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初八日 ○아침 전에 주관(主官)이 직접 살펴보려고 올라왔기에 뒤를 따라 이씨 무덤으로 갔다. 주관의 말하던 중에 "이미 송씨 산소의 백호(白虎) 안에 있으니 이가(李哥)가 산송에 지겠다."하고 갔다. 그러므로 나는 일행과 경순, 종륜 두 일가와 함께 읍으로 왔다. 어제 측량한 읍리(邑吏) 김진홍(金鎭洪)에게 물으니, 도형기(圖形記, 지적도와 유사)에 결과를 적어두었다고 하였다. 과연 베껴서 나오니, 관청의 판결 내용에 "송씨 측 선산은 곧 용호(龍虎)가 수호하는 땅 7리를 분할하여 준다. 이씨 측 고조부 무덤은 비록 장례를 지낸 지 오래되었을지라도 보수(步數)32)의 원근을 막론하고, 송씨 산소의 백호 내에 있으니, 송리(訟理)로 헤아려보면 구금해야 마땅하거늘, 송사가 변하여 지금 송사를 일으켰으니, 오히려 늦었다고 본다. 이씨 측이 송사에 패소한 것으로 치부한다."라고 되어있었다. 경순과 종륜 두 일가는 다시 관아로 들어가서 무덤을 파서 이장할 날짜를 다짐(考音)33) 받으려고 읍내에 남아있었다. 나는 일행과 같이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였다. 지아미(芝娥眉) 고개34)에 이르러 요기를 하고, 올항(兀項)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朝前, 主官親審次上來, 隨後往李塚。 主官言內"旣是宋氏山所白虎內, 則李哥落訟。"云而去。 故余與同行及敬純、鍾崙兩宗。 偕來邑中。 昨日尺量邑吏金鎭洪問之, 則題課於圖形記云矣。 果爲謄出, 而題內"宋班先山, 卽畵給七里守護之地也。 而李班高祖塚, 雖葬在年久, 毋論步數遠近, 是在宋山白虎之內, 揆以訟理, 在所當禁是去乙, 訟變今始起訟, 尙云晩矣。 李班置諸落科事"。 敬純、鍾崙兩宗, 更入官庭, 掘移日納考音次, 留在邑中。 余與同行發向京行。 抵芝娥眉峴療飢, 抵兀項留宿。 보수(步數) 남의 무덤의 용호(龍虎) 이내에는 무덤을 쓸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다짐(考音) 백성이 관부에 제출한 소장ㆍ청원서ㆍ진정서에 대하여 관부에서 써 주는 판결문이나 처결문을 말한다. 지아미(芝娥眉) 고개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의 북쪽으로 3km쯤 되는 곳에 있는 고개로 '지애미 고개'라고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