀌어 이지러지는가.[日居月諸, 胡迭而微?]"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가난하여 원문의 식빈(食貧)은 거빈(居貧)과 같은 말로, 《시경》 〈위풍(衛風) 맹(氓)〉에 "내 그대의 집에 시집간 뒤로, 삼년 동안 가난하게 살았도다.[自我徂爾, 三歲食貧.]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수세(守歲) 제석(除夕)에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새해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을 기다려 맞는 것을 이른다. 생각을……멀어서이겠는가 일시(逸詩)에 "당체의 꽃이여, 바람에 펄럭이도다.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리오마는, 집이 멀어서이다.[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라고 하였는데, 孔子가 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지, 어찌 멀어서이겠는가.[未之思爾, 夫何遠之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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