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기 【병자년(1936)】 彌勒記 【丙子】 미륵(彌勒)은 석불(石佛)의 별명이다. 석씨(釋氏)는 허무를 숭상하였으니, 그의 말 중에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게 된다면 곧 여래(如來)를 보게 된다."81)라는 말이 있다. 형상을 형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대체로 이와 같음에도 또 불상(佛像)과 사탑(寺塔)을 많이 만들어 먼 훗날까지 오래도록 전할 계책으로 삼았으니, 형상을 형상으로 여기는 것이 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허무를 숭상한다면 이런 이치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한즉 그 숭상하는 바가 실제적인 체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사물의 형상에 얽매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마음과 행적이 서로 어긋남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정읍군(井邑郡) 망제산(望帝山) 내 대암(臺巖) 마을에 손뼘으로 재었을 때에 길이가 19뼘이고, 둘레가 12뼘이 되는 석불 한 구가 엄숙하게 나무 숲 사이에 세워져 있는데, 돌담으로 둘러져 있고 앞에 등대석(燈臺石)이 있으며, 거주하는 사람이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여 남녀가 기도할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대체로 어느 시대에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세상에 전해지기로는 이희맹(李希孟) 문안공(文安公)이 이곳에 기도하여 높은 벼슬을 얻고서 석관(石冠)을 더하였다고 한다. 이공은 국초(國初)와 매우 멀지 않은 사람이니, 고려 때부터 이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당시에는 불교를 숭상하여 사찰(寺刹)이 민간에 두루 퍼져 있었으니, 이곳이 스님들의 거주지였고, 이 불상이 스님들이 만든 것임을 의심할 것이 없다.아, 석씨의 학문은 진실로 망령되거니와 사물에 가탁하여 오래도록 전하는 것도 또한 비루하다. 그러나 이따금 불상이나 사탑, 옛 유적으로 인하여 비록 금지되고 파멸되는 때를 만났을지라도 오히려 부흥할 수 있었으니, 나는 저 이른바 허무를 숭상한다는 것이 끝내 있음을 숭상하는 데에서 벗어날 수 없고,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게 된다는 말이 한갓 큰 소리를 쳐서 사람을 속인 것임을 알겠다. 彌勒者, 石佛之別名也.釋氏尙虛無, 其言有曰: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不相其相也, 蓋若此矣.而又多作佛像寺塔, 爲久遠計, 則相其相又無加乎此者, 何也? 無乃尙無之無是理也, 則其所尙者, 未見實得而反爲物相所累. 故自不免心跡之相戾也歟.井邑郡 望帝山中臺巖之里有石佛一, 度以指尺, 長爲十九, 圍爲十二者, 儼然立樹林間, 繞以石垣, 前有燈臺石, 居人尙掃除淸潔, 以備男女祈禱.蓋不知何代何人所造, 世傳李文安公 希孟, 禱此得顯官, 爲作石冠而加之.李公距國初不甚遠, 則想自麗以前已有.是時崇佛, 寺刹遍民間.此地爲僧居, 此佛爲僧造也無疑矣.噫, 釋氏之學固妄矣, 託物傳久亦陋矣.然往往因佛塔古跡, 雖當禁止破滅之時, 猶足以復興焉.吾知其彼所謂尙無者, 竟脫不得崇有, 而諸相非相卽見如來之云, 徒爲大言而欺人也. 만약 …… 된다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