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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尹在楠【己卯】 奉記可感足下之不我忘也。足下淳雅謹敏。已卜之眉睫。而莊嶽數年。不被他乾沒。回頭向冷淡寂寞之濱。則志勇尤可尙也。但此事畢生爲期乃可。乍往乍來。作撤無常。決無有成之理。念我在年時。亦自橫走中始回來。一心刻苦十許年。粗定頭緖。而虛聲攸曁。旋被蒙求。笭簏塡室。不免舍已耘人。白首悠悠。竟歸無聞。此非足下之前車耶。十年猶如此。況可時日責效耶。須於心裏。辦畵一規矩。無一息間。無一息忙。期之以畢生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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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州米原店夢拜先君 千里旅遊數月連。故鄕消息杳雲邊。中宵夢拜先君面。覺後不禁淚潸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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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화성(華城)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이침(泥砧)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옛 지명)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曉發抵華城朝飯, 抵泥砧中火, 抵振威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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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여독(旅毒) 때문에 일찍 출발하지 못했다. 오후에 차동(車洞) 민 석사(閔碩士)에게 갔으나 날이 밝을 무렵 마침 고향으로 떠나서 그 아들만 잠시 만나 보았다. 아래 사랑 주인(舍廊主人)인 치항(致恒)이 마침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갔다. 정동(貞洞)의 석사 이희(李) 집에 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찾아온 율지와 확교(確橋)14)에 들어가 진사 유영도(柳榮度)의 집에 방문하였더니, 어서각동(御書閣洞)으로 이사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 달부(達夫)씨의 서간(書簡)을 전달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以路憊不得早發。 午後往車洞 閔碩士, 被明適作鄕行, 只有其子暫見。 往下舍廊主人致恒果在, 暫話後。 入西小門。 往貞洞 李碩士 家, 主人不在故不見, 而來訪與聿之入確橋, 訪柳進士 榮度家, 則移居于御書閣洞云, 故尋往其家, 傳達夫氏書簡, 還來主人家。 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를 학다리골이라 하였는데, 성리학자 퇴계 이황이 살았던 곳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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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아침을 먹은 뒤에 동행과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가 확교(確橋)에 갔다. 나는 송 판서(宋判書)의 집에 들러 판서(判書) 부자(父子)를 만나고 종각 쪽으로 돌아오니 동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대묘동(大廟洞)으로 가서 보성(寶城)의 종인(宗人) 귀환(龜煥)을 방문하였으나 마침 부재중이어서 통지하고, 지난해에 머물렀던 파정동(波井洞)의 기보(基甫) 집에 오니 주인은 일단 무고하였다. 한참 있으니 귀환이 마침 나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라온 연유를 이야기하였다. 그 먼저 서울에 도착하여 일의 기미를 살펴보았는데, 서울의 여론이 혹은 가하고 혹은 불가하다는 논의가 있으니 끝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길로 술집으로 나와 술을 사 마시다가 나는 남동(南洞)에 가서 잠시 마전(麻田) 김민계(金民桂)를 만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與同行入西小門往礭橋。 余則入宋判書家, 見判書父子, 還來于鍾閣邊, 則同行留待矣。 仍往大廟洞, 訪寶城宗人龜煥, 適不在故通奇, 而來于前年所住波井洞 基甫家, 主人姑無故矣。 移時龜煥果爲出來, 與之相話, 仍說上來之由, 則渠則先到京中, 探知事機, 則京中物議, 或可或不可之論, 未知末稍之如何云。 仍爲出來酒家, 沽酒相飲, 余則往南洞, 暫見金麻田 民桂, 而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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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들이 김노(金奴)를 데리고 나왔다. 재동(齋洞)72) 귀산(龜山)73)의 제족들에게 모이라고 통지하여, 개인 문중의 제수는 대략 형편에 맞게 정하고, 8냥 7전으로 여장을 꾸리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김노를 율지에게 보냈다. 내일 추동(楸洞)에서 만날 생각으로 그대로 유숙하였다. ○家兒率金奴出來。 通奇于齋洞ㆍ龜山諸族來會, 私門中祭駄, 略略的定, 以八兩七戔錢 治行爲言。 故送金奴於聿之。 以明日相會于楸洞之意, 而仍留。 재동(齋洞)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 있는 재동서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산 송씨 파족을 말한다. 재동파는 고흥 대서의 귀산파, 두원의 금성파, 동강의 대강파가 있다. 귀산(龜山)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귀산 마을이다. 여산 송씨 재동 귀산파의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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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中無聊。敬次河西先生古詩十韻。呈難窩 我是不平者。無人說寸心。悲歌從窮道。氣岸逐飛禽。宇宙獨彷徨。斜日下前林。大地三萬里。浩歌又狂吟。 獨撫荊卿劍。空抱伯牙琴。世人渾是夢。有誰會此音。允矣難窩子。才高意淵深。靜裏樂吾道。無愧屋漏沈。砭我狷狂客。勿使俗塵侵。此心若放過。歧路多嶇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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憶家弟允行【裕善】 千里西行數月留。那時利涉漢江舟。大都人物多情秀。到處江山足壯遊。憐我看雲眠日下。想君在道陟岡頭。願言遄返趨庭侍。爲解高堂父母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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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山齋趙領府【秉世】處義感吟二首 烈士殉君無古今。公歸泉壤好相尋。石頭城下同袁粲。止水亭前慕古心。正氣不隨寃氣散。家讐倂與國讐深。光揚節惠自天降。幾個男兒痛哭臨。國事蒼黃忍說今。二憂忠節復公尋。萬人幾人能辨義。一死當死不渝心。五疏披誠神可質。百身難贖恨尤深。泉臺此去應無愧。日夕趨陪列聖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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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金鳳于【永岐】哀桂庭閔尙書【泳煥】韻二首 忠義如公創見今。歲寒特秀柏千尋。醜虜知應驚破膽。廷僚孰不愧生心。壯氣昭回星斗極。愁懷慘淡海雲深。當時一死光千古。頭上分明白日臨。扶綱植紀古猶今。一死堂堂義路尋。凜凜氷霜凝碧血。明明天日照丹心。聲名長興華山重。寃恨同添漢水深。賣國欺君狗鼠輩。如何不愧上蒼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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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山齋小會 八月淸遊四老同。寒花晩葉碧山中。堪憐短髮星星白。爲惜斜陽冉冉紅。前哲貽謨瞻梓樹。故人有約抱絲桐。瓊篇如得空靑寶。浪讀千回便愈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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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상삼례(上參禮)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여산(礪山) 읍내에 이르러 신동(新洞)의 백교귀(伯交歸)를 만나 그대로 점심을 먹었다. 작천(鵲川)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抵上參禮朝飯, 抵礪山邑內, 見新洞 伯交歸, 仍爲中火。 抵鵲川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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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敬彬【興淵】共吟 歲暮孤村雪滿林。靑燈共對白頭吟。十年離合人全老。一席談論夜轉深。許過知心開草逕。不勞乘興訪山陰。江南春信梅先動。索笑簷端冷不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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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북문 밖의 송약수(宋若洙) 집에 갔으나,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왔다. 영문(營門)으로 가서 순상(巡相)을 보고자 하였는데, 마두(馬頭)가 통자(通刺)하지 못해서 만나지 못하고 주인의 집으로 돌아오니, 간촌(看村) 박상현(朴祥炫)과 옹포(甕浦) 송격(宋格)이 도착하였다. 오후에 출발하여 삼례 천변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밥값으로 두 냥을 냈다.- ○食後往北門外宋若洙家, 則適出他不見而來, 往營門欲見巡相矣。 以馬頭不得通刺, 不見而還來主人家, 則看村 朴祥炫及甕浦 宋格來到。 午後而發, 抵參禮川邊酒幕留宿。 行三十里【飯錢二兩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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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주인 하서가 극구 말렸으나 갈 길이 바쁜 관계로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이현대(李顯大)를 위로할 생각으로 아산(牙山) 번천(樊川) 길을 찾아가려 하니 하서가 길을 안내해 3리쯤 가서 그대로 작별하였다. 번천의 이현대(李顯大) 집을 찾아가 그 궤안에 조문하였다. 점심을 먹은 뒤 출발하려고 하니 주인이 극구 만류하여 그대로 유숙하였다. ○主人夏瑞堅挽不已, 而以行忙之致, 食後發程。 爲慰李顯大之意, 尋牙山樊川路, 則夏瑞指路行至三里許, 仍爲作別。 尋樊川李顯大家, 吊其几筵。 午飯後, 欲爲發程, 則主人堅挽, 仍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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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밥을 먹기 전에 출발하여 선제정(先帝亭) 주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부용치(芙蓉峙)를 넘어 창화(昌華)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상동(上東) 주막에 이르자 날이 벌써 저물었다. 마침 강성주(姜聖周)를 만나 그와 함께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食前發程, 抵先帝亭酒店朝飯。 越芙蓉峙, 抵昌華店午飯。 抵上東幕日已暮矣。 適逢姜聖周。 與之同留。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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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섰다. 곡성(谷城) 읍내(邑內)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불로치(不老峙)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영귀정(咏歸亭)에 이르러 먼저 소식을 물어보려고 온 집안이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매(舍妹)를 나오라고 했다. 잠시 울타리 밖에서 보니 오래지 않아 굶어 죽을 것이 분명한 데다 어린아이도 병이 들어 낫지 않고 있으니, 그 광경이 근심스럽고 답답하였다. 천평(泉坪)의 소식을 물었는데, 그도 지금 병을 앓고 있다고 하므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낙수(洛水)에 이르니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이날 100리를 갔다. 未明登程。 至谷城邑內朝飯, 至不老峙五十里秣馬。 至咏歸亭, 先問消息, 擧家方痛, 而舍妹要出。 暫見於籬外, 則非久餓死丁寧, 而且兒少沒痛未蘇, 景色愁阻矣。 問泉坪消息, 則亦方痛云, 故不爲入去, 直驅至洛水, 日已黑矣。 是日行百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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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새벽에 길을 나서 중진원(中津院)6)에 이르렀는데 수해가 크게 일어나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증산(甑山) 주막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올 여름의 물난리 때문에 길이 몹시 험악해져서 주포(周浦)에서 오수(獒樹)7)까지 종일토록 걸어갔는데, 길 좌우로 보이는 수해의 참상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농사 작황도 좋지 않아 흉년을 면치 못한 것처럼 보이니 백성들의 사정이 가련하였다. 임실(任實)의 야당리(野塘里)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80리를 갔다. 曉頭登程, 至中津院, 水瘴大發, 咫尺不辨矣。 至甑山酒幕, 秣馬中火。 以今夏水破之故, 道路極惡, 自周浦終日徒步, 至獒樹, 則沿路水破之狀不可言。 且農形不登, 所見未免歉歲, 民事可憐。 至任實 野塘留宿。 是日行八十里。 중진원(中津院) 중진(中津)은 순자진(鶉子津)으로, 곡성군 북쪽으로 10리 되는 남원(南原)경계의 대로(大路)에 있었고, 순자원(鶉子院)은 순자진(鶉子津) 언덕 위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섬진강을 건널 수 있게 설치된 중진원교(中津院橋)가 있었다. 오수(獒樹)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으로, 과거 역참이 있던 지역이다. 역참일 당시 오수역은 남원, 구례, 광양, 순천 등 호남 지역의 역참을 관할하던 대형 역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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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날이 채 밝기 전에 길을 나서 노고소회(奴古所回)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전주(全州) 부내(府內)의 주인집에 이르니 주인은 마마로 손녀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온 집안이 경황이 없으므로 서문 밖 여점에 가서 머물기로 했다. 가는 길에 우연히 경성(京城)의 이 석사(李碩士)를 만나 동행하기로 약속하고 이에 그가 머무는 객점으로 가서 묵었다. 집안에 보낼 편지를 집주인에게 써서 주고, 인편을 기다려 부치게 하였다. 이날 80리를 갔다. 未明登程, 至奴古所回, 中火秣馬。 至全州府內主人家, 主人以其孫女之逝於西神, 擧家無況, 故往留於西門外旅店。 盖於中路偶逢京城 李碩士, 相約同行, 故往尋其所留店留宿, 而書給家書於主人, 使之待便付送。 是日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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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18)에 가서 종친들을 만나고 왔다. 朝飯後, 往鑄洞, 見僉宗而來。 주동(鑄洞) 서울특별시 중구 남학동・예장동・주자동・충무로2가・충무로3가・필동1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이곳에 조선시대에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 내던 주자소(鑄字所)가 있었기 때문에 주잣골이라 하고, 한자명으로 주자동이라 하였으며 줄여서 鑄洞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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