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泛舟東津江【燕岐地自三街十里】 潦後一江呑納野水眼中蒼壁白沙渾成汗泥正使詩老興嘆所過處禾黍之阡何多蕩析惜乎冥冥野渡杳如嵐小艇容人可兩三點綴愁雲猶不盡亂山何處是江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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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烟室 廚宇高廣有鐵釜甑大可炊百斗米廚有竈而無堗一云廚下有水故熱火無烟此說誠然空門廚屋俗傳奇釜甑能容百斛炊有火無烟方外理九泉惟許蟄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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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啄井 寺舊無井有靈烏來啄從而得水因以爲井四面石甃如小方塘淺淺不滿一尺而水常淸洌無滓上履以屋石泉如斗四稜平淺水無泥鏡面淸地秘天慳千古脉得於烏有一先生◌初三日庚戌淸又風◌朝發楡岾寺十里隱仙臺中火【以上高城支應】十里鴈門嶺【高城准陽兩邑交境祥雲銀溪兩驛相遞】二十里摩訶衍宿所【准陽支應◌府使李彙奎文通政方往於禮安本第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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船潭【自楡岾三里】 楡岾之西山回一局飛湍瀑流之下有石匯尖而長如船形石面刻船潭又多游人題名臨潭俯仰亦可叫奇【石刻題名】◌椒泉翁詩曰石逕信笻到潭船繫客心水聲鳴墜葉秋色滿空林洗壁名留刻班荊意轉深仙人何處在遺跡杳難尋飛流千尺下石臼受如船呼喚傳誰嘴敲推惱我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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曉雲洞【自船潭復路數里】 百折層流邊石腰往往凹屈指路僧義聰曰曾有九龍蟄臥此洞五十三佛以法術燋熬一壑龍爲所逐歸臥山外淵中今九龍淵是也曉雲云者取龍歸曉洞雲猶濕之意云正堪一噱盤石多廣平色如練可愛游人題名亦或有之九龍躍何去屈曲石腰奇荒唐衲子設令我尙然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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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宿通口倉村【金城外倉自斷髮嶺三十里】 渡萬川橋以來所過羣山摠無顝子精神秪是土饅頭一樣無可開眼處峽路物色且未免蕭疏剝落就其中一片通口之地山開野濶大川橫流倉廨閭屋不甚冷淡差可以消遣路愁倉廬雜錯背山陰大野長川不斂襟版籍傳來通口號古人嘉錫豈無心〇初九日丙辰朝大霧而晝晴〇朝發通口三十里昌道驛【銀溪屬郵〇察訪崔尙儒文】中火三十里金城邑宿所【作廳下處〇以上終日金城支應〇主倅以新除授數日前赴任云】夜入縣衙與主倅穩話敍數月阻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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霧中發通口 過境山川別無奇趣雖闔眼經過亦何妨也蓬仙偏欲後於吾凈洗纖霞一點無若使數旬似今日枉將裙屐費工夫空空色相頓忘吾滿地蒼靑看却無可惜金剛後來客應虧半日大工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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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함께 머물렀던 염상(鹽商)에게 짐을 지게하고 동틀 무렵에 출발하였다. 낙수(洛水)에 이르러 공서와 헤어지면서 절구 한 수를 읊었다.객지에서 우연한 만나니 기약했던 것보다 기쁜데(客地偶逢勝有期)중양절이라 누런 국화꽃마저 한창이네(維當重九菊花時)한 달 남짓 함께 고생하여 서운한 맘 사무치니(月餘同苦猶餘愴)이별에 임하여 다시 석별의 시를 읊노라(臨別還成惜別詩)공서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중도에서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만나(中路相逢以不期)저물면 머물고 새벽에 길 떠나기를 각각 때를 따랐네(夕留晨發各隨時)동행하여 동종의 정의가 배나 간절한지라(同行倍切同宗誼)이별에 임하여 몇 구의 시를 읊어보노라(臨別吟來數句詩)또 내가 한 수를 읊었다.다리 가 갈림길에 흰 구름이 일어나고(別路橋邊起白雲)낙엽 진 이별의 정자에서 헤어짐이 애석하네(離亭葉下惜相分)재삼 우두커니 서서 앞으로 가는 길 물어보고(再三立立前頭問)강가로 고개를 돌리며 어서어서 가시라 하네(回首江頭早早云)공서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고개 돌려 남쪽 팔영산의 구름 바라보다(回首南看八影雲)걷고 걷다 낙수에 와서 함께 온 길 갈라지네(行臨洛水路相分)동쪽 강물 하나의 띠처럼 넘실넘실 흘러가는데(東流一帶洋洋去)누구에게 이별하는 심회의 장단시를 말할거나(誰與離懷長短云)그길로 작별하였는데, 천리 길을 함께 고생을 한 뒤라서 그 서운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길을 재촉하여 낙안의 기동(基洞) 어귀 정문등(旌門登)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주막 앞에서 여러 차례 이경오(李敬五)를 불렀는데 끝내 답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기별을 통하게 하였으나 경오(敬五)는 출타 중이고, 그의 대인(大人, 경오의 아버지)이 문 앞에 서서 내가 바로 지나가는 것을 알고는 내게 그 집에 들어가 묵어가기를 청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쁜 탓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령(西嶺)을 넘어 추동(楸洞) 주막에 이르렀다. 염상(鹽商)과 서로 헤어지고 나서 짐을 지고 벌교 시장 근처에 이르러 윤동(輪東) 군직(君直) 씨를 만나서 동행하였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밤을 틈타 용전(龍田) 무안(茂安) 댁에 들어가 유숙하고 나서야 비로소 집안 소식을 알게 되었다. 우선 별탈이 없다고 운운(云云)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90리를 갔다. 負卜於同留鹽商, 平明發抵洛水。 與公瑞相分, 仍吟一絶曰: "客地偶逢勝有期, 維當重九菊花時。 月餘同苦猶餘愴, 臨別還成惜別詩。" 公瑞次曰: "中路相逢以不期, 夕留晨發各隨時。 同行倍切同宗誼, 臨別吟來數句詩。" 又吟一絶曰: "別路橋邊起白雲, 離亭葉下惜相分。 再三立立前頭問, 回首江頭早早云。 " 公瑞次曰: "回首南看八影雲, 行臨洛水路相分。 東流一帶洋洋去, 誰與離懷長短云。" 仍與作別, 千里同苦之餘, 其懷難抑。 促行抵樂安 基洞前旌門登療飢。 於幕前頻呼李敬五, 則終不答, 故使人通奇, 則敬五出他, 其大人立于門前, 知余之直過, 請余入于其家留宿而去云云, 而以行忙之致, 不得入去, 越西嶺, 抵楸洞酒幕。 與鹽商相分, 仍爲負卜, 抵筏橋市邊, 逢輪東 君直氏, 仍爲同行, 日已暮矣。 乘夜入龍田 茂安宅留宿, 始知家間消息。 姑無故云云, 幸幸。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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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해가 뜰 무렵 행장을 꾸려 천노를 보냈다. 平明治送千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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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노구암(老狗巖)에서 점심을 먹고 전주(全州) 부내(府內)에서 묵었다. 가서 김 동지(金同知)를 만나 16냥의 돈을 남겨 주고 항선(缸鐥)을 사 오도록 하였다. 中火老狗巖, 宿全州府內。 往見金同知, 留贈十六兩錢, 使貿缸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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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증산(甑山)에서 점심을 먹고 오수(獒樹)에서 묵었다. 中火甑山, 宿獒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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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삼례(參禮)에 이르자 비가 내려서 머물렀다. 우연히 장성(長城)에 사는 벗 임후장(林厚長)을 만나서 동행하였다. 至參禮, 雨作因留。 偶逢長城 林友 厚長, 因與同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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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밤에 눈이 내렸다. 새벽에 출발하여 임실(任實)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고개를 넘어 간신히 현동(玄洞) 송기렴(宋基濂)의 집을 찾아갔으나 기렴은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그 아들 전(椣)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돈학문적(遯壑文蹟)》을 보고자 하였다. 그 문적이 모두 신안서원(新安書院)61)에 있다고 하므로 신안서원(新安書院)에 이르렀다.신실(神室)은 동서로 나누어 만들었는데, 서실(西室)은 주부자(朱夫子)의 영정(影幀)을 걸어 쌍창(雙窓)으로 여닫게 되어 있고, 동실은 돈학(遯壑) 송경원(宋慶元, 1419~1510)·신재(新齋) 한호겸(韓好謙, 1535~1579)·만회당(晩晦堂) 한필성(韓必聖, 1625~1691)·홍운정(鴻雲亭) 한명유(韓鳴愈)·거묵당(巨墨堂) 송시태(宋時態) 등 6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신실(神室)은 새로 만들어 깨끗하였지만 서원의 사당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어진 이를 사모하는 도리가 매우 개탄스럽고 애석하였다. 참배하고 봉심(奉審)한 뒤에, 송연영(宋延英)과 한원택(韓元宅)에게 요구하여 문적(文蹟)을 보여 달라고 하였더니, 전주의 이 생원(李生員)이 지난번에 가지고 갔다고 하였다. 문적을 볼 수 없으니,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대로 길을 나서 대곡(大谷)의 송낙철(宋洛哲) 집에 이르러 묵었다. 20리를 갔다. 夜雪。 曉發抵任實邑內朝飯, 越嶺艱尋玄洞 宋基濂家, 則基濂出他, 不得相面, 只與其子椣暫敍, 欲見《遯壑文蹟》矣。 其文蹟盡在新安書院云, 故抵新安書院, 則神室分作東西, 而西室則掛朱夫子影幀, 以雙窓開閉, 東室則宋遯壑、韓新齋、晩晦堂、鴻雲亭、宋巨墨堂六賢妥靈之所也。 神室則新創鮮明, 而院貌尙未成樣, 其於慕賢之道, 甚爲慨惜。 參謁奉審後, 要宋延英及韓元宅, 欲見文蹟, 則全州 李生員, 頃來持去云, 故不得尋見, 可歎耳。 仍爲發程, 抵大谷 宋洛哲家留宿。 行二十里。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으로, 1588년(선조21)에 신재(新齋) 한호겸(韓好謙)의 문하들이 스승을 위해 세웠으며, 정유재란으로 불탄 것을 1669년(현종10)에 다시 복립하였다. 처음에는 이서(李舒, 1332~1410)와 한호겸만을 봉안하였으나, 1788년(정조12)에 사림들의 결의에 따라 돈학(遯壑) 송경원(宋慶元), 만회당(晩晦堂) 한필성(韓必聖), 홍운정(鴻雲亭) 한명유(韓鳴愈), 거묵당(距墨堂) 송시태(宋時態)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훗날 김수(金洙)·강백진(康伯珍)을 추가하여 모두 8현을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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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會洞【潭陽地主人南斯文觀周】 綠溪穿竹路依迷峒裏茅村見不齊舊識新知一燈下座談楓岳到三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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度講亭里 噴雪殷雷水落舂圍村禾積泛重重尋常過路猶堪愛煙月昇平畵有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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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簧山【玉果】 阿兄七耋樂何如三子治田一子書煖屋抱孫無箇事上顔春氣十分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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霧中過項村 草鞋珍重度長提野色山光咫尺迷十室黃茅何處是溪舂指路自高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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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用前韻和有鉉【景三】宗人【六月初十日】 賴爾新詩坐得泉飛來石溜洗茶筵還羞白髮三千丈誤染紅塵二十年盥水薇陰零玉露悟心檀瓣裊香煙昏眸忽似金篦刮水氣冷冷夜未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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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石下霞村拈淸詩和三疊【六月初四日】 雲色疎簷水色除小樓如艇客如漁一驢山外行無徑百鳥林中托有廬挽得西暉評酒頌點看南雨憶農書淸風忽與騷人至此日無端欲步虛欲雨溪風獵獵過鰕簾演漾細生波千塵缺界人何老萬木斜陽鳥自歌芳草送年令太半榴花經夜又無多窮通一理從誰問只欲秉搓上泛河小明穿破半庭陰新月如鉤屋角臨石下詩非寒士骨山南屐有故人心靑燈試腕毫猶健白酒澆腸活更深牢守一宵相恐失不嬚簾罅露華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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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兀望峴【自通口十里】 霧色迷茫裏隱隱看過絶壁下水光彷彿如瓮遷相近而驟聽駭浪觸石砰訇海金剛駕航餘怕忽復生於肩輿上可笑霧光如海路依迷珍重肩輿遞馬蹏自笑敲推成宿痼瓮遷懸壁較高低肩輿盪漾似浮航碧眼濛濛坐望洋衝石怒波生耳郭夢魂重過海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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