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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기미년 4월 11일에 박원호(朴遠浩)가 봄에 상을 당한 상대방을 위로하고, 백씨(伯氏)의 환후와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 그리고 상대가 부탁했던 혼인은 아직 마음에 드는 곳이 없으므로 가을에 진행할 계획이라고 소식을 전하는 간찰 기미년 4월 11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보낸 위장(慰狀)이다. 봄에 참담한 상(喪)을 당해서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상대방을 위로하였고, 뜻하지 않게 상대 쪽 인척을 만나 즐거운 자리를 가졌었다고 하였다. 근래 백씨(伯氏) 어른의 환후가 한 달이 다되도록 낫지 않고 있어 염려가 크지만 병이 또 오래되면 절로 약을 쓰지 않아도 낫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우러러 축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집안의 여러 식구들도 모두 고루 편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 건강이 편안한 날이 적은 것 외에도 다른 소소한 걱정거리들로 이맛살을 펼 날이 없어 위로는 초조하고 아래로는 답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가 부탁했던 혼인 이야기는 아직 마음에 딱 맞는 곳이 없어 매우 한탄스럽다고 하고, 가을걷이를 마친 뒤에 빨리 진행해볼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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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정묘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안부를 묻고 자신의 소식을 전하며 올해 농사는 풍년인데 목화는 여러 해 흉년이라는 내용의 간찰 정묘년 8월 27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에 보낸 간찰이다. 오래 소식이 막혀서 매미 우는 소리를 들어도 기러기 나는 소리를 들어도 생각이 났는데 벌써 중추(仲秋)가 되었다며 벗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였는데 선비 호(皓)가 소매 속에 형의 편지를 가지고 왔고, 펼쳐서 읽고 나니 마치 형의 맑은 모습을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인사하였다. 편지를 통해 형의 생활이 편안하고 식구들도 모두 편안함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어머님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날로 약시중을 드느라 애가 타고 걱정이라고 하였다. 농상(農桑)을 독려하며 삼태기와 삽을 들고 일하는 중에도 걱정거리가 종종 생기니 얻는 것이라고는 다만 흰머리카락 뿐이라고 한탄하였다. 다음 달 초에 방문해주신다고 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탁자를 청소하고 미리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농사는 풍년인데 목화가 여러 해 흉년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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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김호영(金祜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祜永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7_001 기사년에 김호영(金祜永)이 옥산(玉山)의 사돈댁에 안부 인사를 전하며 달력을 보내드린다는 내용의 간찰 기사년 12월 26일에 김호영(金祜永)이 옥산(玉山)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생활은 편안하시고, 먼 길은 편안히 다녀오셨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을 이후로 넉 달 동안 계속해서 걱정거리가 이어지니 편안할 날이 없어 가련할 뿐이라고 하였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하고 새 달력 1건을 보내드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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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 김호영(金祜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祜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7_001 임신년에 김호영(金祜永)이 옥산(玉山)의 사돈 이생원 댁에 안부 인사를 하고 통유(通諭)한 일에 대해 언급했으며 청장력(靑粧曆) 1건을 보낸다는 내용의 간찰 임신년 12월 27일에 김호영(金祜永)이 옥산(玉山)의 사돈 이생원 댁에 보낸 간찰이다. 세월이 골짜기로 들어가는 뱀처럼 빨라서 그리움이 평소보다 큰데, 보내준 서신을 받고 그동안 쌓인 그리움에 조금 위로가 되었다고 인사하고, 상대의 건강이 편안한지 묻고 아들 소식도 듣고 싶다고 하였다. 자신은 예전 모습 그대로 지내고 있어서 말할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고, 사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통유(通諭)한 일은 온당하지 않은데 만류해도 할 수 없으니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봄에 찾아오겠다고 말씀해주셔서 미리부터 탁상을 들고 기다리겠다고 하였으며, 새해 큰 복을 받으시라는 인사도 하였다. 청장력(靑粧曆) 1건을 보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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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기해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의 이생원(李生員) 댁에 장모의 환후가 어떠한지 묻고 원폄(寃窆)하는 날짜를 알리면서 상대방이 와줄 수 있는지 의향을 묻는 내용의 간찰 기해년 2월 4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의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간찰이다. 인편이 있은 뒤로 한 달이 넘어가니 그리운 심정이 평소보다 더하다고 하고, 봄 기후가 점차 따뜻해지는데 장모님의 환후는 그 사이 회복되었는지, 상대방 생활은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상(喪)을 당한 뒤로 어버이 건강이 많이 손상되었고 자신도 병을 앓고 난 후유증이 아직 여전해서 걱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기가 그 다음날 죽었는데 이는 예상하기는 했지만 참을 수 없이 슬프거니와 큰아이가 우선은 무탈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였다. 원폄(寃窆) 자리는 국내(局內)의 해좌(亥坐) 언덕으로 정했고 날짜는 이번 달 11일 축시(丑時)인데 모든 일들이 두서가 없고 어수선하다고 하다고 하고, 그때에 혹시 상대방이 와줄 수 있는지 의향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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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이창호(李昌浩)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昌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이창호(李昌浩)가 상대방이 부탁했던 지구(紙屨)를 인편을 통해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4월 4일에 이창호(李昌浩)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부모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지내는 상대방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고, 자신은 부모를 모시며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며 지난달에 뵙고 이별한 뒤로 소식을 듣지 못해 그립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일전에 부탁했던 지구(紙屨)를 때맞춰 보내드리지 못하여 부끄럽지만 그것은 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은 사지 못했기 때문이니 허물하지 말아주시기를 당부하였다. 그리고 주점(酒店)을 하는 이춘삼(李春三) 편에 부쳐 보내니 그렇게 알고 계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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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기사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 댁에 안부를 묻고 사부(沙阜)의 중부(仲父) 상(喪)을 당한 것을 알리면서 장례 날짜를 알리는 내용의 간찰 기사년 8월 26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간찰이다. 인편이 있었던 뒤로 소식이 뜸하여 항상 궁금했는데 고모님은 건강하고 종씨(從氏)는 어른 잘 모시며 공부 잘 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이번 달 11일에 사부(沙阜)의 중부(仲父) 상(喪)을 당했으니 가운(家運)이 혹독하여 애통하다고 하고, 거기에 또 숙부님이 이일학(二日瘧)에 걸려 마음이 타들어갈 뿐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사부의 부고가 늦어졌고 또 하인들이 모두 사부로 들어가 이제야 돌아왔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부고를 보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백씨(伯氏) 어른은 서울에 갔다가 돌아왔는지 소식을 몰라 답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부의 장례 날짜는 10월 19일로 정해졌다고 알렸고, 면화(綿花) 20근을 보내니 받아달라고 하였으며, 과거에 고모부님 댁에서는 몇 명이나 합격했는지 묻고 자신의 집안은 모두 낙방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이일학은 이틀거리라고도 하는 학질의 하나로, 이틀을 걸러서 발작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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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김흡(金{土+翕})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翕} 李碩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2_001 갑진년에 김흡(金{土+翕})이 장산(章山)의 이석사(李碩士)에게 복시(覆試)에서 장원을 한 것을 축하하고 자신은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내년 봄에 날이 따뜻해지면 향례(享禮)에 참석하겠다는 내용의 간찰 갑진년 12월 23일에 김흡(金{土+翕})이 장산(章山)의 이석사(李碩士)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래 소식이 막히고 한해가 저물어 가서 그립던 가운데 보내준 서찰을 받고 몹시 기뻤고,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다고 하여 더욱 위안이 되었는데 거기에 복시(覆試)에서 장원을 했다니 더욱 기쁘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학질을 앓다가 중간에 점차 떨어질 듯 했는데 지난달 보름 이후에 또 재발하여 고통 받고 있으며 온갖 약이 듣지 않아 몹시 걱정이라고 하였다. 보내준 새해 선물을 받고 매우 감사했으면서도 봄가을 향례(享禮)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해 매번 편안치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병이 봄에 날씨가 따뜻해졌을 때 낫는다면 향례에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하였다. 섣달그믐이 멀지 않은데 오직 새해에 더욱 큰 복을 받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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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김형진(金炯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炯鎭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에 김형진(金炯鎭)이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과 식구들의 안부를 전하며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 내용의 간찰 을미년 12월 24일에 김형진(金炯鎭)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니 그리움 더욱 간절한데 요즈음 섣달 추위에 생활은 편안하고 대소가 식구들 고루 좋으며, 아드님은 어른 잘 모시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마을도 청정한지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고 식구들도 무탈하며 조카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하면서 다만 세상이 어지러워 모든 일이 두서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상대가 왕림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가능할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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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이창호(李昌浩)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昌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이창호(李昌浩)가 상대방이 부탁했던 미투리 두 켤레를 사 놓았으니 상대방이 방문하면 찾아드리겠다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윤 7월 17일에 이창호(李昌浩)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부모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지내는 상대방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고, 자신은 부모를 모시며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상대방이 전에 부탁했던 미투리[麻鞋] 두 켤레를 이미 사 두었는데 마침 인편이 없어서 바로 보내드리지 못했으니, 하루 이틀 사이에 방문해주시면 그때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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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성기(金成基)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5_001 1934년 9월 9일, 제 김성기가 노진영에게 원지의 간행 중 미리 언급했던 보충 후원비를 보내주기를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4년 9월 9일, 제(弟) 김성기(金成基)가 원지(院誌)의 간행 일정을 전하고 전의 편지에서 언급했던 보충 후원비를 보내주기를 청하는 내용으로 노진영(盧軫永)에게 전한 편지이다. 지난번의 답장에 감사하다고 전한 후 9월인 지금의 선생 되시는 아버님과 상대 및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여전히 못난 모습으로 지낸다며 인사하고 현재 원지(院誌)를 교정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간비(刊費)로 곤란을 겪어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다음 달 말일내로 간행에 들어가 장책(粧冊)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번 형의 편지에서 많은 금액을 보충해 주겠다고 했던 것을 언급하며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10엔(円)의 돈을 이달 20일 내로 보내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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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노도기(盧道基)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道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 3월 21일, 종생 노도기가 노진영에게 약을 보내면서 안부를 전한 서간. 1938년 3월 21일, 종생(宗生) 노도기(盧道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약(藥)을 보내면서 안부 를 전한 서간이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서 상대의 편지를 받았다며 아프신데가 아직 완쾌하지 않았다고 하여 걱정이 매우 심하다고 했다. 자신의 뜻대로 주제통성산(酒製通聖散)을 지었으니 즉시 시복해 보시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어떤 상황에서는 좋지 않으니 조금씩 맛보고 시험하다가 만약 맞지 않는다면 아버지께 올려도 좋을 듯 하다고 했다. 보름에 여러 종씨가 모여서 제향(祭享) 드린다고 하니 매우 축하한다고 전하고 각 분들께 편지 쓰지 못하니 문안드린다는 뜻을 전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약을 시험해보고 나서 즉시 회답해 주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주제통성산은 구성 약재를 모두 술로 법제하여 만든 처방으로 오늘날의 뇌출혈, 고혈압, 동맥경화증, 변비증, 주사비, 치질, 피부병, 축농증, 안병, 당뇨병, 천식, 비만증 및 각기, 단독, 지방심, 만성신염 등에 적용하는 약재이다. 발신자 노도기의 본관은 광주(光州), 호는 남오(南塢)이다. 노도기는 하의도 인근에 있는 비금도(飛禽島)의 유림으로 1921년 대동사문회(大同斯文會) 지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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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송조헌(宋祖憲)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宋祖憲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 4월 2일, 송조헌이 노진영에게 경현사 출향 문제로 보낸 서간. 1938년 4월 2일, 송조헌(宋祖憲)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경현사(景賢祠) 출향(黜享)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4월의 날씨에 상대가 안녕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다고 했다. 주요 내용은 지난달 10일에 상대가 경현사(景賢祠)의 여러 사람들 중에서, 출향(黜享)하는 일로 원지(院誌)를 복판(覆板)할 뜻에 서명을 하여 본래의 후예 되는 각 집들에 발표했는데,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고 말하고, 자신과 더불어 별로 큰 혐의가 없었는데, 무슨 일이냐며 상세히 대답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출향은 경현사에 모신 위패를 거두어 들여 제향을 철회하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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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이문량(李文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文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월 27일, 형 이문량이 노진영에게 이거한 거주지에 땅을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8년 1월 27일에 형(兄) 이문량(李文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이거한 거주지에 땅을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오랫동안 막힌 회포를 풀지 못하고 또 한해가 지났다며 최근 혹심하게 추운 봄에 상대가 안녕한지, 가족도 모두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근래 감기와 치통으로 여러날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반세상을 살았기 때문이냐며 한탄했다. 그리고 새로 우거하는 곳에 한 마디의 농토도 없어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살기가 실로 어렵다고 했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염치가 없지만 다시 말한다며 아우가 특별히 전에 없던 규정으로라도 논 5두락을 옮겨 주어서 외롭게 사는 자신이 살아가는 업(業)로 삼도록 해 달라고 했다. 자신의 몸이 회복되는 날 즉시 만나러 가겠다고 하고 박 형(朴兄)이 말로 다 전해줄 것이라고 했다. 협지에는 옥(玉)으로 짠 자리 1립을 보낸다며 정으로 받아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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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박태경(朴泰慶)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泰慶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3월 9일에 제 박태경이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29년 3월 9일에 제(弟) 박태경(朴泰慶)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小作)문제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우선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드릴 말씀은 봉납조(奉納條)가 막대한 것은 매우 황공하여 말로 할 수 없다는 것, 그 토지가 폐답(廢畓)이라고 말한 것은 잠시 유감스런 말이며, 가뭄으로 폐답이 되었다고 한 것은 미리 재앙이 있을 것을 예상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안심하시라는 내용이다. 상대가 여러 가지를 이유로 주지 못하는 논에 대하여 자신이 경작해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규격지에 국한문혼용으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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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1월, 스승님 장사를 지낸 다음날에 봉산정사의 임언재 등 5명이 노진영에게 봉산정사 후원금에 관해 전한 서간. 1935년 1월, 스승님 장사를 지낸 다음날에 봉상정사(鳳山精舍)의 임언재(任漹宰) 등 5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봉산정사(鳳山精舍) 후원금에 관해 전한 서간이다. 여기서 스승님은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을 말한다. 지난번의 공부하다가 갑자기 이별하게 되어 슬펐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당후(堂候)가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고 본론을 이야기 했다. 편지의 본론은 이번에 우리 선생님의 장례를 다행히 여러 분들이 스승을 존경하고 정성(精誠)을 다한 덕분에 잘 치렀다고 인사한 후 장례비용으로 부족하여 빌려준 돈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번 장례비용은 우리 문도들이 제공한 것으로 부족한 액 300여 엔을 마련하기 위해 각자 돈을 50엔에서 70엔에 이르기까지 빌렸다며 이것을 설명하고 귀 문중에서 빌려온 돈 70엔을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다. 장례를 치른 다음날짜로 편지를 썼으며 편지의 발신인은 인언재(任漹宰), 이재춘(李載春), 유병구(劉秉龜), 나종우(羅鍾宇), 윤경혁(尹璟赫) 5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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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정순문(鄭淳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文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8월 5일, 정순문이 노종룡에게 부의금과 부의품에 감사한다는 내용을 전한 서간. 1934년 8월 5일, 정순문(鄭淳文)이 노종룡(盧鍾龍)에게 부의금(賻儀金)과 부의품(賻儀品)에 감사를 전하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정순문이 자신의 족형(族兄) 뇌연공(雷淵公)이 돌아가심에 상대가 돈 2원과, 초 2갑, 북어 1대(隊)를 내려준데 대하여 감사를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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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최상현(崔相鉉)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鉉 盧軫永 崔相鉉(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월 15일, 소생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도평의원 선거에서 본인을 선정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 1927년 1월 15일, 소생(小生) 최상현(崔相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도평의원(道評議員) 선거에서 본인을 선정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書簡)이다. 광주군 광주면 양림리 157번지에 사는 최상현은 세로줄이 그어진 편지지를 이용하여 편지를 작성했다. 요즈음 귀하가 평안하실거라 생각한다며 송축한다 인사하고 자신은 상대의 애호를 받아 여전히 지낸다고 했다. 드릴 말씀은 도평의원 선거 시에 자신의 이름에 투표하여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훗날 직접 뵙고자 한다고 적고 편지를 마쳤다.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자신의 이름자를 인쇄한 명함 1장을 동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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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박해열(朴海烈)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朴海烈 南原鄕校 □…□ (흑색, 직방형, 7.8×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 7월 20일에 모 향교의 장의 박해열·서지열과 재임 김규석·안종윤이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만리 후손 천성일이 교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에 답한 통문 1898년(광무 2) 7월 20일에 모 향교의 장의(掌議) 박해열·서지열(徐之烈)과 재임(齋任) 김규석(金奎錫)·안종윤(安宗潤)이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만리 후손 천성일(千成日)이 교안(校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南原鄕校)에 답한 통문이다. 남원향교에서 보낸 통문을 받았는데 명장(名將) 화산군(花山君) 천만리(千萬里, 1543~?)의 큰 공훈을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흠모하고 열성조의 수교(受敎) 또한 뚜렷하게 있어서 그의 후손들이 우리 고을에 타향살이를 했더라도 떳떳한 본성이 있는 곳이라 돌보고 보호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 향교의 유생으로 들어온 것은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되고 오물로 떨어진 꽃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하면서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성일이 교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으니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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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김희도(金熙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熙道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2월 1일에 척제 김희도가 자신의 일본 유학 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28년 12월 1일에 척제(戚弟) 김희도(金熙道)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의 일본 유학 생활의 안부를 전한 서간(書簡)이다. 금년 봄에 서로 답장한 후에 소식을 오랫동안 전하지 모했다며 슬픔이 심해진다고 인사 했다.눈 내리는 추위에 상대의 안부와 손자가 별고 없는지, 집안은 모두 잘 계신지 물었다. 자신은 멀리서 생각해주시는 덕택으로 객지에서 별 탈 없이 지낸다고 인사하고는 이곳에 도착한 일은 남아의 청춘을 밝게 하려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학식을 닦으려는 목적도 있다며 객지의 형편이 좋지 못해 매사 모든 것에 낭패를 보더라도 너무 책망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또한 이 편지에 즉시 회답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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