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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노형식(盧瀅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瀅植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에 족말 노형식이 노진영에게 비석 건립의 일로 자신에게 소식을 전했지만 개인적인 일로 가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고, 자신 종중에서 모은 의연금에 관하여 전한 내용의 서간. 1927년에 족말(族末) 노형식(盧瀅植)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비석 건립의 일로 자신에게 소식을 전했음에도 참석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전하고, 자신 문중의 의연금(義捐金)에 관하여 전하며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겠다는 내용으로 전한 서간(書簡)이다. 봄에 이별한 것이 꿈과 같다며 추운 날씨에 아버님의 기력은 강건하시고, 모시고 있는 상대와 가족들은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족하(族下)인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여 다행이라고 한 후 지난 10월 3일에 비석을 건립하는 일로 전팽(專伻)을 보내 소식 전해주셨지만 사적인 연고가 있어 가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전에 우리 집안의 의연금 50엔을 승낙해 주시어 우리 문중에서는 합의하여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 우리 집안의 의견은 위의 50엔 정도의 돈으로 우리 군(郡)에 있는 토지를 사 보내어서 선조를 경모하는 정표로 삼고 족의(族誼)를 돈목하게 하려고 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를 헤아려 즉시 회답해 주시어 결정해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의연금 명의(名儀)는 추후에 말씀드릴 계획이라는 것, 금장(金莊) 종중(宗中)에서 이것을 진언(陳言) 드릴 듯하니 어찌했든 간에 회답해 달라고 했다. 우리 군에 있는 토지를 사면 매년 소작료로 제향시의 자료로 바칠 계획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회답을 기다리겠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란 외에 적은 추신에는 소작료는 옛 년도에 10두 가량 수입이 있었다고 적었다. 발신자 노형식(盧瀅植)은 장흥군(長興郡) 장평면(長平面) 청룡리(靑龍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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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개성두문동사원전남분사무소(開城杜門洞祠院全南分事務所)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開城 杜門洞 祠院刱建所 全羅南北道分事務所 常務委員會 盧軫永 □…□(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3년 5월 9일, 개성사원전남분사무소 상무위원회에서 노진영에게 개성 두문동 서원 기공사 문제로 보낸 서간. 1933년 5월 9일, 개성두문동사원창건소전라남북도분사무소(開城杜門洞祠院刱建所全羅南北道分事務所)의 상무위원회(常務委員會)에서 노진영(盧軫永)에게 개성 두문동 서원 기공사(起工事)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원우(院宇)의 기공사로 본소에서 지난번에 편지를 보냈는데 살펴보셨을 것이라며 조종(祖宗)의 정충대절(貞忠大節)을 없애지 않고 후세에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고 했다. 바야흐로 공사가 한창이고 상량이 다가왔다며 순군유사(巡郡有司)가 이달 20일 즈음에 귀문(貴門)을 방문할 것이니, 좌기(左記)한 항목을 미리 협의하여 방침을 확정해서 유사가 오면 바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좌기한 항목은 1. 성금(誠金)을 만들 위토(位土)를 납부하는 일자 및 방법을 확정할 것, 2. 도소(道所)의 사무비(事務費)를 성금의 일부로 쓰고자 하니 이번에 가는 순군유사에게 현금으로 주고 영수증을 받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본 분소는 무성서원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서의 마지막 줄 상무위원회를 적고 그 관련인의 도장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원형 주인(朱印)에는 인명(人名)이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글자가 제대로 보이도록 찍히지 않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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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盧斯文鍾龍氏 經座下 入納羅州郡 本良面 北倉(피봉_뒷면)吳東洙 拜函.(簡紙)國哀痛纏率普, 年前所遭不須提起. 倘有以俯諒者存矣. 常欲一晋崇軒, 以謝數年前一番枉顧之誼, 兼道私衷之蘊結, 而獨寓江村四面, 皆楚越無計, 出身未得遂意. 只自耿耿于中. 謹審淸和,靜體度神相康旺, 閤節均慶否? 願仰溯且祝之至. 生聳珍氣力, 長時欠和, 伏悶伏悶.而身則別無所苦, 私幸私幸. 就大全重刊事, 工役浩繁, 告工未有期, 亦切關念, 聞鄙郡鄭得采言, 則月初尊駕往蘇提也. 與此兄有所相約而當卽專奇之道云.故佇竢 惠音, 尙無影響,心甚懸懸. 其時聞尊駕作嶠南行, 第未知尙未得返 衡泌否? 大抵此事本道欲與嶺儒之爲設刊於聳珍, 則本道事, 自本道爲之. 此一擧兩得之道也. 且與此兄已有牢約云. 而俾余作書探知爲好. 故玆以書仰, 則尊啣旣爲捺印於自擔一冊之列, 而凡於斯文事業, 常不後人, 則望須同刊於此, 以爲本道金澤, 若何若何. 餘伏望速賜回音. 姑此, 不備上.丙寅四月二十六日, 生 吳東洙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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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정순묵(鄭淳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默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 11월 8일에 사생 정순묵이 노종룡에게 선대 비문 건립을 축하하는 내용을 전한 서간. 1926년 11월 8일에 사생(査生) 정순묵(鄭淳默)이 선대(先代) 비문(碑文) 건립을 축하하는 내용을 전하는 내용으로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일전에 안식구가 사람을 보낼 때에 자신이 의가(醫家)에 가서 미처 편지를 하지 못했는데, 가노(家奴)가 돌아오면서 편지를 받게 되었다며 비교할 수 없는 성의에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요즈음 경서 읽으시는 상대가 만강한지, 아드님은 잘 있는지, 그대가 일찍이 윤증(輪症)을 겪었기에 지금은 건강하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인사했다. 자신은 늙으신 어머니가 항상 쇠약하신 것 말고는 다른 놀랄 일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또한 손자 환철(煥喆)이 한때 위급한 증세를 겪었다가 지금은 다 나았다며 더욱 기쁘고 다행이라고 했다. 사돈댁 선조 비석 일이 완료되었다고 들었다며 아마도 홀로 사돈의 노고가 많았을 것 이라며 노고를 치하하고 또 교남(嶠南)에 돌아간다니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걱정했다. 이때로부터 날이 더욱 추워졌다며 지난번 찾아와주겠다는 말씀은 비록 매우 감사하지만 극심히 추운 겨울에 말을 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며 사돈이 스스로를 아끼기를 바란다고 인사하며 편지를 마쳤다. 수신자 정순묵이 사는 곳은 곡성군(谷城郡) 화면(火面) 포평(蒲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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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芝山面 日谷里蘇海盧文丈 書樓下大村面 鴨村 高生謹緘(簡紙)冱寒不審,靜養難老體度若何. 星斗嶙峋, 瞻仰靡及. 光璉猥蒙不棄親被薰炙, 一自虛往實歸之後, 充然若有得於中, 而畢竟聖是才器淺劣, 氣習麤暴, 學力鹵莽, 未能灼然乎昭曠之原, 而幸負誘掖之恩多矣. 一日之暴, 果何補於十寒哉. 悚極悚極. 頃日歸來之后,窮病瘁身委痛六日, 今纔擡頭石田之穫纔畢, 而竄下之焬, 已無計矣. 風雪遽塡巷,婦怨兒呱便, 若眼生深愧. 涵養無素形神, 幷鑠寗有一瞥光陰, 可以展眉者乎. 若使仁人君子親見此景, 必爲之哀矜惻怛, 有不下於入井之孺也. 苟非吾丈盛德深愛, 何敢如是仰達哉. 種種相問之 敎, 拜退之際, 別爲收置, 非不雕鎸肝腎,而想得終始, 則爲阿閃一現, 何以則能安時處順無事於胸中乎.伏望 賜以博 敎, 俾得解其患焉. 則千萬之幸, 平日仰恃謬愛,敢以狂妄至此. 伏惟財恕. 不備上候禮.甲戌陰十一月十九日, 生 高光璉 再拜.柳於于野譚中 蘇齋先生實記二篇謄送, 倘或考覽,若何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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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芝山面 日谷盧軫永 氏(簡紙)伏惟時下僉體萬旺하심을 慶祝하나이다. 本祠院誌는 宋祖憲氏가 嶺南으로부터 刊出하야 這間波瀾이 多有함은 本裔名家에게 已爲詳知하시는바 其間內容은 疊言할 必要가 無하압고, 今番秋享時 分秩하기로決議되여서 白亨斗氏로 外務員을 選定하야 分秩의 責任을 負擔케되여사으ᄆᆡ 本院의 后孫된 吾等은 但先祖의 事實만 善美케되여시면 第一이요,刊出方法의 差誤는 不足掛論인즉 此占을 解釋하시와 購 覽하시되 二百五十秩에 八十秩은 本祠債金으로 編入하고 一百七十秩은 宋祖憲·田亨鎭의 刊費로 支出케되여서 每秩式拾圓式査定하야 嶺南으로부터 已爲分秩되여신즉 各位는 或不無價高之嫌이오나 但先祖無價의 美蹟인바 豈論高歇於其間乎아. 以寄附樣購 覽하시면 本祠의 幸福이올시다. 至於位土代 하야도 明年春享前에는 期於完了하시로 決議되여신즉 此亦銘念하시와 維持上葛藤이 無케 하심을 敬要함.丁丑九月二十五日 [方形朱印: 景賢祠印]院有司 金肯鉉 掌議 申宣雨外務有司 白亨斗 李熙說姜晩秀 曺喜洙掌議 金演九 金源弼奇貞度 色掌 朴明煥南廷鎬 文正基金詩樂 姜在馨盧軫永 監査 曺鼎鎭鄭商鉉 金進鉉盧錫正右任員은 滿期임으로 改選, 又는 再選되여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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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고광련(高光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璉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2_001 1934년 11월 19일, 생 고광련이 노종룡에게 안부를 전하고 어우야담의 〈노수신실기〉를 보낸다는 내용을 담은 서간. 1934년 11월 19일, 생(生) 고광련(高光璉)이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안부를 전하고 『어우야담(於于野談)』의 노수신실기(盧守愼實記)를 보낸다는 내용을 담은 서간(書簡)이다. 추운 날씨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지난번 잘 돌아온 것, 온 뒤로 6일간 몸이 아팠던 것, 이제야 겨우 석전(石田)의 농사를 마친 것, 처자식의 상황, 시간이 빨리 흐르는 아픔,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것 등을 언급하고 자신을 깨우쳐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마지막 추신(追伸)으로는 『어우야담』 중에 있는 소재선생실기 2편을 베껴 보내니 혹시 읽어 보셨는지 물었다. 발신자 고광련(1872~1949)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호기(瑚器), 호는 침천(枕泉)이다. 남구 대촌면 압촌동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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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최남두(崔南斗)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南斗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2월 28일, 생 최남두가 노진영에게 벽오동목과 산앵목 각 3본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5년 2월 28일, 생(生), 최남두(崔南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벽오동목(碧梧桐木)과 산앵목(山櫻木) 각 3본(本)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상대의 안부를 간단히 물은 후 자신은 상대방 덕택으로 무사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 벽오동나무 세 뿌리와 산앵목 세 뿌리를 보낸다며 귀하의 정원에 식재하게 되어 축하한다고 말하고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최남두가 사는 곳이 '양산리(陽山里)'라고 피봉에 적혀 있는데 편지의 수신자와 발신자의 주소 기록에 도, 시군 등의 명칭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광주에 속한 양산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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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한규(金漢奎)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漢奎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6년 8월 21일, 김한규가 노진영을 부친의 회갑연에 초대하면서 보낸 서간. 1936년 8월 21일, 김한규(金漢奎)가 노진영(盧軫永)을 부친의 회갑연에 초대하면서 보낸 서간이다. 8월의 날씨에 상대가 안녕하시리라 생각한다며 인사하고 이달 27일이 가친(家親: 자신의 아버지)의 60세 생신이니 작은 연석에 오후 1시에 와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편지 내용은 간단하지만 발신인 이름자를 적은 후 뒷공간에 '압운(押韻) 량(涼)'이라는 글자를 적어, 수연시를 지어주실 분들에게 압운자를 안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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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병종(盧柄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柄琮 蘇海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12일, 생 노병종이 소해정 여러분에게 소해 선생 졸곡제에 자신의 참석이 어렵겠다고 전한 서간. 1940년 7월 12일, 생(生) 노병종(盧柄琮)이 소해정(蘇海亭) 여러분들께 졸곡제(卒哭祭)에 자신이 참석하기 어렵다고 전한 서간이다.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 1856~1940)선생의 죽음은 친구간의 예로 본뜰 사람을 잃은 아픔일 뿐만 아니라, 동종(同宗)이었으므로 더욱 통탄스러웠다며, 자신이 부고를 듣고 곧바로 위문가지 못한 것은 자신의 병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지금 졸곡제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경황이 없음뿐만 아니라 숙병을 아직 떨어내지 못하여 뜻을 받들 수 없다며 조금 나아지면 영연(靈筵)에 가서 곡을 할 테니 용서해달라고 했다. 더운 날씨에 여러분들이 보중(保重)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하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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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병래(盧秉來)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秉來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29일, 족말 노병래가 노진영에게 그의 아버지 상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 편지. 1940년 7월 29일, 족말(族末) 노병래(盧秉來)가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盧種龍, 1856~1940) 상(喪)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편지이다. 상대 아버지의 죽음에 애통함과 작년 가을에 직접 뵈 온 뒤 편지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되었다고 한스러움을 토로했다. 상대의 효심은 알지만 예제(禮制)를 잘 따라서 몸 상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위문하고, 자신은 지난 2월 초부터 같은 군(郡) 내 교정면(交井面) 신씨(愼氏) 집에서 살면서 6~7명의 관동(冠童)들과 보내고 있다는 것, 본 집과의 왕래는 수개월에 한 번 정도라는 것, 그래서 자신이 예절을 못 차리게 되었다며 미안해했다. 또 길어 멀어 즉시 달려가서 곡하지 못하고 이렇게 위장(慰狀)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장지는 어디로 정했는지, 상대의 아이들은 아버지 모시고 공부 잘하고 있는지 등을 묻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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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진옥(盧鎭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鎭玉 盧永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4일, 생 노진옥이 노영기에게 부탁 받은 내용에 답변을 전한 서간. 1940년 7월 4일, 생(生) 노진옥(盧鎭玉)이 노영기(盧永淇)에게 부탁 받은 내용에 답변을 전한 서간이다. 상대가 보내준 편지에 감사를 전하고 7월의 늦더위가 더욱 심한데 상대가 잘 있음에 감사하다는 것, 자신은 어른 모시고 그럭저럭 지낸다고 안부를 묻고 전했다. 주 내용은 상대가 편지로 말한 뜻은 잘 알지만 같은 가문이 되어 저 쪽을 대략 볼 수 없다며 곧 직접 가서 잔을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훗날 만나서 하자고 말하며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고재연(高在淵) 선생과 박주상(朴柱庠) 선생에게 바빠서 각기 편지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시기상으로 보아 광주군 지산면 일곡리에 거주하던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에 위문을 가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푸른색으로 찍은 '삼릉괘지(三菱罫紙)' 1장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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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정선채(鄭選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選采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7년 7월 29일, 소제 정선채가 노진영에게 부탁받은 암소의 구입 건으로 살만한 소의 정보를 보내며 그 의사를 타진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7년 7월 29일, 소제(少弟) 정선채(鄭選采)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부탁받은 빈우(牝牛) 구입건으로 살만한 소의 정보를 보내며 그 의사를 타진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일전에 영근(永根)이가 와서 대략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고 그 뒤로 어찌 지내시는지 댁내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족들 모두 별 탈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 내용은 자신이 사는 화면(火面) 성덕리(聖德里)의 윤덕홍(尹德洪)이 4~5일 전에 와서 당신이 있는 곳에서 왔다며 말하기를, 당신의 마굿간에 기를 소를 구입하는 일로 부탁을 해왔다고 했다. 암소로 살만한 것은 자신이 사는 면(面) 가곡리(柯谷里) 이동근(李東根) 집에서 기르는 암소 한마리가 털색이 순황색이고, 뿔이 매우 힘이 있다는 것, 그 소는 먹는 것과 밭을 가는 힘이 상당하고 나이가 6세인데다 10일전에 송아지를 낳았다고 하며 이상의 여러 일들은 자신이 평소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구입할 뜻이 있다면 금액은 100원 가량이라고 전했다. 추신에는 신유선(辛有善) 집에서는 암소를 금년 봄에 150원에 사들여 기르는 중이라고 하며 만약 매매하고 싶다면 이번 봄의 시세(市勢)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고 하고, 두 군데 소를 매입할지에 대하여 어찌할지 속히 회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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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상호(盧相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相鎬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8월 7일, 종계 노상호가 노진영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 상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 서간. 1940년 8월 7일, 종계(宗契) 노상호(盧相鎬)가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그 아들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위문 서간이다. 위장(慰狀)의 투식을 따라 쓴 위문편지로 뜻밖에 상대 아버지의 상을 만났다며 그 슬픔을 위로하고, 어른 모시고 잘 있는지 안부를 묻고, 종중(宗中)에서 모두 무고한지 묻고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종제(從弟)인 자신은 형제들과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 한 마을의 여러 종형제와 여러 족속들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것, 이번 여름에 있었던 일로 즉시 포복하여 가서 위문하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과 슬품 등을 전하고 돈(金貨) 3원(圓)을 올리니 얕은 정이나마 받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노상호의 거주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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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순(李鎔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鎔淳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용순(李鎔淳)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며 지난번 지은 시에 대해 의견을 말한 간찰 모년 6월 14일에 이용순(李鎔淳)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담제(禫制) 중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와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지난번에 지은 〈소해정(蘇海亭)〉이란 시 가운데 초연(初聯)은 바쁜 가운데 잘못 쓴 것이라서 그렇다며 '원량(元亮)' 두 글자를 '연명(淵明)'으로 고치는 것이 보기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은 더위를 먹었는지 수마(睡魔)를 벗 삼아 지낸다고 하였다. 이용순이 지은 〈소해정〉 시는 《蘇海遺稿附錄續集》에 실려 있는데, '원량' 두 글자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실려 있다. 시의 전문은 "主翁亭子適成時, 三角山高必式宜. 滿庭趣癖元亮宅, 聯壁眞圖摩詰詩. 完蘇無恙安身策, 觀海爲工涉世期. 不市經綸開前業, 以淸養德恐人知."이다. 담제는 삼년상을 마친 그 다음다음 달 하순에 탈상(脫喪)하면서 지내는 제사인 담제(禫祭)를 지낼 때까지를 가리킨다. 소해정은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이 1930년에 세웠으며 그의 아호에 따라 이름을 지은 정자다. 노종용은 원풍정(願豊亭) 건립자인 농암(聾岩) 노재규(盧在奎 1836~1920)의 아들로서, 그의 선조인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행적을 본받아 은둔소요(隱遁逍遙) 하였다. 노종용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등 한말 우국지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송병선이 자결하고 최익현이 일제에 잡혀 대마도에서 순절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광주 일곡동에 내려와 도의의 교를 맺어 학문을 논하고 전념하며 후진양성에 힘쓴 인물이고, 《소해유고(蘇海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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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과 관련하여 진행 상황을 전하는 간찰 1944년 1월 3일에 정읍 칠보에 거주하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편지를 막 쓰려던 차에 먼저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어 매우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지난번에는 전주의 박 주사(朴主事) 형과 잠시 술자리를 갖고 빨리 돌아왔는데 차가 이미 출발해서 매우 안타까웠다고 심경을 전하고, 자신은 임실과 전주, 부안을 돌아 섣달 그믐날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근황을 전했다. 새해 들어 얻은 것이라고는 나이 한 살 뿐이니 한탄스럽다고 하고, 이전에 말했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武城書院)에 추배(追配)하는 문제에 대한 진행 경과를 전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 도강김씨(道康金氏) 몇 명이 호응하지 않은 일은 원장(院掌)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환상(煥相) 형이 주선하였고, 논의를 어긴 송씨(宋氏) 몇 명은 자신이 움직이는 데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서원 향사(享祀)의 제수 비용 몫으로 2백원을 내서 승낙을 받는 일은 금전만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유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니 범범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상대방이 4닢[葉]을 빌려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고, 이는 손자의 병 때문이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또 노진영의 이웃인 정완표(鄭玩杓) 형에게 원지(院誌) 간행비 20원을 속히 부쳐달라고 전해달라는 당부도 하였다. 그리고 다른 여러 형들은 새해 들어 편안한지 묻고, 자신이 바빠서 각자 안부 편지를 하지 못하니 이 편지로 안부 인사를 대신 전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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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欲裁書之際 先承惠緘悚感萬萬 而向者更未拜別后他全州朴主事兄 一杯酒暫飮 故速往速來矣 南車已發只自向風悵歎而已 咎實在我 安敢望厚恕否 謹從審新元兄體萬旺 大少寶節均慶仰頌慰祝 弟功服人 自任實全州扶安 除夕歸家 而新年所得者 只添一齒 浩歎奈何奈何就先生之事 至於道康金氏數人不應事 在於院掌 故煥相兄周旋 其他宋氏數人違議事 亦在於弟之運動怎 兄院享需費二百円承諾條 日間速付於心松兄然後 以那意到底爲書 如何如何 無論某大事 非徒金錢主張也 先買其心 則勿泛勿泛 而事若終境已成自道押圖計耳 勿慮焉惠施四葉貸感謝感謝 善用於孫兒病故矣 貴隣鄭玩杓兄許 院誌剞劂費二十円到底爲言速付 如何如何 鄭友言內 那條則與仁兄商議付送云則無異仁兄惠給於我矣尤極感激者耳 餘立俟回示 不備上謝甲申元月三日曉 弟功服人金成基拜諸兄新歲泰安否 忙未各候以此雷照如何如何【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番地斯文軫永兄〈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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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환(曺正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曺正煥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인제(姻弟) 조정환(曺正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목재 운송에 관하여 보낸 간찰 모년 4월 29일에 인제(姻弟) 조정환(曺正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일전에 말했던 주목(株木)에 대하여 운송인의 말이 광주 경양까지 운송하는 것은 40전(戔)이면 운송을 하겠지만, 삼각리(三角里)까지는 주목 하나당 50전씩이라도 도로 문제로 운송하지 못하겠다고 한다고 전하였다. 동복(同福) 상가리(上佳里)의 김국일(金國日)에게 두 차례 왕래했더니 그곳에 주목 1개, 연목(椽木) 104개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춘서목(春西木) 1개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격을 주어야 할 것이며, 경양까지 40전씩이면 운송할 것이니 이를 헤아려서 가부간에 빨리 회답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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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에 대해 진행 상황 등을 알리는 내용의 간찰 1944년 2월 8일에 정읍 칠보면에 사는 김성기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에 편지를 받고 답장을 바로 보내지 못했던 것은 집안에 일이 있었기 때문이며, 근래 장인어른의 상(喪)을 당해서 5일만에 집에 돌아와 일에 두서가 없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상대방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성서원 유림들의 마음을 사야 하므로 제수 비용 몫으로 200원을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김성기의 의견이었는데 이때 노진영이 아마도 돈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김성기는 그 돈 200원을 김환상(金煥相)에게 주었더니 매우 감사하다는 언급을 했다고 전하고, 이 돈은 춘제(春享)의 제수비용으로 쓸 계획이라고 하였다. 선생을 추배하는 일은 거의 희망이 보이므로 적극 도모하고 있다고 하였다. 통장(通狀)은 잘 썼다고 하는데 더 정리한 뒤에 자신이 직접 길을 나설 계획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고, 자신은 감기에 걸려 앓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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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열(高光說)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說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광열(高光說)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토지 매도를 주선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6월 25일에 장성군 동화면 송계리에 사는 고광열(高光說)이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달에 이별한 뒤로 마음이 울적한데 생활은 편안한지 묻고, 자신은 근래 여름감기에 걸려 며칠간 고생하다가 요즘에야 조금 회복 중이라고 안부를 전하였다. 노진영 측에서 먼저 토지 매입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고, 그에 대해 고광열이 매도할만한 토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자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5마지기의 땅이 나왔는데 토지 가격은 745원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매입할 의향이 있으면 다음 달 초순 사이에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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