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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에 가니 교리가 입직하여 만나지 못하고, 치회(穉會) 형제만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곧장 이문동(里門洞)15)의 장우(張友, 장씨 성의 벗)에게 갔으나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또 팔패(八牌)에 가서 송상원(宋尙元)을 만나고 왔다. 食後往鑄洞, 校理入直不遇, 只見穉會兄弟。 來路直往里門洞 張友, 尙不來矣。 又往八牌, 見宋尙元而來。 이문동(里門洞)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에 이문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우리말로 '이문골', '이문안'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이다. 서울에 이문이 설치된 것은 조선 세조 때로 도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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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귀남(龜南) 종객(宗客)과 흥양(興陽) 사람이 내려왔으므로 같이 청파(靑坡)로 가서 송별하고 왔다. 오전에 화옥(華玉)이 와서 보고 갔다. 마필(馬匹)을 샀다. 龜南宗客及興陽人下來, 故同往靑坡送別而來。 午前華玉來見而去。 買馬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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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동틀 무렵 길을 나서 수원(水原)을 지나가는데 그 성역(城役)의 번거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석재(石材)로 길이 막혀 대로(大路)를 경유할 수 없으니 시내를 따라 우회하여 간신히 나와 중저점(中底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사(素沙)에 이르자 바람이 크게 일어나 날리는 먼지가 눈앞을 가리므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100여 리 길을 왔으니 말에게 병이 생길까 걱정되어 이에 머물러 묵었다. 平明登程, 過水原, 其城役之煩巨, 不可勝言。 石材塞路, 不得由大路, 沿溪迂回, 艱辛出來, 至中底店中火。 至素沙, 風氣大作, 飛塵溢目, 不得前進, 且已行百餘里, 則恐馬生病, 因爲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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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주동(注洞)의 종인(宗人)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주자장인(鑄字匠人)을 다른 곳에 빼앗겨 사람을 시켜 그 기계(器械)를 빼앗아 오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환전(換錢)을 아직 손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어긋날 염려가 있으니 한탄스럽다.고향 사람 여러 명이 모두 찾아와서 보고 갔다. 전해 듣기로, 산양(山陽)의 안사강(安士剛)이 여점(旅店)에 와서 머물고 있다고 하는데, 병 때문에 가서 볼 방도가 없으니 서글프고 한탄스러운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注洞宗人來見爲言, "鑄字匠人之見奪於他處, 使人往奪其器械"云, 而以換錢之尙未入手, 故事有違之慮, 可歎。 鄕人數輩, 皆來見而去, 傳聞山陽 安士剛, 來留於旅店云, 而病無往見之道, 悵歎何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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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사동(沙洞)의 최생(崔生)이 찾아와서 만났다. 상원(尙元)이 주동(注洞)으로부터 와서 말하기를, "한창 간행(刊行) 중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가서 만날 길이 전혀 없으니, 한탄스럽다. 沙洞 崔生來見, 而尙元自注洞來言, "方張刊役"云, 而萬無往見之道, 可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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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卄六日 새벽에 일어나 말에게 꼴을 먹였으나 말이 먹지 않아 일찍 출발하지 못하고, 아침을 먹은 뒤에 여정을 시작하여 원천(源川)1)에 이르렀다. 화옥(華玉)과 헤어질 때 나는 원천(源川)으로 향하고, 화옥(華玉)은 수종(水宗)으로 향하여 내일 오수(獒樹)에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천천히 걸어 주포(周浦)의 여막(旅幕)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는데 전혀 먹지 않으니 괴이하고 걱정스럽다. 즉시 길을 나서 10여 리를 가다가 우연히 매형 제언씨(濟彦氏)와 노우(盧友, 노씨 성의 벗)를 만나 도중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내려와 고룡서원(古龍書院)2)에 머물렀다. 曉起秣馬, 則鬣者不食, 故不得早發, 因爲朝飯後啓行, 至源川。 與華玉分路, 余向源川, 華玉向水宗, 約以明日會于獒樹。 緩行至周浦旅幕, 秣馬則全不食, 可怪可慮。 卽爲登程行十餘里, 偶逢妹兄濟彦氏及盧友, 暫話路次, 同爲下來, 留古龍書院。 원천(源川) 원문은 '□川'인데, 결락된 1자는 여정의 동선으로 보았을 때 다음 도착지인 '원천(源川)'으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고룡서원(古龍書院)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창주서원(滄洲書院)'을 말한다.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는데, 정유재란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사우(祠宇)만 보존되어오다가 1600(선조33)년에 '창주(滄洲)'라 사액되어 '창주서원'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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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卄七日 풍설(風雪)이 매우 심했다. 말이 먹으려 들지 않기에 걸어서 오수(獒樹)에 이르렀다. 화옥(華玉)이 오지 않았는데, 행인(行人)들의 말을 전해 들으니 전석치(磚石峙)에서 머물며 기다린다고 하여서 인편을 통해 기별을 부치고 그대로 오수(獒樹)에 머물렀다. 風雪極惡。 以馬之不食, 徒步至獒樹, 則華玉不來, 而傳聞行人之言, 則留待於磚石峙云, 故因便付奇, 因留獒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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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을 먹은 뒤에 아현(阿峴)에 가서 민 낭청(閔廊廳)을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다시 근동(芹洞)으로 와서 건(健)·순(順) 형제와 한동(翰洞)으로 가서 종일토록 글을 논하고 왔다. 食後往阿峴, 訪閔廊廳不遇。 還來芹洞, 與健、順兄弟往翰洞, 終日論文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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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비가 내렸다. 오후에 비가 그치자 어깨의 통증 때문에 한동(翰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에게 침을 맞고 왔다. 길을 따라 걸어둔 관등(觀燈)49)이 가히 장관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주인령(主人令)과 함께 동산(東山)에 올라가 관등을 구경하고, 또 남평(南平)과 노상(路上)으로 가서 관등을 보고 돌아왔는데 밤이 이미 깊었다. 이에 잠자리에 들었다. 雨。 午後雨歇, 往翰洞, 以肩臂之痛, 受針李興陽而來。 沿路觀燈, 可謂壯觀, 夕飯與主人令, 上東山觀燈, 又與南平往路上, 觀燈而歸, 夜已深矣。 因爲就睡。 관등(觀燈) 음력 4월 초 8일, 즉 석존(釋尊)의 탄일(誕日)을 기념하는 일로서 집집마다 등(燈)을 다는 등의 행사를 말하고, 법사(法事)는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공양(供養) 등의 행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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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어제부터 마음에 번민스러운 증세가 있어서 이른 아침에 팔선(八仙)을 김 주부(金主簿) 집에 보냈더니, 답하기를, "간병(看病)하기 위해 나갔다가 3일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라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왔으니 한탄스럽다. 우선 소생(蘇生)과 강생(姜生) 두 사람이 돌아가겠다고 고하였기 때문에 가서(家書)를 부쳐 보냈다. 自昨日中焦似有煩悶之症, 故早朝送八仙於金主簿家, 則答云 "看病次出去, 已三日 不來云," 故不得已空還, 可歎。 姑蘇、姜兩生告歸, 故付家書以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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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주동(注洞)에 가서 참판 조윤형(曺允亨)2)에게 재동서원(齋洞書院)3)의 편액을 받아 왔다. 往注洞, 受來齋洞院額於曺參判允亨。 조윤형(曺允亨) 1725~1799.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이다. 그림과 글씨에 능하였는데, 풀·대나무 등의 묵화를 잘 그렸다. 글씨는 초서·예서를 잘 써서 일찍이 서사관(書寫官)을 역임하였으며, 위로는 대신들로부터 아래로 조례(皁隷)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그의 글을 얻으려 하였다. 재동서원(齋洞書院) 여산 송씨 충강공 송간(宋侃)을 주벽으로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 송순례(宋純禮), 송희립(宋希立), 송건(宋建)과 김시습(金時習) 등 15위를 향사하는 곳이다. 1785년(정조9) 최초 건립 당시 여산 송씨 송간(宋侃),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과 고흥 유씨 유탁(柳濯), 영광 정씨 정연희 등을 봉안하기 위해 두원면 운곡리에 운곡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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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27일 二十三日四日五日六日七日 그믐날까지 연일 혹 주동(注洞)으로 가고, 혹 청파(靑坡)에 가서 보책(譜冊)을 추심(推尋)하여 부쳐 보낼 계획을 세웠는데, 장황(粧䌙)4)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민스럽다. 至晦日連日, 或往注洞, 或往靑坡, 以爲推尋譜冊付送之計, 而粧䌙未易, 悶悶。 장황(粧䌙) 장황(裝潢)이라고도 하며, 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이나 화첩(畫帖), 족자 따위를 만드는 것, 혹은 만든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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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아침을 먹은 뒤 느즈막에 잠깐 비가 갰으므로 즉시 비를 무릅쓰고 길에 올랐다. 오리치(五里峙)에 이르자 비가 크게 내려 의복이 모두 젖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였다. 부득이 무동정(茂東亭)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화옥이 어제 지나갔다는 것을 물어서 알고는, 곧바로 비를 맞으며 출발하였다. 여암막(餘巖幕)에 이르니 여암막 기둥에, '화옥(華玉)은 어제 그 여암막에 머물고 있다가 고읍(古邑)에 있는 벗 박양언(朴良彦)의 집으로 출발하였다'라고 써서 걸어 두었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좌수(李座首)의 집에 들어가니 이생(李生)이 정성스레 대접해 주었다. 온돌(溫突)에 약간이라도 의복을 말릴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終日雨注。 朝飯後, 向晩乍霽, 故卽爲冒雨登程。 至五里峙雨大作, 衣服盡濕, 進退維谷。 不得已至茂東亭, 秣馬療飢。 問知華玉昨日過去, 因卽冒雨發行。 至餘巖幕, 則幕柱書揭華玉昨留其幕, 發向古邑 朴友 良彦家云, 而日已夕矣。 不得已入李座首家, 則李生款接。 溫突略燥衣服, 可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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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 고읍(古邑)의 마을 앞에 이르렀다. 양언(良彦)의 집에 노복을 보내어 화옥(華玉)이 머물며 기다리는지 살펴보게 했는데, 박우(朴友)가 오라고 하였으므로 고읍(古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병동(屛洞)의 송지각(宋之珏)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돌아오는 길에 신기(新基)로 가서 약노(若魯) 씨의 궤연(几筵)에 조문하고 한참을 위로하다가 면교(面橋)로 방향을 바꾸어 나주 형님의 상(喪)에 조문하였다. 早朝登程, 至古邑村前。 送奴於良彦家, 探知華玉留待, 而朴友要之, 故入古邑朝飯。 至屛洞 宋之珏家, 中火秣馬。 來路往新基, 吊若魯氏几筵, 移時致慰, 轉向面橋, 吊羅州兄主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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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차동(車洞)에 갔더니, 주인은 때마침 도승지(都承旨)가 되어 입직하여 경모궁(景慕宮) 거둥할 때에 배종하였으므로 다만 진사 욱여(旭汝)와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퇴근한 뒤에 잠시 주인을 만나고 곧바로 내려와서 청파(靑坡)에서 묵었다. 밤에 비가 왔다. 早食後往車洞, 則主人時爲都承旨入直, 陪景慕宮擧動, 故只與進士 旭汝, 終日談話。 申退後, 暫見主人, 卽爲下來, 靑坡留宿, 夜點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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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경유(景猷)가 와서 보았다. 종일토록 편안히 잠을 잤다. 낮에 꿈속에 천노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 기쁜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었는데, 한참 뒤에 잠에서 깨어나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상원이 주동(注洞)에 가서 돈 62냥을 납부하고 왔다. 주동(注洞)에서 온 편지에 연시지(延諡紙)를 물리었다는 기별이 있었다. 이렇게 시급한 때에 이 일을 장차 어찌해야 좋겠는가. 나의 병이 이와 같아서 궐문 밖에 출입하지도 못하고 오로지 주동(注洞) 사람을 시켜 대신 수고로이 마련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힘을 다하였으니, 매우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약간의 근력(筋力)이 며칠 설사를 하느라 모두 소진되어 말이 소리를 이루지 못하고 소리가 목에서 나오지 않아 숨이 곧 넘어갈 지경이라 아침에 저녁 일을 보장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저녁 무렵에 김 주부(金主簿)가 찾아와서 보고는 설사로 계고를 이미 중지했으니 오래지 않아 저절로 낫겠지만 남은 열이 여전히 오락가락하니, 인동차(忍冬茶)를 쓰면 좋을 듯하다고 하였다. 저녁 무렵 백건(伯健)이 와서 보고 갔다. 景猷來見。 終日安枕。 午夢千奴忽來現, 喜不可言, 移時睡覺, 回顧無有。 尙元往注洞, 納錢六十二兩而來。 注洞之書, 有延諡紙退托之奇, 當此急時, 此將奈何? 吾病如此, 不得出入門外, 專使注洞之人, 代勞措備矣。 其處不殫勞苦, 多方宣力, 極爲感幸。 若干筋力, 都消於數日泄瀉, 言不成聲, 聲不出喉, 氣息奄奄, 若不保朝夕矣。 夕間金主簿來見, 泄瀉鷄膏旣止, 不久自差, 餘熱尙有往來, 又用忍冬茶則好矣云。 夕間伯健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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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이른 아침 이 흥양(李興陽)이 삼노(三奴)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게 하였다. 날이 저문 뒤에는 이(李)·공(孔) 등 여러 사람과 김각(金珏), 최생(崔生)이 찾아와서 보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갔다. 早朝李興陽, 使三奴書問。 晩後李、孔諸人及金珏、崔生來見, 移時談話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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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일찍 출발하여 금강(錦江) 모래톱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광정(廣亭)까지 5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우연히 광주(光州) 평장동(平章洞) 김 참봉(金參奉)과 서울 사람을 만났다. 순귀(順歸)하는 말1)을 사헌(士憲)이 세내어 타고 왔다. 천안(天安)까지 50리를 가서 묵었다. 早發至錦江沙頭療飢。 至廣亭五十里, 朝飯秣馬。 偶逢光州 平章洞 金參奉及京人。 順歸馬士憲貰馬騎來。 至天安五十里留宿。 순귀(順歸)하는 말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사람의 인편에 따라 오는 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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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김 참봉과 동행했다. 일찍 출발하여 성환(成歡)까지 4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진위(振威)까지 50리를 가서 요기하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중저(中底)까지 20리를 가서 묵었다. 因與金參奉同行。 早發至成歡四十里, 朝飯秣馬。 至振威五十里, 療飢秣馬。 至中底二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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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새벽에 출발하여 용산교(龍山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부내(府內)의 장영손(張永孫) 집에 도착하였다. 잠시 쉰 뒤에 서산서원(西山書院)60)에 가서 최수일(崔洙一)을 만났다. 대개 오촌(鰲村)에서 서로 작별할 때, 내려가는 길에 찾아가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니, 그 기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주인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에 주인을 데리고 가서 이 찰방을 만났더니, 사또(使道)가 감기에 걸린 데다 온갖 업무로 복잡하여 뵐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두고 간 책자를 사또께 드렸더니 사또가 한 편을 다 열람하시고는, "일찍이 《장릉지(莊陵誌)》를 교정(校正)한 적이 있다."했다고 하였다. 《서재실기(西齋實記)》를 두고 전에 남겨 둔 책자(冊子, 《서재행록(西齋行錄)》을 말함)는 가지고 나와 주인집에서 묵었다. 曉發抵龍山橋朝飯, 得達府內 張永孫家。 小憩後, 往西山書院, 訪見崔洙一。 蓋鰲村相別時, 有下去路尋訪之約故也, 其忻喜何可盡言? 還來主人家, 夕飯後, 率主人往見李察訪, 則使道非但感氣, 百務多端, 不得見謁云, 而頃留冊子, 納于使道, 則使道盡覽一篇, 而曰: "曾已校正於《莊陵誌》"云矣。 留《西齋實記》, 前留冊子, 則持而出來, 主人家留宿。 서산서원(西山書院) 조선 인조(仁祖) 때 전주(全州)에 건립한 사우(祠宇)로, 최양(崔瀁)·최덕지(崔德之)·송영구(宋英耉)·이계맹(李繼孟)·이흥발(李興浡)·이기발(李起浡) 등을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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