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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允實 駿善衰相益甚。精神氣魄。大非前日比。而加以同志如難窩松沙。皆捨我先逝。在二公。離苦海而歸樂國。豈不是得計。而後死者。安得不痛心。居常忽忽。無意於人世。以此益知不久於世也。惟杜門省愆。以惜餘日。而從前悠泛。老又懶廢。只自悲歎而已。示喩學問之業。昔非不足。而執禮過恭。若有求助者然。豈學如不及惟恐失之之意耶。甚先甚善。破鼎漏器之云。如吾老却者。可以當之。賢者豈有是哉。千萬努力。勇往直前。前頭自有坦蕩之地。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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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吳義養【直敎○乙卯】 遠承問書。知與崔仁宇同苦。甚善甚善。所讀見在壁經。此是聖賢初出之書。於斯得力。則旁及群書。無不迎刃而解矣。用工節度。無貪多務得。而字究其義。句尋其旨。使聖賢之言。瞭然於心胸之間。乃眞讀書。乃眞實獲。不待吾言。而孜孜下工。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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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吳義養【戊午】 淸溪喪故。聞極錯愕。今年是險歲。孰謂此家偏遭酷禍耶。所示旣是常禮所闕。則惟當權而得中。而素昧變禮。何敢上下於其間哉。但舅亡於子婦喪十日。則其舅已成服矣。而旣無主喪。則不得已以從子奉祀之意。告于舅氏几筵。而主其祀。似不違於禮意。而節節順便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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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曲潭【靑壼淵上流】 龍耶石耶腰何屈曲衲子能玄談龍云不見石此山曾臥無曲水空留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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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아침 먹기 전에 자윤(子允)과 계성사(啓聖祠)35)로 가서 김팔주(金八柱)를 만나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별하고, 경모궁(景慕宮)36)으로 내려와 수문장(守門將) 장인원(張仁源)이 출번(出番, 당직 근무를 마치고 나옴)했는지를 물으니 아침 일찍 출번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곧바로 파천동(波川洞) 그의 집으로 갔는데, 밥을 먹고 출타한 터라 만나지 못해 몹시 아쉬웠다. 이 사람은 홍원(洪原)37) 사람이다. 무침교(無沈橋)38)의 진사 송현재(宋顯載) 집에 찾아갔는데,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회동의 송 장성을 만나 전주 북문의 송민수 서간에 답장을 받고자 한다고 말하니, 공교롭게 몸이 아파서 답장을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대로 작별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작별한 뒤에 낙동(洛洞)의 구백(舊伯) 이광문 집으로 와, 잠시 만나고 나서 작별하였다. 용동으로 오니 자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간소(開刊所)의 여러 사람과 작별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아침을 먹은 뒤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확교(確橋)39)의 송 판서 집에 들렀으나, 송 판서가 출타하여 작별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아들 송지학(宋持學)과 작별하고 나와 주인집으로 왔다. 차동(車洞)40)으로 가서 민 석사와 작별하고 오니 공서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에 정동의 석사 이혜길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이 저무는 바람에 출발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그러므로 저녁을 먹고 난 뒤 정동에 와서 묵으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갔다. 저녁을 먹은 후 정동으로 갔다. 밤에 비가 내렸다. ○朝前, 與子允往啓聖祠, 見金八柱, 移時談話。 仍爲作別, 下來景慕宮, 問張守門將仁源出番與否, 則早朝出番云。 故直向波川洞其家, 則食後出他, 故仍爲不見, 悵悵。 此人卽洪原人也。 尋往無沈橋宋進士顯載家, 則適出他不見, 來路入晦洞見宋長城, 以完北宋民洙書簡受答爲言, 則適以身病不爲修答云。 仍爲作別。 下來宋持淳家, 作別後, 來洛洞舊伯李光文家, 暫見後, 仍爲作別。 而來龍洞, 則子允來待矣。 與開刊所諸人作別, 來主人家。 朝飯後, 往貞洞暫話。 來入確橋宋判書家, 判書適出他, 不得作別。 只與其子持學作別, 出來主人家。 往車洞與閔碩士, 作別而來, 則公瑞來待矣。 午後貞洞李碩士惠吉來訪談話, 以日暮之致, 不得發程, 仍留。 故夕飯後, 來留貞洞之意, 懇托而去。 夕食後, 往貞洞。 夜雨。 계성사(啓聖祠) 서울시 문묘(文廟) 안에 공자(孔子) 등 다섯 성현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이다. 경모궁(景慕宮)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그의 비(妃) 헌경왕후(獻敬王后)의 사당이다. '경모전(景慕殿)'이라고도 했다 홍원(洪原) 함경남도(咸鏡南道)의 남부해안 중앙에 위치하는 군이다. 무침교(無沈橋) 서울시 중구 예관동과 충무로5가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청계천의 지류인 묵사동천(墨寺洞川)에 있던 다리로 '물에 잠기지 않는 다리'라는 의미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와 <수선총도> 및 <슈션전도>에는 이 다리 이름이 '상무침교'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무침교와 상무침교를 혼용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명 '무침다리' 혹은 무침교를 줄여서 '침교'라고도 불렀다. 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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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침에 나와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애초 일찌감치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궂은 날씨 탓에 그대로 아침을 먹었다. 종일 비가 그치지 않았다. 오랜 가뭄 끝에 이렇게 단비가 내리니 매우 기쁘고 다행이다. ○朝出, 來主人家。 初以早發爲定矣, 以雨戱之致, 仍朝飯。 終日雨不止。 久旱之餘, 得此好雨, 忻幸忻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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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아침 먹기 전에 들어가 장석(丈席)을 뵈었다. 일행이 장석을 만나고자 하였으므로 먼저 얼굴을 돌려 나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일행과 들어가 장석을 뵙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옥이 《충열록(忠烈錄)》 1권을 드렸다. 그길로 하직하고 나와 출발하였다. 신탄(新灘) 저자 주변에 이르러 기주(欺酒)를 사서 먹었다. 신탄을 건너 유성(油城) 저자 주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성전(星田)52)의 집성사(集成祠)53)에 들러 참배를 하고 봉심(奉審, 사당을 살핌)을 하였다. 곧 주부자(朱夫子)와 송우암(宋尤菴) 두 선생의 영정이었다. 주부자의 영정 위에는 '문공 회암 주선생 진상(文公晦菴朱先生眞像)'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암의 영정 위에는 '문정공 우암 송선생 진상(文正公尤菴宋先生眞像)'이라고 쓰여 있었다. 봉심하고 난 뒤에 강당으로 나와 잠시 쉬고 나서 출발하였다. 산정령(散亭嶺)을 넘어 척후(尺後) 주막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천 리 먼 노정을 멀다 않고 찾아오니(千里長程不遠尋)선연히 남은 영정이 예나 지금이나 같네(分明遺像古猶今)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 참배하니 비루한 마음 없어지고(趨庭瞻拜消鄙吝)저절로 천추토록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네(自發千秋敬畏心) ○朝前, 入謁丈席。 同行欲見丈席, 故先爲旋容出來。 朝飯後, 與同行入謁, 移時談話。 汝玉納《忠烈錄》一卷。 仍爲下直而出來, 發程。 至新灘市邊, 買欺酒以食。 越新灘, 抵油城市邊午飯。 歷入星田集成祠, 參謁奉審。 卽朱夫子、宋尤菴兩先生畵像。 如朱夫子影幀上, 書文公晦菴朱先生眞像;尤菴影幀上, 書文正公尤菴宋先生眞像。 奉審後出來講堂, 暫憩後登程。 越散亭嶺, 抵尺後酒店留宿。 行五十里。 吟一絶曰: "千里長程不遠尋, 分明遺像古猶今, 趨庭瞻拜消鄙吝, 自發千秋敬畏心。" 성전(星田) 대전시 유성구 학하동 별밭 마을이다. 집성사(集成祠) 선조 혹은 선현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곳으로 사당, 사우라고 한다. 고려말 주자학이 도입되면서 향촌 교화 정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 특히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 주희를 모시는 사당이 많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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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밥을 먹은 뒤 10냥을 개간소에 냈다. 저녁 무렵 관정동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뒤 정동으로 가 이혜길 집에서 묵었다. ○食後, 持十兩錢納刊所。 夕時還冠井洞。 夕飯後, 往貞洞留李惠吉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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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밥을 먹은 뒤 여러 벗과 종루로 갔다. 비 때문에 발이 묶여 저녁때까지 비가 개기를 기다렸다. 나는 정동으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食後與諸益往鍾樓, 滯雨夕間待霽。 余則入貞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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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아침 전 북문 밖 송약수(宋若洙) 집으로 가니 형제가 모두 없어서 도로 주인집으로 왔다. 아침을 먹기 전에 읍인 박광옥(朴光玉)이 관원을 데리고 부중(府中)으로 찾아왔다. 아들이 보낸 편지를 열어보니 집안은 별고 없고 14일에 손자를 낳았다고 하였다. 우리 집안의 경사로 아주 큰 행운이었다. 예전에 서울에 있을 때 꾼 꿈과 점괘가 실로 헛되지 않았다. 밥을 먹은 뒤 율지와 함께 영주인(營主人)129) 집으로 가서 흥양 하인을 만났다. 돌아서 남문 밖으로 가서 류석하(柳錫夏)를 찾았는데 마침 출타하고 없었다. 그길로 동문으로 들어가 북문으로 나왔다. 마침 종인(宗人, 먼 일가) 상준(相俊)을 만나 송약수 씨 형제가 들어왔는지를 상세히 물으니, 오늘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노자가 부족해서 김제의 이 상인(李喪人)에게 1냥을 꾸었다. 그길로 출발하여 동문(東門)을 나와 법사산(法司山)의 노원(魯源) 집으로 가서 유숙하였다. 회동의 일가 송 장성의 서간을 전하고 여산의 석회 채굴을 금하는 일에 대해 상의하였는데, 11월 시사(時祀) 때 각처의 일가와 상의하여 소장을 올리겠다고 하였다. ○朝前, 往北門外宋若洙家, 則兄弟皆不在, 還來主人家。 朝飯前, 邑人朴光玉陪官行來, 府中來訪。 傳家兒書披覽, 則家中無故, 十四日得男孫云。 吾家之慶, 極爲大幸。 向日在京時, 夢中與占理, 實不虛矣。 食後, 與聿之往營主人家, 見興陽下人, 轉向南門外, 訪柳錫夏, 適出他 仍入東門出北門。 適相俊宗人, 詳問5)若洙氏兄弟入來與否, 則今日不入云, 故還來主人家。 以路貰之不足。 推一兩錢於金堤李喪人。 仍爲發程, 出東門, 往法司山魯源家留。 傳晦洞長城宗氏書簡, 相議於礪山禁灰事, 則至月時祀時, 與各處宗人相議入呈云。 영주인(營主人) '영저리(營邸吏)'라고도 하며, 감영(監營)과 각 고을의 연락을 맡아보는 아전을 말한다. 問 저본에는 '聞'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상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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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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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行錄 辛丑十月十日發行。十九日抵長龜洞謁勉菴。寒暄後。具告所以來之意。勉菴曰年年見訪。荷意良勤。而責以不敢當之事。以吾友厚眷。何不量至此哉。誠可瞿然。余拱而曰。當今之時。此等文字。捨丈席何以哉。仍奉進明谷先祖文集。而兼致禮單數種。勉菴看墓銘記誌等篇畢。留置案上曰。明日更究如何。退與雲齋敍久阻之懷。積歲相逢。喜可知也。二十日又閱先稿。因論出處之義。遇時旋歿之恨。及諸賢痛惜之事。勉菴曰如公眞稀世人物。而纔登鳳池。遽摧玉樹。此豈非當世與後世之不幸哉。是夜陪宿。夜間呼余而曰。君今侍下。親年幾何。余起而對曰。老慈春秋七十六歲。而氣力凜凜。久曠誠難。生今遠離。或有夢寐紛擾時。不能成寢。起坐達曙者屢矣。勉菴曰安得不然。吾於中年。妄論時政。猝被行譴。萬里嶺海。豈望生還。思親一念。夙宵靡懈。幸有家兄。左右顧養。而西日漸迫。若草負霜。聖恩如天。雨露偏沾。父子相見。只祝堯筭而已。旣而出身許君。目見國家危亡之狀。憂愛之心。按住不得。復發危言。視鼎鑊爲歸。而尙寬王法。荐棘絶島。一身之生死。在所勿論。而親年益邵。就養無人。意謂不得復見老親顔面矣。幸得蒙恩放還。杜門謝世。侍側怡愉。庶可以少伸烏鳥之私。而誠孝淺薄。志物之養。未得如意。反不如竭力耕田以供甘旨之爲愈。奄哭風樹。痛恨靡逮。至今追思。無非悔懊處也。余作而曰。以先生篤孝。猶出此言。豈以曾子之孝爲有餘哉。勉菴笑曰。此等過論。不敢當之。夜與雲齋閱華西集。拈一律以呈丈席。二十日同看華西論理氣數條。余曰華翁之於蘆翁。幷世而生。不得一面爲可恨。然其論理氣鑿鑿相合。如曰理之爲主爲師。氣之爲客爲役。此是不謀而同處。勉菴曰華西平日。尊慕先儒。講明義理。幷行而不相悖。故所見。或有不合於先賢處。昔重菴曰華西詩平淡典雅。眞有德之言也云云。華西長胤槐園。文章富贍。於理氣源頭。洞見本領。如得享壽。則當大鳴於世。惜其中壽而止耳。嘗見華西出行時。槐園兄弟陪行。至數里許。皆辭拜於馬頭。重菴亦隨而同拜。華翁遽驚以爲過擧。重菴不以爲過云爾。二十二日雨雪。是夜勉菴曰。連夜寒處。莫無有損否。余對以無傷。勉菴曰君氣質可謂剛壯。而今已至於衰境。須將攝調養也。二十四日。與雲齋又拈華西集韻一律以唱酬。是日起草先集跋與序視之曰。如有未妥處。勿爲謙讓。隨所見指示爲好。余以初頭起辭及中間數節。仰稟。勉菴卽爲手筆隨改。晦日至石里。謁立齋相公。相公喜曰。遠來相訪。良苦良苦。復言國計民隱之無可奈何。有愀然色。留半日。觀大全數十板後辭退。相公曰何時相見乎。余答以篤老侍下。不可預期。而明春則隨機圖來矣。相公笑曰。九十老人。朝夕難保。明春相見。不其迂歟。初一日往拜淵齋。淵齋曰離家幾日。余對曰來路歷訪勉翁。留七八日。抵石里拜尊叔父相公。留一日而來矣。寒喧後。問湖南諸處。有天主敎堂云。一線陽脉。何以得保。君輩處地。亦云難矣。余拱而對曰。此非難處之事。彼爲彼我爲我。彼雖倡肆。而於我何關。然亦多有可憂處。淵齋曰安得不然。余進而問曰。或有相知之人。流入彼邊。則拒而絶之不難。而不無後慮。處之當如何。淵齋曰此則不然。必須敬而遠之。使彼自疎爲好。處今之世。持身之道。不可過爲矯激君須念之哉。搜諸案上。出視闢邪文一度曰。近來頗覺憂憤弸中。竊記所懷也。因浪讀一遍訖曰。世道如是。良可歎也。翌日又視所著溪堂雜稿二卷。手自披閱。讀牧隱墓表及前後疏章曰。吾所欲言者。何止於此。自留中不下之後。噤不出語矣。復使余讀與金判書鶴鎭書曰。此吾平日所懷。而當途素無相識。偶與金台有雅契。如是頗括。得無爲時輩所笑乎。余曰金尙書於時輩。初不關涉者耶。淵齋曰此則心中無開化也。間抽雲坪集。擇其祭文及寄金相國宋性潭書與遊山錄諸篇而曰。雲坪氣盖一世。文瀾汪洋。非塵世間人。嘗遊九月山。浪吟而坐。有無名葉。自空來墜所讀冊子上。雲坪書老母在三字。此葉飛向空中。人皆謂仙人見招也。其拜執義也。門人曰今此恩命。逈出非常。且早於尤翁拜此職之年。後來超拜。必先於尤翁之時矣。雲坪曰安知此爲終職。後果驗。夜深後欲退。淵齋曰盍少留談論乎。仍問羅州風土與古今人物曰。林錦湖之於退溪。氣象不侔。而趣味相合。追想其諧謔笑傲。氣岸豪爽。眞間世人物。惜其被禍最酷也。翌日又讀巍巖集數十板。余曰此老文章。未之前見。今來奉讀。眞可謂滂沛逢源矣。但於南塘互相攻擊。便成一戰場於儒門。不瑕有損於忠告善道之義耶。淵齋曰此則不然。南塘誤見理氣。偏執已見。其勢不得不爾也。又抽農巖集數卷。讀過書疏諸篇曰。農巖學問儘精邃。而三淵則觀其與仲舅書。多有過處矣。仍論儒賢出處。上及三隱事。余作而問曰。三隱出處。世皆有疑。未知何如。淵齋曰圃隱立節。固無可疑。而栗谷則以不死於廢禑之時。故謂無儒者氣象。退溪則以耘谷出處爲是。似不滿於圃隱也。若牧隱頗有可疑處。冶隱則上博士箋一書。不免後人之譏也。余曰興廢之際。士君子處義甚難。淵齋曰何難之有。余曰設使不幸而當此。則何以定筭。淵齋曰苟不怕死。則處之不難矣。余又問懷德山水。最著一國。國朝以來。儒賢世出。可謂炳靈矣。淵齋曰此亦難知也。懷德雖稱名勝。旌招史官。世不乏絶。而儒賢則皆非懷鄕胎地也。尤翁則沃川九龍。同春則漢都。性潭則公州太田。剛齋則安東九潭。吾伯父則昌平芝谷。櫟泉秋陽錦谷。亦生於外家及他處矣。偶及東西老少分裂之事。淵齋曰吾則以尼尹爲昏弱底人。怵禍之極。只知有已己之變在前。不知有甲戌更化在後。若知有甲戌更化。則豈有是理。雖然不可知者有之。方其辭都憲疏。有臣師以罪人。栫棘濟州。義不可冒受云。此誠可怪雞鳴後退。十一月四日朝後告歸。淵齋曰連日談論。極爲多幸。聞君有老慈。勢難久留甚悵。前日余寫進五七各一律。淵齋曰詩則好矣。而全不着題於吾。夫詩者。不失本題以後可也。此詩豈非失題乎。吾今無力可和。終當構思。則當書示耳。又問孟子浩然章。孟施舍似曾子。北宮黝似子夏。子夏之篤實。豈有彷彿於黝者耶。淵齋曰此則北宮黝之養勇不動心。篤實而無惑故如是耶。君讀孟子。何處最佳。余曰孟子一書明訓若浩然好辯答景春問等諸篇。無非佳處。字究其義。章搜其脉。則因未能也。淵齋曰吾則以爲弔者大悅。悅字非佳耶。自反而縮。縮字非好耶。此則一章大旨也。以直養。皆本於此矣。淵齋勉菴。氣象各自不同。淵翁則語及時事。辭氣悽慘。有悲傷底意。勉翁則語及時事。聲色俱厲。有憤懣底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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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遊錄 庚子九月十二日。同族弟德初【門善】瑞正【禎善】攜一驢發行。蓋將謁淵齋宋祭酒勉菴崔尙書兩丈。以請先世文字也。間關七八日。抵長龜洞拜勉菴。則頗有欣款。因稟都事公狀德之文。勉菴不禮辭而卽諾。少選。同門金顯玉自三山而來。積歲相握。其喜可掬。二十一日。勉菴出示先師神道碑銘草本曰。自知文字萎弱。不敢下手於此等大文字。而旣不敢終辭。僅成草本。一本則送于松沙。一本則送于艾山。使之刪正矣。今君與山石適來。相與商確。少有未安。幸有以見敎也。余辭不敢。勉菴笑曰。於尊輩。固非難事。而亦何敢有諱於我哉。余與山石審視。指摘數三處而言。則快受無吝許之意。二十二日。出示墓銘草本。而使余刪定。余拱手而對曰。當初仰請狀文。今以墓銘成文。似是鄙生辭不達意而然也。勉菴曰何難改定也。二十三日朝。八請息蔭堂文集序。勉菴亦受而不辭。余與山石瑞正次講會韻。夜又述懷一律。翌朝仰呈。則構賞數三甚愧悚矣。是日庇仁申斯文桂亦來。斯文卽文節公後。與吾有先戚。相對甚款。兼和一律而敍懷。夜又輪講。二十六日入辤。先生曰。連日講論。誠爲多幸。如此團會。誠不易得。或更留一日耶。余答以篤老下不敢曠省之意。卽爲辭退。則勉菴出門外遠望矣。山石子衣服單寒。余解袷衣一件而贈之。二十九日到沃川支石里。謁領府事立齋宋公。公年今八十四。而體貌康寧。余告以昔年甲戌。陪先集來謁。公曰今始記得其聰明。不比常人。因問緣何而三人幷來乎。余起而對曰。先祖都事公行狀。迄未有託。願先生幸垂一言之重。以爲光寵若何。公笑曰九十老人。連見喪慽。方寸憒亂。且素以愚慷。一無見存。何敢議到耶。然都事公文字。尙可得見乎。余使瑞正出冊于以呈。則覽過一遍曰。此丈於農巖。可謂服勤至誠矣。余辭以行向遠溪之意。十月一日。到遠溪定舘。適金斯文禹植在。使之將命。三人隨後而入拜。淵齋溫而有威。氣象甚偉。向余而言曰。遠來相訪。此意良勤。有甚事故耶。余起而對曰。道路稍遠。不能趁時問候。而中心悅服則久矣。再昨年南中行次時。距鄙生所居不遠故。將往拜候。則行駕已發向朗州。不果趨謁。今年聞有茅川講會之行。卽發向楚山。則行次已還。至今悚仄矣。且因族孫錫烈。所製送鄙先祖明谷集序文。竊不勝感幸。淵齋曰君是此丈腳下耶。又擧鶴田公。【爀∘曺夏望文集毁板時。爲儒疏頭。】而問之。則德初對曰。侍生卽其孫也。淵齋頗欣慰焉。余又跪而請曰。侍生之七世祖松洲公及桐江公從兄弟。及於大老門下矣。淵齋曰大全中有往復書耶。余曰侍生未得大全全帙而見。雖未能詳知。而往復則有矣。余問近世壇享。比比創起。未知此禮果無所損於義乎。淵齋曰吾不知之。問於創禮者可也。大抵自上有掇享之敎。而今此壇享。事甚苟且。使先賢享非禮之食可乎。又問柳基一設壇家後。以堯爲主壁。以明太祖配享。此是合禮乎。淵齋曰此尤所未曉處。至於明太祖。倣楚人之祀虞帝。蜀人之祀昭烈可也。唐堯則以何名義。一人獨祀乎。二日朝後入謁。請都事公行狀。淵齋曰文拙愚庸。不敢當人家玄晏之託。旣有偏執。以此揭諸客位。賢輩不見耶。余起而對曰。淵丈旣是一國儒林領袖。大義宗主。則先狀製述。捨先生而誰哉。淵齋曰此等過獎。使人大慚。因閱覽都事公家狀及遺文。余因與金禹植。同往活山拜心石。團和之氣。膚腴之色。一見可親。心石曰聞自勉菴所來云。勉菴氣力如何。而新寓之餘。其調度亦復何如耶。余對曰氣力則康健。而新寓棲屑。極多難便。心石曰此翁素是淸貧。而何以買屋乎。又問曰君之居。距長城幾許。曰隣郡矣。曰然則君或從蘆沙奇丈遊乎。余曰自少出入。而氣質昏濁。未有所得矣。心石又曰。蘆沙丈於湖洛理氣。皆有不滿底意。然則此丈所主。或可明言耶。余曰以生淺識。不敢窺其涯涘。何敢明言其所主乎。但其大旨。則理爲之主。而氣聽命焉。且見其納凉議。則可以領略云。心石不復究問。卽還遠溪。三日八拜。適有言南原申得求事者。淵齋曰此人必是失性之人。吾則置而不問。而聞有嶺湖聲討。力爲挽止而未得。聞其服毒而死。不無矜惻之意矣。余曰此人之事。固已慣聞。而其學識誠爲誣罔矣。淵齋曰瞽瞍之頑。誰不知之。而其時禹皐岳益則言其頑惡。而舜則未見其有不是處。故克諧以孝。孰非天之赤子乎。爲天赤子。言天有邪惡者可乎。因出所與親友書一通而曰。奇參奉宇萬所謂自古異端。皆尊天。而此人則謾天云者。誠確論也。余曰此友未嘗與得求强辨。而其所論則如是矣。淵齋曰然。又曰此人先世文字。吾嘗下筆。已使推還矣。高光斗曰此人誠是乖異。而亦緣丈席稱詡過當故。渠驕矜之心。自以爲無出渠右。肆爲悖說如是矣。余曰有是乎人情之不甚相遠也。如蒙長者眷愛。則當謙恭飭勵。思不負名賢知遇可也。何敢自是而行悖乎。五日朝後入拜。淵齋出所著長噫說及繼開論等篇示之。且曰尊先文字。當以墓表從後製送矣。行狀則實無鋪張手段。以此知之。余曰行狀旣不可爲。幸誌銘下筆若何。淵齋曰從子言爲之矣。因請近思續錄一帙。淵齋許之。七日朝後。發行南下。到錦山訪玉溪瀑布。舊有亭舍墟。溪邊大石。有尤翁所書玉溪二大字。又有尤春諸老川獵時避雨巖。眞絶境也。午後入從容堂重峯先生死節地。後有七百義塚。有尹月汀所撰碑文。又有金文谷所撰碑陰記。金谷雲篆。遂展拜。其凜凜之氣。烈烈之義。百世之下。令人激仰增懷也。遂詠古詩一篇以瀉不平。三四日間關到家。往還凡一月有五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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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義問解 大學治天下章。言絜矩之道。而於上下前後左右。只言所惡而不言好。其所惡則矩可以絜之。所好則矩不可以絜之耶。曰去其所惡。則便是所好。雖不言所好。所好在其中矣。大學言心而不言性。中庸論性而不論心。何義歟。朱子序大學則言性詳焉。序中庸則言心詳焉。與曾思立言之意。有若不同者然。抑又何歟。曰語曰數車無車。大學一部是復性書也。雖不言性。而性在裏面也。中庸劈頭一事。已是心之全體大用也。雖不言心。而心之骨子存焉。序文之說性說心。一從經文之旨趣而然也。大學欲正其心者。先誠其意。孟子論不動心。則先養其氣。朱子以爲不動心之原。出於曾子之守約。然則不動心與正心相似。而養氣與誠意。有不同者何歟。曰曾子之守約與孟子之不動心。便是聖門傳授心法。故不動心。亦自正心中出來。則養氣之於誠。似不同而實無不同。不自欺卽自反之縮。自欺卽自反之不縮。厭然卽是氣餒。心廣體胖卽是浩然之氣也。大學以敬爲主。中庸以誠爲主。而中庸先言鬼神之誠。而後言聖人之誠。大學之敬。不言於明明德之傳。而必言於止至善之傳者何歟。曰道之浩浩。實難下手。庸學之曰敬曰誠。言雖殊而理則一。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誠之先言於鬼神章。而後言於聖人者。鬼神造化之迹。與天爲一。聖人能盡其性。而能盡人之性者也。先天而後人。其言不得不然也。敬者聖學之所以成始成終而徹上徹下者也。必言於止至善之傳者。盖此章通釋明明德新民之止於至善。兼釋知止能得。又釋八條目。眞可謂包上下該本末也。敬之出於此章。不亦宜乎。大學曰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孟子曰君子深造之以道。欲其自得之也。自得之則居之安。大學先安而后得。孟子則先得而后安者何耶。能得自得。果有深淺高下之分而然歟。曰大學則言其功效。備寫光景。非分列層級。故能得爲終。孟子則言學者進而不已。在默識心通。故自得爲先。能得與自得。語其極則一也。論語篇首。以學而時習之不亦君子始之。篇末以不知命無以爲君子終之。可見其首尾相照。示人勉學之意深切矣。庸學孟子。莫非聖人之書。則亦各有首尾照應。開闔精結之妙歟。曰聖人之書。必有終始開闔。首尾照應。何獨論語一部爲然。庸學孟子。莫不皆然。如中庸始以天命之性發端。終以上天之載。無聲無臭結之。大學則首言明明德於天下。使天下之人。皆有以自明其明德。而結之以平天下。孟子首稱仁義而已矣。而終焉以反經。經正則斯無邪慝矣。此豈非前後照應之意耶。論語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又曰先進於禮樂野人也。後進於禮樂君子也。如用之則吾從先進。聖人於此。必有一從之規。而由前則從郁郁之文。由後則從先進之野人何歟。曰文莫盛於周。而夫子從之。禮莫野於先進。而夫子用之。蓋周之文。監二代之忠質。制作之損益之。郁郁乎盛哉。宜夫子之從之。而其從也。乃文武周公述作之文也。非周末文勝之文也。先進之於禮樂。自世俗觀之。謂之鄙野。反不如後進之文飾。而夫子之舍後從先者。深有取於古人之誠實。而非今人滅質之禮也。然而夫子之得邦家者。合當有損益者。而時王之制。旣不可違。則從周之文。卽舍魯何適之意也。從先進之野。卽禮奢寧儉之意也。論語子所雅言。詩書執禮皆雅言也。而至於興於詩立於禮。乃不言書而言樂何歟。曰性與天道。不可得聞。命與利仁。子所罕言。而雅言者詩書執禮。則詩書禮是日用常行底道理。理性情道政事謹節文。不可偏廢也。至於興詩立禮。而不言書而言樂。非遺卻也。蓋樂。詩以永言。禮以節之。總條貫而成之。其次序然耳。故曰成於樂。所以成就其始焉中焉之興詩立禮也。論語曰舜有臣五人而天下治。武王曰予有亂臣十人。十人之多於五人明矣。夫子乃以爲唐虞之際。於斯爲盛何歟。曰泛論其數則十多於五。深究其才。則五拔其尤。十擧其全。況堯舜找授之際。四岳九官。濟濟蹌蹌。其賢不止五人也。武王撥亂之時。亂臣十人。一乃心力。而有婦人則九人而已。此夫子所以贊唐虞之際。於斯爲盛也。論語子張問崇德。子曰主忠信徙義崇德也。樊遲問崇德。子曰先事後得。非崇德與。夫忠信義卽德之謂也。事與德名目各殊。在子張則直辭而告之。在樊遲則回轉其語而告之何歟。曰聖人敎人。各因其才之高下而救其失。蓋子張務外不務內者。故告之以忠信改過之事。樊遲麤鄙近利。故告之以先難後獲之事。所答所以不同矣。論語質勝文則野。文勝質則史。文質彬彬然後君子。君子日用云爲之間。何者爲文。何者爲質耶。文與學文之文。質與形質之質。同歟異歟。曰文質不可相勝。然非質則文無所施。非文則徒質何用。若言其何者爲文。何者爲質。則以天爲質則日月星辰爲之文。以人爲質則君臣父子夫婦兄弟朋友爲之文。以身爲質則衣裳爲之文。以衣裳爲質則靑黃彩繪爲之文。班班可考。學文之文。形質之質。未見其同異。論語孝弟也者。其爲仁之本歟。孟子曰義之實從兄是也。從兄卽弟之事。而有子則爲爲仁之本。孟子則以爲義之實。其所以爲仁爲義之義。可得聞歟。曰朱子曰孝於父母。更無商量。盖孝是爲仁之本。故無商量。義則合當有商量意思。故曰從兄是也。然孟子此言。與有子之言不同何也。有子之言仁。是專言之仁也。孟子之言仁義。偏言之仁也。合而言之。推其事親者而從兄。此孝弟所以爲仁之本也。分而言之。則事親而孝。從兄而弟。所以爲仁義之實也。論語子貢曰。學不厭知也。敎不倦仁也。中庸曰成已仁也。成物知也。學不厭所以成已。敎不倦所以成物也。而其所以爲知爲仁。若相反者何歟。曰仁知互爲體用。而子貢之言。知爲體仁爲用。蓋知主於知。學與敎皆以知言。故先知後仁。子思之言。仁爲體知爲用。必仁主於行。成己成物。皆以行言。故先仁後知。此可見性中之所有。而無內外之殊者矣。論語子曰志於道。據於德。依於仁。中庸曰成已仁也。成物知也。性之德。而先儒論四德。則曰仁義禮智。有曰仁者心之全德。仁之爲德明矣。宜其無彼此輕重之別。而今曰據曰依。德與仁。各立爲工夫先後之序者何歟。曰聖人之學。莫踰於道德與仁。而道者路也。日用當行是也。德者得也。行道而有得於心是也。仁是全體大用。無所不包。而若言其用。則各有名目。蓋德之爲用在天爲元亨利貞。在人爲仁義禮智。以此觀之。仁爲德之一事也。然仁道至大。有曰當理而無私心。又曰仁性也。由是言之。仁可以包四德也。論語之據德依仁。是勉人爲學。故循其序而優入於聖賢之域。中庸以成已之仁。成物之知。爲性之全德者。此爲己之學也。仁與德義幷立爲工夫。似無彼此輕重之別矣。論語曰七十從心所欲不踰矩。大學曰君子有絜矩之道。同一矩字。而或先言心。或後言道字。所謂短者。心耶道耶。曰矩卽心也。而謂之道者。以其有絜度而言也。心道先後。以其獨覺其進。而本心瑩然。故先言心。知其所惡。推已及人。故後言道也。顔淵問爲邦。夫子以損益四代禮樂。放鄭聲遠倿人言之。中庸九經章。以修身尊賢親親之類言之。大學絜矩章。以好惡得失。用人理財言之。孟子陳王道。則以衣帛食肉。庠序井地言之。爲邦也九經也絜矩也王道也。均是治平之大法也。所言旣各不同。則亦有輕重緩急之可言歟。若使王者取法。則何者爲急先務耶。曰大凡治平之道。有大規模詳節目。告顔淵者大規模也。九經也絜矩也王道也。其詳節目也。所言雖若不同。語其歸則實未嘗不同也。何輕重緩急之可論耶。若言其先務。則井地以均之。庠序以敎之。好惡以絜之。聚人以財。以之而尊賢親親然後。行之以四代禮樂。則其規模之大。節目之詳。盡之矣。孟子見梁惠王。王立於沼上。顧鴻鴈麋鹿曰。賢者亦樂此乎。齊宣王見孟子於雪宮。王曰賢者亦有此樂乎。朱子謂沼上之問其辭遜。雪宮之問其辭驕。所以爲遜爲驕之意。何以別之耶。兩賢字。亦有不同者而然歟。曰沼上雪宮之辭。其問則同。而有遜驕之不同者。盖其曰賢者亦樂此。其樂不至於淫故謂遜。其曰亦有此樂。則其樂也濃故謂驕。兩賢字之不同。指君子而言。孟子曰大舜有大焉。善與人同。舍已從人。樂取於人以爲善。自耕稼陶漁。以至爲帝。無非取於人者。大舜旣爲君師。則所以治而敎之者。宜乎由已而出。今取於人者何歟。曰居君師之位。而善與人同。樂取於人。可見聖不自聖而有公天下之心矣。盖善與人同者。卽大禹拜昌言之意也。取諸人以爲善。卽帝堯舍已從人之意也。此所以大於禹子路也。孟子曰事親若曾子者可也。程子曰豈以曾子之孝爲有餘哉。然則舜之大孝。武王周公之達孝。始可謂有餘乎。曰人子之於父母。孝是職分耳。曾子之養志。盡子職而已。故程子止曰可也。舜之大孝。武王周公之達孝。亦猶是耳。大抵以後人視之。似若不可企及。而以聖人視之。則已分內事也。豈可謂之有餘哉。孟子曰柳下惠不羞汙君。不卑小官。此說再見。文不異辭。而一則以不恭致之。一則以聖之和者致之。以其所以爲不恭者。又謂之聖之和者何歟。曰柳下惠聖矣。而偏於和一邊。不及聖人之時。其流必至於不恭。故曰君子不由也。不由者。謂學柳和者之失也。孟子曰存其心知其性。所以事天也。夭壽不貳。修身以俟之。所以立命也。至如仁之於父子也。義之於君臣也。禮之於賓主也。智之於賢否也。聖之於天道也。正所謂養性修身之事。而君子不言命。則何以立命耶。曰旣能存心養性。則知有天命。而不惑於夭壽矣。至於父子君臣賓主賢否。天道也。君子之所以養性修身者。而不言命。乃所以立命也。孟子曰以齊王猶反手也。此爲管晏之不足爲王佐。而反辭而言者耶。孟子自任之謂耶。曰孟子之論王霸之辨多矣。如以德行仁者王。以力假仁者霸。湯武身之。五霸假之。似此類。不啻詳且明矣。公孫丑輩。想亦聞之熟矣。而於此猶以管晏之事期孟子。故孟子但言以齊王之易。見二子事業有不足爲耳。中庸曰率性之謂道。是理先於道也。繫辭曰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是道先於性也。性道之或先或後何歟。性卽理也。陰陽卽氣也。同一道字。而理氣所不同。有何意義而然歟。曰性道先後。本無二致。大易之先言道而後言性者。此道字統體一太極也。子思之先言性而後言道。此道字是萬物各具一太極也。性與陰陽。同謂之道而得名爲理氣者。卽形而上下之說盡之矣。大抵理氣元不相離。而不相離之中。亦有不相雜之可指者。渾然之中。復有燦然之可言者。此所謂道亦器器亦道也。天下國家可均也。爵祿可辭也。白刃可蹈也。中庸不可能也。胡氏以管仲晨門荷實召忽當之。試觀四子所行。何者爲不及。何者爲過耶。且古人有能辭祿蹈刃而不及中庸之道者乎。曰管仲一匡天下。而不以王道。則均天下而不及者。晨門荷簣。果於忘世。辭爵祿而過者也。召忽不能輔糾而死之。謂之忠則可。謂之中則不可。且古之人。亦有能辭爵祿者。嚴子陵陶弘景是也。亦有蹈白刃者。荊軻聶政是也。然於中庸之道遠矣。中庸費隱章曰費而隱。鬼神章曰微而顯。隱與微皆體也。費與顯皆用也。在君子則先用後體。在鬼神則先體後用何歟。曰言鬼神之微顯。明道之費隱。前言君子之道。以人道言也。此言鬼神之德。以天道言也。人道其用也。故先言用之費。而體之隱者。卽在費之中矣。天道其體也。故先言體之微。而用之顯者。不出乎隱之中矣。體用之先後。言各有當矣。中庸九經章曰。思修身。不可以不事親。此事親而後修身。下文曰反諸身不誠。不順乎親矣。誠身之後順親也。然則修身與誠身也。事親與順親也。或有先後同異之可言歟。曰語有先後。而意相映發。以入德之本言。則修身必先事親。以成德之效言。則身誠然後順親。說得極周密矣。復何同異之可言乎。中庸曰君子之所不可及者。其惟人之所不見乎。必有所不及者而後爲君子。則其所可及者。果何等人耶。人之所不見。而君子能見之。則衆人亦有見人之所不見者乎。曰愼獨是隱微處做工夫也。人所不見而已所獨知。故曰君子之所不及者。其惟人之所不見乎。至若君子之所可及者。必君子之人也。衆人之所可及所可見者。亦衆人也。中庸恐懼乎其所不聞。大學有所恐懼則不得其正。以中庸觀之。則有人不可以無恐懼。以大學觀之。則有人不可以有恐懼。二者若是不同何歟。曰大學恐懼。是俗語恐怕之義。中庸恐懼。是一念不敢慢忽之義。故其義不同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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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晚說贈李載春 孔子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夫松柏植物也。方其春夏之時。雨露之養。晝夜之氣。所以盛長而暢茂者。與衆卉無以異焉。及其風霜搖落。百草俱腓。而挺然獨秀。不改柯易葉。鬱鬱晚翠者。爲可尙。惟人亦然。方其宴安無事也。君子與小人。固亦無大異者。而至盤錯板蕩之際。別其利器也誠臣也。此君子之所以保晚節爲尤難。而比之於物。其惟松柏乎。今吾與載春。晚暮相逢。依然是歲寒景色。臨分無以爲贈。遂書保晚一節以貽之。亦因以自警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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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禮輯要跋 右二禮輯要一書。徐尙書秋堂先生述其先考海觀公所著。而繼以成書者也。夫禮有本有文。而是書也。獨詳於喪祭二禮者。孔子曰死葬之以禮。祭之以禮。曾子曰慎終追遠。民德歸厚矣。聖人之所重於喪祭者如此。若夫經禮三百。曲禮三千。優優廣大。苟非其人。至道不凝。蓋三代之禮。至周大備。而小事大事。無不由之。家鄕邦國。莫不遵用。及周之衰。遺本而尙文。天敍天秩。已不古若。秦火之餘。十不存一。漢儒傅會之說。有難一一遵行。有宋朱夫子。蓋嘗病其有志者不能擧其要。貧窶者不能及焉。於是參考古今之籍。加之損益之宜。以爲一家之禮。可以通行於百世而有補於化民成俗者也。雖然其疑文變節。則亦必待後賢之修潤。而皇明諸儒之議論。敢到誠不純乎朱子之旨者多矣。至若我東沙溪金文元先生所著備要輯覽通解等書出。而其爲輿衛於朱門而行之無弊者也。後學無不完師。但其因革之際。事變無窮。儒門尊德。祖儀禮而宗家禮。考據精確。旁照擧要。沕合經旨者。而散出於各家文稿。莫之會通。海觀翁有志於折衷。而嫌其近於作。手抄前人成說於禮書紙頭。未及成書。秋堂公又西山之沈也。紹而述之。編之曰二禮輯要。秋堂之孫前郡守載克。不欲私之於一家。方將刊行以公後世。其三世繼述以禮存心之妙。亦可尙已。蓋余於此篇。竊有興感焉。嗚呼我國雖僻居海隅。而禮樂文物。侔擬中華。華人稱以小華矣。挽今以來。詖淫溢世。典章如掃。無計復古。今於此書之行。必將賴以知敦本正倫。而用夏變夷之功。亦不外是矣。豈曰少補之哉。載克以書命余題一言於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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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達德祠會講錄 勉菴先生眞本建閣妥靈者。凡四處。而嘉茝故里。龜洞本第。武城蒜山。其一卽箕東月岳之達德祠。門人鄭成根所刱立者也。今年三月下丁奉安眞像。及門私淑齊會。旣釋菜錦城吳駿善諗于衆曰。先生正學大節。爲國人所瞻仰。于以達之天下後世而有辭焉。士林之追慕。愈久而愈深。今日之擧。正當與士林共之。不可專諉於鄭君一人之私明矣。且況春秋享將之日。吾儕會講。惡可已也。惡可已則助祭之需。讌私之費。勢所必至。同志之士。盍各相與出力。修成契帖。以立久遠之規哉。僉曰諾。遂隨行隨錄。計金若干。專責於士類之賢而幹事者。庶乎其有成矣。嗚呼先生之歿。今旣十年。國事罔極。陰陽易位。臣民之痛。豈有窮已。惟吾黨之士。心先生之心。義先生之義。瞻拜遺像。寧不惕然而感。肅然而敬者乎。彼伯夷叔齊求仁得仁。百世之下。猶能聞風而興起。惟我先生之成仁。無愧於夷齊。而及門親炙者。必當倍蓰於聞風矣。若鄭君之殫誠致思。幾與子貢反築室。后山一瓣香。同一義諦。尤可尙也已。嗚呼薇蕨之山不頹。錦江之水不渴。則先生之名與之俱存。數間祠屋。何有於先生。門人小子之心然耳。且於樹風聲補世教之道。不爲無助。錄曰會講。不可無記也。多士以命酸善。遂略書顚末。以與同志者勉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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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過萬瀑洞【自表訓五里】 前度漁卽再訪武陵須彌浮何在行過萬瀑邊奈吾成宿痼爲汝更留連寂寞三山局渺茫元化天貴人猶愛石爭把姓名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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