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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박자신(朴子新)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子新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2월 27일에 박자신이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2월 27일, 생(生) 박자신(朴子新)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소식은 때때로 들을 수 있지만 서로 만나는 것이 적조하여 쌓인 회포가 많다고 인사하며 연말에 상대의 아버지, 상대 분 및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집에서 칩거하며 못난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작년에 부탁했던 소작할 논에 대해 언급하며 이웃에게서 누군가 일본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 사람이 짓던 소작을 누구에게 부칠 것이냐고 물으며 이쪽 구역 대리점에 주어서 십수명의 사람들이 생활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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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1월 18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노진영 자손의 학교 수속 문제로 보낸 서간. 11월 18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자손의 학교 수속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경성공립공업전수학교(京城公立工業專修學校)가 찍힌 세로줄 인찰지 1장을 이용하여 펜으로 작성하였다. 노진영의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은 11월 1일부터 무사 통근 중이라고 했다. 경성공립공업전수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내용은 동봉하여 보낸 성적기입표에 기록을 하여 지섭(地燮) 편에 보내어 담임선생께 전하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성적기입은 형식적으로 사무에만 사용하는 것이니 담임인 송(宋) 선생께 극비리로 취급해 달라고 특별해 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주(光州)에 있는 학교에 가서 중5학년 성적을 기입해 달라고 부탁하여 일자 내로 도착되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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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鳳山精舍(흑색, 4.5×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3월 23일, 봉산정사의 고선주 등 3인이 노진영에게 봉산정사의 재실 중수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4월 5일에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 1941년 3월 23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고선주(高善柱) 등 3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봉산정사의 재실 중수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4월 5일에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이다. 간단히 상대의 상중 안부를 물은 후 본론을 시작했다. 봉산(鳳山)의 지붕을 묶고, 재실을 중수하는 일에 대하여 이미 하기로 결정한 일인데, 까닭 없이 미루어서는 안된다며 작년 9월에 한번 모였으나 일을 진해하기 어려웠고, 음력 4월 보름 내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며 정확히 4월 5일에 봉산(鳳山)에 왕림해 주시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작성년 부분에 '봉산정사(鳳山精舍)'라는 도장을 붉은색 인주로 찍었고, 발신자로 고선주(高善柱), 유병구(劉秉龜), 윤경혁(尹璟赫) 3인의 이름을 적었다. 추신에는 만약 비가 오면 15일로 연기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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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안병현(安秉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9 安秉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5월 10일, 제 안병현이 노진영에게 그의 손자 노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안함을 전하고 공작금 일부를 돌려주며 쓴 사과 서간. 1939년 5월 10일, 제(弟) 안병현(安秉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손자 노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안함을 전하고 공작금 일부를 돌려주며 쓴 사과 편지이다. 입학 기한이 끝나는 오늘까지 결국 이루어지지 않자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다며 이러한 일은 자신이 태어난 후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탄하며 미안함을 전했다. 자신은 3개월 간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며 제1회 400엔, 제2회 100엔, 제3회 50엔, 합계 550엔 중 제3회분은 되든 안 되든 들어가는 돈으로 양해를 구한 것이니 제하고 나머지 500엔을 돌려준다고 했다. 지섭의 학교 일은 제2학기 초에는 반드시 책임지고 성사할 사람이 있음을 전하며, 세상일은 어찌 될 줄 모르기 때문에 일을 종료하기 위해 처리한다고 했다. 후반에는 3회분도 형의 명령이 있다면 보충해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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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양회택(梁會澤)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梁會澤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에 양회택이 노진영에게 안부 등을 전한 서간. 1938년에 양회택(梁會澤)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 등을 전한 서간이다. 발급일자와 작성자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피봉을 통해 양회득이 작성한 편지임을 추측하였다. 요즈음 그리움이 평소의 배나 된다며 최근 아버님과 상대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현재 장성군 김용식(金龍植) 씨의 집에서 머물며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집이 아닌 곳이지만 그럭저럭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우선 드릴 말씀은 자신이 올 들어 경영하는 일이 많고, 내일은 형의 족속인 영수(永洙) 씨와 좋은 땅을 돌며 어느 곳 어느 산을 점지할지 세 곳 정도 정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다만 시국의 상황으로 볼 때 시간이 금새 흐를까 걱정되므로 정신을 차리고 일이 낭패에 이르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전에 보냈던 것은 한 번의 웃음에 부쳐 버리고 다시 한 번 만나기를 바란다며 상대의 생각이 어떠한지 물었다. 편지의 내용은 여기에서 끊기며, 같은 면에 펜글씨로 적힌 작은 글자는 별도의 편지로 여정(旅程) 중인 상대의 안부를 묻고 상대가 근래에 가산(佳山)과 여수(驪水)를 살펴보시던데 몇 곳을 점지(占地) 했는지 묻는 내용이다. 자신은 근래 종사(宗事)를 경영하느라 산수(山水)가 있는 곳에 도착해 있다고 하며, 언제 또 상대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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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우영(金雨英) 서간초(書簡草)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雨英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50_001 1935년 노진영이 김우영에게 보낸 서간의 초본. 1935년 생(生) 모(某)가 김우영(金雨英)에게 보낸 서간의 초안본이다. 본 편지는 김우영(金雨英)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내온 1935년 3월 27일자 서간과 한 봉투에 들어 있었으므로 시기상 당시 노진영이 김우영에게 답장을 쓰기 위해 작성한 편지로 보인다. 내용은 정사를 돌보고 있는 상대에게 3월의 안부를 묻고 자신[生]은 집안 노인이 평안하시어 다행이라고 인사한 후 상대방의 종씨(從氏)가 경영하는 일이 진실로 활발하게 널리 은혜를 펴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 말을 누가 따르지 않겠느냐며, 자신의 알선이 도리어 병통이 될 것이라며 겸양하면서도 관청에 들어가는 때에 잘 말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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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全南 光州府 大正町 一一二,盧軫永 氏 回鑒(피봉_뒷면)京城府 內需町 七0.ノ七七安秉鉉謹.(簡紙)歲葉旣未修謝, 荐奉垂問, 感悚之私, 實難自裁焦. 謹審徂玆大寒益肆其威,大庭壽韻益享難老,侍餘靜候連護, 寶節均裕, 何等慰喜滿萬. 弟寓味一直辛酸, 無足煩溷, 而惟以鄕候之間間承安, 餘累之免警爲幸耳. 賢彧衝寒回京, 而小無困憊之狀, 伊後逐日登校, 孜孜勤勉,漸進竿步, 可知其平日家庭之敎,已宿於趍過之時, 何待如我者之謹飭督勵乎, 良賀良賀. 兩奇雅亦善做, 以是 下諒, 如何如何. 在挾留. 姑此不備謝上.戊之至月晦日, 第 安秉鉉 拜拜.(別紙)俯囑轉學一事는 前於面晤時에 未能相陳其事情者, 盖因近來學界風紀가 頹靡極甚, 有浮於韓末科試之時. 此等內容을 粗知體面者不可洩漏曝露故也.貴地想不無厥弊, 而至若京師則其弊可謂公行. 兄亦必稔悉矣. 今承書,喩自上■(京)〔司〕囑託, 尤非可能之事. 雖得其便, 此不過於反撥, 其當務之憾情, 故左査右探僅得一路於第二高普. 然有兩個難如何, 玆以記呈于左, 兄須滲諒處之, 如何如何. 以愚意論之 賢彧之現籍某校, 不必多轉也. 學科則豈非無公私之別者乎. 期欲多籍이어든 以陽今月二十七日內一賜枉顧面議, 如何如何. 若過右日, 則事無及矣. 滲諒切企切企耳.一. 府內轉學은 絶對禁則也. 故不得已新學期第一年生試驗을 經하여야될 것.二. 校長及算術, 囯語, 身体檢査等,各當務者의ᄭᅴ 充分한 交涉이 有하여야 될 것.已上諸件에 對하야 兄意以爲如何. 若欲强行此事, 則費容이 小不下四百餘円也. 地方之遊學於京中者, 擧行此等手段, 至費有一二千円者, 故此弊가 儼成慣例, 而每年益甚, 良覺寒心耳. 兄其滲量하야 不入於俗流, 似好似好耳. 覽後卽火燒, 切仰切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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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박하청(朴夏淸) 등 6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夏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9_001 1935년 6월 6일에 박하청 등 6명이 노진영에게 영화재 수행안 개정 담당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서간. 1935년 6월 6일, 박하청(朴夏淸) 등 6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영화재(永和齋) 수행안 개정 담당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서간이다. 가물고 더운 지금의 상대 안부를 간단히 물었다. 주요 내용은 본향(本鄕, 光州를 가리킴)의 이번 수행안(隨行案)을 개정(改整)하는 일에 귀하의 이름이 향의(鄕議)의 일치로 선출되었다며 오는 10일에 소촌(素村) 박씨영당(朴氏影堂)에 왕림하시어 함께 관광(觀光)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발신자의 이름은 박하청(朴夏淸), 기종섭(奇琮燮), 유영선(柳永善), 고광우(高光雨), 최종우(崔鍾宇), 이계만(李啓萬)이다. 작성자의 실수로 고광우(高光雨)의 이름을 두 번 쓴 것이 특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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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紙)(제1장)1.拜啓. 其間侍餘尊体候萬康하시오며 渾眷이 均安하시온지 遠外仰溯區區且祝. 宗生 無事通勤, 而漸快하오니 大幸千萬耳. 就仰托事, 下光後 特히 建康에 留意하면서每日規則的生活을 繼續하도록 下念하시압.每食前二時間쯤의 工夫 卽朝飯前二時間쯤은 每日國語 讀書, 晝食(点心)前二時間쯤은 每日書取와 作文創作練習讀書. 夕飯前二時間쯤은 學校規程의 宿題에 全力하도록 하시압.夕飯後(一時間後) 十時까지는 作文受驗準備書의硏究暗誦, 國語의 意味硏究 等에 全心全力하도록 하시요.以上每日의 日課을 忠實히 實行하며는 建康도 增進할것이요. 工夫에 滋味도 增進할 것이옵니다.그리고 晝間休息時間에는 되도록 山野步行散策하야 新鮮空氣를 呼吸하도록 하시압.(제2장)2.上京時에 말심한 鑛山件에 對하야 休暇을 利用하야活動하여 보앗스면 하옵는대 如何히 進行하면 조흘지 鞭撻을 仰望합나이다.徽文側의 運動等 休暇을 利用하야 連絡하여 보겟습니다. 宋君에게도 數次付託하엿는대 漸漸安樣과 相謀하는 模樣이든군요. 此亦休中에 規定을 낼 生覺이옵니다.時勢에 맛는 運動을 計畫中이오니 安心하시압. 結果에 對하서는 後日에 上信하기로 하압고 餘不備하고 끝합나이다.昭和十四年十二月二十五日, 盧承鉉 拜上.盧軫永 氏 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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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40년 2월 7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그의 자손인 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1940년 2월 7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자손인 지섭(地燮)의 중학교 입학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대의 안부를 간단히 물은 뒤 자신은 무사히 공부하고 지섭이도 무사히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고 안부를 전했다. 주요 내용은 지섭이가 성남(城南), 경복(景福, 2校), 휘문(徽文), 신설할 중학교 등 네 곳의 학교에 입학수속하기로 담임선생과 약속하였고, 실제 시험을 보는 것은 형편 보아서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는 것, 안씨(安氏, 安秉鉉)를 만나 상의하는 일은 차질이 있어 후에 만나기로 했다는 것, 14일 경에 서울에 올라오신다고 하는데 그때 흠영(欽永) 씨의 광산 매매 건에 관한 위임장을 얻어서 올라오십사 하는 당부의 내용이다. 운동비에 대하여서는 아직 미정이라 정확히 결정된 뒤에 말씀드리겠다고 전했다. 공립(公立)의 경우 운동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는 것, 우선은 휘문(徽文) 중학교로 집중해서 진행해 보겠다는 등의 내용을 적었다. 규격 편지지 2장을 이용하여 국한문혼용으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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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곽진우(郭縉佑)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郭縉佑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오년에 곽진우(郭縉佑)가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약재를 쓰는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전하는 내용의 간찰 무오년 7월 8일에 곽진우(郭縉佑)가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병을 앓고 있는 중에 편지를 받고 보니 병이 낫는 듯이 반가웠다고 인사하고, 상대방의 생활은 편안하고 식구들도 잘 지내지만 자제의 병이 아직 낫지 않는다고 하니 위안과 염려가 교차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래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며 털고 일어날 기약이 없어 답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인지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이 말한 증상은 효험이 있는듯하니 지나친 염려는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향산(紫香散)을 조제하는 가운데 청피(靑皮)가 없으니 대신 진피(陳皮)와 백개자(白芥子)를 각각 7푼씩 넣어서 써도 무방하지만 빠르게 효험을 보는 방도는 청피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석약(石藥)은 근자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남은 것이 많지 않지만 있는 대로 보내니 시험 삼아 복용해보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곤담초(滚痰艸)는 정지하지 말고 석약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더 좋고, 자신이 있는 곳에 이렇게 해서 효험을 본 사람이 많다고 하였다. 석약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오래 복용하지 않는 약재라고 하는데 이것은 억측일 뿐이라고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병이 위중하면 약의 독도 해를 끼치지 못하므로 의심하지 말고 많이 써도 좋으니 이른바 다다익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여러 약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전하면서 나머지 이야기는 병중이라 손이 떨려서 그만 마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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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ᄅᆡ뵈온지가 발서 여러날이 되엿슴니다 그동안 問候도 살피기兼하야 다시한번 가서 뵈얼야고 하엿으나 애러가지 事情에 ᄯᅡ라서 마음되로 못하엿사오니 넓이 諒恕하심을 비나이다. 그런ᄃᆡ그동안 日氣가 和暢하온ᄃᆡ侍中體度氣후健康하시오며 大小諸宅도 均一히 安寧하신지오 아울너 늘祝禱하나이다. 저는 省率이 如前하오니 多幸으로 思하나이다. 그런ᄃᆡ 日前의 相議事件에 對하야는 未安한 말삼이오나 그동안에 잇어서 엇더케 思量하시는지오 아ᄅᆡ에마즘春丈ᄭᅦ서 안게신다 하옵기에 여러가지 具体的 仔詳한 말삼은드리지 못하엿음니다만은 事實上 今番의 形便이 퍽이나 難處함니다 方今耕農準備가 紛忙하는 이ᄯᆡ에 아모準備와 周旋이업서 赤手空拳그ᄃᆡ로 안저서 農作時期를 맛게되오니 이러한 ᄯᅡᆨ한形便이 어듸ᄯᅩ잇슬가요. 이러한 말삼을 들으실ᄯᆡ에 ᄯᅩ 엇더한生覺을 가지실는지도 몰으겟음니다만은 實로 저는親愛하는 處地에서 허물업시드리는 말삼임니다. 日前의 말삼애對하야 春府丈과의 協議가 엇지되신지는 알수가 업슴니다만은 이것이아로신바와갓치 農作準備애 要用코저한 것임으로 저도ᄯᅩ한 返償하는ᄃᆡ애도 多少라도 等閒한 生覺은 업겟사오니 넓이諒察하시와惠澤으로써 今年農作上支障이업게하여주심을 切切히 바람니다. 그런ᄃᆡ 或엇더한處地애 ᄯᅡ라서 現金 그것이 마음ᄃᆡ로 準備가어려우시다면 더욱未安한 말삼이오나 第一緊急한 것이 무엇보다도 苗代種子이오니 色租라도 二石만은 決코 借惠하여야 耕農을하게될 모양임니다. 만일 그리안되신다하면 事實上 저의今年農作은 千萬夢外의 事가 되겟사오니 特히下諒하시와 同情하신다는厚意를 가지시고 誠意ᄃᆡ로 應하야주시면 저도ᄯᅩ한 다른것보다도誠意로 返償하여 드리겟음니다. 弱者를 扶助하야주시는것도 ᄯᅩ한社會事業家가안인가오 나머지 말삼은 가는便애 付托하옵고다맛侍候來來健康하심을바람니다三月二十七日 尙鏞拜【피봉】〈前面〉日谷盧軫永氏省執回納〈後面〉錦溪謹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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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섭(盧地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地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노지섭(盧地燮)이 광주의 본가에 있는 조부(祖父) 노진영(盧軫永)에게 본가로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노지섭(盧地燮)이 광주의 본가에 있는 조부(祖父)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로, 원고지에 국한문혼용으로 작성되었다. 조부께서 증조부(曾祖父)의 망종생신(忘終生辰)에 내려오라고 한 것에 대한 답장이다. 그날 가서 뵐 예정이었지만 그날이 방학 날짜와 겹쳐서 그만두기로 하였다고 하고, 가서 뵙는 것이 도리상 예의계지만 가보지 않아도 관계가 없거니와 실은 형식에 지나지 않으니 마음으로 멀리서 절 올리는 것과 정식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3일은 방학이니 3일 밤차로 상경하면 돌아오는 날이 그 이튿날이 되므로 결석까지 하면서 가는 것은 영혼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본가로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을 공손하게 말씀드리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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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金驥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驥秀 盧地燮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김기수(金驥秀)가 처조부인 노지섭(盧地燮)에게 일본 유학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간찰 손서(孫婿) 김기수(金驥秀)가 처조부인 노지섭(盧地燮)에게 일본 유학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간찰이다. 내용과 피봉에 날짜 표기가 없어 연도는 미상이다. 김기수는 일본 동경에 유학중이고 처조부 노지섭은 광주에 살고 있다. 처조부 내외의 안부와 빙모(聘母)의 기력은 좋으며, 처남들도 잘 크고 있고 자신의 소식에 안도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객지에서 무탈하게 지내고 있고 학업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계시라고 하였고, 타국에서 농촌 풍경을 보면 추수기에 접어들었을 조선의 고향이 연상된다고 하였다. 신문에 보도되어 알고 계시겠지만, 학교령(學校令)이 전시체제(戰時體制)로 들어가서 대학과 고등전문학교의 연한을 6개월 단축해서 내년부터 9월에 졸업이고, 올해에 한해서는 종래의 방침대로 12월에 졸업하므로 금년 졸업반의 부담과 사회의 기대가 어떠할지에 대한 것이 요즘의 화제라고 전하였다. 가을 날씨가 점차 싸늘해지므로 건강을 잘 보전하시기를 당부하며 편지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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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이승국(李承國)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承國 盧軫永 承國(타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91_001 1940년 5월 8일, 손제 이승국이 노진영에게 자신이 객지에서 빚진 돈 40원을 급히 빌려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40년 5월 8일, 손제(損弟) 이승국(李承國)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이 객지에서 빚진 돈 40원을 급히 빌려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이다. 자신이 지난달에 보낸 편지를 읽어 보셨는지 묻는 내용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한창인 봄날에 형과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이 염치가 없지만 전날에 부탁했던 40원이 마련되었는지 물으며, 형의 살핌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있고, 자신이 있는 곳의 인심은 매우 좋지 않아 매끼마다 식대를 독촉받고 있으며, 어제는 결국 밤에 여관주인과 크게 다투고 한밤중에 거리를 방황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형의 돌봐줌이 두텁기에 자신을 물과 불의 어려움에서 구제해 줄 것을 청했다. 40원을 급해 전보로 보내주면 자신의 객지생활의 군색함이 우선은 풀릴 것이라는 것, 수개월 뒤에 꼭 갚겠다고 했다. 답변을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편지를 마쳤다. 봉투에는 '매우 급하며, 형이 직접 받으시라[至急親展]'는 글귀가 적혀 있다. 본 편지는 후대에 정리당시, 하나의 편지봉투에 동년 5월 15일에 작성한 편지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편지봉투에 써 있는 이승국의 주소는 '목포시 남교동 84, 대화여관(大和旅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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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 大兄至急親展.(피봉_뒷면)木浦府 南橋洞 八四, 大和旅館 李承國五月八日椷.(簡紙)月前付上一書矣. 無滯入 照否. 伏請春殷堂上壽体候連護万重,省餘硏体承欽, 寶覃均慶否, 仰㴑區區且祝. 損弟 客狀無衝, 是爲安乎. 就悚前日仰托四拾圓請金, 可謂極度沒廉者, 而弟若非星火之困難, 安敢如是乎. 又若非吾兄之眷愛, 又安敢如是乎. 此處人心, 極是苛劇, 夕飯則督夕債, 朝飯則督朝債. 昨日夜半與達城旅館主人大爲爭鬨, 深夜出門, 方今道路彷徨, 時刻難保, 此將奈何奈何.兄乎兄乎, 旣是愛我之厚也. 以 兄厚德, 濟人於水火之中, 則當非愛人以德之至乎. 弟之形便, 千里客地, 無依無靠, 不得已冒㱰 仰請於吾兄, 兄乎援我救我否. 雖百難中 四拾圓金至急, 電報付送, 俾免客地大窘迫之地, 則如前書所言, 數個月後卽斷仰報矣. 兄乎兄乎.勿泛勿泛. 千萬切祝切祝. 餘方立俟回音之好德. 心煩意亂, 不能備禮.十五年 五月 八日, 損弟 李承國 拜上.[圓形朱印: 承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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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1년 김기태(金基泰)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基泰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음력 12월 10일, 김기태가 노진영에게 자신의 아들 학교 입학 일과 관련한 계기로 한번 찾아뵙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내용의 서간. 1941년 음력 12월 10일, 죄생(罪生) 김기태(金基泰)가 자신의 아들 학교 입학 일과 관련한 계기로 한번 찾아뵙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내용의 서간이다. 인사하고 헤어진 뒤로 달이 넘어갔다며 현재 그리운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지금 어른을 모시고 지내는 상대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자신은 집안이 무고(無故)하다고 인사했다. 주요 내용은 지난달 자신의 자식 학교 입학 일로 부탁한 일로 최근 한번 다녀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범학교통학에는 재산증명이 별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에 가지 않았는데, 며칠 뒤에 한번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곧 말씀드리겠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김기태는 화순군(和順郡) 이서면(二西面) 야사리(野沙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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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동(金判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判童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에 외종제(外從弟)인 김판동(金判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쓴 간찰 모년 7월 14일에 외종제(外從弟)인 김판동(金判童)이 외종형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고모부의 생활이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약간의 정표로 물건을 보내니 받아달라고 하였다. 보낸 물건이 무엇인지는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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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옥(盧京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京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족질(族侄) 노경옥(盧京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절효공(節孝公)의 정려답(旌閭畓) 매입과 관련하여 쓴 간찰 모년 9월 23일에 족질(族侄) 노경옥(盧京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나서 자신은 여행하다가 귀가하는 중이라고 근황을 알렸다. 지난번에 약속했던 절효공(節孝公)의 정려답(旌閭畓)은 석중씨와 석정씨에게 승낙을 받았고, 며칠 사이에 석정씨가 광주 쪽으로 길을 나선다고 하니 그때에 문장(門長)에게 말해서 지한면(池漢面) 홍림리(洪林里)의 김양오(金良五)에게 수표를 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최씨의 말을 들어보니 정려답을 저쪽 집에서 매도하려는 토지 가운데 추가로 넣었다고 하므로 이때가 매우 적당하다고 덧붙였다. 절효공은 노준공(盧俊恭 1340~1397)의 시호이다. 노준공의 호는 심계(心溪)이고 본관은 광주이다. 고려 말 밀직사를 지낸 사청(士淸)의 아들이고,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기개가 높았으며 학문에 열중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된 인물이다. 고려 우왕 때 상례제도가 폐지되어 모두 백일 동안 복을 입고 벗는데 노준공은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고, 이때 호랑이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호위하며 따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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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노인규(盧仁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仁圭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10월 24일, 종하생 노인규가 노진영에게 대동종안 창간을 위한 인허가 문제를 묻고 부탁받은 고추를 사지 못한 상황을 전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41년 10월 24일, 종하생(宗下生) 노인규(盧仁圭)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대동종안(大同宗案) 창간을 위한 인허가 문제를 묻고 부탁받은 고추를 사지 못한 상황을 전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음력 8월에 헤어지고 얼음 어는 때가 되었다며 음력10월에 어머니 상중인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종하생(宗下生)인 자신은 어른이 그럭저럭 지내신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내용은 우리집안의 대동종안(大同宗案)의 일은 막중하고 거창한 일이라는 것, 요즘 인허(認許) 받기가 어려운 것은 대략 알 것이라며 이 때문에 고민인데, 근래에는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땅히 직접 가서 문후 인사드리고 일의 진행을 살펴봐야 할 것인데, 자신이 여러 일에 얽매여 있어 그러지 못했다며 민망하다고 했다. 상대가 부탁했던 고초(苦草: 고추)는 가격이 너무 올라서 아직 사지 못해 미안해하다고 말하고 편지를 마쳤다. 난외에는 추신으로 동계(東溪)·병재(秉齋) 두 어른과 시명(是鳴), 춘강(春岡), 두영(斗永) 여러 분들에게 각각 편지 하지 못한다며 자신의 마음을 말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또 오헌(梧軒) 김(金) 어른의 수연에 초대하는 편지가 소해정(蘇海亭)에서 발송되었던데 지금 주소를 잘 모르겠으니 답장편지와 수연 축하시를 혹시 인편이 있다면 전달 바란다고 하였다. 소해정(蘇海亭)은 수신자 노진영의 아버지인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이 머물던 곳으로 노진영의 거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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