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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반송등(盤松登)에 가서 구관(舊官) 교리 남이형(南履炯)을 만났다. 동행과 함께 모화관(慕華館)15) 영은문(迎恩門)16)으로 갔다가 오는 길에 추문(秋門)17)에 올라 잠시 쉰 뒤에, 나는 대묘동(大廟洞)에 가서 공서(公瑞)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사(金使)와 지종현(池宗玄)을 만나려고 기보(基甫)의 집에 갔으나, 두 사람 모두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했다. 오는 길에 서울의 주인집에 들어가니 경주인(京主人)도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往盤松登, 見舊官南校理 履炯。 與同行往慕華館 迎恩門, 來路登秋門暫憩後, 余則往大廟洞, 與公瑞暫話。 欲見金使及池宗玄, 往基甫家, 則兩人皆不在不見, 而來路入京主人家, 則京主人亦不在不見, 而來主人家。 모화관(慕華館)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었던 객관(客館)으로,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었다. 《궁궐지(宮闕志)》에는 태종 8년(1408)에 개경의 영빈관을 본 따 모화루를 건립하였다고 쓰여 있다. 그 후 세종 12년(1430)에 확장, 개수하여 모화관이라 개칭하였다. 영은문(迎恩門) 모화관(慕華館) 앞에 세웠던 문이다. 현재 독립문이 있는 곳의 바로 앞에 있었다. 새 임금이 즉위하여 중국사신이 조칙을 가지고 오면 임금이 친히 모화관까지 나오는 것이 상례였다. 추문(秋門) 경복궁 영추문(景福宮迎秋門)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서쪽에 있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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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희도원(希到院)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성환(成歡)34)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천안 신(新)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至希到院朝飯, 抵成歡午飯。 抵天安新酒幕留宿。 行百十里。 성환(成歡)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에 있는 읍명으로, 성환읍 성환리에 성환역(成歡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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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보성 대곡(大谷)의 이 석사(李碩士), 율촌(栗村)의 종인(宗人)과 동행하여 왈천(曰川)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부내(府內)의 서문(西門) 밖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자 진사 정여흠(丁汝欠)이 먼저 와서 이 집에 머물고 있었다.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여흠이 먼저 떠났다. 나는 공서와 북문 밖의 종인(宗人) 송민수(宋民洙) 집을 찾아가 제각통문(祭閣通文)을 전하고 유숙한 것은 영문(營門)의 《사원록(祠院錄)》에 재록하기 위해서였다. 서재(書齋)에서 묵고 있는데, 주인 송약수(宋若洙)의 백씨(伯氏)가 백대(百代)의 정의(情誼)로 반기며 우리 두 사람과 함께 술집에 직접 가서 술을 사 마시다가 주객이 모두 취해서 돌아왔으니 그 마음이 매우 살뜰하였다. 曉發與寶城 大谷 李碩士及栗村宗人同行, 抵曰川朝飯。 至府內 西門外全聖哲家, 丁進士 汝欠先來, 而留在此家, 而數時談話, 汝欠則發行, 而余則與公瑞, 訪于北門外宗人民洙家, 傳祭閣通文留宿, 欲爲營門《祠院錄》中載錄之意也。 留宿書齋, 而主人若洙之伯氏, 而忻然有百代之誼, 偕吾二人親往酒家, 沽酒相飮, 主客醉而歸, 其意最爲慰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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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새벽에 출발하여 소로(小路)로 들어가자 임실(任室) 방동(房洞)의 동종(同宗)인 송염(宋濂) 집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길을 나서려고 하니 주인이 한사코 만류하였다. 하늘에서도 가랑비가 내려 그 집에 그대로 머물렀는데, 통문 1건을 베껴서 맡겨 두고 차차로 전해 달라는 부탁의 말을 하였다. ]曉發入小路, 抵任實 房洞同宗濂家朝飯。 欲爲發程, 則主人固挽。 天又細雨, 仍留其家, 而通文一件謄出留置, 次次飛傳之意言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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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문적의 수정(修正) 때문에 주인집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정동(貞洞)21)에 갔는데 이 석사가 없었다. 다만 그의 아우 이훈(李壎)하고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석사 이혜길(李惠吉)이 혼자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혜길이 집으로 가자고 청하기에 그와 함께 가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以文蹟之修正留主人家。 午後往貞洞, 李碩士不在。 只與其弟壎, 暫話而來, 則李碩士惠吉專訪來待矣。 夕飯後, 惠吉請往其家, 故與之偕往, 仍留。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던 데서 '정릉동'이라 하였던 것을 줄여 정동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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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밥은 안채에서 음식을 내와서 몹시 고마웠다. 오후에 일행과 영추문(迎秋門)22) 안으로 가서 궐문 밖을 지나, 그길로 유동(油洞)23)으로 갔다. 도중에 일행을 남겨두고, 나는 조문하기 위해 아전 안인성의 집을 찾아갔는데 아전 안인성의 아들이 출타하였으므로 만나지 못하였다.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와서, 함께 종각 근처로 왔다. 마침 공서을 만나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朝飯自內間出饋, 感荷感荷。 午後與同行往秋門內, 過闕門外, 仍向油洞。 留同行於中路, 余則吊問次, 尋安吏寅成家, 則安吏之子出他, 故不見。 而還同行所留處, 與之偕來鍾閣邊。 適逢公瑞, 與之暫話而來。 영추문(迎秋門) 경복궁의 서문(西門)이며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유동(油洞)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에 있던 마을로, 기름을 파는 기름전이 있었으므로 기름전골이라 하고,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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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북문 밖으로 가 잠시 송약수 씨를 만났는데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그길로 출발하여 장대(將臺) 앞에 이르자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남문 밖에 사는 류하석(柳夏錫) 영윤(令倫)이었다. 내가 이미 부내에 들어섰으니 찾아가지 못할 것도 없는데, 갈 길이 바쁜 관계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왔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 무척 기뻤다. 그길로 동행하여 삼례(參禮)83)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에 능측(陵側)84) 객점에 이르러 함께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食後發程。 往北門外, 暫見若洙氏, 則付京簡矣。 仍發, 抵將臺前, 則有呼我之人 。 故顧見, 則乃南門外居柳夏錫令倫也。 余旣入府, 則非不爲尋訪, 而以行忙之致, 未果而來矣。 忽於此地意外相面, 其喜可掬。 仍與同行, 抵參禮午飯。 暮抵陵側店, 同留宿。 行五十里。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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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밥을 먹은 뒤 길을 떠날 무렵, 마침 암자 아래를 지나는 상선(商船)이 있어서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공주로 간다고 하였다. 뱃사공을 불러 급히 배에 올랐다. 배를 띄운 지 몇 리 못 가서, 바람과 일기가 순조롭지 못해 도로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랐다. 선덕(先德)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거리 객점을 지나 발치(發峙)100)를 넘어 이인(里仁)101) 객점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우금치(于今峙)102)를 넘어 공주 화산교(花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食後, 離發之際, 適有商船之過菴下, 故問其所向, 則往于公州云也。 招津夫急登船。 浮江數里, 以風日之不順, 還下船登陸。 抵先德店午飯。 歷三巨里店, 越發峙, 抵里仁店。 暫憩後, 越于今峙, 抵公州花山橋店留宿。 行七十里。 발치(發峙) 충청북도 충주시의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였다고 한다. 이인(里仁)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이다. 우금치(于今峙) 우금치(牛禁峙)를 말한다. 공주 분지의 남쪽 끝에 낮은 안부를 이루어 형성된 고개로 높이가 약 100m이며, 부여에서 공주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다.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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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밥을 먹은 뒤 일행과 용동(龍洞)19)의 이 참봉 집으로 가서 《명현록(名賢錄)》 개간(開刊) 일을 보고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龍洞李參奉家, 見《名賢錄》開刊事而還。 용동(龍洞) 서울 노원구 하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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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吳載華。【在英】 去臘惠書。如得天外奇音。感慰何可勝喩。第積病在躬。尙未修謝。雖以吾宗之善恕。難免厚責。歲改春又晚。謹審體度萬護。庭下鴻福。仰溯不任。駿善冉冉下山之日也。何足遠道。所示瓊韻。情當奉和。而神思昏塞。無暇及此。今始強病拙構。半雜呻吟。不可以傳遠。亦不可以全闕。謹此仰呈。一覽付丙是仰。本是同根。各在三千里外。公爲七十一歲人。我爲八十歲人。此生此世。會合無期。臨楮不勝忡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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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憩掠庫【自五柳村十里】 想是高城外倉而蕭條如此穀簿能無鼠雀之耗也否如斗倉村屋半茅半木皮狂風太狼藉不妨低簷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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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瀑洞【自摩訶衍十里自眞珠潭爲五里自普德里窟亦可爲五里】 百花潭與先天潭合流爲八潭至此而與須彌洞七潭相會仍謂之萬瀑洞石上有楊蓬萊【士彦】筆蓬萊楓嶽元化洞天八字其下有三山局【三山李尙書初以蔭爲通川守長在此中畵棊局與客逍遙爲樂云】傍有一大巖立而虛中刻潭谷二字盖自五臺以後周流至金剛內外有可賞處雖一片石貴人名姓無不鐫刻而至於此極矣所謂山中多宰相石面半朝廷此之謂也千巖競秀萬瀑爭流儘覺孫興公之天台山金石一賦偸竊此地韻格洞之西有石峯尖削矗天名曰靑鶴臺◌椒泉翁詩曰捨輿借錫杖步步傍溪來始自八潭曲終成萬瀑開獅蹲危擎石鶴去獨留臺洞闢元和氣羣巒護列排◌又曰白石粼粼瑩若晶仙翁遺蹟在棊枰洞陰常有蛟龍蟄境僻無聞鳥雀聲自昔名山稱第一伊今宿債了平生百川萬壑奔流水輻湊喧豗日夜鳴喧豗萬折港西東界破羣峰眼欲空鍾磬亂敲兜率塔貝珠層掛水晶官包含始識名山大排鋪終看造物工演漾百花潭上韻十分飜覺動豪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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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밥을 먹은 뒤 하서와 야당(野塘)으로 와서 송필동(宋弼東) 씨를 만났다. 이에 점심을 먹고 동행하여 계동(桂洞)80)의 송화(宋燁)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뒤 그 마을 종인(宗人, 먼 일가)인 상향(象亨), 상풍(象豊), 상정(象貞), 상의(象義), 상태(象台)가 다 같이 찾아왔다. ○食後, 與夏瑞偕來野塘, 見宋弼東氏。 仍爲午飯, 而同行來桂洞宋燁家。 夕食後, 其村宗人象亨、象豊、象貞、象義、象台, 皆來見。 계동(桂洞)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 계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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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인이 극구 만류하여 그대로 머물렀다. 낮에 김노가 다리 통증으로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니 몹시 걱정되었다. 거처 앞에는 시내가, 뒤에는 소나무가 있어 아주 고즈넉하였다. 절구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개울물 소리는 밤새도록 울리고(澗有通宵響)둥글고 깊다라니 진종일 그늘 드네(圓深盡日陰)거처하는 곳이 시내 저자 주변이건만(攸居城市邊)혹 속인이 찾아오는 건 싫어하네(倘嫌俗人尋) ○以主人之堅挽, 仍留。 午間, 金奴以脚病痛臥, 悶悶。 所居前溪後松甚幽寂。 吟一絶曰: "澗有通宵響, 圓深盡日陰。 攸居城市邊, 倘嫌俗人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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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征賦【幷小序】 上之三年冬十一月哉生明己酉余以南至差員奉陪箋文自原州將向京師逖違之餘獲近象魏稍可慰永懷之心而代人之勞非其職也雪風如刀石路如戟役役驅馳已極關念而二子驥熊遠自南鄕來省阿熊方患癘苦吟旅舍相分尤不可堪愀然作西征一賦其詞曰烏鼠之冬律調金鍾丹邱老丞趍走爲恭承刺使命手擎錦封義重往役路指西雍何北風之瑟颯兮釀雪意而方濃來鶴橋之疊氷兮挾雉嶽之層峰黏泥錯以凍石涉畏途兮重復重寂寥兮澗邊梅慘憺兮嶺上松嘉我膂力之方剛兮未敢言夫衰慵冠不整兮短髮薄寒雪兮衝衝羌慘慘而畏咎去靡歇兮橫復縱兒吟病而遠相分兮實余憂之忡忡繄未能乎言私兮蘊如結於心胸嗟不均而獨賢兮受㶊揮如奴傭懼下位之不獲兮迺俛首而聽從客有解嘲者曰丞乎丞乎何彼穠矣儀容皂隷如貙白騧如龍道路之辟除郡縣之支供前唱後和附若蚷蛩奔走承奉夕飱朝饔揚揚織路軒駟郁穠得無爲泰乎顧其位則附庸也君其實乎鈍人一草萊之微蹤昔偃息乎莘上兮曰老圃與老農托盤谷之松桂兮挹鏡湖之芙蓉恒矻矻以處窮兮混臧獲之磨舂無棄物於化囿兮幸聖明之遭逢文莫贊於黼黻兮才未補於笙鏞行有馬而食有肉兮卸弊屩與枯筇况天門之咫尺踵羣仙而朝宗翼招搖以上征兮聽星珮之瑽瑢緣何厚於出入兮瑣則靑而階彤天庶幾乎玉汝只可俟乎陶鎔丞乃啞然一笑兮泛觥船而倒毫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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雉嶽辭【幷小序癸丑】 癸丑春正月元朝之翌日丁未余以享官登雉嶽祠峽路碻确凍雪遍山衝寒而進經宿而返王事也未敢言勞而此行又替人之勞終不無獨賢之歎馬上信口述行其辭曰客胡爲乎山之幽松鬱翠兮枝相樛老督郵兮益壯肇發軔於丹邱今夕兮何夕月之元旁死魄越翼日日吉兮辰良駕白駒之駜駜問僕夫以前路路梗澀兮山崔嵬初疑龍門之賞雪兮更似灞橋之尋梅梅消息兮寂(寥但有雪而堆堆迫黃昏兮衝寒阿導前而僕夫催王事兮靡敢懈恐或被於訶譴何谷風之剪剪射靑袍兮如箭嗟砯崖之滑削兮穿一逕而如線寥寥吠兮一犬見兩三兮村舍遵舊例於候人兮率輿徒而未迓繽舍勞而就逸兮夢非眞而非假魂煢煢與神交兮欻桂旗而上下靈偃蹇兮在坐謇申申其詒予覯斯世之躁競兮爾多讀乎古書恒自稱曰達觀兮胡若是其愀如盈虛消食陰陽之理屈伸往來鬼神攸使吉凶榮辱惟人所召羌福善而禍淫兮憬天鑑之炯照懿達人之知命兮審厥居而安安尼無援兮下位展不卑兮小官况聖明之在上臨朝歎於才難苟有才則可庸兮關不隔於天外殫吾誠兮供職祗可俟乎嘉會精瓊爢兮作餱挹桂漿兮爲醑華釆夜兮若英若有人兮容與神洋洋而旣醉兮詔錫爾以純嘏主聖世泰兮賢不遺野鴻漸九逵兮有進無退豊餼饗以萬鍾兮介眉壽而耆艾爛枝葉之峻茂兮溢芳名於明時忽寤寐以有得兮受神賚而爲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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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아침 일행과 동구안 약방으로 가서 구경하였는데, 소전(小殿, 세자(世子))이 경우궁(慶祐宮)28)의 하향 대제(夏享大祭)에 거동한 것이었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주인(京主人)29) 집에 들러 주인을 만나서 흥양(興陽, 고흥)에 대해 상세히 듣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쉬었다가 용동으로 갔다. 저물녘에 돌아오니 정동의 이 석사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早朝, 與同行往洞口內藥房觀光, 而小殿以慶祐宮夏享大祭擧動也。 觀光後, 來路入京主人家, 見主人, 詳聞興陽, 而還主人家。 少憩後, 往龍洞。 乘暮還, 則貞洞李碩士來訪云矣。 경우궁(慶祐宮)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있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1770~1822)의 사당이다. 1824년에 창건하였다. 경주인(京主人) 경저리(京邸吏)이다. 벼슬아치나 서민으로 서울에 머물러 지방 관청의 사무를 연락하고 대행하던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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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침에 나와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애초 일찌감치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궂은 날씨 탓에 그대로 아침을 먹었다. 종일 비가 그치지 않았다. 오랜 가뭄 끝에 이렇게 단비가 내리니 매우 기쁘고 다행이다. ○朝出, 來主人家。 初以早發爲定矣, 以雨戱之致, 仍朝飯。 終日雨不止。 久旱之餘, 得此好雨, 忻幸忻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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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문적의 수정(修正) 때문에 주인집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정동(貞洞)21)에 갔는데 이 석사가 없었다. 다만 그의 아우 이훈(李壎)하고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석사 이혜길(李惠吉)이 혼자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혜길이 집으로 가자고 청하기에 그와 함께 가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以文蹟之修正留主人家。 午後往貞洞, 李碩士不在。 只與其弟壎, 暫話而來, 則李碩士惠吉專訪來待矣。 夕飯後, 惠吉請往其家, 故與之偕往, 仍留。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던 데서 '정릉동'이라 하였던 것을 줄여 정동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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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밥은 안채에서 음식을 내와서 몹시 고마웠다. 오후에 일행과 영추문(迎秋門)22) 안으로 가서 궐문 밖을 지나, 그길로 유동(油洞)23)으로 갔다. 도중에 일행을 남겨두고, 나는 조문하기 위해 아전 안인성의 집을 찾아갔는데 아전 안인성의 아들이 출타하였으므로 만나지 못하였다.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와서, 함께 종각 근처로 왔다. 마침 공서을 만나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朝飯自內間出饋, 感荷感荷。 午後與同行往秋門內, 過闕門外, 仍向油洞。 留同行於中路, 余則吊問次, 尋安吏寅成家, 則安吏之子出他, 故不見。 而還同行所留處, 與之偕來鍾閣邊。 適逢公瑞, 與之暫話而來。 영추문(迎秋門) 경복궁의 서문(西門)이며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유동(油洞)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에 있던 마을로, 기름을 파는 기름전이 있었으므로 기름전골이라 하고,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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