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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啓寒床孤卧呻藝之際 卽拜寵翰 若將快脫病魔之網 感欣猶勝於藥餌之靈伏承猛寒比劇省餘體候連禧大庭筋力康健 兼且令允玉昆季 健乳日茁 何等貢賀萬萬處 正是病夫之精神颯爽也 弟一病支離 尙此沈痛 諸般添火中 尤所難堪者 惟貴鄕儒林事情也 大厦雖頹猉里一柱之中支 而瑞兄與貴兄 義同骨肉 勢若脣齒 若此事不早成免訴 恐被燎原之歎 弟雖病中已發書各處 原原致意 而只是王命 㫿手可決 則秘陳矜惻之情於俊相氏 糊塗却下 以証據不充分 則何難之有哉 盖燕賀堂上 魚戱鼎中 共是一類焚歎所在 幸須深算而迅運神籌若何 弟義當直走周旋 然病不餘力 且博採智見公然赴光 反逾增惡於朴邊 不是爲益 反爲害事云云 故在此另頌於渭隱丈矣 兄須乘暮往見 略頓一頂 似當有效矣 諒下必施切仰 舊歲迫紗 不無悵感 瑞兄之情 草草病毫姑閣不備 拜上候十九日夕 權弟命相拜謝【피봉】〈前面〉全南光山郡芝山面日谷里盧軫永氏宅急親展〈後面〉謹封 京城府社稷洞四六寓惟損謹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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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송계일(宋啓日)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宋啓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미년 송계일(宋啓日) 등이 향중(鄕中)의 여러 집에 모임 날짜를 통보하는 통문 계미년 송계일(宋啓日) 등 4인이 향중(鄕中)의 여러 집에 모임 날짜를 알리는 통문이다. 선박 3척이 아무 문제 없이 월경(越境)을 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소요된 비용은 모두 공전(公錢)인데 상납한 것은 유한하니, 다음 달 3일에 본소(本所)에 모여서 이 문제를 논의해보자는 것이 주요 안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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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보소(譜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譜所 新里門中 譜所 <押, 着名> 4.8×3.7 1개 (흑색, 직방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씨(張氏) 보소(譜所)에서 신리(新里)의 문중에게 단전(單錢)의 빠른 납부를 독촉하는 내용의 통문 신축년 3월 1일에 장씨의 족보 간행을 진행하는 보소(譜所)에서 신리(新里)의 문중에게 보내는 통문이다. 족보의 간행을 위해 단전(單錢)을 빨리 거두어 보내줄 것을 독촉하는 내용이다. 단전 납부 대상 명단을 보낸 지 며칠이 지났는데 시일을 끌면서 보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통문이 도착하는 즉시 단전을 보내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였다. 단전은 족보에 이름을 올릴 때 납부하는 돈으로 명하전(名下錢)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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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윤석호(尹奭浩)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尹奭浩 南原鄕校 □…□ (흑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2월 18일에 해남향교 교임 윤석호·박창렬 등 11인이 천만리의 10대손 천재청을 의례적으로 대우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에 답한 통문 1899년(광무 3) 2월 18일에 해남향교(海南鄕校) 교임(校任) 윤석호·박창렬(朴昌烈) 등 11인(人)이 천만리(千萬里, 1543~?)의 10대손 천재청(千載淸)을 의례적으로 대우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南原鄕校)에 답한 통문이다. 남원향교에서 보낸 통문 내용 중에 해남에서 타향살이하는 선비 천재청은 화산군(花山君) 천만리의 10대손이라고 하였다. 이에 해남향교 교임 윤석호와 박창렬 등은 천만리의 덕화(德化)를 칭송하며 해남에 묻혀 사는 천재청에 대해 등용되어야 할 인재를 빠뜨렸다는 탄식을 면치 못하여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어서 남원향교의 통문 내용에 따라 천재청을 맞이하여 그의 언행과 풍모를 보니 그 유래의 근원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온 지역을 깨우쳐서 이 충훈(忠勳)의 후예를 의례적으로 대우하는 폐단이 없도록 할 계획이니 헤아려 주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에 답하였다. 통문을 보낸 날짜 위에 '해남향교(海南鄕校)'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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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범재휴(范在烋)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范在烋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4월 1일, 생 범재휴가 노진영에게 모친의 기제를 맞아 물건을 보내며 전한 서간. 1929년 4월 1일, 생(生) 범재휴(范在烋)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모친의 기신(忌祭)이 돌아온다며 약간의 물건을 보내면서 인사를 전한 서간(書簡)이다. 뵙고 이별한 뒤로 어언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었다고 했다. 가물고 장마비가 내리는 초기에 상대와 가족들이 안녕한지 안부를 물었다. 생(生)인 자신은 곁에서 모시는 어른이 그럭저럭 여전하게 지내시어 다행이라고 하며 노진영의 어머니 기신(忌辰)이 다시 돌아오는데, 알면서도 헛되이 보낼 수 없다며 비록 아주 작은 것이지만 올리니 받아주기를 바라다고 했다. 나머지는 추후에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하며 편지를 마쳤다. 여기에서 올리는 물건이 무엇인지 추기나 단자(單子) 등을 동봉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범재휴는 지내리(池內里)에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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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노문영(盧文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文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4월 11일에 족제 노문영이 노진영에게 조씨와의 혼담 소식을 전한 서간. 1928년 4월 11일에 족제(族弟) 노문영(盧文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혼담(婚談) 등의 소식을 전한 서간(書簡)이다. 만나지 수일이 지났다며 최근 숙부님의 기력과 형님 그리고 일문 여러분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객지의 노정 중에 침식부분에서 족장(族丈) 대련(大蓮)씨의 후의를 입어 집과 다름없이 지낸다고 했다. 또 조씨(趙氏)와의 혼담(婚談)에 관한 일은 대련씨에게 긴히 부탁을 하여 수차례 직접 가서 그 기미를 상세히 살폈는데, 쾌히 승낙하고 거절할 의사가 없어 우선은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는 것, 일후에 일이 성사가 되던 되지 않던 간에 사실을 상세히 말씀드릴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부분에는 이달 18일을 혼일(婚日)로 정했는데 그날이 어그러질 듯하다고 말했다. 별지에는 조씨가에서 칭탁(稱托)하고 있는 조항을 4가지로 정리해서 적었다. 첫째는 신랑이 나이가 신부와 적당했으면 하는데 너무 높다는 것, 둘째는 조(趙) 처사(處士)는 무남일녀라서 집안일을 누구에게 부탁할 수 없다는 것, 셋째, 대도 항구 여자가 우귀(于歸)하는 경우에는 궁벽한 향촌에 머물 의사가 없다는 것, 넷째는 궁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의 여러 칭탁은 우선 놓아두고, 대련(大蓮) 족장의 말씀으로는 우선 기대할만하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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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박태경(朴泰慶)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泰慶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음력 3월 8일에 생 박태경이 노진영에게 약속한 지불금을 3주 안에 지급하겠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8년 음력 3월 8일에 생(生) 박태경(朴泰慶)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약속한 지불금을 3주 안에 지급하겠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최근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5일내로 꼭 뵈러 가려고 했으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가지 못하게 되었다며 죄송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나 3주일간에 꼭 납상(納上)하겠다며 용서해 달라고 하고 편지를 마쳤다. 세로줄이 있는 규격편지지를 이용하여 국한문혼용으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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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1월 6일에 봉산정사의 임언재 등 2명이 노종룡에게 사문의 주상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1월 6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임언재(任漹宰) 등 2명이 노종룡(盧鍾龍)에게 사문(師門) 주상(主喪)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새해의 안부 인사를 간단히 적은 후 곧바로 본론을 적었다. 사문(師門)의 주상(主喪)으로 집에서 모신 장자(長子) 대석(大錫)이 있으니 승중(承重)자가 복을 입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하며, 같은 문하에 원하는 말이 있는 있는 상황이라 서로가 뜻이 없지 않을 것이니 여러분이 잘 양해해 주시어 서로에게 뜻이 전해지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스승의 주상을 큰아들로 정하도록 해 달라는 내용으로 보인다. 별지(別紙)에는 사문(師門)의 6인 이름과 자(字), 호(號), 사는 곳의 이름이 적혀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2월 16일이다.'라고 부기(付記)해 놓아 이것을 작성한 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6인의 이름은 나종우(羅鍾宇), 임언재(任漹宰), 유병구(劉秉龜), 양효묵(梁孝黙), 김승곤(金勝坤), 이재춘(李載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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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3월 15일에 鳳山精舍의 高光璉 等 6名이 盧鍾龍에게 弦窩 高光善 문집 간행의 후원금을 부탁하는 내용의 서간. 1935년 3월 15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고광련(高光璉) 등 6명이 노종룡(盧鍾龍)에게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의 문집 간행 후원금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집에서 뵙고, 또 유회(儒會)에 왕림해 주신데 대해 감복하였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상대방과 아드님 등의 안부를 간단히 물었다. 주요 내용은 자신들의 간소(刊所) 경영 비용이 아껴 쓴다고 했자만 군색함이 심하다며 의연금을 보내주어 대사(大事)를 완수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하는 내용이다. 발신인은 고광련(高光璉), 임언재(任漹宰), 이재춘(李載春), 유병구(劉秉龜), 양효묵(梁孝黙), 윤경혁(尹璟赫) 등 6인이 열서(列書)되어 있다. 봉산정사는 현와 고광선이 제자들과 강학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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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양회택(梁會澤)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梁會澤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6월 27일, 제 양회택이 노진영에게 미맥 1석 20원을 빌려달라고 요청한 내용의 서간. 1935년 6월 27일, 제(弟) 양회택(梁會澤)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미맥(米麥) 1석 20원을 빌려달라고 요청한 내용의 서간이다. 늦더위에 어른 모시고 계신 상대방과 가족이 안녕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지난번 집에 돌아간 후 어머니께서 여전하시고 가족 모두 무탈하였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을 지난번 만났을 때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아 그냥 돌아왔다며 집안이 말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이번 봄에 동생이 분가하게 되었다며 보리 소작 몇 두락으로 거둔 것으로 나누어 가서는 7~8월을 생활하기 어렵다며 염치없지만 미맥(米麥) 1석 20원을 빌려주어 갈등을 면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시 발신자 양회택은 전남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元地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수신자 노진영은 광주군(光州郡) 대정정(大正町) 동복약방(同福藥房) 내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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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1.地燮君의 學校問題는 結局失敗되고마는 것이올시다. 期限인 今日, 學校에 探訪하여본 結果, ᄯᅩ 缺席者가 數日前붙어 登校되엿슴니다. 참으로 이것이 무슨 魔戱인지요. 이럿케 안이되는 일은 秉鉉出世後 처음이올시다. 참으로 未安하기도하고 다시 兄의ᄭᅴ 무슨 말노 말삼할수업슴니다. 中間世話役도 이제는 진이 ᄲᅡ저서 다시 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업고 弟는 兄과 그 中間에 處하야 더욱 兩方으로 未安하고罪悚하다는 말을 다 할 수 업슴니다. 容恕하시오. 弟는 弟의 全力을 다하여 三四个月을 이럿케 奮鬪하엿지만은 兄이 그ᄭᅡ지 엇지 諒解하겟슴닛까? 例条는 第一回四百円, 第二回百円, 第三回五十円, 合計五百五十円인대 第三回分은 景福条로 이것은 成不成間 消費된다는 것을 형의 諒解를 得한줄 思하고 그 餘外 五百円은 時方爲替로 反呈하오니 考領하시오. 弟二回分도 旣히 消費된 것이지만은 ᄭᅩᆨ 밋엇든 자리에 이와 같이 狼貝되고 보니 이것을 兄의ᄭᅴ 무엇이라고 말할 수도 업고 ᄯᅩ한 長期間活動上 自然消費를 누구보고 贖債하여달라할 수 업서서 弟와 中間사람이 各其五十円式 물어 놋는 것이올시다. 弟는 自作之孽이지만은 참으(제2장)로 兩方에 對하야 未安하고 罪悚한 것은 形言할 수 업슴니다. 깁피 恕諒하소서. 그리고 第三回分五十円에 對하여서도 兄의 命令이 게시면ᄯᅩ 弟가 卽時로 ᄭᅩᆺ 充補하여드리겟슴니다. 左右間 回 示하소서. 그리고地燮君 學事에 對하야는 他方面 어너 有力한 側에서 第二學期初에는絶對責任지겟다고 하는 사람이 잇다는 것을 弟가 前日 兄의ᄭᅴ 무신말 ᄭᅳᆺ태 얼는 한변 한 즉 잇지요? 그 方面에서는 時方도 ᄭᅩᆨ 責任지고 入學시킬수 있다고 壯談함니다. 弟로서는 그 말를 尋常히 듯지 안이한다고 하는 것보담 ᄯᅩ 絶對信任도 함니다. 그래나 世上事 都是運이라는대 너무도 놀내엿고 ᄯᅩ 다시 兄을 그時ᄭᅡ지 기다려 보자고 할 體面도 업서서 그만 이럿케 모든 것을 處理하고 마는 것이올시다. 容恕하시오. 三回分도 兄의 命令을기다리고 ᄯᅩ한 此書入 覽後 더욱 兄의 嚴責의 回喩를 바래나이다. 餘姑此, 不備上. 惟祝侍體安旺耳.五月十日 弟 安秉鉉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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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최상현(崔相鉉)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鉉 盧軫永 崔相鉉(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월 9일에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새해 안부를 전한 서간. 1927년 1월 9일에 소생(小生) 최상현(崔相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새해 안부를 전한 서간(書簡)이다. 국한문혼용으로 세로 줄이 그어진 편지지 1장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내용은 새해 이후로 잘 계심을 축하드린다는 것, 자신은 전과 같이 지내니 참으로 당신께서 생각해 주심을 깨닫는다는 것, 한번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쓸데없는 일들 때문에 자신의 미음을 이루지 못한다며 작은 편지지로 안부의 글을 올린다고 했다. 나머지는 훗날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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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최상현(崔相鉉)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월 14일, 생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그의 족인인 노광명을 귀하가 있는 쪽으로 가도록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8년 1월 14일에 생(生) 최상현(崔相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족인인 노광명(盧光明)을 귀하가 있는 쪽으로 가도록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새해 첫 달에 상대가 평안함을 알았다며 송축하는 마음 그지없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다고 전한 후 귀족(貴族)의 노광명(盧光明) 군을 귀변(貴邊)에 오도록 권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의논할 일이 있는 중이라서 자신이 만약 직접 청하면 불응(不應)할 수 있겠기에 이와 같이 편지로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이 편지는 1927년 1월 9일에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보낸 간찰과 합봉(合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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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노인택(盧仁澤)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仁澤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4월 25일, 족종 노인택 등 3명이 노종룡에게 노씨문중 선단 비용 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4월 25일, 족종(族從) 노인택(盧仁澤) 등 3명이 노종룡(盧鍾龍)에게 노씨문중 선단(先壇) 비용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봄에 만났던 뒤로 항상 그리웠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4월의 날씨에 상대가의 여러분들이 모두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족종등(族從等)'인 자신들은 별 탈 없이 똑같이 지낸다고 한 뒤 선단(先壇)을 의보(義補)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의연금으로 보조하는 자손이 되어 선조를 섬기는 일로 당연한 일이며, 자신들이 잔문(殘門)으로 많은 의연금을 모으는 일로 지난 3월의 행사에서 자신들의 가문 형편을 조사하여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고했다고 했다. 그런데 편지로 말씀해주신 2두락에 대한 값 120원(圓)을 언급하신 것은 무슨 까닭이냐고 묻고 60원으로 허락을 받았는데 20원은 너무 적다며 당신의 종문(宗門)에서 선출된 사람을 내보내 꼭 모두 돈을 모아 주기를 당부했다. 편지 봉투에 적힌 이름이 노영원(盧永源)인 것으로 보아 편지의 발기인은 여럿이나 작성자가 노영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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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김병주(金柄周)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柄周 盧軫永 金柄周神(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3월 4일, 죄제 김병주가 노진영에게 안부를 전하고 돈을 빌려 줄 것을 부탁한 내용의 서간. 1928년 3월 4일, 죄제(罪弟) 김병주(金柄周)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고 돈을 빌려 줄 것을 부탁한 내용의 서간(書簡)이다. 해가 지나도록 편지하지 못했다며 음력 2월의 날씨에 어버이 모시고 있는 상대와 여러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물었다. 자신은 지난 가을 엄친이 별세하신 뒤로 병에 걸렸다가 최근 겨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드릴 말씀은 매번 누를 끼친다며 그래서 편치 않은 마음이 막심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출입하지 못하던 중에 또 병마로 인해 곤란을 받았고, 저간에 정리하는 글의 건수(件數)가 적지 않아 다소간에 소비가 매우 긴급하게 되었다며 형의 높으신 우의로 자신의 아이 성환(星煥)에게 금50원을 모조로 주선하여 빌려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 윤달 2월 말일까지 마땅히 찾아뵙고 다 갚겠다며 꼭 은혜를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추신으로 작년 가을에 보낸 부고는 전해 보았느냐고 묻고 전기(前記)는 대략 말씀드렸는데, 모든 수에 다 전하지 못했다며 형이 가급적 주선을 해주어 보급(補給)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발신자 김병주는 광주군(光州郡) 평저리(坪底里)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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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盧軫永 氏 侍史親展.(피봉_뒷면)盧承鉉 拜上(簡紙)(제1장)1.拜復尊堂淸榮하심을 仰祝하옵나이다. 宗生은 無事學하고 地燮도 잘 通校하니 大幸千萬耳. 就地燮이는 城南, 景福(二高), 徽文, 新設할 中學校 等四校에 入學手續하기로 擔任先生과 約束하엿스나 實地受驗은 形便보아서 受驗함이 適宜할줄로 밋나이다. 一次安氏를 相逢할야고 하엿드니 意外로 兒患으로 一月三十日부터 入院中이여 相逢期를 延期하고잇습니다만 退院後 急速히 相逢하기로 宋先生과 相議하엿나이다. 故로 下諒하시압소셔.傳聞한즉 十四日頃에 上京하신다 하오니 其時欽永氏鑛山賣買件 委任狀을 取得하시와 上京하시엿스면 好機逸失치 아니하고 仲介에 成功하겟슴니다.(제2장)2.그리고 運動費에 對하야는 아즉 무엇이라고 上告하엿스면조흘지 未定이오나 確實予定이 슨 後 다시 通知하겟나이다.地燮 姊夫와도 相議하여 景福中學校에 連絡運動하도록 工作하엿드니 全然不當하다고 嚴言하드라고 하오니 公立은 此亦難問題이옵니다.徽文集中으로 進行하겟스나 유지될 것인지가 궁금하기 짝이업나이다. 怱怱, 이만 끝합니다.昭和十五年二月七日, 盧承鉉.盧軫永氏 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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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40년 2월 24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노진영 자손인 지섭의 학교 문제로 보낸 서간. 1940년 2월 24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자손인 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일전에 편지를 받고는 사방에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별로 신통한 곳이 없다는 것, 경복(景福)은 공립(公立)이기 때문에 절대 공평하게 처리한다고 하며 거절하였다는 것, 휘문중학교에 속히 연락하여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어찌 해야 할지 답주시기를 기다리겠다는 내용이다. 규격 편지지 1장을 이용하여 국한문혼용으로 작성하였다.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보낸 3편의 서간과 합봉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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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박장환(朴章煥)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章煥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10월 16일, 제 박장환이 노진영에게 그의 손자 혼례를 위해 혼처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41년 10월 16일, 제(弟) 박장환(朴章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손자 혼례를 위해 혼처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이번 달 초에 서울에서 이별한 후 지금까지 마음이 슬프다며 잘 돌아가셨는지 묻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요즈음 상대와 식구들의 안부가 어떠한지 물은 후 자신은 잔렬한 모습을 겨우 보존하고 있고, 아이들 별 탈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 내용은 상대가 자세히 물었던 중평리(中坪里) 김상완(金相完) 가벌(家閥)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말해주는 내용이다. 김상완은 면장을 지낸 김인수(金仁洙)의 종질(從侄)인 김상락(金相洛)의 재종(再從)이라며 그 집 규수는 정숙(貞淑)한 자태로 많이 배워서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니 형이 그 집과 혼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답변을 부탁하고 편지를 마쳤다. 발급자 박장환은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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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채준(盧埰晙)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埰晙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노채준(盧埰晙)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부친의 병세를 누군가에게 탐문하고 그 탐문한 치료법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10월 6일에 족생(族生) 노채준(盧埰晙)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국한문혼용 간찰로, 자신이 노진영 부친의 병세를 누군가에게 탐문하고 그 탐문한 치료법을 전하는 내용이다. 부친의 병세는 풍열(風熱)의 여독(餘毒)으로 폐풍(肺風)이 되어 화염(火炎)이 금(金)을 녹이기 때문이니, 금석(金石)의 재료로만 오로지 다스리게 되면 끝내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고, 노쇠한 상황에는 혈기가 부패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뼈마디도 마비가 오게 되니 노인의 치료법이 결코 아니라고 하였다. 내외를 순화(順和)시킬 수 있는 약재를 복용해야 한 달 안에 화(火)가 내려가고 풍(風)이 물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전하면서 한 집에 살았던 정분으로 충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귀하의 효성으로 헤아려달라고 하였다. 혹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신이 머물고 있는 녹동재(鹿洞齋)로 기별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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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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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1년 신영협(辛泳協) 등 20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泳協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9월에 신영협 등 20인이 노진영에게 반곡 조병의의 회갑 축하 시문을 투고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 1941년 9월, 신영협(辛泳協) 등 20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반곡(盤谷) 조병의(曺秉儀)의 회갑 축하 시문(詩文)을 투고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이다. 인사를 간단히 적고 곧바로 사문(斯文) 반곡(盤谷) 조병의(曹秉儀)씨는 타고난 성품이 매우 효성스럽고, 선대를 받들고 후생을 기르는데 진실로 공경스럽고 순수하고 독실하다며 향리에서 독효(篤孝)를 칭찬한다고 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색하지 않고 친절하고, 용감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주 알맞아서 남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힘써 구해주고, 친구가 힘든 상황이 되면 재물을 덜어 구제해 주는 등, 재물을 아끼지 않고, 물질보다 사람의 화합과 정을 우선하였다고 적었다. 이런 그가 음력 10월 2일이면 61세 초도(初度, 회갑)를 맞으니 우리들이 그 경사를 축하기 위해 여러분들이 시나 글을 지어 축하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시의 압운(押韻) 자는 장(長), 방(芳), 향(香), 상(觴), 향(鄕)이며, 투고 장소는 광주부(光州府) 학강정(鶴岡町) 66-3, 신영협(辛泳協)의 집이라고 했다. 발기인은 신영협을 필두로 조광호(曺光鎬), 오병남(吳秉南) 등 총 20인이다. 기름종이에 철필 인쇄하는 방식으로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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