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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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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종중(宗中) 수입금액(收入金額) 장부(帳簿)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시천리 등 소재 전답에 대한 종중의 수입금액 장부 시천리 등 소재 전답에 대한 종중의 수입금액 장부이다. 날짜와 작성자 등은 모두 미상이다. 수입금액을 열거하였는데, 종중 전답의 출의금(出義金)과 식본금(殖本金)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전답 소재처는 시천과 가천, 신리이며, 총액은 출의금이 816냥5전, 식본금이 469냥8전5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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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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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3년 이대순 계산서(計算書) 고문서-증빙류-계산서 大正十二年 李大淳 谷城寶城門中 大正十二年 李大淳 谷城寶城門中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보존이전등록세 등 사용처에 대한 이대순의 계산서 1923년 음력 10월 11일에 이대순이 곡성·보성 문중에 보낸 계산서이다. 이대순 개인의 문서용지에 쓴 것이다. 일금 97원에 대한 계산 내역서이다. 금액별 사용내역을 적었다. 사용내역은 보존이전등록세, 통신료, 식비 등이며, 그 아래에 겹줄로 세부내역을 적었다. 끝에는 사용액 합계와 차인잔금(差引殘金)을 적었다. 비룡리(飛龍里) 이전(移轉) 사건(事件)이라는 표제문만 쓴 낱장 문서가 있는데, 사용 용지가 같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계산서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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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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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유우일 만종에게 보냄 경오년(1930) 與劉于一 萬鍾 庚午 그대의 자질은 순실(淳實)하고 성근(誠勤)하며 독서를 좋아하고 묻기를 잘하니 대체적으로 자질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맹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선인(善人)이라 이른다."라고 했는데, 주자는 이를 자품(資品)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사람에게 좋은 자질이 있다는 것은 어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러하지만 주자는 또 말하길 "좋은 자질의 사람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지극한 도리에 이르렀다는 말은 듣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자질은 이처럼 믿을만한 것이 못되니 족히 다행으로 여길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과 불행의 사이에 장차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또 예로부터 아름다운 자질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끝내 요순(堯舜), 주공(周公), 공자(孔子)의 경지에 들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학문의 큰 방도입니다. 학자는 그 기질을 변화시키기를 추구하지만 능히 변화된 자는 드뭅니다. 비록 변화시키되 타고난 기분(氣分)의 찌꺼기를 없애지 못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요? 그대는 돌아가서 생각해 터득하여 나에게도 알려주어 서로 교학 상장의 자질로 삼기를 청합니다. 君之資質, 淳實而誠勤, 好讀而能問, 蓋質美者也.孟子曰可欲之謂善, 朱子釋以資稟好.人之有美質, 豈非幸哉? 雖然, 朱子又曰美質易得, 至道難聞.美質之不可恃如此, 則無足以爲幸.幸與不幸之間, 將何以處之? 且從古以來, 美質不爲不多, 終不入堯舜周孔之域者, 其故何歟? 變化氣質, 爲學大方.學者求燮其質, 而能變者鮮.雖變之而不能無氣分査滓者, 又何故歟? 請歸思得之而喩我, 作相長之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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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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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박종기에게 보냄 與朴 鍾基 초연히 고명(高明)한 경지를 멀리 바라보고, 탁연히 통렬하게 범루(凡陋)한 자태를 끊는다고 하였으니, 한갓 만권의 책을 읽는 것이 요긴한 말 한마디만 못한 것입니다. 작은 행실을 자긍하지 못한다면, 어찌 구인(九仞 높은)의 성공을81) 바랄 수 있겠습니까? 超然乎遠覽高明之域, 卓然乎痛絶凡陋之態, 徒讀萬卷.不如一語喫緊, 不矜細行, 豈望九仞成功? 작은……성공을 "작은 행실에 조심하지 않으면 끝내 큰 덕에 누를 끼쳐서, 아홉 길 높이의 산을 만드는 데, 공이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서 무너진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하였다. 《서경(書經)》 〈여오(旅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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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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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형관에게 보냄 을묘년(1915) 寄炯觀 乙卯 지금 일에 대해서도 홀로 깨끗하였고162) 지난번의 네 의견도 또한 나와 합치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일전에 너의 계부(季父) 말로는 종중(宗中)의 중론이 이르기를 "형관(炯觀)이가 결코 법도 없이 족보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고 하였다니, 이 얼마나 중망(重望)을 받는 말이냐. 사람이 이를 얻기도 또한 쉽지 않다. 결코 부화뇌동 남을 따라하여 이 논의를 꺼낸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말거라. 對今事而獨淸, 向見汝意, 亦與吾合, 何幸如之.向日, 汝季父言, 宗中衆論謂:"觀也決非無法而譜者.", 此爲何等重望語.人而得此, 亦不易易.切勿詭隨於人, 使爲此論者, 歸於失望也. 홀로 깨끗하였고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모두 탁한데 나 홀로 맑고, 사람들 모두 취했는데 나만 정신이 또렷하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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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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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만종서사 즉흥시 萬宗書社卽事 초강이 둘러 푸르고 두산은 높으니 楚江縈綠斗山峨백아와 종자기도 이곳을 들렀으려나223) 倘有牙期此裏過누각은 하늘로 솟고 추위에 눈이 올 듯 樓閣聳霄寒欲雪뜰 그늘은 물 같아 비취 나부껴 물결치는 듯 園陰如水翠飜波곤궁한 처지에서 생계를 어찌 꼭 물으랴 窮途活計何須問도처에 맑은 인연 또한 매우 많다오 到處淸緣亦已多저녁 무렵 옷깃 헤치니 바람 솔솔 불어 向晩披襟風細細새 시로 문득 꾀꼬리 노래에 화답하네 新詩輒動和鶯歌 楚江縈綠斗山峨, 倘有牙期此裏過.樓閣聳霄寒欲雪, 園陰如水翠飜波.窮途活計何須問, 到處淸緣亦己多.向晩披襟風細細, 新詩輒動和鶯歌. 백아와 …… 들렸으려나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그의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가 "좋구나. 아아(峨峨)하여 태산(泰山)과 같도다." 하고,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좋구나. 양양(洋洋)하여 강하(江河)와 같도다."라고 평했다는 고사가 있는데, 초강과 두산을 고산(高山)과 유수(流水)에 빗대어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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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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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5년 이종남(李鍾南) 금전 보관증 고문서-증빙류-증서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鍾南 李龍淳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鍾南 李龍淳 李鍾南 (印), 李大淳 (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5년 2월 21일에 이종남이 이용순에게 발급한 금전 보관증 1915년 2월 21일에 이종남이 이용순에게 발급한 금전 보관증이다. 보관하는 금전의 액수와 지급규정 및 당사자 등이 기재된 문서이다. 보관 금액은 2원이다. 이 금액은 정정당당하게 보관하는 것인 바, 이 증서를 휴대하고서 도착하는 즉시 내주기로 약정하였다. 보관주는 이종남이며, 입회인은 이대순이다. 보관을 위탁한 사람은 이용순이다. 보관주와 입회인은 이름 아래에 날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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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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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5년 이용순(李龍淳) 금전 차용증 1 고문서-증빙류-차용증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敎英 李龍淳 大正四年舊乙卯二月二十一日 李敎英 李龍淳 李敎英 (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5년 2월 21일에 이용순이 이교영에게 차용한 금전에 대한 증서 1915년 2월 21일에 이용순이 이교영에게 차용한 금전에 대한 증서이다. 이 증서는 금액과 상환기한 및 방법 등을 명기하여 차용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여 썼다. 금액은 3원50전이다. 먼저 이 금전을 차용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변제 기한은 1915년 10월 15일로 약정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서로 걸지 않기로 하고, 연 이자는 3할로 하였다. 본 약정에 따라 본 이자와 함께 기한 내에 지체 없이 갚기로 하고 이 금전차용증 1장을 작성하여 교부한다는 것이다. 이 차용증에 대해 증주(證主)는 이교영이며, 차용인은 이용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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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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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7년 이의순(李毅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巳二月九日 李毅淳 丁巳二月九日 李毅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60_001 1917년 2월 9일에 족손 이의순이 족조인 모에게 산소의 일을 할 목수의 식주를 정하는 일에 대하여 논의한 간찰 1917년 2월 9일에 족손 이의순(李毅淳)이 족조인 모에게 편지를 받자마자 보낸 답장이다. 묘(墓)의 일이 급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목수의 식주(食主)를 주막에서 먹는 것으로 정했다고 하는 말이 맞는지 묻고, 그 사이 이해(利害)를 따져서 견주어 보았기 때문에 저 사람에게 실지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잘 말했다. 산에서 급히 다시 식주를 정하면 만약 좋지 않아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급하게 거행하더라도 논책(論責)은 면할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하여 어찌 하나의 규각(圭角)이라도 찾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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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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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미륵기 【병자년(1936)】 彌勒記 【丙子】 미륵(彌勒)은 석불(石佛)의 별명이다. 석씨(釋氏)는 허무를 숭상하였으니, 그의 말 중에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게 된다면 곧 여래(如來)를 보게 된다."81)라는 말이 있다. 형상을 형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대체로 이와 같음에도 또 불상(佛像)과 사탑(寺塔)을 많이 만들어 먼 훗날까지 오래도록 전할 계책으로 삼았으니, 형상을 형상으로 여기는 것이 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허무를 숭상한다면 이런 이치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한즉 그 숭상하는 바가 실제적인 체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사물의 형상에 얽매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마음과 행적이 서로 어긋남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정읍군(井邑郡) 망제산(望帝山) 내 대암(臺巖) 마을에 손뼘으로 재었을 때에 길이가 19뼘이고, 둘레가 12뼘이 되는 석불 한 구가 엄숙하게 나무 숲 사이에 세워져 있는데, 돌담으로 둘러져 있고 앞에 등대석(燈臺石)이 있으며, 거주하는 사람이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여 남녀가 기도할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대체로 어느 시대에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세상에 전해지기로는 이희맹(李希孟) 문안공(文安公)이 이곳에 기도하여 높은 벼슬을 얻고서 석관(石冠)을 더하였다고 한다. 이공은 국초(國初)와 매우 멀지 않은 사람이니, 고려 때부터 이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당시에는 불교를 숭상하여 사찰(寺刹)이 민간에 두루 퍼져 있었으니, 이곳이 스님들의 거주지였고, 이 불상이 스님들이 만든 것임을 의심할 것이 없다.아, 석씨의 학문은 진실로 망령되거니와 사물에 가탁하여 오래도록 전하는 것도 또한 비루하다. 그러나 이따금 불상이나 사탑, 옛 유적으로 인하여 비록 금지되고 파멸되는 때를 만났을지라도 오히려 부흥할 수 있었으니, 나는 저 이른바 허무를 숭상한다는 것이 끝내 있음을 숭상하는 데에서 벗어날 수 없고,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게 된다는 말이 한갓 큰 소리를 쳐서 사람을 속인 것임을 알겠다. 彌勒者, 石佛之別名也.釋氏尙虛無, 其言有曰: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不相其相也, 蓋若此矣.而又多作佛像寺塔, 爲久遠計, 則相其相又無加乎此者, 何也? 無乃尙無之無是理也, 則其所尙者, 未見實得而反爲物相所累. 故自不免心跡之相戾也歟.井邑郡 望帝山中臺巖之里有石佛一, 度以指尺, 長爲十九, 圍爲十二者, 儼然立樹林間, 繞以石垣, 前有燈臺石, 居人尙掃除淸潔, 以備男女祈禱.蓋不知何代何人所造, 世傳李文安公 希孟, 禱此得顯官, 爲作石冠而加之.李公距國初不甚遠, 則想自麗以前已有.是時崇佛, 寺刹遍民間.此地爲僧居, 此佛爲僧造也無疑矣.噫, 釋氏之學固妄矣, 託物傳久亦陋矣.然往往因佛塔古跡, 雖當禁止破滅之時, 猶足以復興焉.吾知其彼所謂尙無者, 竟脫不得崇有, 而諸相非相卽見如來之云, 徒爲大言而欺人也. 만약 …… 된다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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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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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 1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大正)12.5.7 (大正)12.5.7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보성(寶城) 소인이 날인된 60원 92전의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 1923년 보성(寶城) 소인이 날인된 60원 92전의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이다. 이를 우편으로 수령자에게 보내면 지정된 우체국에 가서 현금으로 교환하는 우편환(郵便換)이다. 한문과 일본어 혼용체이다. 기호번호 난에는 번호가 찍혀 있다. 뒷면에는 위체료 및 기타 요금에 관한 사항이 인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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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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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 2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大正)12.2.13 (大正)12.2.13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보성(寶城) 소인이 날인된 20원의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 1923년 보성(寶城) 소인이 날인된 20원의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이다. 이를 우편으로 수령자에게 보내면 지정된 우체국에 가서 현금으로 교환하는 우편환(郵便換)이다. 한문과 일본어 혼용체이다. 기호번호 난에는 번호가 찍혀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요금이 기재되어 있다. 뒷면에는 위체료 및 기타 요금에 관한 사항이 인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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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8 卷之二十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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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천광엽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宋士千光燁 乙丑 옛사람은 "저 사람이 나를 한번 스승으로 삼으면, 그 평생의 성패와 영욕을 모두 내가 책임진다"28)고 하였습니다. 저는 "다만 스승이 제자를 이와 같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식을 남에게 맡긴 경우에도 그 평생의 성패와 영욕을 역시 마땅히 그 자식으로 하여금 스승과 함께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님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지난번에 형님의 아들이 저를 완산(完山)에서 만났을 때, 어린 나이에 먼 길을 오느라 병을 앓은 나머지 감기까지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였을 것인데, 형님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아들이 홀로 떠나게 맡겨두고는 "스승에게 달려가는 것은 어려운 의리이고,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러한 아버지에 그러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형님의 부자가 이와 같이 후하게 성패와 영욕을 나와 함께 하였으니, 내가 원래 성패와 영욕을 형의 아들과 같이 하려던 마음을 어찌 감히 더욱 힘쓰지 않겠습니까? 이에 저의 마음을 열어 보여드리니 살펴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昔人云: "彼一師我, 其平生成敗榮辱, 俱我任之." 余謂: "非但師之視弟如此, 託子於人者, 其平生成敗榮辱, 亦當令其子共之." 若兄者 可謂其人也.向日令子見余完山也, 穉齡遠程, 病餘觸寒. 人不堪其憂, 兄乃少不動念, 任其隻行曰: "赴師難義也, 死生有命." 乃知有是父有是子也. 既荷兄家父子之同我成敗榮辱, 若是其厚, 則我之元來同令子成敗榮辱之心, 尢豈敢不勉乎? 茲以披赤, 幸照亮. 옛사람은……책임진다 이 구절은 김택술이 《간재집(艮齋集)前篇》 권4 〈시김동훈(示金東勳)〉에 나와 있는 글을 보고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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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중에게 답합 정해년(1947) 答金箕重 ○丁亥 편지에서 언급한 계유년에 의리를 처결한 것은 평소 함양한 것이 바르다는 점으로 보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고, 자결할 때 지은 모든 문장이 또 모두 굳세고 빛나며 슬프고 씩씩하니 백세의 지사들을 경계할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무후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사람의 마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 역시 "청강(晴岡, 金晁)이 자결했을 때 지은 모든 문장을 읽고 호연지기를 떨치지 않는 자는 사람의 마음이 없다"라 하겠습니다. 示及癸酉處義, 以平日所養之正, 宜其如此, 而自訣諸作, 又皆毅烈悲壯, 可以警發百世志士. 昔人云: "讀武侯出師表而不下淚者, 無人心也." 吾亦曰: "讀晴岡自訣諸作, 而不奮浩氣者, 無人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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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설 【1939년】 百拙說 【己卯】 마음은 두 갈래로 쓸 수 없고, 재능은 겸하여 이룰 수 없다. 이 때문에 세상 물정에 능숙한 자는 마음공부에 졸렬하고, 이익을 꾀하는데 능숙한 자는 이(理)를 밝히는데 졸렬하다. 세상의 권세와 이익은 백 가지 일 뿐만이 아니고 내 심신의 이치는 다만 하나인데, 돌아보면 사람들은 모두 많은 것에 능숙하고 적은 것에 졸렬하니 또한 이상하다.그러나 오직 최군 여중(汝重)136)은 그렇지 않고 백 가지에 졸렬하고 한 가지에 능숙하려고 하여,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곳을 '백졸(百拙)'로 편액(扁額)하였으니, 마음을 쓰는 것과 재능을 이루는 것에 대해 경중(輕重)해야 할 것를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게다가 백 가지에 졸렬한 자는 비록 당장에는 부족할지라도 합산하면 항상 여유가 있으니, 무엇 때문인가? 한 가지에 능숙한 재능이 있으면 간결함으로 번다함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백졸은 거의 여기에 가까우니, 나는 백졸이 졸렬하지 않음을 알겠다. 心不可兩用, 才不能兼成. 是故巧於世情者, 拙於心功, 巧於謀利者 拙於明理. 世間勢利不啻百途, 吾身心理只是一途, 顧人皆巧其多, 而拙其少亦可異也. 惟崔君汝重則不然, 欲其拙於百而巧於一, 扁其居以百拙, 其於用心成才, 可謂知所輕重矣. 且夫拙於百者, 雖不足於目前, 而統算則常裕如, 何也? 有一巧之能, 以簡制煩爾. 今百拙庶幾於斯, 吾知其百拙不拙. 여중(汝重) 최태일(崔泰鎰, 1899~?)의 자이다. 호는 백졸(百拙), 본관은 전주이고, 간재 전우의 제자이다. 저서에 《백졸사고(百拙私稿)》 5권 3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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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죽(筇竹)의 명207) 【경오년(1930)】 笻銘 【庚午】 계찰(季札)은 주나라를 가 보았고208) 季札適周,진량(陳良)은 북쪽에 가 배웠는데,209) 陳良學北,너는 금강산을 유람하며 爾到金剛,기암절벽을 모두 밟았지. 歷盡奇絶.산지의 드문 특산품이라서만 豈獨本産,귀한 물건이라 일컬음 아니고, 乃稱物貴,공효는 천리 여로에 보이고 功在千里,광채가 아홉 마디에 더해가며, 光增九節,흙 속 등걸을 펴고 구부려 矯揉土藤,기념의 글자 지져 새겼으니, 紀念之烙.누구일까 이 물건 얻은 이는 誰歟得此,새록새록 마음에 들어 기뻐하니, 沾沾自悅,아끼는 건 너의 천연의 모습이니 愛爾天形,겉 이름은 없는데 꽉 찬 속 알맹이. 無名有實. 季札適周, 陳良學北, 爾到金剛, 歷盡奇絶, 豈獨本産, 乃稱物貴, 功在千里, 光增九節, 矯揉土藤, 紀念之烙, 誰歟得此, 沾沾自悅, 愛爾天形, 無名有實。 공죽(筇竹)의 명 공죽장(筇竹杖) 즉, 공죽으로 만든 지팡이를 노래한 명문이다. 공죽은 남쪽 지방의 대나무의 일종인데, 마디가 높고 속이 꽉 차서 지팡이를 만드는 좋은 재료로 사용되었다. 계찰……가 보고 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周)나라의 예악을 참관하였다.《春秋左傳.襄公29》 진량……배웠지 《맹자》 〈등문공(滕文公)〉편에, 남방인 초나라의 진량(陳良)이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도를 배우러 북쪽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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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문 흥술의 자사 【무진년(1928)】 金士聞【興述】字辭 【戊辰】 백대에 우뚝히 서 계신 이, 성현이 아니던가? 군자의 덕의 풍화, 그러하지 않던가? 그 풍화를 듣고 일어나는 자, 선비가 아니던가? 사문(士聞)으로 자를 삼아 족제 김흥술(金興述)의 덕을 드러내는 것 또한 이런 까닭이 아니겠는가? 사문은 두 귀를 기울이되 다른 소리는 듣지말고, 오직 수사(洙泗)293)와 낙민(洛閩)294)의 풍화만을 쫑긋하여 듣고 기쁘게 받아들여서, 그 즐거움에 취하여 깨어나지 마시기를 나는 바라노라. 어쩌다 우렁찬 광풍이 귀밑에 닿아서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고 밝게 들을 것을 어기어 어두운 허물을 지을 것이 나는 아직 걱정되누나. 들으시라, 듣기에 힘쓰시라! 奮乎百世之上者, 非聖賢乎? 君子之德風, 不其然乎? 聞其風而興者, 非士乎? 士聞之爲族弟興述表德者, 其以此乎? 吾願士聞兩耳側時無他聲, 但有風自洙泗洛閩來者, 聳然而聽, 翕然而受, 怡然醉而勿醒。 還恐狂風之一到耳根轟轟, 聞不當聞, 而違思聰而咎不明也。 聞乎, 其勉哉! 수사(洙泗) 중국 산동성(山東省)을 흐르는 두 강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의 이름인데, 이곳에서 공자와 맹자가 일으킨 유학을 가리켜 쓰인다. 낙민(洛閩) 북송시대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程頤)와 남송시대 민(閩 : 福建省)의 주희(朱熹)가 일으킨 성리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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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안산 소재 산소 사초비용 장부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丙辰十月二十七日 丙辰十月二十七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10월 27일에 안산 소재 산소 위아래의 묘소 사초에 대한 비용 분배 내역을 기록한 장부 1916년 10월 27일에 안산 소재 산소 위아래의 묘소 사초에 대한 비용 분배 내역을 기록한 장부이다. 사초 역정(役丁)의 고가(雇價)와 제수(祭需), 행원자비(行員資費), 위답 증명비, 행원 유연비(留連費) 등 도합 250냥에 대한 세목이 기록되고, 행원의 이름이 있다. 그 다음에는 가천과 석동 등 각지에 사는 종원의 명단이 기재되고, 1인당 분배액수와 수전유사(收錢有司)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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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사성훈에게 보냄 경신년(1920) 與田思誠壎○ 庚申 인도공의소(人道公議所)의 취지서(趣旨書) 중에 제 이름이 기재된 것은 좌하의 엄호로부터 나왔다 합니다. 저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은 이미 이 일에 대해 영향을 줄만 하지 않으니, 좌하가 사람을 잘못 추천하여 공의에 누를 끼친 것은 진실로 사람을 똑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고, 여러 사람이 당사자를 승낙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을 억지로 기재해 넣은 것은 아마도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궁핍하게 살면서 농사일을 하여 골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떻게 멀리 여러 사람들의 뒤를 좇아서 미력한 힘을 바치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형세상 미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그 이름만 넣고 그 일을 친히 하지 않더라도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면 명실이 부합하지 않으니 저는 부끄러운 짓이라 생각합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좌하께서 여러 사람들에게 고하여 그 단체의 문서를 발간할 때 제 이름을 삭제하여 천한 사람의 분수를 편안히 해주십시오. 그것이 시종 저를 사랑하는 은혜일 것입니다. 人道公議趣旨書中, 賤名見錄出, 自座下所保云. 鄙之無似, 既不足爲輕重於此事, 則座下之謬薦人而累公議, 固失藻鑑之明, 諸公之不承諾於當人, 而冒錄其名, 恐亦未爲妥當. 且澤述竆居服田, 滾汩自遣, 何能遠追諸公之後, 庸效微力? 此又勢所不及也. 如曰存其名而不親其務, 亦無傷云爾, 則名實之不副, 竊有恥焉. 切乞座下爲告諸公, 凡干社中文字, 刪出賤名, 以安賤分, 始終相愛之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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