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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동틀 무렵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 작별하고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신탄(新灘) 시장 근처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밤에 내린 눈으로 몹시 추워 고민스러운데,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 채 못 가서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쳤다. 간신히 유성(油城)에 도착하여 떡을 사 요기하고 눈을 맞으며 길을 나섰다. 눈발이 날려 눈앞을 막고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실로 견디기 어려웠다. 산정령(散亭嶺) 진치(盡峙)를 넘고 선창(船倉)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이 주막은 신도(新都)에 가까운 곳이다. 이번 길에는 신도(新都)에 들어가 두루 구경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산과 들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자세히 구경할 수 없었다. 이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또한 멀리 바라만 보고 지나가니 매우 안타까웠다. 개태령(開泰嶺)을 넘어 간신히 연산(連山)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平明與同苦諸人作別, 治行發程。 抵新灘市邊朝飯。 夜雪極寒悶悶, 未及油城市邊, 風雪大作。 艱到油城, 買餠療飢, 冒雪登程。 飛雪滿目, 寒氣逼骨, 實爲難堪。 越散亭嶺 盡峙, 抵船倉酒幕中火, 此幕卽新都近地也。 大擬今行入新都周玩矣, 雪滿山野, 不能詳玩, 故不得入見, 亦爲望見而過, 大是欠事欠事。 越開泰嶺, 艱抵連山邑內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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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3월 정시 때 동행록 癸未 三月 庭試時 同行錄 송석필 윤계눌 송 도정두옥 송 현 박종수신상록 신일모 정두화송석년 송 필 강하천정두민 신천록 송 린 宋錫弼 尹啓訥 宋 濤丁斗玉 宋 玹 朴宗壽申相錄 申一模 丁斗華宋錫年 宋 珌 姜河天丁斗玟 申天祿 宋 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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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題辭) 題辭 춘조(春曹, 예조의 별칭)에 기록되었는지의 여부는 본원에 경중이 되기에 부족하지만 선비들의 바람이 이미 이와 같으니 삼가 등록하여 예전의 일을 기록하다. 19일 春曹之載錄與否, 雖不足爲輕重於本院, 而士望旣如此, 謹當載錄向事。 十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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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오늘 아침밥도 주인댁에서 준비해 주었다. 장석이 말씀하시기를, "이 고을의 수령이 자녀 상(喪)을 당하였으니 가서 만나보고 위로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그 기별은 듣지 못하였지만 마땅히 들어가 뵙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밥을 먹은 뒤에 읍내로 들어갔으나, 혼금(閽禁)59)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저녁을 먹고 사랑에 들어갔더니 문자를 내보이시면서 내게 읽어 보라고 하셨다. 이에 한차례 읽고 나자 장석의 아들 지(枝)와 흠성(欽成)에게도 읽어 보게 하셨다. 또한 한차례 읽으니 그대로 내주어서 행랑채로 가지고 왔다. 60여 일 끝에 글을 받들고 나왔으니 그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이날 전주(全州)의 최수일(崔洙一)도 요청한 글을 개정(改正)하기 위하여 도착하였다. 朝飯亦自主人宅備給。 丈席曰: "本倅遭其子女喪, 未可往見而致慰耶?" 余對曰: "此奇則未聞, 而當入見矣。" 食後入去邑內矣, 以閽禁之致, 不得見而爲出來。 夕飯入去舍廊, 則以文字出示, 而使余讀之爲敎, 故一次讀下, 則又使其子枝·欽成讀之, 亦以一次讀下, 則仍爲出給, 故持來廊底。 六旬之餘, 奉出文字, 其喜何可言? 是日全州 崔洙一, 亦以請文改正次來到。 혼금(閽禁) 관청에서 잡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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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새벽에 바로 행상(行喪)48)하여 그대로 호행(護行)하였는데, 장지에 이르니 이조동(吏曹洞) 뒤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서남(西南)으로 끝없이 확 트여 있어 보통 사람의 안목과 식견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시(巳時)에 하관(下棺)하고 그길로 유둔(油芚) 시장 근처로 가니, 내가 내려왔다는 기별을 듣고 노소(老少)의 문원(門員)들이 모두 와서 모여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서울에서 썼던 돈 100여 냥을 각파(各派)에 나누어 기록하였다.오후에 역소(役所)로 돌아와 제사를 지낸 뒤에 즉시 반혼(返魂)49)49) 반혼(返魂) : 장례 후에 신주를 모시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오는 의례를 말한다. 이를 '반우(返虞)', '흉제(凶祭)'라고도 한다.하고 곧바로 초우(初虞)50)를 지냈다. 지정(池亭)에서 머물렀다. 曉卽行喪, 仍爲護行, 而及至葬所, 則吏曹洞後最高峯, 西南滉瀁無涯, 以凡眼姑未可知也。 巳時下棺, 仍行油屯市邊, 則老少門員, 聞余下來之奇皆來會, 相與敍話後, 分錄京中所用百餘兩錢於各派。 午後還來役所, 行祭後, 仍卽返魂, 卽行初虞, 留池亭。 행상(行喪) 시신을 상여에 실어서 산소로 나르는 일을 말한다. 초우(初虞) 산소(山所)에서 장례(葬禮)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혼령(魂靈)을 위안(慰安)하기 위해 장사 당일을 넘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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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아침 전에 길을 나서 치등(峙登)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은진(恩津)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다음, 길을 나서 몇 리를 채 못 가서 앞에 큰 내를 만났다. 내를 건널 때에 김노(金奴)가 발을 헛디뎌 등에 짊어졌던 짐이 반이나 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가까스로 천변으로 나와 손으로 젖은 옷을 짜서 볕에 말리고 행낭(行囊)에 있던 남은 바지로 갈아입었으니, 그간의 실상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간신히 연산(連山) 중개태(中開泰)에 이르러서 묵었다. 50리를 갔다. 朝前發程, 抵峙登酒幕朝飯。 抵恩津三巨里中火, 仍爲發行, 未數里前當大川。 越川之時, 金奴失足, 背上負卜爲水半流。 艱出川邊, 笮手燎衣, 而換着行橐之留袴, 其間實狀, 不可盡詳。 艱抵連山 中開泰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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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미태정(米太亭)에서 아침을 먹고, 벌교(筏橋)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백정자(柏亭子) 어귀에 이르러 동행과 헤어지고, 나는 사촌(社村)에 들어가 잠시 쉰 뒤에 사교(四橋)의 가교(柯橋) 댁에 들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재동(齋洞) 동면(東面)의 형님 장사지낸 일이 내일이라고 하므로 미옥(美玉)과 그길로 마륜(馬輪)에 갔다. 동편의 성윤(聖允) 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재동 종가에 들어가 가묘에 배알하고, 궤연(几筵)에 절하고 곡한 뒤에 말할 수 없이 피곤하여 잠깐 눈을 붙였다. 早發至米太亭朝飯, 抵筏橋午飯。 抵柏亭子前, 與同行分路, 余則入社村, 暫憩後, 入四橋 柯橋宅。 敍話後, 言齋洞 東面兄主葬事明日云, 故與美玉, 仍往馬輪。 入東邊聖允家夕飯。 入齋洞宗家, 祗謁家廟, 拜哭几筵後, 困憊難狀, 暫爲接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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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무안(茂安) 형님, 문대(文大)씨와 유둔(油芚) 시장 근처에 갔더니, 문중의 노소(老少) 몇몇 사람이 와서 모였는데, 사환(使喚, 잔심부름꾼)을 얻을 수가 없어 매우 걱정스러웠다. 마침 양리(楊里)의 석사 이계영(李啓榮)과 이순영(李淳榮) 종형제를 만났는데,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달리 동행이 없어 적막하던 중에 이처럼 동향(同鄕)의 친지를 만났으니 다행이었다. 내일 동행하기로 약속한 뒤에 사교(四橋)로 돌아와서 머물렀다. 與茂安兄主及文大氏, 往油屯市邊, 則門中老少略干來會, 而使喚不得, 可悶可悶。 適逢楊里 李碩士、啓榮、淳榮從兄弟, 作京行之人, 別無同行寂寞之中, 得此同鄕親知之人, 可幸, 而以明日同行之意相約後, 還來四橋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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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아침에 북문 밖에 가서 송약수(宋若洙) 씨를 만난 다음, 그의 아우인 송민수(宋民洙) 네 작은집을 찾아 갔는데 외출하였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결국 가랑비 때문에 막혀서 그대로 머물렀다. ○朝前往北門外, 見宋若洙氏, 尋其弟民洙小家, 則出外故不見, 而還來主人家。 是日終爲微雨所阻仍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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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종일 비가 내려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답답하였다. 저녁을 먹을 때에 길손 한 명이 들어와서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바로 연산(連山)에 사는 이 석사(李碩士)인데 순찰사의 일가라고 하였으며, 그의 이름은 이종수(李宗洙)였다. 건넌방에 보은(報恩) 손님이 며칠을 머물러 있었는데, 밥을 먹은 뒤에 마침 우리가 머무는 곳에 왔다. 그래서 그 성명을 물어 보니 윤제대(尹濟大)라는 이름의 사람이었으며, 그의 나이를 물으니 나와 갑생(甲生)이었다. 그가 온 연유를 물었더니, 역천(櫟泉) 선생의 서원을 건립하는 일과 각 고을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규례대로 돈을 수합하는 일을 순상(巡相)에게 청탁하려고3) 이 주막에 와서 머물러 있다고 하였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묵었다. ○終日雨不得出外, 悶悶。 夕食時, 有一客入來, 故與之相話, 則乃連山居李碩士, 而與巡相一家云, 其名則宗洙矣。 越房有報恩客留連, 而食後適來吾留處, 故問其姓名, 則尹濟大爲名人, 問其年, 則與吾甲生。 問其來由, 則以櫟泉先生建院事, 各邑校院例付錢收合事, 稱念於巡相之意, 來留此幕云。 與之談話, 仍爲同宿。 청탁하려는 원문의 '칭념(稱念)'은 관원이 외방에 나아갈 적에 고관들이 사적으로 은근히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성종실록(成宗實錄)》 9년 4월 8일 조에 "수령이 부임할 적에 그 지방 출신의 공경대부들이 그를 알든 모르든 간에 모두 술과 고기를 가지고 와서 전별하며 자기 노비들을 잘 봐 달라고 청하는 것이 상하 간에 풍속을 이루었는데, 이를 일러 칭념이라고 하였다.[凡守令之赴任也, 公卿大夫, 知與不知, 皆持酒肉而餞之, 請其奴婢完護, 上下成俗, 名之曰稱念.]"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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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고을 앞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흥양의 지자(持者, 문서를 전하는 사람) 신우당(申于堂)이라는 녀석을 만나, 그편에 아들 편지를 받았다.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받은 편지였다. 집안에 별다른 우환이 없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경기와 충청, 두 도는 가뭄이 극심해 보리농사를 흉작으로 치부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 데다 14일 내린 비는 겨우 쟁기질이나 할 정도의 비에 불과하여 모내기할 길이 만무하다고 하였다. 남쪽의 소식은 그간에 몇 차례 비가 내려 보리농사와 모내기는 윗지방보다는 그나마 넉넉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소사(素沙)46)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직산(稷山) 삼거리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早朝發程, 抵振威邑前酒店朝飯。 逢興陽持者申亍堂上京之漢, 其便得見家兒書。 離家後初見書也。 家中別無憂故云, 幸幸。 京畿、忠淸兩道, 則旱乾太甚, 麥凶辦之已久。 而雖十四日雨, 不過犁雨, 萬無移秧之道云。 南中消息, 則間有數次雨, 麥事與移種, 稍贍於上道云, 可幸可幸。 抵素沙療飢。 抵稷山三巨里留宿。 行八十里。 소사(素沙)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이다. 삼남대로는 소사동 북쪽에서 당산을 넘어 소사원을 지나 소사교를 건넌 뒤 소사벌을 지나 곧장 남쪽으로 내려갔다. 소사원은 삼남대로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원으로 충청도에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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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길을 나서 과역(過驛)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구룡정(九龍亭)에 들어가니 남양(南陽)의 종친들이 마침 많이 모여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 사교(四橋) 댁에 이르러 묵었다. ○九月二十五日。 發程抵過驛, 暫憩後, 入九龍亭, 則南陽諸宗, 適多會暫話, 暮抵四橋宅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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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길을 나서 천평(泉坪)1)에 이르러 묵었다. ○發程抵泉坪留宿。 천평(泉坪)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천평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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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길을 나서 용계점(龍溪店)에서 점심을 먹었다. 곡성(谷城) 교촌(校村) 오익(吳熤)의 집에 이르러 묵었는데, 오익은 바로 천평(泉坪) 고창진(高昌鎭)의 사돈집이다. 고창진의 아들이 현재 처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 보려고 왔다. 이날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서 몹시 괴로웠다. ○發程抵龍溪店中火。 抵谷城 校村 吳熤家留宿, 吳熤卽泉坪 高昌鎭査家也。 昌鎭之子, 方在其妻家, 故欲見而來矣。 是日風日極不佳, 苦哉苦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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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 전에 박영규(朴營奎)가 내려가므로 집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밥을 먹기 전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회동으로 가서 송 장성을 만나, 그 삼촌 송익정(宋翼廷) 씨를 위문하고, 또 그 독자(獨子)의 상을 조문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잠시 얘기를 하고 왔다. ○朝前, 朴營奎下去, 故修付家書。 食前, 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晦洞見宋長城, 慰其三寸翼廷氏, 又吊其獨子喪。 下來持淳家,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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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아침 일행과 동구안 약방으로 가서 구경하였는데, 소전(小殿, 세자(世子))이 경우궁(慶祐宮)28)의 하향 대제(夏享大祭)에 거동한 것이었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주인(京主人)29) 집에 들러 주인을 만나서 흥양(興陽, 고흥)에 대해 상세히 듣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쉬었다가 용동으로 갔다. 저물녘에 돌아오니 정동의 이 석사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早朝, 與同行往洞口內藥房觀光, 而小殿以慶祐宮夏享大祭擧動也。 觀光後, 來路入京主人家, 見主人, 詳聞興陽, 而還主人家。 少憩後, 往龍洞。 乘暮還, 則貞洞李碩士來訪云矣。 경우궁(慶祐宮)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있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1770~1822)의 사당이다. 1824년에 창건하였다. 경주인(京主人) 경저리(京邸吏)이다. 벼슬아치나 서민으로 서울에 머물러 지방 관청의 사무를 연락하고 대행하던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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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書碑閣【幷誌】 臣按鶴城邑乘曰御書碑閣乃仁烈王后誕生舊址在衙東數十步西平府院君韓浚謙宣廟癸巳爲牧使倭賊退後設衙於官吏崔斷龍家翌年七月初一日誕生王妃殿厥後王妃殿下敎問以所生之地今爲何人所居悵然有養不及之敎浚謙記其事留揭客館遺址初無封標英廟戊寅禮曺判書洪象漢於莊陵奉審之行歸奏故事監司沈鏞狀聞基址右議政李[土+厚]奉審以來上令道臣竪碑䢖閣仍親寫碑前後面以下又親製記文命西平外孫翰林洪秀輔書進刻揭工訖面賜廐馬於道臣地方官秀輔亦陞六◌碑前面書曰仁烈王后誕生之地後面書曰西平府院君記旣稱聖后之敎邑誌亦爲詳悉鳴呼我聖后誕生之處豈可泯於後乎盥手親書令道臣竪石海西有聖祖誕降碑於海州關東有聖后誕降碑於原州豈偶然哉戊寅陽至月敬寫◌親製記曰原州仁烈王后誕生舊基小識噫先祖遺址敬而守之者子孫之道也王后誕生之地其或私第其或公館何標識之有而若不然表而記之不泯於後於義當然列聖誌狀中王妃誕降之地稱寓所者二稱村舍者一而村舍卽新豊國舅田廬與私第無異寓舍一則端懿王后誕生之所今無可問之人一則原州仁烈王后誕生之處宣廟癸巳西平國舅爲本牧而當壬辰兵燹之餘處於村舍翌年甲午檜山府夫人誕生聖后本事國舅記文中詳備而邑誌中亦載焉所謂村舍卽官吏崔斷龍家而其外孫女聞於其母而指點其基前民安九雄聞於古老而亦爲指示所謂銀杏樹旣得其根以今番右相奉審者聞之兩人指點亦不過三四間範圍之內而其爲府東則無疑噫頃於辛亥百年之後拜聖后之梓宮于今望七之年得聖后誕降之地於鶴城其豈偶然愴慕一倍况我聖后以祿不及養之意下敎于國舅省墓時使之尋訪舊址昔年聖后之意若此而爲其孫知而不標使數三草舍屑越其間則可謂孝乎鳴呼二去庚午我聖考特命竪碑於海州聖祖誕降之地今幾七十載吁嗟不肖又爲竪石於原州聖后誕降之處追憶昔年此心難抑前後面盥手親書仍令道臣依豊壤制樣從簡竪碑建閣於兩人指點處以伸追慕之意歲皇明崇禎紀元後三戊寅陽至之月拜手謹識朝奉大夫行藝文館待敎兼春秋館記事官臣洪秀輔奉敎謹書◌臣過鶴城仰瞻碑閣之翼翼伏讀宸章之爛爛不覺感歎賦五言古風二十韻雉山何磅礡毓氣靈且秀樹德西平家膺運降聖后淑女與君子龍潛正相姤桓桓撥亂日密謨多保佑正位垂坤裳承乾贊化囿澣衣昭儉德而不被文繡祿養恨不逮永慕藹如幼宗祊流景祚篤生寧王又春秋大義理日月明宇宙胎敎知有自母道仰成就漠漠鶴城東遺址近湫陋指點塗莘屋州人傳不謬往蹟百年後神孫棲感舊璀璨降雲章上應奎璧宿畵閣何巍岌穹碑更雕鏤照暎祥日麗衛護瑞雲逗地靈儼相守可朋東岡壽幾多古哲辟坐饗萬來富于嗟封表擧前史曾未覯孝哉我英廟追遠聖德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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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이른 새벽에 출발하였지만, 비 온 뒤라 길이 질척거려 가는 길이 몹시 힘겨웠다. 사근천(肆覲川)4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지지현(遲遲峴)44)을 넘어 화성 북문 밖에 이르러 술을 사서 마셨다. 북문으로 들어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동장대(東將臺), 소라각(小羅閣), 창용문(蒼龍門)을 구경하였다. 큰길에서 남문 밖으로 나와 요기를 하였다. 오매(烏梅)45) 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曉頭發程, 而雨餘路泥, 行路甚艱。 抵肆覲川朝飯。 越遲遲峴, 抵華城北門外, 沽酒以飮。 入北門, 尋玩訪花隨柳亭、東將臺、小羅閣、蒼龍門。 自大道出南門外療飢。 抵烏梅留宿。 行八十里。 사근천(肆覲川) 경기도 안양시이다. 지지현(遲遲峴) '지지대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지지현(遲遲峴)이라고 표기하는 곳이지만 본래는 '사근현(沙斤峴)' , '미륵현(彌勒峴)' 등으로 불렸다. 오매(烏梅) 경기도 수원시 오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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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 전, 공서가 내려가는 김에 김노와 고부의 김 생원을 데리고 출발하였다. 밥을 먹은 뒤 10냥을 가지고 개간소로 가서 냈다. 오후에 나와서 창동의 배진환(裵珍煥)이 머무는 곳에 들렀더니, 배진환은 출타하였다. 남문으로 나와 차동(車洞)115)으로 가니 주인이 출타하였다. 이에 아랫사랑으로 가서 주인 민치명(閔致明)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도로 창동으로 왔는데 배진환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로 남문으로 나와 율지와 함께 주인집으로 왔다. ○朝前, 公瑞下去次, 率金奴與古阜金生員發程。 食後, 持十兩錢往刊所納錢。 午後出來, 歷訪倉洞裵珍煥所住處, 則裵也出他。 出南門, 往車洞, 則主人出他。 仍往下舍廊, 與主人閔致明暫話, 還來倉洞, 則裵也不來。 還出南門, 與聿之出來主人家。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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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여독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주인집에 머물렀다. 오후에 대로변으로 나가 요기를 하고, 그길로 관정동(冠井洞)으로 향하였다. 중도에 박상현(朴祥顯)과 공서(公瑞)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헤어져 돌아왔다. ○以路憊不能運動, 留主人家。 午後出去大路邊療飢。 仍向冠井洞矣。 中路逢朴祥顯及公瑞, 談話後, 相分還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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