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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金始星<着名>, 趙元兼<着名>, 禹仁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답(畓) 1두 4승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이 일궈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금년 들어서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이라고 적었다. 대상 토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내정동(內井洞)에 있는 상자(霜字) 답 1두 4승락지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1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으로 거래하였다. 김여성(金如星)과 조원겸(趙元兼)이 증인으로, 우인평(禹仁坪)이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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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장명화(張明化) 토지상환명문(土地相換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守夫 張明化 鄭守夫<着名>, 金用西<着名>, 金有年<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8년(고종15) 정수부(鄭守夫)가 장명화(張明化)와 밭을 바꾸면서 작성한 상환(相換) 명문 1878년(고종15) 정수부와 장명화가 토지를 바꾸면서 작성한 상환 명문이다. 정수부의 밭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수년간 경작하다가 상환하게 되었다. 대상 토지는 신리(新里) 뒤쪽 강변 몽토동(夢土洞)에 있는 위자(爲字) 밭 7두락지이다. 대체로 상환명문의 경우 서로 교환하는 상대방의 토지가 기재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 문서에는 쓰여 있지 않다. 김용서(金用西)는 증인으로, 김유평(金有平)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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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장한종(張漢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允宗 張漢宗 趙允宗<着名>, 黃貴福<着名>, 宋太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고종1) 조윤종(趙允宗)과 황귀복(黃貴福)이 장한종(張漢宗)에게 언답(堰畓) 3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 1864년(고종1) 8월에 조윤종과 한귀복이 장한종에게 자신의 언답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이 언답은 본래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이었다. 그런데 지난 병진년 봄에 수해로 제언이 무너졌다가 지금까지 제언을 다시 쌓지 못하여 논이 황폐하게 된 것이 방매사유라고 밝히고 있다. 방매 대상은 교포리(橋浦里)에 있는 곤자(崑字) 1두락지와 동자(同字) 2두락지를 합한 논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5냥이다. 이 거래에 송태향(宋太享)이 증인 겸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각각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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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장채수(張采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秋文益 張采守 張采守<着名>, 秋文益<着名>, 金成詹<着名>, 梁義賢<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 추문익(秋文益)이 장채수(張采守)에게 자신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 1894년 추문익(秋文益)이 장채수(張采守)에게 자신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수년 전부터 자신이 기경(起耕)한 논으로, 금년 봄에 많은 사채(私債)로 인하여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 논의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의 강변에 있으며, 면적은 5되지기[刀落只]이고 방매가는 전문(錢文) 22냥 5전이다. 이 논에 대한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성첨(金成詹)이 증인으로, 양의현(梁義賢)이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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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壽富 鄭壽富<着名>, 張仁行<着名>, 李柱錫<着名>, 金應道<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고종26) 정수부(鄭壽富)가 밭 7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889년(고종26) 정수부(鄭壽富)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던 밭 7두락지를 꼭 써야할 곳이 있었던 까닭에 전문(錢文) 13냥 3전을 받고 방매하였다. 매매 대상인 땅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의 주을로변(注乙路邊)에 있는 금자(金字) 자호의 밭이다. 구문기(舊文記)의 교부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장인행(張仁行)과 이주석(李柱錫)이 증인으로, 김응도(金應道)가 필집(筆執)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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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義律 李義律<着名>, 宋昌奎<着名>, 趙永逸<着名>, 李仕律<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이의율(李義律)이 답(畓) 6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879년(고종16) 11월 27일에 이의율이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매매 대상 토지는 이의율이 직접 매득하여 수년 동안 곡식을 거두어 왔던 곳으로, 돈을 써야할 곳이 생겨서 부득이 매매하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수횡평(水橫坪)에 있는 상자(霜字) 논 3두락지와 상평(上坪) 장등구미(長墱九味)에 있는 2두락지, 그리고 같은 곳에 있는 1두락지를 각각 36냥과 36냥, 10냥으로 쳐서 모두 82냥을 받고 거래되었다. 이들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도문서(都文書)에 재록(載錄)되어 있어서 매득인에게 넘겨줄 수 없으므로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송창규(宋昌奎)와 조영일(趙永逸)이 증인으로, 종제(從弟)인 사율(仕律)이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매득인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자세하지 않으나 문서 좌측에 추가로 쓰여진 신리(新里) 내정동(內井洞) 장문수(張文洙)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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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박보규(朴甫奎)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甫奎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오년에 박보규(朴甫奎)가 형에게 보낸 간찰 병오년 8월 11일에 박보규가 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형과 만났다가 이별한 뒤로 소식이 막혀 그리운데 부모님 모시는 생활은 어떤지 안부를 물었다. 형이 작년에 부탁한 작은 도끼 한 개를 아직 보내지 못했는데 혹시 사서 쓰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사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사지 않았으면 신뢰를 잃었다고 하지 말고 우선 왕래하는 인편에 다시 구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시면 자신이 불민하지만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사서 보내드릴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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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정묘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며느리의 상을 당한 것을 위로하고, 금산 행차에 대한 기대를 표하며 김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는 내용의 간찰 정묘년 12월 25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보낸 간찰이다. 사는 곳이 멀어 오래도록 소식이 막혀 그리운 마음이 깊었는데 이번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부랴부랴 펼쳐보니 마치 한 자리에 마주한 것만 같았다고 인사하였다. 서신을 통해 섣달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상대방의 생활이 편안하고 가족 모두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매우 위로가 되었지만, 며느리의 상변(喪變)을 당해서 얼마나 참담하고 어떻게 견디고 계시냐고 위로하였다. 자신은 어머니의 건강이 오늘내일 하는 상황에서 근래 발을 다치는 일이 있어 애타는 심정이라고 하였다. 금산(錦山) 어르신의 상(喪)은 실로 사문(斯文)의 불행인데, 내년 봄에 금산에 행차하신다니 매우 기뻐서 미리부터 기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인편이 바쁘다고 해서 우선 이렇게 답장을 쓴다고 하면서 내년에 많은 복을 받으시길 축원한다고 새해인사를 하였다. 보내준 해의(海衣 김)를 잘 받았다고 인사하고, 답할만한 것이 없어 대추를 조금 보내니 받아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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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김성윤(金聲允)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聲允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진년에 김성윤(金聲允)이 사돈댁에 일반적인 안부 인사를 하면서 보낸 간찰 경진년 7월 17일에 김성윤(金聲允)이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지난봄에 가르침을 받고 담론을 나누었던 추억을 상기하며 돌아온 뒤에도 항상 그리웠다고 인사하였다. 지금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되는데 상대의 생활은 편안하고 아드님도 편안히 어른 잘 모시며 식구들 모두 다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살아가는 일에 골몰하느라 온갖 생각이 많고 오래 몸이 좋지 않아 걱정이지만 다행히 마을이 모두 편안하다고 하였다. 언제나 뵐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안하기를 축원한다고 하면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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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장지철(張志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志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 신축년 8월에 장지철이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뵌 지도 오래되었고 서신으로 연락한지도 오래되었는데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잘 받아보셨냐고 물었고, 자신은 집에 돌아온 뒤로 우연히 다리에 부종이 생겨 여러 날 앓았고 아직까지 다 낫지 않았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달포 전에 말씀드렸던 족보 책값에 대해 무슨 곡절인지 끝내 답변이 없어 안타깝다고 하면서 종제(從弟)인 장만원(張蔓遠)을 대신 보내니 이 사람의 말대로 하는 것이 사리에 당연하다고 당부하였다. 족보 책값을 수금하는 것에 대해 범상하게 여기지 말고 납부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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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민수(玟守)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玟守 張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년 민수(玟守)가 장인어른인 장생원(張生員)에게 보낸 간찰 갑진년 1월 2일에 사위 민수(玟守)가 장인어른 장생원에게 보낸 간찰이다. 장인어른의 새해 안부를 묻고 자신은 어버이의 건강이 여전한 것이 새해 들어 가장 다행스런 일이고 그 외에 달리 전할 만한 소식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근래 장인어른 집안에 아들을 낳는 경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집안에 후손을 남기는 조짐이니 매우 축하를 드린다고 하였다. 이번 달 보름 안에 한번 찾아뵙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무라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장인어른인 장생원댁은 신리(新里) 월복동(月復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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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김석지(金錫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智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신년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안부를 전하고 보내준 물건에 대해 감사 표시를 하는 내용의 간찰 병신년 10월 19일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보낸 간찰이다. 지난 가을에 뵙고 몹시 감사했는데 뜻밖에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니 몹시 위로가 되고 또 죄송하다고 인사하였다. 편지를 통해서 매형이 잘 지내고 계시고 가족들 모두 편안하다고 해서 몹시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어머니께서 풍담(風痰)으로 고생하시는데 겨울 추위 때문에 더욱 안 좋아져서 애가 탄다고 하였고, 계씨형(季氏兄)을 못 보다가 만났더니 몹시 기뻤지만 흉년에 많은 식솔로 생계가 어렵다고 해서 차마 들을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보내주신 건어(乾魚)는 잘 받았고 초자(椒子)는 감사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다만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며 다음 인편에 혹 더 보내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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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경오년 2월 2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갑회(甲會) 모임을 다음달 2일로 미뤘으니 그 때 왕림해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간찰 경오년 2월 2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꿈에서도 생각날 정도로 그립던 차에 사촌 성호(星皓)가 와서 매우 기뻤고, 그 편에 형님의 서신을 받아 읽고서 형님이 잘 지내고 계시고 식구들 모두 편안하며, 아드님도 어른 모시며 공부 잘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고, 종질녀도 무탈하며 손자의 천연두는 그간 잘 나았는지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을 모두 잃은 고로여생(孤露餘生)으로서 지금 이런 때를 만나니 수고하셨을 부모님 생각에 더욱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형님이 조카들을 데리고 와서 단란하고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주고 손자가 때로 춤추고 노는 모습을 보니 노쇠한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갑회(甲會) 모임을 다음달 2일로 날짜를 미뤘으니 그때 여러 사촌들과 함께 왕림해서 회포를 터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고, 여인(汝仁) 형도 평안한지 모르겠다며 바빠서 따로 서신을 쓰지 못하니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주고, 더불어 갑회 모임에 함께 오실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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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鄙地方面으로 말하면 全異한 細雨도 업난事實임이다 鄙地의 送人하시와 形便를 보시면 다알의시것심이다 鄙地年▣로 말하면 十分에 九은 災라 할수잇고 一은 豊이라고 할수잇심니다 弟의小作한畓租中에不可三束以上에 넘지못하게 收取하고 그대로 잇심니다 先尺決定은 每年의 定尺하엿시나어너니廢農故로 更히 送人하시라한거심니다 其時에도 不安心를 두시지만은 右記와갓치 年運닌니 十分容恕하시고 送覽하여주시면 以後부터셔난 만닐못먹난形便이잇드라도 更히말슴告白치안커심이다 歸去한 鄙妹의 苦痛한 事情과 遺語로하다하드라도 銘心不忘 先尺一升도 懶惰치안키로함니다 그리알으시고 二十五日內로 送覽하여주시룬 千萬大望하난밤니다 今年갓튼 年勢과 ᄯᅩ잇실가요 十分顧護하시와 今年에 更히 보와주시시오 麥를 갈게되야신니 速速키 送覽하여주시를 切望함이다 餘不備書舊九月二十五日 弟朴判根 上呈他人定尺도 更히보와갓신니곳來臨하시오못오게되면回答하여주시시오【피봉】〈前面〉光州郡本村面日谷里▣▣永氏〈後面〉緘 長城郡森溪面社倉朴判根拜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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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근(朴判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判根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판근(朴判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농사가 흉년이므로 소작료 결정에 앞서 사람을 보내 살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9월 25일에 박판근(朴判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우선 올해 농사의 10분의 9가 재해를 입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이 소작한 논의 작료는 3속(束) 이상을 넘지 못하게 수취해 왔고 선척(先尺) 결정은 매년 정했지만, 워낙 농사가 흉작이므로 다시 사람을 보내 살펴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렇게 해준다면 이후부터는 못 먹는 형편이 있더라도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자신 누이의 고통스런 사정과 남긴 말을 명심해서 잊지 않고 선척 1승(升)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25일 안으로 사람을 보내 살펴주시기를 신신당부하였다. 올해와 같은 농사는 또 없었거니와 보리를 갈게 되었으니 빨리 보내달라고 하면서 못 오게 되면 회답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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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노재혁(盧在爀) 등 2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在爀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2월 2일, 노재혁 등 2인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상을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942년 2월 2일, 노재혁(盧在爀) 등 2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상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자신의 아버지 상이 졸곡(卒哭)을 넘기게 되었는데, 그때 위문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전한다고 하였다. 연활자 인쇄의 방식으로 서간을 작성했다. 발신자는 노재혁, 노재철(盧在{火+喆})이며, 거주지는 마산부(馬山府) 성호동(城湖洞) 50번지이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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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노긍석(盧兢錫) 등 3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兢錫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4월 20일, 고자 노긍석 등 3인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장례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1942년 4월 20일, 고자(孤子) 노긍석(盧兢錫) 등 3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장례에 위문해 준데 대하여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노긍석 등이 이마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고 말씀드린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상황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자애로운 상대가 위문(慰問)해 주심을 받았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발신자는 노긍석(盧兢錫), 노만석(盧晩錫), 노남석(盧南錫) 3인이며 이들의 주소는 경상북도 달성군 지구면(求智面) 대포동(大浦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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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9 盧軫永 安秉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5월 15일, 제 노진영이 손자 지섭의 학교 문제로 안병현으로부터 온 편지에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 1939년 5월 15일, 제(弟) 노진영(盧軫永)이 안병현(安秉鉉)에게 손자 노지섭(盧地燮)의 학교 문제로 애쓰고 편지를 준 안병현에게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이다. 자질(子姪)이 상대에게 지도를 받고 있는데 한번 인사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성의가 부족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최근 청화한 날씨에 상대가 공무(公務)를 잘 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전히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지난 일주일 전에 다른 곳에 나가서 2틀전 저녁에 광주 봉호(蓬戶)에 돌아왔는데 보내주신 전보가 와 있었다는 것, 다음날 과연 상대의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는 것, 편지에서 말씀하신 이미 소비한 3회분은 더 논할 것도 없고, 2회분 또한 활동으로 소비해 놓고 각자 자금을 내어 보냈다니 도리어 미안하다고 했다. 모두 나에게 혐의가 있는 것이지 형을 허물할 것이 없기에 다시 돌려 드리니 잘 받으시라고 했다. 자신이 마땅히 집에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해야 당연한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며 3~4개월 간 내로 꼭 찾아뵙고 방도를 도모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꼭 책임져 줄 사람이 있다는 말에 매우 기쁘다는 것, 먼저 실패하고 후에 성공하는 것이 맞으니 다시 제 뜻을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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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軫永 李寓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에 노진영이 이우로의 소작 간청에 답변한 내용의 서간. 1935년에 편지를 받자마자 제(弟) 노진영(盧軫永)이 이우로(李寓老)에게 소작문제에 답변한 내용으로 작성한 서간이다. 그리워하던 중에 편지를 받았다며 새해의 좋은 소식이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상대의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의 아버지가 근래 노증(老症)으로 6~7일간 좋지 않았다며 자식 된 도리로 걱정했던 것을 말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상대가 편지로 한 말이 매우 정성스러워 땀이 났다고 하고 이미 소작인이 정해졌음을 전하며 상대의 뜻에 따라주지 못한 것에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편지는 노진영이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편지가 들어있는 봉투는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보낸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소작을 간청하는 편지가 남아 있으므로 수신인이 이우로 임을 알 수 있다. 형태는 세로 점선이 그어 있는 규격 편지지 2장에 연속하여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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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이우로(李㝢老)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寓老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1월 23일,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1월 23일, 제(弟) 이우로(李寓老)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小作)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서로 사는 곳이 한 령(嶺)을 사이에 두고 있고, 해가 또 바뀌게 되었다며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여 매우 그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새해에 어른 모시고, 형님과 가족들 모두 평안한지 묻고, 자신은 이전 모습 그대로 지낸다고 했다. 주요내용은 자신이 풍문으로 소식을 듣자니 담양 수북면(水北面)의 형님 소유 토지가 소작인의 과실 때문에 금년도부터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고 했다던데 그것이 사실인지 묻고, 자신이 보내는 사람에게 소작을 부쳐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이번에 편지 들고 가는 고(高) 군의 아버지와 형은 수북면 개동리(開東里)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일찍부터 세계가 확실하다며 귀하의 소작지를 절실히 원하고 있었으니 그 형편을 참작하여 소작을 부처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추기에는 재작년 여름에 자신의 자식으로 인한 부분을 아직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살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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