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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憩奧中邑店【幷小誌】 冠盖之行草草寄宿於茆店二夜自愧差員之卑簿而亦可認奧邑之貧寒也東道危於蜀石嶺何硉矹斷崖懸飛瀑輿馬太臲卼神林停鞚靭酒泉解巾襪薄酒龍井院戒駕又俄忽短鞭神如電不俟千榾柮鍊丹句漏客蒼茫到百奧奧俗頗勁悍嚇哄鬪郵卒偪側如蝸店二宵隱未歇自憐轅下駒羈縻堪咄咄移步上山亭春風砭詩骨黯黯官樹東落花錦江筏古松荒凉祠芳草悽悵碣漠漠魯陵西夜雨長薇蕨山僧報何德逃俗空斷髮欲上泰華巓啼鳥愁林樾老石會稽南寒雲但浮沒何處是蓬萊神僊跡恍惚雖有好江山終非舊宮闕至今杜宇恨千劫海不竭染血餘痕在寂寂花爛發秪見奉命臣年年一趨謁紀行索有筆甲寅春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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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過刻恨峙【幷志二首】 峙在淸冷浦之西自寧越邑來往楊淵驛捷徑也松林茂密石路險截上下山坂殆近十里淸冷浦口舍小舟遆肩輿而登東望錦水刀山稽華蓬萊淸秀嫋娜歷歷可數西眺楊淵倉廨郵村錯雜相因田野樹木頗不草草停輿騁矚足爲舒鬱而但魯陵在近又淸冷浦可憐之濱也悵感一緖更難自裁峙名古云角汗余故以刻恨改之且極高也或以覺寒稱之叢林亂石大江西十里懸崖一路迷黯黯沙村芳艸宿蒼蒼水驛淡烟捿人飛木末遙聞語馬立雲中只見蹏可笑丹邱爐下物今朝忽化小山鷄【右上山】二年緣業越之西巷柳谿花眼弗迷峰圻江腰仍綠野煙消石角久寒棲人離危壁軒軒脚馬到平原特特蹏牛酒勞行前路在郵徒且莫費村鷄【右下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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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밤을 새고 닭이 울 무렵에 눈이 비로소 개었는데 호랑이의 피해가 많은 곳이어서 일찍 출발하지 못하였다. 행인들이 모두 말하기를, "중원(中原)의 호랑이가 강을 건너와 안주(安州) 경내에서 죽인 사람의 수가 5~60명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먼동이 틀 무렵 길을 떠나 안주 읍내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를 한 다음, 백상루(百祥樓)62)에 올랐다. 백상루는 성의 서쪽께에서 청천강(晴川江)과 안주성 안의 천만 호 집들을 굽어보고 있으니, 참으로 빼어난 모습이었다. 마침내 절구 한 수를 지었다.서쪽 변방 빼어난 경관 참으로 끝이 없어(西塞奇觀儘不窮)안주에서 또 백상루의 풍광 얻었어라(安州又得百祥樓)청천강은 난간을 휘감고 넘실넘실 흘러가고(晴川繞檻鳴濤漲)묘향산은 난간에 임하여 자욱한 안개 떠 있네(香嶽臨軒積氣浮)부벽루 아래로 시원스레 툭 트여 거침이 없고(爽豁不居浮碧下)월파루 끝은 웅장하고 드높음 독차지하였네(雄高剩占月波頭)전생 인연에 행여 이런 강산 있었던가(夙緣倘有江山否)우리 동방 최고의 명승지 맘껏 보았도다(看盡吾東最勝區)망일문(望日門)으로 나와 청천강을 건너 수종점(樹宗店)까지 60리를 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날이 이미 저물어서 그대로 묵었다. 達夜鷄鳴時, 雪始霽, 而虎患大盛, 不得早發。 行人皆言, "中原之虎, 渡江而來, 安州一境殺人, 迨五六十命"云。 開東登程, 至安州邑內, 秣馬療飢, 遂上百祥樓。 樓臨城西, 俯壓晴川江, 及城中千萬家, 儘勝區也。 遂吟一律, "西塞奇觀儘不窮, 安州又得百祥樓。 晴川繞檻鳴濤漲, 香嶽臨軒積氣浮。 爽豁不居浮碧下, 雄高剩占月波頭。 夙緣倘有江山否, 看盡吾東最勝區。" 自望日門出, 渡晴川江, 至樹宗店六十里朝飯, 日已夕矣, 因留宿焉。 백상루(百祥樓)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에 있는 고려 시대의 누정으로 청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백상루란 이름은 여기서 백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다 볼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 하는데, 예로부터 관서팔경 중 으뜸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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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동틀 무렵 출발하여 노복과 말을 영변(寧邊)의 주인집으로 먼저 보내고는 시종 혼(混)과 대동루(大同樓)에 올라 두루 살펴본 뒤에 이어서 연광정(練光亭)54)에 올랐다. 사방 벽에 걸린 제영시(題咏詩)가 선배들의 저술(著述)이 아닌 것이 없었는데, 그 풍 중에 "긴 성벽 한 면55)에는 넘실넘실 흐르는 물이요, 큰 들판 동쪽 언저리에 점점이 솟아 있는 산이로세.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56)라는 시구는 참으로 그림으로 그려낸 듯하였는데, 큰 글자로 새겨 두 기둥에 붙여 놓았다. 마침내 절구 한 수를 읊었다.하루에 서쪽으로 백 리 길 달려왔건만(一日西驅百里餘)단군 기자 묵은 자취 이미 페허가 되었네(檀箕陳跡已丘墟)높다란 성은 천년을 흘렀고(高城閱劫千年後)넓은 벌판엔 시월 초순의 서리가 내렸네(大野經霜十月初)얼어붙은 먼 포구에 돛 그림자 차갑고(遠浦氷生帆影冷)물에 비친 장림의 언덕 풍경 멀도다(長林水落岸容疏)고요히 기댄 난간 옆으로 강물은 흘러가는데(欄頭靜倚江聲立)빼어난 경치 졸필로 다 형용하기 어렵구나(勝槩遍難拙筆書)다시 성 위의 영명사(永明寺) 부벽루(浮碧樓)에 올라가 모란봉(牧丹峯)과 을밀대(乙密臺)를 보고, 능라도(凌羅島)와 백운탄(白雲灘)이 보았다. 마침내 성 바깥쪽으로 강을 따라 내려오는데 석벽이 우뚝 솟아 있고, 가운데에 '청류벽(淸流壁)'이라 새겨져 있었다. 큰 강을 굽어보니 길이가 10리 남짓 되었다. 장도문(長渡門)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니 여염집이 즐비하여 송도보다 나았는데, 대개 그 내룡(來龍)57)이 매우 완만하여 한 곳도 높은 봉우리가 없고 모두 평지행룡(平地行龍)58)의 지세였다. 영주인 집에서 아침을 먹고 부벽루에서 〈삼연(三淵)〉59)의 시에 차운하였다.평양이 좋다는 말 예전부터 들었노니(昔聞平壤好)하루아침의 유람 하늘이 빌려준 것이라(天借一朝遊)산세는 황량한 벌판을 담아내더니(山勢容荒野)물빛은 높은 누각에게 양보하였네(水光讓高樓)누대에 머물며 을밀을 불러보고(臺留招乙密)우뚝한 벼랑에 서서 맑은 강물을 굽어보네(壁立俯淸流)기이한 경치 따로 있노니(別有奇觀處)텅 빈 강의 달빛 배를 가득 채우네(江空月滿舟)칠성문(七星門)60)에서 나와 채 1리(里)를 못 가 송림 안 기자묘(箕子墓)61)로 들어갔다. 묘 앞에 작은 비각(碑刻)이 세워져 있고, 기자묘 좌우에는 각각 두 석인(石人)을 세웠다. 묘 뒤에는 작은 돌을 세워 두었으니, 이것이 바로 용미(龍尾)임을 알 수 있다. 마침내 뒤 기슭에서 큰길로 나와 순안(順安)까지 50리를 갔다. 말에게 꼴을 먹이고 길을 나서 청치천점(晴雉川店)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60리를 갔다. 平明離發, 先送奴馬於寧邊主人家, 遂與混傔, 上大同樓周觀後, 因上練光亭。 四壁題咏, 無非前輩著述, 而其風則所謂, "長城西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一句眞畵出矣, 以大字刻之, 付兩柱之中矣。 遂吟一律, "一日西驅百里餘, 檀箕陳跡已丘墟。 高城閱劫千年後, 大野經霜十月初。 遠浦氷生帆影冷, 長林水落岸容疏。 欄頭靜倚江聲立, 勝槩遍難拙筆書。" 自城上又上永明寺、浮碧樓, 見牧丹峯、乙密臺望, 見凌羅島、白雲灘。 遂自城外沿江而下, 石碧斗起, 中刻淸流壁, 俯臨大江, 長可十里餘。 自長渡門, 入見城中, 閭閻櫛比, 優勝松都, 而盖其來龍甚婉嫩, 無一處高峯, 都是平地行龍矣。 朝飯於營主人家, 於浮碧樓, 次三淵韻, "昔聞平壤好, 天借一朝遊。 山勢容荒野, 水光讓高樓。 臺留招乙密, 壁立俯淸流。 別有奇觀處, 江空月滿舟。" 出自七星門, 未滿一里餘, 自松林中, 入箕子墓。 墓前立小碑刻, 箕子墓左右, 各立兩石人, 墓後立小石, 是知爲龍尾也。 遂自後麓出大路, 至順安五十里。 秣馬登程, 至晴雉川店留宿。 是日行六十五里。 연광정(練光亭) 대동강변 덕바위(德巖)에 있는 정자로 고구려 때 세워진 이래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장방형 평면의 누정 두 채가 ㄱ자 모양으로 붙은 형태다. 관서8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풍치가 빼어나다. 긴 성벽 한 면 저본의 '西'는 '一'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이 글귀는 연광정의 서쪽 주련에 쓰인 고려 때 장원(壯元) 김황원(金黃元, 1045~1117)의 <부벽루시(浮碧樓詩)>이다. 김황원이 부벽루(浮碧樓)에 올랐다가 이전 사람들의 제영(題詠)들을 취하여 모두 불살라 버리고 이 한 연(聯)을 얻었는데, 날이 다하도록 잇지를 못하자 통곡하며 내려왔다고 한다. 김황원(金黃元, 1045~1117)이 부벽루에서 보는 황홀한 절경을 "긴 성벽 한쪽 면에는 늠실늠실 강물이요(長城一面溶溶水), 넓은 벌 동쪽 끝으로는 띄엄띄엄 산들일세(大野東頭點點山)"라고 시를 써내려 가다가 다음 시구가 떠오르지 않아 한심스러워서 통곡하며 붓대를 꺾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부벽루의 승경을 보고 지은 미완성의 시 두 연이 연광정 주련에 원문과 번역문으로 걸려 있다. 내룡(來龍) 산맥이 시작되는 곳을 가리키는 풍수 용어이다. 평지행룡(平地行龍) 행룡(行龍)은 풍수지리에서, 높고 낮은 산이 멀리 뻗어 나간 산맥을 이르는 말이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이다.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김창집(金昌集)과 김창협(金昌協)의 동생이다. 형 창협과 함께 성리학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1689년(숙종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진도의 배소(配所)에서 사사되자 형들과 함께 경기도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문집에 《삼연집》, 저서에 《심양일기(瀋陽日記)》, 《문취(文趣)》 등이 있다. 칠성문(七星門) 평양 모란봉(牧丹峯)에 있는 성문으로, 전형적인 고구려성이다. 현재의 문루는 조선 숙종대에 개수한 것이다. 을밀대(乙密臺) 쪽에서 등성이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성벽과 만수대에서 북쪽으로 뻗은 성벽을 어긋나게 쌓고, 그 두 성벽 사이에 가로세워 성문을 세웠다. 기자묘(箕子墓) 고대 기자 조선의 시조인 기자(箕子)의 묘로, 평양시 기림리(箕林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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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虓兒 別離今六載猶是八齡兒靑着嗟新色黃卷宛昔時半生吾易老一去爾何知此夜無端夢分明晝所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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戱和吳德峰善【營門季氏】觀漲韻 此水平分可蓄冬十年秧事不愁農桑麻忽失蒼蒼陌島嶼遙看泛泛峰壯氣掀天來萬馬吼聲飜海鬪千龍筆瀾一日如相助快洗詩家苦澀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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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答使相書 伏承下書伏審潦熟氣體候萬安春堂台監體節泰平並切伏慰下忱下官身姑如昨而臺啣內遷非徒恩感無比三年滯淹之跡終當有歸家之日矣南望歸雲不覺爽豁但恨種種趍拜之餘將有告別之期下懷預切悵觖少選晉謁姑不備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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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答李參判根友書 昨拜告歸經宿茹恨卽伏承下書仍伏審夜來軆宇萬安伏慰下忱侍生身姑印昨而歸裝漸束不覺浩然但念潦天石路衝炎向南極爲關心際玆下惠五摺足可以逐火雲而引淸風矣一分動搖時便當有十分感誦其所銘佩匪直爲物那更有從容陪穩之時否臨楮只增下懷忡悒餘秪祝軆內諸節循序康旺不備伏惟台下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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往立石有感【玉果】 十載朋樽似隔晨小齋懽謔卽靑春雲歸星散俱何去秪有南隣一老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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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楊淵驛復用前韻【幷小志】 外面看過村樣不甚冷薄賴倉宇而然歟楊柳郵村小港西傍田籬落路依迷陌頭纖草山尨戱屋角枯松野鶴棲南土客聽東土語今年馬踏去年蹏支離十里蒼靑下容易花陰唱午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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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宿江村朴斯文東一家【昌平】 急雨滂滂半日程小驢愁濕過昌平重來蹌跡江村屋濁酒香蔬未了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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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歇鷰川梁斯文必弘家【昌平】 君家五鴈㧾平安軟話深樽一席團風味着於田畝否茅簷非復舊時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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憶鄭蘭下海明 松江之後玉堂兒禿首窮經不遇時消下一生唯以酒積中千緖或爲詩貧於有道非其恥坐若無心豈曰痴塵外雅襟誰共話十年季湖叟獨能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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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與小溪拈韻相和趙斗南寅奎亦至【戊午正月初十日】 一年空繫漢南橈恰受狂塵漲似潮雪打荒茅緣外店月明修竹夢中橋朝衣欲試新春至臘酒方醒故國迢飛絮欲隨風上下黏泥不作舊參寥得失鷄虫兩掃除屠蘇酒煖故人盧春回萬木仍更始夜寂千家卽太初一會江南前夢否新詩月下後身如憑君欲試精多少强讀蠅頭燭影書春宵春酒兩相溫未闋陽春又一翻蒼漠犬聲鍾後店參差樹影月中村西溪健筆神如助南郭高文眼不昏回笑鈍人多有殘燈惺惺醉鄕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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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대아(大衙)에 머물렀다. 폭설이 내리고 몹시 추웠다. 留大衙。 大雪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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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오늘은 바로 약산(藥山)65)의 서장대(西將臺)66)에서 성조(城操, 성에서 하는 군사훈련)하는 날이다. 일단 천주사(天柱寺)67)로 들어가 잠시 쉬면서 추위를 피한 뒤, 채찍을 재촉하여 서장대로 올라갔다. 서장대는 약산(藥山)의 제일봉(第一峯) 서쪽에 있는데, 평안도 전역을 높이 누르고 있고 그 터가 매우 견고하여 철옹(鉄瓮)이라는 호칭에 딱 들어맞았다. 시력(視力)이 비록 미치지 못하지만 저 땅의 산천이 지척에 있는 듯하고, 북쪽으로는 묘향산(妙香山)68)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청천(晴川)을 내려다보았다. 가없이 너른 들판은 무릎 아래에 펼쳐져 있고 뭇 봉우리는 첩첩히 쌓여 마치 돌을 포개 놓은 것 같았다. 이날 3천 병마를 거느리고 성 위에 도열하여 종일토록 무예를 연마하였다. 마침내 율시 한 수를 읊었다.관서에서 일찍 약산이 명성을 드날렸으니(西關夙擅藥山名)기모69)가 남긴 정채 귀신의 도끼로 이루어진 것이리(氣母留精鬼斧成)넓은 벌판에 그 누가 천 자나 우뚝 서는 것을 다투랴(大野誰爭千尺立)끝없는 하늘에 만년토록 혼자서 지탱하였네(長天獨任萬年撑)형세는 제일가는 금성탕지70)의 요충지이며(形便第一金湯地)보루와 장벽71)은 둘도 없는 철옹성이라(保障無雙鉄瓮城)성상은 변방을 향한 근심 잊지 못하여(聖主邊憂猶不忘)태평 시대에도 군대를 단련시키네(太平時節鍊軍兵)밤 2경에 호령하고 횃불을 들어 올리니 멀리서 보면 화성(火城)과 같았다. 잠시 뒤 불이 꺼지자 파진(罷陳)하였다. 영감(令監)과 모든 사람들이 내려갔는데, 나는 서운사(捿雲寺)에 가서 묵었다. 是日卽藥山西將臺城操日也。 先行入天柱寺, 暫憩禦寒。 遂催鞭上西將臺, 則臺在於藥山第一峯之西, 而高壓平安一道, 其基址甚固, 鉄瓮之號, 眞得題語也。 眼力雖不及, 而彼地山川, 如對咫尺, 北望香山, 西瞰晴川。 大野無邊膝下, 羣峯磊磊, 若累石之狀。 是日率三千兵馬, 羅列城頭, 終日鍊武。 遂吟一律, "西關夙擅藥山名, 氣毋留精鬼斧成。 大野誰爭千尺立, 長天獨任萬年撑。 形便第一金湯地, 保障無雙鉄瓮城。 聖主邊憂猶不忘, 太平時節鍊軍兵。" 夜二更, 號令擧火, 遠若火城。 稍間掩火, 因罷陳, 令監及諸人皆下去, 而余則往留於捿雲寺。 약산(藥山) 조선 태종실록에는 "약산은 사방이 높고 험하고 바위들이 깎은 듯이 서 있어 하늘이 만든 성이라고 일컬으며, 의주와 삭주, 강계 등 여러 고을 중에서 군사를 모으기에 적당한 곳"으로 기록돼 있다. 서장대(西將臺) 장수가 올라서서 지휘할 수 있도록 산성 서쪽에 높이 만든 대를 이르던 말이다. 천주사(天柱寺)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 약산 동대(東臺)의 동남쪽에 있는 절이다. 1684년(숙종10) 창건하였으며, 1722년(경종2) 중수하였다. 진달래가 온 산을 덮는 봄철에는 약산동대와 천주사가 꽃구름 속에 떠 있는 듯하다 하여 예로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불렸다. 묘향산(妙香山) 묘향산은 원래 영변군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향산군(香山郡)으로 분할되었다. 주봉은 비로봉(毘盧峰)이다. 기암과 괴봉 등 명승풍치가 둘레 160km나 되는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다. 원래 연주(延州) 고을에 속한 산이라는 뜻에서 '연주산'이라고도 하고 바위들이 유달리 희고 정갈하다는 의미에서 '태백산'으로도 불렸는데, 산세가 기묘하고 수려하여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특히 누운 향나무가 많아 사철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산이라 하여 11세기부터 묘향산이라 하였다. 기모 기모(氣母)는 만물을 생성하는 근본이라는 의미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복희(伏羲)가 자연의 대도(大道)를 터득하여 기모(氣母)를 가지게 되었다.[伏戱得之, 以襲氣母.]"라 하였는데, 그 주석에 '기모'는 '원기(元氣)'라고 하였다. 《남명집(南冥集)》 <원천부(原泉賦)> 금성탕지 원문의 '금탕(金湯)'은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준말이다. 금으로 조성한 성과 끓는 물이 흐르는 해자라는 뜻으로, 견고한 성지를 말한다. 《한서》 권45 〈괴통전(蒯通傳)〉에 "반드시 성을 고수하려면 모두 금성과 탕지로 만들어야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보루와 장벽 원문의 '보장(保障)'은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돌이나 흙 등으로 만든 견고한 보루와 장벽을 말한다. 춘추 전국 시대 조(趙)나라 간자앙(簡子鞅)이 윤탁(尹鐸)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양(晉陽)을 다스리게 하자 윤탁이 "세금을 많이 거둘까요, 보장(保障)이 되게 할까요?"라고 물으니 간자(簡子)가 보장이 되게 하라고 답한 고사가 있다. 《十九史略通攷 卷1 春秋戰國時代》 《通鑑節要 卷1 周紀 威烈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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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비가 내렸다. 근동에 가서 또 한 수의 의(義)를 지었다. 저녁에 함께 한동(翰洞)에 가서 글을 논하고 왔다. 雨。 往芹洞又做一義。 夕間同往翰洞, 論文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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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비가 내렸다. 화옥이 와서 만나고 갔다. 오후에 여러 젊은이들과 종루(鐘樓)에 가서 백등(百燈)을 구경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비를 맞고 오다가 의복이 모두 젖었으니, 한탄스럽다. 雨。 華玉來見而去。 午後與諸少年, 往鍾樓觀百燈, 而回路雨作。 冒雨而來, 衣巾盡濕, 可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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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에 가서 치회(穉會)를 만나고, 반촌(泮村)으로 길을 돌려 화옥을 만나고 왔다. 早食後, 往鑄洞見穉會, 轉向泮村, 見華玉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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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공생(孔生)이 찾아와서 종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갔다. 孔生來見, 終日談話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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