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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을축) 初一日 乙丑 흐리고 찬눈 내림. 세배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했다. 丁巳。正月。初一日。乙丑。陰雪寒。延接歲拜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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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밤에 눈이 내렸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 원동(院洞)의 이상룡(李尙龍) 집에 들렀더니 주인 부자(父子)가 한사코 붙잡았지만,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머물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낙수(洛水)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미태정(米太亭)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夜雪。 仍朝飯發程, 入院洞 李尙龍氏家, 則主人父子堅挽, 而以行忙不得留發程。 抵洛水中火, 抵米太亭留宿。 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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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첫닭이 울자 상인과 동행하여 서령(西嶺)에 이르니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벌교(筏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사촌(社村)에 들어가 요기하였다. 용전(龍田)의 무안(茂安) 댁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鷄初鳴, 與商賈同行抵西嶺, 則始開東矣。 抵筏橋朝飯, 入社村療飢。 抵龍田 茂安宅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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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근동(芹洞)에 가서 서봉(書封)에 내타인(內打印)4)하였다. 往芹洞, 書封內打印。 내타인(內打印) 시권을 제출할 때 예조좌랑(禮曹佐郞)이 타인관(打印官)이 되어 오시(午時)에 시권을 거두어서는 시폭(試幅)과 시폭의 연첩처(連貼處)에 예조의 인을 찍은 뒤 돌려준다. 이를 내타인(內打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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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가랑비가 내렸다. 아침 전에 이찬(而贊)과 비를 무릅쓰고 폐문동(閉門洞)의 오위장(五衛將)이 사는 곳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의복이 모두 젖어버렸으니 매우 속상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날씨가 개기를 기다렸다가 행장을 꾸려 동진(銅津) 어귀에 이르렀다. 광풍이 세차게 부는 바람에 모래가 날려 눈앞에 가득하였는데, 배를 타자 바람의 형세가 더욱 심하여 매우 위태로웠다. 간신히 강을 건너 승방(僧房) 주막45)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지지현(遲遲峴)46)을 넘어 화성(華城)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微雨。 朝前與而贊, 冒雨往居閉門洞五衛將所在處, 暫敍而來, 衣服盡濕, 可憤可憤。 食後待霽治發, 到銅津頭, 狂風大作, 飛沙滿目, 而爲乘船, 以風勢之極惡, 萬分危凜。 艱渡至僧房酒幕中火。 越遲遲峴, 抵華城留宿。 行七十里。 승방(僧房) 주막 승방평(僧房坪)에 있었던 객점을 말한다. 승방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승방뜰・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지지현(遲遲峴) 지지대(遲遲臺)고개로, 수원과 의왕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다. 《화성지》에 따르면 원래는 사근현이었는데 정조가 '미륵현' 그 후에 다시 '지지현(遲遲峴)'으로 고쳤다고 한다. 사근현(沙近峴)이라고 한 것은 고개 아래에 사근참이 있었기 때문이며 '지지(遲遲)'라고 한 것은 사도세자 능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이곳에서 한참 지체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정조는 이곳에 장승과 표석을 세웠고, 1807년(순조7)에 지지대 서쪽에 지지대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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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갈 길이 바쁜 탓에 일찍 출발하여 두루 살피지 못하고, 다만 용두각(龍頭閣)만을 보았는데 그 구조가 기묘하였다. 다시 출발하여 하류천(下柳川)47)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오산(烏山)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사(素沙)에 도착하여 묵었다. 80리를 갔다. 早發以行忙之致, 不能周觀, 而但見龍頭閣, 則制甚奇妙。 移發至下柳川朝飯, 抵烏山中火。 到素沙留宿。 行八十里。 하류천(下柳川)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에 있는 아랫버드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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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말치[斗峙]58)를 넘어, 야당(野塘)59)의 송연영(宋延英) 집에 들러 아침을 먹었다. 주인이 1냥을 노자로 주었다. 곧바로 출발하여 국평(菊坪)60)의 하서(夏瑞)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주막으로 와 일행과 잠시 얘기를 나누며, 이에 술을 사서 권하였다. 오수(鰲樹) 최복신(崔福臣) 집에 들러, 오수에게 김수재(金秀才)가 남긴 편지를 전하고 나왔다. 새 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포(周浦)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早發, 越斗峙, 入野塘宋延英家朝飯。 主人以一兩錢贐行矣。 卽發, 入菊坪夏瑞家暫話。 偕來酒幕, 與同行暫話, 仍以沽酒以勸。 而入鰲樹崔福臣家, 傳鰲樹留金秀才書簡出來。 新店午飯。 抵周浦店留宿。 行六十里。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길로 '말재'라고 하였다. 야당(野塘) 전라북도 임실군 남면 야당리이다. 국평(菊坪)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국평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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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율목정(栗木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입진(笠津)을 건너 율지(聿之)와 여옥(汝玉)은 조막(造幕)으로 들어가고, 나는 자윤과 천평(泉坪)으로 와서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早發, 抵栗木亭午飯。 越笠津, 聿之與汝玉入造幕, 余與子允來泉坪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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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밥을 먹기 전에 나와 관정동으로 들어갔는데 박상현이 없었다. 창동에 있는 배생(裵生)의 객관에 들어가니 배생도 없었다. 다만 그 하인만 있어서, 며칠 전 나온 책자를 전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아침을 먹은 후 사헌과 신생(申生)이 내려갔다. 동향 사람은 먼저 각자 내려가는데 나와 율지는 같이 내려가지 못해 몹시 괴로웠다. 밥을 먹은 뒤 관정동으로 가니 박 상인이 또 없었다. 다만 주인 우 참봉만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 정동에서 묵으며 밤에 꿈을 꾸었는데, 집에 돌아가니 손자가 나왔는데, 한 살배기 아이만큼 커, 마음이 아주 흡족하였다.우 참봉에게 점을 치게 하니 오늘 과연 해산하여 득남할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꿈속 내용과 점괘가 같으니 우리 집안의 큰 행운 중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멀리 밖 사정을 상세히 알지 못해 몹시 걱정되고 답답하였다. 그길로 정동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소문(西小門)으로 나와 차동으로 들어갔는데 사상(士常)은 출타하였다. 아랫사랑에 들르니 주인의 사촌 감찰(監察) 민치원(閔致遠)이 마침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내일 찾아보기로 약속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前出來, 入冠井洞朴祥顯不在, 入來倉洞裵生所館, 則裵生又不在。 只有其下人, 故傳日前所來冊子出來主人家。 朝飯後, 士憲及申生下去。 同鄕之人先各下去, 而余與聿之不得同行, 悶悶。 食後, 往冠井洞, 則朴喪人又不在。 只在主人禹參奉暫話。 昨日留貞洞, 夜夢, 歸家孫兒出, 大如一歲兒, 心甚喜之矣。 作卦於禹參奉, 則今日果爲解産而得男云。 果如夢中與占理, 則吾家大幸, 孰大於此? 遠外事未能詳知, 悶㭗悶㭗。 仍往貞洞暫話。 出西小門入車洞, 士常出他。 入下舍廊, 則主人從氏閔監察致遠適來, 仍與相話, 其喜何言。 明日尋訪之意相約, 而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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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陵【幷志】 越志莊陵在府北五里天順丁丑十月二十四日酉時端廟昇遐于本府觀風軒戶長嚴興道葬于府北鉢山冬乙旨辛坐原宣廟庚辰改封竪石肅廟戊寅追封爲陵周回三十里令一員參奉一員守護軍九十名◌靈泉卽莊陵祭井在丁字閣南庭十許步水深數寸大旱澇不增減每當寒食祀享水輒大至越人傳爲異事正廟辛亥因筵臣上達錫名靈泉仍命該府使朴基正書石以標之直閣徐榮輔撰記◌配食壇在紅箭門外南邊數步正廟辛亥因特敎創設每寒食配享端廟忠臣三十二人又設三別壇隅圻爲位一軆享之朝士壇稍前享一百八十六人宦者軍牢壇在左享四十八人女人壇在右享六人又違蕆板屋三間於壇邊藏四壇位板◌拜鵑亭一名拱北亭在齋室東五十步許前有小池卽封陵初所創年久頹圯只有形址府使朴基正重建刻拜鵑巖三字于後巖◌景液池卽莊陵水口池也周一里中有六島壬子春自本府改築植木◌八賢祠肅廟辛亥創建于彰節祠墻內享生六臣金時習南孝溫李孟專元昊趙旅成聃壽及權節鄭保英廟辛酉以未賜額因朝令毁撤◌彰節祠在陵洞口外大道傍南三里許自邑北二里事實見上九疑山色白雲鄕不盡東風綠草長從古必稱堯舜國至今相繼夏殷王省巡百里趨方伯衛護千年跪寢郞猶有後天無限緖喞啾羣喙弔殘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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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本道儒生等上禮曺書 復以好生惡死人止常情也死之於人大且難矣而捐一命於危迫之時小遂初志於平常之際大出氣力於少壯之齒易踐素履於老耋之年難是以世或有婦人女子之 以烈爲名者而皆出於少壯之齒危迫之時則老耋之年平常之際從容下從能成其烈者豈多得乎今夫有人於斯抱卓犖之行懷芳郁之名而寂寞荒山之濱與草木同朽則殆將爲士林之所羞而抑亦爲熙朝之一欠故生等邇居同省瞻聆攸聳不容泯黙玆敢裏足而來踵門而告靈光故士人魯得佐妻金氏是其人也盖魯得佐咸豐人而故水使錦溪公認之後也家世中微雖不顯赫而以文學行義著於鄕里其妻金氏 卽故相公景光之後而稟性溫柔孝事父母及嫁魯門善修婦道事舅姑如事父母待婿族如待親黨敎子孫且慈且嚴使婢僕有恩有威一門雍睦遂成家範自少至老人 不見其疾言遽色初年不免飢寒而紡績種耘勤勤孜孜晩歲衣食有餘蒼顔白髮八十偕老人以地仙稱之其夫以老病累月呻囈調護諸節自有三子夫婦而金氏不以年老自居煮粥供藥躬自看檢一日二日愈往愈勤及其臯復之日哀痛號哭別無異人襲斂諸具無不親閱旣而入其房招諸子孫訣曰吾夫妻死生相隨吾所志也汝父旣歿吾何獨生汝曺之孝養非不至也衣食非不足也而吾不可享其樂貪其生以負素心但願吾子吾孫吾婦吾女世修和睦毋墜家業吾夫妻當瞑目於地下汝曺勉之勉之言訖而終毒藥已入口無可救矣喪出之日鄰里婦儒莫不揮泣曰此婦人逝矣 當此歲荒人之飢寒誰復救之人之患難誰復卹之云平日婦德從可驗矣鳴呼殉夫之烈從古何限而生而同室偕老老而從死同穴者幾人猗彼金氏自宴爾之初已決同死之志而終乃踐之何其毅哉始窘而勤力治家使夫子無凍餒之患稍饒而恤窮濟急使凡民有匍匐之譽夫病而親執藥餌以殫其誠夫喪而親閱歛具無憾其心旣決從夫而以俄頃奄奄之氣遺誡兒孫無非嘉言善行而從容不迫視死如歸誠古所謂從容就死死以成德者也苟非出天之眞性以一寒門女子安能判義理於造次間乎夫爲臣忠爲子孝爲婦烈固是人倫之常行而往古來今鮮能踐之者好生惡死之情常勝故也果能出人之常情而少壯之志行于老耄危迫之事決于平常則尤爲烈之大且難者而生等之不忍括囊相率抱牘者顧此秉彝之良心有不能自滅故也倘蒙衣被之恩以賁棹楔之典則不但爲死者之地亦足爲扶世彛植王綱之一大政伏願閤下俯循公議仰達天聰俾玆曠世之烈特荷曠世之渥幸甚幸甚無任屛營祈懇之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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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嬌 阿嬌名琪蕙芳齡纔七歲性行旣端潔儀貌更秀麗貞玉曁幽蘭名實不相戾脫略塵俗姿天機自警慧同隊不敢望百爲殊凡例發言能成則臨事便無滯學母初理線萬縷秋毫細從旁讀兄書琳琅剖如契璋瓦誰有別厥初同根柢一體爺孃心顧復靡不逮況爾生不群婉孌德兼藝誰家生寧馨與甭結伉儷豈無富貴門自有豪雄婿忽何嬰二竪長秋臥呻囈調治訪醫藥祈禳聽卜筮卜筮與醫藥到谻終難濟千喚無一應鳴呼便長逝寂寞西日黯悽慘北風厲搖搖孤燈花明滅守床第露草殘蛩吟霜林病鶴唳二月念七朝僊娥降塵世九月念一夕還歸朝玉帝花開復葉落春秋迭相遞可憐丰茸質一去無根蔕玉碎嗟難補蕙萎復誰蓻知應先天界恩怨有信誓悲恨誠無益懷慨一笑睨素我稱剛腸不學婦孺涕却念七年情撫摩垂兩袂脫驂他尙然舐犢寧不諦乃爺家淸寒送汝但噎嚔解余古箑杳爲爾衣帶繫昔我虎韔巾作汝今日帨蕭條一草鞋飄蕩雙木橇捲余數幅裯成樣纔蒙蔽棺槨良無奈竹簣爲屛翳叵耐乃孃懷哀寃蘊如締讁我太疏慵救護不早計慰譬證今古脣舌欲弊弊脩短固天定榮悴有時勢宓妃緣何沒風犧最神叡百草炎皇家嗟哉有精衛驅鱷韓吏部不能救挐癘珍重富彦國焚書向燕薊聖德我先王貴主兩相繼萬鍾飫餌補千醫論砭劑楸檟東門外短碣空磨礪國殤在千古私寃同八裔達觀能具眼方寸自不泥矧我罹孔疚欒欒衰麻曳宿昔反哺願于嗟歸鑿枘此生悠悠恨天地茫無際奚暇爲兒女區區淚盈睇阿慈曾愛汝負抱垂鴻惠而我常爲客拂拭伊誰勩母兮今不在告訴將安詣顧余非鐵石酸苦終難制幽明逈有別那堪離軒砌出門竟何往擔負只一隷送行遠追隨一步將千蹶曉月淡蒼蒼明星爛晳晳宛然星月下儀容想提提蕪沒衰草陌屈折流水汭水草何冥漠溯洄空佗傺嗚咽鷄亂唱浮動舌薛荔母鵲噪杉松慈烏啼棠棣喟然一俯仰陰雲生曀曀念爾天賦淸遊嬉不近穢爲擇乾凈地跋涉行且憩稍離北邙坂故近老叢桂從今便永訣寥寥幽宅閉倚杖久踟躕靑山杳迢遰如何我骨肉空成土山瘞年年此日夕誰肯爲汝祭蓬科如蟻垤風雨易陵替爾靈應不昧何處將歸稅願爲貴家男聰明進就銳人情何忍薄依舊歠且嚌恬然不悲鳴冥頑似犬彘然余心上釘定應到身斃不如初無生令爺徒添癠生育亦云全受姿豈虛脆未必諉病祟安能學僊蛻秪是報寃業乍來附如贅貽憂孰如汝空言孝且悌當年所鍾愛到今臍欲噬追念情懷惡喚酒竹窓揭憤罵惟一時可奈長泄泄死者誠何辜孤臥山一髻不辨寒更熱幾度雨又霽白璧難可贖黃金那能貰神鬼理莫測伊誰爲我說搔首欲問天河廣難皷枻纔經二毛齒華髮無數揥兒書與忘憂低頭苦勉勵樂我芝蘭庭五鸞和嘒嘒獨爾匿形影迢迢水南㵝倏復靜寂夜情緖細似毳天理活如水隨感瀉淠淠此誄竟誰贈述懷聊自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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步韓詩符讀書城南韻遙寄驥兒兼勖麟姪 【幷序 甲辰】 昔在辛巳夏余以志學之童從師讀詩於松沙時我兩堂臨門而送倚閭而望申申勸勉不啻丁寧于嗟光陰倏已二十有四星霜矣追念古昔寧不痛哭平昔兩堂之期望我心之願效何止今日事業而事與心違中間所獲官誥數紙而已從今以往雖欲進就有誰勸勉雖欲報效有誰悅豫今汝雪石之行卽昔余松沙之行而今汝之齒卽昔余所經之齒今汝之業卽昔余所肄之業今汝爺孃遠戀之懷卽昔吾爺孃遠戀之懷今汝爺孃勸勉之心卽昔吾爺孃勸勉之心今汝所處與我古昔如印一板而昔我爺孃年已朢六今汝爺孃齒未及疆以我觀汝汝之進就寧有涯量勸勉者乃爺在焉悅豫者乃孃在焉進就者非汝而誰報效者非汝而誰歲月如流水工夫易間斷勿以父母年壯放逸自居須念乃爺抱此千古之恨也阿均立年稍近偏慈垂暮其心所懼更當何如嗟吾先兄齎志未就繼志樹立伊誰之責吾家文學寔賴先公竊恐先公之後風聲寥寥貽羞於先公也沒後方丈之饌不如生前一盃先公恒訓尙念在耳爾輩其識之詩話雖涉拙澁亦自有味讀餘圭復則其爲裨補豈在於韓符之下也哉大學之絜矩誠意爲權輿嗟爾志學齡遍讀古聖書所讀宜存誠不誠讀歸虛錫汝名爲驥遠志弧矢初擬展千里步高大我門閭門閭欲高大固知書莫如及時當結網何須徒羨魚傳家肯搆業未可便漏疎聖代重經術龍圖復石渠竊期齊謝鳳恒恐類劉豬歲華不留待金烏倏玉蜍一毫誠僞間雲鵠與壤蛆飽煥藉先蔭常情易逸居逸居無遠識何異蠢蠕歟此寶有誰奪環瑋皮裏儲謨猷曁撰述隨施有贏餘耕樵非汝職專經獨任且淸風高閣上須念夏畦鋤蔑學雖幸顯堪羞一楦驢利鋩出大冶嘉穀在新畬望甭能揭顯家聲賴弗除趁此班衣時翶翔拂葱裾名實恐相違髫齡早馳譽欲成麻中蓬故敎離庭墟阿玄年紀大不比責阿敍事半功倍語寢食敢忘諸相近莫相遠東望久躊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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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일찍 출발하여 노계(蘆溪)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초치원(草致院) 저자 주변에 이르러 잠시 쉬고 나서 출발하였다. 연기(燕岐)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부강(浮江)과 매포(梅浦)를 지나, 신탄강(新灘江)을 건너, 저물녘 오촌에 도착하였다. 저녁밥을 먹은 뒤 들어가 장석(丈席)50)을 뵈니, 기후(氣候, 안부)가 요사이 평안하여 다행이었다. 외방(外房)으로 나와 목천 현감(木川縣監)을 지낸 송흠성(宋欽成)51)을 위문하였다. 목천은 작년 12월에 그 생부(生父) 상을 당하였다. 한참 동안 안부를 묻고 회포를 풀고 나와, 처소로 내려가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早發, 抵蘆溪酒店朝飯。 抵草致院市邊, 暫憩後登程。 抵燕岐三巨里午飯。 歷浮江及梅浦, 越新灘江, 暮抵鰲村。 夕飯後, 入謁丈席, 則氣候近得安寧, 幸幸。 出外房, 被慰於木川欽成。 木川前年十二月, 遭其生父喪矣。 移時敍暄出來, 下處留宿。 行八十里。 장석(丈席)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이다. 자는 기옥(奇玉)이고, 호는 강재(剛齋)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송시열의 6대손으로 김정묵(金正默)의 문인이다. 당시 오촌에 살아 '오촌 선생(鰲村先生)'이라고도 하였다. 송흠성(宋欽成) 1794~1862. 자는 흥경(興卿)이다. 송치규의 양자이다. 생부는 송득규(宋得圭)인데, 1827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恩津宋氏族譜 卷1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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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밥을 먹은 뒤 여러 벗과 개간소로 가니, 주인 이호준(李琥俊)이 말하기를 "마침 좋지 않은 조짐이 있으므로 중지하였습니다. '좋지 않은 조짐'이란 고부(古阜)의 김성은(金性溵)117)이 유사를 보내 스스로 그 일을 주관한 것을 말합니다. 자못 좋지 않은 단서가 있다면 중지하는 것만 못하니, 그런 분위기가 잠잠해지고 나서 다시 설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그 일의 형국을 보니, 포기하고 가는 것만 못하였기에 곧장 나와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 與諸益往刊所, 則主人李琥俊曰: "適有爻象, 故中止云。 爻象, 則古阜金性溵, 稱以送有司, 自主其事。 頗有不好之端, 不如停止, 風色寢息, 然後更設爲可。"云。 聽其言觀其事機, 則不如罷意而去, 故卽爲出來主人家。 김성은(金性溵) 자는 성연(聖淵)이고, 호는 인일정(引逸亭)이며, 본관은 광산이다. 전라도 고창 출신으로 황윤석(黃胤錫)ㆍ이직보(李直輔)의 문인이다. 『해동삼강록(海東三綱錄)』을 간행하였고, 『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을 저술하였으며, 『임병창의록(壬丙倡義錄)』을 만들었다. 저서로 『인일정유고(引逸亭遺稿)』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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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아침 전 관정동으로 왔다. 아침을 먹고 용동으로 갔다. 그길로 북치로 가서 정 생원 병문안을 하고, 도로 개간소로 왔다. 오전에 사헌(士憲)과 신성칙(申聖則)이 들어왔다. 그길로 함께 영대 집으로 와서 머물렀다. 그길로 낙동으로 가 참판 이광문을 만나, 그의 사촌 이광헌(李光憲)의 상을 조문하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아우 이광정이 있는지를 물으니 마침 출타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상갓집으로 내려와 곧바로 궤연(几筵)116)에 들어가 곡을 하고 절을 하고 나서 사랑에 올라가 상인(喪人)에게 조의를 표하고 왔다. ○朝前, 來冠井洞。 朝飯往龍洞。 仍往北峙, 問丁生員病, 還來刊所。 午前士憲及申聖則入來。 仍爲偕來永大家留。 仍往洛洞, 見李參判光文, 吊其從氏光憲喪, 移時談話。 問其弟氏光貞有無, 則適出他云。 故下來喪家, 直入几筵哭拜後, 入上舍廊, 與喪人致吊而來。 궤연(几筵) 죽은 사람의 영궤(靈几)와 주(神主)를 모셔두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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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밥을 먹은 뒤 개간소로 갔다. 낮에 회동으로 가서 송 장성을 만나 전주 송민수의 서간을 전해 주었다. 저녁에 곽교(㰌橋)로 들어가 송 판서를 잠시 만나고 관정동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후 율지와 함께 정동으로 가서 유숙하였다. ○食後, 往刊所。 午間往晦洞, 見宋長城, 傳全州宋民洙書簡。 夕間入㰌橋宋判書暫見 而來冠井洞。 夕飯後, 與聿之往貞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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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아침을 먹고 비를 무릅쓰고 길을 나섰다. 서령(西嶺)61)에 이르러 고개 아래 주막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옥은 추동(楸洞)62)에 들를 생각으로 먼저 갔다. 벌교(筏橋)63)에 이르러 여옥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옥이 와서 다 같이 동면(東面)64)으로 왔다. 정암정(鼎岩亭)에 이르자 비가 내렸다. 여옥은 곧바로 들어가고 우리 일행은 월악(月岳)65)으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朝飯, 冒雨登程。 抵西嶺, 嶺下店午飯。 汝玉入楸洞之意先行。 抵筏橋留待汝玉矣。 非久汝玉果來, 偕來東面。 至鼎岩亭雨作。 汝玉則直入, 吾同行入月岳留宿。 行六十里。 서령(西嶺)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추동리 석거리재이다. 벌교에서 서울 방향으로 갈 때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이다. 추동(楸洞)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추동리이다. 벌교(筏橋)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이다. 동면(東面)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이다. 동강면은 옛 대강면(大江面)과 동면이 병합된 것이다. 월악(月岳)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오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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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29일 二十九日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마을 앞을 나오니 집 아이가 내가 내려온다는 기별을 듣고 며칠 전에 나와서 사교(四橋)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월악에 들어왔다는 기별을 듣고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사교로 와서 가교(柯橋) 댁에서 유숙하였다. 재동(齋洞) 귀산(龜山)66)이 모두 무고하다니 매우 다행이었다. ○食後發程 出村前。 則家兒聞吾下來之奇, 日前出來, 四橋留待矣。 聞昨入月岳之奇出來。 故仍爲偕來四橋, 留柯橋宅。 齋洞ㆍ龜山皆無故云, 幸幸。 재동(齋洞) 귀산(龜山)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 있는 재동서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산 송씨 파족을 말한다. 재동파는 고흥 대서의 귀산파, 두원의 금성파, 동강의 대강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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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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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越衙別堂有感賦懷【幷小序】 洪使君在重公呂甫以氶宣乞養出宰是邦其家君僉樞孝燮就養而來與余邂逅別堂其一家老少皆舊知也千里珠域二宵叙懷亦有宿緣而然歟仍念洪倅於吾長九年之齒而上有老親奉毛檄而戴潘輿其喜可掬邑之薄厚矣足計較自顧缺界餘生不能無感于中短燭荒店聊以自叙云爾越州太守鬢毛蒼人間六旬少三齒上有高堂鶴髮親無恙坐在春風裏毓祥官南如斗屋傷哉之歎到十祀聖恩特許專城養翩翩鳳含赤泥紙銀臺緋玉天上客應作廬江奉檄喜羨君老大着彩服兒啼能學楚萊子況復一城楊柳路五馬板輿耀人視烹龍爲煮玉爲酒別館香風蔭桃李蝦鬚簾下百子屛煖茵凉蕈錯文綺三公五俟不足貴白日昇天何敢此莫言峽廩淸且薄官廚猶足供滫瀡可愛文酒八十老政値名鄕好山水弔古傷今魯陵南吟哦紀述如寒士精力不減少壯年玉鬢草袍倚曲几俟家以何大福力上戴壽星長不已一身潦倒且休論苦海勳名可脫屣世間始信楊州鶴腰錢十萬不須擬可憐五十老督郵四七釋褐今如此缺界一生烏鳥感茫茫天地無涯涘短燭小硯奈城店深宵不眠意何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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