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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山坊化民千鎰貫正言千光祿宣傳千鎰杓謹齊沐上書于城主閤下民之先祖花山君墳墓在於金岸坊環峯之上儀物久闕爲其子孫之心豈不悶迫乎今纔創建神道碑次自長水等地造碑磨練然財小役多如不衆力必難完運 惠以孔邇 施以不遐 嚴辭傳令于附近坊上下番巖葛峙王之田伊彦金岸機池使之赴役俾無後艱千萬齊祝齊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 丁酉十二月 日〈題辭〉從近坊境卽爲完運無得生頉之地宜當向事初七日各坊社首[官印]行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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曳山面長善里居化民千鎰貫千鎰權千鎰杓謹齋沐再拜上書于城主閤下伏以民之先祖花山君諱萬里壬辰功臣也惟我 列聖朝惜其忠義彰其功烈 特封花山君是如乎無論孽子賤孫勿侵雜役事 傳敎完文如彼日星所居列邑果無侵漁之弊矣民等來寓本郡或彼任掌之橫侵累訴蒙澤矣東擾以後人心不古所謂洞任李致鉉不遵 朝令頑據〖拒〗 官令方有微侵突入內庭收去食鼎反爲□{酉+辱}挬以筆難告也民等不勝憤迫玆敢仰籲於明政之下爲去乎 嚴辭傳令于洞任處以杜後弊千萬齊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 [谷城郡守之章]庚子三月 日〈題辭〉當傳令■(禁)〔於〕洞任禁戢事十一日 刑吏[谷城郡印]行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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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子惶恐仰瀆于仁鑑之下伏以民素是貧窶之致近業神農計活而以若走西走東之微軀猥荷莫重聖廟之任實涉猥越故玆敢仰單特恤民之矜情期於移任於雅敏可堪之人謹冐昧以陳城主 前乙未十月 日 民金在珪 上〈題辭〉所單若是不得已奉副十六日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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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芝山面 日谷里盧 斯文 軫永 侍座(피봉_뒷면)松汀 素村 永和齋留.謹.(簡紙)旱炎近酷, 謹審省外體度萬若, 仰溯且祝. 第本鄕今番隨行案改整, 貴啣亦選於鄕議之一致, 則以來十日掃萬枉顧于素村朴氏影堂, 一如觀光, 千萬仰待耳. 餘留不備禮.乙亥六月六, 朴夏淸,奇琮燮,柳永善,高光雨,崔鍾宇,高光雨,李啓萬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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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芝山面 日谷里盧 斯文 蘇海 宅(피봉_뒷면)鳳山精舍 會所 謹函.封.(簡紙)歲新矣. 伏惟正元尊體迓新萬祉, 是庸頌仰. 就師門主喪, 以在廷長子大錫, 承重受服爲幸莫大. 其在同門願言之地, 不可無相志. 故玆仰, 幸須僉諒, 轉相通志, 如何如何. 餘不備上.乙亥正月六日, 任漹宰高在華上(別紙)羅鍾宇【字 聲泰, 號 松巖】 大村面 石亭任漹宰【字 子潤, 號 西谷】 南平 錦川面 酉疇劉秉龜【字 洛現, 號 韋菴】 光州 西倉面 龍頭里梁孝黙【字 行源, 號 老菴】 林谷面 博山金勝坤【字 , 號 東洲】 西倉面 東山里李載春【 , 號 省菴】 瑞坊面二月十六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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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盧 斯文 軫永 省下(피봉_뒷면)鳳山精舍 生等(簡紙)頓首, 日昨几筵之奉別, 出於遽然,惟何如悵之喩也. 謹惟堂候倘得无妄, 而天和否? 區區爲頌無數. 然吾先生之襄奉, 幸賴僉君子之尊師誠力, 可謂利成, 而克終者一段而已.惟願大兄察此末襄先日信焉之蒙, 千萬與祝何免.今襄奉時所需, 自吾門徒提供, 而目今不足額近三百餘円也. 各自爲先挪貸者司貨之人, 或七拾円五拾円乃已, 則自貴中七拾円挪貸, 則終有拮据之道, 以此 惠諒, 而幸 勿遺憾于師門中, 千萬千萬.乙亥元月葬師之翌,任漹宰李載春劉秉龜羅鍾宇 二拜.尹璟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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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魚沈鴈斷 信息杳然漠然 而以渠之無書 貴亦無書 古所謂是坡非坡 似同歸於一轍矣 今再昨倩君來 以悉貴底大槩 如得天外蓬萊消息耳 何喜如之 謹承審潦雨乍晴省愉餘棣床動止候 連衛萬旺 肖玉?侍平迪 大小諸節 均爲平吉 並仰溸且禱之至 査弟魯衛相將 餘外諸累 姑免大何 以是爲幸第今年水旱 從古罕有也非旱則久雨 其爲災害 亦不爲鮮貴坪亦未免否 此生此世 終不見好箇時節也 ?言滿腔 怱怱不備禮甲戌六月二十四日 査弟郭和準 拜上(皮封)〈前面〉淸梧鳳里李生員 棣座下 入納密佳仁里 謹椷〈後面〉甲戌六月二十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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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相思好夢之際 星皓從來訪 欣豁已無可言 而兼致吾兄書 忙手披玩 不覺紙毛 憑審辰下兄候對時珍護 寶卷均宜 允君安侍篤課 而從姪女亦爲無頉 抱玉聖痘 伊間果無事出場否 並切溸仰區區 實欲願聞 弟孤露餘生 又當此歲此日 劬勞之感 尤益難堪奈何爲當其時 兄與令咸 帶來而要做浮生一日團欒之娛 偶得一丈夫孫 時時撫弄 衰老精神 若惺惺然 此亦吾生今日之慶耶 旁中閻府之戒兄可謂先意承事亦誠孝之言 敢不如敎 仰呵仰呵 所謂甲會 以産之故 退定於來初二 其時或可吾兄與諸從氏 連鏕惠臨 兼攄阻懷 切仰切仰 餘留續候 不備謝禮庚午二月念二 弟金極永拜拜老汝仁兄亦平安否 忙未各幅 恨意傍致 而亦聯袂惠顧 切企切企耳【피봉】謹拜謝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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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贈通政大夫兵曹參議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通政大夫行敦寧府都正 曾祖考依法典追 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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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面雲臥里辛酉式戶口單子 六統一戶 [周挾無改印]戶幼學崔宗得年六十五丁巳本全州父學生 德延祖學生 東龍曾祖學生 龜善外祖學生朴光弼本密陽奉母朴氏歲八十八癸巳妻鄭氏歲六十五丁巳本慶州父學生 大益祖學生 致成曾祖學生 仁國外祖學生權在弼本安東卛子秀甲年二十五丁酉婦李氏歲二十五丁酉本全州賤口婢上元 戊午相凖[谷城縣監之印]帖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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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최종득(崔宗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68 谷城縣監 崔宗得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67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67년(고종 4)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종득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이고 오가작통 순번은 2통 2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71세 정사생(丁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종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덕연(德延), 할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증조(曾祖) 학생 귀선(龜善), 외조(外祖) 학생 박광필(朴光弼)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최종득의 아내 정씨(鄭氏)는 연령 71세 정사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대익(大益), 할아버지 학생 치성(致成), 증조 학생 인국(仁國), 외조 학생 권재필(權在弼)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수갑(秀甲)은 나이 31세 정유생(丁酉生)이며, 며느리 이씨(李氏)는 연령 31세 정유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는 상원(上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 방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186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자상준(甲子相凖)'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종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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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城縣石谷雲臥里丁卯式戶口單子戶幼學崔宗得年七十一丁巳本全州 二統二戶父學生 德延祖學生 東龍曾祖學生 龜善外祖學生朴光弼本密陽妻鄭氏齡七十一丁巳本慶州父學生 大益祖學生 致成曾祖學生 仁國外祖學生權在弼本安東卛子秀甲年三十一丁酉婦李氏齡三十一丁酉本全州賤口奴上元 甲子相凖 [周挾無改印][谷城縣監之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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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최종득(崔宗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70 谷城縣監 崔宗得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70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70년(고종 7)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종득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이고 오가작통 순번은 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72세 기미생(己未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종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덕연(德延), 할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증조(曾祖) 학생 귀선(龜善), 외조(外祖) 학생 박광필(朴光弼)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최종득의 아내 정씨(鄭氏)는 연령 72세 기미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대익(大益), 할아버지 학생 치성(致成), 증조 학생 인국(仁國), 외조 학생 권재필(權在弼)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수갑(秀甲)은 나이 34세 정유생(丁酉生)이며, 며느리 이씨(李氏)는 연령 34세 정유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는 상원(上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 방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1867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묘상준(丁卯相凖)'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종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이 준호구 외에 최종득의 다른 준호구에는 최종득과 그의 아내 정씨의 생년이 모두 기미생이 아닌 '정사생(丁四生)'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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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仰拜審菊令候居萬旺 仰頌 記下爲歉民之典物 京行停止 而○賀班未參 尤切悚悶耳惠栗情注也 故拜領而不安極矣 不備 上癸巳九月十七日 記下 致憲 拜(皮封)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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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秋間値京付惠圅 尙切欣豁 得便果所爲難 迨今未修復 非但作悵款語 是豈平昔之深誼哉 言益黯黯 卽惟此時蜡寒轉劇侍餘棣候 連護萬毖 曁渾一享安穩耶 區區並切溯禱 此間倘有原旆 卽果返旋耶 所營事 今於轉聞則 竟至山外 雖曰關數 惟冀萬一之幸 此何事也 此心之悵萬 如是弸中 況當之者 倘作何懷 不勝咄咄而已 各的益精以雪明春 亦豈非丈夫事耶 還付之一呵也 硏下十初 因事入洛 姑保宿樣 而營候連承安信皆無撓 何等如之 日間欲作照分若復入澄淸 則眄思近一歲之長 從倘難禁繾惓之情也 新蓂期欲伴付 故三件玆送 得無與書並沉之慮耶 須推之焉到書後因回 期於數字付答 是仰是仰 餘撓甚姑不備候丁未至月初五日 硏下 熙奭 拜拜(皮封)江陵草堂 崔雅士 在鳳宅 入納水橋病夫候狀 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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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조희식(趙熙軾)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趙熙軾 崔在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707 1849년 8월 13일에 수교에 거처하는 조희식이 강원도 강릉의 초당에 살고 있는 최재봉에게 자신의 부친이 여름을 보낸 뒤로 건강이 항상 좋지 못한데 장인을 감독하는 일까지 겹쳐 걱정스럽다는 내용과 상대방의 서울 행차는 언제인지 묻는 내용 및 덕윤의 병세는 갈수록 차도가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1849년(헌종 15) 8월 13일에 수교(水橋)에 거처하는 조희식이 강원도 강릉(江陵)의 초당(草堂)에 살고 있는 최재봉(崔在鳳)에게 자신의 부친이 여름을 보낸 뒤로 건강이 항상 좋지 못한데 장인(匠人)을 감독하는 일까지 겹쳐 걱정스럽다는 내용과 상대방의 서울 행차는 언제인지 묻는 내용 및 덕윤(德潤)의 병세는 갈수록 차도가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만났다 헤어진 뒤로 서로 오가는 편지가 없으니 비록 형세 때문이지만 서글픈 심정이며, 한밤중에 서풍이 불어 베 이불에 한기가 느껴진다는 내용, 늦더위가 갑자기 서늘해졌는데 모시는 어버이의 안부는 계속 좋으시며, 며칠 동안의 힘든 여정(旅程)으로 건강의 손상은 없는지 묻는 내용, 자신의 아버지의 건강은 여름을 보낸 이후로 항상 탈이 많은데 또 장인을 감독하는 일까지 겹쳐서 앞으로 오랫동안 수고롭게 될 상황이니 자신의 애타는 심정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 농사는 크게 풍년이 들었으니 아름다운 풍취라는 내용, 삼척군수(三陟郡守)가 그사이에 이미 나왔으며, 간성군수(杆城郡守) 정재용(鄭在容)이 그를 위해 길을 청하는 것은 무방하다는 내용, 상대방이 서울로 가는 행차는 언제 있는지 묻는 내용, 덕윤의 병세는 갈수록 차도가 없으니 죽을 때까지 낫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 지금 막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몇 글자 적어서 보낸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간찰의 작성년도는 정재용의 간성군수 재임 연도인 1842년부터 1847년까지의 기간을 근거로 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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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나도선(羅燾線)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羅州鄕校 慕聖公會 羅州郡羅州文廟直員(적색, 정방형, 2),羅州鄕校(흑색,직방형, 6.6×5.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44 1925년 10월에 나주향교 나도선 등 18인이 모성공회에 이규행의 효행실적을 속히 드러내 알릴 것을 촉구하는 통문 1925년 10월에 나주향교(羅州鄕校) 나도선(羅燾線) 등 18인(人)이 모성공회(慕聖公會)에 이규행(李圭行)의 효행실적(孝行實蹟)을 속히 드러내 알릴 것을 촉구하는 통문이다. 통문의 도입부에는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나더라도 그 향기는 반드시 소문이 나고, 깊은 못에 구슬을 감추더라도 그 광채는 절로 드러나는데 사람의 아름다운 행실과 실적은 난초의 향기와 구슬의 광채보다 뛰어나다고 하였다. 본문에서는 이규행의 가계에 대해 도내(道內) 고(故)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이규행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고려시대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낸 이인정(李仁挺)의 후손이자 진사(進士) 야은(野隱) 이영우(李永祐)의 11대손이며, 증조는 이인열(李仁㤠), 할아버지는 이시준(李時濬), 아버지는 이보승(李普升)이라고 했다. 이규행의 계보와 성품에 대해 주로 언급하면서 명문세족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성품이 매우 순수하고 언행이 뭇 아이들과 달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규행의 효성과 의리 행실에 대해 서술했는데, 그가 일곱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자라면서 항상 어머니상에 성의를 다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생각했으며, 늙어서 최마(衰麻)를 입은 자를 보면 절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버지를 공경과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고 병간호하면서는 지극정성으로 약을 달이며 하늘에 아버지의 장수를 빌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두 옛 제도에 따라 상(喪)을 치르고 장사(葬事)와 제사에 성의를 다하였다고 했다. 그밖에 빈궁한 자를 도와주는 도리와 벗과 미덥고 친족과 화목한 의리도 매우 지극하여 마을 사람 모두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고 하였다. 끝으로 나주향교 선비들이 그의 행실을 함께 들은 후 침묵할 수 없어서 모성공회에 통문을 보내 그의 실행과 실적을 속히 드러내 알려서 사라지지 않게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내용을 담았다. 모성공회는 일제강점기 때에 만들어진 유교 단체이다. 통문의 본문 끝에 '나주군나주문묘직원(羅州郡羅州文廟直員)' 주인(朱印)이 찍혀있고, 발급날짜 위에는 '나주향교(羅州鄕校)'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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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12월 1일, 봉산정사의 이재춘 등 5명이 노진영에게 미납된 출의금을 내달라고 촉구한 내용의 서간. 1934년 12월 1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임원 이재춘(李載春) 등 5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미납된 출의금(出義金)을 내달라고 촉구한 내용의 서간이다. 추운 12월에 상대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봉산정사에 낼 의연금액과 토지 및 도조를 정리하는 일로 연락을 했다며, 작년 이래 여러 번 통지하였으나 아직까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라 본의(本義)가 상실되게 되었다며 금년 내로 결말을 보려고 한다고 했다. 가장 급한 것이 올봄에 매수한 논 8두락 대신의 돈 약 400원을 정리하는 일이라며 이에 대하여 어찌해야 할지 여러분의 답장을 바란다고 전했다. 황색 종이에 철필등사의 방식으로 배포된 문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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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김달오(金達五)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達五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789 1858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달오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58년(철종 9)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달오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김달오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7통 1호이다. 김달오의 인적사항 부분은 결락되었다. 김달오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성인(聖仁), 할아버지 한량 필봉(弼逢), 증조(曾祖) 한량 상건(尙巾), 외조(外祖) 한량 박득대(朴得大)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달오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45세 갑술생(甲戌生)이고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석용(碩用), 할아버지 한량 헌(憲), 증조(曾祖) 한량 하지(何智), 외조 한량 정미(鄭美)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외 가족 구성원으로 동생 달표(達表)가 있으며, 나이 32세 정해생(丁亥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자개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55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을묘호구상준(乙卯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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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영월신씨(寧越辛氏) 연길단자(涓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寧越辛氏 査頓 寧越辛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진년 10월 29일에 신부측인 영월신씨가 신랑측에 보낸 연길단자 경진년 10월 29일에 신부측인 영월신씨가 신랑측에 보낸 연길단자이다. 혼례 날짜는 11월 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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