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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장차 묘향산에 들어가려 하면서 절구 한 수를 지었다.우리 동방 곳곳의 명승지 중에(東國名區某某處)약산의 풍경이 서관의 으뜸이라(藥山風景最西關)약산동대1)의 장관이야 따질 것 없어라(壯觀不足東臺與)멀리 보이는 묘향산 백설로 단장하였네(望蜀香岑白雪間)나는 어렸을 적에 풍악산(楓岳山, 금강산)을 유람하였고, 중년에는 두류산(頭流山, 지리산)을 구경하였다. 우리나라의 산 중에 다만 두 산수의 사이를 살펴보았다. 비록 통취(通趣)는 없으나 식견이 있는 자들이 말하기를, "금강산은 천하제일의 명산이요, 두류산은 그 다음인데 묘향산과는 어금지금하다."라고 하였으므로 매번 묘향산을 한번 보고 싶었다. 그런데 남북은 아득히 떨어져 있고 길[道里]은 매우 멀어 거의 2천여 리에 가까우니, 이 산을 구경하는 남쪽 사람은 천백 중에 한둘도 안 될 것이다.임자년 가을, 나는 선조(先祖)의 시호를 청하는 일로 경성(京城)에 와서 머물렀다. 그때 차동(車洞)의 민 영공(閔令公)이 영변의 수령으로 있었는데, 영변은 향산읍(香山邑)이다. 나에게 한번 구경 오라기에 마침내 10월의 날에 서쪽으로 길을 나섰다.대개 우리나라 평안도의 승경은 묘향산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구경할 만한 곳이 많다. 송경(松京, 개성)은 옛 도읍으로 경물이 처량하고 평양은 웅부(雄府)로 풍경이 아름다운데, 만월대(滿月臺)2)와 취적교(吹笛橋)3)는 송경의 명승지이고, 연광정(練光亭)과 부벽루(浮碧樓)는 평양의 승경지이다. 그 나머지 황주(黃州)의 월파루(月波樓)와 안주(安州)의 백상루(百祥樓)도 경치가 빼어난 곳인데, 모두 묘향산 지나가는 길에 있으니 승경을 유람하는 일행들이 다 볼 수 있다. 약산의 동·서대나 철옹성 같은 곳도 모두 우리나라의 유명한 곳이다. 이 때문에 천 리 먼 길을 바람과 눈보라를 무릅쓰고 10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철옹성에 들어갔다. 곧바로 대아(大衙)로 갔더니 손님과 주인 간에 손을 맞잡고 매우 기뻐하였다. 다음날 운 좋게도 성안에서 군사훈련을 하였다.밥을 먹은 뒤에 3천 병마를 거느리고 원수대(元帥臺)4)에서 조련하고, 이어서 약산 서장대(西將臺)에 오르더니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곧바로 약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랐다. 장졸들이 모두 벼랑을 타고 나무를 휘어잡으며 어관진(魚貫陣)을 이루고 산성으로 들어가 호령하였다. 이날은 눈바람이 몰아쳐서 몹시 추웠다. 성 위에서 열을 지어 진세(陣勢)를 펼치고 비로소 군령을 내려 호궤(犒饋)5)한 뒤 이어 등(燈)을 달게 하였다. 10리의 성 위에 일시에 횃불이 올라 불빛이 환하게 비추었는데, 흰 눈으로 뒤덮인 산에 불빛이 일제히 길을 밝혀 참으로 장관이었다.해가 저물어 파진하자 일제히 하산하였는데, 나는 술기운이 오른데다가 유람한 곳은 관서에서도 가장 칭송받는 곳임에랴! 청천(晴川)의 큰 강은 빙 둘러있어 성 오른쪽에서 내려다보면 한 줄기 얼음 가닥 같고, 묘향(妙香)의 높은 산은 구불구불 뻗어 있어 성 왼쪽에서 멀리 바라보면 일천 송이 부용(芙蓉)과 같으니, 참으로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요충지라 이를만 하였다. 마침내 두세 사람과 서운사(捿雲寺)로 가서 묵었다.다음날 동대(東臺)로 올라가니 평안도의 40여 개 주(州)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 마치 태산(泰山)의 개밋둑과 같았다. 북쪽 땅 천만여 리가 하늘 끝에 아득하여 눈으로는 다 볼 수 없어서 비록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 통쾌한 승경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그 뒤로도 여러 날을 묘향산에 갔다. 將入香山一絶, "東國名區某某處, 藥山風景最西關。 壯觀不足東臺興, 望蜀香岑白雪間。" 余小也遊楓岳, 中歲看頭流。 吾東四山之中, 第觀其二山水之間。 雖無通趣, 而有識者稱, "金剛則天下第一, 頭流則次之, 香山則伯仲"云, 故每有一見香山之願, 而南北夐絶, 道里絶遠, 將近二千餘里, 則南人之看此山者, 則千百人無一二焉。 壬子秋, 余以先祖請諡事, 來留京城矣。 其時車洞 閔令公宰寧邊, 寧邊則香山邑也。 要余一觀, 故遂以十月之日, 登程西征。 盖我國西關之勝, 除非香岳外, 亦有可觀處多。 松京舊都, 景物悲凉, 平壤雄府, 風景佳麗, 滿月臺、吹笛橋, 松京之名區也, 練光亭、浮碧樓, 平壤之勝槩也。 其餘黃州之月波樓, 安州之百祥樓, 亦皆名勝之處, 而皆在於香山路次, 則其遊玩之勝, 一行可盡。 至若藥山之東、西臺及鉄瓮城, 俱是吾東之有名處也。 是故千里長程, 觸冒風雪, 首尾十日, 始入鉄瓮城。 直入大衙, 則賓主之歡欣可掬, 而翌日幸城操也。 食後率三千兵馬, 組練於元帥臺, 因上藥山 西將臺, 鳴囉擊鼓, 直上藥山之最上峯, 將士皆緣崖攀木, 便成魚貫陣, 入山城號令, 是日風雪極寒。 列成陣勢於城頭, 始以軍令犒饋, 因使懸燈。 十里城頭, 一時擧火, 火光照曜, 而白雪滿山之中, 火色齊明, 眞壯觀也。 日昏破陣, 一齊下山, 而余則爲酒力所困, 而且其遊玩之處, 爲關西最稱! 晴川大江周回, 於城右俯視, 若一帶氷條, 妙香高山逶迤, 於城左遠望, 如千朶芙蓉, 眞所謂金湯之地也。 遂與二三人, 向捿雲寺留宿。 翌日上東臺, 則西關四十餘州, 羅列於眼下, 若泰山之丘垤。 北地千萬餘里, 㟽杳於天外, 眼力所窮, 雖不得盡詳, 而其通爽之勝, 不可言矣。 其後數日入香山。 동대 약산의 제일봉에 있는 큰 바위로, 구룡강과 대령강, 멀리 묘향산 등을 조망하는 풍광이 아름다워서 이유태, 김소월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시의 소재로 삼았다. 만월대(滿月臺) 고려의 정궁으로, 919년 태조가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창궐한 이래 1361년 소실될 때까지 고려왕의 주된 거처였다. 본래 특정한 명칭은 없었으나 고려 멸망 이후 조선시대부터 만월대라 불리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남북 공동발굴 사업이 8차례 진행되었다. 취적교(吹笛橋) 개성시 덕암리에 있었던 고려 시대의 돌다리이다. 천마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곱돌천과 개성시 용흥동에서 흘러내리는 마미천이 합쳐져 사천강으로 흘러드는 합수목으로, 개경 이남 지역에서 개경으로 들어가는 간선도로에 세워져 있었다. 2007년 개성에서 주춧돌 및 지지돌 등이 발굴되었다. 원수대(元帥臺)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성군(鏡城郡)에 있있다. 호궤(犒饋) 군사(軍士)들에게 음식을 주어 위로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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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창고에 이르러 묵었다. 至於倉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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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동이 틀 무렵 출발하여 낙수(洛水)2)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낙수교(洛水橋)를 건너며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집 떠난 지 삼일 만에(移發三之日)행차가 낙수교에 다다랐네(行臨洛水橋)물 깊이를 익숙히 아는 길이라(慣知深淺路)역장(驛長)을 굳이 부르지 않았네(亭長不須招)무열 씨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나라의 교화 덕분에 사람들 강 건널 걱정 없으니(人無病涉賴邦敎)시월에 완성된 도강3)이 바로 이 다리라네(十月徒杠卽此橋)낙수로 향하는 우리 행차가 같은 날 건너니(向洛吾行同日渡)뱃사공을 부르는4)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네(不勞舟子也招招)심형(心泂)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행차가 낙수 가에 이르니(行到洛之上)긴 시내에 짧은 다리가 놓여있네(長川浮短橋)오는 길에는 물소리가 세차(來路水聲立)뱃사공을 부를 수가 없네(舟人不可招)제호(霽浩)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이곳은 서울 가는 노정이라(此去京城路)푸른 구름이 낙교에 비추네(靑雲映洛橋)큰 시내 우리가 건너기 편해(大川吾利涉)뱃사공을 부리지 않았네(舟子不招招)광청(廣淸)5) 객점에 이르러 잠시 쉰 후, 먼저 출발하여 귀정(歸亭)6)에 들러 조정화(趙廷燁)의 궤연에 조문하였다. 잠시 외종 형수를 뵙고 곧바로 출발하였다. 석곡(石谷)7)에 이르러 일행을 만나, 요기를 하였다. 율정(栗亭)8)에 이르러 길에서 고창진(高昌鎭) 부자를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용계(龍溪)9) 객점에 이르렀다. 어제 광청 객점을 지나며 무열 씨가 먼저 다음과 같이 읊었다.손을 잡고 떠난 먼 여행길 광청에 이르도록(携手長程到廣淸)지리지에 나온 강과 이름난 산을 보며 지났네(閱過水誌與山名)다만 족보 일로 인해 서울 가는 날이기에(徒緣譜事之京日)몸이 고달픈 건 생각지 않고 걸어서 가네(不計身勞作步行)내가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한 줄기 장강은 넓고도 맑으니(一派長江廣又淸)지금도 옛날 남겨진 이름으로 불리네(至今稱說古遺名)막힌 길을 긴 다리를 통해 건너니(長橋以濟不通路)오가는 유람객이 머물지 않고 가네(來去遊人莫住行) ○平明發程, 抵洛水店朝飯。 渡洛水橋, 吟一絶曰: "移發三之日, 行臨洛水橋。 慣知深淺路, 亭長不須招。" 武說氏次曰: "人無病涉賴邦敎, 十月徒杠卽此橋。 向洛吾行同日渡, 不勞舟子也招招。" 心泂次曰: "行到洛之上, 長川浮短橋。 來路水聲立, 舟人不可招。" 霽浩次曰: "此去京城路, 靑雲映洛橋。 大川吾利涉, 舟子不招招。" 抵廣淸店暫憩後, 先行入歸亭, 吊趙廷燁几筵。 暫見外從嫂, 卽發。 抵石谷逢同行, 仍爲療飢。 抵栗亭, 路上逢高昌鎭父子暫話。 抵龍溪店。 昨日過廣淸店, 武說氏先吟曰: "携手長程到廣淸, 閱過水誌與山名。 徒緣譜事之京日, 不計身勞作步行。" 余次曰: "一派長江廣又淸, 至今稱說古遺名。 長橋以濟不通路。 來去遊人莫住行。" 낙수(洛水)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낙수리이다. 옛날 낙수역(洛水驛)이라는 역참이 있었다. 도강(徒杠) 걸어서 건너는 다리이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자산(子産)이 자신의 수레로 강에서 백성들을 건네주자, 맹자가 "은혜로우나 정치를 하는 법을 모른다. 11월에 도강이 이루어지고 12월에 여량이 이루어지면 백성들이 물 건너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다.[惠而不知爲政. 歲十一月 徒杠成, 十二月輿梁成, 民未病涉也. ]"라고 하였다. 뱃사공을 부르는 《시경》 〈포유고엽(匏有苦葉)〉에, "손짓하며 부르는 뱃사공에게 남들은 건너도 나는 건너지 않노라. 남은 건너도 나는 건너지 않음은, 나는 내 짝을 기다려서이다.[招招舟子, 人涉卬否. 人涉卬否, 卬須我友. ]" 하였다. 광청(廣淸)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귀정(歸亭) 순천시 주암면 마전리에 있던 영귀정(詠歸亭)으로 보인다. 삼탄(三灘) 조태망(趙泰望 1678~?)이 지은 별업이다. 석곡(石谷)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석곡리이다. 율정(栗亭)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학정리 율정 마을이다. 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용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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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불로치(不老峙)10)에 이르러 나와 심형과 오서 객은 농소막(農所幕)11)의 송진형(宋鎭亨) 집에 들러 아침을 먹었다. 서울 보청(譜廳)12)에 쓸 경비로 8냥을 우리 일행에게 납입하였다. 곧바로 출발하여 묘치(猫峙)13)를 넘어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니 일행은 먼저 갔다. 그래서 그대로 요기를 하고 서둘러 나루터로 가서 순자강(蓴子江)14)을 건너 일행을 만났다. 창화역(昌華驛) 주점에 이르러 일행 중 송재화(宋再華)는 먼저 가고, 나, 무열 씨, 심형, 오서(烏拪) 객(客)은 도산(道山)15)의 족손(族孫) 일호(一浩) 집으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주인 부자는 명전(名錢)16) 2냥을 우리 일행에게 냈다. ○曉發, 抵不老峙, 余與心泂及烏栖客, 入農所幕宋鎭亨家朝飯。 以八兩錢京譜廳所用次, 納于行中。 卽發, 越猫峙, 抵谷城邑內, 則同行先行。 故仍爲療飢, 促往津頭, 利涉蓴子江, 逢同行。 抵昌華驛酒店, 同行中宋再華先行, 余與武說氏心泂及烏拪客, 入道山族孫一浩家留宿。 主人父子名錢二兩入于行中。 불로치(不老峙)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에 있던 고개이다. 농소막(農所幕)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에 있는 마을이었다. 보청(譜廳) 족보를 만들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사무소를 말한다. 묘치(猫峙)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에서 곡성읍으로 가는 고개로 '괘재'라고도 부른다. 순자강(蓴子江) 전라남도 곡성 일대를 흐르는 섬진강의 옛 이름이다. 도산(道山)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이다. 명전(名錢) 족보를 간행할 때 종중 남자 이름에 매긴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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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온종일 비가 내려 나갈 수가 없어서 두 친구와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빗속의 객고(客苦)에는 위로가 되었지만, 주인이 없어서 몹시 서글펐다. ○終日雨, 不得出來, 與兩友終日談話。 雖慰雨中之客苦, 以主人之不在, 甚爲悵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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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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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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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눈이 내렸다. 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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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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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폭설이 내렸다. 大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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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을미) 十八日 乙未 흐림. 장동(獐洞)에 돌아왔다. 陰。歸獐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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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병신) 十九日 丙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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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칠원(柒原)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성환(成歡)에 이르러 떡과 탕을 사서 먹고 요기를 하였다. 직산(稷山) 삼거리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曉發, 抵柒原朝飯。 抵成歡買餠湯療飢。 抵稷山三巨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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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신사) 初一日 辛巳 흐리고 비. 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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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병술) 八日 丙戌 맑음. 장동으로 돌아왔다. 陽。還章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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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정해) 九日 丁亥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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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무자) 十日 戊子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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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기축) 十一日 己丑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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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계사) 十六日 癸巳 흐림. 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갔다. 밤에 비가 내렸다. 陰。作親忌之行。夜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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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갑오) 十七日 甲午 흐리고 비. 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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