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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완선 전 병자년(1936) 姜完善傳【丙子】 강완선(姜完善)은 전주부(全州府)의 자산가로, 전 흥해 군수(興海郡守) 아무개의 서자이다. 흥해 군수가 죽었을 때 완선은 어렸다. 군모(君母)179)의 적형(嫡兄)이 그를 무도하게 대하여 마침내 쫓아내게 되었으니, 완선은 구걸하며 자랐다. 본래 재주를 지녀서 스스로 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취직하여 봉급을 받아 집안의 살림을 일으켰다. 그 적형의 집이 가산을 탕진하여 남은 것이 없게 되자 완선은 그 형 대함에 정성과 공경을 극진히 하여 밭과 집을 사서 거처하게 하였다. 자주 가산을 탕진하였는데 그 때마다 재물을 주었다. 나의 벗 전사견(田士狷)이 나를 위해 이와 같은 내용을 말해주었다.다음과 같이 논한다. "완선의 일은 도리로써 말한다면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니, 맹자가 말한 '성냄을 감추지 않으며 원망을 묵히지 않는다.'180)는 것이 이것이다. 다만 일반 사람은 이런 것에 참으로 하기 어려운데, 더구나 그 처지가 남과 다름에랴. 더구나 지금처럼 경박한 세상임에랴. 더구나 신학에 물든 몸임에랴. 그러나 사람이 이에 능히 이와 같이 하였으니, 이는 드물게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그러므로 크게 써서 드러낸다." 姜完善, 全州府貲産家, 前興海郡守某庶子也.興海沒也, 完善幼, 其君母嫡兄待之無道, 竟至逐出, 完善乞丐得長.有才性, 自入學校卒業, 就職有俸, 立家有産.其嫡家蕩敗無餘, 完善待其母兄, 極其誠敬, 爲買田宅居之, 數破其産, 輒賑給.余友田士狷爲余道如此.論曰: "完善之事, 以道理言之, 宜其如此, 若孟子所謂'不藏怒宿怨', 是也.但常情於此固已難事, 况其處地, 有異於人乎, 况於今世澆薄之日乎, 况以染習新學之身乎.然而人也, 乃能此, 此非罕覯者乎.余故特書表章之." 군모 서자(庶子)가 아버지의 적처(適妻)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의례》 〈상복〉의 주에서 정현(鄭玄)이 말하기를 "군모는 아버지의 적처이다."라고 하였다. 《儀禮注疏 卷11 喪服》 성냄을……않는다 이 말은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나온다. 순 임금의 이복동생인 상(象)이 아버지 고수(瞽瞍)와 함께 순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지만, 순 임금이 천자가 되어 아우 상을 유비(有庳)에 제후로 봉하고 부귀하게 해 주었는데, 상은 불인(不仁)하여 관리로서의 자질이 안 되었기 때문에 다른 관리를 파견하여 대신 다스리게 하고 세금만 상에게 바치는 방식으로 하였다. 이에 대해 맹자는 "어진 사람은 아우에 대하여 노여움을 마음에 숨겨 두지 않으며, 원한을 가슴속에 남겨 두지 않고 그를 친애할 뿐이다. 친하게 여긴다면 그를 귀하게 하고 싶고, 사랑한다면 그를 부유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仁人之於弟也, 不藏怒焉, 不宿怨焉, 親愛之而已矣. 親之, 欲其貴也, 愛之, 欲其富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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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선조 유적의 시에 차운함 次金氏先蹟韻 열사의 곧은 충성은 물가에서 드러나고 烈士貞忠著塞河판관의 깨끗한 절조 고향으로 돌아가네 判官淸節歸田里천 년 아름다운 자취 있는 광산 집안 千秋懿蹟光山家키와 가죽옷195) 이어받는 일 어찌 가볍게 하랴 繼述箕裘敢忽爾 烈士貞忠著塞河,判官淸節歸田里.千秋懿蹟光山家,繼述箕裘敢忽爾. 키와 가죽옷 가업(家業)을 비유하는 말이다. 《예기》 〈학기(學記)〉의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아비의 일을 본받아 응용해서 가죽옷 만드는 것을 익히게 마련이고, 활을 잘 만드는 궁장(弓匠)의 아들은 아비의 일을 본받아 응용해서 키 만드는 것을 익히게 마련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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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복용(李福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大正九年 陰十一月 十一日 李福容 李冕容 大正九年 陰十一月 十一日 李福容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음력 11월 11일에 이복용이 백산 아래의 대조(垈租) 사건에 관한 건으로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0년 음력 11월 11일에 이복용이 백산 아래의 대조(垈租) 사건에 관한 건으로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서 썼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발신자인 족제(族弟)는 일양하며 물경동의 산소도 안녕하다고 하였다. 말씀드릴 것은 백산 아래의 대조(垈租) 사건에 대한 것이다. 정사년과 기미년조는 이미 받아서 이식하고 있으나, 무오년조는 묘지기 이도순이 물경동의 제종과 상의하여 7대조의 시사(時祀)에 내준 비용이 약소함에 따라 제종이 각각 몇 두씩 내놓고, 해당 도조 1석2두를 추가로 넣었으나 종계 설립을 칭탁하고서 지급하지 않는 것은 이미 다 말씀드렸다. 그런데 지난 6월 아드님이 올라왔을 때에도 서로 상의한 바, 이달 시사 때 본 이자를 독촉하니, 각각 자손을 위하는 것은 일반이라 하고서 영영 지급하지 않고 있으니, 일이 매우 고민스럽다. 이 문제를 살핀 후에 해당 사건을 묘지기 이도순에게 통지하여 독촉해서 받아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말미에는 한글로 쓴 추신이 있다. 누차 독촉하자 묘지기가 최치복을 주려고 하였다는 등 광언망설하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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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기사년(1929) 答田士狷 己巳 편지를 받으니 스스로를 평한 말씀이 비록 위겸(撝謙)27)의 뜻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또한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 소인(小人)들이 미워하고 범부(凡夫)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법도를 바꾸어서 합치할 수가 없고, 저들이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그대로 방임할 뿐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그 정상적인 길을 벗어나서 병이 될까 두려워 한즉, 제가 비록 안으로 반성하여 허물이 없다 할지라도28) 군자에게서 미움과 두려움을 얻은 것이 혹 지혜와 인에만 전력하고, 의젓하게 임하는 것은 소홀히 하며 쉽게 하는데 있다면, 이것은 끝내 아무 일 없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형이 만약 능히 이 점에 있어서 만일 이와 같이 하면 병이고,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약이 된다29)라고 하는 훈계를 한다면 더욱 뜻을 더하십시오. 承惠自評之語, 雖出於撝謙之意, 亦不敢絶不謂然也.彼小人之惡之也, 凡夫之懼之也, 吾不可以改度而合之, 任彼之惡懼而己.惟君子之恐其逸出軌轍而病之, 則吾雖內省而不疚, 其所以得此於君子者, 或在於專力知仁忽易莊涖之由, 則終有不可視爲無事者.兄若能於此知如此是病不如此是藥之訓, 一倍加意焉. 위겸(撝謙) 《주역》 〈겸괘(謙卦) 육사(六四)〉에, "겸손함을 베풂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撝謙.]"라고 하였다. 제가……할지라도 내성불구(內省不疚)는 자기의 내면을 살펴 흠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안연(顔淵)〉에 "내성불구하다면 걱정하고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內省不疚 夫何憂何懼〕"라고 하였다. 형이……약이 된다 《朱子大全 卷64》 . 주희(朱熹) 의 〈혹인(或人)에게 답한 편지〉에, "이와 같음이 병이 됨을 알면 이처럼 하지 않는 것이 약이 된다."라고 하였다.〔如此是病, 卽便不如此,是藥.〕"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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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중일동건에게 답함 계해년(1923) 答蔡中一東建 癸亥 전에 보낸 편지를 받았었는데 정다운 편지를 재차 받으니 깊이 아끼시는 마음이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까지 하시겠습니까? 아, 우리가 아끼는 것이 어찌 헛된 것이겠습니까? 구하는 바는 의기를 함께 하는 것이니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된다면 고금으로 시대가 다르고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불과 탁자를 함께 쓰고 편지가 끊이지 않더라도 정다운 교분이라고 한다면 맞지만 뜻을 함께 한다고 한다면 틀립니다.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자의 인(仁), 맹자의 의(義), 정자의 경(敬), 주자의 성(誠)이 아니겠습니까? 구하여 얻은 것이 같다면 아끼는 마음이 이에 더욱 깊어질 테니, 어찌 매우 통쾌하고 흡족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청수(淸秀)하고 돈실(敦實)한 당신께 바라는 바가 깊습니다. 그러므로 천년 뒤에도 도의(道義)를 지키기를 기약하고 같은 시대의 글벗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자 이를 위하여 속마음을 토로하니, 헤아려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보내주신 시는 살펴보니 착실하게 공을 들였습니다. 허나 현재 심제(心制) 중이어서 받들어 화답할 수 없어서 한탄스러운데, 비평과 윤색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부족한 제가 보기에 온당치 않은 부분을 대략 거론하여 보내오니, 다시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旣荷前書, 再奉情函, 非相愛之深, 烏能致此? 噫, 吾人相愛, 豈徒爾哉? 所求者聲氣之同, 聲氣苟同, 古今之殊、朔南之遠, 猶朝暮遇也. 其未然, 雖衾卓相聯、赫蹄不絶, 謂之情交則可, 同志則非也. 吾人之所求者何? 孔仁、孟義、程敬、朱誠者非耶? 求之而所得者同, 則相愛者, 於是乎愈深, 豈非多少快洽乎? 區區於高明之淸秀敦實, 所望者深, 故欲相期於千載, 而不作幷世文友而止, 爲此吐蘊, 想見諒領會也. 盛詩可仰, 實實用功. 見在心制中, 未由奉和悵悵. 批潤何敢? 略擧未安於鄙見者以呈, 幸更裁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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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형복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 告長兒炯復 【乙丑十二月十日】 예전에 물들여진 습관을 혁파하고 새로운 덕으로 나아가거라. 죽으려할 때의 말을 너는 소홀히 여기지 말거라. 革舊染, 進新德. 將死言, 爾毋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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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암 선생52)의 부고를 듣고 聞崔勉菴先生訃 선생의 큰 절개는 송나라 문문53)이요 先生大節宋文文평소 곧은 도는 한나라 조정의 주운54)이라 直道平時漢廷雲학문의 공정은 풍부한 업적을 달성했고 學問工程成富業춘추의 의리는 최고가 되셨다네 春秋義理作專門하루하루 훈계하는 말 어찌 적었으랴마는 一日訓辭豈云少마음 다해 우러르고 사모하여 지극히 높이네 全心慕仰極爲尊대마도에서 널 돌아오는 길에선 탄식할 만했으나 可歎馬島櫬歸路병들어 상여줄 잡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네 病未同參執紼人 先生大節宋文文,直道平時漢廷雲.學問工程成富業,春秋義理作專門.一日訓辭豈云少,全心慕仰極爲尊.可歎馬島櫬歸路,病未同參執紼人. 최면암 선생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을 말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항일의병운동의 전개를 촉구하며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은 인물이다. 문문 문천상(1236~1282)을 말한다. 자는 송서(宋瑞) 또는 이선(履善)이고, 호는 문산(文山)이다. 남송 마지막 재상으로 원의 회유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해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한나라……주운 한 성제(漢成帝) 때 주운(朱운雲)이 아부하는 신하 한 명을 베어 죽이겠다며 성제에게 상방검(尙方劍)을 빌려 달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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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시를 보냈기에 원운으로 화답함 子貞贈詩步韻和之 나그네 지팡이로 눈 뚫고서 창동리에 이르러 客笻穿雪到滄東한밤중에 앉아 속마음 쏟아내었네 傾倒肝腸坐夜中마음 위의 공부는 착실해야 하고 心上工夫宜著實세간의 이름과 이익은 모두 헛되게 돌아가네 世間名利盡歸空자신 이루고서 다른 사람 이룸은 어진 사람의 뜻이며 成身成物仁人志물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함은 군자의 풍도라네 樂水樂山君子風우리들의 행보가 평소 자리에서 평안하기를 바란다면 要看吾行安素位속인들이 빈궁을 비웃음에 관여치 마라 不䦤俗輩笑貧窮 客笻穿雪到滄東,傾倒肝腸坐夜中.心上工夫宜著實,世間名利盡歸空.成身成物仁人志,樂水樂山君子風.要看吾行安素位,不䦤俗輩笑貧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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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에게 보냄 임술년(1922) 與金聖九 壬戉 근래에 스승의 원고를 살펴보았는데, 그 중에 "당(唐)나라 중종(中宗)이 종묘에서 측천무후(則天武后)를 쫓아내지 않은 것은 그가 모자(母子)의 윤리를 폐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본문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문장의 뜻이 이와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측천무후도 그러한데, 하물며 겁탈을 당하게 되어 자결한 어머니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선사가 이것을 억누르고 저것을 허여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일찍이 좀 더 빨리 스승의 원고에 있는 이 문장을 얻어서 평소에 질문하지 못했던 것이 한스럽습니다. 또 생각해보니, 이것을 억누르고 저것을 허여한 것이 의심될 뿐만 아니라 음란하고 무도하여 집안과 국가를 쓰러뜨린 것이 측천무후와 같은 자는 의리가 그 아버지와 끊어진 것이 오래되었으니, 그 자식 된 자는 윤리적 감정이 비록 지극하다 하더라도 마땅히 대의에 의거하여 종묘에 들여서는 안 될 듯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의리가 있는 곳에서는 인정을 빼앗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의리를 돌아보지 않고 인정만 따르게 된다면 어찌 부조(父祖)는 망각하고 단지 어머니만 생각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요컨대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가 여후(呂后)를 종묘에서 축출한 것25)이 의리에 맞는 것 같습니다. 그대는 또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近閱師稿中有云: "唐中宗之不黜武后於宗廟, 以其不得廢母子之倫.【不能詳本文, 然文意如此.】" 武后且然, 而况遇劫自裁之母乎? 然先師之抑此與彼, 何也? 恨未早得師稿此文, 幷質于平日也.又思非惟抑此與彼之爲可疑, 若淫亂無度, 傾覆家國, 如武后者, 義絕於其父久矣, 爲其子者, 倫情雖至, 恐當據大義而不入廟也.此所謂義之所在, 情有所奪也.若義之不顧, 而情之是循, 豈不爲忘父祖而但念其母乎? 要之光武之黜呂后, 似得於義, 高見於此, 又以爲如何? 한나라……것 이는 한 고조(漢高祖)의 비인 여후(呂后)와 박희(薄姬)에 대해, 광무제가 박희를 정비로 인정해 종묘에 그 신주를 올려 모시고 여후를 한나라를 위태롭게 한 황후라 하여 종묘에서 끌어내려 원(園)으로 따로 모신 것을 말한다. 박희는 한나라의 3대 왕인 효문제(孝文帝)의 모후(母后)이다.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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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병자년(1936) 答田士狷 丙子 오호라! 금일 사문(師門)의 일은 자손으로는 형만 계시고, 문인으로는 오직 저뿐입니다. 저는 이미 곤궁하고 실패한 것이 이와 같은데, 형 또한 저처럼 위태로워 도도히 치달리는 세파를 능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도가 그릇되고 저들의 설이 옳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또 선사가 과연 인의(認意)와 인교(認敎)가 있어서 저들이 선사를 무함(誣陷)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저들이 선사의 원고에 대하여 과연 고친 것도 없고, 선비의 무리에 화를 끼치는 것도 없어서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찌 하늘의 뜻이 이와 같을까요?아아! 이 무슨 말입니까? 선사에게 인교가 있었다고 한다면, 선사께서 남긴 유고의 손때가 여전히 새롭고, 또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면, 간재의 손수 개정한 판본을 대조한 《고변록》이 지금 버젓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또 선비의 무리에게 화를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면, 당일에 독을 준비해서 죽음을 맹세한 물건이 여전히 상자 속에 있을 것입니다. 오호라! 그렇지 않다면 어찌 족히 난세라 이를 수 있겠으며, 어찌 족히 하늘을 기필할 수 없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스스로를 믿을 뿐입니다. 嗚呼今日師門之事, 在子孫惟兄在門人惟我.我旣窮敗若此, 兄又㱡㱡如彼, 奔波滔滔, 莫之能遏.豈吾道非而彼說是耶.豈先師果有認意認敎, 而彼不爲誣, 彼於師稿果無所改, 於士類果無所禍耶.不爾何天意之若是.曰惡是何言也.謂先師有認敎也, 遺書之乎澤尙新矣, 謂師稿之無改也, 手本對照之考辨錄自在矣.謂士類之不禍也, 當日備毒誓死之物, 尙在篋笥矣.嗚呼不者, 烏足謂亂世, 烏足謂天不可必乎.以此自信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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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간재 선생께 올림 신축년(1901) ○이하 동일하다. 敬呈艮齋先生【辛丑○下同】 산세가 웅장하며 물 기운도 맑은 곳에 山勢碓來水氣淸태화봉 아래 선생께서 칩거해 계시도다 泰華峯下隱先生책상 머리엔 천 편의 저서가 있을 뿐 案頭書有千篇著도성 밖에는 하루도 경작한 밭도 없네 郭外田無一日耕버드나무에 부는 봄바람은 얼굴에도 이르고 楊柳春風吹面到오동나무에 뜬 달은 가슴속까지 비추네1) 梧桐齊月照心明얕은 공부로 감히 선생 끝도 엿보지 못하면서 淺工罔敢窺涯除외람되이 문하의 제자 명단에 이름 올립니다 猥忝門墻弟子名 山勢碓來水氣淸,泰華峯下隱先生.案頭書有千篇著,郭外田無一日耕.楊柳春風吹面到,梧桐齊月照心明.淺工罔敢窺涯除,猥忝門墻弟子名. 버드나무에……비추네 이는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맑은 기상을 노래한 시 〈수미음(首尾吟)〉에 "오동나무에 뜬 달은 가슴속을 비추고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얼굴로 불어온다.〔梧桐月向懷中照 楊柳風來面上吹〕" 라고 한 것을 전용한 것이다. 《擊壤集 卷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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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힘쓰다 自勉 바닷가 모든 산에는 흰 구름 가득한데 海上千山白雪多다시 세월이 물처럼 가기에 깜짝 놀라네 却驚歲月若奔波서적을 두루두루 보되 의당 요점을 알아야 하고 簡編浩穰宜知要의리를 정밀하고 깊게 파야지 대충해선 안 되지 義理精深莫放過운당시에 회옹을 슬퍼하며 다시 이르고33) 重到篔簹悲晦父실솔이 당풍을 경계한 시임에 세 번 탄식하네34) 三嘆蟋蟀戒唐歌고금에 넉넉하게 노닌 자들을 두루 살펴보니 歷看今古優遊者궁벽한 집에서 백수로 지내는 이 몇 명이던가 皓首窮廬問幾何 海上千山白雪多,却驚歲月若奔波.簡編浩穰宜知要,義理精深莫放過.重到篔簹悲晦父,三嘆蟋蟀戒唐歌.歷看今古優遊者,皓首窮廬問幾何? 운당시에……이르고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의미로 주희(朱熹)의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주희가 젊은 시절에 일찍이 운당포(篔簹鋪)에서 쉬다가 그 벽간(壁間)에 "빛나는 영지는 일 년에 꽃이 세 번이나 피는데, 나는 유독 어찌하여 뜻만 있고 이루지 못하는고."라는 글이 씌어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무척 동감하였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뒤 우연히 그곳에 다시 들렀다가 지난 일을 감회하며 다음과 같은 절구 한 수를 지었다. "언뜻 지나는 인생 백 년 얼마나 되랴. 영지는 세 번 꽃 피워 무엇을 하려는고. 늘그막까지 금단을 이룬 소식이 없으니, 운당포 벽 위의 시가 거듭 한탄스럽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실솔이……탄식하네 《시경》 〈당풍(唐風) 실솔(蟋蟀〉의 소서(小序)에서는 "진(晉)나라 희공(僖公)을 풍자한 시(詩)이다. 검소함이 예(禮)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詩)를 지어 민망히 여기고 그 시기에 미처 예(禮)로써 스스로 즐거워하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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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백주택에게 보냄 정축년(1937) 與孫誠伯周澤 丁丑 지난번 현광(玄狂, 전일중(田鎰中))의 글을 적어 보내 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당연히 즉시 하겠다고 하셨는데 아직까지 답장이 없습니다. 많은 일에 구애받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감히 괴이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높은 재주와 뛰어난 문장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이 아쉽고, 또 바른 도리를 확고하게 보고서 홀로 서서 변치 않았는데 임종 때에는 동기(同氣)에게 바른 말을 하고 황천에 가서는 천고에 한을 품기까지 한 것이 슬픕니다.내 병은 사문의 변고와 가정의 불화가 빌미가 되니 이 때문에 낫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참으로 옳습니다. 다소의 유문(遺文)은 관계된 것이 적지 않아 전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허나 그 책임이 후사자(後死者)들에게 있으니 저를 책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감히 느긋할 수 있겠습니까? 선대의 뜻과 사업을 이어받는 방도의 경우는 두 아들에게 달려 있지만 나이가 아직 어리고 현재 풍조(風潮)에 나아가니 어찌 아버지의 고심(苦心)을 알 수 있겠습니까?그렇지만 당신이 모쪼록 차분한 겨를을 틈타 선부(先父)가 병중에 두 아들에게 남겼노라고 모부인(母夫人)이 당신께 전해준 유언과 훗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와 사문의 의리에 관계되었던 일은 후창에게 가서 물으라고 상세히 일러주어, 제게서 들은 말이 귀에 가득하고 마음에 새겨 아버지의 뜻을 실추시키는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向以錄送玄狂文字託之, 謂卽當然, 而訖未見報, 想以多務爲拘, 不敢奉怪. 但念惜其高才雄文, 不可復見: 又悲其正義確見, 孤立不變, 以至屬纊而正言於同氣, 歸泉而齎恨於千古也. 嘗言吾病爲斯文之變、家庭之乖所祟, 是以不療, 信然矣. 其多少遺文, 關係不少, 不可不傳, 而責在後死, 責我一般, 其敢虛徐? 至於繼述之道, 在其二子, 而年尙幼, 現進風潮中, 豈能知乃父苦心? 雖然, 高明須乘從容暇日, 詳喩以其母夫人所傳君子病中治命二子、他日事關父․祖․曾、斯文義理者, 往問後滄, 而聽之之言於鄙人者, 使之盈耳銘心, 不至失墜其父之義, 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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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자정 석모에게 보냄 무진년(1928) 與洪子正 錫模 戊辰 《논어(論語)》는 천고 이래로 제일가는 대성현의 책이요. 여러 경전 중에서도 제일가는 절실하고 요긴한 말씀입니다. 그 비근한 것을 말하자면 "거처공(居處恭), 집사경(執事敬), 시사명(視思明), 청사총(聽思聰)"84) 등의 유(類)인데 이는 초학자들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또 그 고원한 것을 말하자면 "일이관지(一以貫之), 소립탁이(所立卓爾)"85) 등의 유(類)로 성인의 능사(能事) 조차도 이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그 고원한 것과 그 비근한 것이 비록 다름이 있는듯하나, 실제로는 비근한 것에서 나아가 확충하여 고원한 데에 이를 따름입니다. 또한 일부 《논어》 가운데 일상적인 생활의 천근하고 쉬운 것에서부터 생각해 터득함이 있고, 행하여 효과가 있다면 성인을 배움에 있어서 이해가 절반은 넘을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길 "지금 사람은 《논어》를 읽는데, 《논어》를 읽지 않았을 때에 이런 사람이었는데, 읽고 난 후에도 또한 이런 사람이라면 사실은 읽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했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대가 《논어》를 숙독하기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언급하는 것입니다. 論語是天古來第一大聖之書, 郡經中第一切要之言.語其近: 如居處恭執事敬, 視思明德思聰之類, 初學可以下手.語其遠: 如一以貫之, 所立卓爾之類, 聖人能事, 不過如此.其遠其近, 雖若有異, 實則卽近而充之以至於遠.且從一部中日間動靜淺易去處, 思之有得.行之有效, 則於學聖也, 思過半矣.朱子曰今人讀論語, 未讀時是這樣人, 讀了後又這樣人, 其實未曾讀, 可不戒哉? 吾欲子熟讀論語, 故以是及之. 거처공(居處恭)……청사총(聽思聰) 《논어》 〈자로(子路)〉편에 나온다. 일이관지(一以貫之), 소립탁이(所立卓爾) 《논어》 〈자한(子罕)〉편과, 《논어》 이인(里仁)〉편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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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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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문학수에게 답함 答文 學洙 '증자(曾子)는 끝내 노둔함으로 얻었으니'91) 지나치게 민첩하고 날카로운 것은 바른 도(道)에서 멀다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대의 자질이 노둔하고 민첩하거나 날카롭지 않음을 좋아합니다. "터득하지 못하면 끝내 그만두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비록 어리석더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입니다. 또한 총명예지(聰明睿智)는 모두 경(敬)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니, 나는 그대가 그만두지 않아서 밝아지고, 경(敬)으로 말미암아 지혜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曾子竟以魯得之, 便儇皎厲, 去道遠.而吾愛君之質魯而不儇厲也.不得不措, 則雖愚必明, 聰明睿智.皆由敬出, 吾願君之不措而明, 由敬而智也. 증자는……얻었으니 《논어》 〈선진(先進)〉에 "증삼은 노둔한 편이다.[參也魯]"라는 공자의 평이 나오고, 《근사록》 〈위학(爲學)〉에 "증삼은 노둔하기 때문에 마침내 도를 얻었다.[參也竟以魯得之]"라는 정명도(程明道)의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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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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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5년 이용순(李龍淳) 금전 차용증 2 고문서-증빙류-차용증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敎先 李龍淳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敎先 李龍淳 李敎先 (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5년 2월 21일에 이용순이 이교선에게 차용한 금전에 대한 증서 1915년 2월 21일에 이용순이 이교선에게 차용한 금전에 대한 증서이다. 이 증서는 금액과 상환기한 및 방법 등을 명기하여 차용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여 썼다. 금액은 20원이다. 월 이자는 3할로 정하였다. 먼저 이 금전을 차용한 것이 확실함을 확인하고, 변제 기한은 1915년 4월 30일로 약정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서로 걸지 않기로 하고, 본 약정에 따라 본 이자와 함께 기한 내에 지체 없이 갚기로 하면서 이 금전차용증 1장을 작성하여 교부한다는 것이다. 이 차용증에 대해 증주(證主)는 이교선이며, 차용인은 이용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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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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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5년 이상근(李相根) 화조(禾租) 보관증 고문서-증빙류-증서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日 李相根 李龍淳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日 李相根 李龍淳 李相根 (印), 李大淳 (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5년 2월 20일에 이상근이 이용순에게 발급한 화조(禾租) 보관증 1915년 2월 20일에 이상근이 이용순에게 발급한 화조(禾租) 보관증이다. 보관하는 화조의 수량과 지급규정 및 당사자 등이 기재된 문서이다. 보관하는 화조는 2석2조이며 곡물의 종류는 대두(大斗)이다. 화조는 소작인 등의 조세로 받은 곡물을 말한다. 이 화조를 보관하는 사실이 확실함을 다짐하고, 어느 때든지 이 증서를 휴대하고서 도착하는 즉시 지체 하지 않고서 내주기로 약정하였다. 보관주는 김상근이며, 아보인은 이대순이다. 아보인은 거간 혹은 중개인을 가리킨다. 보관을 위탁한 사람은 이용순이다. 보관주와 아보인은 이름 아래에 날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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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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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1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九月念三日 再從姪 李鐺 李敎成 辛丑九月念三日 李鐺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025_001 1921년 9월 6일에 숙부 이교성(李敎成)이 좋은 시세에 계책도 없이 손이 묶여 낭패라며 좋은 도리가 있으면 답장하라는 내용으로 재종질(再從姪)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보내준 편지를 받고 바삐 열어 읽어보니 얼굴을 본 듯하여 나그네살이에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금년에 제일 좋은 일이라고 하였다. 집안의 안부를 묻고 백출산(白朮山)에 관계된 것으로 목포(木浦)를 오고간 일, 온 편지를 보고 금년 인천 객일 뿐이니 치패(致敗)되어 좋은 시세(時勢)에 끝내 하나의 계책도 없이 손이 묶여 당초에 말과는 달리 낭패되었다는 내용, 자신과 자리를 같이 한다면 그 자세한 것이 어떠한지를 논의할 것이나 수삼백 리에 떨어져 있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여 마음이 매우 답답하고 괴롭다는 내용이 있고, 만약 올라가서 오종(吾從)에게 좋은 도리(道理)가 있으면 즉시 이정호(李禎鎬)에게 답장을 써달라고 하였다. 그믐 안에는 집에 있겠다고 하고 다음 달에는 어느 곳으로 가는지 한 번 만나 만에 하나라도 토론하도록 한 번 내려오라고 하였다. 한 몸의 일이 이와 같아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고, 노친이 직접 삼세독자와 귀가할 생각이 열에 하나 있을 뿐이라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그믐날 안에 올라가는 것이 마음에 몹시도 간절하다면서 즉시 회답해주고, 마땅히 올라가서 20일은 객중에 있는 사람이라 차비를 마련한다면 즉시 올라갈 생각이나 그럴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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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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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둘째 아이 형태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 告次兒炯泰 【乙丑十二月十日】 어머니의 뜻을 받들고 형제들과 우애하며, 부지런히 주경야독하여 집안의 명성을 이어가거라. 奉慈志, 友弟兄, 勤耕讀, 繼家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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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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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세째 아이 형관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 告參兒炯觀 【乙丑十二月十日】 성현의 학문에 힘써 네 아비의 뜻을 마쳐야 할 것이다. 勉聖賢學, 卒乃父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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