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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아침에는 상원(尙元)이 1냥의 돈을 가지고 찾아왔다. 간촌(看村)의 두 박생(朴生)이 이제 막 고향으로부터 와서 집안 소식을 전하니 매우 기쁘고 다행스럽다.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물었더니 경모궁(景慕宮) 조한(趙漢)의 집을 가리키고 갔다. 고향 사람이 찾아왔고, 김생(金生)이 배[生梨] 5개를 사 왔다. 朝尙元持一兩錢來見。 看村兩朴生, 新自鄕來爲傳家信, 喜幸喜幸。 問住接處, 指景慕宮 趙漢家而去。 鄕人來見, 金生買生梨五介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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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비가 내렸다. 저녁때 영감(令監)이 정청(庭請)50)하는 일로 비를 무릅쓰고 대궐에 이르렀다. 전해 듣기를, 밤새도록 비를 맞으며 뜰에 서 있었다고 하니 근심스러웠다. 雨。 夕間令監以庭請事, 冒雨詣闕矣。 傳聞達夜冒雨庭立云, 悶悶。 정청(庭請) 국가에 중대사가 있을 때 세자(世子) 또는 의정(議政)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궁정(宮庭)에 이르러서 계(啓)를 올리고 전교(傳敎)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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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일찍 예조(禮曹)에 가서 안일득(安一得)을 만나서는 백현(栢峴)의 예사(禮斜) 문서를 주었다. 오는 길에 민 선전(閔宣傳)의 집에 들어가 조문하고 왔다. 早往禮曹 見安一得, 因給栢峴禮斜文書。 來路入閔宣傳家, 吊喪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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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일찍 밥을 먹고 과역(過驛)을 지나니 아들 석년(錫年)이 노복과 말을 거느리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천평의 질객(姪客)이 석촌(石村)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기별을 듣고 노복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게 하였다. 오래지 않아 남촌의 형님이 질객(姪客)을 데리고 왔으므로 요기를 한 뒤에 즉시 집으로 돌아왔다. 早飯至過驛, 年兒率奴馬來待矣。 又聞泉坪姪客徘徊於石村之奇, 送奴要之矣。 非久南村兄主, 率姪客來到, 故療飢後, 卽爲還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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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가아(家兒)와 이웃에 사는 벗 유하영(柳夏榮)을 데리고 서울을 향하여1) 길을 떠났다. 과역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상중(喪中)에 있는 와평(瓦坪) 이씨(李氏) 집에서 머물렀다. 率家兒及隣友柳夏榮, 作西笑之行。 至過驛秣馬, 留瓦坪 李哀家。 서울을 향하여 원문의 '서소(西笑)'는 원래 서울 또는 천자가 있는 곳을 그리워한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서울을 향해 간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漢)나라 환담(桓譚)이 지은 《신론(新論)》 〈거폐(祛弊)〉에 "사람들이 장안(長安)의 음악을 들으면 문을 나가 서쪽으로 장안을 향해 웃고, 고기가 맛이 좋으면 푸줏간 문을 마주 보며 씹는다.[人聞長安樂, 則出門向西而笑, 肉味美, 對屠門而嚼.]"라는 구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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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일찍 출발하여 광주(廣州) 삼거리(三巨里)에서 아침을 먹고, 엔구뷔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서빙고진(西氷庫津)에 이르러 간신히 청파(靑坡) 박후근(朴厚根)의 집을 어렵사리 찾아가서 묵었다. 60리를 갔다. 후근은 흥양(興陽) 문등(門登) 사람인데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早發至廣州三巨里朝飯, 抵엔구뷔酒幕中火。 抵西氷庫津, 艱尋靑坡 朴厚根家留宿。 行六十里。 厚根卽興陽 門登之人, 居此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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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새벽에 주인과 홍화문(弘化門) 밖에 가서 성복(成服)한 곡반(哭班)38)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최복(衰服)을 갖추어 입은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엄숙하게 모여 있었다. 10여 리를 늘어서서 때를 기다렸다가 예를 행하였으니, 이는 모두가 애통해하는 일 중의 하나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곧바로 주인집으로 나와서 아침을 먹고, 주인과 묘동(廟洞)39)에 가서 보성(寶城) 종인(宗人) 공서(公瑞)를 찾아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곧바로 주인집으로 돌아와 묵었다. 曉卽與主人往弘化門外, 參成服哭班, 而是時滿朝百官俱衰服, 濟濟來會。 羅立十餘里, 待時行禮, 此亦普痛中一初見也。 卽爲出來主人家朝飯, 與主人往廟洞, 訪寶城宗人公瑞。 暫話後, 卽爲出來主人家留宿。 곡반(哭班) 국상(國喪) 때에 곡(哭)하는 벼슬아치의 반열(班列)을 말한다. 묘동(廟洞) 서울특별시 종로구 묘동(廟洞)으로, 조선조 역대 임금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종묘가 있는 곳이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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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아침 전에 주인을 데리고 가서 이 찰방(李察訪)을 만나 "어떻게든 주선하여 사또[使道]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누누이 간청을 하였다. 찰방이, "이때 마침 강등을 당하였으니 영문(營門)에 청탁하는 것이 피차가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형편상 그러할 것 같았다. 문장(文章)을 청하는 일도 훗날에 하자고 하기에 내년 봄을 기다렸다가 다시 오겠다 약속하고 즉시 주인집으로 돌아왔다.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 종이를 사려고 지방(紙房)에 들어갔으나 사사로이 팔 수 없다고 하기에 그냥 나와 출발하였다. 노고암(老酒岩)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로(小路)로 들어가 어렵게 임실(任實) 방곡(房谷) 송연규(宋延奎)의 집을 찾아가 묵었다. 50리를 갔다. 朝前率主人往見李察訪, 而曰: "某條周旋, 入謁使道之意。" 累累懇請, 則察訪曰: "此時適當貶時, 于謁營門, 彼此如何。"云, 勢似然矣。 請文事亦以後日爲言云云, 故待明春, 更來爲約, 卽爲出來主人家。 仍朝飯發程, 而以買紙次入紙房, 則不能私賣云, 故旋發。 抵老姑岩酒幕中火。 入小路, 艱尋任實 房谷 宋延奎家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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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주인 영감이 도령(都令, 승지)이 되어 새벽에 대궐에 나아갔다. 이날 치통과 감기를 치료할 작정으로 청파(靑坡)의 순흥(順興) 집에 와서 머물렀다. 主人令爲都令, 曉頭詣闕。 是日以齒痛及感氣, 爲調治計, 來留靑坡 順興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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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듣자니, 치회(穉會)가 포천(抱川)의 묘소에 간다고 하므로 이른 아침에 내열(乃悅)과 함께 주동(注洞)에 갔다. 한낮이 되어서야 작별하고, 또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차동(車洞)에 가서 유숙하였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데다가 침구(寢具)를 미처 가져오지 못하여 몹시 추워 편안히 잠들 수가 없었다. 새벽에 도령(都令)이 입궐한 뒤에야 비로소 잠이 들었다. 聞穉會作抱川墓行云, 故早朝與乃悅同往注洞。 至日中作別, 且有多般酬酢而來。 朝飯後, 往車洞留宿, 日氣猝寒, 且寢具未及持來, 寒冷不得穩寢。 曉頭都令之詣闕後, 始着一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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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동틀 녘 표진(表津)을 건너 천평(泉坪)에 이르렀다. 아침을 먹은 뒤에 상중(喪中)인 차규진(車奎眞)이 그 선조를 운암사우(雲巖祠宇)에 제향(祭享)하는 일 때문에 마침 그 서원에 왔다가 곧바로 찾아와서 만났다. 나와 화옥(華玉)에게 그 서원에 가자고 하더니 술과 안주를 내왔다. 오후에 우산(牛山)에 화옥을 보냈는데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날 오후에 눈이 내렸다. 平明越表津到泉坪。 朝飯後, 車哀 奎眞以其先祖雲巖祠宇祭享事, 適來其院, 卽爲來見。 要去余與華玉於其院, 進酒肴。 午後送華玉於牛山, 不無悵然之懷矣。 是日午後雨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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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매일 아침저녁으로 간청하였다. 이는 다만 좌우의 여러 벗들이 곁에서 잘 말해 준데다가 장석(丈席)께서 먼데서 올라온 노력과 비용11)을 특별히 헤아려 지극히 잘 대우해 주었기 때문에 3~4일 머무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셨다. 오후에 예폐(禮幣)12)를 드렸다. 장석(丈席)께서 병으로 예를 행하기 어려운데도 이처럼 예폐를 받아주신 것은 모두 두터운 대우에서 나온 것이다. 목사공(牧使公)의 《정충록(精忠錄)》에 대한 일도 또한 예폐를 드렸으니 매우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連日朝夕懇請。 非但左右諸益從傍善告, 且丈席特恕遠方之勞費, 極爲善待, 故留底三四日受爽諾, 午後納幣。 丈席病不能行禮, 而受此禮幣, 此莫非待之厚。 牧使公《精忠錄》事, 亦爲納幣, 感幸感幸。 노력과 비용 원문의 '노비(勞費)'는 육체적인 노동과 금전적인 비용을 말한다. 예폐((禮幣) 고마움과 공경하는 뜻에서 보내는 물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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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새벽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유치(㹨峙)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석곡(石谷) 박가(朴哥)의 집에 도착하였으나 흥양(興陽) 아객(衙客)의 행상(行喪)이 먼저 도착하여 함께 머무를 수 없었으므로 다른 여막으로 옮겼다. 흥양(興陽)의 마부들이 모두 와서 만났는데, 천노(千奴)와 오노(五奴)가 이미 출발하여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한창 속으로 답답해하고 있던 즈음에 오노가 서울에서 뒤따라 도착하였으니 매우 기쁘고 다행스럽다. 한천(寒泉) 형님과 나주(羅州) 형님이 상(喪)을 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애통해하던 중에 집안의 안부를 대략 들었는데, 저들이 출발할 때에 가속(家屬, 처·첩을 말함)이 한창 병을 앓고 있어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고 하니, 여전히 걱정스럽다. 曉飯作行。 至谷城邑內秣馬, 至㹨峙療飢。 到石谷 朴哥家, 則興陽 衙客行喪先到, 不得同留, 故移入他幕。 興陽 馬夫輩皆來見, 聞知千奴 五奴已爲發行上去, 故方爲訝菀之際, 五奴自京跟到, 喜幸喜幸。 始聞寒泉兄主羅州兄主喪奇, 痛悼中略聞家間安否。 渠輩發行時, 家屬方痛, 未出場云, 猶爲悶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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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야당(野黨)의 송계천(宋啓天) 집에 이르렀다. 마침 신안의 석사 한용(韓溶)과 다른 두 사람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사동(蛇洞)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로(小路)로 들어가 큰 고개 하나를 넘어 어렵사리 도산(道山)의 족질인 필흥(弼興) 집을 찾아가서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抵野塘 宋啓天家, 適逢新安 韓碩士 溶與他二人暫敍。 仍朝飯發程。 抵蛇洞中火。 入小路, 越一大嶺, 艱尋訪道山族姪弼興家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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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주인의 아들 순근(順根)도 동행하였으므로 우리 종에게 짐을 맡기고 그대로 길을 떠나 낙수(洛水)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나는 귀정(歸亭)에 들어가 잠시 외종수(外從嫂)를 만나고 나서 곧바로 길을 떠나 저물녘에 석곡(石谷)에 이르러 묵었다. 主人之子順根, 亦爲同行, 故付卜於吾之奴者, 仍爲發程, 抵洛水中火。 余則入歸亭, 暫見外從嫂, 卽爲發程, 暮抵石谷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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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비가 와서 종일 주인집에 머물렀다. 올 때에 천평(泉坪)에 들어가 상삼(象三)과 서로 약속하였는데, 낮에 상삼이 들어왔다. 저녁을 먹은 뒤에 선화당(宣化堂)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 고을 사원(祠院)의 사적(事蹟)을 감영(監營)에 보고하는 일에 대해 물었더니, "특별히 다른 뜻은 없고 각 사원의 사적(事蹟)을 보고자 한 것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밤이 깊은 뒤에 나와서 상삼과 함께 머물렀다. ○雨終日留主人家。 來時入泉坪, 與象三相約矣, 午間象三入來。 夕飯後, 入宣化堂談話, 而問其各邑祠院事蹟報營事, 則答曰: "別無他意, 欲觀各院事蹟云耳。" 夜深後出來, 與象三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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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선화당(宣化堂)에 들어갔다. 상삼에게 일을 부탁하여 그 산송(山訟)에 관한 일을 건의하여 보냈는데, 마침내 제결(題決, 판결처분)을 얻어 오후에 나왔다. 하서가 김제(金堤)6)에서 돌아와 이에 함께 머물렀다. ○食後入宣化堂, 稱念象三, 以其山訟事立議送, 果如得題, 午後出來。 夏瑞自金堤還來, 仍與同留。 저본의 '題'는 '堤'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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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안개가 사방에 잔뜩 끼었기 때문에 삿갓을 쓰고 일찍 출발하여 율목정(栗木亭)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길을 떠나 몇 리 남짓 되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살고 있는 곳을 물어보니 흥양(興陽) 포두(浦頭)의 세동(細洞)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 성(姓)을 물었더니 명가(明哥)라고 하였는데, 명두혁(明斗爀)과 사촌 관계인 사람이었다. 이름이 두엽(斗燁)이라는 사람, 대구(大邱)의 서인준(徐仁俊) 두 사람과 그대로 동행하여 남원(南原)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以烟霧四塞之致, 冒笠早發, 抵栗木亭朝飯。 發程數里餘逢一人, 問所居則興陽浦頭細洞云, 故問其姓則明哥云, 而與明斗爀四寸之人也。 名斗燁及大邱 徐仁俊兩人, 仍爲同行, 抵南原邑內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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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새벽에 출발하여 개태령(開泰嶺)을 넘고 선창(船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이곳은 바로 신도(新都)의 하구(下口)인데, 돌아올 때에 구경하려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지나갔던 곳이다. 진치(盡峙)와 산정령(散亭嶺)을 넘어 공주(公州)의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오촌(鰲村)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80리를 갔다.지난 28~29일 이틀 동안 내리던 비는 오촌에 이르니 곧 눈이 되었으므로 지나는 길의 질퍽거리는 상황을 말로 다할 수가 없다. 간신히 이곳에 도착하니 다리 통증이 심했다. 봄에 여기 왔을 때에 용담(龍潭) 정재팔(丁載八)을 만났었는데, 이번 여행길에서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정 석사(丁碩士), 옥천(沃川)의 석사 금석로(琴錫老), 임천(林川)의 석사 정현석(鄭玄錫)과 함께 용운(龍雲)의 집에 머물렀다.저녁을 먹은 뒤에 들어가 장석(丈席)을 알현하니 기후(氣候)는 일단 편안해 보였으나 숙환(宿患)의 여러 증세가 여전히 낫지를 않으니 걱정스럽다. 장석이 나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처럼 변고가 발생하는 해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번에 다시 얼굴을 본 것이 기쁘고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그대가 부탁한 글은 몸의 병 때문에 아직도 짓지 못하였으니 도리어 편치가 않네."라고 하셨다. 曉發越開泰嶺, 抵船倉朝飯, 此地卽新都下口也。 來時欲玩之意, 只爲望見而過。 越盡峙 散亭嶺, 抵公州 油城市邊中火, 抵鰲村, 日已暮矣。 行八十里。 去廿八九兩日雨, 到此見之, 則乃是雪也, 行路之泥濘不可言。 艱到此處, 脚痛大發。 春間來此時, 逢龍潭 丁載八矣。 今行相面可幸。 與丁碩士、沃川 琴碩士 錫老、林川 鄭碩士 玄錫, 同留龍雲家。 夕飯後入謁丈席, 氣候姑爲安寧, 而宿患諸症, 尙亦未瘳悶悶。 見我而言曰: "如此變年, 慮無所不到, 今此更面, 雖爲喜幸, 君之所托文字, 以身病尙不得製置, 還爲不安云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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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장석에게 하직하고 밥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섰다. 형강(荊江)을 건너 월은사(月隱寺) 아래를 지나 문의(文義) 읍내에 이르러 잠시 군사 훈련하는 것을 본 뒤 점심을 먹었다. 병암(屛岩) 주점을 지나 저물녘에 어금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辭丈席, 食後發程。 渡荊江, 歷月隱寺下, 抵文義邑內, 暫見鍊兵, 仍爲中火。 歷屛岩酒店, 暮抵어금酒幕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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