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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갑신) 十七日 甲申 맑음. 하서선생(河西先生)이 경범(景范)51)과 중명(仲明)52)에게 준 시를 기록한다.정통과 편색으로 사람과 물이 나뉘고,(正通偏塞分人物)청수하면 현인이 되고 탁박하면 우인이 된다네.(淸粹爲賢濁駁愚)천리도 기질에 구애됨이 없을 수 없으니,(天理不無拘氣質)인심은 이를 따라 형구의 누가 된다네.(人心從此累形軀)온갖 사특함이 함께 온전히 밝은 본체를 가리지만,(羣邪共蔽全明體)한번 깨우치면 옛 더러움을 새롭게 할 수 있네.(一覺能新舊染汚)샘이 흐르고 불이 타듯이 내면을 길러가면,(泉達火燃充養去)이치는 밝아지고 마음은 전일해져 순의 무리 되리라.(理明心一舜爲徒) 陽。記河西先生示景范仲明詩。正通偏塞分人物。淸粹爲賢濁駁愚.天理不無拘氣質。人心從此累形軀.羣邪共蔽全明體。一覺能新舊染汚.泉達火燃充養去。理明心一舜爲徒. 경범(景范) 조희문(趙希文, 1527~1578)의 자이다. 조희문의 호는 월계(月溪),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556년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성균관 전적(典籍)·사예(司藝)·사성, 사헌부장령·사간원헌납·이조좌랑, 홍문관수찬·교리, 장흥부사(長興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당시 기대승(奇大升)·정철(鄭澈)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 ≪월계유집≫을 남겼다. 중명(仲明) 양자징(梁子徵, 1523~1594)의 자이다. 양자징의 호는 고암(鼓巖)이고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담양에 소쇄원(瀟灑園)을 창건한 양산보(梁山甫)의 아들이며,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으며, 거창현감(居昌縣監)과 석성현감(石城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은진의 갈산사(葛山祠)와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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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임신) 六日 壬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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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임오) 十五日 壬午 흐리고 밤에 비. 이날 밤에 셋째 손자가 태어났다.이두봉(李斗奉)은 호(號)가 양재(養齋)로, 고향에서부터 장동을 방문하여서 성수(星數)39)와 침법(針法)을 꺼내 보여주기에 그것을 기록한다.〈침법(針法)〉 - 원보방사법(圓補方瀉法)40)으로 중침(中針)41)을 4관(四關)42)에 놓는다.먼저 사법(瀉法)43)을 3회 하는데, 상괄(上括)을 3회, 침두(打針) 때리기 3회 한 후에 청룡파미(靑龍破尾)44)한다. 이때는 침두를 엄지손가락으로 흔들며 침두를 3번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좋다. 백호요두(白虎撓頭)45)는 침두를 잡고 보사법(補瀉法)46)과 같이한다. 영구탐혈(靈龜探穴)47)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적봉영원(赤鳳迎源)48)은 사법(瀉法)과 같이하는 것이 옳다.- 침술을 행할 때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놓는데, 남자는 아침에는 손에 침을 놓고 석양에는 발에 침을 놓는다. 여자는 아침에는 발에 침을 놓고 석양에는 손에 침을 놓는다. 병이 위에 있으면 침은 아래에 놓고, 병이 아래에 있으면 침은 위에 놓는다. 병이 왼쪽에 있으면 침은 오른쪽에 놓고 병이 오른쪽에 있으면 침은 왼쪽에 놓는다. 병이 뱃속에 있고 병이 온몸에 있으면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놓으며, 4관(四關)에 모두 놓는다. -- 침법을 놓는 것은 금귀일(金鬼日)이 좋다. 납음(納音)49)에 금(金) 아래가 귀성(鬼星)50)이란 것이 이것이다.- 陰夜雨。是夜生三孫。李斗奉。 號養齋。 自故園來訪章洞。 出示星數針法。 記之。針法。圓補方瀉法。中針四關。先瀉三次。 上括三次。 打針頭三次後。 靑龍破尾。 針頭手大指撓。 針頭三次浮沉可。白虎撓頭。 執針頭。 如補瀉法。靈龜探穴。 指東西南北。赤鳳迎源。 如瀉法行之可也。【行針男左女右。 男子朝日行針手。 夕陽行針足。女子朝日行針足。 夕陽行針手。病在上針下。 病在下則針上。病在左則針右。 病在右針左。病在腹中。 病在全身。 男左女右。 通四關。】【作針法。 金鬼日可也。納音金下鬼星是也。】 성수(星數) 사주 보는 것을 가리킨다. 원보방사법(圓補方瀉法) 침을 놓을 때 손가락 모양이 원(圓) 모양이 되면 보법(補法), 펴지면 사법(瀉法)이라 한다. 중침(中針) 그리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중치의 바늘이다. 4관(四關) 곽란(癨亂)이 되었을 때에 통기(通氣)시키기 위하여 손과 발의 네 군데 관절(關節)에 침을 놓는 곳. 곧 손의 두 합곡(合谷)과 발의 두 태충(太衝)을 가리킨다. 사법(瀉法) 병증(病症)을 깎아 내리고 쳐내는 방법을 말한다. 청룡파미(靑龍破尾) 보법(補法)의 일종으로, 침을 놓고 엄지손가락을 한번은 좌측으로 돌리고 한번은 우측으로 돌리는 방법이다. 백호요두(白虎撓頭) 사법(瀉法)의 일종으로, 침봉(針峯)을 한번은 좌측으로 기울어지게 하여 돌리고 한번은 우측으로 기울어지게 하여 돌리면서 침을 놓는 방법이다. 보사법(補瀉法) 부족한 것은 더해주고 남는 것은 덜어주는 치료법이다. 영구탐혈(靈龜探穴) 보법(補法)의 일종으로, 땅속으로 들어가는 거북이가 3진 1퇴(三進一退)하는 방식이다. 상하 좌우(上下左右)로 들어간다. 적봉영원(赤鳳迎源) 사법(瀉法)의 일종으로, 봉황이 날개를 펴는 것과 같이 침을 놓는 수기법으로 상하좌우로 회전한다. 납음(納音)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오음(五音)과 십이율(十二律)에 맞추는 것으로, 갑자(甲子)를 황종(黃鐘)의 상(商)이라 하고 을축(乙丑)을 대려(大呂)의 상이라 하며, 상은 금(金)에 속하므로 갑자와 을축을 바닷속의 금[海中金]이라 하는 따위를 이른다. 귀성(鬼星) 28수 가운데 스물셋째 별자리의 별들로, 대한(大寒) 때, 해가 뜨고 질 때에 정남쪽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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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신미) 五日 辛未 흐림. 금년의 장마 비는 오월부터 달을 이어서 개지 않아 간간히 (홍수가) 산을 삼키고 언덕을 넘는[懷山襄陵]71)때가 많았다. 때문에 여러 곳을 왕복할 때 '회양(懷襄)'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陰。今年霖雨。 自五月。 連月不開。 間多懷山襄陵之時。 故諸處往復。 多用懷襄之辭。 산을 삼키고 언덕을 넘는[懷山襄陵] ≪서경≫ 〈요전(堯典)〉에 "넘실넘실 홍수가 바야흐로 터져서, 끝없이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어서, 질펀하게 하늘까지 잇닿았으므로, 백성들이 탄식하고 있다.[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襄陵, 浩浩滔天, 下民其咨.]"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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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일찍 출발하여 ᄀᆞᆯ길리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연기(燕岐)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용정(龍亭) 나루를 지나 오촌(鰲村)에 도착하였다. 80리 길을 갔다.장석(丈席)의 환후는 아직 쾌차하지 않았고, 또 근래 일어난 국상(國喪)으로 곡반(哭班)에 참여하느라 읍내를 왕래하고 있는 데다 조섭을 잘못하는 일이 있으니 매우 걱정스러웠다. 우리들이 상경한 뒤로 요청했던 문자를 지어 두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계속 겨를이 없어 유념하지 못했다고 하니 걱정스러웠다. 早發至ᄀᆞᆯ길리酒幕朝飯, 抵燕岐三巨里中火。 到龍亭津, 得達鰲村, 行八十里。 丈席患候未快, 且近以國恤哭班往來邑內, 又有失攝之道, 可悶可悶。 意謂吾等上京後, 所請文字製置矣。 連汨無暇, 不得留念云悶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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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재록하는 일로 일찌감치 가서 유석하(柳錫夏)를 만나 상의하였다. 그길로 함께 김제(金堤) 송상실(宋相實)이 머물고 있는 주인집에 가서 상의하였더니, 아침을 먹은 뒤에 들어오라고 하였다. 도로 주인집으로 나와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들어갔으나 요청한 영리가 오지 않았다. 게다가 동행이 길을 재촉하므로 내려올 때 하기로 서로 약속하고 정오에 길을 나섰다. 삼례(參禮)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능측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以載錄事, 早往見柳錫夏相議, 仍爲同往金堤 宋相實所旅主人家相議, 則食後入來爲言, 故還爲出來主人家朝飯, 更爲入去, 則所請營吏不來。 且同行促行, 故以下來時相約, 午時登程。 抵參禮中火, 抵陵側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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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礪山) 읍내에 이르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어 요기하고 사교(沙橋)62)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소월(小越) 주막에 가서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抵礪山邑內, 始開東矣。 仍爲療飢, 抵沙橋中火。 暮抵小越酒幕留宿。 行百里。 사교(沙橋) 논산 은진면과 부적면의 논산천을 건너던 다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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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오촌(鰲村) 동방록(同房錄)송석년 무술생 수이 여산 사람 흥양에 거주송흠영 임술생 자량 은진 사람 회덕에 거주정현석 갑인생 군범 광주 사람 임천에 거주정재팔 계해생 순거 의성 사람 용담에 거주금석로 병진생 영수 봉성 사람 옥천에 거주 鰲村同房錄宋錫年 戊戌 壽而 礪山人 居興陽宋欽悅 壬戌 子良 恩津人 居懷德鄭玄錫 甲寅 君範 光州人 居林川丁載八 癸亥 舜擧 義城人 居龍潭琴錫老 丙辰 永叟 鳳城人 居沃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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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길을 나설 때에 문등(門登)의 종인(宗人)이 그 족계(族契)의 돈 10냥을 신행(贐行)1)으로 주고, 성리(城里)의 종인 사달(士達)이 돈 3전(三戔)을 신행으로 주었다. 윤일(允日)은 돈 1전(一戔)을 신행으로 주고, 망동(望洞)의 종인은 돈 2전(二戔)을 신행으로 주었으며, 김희서(金喜瑞)는 돈 1전(一戔)을 신행으로 주었다.대곡(大谷) 형님, 가아(家兒)와 길을 나서 석촌(石村)의 송계석(宋啓錫)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탄포(炭浦)에 이르러 곧장 종과 말을 사교(四橋)로 보내고 나는 송창(松倉)에 가서 도감(都監) 송경렬(宋敬烈)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도감이 술을 사서 주고, 또 돈 5전(五戔)을 신행으로 주었다. 저녁에 재동(齋洞)에 이르러 묵었다. 發程之際, 門登宗人以其族契錢一兩贐行, 城里宗人士達以三戔錢贐行, 允日以一戔錢贐行, 望洞宗人以二戔錢贐行, 金喜瑞以一戔錢贐行。 與大谷兄主及家兒發行, 抵石村 宋啓錫家中火。 至炭浦, 直送奴馬於四橋, 余則往松倉, 與都監 宋敬烈暫話, 沽酒以進, 又以五戔錢贐行。 暮抵齋洞留宿。 신행(贐行) 여행하는 자에게 주는 돈과 물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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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아침에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이에 아침을 먹고 잠시 원동(院洞)의 이상룡(李尙龍) 집에 갔다.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에 주막으로 내려왔는데, 비가 개어서 그길로 길을 떠났다. 영귀정(咏歸亭)에 들러 외종 형수를 만났는데, 그 모습이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잠시 쉰 뒤에 출발하여 석곡(石谷)에 이르러 잠깐 쉬었다가 율목정(栗木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朝雨不止, 故仍朝飯, 暫往院洞 李尙龍氏家, 暫敍後, 下來酒幕。 雨勢開霽, 故仍爲發程, 入咏歸亭, 見外從嫂, 則景像不忍見。 暫憩後發程, 抵石谷暫憩, 抵栗木亭中火。 抵谷城邑內留宿。 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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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향교에 가서 교임(校任)4) 송상혁(宋象赫)을 만나 실기(實記) 한 권을 전한 뒤, 예조에 소장을 올리고 명첩(名帖)을 얻는 일에 대해 논의하니 답하기를, "소장을 먼저 본관(本官)에 올리고, 다음은 감영(監營)에 올리며, 다음은 예조(禮曹)에 올려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도유(道儒)의 이름을 얻은 뒤에 영문(營門)에 올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더니, 훗날 영문에 올릴 때 명서장(名書狀)과 인교도서(印校圖書)를 얻어 교복(校僕, 향교의 종)에게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주인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일의 형세가 그러할 듯하므로 동행과 상의하여 이러한 뜻으로 문중에 보낼 서간과 가신(家信)을 써서 영주인 편에 부쳤다. 점심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朝飯後, 往鄕校見校任 宋象赫, 傳實記一卷, 論其呈曹得名帖事, 則答曰: "呈本官, 呈營門, 呈禮曹云云。" 故今得道儒名後, 呈營門何如, 則他日呈營時, 得名書狀印校圖書, 使校僕呈出爲可而不許, 故還來主人家, 思之則事勢似然, 故與同行相議, 以此意書送書簡於門中, 及家信於營主人便。 午飯後發程, 抵參禮留宿。 行三十里。 교임(校任) 조선 시대, 향교를 운영하고 교생들을 교육하는 향교의 직원을 이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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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기 전에 남계(南溪) 정내성(丁乃成)이 와서 만났는데, 성에 들어온 뒤로 처음 보게 되니 매우 기뻤다. 이어 같이 아침을 먹고 나서 정내성(丁乃成), 명생(明生, 명두엽(明斗燁))과 전의(典衣) 방동(房洞) 정내성의 주인과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대묘동(大廟洞)의 공서(公瑞)가 머물고 있는 사관(舍館)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서와 예조 직방(直房)에 같이 가자고 약속하였는데, 공서가 사랑(舍廊)에 들어갔다가 끝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몹시 기다리다가 홀로 직방(直房)에 가서 《사원록》을 꺼내어 보고 이어 베껴 썼다. 또 정장(呈狀, 관청에 내는 소장))하는 일을 논하였더니, 들어가는 것이 없지 않으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으므로 나와서 오는 길에 정초지(正草紙)70)를 사가지고 왔다. 食前南溪 丁乃成來見, 入城後初見, 忻喜忻喜。 仍與朝飯, 與乃成及明生同典衣房洞 乃成主人暫話。 往大廟洞 公瑞舍館暫話, 與公瑞同往禮曹 直房之意相約, 而公瑞入舍廊, 終不出來。 苦待不已, 獨往直房, 出見《祠院錄》, 仍爲謄書。 又論呈狀事, 則不無所入, 預備爲好云, 故出來, 來路買正草而來。 정초지(正草紙) 과거 시험에 사용하던 시지(試紙), 즉 과지(科紙)를 말한다. 알성시ㆍ정시 등 친림시 시지로 사용되었는데, 도련지보다는 지질이 떨어지는 초주지(草注紙)를 사용하였다. 응시자들은 시험보기 이틀 전에 응시자로 등록하는 녹명(錄名)의 절차를 밟았는데, 미리 준비한 시지와 사조(四祖)의 신원을 기록한 녹명단자를 함께 제출하면 녹명을 담당한 관원은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녹명책에 이름을 올린 후 시지의 봉함부분에 확인 도장을 찍어 주면 이 시지를 들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정식 응시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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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아침을 먹은 뒤에 명생(明生)과 과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서소문(西小門) 밖 이희(李) 집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정초지(正草紙)에 타인(打印)하게 하였다. 이어 대묘동(大廟洞) 보성 접주인(接主人, 주접(住接)하던 집의 주인) 집으로 갔다. 오후 비가 내리는 바람에 반촌(泮村)에 들어가지 못하고 보성 접주인 집에서 그대로 머물렀다. 食後與明生入場次, 入去西小門外李家, 使主人正草打印。 仍往大廟洞 寶城接主人家。 午後雨所戱, 不得入泮村, 仍留寶城接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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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계유) 七日 癸酉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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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임신) 七日 壬申 맑다가 밤에 비가 조금 왔다. 오치면(梧峙面)100) 장동(章洞)에 사는 기성군(箕城君) 이긍(李兢)101)의 16세손인 계종(啓琮) -자가 명숙(明叔), 호가 삼산(三山)- 이 쌍석(雙石, 이희용)과 함께 와서 단란하게 얘기하다 갔다. 陽。 夜小雨。梧峙面章洞。 箕城君李兢十六孫。 啓琮。 字明叔。 號三山。 與雙石同來。 團圝而過。 오치면(梧峙面)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오치면으로서, 현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해당된다. 이긍(李兢, 1389∼1433) 본관은 함평(咸平). 1405년 식년시 병과로 급제하고, 1427년 중시(重試) 을과로 급제하여 대언에 뽑혔다. 한어(漢語)를 잘하여 승문원제조가 되어, 한어를 가르쳤다.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예조참의, 공조우참판(工曺右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1433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북경에 가던 도중 병을 얻어 첨수참(甛水站)에 이르러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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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계유) 八日 癸酉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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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갑술) 九日 甲戌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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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병인) 二日 丙寅 맑음. 오현(五絃)의 친산에 성묘를 했다. 陽。行五絃親山省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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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정묘) 三日 丁卯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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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일찍 출발하여 성환(成歡)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즉시 출발하여 칠원(漆原)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수원(水原) 오산(烏山) 시장 근처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早發抵成歡朝飯, 卽發抵柒原中火。 抵原 烏山水市邊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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