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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簾洞【自金蛇窟東北行二十里】 自地藏庵東入黃流潭抱玉鏡臺過金蛇窟履巉巖溯澗瀑東北行將近十里有一小堞築石礫爲址行幾里又有小臺址或云新羅王子巽國來住又行五里許有般若高磴石壁欹斜落葉依迷下臨萬仞坑塹攀危棧履疊磴抱壁行過胸喘膚汗心戰戰足縮縮超過幾層絶頂到六七里許始有水簾洞正似珠官貝闕之間水晶一簾側掛千尺奇哉其上十餘里許又有百塔云而臟神告貪且無同志竟失一游可悵【或言百塔徒勞脚力別無可觀云】〇椒泉翁詩曰山行凡幾日艱險卽他無斫木架深壑攀膝上曲隅澗石蹲如虎輿僧捷似鼯探眞猶不已還覺更癡愚危哉般若磴攀緣進魚貫一步仍十憩胸喘兼膚汗仄崖千丈坑俯瞰發長歎千金輕一毛頃刻軀命判咄咄蓬萊僊困我一聞漢頹景冉將盡山腰纔到半何時上危頂此身無羽翰百尺竿頭步努力搤雙腕忽入最佳境白石光璀璨水晶千尺簾側掛龍宮畔雲毋應捲窓月妃欲虛館玉樓十二珠層層映凌亂萬山紆鬱裏一派爽然看蝦鬚初演漾虹腰更燁爛正是鮫人綃練出萬疋叚天孫快銀河濯錦波渙散欹臥千仞壁四時懸不斷造翁太戱劇隨處形色換九淵與萬瀑未必獨爲冠迺知古來人乘險傳相玩此行信不虛今日又奇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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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次椒泉翁贈別徐尙書韻 自五臺以後凌波臺百井峯萬物草九龍淵隱仙臺白雲臺普德窟須彌塔水簾洞靈源庵諸般危險處椒泉翁以輕屐短笻如踏平地老尙書恰滿六旬之年何其壯哉到奇絶處輒又以詩韻寫景往往多得意筆行至長安寺尙有餘戀忽逢徐尙書更留一宵淸譚雅韻娓娓不僊風流文物頓覺照耀一座〇椒泉翁詩曰野宿長安寺故人忽有書曾無留約會何幸款情紓蔗境君將漸茹懷我尙餘艱危前嚮路珍重坐僧輿〇徐尙書詩曰凈界逢心契淸譚勝讀書塵區期不束璇夜氣相紓耽景歡尤洽輸懷樂有餘晨輝惟恐發爲是各分輿〇椒泉翁夜宿長安寺明朝出山詩曰古寺如新設施功問孰歟客從流水到僧與白雪居行邁將催駕烟霞尙濕裾終宵悵不寐殆若夢蘧蘧長安夢外寺相對老尙書凈界浮埃逈晴空煖景舒削巖蒼漸薄鳴葉絳猶餘定識明朝路關情憶筍輿〇初八日乙卯晴〇朝發長安寺二十里長北倉中火【以上准陽支應】五十里通口宿所【金城支應〇縣今金炳學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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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출발하여 용계(龍溪)75)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남원 자생(者省)76)의 원산(圓山) 필흥(弼興) 집에 들어가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早發, 抵龍溪朝飯, 抵谷城邑內療飢。 入南原者省圓山弼興家留宿。 行七十里。 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근처이다. 자생(者省)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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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삼례(參禮)128)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 전주부(全州府) 서쪽의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렀다. ○曉發, 抵礪山邑內朝飯。 抵參禮午飯。 暮抵府西全聖哲家。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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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신안서원(新安書院)130)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슬치(瑟峙)131)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를 하였다. 두치(斗峙)132)를 넘어 평당(坪塘)에 들러 잠시 필동(弼東) 일가붙이를 보고 저물녘에 국평의 하서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曉發, 抵新院朝飯。 抵瑟峙賣餠療飢。 越斗峙, 入坪塘, 暫見弼東宗人。 暮抵菊坪夏瑞家留宿。 行九十里。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이다. 선조 21년(1588)에 주희와 한호겸(韓好謙)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슬치(瑟峙)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고개로 '말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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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밥을 먹은 뒤 일행과 용동(龍洞)19)의 이 참봉 집으로 가서 《명현록(名賢錄)》 개간(開刊) 일을 보고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龍洞李參奉家, 見《名賢錄》開刊事而還。 용동(龍洞) 서울 노원구 하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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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밥을 먹은 뒤, 일행과 대묘동(大廟洞)20)으로 가서 공서(公瑞)을 불러 종묘 문밖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원록(祠院錄)》을 다시 부탁할 생각으로 그길로 예조의 당직 부서로 가니 아전 배광옥(裵光玉)은 마침 출타하였고, 아전 안인성(安寅成)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른 아전과 상의해보니, 배광옥이 없어 《사원록(祠院錄)》의 소재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大廟洞, 要公瑞暫話於宗廟門外。 以《祠院錄》更付之意, 仍往禮曹直府, 則裵吏光玉適出他, 安吏寅成昨年身故云。 故與他吏相議, 則裵吏不在, 不知《祠院錄》之在, 故還來主人家。 대묘동(大廟洞) 서울 종로구 훈정동ㆍ묘동ㆍ봉익동ㆍ종로3가ㆍ종로4가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대묘인 종묘가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대묫골ㆍ대뭇골ㆍ대묘동ㆍ묘동'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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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북문 밖으로 가 잠시 송약수 씨를 만났는데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그길로 출발하여 장대(將臺) 앞에 이르자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남문 밖에 사는 류하석(柳夏錫) 영윤(令倫)이었다. 내가 이미 부내에 들어섰으니 찾아가지 못할 것도 없는데, 갈 길이 바쁜 관계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왔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 무척 기뻤다. 그길로 동행하여 삼례(參禮)83)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에 능측(陵側)84) 객점에 이르러 함께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食後發程。 往北門外, 暫見若洙氏, 則付京簡矣。 仍發, 抵將臺前, 則有呼我之人 。 故顧見, 則乃南門外居柳夏錫令倫也。 余旣入府, 則非不爲尋訪, 而以行忙之致, 未果而來矣。 忽於此地意外相面, 其喜可掬。 仍與同行, 抵參禮午飯。 暮抵陵側店, 同留宿。 行五十里。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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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문적을 수정하고 용동의 이 참판 집으로 갔는데, 간행소의 유사가 문적을 다 산삭(刪削)하였으므로 종일 용동에 머물렀다. ○修整文蹟, 往龍洞李參奉家, 則刊所有司, 皆刪削文蹟, 故終日留龍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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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 전에 박영규(朴營奎)가 내려가므로 집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밥을 먹기 전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회동으로 가서 송 장성을 만나, 그 삼촌 송익정(宋翼廷) 씨를 위문하고, 또 그 독자(獨子)의 상을 조문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잠시 얘기를 하고 왔다. ○朝前, 朴營奎下去, 故修付家書。 食前, 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晦洞見宋長城, 慰其三寸翼廷氏, 又吊其獨子喪。 下來持淳家,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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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밥을 먹은 뒤 용동으로 가서 종일 놀며 쉬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구안(돈화문(敦化門) 앞길) 약방으로 가서 내일 거동(擧動, 임금의 행차)할 때 여기 와서 구경하겠다는 뜻을 언급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後, 往龍洞終日遊憩, 而來路, 往洞口內藥房, 以明日擧動時, 來此觀光之意言及, 而還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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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밥을 먹은 뒤 송상오를 조문하고 출발하였다. 만마동(萬馬洞)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절구 한 구절을 읊었다.만마동 산골에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萬馬關山落木秋)기암괴석은 길가에 우뚝우뚝 솟아있네(奇岩怪石路頭頭)무성한 신록은 단풍 든 계절만 못하니(繁陰不若丹楓節)누가 나보다 먼저 이 누정을 읊었을까(先我何人詠此樓)정자동(亭子洞)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부내(府內)의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저녁참에 북문 밖으로 가서 송약수(宋若洙) 씨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그 아우 송민수(宋民洙) 씨 집에 들렀다. 그와 함께 주인집으로 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갔다. ○食後, 吊宋象五而發。 過萬馬洞, 吟一絶曰: "萬馬關山落木秋, 奇岩怪石路頭頭。 繁陰不若丹楓節, 先我何人詠此樓。" 抵亭子洞午飯。 抵府內全聖哲家留宿。 行六十里。 夕間, 往北門外, 見宋若洙氏暫話。 來路入其弟民洙氏家。 與之偕來主人家, 暫話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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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서 영정(咏亭)에 이르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3) 그 모습이 너무 가련해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즉시 길을 돌려 지신천변(智申川邊)에 이르러 언갑(彦甲)을 만나 길에서 옷 보따리를 전해 주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용계(龍溪)4)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나니 해가 이미 저물었다. 동막(東幕)마을5) 어귀에서 최장선(崔長善)과 박성헌(朴成憲)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채찍을 재촉하여 역동(驛洞)에 이르니 이미 해가 지고 어스름할 때였는데, 마구간이 없었기 때문에 어둠을 무릅쓰고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60리를 갔다. 早飯登程, 至咏亭暫話, 而見其景象, 極爲可憐, 寧不忍見。 卽爲回程, 至智申川邊, 逢彦甲, 路中傳給其衣褓。 促鞭至龍溪中火, 日已夕矣。 至東幕村前, 逢崔長善、朴成憲, 立談後, 促鞭至驛洞, 已黃昏時分, 而無馬廐, 故冒昏至谷城邑內留宿。 是日行六十里。 영정(咏亭)에……나누었는데 영정은 영귀정(詠歸亭)으로 순천시 주암면의 영귀마을에 있다. 이곳에 사매(舍妹)가 살고 있었는데 당시 온 가족이 병을 앓아 고통 받고 있어 이에 대한 이야기를 사매와 나누며 마음 아파한 것 같다. 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용계리이다. 동막(東幕)마을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서계리를 말한다. 서계리는 읍의 제일 위쪽에 있다하여 동막(東幕) 마을이라 하였는데, 서쪽에 계곡이 있다하여 서계리로 바뀌었다. 동막은 마을 서편의 형제봉(兄弟峰)이 동쪽을 향하여 장막을 쳐 놓은 듯한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지형이 형제장군이 군막을 치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유래 되었다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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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밥을 먹은 뒤 하서와 야당(野塘)으로 와서 송필동(宋弼東) 씨를 만났다. 이에 점심을 먹고 동행하여 계동(桂洞)80)의 송화(宋燁)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뒤 그 마을 종인(宗人, 먼 일가)인 상향(象亨), 상풍(象豊), 상정(象貞), 상의(象義), 상태(象台)가 다 같이 찾아왔다. ○食後, 與夏瑞偕來野塘, 見宋弼東氏。 仍爲午飯, 而同行來桂洞宋燁家。 夕食後, 其村宗人象亨、象豊、象貞、象義、象台, 皆來見。 계동(桂洞)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 계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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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삼례(參禮)128)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 전주부(全州府) 서쪽의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렀다. ○曉發, 抵礪山邑內朝飯。 抵參禮午飯。 暮抵府西全聖哲家。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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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신안서원(新安書院)130)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슬치(瑟峙)131)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를 하였다. 두치(斗峙)132)를 넘어 평당(坪塘)에 들러 잠시 필동(弼東) 일가붙이를 보고 저물녘에 국평의 하서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曉發, 抵新院朝飯。 抵瑟峙賣餠療飢。 越斗峙, 入坪塘, 暫見弼東宗人。 暮抵菊坪夏瑞家留宿。 行九十里。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이다. 선조 21년(1588)에 주희와 한호겸(韓好謙)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슬치(瑟峙)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고개로 '말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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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날이 채 밝기 전에 길을 나서 정천(定川)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비가 올 것 같아 걱정스럽다. 효포(孝浦)11) 어귀에서 흥양(興陽) 김형갑(金衡甲)을 만났다. 서울에서 온 자들이 지나가는 편에 구두로 소식을 전했다. 채찍을 재촉하여 금강(錦江)을 건너 신점(新店)에서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未明登程, 至定川秣馬, 而似有雨意, 可悶。 至孝浦前路, 逢興陽 金衡甲。 自京來者, 口傳消息於過去便。 促鞭渡錦江留新店。 是日行百里。 효포(孝浦)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신기동이다. 신라 경덕왕 때의 효자 향덕(向德)이 살았던 마을이 계룡면 신기리인데, '효포' 또는 '효가리(孝家理)'라고 불리게 된 것은 향덕이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그의 허벅지 살을 베어낸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이곳 효포에서부터 남쪽으로 널티, 경천역, 노성으로 이르는 길은 전통시대의 역제가 폐기될 즈음에 발발한 동학농민전쟁을 치른 역사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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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출발하여 묘치(猫峙)133)를 넘어 대초정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광천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나는 원동(院洞)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출발하였다. 저물녘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發越猫峙, 抵大抄亭朝飯。 抵廣川午飯。 余則入院洞暫話後發程。 暮抵舞童亭留宿。 行九十里。 묘치(猫峙) 전라남도 화순군의 동면ㆍ이서면ㆍ동복면이 만나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순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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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새벽에 출발하여 사미정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구암(龜岩)134) 앞에 이르러 율지는 곧장 동림으로 향하고, 나는 장수동(長壽洞)으로 향하였다. 알룡치(謁龍峙)의 강이백(姜利伯) 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마을 뒤 고개를 넘어 수동(壽洞)에 이르렀다. 우선 별 탈 없이 손자가 잘 자라고 있어 다행이었다. 수동 마을 앞에 이르러 마침 류 서방(柳書房) 원거(元擧)를 만났다.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흥양 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음날 동행할 생각으로 함께 들어가 유숙하였다. ○曉發, 抵四美亭朝飯。 至龜岩前, 聿之直向東林。 余則向長壽洞。 入謁龍峙姜利伯家午飯。 越村後嶺, 抵壽洞。 姑無故孫兒善長, 幸幸。 至壽洞村前, 適逢柳書房元擧。 問向何處 則作興陽云。 故明日同行之意, 偕入與之同留。 구암(龜岩)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구강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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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파루(破漏)8)를 칠 때에 길을 나서 삼례(參禮)에 이르니 동쪽이 비로소 밝아 왔다. 능측(陵側)9)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은진(恩津)10)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破漏時登程, 至參禮, 東方始明。 至陵側五十里秣馬。 至恩津留宿。 是日行百里。 파루(破漏) 오경 삼점(五更三點)에 종각의 종을 33번 치던 일을 말한다. 이 쇠북을 치고 나면 도성(都城) 안의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능측(陵側) 삼례와 여산의 중간지점인 것으로 보아 위에서 말한 능은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시대 무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으로 보인다. 이 능은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며, 백제 무왕(武王)과 선화비(善花妃)의 능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은진(恩津)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으로, 은진이라는 지명은 덕은(德恩)과 시진(市津)의 두 현이 합쳐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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