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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보 해선 와 익부 해붕 및 성무가 다시 와서 글을 읽는 것에 사례하며 謝吳允寶【海璿】翼夫【海鵬】及性武復來讀書 적막한 초당 말끔하게 쓸고서 草堂寂寂掃如淸높은 선비 문에 이르니 생기가 곱절이라 高躅臨門倍色生만남이 어긋나고 더디다 섣달 되어 깜짝 놀라고 逢著差遲驚歲暮얘기를 다 못했는데 어느덧 등불 밝았네 言談未盡到燈明이름 있는 강산을 어찌 잊을까 名區泉石何相諼티끌 가득한 세상 길 신중하여 나가지 마시게 世路風塵愼莫行감사하게도 예전 교유가 지금 다시 이어지니 多謝舊遊今復續같이 공부했던 삼여57)의 정을 이기지 못하겠네 三餘同榻不勝情 草堂寂寂掃如淸,高躅臨門倍色生.逢著差遲驚歲暮,言談未盡到燈明.名區泉石何相諼?世路風塵愼莫行.多謝舊遊今復續,三餘同榻不勝情. 삼여 글 읽기에 좋은 세 가지 여가(餘暇)로, 한 해의 나머지인 겨울, 하루의 나머지인 밤, 때〔時〕의 나머지인 흐리고 비오는 시간을 말한다. 《三國志 卷63 魏書 王肅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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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2 卷之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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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귀재기 【무인년(1938)】 夜歸齋記 【戊寅】 동생(董生) 소남(召南)이 동백산(桐柏山) 속에 은거할 때에 아침에는 나가 밭을 갈고, 저녁에는 돌아와 독서를 하니, 창려(昌黎) 한자(韓子 한유(韓愈))가 그 일을 노래하여 칭찬하고 그와 짝할 이가 없다고 탄식하였다.75) 그런데 1200여 년이 지난 뒤에 수산(壽山) 오병수(吳秉壽)가 죽산(竹山) 아래 벽송동(碧松洞)에 은거할 때에 밭을 갈고 또 독서하는 것이 한결같이 동생이 했던 것과 같았으니, 바로 그와 짝하였고, 이른바 '야귀재(夜歸齋)'라는 곳은 그가 독서했던 곳이다. 그래서 그의 벗인 나 김택술이 그를 위해 그 사실을 서재의 벽에 기록하여 말하였다."대저 사람이 밭을 갈지 않으면 굶게 되고, 학문을 학지 않으면 어리석게 되니, 어느 한 쪽도 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넓은 천하에 어찌 양쪽 모두를 겸하여 다스린 자가 적겠는가. 그런데 한자(韓子)가 유독 동자(董子)만을 일컬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의 품행과 도의, 재주와 기량이 관작과 봉록을 누릴 만하였음에도 밭을 일구는 속에서 곤궁하게 지냈기 때문에 탄식하고 찬미한 것이다.지금 수산의 가정에서의 행실이 순박하고 도타운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거니와 재주와 기량에 대해서는 동생과 견주어서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서경》에 '효도하고 우애하여 정사에 베푼다.'라고 하였고, 또 내가 일찍이 그가 집에 거처하는 방법을 보고 그 다스림이 관직에 이행시킬 만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동생과 수산이 모두 등용되지 못하였으니, 공적을 이룸에 대해서는 굳이 단정해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오직 논할 것이 있다면 동생은 뜻을 잃는 것에 대한 울적한 마음을 면치 못하여 연(燕)과 조(趙) 지방에 갔지만76), 수산은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밭에서 일하며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가운데 털끝만큼도 기미를 드러내는 기색이 없었으니, 이것으로 말한다면 어찌 다만 그와 짝하는 데에 그칠 뿐이겠는가. 비록 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한자의 붓을 얻어 이름이 천 년의 세월동안 드러났지만, 수산은 나의 졸렬한 글을 만나 썩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한스러울 뿐이다.비록 그렇지만 한 가지 말할 것이 있으니, 한자가 동생을 찬미할 때에 단지 '책을 읽는다.'라고 말하지 않고, 반드시 '옛사람의 책을 읽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옛사람이란 누구인가? 바로 그가 평소에 일컬은 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ㆍ주공(周孔)이 이들이고, 그 책은 모두 천명(天命)의 정미(精微)한 깊은 뜻과 인사(人事)ㆍ윤리(倫理)의 떳떳한 도, 격물ㆍ치지ㆍ성의ㆍ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의 덕, 수신ㆍ제가ㆍ치국ㆍ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효험을 밝히기 위한 것들이었으니, 그 귀결을 요약하면 또 모두 근본으로부터 말단에 이르렀고, 내면을 중시하고 외면을 경시하였으되 동생의 학문은 이러한 옛사람의 책에서 힘을 얻는 것이 깊지 못하였다.수산이 만약 맑고 향기로운 서재의 창문 앞과 긴 밤을 밝혀주는 등불 아래에서 조용히 앉아 낭랑하게 외고 은미하게 읊조리며 깊이 사색하고 묵묵히 궁구하여 옛사람의 책에서 꺼림칙한 느낌이 없이 환하게 이치에 맞아 실제적인 견해가 되게 하고, 흔연하게 도를 터득하여 실제적인 소유가 되게 하며, 그것을 몸에 행하여 실제적인 덕이 되게 하고, 일에 조처하여 실제적인 업적이 되게 하여 순수하게 그것을 온전히 하고 우뚝하게 그것을 높게 한다면 실제를 보존한 바에 이름이 어찌 드러나지 않겠는가. 장차 오늘날과 훗날의 군자 중에 실제를 숭상하는 자가 일어난다면 공공연하게 수산의 이름을 칭송하며 길이 할 말이 있게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에 나의 글이 수산으로 인해 전해지는 것도 또한 동생이 한자로 인해 이름이 전해진 것과 같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구구한 내가 바라는 것이다." 昔有董生 召南, 隱居桐柏山中, 朝出耕田, 夜歸讀書, 昌黎 韓子歌其事贊之, 而歎其無與儔矣.後千二百年餘而得吳壽山 秉壽, 隱居竹山之下碧松之洞, 耕且讀焉, 一如董生之爲, 則乃其儔也, 而所謂夜歸齋者, 其讀書所也.友人金澤述爲之記其事於齋壁曰: "夫人不耕則餒; 不學則昏.旣不可以偏廢, 則以天下之廣, 豈其少兼治者? 而韓子獨稱董子, 何哉? 以其行義才器, 可以享爵祿而困于耕, 故嗟歎而美之也.今壽山之內行淳篤, 固人無異辭, 至於才器, 未知比董生何如? 而《書》云: '孝友, 施於有政.' 且吾嘗見其居家之理, 而知其治可移於官矣.然彼此旣皆不見用, 而成績則有不必斷論者.惟是董生, 不免鬱鬱於失志, 至有燕、趙之行; 壽山則不然, 初無毫末幾微之色於服田食力之中.由是言之, 豈特其儔而已? 雖謂之過焉, 可也.然而董生得韓子之筆, 而名著千秋; 壽山遇余下劣之文, 而不能以不朽, 是可恨也.雖然, 有一焉.韓子之贊董生也, 不但曰: '讀書.' 而必曰: '讀古人書.' 古人者何? 卽其平日所稱堯、舜、禹、湯、文、武、周孔是也.其書也, 皆所以明夫天命精微之蘊、人事倫理之常、格致誠正之德、修齊治平之效.要其歸, 則又皆自本而至末, 重內而輕外, 而董生之學, 則不深得力於此故爾.壽山如能靜坐於淸齋芸牕之前、永夜篝燈之下, 朗誦微吟, 潛思黙究, 於古人之書, 犁然合理而爲實見, 欣然得道而爲實有, 以之行諸身而爲實德, 措諸事而爲實業, 純乎其全也, 巍乎其崇也, 則實之所存, 名豈不彰? 將今與後之君子, 有尙實者作, 公誦壽山之名, 而永有辭也必矣.於是乎余文之因壽山而傳, 亦當如董生之因韓子而傳名也, 此正區區之願爾. 동생(董生) 소남(召南)이 …… 탄식하였다 당나라 덕종 때 동소남이 진사과에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주경야독하면서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처자식이 근심이 없도록 하자, 그의 벗 한유가 〈동생행(董生行)〉ㄹ르 지어 "아! 동생이여. 아침이면 나가 밭 갈고, 밤이면 돌아와 옛사람의 책을 읽도다. 종일토록 쉬지 못하였으니, 혹은 산에서 나무하며, 혹은 물에서 고기 잡네. 부엌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당(堂)에 올라 안부를 물으니, 부모는 근심스러워하지 않고, 처자식은 원망하지 않도다.〔嗟哉董生, 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息, 或山而樵, 或水而漁. 入廚具甘旨, 上堂問起居. 父母不慼慼, 妻子不咨咨.〕"라고 하였다. 《小學 善行》 동생은 …… 갔지만 한유가 지은 〈송동소남서(送董邵南序)〉에 "연(燕), 조(趙) 지방은 옛날부터 강개하여 비장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많다고 일컬어졌습니다. 동생(董生)은 진사과에 합격하였으나 연이어 유사(有司)에게 인정받지 못하여 뛰어난 재능을 지닌 채 답답한 마음으로 이 지방에 가시는데, 그곳에는 반드시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을 것임을 나는 압니다.〔燕趙古稱多感慨悲歌之士. 董生擧進士, 連不得志於有司, 懷抱利器, 鬱鬱適玆土. 吾知其必有合也.〕"라는 내용이 보인다.《昌黎集 卷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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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재기 【기묘년(1939)】 求德齋記 【己卯】 내가 일찍이 전연심(田鍊心 전희순(田煕舜)) 어른에게 부풍(扶風 부안)의 근고(近古) 김공(金公) 재현(載賢)에 관한 일을 듣고 그분의 효성에 대해 매우 자세히 알고 있었는데, 그 분의 다른 일이야 잘할 수 있겠지만, 부친과 조부 두 대를 위해 본군의 구덕리(求德里)에 묘지를 사기 위해 먹고 살기도 어려운 곤궁함 속에서 거금을 마련한 일과 장사를 지낸 뒤에 생활로 바쁜 가운데에 달마다 두 번씩 묘를 살핀 것은 잘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나머지 평소 언행도 또한 선한 모습이 많았다. 내심 스스로 감탄하며 효는 덕행 중에 으뜸이고, 선은 복을 받는 터전인 까닭에 덕이 있는 자는 창성하고, 선을 행한 자는 상서로운 일이 있는 것이 하늘의 도이니, 반드시 어진 자손이 대대로 선조의 뜻과 사업을 이어 나가는 복을 누릴 것으로 여겼다.그런데 하루는 김행신(金幸信)과 김문신(金文信) 두 군이 창주(滄洲 창동(滄東)) 가로 나를 찾아와서 새로 지은 묘재(墓齋)의 편액과 기문을 지어줄 것을 청하니, 두 군은 바로 효자의 아들이고, 묘재는 구덕 마을 언덕에 효자가 생전에 지으려다가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이에 앞서 했던 말이 들어맞았음을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기면서 말하기를,"이와 같은 일이 있다니, 하늘은 믿을 수 있구나. 뿌리를 배양하면 가지가 창달하는 것을 어찌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적에 온갖 고난을 겪으며 정성을 다한 것은 오늘날 재물을 소유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뿌리를 배양한 것이고, 오늘날 눈앞에 우뚝 솟은 묘재는 옛적에 마음으로 계획했던 것이 이루어져 가지가 창달한 것이다."하고서 이에 공경히 답하였다."《시경》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70)라고 하였다. 이 재실이 이루어진 것은 선친을 생각하고 뜻을 계승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니, 이것을 인하여 더욱 공경과 생각을 다하여 자기의 덕을 진취시킬 것을 구하고 선친의 효와 선행 전체를 계승하는 것은 분수에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묘재를 명명하는 것은 다른 데에서 구해서는 안 되고 지역의 이름을 인하여 '구덕'이라 편액하는 것이 마땅하다.대저 덕이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어 본디 자기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인데, 단지 물욕에 의해 해를 당하여 상실되었을 뿐이다. 돌아보건대 오늘날 세상에 물욕에 가리지 않고 선조를 사모하여 재물을 사용하고 선조의 일을 잘 계승하는 것을 군처럼 할 수 있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이 한 가지 일만 보더라도 본디 가지고 있는 덕을 상실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고, 선친의 덕을 계승하는 데에 거의 반절 이상은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효자라 일컫지 않을 수 있겠는가.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71)라고 하였고, 또 '요순의 도는 효제(孝悌)일 뿐이다.'72)라고 하였으니, 만약 힘써 나아갈 수 있다면 비록 덕을 이루어 선친을 현양하는 대효(大孝)가 되는 데에 이른다 하더라도 또 어찌 이상한 일이겠는가.이 재실에 거처하면서 엄숙한 정성을 다하고, 선조의 묘에 절을 올리며 서글픈 감회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것은 대씨(戴氏)의 〈제의(祭義)〉73)와 후산(後山)의 〈사정기(思亭記)〉74)에 이미 다 실려 있고, 산과 언덕, 풍수의 형세라든지 묘재의 칸 수와 구조 등은 이 재실에 오른 자라면 저절로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니, 모두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직 덕을 구하는 일로 그 이름을 취한 뜻을 드러내 고하였으니, 돌아가 이 말을 게시하여 재실의 기문으로 삼아도 또한 충분할 것이다." 余嘗從鍊心 田丈, 聞扶風近故孝子金公 載賢事, 甚詳之孝也.其他可能, 其爲父祖兩世, 買佳城於本郡之求德里, 辦鉅金於艱食困苦之中, 旣葬月再展省於營生奔走之際者爲難能.其餘平日言行, 亦多善狀.竊自感嘆以爲孝者德之首; 善者福之基, 故有德者昌; 作善者祥, 天之道也, 其必有賢子孫繼述之餘慶乎.日有金幸信、文信二君, 訪余於滄洲之上, 以其新成墓齋, 請扁而記之.二君乃孝子之子, 齋卽求德阡孝子生前營置而未就者.余於是又自幸前言之有中而曰: "有是哉, 天可諶也.盍觀夫根培而枝達乎? 昔日之艱苦盡誠, 今日有財爲悅之根培也; 今日之眼前突兀, 昔日心上經綸之支達也." 乃敬復之曰: "《詩》不云乎? '無念爾祖, 聿修厥德.' 是齋之成, 旣出於念親繼志, 則因而益致敬念, 求進己德, 而繼其孝善全體, 是分所當然.名齋不可以它求, 因其地而扁以求德宜矣.夫德者, 人所得於天而固有乎己, 但爲物欲害之而喪焉.顧今之世, 有能不蔽物欲, 而慕先用財, 善述人事, 如君者幾人? 卽此一事, 可見不喪固有, 而於繼先德也, 思過半矣, 可不謂之孝乎? 孟子曰: '人皆可爲堯舜.' 又曰: '堯舜之道, 孝悌而已.' 若能勉而進之, 則雖至爲成德顯親之大孝, 又豈異事乎? 若夫居是齋而致僾肅之誠, 拜先壟而興悽愴之感, 戴氏之於〈祭義〉、後山之於〈思亭〉, 已盡之, 岡巒風水之勢、結構間架之制, 登是齋者, 自應目覩, 皆不須論.惟以求德之事, 發其取名之義而告之, 歸而揭是說爲齋記, 亦足矣." 너의 …… 닦을지어다 《시경》 〈문왕(文王)〉에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 길이 천명에 짝하는 것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니라.〔無念爾祖, 聿修厥德. 永言配命, 自求多福.〕"라는 구절이 보인다. 사람은 …… 있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조(曹)나라 군주의 아우인 조교(曹交)가 "사람은 모두 요 임금이나 순 임금이 될 수 있다 하니, 그러한 이치가 있습니까?〔人皆可以爲堯舜, 有諸?〕"라고 묻자, 맹자가 "그러하다.〔然.〕"라고 대답한 내용이 보인다. 요순의 …… 뿐이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나오는 구절로, 요순과 같은 성인의 도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인륜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대씨(戴氏)의 제의(祭義) 대씨는 한(漢)나라 때 후창(后蒼)에게 의례(儀禮)를 전수받은 대덕(戴德)과 그의 조카 대성(戴聖)을 가리키고, 〈제의(祭義)〉는 《예기(禮記)》의 편명이다. 대덕이 전한 예 85편을 《대대례》라 하고, 대성이 전한 예 49편을 《소대례》라고 하는데, 현재 《예기》라 하는 것은 《소대례》를 가리킨다. 후산(後山)의 사정기(思亭記) 후산은 북송(北宋)의 문장가 진사도(陳師道)의 호이고, 사정기는 진사도가 지은 글로 자손들이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나 재실에서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古文眞寶 後集 卷10 思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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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암기 惕菴記 《주역》 〈건괘(乾卦) 구삼(九三)〉에서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한다."라고 하였고, 《論語》 첫 장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는데, '즐겁다[悅]'라는 것은 '기쁘다[喜]'라는 뜻이고, '두려워하다[惕]'라는 것은 '근심하다[憂]'라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은 둘로 나누어 사용할 수 없으니, 힘쓰고 두려워하는 낮과 저녁, 배우고 익히는 때와 때는 동일한 때인데, 어찌하여 동일하지 않은 기쁨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이는 칡뿌리를 씹을 때처럼 반드시 쓴 맛이 다 없어진 뒤에 단 맛이 느껴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혼자 있을 때를 삼간 뒤에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지는 즐거움이 있게 되는 것이다.대저 도리는 지극히 은미하고,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위태로우며, 사물은 지극히 번다하니, 지극히 위태로운 마음으로 번다한 사물을 접하면서 지극히 은미한 도리에 부합하기를 구하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주자는 도는 떠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 "군자의 마음은 항상 공경과 두려운 마음을 보존한다."라고 하였고78), 간옹 선사(艮翁先師 전우(田愚))는 도가 본래 지극히 은미하기 때문에 성인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나 같은 소자가 어찌 공경과 경계의 마음을 그만 둘 수 있겠는가 하였다.조사문(趙斯文) 수경(受卿)은 집에 척암(惕菴)이라 편액하고 힘쓰는 사람이니, 나는 척암이 멀게는 주자의 뜻을 생각하고, 가깝게는 선사의 마음을 체득하여 처음에는 힘쓰고 힘쓰면서 때때로 반성하고 두려워하여 얻지 못한 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중간에는 점차 교화하여 충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마지막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얻고 힘쓰지 않아도 도에 맞아서 두려워할 만한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易》乾之九三曰: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論語》之首章曰: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悅喜意也, 惕憂意也.人心不可兩用, 乾惕之日夕與學習之時時, 同一時也, 而烏得有悅惕之不一也? 此如喫葛根然, 必苦盡而後甘來.故必愼獨而後有廣胖之樂也.夫道理至微, 人心至危, 事物至繁.以至危之心, 接事物之繁, 而求合於至微之道, 豈不難乎? 是以朱子謂道不可離而曰: "君子之心, 常存敬畏." 先師艮翁, 以道本至微, 聖無不惕, 矧余小子柰何息敬戒? 趙斯文 受卿, 扁室惕菴而勖之者也.吾願惕菴, 遠思朱子之意, 近體先師之心, 始焉勉勉, 時時省惕, 不得不措, 中焉漸次化之, 使中心喜悅, 終焉不思而得, 不勉而中, 使無事之可惕焉. 주자는 …… 하였고 《중용장구》 제4장 주희 집주에 "도는 떠날 수 없는 것인데 사람들이 스스로 살피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폐단이 있는 것이다.[道不可離, 人自不察. 是以有過不及之弊.]"라는 내용이 보이고, 제1장 집주에 "군자의 마음은 항상 공경과 두려운 마음을 보존하여 비록 보고 듣지 않을 때라도 또한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천리의 본연함을 보존하여 잠시도 도를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君子之心, 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所以存天理之本然, 而不使離於須臾之頃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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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김낙두) 족숙에게 답함 갑자년(1924) 答涵齋族叔 甲子 지난번 편지에, "군사(郡事) 부군(府君)108)의 유적을 추모하여 감개의 뜻을 매우 지극히 하였는데, 길이 보존할 방도를 생각하고 있다." 하셨으니, 백번 받들어 읽음에 효를 생각하는 마음이 끝없음에 우러러 감복하였고 또 나의 마음을 먼저 알아챘음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일찍이 듣건대, 기미를 알아보는 것을 명철(明哲)이라 이르고 발자취를 고상히 하는 것을 달절(達節)109)이라 하니, 일을 만나 의리를 취하여 몸을 잃지 않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부군이 고려의 세가로 종실인 창녕군의 사위가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뜻을 굽혀 높은 벼슬과 많은 복록을 취하는 데에 마음을 두었다면 주머니속의 지푸라기를 줍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시사가 어찌해볼 수 없음을 환히 알았으나 차마 종국(宗國)이 망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고 또 망복의 뜻110)을 보존하는 것이 중대하다고 여겼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도리를 다하여 선왕에게 의로운 뜻을 바쳤으니111) 그 의리는 기자의 명이(明夷)112)이며 그 자취는 노중련(魯仲連)의 동해(東海)113)와 같으니, 포은(圃隱), 목은(牧隱) 제현들이 나라를 위해 죽거나 발자취를 감춘 것에 비교해볼 때, 명성과 지위의 한미하고 현달함이 비록 같지 않음은 있으나 그 보존하고 실천한 것은 똑같이 나라를 근심한 열렬한 절의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위로 고인을 논하는 자들의 입에서 우열이 논해질 수114) 있겠습니까? 부군께서 하신 이런 일은 이치를 따른 것이고 분수를 다한 것이니, 단지 눈앞의 당연함을 보았을 따름입니다. 어찌 몸과 집안의 이익과 재앙 및 후손들의 흥망을 계산했겠습니까?그러나 나 같은 후손은 지극한 은혜와 두터운 덕을 부군에게 특별히 입은 것이 있습니다. 우왕과 창왕 때에 나라에 일이 많아서 종신대신들을 일망타진하였습니다. 창녕군 한 집안도 죽거나 귀양을 다 갔는데, 만약 부군이 기미를 봄이 밝지 못하고 물러남이 용감하지 못했다가 결국 한번 죽음을 힘써서 그것 때문에 멸족이 되었다면, 우리 김 씨 수천 명 종족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겠습니까? 부군의 의리를 더욱 믿지만 의리는 홀로 의리가 될 수 없고 인과 더불어 행해야만 넉넉하여 구차스럽지 않습니다. 오직 성씨가 바뀌어 나라가 교체되는 때에【역성의 때】 사서에 궐문이 많고 문장 또한 꺼리는 것이 있어서 기전 송헌은 아득하여 징험하기 어려우니 단지 "망복의 뜻을 지니고 온전히 관향으로 돌아왔다"는 여덟 글자만이 쓸쓸이 예전 보첩 중에 있으니 그 후손들의 한스러움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매우 다행스럽게도 만수산115)의 충의록이 나와서, 부군이 여덟 번 판사를 지냈다는 것과 두문동 72현116)과 한 몸으로 도를 같이 했다는 것이 《충의록》중에 찬란히 빛나니, 공자의 옛집 벽의 문서117)와 범백숭의 무덤인형과 같을 뿐이겠습니까? 옛 보첩중의 여덟 글자와 부절처럼 딱 맞아서 비로소 지극한 보배는 땅속에 묻혀 있을 수 없고, 신비한 물건은 하늘이 아낌없이 응하고, 실덕(實德)과 지행(至行)은 오래될수록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두문동 72현은 조정에서 높이 포장하고 사림이 공적으로 칭송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명성이 자자하지만, 우리 선조의 의행과 고절은 사라져서 오백 년 동안 들리지 않으니 이것은 후손들이 널리 고증하고 근거를 대어서 힘을 다해 천양(闡揚)하지 못한 탓이니, 후손들도 똑같이 과실이 있는 것입니다. 말이 여기에 이르러 탄식하였습니다. 선조의 아름다움을 선양하는 것은 진실로 몸을 신칙하여 덕을 전진시키고, 서로 닦으며 힘을 써서, 효자들의 효도가 다함이 없도록118)함에 달려있지, 선조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상언(上言)하여 정려문을 하사하는 은전을 받고, 묘도문자를 청하여 묘를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 성현의 충효성덕과 대절은 전모119) 전기 이하로부터 두루 기록되어 있으므로, 일찍이 세도를 위한 급급한 하나의 큰일이 아님이 없었는데 하물며 회옹(晦翁)이 '불인하다 책망한 것'과 우암(尤庵)이 '자식의 도리를 찬미한 것'은 진실로 편지에서 인용한 것과 같음이 있으니, 자손이 친절히 해야 할 업무에 있어서는 세도의 책임보다 급한 것이 있습니다. 이전에 겨를이 없어서 진실로 고증을 자세히 하지 못하고 충분히 징험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회옹이 기롱한 것을 장차 무슨 말을 하여 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제 강산이 변했으니 정려를 세워 표창하는 것은 이미 옛날의 광경입니다. 다만 문장으로 드러내는 한 가지 일만이 있을 뿐인데, 대인의 큰 덕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문필가들이 그 사람에 대해 쓰는 것을 어렵게 여기니 어찌해야 합니까? 嚮敎書, "追慕郡事府君遺蹪, 極致感慨之意, 思有以圖不朽." 百回擎讀, 旣以仰服孝思之無竆, 又以幸我心之先獲也.竊嘗聞, 見幾之謂明哲, 高蹈之謂達節, 遇事取義而不失身者次之.府君以麗氏世家, 爲宗室昌寧君壻, 少有意於俯取峻秩鉅祿, 將囊探芥拾之易易也.乃灼知時事之不可爲, 而不忍坐視宗國之淪喪, 且爲所存罔僕志之重且大.爲歸鄕, 自靖獻于先王, 其義則箕子之明夷也, 其跡則魯連之東海也, 視圃牧諸賢之或殉或遯, 名位之微顯, 雖有不同, 其所存所履之, 同出於惻怛節烈, 豈容軒輊於尙論之口哉? 蓋府君之此擧也, 循理也, 盡分也, 只見當下之當然而已, 豈計身家之利禍, 來裔之興替? 부군(府君) 죽은 아버지나 남자 조상에 대한 존칭이다. 달절(達節) 보통의 규범에 구애되지 않으나 절의에 맞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5년 기사에 "성인은 천명(天命)에 따라 행동할 뿐 분수에 구애받지 않고, 다음가는 현인은 분수를 잘 지키게 마련이고, 그 아래 어리석은 사람은 분수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聖達節 次守節 下失節)"라고 하였다. 망복지지(罔僕之志) 망국의 신하로서 충절 의리를 지켜 새로운 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으려는 절개의 의미. 《서경(書經)》 〈미자편(微子篇)〉에, 기자가 "은이 멸망을 하더라고 나는 남의 신복이 되지 않겠다"〔商其淪喪 我罔爲臣僕〕는 내용에서 유래된 것이다. 자정자헌(自靖自獻)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도리를 다하여 선왕께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서경(書經)》 〈미자편(微子篇)〉에 나오는 말이다. 기자의 명이(明夷) 《주역(周易)》 〈명이괘(明夷卦) 육오(六五)〉의 "육오는 기자가 밝음을 감춤이니, 곧게 지킴이 이롭다.〔六五 箕子之明夷 利貞〕"에서 나온 말로, 은(殷)나라가 무도(無道)할 때 기자(箕子)가 밝음을 감추어 화를 면하면서도 곧음을 지킨 것을 말한다. 노중련(魯仲連)의 동해(東海) 노중련은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사람이다. 유세(遊說)하는 사람이 진(秦)나라를 황제로 떠받들자고 하자, 노중련이 말하기를, "저 진나라는 예의(禮義)를 버리고 수공(首功)을 숭상하는 나라이다. 만일 진나라를 황제로 받든다면 나는 동해에 빠져 죽겠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권83 〈노중연추양전(魯仲連鄒陽傳)〉 우열이 논해질 수 원문의 '헌지(軒輊)'는, 수레가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것을 헌(軒)이라 하고, 앞이 낮고 뒤가 높은 것을 지(輊)라 하는데, 망령되이 우열을 논하는 것을 말한다. 만수산(萬壽山) 개성 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두문동 72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개풍군 광덕산 기슭의 두문동에 들어가서 끝까지 출사(出仕)하지 않고 충절을 지킨 고려의 유신 72인. 두문동 태학생(太學生) 72인이라고도 불렀다. 공벽(孔壁) 한(漢) 나라 경제(景帝) 때 노 공왕(魯恭王)이 집을 확장하는 공사를 하는 중에 공자의 구택(舊宅)을 허물자 벽 속에서 《상서(尙書)》, 《논어(論語)》, 《효경(孝經)》 등이 나왔는데, 모두 선진(先秦)의 과두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한다. 선류불궤(善類不匱) 석류불궤(錫類不匱)의 오기인 듯하다. 석류(錫類)는 길이 복을 받을 사람이라는 뜻으로 효자를 가리킨다.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의 "효자의 효도 다함이 없는지라, 영원히 복을 받으리로다.〔孝子不匱, 永錫爾類〕"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전모(典謨) 전은 《서경(書經)》의 요전, 순전이며, 모는 대우모, 고요모, 익직 등의 편을 가리킨다. 이것은 모두 제왕의 도리와 치국이 대도를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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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93)을 먹으며 食西瓜 수박이 여기저기 쟁반 위에 쌓였으니 西瓜狼藉積盤杯고풍의 교남 객이 부쳐 준 것에 감사하네 嶠客高風感寄來젓가락 아래 붉은 옥 천 점 되어 떨어지고 筯下紅珠千點落칼 앞 비취색 벽옥이 한 번에 쌍으로 열린다 刀前翠璧一雙開과즙이 치아 아래로 지나니 차가워 눈과 같고 漱過齒本寒如雪뱃속에 흘러내려 미세하게 우렛소리 들리네 滌送腸間細聽雷반드시 선도가 이것보다 낫지는 않을 것이니 未必仙桃能勝此어찌 모름지기 방외의 봉래산을 갈 것인가 何須方外躡蓬萊 西瓜狼藉積盤杯,嶠客高風感寄來.筯下紅珠千點落,刀前翠璧一雙開.漱過齒本寒如雪,滌送腸間細聽雷.未必仙桃能勝此,何須方外躡蓬萊? 수박 원문 '서과(西瓜)'는 수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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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여관에서 秋夜羇牕 나그네 마음 쓸쓸하여 점점 평온치 못하니 客意凄凄轉不平여릉은 어찌 홀로 추성부를 지었나96) 廬陵何獨賦秋聲이슬 앞 찬 귀뚜라미 우는 소리 처음 들리고 露前寒蟋音初澀안갯속 깜빡이는 등은 불빛이 잠시 밝았네 霧裏殘燈影乍明시와 술에 수창하는 즐거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詩酒未終酬唱樂구름 덮인 산에 이별의 정한이 다시 생기네 雲山復有別離情밤새 밤에 내린 빗소리 들으며 앉았더니 無眠坐聽通宵雨근심 사라지고 앞 여울엔 급물살 생기네 愁殺前灘急水生 客意凄凄轉不平,廬陵何獨賦秋聲?露前寒蟋音初澀,霧裏殘燈影乍明.詩酒未終酬唱樂,雲山復有別離情.無眠坐聽通宵雨,愁殺前灘急水生. 여릉은……지었나 여릉은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태어나 자란 곳이며, 추성부(秋聲賦)는 그의 대표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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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재에서 10월 8일 처음으로 어떤 이가 국화를 보내왔기에 百千齋十月八日始見人贈菊 맑고 깨끗한 영산의 객사에서 瀟灑瀛山舘구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구나 經盡九秋霜산속엔 맑은 아취 가득한데 山中多淸趣유독 뜨락의 황국만 적네 獨少庭菊黃우뚝 빼어난 은자의 운치 卓犖逸士韻천 년 전의 시상을 꿈꿔보네173) 千載夢柴桑맑은 바람 어느 곳에서 이르러 淸風何處至나에게 한 떨기 꽃을 보냈나 送我一朶芳날씨가 갑자기 추워져도 天寒一以急꼿꼿하게 늦가을 향기 머금었네 亭亭葆晩香은자는 눈이 갑자기 밝아지며 幽人眼忽明향기에 뜻이 절로 장대해진다 把嗅意自長홀로 완상하니 슬퍼지지 않고 獨賞未須悵술이 없어도 무엇을 아파하리오 無酒亦何傷뭇 산 눈빛에 놀라고 千山驚雪色온 나무 벌써 말랐구나 萬木已凋荒그대와 함께 그대로 돌아가면 及爾聊同歸은근히 어느 날 잊을까 殷勤何日忘이 마음 나눌 사람 없는데 此心無人話찬 달이 높은 집 비추는구나 寒月照高堂 瀟灑瀛山舘,經盡九秋霜.山中多淸趣,獨少庭菊黃.卓犖逸士韻,千載夢柴桑.淸風何處至?送我一朶芳.天寒一以急,亭亭葆晩香.幽人眼忽明,把嗅意自長.獨賞未須悵,無酒亦何傷?千山驚雪色,萬木已凋荒.及爾聊同歸,殷勤何日忘?此心無人話,寒月照高堂. 우뚝……꿈꿔보네 국화를 사랑했던 도연명을 가리키며, '시상(柴桑)'은 도연명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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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재에게 보냄 신묘년(1951) 與崔欽齋 辛卯 근래에 권순명이 다른 사람과 함께 나를 만나서 화해를 구하려고 하다가 바로 다시 그만두며 말하기를, "그가 나쁜 마음을 먹고 호남과 영남의 시비설을 꺼내면 재미가 없을 듯하니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운운 하였으니, 이것은 권순명이 함께 나를 만나려 했던 사람인 벗 김주백(金周伯)이 전해 준 말입니다. 아! 시비를 분명히 분별하는 것은 학문 중의 첫째 공부가 아닙니까? 그가 나의 마음을 이미 발견했다면 바로 명백하게 어제가 그르고 오늘이 옳다고 말해야 하니, 이것이 의리를 밝히고 식견을 기르며 심술을 바르게 하고 과오를 고치는 도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 다만 다른 것을 위해 다른 사람의 시비에 대한 정론을 싫어하여 오로지 감추는 것만 일삼아서 이미 발현된 후회하는 마음의 좋은 기회를 곧바로 놓쳐 버립니다. 저들 무리가 하는 것은 매사가 이와 같으니, 이것이 그들이 끝내 스승을 무함하고 원고를 어지럽히고 사림을 재앙에 빠뜨리고 스승의 손자를 함부로 대하고서야 그친 이유이니,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합니다. 오진영과 유영선이 편찬하여 간행한 연보는 달려가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르지 않으면 참으로 선사에게 누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정공(靜公 전화구)이 평소 부탁한 것을 따라 이미 한 본을 편찬하여 이루었으니, 그대에게 나아가 상의할 날이 마땅히 있을 것입니다. 을유년(1945) 가을에 음성 오진영의 무리들이 떠받들던 일월(日月 일본을 지칭함)이 무너지고 기울었으니, 그때가 바로 화도수정본을 발간하는 통문을 발동시킬 수 있는 때였습니다. 일이 혹여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의로운 소리는 천하에 알려졌을 텐데, 지금은 그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近日權也, 欲與人見我求和, 旋復罷之曰: "恐其慝出湖岺是非說, 則沒滋味, 不如不見"云云.此是權所欲與人金友周伯之傳我者.噫! 明辨是非, 非學問中第一工夫乎? 渠旣發見我之心, 則正要明白說昨非今是, 是爲明義理長識見, 正心術改過惡之道.不此之爲, 只爲他厭人是非之正論, 專事掩匿, 旋失悔心已發之好機會.蓋渠輩所爲每每如此, 此其所以終爲誣師亂稿禍士林押師孫而止已, 可哀亦可笑也.吳柳編刊年譜, 想趁覽之, 此而不正, 實貽累先師.故自此遵靜公平日之託, 已編成一本, 就商座下, 當有日矣.乙酉秋陰黨所戴日月虧昃之, 時正可發手定本刊行通文, 事或不成, 義聲聞於天下矣.今恨其未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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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田士狷 乙亥 어떤 사람을 칭하기를 '사람의 불인(不仁)함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을 배척하는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흠재(欽齋)77)는 김용숙의 고문(告文)을 의리에 해가 없다고 여겼지만, 희숙(希淑)은 이렇게 배척했으니, 그 고문을 지은 자가 지극히 불인하다는 것이 또 마땅히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인규는 이 때문에 희숙에게 노하지 않고, 진실로 고치는 게 확실한가를 보고 대응하겠다는 후창의 편지를 보고 노했습니다.78) 그러니 나에게 어떻게 할 생각인지 참으로 괴이합니다. 稱人以人之不仁胡至此極,則斥之無以加此矣.欽齋以金告文爲無害於義, 而希淑以此斥之, 則其作告文者之極不仁, 尢當如何哉.然而仁圭不以此怒希淑而怒觀其誠眞改明而應之之書.於我思欲如何何哉可怪也已. 흠재(欽齋) 최병심(崔秉心, 1872~1957)의 호이다. 간재의 문인이다. 그러나……노했습니다 후창이 앞의 편지에서 말하길, 상대 쪽에서 김용숙이가 고친다고 했는데 그가 진실로 고치는지 확실히 보고서 대응하겠다는 내용을 편지에 썼다. 인규가 그 편지를 보고 성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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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중일에게 답함 무진년(1928) 答蔡中一 戊辰 보내신 편지에서,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탕반(湯盤)의 명(銘)68)을 읽고 경계하여 살피는 마음을 두었고, 그로 말미암아 존선조(尊先祖) 신재(新齋) 어른이 편액을 쓴 의(義)에 느끼는 바가 있어, 마침내 집에 신운(新雲)이라고 편액을 써서 살피고 반성할 바탕으로 삼았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한마디 말이 죽을 때까지 실천할 만하다.69)"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70)"라는 의미를 여기에서 얻을 수 있다면, 전성(前聖)에게는 어진 제자가 될 것이고 존선조에게는 빼닮은 후손이 되어 한 가지 일을 행함에 온갖 선이 갖추어질 것입니다. 당신의 학문이 이로부터 근본이 단단해질 줄 알겠으니 우러러 경하드린 뒤, 끝맺음을 잘하여 실제에 부응하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承喩以讀湯盤日新之銘, 有所警省者, 因有感於尊先祖新齋翁取扁之義, 乃以新雲扁居室, 庸作觀省之資. 此正古人所謂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 亦惟所謂無念爾祖聿修厥德者, 苟有得乎此, 於前聖爲賢弟, 於尊先爲肖孫, 行一物而衆善備. 知高明之學自此其著落, 仰賀之餘, 竊願克終而副其實也. 날마다……명 탕 임금이 목욕하던 그릇의 명(銘)에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고 하였다. 《大學》 한 마디……만 하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서 인용하였다. 너의……닦을지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에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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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헌 박공 병하 만시 ○경술년(1910) 변고에 독을 마시고 죽었다. 挽可軒朴公【炳夏○庚戌之變 飮毒而沒】 산천의 모습마저 바뀌어 한스러움 끝이 없고 山河改色恨無窮칠 척의 공의 모습이 마치 하늘에 보이는 듯 七尺公能視若空슬픔의 눈물은 응당 가을비와 섞여 흐르고 悲淚應和秋雨滴외로운 충성심 붉은 둥근 해와 견줄 수 있다네 孤忠可較日輪紅삼려대부는 마침내 물에 빠지려는 뜻을 이루었고115) 三閭竟遂沈江志서산에는 아직도 고사리 캐는 풍도 남아 있어116) 西峀猶存采薇風당시 무리들 필부의 신의117)라 꾸짖지 마시오 時輩且休溝瀆誚오직 벼리를 붙잡는 게 큰 공이니 維持綱紀是豊功 山河改色恨無窮,七尺公能視若空.悲淚應和秋雨滴,孤忠可較日輪紅.三閭竟遂沈江志,西峀猶存采薇風.時輩且休溝瀆誚,維持綱紀是豊功. 삼려대부는……이루었고 굴원(屈原)은 삼려대부의 신분이었으며 초나라 왕에게 간언을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서산에는……있어 원문 '서수(西峀)'는 서산의 수양산(首陽山)을 말한다. 여기에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주나라 무왕에게 굴복하지 않고 고사리만 캐먹다가 죽었다. 필부의 신의 원문 '구독(溝瀆)'은 하찮은 필부의 신의를 빗댄 말이다. 공자(孔子)의 말에 "내 어찌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신의로 구독(溝瀆)에 목매 죽어서 남이 알지 못하는 것같이 하랴." 하였다. 《論語 憲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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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191) 萬東廟 낙양산 앞 우뚝 솟은 황묘여 巍巍皇廟洛山前특별히 이곳 동천에 숭정을 두었다네 別有崇禎此洞天깊은 은혜 위대한 공적 끝내 잊을 수 없었으니 深恩偉烈終何忘우제192)와 소사는 예로부터 그러했네 虞祭昭祠古亦然누린내 삼천리 강산에 가득하고 腥塵漠漠三千里향기로운 제수가 오륙 년 사이에 사라졌구나 芬苾寂寂五六年한밤중 우렛소리 며칠이던가 半夜雷聲知幾日온 봉우리 뭇 골짝에 찬 안개 감싸네 千峯萬壑鎖寒烟 巍巍皇廟洛山前,別有崇禎此洞天.深恩偉烈終何忘?虞祭昭祠古亦然.腥塵漠漠三千里,芬苾寂寂五六年.半夜雷聲知幾日,千峯萬壑鎖寒烟. 만동묘 1740년년 송시열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을 제사 지내기 위해 지은 사당을 말한다. 우제 장사를 지낸 뒤 망자의 혼백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 명나라 의제가 죽은 후에도 혼백을 기리며 평안하기를 바라는 제사를 지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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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궁암193) 泣弓巖 나이 많은 노인 그해 눈물 흘리니 大老當年淚분명 임금께서도 오셨으리라 分明天日臨스산한 한 조각의 바위가 蒼凉一片石후인들의 시가 될 수 있었네 堪作後人吟 大老當年淚,分明天日臨.蒼凉一片石,堪作後人吟. 읍궁암 송시열이 효종을 그리워하며 제삿날마다 올라 통곡하였다는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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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인종의 교졸시를 차운하여 소군 태화 진석 에게 보냄 敬次仁宗巧拙詩贈蘇君太化【鎭奭】 교묘가 졸열의 무능함을 비웃어도 巧嗤拙無能졸열은 교묘와 대적하긴 어렵다네 拙與巧難敵교묘는 간혹 사특과 위선을 행하고 巧或涉邪僞졸열은 대부분 법도만을 고수하네 拙多守繩尺졸열은 매일 하루 더 나아가고 拙日進一日교묘는 날마다 하루 더 물러나지 巧日退一日졸열은 도리어 큰 날개를 떨치고 拙反奮大翼교묘는 곧 가벼운 나비도 되지 巧乃作輕蝶군자의 뜻은 견고하기가 바위와 같고 君志堅如石군자의 성품은 촘촘하기 베와 같네 君性密如織스스로 재주가 졸렬하다 말하지만 自言才拙樸배움에 힘쓰며 날마다 급히 하네 劬學日以急내가 아는 거라고는 졸렬은 곧장 이르지만 吾知拙直至교묘함은 성인도 세월을 기약해야 하니 巧聖期歲月다만 허와 실에 공들이는 것에 관계할 뿐 但係功虛實두터움과 얇음에 구애받지 마시게 不拘禀厚薄 巧嗤拙無能,拙與巧難敵.巧或涉邪僞,拙多守繩尺.拙日進一日,巧日退一日.拙反奮大翼,巧乃作輕蝶.君志堅如石,君性密如織.自言才拙樸,劬學日以急.吾知拙直至,巧聖期歲月.但係功虛實,不拘禀厚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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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정기 【임진년(1952)】 棲巖亭記 【壬辰】 대저 오직 이름난 사람이 이름난 곳에 정자와 누각을 짓고 주인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름난 정자와 이름난 누각이 된다. 그렇지 않고 범문정(范文正)이 주인이 되지 않으면 비록 악양루(岳陽樓)가 있다 하더라도 한갓 파릉(巴陵)의 아름다운 풍경일 뿐이고, 육일옹(六一翁)이 주관이 되지 않으면 비록 제정(滁亭 취옹정(醉翁亭))이 있다 하더라도 단지 여러 봉우리 가운데 숲이 우거진 골짜기일 뿐이다. 예로부터 그러하였으니, 오늘날이라고 해서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내가 나라 가운데 알고 있는 것으로 논하면 교남(嶠南 영남(嶺南)) 함안군(咸安郡) 의사(義士) 조공(曹公)의 서암정(棲巖亭)이 이것이다. 그 사람으로 말하면 연재(淵齋) 송문충 선생(宋文忠先生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충효와 지조, 절개가 있고, 학문과 도의(道義)를 이루었으니, 이름난 사람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지역으로 말하면 여항산(艅航山)79)이 그 신령함을 길러주고, 평암(平巖) 마을이 그 터전이 되었으며, 앞에 긴 시냇물이 흘러 산수의 경치가 아름답고 깨끗하며, 구름과 안개가 깊고 그윽하니, 명승지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이름난 사람과 이름난 곳이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하니, 이름난 정자라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손과 문인들이 공을 위해 이 정자를 짓고, 공이 이곳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공의 풍모를 들은 사람이 이곳에 올라 보고 즐기면서 이와 같이 공공연하게 칭송하고 찬미하는 것이 당연하다.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과 지역, 정자를 궁구하면 주객의 구분이 있다. 중니(仲尼 공자)는 참으로 따로 거처하는 장소가 없었고, 회옹(晦翁 주희(朱熹))은 비록 무이정사(武夷精舍)가 있었지만, 그가 대현(大賢)이 되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았으니, 지금 이 정자는 진실로 객 중의 객이고, 이요(二樂)의 관람과 동정(動靜)의 이치80)도 또한 참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실상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나는 이 정자에 거처하면서 선조의 일과 선사의 학문을 이어 받아 계승할 자손과 문인, 이 정자에 올라 공의 유풍을 느끼고 생각할 나라 사람과 후배들이 또한 먼저하고 나중에 할 바를 알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바로 성인 문하의 스승과 학생이 바로 철저하게 궁구해야 할 의론이니, 잘 살펴보는 자는 이 정자를 중시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夫惟名人作亭樓乎名區而主之, 乃爲名亭名樓, 不然而無范文正以主之, 雖有岳樓, 徒然巴陵之勝狀, 無六一翁以主之, 雖有滁亭, 只是諸峯之林壑.古來然矣, 今豈有異? 以余國中所知者論之, 嶠之南咸安郡義士曹公之棲巖亭是已.之人也, 以淵齋 宋文忠先生門人, 有忠孝志節, 成學問道義, 可不謂名人乎? 之地也, 艅航之山毓其靈, 平巖之里作其址, 前有長溪, 泉石芳潔, 雲霞幽深, 可不謂名區乎? 名人名區, 相得益章, 可不謂名亭乎? 宜乎子孫門人爲之卜築斯亭, 而公之藏修乎斯也.聞公之風者, 登臨觀賞, 而公誦贊美藉藉之若斯也.雖然, 人、地與亭, 究有賓主之分.仲尼固未聞別業之居, 晦翁雖有武夷精舍, 然其爲大賢, 不在此焉.今玆之亭固賓之賓也.二樂之觀、動靜之理, 亦非其眞, 乃其實有在焉.吾意其子孫門人之居斯亭而紹述、邦人後生之登斯亭而感想者, 宜亦知所先後也.然此乃聖門師生直窮到底之論, 則善觀者, 勿謂不重視斯亭也. 여항산(艅航山)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위치한 산이다. 이요(二樂)의 …… 이치 《논어》 〈옹야(雍也)〉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인한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인한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 知者樂, 仁者壽.〕"라고 한 데에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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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 우연히 읊음 秋後偶吟 가을 기러기 울고 또 북풍이 부는데 霜鴈聲聲又朔風객창 안에서 국화와 단풍 헛되이 보내네 菊楓虛負客牕中돌아가 책을 구하여 좋은 흥취 많이 생기니 歸求黃卷多佳興천고의 성인을 벗으로 삼음174)에 뜻과 기운 같지 尙友千年志氣同 霜鴈聲聲又朔風,菊楓虛負客牕中.歸求黃卷多佳興,尙友千年志氣同. 천고의……삼음 이른바 '상우천고(尙友千古)'이다. "이 세상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면 다시 옛 시대로 올라가서 옛사람을 논한다. 그의 시를 낭송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그의 삶을 논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옛 시대로 올라가서 벗하는 것이다." 《孟子 萬章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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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군 국진을 면려함 勉崔君國鎭 지성이면 법도에 맞을 것이요 至誠中規矩안목을 밝게 하면 차고 이지러짐 알리라 明眼識盈虧참된 공적이 이르길 바란다면 待到眞功積옛사람 또한 따를 만하리 古人也可隨 至誠中規矩,明眼識盈虧.待到眞功積,古人也可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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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보름날에 두승산에 오르려고 하였으나 비가 내려 그렇게 하지 못하였기에 淸和望日 欲上斗升山有雨未果 영주산을 멀리서 바라보니 또 묘연하네 望望瀛岑却渺然비가 내려 유선암 방문을 포기했다네 雨中虛負訪遊仙-두승산에 유선암이 있다.- 【斗升山有遊仙菴】꽃 더뎌 여전히 앞 봄빛을 띠고 있고 花遲尙帶前春色산은 푸르러 태고의 하늘 지나온 듯 山碧曾經太古天호남 바다 풍광이 어디에 한계가 있나 湖海風光何有限서책의 참 운치 또한 끝이 없으니 簡編眞趣且無邊-이하 글은 없다.- 【以下缺】 望望瀛岑却渺然,雨中虛負訪遊仙.【斗升山有遊仙菴】花遲尙帶前春色,山碧曾經太古天.湖海風光何有限?簡編眞趣且無邊.【以下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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