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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노봉수(盧鳳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鳳壽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7년 종하(宗下) 노봉수(盧鳳壽)가 노종룡(盧鍾龍)에게 대동종안(大同宗案)을 수보하는 사안으로 보낸 간찰 사본 1937년 1월에 종하(宗下) 노봉수(盧鳳壽)가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대동종안(大同宗案)을 수보하는 것에 적극 찬동하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의 사본이다. 노봉수가 소해 노종룡에게 대동보(大同譜)를 만들어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물이 동서로 흘러가도 모두 근원은 하나이고, 나뭇가지가 남북으로 뻗어가도 모두 뿌리는 하나인 것처럼 사람도 같은 할아버지에서 시작되는 것은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노씨(盧氏)가 한번 바다를 건너고부터 전국 팔도에 흩어져 살고 있고 조종(祖宗)이 비록 백세나 먼 조상이라도 추모하는 정성이 없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옛말에 성(姓)은 조고(祖考)가 나온 바를 통괄하여 백세토록 변치 않는 것이고, 족(族)은 자손이 나뉜 바를 알아서 몇 세에 한 번씩 변하는 것이므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원을 알 수 있고 나뭇잎을 더듬으면 뿌리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초목(草木)과 금수(禽獸)와 충어(蟲魚)의 이름은 알면서 동종(同宗)의 사람을 몰라서야 되겠는가라고도 하였다. 노봉수는 아들아이를 통해 들었다고 하면서 선조를 받들고 어버이에게 효성스러운 노종룡의 성심을 추켜세웠다. 천년토록 대동보를 만들 겨를이 없이 우리 문호(門戶)가 우레가 열려서 양이 회복하는 때를 기다린 것은 하늘이 우리 종씨들로 하여금 먼 조상을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하는 정성을 잊지 않도록 한 것이라 하였다. 자신은 산수간의 거리가 멀고 노쇠한데다 병까지 얻어서 막중한 종안을 만드는데 나아가기 어려워 멀리서 한통의 편지로 대신한다고 마무리하였다. 노종룡의 자(字)는 치운(致雲), 호(號)는 소해(蘇海) 또는 농아(聾啞)이다. 본촌면 일곡리에 살았고,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며 《소해유고(蘇海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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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계해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에 안부를 전하고 자신이 상변(喪變)을 당한 심정을 전하고, 위장(慰狀)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 간찰 계해년 12월 6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에 보낸 간찰이다. 찾아뵙지 못해 몹시 그리웠다고 하고, 혹독했던 추위가 조금 풀렸는데 지내시는 생활은 편안하고 여러 식구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거듭해서 극변(極變)을 당하고보니 몹시 애통하고, 두 차례의 면례(緬禮)를 이제야 치렀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오직 다행인 것은 어머님의 건강이 손상이 없다는 점이지만, 자잘한 걱정거리가 계속 겹치기만 하니 답답하다고 하였다. 두 차례 보내준 서신을 전해서 받아보았고 무척 감사했다고 인사하면서 봄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한번 방문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오래 소식이 막혔다가 지난번 만났을 때 편안히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갑작스레 돌아오게 되어 마음이 울적하니 도리어 만나지 않느니만 못한 듯하다고 소회를 적으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면례는 무덤을 옮겨 다시 장례를 지내는 일로, 곧 이장(移葬)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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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病中承書 足以甦省感荷何等 靠審卽辰棣中震艮益復頥重 各致均慶 而惟以愛鸞之所咎 尙爾彌留 慰慮交臻 記下近以無何之症 伏抱呌囈 食飮全却 振作無期 私悶何達 第示事謹悉詳審症情 則乃是變動 而似有成效矣 幸勿過慮 如何如何紫香散劑中 已無靑皮 則代入陳皮白芥子各七分式準用 無妨 然其於速效之道 似不如靑皮耳 石藥近者又給於他人處餘存者不多矣 隨所存伴還試用如何 滚痰艸更勿停止 與石藥望服則尤好耳 鄙處多有見效者耳城堞其寺塔之久石原不如墻中年久者耳 以此諒之期於求用如何 石藥或有說之曰匪久服之材云 此是臆料者也 治病之法 病重則藥毒不爲肆害 且湯武之時不得已用兵具 勿爲生訝 期於多用爲好耳 正所謂多多益善耳 此等香散並用之於處暑之后 則香芎不入爲好耳 亦爲諒處之如何 餘委席手戰 倩不備上戊午七月八日夕 記下郭縉佑拜手(皮封)謹拜謝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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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김석례(金錫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禮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63_001 갑진년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안부를 묻고 서원 원장의 병세와 봄 향사 때 행공(行公)하겠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는 간찰 갑진년 8월 27일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서원 인편을 통해 보내준 서신을 받고 그동안 생활이 편안하시고 누이와 아이들도 무탈함을 알게 되어 무척 위로가 된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줄곧 일하면서 지내느라 말씀드릴만한 일은 없고 대소가에 큰 걱정거리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원장(院長)의 학질증세가 오래 낫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였고, 가을 향사(享祀) 때 가서 참여하지 못했지만 봄 향사 때에는 실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을 예전에 여러 차례 상의했던 것은 원비(院費) 때문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이 말한 것도 이와 같으므로 일이 매우 편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성부(聖夫) 형에게는 바빠서 따로 편지를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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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김석의(金錫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義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69_001 정해년에 김석의(金錫義)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누이가 남자아이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정해년 6월 18일에 김석의(金錫義)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여름 석 달이 다 지나가는데도 더위가 심한 요즘 매형의 생활은 편안하시고 식구들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들은 각기 목숨과 천한 모습을 보전하고 있다고 하고, 누이가 이번 달 6일 새벽닭이 세 번 울 때에 남자아이를 순산했고 별다른 증상이 없어 매우 다행이며, 곧바로 심부름꾼을 보내 알리려고 했는데 가뭄과 더위가 이와 같아 지금에서야 보내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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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鶴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학(鶴)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부탁한 것을 들어달라고 다시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신(辛)자 들어가는 해 12월 6일에 학(鶴)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제때에 뵙지 못하니 쌓이는 회포를 붓으로 다 적기 어렵다고 인사를 하고, 형의 아버님은 조섭에 심한 문제는 없고, 형님도 건강하고 편안하며 아드님도 공부 잘하고 있는지 두루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궁벽한 집에 앉아서 후회해도 어쩌지 못하는 탄식만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였다. 구체적으로 적지는 않아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부탁한 바를 잊지 않고 있는지,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물었다. 그리고 입으로 말하고 글로 부탁하는 것이 매우 염치없지만 형이 아니면 누구에게 하겠느냐며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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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아버지가 아들에게 식구들 안부를 전하는 간찰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나 이름이 없어 자세하지 않다. 아들 네가 슬하를 떠난 뒤로 소식이 없어 마음이 매우 울적하였는데 편지를 받고 보니 매우 위안이 되었고, 이후로 또 며칠이 지났는데 그사이 객지 생활은 무탈한지 묻고 멀리서 염려가 적지 않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고, 며느리와 손주 며느리도 모두 큰 탈 없으며, 증섭(曾燮) 남매도 잘 지내니 다행이라고 식구들 안부를 전하였다. 약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그 마음을 먼저 바르게 하고 또 정력을 수고롭지 않게 해서 조리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조제약은 분량이 많기도 하고 일수도 길어서 맛이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3분의 1을 덜어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족형(族兄)인 원오(元五)씨는 근래 편안하냐고 묻고, 바빠서 별도로 편지를 쓰지 못하니 대신 인사를 전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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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김병선(金秉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秉璿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에 김병선(金秉璿)이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면서 상주(尙州) 족인(族人)의 소송 진행 상황을 알리고 원임(院任)의 임명 등에 관해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임술년 8월 7일에 김병선(金秉璿)이 보낸 간찰이다. 먼저 보내준 편지를 받고 그동안 쌓인 그리운 회포가 조금 위로가 되었다고 인사하고, 요즘의 생활이 편안한지, 각 집안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친의 건강은 우선은 편안하신데 모친의 병이 점점 깊어져 온갖 약을 시험해보았지만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있어서 애가 탄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읍폐(邑鬧)로 인해 지난 6개월 동안 온통 소란스러워 밥 짓는 연기가 거의 끊어질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안정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였다. 상주(尙州)의 사간을 지낸 어른의 사안은 향란(鄕亂)으로 인해 아직 처결을 받지 못하여 비국(備局)에 정소(呈訴)하였는데도 사관(査官)을 정해서 속히 바로잡으라는 처분을 받지 못했다고 상황을 알렸다. 원임(院任)이 말한 내용은 잘 명심하고 있지만 일이 이런 상황이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였고, 구임(舊任)은 아직 사단(辭單)을 제출하지 않았으니 추후에 다시 도모해보라고 하였다. 올해 추향(秋享) 때에 원임이 체차되지 않으면 자신의 사종숙(四從叔) 조영(祖永) 씨가 이미 전에 말을 한 적이 있으므로 상대방이 원중(院中)에 망통(望通)을 해서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농사는 가뭄으로 인해 흉년을 면치 못할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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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임자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의 이생원(李生員) 댁에 아들의 혼인을 축하하고, 자신의 중제(仲弟)가 두풍(頭風)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과 올해 농사가 가뭄 재해로 겨우 흉년을 면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임자년 8월 11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의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간찰이다. 적조했던 중에 서신을 보내주어 위로가 되고 기뻤으며, 쌀쌀한 가을 날씨에 생활이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몹시 위안이 되었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여 다행이지만 중제(仲弟)가 두풍(頭風)으로 몇 달을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오른쪽 귀 아래 목 쪽으로 큰 종기가 생겨서 지금 침으로 터뜨리려고 하는 중이라 온 집안사람들이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방 아들이 혼인을 하게 된 것을 축하하였다. 그리고 올해 가뭄으로 인한 재해가 도처에서 발생하여 농사가 겨우 흉년을 면한 지경이라 답답하다고 하였다.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을는지 편지를 쓰려고 하니 서글프고 그립다고 하면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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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김석례(金錫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禮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63_001 임진년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妹兄)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동생 병세에 대해 소식을 전하며, 조카의 혼사에 대한 의견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임진년 9월 11일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인사하고 물러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 그동안 건강이 회복되었는지, 누이와 아이들 삼형제는 예전모습대로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사흘 밤을 묵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피곤이 쌓인 몰골을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가운데 동생의 병이 중간에 위태로웠다가 근래 조금 나았는데 아직 앞으로의 증세가 어떠할지 몰라서 걱정이 크다고 하였다. 저쪽 집에 이야기를 넣어보니 과연 다른 뜻이 없으니 얼른 사람을 보내 허락을 받아서 추워지기 전에 혼례를 성사시키면 어떠하냐고 의향을 물었다. 혼례는 매형의 아들 혼사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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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김석례(金錫禮)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禮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63_001 임진년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조카의 학질에 지네를 복용할 것을 권하고, 조카의 사주단자는 받아서 보냈다고 알리는 내용의 간찰 임진년 윤월 16일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동안 소식이 뜸했는데 이번에 인편을 통해 보내준 서신을 받고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하고, 서신을 통해 매형도 편안하고 누이도 아픈 데 없이 잘 지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였다. 다만 두 아이가 학질을 앓고 있어 걱정인데 이것은 갑작스레 떨어질 증세가 아니니 지네를 많이 복용하면 효험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복용을 권하였다. 사주단자는 매형이 말한 대로 받아서 보냈다고 하였고, 혼례는 추워지기 전에 택일을 하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의견을 말하고, 먼길을 왕래하는 것은 꺼려지므로 인편을 통해 종종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목화 13근을 보내니 누이에게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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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穌齋相國, 謫居珍島. 十九年冬, 則爲窘室, 以讀書於書, 無所不讀, 而偏讀論語及杜詩, 至二千周於柳文偏好非國語及爲丞相, 亦不廢讀書 性儉素且嗜酒, 喚侍婢冒夜寒點, 燈煖酒爲不安于心, 求佛寺點火蔓荊【俗名明可木】, 滋油挿之, 壁於寢房, 置銅爐, 酒缸銅斟, 夜長無眠, 則起取蔓荊, 自撥爐火, 一吹便燃燈自酌銅斟加爐上熱歠之, 抽架上書, 滿意讀之, 每一夜酒一甁, 書數十卷, 抵老死不輟, 年幾八十二終, 少時以玉堂封事, 被譴直聲, 動於士林, 及還朝作相建白無異事, 守愚堂崔永慶譏之曰, 盧相國之唾, 宜用于治腫, 盖治腫用未言, 前唾爲良故也.蘇齋嘗燕居有朴光前者, 自山寺, 而來蘇齋曰, 在山寺讀何書, 曰韓文讀幾筭曰五十, 筭所讀何其尠耶. 曰精心玩味, 是以遲也. 曰然則一一皆着於心, 無虛筭乎. 曰讀書之時一行十念, 雖收放念虛筭過半, 曰然是人人通有是患, 凡讀書放念而讀至千萬筭所讀, 雖不精終爲吾有,雖精心而讀之所讀只五十, 畢竟不爲吾有讀書之法. 太上多筭, 余因公事,謁西崖相國柳成龍, 西崖曰, 吾見子文章甚高, 讀何書相與畣問,余道蘇齋之言西崖曰, 大不然思者田心也. 讀書以心如耕田者寸尺起土也. 兩相國之言, 各有所得, 而余嘗試之收放心工夫之最難者,蘇齋之言近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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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이문량(李文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文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3월 4에 제 이문량이 노진영에게 관여하는 일에 차질이 생긴 사유 등을 전한 서간. 1927년 3월 4일에 제(弟) 이문량(李文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관여하는 일에 차질이 생긴 사유 등을 전한 서간(書簡)이다. 헤어진 뒤로 해가 바뀌었다며 당신을 향하는 마음이 깊다고 했다. 이때에 어버이 모시는 상대와 가족이 잘 지내시고, 원래 경영하던 일이 뜻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매년 나이를 먹는 것이 일이라며, 반백이 된 지금에 이뤄놓은 일이 없이 산 속 오두막에 칩거중이라고 했다. 또 새해 첫 달 20일간에 백리도 되지 ㅇ낳은 길을 떠났는데 5일이나 소비하여 다녀왔다는 것, 누에가 느리게 가듯이 했다는 것, 뜻밖에 독기(毒氣)가 생겨 그 통증으로 한달 남짓 자리에 누웠다가 이제야 겨우 뿌리를 뽑은 것을 말하며 이것이 나의 운수때문이냐고 한탄했다. 드릴 말씀은 자신이 관여하는 조항에 있어 서로 믿는 사이라 말이 없었지만 해를 넘기도록 미루니 투명하지가 않아서 이 무슨 세상에 쓸데없는 물건이냐며 죄송하고 민망하다고 했다. 이 조항을 밤낮으로 걱정했지만 형편이 실로 어렵기 때문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머지는 행보하시는 날을 기다려 즉시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한 후 편지를 마쳤다. 협지에는 긴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속히 뵙고 싶지만 행보가 아직 불가능하기 때문에 응낙하신다는 의사를 듣지 못한다며 이것을 별록(別錄)으로 상세히 고할 것이라며 귀하의 뜻이 어떠한지 물었다. 잠깐 굽어 돌보시면 좋을 듯 하다고 말하고, 자기 또한 이달 15일 내로 행보할 힘이 있을 듯 하다는 것, 혹시 한가한 날이 없으시면 이것(별록)으로 대신 토론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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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氏 殿▣展(피봉_뒷면)長城郡 南面 德星里李文亮(簡紙)奉別後, 於焉歲過, 懷仰政深矣. 謹惟伊來,侍體候旺安, 寶眷均迪, 元於所營, 如意前進否? 仰溯區區至祝. 弟 每年所得添齒一事, 半白光陰, 未成事業,蟄伏山廬, 消遣無從, 可悶可悶. 而又於新元念間, 以不百里之路, 半旬往還, 可謂緩行之繭處, 意外毒氣發生, 以痛症月餘委席, 今纔拔根, 姑未封皮, 是亦身數耶? 奈何.就悚, 所關条, 相信間無言之地, 拖年未淸, 是可謂此世之絶物, 何等悚悶哉.以此条, 晝宵爲慮, 然形便實難且難, 至此無信之境,恕 諒休咎敢望耳. 餘可待行步之日, 卽晋拜討.姑留不備, 謹上.丁卯三月四日, 弟 李文亮 拜上.(夾紙)緊有議及之事, 欲速晋拜爲意, 然行步未能, 故未遂應意. 玆以別錄詳告, 貴若何如, 則暫 枉顧似好似好耳. 然鄙亦今望內, 似可得行步之力矣. 未得暇日, 則以此對討, 亦無妨耳. 諒俟之亦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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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妻家宅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경진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처가(妻家) 댁에 아내상과 계수씨의 상을 위로하고, 자신과 가족들의 소식 등을 두루 전하면서 상대 쪽에서 한번 방문해주기를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경진년 2월 1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처가(妻家) 댁에 보낸 간찰이다. 가장 먼저 수신인의 아내상을 위로하면서 노년에 이런 애통한 일을 당해 어떻게 견디고 계시냐고 위로하였다. 부고를 받지 못하다가 평성(坪城)의 벗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아마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하였고, 또 계수씨(季嫂氏)의 상(喪)은 너무도 뜻밖이라 부음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였다. 봄추위에 정양하시는 체후는 편안하고 집안 식구들 모두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형 집안의 변고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과도 우의가 있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안 될 것 같아서 말을 하는 것이니, 모든 일들을 물 흐르듯 흘려보내고 잘 조처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년 들어 쇠약해진 모습이 더 심해졌고 작년 봄에 중병을 앓다가 다행히 죽음을 면하기는 했지만 서리 맞은 파리 꼴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매번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거리조차 멀어서 기약할 수 없으니 탄식만 할 뿐이라고 하였다. 또 형도 연로하기는 하지만 이 죽게 생긴 병든 벗을 생각해서 한 차례 오셔서 오래도록 막혔던 회포를 터놓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올해 정초에 어린 손자가 관례(冠禮)를 올렸고 새 사람의 범절이 매우 흡족해서 다행이며, 여러 식구들도 큰 탈이 없으니 이것 역시 다행이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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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言賢閤夫人喪事 夫復何言 仰想衰老之境 遭此叩盆之痛 撫舊悼今 何以堪遣 爲之悲念萬萬 便使積阻 竟未承訃 近因坪城友 果聞之則似有洪喬之歎矣令季嫂氏喪事 千萬夢外 承訃驚愕 不能已已 伏惟春寒靜養服體候連護晏重 閤下諸節 第次平善 並慰溸區區 實愜願聞之私 兄家家變 都不欲說志 而以我親愛舊誼 無言亦非情也 是是非非都付之水流雲空 善爲措處 千念萬仰 未知兄意之如何耳 弟近年以來衰狀益甚 而去年春 以無何之重病幾乎殊矣 以宜以藥 幸而免死 而可謂霜後蠅也 每欲一進攄懷 而身憂如右 未得遂意 山川夐越 合並無期 只切東南生長之歎 兄亦老矣 而勿較此將死之病友 一賜惠然 以攄積歲相阻之懷 則死而何恨 回念疇昔 慨歎無比 今正初穉孫冠首 而新人凡節極愜所望 幸私幸私 諸率姑無大頉 亦爲幸也 餘心眩 姑此不備謝候狀庚辰二月初一日 弟朴遠浩拜拜【피봉】〈前面〉謹拜謝候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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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이창호(李昌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昌浩 張文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해년 이창호(李昌浩)가 장문수(張文壽)에게 한번 방문해주기를 청하는 내용의 간찰 기해년 3월 말일에 이창호가 장문수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부모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지내는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고, 부모를 모시며 지내는 자신도 예전과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온화한 계절이 왔으니 한차례 방문하여 여러 달 쌓인 회포를 풀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근래 잘 지내는지 물으면서 자신이 바빠서 각자에게 따로 편지를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돌려서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말미에 덧붙였다. 자신을 정제(情弟)로, 수신자인 장문수를 아형(雅兄)이라고 썼는데, 정제는 다정한 벗에게 자신을 이르는 말이고 아형은 남자끼리 상대방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편지를 접어서 뒷면의 한쪽을 피봉처럼 사용하였다. 장문수의 주소는 신지도(薪智島) 금곡(金谷) 고상정(古上亭)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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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박보규(朴甫奎)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甫奎 張文垂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자년 박보규(朴甫奎)가 장문수(張文垂)에게 보낸 간찰 경자년 11월에 박보규가 신지도(薪智島)에 사는 장문수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겨울에 부모님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모든 것이 편안하며, 집안 식구들도 태평하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얼굴 본 지가 오래되어 무척 그리울 뿐 전할 만한 특별한 일은 없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상대방의 겨울철 석달[三冬] 공부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들었는데 자신은 졸렬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답답하다는 심경을 전하였다. 박보규의 다른 이름은 치은(致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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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秋陽大舅主外內分 哀體候奉筵安支하옵시며 聘母主氣力萬支하옵시고 令胤諸君次第善長하며 令抱地燮君聲息에 安故하는지 伏慕且祝이로소이다 孫婿는 客狀眠食이 無恙하오며 學業專攻하오니 放念伏望하나이다.氣候의 變遷에 森羅萬象의 色이 變轉萬化하옴은 自然의鐵則이오나 鄕土에 晩秋譜想像하기에 繁多하며 異域에農村光景을 目擊할 際는 더욱 秋收期의 朝鮮을 聯想함니다. 時代의 變轉萬化도 臆測의 限이아니며 新聞報道上으로 周知하심과갗이 學校令이 臨戰体制에 卽應하야大學高專年限期를 六箇月短縮하여 明年度부터 九月에 卒業이며 今年에 限하여는 從來方針에 依하야 十二月에 卒業하니 今年卒業班의負擔 社會의期待는 如何케될는지 時의 話題이옴니다. 秋冷이 緊하야사온듸 支安하심伏祝하오며 餘不備伏惟孫婿 金驥秀上書【피봉】〈前面〉朝鮮全南光州府大正町一一二▣地燮宅入納〈後面〉東京市杉並區高円寺三ノ二五九 住好莊金驥秀拜上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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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상(權命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權命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권명상(權命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광주지역 유림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보내는 간찰 모년 모월 19일에 경성부(京城府) 사직동(社稷洞)에 머물고 있는 권명상(權命相)이 전남 광산군 지산면 일곡리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병상에서 신음하던 차에 보내준 편지를 받으니 병마에서 훌훌 벗어난 것만 같아 매우 기뻤다고 인사하고, 추위가 매서운 요즘에 부모님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좋고 어르신 기력도 강건하며, 아드님과 형제분들도 모두 잘 지낸다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며 두루두루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자신은 병이 들었는데 계속 낫지 않아 침통한데다 여러 가지 울화가 솟는 중에 상대방 지역의 유림(儒林)들 사정 때문에 더욱 감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큰집이 비록 기둥 가운데가 무너졌더라도 서형(瑞兄)은 형과 의리상 골육과 같고 형세는 입술과 이처럼 밀접한 관계이니, 이 일이 일찍 성사되어 소송을 면하지 못한다면, 무서운 기세로 혼란해질까 염려된다고 하였다. 자신이 병중에 있지만 각처에 서신을 보내 뜻을 알렸다고 하였고, 준상(俊相)씨에게도 안타까운 사정을 비밀리에 말해서 증거 불충분으로 모호하게 얼버무려 각하시켰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냐고 하였다. 대개 제비가 장막 위에 둥지를 틀고 물고기가 끓는 솥 속에서 노니는 것은 모두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는 측면에서는 같으니, 모쪼록 깊이 생각해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자신이 의리상 곧장 가서 주선하면 좋겠지만 병 때문에 여력이 없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또 의견을 모아보니 공연히 광주로 갔다가 도리어 박씨(朴氏) 측에 미움을 사게 된다면 이로움도 없이 도리어 해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위은장(渭隱丈)에게 별도로 말을 했으니 상대방이 저물녘에 찾아가서 만나면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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