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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製【五月十五日大王大妃殿誕辰】 寶曆東朝賀慶辰庭萱抽綠駐長春登筵耆耈旡疆祝南極延年壽曜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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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梁黙齊必弘【丁巳】 六旬經籍坐林樊瀟灑園翁有令孫餘事文章投鞚勒故家詩禮訪淵源和鳴五鴈門聲暢善護雙麟世業敦脫屣人間焂何去無端使我惱心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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荷屋金相公晬宴【十二月初四日】 聞說泰世百莖萫上繚瑞雲下神龜玉井寶荷龜爲屋藕可千年花四時太乙道人葉以舟龍驤萬斛穩游嬉海外東邱君子邦手植靑藜降棲遲留相大冶噓鞴炭陶唐鑄虞慾無爲鳳兮覽德翔而下百鳥環集羽爲儀較如堂上堂下樂允諧庶尹足一夔聖主好生揚休命和風甘雨萬彙滋十年佐理歸造物寂斂神功坐無思但看八埏煙月下林蔥形色㧾凞凞而今又値降嶽辰春酒瀲灔綠盈巵雨露有香拜宮壺梨園絲筦復相隨冠蓋聯翩傾洛杜紛紛賀鷰入簾帷劈獜爲脯龍爲煮▣桃更摘海上枝擎天浴日世德家集盞獻禱有餘辭但願遐齡南斗齊宗祏磐泰長維持庭下玉樹又趾美爲棟爲柱大廈支也見孫竹森無數不盡醴泉與靈芝豈徒一室鳧葆樂野人亦應祝介眉民物萬年其永賴太平蓍黽昭在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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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荷屋相公懸燈韻【懸燈山名在加平地山上石間泉夜飮可以療病云臘月十三日】 相門苓朮用功多濟得蒼生挽泰和玉燭金膏今壽域千瘡百瘵歸家家雨露承流惠施多尋常卉木帶春和三年顑頷長安店自愧明時一病家原韻巖巖起自一拳多露潤蒼顔夜氣和神敎金液高巓出醫得人間百病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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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차동에 머물렀다. 留車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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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訓寺【在正陽寺東五里】 金剛外兩刹曰神溪楡岾內兩刹曰表訓長安而四寺中表訓最貧雖多有梵宇僧房而傾頹蕭條一無可觀寺中有百斗炊甑以鐵爲之如楡岾所藏大法堂有金身兩立佛寺門外有凌波樓◌椒泉翁詩曰携笻向表訓寺日照人明危棧緣崖仄流川觸石鳴步艱游客倦情款老僧迎夕供香蔬潔上房打磬聲表訓古名僧山樓擇地勝勝區傳相守禮佛叩鐘磬塔宇何荒凉風雨搖不定蕭瑟兩三髡空藏百斗甑泉石終何損一宿聊遣興【揭板】◌初五日壬子晴◌朝發表訓寺十里圓通庵十里須彌塔十里回到圓通庵中火十里復過表訓寺十里地藏庵宿所【終日准陽支應◌本邑宗人履益來與同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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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밥을 먹기 전에 율지(聿之)와 함께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하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낙동(洛洞)으로 가 참판 이광문(李光文)24)을 만나려고 하였다. 그 집 문 앞에서 참판의 아들 이 진사를 만나서 그의 부친이 집에 계신지 물으니, 오늘 제관(祭官) 일 때문에 수원에 갔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랫집에 들러 참판 이광정(李光貞)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용동으로 와 잠시 얘기를 나눈 뒤에 율지, 영규(榮奎)와 함께 회동(晦洞)25)의 장성 현감(長城縣監)을 지낸 송운재(宋雲載)26) 집으로 갔는데 송 장성27)이 집에 없었다. 다만 그 재종(再從, 6촌)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완북(完北, 전주 북문)의 송민수(宋民洙)의 서간을 전한 뒤에 그길로 나왔다. 송지순(宋持淳) 집을 찾아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나왔다. 오는 길에 가랑비를 만나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前, 與聿之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洛洞欲見李參判光文。 至其門外, 逢參判之子進士, 問其大人有無, 則以今日祭官, 往水原云。 故入下家, 見李參判光貞暫話。 來龍洞暫話 後, 與聿之及榮奎往晦洞宋長城雲載家, 則長城不在。 只與其再從暫話, 傳完北宋民洙書簡後, 仍爲出來。 尋宋持淳家, 暫話後出來。 中路逢微雨, 還來主人家。 이광문(李光文) 1778~1838. 자는 경박(景博), 호는 소화(小華).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증조는 이재(李縡)이며, 부친은 아버지는 호조 참판 이채(李采)이다. 1801년(순조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807년 식년 문과에 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와 예문관검열에 이어, 전라감사 등 내ㆍ외직을 두루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회동(晦洞) 서울 중구 충무로4가・인현동1가・인현동2가에 걸쳐 있던 마을이다. 송운재(宋雲載) 1760~?. 자는 치회(稺會)이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거주지는 서울이다. 1789년 식년시에 합격한 후 장성 부사, 전주 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송 장성 성(姓) 뒤에다 직책을 붙이는 방식인데, 지방 현감을 지낸 경우, 그 지명을 붙여 직책을 대신하였으며, 성을 빼고 지명만 써서 표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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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문적을 수정하고 용동의 이 참판 집으로 갔는데, 간행소의 유사가 문적을 다 산삭(刪削)하였으므로 종일 용동에 머물렀다. ○修整文蹟, 往龍洞李參奉家, 則刊所有司, 皆刪削文蹟, 故終日留龍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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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門【自萬瀑洞三里】 在表訓寺前卽內金剛門路也兩石對峙一石下壓其中呀然如門雖不如外金剛門之危險奇絶亦足以供一詩料也雙石上交連虛中正豁然未應經禹斧何幸漏秦鞭仄逕通三彿靈區闢八淵軒昻出門去歇惺夕陽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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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師殿 正陽卽表訓屬寺而藥師殿是正陽寺法堂也內外六稜而新構丹靑玲瓏照眼中有大石佛殿後又有大法堂西有十八羅漢殿東有僧房精明可坐吟玩浮甍矗棟碧層層一寺中央殿六稜宏麗施爲何事業空留石佛對龕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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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逸臺 正陽寺後麓更是土山秀麗平穩頓非皆骨山意態一條土脉東而平鋪爲天逸臺其上亦可以望萬二千峯臺下阧截百仞其下平地卽表訓寺峽路傍遍崖木賊靑立無數◌椒泉翁詩曰歇惺樓上坐斜陽面面盡圖對衆香移步換形天逸界老夫與興更呼觴歇惺樓東轉一回平鋪山脉復層臺此間便是朝天路萬佛千僊次第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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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새벽에 길에 올랐는데 산길이 험악하고 산세가 구불구불하였다. 구금천(舊金川) 읍내에 이르자 비로소 날이 밝아왔다. 계정(鷄井)·두석애(豆石崖) 수문(水門)을 지나 옛 금천을 통하여 저제곡교(猪諸谷橋)를 건넜다. 그 다리 길이는 한눈에도 족히 한 마장(馬場)은 되보였으니, 이곳이 바로 경기와 황해 양도의 경계선이다. 냉정점(冷井店)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인 다음 사곡(蛇谷) 칠현(漆峴), 응봉장점(鷹峯場店) 칠현을 지났다. 평산 읍내 앞에는 태백산성(太白山城)44)이 있었다. 남천(南川) 금교역(金郊驛, 현 황해도 금천군의 역명), 석종발소(石宗撥所)45) 총수(蔥秀)46) 55리를 가서 유숙했다. 凌晨上程, 山路險惡, 山勢縈回。 至金川邑內, 日始明。 過鷄井、豆石崖水門, 通舊金川, 渡猪諸谷橋。 其橋延袤爲, 初見洽滿一馬場, 是爲京畿、黃海兩道之界也。 至冷井店, 朝飯秣馬。 過蛇谷漆峴、鷹峯場店漆峴。 平山邑內前, 有太白山城。 南川 金郊驛、石宗撥所、蔥秀五十五里留宿。 태백산성(太白山城) 황해도 평산군 산성리 태백산에 있는 고구려 때의 돌성이다. 성벽의 바깥 부분은 돌로 쌓아서 만들고 내부는 흙을 채워 지었다. 성벽에는 5개의 치(雉)를, 동서남북의 육축(陸築) 위에는 문루를 세웠는데, 현재 남아 있는 동문과 서문은 조선 시대에 세운 것이다 발소(撥所) 서울과 의주 사이의 길가에 군데군데 있던 역참으로, 정류소라고도 한다. 원래 중국의 역(驛)을 뜻하는 몽골어의 한역어(漢譯語)이다. 1864년에 편찬된 《대동지지》에, '석종발소(石宗撥所)'는 보이지 않고 '석우발소(石隅撥所)'라는 명칭이 보인다. 총수(蔥秀) 저본의 '총수(叢數)'는 황해도 평산(平山)의 '총수(蔥秀)'의 오기인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1권 〈황해도(黃海道) 평산도호부(平山都護府)〉에 총수산(蔥秀山)은 부의 북쪽 30리에 있으며 총수관(蔥秀館)은 중국 사신이 머무르던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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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새벽안개가 진시(辰時 오전 7~9시)까지도 짙게 깔려 있었다. 해가 뜰 무렵에 조겸(趙傔)·홍 첨지(洪僉知)와 서로(西路)31)로 길을 떠났다. 길을 나설 즈음에 죽을 먹고 술을 마시며 참봉과 백건(伯健) 형제와 작별하였다. 말에 올라 사현(沙峴) 전석치(磚石峙), 창릉(昌陵)32) 여현(礪峴),33) 신원(新院)34) 망실치(望賓峙)를 넘어 고양(高陽)까지 5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벽제(碧蹄)·헌음령(憲陰嶺)35)·세류점(細柳店)·신점(新店)을 거쳐 파주(波州) 읍내까지 가서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절구 한 수를 읊었다.서관의 아름다운 풍광 들은 적 있어(西關佳麗飽曾聞)안개 속 채찍을 울리며 백문36)을 나왔네(霧裡鳴鞭出白門)지금 떠나는 향산 천 리 길(此去香山千里路)풍광이 어찌 그리 듣던 대로인가(風光何似所云云)해가 질 무렵에 일행이 상재(喪災)가 생겨 머물 객점에 들어갔는데, 고을 수령이 또한 나와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홍 첨지가 하루 종일 크게 취하여 속된 말을 지껄이니 그 고민스럽고 위태로운 상황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주인집 안방을 얻어 피하여 잠을 잤다. 다행히 별 탈이 없었다. 曉霧至辰時量大塞矣。 平明與趙傔及洪僉知, 作西路之行。 登程之際, 食粥飮酒, 遂別參奉及伯健兄弟。 上馬踰沙峴 磚石峙、昌陵 礪峴、新院 望賓峙, 至高陽五十里, 朝飯秣馬。 自碧蹄、憲陰嶺、細柳店、新店, 至波州邑內留宿。 是日行百里。 口吟一絶, "西關佳麗飽曾聞, 霧裡鳴鞭出白門。 此去香山千里路, 風光何似所云云。" 黃昏時分, 有一行喪災, 入所住之店, 而主官亦出來, 只隔一牕, 而洪也終日大醉, 肆發俚語, 其苦悶危凜之狀, 不可言。 艱得主者內房避宿, 幸得無事耳。 서로(西路) 평안도와 황해도, 즉 관서(關西)와 해서(海西)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창릉(昌陵) 예종(睿宗)과 그의 계비 한씨의 능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龍頭里)에 있다. 여현(礪峴) 홍은동네거리에서 은평구 녹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이 고개 석벽에 자연동(自然銅)인 속칭 산골이 산출되므로 산골고개라 하고, 여현이라고도 불렀다. 신원(新院) 서울 서초구 원지동과 신원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조선시대에 새로 이곳에 원(院)을 설치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신원동의 서북쪽에 위치하였으며, 새원이라고도 하였다. 헌음령(憲陰嶺) 1864년에 편찬된 《대동지지》에 따르면, 한양에서 의주까지 연결된 간선도로인 의주로(義州路)는 병전거리를 지나 유대소록반현(踰大小綠礬峴)-양철평(梁鐵坪)……벽제역(碧蹄驛)- 헌음령(憲陰嶺)-세류점(細柳店)……. 등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저본의 '瑞'는 '憲'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백문(白門) 본래 서남방의 별칭으로, 도성의 서문이나 남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백(李白)의 시 〈양반아(楊叛兒)〉에 "어느 곳이 사람들 맘 가장 끄는가, 까마귀가 우는 백문 버들이라네.[何許最關人, 烏啼白門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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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이른 새벽에 말에게 꼴을 먹이고 길을 나서 10리 임진강에 이르니 날이 비로소 밝았다. 말 위에서 시 한 절구를 읊었다.파평관 밖 새벽 닭 우는 소리에(坡平館外聽晨鷄)첫 새벽 찬 서리 밟고 십리 길 갔네(冥踏寒霜十里蹊)채찍질하며 곧장 임진강을 건너는데(鳴鞭直渡臨津水)고개 돌려 고향 바라보니 시야가 아득하네(回首鄕關望眼迷)또 한 수를 읊었다.왕성을 보장37)하는 백 리 고을(保障王城百里州)서쪽 경기에 진을 쳐 거대한 요새로세38)(西畿鎭作大咽喉)하늘은 뜻이 있어 기이한 형세 늘어놓았는데(天應有意排奇勢)땅은 어찌 무심히 명승지를 묻는가(地豈無心問勝區)어지러운 세상엔 산하가 나라의 보배요(世亂山河爲國寶)화평한 시절엔 풍물이 사람을 노닐게 하네(時和風物供人遊)긴 강은 참호요 바위는 성가퀴가 되니(長江爲塹巖爲堞)북쪽 오랑캐 황금 채찍 던지지 못하노라(北虜金鞭不敢投)동파(東坡)를 지나 장단(長端)에 이르렀다. 대개 그 산천의 기세가 매우 밝고 고와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고장이니 정승 집안의 분묘가 곳곳에 있었다. 덕수(德水)39)와 도라(道羅),40) 진봉(進鳳)41)의 산을 바라보니, 여러 백악이 모두 완만하고 부드러워 사랑스러웠다. 멀리 송악산(松嶽山)을 바라보니 웅려하고 삼엄하여 하늘을 찌를 기세가 삼각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장대하고 원대한 기운은 나은 듯하였다. 오산(烏山)에 이르니 안개가 주막에서 50리까지 짙게 깔려 있었다.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인 다음 판문(板門) 취적교(吹笛橋)와 탁타교(橐駞橋)를 건너 남대문으로 들어갔다. 인가가 즐비하였으나 집들이 매우 좁았다. 주막집에 들어가 탁주 한 사발을 마시고 바로 만월대(滿月臺)42)에 올랐는데, 그 무너진 담과 부서진 주춧돌 등 보이는 것마다 온통 황량하였다. 마침내 절구 한 수를 읊었다.오백년 전 고려의 궁궐 만월대에(五百前朝滿月臺)풀 시든 저물녘 멀리서 지팡이 짚고 왔네(夕陽衰草遠笻來)백마 타고 주나라로 조회 가는 길 아니지만(雖非白馬朝周路)가던 길 멈추고 옛 슬픔에 젖어보네(留作行人感古哀)채찍을 재촉하여 청석동(靑石洞)43)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凌晨秣馬登程, 至十里臨津江, 日始開東矣。 馬上口占一絶, "坡平館外聽晨鷄, 冥踏寒霜十里蹊。 鳴鞭直渡臨津水, 回首鄕關望眼迷。" 又吟一律, "保障王城百里州, 西畿鎭作大咽喉。 天應有意排奇勢, 地豈無心問勝區。 世亂山河爲國寶, 時和風物供人遊。 長江爲塹巖爲堞, 北虜金鞭不敢投。" 過東坡, 至長端。 盖其山川氣勢, 極甚明麗, 爲吾東之第一勝鄕, 相家墳墓, 處處有之。 望見德水、道羅、進鳳, 諸白岳諸婉軟, 可愛。 遙見松嶽, 雄麗森嚴, 其揷天氣勢, 似不及三角, 而長遠之氣似勝矣。 至烏山, 交烟撥所幕五十里。 朝飯秣馬, 過板門, 至吹笛橋橐駞橋, 入南大門。 人家雖擳比, 而但其家舍制度, 甚狹窄矣。 入酒家飮一盃濁醪, 直上滿月臺, 見其類垣敗礎, 滿目荒凉矣。 遂吟一絶, "五百前朝滿月臺, 夕陽衰草遠笻來。 雖非白馬朝周路, 留作行人感古哀。" 催鞭至靑石洞留宿。 是日行百里。 보장 '보장(保障)'은 국가를 보위(保衛)하는 성벽이나 기반이 되는 지역이란 뜻으로, 위정자가 백성을 잘 보호함으로써 백성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든든한 울타리로 삼을 수 있게 하는 공적을 가리킨다. 거대한 요새로세 원문의 '인후(咽喉)'는 목구멍과 같은 곳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要塞)의 땅인 요충지를 말한다. 덕수(德水)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과 대화면에 걸쳐 있는 덕수산을 말한다. 도라(道羅) 옛 장단군 중서면(中西面), 진남면(津南面)에 있는 도라산을 말한다. 임진강을 경계로 북한지역이며 고려 왕조의 수도 개경(開京)과 이웃하는 곳에 위치해 고려문화권에 속한 지역이다. 도라산에 대한 명칭은 《신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리(東國輿地志)》등의 문헌상에는 '都羅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道羅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도라산과 관련된 구전 기록에, 고려 충렬왕이 때때로 이 산에 올라가 놀이를 즐겼는데 그 때마다 꼭 궁인(宮人) 무비(無比)를 데리고 갔으므로 사람들은 무비를 가리켜 '도라산(都羅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진봉(進鳳) 개성의 동남쪽에 있는 진봉산을 말한다. 저본의 '封'은 '鳳'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만월대(滿月臺) 경기도 개성시 송악산(松嶽山)에 있는 고려 시대의 궁궐터이다. 919년(태조2) 정월에 태조가 송악산 남쪽 기슭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창건한 이래 1361년(공민왕10)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될 때까지 고려 왕들의 주된 거처였다. 청석동(靑石洞) 황해도 금천군(金川郡) 고동면(古東面)에 있는 청석골[靑石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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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蔡峴【自雀臺洞三里】 石路炎塵擁馬頭洞天霞氣正幽幽登高忽望長江色頓減行人一半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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泛舟昭陽江【毛津江下流自武陵潭十里】 錦繡江山表裏參錯平原廣野漠漠無涯【卽牛頭坪】周流海山又一壯觀信可謂東都好風水嗟乎古之貊人亦能有眼目也夫但漠漠廣野不能種稻只以黍粟爲業可欠津頭有春川外倉距邑十餘里云江柳瘦疎秋色多輕舠不住疾如梭昭陽亭上歸心急一任篙人蕩槳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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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昭陽亭 亭在山腰下臨長江飛甍矗棟縹渺如畵楣上題江山第一亭憑危檻聽江聲飄然有雲外想北望牛頭之野漠漠蒼蒼詩家眼目更覺一層快活所過樓臺之勝殆無過於此者淸陰先生評品儘是着題壁上又多昔賢題咏〇梅月堂詩曰鳥外【缺】將盡吟邊恨不休山【缺】從北轉江自向西流【缺】下沙汀遠舟迴古岸留何時抛世綱乘興此重游〇白洲詩曰扁舟笳鼔下昭陽按使歸裝錦一囊借問水邊觀我者古來曾有此猖狂〇退漁詩曰昭陽江水抱高樓十月樓讀客子游百里郊原臨故國千家山郭背雄州搜羅景物三杯酒滌蕩興亡萬古愁更喜泉甘兼土美移家擬卜瀼西頭〇次楣上韻秋江停棹上危樓借得行人半日游從古沃饒稱貊國至今佳麗在春州平分大野千牛健倦過遙山百鳥愁謝眺不來謫仙去空欄怊悵坐搔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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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飛仙亭 昭陽亭之西一層蒼壁間又有六角亭曰飛仙如䳡鷯借一枝捿甚偪窄僅可容身而眼光與昭陽亭不殊使人登臨亦可謂飄飄有遺世之想〇次梅月堂昭陽亭韻無主淸虛境任吾行且休遠山能蘊藉疎柳尙風流往跡雲何在逝光水不留飛仙寧有別只可借遨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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憩保安驛【丹邱屬郵自昭陽亭五里】 所謂丹邱屬郵㧾何蕭蕭瑟瑟忽見春川候吏來饋廚饌或懲於曩日安昌站而然耶冷淡荒郵過去丞怪他廚供客盤登迺知前鑑安昌在欲作良醫可折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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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江亭和壁上韻【在邑東一里許】 石壁崔巀縹渺一亭阧臨大江楣上多前修題咏而唯曺夏望詩獨步云其詩曰淸冷浦口鳥飛還梅竹難尋野草間從古越中三讓地秪今江上九疑山梨花且莫春添月杜宇應悲夜度關白世人情如昨日無心天地太虛閒錦水無情去不還小亭依舊住人間落花危石層層壁古木寒雲黯黯山往事有塵終未滅浮生與酒且相關今宵只幸東風早杜宇寥寥客夢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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