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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장대윤(張大胤)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胤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8년(영조4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胤)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68년(영조44) 강진현에서 무자년(1768)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2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65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모시고 사는 어머니 김씨는 65세이고, 아내인 이천서씨(利川徐氏)는 23세이다. 이어서 이천서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서일태(徐日泰), 조부는 서원적(徐元迪), 증조부는 서계축(徐啓丑), 외조부는 이암극(李諳極)으로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함께 살고 있는 아우 장대운(張大雲)은 현재 19세이다. 호주인 장대윤의 이름자 '胤'은 장대윤의 일련의 호구문서로 보아 '允' 자의 오기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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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9년(헌종1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49년(헌종15)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61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홀아비이고, 동거인은 23세 딸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무신년(1848)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1849년이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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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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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城居幼學徐永修右謹陳所志寃痛事段本縣曳山面沿江十餘里有一帶柴塲壬子爲始自面中定爲巡山衆力守護每年發賣補用民役以其餘剩買置田土落只數石是加尼昨冬良中奸鄕鄭仁國張啓宇奸校呂善黙訐告官家▣▣(柴塲)及田土並爲奪入屬公於雇馬廳而上有司趙允命柳邦鎭以鄕所之挾告決罪放送爲旀金弼玉金裕玉以貧寒放送爲乎矣矣身段謂有饒名多般威脅氷租六十石及進上所用蔵氷價一百二十兩使矣身白地擔當又稱罰贖錢六十兩公然責納於矣身用之何處是喩此何事理節節可寃最所極痛者非他矣身先塋在於巡山之內龍虎六谷如干松楸所植處納土七斗庫及錢三十兩於面中成文卷買得禁養矣同畓土既入於雇廳而松楸之地渾歸屬公故累次呼訴久未决正是如可舊官臨歸時更呈所志始得許題而所志忽失去處方事推尋之際舊官座首鄭仁國邀請矣身好言誘說曰官家許題吾與有力七十兩錢即今備納則所志當出給亦爲去乙矣身初既切憎於渠輩貽害之事及聞此言峻責其蠧民之害棄置而歸家則夜間兵房軍官吕善黙假托官令私出捉去矣身而出示所志曰所志在吾手錢文三十田〖兩〗速速備來亦爲去乙矣身笑曰所志題辞豈有價直雖三文錢吾無可給之義是如叱退而此寃情呈于 營門則題音內詳査來歷且考本券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是乎旀又呈訴于長水遞歸官家則題音內淸溪一洞已屬民庫而汝矣葬親之地既有買賣文券則不當混入於此中界限之後某至某按券看審後從文券劃給事是乎旀又呈則題音更考事實詳細事是乎矣不顧官題而奸鄕奸校奪其矣身山地發賣年草一百六十五田〖兩〗而六十田〖兩〗皆爲肥己私用餘錢一百兩?稱用雇廳■(而)是乎所自壬子以後發賣文券昭昭是如乎同田土付諸雇馬廳則山地之渾奪萬無其理從文券出給之題下明査是乎旀許多錢穀之無端見失亦豈非其奸鄕奸校之橫政乎並爲實還徵俾免殘氓徹天之寃事 參商處分爲只爲御使道 處分壬申十一月 日〈題辭〉果如所訴則鄭仁[馬牌]暗行御史[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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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城幼學徐永修右謹言事段伏望依完文永久遵行事 參商題給焉去辛未年冬本縣北面巡山與田畓幷爲屬▣(公)於雇廳之際矣身先山塋域當初納畓買得於面中 而畓土旣入於雇廳則山地之混同屬公事理不當是遣巡山有司五六人中以矣身之孤單獨被奸鄕之誣訐 進上所用氷丁錢一百二十兩租六十石及罰續錢六十兩白地徵納事極冤痛故徃呈巡營則題內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所謂徵給者卽指錢穀也推給者卽指山地也昨冬又呈于 使道閤下則題音內果如所訴則鄭仁國張啓宇等事極爲痛惡呂善黙前以此事入於按廉已爲懲治是在果詳査委折取考本券一一推給事行下故到付新縣監則新縣監以法令爲法令取考前後來歷而洞燭徵穀徵錢果如其數山地之給價見奪亦爲的實是遣以爲錢穀已盡民庫今無可推之道山地段龍虎六谷依當初買得本文永久遵行事完文成給是乎所使道以 堯舜之心爲心新縣監以法令爲法令而今則矣身幸蒙 使道明政之澤又蒙官家恤民之惠是如乎矣身買山文券昭然以官家完文明白伏乞參商敎是後依完文永久遵行事題下以杜日後奸鄕中亂法橫侵之習俾無殘氓向隅之怨望只爲 行下向敎是事御使道 處分癸酉三月 日〈題辭〉本官旣已成完文以給今此呈訴可謂衍文事十一日[馬牌]暗行御史[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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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矣身山地事成完▣…▣內矣身所居北面私自壬子定巡山發賣▣…▣於面中大有功焉再昨冬奸鄕鄭仁國輩誣訐▣▣之山及面中田畓幷爲奪付民庫各年▣…▣所謂以饒居氷租六十石進上所用藏氷價一百二十兩罰錢六十兩公然責納是遣去己巳年分矣身定父山於巡▣…▣錢三十兩於面中成文買得禁養松楸矣以此山地又稱法外廣占不給本價奪付雇廳盖許多錢穀之白地▣…▣項錢穀與山地明査推給亦呈▣▣▣則 巡使道題音內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是乎旀又呈 御使道▣…▣痛惡 兵校呂善黙則前以此事入於按廉已爲懲治是▣▣▣(在果詳)査委折取考本券一一推給宜當事題▣…▣後來歷則狀者之徵穀徵錢果如其數是遣山地之給價見奪亦▣(爲)的實是如乎錢穀與山地出給事分付則▣…▣道山地?依當初定界成完文以給亦爲置依狀者所願▣▣龍虎六谷依本文永永出給之意玆以▣…▣心以法令爲法令切定成給是如乎今則矣身幸蒙特恤之澤推尋山地也更不煩訴是乎矣梧枝面▣…▣武斷鄕曲威脅民財因爲致富爲旀一邑事曰左則左曰右則▣(右)鄕民之畏趙鈒如畏虎傷人害物比比有▣…▣納續昨冬又入於暗行 御使道按廉已被刑杖之境然足水未淸不悛前習更爲出入校院指揮隨從群▣…▣議擧事驩呶臆奪矣身之山地付於雇廳爲計是何用心是何事理乎用山之法入葬者爲主禁養當然而▣…▣前後所呈所志議送完文與本券九張幷以帖連仰訴伏乞▣…▣鈒乱法之習俾無矣身山地已決之下作梗橫侵之地千萬望只爲▣…▣▣(癸)酉三月 日〈題辭〉自本邑査實論報以處向事本官 初四日[官印]▣[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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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城居幼學徐永修右謹陳事段本縣曳山面沿江十餘里有一帶柴塲壬子爲始自面中定爲巡山衆力守護每年發賣補用於民役以其餘剩買置田畓數石落是加尼昨冬良▣(中)有司數人不善擧行是如奸鄕輩訐告官家柴塲及田畓並爲奪入属公於雇馬廳而諸有司決罪放送矣身段謂有饒名多般威脅該面氷丁租六十石及 進上所用價一百二十兩使矣身白地擔當又稱罰贖錢六十兩公然責納於矣身此何事理節節可寃最所極痛者非它矣身先塋在於巡山之內龍虎六谷如干松楸所植處納畓七斗庫及錢三十兩於面中 成文卷買得禁養矣同畓土既入於雇馬廳而松楸之地渾歸属公故屢次呼訴久未决正是如可舊官臨歸時更呈所志始得許題而所志忽失去處方事推尋之際舊官座首鄭仁國邀請矣身好言誘說曰官家許題吾與有力七十兩錢即今備納則所志當出給亦爲去乙矣身初既切憎於渠輩貽害之事及聞此言越添肚氣峻責其誤官蠧民之習棄置而歸家則當日夜間兵房軍官吕善黙假托官令送將校捉去矣身出示所志曰所志在吾手錢文三十兩速速備來亦爲去乙矣身大笑曰所志題辞豈有價直雖三文錢吾無可給之義是如據理叱退舊官發行後徃推所志則吕善黙諉以還納於舊官終不出給爲臥乎所右項凶〖區〗地當初買得既已明白所志有無無甚係關畓土付諸雇馬廳則山地之渾奪萬無其理從文券出給之意 論題行下敎是遣許多錢穀之無端見失亦豈非橫政乎 並爲査實還徵俾免殘氓徹天之怨事 參商處分爲只爲行下向敎是事巡使道 處分壬申六月 日〈題辭〉詳査來歷且考本券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兼官 卄四日[官印]都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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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서경순(徐璟淳)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璟淳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 2월에 곡성현 예산면 신기리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 임술년 2월에 곡성현(谷城縣) 예산면(曳山面) 신기리(新基里)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堂姪)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京主人)에게 전령(傳令)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서경순은 전임 수령의 자손으로 신기리에 세거(世居)하고 있으나 가문이 쇠퇴하고 복이 없어 십 수호도 되지 않은 친족이 모두 가난하게 근근이 사는 처지였다. 올봄 정월에 서울 사람에게 진 빚으로 패가망신한 평지촌(平地村)에 사는 이기무(李基茂)가 노점(路店) 술자리에서 서경순의 당질 연국(延國)을 불러서 이번 한성시(漢城試)에 함께 가자고 하자 당질이 자신은 집이 가난하여 노잣돈이 없어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이기무는 웃으며 자기와 서울로 올라가면 서울 빚 5, 600전을 얻을 수 있고 무과 선달(武科先達)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하였으나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농담으로만 알았더니 이달 12일에 당질 연국과 이기무가 함께 서울로 떠나버렸다. 이에 서경순은 절박한 마음으로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서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청원서에 대해 곡성 수령은 2월 10일에 '경저리(京邸吏)에 전령을 내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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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천일관(千鎰冠)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冠 城主 □…□ (적색, 정방형, 2.4), □…□ (적색, 정방형, 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7년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은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허물어져 자금을 모아 정비하기 위해 이미 1896년 9월에 입지(立旨)를 발급해 달라고 정소하였다. 이 상서에서는 자금은 적고 공역(工役)은 허다하여 많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분묘에 떼를 입히고 정비하는 봉축(封築) 작업을 끝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호소하고, 분묘 부근의 금안방(金岸坊)과 기지방(機池坊)에 부역을 명하는 전령을 내려 묘소 정비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군수는 2월 22일에 면임(面任)에게 '정소한 대로 시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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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김재규(金在珪) 단자(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在珪 城主 城主<着名> □…□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 10월에 김재규가 제 고을 수령에게 자신이 맡은 성묘의 직임을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이임해줄 것을 청원한 단자 을미년 10월에 김재규가 제 고을 수령에게 자신이 맡은 성묘(聖廟)의 직임을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이임(移任)해줄 것을 청원한 단자이다. 자신은 평소 가난한 탓에 근래 농사짓고 사느라 동서로 분주한 미천한 몸으로 막중한 성묘의 직임을 외람되게 맡아 분수에 지나치니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신하여 직임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단아하고 민첩한 사람에게 직임을 맡겨주실 것을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아뢴다는 내용이다. 이 단자에 대해 본관(本官)은 10월 16일에 '단자로 아뢴 바가 이와 같더라도 하는 수 없으니 부응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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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貫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7년 1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에 세울 신도비를 운반할 때 묘소 부근에 있는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1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 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에 세울 신도비(神道碑)를 운반할 때 묘소 부근에 있는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의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남원군 금안방(金岸坊) 환봉(環峯) 위에 있는데 오랫동안 의물(儀物)을 갖추지 못하다가 지금 겨우 신도비를 창건하기 위해 장수(長水) 등지에서 비석을 만들어 마련하였다. 하지만 자금은 적고 공역은 상당하여 많은 사람의 힘이 아니면 필시 신도비를 운반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분묘 부근의 상·하반암방(上下番[磻]巖坊), 갈치방(葛[乫]峙坊), 왕지전방(王之田坊), 이언방(伊彦坊), 금안방(金岸坊), 기지방(機池坊)에 전령을 내려 비석을 운반하는 데에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 군수는 12월 7일에 각 방(坊) 사수(社首)들에게 '가까운 방(坊)의 경계 지역에서부터 즉시 신도비 운반을 완료하여 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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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貫 城主 城主<着押> 谷城郡守之章 (적색, 정방형, 2.5), □…□ 3顆 (적색, 정방형, 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900년 3월에 곡성군 예산면 장선리에 사는 천일관·천일권·천일표가 곡성군수에게 동임 이치현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전령을 내려줄 것을 청원한 상서 1900년(광무 4) 3월에 곡성군(谷城郡) 예산면(曳山面) 장선리(長善里)에 사는 천일관·천일권(千鎰權)·천일표(千鎰杓)가 곡성군수에게 동임(洞任) 이치현(李致鉉)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전령(傳令)을 내려 후폐(後弊)를 막아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의 선조 천만리(千萬里)는 임진왜란의 공신(功臣)으로 열성조에서 그의 충의(忠義)를 애석하게 여기고 그의 공렬(功烈)을 밝혀 특별히 화산군(花山君)에 봉하였다. 그리고 그의 얼자(孽子) 천손(賤孫)을 막론하고 잡역을 면제시키라는 전교(傳敎)와 완문(完文)을 내려서 거주하는 곳에서 별 폐단없이 혜택을 받아왔다. 그러나 천일관 등이 근래 우거하고 있는 곡성군의 임장(任掌)이 간혹 침해하여 여러 차례 정소(呈訴)하여 은택을 입었다. 그런데 동학란 이후로 인심이 전과 같지 않아 동임 이치현이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고 관령(官令)을 거역하여 내정(內庭)에 당돌하게 들어와 밥솥을 거둬 갔다. 이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정소하여 동임에게 전령을 내려 뒷날에 생길 폐단을 막아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곡성군수는 3월 11일에 형리(刑吏)에게 '동임에게 전령을 내려 금지시키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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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최남두(崔南斗)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南斗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6년 9월 11일에 생 최남두가 노진영에게 자신이 상대의 거처에 찾아가지 못했던 사유를 전하고 제2기 호쇄 세금 수취와 관련하여 현 상황을 전하는 내용으로 쓴 서간. 1936년 9월 11일, 생(生) 최남두(崔南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이 상대의 선헌(仙軒)에 가지 못했던 사유를 전하고 자신이 하는 일로 연락을 드리지 못할 것 같다는 내용으로 쓴 편지이다. 상대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층층 어른들이 모두 전과 같이 지내신다고 인사했다. 드릴 말씀은 어제 선헌(仙軒)으로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지만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며 매우 민망하다고 했다. 이번 2기 호쇄(戶刷) 세금은 귀하의 몫은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다며 그 날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지역 내무주임의 징수(徵收) 계획안을 보니 첫째는 면서기의 출장근무 성적을 본다는 것, 둘째는 각 부락의 호쇄 세금납부원중에 일자를 경과한 분량을 일일이 기재하여 복명(復命)하도록 했다고 한다며 모든 출장원이 면소(面所)에 매일 있어야 해서 소식을 전하기가 어렵다며 양해 해 주기를 청했다. 나머지 이야기는 조만간 만나 뵙고 하겠다며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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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全南 光山郡 芝山面 日谷里盧 軫永 殿(피봉_뒷면)黃海 甕津郡 西面內 錢山里貞峴洞盧秉來 疏上敬.(중봉_앞면)疏上盧 碩士 大孝 苫前盧秉來 謹封(簡紙)頓首再拜. 禮書之外, 復有何言.患候雖云沈重, 意謂以若淸粹之氣節, 溫潤之德行, 百歲康寧, 以待此生之一晋門屛, 復承德音矣. 遽至於此, 今焉已矣. 何痛如之, 何恨如之. 秉來自前秋拜辭之後, 常欲上書者久, 而於焉未遂于今. 雖有莫及之嘆, 奈何. 伏惟尊哀孝心純至, 哀慕諭節, 想必毁瘠矣. 伏願俯從禮制, 勿犯古人傷孝之戒, 如何. 秉來 自二月初客居於同郡交井面愼氏家, 與六七冠童, 以爲消遣法也. 而本第去來, 則數月一番, 故前者 貴從前上禮書式, 不免怱遽失節,惶恐惶恐. 今又以道途之遠, 不卽奔哭, 只以一紙替唁, 是豈百世宗誼深知之道乎. 忉恒不已. 想應誠敬之所占得何處, 牛眠之地否. 德門百靈所助自副, 古人所云吉人逢吉矣. 來惟以此仰祝而已. 令允諸玉無瑕善侍善課否. 此總是急於情私哀遑中, 敢此仰煩 恕諒焉. 封中誄詞一首, 以文短意拙不能道 先德之萬一, 伏悚伏悚耳. 餘姑此, 不備疏上.庚辰七月二十九日, 族末 秉來 再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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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병래(盧秉來)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秉來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29일, 노병래가 노종룡의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그 아들 노진영에게 보낸 위장. 1940년 7월 29일, 노병래(盧秉來)가 동족 친척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그 아들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위문편지이다. 위장의 투식으로 작은 글자로 적은 위장(慰狀)으로 상대가 뜻하지 않게 흉변을 당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심에 자신이 놀랐다는 것, 효심 많은 상대가 얼마나 마음 아프며 어떻게 견디고 있느냐는 것, 어느덧 10일 정도가 지났는데 애통함이 어떠하냐는 것, 억지로 죽을 먹는 등의 예제(禮制)를 잘 따르도록 하라는 것, 자신은 길이 멀어 끝내 위문을 가지 못했다며 죄송한 마음을 전하는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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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愚劣한 姻弟를 사랑ᄒᆞ여주시난 우리兄임이시여 千萬意外ᄋᆡ 만지정찰을 밧자오니깁분마음충양할수업사오며 감격한바는 일필난기로소이다 光陰이 如流함이여 사정업시도라가난디 구은발서五六年이라하는 名稱을부르게되오니 그므엇이라고ᄒᆞ오며 엇더타고 仰達ᄒᆞ오릿가 兄임의書中ᄋᆡ하신말삼엇지아니情海오며 엇지아니感謝하오릿가 天下기술家와 絶代미술家의기관으로도 이不順不孝를지은 寅燮事實은 能히 그와가치 화유치못ᄒᆞ리로다 ᄃᆡ저우충비열한姻弟는 지식도 물질도 경제도 아모것도 상관업시 풍조ᄋᆡ 쏘여 海外낭유지인이 되얏사오니 얼마ᄶᅳᆷ用恕ᄒᆞ여주시기를 바람이다거번ᄋᆡ 인제의 소관사로 촌향을 나가서 근이ᄀᆡ월만ᄋᆡ 도라오니 귀중하신 형임의 정찰을ᄇᆡ견켸 되엿슴이다 근심추량ᄋᆡ기체후만강하시고 가ᄂᆡ제절이다ᄐᆡ평하시온지 원ᄋᆈ봉축무이로소이다 姻弟은 旅劣이므량하오니 시위복ᄒᆡᆼ이오며從此이후난 여차우둔비열도覺今是而昨非를 사량하것사오니 될수인난ᄃᆡ로 종속키환국하기를 하계오며 餘은복축형임기체후 ᄂᆡᆯ강건하시기상서舊十月 日姻弟奇寅燮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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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山君 芝山面 日谷里▣軫永氏殿(피봉_뒷면)潭陽君 大德面 聲谷里金 連 洙(簡紙)盧生員丈氏前 上書.拜謁後日富하오니 下懷伏悵이로소이다. 伏未審臘寒侍餘氣體候萬康하시며 大小家도 均安하심을멀니 伏慕區區, 下誠之至로소이다. 小生은 丈氏으惠澤을 받어 丈氏으 孫兒地燮과 熱心으로 工夫하다가 小生은 放學을 當하와 無撓而歸省하■(와)〔야〕보니祖母主氣力도 建康하시고 父母氣力도 康健하시고大小家內가 다 無頉하옵니다. 丈氏으 遠念之德澤으로 思想함니다. 그러고 小生으 父親께서도 如此한時期에 地燮과 함깨 熱心으로 工夫하라고 命令하옵시니 德澤과 命令을 生覺하고볼지라도 永久熱心으로 工夫하라고 注意함니다.地燮이도 丈氏指導下에서 熱心으로 工夫할줄로 생각함니다. 사뢸말쌈만흐오나 上學日字臨迫하엿기로 躬進拜辞키로 不備上白是.昭和拾參年壹月五日, 小生 金 連洙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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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호용(盧灝容)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灝容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9월 20일, 족생 노호용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노종룡의 장례를 위문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편지. 1940년 9월 20일, 족생(族生) 노호용(盧灝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장례를 위로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편지이다. 자신의 가문 사람인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에 장례가 끝난 뒤 위문하는 내용으로 상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예제를 잘 따라서 효자의 몸을 보전할 것과, 자신이 직접 갔어야 하지만 길이 멀어 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위장의 투식에 따라 작은 글자로 얇은 종이를 이용하여 썼으며 노호용이 거주하던 곳은 경남 합천군 초계면(草溪面) 유하리(柳下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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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섭(奇寅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奇寅燮 姻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10월에 인제(姻弟) 기인섭(奇寅燮)이 처형(妻兄)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10월에 인제(姻弟) 기인섭(奇寅燮)이 처형(妻兄)에게 보낸 간찰이다. 처형이 보내준 편지를 받고 몹시 기뻤던 심경으로 인사를 시작하였다. 편지에서 하신 처형의 말씀이 매우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자신이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효도하지 못한 사실은 세상 최고의 기술자나 미술가라 하더라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라 자책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세상 풍조에 휩쓸려 고향을 나가 해외로 유랑하는 사람이 된 것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달라고 하였고, 서늘한 가을 날씨에 처형의 건강을 축원하였으며, 자신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본국에 돌아갈 계획임을 전하였다. 편지는 국한문혼용으로 작성되었고, 피봉이 없어서 기인섭이 어느 나라에서 보내온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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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付郵書 仰想入覽矣 謹更請經體萬旺 寶節均休 仰頌無射 弟功服人 方以寒感見苦 自憐自㭗耳 就先生事 庶有進行之方針 而自院主僻以下七賢子孫中孤雲靈川子孫 不必委託 宋訥菴家 則其門內有力權利人 何負於責任 兩金氏丁鄭家 亦如右委託 受諾 郡警兩廳事 鄙弟與儒林 擔當責任爲意 則事雖難矣 似爲圖謀 而大抵千秋血食賜額院配享事 豈可容易耶哉 非人揚解事者 不能者矣 至於武城院配享通章 則自貴邊善文之人許 全?碍眼文字 只以道德文章辭意善述抄件惠送 如何如何 且承諾二百円金 覽此書卽時速惠 如何如何 秋享費未堪中 因於院畓改築費 悉用計耳 諒哉 如何如何 貴隣鄭玩杓兄許 我二十円剞劂費速送之意勸言 亦爲大望 那兄言內 與仁兄協議付送云矣 然則受賜大矣 餘立俟不備上甲申正月九日 弟功服金成基拜拜【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三一▣…▣軫永兄殿〈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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