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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하여 금계(金溪)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북기(北機)에서 묵었다. 未明發行, 至金溪中火, 宿北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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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하여 소사(素沙)에서 점심을 먹고, 진위(振威) 읍내에서 묵었다. 未明發行, 至素沙中火, 宿振威邑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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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동틀 녘에 길을 떠나 오산(烏山)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옛 수원(水原)에 들어가 멀리 원소(園所)를 바라보고, 화산(花山) 용주사(龍珠寺)8)에 들어가서 절을 두루 살펴보니 매우 사치스럽고 아름다웠다. 잠시 말에게 꼴을 먹이고, 화옥(華玉)의 시에 차운하고 절구 한 수를 지어 베꼈다. 성진(性眞) - 1자 원문 결락 -9) 성진은 바로 흥양(興陽) 금탑사(金塔寺)10)의 승려인데, 이 절에 와서 머물면서 부처와 승려를 공양(供養)한다고 하였다. 시는 다음과 같다.먼 길을 돌아 천 리를 왔으니(迂路來千里)화산에서 성진을 찾아가 보리라(花山欲訪眞)진정한 도인 석장을 날리고 떠났기에11)(眞飛錫杖去)마음속에 품은 사람 만날 수 없어라(不見意中人)원운(元韻)은 다음과 같다.영주12)에서 온 그대(爾自瀛州至)화산에서 참된 본성을 길렀네(花山養性眞)나 또한 영주의 선비요(我亦瀛州士)- 1, 2자 원문 결락 - 13)(□□塔上人)마침내 채찍을 재촉하여 신수원(新水原)에 이르니 촌락이 조밀하고 인물이 번화함이 작년 봄보다 갑절이나 더했다. 또 영성(營城)의 역사(役事)로 돌을 운반하여 길 좌우에 늘어놓은 것이 10여 리에 걸쳐 있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 군포천(軍布川)에서 묵었다. 平明啓行, 至烏山療飢。 入舊水原, 望見園所, 入花山 龍珠寺, 周觀梵宇, 最極侈美矣。 暫爲秣馬, 次華玉韻, 咏一絶寫性眞養□。 盖眞也, 卽興陽 金塔僧也, 來住此寺, 爲供佛僧云, 詩曰, "迂路來千里, 花山欲訪眞。 眞飛錫杖去, 不見意中人。" 元韻, "爾自瀛州至, 花山養性眞。 我亦瀛州士, □□塔上人。" 遂促鞭至新水原, 村落之稠密, 人物之繁華, 有倍於昨春。 又營城役運石, 列置於路之左右者, 彌亘於十餘里矣。 中火後, 宿軍布川。 용주사(龍珠寺) 조계종의 절로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화산에 위치해 있다. 이 절은 신라 말기인 854년에 염거화상(廉巨和尙)이 지었고, 원래 이름은 갈양사(葛陽寺)였다. 고려 때인 10세기에 확장되었다. 조선 정조 때에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서 정조의 명으로 18세기에 다시 지어졌다. 1자 원문 결락 원문은 '性眞養□'인데, '養'도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금탑사(金塔寺)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에 있는 절로, 신라 선덕 여왕 6년(637)에 원효가 창건하였다가 정유재란 때에 소실된 것을 왕순(王淳)·궁현(窮玄) 대사가 중건하였다. 응진이……가버렸으니 원문의 '응진(應眞)'은 범어(梵語)인 나한(羅漢)을 의역(意譯)한 말로, 진도(眞道)를 터득한 사람을 뜻하며, '석장(錫杖)'은 스님의 지팡이를 말한다. 석장을 날린다는 것은 곧 옛날 고승 은봉(隱峰)이 오대산(五臺山)을 유람하고 회서(淮西)로 나가서는 석장을 던져 공중으로 날아서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전하여 승려들이 정처 없이 이리저리 행각(行脚)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游天台山賦)'에 "진정한 도인은 석장을 날려 허공을 밟고 다닌다.[應眞飛錫以躡虛]"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주 영주(瀛州)는 흥양(興陽)의 별칭으로, 고흥(高興)을 말한다. 그 외 고양(高陽)이라고도 한다. 1, 2자 원문 결락 원문은 '□□塔上人'인데, '塔上人'도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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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비가 내렸다. 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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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 날이 샐 무렵 길을 나서 천안(天安) 읍내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비할 데 없이 추웠다. 채찍을 재촉하여 성환(成歡)까지 90리를 가서 묵었다. 質明登程, 至天安邑內中火。 日寒無比。 催鞭至成歡九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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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맑았다. 일찍 밥을 먹은 뒤에 차동(車洞)에 가서 비로소 황해 감사[海伯]의 기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날 몹시 추웠다. 晴。 早飯後往車洞, 始知海伯之奇。 是日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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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추웠다.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注洞)에 가서 종인(宗人)들을 만나고 날이 저문 뒤에 나왔다. 寒。 食後往注洞見諸宗, 日暮後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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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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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날씨가 계속 화창하여 겨울철 같지 않았다. 이날 합동(蛤洞)에 가서 윤 남포(尹藍浦)를 보고 왔다. 日氣連和, 不若冬節矣。 是日往蛤洞, 見尹藍浦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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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아침을 먹기 전에 근동(芹洞)에 가니 백건(伯健)이 요기 거리와 술을 마련하여 보내주었는데, 가난한 집에 폐를 끼치니 도리어 편치 않았다. 밤에 뇌우가 퍼붓고 우박이 내렸다. 朝前往芹洞, 伯健備療飢及酒而饋之, 貧家貽弊, 還爲不安, 夜雷雨電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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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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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날씨가 매우 싸늘하더니 저녁 이후부터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日氣甚陰冷, 自夕後風雪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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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아침 전에 본가(本家)의 서간을 찰방 이용(李墉)에게 전하려 했으나, 아침을 먹은 뒤에 곧바로 들어왔으므로 마두(馬頭)55) 영리(營吏)인 김서목(金瑞穆)을 통해 비장소(裨將所)56)에 들어갔다. 이 찰방(李察訪)을 만나 한참 동안 조용히 이야기한 것은 대개 순찰사(巡察使)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순찰사가 일찍이 《장릉지(莊陵誌)》를 교정(校正)했으니 《장릉지》 안에 수록된 충강공 사실(忠剛公事實)을 알고 있을 것이기에 알아보고 싶다는 것과 몇 줄의 발문(跋文)을 청하려 한다는 뜻을 찰방에게 전하였다. 찰방이 말하기를, "내사(內使)가 순찰사께서는 지금 신병(身病)을 앓고 있어서 들어가 뵐 수가 없다고 합니다."라고 하므로 《서재행록(西齋行錄)》만 두고 주인집으로 나와 이 찰방(李察訪)의 기별을 기다렸다. 종일토록 기별이 오지 않으므로 저녁을 먹은 뒤에 영소(營所)에 가서 마두를 불러 함께 비장소(裨將所)로 갔으나 찰방이 잠자리에 들어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주인집으로 돌아와 머물고 있는데 김노(金奴)가 발병으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누워서 치료하고 있다 운운하였다. 朝前傳本家書簡於李察訪 墉, 則食後卽爲入來, 故因馬頭營吏 金瑞穆, 入裨將所, 見李察訪。 移時穩敍者, 盖欲見巡相, 而巡相曾已校正《莊陵誌》, 則相想必知誌中所載忠剛公事實, 故欲爲探知。 且請數行跋文之意, 言及於察訪, 則察訪言, "內使道適患身恙, 未得入見云", 故只留《西齋行錄》, 而出來主人家, 以待李察訪之奇矣。 終日不來, 故夕食後, 往營所要馬頭, 偕往裨將所, 則察訪就枕, 不得更見。 還來留主人家, 而金奴以足疾, 不得運動, 故因臥治療云云。 마두(馬頭) 역마(驛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말한다. 비장소(裨將所) 비장은 막비(幕裨)·막객(幕客)·막빈(幕賓)·막중(幕中)·좌막(佐幕)이라고도 하는데, 감사(監司)·유수(留守)·병사(兵使)·수사(水使) 등에 딸린 막료(幕僚)를 가리킨다. 조선 후기에는 의주·동래·강계·제주의 수령 및 방어사를 겸한 모든 수령들이 비장을 거느리는 것을 규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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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이 많이 내려서 종각(鍾閣)의 큰 길에도 행인(行人)이 전혀 없으니 시정(市井)에서 장을 열지 못하였다. 마침내 근래 없던 큰 추위가 닥쳤다. 風雪大作, 至於鍾閣大道, 全無行人, 市井不得開市。 遂爲挽近所無之大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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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어제보다는 날이 조금 풀렸는데 아직도 몹시 추웠다. 稍解於昨日, 而猶爲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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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대곡(大谷)의 형님과 증아(曾兒)가 동행하여 용전(龍田) 무안(茂安) 댁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大谷兄主及曾兒同行, 抵龍田 茂安宅留宿。 行三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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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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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광천(廣川)에서 아침을 먹었다. 용계(龍溪)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다음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曉發抵廣川朝飯。 抵龍溪中火, 抵谷城邑內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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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草【自溫井三十里】 山路雖甚崎嶇乃是魚鹽一路往往有孤店記一堠以屈皮覆屋如小庵子左右巖巒自洞門漸脫黲黯之色半蒼半白楓林如錦燁爛照頹約行二十五里許有六花巖洞天軒豁自六花巖北穿五里許有三仙臺萬丈峭削或如佛塔或如旗銊或如甲冑重重羅列石色差黃有鱗間多貴人題名攀緣而登北望萬物草萬疊屛障都是銀花玉雪玲瓏可賞但千回巖壑無一派溪流惜哉上又有新萬物草云而腸枵跗軟竟未窮搜可帳巖凹裏偸看東海遠色亦可謂新奇○椒泉翁詩曰森羅萬象各形容氷鏤玉雕雪又峯不必尙奇眞假別也應所好此心從明月初出滄海窟四空片片纖雪白白雪欲下窮山陰萬木先集霜華色自是良工寫眞時廣張邊幅費心力未到佳境筆如弄揮灑半粉又半墨君不見千古奇絶溫井嶺一石元無黮黭石過境頓袪烟火氣或蒼或白層層壁觸目婀娜叢篁綠照顔燁爛楓林赤犬吠鷄唱蒼茫邊五里一堠荒店闢木皮爲屋菁爲田魚鹽一路通賈客滑磴迷葉纔容足奈我一生烟霞癖漸入眞境三十里手拄枯笻理輕屐六花巖上搜眞面三仙臺上踏層脈佛塔重重旗銊森千仞萬丈矗穹碧太上上頭無數屛不染丹靑新裂帛玉田銀海紛玲瓏洞天開朗判幽僻八百羅漢現眞像三千宮娃露粉額颯爽翻驚雪飛候輝映更疑月明夕無端繪素何稠疊厥初化翁太戲劇世人强名萬物草較長說短評品格嗟我安能摸髣髴歸來秪合紀游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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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十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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